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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요르단

요르단 : 신이 빚은 붉은 바다를 노 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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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80%가 사막으로 이뤄져 있는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너무나 뜨겁기 때문에 그 속에 감춰진 오아시스는 더욱 시원할 수밖에 없다.
사막 곳곳에 감춰진 숨은 비경을 찾아 떠나는 요르단 탐험.

2003년부터 네 번 여행한 요르단은 나에게 있어 숨은 보석 같은 나라다. 누군가 ‘요르단의 무엇이 가장 좋냐?’ 라는 질문에 ‘열사의 땅이라 좋다’라고 대답한다. 전 국토의 80%가 사막인 뜨거운 나라,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할 것 같은 황량한 사막 곳곳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장소를 발굴하는 기분은 어떤 나라를 여행한다고 해도 절대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다.

고대 로마부터 그리스도교 그리고 아랍의 역사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를 거쳐 수많은 얼굴과 목소리를 간직한 나라, 요르단. 더불어 신이 조각하고 빚어놓은 것 같은 천혜의 장엄한 자연경관은 모험심 강한 여행자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붉은 사막의 나라 요르단은 때로는 고고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막의 유목민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매력 속에 빠져들기까진 인내가 필요하다. 요르단이라는 나라는 직접적인 거리는 가까울지 몰라도 막상 오고 가는 일은 멀고 먼 나라이기 때문이다. 직항기가 없어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로 가서 한번 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게다가 촬영 당시 故 김선일 살해사건과 관련된 알카에다 사촌이 요르단에 산다는 이유로 우리 촬영팀 몸값이 한 사람당 25만 달러라는 말을 해서 조금은 겁에 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도착 첫날부터 잊어버렸다. 요르단 사람들은 다른 아랍국들에 비해 유난히 개방적이고 정겹고 유쾌했다.


사막 속의 뜨거운 오아시스

2000년 전 왕의 대로를 따라간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은 전국토의 80%가 누런 사막과 석회암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으로 가다보면 누런 산밖에 없다. 어디를 가든 사방천지 바위와 흙투성이 사막길이 반복되어 혹시 내가 같은 장소를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꽃나무들이 화사한 별천지의 세상으로 들어서는데 바로 ‘마인(Ma'in)’이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이 사막 고원(East Bank Plateu)에 꽃나무가 피어있는 것도 신기한데 고원의 한가운데 50m가 넘는 폭포가 떨어지는 곳이 있다. 더구나 이 폭포에서는 불처럼 뜨거운 물이 떨어진다. 함마마트 마인 (Hamma Ma'in)이다. 온통 누런 사막 속에 있다가 이 폭포를 보게 된 순간은 정말 충격이였다. 이곳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헤롯왕 시절부터 비밀온천으로 사용되던 곳인데, 지금은 부유층 요르단인들이 이용하는 숨은 리조트가 되었다. 일명 불폭포라 불리는 제 1폭포는 50m 아래에 천연온천을 만들고 다시 그 밑으로 뜨거운 물이 흐르는 오아시스를 만들어낸다. 사막에 흐르는 뜨거운 오아시스라…. 카메라에 김이 서리는 것을 보니 뜨겁긴 한 것 같은데 얼마나 뜨거울지 호기심이 또 발동한다. 살짝 손을 넣어보려고 하자 안내를 하던 온천 매니저가 나를 만류한다.

“80℃요?”

“네, 그 이상이에요.”

그래도 믿지 못한 나는 살짝 손가락만 물에 넣었다. 그리고 그 즉시 너무 놀라 바로 뺏다. 

“앗, 뜨거. 진짜 뜨겁다.”

“마치 뱀이 무는 것 같죠? 내가 뜨겁다고 했잖아요. 달걀을 삶을 수도 있고 양고기도 삶을 수 있어요.”

“물의 온도는 80℃가 넘어요.”

나의 이런 행동에 매니저는 정말 즐거워했다. 이곳은 당장 고기를 삶을 수 있을 정도로 팔팔 끓는 유황온천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풍부한 수량의 물은 사막 어디에서 온 것일까? 건너편 산에 올라가서 보니 희미하게 물 솟는 것이 보인다. 사막고원의 작은 구덩이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폭포와 맞닿는 바위들은 온통 초록색으로 변해 있다. 이 물이 화산작용의 결과이며 미네랄을 품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화산활동의 결과로 생겼고, 3000년 이상 존재해온 곳이라고 한다.

