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투(Tartu)는 규모나 인구적으로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로, 수도 탈린(Tallinn)과 함께 여러 가지 중요한 국가 기능을 함께 나누어 수행하고 있는 도시이다. 에스토니아는 물론이거니와 북유럽 전체에서도 최고(最古)의 대학교 중 하나인 타르투 대학교가 위치해 있는 데다가, 교육부, 최고법원, 국가기록원 등을 비롯해 에스토니아 과학단지 등 여러 가지 중요 기관들이 바로 이 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인구수는 고작 10만 명에 불과한 타르투는, 여느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과 비교하면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10만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에스토니아 전체의 인구가 130만에 불과하고, 그 중 3분의 1인 40만 명이 수도 탈린에 거주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타르투 시청광장의 모습. <사진: 타르투 관광청>

타르투는 엄밀히 말해서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타르투라는 도시명칭이 등장한 최초의 기록이 1030년에 나타나기 때문인데, 이는 탈린보다 200년이나 앞선다. 이외에도 타르투는 탈린이 갖지 못한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1583년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국에 의해 잠시 지배를 받았던 일과 1219년 덴마크가 탈린 건설을 시작했을 당시 타르투는 남쪽 라트비아와 함께 독일 지배 하에 있었다는 점이다. 1583년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국을 다스리고 있던 폴란드 국왕 스테판 바토리는 이 도시에 현재 타르투 대학교의 전신이 될 예수교 학교를 설립하고, 폴란드에서 국기로 사용되는 백적(白赤)기를 타르투 시에 공식으로 하사하게 된다. 폴란드의 지배는 17세기 초 스웨덴이 에스토니아를 차지하게 되면서 종식되어 불과 몇십 년 지속되지 못했으나, 폴란드 공화국의 국기가 여전히 타르투 시기(市旗)의 배경으로 사용될 만큼 그 영향은 대단하다.

타르투 대학교의 건설을 명한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 동상. <사진: 타르투 관광청>

타르투의 심장이자 에스토니아 문화, 역사의 중심지인 타르투 대학교의 겨울 야경. <사진: 타르투 관광청>

무엇보다 타르투가 자랑하는 것은 1632년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에 의해 건설된 타르투 대학교이다. 초기에는 인근 지역의 독일 귀족의 자제들만 수학할 수 있었으나, 19세기 제정 러시아에 의해 농노제도가 철회되고 에스토니아인들에게도 입학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면서 타르투 대학교는 에스토니아의 지성과 문화운동을 이끄는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게다가 이웃 나라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대학교가 1832년부터 1919년까지 폐교된 이후, 발트 연안의 유일한 대학교가 되어 현재 발트3국의 문화적 역사적 기틀을 만든 이들을 많이 배출하면서 에스토니아를 넘어 발트3국 전체의 민족운동을 이끈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이곳 타르투를 북방의 아테네라고 불러마지 않는다.


이런 배경에서 타르투에서는 에스토니아 최초의 근대식 대극장인 ‘바네무이네(Vanemuine ) 대극장’이 건설되었으며, 최초의 학술인 모임, 최초의 예술인 협회 등이 생겼다. 1869년에는 에스토니아의 대표적인 문화브랜드인 ‘노래대전’이 시작되어 발트3국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런 이유들을 비추어 볼 때 타르투 시민들은 탈린에 대해 적지 않은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듯하다. 그동안 국제공항을 제외하고는 수도에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하던 타르투 시민들은 타르투 공항에서 2009년부터 스웨덴 스톡홀름과 라트비아 리가로의 취항을 시작하자, 그 자괴감도 누그러뜨리고 진정한 국제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타르투의 시가지 풍경. 에마 강의 아늑한 풍경은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사진: 타르투 관광청>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구시청사 건물은 현재까지도 공식 시청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 타르투 관광청>

탈린과 비교하여 타르투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은 단지 문화적이나 역사적인 배경뿐 아니라, 도시 한가운데에 흐르고 있는 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라는 의미의 ‘에마 강’(에스토니아어로 Emajõgi, 에마외기 강)이라 불리는 이 물줄기는 에스토니아의 민족시인인 리디아 코이둘라(Lydia Koidula)의 시에 한 많은 에스토니아 민중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같은 존재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타르투의 볼거리

타르투는 한국인들이 그리 많이 찾는 여행지는 아니지만, 인근 지역에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고 국제회의 등이 수시로 열려서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값이나 숙박비용은 탈린 못지않다.

