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증류소 투어

하늘과 바람과 흙과 별이 아름다워서 애달픈 스코틀랜드의 풍광.
하늘과 바람과 흙과 별이 아름다워서 애달픈 스코틀랜드의 풍광. 우물에서 길어 올린 샘물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스페이사이드를 도는 바람은 묵직하다.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위스키는 아쿠아 비테(Aqua Vitae·생명의 물)였다./페르노리카 코리아 제공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공항. 비행기 탑승구를 빠져나오자 눈길 닿는 곳마다 스카치위스키 광고판이 넘실댄다.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큰 위스키 생산지구나.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입술을 달싹인다. 차로 4시간을 달려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 스페이 강이 빠르게 흐르는 넓고 비옥한 땅에 선다. 차고 축축한 비바람이 뺨을 때릴 줄 알았는데 웬걸, 위스키를 물들인 것처럼 금빛으로 바스락거리는 햇살이 대지를 어루만진다. "1년에 1주일 볼까 말까 한 축복받은 날씨"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이언 로건(Logan·46) 시바스 브라더스 국제 홍보대사. 완만하게 굴곡진 잔디 위로 양떼가 풀을 뜯는데, 멀리서 보면 텔레토비 동산에 복슬복슬한 새끼 양 인형이 찰싹 달라붙은 것 같다.

그 언덕 위에 '더 글렌리벳' 증류소가 서 있다. 아일랜드계 게일어로 글렌리벳은 리벳 강이 흐르는 계곡(glen)이란 뜻. 1824년 이곳에서 최초로 사업자 등록을 딴 이후 전통 방식 그대로 질 좋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생산해내고 있는 단 하나의 글렌리벳 증류소다.

싱글몰트는 하나의 증류소에서 100% 발아한 보리만 끓인 원액을 오랜 시간 숙성시킨 위스키. 스페이사이드에서 만들어지는 위스키는 말린 사과나 바나나처럼 달콤한 풍미를 내지만 이곳 위스키는 유독 진한 과일 향을 풍긴다. 바람, 꽃, 강물, 공기가 한 병에 모여 있다.

증류소 내부에 발을 들인다. 금속 용기 안에서 매시 턴(mash tun) 작업이 한창이다. 보리를 싹 틔워 곱게 빻은 뒤 설탕과 뜨거운 물을 부어 단맛을 끌어낸다.

엿기름과 똑같아진 원액은 60만L들이 발효통 16개에 나뉘어 옮겨져 부글부글 부풀어오른다. 효모균을 넣고 56시간 발효해 알코올 성분을 일으키는 워시 백(wash back) 과정이다. 내친김에 발효통 뚜껑을 열고 그 속에 코를 박아본다. 어이쿠! 알코올과 함께 뭉글뭉글 피어오른 이산화탄소가 코를 찌른다. 깜짝 놀라 뒤로 풀쩍 내빼니 웃음소리가 한가득이다.

스코틀랜드 증류소 투어
(왼쪽)완벽한 균형감으로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발렌타인./페르노리카 코리아 제공 /발렌타인의 다섯 번째 '마스터 블렌더(Master Blender)' 샌디 히슬롭. /더 글렌리벳 증류소의 구리 증류기. / 페르노리카 코리아 제공

알코올을 구리 증류기에 넣고 6시간 동안 펄펄 끓인다. 구리는 불순물을 걸러낸다. 대개는 피트(완전히 탄화하지 못한 석탄)로 불을 때지만 여기선 뜨거운 물로 열을 낸다.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덩달아 후끈해진다. 증류기에는 파이프가 천장을 향해 세로로 솟아있는데, 먼저 나오는 알코올(머리)과 마지막에 나오는 알코올(꼬리)은 과감히 흘려버린다. 몸에 해롭거나 맛이 거칠기 때문. 증류 중간에 나오는 순수 알코올(몸통)만 속속 잡아내 오크통에 담는다. 이 과정을 두 번 거친다. 이제 남은 건 인고(忍苦)의 시간이다.

싱글몰트의 맛과 색은 오크통이 정한다. 더 글렌리벳은 미국서 들여온 버번 오크통과 셰리 오크통을 쓴다. 버번과 셰리가 몸담았던 '중고' 오크통에 싱글몰트 원액을 담아 그 풍미를 더하는 셈이다. 버번 오크통서 나온 싱글몰트는 밝은 호박색에 버터 맛, 셰리 오크통을 빌려 쓴 건 색이 좀 더 짙고 톡 쏘는 과일 맛이 난다.

