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아름답고 바람은 시원하고 세상은 푸르른 5월이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아름다운 계절이다. 5월에 적당한 곳이 어디 한두 곳일까마는, 그래도 한 곳을 고른다면 시원한 강바람 속에 계곡의 절경을 감상하며 수준 있는 화이트 와인도 즐길 수 있는 오스트리아 바하우(Wachau)는 어떨까 싶다. 

유럽 대륙의 중심을 흐르는 총길이 2826㎞의 도나우 강. 누구나 그림 같다고 이야기하는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제일은 역시 바하우다. 멜크(Melk)에서 크렘스(Krems)까지 이어지는 약 36㎞의 계곡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선정된 곳이다. 계곡을 따라 구비구비 흐르는 강도 아름답지만 경사진 포도밭 사이의 작은 마을들, 강을 내려다보는 가파른 산꼭대기에 남아 있는 수도원과 고성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1000년 전 중세시대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12세기 후반 쓰여진 독일의 대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Nibelungenlied)'에도 바하우는 등장한다. 도나우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 계곡에서 느껴볼 수 있다. 

크렘스는 도나우 강 유람선 관광의 중심지면서 바하우 계곡 일대에서 재배되는 포도를 원료로 하는 오스트리아 제일의 화이트 와인 집산지다. 

오스트리아 와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전통적인 유럽의 와인 강국 와인들에 비하면 그다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와인도 역사적으로 그 전통을 무시할 수 없다. 바하우 계곡에서도 기원전부터 포도가 재배되었다고 한다. 현재 생산되는 와인의 80%가 화이트 와인인데 수십 종의 토착 포도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대표 품종은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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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너 벨트리너는 가볍고 드라이한 듯하지만 미네랄이 풍부하고 맛의 무게감도 확실하다. 오스트리아 와인은 가까운 독일 양조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생산자들은 대부분 소규모이며 극히 제한적인 양의 다양한 와인을 함께 만든다. 단일 품종의 포도를 사용하며 와인의 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하우의 음식은 돼지고기 정도를 제외하면 사냥한 고기나 민물고기를 주로 이용한다. 이런 음식에 포도의 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성 있는 토착 와인이 잘 어울린다. 

유람선을 타고 선상 레스토랑에서 도나우 강의 민물고기 요리를 화이트 와인과 함께 맛보며 계곡의 절경을 여유 있게 즐긴다. 중간중간 와이너리에서 직접 만든 와인을 맛보고 남아 있는 고성 유적과 작은 마을을 들러볼 수도 있다. 포도밭 마을인 슈피츠(Spitz)나 멜크 수도원도 훌륭하다. 멜크 수도원은 움베르토 에코의 세계적인 화제작 '장미의 이름'의 모티브가 된 견습 수도사의 수기가 발견된 곳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바로크 수도원으로 그 규모와 웅장함, 역사적 의미, 내부의 화려함에서 다른 어떤 곳에도 뒤지지 않는다. 10만권의 장서를 지니고 있다는 도서관도 유럽에서 손꼽히는 곳이다. 

[서현정 뚜르 디 메디치 대표·문화인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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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Salzburg)에서는 선율에 취한다. 골목 모퉁이마다 모차르트아리아가 흘러나오고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유럽의 한가운데 있어 ‘유럽의 심장’으로 여겨지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오랜 기간 고풍스런 예술과 낭만의 교차로였다.

잘차흐강과 어우러진 호헨잘츠부르크 성의 야경은 구시가의 풍취를 더욱 그윽하게 만든다.

잘츠부르크는 인근 암염광산 때문에 ‘소금(Salz)의 성(burg)’이라는 독특한 의미를 지닌 도시다. 광산으로 부를 축적했고 그 경제력을 자양분 삼아 예술혼을 꽃피워 냈다. 거리에서 만나는 자취는 흔히 떠올리는 광산지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태어났으며 아직도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가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잘츠부르크는 ‘북쪽의 로마’로 불릴 만큼 중세의 건축물들이 많다.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았다는 대성당은 1000년의 역사를 넘어선다. 도시에 대한 추억은 구시가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호헨잘츠부르크성(Festung Hohensalzburg)이나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빛바랜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 혹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됐던 바로크양식의 미라벨 정원(Mirabellgarten)에서 시작되거나 마무리된다. 우람한 상징물들이 모두 짙은 빛으로 채색돼 있을 때 이방인의 발길을 유혹하는 것은 어디서나 흔하게 만나는 파스텔톤의 골목과 아침시장들이다. 그 아담한 골목과 건물 모퉁이에서 화려한 잘츠부르크를 사색하기에 좋다.

이방인들의 아지트 게트라이데 거리


잘츠부르크 시내는 반나절이면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거리에는 한가롭게 전기버스가 오가고, 잘차흐 강(Salzach River)을 중심으로 도심은 신시가와 구시가로 나뉜다. 골목시장에서 구입한 바게트 빵 한 개와 사과 한 알을 들고 미라벨 정원의 벤치에 앉아 따사로운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으며 산책 삼아 강을 건너면 구시가지의 빼곡한 골목 사이로 한 줌 햇볕이 어깨에 내려앉는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여정은 이렇듯 일상의 한 조각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됐던 미라벨 정원.

바로크풍의 미라벨 정원은 꽃이 흐드러진, 휴식과 상념의 공간이다. 꽃망울에서 시선을 떼면 호헨잘츠부르크성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미라벨 정원 ‘대리석의 방’에서는 모차르트가 실제 연주를 했으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정원을 배경으로 도레미송을 부르기도 했다.

구시가지 구경의 큰 재밋거리는 좁고 오래된 게트라이데 거리를 골목골목 누비는 것이다. 골목 간판에는 판매하는 물건을 상징하는 작은 조각들이 함께 걸려 있는데 허리띠, 우산, 등잔 모양 등의 간판이 앙증맞다. 게트라이데 거리나 레지덴츠 광장(Residenz Platz) 등을 거닐다 보면 사연 가득한 장소들과도 조우하게 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에는 6,000개의 파이프로 만든 파이프오르간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모차르트 동상 앞의 토마젤리 카페(Café Tomaselli)는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즐겨 찾았다는 300년 전통의 카페로 아이스비엔나 커피가 유명하다. 그 거리 가운데, 노란색으로 치장된 건물이 또 모차르트의 생가다.

골목에 녹아든 모차르트의 흔적들


‘잘츠부르크=모차르트’의 공식은 도심 곳곳에서 묻어난다. 구시가 전역이 모차르트를 상징하는 것들로 분주하게 채워져 있다. 모차르트의 광장과 동상 외에도 박물관이 별도로 세워져 있으며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 향수 등도 팔리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죽음이란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며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1890년 처음 만들어진 모차르트 쿠겔른(Mozart Kugeln) 초콜릿은 100년의 역사를 넘어서 잘츠부르크의 명물이 됐다. 겉포장에 모차르트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지나친 마케팅 때문에 위대한 음악가의 얼굴이 초콜릿이나 알코올 제품, 화장품에까지 인쇄돼 팔리고 있는 건 다소 씁쓸하기도 하다.

잘츠부르크 거리에서는 여느 도시들처럼 거리의 악사나 미술가들이 서성댄다. 하지만 음악도시의 명성답게 이곳에서 연주를 하는 악사들은 철저하게 힘겨운 오디션을 거쳐 통과한 수준급 실력자들이다. 매년 여름, 모차르트를 기리기 위해 열리는 잘츠부르크 음악제는 유명 음악가들이 대거 참가하는 세계적인 음악제로 명성이 높다. 음악제가 열릴 때면 도시는 선율에 취해 화려하게 흥청거린다. 거리에서 꿈틀대는 숨결과 감동은 우뚝 솟은 호헨잘츠부르크 성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첫 장면을 장식했던 철옹성은 야경으로 유명하며 파손되지 않은 중부유럽의 성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호헨잘츠부르크 성은 철옹성처럼 굳건한 외관을 지녔다.

한가롭게 잘츠부르크 도심을 오가는 여행자들.

해질 무렵이면 게트라이데 거리와 호헨잘츠부르크 성으로 이어지는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잘차흐 강변과 다리 위는 늘 북적거린다. 강변에 서면 구시가를 담아낸 물결은 오선지의 은은한 선율과 뒤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가는 길
항공으로는 오스트리아 에 도착한 뒤 잘츠부르크로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열차 여행 중이라면 독일 뮌헨, 스위스 취리히에서 들어갈 수 있으며 독일 뮌헨에서 이동하는게 가장 가깝다. 2시간 소요. 잘츠부르크 관광카드(Salzburg Card)를 구입하면 시내의 모든 교통수단과 관광지를 추가 요금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미라벨 정원 앞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신청하면 영화 촬영지 등을 두루 둘러볼 수 있다.

그 호수. 유럽 배낭여행자들이 동경하는 호수 중 최고의 반열에 올라 있다. 소문을 듣고 우연히 들렸든, 작심을 하고 방문했든 사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호수에 우연히 들른 여행자라면 하루 묵을 결심을 하게 되고, 하루 묵을 요량이었다면 떠남이 아쉬워 한 사나흘 주저앉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호수다. 호수의 이름은 할슈타트(Hallstatt).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잘츠캄머구트)에 있는 한적한 호수다.

배를 타고 들어서는 할슈타트의 전경은 데칼코마니를 이룬 듯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알려지기야 잘츠카머구트의 이름이 더 귀에 익숙하겠다. 잘츠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잘츠카머구트는 알프스의 산자락과 70여 개의 호수를 품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도 나왔고, 영화의 무대가 됐던 대저택, 성당 역시 화제를 모았다. 장크트 길겐, 장크트 볼프강, 볼프강 호수 등이 대표적인 명소인데 그중에서도 ‘잘츠카머구트의 진주’로 꼽히는 곳이 할슈타트 호수다.

할슈타트의 지우지 못할 단상들은 이렇다. 열차에서 내려 배를 타고 들어서면 흰 마도로스 모자를 쓴 선장이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호숫가 너머 산등성이에는 동화 속에서 봤을 듯한 마을이 매달려 있다. 해 질 녘 호수 위는 물새들이 가로지르며 언뜻 눈을 뜬 새벽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아침에 빵 굽는 냄새가 솔솔 피어나는 길목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지나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짧은 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머무는 며칠. 아련한 호수마을의 주인공이 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긴 설명들은 어쩌면 감동을 정리하지 못한 사족일지도 모른다. 들어서는 순간 마음을 강렬하게 뒤흔드는 호수마을. 할슈타트에 대한 ‘찡’한 충격과 사연은 그렇게 압축된다.

할슈타트 마을 여행의 중심이 되는 중앙 광장. 광장이라지만 아담한 규모다.

할슈타트는 연인들이 추억을 만들기에도 적합한 곳이다. 호숫가에는 낭만이 가득하다.

그 호수마을이 1997년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고, 마을의 역사가 BC 1만 2000년 전으로 아득하게 거슬러 올라가며 유럽의 초기철기문화가 이곳에서 발견됐다는 내용도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들이다. 그런 기록적인 수식어가 없더라도 호수마을은 가슴에 오래 내려앉아 여행자들의 추억 속 안식처가 된다.

깊은 호수마을은 예전에는 소금광산이었다. 할슈타트의 ‘hal'은 고대 켈트어로 소금이라는 뜻을 지녔다. 세계최초의 소금광산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귀한 소금산지였던 덕에 풍요로운 과거를 지녔던 마을은 소금산업의 중심지가 옮겨가면서 관광지로 모습을 바꿔 갔다.

소금광산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뒤로 돌아서 케이블카를 타고 다흐슈타인 산에 오르면 광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폴란드 크라쿠프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한적하고 외진 호수마을에서 오래된 광산을 만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면 낮은 눈으로 봤던 호수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촘촘히 둘러싸인 산자락 안에 호수는 아담하게 웅크려 있다.


호수마을은 고즈넉한 분위기다. 마을 한가운데 중앙 광장이 있고 광장을 둘러싸고 꽃으로 창을 단장한 세모 지붕 집들과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예전 소금광산에서 나왔던 암염조각을 팔기도 한다. 소금을 캐던 녹슨 장비며, 마을의 오랜 역사를 알려주는 아기자기한 박물관도 작은 구경거리다. 소금광부들의 삶과 함께한 중세 교회나, 1,200여 개의 해골을 전시한 전시관 등도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이다. 골목을 따라 거닐면 투박한 쪽문, 담장을 채색한 작은 장식 하나에도 눈길이 간다.

자전거 탄 풍경이 어울리는 할슈타트의 아침 골목. 골목 어디에서나 호수 향이 묻어난다.

여행자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골목을 서성이며 ‘zimmer(방)'라고 쓰여 있는 마음에 드는 민박집이나 펜션을 정한다. 흰 빨래가 나풀거리는 뒷골목 소박한 민박집 문을 두드리고 하룻밤 청하면 된다. 창을 열면 상쾌한 호수의 향기가 폐까지 밀려들고 마을 골목은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한 여행자들의 잡담들이 맴돈다. 아침이면 주인 아줌마가 내놓은 빵과 채소가 담긴 정성스런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 된다. 호수마을은 유럽의 웅장한 도시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으로 여행자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최근 중국 광둥성에서는 할슈타트를 그대로 모방한 호수마을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유럽 외딴 호수마을의 풍광을 중국에서 만난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아름다움을 근거리에서 재현하고 싶은 그들의 열망은 사뭇 이해가 된다.

가는 길
항공기로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 도착한 뒤 잘츠부르크를 경유해 열차로 이동한다. 잘츠부르크에서 온천휴양지인 바트이슐을 거쳐 할슈타트까지 열차가 다니며 버스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열차에서 내리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마을 초입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숙소 예약이 가능하며, 입소문이 난 뒤 한국 배낭족들의 흔적도 마을 골목에서 만날 수 있다.

