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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페인

스페인 발라돌리드 : 소 귀로 만든 음식, 혀를 녹이는 맛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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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파블로 교회

산 파블로 교회(San Pablo Church)는 정교한 석조물로 정면을 꾸몄다. 발라돌리드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 곽동운

2014년 11월 16일, 여행 14일째.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 여행을 마친 후, 필자는 순례팀과 작별하고 개별 배낭여행 형식으로 일정을 이어갔다. 함께 북적북적대며 여행하는 재미와도 작별해야 했다. 이제부터는 고독한 '단독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여태껏 단체 여행의 장점을 누렸으니 이제는 단독 여행을 누려볼 차례였다.

배낭여행의 첫 목적지, 발라돌리드

여행 동선을 크게 잡지는 않았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중부권 영역 일대만 여행 대상으로 삼았다. 스페인에 가면 꼭 들러야 한다는 바르셀로나와 이슬람의 역사가 남아 있는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은 제외하기로 했다. 그렇게 골랐더니 발라돌리드, 세고비아, 톨레도 등 세 개의 도시가 정해졌다.

▲ 발라돌리드

중심가

ⓒ 곽동운

발라돌리드(Valladolid)가 그 첫 번째 여행지였다. '바야돌리드'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약 2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도달할 수 있는 이곳은, 중세 시대에 대학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도시다.

마드리드에서 16유로를 주고 발라돌리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스페인 버스는 우리나라 버스보다 더 크고, 좌석도 많았다. 화장실까지 갖춘 곳도 있었다. 심지어 국제선 여객기에서나 볼 수 있는 개별 모니터가 장착된 버스도 있었다. 그 모니터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영화도 볼 수도 있다. 게임도 가능하다. 아무래도 국토가 넓고, 주행 시간이 길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스페인에서 한반도를 떠올리다

한편, 장애인이 고속버스를 타는 데 용이하도록 리프트 장비가 설치된 버스도 있었다.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한 두 대 정도가 배치된 것이 아니었다. 꽤 많은 리프트 버스가 운행되고 있었고, 또한 그 노선도 다양했다. 우리나라의 리프트 버스 배치 상황을 생각해보면 정말 부러운 광경이었다. 이동권 약자들도 당당하게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스페인 고속버스

스페인의 고속버스는 직행버스 개념이다. 논스톱으로 가지 않고 몇 군데를 들렀다 가는 형식이다.

ⓒ 곽동운

발라돌리드 행 버스에도 개별 모니터가 있어 필자도 음악을 들으며 차창 밖을 응시했다. 창문 밖에는 시원스런 풍광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은 카스텔라 레온(Castilla y Leon) 지역인데 이곳은 드넓은 평원 형태를 띠고 있었다. 광활한 평원이 드문 국토, 거기다 남북이 갈려 섬처럼 고립된 우리땅이 생각났다. 그렇게 좁은 국토에 살면서도 지역 감정이니, 동서 갈등이니 하는 식으로 감정의 골이 패니 그저 착잡한 심경이 들 뿐이었다.

바스크와 카탈루냐의 분리 운동으로 유명한 스페인에서, 한국의 지역 감정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일일지 모른다. 잘 알려지다시피 스페인에 비하면 한국의 지역감정은 양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바스크와 카탈로니아 문제는 1천 년 이상의 시간이 녹아 있다. 그 시간 속에는 이슬람 세력과의 항쟁 과정 속에서 나온 부산물도 또아리를 틀고 있다. 분리주의 운동이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인은 나 혼자

주위 풍광에 매료되는 걸 멈추고, 문득 버스 안을 둘러봤다. 자세히보니 오직 필자만 동양인이었다. 마드리드에서도 산티아고에서도, 심지어 땅끝이었던 피스테라에서도 동양인은 물론 한국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만큼 한국인이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닌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발라돌리도에서는 가는 버스뿐 아니라 현지에서도 한국인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고독한 단독 여행을 위한 장치(?)들이 제대로 갖춰진 셈이다.

'그래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 곳에서 진정한 배낭여행자가 돼 주지! 어차피 배낭여행도 숙식만 해결되면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거잖아!'

그렇게 다짐한 후 남은 여비를 생각해봤다. 순례길에서 워낙 저렴하게 숙식을 해결해서 그런지 여행 14일째인데도 300유로 밖에 지출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4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2주 정도를 버틴 것이다. 이것만 봐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얼마나 도보 여행자에게 친화적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캄포 그란데에서 새들과 옥신각신

▲ 캄포 그란데

공작새가 노닐던 캄포 그란데

ⓒ 곽동운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도시답게 발라돌리드는 여러 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시가지가 크지 않아 그 유적들을 도보로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일단 버스 터미널에서 빠져 나온 후 처음 방문한 곳은 캄포 그란데(Campo Grande)라는 공원이었다. 스페인어로 'Campo'는 '초원' 혹은 '들판'이란 뜻이고, 'Grande'는 '큰'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캄포 그란데는 '큰 들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삼각형의 틀을 가진 캄포 그란데는 이 도시 사람들이 무척 사랑하는 공원이다. 이곳은 새들의 천국으로, 공작새를 비롯한 비둘기, 오리, 거위들이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특히 공작새가 눈에 많이 띄었는데 어떤 녀석은 갈 길 바쁜 필자 뒤를 졸졸 따라 오기도 했다. 먹이를 달라는 것이다.

