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와 시가현 방문에서 사찰과 신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국 불교와는 매우 색다른 일본 불교를 만날 수 있었고,신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7월 8일부터 10일까지 그곳에 머무는 동안 30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날씨였지만,관심을 끄는 유서깊은 고찰들, 고즈넉한 호수와 울창한 숲은더위를 잊게 하였다.사찰로는 뵤도인(평등원)과 엔랴쿠지(연력사),구라마데라(안마사),미이데라(삼정사), 신사로는 기부네 신사, 호수로는 비와코 (비화호)를 방문하였다.

#환희에 넘친 보살상과 벽화

교토의 평등원 봉황당 벽에 걸려있는 보살조각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52구로 된 운중공양보살상은 보살들이 구름을 타고 그 위에서 다양한 악기를 타거나 춤을 추는 모습을 새겨, 생동감이 넘친다. 양손에 북채를 든 채 북을 막 두드리려는 장면, 장고를 무릎에 얹고 양손으로 장고채를 두드리는 모습, 입에 피리를 다소곳이 대고 있는 모습, 선 ㅇ� 발을 들고 춤사위를 펼치는 모습등등. 나무결이 고스란이 드러난 조각에서는 후덕하고 온화한 얼굴 표정과 맨살의 볼륨감있는 가슴, 한쪽 가슴을 덮으며 흘러내리는 옷자락의 유려한 선,그리고 변화무쌍하고 기운이 넘치는 구름의 자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봉황당의 벽화는 세상에 이렇게 환희에 넘치는 장면� 있을까 할 정도로 경이로웠다. 구품영내도는 아미타여래가 보살들을 이끌고 죽은 사람을 맞이하러 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화려한 색채로 꾸민 보살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물살이 센 계곡물에서 래프팅을 하며 환호하는 젊은이들처럼, 패기넘치고 활기차 보였다. 화공의 솜씨는 말세에 관백이 느꼈을 법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으리라.

평등원 사찰은 1052년 관백 후지와라 요리미치공이 별장을 절로 개축한 것이다.그 해는 불법의 가르침이 쇠퇴해가는 말세가 시작되는 해로 여겨져 극락에 가고 싶은 소망을 담아 건립되었다. 봉황당은 그 다음해인 1053년에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아미타불당으로 건립되었다. 이 불당의 모습이 마치 날개를 펼친 새처럼 보이고, 지붕 위에 봉황 2마리가 마주보고 있어 봉황당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아미타여래상은 일장육척(4.8m)의 거대한 금칠 목조불상으로 조초가 제작한 것이다. 광배에는 11개의 작음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일본 천태종, 사람 눈높이로 불상 배치

시가현 오츠시 히에이 산에 있는 천태종의 총본산 엔랴쿠지(延曆寺,연력사)는 불상 배치가 독특하다. 한국에서는 불상을 우러러보게 되어있는데,히에이산 제일의 법당인 곤본쥬우도오(根本中堂)의 불상은 사람 눈높이에서 마주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엔랴쿠지 참배부 사무장 고바야시 후쿠이치씨는 "부처님을 우러러 보는 곳은 일본에서도 많다. 이 절의 불상은 천태종 양식으로 부처님과 예불자의 눈높이가 같다. 왜냐하면 사람도 부처님과 같은 자상함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불상이 모셔진 공간과, 그리고 불상이 바라보이는 높이에 마루를 만들어 부처님과 예불자의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12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높다란 본당의 기둥 사이마다 구름속 보살상(목조각)이 우람하면서도 부드러운 자태를 보이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곤본쥬우도오는 일본 천태종의 종조인 전교傳敎대사 사이쵸가 788년에 창건했고, 약사여래가 봉안되어 있다. 불전에는 창건 이래 '불멸의 법등(法燈)'이 1200년의 시간을 넘어 꺼지지 않고 빛나고 있다.