여전히 감탄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수건 하나씩 두른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그 뜨거운 곳으로 온천을 하러 가는 것이란다. 80℃가 넘는 온천물이 폭포로 흘러내리는 곳에 면벽수도하듯 모두 불폭포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무슨 종교의식을 보는 것 같다. 

내가 손을 델 뻔한 80℃가 넘는 온도는 물은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 사람이 맞아도 될 만큼의 온도로 내려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도 뜨거운 사막에서 즐기는 온천 폭포라니…. 이것이 진정 이열치열인가 싶다.

문화가 다르다 보니 재미있는 풍경도 눈에 띄는데 이슬람 사회라서 그런가 여성들은 옷을 입고 히잡을 쓴 채 온천을 즐기고 있다. 또 아이를 제외한 성인 남자는 여자랑 같이 폭포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여자들이 물을 다 맞고 나면 그 다음 남자들이 들어간다.

또한 이곳에 오는 요르단 사람들은 휴식과 함께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폭포가 뼈에 관련된 질병에 좋은 각종 미네랄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 자체의 성분도 성분이지만 30m가 넘는 폭포에서(제2폭포: 뜨거운 물과 찬물이 섞여서 떨어지는 곳. 제1폭포보다는 낮음) 떨어지는 뜨거운 물을 그대로 맞으면 그 자체가 천연 열 마사지가 된다고 한다. 

“뜨거운 폭포에 맞으면 몸이 이완되서 너무 행복해요.”

“모든 요르단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장소죠. 천연 마사지이기 때문에 사람한테 마사지 받는 것에 비해 굉장히 쌉니다.”

나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데 앞서 들어간 남자들이 나올 생각을 안한다. 멀뚱멀뚱 한 사람만 계속 노려보고 있으니 일행이 있었는지 우르르 몰려나온다. 이젠 내가 들어갈 차례. 하지만 옷을 벗을 수는 없고 나도 이슬람여자들처럼 옷을 입고 들어갔다. 머리엔 흰수건을 두른채. ‘으악!’ 뜨거운 소나기를 맞는 것 같다. 사우나에서 맞는 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폭포의 뒤에는 더욱 놀라운 시설이 있다. 사람들이 손짓을 해 따라 가보니 천연동굴에서는 폭포보다 훨씬 뜨거운 물이 떨어지고 있다. 다들 뜨거워 발을 돌 위에 얹고 앉아있다. 바닥에 흐르는 뜨거운 물 때문에 뜨거운 김이 동굴안에 가득하다. 그야말로 천연 사우나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우리나라처럼 때를 밀어주는 목욕관리사가 보였다. 때미는 솜씨도 프로급에 때수건도 따로 준비해 온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시리아에서 온 여행자로 친구들을 밀어주고 있는 거란다. 때수건도 시리아에서 가져왔단다. 대단한 준비성이다

그 한켠에는 열심히 마사지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사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버지가 당뇨가 있으셔서 다리 마사지를 해드리고 있는 거예요.”

한때 헤롯왕도 피부병 치료차 들렀다는 이 곳,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행운은 길 위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 아닐까? 하늘의 뜨거운 선물 마인온천은 갈증을 식혀주는 뜨거운 오아시스였다.

온천을 하고 벌건 얼굴로 나오니 왠지 낯이 익은 청년이 웃으며 손짓을 한다. 아까 온천에서 나오라고 노려보았던 사람이다. 자신들이 커피를 준비했으니 한잔하고 가라는 것이다. 요르단 남자들은 처음 요르단에 오는 여자 여행객들이 착각 할 정도로 너무 친절하게 대해준다. 뭐 실제로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호기심이 더 강하다. 나도 처음엔 ‘여기 사람들 너무 눈이 높은거 같아’ 하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진한 아랍 커피 한잔을 하며 마인 온천에서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한다. 그들의 친절이 어떤 이유였던가를 떠나 요르단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에 먼저 인사를 해온다. 누구나 환대하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래서 난 요르단을 더 기억에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자연

마인을 지나 사막 계곡, 와디 무지브로 향한다. 요르단 국왕도 칭송했다는 최고의 자연이라 평하기에 더욱 기대가 크다. 와디 무지브로 향하는 길에는 곳곳에서 양을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 대다수가 목축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양들도 사람들을 닮는지 카메라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모습이 요르단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와디 무지브로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조금씩 드러나는 계곡의 모습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와우, 정말 크다.”

