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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페인

스페인 마드리드 : 그곳을 가봤는가? 광기어린 도시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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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돈키호테가 아직도 살아 숨쉬는, 스페인 광장

라 만차의 [돈키호테 Don Quixote de La Mancha]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소설이자, 최초의 근대소설이자,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무모한 광기의 대명사로 그 이름이 두루 쓰였다. 1605년 ‘재치있는 이달고 라 만차의 돈키호테’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속편까지 쓰여졌던 이 작품의 작가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군인생활을 하다가 한쪽 팔을 잃고, 해적에게 붙잡히고, 노예로 팔리고, 주인에게 몸값을 지급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를 유명하게 한 작품이 바로 [돈키호테]다. 이 작품 하나로 그는 스페인의 국민작가가 되었고, ‘지혜의 왕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드리드의 중심가에 자리한 스페인 광장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세르반테스의 사망 3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이다. 그곳에 가면 세르반테스뿐 아니라 그가 써낸 불멸의 주인공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둘시네아도 만날 수 있다.




피가 흥건한 광장, 플라사 마요르

단일한 카톨릭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던 종교재판.

마드리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17세기 광장인 플라사 마요르는 사실 수많은 광기의 피가 겹겹이 스며 있는 곳이다. 한때는 투우장으로, 또 한때는 사형장으로, 그리고 한 시절은 종교재판장으로 쓰였던 이곳은 인간의 광기를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1480년부터 스페인에서 있었던 종교재판은 아라곤 왕국페르난도 2세카스티야 왕국이사벨 1세에 의해 시작되었다. 단일한 카톨릭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종교재판은 곧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개신교 이단자, 카톨릭으로 거짓 개종한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종교재판의 대상이었는데, 로마 교황의 대칙서를 받아 종교재판관이 진행한 이 재판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 재판이었다고는 해도 피고인에게는 변론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판결의 결과도 알려주지 않았다. 고문과 자백이 있을 뿐이었다. 처벌의 형태는 다양했다. 징역, 참수형, 교수형, 화형. 희생자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이토록 피로 얼룩진 광장은 현재 과거를 잊고 평화로운 관광객들의 집합지가 되어 있다.




미친 천재들의 기숙사, 레지덴시아 데 에스투디안테스

스페인의 젊은 예술가들을 그린 영화 [리틀애쉬]


폴 모리슨이 감독하고 로버트 패틴슨, 하비에르 벨트란, 매튜 맥널티가 연기한 영화 [리틀애쉬 Little Ashes]는 20세기 초반 스페인의 젊은 예술가들을 보여준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 시인 가르시아 로르까,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을 비롯한 젊은이들은 파시즘 직전의 자유주의 시대를 보내며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받으며 지적이고 예술적인 흐름을 만들어냈다. 우정은 미묘한 애정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궤를 벗어난 감정은 파국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천재성과 광기를 불태우고 과시했다. 그 시대를 스페인에서는 ‘은의 시대’라 부른다.


세 사람이 머물던 곳, 레지덴시아 데 에스투디안테스는 마드리드에서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거주하던 일종의 학생기숙사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밀집된 그곳은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이곳은 현재에도 중요한 문화센터로서 활발하게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콘서트와 전시 등 문화 행사들이 꾸준히 열리고 있는 한편에는, 지금도 스무 명의 젊은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머물며 기라성같은 이름의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미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를 만날 수 있는, 프라도미술관

프라도 미술관에는 미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있다. 천하의 달리가 그의 작품 옆을 지날 때마다 질투심에 불타 눈을 가렸다는 바로 그 보쉬. 그의 상상력은 남달라서, 그의 작품 [세속적 쾌락의 정원]은 서양 미술 전체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고, 또 가장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기도 하다. 펠리페 2세가 그의 팬이었던 덕분에 프라도 미술관은 보쉬의 패널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되었다. 덜덜란드의 화가이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만끽하려면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정석이다.


