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푸말랑가 크루거 국립공원(남아공)

아프리카 초원은 한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적나라하게 적용된다. 때문에 사파리여행은 단순 탐험이 아닌, 생명의 외경을 깨닫게 하는 숙연한 체험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국립공원의 아침. 임팔라떼가 노닐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매력있는 여행지다. 장엄한 대자연의 위용과 유럽의 한 도시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풍모는 흔히 여행가들이 왜 아프리카를 '최후의 여행지'라고 일컫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깨닫게 한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사파리다. 대자연을 호흡하며 생명의 외경과 생존의 자연법칙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초원에는 수많은 동물이 자유롭게 뛰논다. 하지만 어둠이 찾아들면 사바나는 공포의 도가니로 바뀌고 만다. 대지 위에서 숨쉬는 생명체는 사냥꾼과 사냥감으로 분류 될 뿐, 승자와 천운이 따르는 자만이 내일의 밝은 태양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도 이른바 '빅5' 동물의 생태를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는 '동물의 왕국' 크루거 국립공원을 찾았다.


◆'남아공 관광의 하이라이트' 동물의 왕국 크루거 국립공원을 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자리한 크루거 국립공원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케냐의 마사이마라, 보츠와나의 초베 등과 더불어 세계적 사파리여행지로 꼽힌다. 특히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1898년 개장) 국립공원으로, 동쪽으로는 모잠비크, 남동쪽으로 스와질랜드와 국경을 이룬다. 북쪽으로는 짐바브웨 국경 가까이 있는 림포포주에 이르기까지 남아공의 북동쪽 국경을 따라 길이 352㎞, 너비 65km 넓이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남한의 5분의 1 크기. 말이 국립공원이지 동물들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커다란 야생 해방구다.

사파리는 하루 두 차례, 동물들의 활동이 왕성한 오전과 오후에 이뤄진다.

크루거 사파리 투어의 기점이 되는 도시는 남아공 음푸말랑가의 주도인 넬스프릿이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동쪽으로 358㎞ 떨어진 곳으로, 자동차로 5∼6시간, 비행기로 1시간 남짓이 걸린다. 

크루거는 열대우림과 사막의 사이에 분포하는 사바나(아열대 초원) 지대다. 풍부한 먹이와 적절한 기후로 수만 종의 동물이 모여 사는 동물의 왕국인 셈이다. 이른바 아프리카의 '빅5'로 불리는 사자-표범-코끼리-코뿔소-물소(버팔로)를 비롯해 기린, 하마, 얼룩말, 하이에나, 혹멧돼지, 쿠두, 일런드 등 맹수와 대형 동물만도 20여종이 모여 산다,

크루거의 매력은 야생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 세렝게티 등이 드넓은 초원을 뛰노는 목가적 풍광을 접하는 게 일반적 사파리 패턴인데 비해, 크루거에서는 동물의 사냥 등 일상의 숨소리까지 지척에서 관찰할 수 있다. 공원 깊숙히 사설 로지가 형성돼 게임 사파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말라말라 사파리 가이드 '유리'씨.

마침 기자가 찾은 곳은 크루거에서도 생태학자들 사이 가장 인기가 있다는 말라말라(대형 영양-원주민어로 Mala Mala) 동물보호지역. 빅5는 물론 다양한 동물이 모여 서식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접근도 만만치 않다. 넬스프릿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더 사바나 숲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오지 중 오지다. 공항을 벗어나 30여 분을 달려 비포장 사바나 숲길로 접어 든 뒤, 다시 오프로드를 20㎞ 이상 달려야 한다.

사파리는 새벽과 야간 하루 두 차례 진행된다. 전문 가이드가 8기통 4000cc짜리 랜드로버를 개조한 사파리 차량을 몰고 관강객을 야생의 세계로 인도한다. 레인저 드라이버는 동물의 발자국이나 배설물을 추적해 내방객을 동물 앞으로 안내한다. 특히 말라말라처럼 개인 소유 로지가 있는 사파리 안에서는 별도의 길이 없어도 동물을 포착하면 그 앞 까지 거침없이 차를 몰고 다가선다.

