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온 그린란드 원정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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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베이징을 거쳐 코펜하겐까지 14시간 반, 거기서 또 4시간을 날아 도착한 캉걸루수아끄(Kangerlussuaq)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다시 1시간, 마침내 시골 버스터미널처럼 작고 한갓진 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비로소 누크(Nuuk)라는 팻말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시계를 그린란드 현지시각으로 바꾸고 익숙했던 모국어의 감각을 버려야 할 시간이다.
2011년 5월 5일, 나는 그린란드에 도착했다. 한국은 어린이날을 맞았을 테지만, 거대한 해빙기가 시작된 이곳 그린란드에서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가격은 절대 깎아드릴 수 없습니다.” 수도 누크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그린란드 항공사, 거기서 처음 만난 차터(Charter) 담당 안느(Ane B. Jensen)가 말했다. 착하고 순박하게 생긴 77년생 이누이트 혼혈여성이지만 에누리는 통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린란드에 온 목적을 정중하게 설명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그린란드 원정대입니다.” 당신들의 나라, 북극권의 눈 덮인 땅 2,500킬로미터를 종단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사람들이니 항공기 전세 가격을 조금만이라도 깎아달라고 사정했다.
“물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원정대를 진심으로 돕고 싶군요. 하지만 가격을 깎을 수는 없습니다.”
조금도 깎을 수 없단다. 그린란드와 유럽인의 혼혈이라서 그런가? 저 순수한 표정과 순박한 말투만큼 천진하리만치 규정대로만 하려는 태도가 정말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린란드에 도착하고 드디어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첫 순간부터 난관에 부닥친 것이다. 원래 계획은 소형비행기인 트윈오터(Twin-Otter)로 탐험대와 장비 일체를 한 번에 이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트윈오터는 없고 헬기만 가능하단다. 하지만 헬기는 이동거리가 짧고 탑승인원, 이륙 적재량도 작기 때문에 에어드롭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예산도 그만큼 초과되는 것이다. 아직 탐험비용을 모두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애써 활짝 웃으며 다시 부탁했지만, 안느는 더욱 활짝 웃으며 오히려 그런 내가 더 신기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다. 한국식으로 애원했지만 그린란드식으로 거절당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에어드롭 일정과 횟수를 조정하여 다시 가격 협상을 하기로 하고 터덜터덜 그린란드 항공사를 빠져 나왔다.
왜 Green Land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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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탄 순간 나는 하마터면 한국말로 행선지를 말할 뻔했다. 이누이트인 택시기사가 나와 같은 강원도 양구 출신이라 해도 믿을 만큼 한국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몇 마디 주고받다가 결국 ‘삼촌’이라 부르며 친해졌다. 나는 그린란드를 찾는 이방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물어 봄직한 질문을 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