#일본 절에 세워진 장보고 기념비

엔랴쿠지에는 장보고 기념비가 있다. 다음은 비문에 적힌 내용이다. 일본 천태종의 3세 좌주인 엔닌 스님이 9세기 중엽 9년 반동안 당에서 구법순례하면서 장보고 대사의 도움을 받았고, 대사가 세운 당나라 적산 법화원에서 머무르기도 했다.그 인연으로 장안 등지를 순례할 수 있었다. 엔닌은 그의 일기 < 입당구법순례행기 > 에서 장대사에 대한 흠모의 정을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해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식을 자주 듣지 못했습니다. 하오나 감사 쌓이는 정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이 사람 엔닌은 은혜를 입었으나 구름처럼 멀리 떨어져 있기에 뵙지는 못했지만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이 날로 깊어짐을 어찌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구법을 마친 뒤 적산으로 돌아왔다가 청해진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장대사를 만나 자세한 사정을 아뢰고자 합니다. 제가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생각건대 내년 가을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그곳에도 사람과 배가 왕래한다면 높으신 명을 내리사 저희들을 특별히 보살펴 주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840년 2월 17일)

후학들은 엔닌의 구법체험담을 통하여 구세의 신라 일본 당의 문화교류 실상을 알게 된다. 두분이 다져놓은 정다운 관계가 오늘날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더욱 두터워 지기를 바라마 이 비를 세운다.

#종교와 국가를 초월한 평화의 숨결

히에이산 엔랴쿠지는 개별 사찰이 아니라 히에이산에 자리잡은 사찰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840미터 높이의 히에이산은 200여개 사찰을 포함해 산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700미터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정상으로 사찰로 향하니 가는 길에 하늘로 치솟은 침엽수와 보라색 선명한 수국이 신선하고 서늘한 공기와 함께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히에이산 정상에는 세계종교자평화기원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참가 종교로 불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힌두교, 시크교,유교, 신도가 일본종교대표자회의 명의로 기록되어 있었다. 길가에는 쓰러질 듯한 큰 산벚나무가 양갈래 줄기를 곧게 솟은 전나무에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내자 고바야시씨는 "산벚나무 줄기가 사람인(人)자 형상을 하고 있다. 산벚나무가 일본이라면 전나무는 한국이다.일본정치를 이런 마음으로 해야 평화가 온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안마사, 우주의 기운 존천을 믿다

교토의 구라마데라(鞍馬寺,안마사)는 본존불로 우주의 기운, 尊天(존천)을 모신다. 존천은 천수관세음보살과 호법마왕존,비사문천왕의 삼신일체를 가리킨다. 종파는 원래 천태종에 속했으나, 1949년 독립하여 쿠라마 홍교의 총본산이 되었다. 인간과 자연,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우주만물은 생명과 마음, 정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마음으로 자연과 대화하며 자기의 마음을 깨치고, 우주의 기운을 받아 활발한 기운을 얻고자 하는 것이 이 종교의 목표다. 존천, 즉 우주의 기운을 받으면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 깎은 흰머리에 눈이 빛나는 60살 가량의 여성불자 안내인은 "중간에 케이블을 그친 이유는 본전에 신으로 모시고 있는 깨끗한 공기, 우주의 기운, 尊天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며 웃음을 지었다.

안마사는 공(空)사상을 바탕으로 법화경과 반야심경을 경전으로 삼는다. 기도문을 보자." 인간을 보다 향상시키고, 부와 영광을 증진시켜 주소서. 달처럼 아름답게, 태양처럼 따뜻하게, 대지처럼 힘있게. 존천이여, 많은 혜택을 주옵소서.이 성지에 있어서 평화가 불화를 싸워 이기고, 무욕이 탐욕을 정복하고, 진실한 말 한마디가 거짓을 극복하고,존경이 굴욕을 이기게 하옵소서."

#삼정사, 불상이 없는 본당

시가현의 미이데라(三井寺,삼정사)를 방문했을 때 금당(본존불을 안치하는 중심건물)에 부처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비불(秘佛) 전통에 따른 것이다. 비불은 비밀히 모신 불상으로,불감(佛龕) 같은 곳에 모셔서 항상 문을 닫고 직접 참배할 수 없는 불상이다. 미이데라는 672년 일본 황족간의 왕권다툼에서 패하여 죽은 오오도모노미꼬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로 전해지고 있다.

#기부네 신사, 일본신사의 다양하고 풍부한 빛깔 알게 돼

교토 쿠라마에 있는 기부네 신사 방문은 신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그간에 신사는 야스쿠니 신사와 일제시대 신사참배 강요로 인해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일본의 신사는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빛깔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일본인은 신을 가미[神]라고 부른다.신도에서 가미는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절대타자로서 창조신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이 사후 혹은 생전에 가미로서 숭배되고 제사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본인들은 신을 호칭할 때 마치 이웃집 아저씨를 대하듯이 '가미상'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인간은 가미를 숭경함으로써 가미의 영위를 높여주며, 그 대가로 가미는 인간을 지켜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긴다. 신도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믿는 가미는 조상신이다. 물론 그밖에도 무수한 가미들이 있는데,일본인들은 자기가 지금 예배드리는 대상으 어떤 가미인지 그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가미가 현실적으로 어떤 복덕을 가져다 주느냐이다.