증류된 싱글몰트 원액은 오크통에 들어가기 전 '마스터 디스틸러(Master Distiller)'인 알란 윈체스터(Winchester)의 섬세한 판단에 따라 얼마나 오래 숙성할지 결정된다. 처음부터 원액 본연의 생김새를 따져 연산을 정하므로 12년산을 오크통에 6년 더 넣어둔다고 해서 18년산이 되는 건 아니라고. 스카치위스키는 기다림의 미학이 녹아있는 술. "오늘 내가 채우는 오크통을 길게는 몇십 년 후 누군가가 열어볼 거라 생각하며 일한다"는 윈체스터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하나의 악기로 관객을 휘어잡는 독주가 싱글몰트라면 수십 개 악기가 한데 모여 함께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 합주는 블렌디드 위스키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싱글몰트(보리) 스카치위스키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싱글 그레인(쌀·밀·옥수수) 위스키를 블렌딩(blending)해서 만드니까.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회식 자리에서 병맥주와 마구 휘저어 부어라, 마셔라 하는 바로 그 '발렌타인'이다. 무려 44개의 싱글몰트가 들어간다.

글렌리벳에서 북쪽으로 2시간을 더 달려 닿은 곳은 발렌타인의 가장 중요한 몰트 중 하나를 생산하는 글렌버기 증류소. 6개의 구리 증류기는 보리와 물을 섞어 끓이면서 열기를 내뿜고, 반대편 스테인리스 보관 용기엔 숙성 단계를 밟는 발렌타인 원액이 가득하다. 한국인이 발렌타인을 좋아하는 까닭은 버번 오크통을 쓰기 때문에 달고 크림감이 풍부해서. 무엇보다 세계에서 1초에 2병씩 팔릴 만큼 우아하고 균형 잡힌 부드러움이 핵심이다.

여기까지 와서 시음을 빼먹을 순 없다. 입을 살짝 벌리고 21년산이 내뿜는 체리 향을 깊이 빨아들인다. 비단처럼 혀를 감싸는 황금 물결이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3년 이상 숙성,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을 지키지 못하면 스카치위스키가 아니다. 취기가 올라 콧노래를 부르며 몰캉몰캉한 잔디를 밟는데 증류소 건물과 돌담, 나뭇가지가 온통 거뭇거뭇하다. 발효 과정에서 생긴 박테리아가 숯처럼 달라붙어서다. 숨을 크게 들이쉰다. 잡념을 비워내고 경쾌한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술 익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여행수첩

어떻게 갈까 
스코틀랜드까지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에든버러나 애버딘까지 국내선을 타야된다.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 애버딘 공항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더 글렌리벳 증류소(Glenlivet, Ballindalloch, Banffshire, AB37 9DB)가 있다. 문의 +44(0) 1340 821 720

어떻게 볼까 유명 위스키 증류소는 100곳이 넘고 견학과 시음을 곁들인 투어 코스가 있다. 숙식을 겸한 패키지도 있다. 스카치 위스키 협회 홈페이지(www.scotch-whisky.org.uk) 참조.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 관람·시음
"미네랄 풍부한 토양, 기름진 민스트럴 보리, 증류 원액 맑은 암반수, 증류기 재료가 될 구리…
이 네 가지가 어울려 좋은 위스키 만듭니다"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은 숲과 언덕을 따라 유서깊은 위스키 증류소와 고성(古城)들이 들어선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이다. 대표적 관광명소인 발린달로크 성. / 정지섭 기자

푸른 숲 끝으로 황금빛 단풍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두툼하고 붉은 털옷을 입은 스코틀랜드 특산종 하이랜드 소(Highland Cow)가 풀을 뜯는 잔디밭은 햇살에 반짝였다.

드문드문 서 있는 건물들은 서양 동화집에서 나온 것처럼 뾰족한 세모 지붕이다. 누군가 일깨워주기 전까진 여기가 '술 만드는 곳'이라는 걸 쉽게 눈치 못 챌 것 같다.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1시간 30분을 날아와 도착한 스코틀랜드 애버딘. 다시 공항에서 차로 1시간 30분가량을 달려 도착한 맥캘란(Macallan) 위스키 증류소의 늦가을 풍경이다.