"가라! 나 먹을 것도 없어!"

그래도 공작새는 양반이었다. 연못에 사는 거위 한 마리는 아예 필자의 손가락을 낚아챌 듯 덤벼들었다. 괘씸한 생각에 계속 먹이를 주는 척하며 손을 거두기를 반복했다. 그랬더니 신경질을 내듯 "꽥꽥"대며 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필자의 승리였다. 이렇듯 새들과 옥신각신하는 재미 때문인지 캄포 그란데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었다.

김치와 고추장이 동시에 생각나는 요리

▲ 오레자 갈레가

(Oreja Gallega)

ⓒ 곽동운

여행은 시청 건물이 있는 마요르 광장(Plaza Mayor)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발라돌리드 마요르 광장은 상당히 규모가 큰 광장으로, 이 도시 사람들이 모임 장소로 애용하는 곳이다. 노천 카페가 광장을 둘러싸듯 즐비해 있고, 인근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도 많았다. 여행 안내소에서도 마요르 광장 거리에는 맛 좋은 바르(bar)와 카페가 많다며, 꼭 거기서 식사를 해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필자도 광장 인근에 있는 바르에서 오레자 갈레가(Oreja Gallega)라는 음식을 주문했다. 가격이 4유로로 무척 저렴했기에 그 요리를 택한 것이다. 값이 싸기에 그저 간단한 샐러드 요리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무슨 비계 껍데기가 나왔는데 외관부터가 아주 비호감이었다. 딱 봐도 느끼함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아까운 음식을 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보기에는 그래도 맛은 별미일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포크를 집어 들었다.

'음... 김치와 고추장이 동시에 생각나는 요리는 난생 처음이야. 아주 느끼한 맛이 혀 전체를 녹여버리는 느낌이군... 젠장!'

▲ 케밥

이 케밥도 느끼해 보이시나? 좀 느끼하긴 했어도 케밥은 먹을만 했다. 양도 많아서 반은 먹고, 반은 남겨서 도시락을 쌌다.

ⓒ 곽동운

웬만큼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오레자 갈레가를 맛본다면 분명 필자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레자 갈레가는 소의 귀를 잘라서 만든 요리였다. 그리고 그 느끼한 맛을 음미하며 먹는 요리라고 했다.

달리 이야기하면 한국 사람이 요리를 먹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소 귀 요리인 줄도 모르고 덥석 주문했다가는 느끼함으로 아주 몸서리를 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억지로 식사를 마친 후문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옆 카페에 붙은 광고지를 보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앗! 옆에 일식집이 있었네. 초밥이 비싸지 않네...'

고독함을 뼛속까지 체험한 밤

▲ 야경

발라돌리드 시가지의 야경. 캄포 그란데 입구쪽에서 찍었다.

ⓒ 곽동운

그럭저럭 식사는 해결됐다. 이제 문제는 잠잘 곳이었다. 지금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 요금에 익숙한 터라 호스텔 비용이 걱정이었다. 그나마 호텔은 눈에 잘 띄었는데 호스텔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도시가 오래돼서 그런지 발라돌리드는 좁은 골목길이 많았다. 어둠이 내리자 골목길이 더 좁게 느껴졌다. 골목길을 헤매며 값싼 호스텔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호스텔 파리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뭐요? 40유로요?"

필자는 멈칫했다. '호스텔 비용이 40유로나 하다니! 조금 더 보태서 호텔에 들어가는 게 낫지!' 그냥 두 말 없이 발길을 돌렸다. 6유로로 1박을 할 수 있는 공립 알베르게가 무척이나 그리운 순간이었다.

저렴한 숙박지를 찾아 열심히 발라돌리드를 걸어 다녔다. 밤 길이라 그런지 계속 같은 골목을 뱅뱅 도는 느낌이었다. 설상가상이라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낯선 타국의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결국에는 호스텔 리마라는 곳을 찾아냈고, 25유로를 주고 1박을 할 수 있게 됐다. 발품을 팔았더니 그나마 저렴한 숙소를 찾아낸 것이다.

고독한 단독 여행의 특징을 뼛속까지 체험한 밤이었다. 북적북적하던 알베르게가 그리운 밤이었다. 냄새는 났지만 서로 간의 격려가 넘치던 알베르게로 돌아가고 싶은 밤이었다. 발라돌리드의 문화유적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진다.

▲ 마요르 광장

발라돌리드 마요르 광장. 꼰데 안수레스(Conde Ansurez) 동상이 있다. 페드로 안수레스라고도 불리는 이 인물은 에스퍄냐 북서부 지역의 유명한 백작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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