기부네 신사는 교토의 발원지이자 물의 신을 모시는 곳으로서, 가는 길에 계곡에서 힘차게 물흐르는 소리가 들려 청량감을 느끼게 한다. 16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비를 내리게 하는 신으로 유명한 신사이다. 맑은 날을 기원할 때는 백마를, 비를 기원할 때는 검은말을 바쳐 빌었으나 실제로는 나무판에 그림을 그려놓은 에마(말그림)를 바쳐 에마의 발상지로도 불리운다.부채질을 쉼없이 할 정도로 찌는 듯한 더위에도 기부네 신사에 이르자,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신사에 절을 올리거나 복점을 쳤다. 참배자들은 신사 우물에서 손과 입을 헹구고 신사 앞에 걸린 줄을 흔들어 방울을 울린다.그런 다음 참배자는 무언가를 기원하며 두번 절하고 두번 손뼉을 친 후 다시 한번 절하고 물러나온다.참배객 중에는 점을 치는 이들도 많다. 점을 치는 종이를 사서 물에 띄우면 백지에서 점차 진한 글씨가 나오면서 점괘를 읽을 수 있다. 건강,행운,사랑을 기원하는 글귀들이 적혀 있다. 신사도 그렇고, 안마사도 그렇고 일본에서는 종교가 일상속에 스며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IMG10] #비화호, 산속의 절 처럼 고요한 호수

교토와 가까운 시가현의 비와코(琵琶湖) 호수는 드넓게 펼쳐진 호수면과 고즈넉한 풍경이 일품이다. 비파악기를 닮은 호수는 일본 최대의 호수로 교토, 오사카, 고베 사라들이 이 물을 마신다. 호수 면적이 670 제곱킬로미터,호수를 따라 호안선이 277킬로에 이른다. 유람선, 미시간크루즈를 타고 호수를 둘러보니 해안선이 저층 건물들이 각양각색으로 평온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드물게 높은 40층짜리 오츠프린스 호텔은 모든 객실이 호수가 바라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라 한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닮은 음악당은 좋은 시설을 갖추고 유명한 출연진을 유치해 수준높은 공연시설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크루즈 주변에는 다른 배들이 거의 없고, 잔잔한 바다를 조용하게 가르고 가는 크루즈는 물 위에 떠있는 불당 같았다. 바람소리만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 외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오후 4시경 강한 햇볕이 작렬하는 호수면 한쪽에는 하얀 물비늘이 일고, 다른 한쪽에는 짙은녹색의 물빛이 대비를 이루었다.

#오고토 온천 웅산장과 교토 웨스틴 미야코 호텔

비와코 주변에는 오고토 온천과 비와코 온천, 이시야야,난고 온천 등 온천이 많다. 우리 일행이 첫날 묵은 오고토 온천의 류잔소(雄山裝,웅산장)은 비와코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노천탕 객실을 갖추고 있다. 객실의 노천탕 대신 툭 트인 야외 노천탕에서 저녁,아침으로 몸을 담갔다. 류잔소는 직접 재배하거나 계약재배를 통한 신선채소로 식재료를 만들어 음식이 맛깔스럽다.

이틀째 묵은 교토 웨스틴 미야코 호텔은 정원이 아름다운 곳이다. 7층객실과 연결된 정원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물이 졸졸졸 흐르는 아담한 바위계곡 위에 자리잡은 숙소는 다이아나비가 묵었던 곳이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정원에서 산 정상까지 갔다 돌아오는 1시간 정도의 산책코스를 걸었다. 석등이 의외로 많고, 산정상의 신사와 폭포, 외줄로 깔아놓은 돌길 등 제법 운치가 있다.

교토 기온의 요리여관,하타나카(火田中)에서 일본 전통공연 관람은 신나고 즐거웠다. 20살 이하의 무희, 마이코상 2명과 악기를 연주하는, 나이든 게이코상이 펼치는 공연은 일본전통공연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전통복장과 화장을 한 무희들의 춤과 전통악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어우러져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무희들과의 관객이 함께 두가지 게임을 흥겹게 벌인 뒤, 무희들이 좌석별로 돌며 환담을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교토, 시가현,오사카 등 관서지방은 안전했네.