물과 흙, 보리, 구리가 빚은 위스키

햇살이 갑자기 숨더니 차가운 빗줄기가 쏟아졌다. "진정한 스코틀랜드 날씨"라며 데이비드 콕스 맥캘란 총괄 디렉터가 껄껄 웃었다. 맥캘란 위스키 증류소 관람·시음 투어는 빗속에서 첫 걸음을 뗐다.

술 공장이니 술 구경부터 할 줄 알았는데,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어 유유히 흐르는 스페이(Spey)강가로 갔다. 강줄기를 끼고 있는 스코틀랜드 동부지역을 스페이사이드(Speyside)라고 일컫는다.

콕스씨가 말했다. "넷이 어우러져 위스키가 됩니다. 미네랄이 풍부한 흙, 여기서 잘 자라는 기름기 풍부한 민스트럴 보리, 증류 원액으로 쓰일 맑은 암반수… 스페이강과 땅의 선물이죠. 여기에 증류기의 재료가 될 훌륭한 구리가 더해져요."

1824년 문을 연 이곳은 맥캘란의 유일한 증류소다. 싱글몰트라고 불리는, 단일 증류소에서만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180여년 고집해왔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소 100여곳 중 50여곳이 '물 좋고 흙 좋다'는 스페이사이드에 몰려 있다.

강가를 등지고 180여년의 비밀이 전수되는 곳, 증류 공장으로 갔다. 거대한 돔처럼 생긴 금속 용기 앞에서 매시턴(mashturn) 작업이 한창이었다. 보리의 싹을 틔워 곱게 빻은 뒤 뜨거운 물을 부어 당분을 최대한 뽑아내 단맛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매쉬턴을 마친 원액은 지름 4m 짜리 3만L들이 통으로 나뉘어 옮겨졌고, 통마다 부글부글 끓어 거품을 냈다. 효모를 넣고 발효시켜 알코올 성분을 일으키는 워시백(washback) 과정이다.

그렇게 '물'은 '술'이 돼 거꾸로 세운 나팔처럼 생긴 증류기로 들어가 다시 펄펄 끓여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따끈한 새내기 위스키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60년 넘도록 참나무통에서 긴 잠을 잔다.

관광객들이 맥캘란 위스키 증류소를 둘러보고 있다. / 정지섭 기자
스페인산(産) 참나무통에서 무르익는다

증류장이 정적이라면 숙성장은 동적이었다. 아름드리 굵기에 사람 키만 한 참나무통에 호스로 위스키 원액을 주입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참나무통 저장고는 맛과 향을 마지막으로 책임지는 곳이다. 앞 단계까지는 스코틀랜드 안에서 자급자족했지만, 숙성 과정만큼은 '외세'가 개입됐다. 숙성을 책임질 참나무는 모두 스페인 발렌시아산이다. 깊고 그윽한 맛과 향을 간직하기에 그만한 게 없다고 한다.

고즈넉한 고성과 시골철길 볼거리

증류소 말고도 스페이사이드의 볼거리가 있으니 숲과 언덕 사이로 꼭꼭 숨어 있는 작고 아담한 성(castle). 그 중 한 곳인 발린달로크(Ballindalloch)성으로 가는 길은 빼어난 드라이브길이었다.

언덕진 초원을 따라 달리다 스친 곳은 대장간이 있다는 읍내 더프타운.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단선 철길과 간이역을 만났다. 이 시골 철길의 애칭은 '위스키 라인(Whiskey Line)'이다. 성탄절 등 연휴시즌에만 간간이 운행된다.

저녁 무렵 발린달로크성에 도착했다. 16세기에 지어져 줄곧 한 가문(맥퍼슨-그랜트·Macpherson-Grant)이 살아온 곳이라 했다. 응접실, 주방, 식당에 초라한 하녀 방까지 온전히 보존돼 있다.

여·행·수·첩

어떻게 가나

애버딘까지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런던에서 영국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히스로공항 5번 터미널에서 애버딘행 국내선이 하루 4~6차례 운항된다. 운행 시간은 1시간 30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