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더 가까운 '쓰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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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시타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아소만. 쓰시마를 통틀어 최고 절경이다. /최보식 기자
직업적 관심 때문에 나는 쓰시마(對馬島)를 가보고 싶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 사흘 뒤 이승만 대통령이 첫 기자회견에서 꺼낸 게 '대마도 반환' 요구였다. 이듬해 연두 회견과 연말 회견에서도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것. 일본이 아무리 주장해도 '역사'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역사의 증표란 조선 후기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 같은 것이다. '백두산은 머리, 대관령은 척추, 영남의 대마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다(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라고 영토를 정의했으니까. 하지만 이승만의 야심 찬 '대마도 카드'는 6·25 발발로 날아가 버렸다. 지금 쓰시마에는 일본의 육·해·공 자위대가 배치돼있다.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쓰시마의 이즈하라(嚴源) 항구까지 2시간 남짓 걸렸다. 산과 바다에 둘러싸인 이즈하라의 첫인상은 움직임이 멈춘 정물(靜物) 같았다. 시내에서는 돌아다니는 주민도 안 보였다. 초여름 햇볕 속의 소도시는 너무 적요해,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 여행 동기가 됐던 '역사(歷史)'는 이런 풍경 앞에서 증발할 수밖에 없었다.

항구에서 차로 5분 거리, 언덕배기에 있는 쓰시마대아호텔에 짐을 풀었다. 쓰시마에서 가장 현대적이라는, 지은 지 14년 된 이 호텔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방음(防音)이 안 됐다. 바깥에서 하는 대화가 침대맡에서 들리는 듯했다. 모바일 전화도 안 터졌다.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핍과 간소함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쓰시마 홍보 포스터에는 '유(癒·힐링)'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호텔 뒤편 해안 절벽에는 잔디 공원이 조성돼 있었다. 느릿느릿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밤에는 배의 불빛과 창공의 별을 보고, 새벽에는 바다 피부를 뚫고 나오는 선혈(鮮血)의 해를 볼 수 있었다.

제주도 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 쓰시마는 89%가 산(山)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빼면 모두 삼나무·측백나무·밤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 원시림의 산이라고 보면 된다. 그 사이를 파고든 산길은 좁고 가파르다. 전(全) 구역에서 차량 제한 속도는 시속 40㎞(간혹 5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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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이 바닷속에 잠겨 있는 와타즈미 신사.
첫날 오후에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화강암 계곡인 아유모도시(鮎もどし·은어가 돌아온다는 뜻) 자연공원을 거쳐, 최남단 쓰쓰자키(豆酸崎)에 닿았다. 절벽 아래로 청색 바다에 허연 포말(泡沫)이 부서졌다. 내려오는 한류와 올라가는 난류가 여기서 충돌한다. 해변인데 갈매기는 보이지 않고, 대신 솔개들이 빙빙 돌고 있었다.

저녁에는 쓰시마의 전통식인 '이시야키(石燒)'를 먹었다. 돌판에 양념한 생선 등을 구워 먹는 것인데, 한때 우리가 돌판에 삼겹살을 구워 먹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1인당 2700엔이다. 저녁을 먹고 나와 시내 골목을 걸으니 불 꺼진 업소가 대부분이었고 여전히 행인은 보이지 않았다.

쓰시마 인구는 약 3만3000명. 이 중 1만6000여 명이 이즈하라 부근에 산다. 섬에는 대학교와 공장이 없다. 여기 청춘(靑春)들은 고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본토로 떠난다. 섬은 점점 고령화되고 있다. 쓰시마의 존재는 우리에게만 강렬할 뿐, 일본에서는 단지 숱한 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본토인들이 여기까지 여행 오는 일은 거의 없다. 쓰시마에서 거리를 활보하는 일군(一群)의 무리가 있으면 어김없이 한국 관광객이다.

둘째 날, '일본의 해변 100선(選)'에 선정된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도 일본인은 없었다. 스물댓 명의 한국 소녀들뿐이었다. 수학여행을 온 전남 벌교여고 1학년생이었다. 개인당 7만원을 내고, 학교재단 이사진이 재정 지원을 해서 3박 4일간 왔다고 했다. 쓰시마가 이렇게 올 수도 있는 곳이구나. 학생들은 새벽에 벌교 집을 나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오전에 쓰시마의 북쪽 항구인 히타카쓰(比田勝)로 들어왔다. 뱃길은 49.5㎞, 여객선으로 1시간 거리였다.