요르단의 그랜드캐년이라는 와디 무지브를 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와디(wadi)는 보통 계곡이나 사막의 마른 골짜기를 일컫는 말인데, 골짜기라 부르기엔 너무나 거대한 규모에 먼저 압도된다. 성서시대에는 고대 모압과 아모리왕국의 경계선이 되었던 아르논 계곡으로 불렸던 곳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생활을 하며 경유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곳에 서보니 왜 두 왕국의 경계선이었는지 실감이 난다. 정말 큰 협곡, 신이 만들어 준 국경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와디 무지브를 신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구불구불한 협곡의 도로를 따라 계곡 아래로 향한다. 그곳에서 와디 무지브의 숨은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지브 자연 보호 구역(Mujib Nature Reserve)에 들어서자 가이드가 반갑게 맞아준다. 


“요르단에는 여섯 개의 자연보호 지역이 있습니다. 무지브 자연보호 구역은 요르단에서 자연 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출발하면 왕복 5시간 정도 걸릴 것입니다.”

무지브 계곡 아래로 난 물길을 따라 5시간 탐험을 시작한다. 입구에서 이제 막 탐험을 끝내고 나온 여행자를 만났다. 젊은 어머니와 아들인데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한다. 

“일단 아름다워요. 매순간 즐거워요.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계곡이잖아요.”

그들은 무지브 계곡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한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계곡. 그것만으로도 기대와 환상을 품기에 충분하다는 말일 터. 이 속에 어떤 장관이 숨어 있을지 아직 맛보지 못했어도 시작부터 펼쳐지는 장엄한 바위숲만으로도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장관에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예상을 못하고 있다.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난관이다. 우리의 가이드 하미스가 빠른 물살이 치고 있는 바위위로 올라선다. 와디 무지브의 첫 번째 통과의례니 당연히 가야되겠지만 왜 이리 어려운 곳만 골라서 가는 느낌이 드는지… 다리 짧은 나에게는 유난히 힘이 드는 코스다. 좀전에 만난 여행자들에 왜그리 힘들어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위험하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눈앞에 펼쳐진 거센 물살의 중심. 수직 절벽에는 사망 사고가 있었다는 경고까지 붙어있다. 아무리 베테랑 가이드가 있다지만 이 거센 물길을 거슬러 가야 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카메라감독은 카메라를 수중 장비로 뒤집어씌우고 모든 물에 젖는 장비들은 가이드가 들고 있는 수중 팩에 집어넣고 다들 합심해서 바위위에 올라선다. 긴바지를 입은 것을 후회하는 순간 남들은 다 허벅지인데 나는 가슴팍까지 홀딱 젖었다. 신의 뜻대로, 신의 가호로 무사히 건너는데 성공! 항상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불행이 있으면 행복이 있다. 

힘들게 어려운 곳을 지나자 신천지로 들어선다. 하늘에서 떡하니 돌이 떨어졌는데 신기하게도 절벽과 절벽사이에 껴 있다. 

“저 돌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거야?”

인간이 연출하지 못하는 자연의 모습에 놀라움과 신기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카메라로 담지 못하는 순간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와, 우와’ 감탄사는 계속 이어진다. 
사막 한가운데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쏟아지는 무차별 물폭탄 폭포, 요르단 국왕이 경호대를 이끌고 뛰어 내렸다는 폭포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온몸으로 폭포를 맞이한다. 폭포 안으로 들어가니 놀랍게도 닥터 피쉬도 있고 가재도 있고 신기하다. 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 폭포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폭포를 맞으며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폭포를 내려오는 도전을 하는 것이다. 

“물이 얼굴로 떨어지는데 놀라워요.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웠어요. 위에서는 자신 있었거든요. 근데 물이 얼굴로 쏟아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세상엔 용감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계곡 탐사의 교차점이다 보니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 중 민망한 수영복 차림으로 바위를 기어오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런 차림으로 험난한 계곡 탐사를 하고 있다니 다치지 말아야 할텐데…’ 걱정이 됐지만,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점점 강해지는 물살에 깊이도 더 깊어졌다. 그 와중에 가이드는 뭔가를 꾸미고 있는 중이다.

밧줄을 타고 온 사람들과 나와 카메라 감독까지 바위에 올라오게 하더니 냅다 한사람씩 거친 물살로 던져 버린다. 말이 슬라이딩이지 그대로 물에 처박혀 물을 한바가지나 먹었다. 옷이 물에 젖어 무거워지고 다리는 풀려 천근만근이지만, 돌아나오는 길이 아쉬워 자꾸 와디 무지브의 계곡을 돌아보게 된다. 언제 다시 이 자연에 올수 있을까? 내가 만난 사막의 오아시스는 요르단 촬영의 잊지 못할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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