이런식으로 초원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동물찾기는 그래서 '게임 사파리'로도 불린다. 안내를 맡은 가이드(게임 레인저) '유리'(23)씨는 남아공 프리토리아 테크니컬 대학교에서 게임 랜치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이 분야 전문가. 짐바브웨 사파리에서 근무하다가 크루거로 자리를 옮겨 초원을 누비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남아공의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

사자, 한번에 50㎏까지 먹어치워
갈기 휘날리며 수사자가 벌떡 일어나자
초원엔 비… 마음엔 천둥·번개가

1시간만에 드러낸 발톱… 1분만에 뒤바뀐 야생의 주인

피비린내 진동하던 사자 여섯 마리의 코끼리 반찬 저녁식사. 자신의 몫이 부족했던 탓일까. 왼쪽 아래의 암사자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고 있다.
피비린내 진동하던 사자 여섯 마리의 코끼리 반찬 저녁식사. 자신의 몫이 부족했던 탓일까. 왼쪽 아래의 암사자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고 있다. / 사진=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2월 말 3월 초는 건기로 분류된다. 하지만 뚜껑 없는 9인승 지프 위로 떨어지는 건 빗방울이었다. '빨간머리 앤'을 떠올리게 하는 사파리 전문안내인 코트니(Courtney)는 태평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늘 이런 식이었지만, 금방 그칠 거라면서. 하지만 비는 바로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곧 장대비로 바뀌었다.

판초로 온몸을 휘감았는데도 속옷까지 흠뻑 젖고 말았다. 결국 첫 탐험을 포기하고 로지(lodge) 귀환에 동의했을 때, 코트니는 무선 한 통을 받았다. 얼핏 소년 같아 보이는 우리의 빨간머리 앤이 차를 돌리더니, 비포장 흙길에서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

포효하는 표범.
포효하는 표범.
빗속을 뚫고 10분가량을 달렸을 때, 그 장면은 벼락처럼 나타났다. 여섯 마리의 사자가 그 서너 배 덩치의 아프리카코끼리를 뜯어먹고 있었다. 용감한 코트니는 길을 버리고 초원으로 들어갔고, 우리 지프는 현장 5m 앞까지 육박했다. 코끼리는 이미 내장까지 뜯어 먹혔는데도, 사자들은 도륙(屠戮)과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 암컷 세 마리와 수컷 세 마리. 네 녀석은 코끼리 다리 하나씩을 독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두 녀석은 코끼리 뱃속을 뒤지고 있는 중이었다. 비 오는 날 동물원에 가본 적이 있으신지. 비 오는 동물원을 지배하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후각이다. 코를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피비린내. 문득 소름이 돋았다. 가림막 하나 없는 우리 지프가 저 무자비한 맹수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까. 런던 대학에서 동물학 석사 학위를 마쳤다는 우리의 코트니는 여전히 천하태평이다. 사자들은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면서. 한 번 식사를 시작하면 50㎏까지 먹어치우는 게 사자인데, 남아 있는 코끼리 잔해를 보니 이미 그 이상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자들은 이미 새끼를 가진 것처럼 배가 불룩한데, 그런데도 계속 뭔가를 물어뜯고 있다.

코끼리는 보통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는데, 이 불쌍한 외톨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갑자기 갈기를 휘날리며 수사자 한 마리가 벌떡 일어난다. "걱정 없다"고 했지만, 이게 논리로 해결될 문제인가. 초원의 비는 부슬부슬 약해졌지만, 마음속에는 천둥과 벼락이 치고 있다. 여기 이곳은 남아공 동부의 크루거 국립공원. 우리는 오후 4시 30분에 출발하는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를 시작한 참이다.

