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2km에 이르는 협곡 사이를 통과한다

페트라, 사해, 아카바, 와디럼….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마다 벅찬 숨을 내쉬었다. 미끈대는 소금바다와 붉은 모래의 감촉, 잿빛 바람에 묻혀 오던 베두인의 체취, 때마다 울려 퍼지던 굴곡진 아잔*소리와 사멸한 도시의 거대한 침묵. 모세의 기적처럼 놀라운 희열이, 요르단 왕국이, 순간마다 스며들었다.

*아잔adhān | 이슬람교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육성

암만 다운타운에서 마주한 예쁜 계단 길, 알고 보니 어느 카페에서 꾸민 것이었다

●요르단을 만난다는 것은

“괜찮겠어?”요르단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한결같았다. 요르단과 페트라Petra를 동의어로 각인시키며 고조된 여행자가 그 염려의 이유를 알아채는 데는 몇 번의 눈 껌뻑일 시간이 필요했다.

중동,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에 자리한 한반도 절반도 되지 않는 작은 땅. 요르단은 왼쪽으로 이스라엘, 위쪽은 시리아, 오른쪽은 이라크, 아래로 사우디아라비아를 국경으로 접하고 있는, 지도만 보더라도 참 난해한 나라다. 페트라를 잠시 제쳐두고, 지난해 IS에 대한 보복으로 군복을 입고서 직접 공습을 진두지휘했던 압둘라2세 요르단 국왕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터키 제국이 몰락한 후 트랜스요르단으로 출발,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입헌군주국이 된 게 1946년. 아무리 아랍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유대관계를 강조하는 중동지역이라 해도 알다시피 경계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 상황은 복잡하다. 

중동 평화협상과 친親서방 아랍 국가들간 탁월한 중재자 역할을 해 온 요르단 또한 인접국으로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피할 길이 없다. 게다가 세 차례의 중동-이스라엘 전쟁 때 요르단으로 이주한 수백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걸프전 때 이라크와 쿠웨이트에서 이주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최근 시리아 난민들까지 합하면 난민의 규모는 엄청나다. 1948년 45만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지금은 약 680만명이다. 그들이 일으키는 변화는 분명 불안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요르단 정부의 포용력으로 양질의 국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은 이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새로 추가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거라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였다는 것 외, 심지어 구약과 신약 시대의 무대라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 이슬람 왕조들과 십자군 시대의 유적들은 차치하고라도 성서에 등장하는 지명 가운데 96곳이 요르단에 있는 데도 말이다. 상상과 실재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여정, 요르단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아찔한 현기증마저 일었다. 

뫼벤픽 리조트에서 바라본 사해. 건너편은 이스라엘 땅이다

사해 주변 바위는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Dead Sea 사해
죽은 바다의 힘

 차는 사해死海를 향해 달렸다. 좌로도 우로도 삭막한 광야다. 광야. 요르단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텅 비고 아득한 들에는 이따금 양떼가 지나가고 유목민의 허름한 텐트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 잡고 있다.

특급 호텔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사해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해수면 아래 400m에 자리한다. 길이 75km, 폭 6~16km. 북부지역은 깊이가 400m에 달하고 남부지역은 5m 정도다. 물이 흘러들기만 하고 빠져나갈 곳 없이 증발되다 보니 염도가 높아 생물이 살 수 없다. 염도가 약 5%인 보통 바다와 달리 사해의 염도는 33%가 넘는다. 대신 많은 유기물이 피부와 신경통에 좋다고 해서 물과 진흙으로 만든 미용 제품은 기념품 일 순위다.

사해는 또한 천연자원의 보고다. 마그네슘과 칼슘염 등 화공 약품과 의약품의 원료로 쓰이는 화학물질이 수억 톤씩 매장돼 있다. 그런 사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언젠가는 그저 소금밭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댐을 건설하고 사해로 유입되는 요단강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라 가이드 압둘라는 말했지만, 어찌 그뿐일까. 온난화로 지표면은 건조해지고 물줄기는 말라 가는 것을.

