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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페인

스페인 '지중해의 발코니' 타라고나(Tarrag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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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스스로 별칭을 '빅풋(BigFoot) 부부'라고 붙였습니다. 실제 두 사람 모두 '큰 발'은 아니지만, 동네 골목부터 세상 곳곳을 걸어 다니며 여행하기를 좋아해 그리 이름을 붙였지요. 내 작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움을 발견하는 거대한 발자국이 된다고 믿으며 우리 부부는 세상 곳곳을 우리만의 걸음으로 여행합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만든 여행 영상도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 기자 말


"야~ 바다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7번 국도를 타고 달리던 관광버스에서 처음으로 동해 바다를 봤던 나와 친구들은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버스가 쏠려 넘어질 정도로 오른쪽 창가에 붙어 동해 바다를 보고 환호를 질러댔지요. 경남 마산에 살았으니 나름 바닷가 도시에 살았던 셈인데, 매립되어 공장이 즐비하고 꽉 막힌 느낌의 마산 바다와는 느낌이 달랐던 거지요. 그리고 그때가 1991년 여행이 활발하지 않았던 때라 저를 비롯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해 바다'란 걸 처음 봤던 겁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한 시간을 달려 타라고나로 가는 길에, 여고시절 그 수학여행 길이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창가로 확 트인 지중해 바다가 타라고나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 달렸지요. 추억에 웃음이 떠올랐고, 마흔이 넘어 그때처럼 소리칠 수 없어 마음으로 환호성을 질러댔습니다.

지중해의 발코니(Balco del Mediterrani)

 '지중해의 발코니'로 불리는 타라고나의 산책로에서 바라 본 지중해
ⓒ 박성경
타라고나의 기차역은 우리나라 정동진역처럼 바닷가에 위치합니다. 역을 등지고 오른쪽 언덕길을 올라가면 계단과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꼭대기에 오르면 광장 끝 절벽 너머로 그야말로가슴까지 뻥 뚫리는 광활한 지중해가 펼쳐집니다. 이곳이 타라고나의 그 유명한 '지중해의 발코니'로 불리는 곳이라네요. 여기에 섰을 때는 쑥스러움도 잊고 소리치게 되지요.

"바다다! 지중해다!"

오른쪽에 멋진 바다 풍경을 두고 광장에서 조금 더 걷다 보면 로마시대의 원형 경기장(Amfiteatre del Roma)이 나타납니다. 타라고나는 '지중해의 발코니'로도 유명하지만 '로마 유적지의 보고'로도 이름난 도시입니다. 그중에서도 1세기에 땅을 파서 만들었다는 이 로마식 원형 경기장은 타라고나에 있는 로마 유적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지요. 원래는 사람과 맹수가 싸우는 경기장이었지만 3세기에는 기독교도들을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고, 현재 남은 경기장의 유적 안에는 기독교 사제를 처형했던 자리에 12세기에 세운 '성모 마리아 성당'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중해가 배경이라 그런지 오랜 세월의 흔적들마저 더 멋지게 보이는 로마시대의 원형 경기장은 꼭 입장을 하지 않고 바깥에서만 봐도 그 형태는 잘 보입니다. 그래도 입장을 하고 보면, 1세기의 사람들이 경기를 보기 위해 앉았던 자리에도 직접 앉아볼 수 있고 12세기 성당의 흔적들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그런데 이 원형 경기장에 돈을 내고 입장하는 이유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우리 부부는 몰랐습니다.

▲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Amfiteatre del Roma) 1세기 경기장으로 지어졌으나 12세기 성당 터도 남아 있다.
ⓒ 박성경
바깥에서도 훤히 보이는 경기장을 왜 입장료를 내고 왔을까 약간의 후회가 들며 출입구를 나서는 순간, 우리 부부의 눈앞에 거짓말처럼 엘리베이터가 나타났습니다. 로마 유적지에 엘리베이터라니, 돈을 내고 입장을 했으니 언덕을 힘겹게 걸어 올라야 하는 구시가에 쉽게 가라고 서비스를 해주는 건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러고 우린 한 번에 '슝~' 구시가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았어요. 타라고나가 간직한 로마 유적의 본모습은 경기장 한쪽에 있는 지하 통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요. 원형 경기장에서 이어진 지하의 동굴 통로는 총 길이가 94m에 이르는데, 이 통로 역시 로마시대에 건설됐고 그 길은 로마 박물관으로 통하는 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원형 경기장 입장료는 94m 로마시대의 지하 통로를 걸으며 그곳의 유적들을 보고 로마 박물관까지 관람할 수 있는 입장료였던 셈이지요.