쓰시마의 관광 코스는 대부분 높은 전망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산과 산으로 중첩돼 있어 더 높은 산 위로 올라가야 '풍경(風景)'이 열리기 때문이다.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한 쓰시마 해전(1905년)의 전망대도 해안 절벽에 만들어 놓았다. 발틱 함대는 대서양과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거의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이곳까지 싸우러 왔다. 이미 파멸이 예상됐던 것이다. 하지만 저 출렁거리는 앞바다에 무슨 전투 흔적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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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상점에는 대부분 한글이 병기돼 있다.
기념탑에는 부상당한 채 포로가 된 러시아 제독 로제스트벤스키의 병실을 방문한 도고 헤이하치로(東�平八郞) 제독의 모습을 새겨놓았다. 군복 차림의 도고 제독은 내려다보고, 환자복을 입은 로제스트벤스키는 침대에 앉아 있다. 이 장면에 대해 '평화(平和)' '우호(友好)'라는 제목을 달아놓았다. 용어(用語)는 자신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선택된다.

쓰시마를 통틀어 최고의 경관(景觀)을 볼 수 있는 지점은 에보시타게(烏帽子岳) 전망대다. 거기에 올라섰을 때 초록 무덤 같은 섬들이 푸른 바다(아소만·淺茅灣) 위에 흘러갈 것처럼 둥둥 떠 있었다. 신의 솜씨 중에서도 가히 으뜸이었다.

이 전망대에서 조금 내려오면 와타즈미(和都多美) 신사가 있다. 신사 입구에 있는 기둥 문(門)인 '도리이(鳥居)'가 다섯 개다. 그 중 두 쌍은 바닷속에 잠겨 있다. 왜 문을 바다에 세웠을까. 누구를 향한 문일까. 바다 너머 누구를 불러들이려는 걸까. 그 누구에게로 가려는 걸까. 신비함은 아름다움의 격조를 높인다.

귀국하는 셋째 날에는 이즈하라 시내를 걸었다.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도'를 벽에 새겨놓은 청계천처럼, 이곳 시내에는 '조선통신사 행렬도'를 새겨놓은 수로가 있다. '통신(通信)'은 믿음(信)을 서로 통하게 한다는 뜻이다. 한 번 여정(旅程)에 1년~1년 반이 걸렸던 조선통신사의 첫 도착지가 쓰시마였다. 이 때문에 쓰시마에서는 8월에 '아리랑 마쓰리(祭り)'라는 조선통신사 축제가 열렸다. 하지만 2013년 쓰시마의 어느 신사 '불상 도난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으로 밝혀지면서 축제는 2년간 중단됐다. 작년에 재개됐으나 '아리랑 마쓰리'는 '미나토(港) 마쓰리'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섬에서 우리의 '역사'를 찾으려고 하면 여행 일정이 숨 가쁠 것이다. 한말(韓末) 의병을 일으켰던 74세의 유생 최익현(崔益鉉)이 옥사한 곳, 쓰시마 도주와 결혼한 고종(高宗)의 고명딸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 그런 관심에서 다들 배를 타고 건너오지만, 막상 이 섬에 하루만 머물러도 인간의 역사 대신 '자연(自然)'에 둘러싸일 것이다. 아주 나른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에 젖어들면서.

쓰시마 개념도
쓰시마는 바다낚시나 등산을 즐기는 이들에게 매력적이다. 특정 목적이 없으면 단체 상품을 택하는 게 무난하다.

쓰시마에는 음식점이 많지 않고 수준은 높지 않다. 추천을 받아 2박 3일간 필자가 찾아간 음식점은 다음과 같다.

쓰시마대아호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うどん茶屋(우동차야)’, 이즈하라 시내에서 이시야키(石燒)를 하는 ‘千兩(센료)’, 회전 초밥 가게인 ‘すし屋(스시야)’, 사스나 지역에 있는 메밀국수 집 ‘そば道場(소바도조)’.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대마도 에보시타케 전망대에서 바라 본 아소만 전경.