마지막 일정으로 오사카부오사카성을 둘러보고,한국의 명동에 해당하는 신사이바시 상가를 찾았다.지붕이 쳐져 있는 신사이바시 상가는 양옆으로 점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무더운 날씨에도 수많은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축제행사로 가마 위에 올라선 소년 네명이 활달하게 북을 두드리는 모습, 거리에 마이크를 설치해 노래를 부르며 시선을 끄는 소녀,소년 가수들의 활기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여행은 교토부, 시가현, 오사카부 등 관서지방이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국토교통성이 초청해 이뤄진 것이다. 여행 말미에 이 생각이 떠오르면서 신사이바시의 활기찬 풍경을 담고자 했지만, 아차! 카메라를 차에 두고 왔다. 이건 지난 4월 큐슈여행에서 일본이 안전하다고 느꼈던 내가 이번 교토여행에서 불안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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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봉우리를 맺는 오솔길 - 철학자의 길

번잡스러운 벚꽃놀이의 행락객들, 줄을 이은 수학여행 학생들, 카메라 렌즈가 아니면 세상을 보는 법을 잊어버린 관광객들…. 교토는 수많은 방문객들로 어지럽다. 그럼에도 모퉁이를 돌아가면 고즈넉한 강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숲길, 백 년은 족히 넘은 듯한 침묵이 기다리고 있다. 교토가 수많은 문학인들의 산실이자, 책 한 권을 들고 오는 게 자연스러운 사색의 여행지가 되고 있는 이유다. 


교토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을 꾸준히 발표해 '교토의 소설가'라는 별명을 얻은 [태양의 탑], [요이야마 만화경]의 모리미 도미히코는 가장 교토다운 곳을 묻자 '철학자의 길(哲学の道)'이라고 답했다. 이름도 고상하여라. 긴카쿠지(銀閣寺)에서 난젠지(南禅寺)로 이어지는 이 오솔길은 20세기 초반 일본에 서양철학을 들여온 교토대 철학교수 니시다 키타로가 즐겨 걷던 길이라 하여 이런 이름을 얻었다. 드문드문 작은 가게와 카페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 벚꽃나무 길은 교토다운 차분함을 대표하는 장소다.  

 

 

스스로 불타버린 문제적 자아 -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는 20세기 일본의 문제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문제아였다. 자기 소멸에 이르는 극단적 유미주의, 세상을 뒤흔든 동성애의 고백, 도쿄대 전공투 학생들과의 맞장 토론, 그리고 자위대원들의 봉기를 선동하다 실패를 깨닫고 선지피를 흘리며 공개적 죽음을 맞은 최후까지. 그는 언제나 문제의 중심으로 다가가 그 스스로 문제가 되었다.


교토의 찬란한 금빛 사찰, 킨카쿠지(金閣寺)의 공식적인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다. 그러나 물 위에 떠 있는 금박의 누각이 워낙 유명해 금각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1950년 이 절은 정신병을 앓고 있던 승려가 자살을 기도하면서 불타버리게 되었는데, 미시마 유키오는 바로 이 사건에 착안해 1956년 소설 [금각사]를 창작하기에 이른다. 1955년에 재건축된 누각은 지금도 비현실적인 금박을 입고 있지만, 실제로 본 사람들은 실망감을 토해내기도 한다. 어쩌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금각은 상상 속에서야 진정한 황금의 누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 속의 금각은 더욱 비현실적이다.

 

 

게이샤는 추억이 아니라 현재 - 기온

영화 속에서 어린 사유리가 뛰어가는 몽환적인 길은 교토 동남쪽 후시미이나리 신사(伏見稲荷大社)의 붉은 토리이다.


 

교토가 '천년 고도'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역사책을 보여줄 수도 있다. 도시 곳곳에 백년 넘은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며 그 증거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수백 년 전의 삶과 직업을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큼 강한 설득력이 있을까? 교토를 정말로 놀라운 도시로 만드는 것은 기온(祇園)의 게이샤들일지도 모른다.


잘못된 통념과 달리 기온은 홍등가가 아니라 수백 년간 여성 예술인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거리다. 또한 교토에서는 게이샤가 아니라 게이코(芸子)라는 지칭으로 이들을 부른다.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은 콜롬비아 대학에서 일본사를 공부한 아서 골든이 이와사카 미네코 등 기온에서 게이코로 살았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국내에는 장쯔이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소개되었는데, 주인공인 사유리는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태어난 소녀로, 기온의 '노부 오키야'에서 게이코로 자라난 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격동의 시간과 사랑의 아픔을 겪어간다. 기온의 일상은 무라카미 모토카의 만화 []에서도 섬세하게 그려진다.