9인승 지프 뒤로 아프리카코끼리가 나타났다. 민첩하게 고개를 돌린다.
9인승 지프 뒤로 아프리카코끼리가 나타났다. 민첩하게 고개를 돌린다. 
◇게임 드라이브를 아십니까

현지 용어 '게임 드라이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파리(safari)다. 자동차를 타고 초원을 달리며 야생 동물을 탐험하는 것. 그런데 왜 'game'일까. 로지 사비사비(sabi sabi)의 매니저 로렌은 "이곳 아프리카에서 game은 동물(animal)이란 뜻"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기원을 알아보니, 이 발랄한 단어에는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가 새겨져 있다.

유럽 식민지 시절 정복자들은 초원에서 사냥을 즐겼고, 이를 '사냥 게임(hunting game)'이라 불렀던 것. 지금이야 국립공원에서의 사냥을 철저히 금지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하기야 '게임'이란 단어 자체에야 무슨 죄가 있으랴. 생존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 동물을 죽이고, 그런 기억조차 잊은 인간이 문제겠지. 코트니는 "지금의 게임 드라이브는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이 최우선 가치라는 사실을 늘 강조한다"고 했다.

로지 사비사비의 게임 드라이브는 하루에 두 번이다. 해 뜨기 직전인 아침 6시와 해지기 직전인 오후 4시 30분에 출발한다. 사자들의 저녁 만찬을 목격한 충격으로 밤새 침대에서 뒤척이는데, 새벽녘 누군가 방문을 두들긴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 모닝콜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잠을 깨운다. 로지 측이 준비한 모닝 커피와 머핀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다시 지프에 오른다.

사파리를 위해 특수 제작한 9인승 랜드로버는 의자가 계단형이다. 3개의 3인용 좌석은 뒤로 갈수록 키가 커진다. 왼쪽 헤드라이트 위에는 개방형 의자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그 의자에 앉은 흑인 사내가 자신을 포스터(Foster)라 불러달라고 했다. 그의 호칭은 체커(checker). 드라이버이자 전문 안내원인 코트니를 도와 누구보다 먼저 시야를 확보하고 야생동물들의 움직임을 체크한다. 보기만 해도 위태로운 의자인데, 기막힌 균형 감각으로 떡 버티고 앉아 초원을 안내한다.

기린 앞에 선 지프. 차량 바깥 개방형 의자에 앉은 체커(checker)에 주목하라.
기린 앞에 선 지프. 차량 바깥 개방형 의자에 앉은 체커(checker)에 주목하라.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얼룩말 수컷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새벽의 아프리카 초원은 상쾌하다. 큰 나무가 없고 기껏해야 덤불이나 관목(bush) 수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에 감탄하며, 자연이 만들어낸 흙길을 달린다. 오전 6시의 바람은 에어컨에 댈 바 아니다. 저 앞에 얼룩말(Zebra) 가족이 길을 가로막고 풀을 뜯고 있다. 별수 없이 멈췄다. 동물학 석사 코트니가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한다. 얼룩말 수컷은 세상에 태어나 먹고 짝짓기하는 게 인생의 전부라는 것. 지브라 수컷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일까. 초원에서는 식량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맘에 드는 암컷이 있으면 그 빠른 발로 달려가 '작업'이나 걸면 되고. 오는 수컷 마다않는 게 암컷의 생리라니, 얼룩말 수컷에게 초원은 천국이다. 우리의 빨간머리 앤은 "얼룩말 암컷은 거의 아기 만드는 공장(baby making factory)"이라며 "요즘 초원에 얼룩말이 너무 많다"고 키득거렸다.

새벽의 게임 드라이브로 인사한 동물들은 다음과 같다. 하루에 물을 60L나 먹어치운다는 워터벅(waterbuck), 사슴보다 더 가녀린 눈으로 쳐다보던 임팔라(impala), 길고 강한 뿔이 위협적이던 코뿔소, 초원의 난폭한 사냥꾼 버펄로….