호텔에 짐을 풀고 해변으로 나갔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 사해는 더할 나위 없다. 부력이 높아 저절로 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뛰어들면 곤란하다. 해변 앞 경고문에는 입수 전 주의사항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얼굴은 담그지 말고, 배영자세로 수영하고, 다이빙 하지 말고, 멀리 나가지 말고…’, 결국 ‘상처가 있으면 들어가지 마라’는 항목에 다다라 입수는 포기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몸을 뒤집은 채 사해를 둥둥 떠다녔다. 손으로 움켜쥔 바닷물은 기름처럼 미끈대고 심하게 끈적인다. 괜한 아쉬움에 돌에 붙은 소금 한 덩이를 떼어내 혀에 대보고는 컥컥대며 내뱉는데, 누군가 입을 헹구라고 민물을 건네준다.

“왜 수영 안하죠? 걱정 말아요. 그냥 뜨는 걸요. 내가 당신을 치유해 줄게요.” 빨간 모자를 쓴 안내요원은 진흙까지 건네며 예수의 기적이라도 행할 것처럼 ‘치유Healing’란 단어를 되풀이했다. 그런 그에게 사해를 보고 흥분해 뛰어오다 무릎이 까졌다는 말까지는, 차마 할 수 없었다. 

요단강가의 세례요한교회. 강물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오지만 지금은 많이 말라 있다. 초기 기독교 당시 세례터로 사용된 곳으로 지금도 교회로부터 연결된 계단으로 내려가 침례의식을 행한다

이스라엘 쪽 세례터에서 한 신자가 침례에 앞서 기도를 하고 있다

맞은편 이스라엘에서 치러지는 세례의식을 요르단 세례터의 여행자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Baptism Site 예수 세례터
요단강 위를 흐르는 것들

요르단에는 성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곳곳에 있다. 중요한 곳 중 하나가 요단강이다. 특히 성지순례를 하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요단강에 들른다.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신약성서의 기록 때문이다. 4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적 생애를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 또 하나의 자연적인 국경을 이루는 요단강은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해 사해로 흘러든다. 251km에 이르는 강의 서쪽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동쪽이 골란고원과 요르단이다. 

요단강 폭은 불과 5m도 되지 않아 보였다. 그 지점을 사이에 두고 요르단과 이스라엘 정부는 각각 세례터를 만들었다. 요르단 쪽 세례터는 ‘알마그타스’, 웨스트뱅크 즉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 세례터는 ‘까스르 엘 야후드’다.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평화협정 전까지 이 일대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요르단이 알마그타스를 개방한 것은 2002년, 이스라엘은 주변의 지뢰를 제거하고 2011년이 되어서야 세례터를 완전히 개방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장소라면 그 강이 다를 리 없을 텐데 유네스코는 지난해 요르단 세례터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부분은 기독교 내부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찌됐든 오늘날 성지순례 코스의 대부분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짜여지는 만큼 순례자 대부분은 이스라엘 세례터로 몰린다. 도착 때에도 건너편에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로 보이는 이들이 연신 강에 온몸을 담그며 세례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반면 요르단 쪽에서는 여행자 몇몇이 제방에 앉아 그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기만 했다. 동쪽인지 서쪽인지 혹은 예수가 요르단의 알마그타스에서 세례를 받았는지, 그에 대한 정확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이천년 전 예수가 요단강에 왔었다는 사실이다.

흙이 씻겨 내려와 누렇게 변한 요단강을 뒤로하는데, 가이드 압둘라가 강물을 손에 적셔 머리에 뿌리며 알 수 없는 아랍어로 기도를 해준다. “나는 무슬림이에요. 하지만 요단강에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것을 보면 이 강물은 분명 성스러운 것이죠.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요단강은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입니다. 당신과 당신 가정에 축복이 있기를!” 