 

 

가모가와 강은 추리를 부른다 - 신본격파

[살육에 이르는 병]의 아비코 다케마루,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의 노리즈키 린타로, [십각관의 살인]의 아야츠지 유키토….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19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신본격파'의 핵심 작가들. 그리고 모두 교토대 미스터리 연구회의 출신들이다. 이들은 고전 본격파의 명탐정과 트릭 풀이에 매료되어 서로를 자극하며 추리소설을 써나갔고, 결국 아야츠지를 필두로 일본 추리소설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들뿐만 아니라, [월광게임]의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교토 도지샤(同志社) 대학 미스터리 동호회 출신이기도 하다. 이 고전적인 도시와 미스터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여러 가지 추리가 있지만 다음과 같은 유추가 나름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이 비현실적인 고전 도시의 분위기가 상식 바깥의 착상을 쉽게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점이다. 고도의 밀실 트릭이나 엽기적 연쇄 살인과 같은 본격파의 상상력은 교토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호러 소설들과도 진한 혈연관계를 이루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교토가 '대학 도시'라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곳곳에 자리 잡은 대학들은 어떤 주제를 치밀하게 탐구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것을 교류할 통로들을 제공하고 있다. 확실히 교토는 도쿄나 오사카의 상식적 일상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교토대 미스터리 연구회의 화려한 데뷔 - [십각관 살인 사건].

 

 

윤동주와 정지용의 교정 - 도시샤 대학

정지용의 '압천'을 새긴 도지샤 대학의 시비.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 목이 자졌다...여울 물소리....' 교토 도시샤 대학의 교정에는 이와 같은 시비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 시인 정지용의 시 '압천'을 새긴 것인데, 이 '압천'이란 바로 교토 한가운데를 흐르는 가모가와 강을 말한다. 


대학 도시인 교토는 바다 너머 조선의 청년들을 부르기도 했다. 1923년 정지용은 모교인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도시샤 대학 영문과를 다니게 된다. 그리고 교토와 고향인 옥천을 오가며 시작에 열중해 조선과 일본 양쪽의 문단에 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일본 <근대풍경(近代風景)>에는 예민한 언어 감각으로 순간의 이미지를 그린 '카페 프란스', '바다', '갑판 위'와 같은 작품들이 실렸다. 지금 들여다보아도 지극히 현대적인데, 1930년대 우리 문단의 총아였던 김기림은 "한국의 현대시는 지용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년 뒤 도지샤는 또 다른 조선의 천재를 맞이한다. 바로 윤동주. 1942년 도쿄 릿코 대학 영문과에 들어갔다가, 6개월 뒤 도지샤 대학 문학부로 옮기게 된 것이다. 그는 선배인 정지용처럼 대학 시절을 즐길 수는 없었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시기였고, 몰락 직전의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는 1943년 7월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2년 형을 언도받았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간 뒤에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정지용 역시 해방 전후와 6.25 전쟁 시기의 이념 분쟁에 휘말려 북으로 사라지게 되고, 남에서는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두 사람의 시비는 도지샤 대학의 교정에 나란히 앉아, 그들이 겪은 비극의 깊이만큼이나 또렷한 언어를 빛내고 있다.

 

 

후쿠야당 딸들의 과자 -  히가시야마

교토, 특히 기온을 품고 있는 히가시야마에서 창업 40년, 50년은 크게 자랑할 만한 거리가 못된다. 이곳에는 백년을 넘어서는 전통의 가게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만화 [후쿠야당 딸들]은 원래 350년 전통의 교과자점을 배경으로 하려 했는데, 교토에 400년 역사의 과자점이 있다는 걸 알고, 결국 창업 450년의 가게가 되었다.


300년이든 400년이든 그 역사는 정말 굉장하다. 그만큼 오랜 전통과 관습이 교토와 이 가게를 꽁꽁 묶고 있기도 한데, 만화는 이 과자 가게를 운영해야 하는 세 자매의 각고의 노력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매번 등장하는 다채로운 스타일의 과자들을 구경하는 것도 적지 않은 재미다. 눈이 어지러운 오색의 과자 안에 달콤한 팥을 안고 있지만, 다도회에서는 차를 앞질러 과자가 눈에 들어오게 하면 안 되는 것도 교토 식의 격식이다.


교과자를 맛보지 않고는 교토에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

 

 

노르웨이의 숲은 어디 인가요?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은 교토의 숲이 아닐까?