대마도여행---1

태고의 섬 속으로 떠나는 여정 속에

우리 선인들의 흔적을 찾는다

하루 이틀, 훌쩍 바람을 쐬러 나설 만한 해외 여행지가 있다. 대마도(對馬島· 쓰시마)가 바로 그런 곳이다. 부산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49.5㎞의 지근거리에 이국적 정취가 흐르는 섬이 자리하고 있으니, 뱃길로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본래 대마도는 섬의 90%가 산악지형으로, 장구한 세월 속에 원시 자연의 공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삼림욕을 즐기며 트레킹 등 청정 자연을 찾는 여정을 꾸리기에도 적당하다. 특히 다도해 절경이 펼쳐진 아소만 해역은 돌돔, 뱅에돔 등 고급어종이 서식하는 최고의 포인트로 우리 꾼들의 단골 출조지이기도 하다.

대마도의 또 다른 매력은 우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는 점. 한반도로부터 농업 기술, 종교, 문화 등 신문물이 전해지던 창구로, 조선통신사 등 조선의 역사유적들이 또렷이 남아 문화역사기행지로도 제격이다. 대마도(일본)=글·사진 김형우 기자


◆'가깝고 저렴한 여행지' 대마도

대마도는 우리와 정말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맑은 날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서도 아스라히 바라다 보이는 곳으로, 대마도 북섬의 한국전망대에서도 부산을 에워싼 봉긋한 산자락을 마주할 수 있다. 일본 본토로부터 132㎞나 떨어져 있는 데 비해, 부산에서는 불과 49.5㎞거리. 그래서일까. 실제 대마도 땅을 밟게 되면 야릇하고도 아쉬운 마음이 절로 솟는다. 특히 독도와 더불어 한-일간 영토분쟁이 불거질 때마다 떠올려지는 곳이고 보니 그 감흥은 유다르다.

굳이 이종무 장군의 정벌의 역사가 없어도 일본 땅 대마도는 여행지만으로도 탐 나는 곳이다. 원시에 가까운 청정자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마도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가까운 해외여행지라는 점이다. 부산에서 동남쪽 이즈하라항까지는 뱃길로 2시간 30분, 동북쪽 히타카쓰항까지는 1시간 40분이면 닿는다. 따라서 그만큼 짧은 시간, 저렴한 비용으로도 여정을 꾸릴 수 있다.

대마도 여행 상품은 1박 2일, 2박 3일 일정이 주류를 이룬다. 역사 탐방과 섬 관광이 주요코스로 산행 및 선상 낚시는 옵션투어가 된다.

대마도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큰 고객이다. 전체 관광객의 90%가 한국인이고 보니 여행에 불편이 따르지 않는다.



대마도 자유여행… 두 바퀴로 만나는 '바람의 섬'
돌을 머리에 인 가옥들… 누워 자란 활엽수

불과 두 시간을 배로 건너왔을 뿐인데, 가을 색 창연한 풍경을 만날 줄은 몰랐다. 아직 단풍을 머금은 풍경 속에서 겨울 외투를 벗었다. 일본이되 한국이 더 가까운 곳, 대마도(對馬島·쓰시마) 얘기다.

대마도는 대개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오는 곳이었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조금만 준비하면 자유여행 역시 어렵지 않다. 집단의 리듬이 아닌, 자기 고유한 리듬으로 만나는 쓰시마는 색다르다.

추천 코스는 이렇다. 대마도 북부 항구 히타카쓰(比田勝)에 내려 자전거로 해안 도로를 돈다. 다음은 걷기다. 시내버스 타고 대마도 중부로 이동, 아소만(淺茅灣)이 내려 보이는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와 물속 도리이(鳥居)가 신화 속 한 장면 같은 와타즈미 신사(和都多美神社)로 간다. 마지막은 차를 빌려 바람의 나라, 이즈하라마치(嚴源町)를 한 바퀴 도는 것. 대마도 북에서 출발, 리듬을 달리하며 남에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일본 여행이기도 하고, 때로는 데자뷔 같은 한국 여행이기도 하다.