 

끝나지 않는 냉전의 호텔 - 임페리얼 호텔

지난 2009년 12월, 빈 중심가 임페리얼 호텔의 객실에서 필드 케이르라는 남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는 요르단 중앙정보부의 전직 지휘자이며 최근까지 국왕 압둘라 2세의 최측근이었던 자. 경찰은 심장 마비라고 발표했지만 여러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해 초, 우마르 이스라일로프라는 남자가 빈 거리에서 대낮에 총격으로 살해당했다. 그는 러시아 군이 체첸 공화국에서 벌인 잔혹 행위의 주요한 목격자였다고 한다.


스파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이 눈앞에 펼쳐져도 낯설지 않은 도시. 빈은 언제나 국제 정보전의 한가운데 있어 온 도시다. 냉전 시대 동서의 스파이들이 공공연히 정보전을 펼치던 곳이었고, 철의 장막이 해체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에서 외국인 정보 조직원의 비율이 가장 높은 스파이 허브(Spy Hub)다. 가장 위험한 나라의 정보원들조차 ‘전통에 따라’ 자유로운 활동을 벌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국제기구가 곳곳에 있고, 무기 구매와 돈 세탁도 용이하다. 공교롭게도 케이르가 죽은 임페리얼 호텔은 냉전 시대 크렘린의 모든 정보가 집결되던 빈 적군(Red Army)의 수뇌부가 자리 잡았던 곳이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비밀 회담방 - 쉔부른 궁전

오스트리아가 대제국이었을 때부터 빈은 스파이들의 도시였다. 아니, 이 제국의 영광 자체가 첩보 활동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1740년에 즉위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철의 정열로 이 제국을 다스렸다. 다산의 여제였던 그녀는 모두 16명의 아이를 낳았고, 이들을 통해 전 유럽과 사돈을 맺어 권력의 거미줄을 짰다. 루이 16세에 시집 보낸 마리 앙트와네트 역시 그 중 하나였는데, 여제는 다른 자식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녀들에게 스파이 임무를 맡겨 일거수일투족을 알리게 했다. 그런데 주요 보고 사항이란 것이 덜 떨어진 루이가 아무리 앙트와네트가 유혹해도 침소에 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으니, 오죽 속이 탔을까?

여제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을 보고 경쟁심에 불타 화려하게 증축했다는 쉔부른 궁(Schloss Schönbrunn)에서 그녀는 반대의 입장에 처해 있었다. 궁 안에는 곳곳에서 밀파된 스파이들이 득실거렸기에, 시종과 시녀의 출입조차 통제한 비밀 회담방을 마련해 두어야 했다.


단두대에 오른 마리 앙트와네트의 주요 죄목은 쉔부른 궁에 편지를 보내 스
파이 활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도시를 구하고 커피를 얻은 스파이 - 콜시츠키 거리

스카이 콜시츠키는 성안에 갇힌 시민들을 구한 덕분에 도시 최초의 카페를 열었다.


1683년 오스만 제국의 터키 군사들이 빈을 공격하자, 시민들은 성문을 걸어 잠그고 두 달 동안 적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점차 식량과 물자가 떨어지고 지쳐가던 시민들은 항복이 임박해왔다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이때 폴란드 출신의 장사꾼인 콜시츠키(Georg Franz Kolschitzky)라는 자가 나선다. 그는 아랍인 행세를 하며 오스만의 노래를 부르며 터키 군사 지역을 통과해,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곧 빈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온다. 빈 시민들은 머지않아 해방의 환호성을 지를 수 있었다.


이때 성 밖의 터키군이 남기고 간 포대 중에 이상한 곡식이 있었다. 아랍 문화에 익숙한 콜시츠키는 이것이 '커피'임을 알고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한다. 그는 ‘푸른 병 아래의 집(Hof zur Blauen Flasche)’이라는 빈 최초의 카페를 열고 기독교인들을 커피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커피 가루를 걸러내고 우유를 더하는 빈 특유의 전통도 이때 생겨났다. 지금 빈의 남쪽에는 콜시츠키의 이름을 딴 거리(Kolschitzky-gasse)가 있어 아랍 복장을 하고 커피를 따르는 그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제3의 사나이]의 카페 - 카페 모차르트

빈을 세계인들에게 ‘스파이 도시’로 각인시킨 장본인은 뭐니뭐니해도 영화 [제3의 사나이]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한 뒤 빈이 네 열강에 의해 분할 통치되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랜 친구의 연락으로 빈에 도착한 미국의 소설가는 친구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을 알게 되고, 사건을 뒤쫓다 무기 암시장과 같은 빈의 어두운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느와르 영화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 작품은 시종일관 어두운 톤으로 대관람차, 묘지, 하수로 등 빈의 여러 장소들을 화면 속에 담는다. 대관람차에서는 그 유명한 명대사가 펼쳐진다. “이탈리아는 체사레 보르자 밑의 40년 동안 전쟁과 테러와 유혈낭자한 참상을 당했지만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와 르네상스를 만들었다. 스위스는 그들의 형제애로 5백 년 동안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얻어 뭘 만들었나. 뻐꾸기시계다.” [제3의 사나이]의 무대가 되는 빈을 탐험한 뒤에는 알베르티나 광장 모서리의 ‘카페 모차르트’에 앉아 잠시 사색에 잠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스릴러 작가 그래엄 그린이 시나리오를 썼던 장소이며 영화에도 등장한다.


냉전 시대,빈은 암시장의 어둠이 흘러넘치는 도시였다.

마타 하리가 되고 싶었던 사랑의 여간첩 - 요한 스트라우스 동상

치명적인 매력의 여자 스파이,마타 하리의 전설은 빈에서 귀엽게 부활했다.


마타 하리와 본드걸. 우리에겐 치명적인 매력의 여성 스파이들에 대한 판타지가 있지만, 실제 정보 세계에서 이런 실례를 찾기란 극히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빈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한때 마타 하리가 무희로 공연하기도 했던 이 도시에서 ‘마리나’라는 닉네임의 KGB의 여간첩을 만나보자.


마리나는 아리따운 금발의 여성으로 파리의 러시아 이민자 사회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프랑스 정보조직에 섭외되어 모스크바 무역박람회에 참가한 것이 이쪽 세계에서의 첫 일이었다. 별것 아니었다. 러시아 혈통이고 예쁘니까 자연스럽게 사업가들과 친해졌고, 그들의 대화를 기록해 전달하면 되었다. 따분했다. 그녀는 이후 뮌헨에 있는 미국의 이념 방송국인 ‘라디오 리버티(Radio Liberty)’의 러시아어 방송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올레그 투마노프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카나리아 군도로 여행을 가서 그녀와 한 침대에 누운 투마노프는 자신이 KGB의 스파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곧 설레게 되었다. 비밀과 위험에 매혹되는 소녀의 마음으로. 마리나는 1974년부터 KGB 정보원이 되었다. 그녀는 이 일을 즐겼다. 비밀 편지를 작성한다든지 하는 일엔 낙제점이었지만, 방송국에서 술을 마시며 동료들의 비밀을 건네 듣는 일은 아주 잘했다. 그녀는 이 정보들을 모아 빈의 스파이들에게 전했다. 그녀의 빈 지도에는 주요 접선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스타트 파크(Stadt Park)의 유명한 요한 스트라우스 동상도 그 중의 하나다. 나중에는 방송국에 설치할 폭탄을 배달하라는 임무를 받았는데 이는 거절했다고 한다. 소녀 스파이의 로맨틱한 감성에 맞지 않았나 보다.

제임스 본드의 놀이동산 - 대관람차

명품 중독의 바람둥이 스파이, 제임스 본드에게도 빈은 지나칠 수 없는 도시다. 역대 007 중에서 제일 인기 없는 티모시 달튼이 주연을 맡는 바람에 빛이 바랬지만, [007 리빙 데이라이트]는 이 도시를 배경으로 화려한 스파이 전쟁을 보여준다. 본드는 슬로바키아에서 암살범으로 의심되는 본드 걸 밀로비와 그녀의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 ‘레이디 로즈’를 빈으로 데리고 온다.

쉔부른 궁전, 놀이동산(Wurstelprater), 그리고 유명한 대관람차((Wiener Riesenrad)를 지나는 액션 활극이 펼쳐진다.


제임스 본드도 당연히 이 첩보 도시를 피해갈 수 없었다.(영화이미지)

비엔나 커피는 없어도 비엔나 땅굴은 있다 - 슈베하트

1940년대 후반 빈을 분할 통치한 여러 나라들은 적국의 정보를 캐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때 영국 측이 임페리얼 호텔의 소련 측 본부에서 크렘린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경로를 알아내게 된다. 영국군은 빈 남동쪽 슈베하트(Schwechat) 지역의 고속도로 밑에 땅굴을 파고 전화선을 따낸 뒤, 근처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위장 가게를 연다. 영국제 남성복과 잡화 같은 걸 팔았는데, 의외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오퍼레이션 실버(Operation Silver)라 불린 이 작전은 훗날 베를린에서 보다 큰 규모로 진행된 오퍼레이션 골드로 발전했다. 오스트리아는 국토의 3/4이 산악 지역인지라 터널 굴착에 있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한반도 휴전선 지역에서 발견된 북한 땅굴에 장비와 기술력을 제공한 것도 바로 그들. 그런데 이들은 장비를 제공한 사실을 남한 측에 슬며시 알려주었다고 한다. 역시나 스파이 정신이 투철한 나라.

“빈은 카페에 둘러싸인 도시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말했다. 빈은 유럽의 대도시 중에서 가장 먼저 커피 문화를 받아들인 곳이며, 19세기 말의 고풍스러운 문학 카페의 전통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도시다. 카페 센트럴(Café Central), 카페 데멜(Café Demel), 호텔 자허(Hotel Sacher) 등 전통의 커피하우스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빈의 매력을 한껏 맛볼 수 있다. 물론 [비포 선라이즈]에서 하룻밤 풋사랑의 무대가 되는 레코드 가게, 다리, 공원, 묘지들을 둘러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 모차르트, 왈츠, 오페라로 대표되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한껏 빠지는 것도 훌륭한 선택. 11월부터 시작되는 유럽 최대 규모의 크리스마스 마켓도 놓치기 아깝다. 길거리 곳곳에서 파는 핫 와인 한 잔으로 몸을 덮여보라.

600년이 넘는 길고 긴 세월 동안 유럽 전역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찬란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화려한 건축물과 예술이 살아 숨쉬는 오스트리아 '빈'. 발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예술의 정취가 가득한 이 곳을 여행하는 방법은 황제 프란츠 요세프가 만든 환상도로 '링'을 따라 둘러보는 것이다.

전체 길이가 5km에 달하는 '링'을 따라 대부분 관광명소가 밀집해 있다. 링 안쪽으로 슈테판대성당과 광장, 호프부르크(왕궁)이 있고, 링을 따라 공원, 국립오페라극장, 미술사 박물관, 국회의사당, 시청사 등 중세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또 링(구시가) 밖으로 쇤브룬 궁전, 벨베데레 궁전 등 왕가의 별궁과 귀족의 성관이 자리하고 있다.

링 따라 둘러보는 관광 명소

* 국립오페라 하우스

국립오페라 하우스는 성 슈테판 대성당과 함께 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오페라하우스'는 파리 오페라하우스, 밀라노 '오스칼라극장'과 더불어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로 꼽힌다.

총 1642석과 567개의 입석을 갖춘 유럽 최대 규모의 극장인 이 곳은 1869년에 문을 열면서 모차르트의'돈 조반니'가 개관 기념으로 공연됐다. 이후 세계 유수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이 곳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매년 5~6월에는 예술 음악제, 2월에는 무도회, 7~8월 제외한 달에는 매일 오페라가 공연된다.



▲국립오페라하우스

로비 정면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대계단과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빛나며, 황금빛으로 장식한 흰색 발코니 등이 무척 호화롭다. 오페라 팬을 위한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공연을 직접 보려면 인터넷으로 예약하거나 관광안내소에서 음악회 스케줄 등의 정보를 얻은 뒤 표를 구입할 수 있다. 홈페이지www.wiener-staatsoper.at

*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마리아테레지아 광장에 있는 미술사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7천여 점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런던의 내셔널갤러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유럽 최대의 미술관이다.

미술사박물관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 의해 1871~1891년에 자연사박물관과 함께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박물관은 G,1,2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G층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의 유물과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을 만나볼 수 있다. 1층에서는 회화, 2층에는 메달과 동전이 전시돼 있다.



▲미술사박물관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원형홀이 나타나는데 정면으로 보이는 중앙계단에는 테세우스상이 있고, 둥근 지붕을 올려다보면 프레스코화가 보인다.

박물관에서는 피터르 브뤼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농가의 결혼잔치'와 '바벨탑'을 비롯해 루벤스의'모피', '비너스의 경배', '일데폰소 제단화', '성모마리아의 승천' 등을 감상할 수 있다. 1층 중앙에 박물관 카페가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홈페이지www.khm.at

* 자연사 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사이에 두고 미술사 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은 1827년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공룡화석, 유전자 수집물, 선사, 청동기시대의 유물, 멸종된 동물의 박제, 광물 등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특히 무려 100㎏이 넘는 토파즈 원석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보석의 부케'등이 볼거리. 홈페이지www.nhm-wien.ac.at

링 밖의 주요 볼거리 쇤브룬 궁전 & 벨베데레 궁

* 쇤브룬 궁전(Schloss Schonbrunn)


'아름다운 우물'이란 뜻을 지닌 쇤브룬 궁전은 베르사유 궁전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궁전과 정원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품격과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쇤브룬궁전

1569년 막시밀리안 2세에 의해 처음으로 지어졌고, 궁전 내부에는 1,400여 개 방이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로코코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고, 당시 왕궁에서 사용했던 가구와 장식품 등이 그대로 전시돼 있다.

궁전 뒤로는 1.7㎢ 달하는 광대한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진다. 화단과 분수, 신화를 주제로 한 44개의 정교한 대리석상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은 궁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외에도 그리스 신전 양식의 글로리에테, 궁정마차 박물관, 온실 등이 있다.



▲쇤브룬궁전



▲쇤브룬궁전

* 베레데레(Belvedere) 궁전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베레데레 궁전은 1683년 오스트리아를 침략한 오스만 투르크군을 무찌른 전쟁 영웅 오이겐 왕자의 여름 별장으로 1721~1723년에 지은 것이다.

