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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 빙하에 갇힌 초록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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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중서부 항구도시인 일루리사트는 아이스 피오르드로 유명하다. 일루리사트 정착을 기념하는 기념비 아래 펼쳐진 바다 위로 빙하가 떠다니고 있다.
그린란드에서 맞는 첫 새벽이다. 어두워지지 않는 밤을 지나 새벽녘에도 창밖은 여전히 밝은 세상이다. 창가 커튼도 햇빛을 충분히 가리지 못한다. 지난 여행지였던 아이슬란드에서는 그나마 암막 커튼이 있어 햇빛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린란드에서는 이불로 창가를 가리고, 또 다른 이불 아래 몸을 뉘었지만 어둠도, 잠도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마을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개들의 울부짖음이 다가오던 잠을 쫓아낸다. 썰매를 끌지 않는 여름 한철이 무료한 듯 수시로 짖어댄다. 덩치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늑대를 닮은 그들의 울음소리는 도시 여행객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주인이 썰매견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그린란드 여름은 기온이 섭씨 20도까지 올라가며 북극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따뜻하다. 하지만 지지 않는 태양과 울부짖는 개들, 그리고 극성스러운 모기떼를 이겨내야 한다. 짧은 여름이 지나면 태양은 사라져가고, 개들은 설원을 달리느라 바빠진다. 길고 긴 겨울에는 사라진 태양과 영하 30도에 가까운 추위에 적응해야 한다.
여름철에만 볼 수 있는 일루리사트의 녹지대와 황색풀꽃.
여름과 겨울을 오가는 상념을 뒤로하고 숙소를 나섰다. 그린란드로 이주한 덴마크인 가이드와 함께 일루리사트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린란드 관광산업 종사자는 대부분 북유럽인이다. 특히 덴마크 사람들이 많다.

시내 곳곳에서 습지와 늪에서 발견되는 북극 황색풀이 보이는 일루리사트 전경.

가이드와 함께 걸어가는 곳곳에 개들이 모여 낯선 이방인을 주시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주인이 먹이를 나누어 주고 있다. 먹이는 고기가 귀한 지역인 만큼 생선이 주를 이룬다. 특히 여름에는 먹이를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준다고 한다. 매일 주기도 어렵지만 할 일 없는 여름에 힘이 남아돌게 되면 서로 싸우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심하면 싸우다 물려 죽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밤새도록 그렇게 울부짖는 이유가 배고픔 때문인 것 같아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역시 알래스칸 말라뮤트는 설원을 질주하는 모습이 가장 어울린다.
일루리사트의 관광안내소. 이곳은 투어프로그램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다.

그린란드에서 개는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이자 생계수단이다. 사납고 힘이 좋은 그린란드 개들은 촘촘하고 굵은 이중 털로 덮여 추위에 강하다. 지칠 줄 모르는 힘과 인내심으로 2700여년 전부터 극한 날씨에서 인간을 태우고 썰매를 끌어왔다. 원주민 이누이트들은 개 덕에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이동과 사냥을 하면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얼어붙은 바다로 나가 낚시와 바다표범 사냥을 한 것이다.
거리에서 놀고 있는 원주민 이누이트 어린이.
스노모빌이 등장해도 설원을 여행하는 개썰매는 여전히 가장 주요한 운송수단이다. 그린란드에서는 스노모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환경문제와 함께 높은 연료비, 고장 시 대처방법의 부재 때문이다. 개들은 한두 마리가 다쳐도 서로 역할을 나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여름에도 정성껏 돌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개들 주위에는 날렵한 모양의 썰매들이 놓여 있다. 소재만 바뀌었을 뿐 과거 이누이트들이 타던 썰매 모양과 원리는 그대로다. 혹독한 자연에 맞서온 인류의 지혜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을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개들은 썰매를 끌지 않는 여름 한철이 무료한 듯 수시로 짖어댄다.

개들이 모여 있는 들판을 지나 쿤드 라스무센 박물관으로 향했다. 덴마크계 탐험가이자 민속학자인 라스무센은 일루리사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썰매를 이용해 아메리카 북극권을 횡단했으며 광대한 북극지역에 사는 거의 모든 이누이트 부족들을 연구하고 책으로 발간해 세상에 알렸다. 어머니가 이누이트였던 라스무센은 그린란드 이누이트의 기원을 알고자 했고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고자 했다. 박물관은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를 개조해 만들어졌다. 그가 만난 이들의 사진과 그 당시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라스무센 박물관을 지나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들과 저인망 어선들이 가득 차 있고 배들 주위를 빙산들이 유유히 흘러다니고 있다. 그린란드 어업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이곳의 풍부한 어종과 어획량의 비밀은 빙산에 있다. 빙산에는 많은 양의 육지 미네랄이 포함돼 있어 바다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빙하가 바다로 떨어져 나오면서 육지의 영양분을 바다로 운반하는 것이다. 이 미네랄 덕분에 일루리사트 앞바다는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각종 물고기와 최종 포식자 고래가 모여든다. 그린란드 빙산이 이 황량한 얼음 왕국에서 수천년 동안 인류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어획한 고래를 부위별로 팔기 위해 자르는 모습.


빙산과 어선이 공존하는 전경은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강한 햇살 아래 다양한 깃발의 배들이 얼음덩어리들과 어우러져 맑은 바다 위에 떠 있다. 현실성 없이 느껴지는 모습이 새롭다.
바다에 빙하가 떠다니는 일루리사트 전경.
일루리사트 항구에는 고래잡이를 나가기 위한 어선과 보트들이 가득 차 있다.

부둣가 위에는 작은 공방이 있다. 고래 뼈를 다듬어 생활용품 및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고 있다. 상아와 같은 느낌의 단단한 목걸이 열쇠고리들이 눈에 띈다. 공방을 지나자 고래 턱뼈로 만들어진 커다란 아치가 나온다. 3m를 훌쩍 넘는 고래 턱뼈 앞에는 커다란 그릇이 놓여 있다. 고래 기름을 짜던 실제 통이다. 모두 고래산업이 한창이던 시절의 유물들이다.
3m를 훌쩍 넘는 고래 턱뼈

시종일관 맑고 푸른 하늘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 허기가 밀려오는 것으로 저녁이 다가옴을 알 수 있다.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유명하다는 전통음식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린란드 전통식은 대부분 고래를 이용한 요리다. 소고기 느낌의 장조림 같은 고래고기를 비롯해 고래의 다양한 부위가 음식으로 나온다. 전통음식이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다고 해서 먹어봤지만 이방인의 입에는 잘 맞지 않았다. 질 좋은 맛있는 고기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그마저도 건강을 위해 줄여 나가는 시대에, 먹기 위해 고래까지 사냥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고래고기를 이용한 그린란드 전통음식.
포장에 귀여운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린란드 맥주.

식당 내에는 고래고기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와인에 기대 고래고기를 맛보고 남은 디저트로 저녁식사를 마치니 하루가 지나간다. 아직도 태양은 중천이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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