와타즈미 신사의 도리이(鳥居)는 바다를 향한다. 만조 때면 2m쯤 잠기고 간조 때 온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바다와 육지 사이에 선 도리이는 바다 너머 경주 서라벌을 바라본다. 와타즈미 신사의 옛 이름은 도해궁, 바다를 건너온 궁이다.
자전거로 대마도를 맛보다

대마도, 꽤 크다. 제주도보다 작되 거제도보다 2배쯤 크다. 남북으로 종단하는 데 차로 대략 2시간 30분 거리다. 2박3일 일정을 잡았다면 대마도의 모든 것을 다 보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더 깊이 볼 수 있다.

첫날 히타카쓰 자전거 여행은 대마도 맛보기다. 최근 대마도는 북쪽에 자전거로 돌 수 있는 코스를 세 군데 개발했다. 이 중 히타카쓰 항구를 기점으로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과 한국전망대를 돌아 순회하는 코스가 무난하다.

항구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 길을 나섰다. 부산에서 49.5㎞ 떨어진 쓰시마는 외투를 벗을 정도로 따뜻했다. 첫 목적지는 아지로(網代)의 연흔(漣痕). 200m 가까운 길이의 해변에 바다의 잔물결을 담은 바위가 펼쳐진 곳이다. 말 그대로 파도의 흔적이 화석으로 남았다.

연흔을 보고 길을 돌아 해안 절벽을 타는 도로 위에 올랐다. 나지막한 경사 끝에 불현듯 파도 소리가 출렁였다. 날씨는 가을이나 바다는 맑은 겨울을 닮아 파도에 흔들리는 물 아래 자갈이 또렷했다. 그 해변도로 끝에 '일본의 해변 100선'에 선정됐던 미우다 해수욕장이 있다. 자갈은 거기서 하얀 모래로 바뀌고 바다 한가운데 오도카니 서 있는 바위 섬이 정취를 더했다.

바닷가의 고요를 즐겼다면, 이젠 한국전망대에 오를 순서다. 한동안 평탄하다 전망대에 다다를 무렵 길은 급격히 가팔라진다.

전망대는 한국과 대마도가 직접 만나는 자리다. 맑은 밤이면 부산이 수평선 너머 반짝이거니와 전망대 자체가 탑골공원 팔각정을 모델 삼아 한국산 재료로 지어져서다. 게다가 전망대는 한때 한국 휴대폰이 터지기로 유명했던 곳. 이날도 SK텔레콤과 KT 네트워크가 잡히긴 했으나 통화가 되진 않았다.

전망대 옆에는 조선역관사 순국비가 서 있으니, 여기서 과거와 현재도 중첩된다. 순국비는 숙종 29년인 1703년 2월 5일 대마도 앞바다에서 풍랑에 휩싸여 죽은 조선 역관 108명을 추모한다.

미우다 해수욕장과 한국전망대는 순회 코스에서 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징표다. 그 징표를 나침반 삼아 길을 돌 때, 징표와 징표 사이가 더 흥미롭다. 언덕을 넘을 때마다 마주하는 바다의 안쪽으로는 단정한 일본 마을이 자리 잡고, 바다와 바다 사이 높게 솟은 삼나무 숲이 양쪽으로 도열한다. 바다와 산을 넘나들며 경계를 지우는 매와 까마귀는 특유의 울음소리로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미우다 해수욕장과 한국전망대 사이, 혹은 바다와 바다 사이에 낮게 앉은 마을, 이즈미. 자전거로 달릴 때 대마도는 속깊은 풍경을 보여준다. 터널끝에 마주친 12월의 대마도 풍경.
신화의 시대를 걷다

대마도엔 약 3만7000명이 산다. 이 중 2만 명 남짓한 이들이 대마도 남쪽 마을 이즈하라에 거주한다. 많은 유적과 오랜 풍경이 이즈하라에 있으니, 마땅히 히타카쓰에서 이즈하라로 건너가야 하나 그전에 들를 곳이 있다. 와타즈미 신사와 에보시다케 전망대가 있는 도요타마마치(豊玉町)다.

히타카쓰에서 하루 다섯 대 있는 버스를 타고 달리길 한 시간, 한때 진주양식으로 부유했던 마을 니이(仁位)에 도착했다. 바다와 끝을 맞댄 하천 따라 걸으면 이내 오르막이다. 멀리 붉은 도리이가 보였다. 신사 앞에서 속세와 신성(神聖)을 나누는 경계다. 그러나 이 붉은 도리이 앞에 신사는 없다. 신사 대신 신화의 공간, 아소만이 있다.

