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베이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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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베이루트 지중해변 산책로 코니쉬에 있는 ‘피전 록’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사람들.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로 불릴 만큼 아름답다. / 케이채

중동이라고 하면 많이 가지는 편견과 전혀 다르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유럽의 느낌을 머금고 있다. 중동의 파리라는 별명이 있다. 한때 이곳을 점령했던 프랑스 영향으로 매력적인 건축물이 가득하다. 다양한 아랍권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젊음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곳곳에 이슬람 문화의 흔적 또한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베이루트의 독특한 매력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단 한 곳을 꼽으라면 지중해를 바라보는 산책로 코니쉬(Corniche)를 추천한다.

지중해가 펼쳐지는 베이루트 서쪽에 길이 4.8㎞ 해안 산책로가 펼쳐진 코니쉬는 관광객들은 물론 레바논 사람들에게도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가족·커플·친구들까지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 산책로의 시작은 북쪽 끝의 세인트 조지 요트 클럽. 비싼 요트들이 일렬로 정박되어 있는 가운데 레스토랑과 술집이 즐비한 쇼핑 거리다. 이곳이 중동이 맞는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글로벌 커피숍인 스타벅스를 비롯해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프렌차이즈 식당과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여유롭게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남쪽을 따라 내려가면 본격적인 산책로가 펼쳐지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다. 지중해 바닷가에서의 낚시는 베이루트 사람들의 중요한 취미 생활 중 하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낚싯대를 들고 바다에 찌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을 쉬 발견할 수 있다. 파도가 높아 옷이 흠뻑 젖는데도 꿈쩍 안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대부분 큰 고기를 낚는 것 같지는 않다. 낚싯대를 드리운 그 자체로 이미 만족하는 게 코니쉬에서의 낚시가 아닌가 싶다. 낚시꾼들 사이로 가끔 펼쳐지는 바위로 가득한 해변에는 수영을 하거나 선탠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산책로 위로는 더 재미있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베이루트 젊은이들은 유럽 사람과 다름없는 서구적인 복장을 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연인들은 때로 과감한 애정표현을 한다. 여느 유럽 해변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얼굴과 몸을 모두 가린 전통 복장의 무슬림 여성들이 곁을 지나가며 묘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이슬람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복장은 달라도 지중해의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엄격한 무슬림도, 서구화된 무슬림들도 여기저기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해가 질 때쯤이 되면 어디선가 등장한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의자를 앞에 놓고는 가만히 앉아 사람 구경을 한다. 땅콩을 팔고, 커피를 팔고, 각종 장난감을 파는 노점상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벤치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지나 계속 길을 따라가면 가족들에게 인기가 많은 작은 놀이공원이 있다. 오래돼 보이지만 여전히 돌아가는 대관람차는 주말이면 특히 인기다. 공원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산책로가 끝나는 듯 보이지만 금세 다시 나타나는 길과 함께 거대한 바위들이 해안가에 펼쳐진다. 코니쉬의 남쪽 끝으로 가장 유명한 '비둘기 바위' 피전 록(Pigeon Rocks)이다. 피전 록은 일몰을 바라보는 장소로 특히 인기가 많다. 산책로에서 가만 바라볼 수도 있지만 길을 따라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 보면 보트 운전사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피전 록 주위를 돌며 근처의 작은 동굴들을 들어가 볼 수 있는데 그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옆 나라 시리아 문제와 남쪽으로는 이스라엘, 북쪽으로는 터키와 맞닿아 정세가 불안한 느낌이 드는 레바논이다. 그러나 베이루트는 혼란의 중동 정세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지키며 가장 서구화된 중동 도시로서 현대화를 이루어왔다. 코니쉬의 산책로를 따라 하루를 걷는다면 여행 전 가졌던 일말의 두려움은 씻은 듯 사라질 것이다.

[그래픽] 레바논 베이루트
레바논 베이루트로 향하는 직항편은 없으며 대부분 두바이나 아부다비를 경유한다. 베이루트 공항에서 시내는 30여분 거리로 매우 가깝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옛것과 새것,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기독교와 이슬람이 조화와 충돌을 거듭해 온 땅. 영광과 상처 가득한 과거를 딛고 불안정한 현재를 일구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중동의 숨은 보석.