'좋은(Bel) 전망(Bedere)의 옥상 테라스'라는 이탈리아 건축 용어에서 유래한 벨레데레는 그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궁전은 '상궁', '하궁', '오랑게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회장이었던 '상궁'은 1723년에, 왕가의 거처였던 '하궁'은 1714년에 지어졌다. 언덕 위에 있는 상궁과 하궁 사이에는 정원과 분수가 이어진다.

지금은 상궁은 19~20세기 회화관, 하궁은 바로크 미술관인 오스트리아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상궁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클림트의 '키스',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 등이 전시돼 있다.



▲케른트너 거리

세계적인 예술가 흔적 따라 떠나는 여행


세계 음악의 수도'빈'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브람스 등 세기의 음악가들이 활동했던 무대였던 곳이다. 덕분에 빈에는 음악가와 관련된 곳이 많다. 그들이 살았던 곳, 예술적 영감을 불태웠던 곳을 찾아 음악 산책에 나서보다.



▲모차르트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한 모차르트 하우스(피가로하우스)

모차르트가 3년간 살았던 '모차르트 하우스 빈'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던 곳으로, 악보와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은 1~4층으로 돼 있으며 오디오 해설을 들으며 각 층을 둘러볼 수 있다.

또 빈에서는 오페라, 오페레타, 발레, 음악회, 뮤지컬, 연극 등 크고 작은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만큼 이를 감상할 기회를 잡아보자.

특히 빈의 최대 여흥거리는 오페라. 웅장한 무대와 화려한 의상, 호화스런 분위기 속에서 오페라 노래와 연주에 흠뻑 빠져보자. 왕궁 예배당 미사에 참여하면 빈소년 합창단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모차르트 기념품점

여행 TIP


가는 길= 인천~빈 직항편은 대한항공이 화·목·토요일 주 3회 운항한다. 비행시간 약 12시간 소요. 빈의 주요 관광명소를 둘러보려면 '트램'을 이용하는 게 유용하다. 트램 1일권을 구입하면 둘러보고 싶은 명소마다 내렸타 타며 빈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슈타이어마르크의 주도이자 오스트리아의 제2 도시인 그라츠는 빈에서 남쪽 200km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다.

잘츠부르크를 떠나 바트 이슐, 할슈타트를 거쳐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연출하는 오스트리아 남부 슈타이어마르크 주도 그라츠까지 280km를 달렸다. 할슈타트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호수와 호반마을의 풍경이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할슈타트에 도착하기 전 알프스 산록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휴양도시 바트 이슐에 들렀다. 이곳에 엘리자베스 황후의 생애를 볼 수 있는 황제의 별장이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슈타이어마르크의 와인가도. 구릉 아래 왼편은 슬로베니아 영토다.

엘리자베스 황후의 드라마틱한 일생


엘리자베스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부인이다. 그녀의 일생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아름답고 비극적이었다. 그녀는 독일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공작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언니 헬레나가 요제프와 선보는 자리에 따라갔다가 그녀의 미모에 반한 황제가 언니 대신 동생을 선택하여 16세의 어린 나이에 황후가 되었다. 천성이 자유분방하였으나 궁중생활에 압박감을 느꼈고 유일한 아들인 황태자 루돌프가 애인과 자살한 이후, 우울증과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유럽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다 1898년 레만 호숫가에서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했다.

1914년 황제 계승자인 그녀의 조카 페르디난도 황태자 역시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하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1918년 600여년 동안 유럽을 호령하였던 합스부르크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엘리자베스 황후의 드라마틱한 일생은 빈에 있는 황제의 아파트먼트와 시시(황후의 애칭)박물관에 잘 전시되어 있다. 이곳 알프스의 작은 마을 바트 이슐의 별장에 전시되어 있는 암살 직전의 시시의 유품을 보면서 당시 유럽을 울렸던 황후 부부의 사랑과 비극, 인생의 무상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할슈타트 호수와 호반마을. 고대에 와인 생산을 한 유적이 발견됐다.

슈타이어마르크의 주도(州都)이자 오스트리아의 제2도시인 그라츠는 빈에서 남쪽 200km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다. 중세의 유적이 많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슈타이어마르크의 포도 재배면적은 총 4400ha로 비교적 넓은 와인산지다. 100% 블라우어 빌트바허(Blauer Wildbacher) 포도로 만든 쉴허(Schilcher) 와인으로 유명한 서부, 화산재로 형성된 테루아로 인해 스파이시한 트라미너(Traminer) 와인을 생산하는 남동부, 그리고 소비뇽 블랑 와인을 주로 생산하는 남부 등 세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 중 남쪽 슬로베니아 국경지역 구릉에 펼쳐져 있는 2350ha의 쥐트슈타이어마르크 지역이 세계 최고 품질의 소비뇽 블랑 와인 생산지다. 이곳에서는 소비뇽 블랑 이외에도 이곳 테루아의 특징을 반영한 벨쉬리슬링, 모리용(Chardonnay), 뮈스카텔러, 트라미너 등 다양한 품종의 포도를 재배한다. 토양은 샌드스톤, 혈암, 점토, 그리고 조개화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남쪽 아드리아해의 영향을 받아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이며, 밤 기온이 시원하다. 소비뇽 블랑 재배에 있어 풍부한 아로마와 우아한 과일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최적의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은 다뉴브 강변 바하우 계곡과 함께 오스트리아 최고의 와인 관광지로 유명하다. 특히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지역을 따라 동쪽 에렌하우센에서 감믈리츠, 라이프니츠의 서쪽 소설 지역까지 경사진 구릉 위로 꼬불꼬불하게 연결되어 있는 낭만적인 와인가도를 달리는 것이 이곳 여행의 백미다. 왼쪽은 슬로베니아, 오른쪽은 오스트리아 영토 내의 포도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나무바람개비는 포도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돌면서 나는 요란한 소리를 이용하여 새를 쫓는 시설로, 이 지방의 상징이기도 하다.






슈타이어마르크 근교 슬로베니아 영토에서 테멘트 와이너리가 새로 개발한 척박한 포도밭에 포도묘목을 심고 있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와인관광지


별 다섯개의 이 지역 최고 품질의 소비뇽 블랑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테멘트(Tement)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와인가도 치어렉 마을에 위치한 테멘트는 남쪽 슬로베니아 영토를 내려다보는 구릉 위에 현대적인 양조시설을 갖췄다. 75ha의 포도원에서 55% 이상 소비뇽 블랑을 재배하고 있었다. 이웃집 드나들 듯이 자유롭게 양국의 국경을 넘나들며 포도밭을 구경했다. 특히 슬로베니아 영토 내 암반에 가까운 땅을 개발하여 트랙터로 어린 포도묘목을 심고 있는 것을 보았다.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저 척박한 토양에서 어떻게 포도나무가 자라고, 그렇게 향기로운 와인이 탄생될 수 있을까? 새삼 인간의 도전정신과 자연의 소중함을 절감하였다.

테멘트는 오스트리아에서 7개 와이너리만이 가지고 있는 품질인증마크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스트리아 클래식'(Steirische Klassik)은 신선하고 과일향이 풍부하도록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숙성시키고, 한 단계 높은 품질의 'STK-Lagen' 와인은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하여 저온 장기발효와 대형 오크통에서 숙성시켜 복합적이고 스파이시한 맛을 낸다.






테멘트 와이너리에서 시음한 세계 최고 품질의 화이트 와인들. 맨 왼쪽이 대표와인 '소비뇽 블랑 치어렉 STK Lagen'으로, 크리스탈 병마개를 볼 수 있다.

이곳의 토양을 잘 알 수 있도록 절개하여 만든 지하 와인셀라 구경을 마치고 와이너리 오너 아들 아민 테멘트의 설명을 들으며 와인 시음을 하였다. 소비뇽 블랑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와인을 시음했다. 테멘트의 대표와인 '소비뇽 블랑 치어렉 STK-Lagen 2006' 빈티지의 풍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짙은 녹색 병과 검은 바탕 위의 심플한 황금색 레이블의 로고가 현대적이다. 코르크 대신 특별히 제작한 크리스탈 마개는 1유로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엷은 녹색이 감도는 노란 빛깔에 구스베리, 벌꿀과 민트향, 입안을 감도는 미네랄과 약간 스파이시하고 부드러운 바닐라향이 비단결처럼 산도와 절묘하게 복합된 풍미가 일품이었다.

필자에게 소비뇽 블랑의 정석이라고 하는 뉴질랜드 와인은 너무 정직하게 포도의 맛을 표현해 신비감이 떨어지고, 소비뇽 블랑의 원조격인 프랑스의 보르도와인은 우아하지만 무거워 신선함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슈타이어마르크의 와인이 이 두 와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소비뇽 블랑의 새로운 와인 스타일'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됐다.

다뉴브강변의 토양을 품은 그뤼너 벨트리너가 현재 오스트리아의 자랑이라면, 이곳 슈타이어마르크의 소비뇽 블랑은 오스트리아를 빛낼 미래의 와인이 되지 않을까?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가진 모국에 대한 자부심은 예전부터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로 이어져, 여행자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려는 그들만의 보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 인스브루크에서 만난 광활한 자연과 수많은 명소들, 그리고 그 속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삶이 주는 즐거움을 향유하며 사는 유쾌한 사람들. 그들이 있어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는 더욱더 특별한 도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인스브루크 전경- 멀리 흐르고 있는 인강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다.

구 시가지 - 황금 지붕부터 오토부르크까지

오스트리아 티롤 주(州)의 주도인 인스브루크에 도착하면, 도심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림과도 같은 알프스 산맥의 비경에 넋을 잃게 된다. 푸름이 만연한 들판 저 멀리 보이는 위풍당당한 산들을 바라보면 벌린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는다.

인스브루크는 인(Inn)강과 다리(Bruck)라는 뜻의 독일어를 합친 말로, '인강 위에 있는 다리'라는 뜻이다. 지도를 보면 인강이 마치 우리나라의 한강처럼 도심 사이로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심부 외곽에서는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 산맥의 웅대한 비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연 풍경만 보며 감탄하기에 인스브루크는 훨씬 더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다. 인스브루크의 상징이라 불리는 ‘작은 황금의 지붕’을 시작으로 인스브루크 매력 탐방에 나선다.

구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황금의 지붕(Goldenes Dachl)’은 후기 고딕양식의 건물의 발코니를 덮고 있는 지붕이다. 이곳은 페르디난드 4세가 1420년 티롤 주 영주궁궐로 지은 후,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2,738개의 동판자로 지붕을 덮게 해 1500년에 완공됐다고 한다. 막시밀리안 1세가 건물 바로 앞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만든 이 발코니에는 황제와 두 황비를 비롯해 궁중광대, 무용가 등의 모습과 문장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황금의 지붕 오른편으로 쭉 들어가면, '호프부르크 궁전(Kaiserliche Hofburg)'이 나온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아 아기자기한 느낌이지만,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황비가 집정한 중요한 장소이다. 궁궐성당 앞 광장의 한편에서는 카페들이 들어서 있어, 여러 사람들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잠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땀을 식히는 시간을 갖는다.

황금의 지붕과 건물-발코니 내에는 황제와 황비, 문장 등이 부조로 만들어져 있다.

궁궐 성당 내부-가운데 황제의 무덤이 있으며, 청동상들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다.

궁궐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 '궁궐성당(Hofkirche)'에 들어선다. 페르디난드 1세 때 건축된 이 성당 안에는 막시밀리안 1세의 무덤이 있다. 황제의 무덤이 있는 곳이고, 대성당이라서 그런지 내부는 약간 엄숙한 느낌이 깃들어 있다. 성당 내에는 황제의 대리석 조각무덤이 놓여 있고, 그 양쪽에는 28개의 청동상들이 있다. 마치 황제를 지키고 있는 듯, 고딕양식과 르네상스양식이 어우러진 대성당 안에는 뭔가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돌고 있다. 무서운 마음(?)에 서둘러 성당을 빠져 나온다.

성당 근처에 있는 ‘시첨탑(Stadtturm)’ 위에서 인 강과 인스브루크 거리를 바라보며 상쾌한 기분에 젖는다. 전망대 위에 오르기 위해 148개의 계단을 올라왔다는 사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저 멀리 보이는 노르트케테 봉의 절경만 보더라도, 아픈 다리가 씻은 듯 낫는 느낌이다.


탑을 내려와 강을 향해 걷다가 바로크 양식 건물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로코코 양식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바로 '핼블링 하우스(Helblinghaus)'이다. 화려한 건물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곳은 현재 상점과 일반 아파트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양식은 조금 다르지만 강가에 있는 '오토부르크(Ottoburg)' 또한 주택첨탑으로 쓰이고 있다. 고딕양식이 돋보이는 이 건물은 아늑한 음식점과 포도주점으로 변모해, 여행자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첨탑 앞에 있는 기념탑에 궁금해 물어봤더니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티롤 주 자유투쟁자의 기념탑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든지 자유는 가장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할 주제가 아닐까 새삼스러운 생각을 해 본다.

특별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곳

인스브루크 거리의 중심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를 거닌다. 신성로마제국 황후의 이름을 딴 거리 위로 트램과 버스들이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그리 넓은 도로는 아니지만, 시내에는 일반 차량이 의외로 적어 통행에 불편은 없어 보인다. 항상 차들로 북적이는 우리나라 도심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한적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이 거리의 가장 유명한 명소 성 안나기념탑을 바라본다. 이 기념탑은 1703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당시 이 지역을 점령했던 바이에른 침입을 기념해 건립됐다고 한다. 탑에는 성모상, 성녀 안나상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거리를 바라봄과 동시에 저 멀리 만년설이 뒤덮인 확 트인 시야까지 한 눈에 들어와 마치 이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 같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의 또 하나의 명소는 바로 개선문이다. 왕자 레오폴드 2세와 마리아 루이자의 결혼을 기념해 건립됐다. 결혼축제 중 아버지인 황제 프란츠 1세가 사망했기 때문에, 개선문 남쪽에는 결혼식은 북쪽에는 황제의 서거를 상징하고 있다.