여유 있게 설명을 계속하던 코트니가 다시 운전대를 고쳐 잡는다. 중앙으로부터의 무전이다. "치타가 출현했다, 오버!"

이런 프라이빗 사파리의 장점 중 하나는,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고 순발력 있게 코스를 바꾼다는 점. 같은 시각에 출발한 각각의 지프가 치타 앞으로 집결했다.

크루거 국립공원 전체에서도 200마리를 넘지 않는 멸종 위기의 종이라고 했다. 녀석들의 최고 속도는 시속 112㎞. 포유류 중 단연 으뜸이다. 턱선부터 허리선까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 치타가 자그마한 둔덕 위에 위엄 있게 서 있다. 치타의 머리 위로 붉은 태양이 선명하다.

사냥한 임팔라의 주인이 바뀌었다. 한 시간의 신경전 끝에 벌어진 표범의 승리. 칠흑같이 어두운 밤, 표범의 눈이 불처럼 빛난다. 나뭇가지에 걸린 임팔라 다리는 이제 녀석의 몫이다.
사냥한 임팔라의 주인이 바뀌었다. 한 시간의 신경전 끝에 벌어진 표범의 승리. 칠흑같이 어두운 밤, 표범의 눈이 불처럼 빛난다. 나뭇가지에 걸린 임팔라 다리는 이제 녀석의 몫이다.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사파리 빅5의 완성

보통 아프리카 사파리의 '빅 5'는 사자·코뿔소·버펄로·코끼리·표범을 꼽는다. 이날 아침의 탐험에서 유일하게 놓친 녀석은 표범. 오후 4시 30분의 두 번째 저녁 사파리에서 과연 '빅5의 완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코트니가 씩 웃는다. 그녀의 허리에는 10발의 총알이 들어 있는 탄창이 있다. 지프 운전석의 거치대에 사냥총이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총 써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매일 먹는 식량을 이걸로 마련한다"고 했다.

이날 아프리카는 특별히 우리에게만 관대했던 것일까. 해가 진 뒤 빅5는 완성되었다. 그것도 성난 표범의 대결을 목격하는 놀라운 행운. 역시 본부로부터의 무전 덕이다. 죽인 임팔라를 물고 나무 위로 올라간 표범이 발견되었고, 지프는 무전에 따라 집결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나무 10여m 앞의 덤불에서 또 한 마리의 표범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커트니는 흥분한 목소리로 덤불 아래 녀석이 더 무서운 놈이라고 했다. 기다리고 있으면 분명 결투가 벌어질 것이라 했다. 야행성인 표범이 결전을 감행한 순간은 완전히 해가 떨어지고 칠흑처럼 어두워진 뒤였다.

1시간 정도 신경전을 벌였을까. 덤불 밑의 녀석이 순식간에 나무 위로 솟구쳤고, "크아아악" "치이이익" 소리와 함께 임팔라의 주인은 바뀌었다. 1분도 걸리지 않은 승부. 나뭇가지 위로 핏방울이 보였다. 승리한 녀석은 빠닥빠닥 소리를 내며, 임팔라 다리를 뜯고 있다. 저녁 8시. 완벽하게 고요한 사위, 오직 이빨과 뼈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가득한 아프리카의 밤이다.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
인포메이션
여행수첩

1. 3~5월까지 남아프리카는 가을이다. 아침 저녁은 15도 안팎으로 선선하지만 낮은 한여름. 대신 습기가 없어 그늘만 가면 시원하다.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화폐는 랜드(Rand). 국제 금융기호로는 zar로 표기되고, 1R은 90원가량.

2. 사비사비 리조트(sabisabi.com): 하루에 두 번 게임 드라이브(사파리)를 떠난다. 새벽 6시부터 3시간, 오후 4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된다. 리조트는 올인클루시브 개념으로 3끼 식사와 간식이 모두 포함된다. 가격은 센 편. 일박 R9700부터.