교토 출신의 작가들을 찾다 보면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안타깝게도 그는 교토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고베 등지에서 자라났고, 이 세계적인 관광지를 썩 고운 시선으로 보고 있지도 않는 것 같다. 그는 1983년 잡지 <앙앙> 7,8월 특별호의 '남자와 교토에' 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금 교토에 간다면 바로 산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면서." 그런데 이 글귀가 하루키의 팬들에게는 묘한 힌트가 되고 있다. 바로 일본에서만 2009년 8월까지 1천만 부가 판매된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에서 나오코가 입원해 요양을 하고 있는 정신치료시설(阿美寮)이 교토 근교의 산 속에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리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소설 속에 나오는 여정을 찾아간 일본의 어느 독자 (tokyo-kurenaidan.com/haruki-naoko5.htm)는 교토 북쪽의 산속에 있는 들풀요리점 미야마소(美山荘)가 바로 그 모델이 되는 장소라고 주장한다. 1985년 <인 포켓> 10월호에 실린 '무라카미 하루키 vs. 무라카미 류'에서 하루키가 이 요리를 열렬히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어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야마소는 인기 요리 만화 [맛의 달인]에도 등장하는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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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루체른

마흔, 애매하다. 공자님은 미혹함이 없는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했지만 주변에서 40대에 접어드는 지인들을 보면 딱히 그렇지 않아 보인다. 2030 신세대와 5060 '쉰'세대 사이에 딱 끼었으니,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애매하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여행지 역시 애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롯이 이 '낀'세대 마흔을 위한 기사를 준비했다. 마침 스카이스캐너가 친구, 가족과 떠나기 좋은 '마흔들의 여행지'를 콕 집어 소개하고 있다. 식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가. 여행이라는 단어를 보면 역시나 가슴 뛰는 세대가 마흔줄인데. 

 다양한 문화생활을 원한다면 뉴욕 

문화 소비와 스포츠 관람이 인생의 낙이라면 뉴욕으로 떠나자. 브로드웨이 뮤지컬,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관람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는 것으로도 일정이 빠듯한 도시가 뉴욕이다. 예술가들이 꾸린 숍이 늘어선 소호 거리를 거니는 것도 뉴욕을 두 배 즐기는 방법이다. 

또 뉴욕 하면 스포츠 경기 관람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스포츠 경기가 거의 매일 열린다. 15억달러를 들여 건축해 2009년 문을 연 뉴욕 양키스 홈구장 양키스타디움이 대표적인 명소다. 그 외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는 농구를 볼 수 있고, 퀸스 플러싱에서는 테니스를 볼 수 있다. 다양한 문화생활을 원하는 40대라면 뉴욕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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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모험을 즐기고 싶다면 킬리만자로 

마음이 푸른 40대라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떠나보자. 무려 1년에 5만명이 넘는 등산객이 찾는 곳이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다 보면 열대 우림, 계곡, 선인장이 반겨준다. 계속 오르면 만년설이 기다리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2050년쯤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하니 이참에 아프리카 보물에 흔적을 남겨보는 건 어떨까. 밤에는 빈 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빛도 만날 수 있다. 일상의 고단함과 지루함, 지친 마음을 킬리만자로에서 떨쳐보자. 그냥 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킬리만자로 AA 원두로 추출한 커피도 휴식의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친구들과 휴식을 원한다면 교토 

살기 바빠 자주 못 보던 친구와 추억을 쌓고 싶다면 교토를 추천한다. 한국에서 멀지 않으며 한적한 자연 속에서 쉬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단풍이 흐드러진 가을 혹은 벚꽃이 휘날리는 봄이 인기지만 여름날 교토도 매력이 있다. 아라시야마에서 대나무 숲을 걷거나 소원을 빌 수 있는 청수사에 가면 마음 속 깊이 시원한 청량감이 스며든다. 

미시마 유키오의 동명소설 덕분에 널리 알려진 금각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소다. 3층 전체가 금박으로 덮여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뽐낸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기온거리 역시 가볼 만하다. 가부키 화장을 하고 기모노를 입고 있는 게이샤를 만날 수도 있다. 해가 지면 료칸에 머물면서 따뜻한 온천에 앉아 땀 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면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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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몽생미셸 수도원

시끌벅적한 여행지도 신나지만 때로는 조용히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럴 때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준비한다면 프랑스만 한 곳이 없다. 특히 수도원을 추천한다. 가톨릭 신자라면 피정을, 아니라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평온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다. 

유럽 곳곳에 많은 수도원이 있지만 프랑스 남부 세낭크 수도원, 리옹에서 조금 떨어진 라 투레트 수도원, 몽생미셸 수도원 등이 대표적이다. 쏜살같이 빨리 돌아가는 세상만사를 잠시 잊고 중세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단 서둘러 예약해야 한다. 