중동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다

온몸을 감싼 검은 차도르의 여인들, 노을지는 사막으로 걸어가는 낙타의 행렬,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기도소리......‘중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이다. 시리아, 이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레바논은 중동 지역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어난 곳이다. 이슬람 사원 옆으로 동방정교회가 서 있고, 히잡을 쓴 여성과 아찔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나란히 걸어가고,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상태의 택시 옆으로 최고급 세단이 질주하고, 뮈에젠의 기도 소리가 끝나면 귀를 찢는 테크노 음악 속에서 춤을 추는 밤이 시작된다.

사막과 이슬람으로 대변되는 중동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베이루트 시내 전경

‘중동의 파리’라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

오랫동안 중동 지역의 허브 역할을 해왔던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라 불리며 그 아름다움을 뽐내왔다. 오천 년에 걸친 도시의 역사가 말해 주듯 베이루트는 페니키아·로마·맘루크·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는 각 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간직한 보고다. 부르카와 토플리스, 푸른 지중해와 만년설이 쌓인 산, 복원된 새 건물과 폭격의 잔해가 그대로 남은 낡은 건물이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지중해를 품에 안고 설산에 기댄 베이루트는 그 아름다움으로 사랑받아 왔으나 17년에 이르는 내전의 중심지가 된 덕분에 철저히 파괴되었다. 길고 고통스러운 내전의 시발은 1975년,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이 탄 버스를 향해 쏜 한 발의 총이었다. 베이루트가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수상의 지휘로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야심적인 도심 재건축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10여 년에 걸쳐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쏟아 부어 200채가 넘는 오스만 제국식과 프랑스 식의 건물들을 복원했다. 주변의 낡고 허름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들어앉은 중심가는 지나치게 깔끔해서 초현실적인 분위기까지 풍긴다. 덕분에 영혼이 없는 거리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곳의 노천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고된 하루를 마감하는 일은 이미 베이루트 시민들의 신성한 의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다운타운의 거리 축제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바다를 품은 도시

베이루트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다운타운’ 혹은 건축회사의 이름을 따 ‘솔리데르(Solidere)’라 불리는 도심에서부터 걸어보자.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는 한낮의 텅 빈 도심은 삭막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곳을 복원하기 위해 베이루트 시민들이 쏟은 땀과 열정을 떠올리면 차가운 콘크리트 공간도 조금은 따스하게 느껴진다. 엄격하고 단정한 귀족의 얼굴 같은 도심을 빠져나오면 어디선가 바다가 기척도 없이 달려와 안긴다. 코르니체(Corniche)라 불리는 해변의 연안도로가 기다리고 있다. 햇살은 따가워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있고, 견과류나 파니니 스타일의 빵, 커피를 파는 노점상들 덕분에 느긋하게 소요하기에도 좋은 길이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노인들 곁으로 MP3를 목에 걸고 최신형 휴대전화를 든 젊은이들이 지나가고, 가슴을 드러낸 티셔츠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미녀를 흘끔거리며 조깅을 하고 있는 남자도 보인다.

연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왼편으로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American University of Beirut)이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대학이라는 론리 플래닛의 말이 심한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인 교정을 품고 있다. 품이 넉넉한 나무들과 늘씬하게 뻗은 삼나무들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줄지어 서 있다. 중동의 미남미녀들은 다 모아 놓은 것만 같은 청춘들이 가득한 교정을 돌아 다시 해변으로 나온다.

도시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바다가 기척도 없이 달려와 안긴다.