개선문을 다시 올라 동쪽으로 걸어가면, 티롤주가 오스트리아에 속한 지 5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루돌프샘을 만나게 된다. 호프부르크궁의 동쪽에 있는 레오폴드샘과 더불어 샘가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작품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레오폴드샘에 있는 조각품은 알프스 북부지역에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개선문-삶과 죽음, 행복과 슬픔을 표현했다.

한가로운 도심 외곽-도심을 벗어나면, 아름다운 자연 들판을 볼 수 있다.

이제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떠나야 할 차례다. 3번 트램을 타고 암브라스역에서 하차해 암브라스 성으로 향한다. 본래 있던 것을 페르디난드 2세가 아내를 위해 개축한 이 성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단정한 정원이 인상적이다. 성 안에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 화랑을 보면, 예전에 가졌던 부와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를 단지 동계올림픽을 두 번(1964년, 1976년) 개최했으며,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에 좋은 곳, 알프스 산맥의 도시로만 치부해왔던 생각은 큰 오산이다. 셀 수 없이 다양한 명소들은 각각 오랜 역사를 간직해 왔으며, 도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과연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던 다리의 아픔이 점점 전해져 온다.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인스브루크 근교에는 ‘휴가촌’이 많이 들어서 있어 여행자들이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브루크의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유쾌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다.

누군가 그랬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특별한 휴가를 보낼 수 있다고. 인스브루크를 특별한 휴가지로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아닐까.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따뜻하게 웃는 바로 저 사람들 말이다.

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오스트리아까지 직항으로 운항하는 항공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주변국가를 경유해서 간다. 대한항공에서 인천~빈 구간 직항편을 주 3회(화, 목, 일) 운항하고 있다. 약 11시간 40분 정도가 걸리며, 빈에서 인스브루크까지는 기차로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별과 호수, 그리고 오페라와의 만남

독일 알프스 산자락에는 빙하가 녹았던 자리에 큰 호수들이 군데군데 있다.

여름밤에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오페라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언젠가 누군가가 “밤하늘의 별 밑에서 오페라를 보는 것이 작은 소원”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게다가 그 무대가 깊은 산속의 호수라면, 과연 그날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의 하나가 될 것이다.

유럽에서 여름에 열리는 페스티벌 중에는 야외 오페라 공연이 꽤 많으며, 그중에는 호수에서 벌어지는 공연들도 꽤 된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것들 중에도 단연 최고이자 가장 아름다운 분위기를 갖추었고, 한 번쯤 가 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은 역시 브레겐츠 페스티벌이다.

독일 알프스 산자락에는 빙하가 녹았던 자리에 큰 호수들이 군데군데 있다. 그 호수들은 고산 지대에 위치해 물이 맑지만, 예부터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중부 유럽의 산속에 숨어 있는 보덴 호(Bodensee)인데, 나라에 따라서는 콘스탄츠 호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덴 호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3국이 만나는 국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보덴 호에서 배를 타고 나와 호안湖岸을 바라보면, 주변 마을마다 각기 다른 나라의 국기를 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일의 서남쪽 끝과 오스트리아의 서쪽, 스위스의 동쪽 끝이 만나는 곳인데, 호수를 둘러싼 여러 마을들 중에서 그래도 도시다운 모양을 가장 제대로 갖춘 곳이 브레겐츠다.

브레겐츠는 오스트리아 땅이다. 이 도시는 명색이 포어아를베르크 주의 주도(州都)이지만, 동화책에 나옴 직한 시골 마을처럼 조그마하고 귀엽다. 이 작은 곳에서 매년 여름마다 대규모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는 것이다.

보덴 호 가운데에 있는 린다우는 성 하나가 도시를 이루고 있다.

알프스 산속에서 세 나라가 만나다

브레겐츠가 오스트리아라고 해서, 빈과 같은 오스트리아 도시를 통해서 브레겐츠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오산이다. 빈은 물론이고 빈보다 더 가까운 잘츠부르크에서도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 브레겐츠다.

브레겐츠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스위스의 취리히나 독일의 뮌헨을 통하는 것이다. 브레겐츠는 뮌헨과 취리히를 잇는 국제 철도의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에, 이 두 도시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좋다. 취리히 중앙역에서 뮌헨행 열차를 타면 약 2시간, 반대로 뮌헨에서 취리히행 열차를 타면 2~3시간 만에 브레겐츠 역에 닿는다.

열차가 브레겐츠 역에 들어서면 주위 분위기가 달라진다. 명색이 주도라는데, 과연 여기가 도시일까 싶다. 담도 경계도 없는 역에는 고산 지대라서 그런지 여름인데도 낙엽들이 굴러다닌다. 역 건물이나 플랫폼도 거의 비어 있다. 하이킹을 가는 몇몇 학생들과 딸네 집을 다녀온 듯한 할머니 두 분만이 조용하고 깨끗한 플랫폼 벤치를 지키고 있다. 아무리 오스트리아 잡지에서 선정한 순위라고 하지만, 잘츠부르크와 바이로이트에 이어 세계 3위라고 자랑하는 세계적 페스티벌이 열릴 것 같은 곳이 도무지 아니다.

산속의 도시 풍경은 차분하기만 하다. 시민들의 표정에는 베로나에서 볼 수 있는 활기찬 모습도, 잘츠부르크에서 볼 수 있는 돈 욕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조용하다. 페스티벌을 알리는 얌전한 깃발들을 제외하고는, 손님들을 위해 새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풍경이 마치 우리 시골의 어느 역에 내린 것처럼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러나 은은한 초록색의 역 건물은 세련되면서도 기능적인 현대식 건축으로 처음 오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건축가가 설계했다는데, 느낌이 좋다.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에 비해서 지나치게 커 보이는 역 건물은 에스컬레이터 등의 현대식 시설을 일찍 도입한 입체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역 건물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시내로 이어지지만, 페스티벌을 찾아 온 이상 호수 위에 서 있다는 거대한 무대를 빨리 보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역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트렁크를 든 채 역의 2층으로 올라가서, 뒤편으로 이어지는 육교를 건너가면 된다. 역 뒤편으로 내려오면 어린이 놀이터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카지노와 호텔이 보이고, 그 건물들 뒤로 돌아가면 멋진 축제극장(Festspielhaus)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호수를 무대 삼아, 황혼을 조명 삼아

이곳에 오기 전에는 황량한 호숫가에 큰 무대만 달랑 있는 장면을 상상했지만, 실상은 호숫가에 초현대식 건물인 축제극장이 버티고 서 있다. 원래 1980년에 세워졌지만, 2006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변신을 했다.

이 건물 역시 조형미가 돋보이는 현대식 건물로, 페스티벌의 역사와 함께 이곳의 예술적 안목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축제극장은 오페라, 콘서트, 전시, 회의 등이 열리는 상설 공연장이자 페스티벌 본부가 있는 곳으로서, 현대식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이 건물의 뒤쪽인 호숫가에 호수를 바라보는 큰 계단식 좌석을 만들어서, 여기서 오페라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무대는 듣던 대로 호수 가운데에 떠 있다. 주최 측에서 ‘떠 있는 무대(floating stage)’라고 홍보하는 초대형 무대는 객석과 약간 떨어져서 호수 위에 있는데, 왼편의 긴 다리를 통해서 제작진이나 출연자들이 통행한다. 이 무대는 사실 떠 있는 것이 아니고, 물속에 단단한 지지대를 두고 있다.

그레이엄 비크가 연출한 <아이다>가 호상 무대에서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호상(湖上) 무대는 다른 페스티벌처럼 무대를 매일 바꾸거나 이동하는 조립식이 아니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부술 수 없는 콘크리트와 철골로 된 견고한 고정 무대다. 그러므로 호상 무대에서는 매년 한 작품의 오페라만 공연한다. 그리고 한 작품은 보통 2년의 수명을 가진다. 즉 두 시즌 동안 같은 작품을 공연하고 2년 후에 다른 작품으로 바꾼다. 그래서 시즌이 아닐 때도 호숫가에 서 있는 거대한 세트들은 멀리서 보면 장관이다. 이 무대는 특히 석양에 두드러지는, 보덴 호의 랜드 마크인 것이다.

공연은 저녁에 이루어진다. 어스름 황혼이 깔리면 사람들은 정장 차림에 담요를 하나씩 들고 스탠드에 앉는다. 비록 야외이기는 하지만 스탠드는 현대식 공법이어서, 4,400석에 달하는 좌석이 모두 편안하고 어느 자리에서나 시야가 아주 좋다.

좌석이 거의 차면 공연의 첫 행사로, 큰 배가 무대 왼편의 선착장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호수 건너편의 독일에서 오는 여객선으로, 독일 사람들이 오페라를 보러 배를 타고 오는 것이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햇빛을 받으며 기항(寄港)하는 배를 보는 것도 참으로 멋지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으면, 조명들이 꺼지고 오페라가 시작된다.

그때가 보통 저녁 9시에서 9시 30분이다. 1막이 진행될 때까지는 하늘이 다 어두워지지 않는다. 음악을 들으면서 석양을 감상하는 것도 브레겐츠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인데, 호수의 풍광을 잘 즐기려면 앞자리가 아니라 맨 뒤의 높은 자리가 더 좋다.

무대 세트의 놀라운 크기와 합창단, 무용단, 엑스트라의 엄청난 규모는 처음부터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앞자리에 앉으면 목이 아파서 올려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세트에서 작은 창문들이 열리면, 각 창문마다 조명들이 튀어나와 관객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가장 큰 특징은 엄청난 세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숨은 곳에 있으니, 이곳의 공연은 마이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가수들은 저마다 귀밑에 마이크를 붙이고 나온다. 관객에게는 지휘자도, 오케스트라도, 심지어 오케스트라 박스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축제극장의 건물 속에 숨어서 모니터와 마이크를 통해 서로 사인을 주고받는다. 이 모든 것은 전자 장치에 의해 조절된다.

스탠드의 맨 뒷자리 뒤에는 축제극장의 꼭대기 층이 보이는데, 그곳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마치 대형 유조선의 조타실이나 국제공항의 관제탑처럼 무대와 호수와 객석을 전부 조망할 수 있다. 그곳에서 모든 조명과 음향 등을 지시하고 그에 따라 무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곳에는 실내 라운지로 된 호사스러운 특별석도 있지만, 처음에는 노천에 앉아서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어찌 되었거나 이곳에 처음 와 본 사람이라면 감동과 흥분을 넘어서 거의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진지한 클래식 팬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음향 부분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마이크를 쓰는 다른 지역의 공연들(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한 기술로, 음향은 예상보다 좋은 편이었고 독창자와 합창단, 오케스트라 사이의 음량 분배도 상당히 잘 조절되고 있었다.

비 때문에 호상 무대에서 공연이 어려우면 실내인 이곳 축제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공연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막간이 없는 오페라, 그 충돌의 충격

1999년에는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가 올라갔다. 호수 안에 몸 절반을 담근 채 서 있는 거대한 해골 모형 덕분에 잊을 수 없는 무대였다. 《가면무도회》는 실제로 있었던 스웨덴 왕 구스타프 3세의 암살 사건을 다룬 역사적인 드라마다. 구스타프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심복인 요한 앙카스트룀 백작의 부인인 아멜리아를 남몰래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친구의 아내를 사랑한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앙카스트룀은 왕의 이런 심정을 모르는 채 왕과 자신의 부인의 관계를 의심하고, 결국 가면무도회 도중에 왕을 저격한다는 내용이다.

무대 옆에 서 있는 해골은 커다란 책을 펼치고 보고 있는데, 이 책이 바로 무대가 된다. 그러니 가수들은 바로 그 책 위에서 오페라를 공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은 춤 교본 같은 것으로, 그 위에는 춤출 때 밟은 스텝의 움직임이 그려져 있다. 즉 모든 출연자들은 책 위에서 춤을 추고, 왕은 해골, 즉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자신의 운명에서 도망 갈 수 없다는 것을 호수 위의 거대한 무대가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깜짝 놀랄 만한 이 무대를 만든 연출가는 리처드 존스와 앤서니 맥도널드로서, 이들은 이 무대를 통해 그 이름을 전 세계에 드날렸다.

2001년 여름에는 푸치니의 《라 보엠》이 호수를 장식했다. 연출은 역시 리처드 존스와 앤서니 맥도널드로서 또 한 번 브레겐츠에서 깜짝 놀랄 만한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파리의 카페를 연상시키는 테이블형 무대 위에서 출연자들은 대인국(大人國)에 온 소인들처럼 보였다. 소인들은 현란한 색상의 재떨이나 볼펜 위를 뛰어다녔다. 무대 뒤의 엽서 판매대에는 각 막마다 파리의 다른 풍경들을 보여 주는 엽서들이 나타나, 각 장면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교한 무대 위에서 가수들이 노래할 때, 관객들은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빈 심포니’)가 연주하는 푸치니 음악과 함께 [걸리버 여행기]의 먼 나라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무대 앞의 호수에 등장하는 보트 위에서도 연기가 벌어지는데, 이것은 매년 보여 주는 장치다.

브레겐츠 페스티벌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막간에 휴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호상 무대이므로 1막이 끝나도 막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브레겐츠 공연들은 이런 점을 도리어 살려서, 1막이 끝나면 놀라운 장면 전환을 보여 주면서 바로 2막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3막, 4막으로 이어진다. 곡을 직접 작곡한 베르디나 푸치니가 보면 놀랄 일이겠지만, 실제로 극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질 때의 효과는 신선하고 대단하다.

2007년 무대는 로버트 카슨이 맡아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호상 무대 전체를 정유공장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무대인데, 이 작품은 중세 스페인의 왕위 계승 전쟁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헤어진 형제간의 사랑과 전쟁 이야기다. 그런데 현대에 왕위 계승 전쟁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카슨은 무대를 정유공장으로 옮기고, 여기서 일어나는 경영권 다툼의 이야기로, 즉 현재 사장과 퇴출당한 노조 위원장 사이의 싸움으로 그리고 있다.