우리 부부는 그 모든 로마 유적지를 엘리베이터에 혹해 한 번에 건너뛰고는, 그 유적지 위에 시대를 거치며 세우고 또 바뀌어온 중세 때의 건물들과 근세의 건축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답니다. 살짝 부끄러운 일화지만, 혹시 타라고나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처럼 이런 실수는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줍게 밝혀봅니다.

 타라고나 구시가의 한 건물에 재미있는 벽 그림이 그려져 있다.
ⓒ 박성경
타라고나 구시가의 골목골목은 흥미로웠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거리 곳곳에 옛 물건을 파는 좌판들이 펼쳐져 있고 그것을 구경하며 흥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흥겨웠습니다.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옛 정취를 풍기며 아름다웠고, 도시의 밝은 기운을 그대로 보여주는 생기 넘치는 벽 그림도 여행자에게는 친근함으로 다가왔지요. 시청이 있는 중앙 광장은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것을 뒤로하며 대성당으로 오르는 길까지가 구석구석 즐거움을 줬습니다.

대성당(Catedral)이 있는 곳은 구시가 중에서도 가장 지대가 높은 곳에 있습니다. 이곳은 로마시대 때 유피테르 신전이 서 있던 곳으로 그때부터 타라고나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일요일 대성당 주변은 왠지 엄숙함과 경건함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타라고나 대성당 주변은 북적북적 왁자지껄 큰 벼룩시장이 펼쳐져 있더군요. 오래된 책부터 갖가지 가재도구, 작은 가구들, 집에 하나 둘씩 모아 두었던 앤티크 소품들까지 없는 게 없다 할 정도로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물론 사람 구경도 즐거웠지요.

'악마의 다리'로도 불리는 레스 페레레스 수도교

▲ 타라고나 대성당 12세기~16세기에 걸쳐 지어졌으며, 구시가의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 박성경
 타라고나 대성당 앞에 벼룩시장이 열렸다.
ⓒ 박성경
성전 안에서 소와 양을 파는 상인들을 보시고 내쫓으며 호통을 치셨던 하느님 보시기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여행자들에게 벼룩시장이란 예기치 않은 볼거리며 갑자기 찾아든 행운이고 걷고 걷는 여행의 힘겨움을 까맣게 잊을 수 있는 즐거움 아니겠어요?

그런데 벼룩시장 구경에 빠져, 미사를 끝낸 대성당이 문을 닫았다는 아쉬움마저 잊고 말았네요. 정면 모습이 화려함 보다는 청빈함 때문에 더 빛난다는 타라고나 대성당은 겉에서 보는 낡고 오래된 분위기와는 달리 내부의 회랑은 한 변이 45m나 될 정도로 크고 화려하답니다. 또 성당에 딸려있는 교구 미술관에는 충실한 태피스트리 컬렉션과 각종 귀한 미술품들이 전시돼 있다고 하는데요, 흥겨운 벼룩시장에 흠뻑 빠져 구경한 걸로 대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 '인간 탑 쌓기' 기념 조형물 타라고나의 전통 축제인 '인간 탑 쌓기' 조형물이 노바 거리에 설치돼 있다.
ⓒ 박성경
노바 거리(Rambla Nova)를 걸으면서는 타라고나의 전통 축제이면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회인 '인간 탑 쌓기'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도 만날 수 있습니다. 노바 거리를 지나 우리 부부가 향한 곳은 임페리알 타라코 광장 앞 버스 정류장. 타라고나에 있는 로마 유적의 결정판, 수도교를 보러 가기 위해섭니다.

임페리알 타라코 광장에서 살바로르 행 버스로 20분 정도를 달려 내린 뒤 산길을 한 15분쯤 걸었을까요, 2세기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레스 페레레스 수도교(L'aqueducte de Les Ferreres)'가 보입니다. 이곳에서 약 30km 북쪽에 있는 가이아 강에서 마을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218미터 길이에 달하는 이 수도교의 양쪽 수직 높이 차이는 불과 20c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20cm의 낙차를 이용해 물을 흘려보내는 거지요. 2000년 전 기술이 그랬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 레스 페레레스 수도교(L'aqueducte de Les Ferreres) 2세기 로마시대에 지어진 수도교로, 일명 '악마의 다리'로 불린다.
ⓒ 박성경
'레스 페레레스 수도교'는 일명 '악마의 다리'로도 불립니다. 한 여인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이 수도교가 만들어지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인데요, 그런 전설이 생긴 건 '악마가 아니면 이런 다리를 만들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로마인들의 건축 기술이 뛰어났다는 반증이기도 할 겁니다.

로마시대가 끝나고 중세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이 거대한 수도교의 형상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겠지요. 악마를 만들어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로마인들이 건축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뻔히 알고 여행하는 2015년의 여행자 눈에도 2세기 로마의 수도교가 여전히 비현실적이기만 한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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