타르투에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가장 끄는 것은 18세기에 지어진 타르투 시청과 시청광장이다. 전체적으로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이 건물은 현재도 공식 시청 건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자갈돌 사이사이로 알록달록한 빛깔의 조명이 설치되어 밤이 되면 환상적인 야경을 만들어내는 광장은 노천카페와 식당으로 즐비하다. 타르투 거주 인구 중 10분의 1이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타르투 노천광장은 젊음과 햇살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이런 타르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시청광장 한가운데 놓인 ‘키스하는 학생(Suudlevad tudengid)’동상이다. 1998년 제막되어 대학도시라는 강한 인상을 남겨주는 이 동상은 주변의 분수와 어우러져 가장 타르투다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명소이다.

키스하는 학생상이 없는 타르투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사진: 타르투 관광청>

타르투 대학교가 배출한 세계 최고의 석학 중 하나인 기호학자 유리 로트만 기념 분수. 타르투 대학교 도서관 앞에 설치되어있다. <사진: 타르투 관광청>

시청 뒤편에 자리 잡은 그리스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건물은 바로 타르투 대학교 본관이다. 강의가 열리는 강의동은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으나 대학교의 가장 중요한 기관들은 바로 이곳에 집결되어 있다. 대학교를 보고 섰을 때 왼편에 보이는 건물 옆면에는 현재 타르투 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스토니아 대표 지성인들의 얼굴로 장식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에스토니아 문화의 대표인물들을 제외하고도 1909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빌헬름 오스트발트 (Wilhelm Ostwald), 천문학의 대가 슈트루베 (Struve), 기호학의 아버지 유리 로트만 (Yuri Lotman), 발생학의 아버지 카를 베어(Karl Ernst von Baer) 등 세계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엄청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이 학교를 거쳐 갔다.

중세 대학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타르투 대학교 맨 꼭대기에는 과거 학생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대학감옥이 위치해 있다. 화재 이후 상당 부분이 훼손되긴 했지만, 중세시절 여러 가지 이유로 수감(?)되었던 학생들이 남겨놓은 낙서들을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대학감옥에 입장하려면 대학교 본관 내 정보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한때 발트3국 최대의 규모였으나 지금은 폐허로 남은 대성당. 한쪽 면에는 타르투 대학교 역사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 타르투 관광청>

7월에 열리는, 중세시절 생활을 재현하는 한자(Hansa)축제는 언제나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사진: 서진석>

탈린에 톰페아 언덕(Toompea Hill)이 있다면 타르투에는 토메매기(Toomemägi)라는 언덕이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그 위에는 타르투 대학교와 관련된 여러 위인들의 동상과 기념비들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때 발트3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으로 알려진 타르투 대성당(Tartu Cathedral) 건물이다. 12세기에 완성된 이래 수백 년에 걸친 전쟁의 결과로 끝내 폐허가 되어버린 이 대성당은 한쪽 부분만이 복원되어 현재 타르투 대학교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천사의 다리 <사진: 서진석>

악마의 다리 <사진: 서진석>

타르투 대성당 주변으로는 인상적인 교각이 두 개 남아 있는데, ‘천사의 다리(Inglisild)’와 ‘악마의 다리(kuradisild)’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 있다. 천사의 다리는 주변 공원의 모습이 ‘영국식’이라는 의미로 ‘영국식 다리’로 이름이 붙여졌으나, 에스토니아어로 영국이라는 단어와 천사라는 단어의 음가(音價)가 비슷하여 자연스럽게 ‘천사의 다리(Inglisild)’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천사의 다리에 서서 대성당 쪽을 보았을 때 보이는 회색톤의 석조교각은 ‘악마의 다리’이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정확히 남아 있는 기록이 없으나, 이 다리가 만들어질 당시 제정러시아의 지배가 시작되었다는 설, 다리를 설계한 독일인 성(姓)의 의미가 ‘악마’라는 설, 여러 가지가 있으나, 아무래도 마주 보고 서 있는 ‘천사의 다리’를 의식해서 만들었다는 설이 더 힘을 얻고 있다.