노조의 돌격대가 공장으로 침입하는 장면은 마치 눈앞에서 영화가 펼쳐지는 것 같다. 공장 꼭대기에서 유격대처럼 로프를 타고 일순간에 무대로 들어서는가 하면, 연인을 납치하여 보트에 태워서 보덴 호수 저편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객석 사이의 출입구를 통해 등장한 합창단들은 호수 위의 무대로 기어 올라가면서 〈대장간의 합창〉을 부른다. 이 모든 것들이 브레겐츠라는 독특한 환경을 잘 살린 연출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상상력도 호수 저편으로 나래를 편다.

최근에는 비제의 《카르멘》, 베토벤의 《피델리오》, 베르디의 《나부코》 등이 2년 간격으로 공연되었고, 모두들 참신한 연출로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이름을 드높였다. 이어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푸치니의 《라 보엠》,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푸치니의 《토스카》, 베르디의 《아이다》가 공연되었고, 2011~2012년에는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가 공연되고 있다.

현재, 가장 전위적이고 참신한 연출가의 한 명인 영국의 데이비드 파운트니가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을 맡고 있는데, 그의 취임 이후 브레겐츠는 더욱 화려한 무대와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보여 주고 있다.

선상 공연이 하이테크놀로지 공연으로 일어서다

세계 최초의 호상 오페라 축제인 브레겐츠 페스티벌이 시작된 것은 1945년이었다. 처음에는 호수에 큰 배를 띄우고 그 위에서 공연을 했는데, 관객들은 호숫가에서 공연을 감상했다. 그런데 그 행사가 브레겐츠와 보덴 호숫가의 여러 도시들을 찾는 휴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하여 주최 측은 1948년부터 호수 위에다 아예 무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레퍼토리는 주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나 프란츠 레하르 같은 이들의 빈 오페레타가 주를 이루었는데, 시설도 제대로 되지 않은 야외에서 본격적인 오페라를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무리였을 것이다.

케이스 워너가 연출한 <안드레아 셰니에>는 다비드의 명화 ‘마라의 죽음’을 호수 위에 재현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과 같은 현대식 시설을 갖추게 된 것은 1979년이었다. 그때부터 호상 무대에 기계식 이동 장치와 첨단 음향 시설이 생기고, 이어서 1980년에는 축제극장이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오페라 하우스보다 더욱 웅장한 무대와 더욱 엄청난 음향을 들려주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초기 무대를 장식하던 오페레타 레퍼토리들이 사라지게 된다. 그 대신에 무대의 작품성에 역점을 둔 본격적인 오페라들이 올라가게 되어, 베르디, 바그너, 푸치니 등의 정극(正劇) 오페라들이 이곳의 주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브레겐츠 무대에 오르던 수상(水上) 오페레타들은 멀리 오스트리아 동부의 뫼르비슈 호숫가로 옮겨지게 된다. 브레겐츠 공연은 비록 마이크 등의 전자 장치를 쓰기는 하지만 그 음향이 참으로 대단해서 무려 300미터 밖의 호반에 앉아서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브레겐츠는 세계 야외 오페라 무대의 음향 발전에 늘 선구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가장 발달한 음향 테크놀로지를 보여 주는 곳이다. 베이징 쯔진청(紫禁城)의 《투란도트》, 나일 강 테베의 《아이다》 등 세계의 주요 야외 오페라들은 모두 이곳 브레겐츠의 기술에 의존한 것들이었다.

그동안 브레겐츠에서 상연되었던 프로덕션들 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공연으로는 1985년 푸치니의 《투란도트》, 1991년 비제의 《카르멘》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지금은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이 된 연출가 데이비드 파운트니가 연출했던 1994년의 《나부코》는 이스라엘과 바빌로니아(지금의 이라크)의 전쟁을 현대의 중동 사태를 연상하게끔 만들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끌려가서 <노예들의 합창>을 부르는 대목 등은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처럼 묘사했으며, 기관총의 총격전이 난무하고 화염이 자욱한 전투 장면을 연출하는 등 브레겐츠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호상 무대가 유명하긴 하지만, 브레겐츠 페스티벌에 호상 오페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80년에 개장한 축제극장에서는 야외와는 별도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나 현대 오페라들을 매년 올리고 있다. 그러므로 두 장소의 오페라를 번갈아 보는 묘미도 있다. 2001년에는 마르티누의 오페라 《줄리에트》가 축제극장에서 공연되어 호상 무대의 《라 보엠》보다 더 높은 격찬을 받았던 것이다.

축제극장은 2006년에 확장되어 좌석을 1,600여 석으로 늘리는 등, 유럽에서도 가장 현대적이고 훌륭한 공연장의 하나로 탈바꿈했다. 이곳에서는 야외 오페라와는 별도로 빈 심포니의 콘서트 등이 열린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는 1948년부터 해마다 빈 심포니가 참여하여, 모든 오페라 공연을 연주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빈 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진 기여를 기리기 위해 축제극장 앞 광장의 이름이 ‘빈 심포니 플라츠’로 명명되었다. 빈 심포니는 오페라가 쉬는 날에는 콘서트를 열어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한 달 정도 열리는 페스티벌 기간에 단 하루도 쉬지 않는다. 최근에는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대니얼 나자렛 등의 지휘자들을 초대하여 이 페스티벌에서 빈 심포니를 지휘하게 하는 등 다양한 관현악을 선사했다.

참여했고, 다수의 실내악단들이 크고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그뿐 아니라 연극, 무용 공연과 세미나가 열렸고, 빈 심포니는 워크숍도 가졌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무대 장치와 호상 무대의 객석

골목에서 마주치는 작은 풍경들

브레겐츠는 걷기에 딱 좋은 곳이다. 그것은 시내나 호반이나 다 그러하다. 특히 아침에 인적이 드문 시가지를 걸으면, 좁은 골목을 돌 때마다 앙증맞은 풍경이 이방인을 맞는다. 조용하고 예쁜 도시 구석구석에 작은 갤러리, 서점, 카페들이 있고, 전통 식당들도 많다.

시내 곳곳에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관련된 상호들이 많아서, 마주칠 때마다 “아, 여긴 페스티벌의 고장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빈 심포니 플라츠 앞의 식당은 이름이 ‘심포니’이며, 카지노의 식당은 트라토리아 ‘팔스타프’다.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는 ‘로시니’이며, 호반의 한 식당에서 파는 이곳 특유의 파스타 이름은 ‘스파게티 카루소’다. 브레겐츠의 정적과 이탈리아 오페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산속의 조용한 오스트리아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뜨거운 이탈리아 오페라와 카루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브레겐츠를 방문할 때 절대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현대 미술관인 ‘브레겐츠 쿤스트하우스(KUB, Kunsthaus Bregenz)’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시내에 자리 잡은 초현대식 건물인 브레겐츠 쿤스트하우스는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가 설계한 건물로서 1997년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인 건축물들 가운데서도 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전위적인 현대 미술전 《세상을 넘어World Beyond》가 열리는 등, 페스티벌 기간에 항상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위 작가들의 특별전이 준비되어 있다.

린다우에서 마시는 한 잔의 적요

브레겐츠의 주위에도 아름다운 곳들이 많은데, 보덴 호 주변의 여러 명소들 중에서도 린다우는 가장 두드러지는 도시다. 서울의 교외선 같은 시골 열차를 타고 브레겐츠에서 출발하면, 열차는 불과 15분 만에 마치 베네치아로 들어갈 때처럼, 보덴 호 가운데에 난 둑 위를 달려 작은 섬에 도착한다. 동화나 장난감처럼 아름다운 이 섬이 독일령 린다우다. 열차가 섬에서 나갈 때는 앞뒤를 바꿔서 움직인다.

비록 15분 거리이지만, 브레겐츠는 엄연히 오스트리아이고 린다우는 독일이므로 열차를 탈 때 여권을 소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매일 이웃 마을처럼 왔다 갔다 하므로 여권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한번은 열차 안에서 경찰이 내게 여권 제시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호텔은 오스트리아에 있는데, 독일에 차를 마시러 가게 되었습니다”라고 난감한 표정으로 사정했다. 경찰은 씩 웃으면서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했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가 설계한 브레겐츠 쿤스트하우스는 또 하나의 명물이다.

섬 위의 도시 린다우는 13세기경부터 호수 위에 그림처럼 서 있다. 역에 내리면 바로 앞 항구에 정박한 수많은 돛단배들과 여름 태양을 반사하는 은빛 수면의 호수가 나그네를 맞이한다. 아름다운 건물들로 둘러싸인 린다우 항의 벤치에 앉아 있으면, 너무나 조용하여 들리는 것이라고는 돛대에 부딪치는 바람 소리와 물새들의 울음소리뿐이다. 미안하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만은 베토벤도, 말러도 생각나지 않는다. 린다우의 방파제와 예쁜 뒷골목을 천천히 걸어 보라. 세상의 번잡한 일들이 다 기억나지 않게 된다. 나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에 참석할 때면 오전에는 어김없이 이곳 린다우에 와서 방파제에 앉아 사색이나 독서로 반나절을 보낸다. 그리고 배가 출출해지면 점심을 먹으러 오스트리아령 브레겐츠로 돌아간다.

잊을 수 없는 호수, 잊을 수 없는 음악

내가 본 브레겐츠 페스티벌 공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오페라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콘서트였다. 축제극장에서 열렸던 빈 심포니의 말러 교향곡 제5번 연주로 대니얼 나자렛이 지휘를 맡았다.

이전부터 그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브레겐츠에서 처음 그를 보게 된 것이다. 인도 태생인 그를 독일어권에서는 주빈 메타를 계승한다는 뜻으로 “리틀 주빈”이라고 부른다. 검은 얼굴에 인도 식 검은 옷을 입고 지휘대에 오른 그는 날카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지휘봉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빈 심포니가 토해 내는 연주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나자렛의 말러가 끝난 저녁, 나는 떨리는 가슴을 다스릴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호텔 방에 가 봤자 잠이 올 리 만무했다.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보덴 호숫가로 향했다. 10시가 넘어도 유럽의 여름밤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다. 호수의 수면은 짙은 군청색이었고,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서 된 신선한 물 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독일령 린다우의 적요한 풍경은 진정한 휴식을 준다.

호수 저편의 독일 땅 기슭에 점점이 박힌 레몬색 불빛들 사이로 음악이 들려오는 듯했다. 몇 시간 전에 들었던 말러의 아다지에토였다. 콘서트에서 물결처럼 밀려오던 현의 풍부한 음향이 호수에서 다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 호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호수 위에 성城을 만들고, 성 위에 또 성을 지었다. 브레겐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곳이다.브레겐츠

내 쉴 곳 없을지라도

잘츠부르크는 도시 그 자체만으로도 유럽 최고의 관광지임을 자랑한다.

뮌헨에서 빌린 소형차 ‘폴로’가 아우토반을 달린다.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어서면, 얼마 가지 않아 ‘잘츠부르크’라고 쓴 표지판이 나타난다. 오스트리아 A1 고속도로에서 폴로는 웨스트 잘츠부르크 인터체인지로 바로 진입한다. 인터체인지를 나서자마자 반갑게 나타나는 커다란 소문자 ‘i’, 즉 안내소의 간판이 낯선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그런데 가는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안내소 문밖까지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들은 모두 이 엄청난 시즌의 잘츠부르크에서 하룻밤 묵을 방을 배정받기 위해서(안내라기보다는 거의 배정에 가깝다) 기다리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모두들 즐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줄 서서 기다리는 그들 대부분의 표정은 긴장되어 있다.

세계 각지에서 산속의 이 작은 도시까지 찾아온, 나를 비롯한 사람들 모두는 처음부터 잘츠부르크의 거대한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부푼 꿈을 안고 여기까지 왔건만, 오늘 내 몸 하나 누일 방을 구하는 일조차 녹록하지 않은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도시 그 자체만으로도 유럽 최고의 관광지임을 자랑한다. 얼마 전 일본에서 있었던 여론 조사에서도 가장 여행하고 싶은 유럽 도시 1위로 잘츠부르크가 선정되었다. 차갑고 맑은 공기, 만년설의 높은 명산들과 푸른 숲, 동화 속 나라처럼 산 위에 늘어선 성채와 첨탑들, 그 가운데로 그림같이 흐르는 강이 있는 소도시……. 그 모습은 어려서부터 우리 머릿속에 있던 유럽 고도古都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모차르트의 출생지라는 점은 이곳을 세계 관광객들이 당연히 들러야 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동화적인 일탈을 꿈꾸며 너도나도 몰려드는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평소에도 이런 곳인 만큼, 그 유명한 여름 페스티벌이 열릴 때의 혼잡은 당연히 각오해야 한다. 게다가 그해 여름에는 중부 유럽에 닥친 최악의 홍수로 잘츠부르크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아우토반이 침수되었다. 그 바람에 수많은 이탈리아 자동차 탑승자들이 그렇지 않아도 숙박 난으로 악명 높은 잘츠부르크에서 그날 밤을 묵어야 했던 것이다. 안내소를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은 관광객이 아니라 배급을 받으러 온 유랑민들 같았다. 나 역시 데스크의 위대해 보이는 오스트리아 아줌마가 거의 지정해 주다시피 한 호텔 이름을 신주처럼 받아 들고 안도와 감사의 표정으로 안내소를 나섰다.

잘차흐 강가에서 바라보는 잘츠부르크 시내의 아침은 기대로 늘 설렌다.

산 위로 그림 같은 호엔잘츠부르크 성이 보인다.