프라도 미술관에 가면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미친 돌의 추출]도 볼 수 있다. 1475년에서 148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작품은 미친 사람의 머리에서 광기의 돌을 꺼내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도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상징물을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탁자 위의 구근이다. 미친 사람의 머리에서 꺼낸 것은 광기의 ‘돌’이 아니라 바로 이 ‘구근’인데,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구근이 바로 광기의 상징이라고.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작품 [미친 돌의 추출]

그들 때문에 미치는 사람이 부지기수, 레알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를 그린 영화 [레알]의 포스터


마드리드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프로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 축구 클럽(Real Madrid Club de Fútbol)의 명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자자하다. FIFA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축구 클럽으로 선정된 이 팀의 자산가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밀리지만 세계에서 제일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축구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를 둘러싼 움직임이 순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화국 정부에 반대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은 극우적인 일인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를 이용했다. 국내로는 국민을 우민화하고 국외로는 자신의 정권을 홍보하는 데 활용했던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레알’이 의미하듯, 이 팀은 오랫동안 부유층과 권력자들의 팀을 자임해왔다. 그 때문에 마드리드의 또 하나의 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 정부의 팀, 나라의 수치”라는 가사가 든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을 비판했다.


레알 마드리드를 논란으로 밀어 넣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는 극렬 서포터인 ‘울트라 수르’이다.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고 나치 문양의 문신을 한 채 상대편 흑인선수가 공을 잡으면 원숭이 울음소리를 내어 야유하는 이들을 제재하기 위해 세계축구연맹과 유럽축구연맹이 나서기도 했으나, 어쩌랴, 반쯤 미친 그들에게는 주변의 이성적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꿈이 있다는 건 미쳐있다는 것, 페드로 알모도바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꿈을 위한 첫 걸음은 어린 시절 교육을 받던 수도원을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종종 몰래 나와 영화관으로 숨어들곤 했던 그는 결국 16살에 마드리드로 무작정 상경하게 된다. 그러나 프랑코 정권 아래에서 영화학교가 폐쇄되면서 영화감독을 향해 가는 그의 길은 역경에 처하게 된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는 전화국의 사무보조로 일하며 꿈을 삭여야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크 독재가 저물어가던 시절 활발하게 일어난 반문화 운동에 편승한 그는 이런저런 재미있는 일들에 뛰어들었다. 글램록의 패러디 듀오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렵게 월급으로 모은 돈으로 산 슈퍼 8밀리 비디오로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만든 단편영화들을 마드리드의 클럽이나 바에서 상영했는데, 기술적으로 사운드를 입힐 수 없어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틀고 자신이 변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의 첫 번째 장편 작품은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 1980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1년 반 동안 찍은 것이었는데, 배우와 스텝들의 경우 거의 모두 처음 영화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마드리드에 몇 개 없는 예술극장 중의 하나인 알파빌 극장에서 심야상영을 했는데, 여기서 번 돈으로 두 번째 영화 [정열의 미로]를 찍을 수 있었다. 현재 시네스 골렘으로 바뀐 그 작은 극장 덕분에 비로소 영화감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의 그의 행보는 익히 알고 있는 바, 수없이 많은 영화를 찍고 수없이 많은 상을 받았다. 자신의 꿈에 미쳐 있었던 한 소년은 현재 미친 듯 아름다운 작품들을 찍어내는 감독이 되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첫 영화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

성인의 두개골, 뼈, 그리고 말라버린 피. 엔카르나시온 왕립수도원

펠리페 3세의 부인 마르가레트


엔카르나시온 수도원은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수녀원이다. 1611년, 펠리페 3세의 부인인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트를 위해 세워진 이 수도원은 현재 16~18세기의 진기한 작품들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호세 데 리베라, 비센떼 까르두초, 까르레뇨 데 미란다, 안또니오 뻬레다, 그레고리오 페르난데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고야의 처남인 프란시스코 바예우와 루카 히오르다노의 작품도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유골함이 있는 방이다. 이 방에는 성인들의 두개골, 뼈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빤딸레온 성인의 굳은 피가 담겨있는 유리병이다. 매년 7월 27일, 즉 이 성인의 기일이 되면 말라버린 피가 녹아서 액체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건조된 피가 액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마드리드에 재앙이 닥친다는 의미라고. 실제로 굳은 피가 액체가 되기는 힘들터이니, 이 전설이 의미하는 바는 마드리드는 재앙이 끊이지 않는 저주받은 도시라는 뜻인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마드리드의 평화를 약속하며 굳은 피는 그날 하루 붉게 흐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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