베이루트의 시내에서는 맥도날드,하드락카페 등의 서구문물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

베이루트 걷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은 비둘기 바위(Pigeon Rocks)다. 베이루트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경관인 이 바위들은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개선문 같다. 지금까지 걸어온 연안도로를 버리고 바다를 향해 이어진 절벽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을 따라간다. 이름 모를 꽃들이 하늘거리는 길을 따라 이어진 가파른 길을 따라가면 번잡한 베이루트 시내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도시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지중해의 바다 위에 섬처럼 뜬 비둘기 바위의 모습이 보인다. 주변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연인들의 속삭임은 혼자 걷는 이의 속을 살짝 긁기도 한다. 지중해를 향해 한껏 몸을 내민 이곳 절벽 위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 두 개가 있다. 한 곳은 테이블도 없이 달랑 의자 두 개, 다른 한 곳은 의자 네 개. 뜨겁고 진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바다로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노라면 혼자여도 나쁘지 않다는 만족감이 조금씩 차오른다.

비둘기 바위와 베이루트 시내 전경. 고층 빌딩들이 인상적이다.

코스 소개
긴 역사를 자랑하는 베이루트에는 오스만제국, 맘루크, 십자군, 압바스, 우마야드, 비잔틴, 로마, 페르시아, 페니키아, 가나안 시대의 유물들이 남아 있다. 무역항과 중동지역의 경제적 거점으로서의 입지를 두바이에 빼앗겼지만 베이루트는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다. 중동의 갑부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날아오고, 중동의 검은돈이 흘러 들어오는 곳이기에 ‘중동의 스위스’라고도 불린다.
베이루트를 걷는 코스는 어디서 시작하든 괜찮다. 다운타운에서 시작해 연안도로를 따라 비둘기 바위까지 걷는다면 약 7킬로미터, 최소 두 시간이 소요된다.

가는 길
한국에서 레바논의 베이루트까지는 직항편이 없다. 보통 카타르의 도하나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를 경유해야 한다.

여행하기 좋은 때
베이루트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겨울철에도 여행하기에 좋다. 단 12월부터 4월까지는 우기로 비가 많이 내린다. 무덥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봄과 가을이 최고의 여행시즌이다.

여행 Tip
중동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48시간 체류 비자로 레바논에 들어와 이틀 만에 레바논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레바논은 북부와 남부에 걸쳐 다양한 문화유산과 빼어난 자연환경을 품고 있다. 최소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내서 찬찬히 둘러보기를 권한다. 참고로, 레바논 요리는 그 맛과 다양성에서 미식가들의 격찬을 받아왔다. 한 번쯤은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중동 음식의 진수를 경험해보자.

드디어…예루살렘이 보이는 언덕 위에 서다

구름 아래로 비행기가 내려갔다. 크고 작은 살구색 주택들이 산을 수북이 덮은 채 지중해를 따라 이어졌다.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라는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 내려 900여년 전 십자군들이 걸어간 길을 더듬어 갔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 '십자군 이야기'가 길잡이를 맡았다.

레바논: 로마·이슬람·십자군 유적 공존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서 약 85㎞ 떨어진 트리폴리. 이곳에는 1105년 십자군의 레몽 백작이 기병 300명을 데리고 정복한 '트리폴리 성'이 있다. 트리폴리 성은 산등성이에 한가롭게 자리한 중세유럽 성과는 다르다. '수르'라고 불리는 재래시장과 시리아 난민촌이 머리를 맞댄 곳에 놓여 있다. 군데군데 갈라진 성벽 틈새마다 솟아난 들풀과 이끼가 지난 세월을 말해준다.

레바논 시돈에 있는 바다성. 십자군은 이슬람에 맞서 수적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바다를 천연 해자로 이용한 바다성을 쌓았다. 900여년 세월 속에서 전쟁과 지진을 견디며 조금씩 무너져내린 바다성 너머로 레바논의 현대적 빌딩들이 보인다.

과거 이 성은 천연의 요새였다. 해발 750m 고지에 있고 옆으로는 강을 끼고 있다. 이중으로 된 성의 정문은 바깥에서 통나무를 이용해 부수기 어렵도록 내외부의 방향이 다르게 나있고, 성벽은 이중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성 밑바닥에는 거대한 빗물 저장 탱크가 있었고, 4층 규모 성채에는 군사들의 숙소는 물론 창고, 마구간, 예배당까지 갖춰져 있다.