나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열차로 도착한 사람들의 신세는 더욱 가련했다. 역이 침수되어 열차가 아예 역에 진입하지 못하고 들판 한가운데에 서 있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있었다. 트렁크를 든 할머니들이 열차에서 내려 철도 회사에서 보낸 버스로 힘들게 옮겨 타고 있었다. 자, 오늘 하루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그러나 내일부터는 또다시 티켓과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이 시작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는 모차르트 하우스의 외관. 현대 음악가들을 조명하는 광고 배너가 눈길을 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는 모차르트 하우스의 외관. 현대 음악가들을 조명하는 광고 배너가 눈길을 끈다.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매년 여름마다 발행되는 무크지 [페스트슈필레(Festspiele, 페스티벌)]에서는 세계의 많은 음악 페스티벌 중에서 1위의 자리에 단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선정했다.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명실공히 세계 정상의 종합 음악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제 100년의 역사를 향해 가고 있다. 그 기원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0년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의 완전한 악보가 발견된 해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잘츠부르크에서 국제 모차르테움 협회가 발족했고, 1877년부터는 모차르트 음악제가 8회에 걸쳐 열렸다. 이것을 모태로 하여 당시 중부 유럽 예술계의 무서운 젊은이들이었던 ‘젊은 빈’ 그룹의 유대인 예술가 리더들, 즉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과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가 함께 ‘매년 여름마다 상설로 열리는 예술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는 이들에게 새로운 페스티벌의 전권을 위임했다. 여기에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가세하여 3명 체제가 되었다.1920년, 드디어 나중에 세계 최고가 될 음악제이자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말처럼 “오스트리아의 새로운 영광”이 된 무대의 첫 막이 올랐던 것이다.

이 페스티벌의 첫 공연은 1920년 8월에 올라갔는데, 오페라가 아니라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이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광장인 돔플라츠(Domplatz)에 거대한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무대에 대성당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오후 5시경에 연극 〈예더만〉의 야외 공연을 시작하면서 페스티벌의 막을 올린다. 현재는 세계 음악축제의 대명사가 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지만, 원래는 연극으로 시작된 셈이며, 여전히 호프만슈탈 등의 연극 공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 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4년과 1944년의 두 해를 제외하고는 거른 적이 없이 여름마다 열렸고, 세계 예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 왔다. 갈수록 페스티벌의 인기가 높아져서 결국 ‘겨울 음악제’와 ‘부활절 음악제’, ‘성령강림절 음악제’에, 심지어 ‘성모승천절 음악제’까지 창설되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주변에서 ‘록 음악 페스티벌’까지 열리는 형편이니, 이제 잘츠부르크는 그야말로 페스티벌의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라면 당연히 최고 무대인 여름 페스티벌을 일컫는다.

불멸의 두 공로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카라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세계 최고라고 인정받기까지는 불멸의 두 공로자가 있었다. 한 공로자는 사람이 아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 필’)이며, 다른 공로자는 카라얀이다.

유럽의 많은 페스티벌들이 여름에 임시로 편성되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경우 바이로이트나 루체른처럼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조직될 수도 있지만, 팀워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으며 때로는 수준 이하의 오케스트라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이나 빈 필이 호스트 오케스트라로 참여하여, 이 축제의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해 왔다. 그러므로 빈 필과 함께했던 여러 지휘자들, 즉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부터 클레멘스 크라우스, 브루노 발터, 한스 크나퍼츠부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카를 뵘 등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이끌었던 것이다.

카라얀이 27년을 지낸 그의 생가에는 이제 그의 동상만 홀로 남아 있다.

또 한 명의 공로자는 이곳 잘츠부르크가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 ~1989)이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잘차흐 강변에는 카라얀의 생가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지휘봉을 든 그의 동상이 생가의 작은 마당을 지키고 있다. 카라얀은 1956년부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가장 중요한 주역이었다. 1960년에 그는 이곳에서 축제극장(Festspielhaus)을 열었으며, 그 후 33년간 고향의 음악제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을 이곳에 불러 모은 이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 필’)를 페스티벌에 참여시킨 이도 그였고, 부활절 음악제도 그가 만들었다. 그가 설립했던 축제극장 앞의 광장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플라츠’로 명명되어 영원히 그를 기리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지은 축제극장의 주소는 자랑스럽게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플라츠 1번지다.

호화스러운 오페라의 성찬

지금도 잘츠부르크에는 세계 최고의 음악가들이 모두 모인다. 잘츠부르크 여름 페스티벌은 대략 7월 말에서 시작하여 8월 말까지, 보통 5~6주 정도 계속된다. 한곳에서 한 달 정도의 단기간에 수준 높은 공연들과 대가들을 이렇게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잘츠부르크만의 자랑이다. 곧 다가올 2012년의 경우를 보자.

페스티벌은 역시 연극 〈예더만〉으로 개막 테이프를 끊는다. 아니, 이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오버추어(overture)’라는 콘서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모두 11번의 공연을 하게 되는데, 그 중 첫 번째 것이 하이든의 《천지창조》다. 존 엘리엇 가디너의 지휘에,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와 몬테베르디 합창단의 연주로 개막 전야前夜에 공연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가장 자랑하는 오페라 공연으로는 무려 9개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그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역시 사이먼 래틀 경이 빈 필을 지휘하여 올리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정말 오랜만에 올라가는 《카르멘》에서는 래틀의 오랜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인 메조소프라노 마그달레나 코제나가 주역을 맡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또한 실력과 인기에서 현역 최고의 테너라고 할 수 있는 요나스 카우프만이 호세 역을 맡는다. 푸치니의 《라 보엠》은 대중적인 오페라이지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도리어 잘 상연되지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라 보엠》이 올라가는데, 최고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즉 이 작품에 나오는 두 소프라노의 역할을 현재 최고 인기를 누리는 두 소프라노가 나누어 맡으니, 안나 네트렙코가 미미를, 니노 마차이제가 무제타를 부르는 것이다.

리카르도 샤이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를 지휘하는데, 에밀리 마지, 엘레나 모수크가 나온다. 헨델의 바로크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에는 안드레아스 숄, 체칠리아 바르톨리, 안네소피 폰 오터 등 초호화 멤버가 출연한다. 마크 민코프스키는 이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인기 지휘자인데, 그는 플라시도 도밍고, 주빈 메타 등과 헨델의 《타메를라노》를 공연한다. 그 외에도 윌리엄 크리스티가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양치기 임금님》에는 롤란도 비야손과 에바 메이 등이 나온다.

13개의 오케스트라가 산속에 모이는 이유

이렇듯 화려한 오페라 외에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호스트 오케스트라인 빈 필의 연주가 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빈 필은 보통 5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5명의 지휘자가 각각 자신만의 개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꾸린다. 이번에는 마리스 얀손스가 브람스 교향곡 제1번 등을,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제5번을, 리카르도 무티는 베를리오즈의 《장엄 미사》를, 하인츠 홀리거는 모차르트의 작품 등을, 베르나르드 하이팅크는 브루크너 교향곡 제9번을 지휘한다.

빈 필의 5개 시리즈 외에도 많은 게스트 오케스트라들이 잘츠부르크를 방문하여, 한 달 남짓 동안에는 이 작은 도시가 음악가들로 들끓게 된다.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하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런던 심포니, 프란츠 벨저뫼스트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다니엘 바렌보임의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리카르도 샤이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다니엘레 가티의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 등의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이 이 작은 도시에 모인다. 그 외에도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뮤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서동시집(西東詩集) 오케스트라 등 모두 12개의 게스트 오케스트라가 저마다의 연주를 들려준다.

또한 잘츠부르크에서는 많은 리사이틀도 동시다발로 열리는데,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크리스티안 치머만, 머레이 페라이어, 안드라스 시프,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 등이 리사이틀을 열고 성악가로서는 엘리나 가랑차, 마그달레나 코제나, 토마스 크바스토프,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마티아스 괴르네,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호세 카레라스 등이 독창회를 한다.

그 외에도 클라우디오 아바도, 주빈 메타, 대니얼 하딩 등이 각각 지휘하는 ‘오버추어’ 음악회 11편, 낮에 열리는 ‘모차르트 마티네’ 콘서트, 현대 음악 시리즈 11편, 실내악 시리즈 6편 등이 있다. 연극도 많이 공연되며, 젊은 연출가들의 워크숍과 그들의 실제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이렇듯 열거하기에도 숨이 가쁠 정도이며,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수준과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여기저기서 공연이 열리니 일정표를 들고 쫓아다녀야 할 지경이다. 식당이나 호텔마다 입구에 페스티벌의 전체 일정이 포스터로 붙어 있어, 호텔 매니저나 도어맨, 식당 셰프, 웨이터, 심지어 택시 기사들까지 모두 이것을 확인하면서 손님을 모셔야 한다.

공연 예술의 메카, 축제극장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의 축제극장 앞은 관객과 구경꾼들 때문에 축제 분위기가 넘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 작은 도시의 전역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장소는 역시 구도시 북쪽의 산 아래에 위치한 축제극장이다. 이 축제극장은 1960년대에 카라얀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이 안에 대축제극장, 모차르트 하우스, 펠젠라이트슐레 등 세 공연장이 들어 있고, 그 외에 전시장, 리셉션 룸, 기념품 가게, 페스티벌 본부, 몇 개의 로비까지 갖춰져 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심장부다. 이 축제극장은 개관 당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현대 건축물이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대축제극장(Groβes Festspielhaus)은 당시 유럽 최고 건축가의 한 사람이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인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의 디자인이다. 대축제극장은 좌석이 2,200석 안팎으로 그 무대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무대의 좌우 길이가 거의 50미터에 달해 개관 이후부터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넓은 무대로 유명했다. 그리하여 아주 규모가 큰 오페라 공연이나 빈 필 등의 대형 콘서트가 주로 이곳에서 공연된다.

좁은 땅에 극장을 만들다 보니 대지가 부족하여 무대 뒤편은 바위산을 뚫고 그 안으로 들어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대축제극장을 흔히 ‘동굴 극장’이라고 부르지만, 이름처럼 완전히 동굴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규모와 건축적 가치에서 세계적인 수준인 이 극장은 개관 첫 작품으로 카라얀이 지휘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를 공연했다.

이곳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극장 중 하나이지만, 음향은 대단히 뛰어나다. 뒷자리에 앉아도 작은 소리까지 섬세하게 잘 들리며, 앞에 앉아도 전체 균형이 깨지지 않는 훌륭한 곳이다. 황금색 금판(金版) 모양의 막이 이 극장의 상징이다.

대축제극장이 개관하기 전에 사용하던 곳은 소축제극장(Kleines Festspielhaus)이었다. 이곳은 1,300여 석 규모로서, 너무 좁고 열악해서 카라얀이 대축제극장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한동안 대축제극장과 함께 이용되던 소축제극장은 무대 크기에 비해서 무대에서 객석 맨 뒤까지의 길이가 너무 길고 시야도 좋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곳을 부수고 새로운 극장을 건축했으니, 그것이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2006년에 개관한 모차르트 하우스(Haus fur Mozart)다. 이곳은 비록 객석 규모는 작지만 최신 시설에 뛰어난 음향을 구현할 수 있어서, 모차르트나 몬테베르디의 작품같이 상대적으로 음향이 작은 오페라 공연이나 리사이틀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 이곳 로비에서는 세계적인 크리스털 브랜드인 슈바르츠코프 사에서 제공한 수만 개의 크리스털로 만든 모차르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초현대식
시설로 신축한
모차르트 음악원

모차르트 하우스가 개관한 직후에 나는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보았다. 아르농쿠르가 지휘한 이 공연은 현재 DVD로도 나와 있다. 안나 네트렙코, 도로테아 뢰슈만, 크리스티네 셰퍼,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보 스코브후스 등 세계적인 실력파 성악가들이 함께 노래를 했는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때야 비로소 ‘앙상블 오페라’의 매력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실내악이었으며, 그들의 음절 하나 숨소리 하나가 모두 모차르트 하우스를 정갈하게 울려서 모든 관객이 숨도 쉬지 못하고 넋을 잃었다. 내 옆자리에는 70대 오스트리아 비평가가 앉아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나를 보고는 “이런 《피가로의 결혼》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겁니다”라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가한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장소는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다. 바위산을 뚫고 만들어진 이곳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노래 경연 장소로 쓰였던 바로 그곳이다. 펠젠라이트슐레는 원래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여름 승마학교로 만들어진 곳으로, 암벽을 파고 만든 60여 개의 아치로 둘러싸여 있으며 말을 타던 가운데 바닥은 노천이다. 1926년 라인하르트가 이곳에서 처음 연극을 올린 뒤부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정례적인 공연장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약 1,500석의 객석이 있는 이곳은 매년 페스티벌 때는 임시로 플라스틱 지붕을 설치하여 공연을 열었다가,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는 지붕을 철거한다.

펠젠라이트슐레의 무대 뒤편은 모두 암벽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의 음향 효과는 뛰어나다. 하지만 일반 극장처럼 잦은 무대 변경이나 다양한 무대 장치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 올리는 무대는 단순한 연출을 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같은 이유로 무대 장치를 자주 변경할 수 없어서, 이곳에서는 한 시즌에 보통 두 개 정도의 공연만 소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그 독특함 때문에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지금까지 소개한 세 개의 축제극장들은 모두 같은 건물에 있어 로비를 통해서 이어진다. 특히 펠젠라이트슐레 옆의 직사각형 로비는 명지휘자 이름을 빌려 ‘카를 뵘 잘(Karl Bohm Saal)’이라고 불리며, 대주교의 겨울 승마학교로 쓰였던 유서 깊은 장소다. 뒤쪽에 그대로 드러난 암벽과 천장화, 오래된 인테리어 등은 역사적 가치가 높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세 축제극장들에서 극장 가이드 투어가 매일 실시되어 극장의 모습과 세트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미리 예약하면 된다.

그 외에도 잘츠부르크 주립극장(Landestheater), 대성당(Dom), 모차르트 음악원 강당, 성 페터 성당, 대주교의 궁전이었던 레지덴츠(Residenz) 등에서도 페스티벌 때 공연이 열린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대성당 앞 광장인 돔플라츠에서는 야외 연극이 공연되는데, 이때 나무로 만든 임시 객석이 설치된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사냥꾼이 된다

잘츠부르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티켓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유명한 공연의 좋은 자리는 대부분 아주 비싸다. 하지만 최근에는 저렴한 자리도 생겼고, 게다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아닌가? 호텔에서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면 결연한 마음으로 시내로 나간다.