뫼벤픽 리조트에서 바라본 사해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에티하드항공 www.etihad.com, 요르단관광청 www.mota.gov.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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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 요단 강, 죽음과 생명의 액체
 

바다
바다
1 뫼벤픽 리조트&스파 사해의프라이빗 비치. 머드를 두텁게 바르지않고 입수하면 상당한 강도의 쓰라림을경험한다.

팔라펠
팔라펠
2 현지 식재료를 최대한활용해 싱그러운 맛을 내는 마다바의한 레스토랑. 요르단에 머무는 동안먹었던 음식 중 단연 최고다. 팔라펠이특히 훌륭하다.

꽃
3 흐드러지게 핀꽃이 저무는 햇빛을 받아 한층 선명한색을 띈다.

“물은 싹을 눈뜨게 하고 샘을 넘치게 하는 탄생을 뜻한다.” 바슐라르가 쓴 <물의 꿈>의 일부다. 사해, 죽은바다에도 이 문장을 적용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바다도 아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는 고유명사일 뿐. 지형학적으로는 강우량이 적고 건조한 지방에 형성되는 짠물호수, 즉 ‘함수호’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다. 날은 뜨겁고, 물은 증발하고, 1리터당 275그램의 염분이 잔뜩 남아 지금의 상태가 됐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알려진 것과 다르게 어떤 특별한 미생물들은 이 척박한 조건에서도 생명력을 발휘하며 나름의 생태계를 꾸려간다. 몇 해 전, 바닥 어딘가에서는 지하수가 샘솟는 구멍도 발견됐다. 게다가 염도 높은 물이 지닌 마력은 많은 이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다. 퀸알리아국제공항에 막 도착한 여행자들은 대개 표지판 ‘DEAD SEA’가 가리키는 쪽으로 냅다 달린다. 도로는 아래로, 계속 아래로 기운다. 지대가 해수면보다 400미터가량 낮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구상의 최저지대다. 사람들은 이 낮은 땅에서 나는 질 좋은 머드를 두껍게 바르고 유영하며 묵은 여독을 푼다. 기적적인 부력을 이용해 ‘시체놀이’하는 건 덤이다. 그렇게 한낮의 사해는 늘 북적북적하다. 요르단의 서민들이나 배낭여행객들은 공공 해수욕장을 찾지만, 부유하고 나이 지긋한 이들을 비롯해 한껏 안락과 여유를 즐기려는 향락객들은 대부분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를 애용한다. 365일 중에서 330일은 쨍쨍하다는 고운 볕 아래, 까르르 웃고떠드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못내 ‘죽은 바다’라는 이름이 섭섭하게 느껴진다. 어느덧 그림자는 사라지고 ‘사해의 기적’ 놀이도 그만두는 시간, 멀리 이스라엘 땅으로 해가 넘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바라보는 일몰은 어쩐지 더 아득하고 몽롱하게 느껴진다. 약동하는 지구의 맥박이 느껴지는 듯도 하다.이 일대는 구약성서의 주 무대다. ‘성지순례’라는 거창한 명목을 붙이지 않고도 이곳의 고대사를 따라가며 유적을훑는 일은 퍽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베다니Bethany를 빼놓을 수 없다. 로마 교황청에서 공식 지정한 요르단의5대 성지 중 하나로 그 유명한 ‘요단 강Jordan R.’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요단 강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향하던 길이며, 신약에서 세례 요한이 물세례를 거행한 무대이자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성소다. 죄를 씻거나, 속세를 떠나 천국으로 건너가거나,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는 공간적 배경이자 상징으로성경에 자주 등장해왔다. 지리적으로는 레바논의 헤르몬 산에서 발원해 갈릴리 호수를 거쳐 팔레스타인, 사해까지흘러 들어간다. 사해가 죽음의 물이라면, 요단 강은 ‘이’와 ‘저’를 잇는 영험한 물이다.눈여겨봐야 할 것은 세례 터가 요단 강을 사이에 두고 한편은 요르단, 반대편은 이스라엘 영토로 나뉜다는 사실.이쪽의 세례 터는 낡아빠진 목재로 얼기설기 지었는데, 저쪽의 세례 터는 흡사 신전의 위용을 갖췄다는 게 상당한아이러니다. 가이드 압둘라는 일행들의 머리에 물을 튕기면서 아랍어를 읊조렸다. ‘당신을 축복한다’는 뜻이란다.그는 무슬림이지만 기독교에 대한 적의라곤 눈곱만큼도 없고,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그와 마찬가지다.사해의 이웃 도시는 마다바Madaba다. 시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드는 건 보랏빛 꽃망울을 한창 틔운 자카란다 나무다. 온화하고도 향기로운 첫인상. 자국 내에서는 부유한 기독교도들의 소도시이자 유럽 여행객들이 유독 즐겨 찾는 여정지, 그리고 비잔틴 제국과 우마이야 왕조 대에 남긴 모자이크 지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도시의랜드마크인 성 게오르그 성당 바닥 한가운데를 내려다보면 팔레스타인부터 나일 강 권역까지 그려낸 그림을 만난다. 기원전 6세기, 사해에서 요단 강으로 역류하는 물고기와 가젤을 겨누는 사막의 사자, 예리코의 종려나무까지 모자이크 조감도로 섬세하게 표현한 이 지도는 놀랍게도 20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약 3분의 1 정도를 보존하고 있다. 실컷 구경했다면 카페에 앉아 걸음을 쉬어갈 때. 향이 좋은 레몬민트는 요르단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음료로, 절인 레몬청에 민트잎을 잘게 빻아 넣어 만든다. 그 싱그럽고 달큼한 액체의 맛, 혀끝에 생생하다.