3. 크루거 국립공원(sanparks.co.za/tourism/reservations): 미리 준비할 시간과 의지가 있는 개별 여행의 경우, 저렴한 여행도 가능하다. 국립공원 휴양림의 경우 일박 R280부터. 성수기에 가려면 6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국립공원 사파리는 1인당 R260부터.

4. 국내에서 판매하는 여행상품도 있다. 뚜르 디 메디치의 '남아공 핵심 4박 7일'은 사비사비 리조트 2박과 케이프 타운 2박 패키지를 운영 중이다. 성수기 2인1실 기준 549만원. 문의(02)545-8580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음푸말랑가 크루거 국립공원(남아공)

아프리카 초원은 한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적나라하게 적용된다. 때문에 사파리여행은 단순 탐험이 아닌, 생명의 외경을 깨닫게 하는 숙연한 체험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국립공원의 아침. 임팔라떼가 노닐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매력있는 여행지다. 장엄한 대자연의 위용과 유럽의 한 도시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풍모는 흔히 여행가들이 왜 아프리카를 '최후의 여행지'라고 일컫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깨닫게 한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사파리다. 대자연을 호흡하며 생명의 외경과 생존의 자연법칙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초원에는 수많은 동물이 자유롭게 뛰논다. 하지만 어둠이 찾아들면 사바나는 공포의 도가니로 바뀌고 만다. 대지 위에서 숨쉬는 생명체는 사냥꾼과 사냥감으로 분류 될 뿐, 승자와 천운이 따르는 자만이 내일의 밝은 태양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도 이른바 '빅5' 동물의 생태를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는 '동물의 왕국' 크루거 국립공원을 찾았다.


◆'남아공 관광의 하이라이트' 동물의 왕국 크루거 국립공원을 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자리한 크루거 국립공원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케냐의 마사이마라, 보츠와나의 초베 등과 더불어 세계적 사파리여행지로 꼽힌다. 특히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1898년 개장) 국립공원으로, 동쪽으로는 모잠비크, 남동쪽으로 스와질랜드와 국경을 이룬다. 북쪽으로는 짐바브웨 국경 가까이 있는 림포포주에 이르기까지 남아공의 북동쪽 국경을 따라 길이 352㎞, 너비 65km 넓이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남한의 5분의 1 크기. 말이 국립공원이지 동물들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커다란 야생 해방구다.


사파리는 하루 두 차례, 동물들의 활동이 왕성한 오전과 오후에 이뤄진다.

크루거 사파리 투어의 기점이 되는 도시는 남아공 음푸말랑가의 주도인 넬스프릿이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동쪽으로 358㎞ 떨어진 곳으로, 자동차로 5∼6시간, 비행기로 1시간 남짓이 걸린다.

크루거는 열대우림과 사막의 사이에 분포하는 사바나(아열대 초원) 지대다. 풍부한 먹이와 적절한 기후로 수만 종의 동물이 모여 사는 동물의 왕국인 셈이다. 이른바 아프리카의 '빅5'로 불리는 사자-표범-코끼리-코뿔소-물소(버팔로)를 비롯해 기린, 하마, 얼룩말, 하이에나, 혹멧돼지, 쿠두, 일런드 등 맹수와 대형 동물만도 20여종이 모여 산다,

크루거의 매력은 야생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 세렝게티 등이 드넓은 초원을 뛰노는 목가적 풍광을 접하는 게 일반적 사파리 패턴인데 비해, 크루거에서는 동물의 사냥 등 일상의 숨소리까지 지척에서 관찰할 수 있다. 공원 깊숙히 사설 로지가 형성돼 게임 사파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말라말라 사파리 가이드 '유리'씨.

마침 기자가 찾은 곳은 크루거에서도 생태학자들 사이 가장 인기가 있다는 말라말라(대형 영양-원주민어로 Mala Mala) 동물보호지역. 빅5는 물론 다양한 동물이 모여 서식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접근도 만만치 않다. 넬스프릿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더 사바나 숲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오지 중 오지다. 공항을 벗어나 30여 분을 달려 비포장 사바나 숲길로 접어 든 뒤, 다시 오프로드를 20㎞ 이상 달려야 한다.

