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낙의 사냥꾼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우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던 마리우스부터 찾아갔다. 그는 까낙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곳 사냥꾼들에 대해서 잘 안다며 거침없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올해 마흔다섯 살인 마리우스는 10년 전 이곳 까낙에 와서 처음에는 투어 가이드를 했지만 이듬해에 사비시비크(Savisivik)로 거처를 옮겨 본인도 사냥꾼이 되었다고 한다. (사비시비크는 약 20여 가구에 48명이 살고 있는 까낙 남쪽의 사냥꾼 마을이다.)
까낙을 포함하여 이곳 북단 마을의 사냥꾼들은 겨울에 곰과 물개, 바다코끼리를 잡고 여름에는 일각고래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직 그것만이 이 극지마을에서 살 수 있는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냥이 몹시 힘들어졌다. 첫째는 더워진 날씨 때문이고 둘째는 정부의 쿼터제 때문이다. 북극 까낙 지역 전체 사냥꾼에게 정부가 허락한 북극곰 사냥 쿼터는 1년에 18마리뿐이고, 그나마도 얼음이 녹아서 방황하는 북극곰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한때 주 수입원이었던 물개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더 이상 내다 팔수가 없다. 예전에는 물개 가죽을 전 세계로 수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린피스 같은 단체들의 압력으로 인해 어느 나라도 수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어디선가 행해지고 있는 상업성 사냥과 서방세계의 편협한 시각으로 인해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사냥하는’ 이누이트 사냥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북극의 눈물이란 얼음의 눈물이나 북극곰의 눈물이기도 하지만 척박한 극지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의 눈물이기도 하다.
까낙에서 맞는 백야의 첫날 밤, 마리우스와 긴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마리우스, 지금은 여름이라 밤이 환하지만 겨울엔 어떤가요? 하루 종일 캄캄한 밤만 계속되는 그 시기엔 도대체 뭘 하면서 지내죠?”
그러자 마리우스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데, 그리고 하얀 눈이 있는데 어째서 캄캄한 밤이지?”
북 그린란드는 12월에서 2월까지 태양이 거의 뜨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 시기에 끝없는 밤이 계속될 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별과 달, 그리고 북극광과 눈이 있어 결코 캄캄하지 않다고 한다.
내추럴 본 헌터
![](http://ncc.phinf.naver.net/ncc02/2011/5/20/256/10px.jpg)
다음 날 아침 마리우스가 두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사냥꾼 마마우트와 기디언이었다. 다들 MBC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뿐만 아니라 BBC 등 세계적인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 단골로 출연할 만큼 까낙의 전통 사냥꾼들이다.
“저희 집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기디언이 약간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초대받은 것도 고마운데 운 좋게도 나는 그의 집 근처에서 썰매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까지 촬영할 수 있었다.
물개 고기를 잘라 던져줄 때마다 16마리 정도의 개들이 순서대로 받아먹는 모습은 놀랍기만 했다. 먹이를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일루리사트의 썰매개들에 비해 까낙의 개들은 뭐랄까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정예요원’ 같았다. 그리고 일루리사트의 개들에 비해 몸집은 조금 작았지만 머리는 더 컸으며, 짙은 갈색 눈에 아주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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