해변
해변

4 사해를 마주한 리조트의야외 수영장. 소금물에 입수하는 게두렵다면 이곳에서 유영하며 기분을내도 좋다. 물론 자유자재로 붕 뜨진못한다.
 
 

나귀
나귀

1 페트라에서의 평화로운 풍경.사실, 나귀를 타고 있는 이들은 대개능글맞은 호객꾼이다.
 

지프투어
지프투어

2 와디럼을달리는 지프 투어. 해가 저물기 2시간전에 떠나면 그림보다도 아름다운일몰을 마주할 수 있다.
 

캠프
캠프

3 캡틴스데저트 캠프의 아침 풍경. 오전에는예상 외로 햇살이 뜨겁지 않다.
 

아랍식 웰컴 티
아랍식 웰컴 티

4 와디럼의 기념품 노점에서 만난한 여인. 전통 수공예품을 가지런히정리하는 중이다. 5 지프 투어 중 들른한 천막 카페에서 달콤하고 따뜻한아랍식 웰컴 티를 마셨다.
 

와디럼의 노점상
와디럼의 노점상

4 와디럼의 기념품 노점에서 만난한 여인. 전통 수공예품을 가지런히정리하는 중이다. 


2페트라 & 와디럼, 모래바람이 이끄는 대로

데저트 하이웨이Desert Highway를 타고 남하한다. 가도 가도 낙타, 광야, 다시 낙타와 광야만으로 이뤄진 디오라마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하릴없이 사막 여행의 주제가를 꺼내 듣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이어진 사막 길, 아마 네가 있는 곳보다는 나은 곳이겠지.…” 제베타 스틸의 먹먹한 음성을 듣고 있자니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고, 종착지도 정해져 있으면서. 다만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이어진 사막길’이라는 표현만은 맞는지도 모른다. 이 길 끝에 이르면, 어디에도 없는 장밋빛 도시 페트라Petra가 모습을 드러낼 테니. 황량한 사막을 당대의 첨단도시로 탈바꿈한 건 나바테안왕국의 빛나는 문명이다. 향료 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이들은 홍해와 지중해를 건너며 이곳을 거점 삼았다. 결국 기원전 6세기, 수도인 페트라를 이 자리에 건설했는데 이후 로마 제국이 왕국을 집어삼키면서도 개발을 계속이어갔던 것이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한동안은 대지진으로 흙 속에 묻혀 있었다가 19세기 들어서야 스위스 출신의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재발견됐고, 2007년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올랐다. 그 사이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에 등장해 위용을 떨치기도 했다. 페트라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한 이들은 거대한 사원 알 카즈네Al Khasneh만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막상 가서 보면 입구부터 알 마드바흐, 왕실의 무덤, 목욕탕, 원형극장, 외곽의 알 데이라 사원까지 아우르는 광활한 규모를 지녔다. 아마 다 둘러보려면 꼬박 이틀은 족히 걸릴것이다. 