아소만은 일본에서 가장 복잡한 리아스식 해변 중 하나다. 바다를 넓게 안은 아소만에서, 섬의 구릉은 팔을 뻗어 쥘 수 없는 바다를 향해 손을 펼쳤다. 그 선사(先史)의 풍경 위로 이곳 주민은 진주 양식의 표지인 부표를 널어 바다를 까맣게 수놓았다. 지금의 부표와 선사의 아소만 사이는 신화의 시대다. 이를 증명하는 게 땅과 바다 사이에 걸친 와타즈미 신사다. 

해신(海神)을 모신 와타즈미 신사에는 도리이가 다섯이다. 바다를 향해 뻗은 다섯 도리이 중 둘은 바닷속에 서서 만조 때면 2m쯤 물에 잠긴다. 만조 때 젖고 간조 때 마르는 도리이는 바다와 땅, 신화와 현실을 오가는 경계이자 소통의 문이다.

와타즈미 신사의 신화는 한국과도 맞닿아 있다. 도리이는 바다 너머 경주 서라벌을 향한다. 이 신사의 옛 이름이 '도해궁(渡海宮·바다를 건너온 궁)'이란 기록도 남아 있으니, 한반도에서 건너온 신을 모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신사 너머 에보시다케 전망대는 아소만의 원경을 한눈에 움켜쥘 수 있는 곳이다. 현재에서 신화로, 신화에서 선사의 시대로 거슬러 오르는 길이 여기서 모두 내려다보인다. 이제 다시, 그 길을 따라 현재로 내려갈 차례다.

바람의 나라를 달리다

대마도는 일본에 등을 돌리고 한국으로 시선을 향한 형국이다. 대마도 북쪽의 산이 낮게 엎드린 반면, 남쪽 해변은 높은 산이 바싹 압박한다. 길이 가팔라 차를 빌리는 편이 제일 수월하다. 기점은 이즈하라. 24번 현도(縣道)를 타고 대마도 최남단 쓰쓰자키(豆酸崎)를 지나 시계 방향으로 도는 여정이다.

24번 도로는 북쪽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삼나무와 측백나무는 군락을 이뤄 힘 있게 수직으로 뻗었고, 사이사이 아직 단풍을 벗지 않은 활엽수가 시린 편서풍에 일제히 수평으로 몸을 뉘었다.

고산을 파고들며, 때론 능선으로 멀리 바라보며 남쪽을 향하면 끝에 쓰쓰자키가 있다. 이곳 풍경은 바람이 조각한다. 바다로 돌출된 쓰쓰자키에선 사방으로 바다가 달려들었다. 조류가 거센 데다 유독 암초가 많아 쓰쓰자키의 앞바다는 하얗게 거품을 물며 절벽으로 치달았다. 바다 한복판에 선 등대와 바다를 내려보고 선 부동명왕 동상만이 그 동적(動的)인 풍경을 매서운 눈으로 지켜봤다. 금강바라밀다보살이라고도 하는 이 동상은 파도를 잠재우는 신이라 했다.

바람에 대처하는 이곳 주민의 자세는 시이네(椎根)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조 건물에 차곡차곡 돌을 쌓아 지붕을 덮은 창고들이 여기 있다. 너와나 초가로는 겨울 편서풍을 견뎌낼 수 없고 농민이 기와로 지붕을 이는 건 금지돼 있으니, 대신 택한 게 돌이다. 돌 지붕은 대마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자기 고유의 리듬으로 속도를 달리하며 만나는 대마도 여행은, 아쉽지만 여기서 끝낸다.