매년 이곳 돔플라츠에서 야외 연극 <에더만>이 공연되면서 페스티벌의 막이 오른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도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온라인 판매도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형식적일 뿐이다. 부킹 사이트의 주요 공연은 페스티벌이 열리기 몇 달 전에 이미 ‘매진’으로 나오거나 아예 접속이 되지 않는다. 아주 인기 없는 공연이 아니라면 봄 이후에는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원하는 티켓이 보이지 않거나 보이더라도 클릭이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온라인 판매는 보통 전해의 11월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꼭 원하는 공연의 티켓을 구해 페스티벌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11월부터 거의 매일, 적어도 3~4일에 한 번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야 한다. 인기 있는 공연은 12~1월 정도에 매진되는 경우가 많으며, 어지간한 공연도 3~4월이면 거의 다 팔린다.

이런 현상은 바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가진, 아니 오스트리아가 가진 하나의 문화를 보여 준다. 그들은 마지못해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지만, 결국 좋은 자리는 그들 그룹끼리 나누어 갖는 폐쇄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 내부의 주요 회원이나 후원자가 아니라면 좋은 공연의 좋은 자리에는 접근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비판만 할 수는 없다. 그들이 90여 년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이끌어 왔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의 사정이 이러하므로, 온라인 예매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현지에서 티켓을 구하는 방법을 재미로 알아보자. 일단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플라츠에 있는 매표소를 찾아간다. 거기서는 티켓 판매 상황을 친절하게 안내 받을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은 매진이라고 말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많은 티켓들을 의외로 그곳에서 구할 수 있어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에 반환된 표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공식 매표소에서 전체 스케줄을 보고 원하는 티켓 리스트를 정리하고 나면, 다음에는 거리로 나선다. 이때부터 진정한 마니아의 준엄한 사냥 행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냥개와 같은 촉각을 세우고 일단 길 건너 축제극장으로 간다.

거기로 가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우리의 선배들이 이미 ‘티켓 구함(Suche Karte)’이라고 독일어로 쓴 팻말을 들고 서 있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미국 부인은 아침부터 드레스를 입고 나와 있는데(언제 표가 생길지 모르니), ‘티켓 구함’이라는 글자를 아예 드레스 앞뒤에 꿰매 붙이고 있다. 일단 그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그날의 티켓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한다. 그들과 안면을 트는 것은 누가 나의 편이 되거나 방해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이 요나스 카우프만이나 안나 네트렙코가 나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분위기가 좀 험악하다.

극장 앞에서는 공연 직전에 티켓을 구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하루 중 언제 티켓이 나올지 모르므로, 시내 관광 같은 것은 애당초 포기한 채 종일 그곳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공연을 보지 못하는 잘츠부르크란 그들에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노 티켓, 노 투어!” 여기는 잘츠부르크다.

그 다음 방법은 시내의 거리로 가는 것이다. 잘 관찰하면서 다녀 보면 생각보다 많은 곳에 ‘티켓 있음’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이런 곳들은 소위 허가를 낸 암표상들이 있는 곳이다. 만일 가격에 구애 받지 않고 특정 공연을 꼭 원한다면 이런 곳에서 승전가를 부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런 가게들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미리 인기 공연의 티켓을 사 두거나, 반환된 티켓을 모아 웃돈을 붙이고 판다. 웃돈은 가게와 공연에 따라 다른데, 15퍼센트, 20퍼센트, 또는 30퍼센트 등 다양하다. 이런 가게들은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잘츠부르크 시에 정식으로 세금까지 내는 등 암묵적으로 합법화되었다.

이 점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잘츠부르크만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게들은 백발머리 할머니가 혼자서 40년 넘게 운영해 온 작은 곳부터, ‘폴처’처럼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추고 컴퓨터 시스템으로 빈은 물론 이탈리아의 베로나 페스티벌 표까지 구해 주는 기업형까지 다양하다. 원하는 티켓이 없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반환된 티켓이 언제 어느 가게에 나올지 모르므로, 공연 당일까지 매일, 심지어 내 경우처럼 주치의가 병동 회진을 돌듯이 두 시간마다 가게들을 순례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 방법은, 암표상들이 양성화된 뒤로는 드물어졌지만 일류 호텔들을 순회하는 것이다. 호텔에서 티켓을 구할 수 있다고? 그렇다. 호텔에서 보유하고 있는 티켓은 보통 도어맨들이 가지고 있는데 그 경로는 세 가지다. 첫째, 자허 호텔 같은 유명 호텔에서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이나 음악가들이 묵고 있는데, 그 음악가들에게서 티켓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이런 고급 호텔에서 묵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연로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여기까지 왔지만 긴 여행이나 더운 여름 날씨 때문에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콘서트를 포기하는 일이 생긴다. 이때 도어맨들에게 티켓을 처분해 달라고 맡기는 것이다. 셋째는 도어맨들이 부수입을 위해 아르바이트로 미리 티켓을 구해 놓는 것이다. 그러니 꼭 티켓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안내원이나 도어맨에게 미리 부탁을 해 놓거나 자신의 명함이나 연락처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 이렇게 해서도 아직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면,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 아직 낙담하기는 이르다. 좀 쉬었다가 비장한 마음으로 정장을 갈아입고 개막 1시간 전까지 축제극장으로 향한다. 형편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더 일찍 가도 좋다. 그리고 역시 ‘티켓 구함’이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지난 10년간 나의 잘츠부르크 전적은 백전무패(百戰無敗)였다.

더 전위적으로, 더 근본적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가장 비중이 큰 장르는 오페라다. 물론 빈 필을 중심으로 하는 콘서트나 세계적인 솔리스트들의 리사이틀도 훌륭하다. 하지만 오페라가 페스티벌의 중심에 있는 것은 잘츠부르크 초기부터의 전통이었으며, 그것은 카라얀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카라얀은 잘츠부르크 무대에서 세계적인 오페라 스타들을 모아서 항상 최선의 드림팀을 구성했으며, 그중 수많은 실황 녹음들이 지금도 명반의 반열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잘츠부르크의 오페라 무대는 세계 각지의 젊은 성악가들이 세계무대에 선을 보이는 회심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 동안 아그네스 발차, 안나 토모바 신토브, 체칠리아 바르톨리, 안나 네트렙코, 니노 마차이제 등 많은 신인들이 이 무대를 통해 세계의 팬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세계 음반사들의 스카우터들이 모두 이곳에 몰려들어 신진 음악가들에게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다.

2002년에 공연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지금도 회자된다. 잘츠부르크에서는 거의 매년 《돈 조반니》를 주 공연으로 올리고 있는데, 근년에 새뮤얼 래미, 브린 터펠,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등이 연이어 주인공을 맡아 관심이 고조되었다. 2002년에는 그 중에서도 최고의 관심을 끌었던 토머스 햄슨이 돈 조반니 역을 맡았다.

그 해의 《돈 조반니》는 유명 란제리 회사인 팔머스의 협찬을 받아 미리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연출가 마르틴 쿠세이는 의상을 맡은 하이데 카스틀러와 함께 오페라 내내 거의 모든 여성 출연자들이 팔머스 스타킹, 특히 팬티 스타킹만 입고 연기하게끔 했다. 그야말로 란제리 쇼를 방불케 해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어쨌든 마르틴 체헤드그루버의 미니멀리즘적인 무대는 완전히 새롭고 뛰어났다. 그는 대축제극장의 거대한 무대를 커다란 회전목마 장치와 흡사한 원형 무대로 만들었다. 주인공 돈 조반니는 원통이 회전하는 것에 맞춰서 여러 방을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엽색 행각을 펼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충격적인 장면은 돈 조반니가 버렸던 과거의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나이 든 여성 합창 단원들이 모두 스타킹만 신은 반라 상태로 돈 조반니를 둘러싸는 장면인데, 야하다기보다는 숙연할 정도였다. 햄슨의 열창에 관객들은 열광했으며, 다음 공연에서는 돈 조반니 역을 예약했지만 여기서는 레포렐로를 맡은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역시 햄슨에 못지않은 멋진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외에도 돈나 안나 역에 연약하고 귀여운 새 캐릭터를 부여한 러시아의 신진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이것이 그녀의 잘츠부르크 데뷔 무대였다), 체를리나 역을 맡은 체코의 메조소프라노 마그달레나 코제나 등이 큰 박수를 받았다.

음악적으로 더욱 관심이 높았던 공연은 푸치니의 《투란도트》였다. 사실 푸치니는 《투란도트》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사망했고, 나머지 부분을 그의 후배인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시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아무런 이의 없이 푸치니의 작품이라며 이 오페라를 들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탈리아의 현대 음악 작곡가인 루치아노 베리오가 새로운 《투란도트》를 완성했다. 푸치니가 미완성한 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작곡한 것인데, 암스테르담 등 몇 곳에서 이미 시연한 바 있었다. 그런데 2002년에 잘츠부르크는 과감하게 이 새 악보를 선택했던 것이다. 언론들은 이 악보를 “피아니시모로 끝나는 《투란도트》”라며 대서특필했다.

새 무대의 지휘는 마린스키 극장의 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 연출은 현대적인 해석을 대표하는 연출가 데이비드 파운트니가 맡았다. 파운트니의 연출은 베리오의 악보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1막부터 작동하는 기계들이 난무하는 무대는 인간성을 상실하고 기계화된 현대 사회를 반영했다. 천상에서 군림하는 투란도트 공주는 사랑과 연민과는 거리가 먼 냉혈인이다. 하지만 류가 연인 칼라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슴을 가위로 찌르자, 공주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그녀의 두꺼운 비단옷이 벗겨진다. 공주는 류가 서 있는 맨땅 위에서 류와 같은 평상복을 입고 선다. 류의 죽음으로 사랑의 위대함을 체험한 공주는 종로나 명동 같은 거리에서 필부필부匹夫匹婦들 사이에 섞여 칼라프를 찾는다. 공주와 칼라프뿐 아니라 무대 위 백여 명의 출연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짝을 찾고 다함께 조용히 포옹한다. 알파노가 썼던 작위적인 2중창이나 거대한 피날레 같은 것은 없다. 모두들 자신의 사랑을 찾고 고요한 안식을 얻을 뿐이다. 모든 이들이 ‘피아니시모’로 사랑의 품에서 인간성을 찾을 때, 역사적인 새 오페라의 막은 조용히 내려왔다.

모차르트를 기념했던 특별한 그 해 여름

잘츠부르크가 대중적으로 더 유명해진 시기는 2006년 시즌을 거치면서다. 2006년은 이 도시 출신의 위대한 음악가로, 흔히 잘츠부르크와 동격으로 생각되는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에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최고이자 최대 프로그램이 공연되었다. 즉, 모차르트가 무대를 위해 작곡한 음악 22곡을 모두 한 시즌에 상연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가 거행된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세계 정상급의 모차르트 지휘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리하여 주요 오페라의 경우에는 지휘자가 각각 달라져서 마치 모차르트 오페라 올림픽을 방불케 했다. 연출 역시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는 전위적인 연출가들이 각각의 작품들을 맡아서, 잘츠부르크를 찾는 전 세계 모차르트 팬들을 새로운 감흥에 휩싸이게 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으며, 22개의 작품 모두가 DVD로 만들어져서 기록으로 남았다. 그 후로 모차르트 오페라 전곡을 ‘M22’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것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그렇게 정리했기 때문이다. 5주 동안 잘츠부르크의 도시 전역, 10여 개의 장소에서 모차르트 오페라들이 동시에 공연되었으며, 이 공연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주역급 가수들만 무려 170명에 이르는 축제 중의 축제가 펼쳐졌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길을 가다가 부딪치는 사람이 다 성악가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피가로의 결혼》, 《마술 피리》, 《폰토 왕 미트리다테》, 《후궁 탈출》 등은 그해 잘츠부르크가 탄생시킨 역사적인 명연으로 남아 있다.

카페의 도시 잘츠부르크

카라얀이 자주 들렸던 카페 토마젤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넘쳐난다.

잘츠부르크도 오스트리아의 도시인 만큼, 카페의 도시 빈처럼 좋은 카페들이 많다. 그곳에서는 공연과 공연 사이의 한낮에 편히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향기로운 커피와 빈풍의 케이크를 즐기면서 한때를 보낼 수도 있다.

잘츠부르크의 카페를 순방하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유서 깊은 카페 네 곳을 소개한다. 잘츠부르크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는 여러분만의 시간을 가져 보기를….

가장 유명한 카페는 ‘토마젤리’다. 카라얀도 자주 들러서 페스티벌 관계자들과 의논을 하곤 했던 곳인데, 지금도 운이 좋으면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바로 옆에서 만날 수 있다. 토마젤리는 크리스털로 된 샹들리에와 대리석 테이블, 가죽 소파, 나무 봉으로 철한 신문 등 빈 카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건너편 정원에 있는 야외 테이블들도 이곳 토마젤리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다. 흰색에 초록색 줄무늬의 차양이 토마젤리의 상징이다.

다음으로는 토마젤리 맞은편에 있는 카페 ‘퓌르스트’가 유명하다. 잘츠부르크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흔히 ‘모차르트 초콜릿’이라고 불리는 빨갛고 노란 포장지에 싼 과자를 마구 산다. 이것은 관광객을 겨냥한 관광용 상품으로, ‘모차르트 초콜릿’이라는 이름도 사실은 정체불명이다. 진짜 잘츠부르크 초콜릿은 바로 파란색과 은색 포장지의 것인데, 이름은 ‘모차르트쿠겔’이다. 퓌르스트는 모차르트쿠겔을 처음 만들어 낸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당시 특허를 내는 일을 미처 하지 못해, 모차르트쿠겔의 유사품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진짜 잘츠부르크 시민들은 퓌르스트를 찾아와서 한 잔의 커피와 과자의 여유를 즐긴다.

강 건너편에 있는 커다랗고 흰 건물이 유명한 자허 호텔이다. 이 호텔 1층에 있는 카페가 카페 자허로, 빈에 있는 동명 카페의 지점인 셈이다. 커피와 더불어 ‘자허 토르테’란 케이크가 널리 알려져 있다. 조용하고 우아한 장소다.