낙타 위에 올라 편안하게 곳곳을 누비고 싶다면 기꺼이 호객에 응해도 좋지만, 헥헥거리면서도 협곡 통행로인 시크As-Siq를 따라 두 발을 놀리는 것이야말로 페트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여행법이다.유네스코의 활동가들이 우회로를 만들어놓고 시크의 일부를 재건하는 모습은 이곳에서 목도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인데, 걷지 않았다면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만약 뙤약볕을 피해 쉬려거든 어느 건물에나 들어가면 그만이다.빌라든, 무덤이든, 사원이든, 어디나 곱디곱게 비어 있다. 잠자코 뒤통수를 누인 채 ‘텅 빈 자리’에 대해 생각한다.이곳의 빈자리는 공허감보다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무’의 상태다.다시 데저트 하이웨이다. 아래로, 좀 더 아래로 향한다. 유목민들의 땅, 와디럼Wadi Rum으로 간다. 이곳의 주인은베두인이다. 베두인이란 도시 바깥에 사는 이들을 지칭하는 아랍어 ‘바드우’에서 유래한 말로 사막에 사는 아랍계유목민을 뜻한다. ‘아랍’이라는 단어 자체가 베두인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흘러나왔다는 설도 있다. 와디럼의 한캠프에 여장을 푼 뒤 잘생긴 베두인 가이드 청년을 따라 지프 선셋 투어에 나섰다. “넌 언제부터 여기서 일했니?”앳된 얼굴을 보고 물었더니 “일한 적 없어. 여기 살 뿐이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영어가 익숙지 않은 두 사람의 대화는 직관적이고 집약적으로 흘러간다. 우문에 현답이란 이런 걸까. “배고파.” “차를 마시자.” 달고 향긋한 민트티를 쉼 없이 따라준다. 이곳에서의 민트 티란 수분과 당을 함께 보충해주는 약물이다. “맛있네. 어떻게 만들어?”“응, 립톤 티에 설탕을 녹이고 애플민트를 넣어.” 이렇게 단순하고 속세적인 레시피였다니, 웃음이 픽 새어 나온다.아라비아의 통일에 공을 세웠다던 그 유명한 영국 장교 ‘로렌스’가 살았다는 집, 나바테안들이 그린 암각화, 그리고온갖 기암괴석들을 다 둘러본 뒤에 지프가 마지막 당도한 곳은 해넘이를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탁 트인 절벽앞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한 자리씩 차지한다. 누군가는 셀피를 촬영하고, 누군가는 연인의 어깨에 볼을 비비며 해가 떨어지는 광경을 본다. 새빨간 하늘과 새빨간 땅이 로스코의 그림처럼 스며드는 순간, 긴장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마침 모래바람도 불어온다. 그리고 어느덧 밤. 광공해 없는 새카만 하늘엔 달이 해 노릇을 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형형한 달빛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궤적이 훤히 보일 정도다. 다만 이 밤의 끝자락은 어디인지 보이질 않는다. 영원히 붙들고 싶었는데.