타르투 출신의 문학가 에두아르드 빌데(Eduard Wilde)와 아일랜드의 오스카 와일드(Oskar Wilde)의 동상. <사진: 타르투 관광청>

윌로 으운이 제작한 ‘아빠와 아들’ 동상. 작가와 아들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냈다. 아빠와 키가 똑같은 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서진석>

타르투 시내의 또 다른 볼거리는 거리 곳곳에 술래잡기하듯 숨어있는 다양한 조각상과 벽화들이다. 위에 설명한 ‘키스하는 학생상’도 유명하지만 윌로 으운(Ülo Õun)이 제작한 ‘아빠와 아들’, 그리고 타르투에서 가장 명성이 자자한 아일랜드 펍인 ‘빌데(Wilde) 펍’ 아래 만들어진 ‘에두아르드 빌데(Eduard Wilde)’와 ‘오스카 와일드(Oskar Wilde)'동상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이 두 작가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단지 성의 철자가 같다는 이유로 이곳에 마주 앉아 있다. 이 동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고향인 아일랜드 골웨이에도 조성되어 있다.

대학교 주변으로 펼쳐져 있는 아기자기한 가게와 갤러리들, 여름이면 매일 펼쳐지는 다양한 축제 등을 제대로 즐기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도시에 머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는 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스웨덴스톡홀름에서 직항로가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서울에서 연결은 그다지 쉽지 않다. 수도 탈린에서 수시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면 2시간 반이면 타르투에 도달한다. 그 외 유로라인( Euroline)이나 에코라인(Ecoline) 등 유럽 국제버스를 이용하면 유럽 대도시에서 연결이 아주 수월하며, 리가에서는 버스로 대략 4시간 반이 걸린다. 철도는 탈린과 몇몇 지방도시를 연결하는 노선이 있을 뿐, 국제노선은 전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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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호수위에 한 폭의 그림처럼 서있는 '트라카이 성' 전경

발트해를 껴안은 곳. 흔히 발트 3국으로 일컫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여행 좀 해봤다는 여행객들에게도 아직 낯선 곳이다. 직항편이 없어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닿기는 힘들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면 그 어떤 유럽여행보다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중 리투아니아는 고즈넉한 풍광이 여행객들을 매료시키는 곳. 마치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 낭만적인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 고즈넉한 풍광, 우아한 도심…빌뉴스 

러시아 북서부에 자리한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면적이 크다. 또한 가장 낙후된 곳이기도 하나 그만큼 고즈넉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발트 3국의 수도 중 유일하게 바다와 면하지 않은 수도이기도 하다. 이곳의 옛 명칭은 빌나, 영어로 빌니우스라고도 불린다.12세기부터 역사가 시작된 이곳은 이후 다양한 민족이 모여 국제도시로 성장했으며 발트 3국 중 가장 중요한 금융도시로 번성했다. 

빌뉴스는 그야말로 중세도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빌뉴스 역사지구는 3.6㎢ 규모에 1500여 개의 건축물이 모여 있어 천천히 둘러보며 여행하기 좋다.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중세 건축물들과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힌 도심 풍광, 차분한 분위기가 한데 어우러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곳에 위치한 대표적인 중세 건축물로는 700년간 리투아니아인들의 신앙적 중심지였던 빌뉴스 대성당, 1051년 지어진 최고의 고딕양식 건축물 성안나 교회, 14세기 지어진 대통령궁 등이 자리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빌뉴스 역사지구의 명물은 바로 빌뉴스 대학이다. 리투아니아 최초의 대학으로 1579년 설립됐다. 이후 수많은 문학가와 철학가들을 배출했다. 대학교 건물 전체가 유물이며 박물관이라 칭할 만하다. 

빌뉴스를 찾았다면 '트라카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빌뉴스에서 30㎞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해 꼭 한번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둘러보아야 할 명소는 트라카이 성이다. 호수 위의 성으로 불리는 이곳은 마치 동화 같은 풍광을 연출한다.  

◆ 리투아니아인의 성지…샤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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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개 십자가와 이야기를 품은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

샤울레이는 리투아니아 북부에 자리한 작은 도시. 리투아니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빌뉴스에서 220㎞ 정도 떨어져 있으며 차량으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샤울레이는 14세기부터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해 19세기 이후 급속도로 발전했다. 