여행수첩

①부산→대마도


대아고속해운이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대마도 이즈하라항·히타카쓰항을 오가는 선박을 운항 중이다. 보통 하루 1회 부산에서 오전 9시 30분 출발하며, 대마도에서는 오후 1시~4시 사이에 출발한다. 부산↔이즈하라항 3시간, 부산↔히타카쓰항 2시간쯤 소요. 기상에 따라 선박 운항 여부나 출발 시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 사전 확인 필수. 성인 1인 왕복 15만원. 1544-5117, www.daea.com

②히타카쓰 자전거 여행

히타카쓰 항구에서 직진, 삼거리에 관광안내센터가 있다. 자전거 24시간 대여 1000엔. 0920-86-2212. 아지로의 연흔으로 가려면 관광안내센터를 마주보고 서서 왼편으로 직진. 다시 왼편으로 육교가 보이면 육교 건너 직진. 자전거 순환코스를 돌려면 관광안내센터로 돌아나와 니시도마리→일본해 해전 기념비→미우다 해수욕장→이즈미→도요→한국전망대→와니우라→오우라→히타카쓰순. 거의 외길이라 길이 쉽다. 약 22㎞, 4시간 소요.

③니이 도보 여행

히타카쓰 버스터미널에서 오전 5시 15분, 7시 5분, 8시 40분, 오후 1시 25분, 4시 45분에 대마도를 종단하는 시내버스가 출발한다. 관광객에 한해 하루 버스를 무제한 탈 수 있는 승차권을 1000엔에 판매한다. 0920-86-2362

8시 40분 버스를 타고 오전 9시 55분 니이(仁位)에 도착하면 다음 버스(오후 2시 40분)까지 약 4시간 40분의 여유가 있다. 와타즈미 신사와 에보시다케 전망대를 둘러보기 충분한 시간이다. 니이 터미널에서 왼쪽으로 가면 육교가 보인다. 육교를 앞에 두고 우회전, 마을을 관통하면 끝에 왼편으로 우체국이 있다. 우체국 지나 하천을 오른편에 두고 계속 직진하면 오르막길이 있다. 표지판에 한글로 에보시다케 전망대가 써 있다. 표지판 따라가면 된다. 3시간 30분쯤 소요.

④이즈하라 자동차 여행

니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대마도공항 입구에서 내린다. 바로 앞에 렌터카 업체가 모여 있다. '자파렌(JAPAREN)'의 경우 소형차 24시간 대여 5670엔. 나중에 이즈하라 항구에서 차를 반납할 수 있어 편하다. 0920-54-2220

공항에서 이즈하라 방향으로 직진, 24번 현도를 타고 쓰쓰→쓰쓰자키→시이네→가미자카공원→이즈하라 순. 대부분 표지판이 한글을 병기했다. 지도와 내비게이션을 같이 확인하면 금상첨화. 약 4~5시간 소요.

대마도에 숙박업소가 모인 곳은 히타카쓰와 이즈하라다. 히타카쓰에선 미우다 해수욕장 인근 대마도 미우다 펜션이 아늑하다. 히타카쓰 도오루 대표이사가 한국말을 잘한다. 4인 1실 1박 1만2000엔. 0920-86-3110, 090-5297-2403

바로 앞에 상대마 온천이 있다. 성인 500엔. 이즈하라에선 호텔 쓰시마가 시내 중심에 있어 다니기 좋다. 싱글룸 6800엔. 0920-52-7711.

이시야키(石燒)와 로쿠베는 대마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속음식. 이시야키는 달군 돌 위에 날 생선과 조개를 가볍게 구워 먹는 요리요, 로쿠베는 고구마 반죽에서 뽑아낸 짧은 면을 육수에 말아 먹는 요리다. 둘 다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시마모토에서 맛볼 수 있다. 이시야키 2625엔, 로쿠베 630엔. 0920-52-5252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빵에 팥 앙금을 넣은 카스마키 역시 대마도에서 맛볼 수 있는 간식이다. 호텔 쓰시마에서 항구 가는 길에 4대째 카스마키를 만들어온 빵집 에사키타이헤이도(江崎泰平堂)가 있다. 0920-52-0315

이즈하라는 대마도에서 가장 큰 해안도시. 놓칠 수 없는 게 두 개 있다. 일출과 유적 찾아 걷기다. 일출은 대아호텔 앞 공원에서 잘 볼 수 있다. 일본 3대 묘지 중 한 곳인 반쇼인(万松院)과 옛 이즈하라 성문 고려문, 덕혜옹주 결혼봉축 기념비, 조선통신사비, 대마도역사 민속 자료관, 최익현 순국비 등이 이즈하라 시내에 있거나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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