레몽은 이 성을 얻는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1년도 넘게 이곳을 함락시키기 위해 매달렸던 그는 강화조약에 서명한 직후 세상을 떠났다. 적군이 쏜 불화살에 불타오르던 본진에서 분투하다가 입은 화상이 악화된 것이다.

트리폴리에서 남쪽으로 40㎞를 내려오면 '페니키아 유적지'로 유명한 비블로스다. 그러나 그 페니키아 유적 위에는 로마, 이슬람, 십자군, 오스만투르크 등 다양한 유적이 층층이 내려앉아 있다.

유럽에서 성지 순례를 나선 이들이 예루살렘을 가장 먼저 바라볼 수 있는‘기쁨의 언덕’. ‘선지자 사무엘’의 가묘와 로마·십자군·이슬람 등 다양한 역사유적이 남아 있다.
비블로스 성은 지진과 전쟁이 많았던 레바논의 다른 유적과 달리 내성(內城)이 그대로 남아있다. 벽에는 수백 년 전의 전투 당시 박힌 쇠공이 천연덕스럽게 녹슬어 가고 있다. 성벽에 올라 해안 쪽을 바라보면 기원전 10세기쯤부터 이어진 레바논 지역의 역사가 펼쳐진다. 해안가로 향하는 들판에 톱니바퀴모양으로 파진 길은 페니키아 시대의 유적이고, 군데군데 흩어진 돌기둥은 로마시대의 유적이라고 한다. 성 주변에는 레바논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으니, 고대와 중세, 현재가 공존하는 바로 그곳인 셈이다. 

비블로스를 지나 베이루트를 거친 뒤, 다시 차로 40㎞를 달리면 ‘시돈 바다성’에 닿는다. 레바논에 있는 십자군 유적은 해안가가 아니면 트리폴리처럼 높은 산지에 있다. 해안은 유럽 쪽에서 오는 해군의 지원을 받기에 유리하고, 산지는 적을 감시하고 방어전을 펼치기에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돈 바다성은 태양이 떠오르면 노란색 사암(沙岩) 성벽이 지중해 푸른 바다 속에서 환하게 빛난다. 거센 파도에 견딜 수 있도록 성벽 곳곳을 로마시대 화강암 기둥으로 보강했지만, 숱한 지진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절반 이상이 파괴됐다. 지금 형체가 온전히 남아있는 곳은 과거 유럽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십자군들이 내륙으로 가기 전 하룻밤을 묵었다는 방 정도다. 900년 전 십자군들이 천장에 난 구멍으로 별을 세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던 곳이다.

나무탑을 만들어 예루살렘 공격에 나선 십자군을 그린 판화. / 문학동네 제공

깔끔하게 단장된 유적지를 원하는 이들에게 레바논은 어쩌면 불친절한 나라다. 이곳은 유적이 세월 속에서 부서지면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진행 중인 트리폴리 성 복원도 최대한 원래의 성벽 벽돌 잔해를 원형대로 쌓아놓기만 하는 수준이다.

그 이유는 베이루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의회가 있는 베이루트 중심가는 1975~90년까지 이어진 내전 당시 폐허로 변했다. 내전 이후 레바논 정부는 총탄과 포탄의 파편으로 옹이가 생긴 건물들을 내부만 고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보기 좋게 만든다고 다 새로 지으면 우리 역사는 어디에 남느냐”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자들의 행렬

레바논 국경과 가까운 이스라엘의 도시 아코는 특이한 도시다.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뒤섞여 거리를 활보한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은데 정작 국경 인근 아코에서는 아랍인과 유대인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듯하다.

예루살렘 성묘교회 안에 있는 예수 무덤. 연중 성지순례자들로 붐빈다.

아코는 살라딘을 중심으로 뭉친 이슬람이 12세기 후반부터 십자군에게 반격을 가하면서 밀려난 십자군들과 병원 기사단(성 요한 기사단)이 한동안 머물렀던 도시다. 이곳에는 십자군이 머물던 당시 사용된 기사의 방과 위생을 위해 만들어 놓은 하수시설, 등대 자리 등이 남아 있다. 성벽 안쪽으로 미로처럼 난 재래시장 길을 돌아다니면 곳곳에서 십자군 요새, 수로 입구 등과 마주친다. 정돈된 유적지라기보다는 재래시장에서 파는 수산물의 비린내와 성의 축축한 이끼 냄새가 정겨운 그런 도시다.