리투아니아인의 성지로도 불리는 샤울레이의 명소는 단연 '십자가 언덕'이다. 수십만 개의 십자가가 모여 있는 이곳은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간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 마을 외곽에 자리한 '도만타이'로 가면 십자가 언덕을 만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다시 20분 넘게 걸어야 할 만큼 교통이 불편하지만 빽빽이 꽂혀 있는 십자가가 특별한 경관을 연출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언덕으로 향하는 길.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가다 보면 기념품점도 만날 수 있다. 가지각색 다양한 십자가를 판매하고 있어 이곳의 특별한 분위기를 간직하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언제부터 이 언덕에 십자가가 꽂히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언덕 위에 십자가를 세웠다. 어지러웠던 시절 조국의 독립과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세워졌다고 알려진다. 이후 소련이 군대를 동원해 불도저로 밀어버렸지만 십자가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 이곳에 서면 왠지 숙연한 마음이 든다. 

VIP여행사(02-757-0040)에서 발트 3국을 포함한 '북유럽/발틱' 여행 상품을 선보인다. 오는 7월 6일 단 1회 출발하는 상품으로 핀에어 항공을 이용한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을 둘러보는 12일 일정이다. 왕복 항공료, 유류할증료 및 택스, 전 일정 4성급 호텔, 전용 버스, 식사, 관광지 입장료 등을 포함하며 노옵션 행사 상품으로 요금은 459만원이다. 

[한송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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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의 진주, 발트해의 순결한 보석, 발트해의 자존심. 에스토니아(Estonia)의 수도 탈린(Tallinn)은 우리나라 여행관련 프로그램의 인기 소재로 떠오르면서, 그에 따라 수식어도 많아지고 있다. 800년의 역사가 곳곳에 담긴 돌담길로 뒤덮인,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끌어당기는 듯한 구시가지를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기만 해도 그러한 수식어가 남의 생각만은 아님을 느끼게 된다. 1991년 독립한 이후 북유럽 최고 관광도시로 떠오른 탈린은 독립 20주년을 맞는 2011년, 핀란드 투르쿠(Turku)와 함께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되어 일 년 내내 유럽을 오가는 관광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탈린 구시가지와 발트해. <사진: Allan Alajaan>


탈린 구시가지는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몇 시간이 걸리지 않을 만큼 자그마한 규모이지만, 탈린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하루에 세 번은 그곳에 나가봐야 한다. 새벽안개도 가시지 않고 인적도 묘연한 이른 아침의 탈린은 마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 환상적인 느낌마저 준다. 특히 새벽녘 촉촉하게 젖은 자갈길은 수백 년 이 땅을 지켜온 역사의 흔적이 이슬로 내려앉은 듯 포근한 느낌을 연출한다. 동이 터 사람의 움직임으로 가득해지면 수백 년 전부터 발트해 무역의 관문으로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던 탈린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해가 진 후 구시가지 곳곳에 마련된 전망대에 올라서면 발트해를 오가는 여객선과 구시가지 성벽의 야경을 밝히는 조명, 그리고 신시가지의 화려한 불빛이 조화를 이루는 환상적인 세계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북유럽 최고의 관광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밤에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중세의 분위기가 아름다운 카타리나 골목 내 노천카페. 탈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 Toomas Volmer>

현재 카타리나 골목에는 수공업자들의 모임인 카타리나 길드가 입주해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사진: Toomas Volmer>



카타리나 골목은 중세 종교개혁 전까지 구시가지 내에서 활동했던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이르는 길이란 의미이다. 현재 수도원은 사라졌지만 1970년내에 대대적인 발굴과 보수 공사 이후 후 과거 수도원 성내에 안치되었던 귀족들의 비석을 골목 내부로 옮겨놓아 당시 분위기를 상당히 재현해놓았다. 현재는 14개의 수공업 공방이 결정해 조직한 카타리나 길드의 주요 활동지역이자 중세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지역으로서 일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멋진 광경을 만날 수 있는 톰페아 언덕. <사진: Kirsti Eerik >

현재 국회의사당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톰페아 성의 웅대한 모습.
<사진: Kaido Teesalu>