잘츠부르크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잘차흐 강가에는 자허 호텔 옆으로 신고전주의와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인상적인 건물이 서 있는데, 바로 카페 ‘바자르’다. 바자르는 잘츠부르크 최고의 카페로서, 그들의 고집과 우아함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강 건너의 토마젤리가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했다면, 바자르는 잘츠부르크 시민들의 휴식처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토마젤리를 가라고 권해 놓고는 혼자서 바자르로 향하기도 한다. 바자르에서 커피를 시켜 놓고 책을 읽는 것이 잘츠부르크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라고 생각한다. 아, 비밀을 말해 버렸다.

매일 아침 스타가 탄생하는 곳

해마다 거의 거르지 않고 잘츠부르크에 간 지 어언 10년, 이제 나는 비행기를 타고 바로 잘츠부르크로 들어가곤 한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갈아탄 오스트리아 항공 비행기는 저녁 늦게야 이름도 멋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공항에 안착한다.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나를 기다리던 자동차가 보인다. 차에 오르니 기사가 인사를 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중요한 후원사인 한 자동차 회사에서는 시즌마다 자사의 최신형 자동차로 주요 손님들을 실어 나른다. 그리고 그 차들의 운전기사로는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뽑은 대학생들을 채용하는데, 학생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다. 그런데 이번에 나에게 배정된 기사는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다는 여학생이다. 그녀는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는 동안 FM 방송을 청취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바로 그날 공연되던 구노의 오페라 《로메오와 줄리에트》의 프레미어(각 작품의 시즌 첫날 공연)를 중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인기 높았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테너 롤란도 비야손이 함께 출연한다고 해서 일찌감치 매진되었던 공연이다. 그런데 공연을 준비하던 도중 네트렙코가 임신을 해서, 공연 직전에 줄리에트 역의 가수가 바뀌고 말았다. 그녀를 보기 위해 이미 반년 전부터 티켓을 구입한 전 세계 팬들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주최 측은 네트렙코를 판 것이 아니라 《로메오와 줄리에트》의 티켓을 판 것이니, 출연자가 바뀐다고 해서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이럴 경우 유럽 명문 극장에서는 대타를 내보내더라도 최소한 대등한 수준의 가수를 투입하는 것이 전통이다.

급히 투입된 소프라노는 당시 25세였던 조지아 출신의 신성新星 니노 마차이제였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잘 부를 수 있을지, 네트렙코의 대역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릴지 무척 궁금했다. 내가 차에 오르자 라디오를 듣던 여학생은 “비야손, 너무 잘 불렀어요!”라고 말한다. 비야손이야 잘 부르겠지. 하지만 나의 관심은 줄리에트다. 나는 “마차이제는 어땠어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오직 비야손의 팬인 듯한 소녀 기사는 우물쭈물하다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다. 호텔로 가는 자동차 안에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 이어지는 박수 소리만 가득하다.

다음날은 어제에 이어 두 번째로 공연되는 《로메오와 줄리에트》를 보기로 계획한 날이다. 식당으로 내려온 나는 엊저녁에 있었던 《로메오와 줄리에트》 프레미어에 대한 비평을 읽기 위해 조간신문을 펼쳐 든다. 굳이 공연난을 펼칠 것도 없다. 1면에 커다랗게 실린 니노 마차이제의 얼굴, 그리고 그 위에 크게 적힌 기사 제목.

“오페라계의 안젤리나 졸리 탄생!”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렇게 지금도 매일 아침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킨다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 겸 왈츠의 대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바로 이곳이다. 여름 도나우(다뉴브)강엔 뜨거운 날씨를 피해 수영을 하고 요트를 타는 주민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여유롭다. 이게 자유다.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 겸 왈츠의 대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바로 이곳이다. 여름 도나우(다뉴브)강엔 뜨거운 날씨를 피해 수영을 하고 요트를 타는 주민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여유롭다. 이게 자유다.
지금 유럽에서 가장 '뜨는' 지역을 꼽으라면 단연코 독일 베를린이다. 싼 집값, 개방된 문화에 매료된 세계 각지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베를린은 곧 자유로운 영혼들의 아지트가 됐다. 1990년대 '힙스터(hipster·비주류 대안 문화를 일구는 개성 넘치는 젊은 층)' 문화를 이끌던, 여전히 가장 '힙'한 동네로 불리는 영국 런던 쇼디치(shoreditch)의 예술가 상당수가 최근 베를린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중심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넥스트 베를린'이 뜬다.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을 간직한 도시, 오스트리아 빈(Wien)이다. 베를린을 쥐락펴락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빈으로 주거지를 옮기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예술에 '포화'란 단어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무리이겠으나 새로운 영감을 받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하기야 예술이란 단어를 도시로 바꿔 말한다면 빈 아닐까.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모차르트가 기거했던 방이고,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프로이트가 상담했던 공간이며, 또다시 몇 발짝 옮기면 에곤 실레와 오스카 코코슈카의 세기말적 미학이 펼쳐졌던 이곳에서 예술을 떼어놓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왕조는 패망했지만 문화는 영원하다. 1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두고 불온한 열기가 도전적인 창조와 파괴, 도발적인 반항과 거역의 힘으로 만개했던 세기말 빈 예술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본능을 자극한다. 전통 화풍에 반기를 든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실레의 정신은 영국 출신 설치미술가 트레이시 에민 등에 영향을 주며 현대성을 강화하고 있다. 틀에 박힌 조성(調性)을 파괴한 혁명적 음악가 쇤베르크는 "평범한 사람이 언젠간 내 음악을 흥얼거릴 것"이라 했다. 구스타프 말러도 "나의 시대는 올 것"이라 했다. 그들은 예언대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심리학의 거장 알프레드 아들러가 나고 자란 동네이기도 하다. 너무나 찬란해서 애잔한, 그 빈을 걷고 있다.

빈의 카페 문화. 빈(비엔나)엔 ‘비엔나 커피’가 없다. 우유가 들어간 멜랑쥐와 생크림이 들어간 아인슈페너가 있을 뿐.
빈의 카페 문화. 빈(비엔나)엔 ‘비엔나 커피’가 없다. 우유가 들어간 멜랑쥐와 생크림이 들어간 아인슈페너가 있을 뿐.
모든 것은 카페에서 시작한다

빈에서 카페에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다. 문화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빈 3대 카페'라 불리는 카페 첸트랄(café Central)로 향했다. 이렇게 '3대' '5대' 등으로 숫자를 매겨 무리짓고 서열을 세우는 건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카페 첸트랄은 1876년 문을 연 뒤 카페와 살롱 문화의 상징이 됐다. 빈을 대표하는 지식인 알텐부르크가 자주 찾았다고 해서 입구에 그가 앉아있는 동상이 있다. 클림트도 애인과 함께 자주 찾았다고 한다. 히틀러와 트로츠키도 단골이었다.

클래식한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낯선 풍경은 카페 한가운데 놓인 피아노였다. 슈트 차림에 어깨를 들썩이며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는 손님에게 눈을 찡긋해주는 매너도 잊지 않는다. 열정적인 연주에 박수로 화답한다. 고급 레스토랑처럼 검은 앞치마를 한 종업원이 주문을 받는다. 입구 앞쪽에는 도서관에서 보던 나무 봉으로 된 신문철이 있다. 서걱서걱, 차르르 하며 신문 넘기는 소리가 반갑다. 피아노와 연주자, 신문, 앞치마에 제복을 차려입은 종업원은 첸트랄 같이 전통적인 카페의 구성 요소란다. 100년 전 이곳에선 정신의학자 겸 작가 슈니츨러, 과거 양식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는 제체시온(Sezession·分離) 운동을 일으킨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 '젊은 빈'의 중심인물인 문예비평가 바르 등 많은 예술가가 모여 토론하고 신문을 보고 정치인의 연설을 들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들이 묶음 다발로 쏟아지기도 어려워 보인다. 절망적이고 암울했던 세기말에 영감과 상상력이 가득한 빛의 도시로 만든 바탕엔 카페 문화가 있었다. 창조와 지식은 유기적인 얽힘과 나눔에서 시작한다.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나가란 소리는 없다. 햇살을 등받이 삼아 책장을 넘긴다.

빈 관광청에서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카페 스펄(Sperl)도 찾았다. 1880년 문을 연 카페로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이 마음을 고백했던 그 장소다. 바로크풍의 실내장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말을 남긴 19세기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한 카페 무제움(Museum), 프로이트가 빈에 살 때 애용했던 카페 란트만(Landtmann)을 비롯해 빈엔 2000개가 넘는 카페가 있는데 지금도 이처럼 유서 깊은 카페가 150여곳에 달한다고 한다. 고풍스러운 커피하우스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레오폴드 뮤지엄 등이 있는 미술관 밀집지역 MQ.
레오폴드 뮤지엄 등이 있는 미술관 밀집지역 MQ.
압도적인 황금빛, 욕망의 적극적 출현… 클림트와 에곤 실레

크지 않은 도시라 생각했는데, 예상 외였다. 볼 게 너무 많아 대체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동선 짜기가 어려울 지경. 그나마 다행인 건 600년 역사의 합스부르크 왕조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방어 성벽을 허물고 건설한 환상(環狀) 도로(링슈트라세·Ringstrasse)를 따라 대형 볼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빈은 2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링슈트라세로 둘러싸인 곳이 1구역으로 그 중심이다. 1865년 완공돼 올해로 150주년을 맞았다. 5㎞의 도로를 따라 90여개의 거리와 광장, 500여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빈 관광의 출발점이라 하는 케른트너 거리를 지나다 보면 13세기부터 300년간에 걸쳐 완공된 성 슈테판 성당을 비롯해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이 대칭으로 서서 위용을 뽐낸다. 시청과 빈 국립대학의 르네상스 풍 건물을 지나면 세계적인 수준의 오페라 극장에 도달한다. 시민의 숲이라는 정원을 비롯해 곳곳에 숨통을 틔우는 쉼터가 있다.

베토벤이 살았던 집과 레스토랑, 햇 와인인 호이리겐 등을 갖춘 레스토랑 호이리거(heuriger), '없는 게 없다'는 재래시장 나쉬마크트, 뉴욕 센트럴파크 두 배 크기의 놀이터 겸 숲인 프라터(prater) 등 발걸음을 재촉했는데도, 주어진 사흘이란 시간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 보려면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72시간 동안 지하철·버스 등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빈 카드(21.9유로)를 구입했다. 미술관 등도 일부는 할인이 된다.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벨베데레 궁전과 최근엔 뮤지컬 '엘리자베스'로도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왕비(일명 시시·Sisi)의 여름 별궁이었던 쉔부른 궁전 등을 모두 지하철로 갈 수 있다. 쉔부른은 마리 앙투아네트도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1400여개 방 중 일반인에게 40개 방이 개방되는데 1시간 코스인 그랜드 투어(15.9유로)가 가장 인기다. 작은 베르사유궁전이라 불리듯 1.7㎞에 달하는 정원이 볼거리다.

훈데르트바서의 쿤스트하우스가 있는 레스토랑.
훈데르트바서의 쿤스트하우스가 있는 레스토랑.

클림트의 '키스'는, 단단히 싸맨 마음의 봇짐이 한 번에 팍 소리 내며 터지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온몸을 누가 붕대로 꽁꽁 두르는 듯했다. '그럴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감탄사는 온몸에서 튀어나오는데, 압도되는 기운에 발걸음을 떼기 힘든 느낌. 몰락과 쇠퇴의 순간을 황금빛으로 승화했던 그의 머릿속이 더 궁금해지던 시간이었다. 전날 뮤지엄 카르티에(Museum Quartier·MQ)로 불리는 박물관 밀집지역 내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마주한 에곤 실레 작품이 송곳처럼 마음 구석구석을 쪼았다면 벨베데레의 클림트 작품은 거대한 망치로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어느 것이 더 좋았냐고 묻는 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게 느껴질 만큼.

건축가이자 화가인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의 집합 주택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창작 공간으로서 빈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곡선을 사랑하고 색채에 능했던 그의 손에서 탄생한 주택은 마치 고정된 시멘트가 아닌 꿀렁꿀렁한 유기체 같은 느낌을 준다. 52개 주택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전시관 겸 레스토랑인 쿤스트하우스는 스페인 가우디의 작품을 연상시키면서도 투명한 색채감이 한결 청량하다.

1 최근 바뀐 빈의 신호등. 남남 커플이 걷는 모습이다. 남녀·여여 커플도 있다. 개방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2 성 슈테판 성당. 3 비엔나식 아이스커피.
1 최근 바뀐 빈의 신호등. 남남 커플이 걷는 모습이다. 남녀·여여 커플도 있다. 개방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2 성 슈테판 성당. 3 비엔나식 아이스커피.
빈 관광청 추천 맛집·볼거리

쇼콜라트(Xocolat)
 400종이 넘는 다양한 초콜릿이 있는 곳. 프라이융(Freyung) 2, 1010 Wien, www.xocolat.at

랍스텔(Labstelle) 빈 음식 전문 식당. Lugeck 6, www.labstelle.at

팔멘하우스(Palmenhaus) 프랑스 식당. Burggarten 1, www.palmenhaus.at

카페 스펄 비포 선라이즈 촬영소. Gumpendorfer Str. 11, 1060 Wien, www.cafesperl.at

마이어(Mayer) 베토벤이 기거했던 곳. 현재 와인&레스토랑. Pfarrplatz 2, 1190 Wien, www.pfarrplatz.at

벨베데레궁전 Prinz-Eugen-Str. 27, 1030 Wien, www.belvedere.at

쉔부른 궁전 Schönbrunner Schloßstraße 47, 1130 Wien, www.schoenbrunn.at

빈 3대 카페

카페 자허
 초콜릿 케이크인 자허토르테(Sacher Torte)의 원조. 필하모니커르슈트라세(Philharmonikerstrasse) 4, 1010 Wien.

카페 데멜 왕실에 납품하던 베이커리. 콜마르크트(Kohlmarkt)거리 14, 1010 Wien.

카페 첸트랄 지식인들의 집합소. 헤렌가세(Herrengasse) 14, 1010 Wien.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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