 가족과 여행을 원한다면 싱가포르 

가족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면 다 데리고 싱가포르로 가보자. 싱가포르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 동양의 문화가 섞여 있고, 또 서양의 문화도 그 안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나라다. 또한 도시의 화려한 면모와 자연의 풍경이 공존한다. 도심에는 음식점과 쇼핑, 관광할 곳이 가득하다. 

또 아이들과 함께 이스트코스트파크, 보타닉가든에서 자연을 느끼거나 나이트 사파리, 주롱 새 공원에서 동물을 구경할 수도 있다. 싱가포르는 부모와 자녀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장소다. 아이와 손잡고 잘 정돈되고 안전한 도시 여행을 떠나보자.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스위스 

광활하고 깨끗한 자연 속을 산책하는 것은 어떨까. 바로 스위스에서 말이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 철도를 타고 융프라우요흐를 올라가는 것이 필수 코스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는 상쾌한 기분,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또한 엽서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루체른,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듯한 아펜첼, 예술의 도시 바젤 등 스위스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된 듯, 목동 소년이 된 듯 파란 자연 속에서 유쾌하고 천진난만한 순간을 보낼 수 있다. 대자연의 기운을 받고 오려면 스위스가 제격이다.  

[권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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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아라시야마의 료칸 '가덴쇼(花伝書)'

일본 간사이 지방의 아라시야마(嵐山)는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에 일본의 귀족들이 별장을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이 지역은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를 가진 154m 길이의 목조다리 '도게츠교'는 이 지방의 명물로 꼽히며 이외에도 일본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명승지들이 즐비해 한적하게 휴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덴쇼의 외경(좌)과 정원(우)
가덴쇼의 외경(좌)과 정원(우). 정원은 가레산스이(枯山水 돌과 모래로 풍경을 표현하는 방식) 형식으로 꾸며졌다.
아라시야마에 있는 '가덴쇼'는 현대식 료칸(일본의 전통 여관)으로 전철역인 한큐 아라시야마역과 도보 1분 거리에 있다. 역과 가까워 길을 헤매기 쉬운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찾아가기 편리하다. 교토가 가진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담은 듯한 건축물은 여행기분을 내기에도 적합하다. 온천도 함께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휴양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가덴쇼의 대형탕과 노천탕(위), 전세탕(아래)
가덴쇼의 대형탕과 노천탕(위), 전세탕(아래)
이곳의 온천은 대형탕, 노천탕, 전세탕 등 총 3가지 종류다. 대형탕은 남녀 구분을 지어 들어가는 실내 공용 온천이다. 노천탕은 야외에 있는 온천으로 저녁이면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전세탕은 '가시키리탕'이라 불리는 온천으로 일행들이 함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독립된 공간이기에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으며 이용요금 없이 비어있다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가덴쇼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요리. 교토의 전통음식도 함께 맛볼 수 있다.
가덴쇼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요리. 교토의 전통음식도 함께 맛볼 수 있다.
'가덴쇼'의 가장 큰 장점은 음식이다. 석식으로 가이세키요리(일본의 정식요리)가 제공되는데 다양한 일본 요리와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튀김 요리, 교토 전통 가정요리를 함께 맛볼 수 있다. 원하는 음식은 추가 요금 없이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아침 식사는 뷔페 형식으로 일본식과 양식 중 선택할 수 있다.

교토의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덴쇼의 객실
교토의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덴쇼의 객실

숙박요금은 트윈룸을 사용했을 때 1박 기준 3만엔 대, 3인이 기본인 다다미 침대 객실은 5만엔 대다(조식·석식 포함가). 모든 온천은 투숙객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책 '금각사'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교토

[Why] [그 작품 그 도시]
금박을 입혀 반짝이는 일본 교토 금각사. 백영옥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 를 읽고, 작가가 겪은 심리 변화를 느껴보고 싶어 금각사를 찾았다. 연말을 맞아 금각사에 몰린 관광객들에게 치여 절을 나온 그는 가방에 넣었던 소설 ‘금각사’ 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금각사’ 를 본 날, ‘금각사’ 를 잃어버렸다”고 쓴다. / 위키피디아