현재 탈린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수도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에스토니아 민중들을 농노로 부리던 강대국들이 만들어놓은 지배의 상징이기도 하다. 1219년 덴마크를 필두로 하여, 독일, 스웨덴, 제정 러시아 등이 차례차례 이 연약한 영토를 탐하였고, 그런 지배의 역사는 1990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고난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에스토니아 역사의 일부분으로 만들어, 한때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소련의 비밀경찰들이 활동하던 건물도 구시가지에서 탈린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탈린 가장 높은 곳 톰페아(툼페아, Toompea)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톰페아 성의 꼭대기에는 덴마크를 필두로 이곳을 지배해오던 권세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깃발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고 있고 에스토니아의 삼색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이제 엄연히 에스토니아인들의 소유가 되었음을 만방에 공표하고 있는 셈이다.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보는 장관

탈린의 구시가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탈린의 지배세력들이 정치와 행정목적으로 사용하던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고지대, 그리고 13세기경부터 발트해의 주요 무역 거점지 중 하나로 발전하면서 탈린에 자리 잡기 시작한 무역상들의 건물이 밀집해 있는 저지대가 바로 그것이다. 고지대라고 해도 국토 전체가 평지인 에스토니아이므로 기껏해야 해발 45미터에 불과하지만, 저지대 가운데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들과 발트해를 아우르는 훌륭한 광경을 선사해주는 전망대가 곳곳에 있어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해준다.

탈린 고지대에 위치한 톰 성당. <사진: Kristjan Mändmaa>

탈린의 명물 중세식 아몬드 판매대. <사진: Kärt Kübarsepp>


탈린 고지대 전체는 ‘톰페아(Toompea)’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톰페아 언덕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바로 언덕의 이름을 지어준 ‘톰페아 성(Toompea loss)’이 될 수 있겠으나, 현재 이 성은 국회 건물인 만큼 일반 관광객들의 출입은 어렵다. 1219년 덴마크인들이 이곳에 진출한 이후 최초로 지은 성당으로 알려진 톰 성당(St Mary's Cathedral, Toomkirik)은 탈린의 변천을 오롯이 지켜봐 온 소중한 건물이다. 현재 내부는 중세 시절 탈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길드들이 사용한 문장들을 전시해 놓아 탈린의 역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도시 풍광의 밑그림을 그려준 길드들을 만날 수 있는 저지대

짧은 다리라는 이름의 ‘뤼히케 얄그(Lühike Jalg) 거리, 그리고 긴 다리라는 뜻의 ‘픽 얄그(Pikk Jalg)’. 이 재미있는 이름의 두 거리는 고지대에서 저지대를 이어주는 골목 두 개를 일컫는다.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올라갈 때는 ‘짧은 다리’, 반대로 내려갈 때는 ‘긴 다리’를 사용해서 내려오면 골목길의 정취를 한껏 더 느낄 수 있다.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오르는 두 골목 중의 하나인
뤼히케 얄그 거리. <사진: Kärt Kübarsepp>

탈린의 상징과도 같은 성벽과 성탑. <사진: Tavi Grepp>


고지대에서 저지대를 내려다보면 주위를 빙 둘러 서있는 붉은색 벽돌지붕이 인상적인 성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탈린이 가장 강성했던 15~16세기에는 그 성벽을 따라 총 길이 4.7km에 이르는 46개의 성탑이 있었고, 이는 북유럽 최고의 철옹성 중 하나였다. 현재는 그 중 1.85km의 성벽과 26개의 성탑만 남아 있지만, 그래도 다른 도시와 차별되는 탈린만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중세 길드 건물의 진수를 보여주는 검은머리 길드 회당. <사진: Kaido Haagen>

검은머리 길드 회당의 정문. 정문에 양각되어있는 이집트 출신의 흑인 성인의 얼굴 장식이 길드의 명칭을 탄생케 했다. <사진: Toomas Volmer>


저지대의 볼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상공업자들의 공동조합조직인 길드(guild) 건물들이다. 무역 거점이었던 탈린에 정착해 경제와 무역활동에 종사하던 그들은 중세무역사뿐만 아니라 탈린이라는 도시 풍광의 밑그림을 그려준 미학적 관점에서도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픽(Pikk) 거리와 라이(Lai) 거리에 남아 있는 3-4층 높이의 단아한 건물들은 중세 상공인들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건물은 식당, 갤러리, 호텔, 공연장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지만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허물지 않고 남겨둔 내부장식은 탈린 시민들에게 역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대로 전달해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탈린 시청광장. <사진: Toomas Volmer>