<2016년 7월호>


이스라엘. 아시아 대륙인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경상도 크기의 나라, 하지만 세계적인 기술대국으로 첨단기술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라, 예수의 탄생으로 알려진 나라다. 성서 속 수천 년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곳이며, 매년 수백만 명의 성지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聖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종교의 영향력은 대중의 삶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있기에, 여행지를 방문하기 전 그들의 종교를 살피고 갈 수 있다면 더욱 내밀한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볼 수 있을 것이다.


끊이지 않는 전쟁, 고난과 역경의 역사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는 남부 지역의 유명 관광지 쿰란(Qumran)과 마사다(Masada) 그리고 사해로의 여행은 그곳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을 감동 속에 느끼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세계 4대 문명 중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와 접해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가 바로 그러하듯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패권을 가진 자에 종속될 수밖에 없던 패자였기에 고난과 역경의 역사의 흔적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스라엘 남부의 유명 관광지 쿰란 유적

쿰란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이스라엘의 65개 국립공원 중 하나다. BC 1세기에 당시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는 영적 순수를 추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에서 집단생활을 했는데, A.D.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당시 이곳 역시 파괴되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들이 죽기 전 절벽의 동굴에 숨겨 놓았던 고대 성경 사본은 사해문서(the Dead Sea Scrolls)이라 불리며 가장 오래된 성서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사해문서가 2천 년 세월을 고스란히 견디어 낸 것은 바로 건조한 날씨 덕분이라 한다.

쿰란 지역에서는 에세네파들의 2천 년 전 삶의 현장을 유적지에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성서사본을 복사하는 방, 주민들이 대추열매를 말리는 보도, 도예가의 작업장, 휴게실 및 정화 의식용 욕조 등은 당시의 생활을 짐작케 한다.

헤로데스의 야망과 최후, 마사다 요새

쿰란에서 남쪽으로 32킬로미터를 내려가면 다윗사울을 살려 주었다는 엔게디 국립공원(ein Gedi)을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다시 18킬로미터를 더 가면 유명한 관광지 마사다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흥미롭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마사다에서는 인내와 힘, 신앙과 굴복 그리고 야망과 비극적 종말의 순간을 생생히 그려 볼 수 있다. 이곳은 이스라엘 군인과 학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선조들의 용기와 신념을 담아가곤 한다.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은 마사다

마사다(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는 기원전 40년부터 기원전 30년 사이에 뛰어난 건축가이기도 했던 헤로데스(헤롯왕)에 의해 별장 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피난처로 지어졌다고 한다. 사해에서 멀지 않은 곳의 고도 410미터 산은 평지에서 솟아올라 상당한 높이이며, 정면은 깎아지른 직벽이고 정상에는 길이 600미터, 너비 320미터의 평탄한 지대가 천여 명의 군사를 수용할 수 있으니 가히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은 이곳에서 몇 년이고 살 수 있도록 빗물을 받아 저장할 수 있는 물 저장탱크와 곡물창고, 병기고를 만들었으며 호화스러운 궁전을 지었지만 일생 사용할 기회는 없었다 한다.

B.C. 68년 로마에 대항한 대반란이 시작되었을 때 마사다는 열심당파가 차지했고, 결국 그들은 이 요새에서 최후를 맞는다. 72년에 로마의 장군 플라비우스 실바가 마사다를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하였으나, 난공불락의 요새를 어찌해 볼 도리 없이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다. 로마군은 궁리 끝에 마침내 요새의 뒤쪽, 서쪽 능선의 경사로를 흙과 돌 그리고 나무로 쌓아 올려 마침내 요새와 같은 높이에 이르렀다. A.D 73년, 마사다의 꼭대기에서 저항하던 960명의 열심당은 포로가 되어 굴욕을 당하느니 자결을 선택하기로 하고 동이 트기 전에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를 택한 이들의 영웅담과 최정예 로마군을 맞아 두려움 없이 맞서 싸운 무용담은 우연히 살아남은 노파와 두 여자아이의 입으로 후세에 전해졌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마사다의 전면