소설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작가가 작품을 쓴 곳에 가서 읽는 것"이라는 말을 한 건 소설가 K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느끼자면 겨울의 니가타현으로 가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눈이 그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눈 아닌 모든 것이 그저 눈의 그림자로 보일 법한 눈의 고장이라면, 눈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눈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에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차가 멈춰섰다" 같은 가와바타의 문장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설국의 '눈'에 대해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을 쓰기 위해 직접 니가타현의 낯선 여관방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소설 속 주인공처럼 목선이 아름다운 어느 여인과 남몰래 사랑에 빠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작가가 느꼈을 감성은 유자와 온천의 어느 골목을 걷다 보면 불현듯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2014년의 거의 마지막 날, 일본 오사카에서 열차를 타고 교토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금각사(金閣寺)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었던 열여덟 살 때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금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었고, 또한 금각이라는 글자, 그 음운으로부터 내 마음이 그려 낸 금각은 터무니없이 멋진 것이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금각은 너무나 싱겁게 내 앞에 그 전모를 드러내었다. 나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혹은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동이 일지 않았다. 그것은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꼭대기의 봉황도,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름답기는커녕 부조화하고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美)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날이 내 마음속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되살려 어느덧 보기 전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금각이 되었다. 어디가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몽상에 의하여 성장한 것이 일단 현실의 수정을 거쳐, 오히려 몽상을 자극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주인공이 느낀 금각사에 대한 심리 변화를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금각사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 '아름다움이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인가!'에서 '어딘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 금각' 사이의 심리적 거리와 간격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셈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그토록 아름다운 금각사를 걷다 보면 결국 그것에 집착해 금각을 불태우고야 마는 파멸의 씨앗이 보일 것 같았다.

교토에 도착한 날 버스 터미널에서 시티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1일 패스를 끊었다. 금각사로 가는 버스 승객의 줄은 길었다. 정류장을 지나갈수록 버스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금각사에 들어갔을 땐 놀라움이 거의 공포로 바뀌었다. 금각사는 사람들의 정수리 색깔,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외국인뿐 아니라 연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일본인 관광객들의 뒤통수 덕분에 사실상 걸어 다닌다기보다 마치 수평 에스컬레이터 같은 게 있어서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동선 위를 떠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말하자면, 12월 30일에 금각사에 가는 일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까웠다. 그저 외국인 관광객과 일본인의 정수리 냄새를 제대로 맡아볼 계획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금각사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금각사를 보기는 봤지만, 봤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나는 절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방 안에 소설 '금각사'를 챙겨왔(다고 생각했)지만 펼쳐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을 보았을 때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결국 배낭 속에서 새로운 파스 몇 장을 꺼내 발에 붙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지도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무조건 사람이 없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간 셈이다. 어쩌면 길을 잃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길을 잃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금각사'를 잃어버렸다. 대신 다른 책의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물건들은 없어진다. 그냥 사라진다.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온 마음을 다 바쳐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믿을 수 없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걸 잃어버린다. 아끼는 물건일수록 언젠가는 잃어버리게 될 거라는 예감도 그만큼 더 확실하게 다가오고, 잃어버렸을 때 찾아오는 상실감도 크다."

결국 금각사 근처에서 내가 읽은 책은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였다. 그것은 고대 유적이 보존되어 있는 로마와 렙티스 마그나부터 자동차 산업이 붕괴하며 도시 자체가 쇠락해버린 디트로이트까지 '폐허'를 여행하는 한 소설가의 황량한 내면 풍경으로, 당장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폐허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지 않습니다. 그건 보는 이를 미래로 안내하죠. 거의 어떤 예언 같은 느낌입니다" 같은 문장에 여러 번 밑줄을 그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에서 사이보그가 나오는 미래의 SF 영화를 찍는 건 이런 맥락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유독 오래된 절이 많은 교토의 사찰에서 이 책을 읽는 기분은 기묘했다.

"'금각사'를 본 날, '금각사'를 잃어버렸다"고 노트에 썼다. 그리고 12월 31일, 일본 NHK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믿기지 않는 장면을 봤다. 폭죽을 터뜨리고 요란스럽기만 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연말 방송만 보다가,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바뀌는 그 순간에 카운트다운조차 하지 않는 일본 방송에 문화적 충격을 느낀 것이다. 너무 고요해서 혹시 텔레비전 볼륨을 잘못 조절했나 의아해질 즈음, 이 책의 거의 마지막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나무는 온통 자라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잖아."

창밖의 나무는 아직 잎이 없는 겨울나무였다. 하지만 서울보다 8도쯤 높은 교토의 겨울이 어쩐지 새해의 봄날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금각사
국내도서
저자 : 미시마 유키오 / 허호역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0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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