저지대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의 건물인 구시청사(Raekoda) 역시 성탑과 더불어 탈린 스카이라인의 중요한 부분을 장식한다. 여름철이면 중세 복장을 입은 장인들이 만드는 중세분위기의 시장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노천카페 역시 여유로운 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시청 광장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바로 1422년부터 현재까지 한 곳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약국이다. 약국의 한쪽 구석에는 당시 사용되었던 말린 두꺼비, 이집트 미라, 불에 그을린 벌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 다양한 약초 등 재료들이 (물론 모조품이긴 하지만) 중세시절의 분위기를 되살리며 전시되어 있다. 게다가 약품이 모아져있는 진열장 안에 놓여진, 약 200년 전 이 약국을 운영하던 가문의 한 젋은이가 후세의 약사들을 위해 남겨둔 편지 등을 보고 있노라면 중세와 현재가 한 곳에서 충돌한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간 느낌까지 갖게 한다.




가는 길

핀에어 직항을 타고 헬싱키에 도착한 후 탈린행 비행기로 갈아타면 된다. 헬싱키에서 탈린까지는 비행기로 35분이다. 북유럽 여행 중 탈린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헬싱키 항구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쾌속선을 이용하거나, 스톡홀름에서 하루에 한 번 운행되는 여객선을 타면 된다. 모스크바에서 탈린으로 오는 기차가 있으나 서유럽 및 기타 발트국가로의 철도노선은 현재로는 전무하다. 유럽국제버스인 유로라인 (Euroline)에서 유럽 주요 도시간 이어주는 버스노선을 운행하고 있으며, 이지젯 같은 저가항공이나 주요 유럽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입국이 가능하다. 물론 비자는 필요 없다.

북유럽 白夜여행

북반구의 여름인 6~8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는 북유럽이다. 이맘때쯤 북유럽은 파란 색조를 띤 하얀 밤, '백야(白夜)'의 나라로 변한다. 늦은 밤이 되어도 어두워지지 않는 하늘과 거리의 신비하고 서정적인 모습은 북유럽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다. 여기에 북유럽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호화 유람선을 타고 발트해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아올 수도 있다.

코레일관광개발은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을 비롯하여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핀란드 등 북유럽 4개국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까지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상품을 선보였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구(舊)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북유럽 특유의 붉은 지붕과 녹음 짙은 숲과 나무가 조화를 이룬 이 도시는 중세의 소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거리의 상점과 성벽, 지붕 등에서 14~15세기 소박한 중세를 만날 수 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는 중세 고딕양식부터 바로크, 현대 건축까지 시대별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는 중세 고딕양식부터 바로크, 현대 건축까지 시대별 건축물을 볼 수 있다. / 코레일관광개발 제공

리투아니아의 성지(聖地)인 샤울랴이의 십자가 언덕에는 5만여개의 십자가가 모여 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800년 동안 쌓인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딕양식부터 바로크, 현대 건축물이 늘어선 거리를 걷다 보면 시간여행을 떠난 것 같다. 옛 시가지에는 발트 3국에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돔 성당을 비롯하여 고딕풍의 '검은 머리 전당', 화약 탑, 스웨덴 문, 리가 성, 박물관 등이 줄지어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가면 카를 요한 거리를 찾아보자. 왕궁과 극장은 물론, 뭉크의 그림 '절규'를 감상할 수 있는 국립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늦은 밤 요한 거리에서 백야를 감상할 수도 있다. 자연의 걸작이라 불리는 웅장한 피오르는 노르웨이 여행의 핵심으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는 세계 3대 피오르 중 하나로, 노르웨이 자연주의 화가들의 작품 배경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송네 피오르'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은 피오르. 송네 피오르의 종착지점인 베르겐은 소박한 멋을 풍기는 항구도시로, 목조건축물의 고풍스러움과 어시장(魚市場)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세계적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도시로 유명하다. 1913년 만들어진 인어공주 상(像)은 올해로 100살이 되었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한 게피온 분수와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시청사도 독특한 매력을 자랑한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은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 크고 작은 배들이 섬 사이를 오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구(舊)시가지 감라스탄은 중세 향기가 가득하다. 스웨덴 왕궁은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과 프랑스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모습이다. 호화 유람선 '실자라인(바이킹 라인)'을 타고 스웨덴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다.

헬싱키는 백야 현상이 절정인 6~8월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붐빈다. 헬싱키 대성당은 헬싱키 항으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헬싱키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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