사파리는 새벽과 야간 하루 두 차례 진행된다. 전문 가이드가 8기통 4000cc짜리 랜드로버를 개조한 사파리 차량을 몰고 관강객을 야생의 세계로 인도한다. 레인저 드라이버는 동물의 발자국이나 배설물을 추적해 내방객을 동물 앞으로 안내한다. 특히 말라말라처럼 개인 소유 로지가 있는 사파리 안에서는 별도의 길이 없어도 동물을 포착하면 그 앞 까지 거침없이 차를 몰고 다가선다.

이런식으로 초원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동물찾기는 그래서 '게임 사파리'로도 불린다. 안내를 맡은 가이드(게임 레인저) '유리'(23)씨는 남아공 프리토리아 테크니컬 대학교에서 게임 랜치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이 분야 전문가. 짐바브웨 사파리에서 근무하다가 크루거로 자리를 옮겨 초원을 누비고 있다


음푸말랑가 크루거 국립공원(남아공)

초원을 누비는 코끼리.

◆야간 사파리에서 목격한 사바나의 맹수들

크루거에 도착한 첫날 오후 사파리에 나섰다. 해가 지고 동물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대인 오후 4∼8시 동물을 만나러 나선다. 하지만 어떤 동물을 만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운에 맡겨야 한다. 오후 투어로 빅5를 다 만날 수도 있고, 임팔라 등 초식 동물만 보는 수도 있다.

게임 레인저 유리는 말라말라 동물보호구역내 동물의 서식처를 훤히 꿰고 있다. 맹수들의 야간 사냥은 동물이 꼬이는 물가, 초식동물들의 거주지, 출몰지에서 주로 이뤄진다. 게임 드라이빙은 동물들의 서식처를 찾거나, 동물의 배설물, 발자국을 찾아 이동경로를 추적한다.

유리는 만약을 대비해 실탄을 장착한 엽총을 운전석 앞에 두고 사바나 숲속으로 향했다.


사자가족

로지 주변에서부터 운좋게 코끼리떼를 만나는하면 스프링벅, 임팔라 등과도 마주쳤다. 숲속을 20여 분 돌아 봤을 즈음 유리가 갑자기 속삭이듯 말했다. "사자 가족이다!"

해질녘 한 무리의 사자 가족이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숫사자 한 마리와 새끼 사자 4마리. 그리고 어미 암컷 2마리 등 그야말로 초원에 소풍 나온 행복한 가족 모습에 다름없다. 사자 가족은 사파리 차량에서 비춰대는 불빛에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한 장난과 영역 표시 등으로 저녁 나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이 곳에서 사냥이 금지 된지가 100년이 넘고 보니 여기서 대를 이어온 동물에게 사파리 차량은 환경의 일부가 된 셈이다.



표범에 희생되기 직전의 '임팔라'

한 참을 어린 사자의 장난을 받아주던 어미 사자의 포효를 신호로 사자 가족은 무리를 지어 느릿하게 숲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전광석화와 같은 표범의 임팔라 사냥

사자 가족을 뒤로하고 초원을 헤맸다. 우연히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친 것은 표범 한 마리. 가이드 유리는 "운좋게 표범의 저녁 사냥을 볼 수 있게 됐다"며 흥분했다. 그는 "야간에 표범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사냥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면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꺼리는 표범은 사파리에서는 보기 어렵기로 소문난 맹수다.


사냥에 나선 표범을 만났다.

유리는 급히 주변에 서치라이트를 비추기 시작했다. 50여 미터 떨어진 숲속에서 수컷 임팔라가 놀란듯 멈칫 서 있다. 표범의 오늘밤 사냥감이다.