유적지는 기후와 지역 특성상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정교한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다. 유적지 중 으뜸은 아래 협곡을 내다볼 수 있는 세 개의 바위 테라스 위에 지어진 헤로데스의 북쪽 궁전이다. 궁전 가까운 곳에는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과 벽화로 장식된 벽들이 있는 거대한 로마 스타일의 욕실이 있으며, 이외에도 유대교 세례욕실, 저장실, 전망탑, 그리고 마사다 역사와 관련된 예배당 같은 많은 건축물과 저장실, 채색된 도자기, 동전들과 같은 공예품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상에서 로마군이 진을 쳤다는 곳과 흙과 돌, 나무로 돋우었다는 서쪽 경사로를 바라보면, 2천 년 전 전투의 함성, 절망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서로를 독려하는 결기 가득한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해, 죽음의 바다가 아닌 생(生)의 바다

유입량의 감소로 사해의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쿰란 엔게디를 거쳐 마사다로 오는 동안 옥빛 호수가 도로 왼편으로 함께 하니 이 호수가 바로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사해(Dead Sea)다.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 해발 -418미터에 위치한 사해는 북쪽 요르단강에서 물이 유입되지만 아래쪽에 유출구는 없다(해마다 조금씩 낮아진다). 사해 지역의 건조한 기후로 흘러들어오는 수량과 같은 양의 수분이 동시에 증발되어 염분농도는 최고 리터당 340그램에 이른다. 이 때문에 호수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으며 사해(死海)라는 이름도 여기서 기인한다.

사해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헬스 스파”로도 불리는데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검은 사해 진흙과 미네랄 온천수 그리고 사해 소금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는다. 사해 진흙과 온천수는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또한 건조한 사막 기후 덕에 오염되지 않고 꽃가루가 없는 맑은 공기는 산소와 브롬 및 마그네슘이 풍부하여 천식과 폐, 심장질환에 좋고, 일 년 내 비추는 강렬한 태양은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대표적 휴양 요양지역이다.

사해 주변에는 국제규모의 호텔과 리조트가 즐비하고 관광기반 시설이 훌륭하게 조성돼있다. 사람 몸이 뜨는 것으로 유명한 사해에서는 직접 체험 외에도 유대광야의 사막투어, 낙타투어, 지프 투어, 베두인 체험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

사해에서는 몸이 뜨는 현상을 즐길 수 있다.

사해 머드 체험,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쿰란, 마사다, 사해 여행은 순례자가 아닐지라도 너무나 감동적이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것이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서 느끼는 끊임없는 흥분과 긴장감으로 짧지 않은 여정이 일순 끝난 듯하다. 이곳을 다시 찾을 즈음에는 투쟁과 대립의 역사가 화해와 평화의 역사로 바뀌어 더욱 아름다운 땅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가는 길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공항까지 직항노선으로 대한항공이 주3회 운항하고 있다. 국영 이스라엘항공인 엘알과 터키항공, 우즈벡항공, 네덜란드항공은 북경, 타슈켄트, 암스텔담을 경유지로 운항하고 있다. 직항의 경우 11시간정도 소요된다.

숙박

숙박은 호텔리조트 키부츠 외에도 아주 저렴한 호스텔도 이용 가능하다. 관광예약은 숙박 호텔의 프런트에서 가능하며, 예루살렘에서 버스를 직접 이용할 경우 센트럴 버스터미널을 이용하면 된다. 왕복권을 끊는 것이 좋다. 당일 관광도 좋지만 사해에서 1박 정도를 하는 것이 여행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다.

여행 팁

이스라엘 여행에 있어 유의할 점은 출국 시 체류 기간 동안의 활동에 대하여 상당히 까다로운 일대일문답을 출입국관리 직원과 가져야 한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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