아코를 지나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는 로마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항구로 활용됐던 가이사리아를 지나게 된다. 해안가에 축구장 크기의 로마시대 유적과 13세기 루이 9세가 십자군을 이끌고 와 증축했다는 5m 높이의 해자가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이사리아는 결혼을 앞둔 부부들이 웨딩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예비부부들이 해안가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위엄있게 솟은 로마시대 기둥과 중세 십자군 성채를 배경으로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이사리아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는 ‘나비 사무엘’이라는 언덕이 있다. ‘선지자 사무엘’이라는 뜻으로 사무엘의 가묘가 있는 곳이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기쁨의 언덕’이다. 성지 예루살렘을 찾아 바다와 육지를 지나온 이들은 이곳에 올라야만 비로소 예루살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언덕을 두고 “1099년 6월 7일, 십자군은 마침내 예루살렘이 멀리 보이는 지역에 이르렀다. 갑옷들의 금속음을 내며 제후들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치 교회에 들어선 것처럼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투구를 벗었다”라고 썼다. 십자군 시대 연병장을 뒤로하고 언덕에서 보면 예루살렘 시가지가 부서지는 봄 햇살 속에서 하얗게 빛난다.

‘사각형 탑의 꼭대기에서 한쪽 변이 소리를 내며 성벽 위로 떨어져 내렸다. … 병사들이 한데 뭉쳐 성벽 위로 우르르 들이닥쳤다. 그들 중 누군가가 성문을 열었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모두 열렸고, 그곳으로 십자군 병사들이, 아니 순례자들까지 예루살렘 시내로 밀어닥쳤다. … ‘성도 예루살렘 해방’은 1099년 7월 15일 드디어 성취되었다. 유럽을 뒤로한 지 3년의 세월이 지나 있었다.’(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1’ 중)

십자군을 따라간 여정은 예루살렘 구(舊)시가의 성묘교회에서 끝이 난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던 골고다 언덕과 묘지 위에 세워진 교회다. 1099년 7월 15일 예루살렘을 찾아온 십자군들이 감사기도를 올렸다는 곳이다. 지금도 성지를 찾아온 순례자들의 엎드려 입을 맞추고 있다.

레바논 트리폴리 성 안에 있는 십자군들의 침실.

●여행수첩

◆레바논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UAE 아부다비나 두바이를 경유해 가는데 레바논까지 1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스라엘은 대한항공이 매주 화·목·토요일 인천공항에서 텔아비브로 가는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2시간 정도. 10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돌아오는 비행기도 화·목·토요일 뜬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서로 왕복할 수 없기 때문에 요르단을 거쳐야 한다. 이스라엘 입국 때 여권에 입국도장을 받으면 UAE·사우디아라비아·레바논·시리아 등 일부 중동 국가에는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 입국도장은 여권 대신 별도 종이에 받는 게 좋다.

◆‘팔라펠(falafel)’은 콩을 갈아 크로켓처럼 튀겨낸 중동의 대표적 음식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주머니빵에 양고기·채소 등과 함께 채워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레바논에서는 얇은 빵 속에 쌀과 아몬드, 완두콩, 옥수수 등을 넣고 쪄낸 ‘우지’도 맛이 좋다.

맥주 애호가라면 ‘알마자(Almaza)’와 ‘타이베(Taybeh)’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다이아몬드’라는 뜻의 레바논 맥주 알마자는 담백하다. ‘타이베’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만들어서 해외에선 거의 맛볼 수 없는데,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레바논에선 레바논파운드(L£)와 미국 달러(1달러=1500L£)를 함께 쓸 수 있지만, 이스라엘·요르단에서는 호텔이나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현지 화폐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이 안식일이라서, 유대인이 운영하는 상점이나 공공기관을 이용하기 어렵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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