임팔라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표범이 공격 직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길을 걷던 표범이 멈춰 서더니 숲속을 노려 봤다. 이후 엉거주춤 엎드린 자세로 숲속을 향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놀란 임팔라는 온 몸이 얼어 붙었는지 감히 도망칠 생각도 못한다.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임팔라를 쓰러 뜨린 표범이 목덜미를 물고 있다.

인내가 필요했다. 밤을 새울 태세다. 표범은 웅크리고, 목을 곧추세워 숲속을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저러다 밤새겠다' 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레인저 유리는 "그냥 돌아갈까?" 자꾸 물었다.

하지만 더 있어보자고 계속 기다릴 것을 요청했다. 렌즈에 생생히 담고 싶은 욕심에서 였다. 하지만 다른 일행에게도 미안해진 상황 . 그냥 포기를 했다.

차를 후진 시켜 막 빠져 나가려는 사이 믿기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임팔라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 것이다. 어수선한 틈을 타 표범의 날카로운 이빨이 임팔라의 목덜미를 파고 들었다. 순식간에 그것도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각도에서 벌어진 사냥이었다.

표범은 임팔라의 숨통이 끊어질때까지 목덜미를 물고 있었고, 몸이 축 늘어지자 그제사 사방을 경계하며 포식에 나섰다.

전율과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표범의 포식.

로지로 돌아가는 길, 강가에서 하마를 만났다. 하마는 보기와는 달리 포악하다. 예전 보츠와나 잠베지강에서 하마 무리가 관광객의 소형 보트에 사납게 달려드는 광경을 목격했던 터라 하마 역시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유리가 욕심을 냈다. 이미 지프는 강가 길이 아닌 초지로 들어서 속도를 낼 수도 없는 처지다. 하지만 유리는 괜찮다며 다만 놀라거나 일어서지만 말라고 주의를 당부한다. 하지만 야밤에 자신의 영역을 침법한 이방인은 하마에겐 그저 물리칠 적이고 공격의 대상일 뿐이다.


강가 초지에서 만난 하마.

하마가 물을 박차고 나오는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 하마의 거친 숨소리가 차량 뒷편에서도 들리는 듯했다. 순간 모골이 송연했다. 다행히 하마는 차량을 멀끔히 바라보고는 풀을 뜯기만 했다. 흥분 속에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이튿날 저녁 사파리 시간. 전날 훤한 달빛 과는 달리 초원에는 음산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달무리가 지고 초원은 칠흑으로 변해갔다. 묘하게 동물들도 소리를 죽였다. 간간히 수풀속에 임팔라가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만 발견 될 뿐. 초원의 동물들이 자취를 감췄다.


이른 아침 숲속에서도 하이에나를 만났다. 간밤에 벌어진 사냥 전리품을 얻기 위해 초지를 쏘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바삐 움직이는 게 있었다. 하이에나다. 마치 무슨 바쁜 일이라도 생겨 야근 일터를 향하는 것처럼 움직임이 분주하다. 곳곳에서 하이에나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밤 말라말라 초원에서 살육의 전쟁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하이에나는 잘 알고 있던 때문이다. 유리는 하이에나가 그 전과를 훔치거나 빼앗기위해 이곳저곳 맹수들의 사냥터 주변을 물색하고 다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음푸말랑가 크루거 국립공원(남아공)

오전 사파리는 이른 아침에 이뤄진다.
◆아침에 만난 초식 동물들

이른 새벽 눈이 떠졌다. 아직 밖은 어둡다. 아침 5시 30분 동이 터오르자 로지 주변의 사위도 밝아왔다. 아침 사파리를 위해 로지밖을 나오며 수영장 인근 잔디밭에 큼지막한 코끼리 배설물 무더기를 보았다. 밤사이 코끼리가 로지 옆까지 다녀 간 것이다. 간밤에 목격한 표범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사냥 모습에 이제는 사주경계가 뇌리 속에 박힌 터라 바짝 긴장이 됐다.

새벽 사파리에 참여하려면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아프리카는 우리와는 정 반대 기후로 지금이 가을이다, 때문에 새벽엔 춥다. 두터운 점퍼 차림에 담요가 준비된 사파리 차에 몸을 싣는다. 여명이 움터오자 랜드로버가 묵직한 엔진소리를 내며 초원의 적막을 가른다.


밤새 무사했던 임팔라 가족.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절실한 곳이 바로 사바나다. 여명에 만난 가녀린 모습의 임팔라 가족이 너무도 애처러워 보였다. 이들의 처지를 아프리카 사바나에 사는 작은 초식동물의 숙명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인간이 도와줄 재간도 없다. 저처럼 예쁘고 순한 임팔라가 오늘밤에는 또 어떤 맹수의 습격 속에 처하게 될지…저만큼 자란 것만도 신통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이침 잠에 취해 있는 코뿔소 가족.
동물보호지역에 아담하게 닦아 놓은 경비행기용 활주로에 코뿔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에 흠뻑 취해 있는 놈, 막 잠에 깨서 고개를 들고 두리번 거리는 녀석, 갖가지다. 하지만 표정은 온순해 보였다. 낮시간 데워진 아스팔트 활주로의 온기가 아까운 듯 느긋하게 배를 깔고 누워 따뜻한 밤을 보낸 터였기 때문이다. 크루거의 초원에서 제왕급 동물이 누리는 온돌 취침 이었으리라.


버팔로와 공생하는 새.

숲속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는 버팔로 떼도 만났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사파리 차를 만나도 물러섬 없이 길을 비켜 주지 않는다. 무리에 위엄을 보이는것이다.

코끼리떼는 어쩌면 사파리에서 가장 흔한 모습이다. 코끼리는 평온해 보이지만 무서운 놈이다. 성미도 대단하다. 그래서 조심해야 할 경계의 대상이다. 먹어치우는 양도 엄청나다. 6톤짜리 어른 코끼리는 하루 300kg을 먹고, 150kg의 배설물을 남긴다. 사파리 루트 곳곳이 코끼리 배설물로 가득하다. 이들이 휩쓸고 간 숲은 초토화가 된다. 그래서 코끼리는 초원의 환경파괴자에 다름없다.


초지의 얼룩말

▶말라말라 로지

'게임 리저브'(동물관찰을 위한 보호지역)라 불리는 사파리공원은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 있다. 세렝게티, 마사이마라, 오카방고 델타, 응고롱고로, 초베 국립공원 등등. 크루거는 이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아프리카의 관문인 요하네스버그에서 가깝고 세계 최고급의 사파리 로지들로 명성이 높은 편이다.


말라말라 로지
그중 말라말라 리조트는 세계적 명성으로 고급 사파리 로지의 대명사격으로 통한다.

아프리카 풍의 로지에서는 숙식과 사파리 등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야외 수영장, 짐, 레스토랑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음푸말랑가 크루거 국립공원(남아공)

아침 식사 중인 기린.

◆여행메모


▶가는 길=남부아프리카 여행의 중심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다. 이곳을 통해 아프리카 전역으로 항공편이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아시아나항공 등을 타고 홍콩을 경유해 남아프리카항공편으로 요하네스버그로 향하는 게 일반적이다. (인천~홍콩 3시간30분, 홍콩~요하네스버그 13시간 10분 소요)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로 적립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항공 서울사무소 (02)775-4697

▶여행 상품=◇아프리카 전문 여행사인 인터아프리카(www.interafrica.co.kr 02-775-7756 )에서는 두 가지 타입의 남아공 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크루거 2박(말라말라 로지 2인 1실)+케이프타운 3박(테이블베이호텔 기준) 등 총 8일 599만원 ◇크루거 2박(카파마리버로지)+케이프타운(3박)+ 빅토리아폭포(1박) 등 총 9일 499만원.

남아공은 남반구에 위치한 탓에 기후가 서울과는 정반대다. 지금이 가을철이고, 사바나 사파리 여행의 최대 성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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