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별을 보다

새벽 2시 반. 늦도록 수크 거리를 쏘다니다 설풋 잠든 여행자들이 화르륵 깨어나야 할 시간, 뒷골목의 호텔 창문에 하나둘 불이 켜지는 시간이다. 이집트의 어느 곳보다도 아스완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세계문화유산인 아부심벨을 보려고 아스완으로 모여든 여행자들은 새벽 3시부터 호텔을 도는 투어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물론 좀 더 늦게 시작되는 투어도 있다.





 

이집트에서 가장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세운 거대한 신전인 아부심벨 신전. 사막에 묻혀 있던 신전은 탐험가 벨조니에 의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일반적인 고대 이집트의 부조 석상과 달리 얼굴을 정면으로 조각한 것이 특징.

ⓒ 박경

우리 가족도 지난밤, 아부심벨 투어를 신청하려고 수크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소개하는 투어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작고 허름한 호텔을 돌며 흥정해 보았지만 제시하는 가격도 다 제각각. 투어의 질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계약을 했다. 그런데 같은 버스를 탔다고 해서 가격이 같은 게 아니라 다 흥정하기 나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어둠을 뚫고 한곳에 모인 버스들은 경찰차 'Convoy'의 호송 하에 아부심벨을 향해 세 시간도 넘게 줄지어 달려간다. 수년 전 아부심벨을 향해 가던 독일인 관광객들이 괴한들에 의해 살해됐다. 범인은 누비안들, 그들은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기관총을 난사한 것이다. 그 후 아부심벨로 가는 육로는 차단되고 비행기로만 접근하다 보니 비용이 너무 비싸 관광객이 뚝 끊겨 버렸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이집트로서는 육로 여행길을 다시 열 수밖에. 대신 경찰차의 호송 하에 육로 여행이 재개됐다.

차창 밖은 짙은 어둠뿐이고 선잠이 깼던 여행자들은 적당히 흔들리는 차 속에서 이내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나는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칠흑처럼 어두운 차창 밖으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후드득. 세상에 이런 별들은 처음이다. 이렇게 크게, 가까이서 빛나는 별들은 처음인 것이다. 나는 얼른 딸을 흔들어 깨웠다. 나보다도 더 별을 본 적이 없어 더 별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딸은 차창 가득 빛나는 별을 보더니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 아주 가끔은 휴양림 같은 곳에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꺾어 올려봐야 하는, 하늘 저 멀리 까마득히 먼 곳으로부터 오는 기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집트 사막을 몇 시간 달려 맞닥뜨리는 별들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 별들의 향연을 열고 있었다. 사막의 지평선은 멀고도 멀어, 버스 창 가득 별이 박혀 있고, 고개를 젖히지 않고 바로 내 눈높이에서 커다란 별들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별들이 너무도 크고 선명했고 저절로 별과 별들이 이어져 있어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책에서 본 별자리가 한눈에 들어올 판이다.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별을 보고 가슴이 설렌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아, 별을 보고 저 별을 꿈꿀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차 안은 불이 꺼져 있고 여행자들은 잠들어 있다. 사막의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아, 난 마치 별들 속에 버려진 존재처럼 아득함이 밀려왔다. 별을 보고 비로소 내 위치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저 별을 느끼지 못할 때는, 난 그저 평평한 땅 위에 발 딛고 사는,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저렇게 완전하게 빛나고 있는 저 별은 둥근 지구라는 작은 별 위에 내가 동그마니 서 있다는 걸 일깨워 준다.

딸과 나는 창밖의 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각자의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꿈을 잃어버린 건, 어쩌면 저 별을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설렘도 떨림도 더 이상 없는 건 내 마음속의 별을 일찌감치 밀어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던 시절은 진정 행복했을 것이다. 우린 이제 닿을 수 없는 것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해 버린 지 오래다. 저 어둠 속에서, 저 별들은 제 존재를 알리듯이 저렇게 와락 달려들고 있는데.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내 가슴 속으로 쳐들어 왔던 별은 그렇게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아부심벨에서 감 잡다





아부심벨 입구에 새겨진 부조.

ⓒ 박경

아부심벨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이제야 동 터 오는 아침.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인공호수 나세르호는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왕, 신을 꿈 꾼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지은 아부심벨 신전. '높이 20m의 람세스 상이 4개나 떡 버틴 암굴신전에 서면 그 거대함 때문에 압도당하고 말리라'며 미리 쫄았는데, 웬걸. 생각보다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그 앞에서 실컷 압도당하고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느끼고 장엄한 석상들에게 경의를 표할 만반의 준비가 다 돼 있었는데 김 팍 새버린 꼴이다(지금 와 생각해 보니 앞에는 나세르 호수가 펼쳐져 있고 주변에는 신전과 비교될 게 없었기에 그 크기를 실감하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싶다).

오히려 3300년이라는 장장한 세월을 넘어 나타난 여행자들에게 더욱 신기한 것은 따로 있다. 1960년대 초,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면서 아부심벨 신전은 수몰 위기에 처하게 됐다. 나세르는 배짱을 부렸다. '우리는 댐이 필요하다. 돈을 주지 않으면 신전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다'고. 이 정도면 자해협박 수준이다. 애가 탄 유네스코는 위대한 유산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결국 아부심벨 신전은 강바닥에서 65m 위로 옮겨지는 엄청난 이동을 하게 된다.

50여 개국의 기술자들이 동원돼 신전의 암벽에 1만7000개의 구멍을 뚫고 무게 30톤에 이르는 천여 개의 돌덩이로 잘라 재조립했다. 바위산 덩어리를 조각조각 내어 옮겨 맞추는 데만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저 큰 걸 일일이 다 조각내서 다시 끼워 맞췄다고? 저렇게 큰걸?' 비로소 크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냥 보면 그 크기를 모르겠는데 그걸 잘라내 옮긴다고 생각하니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감(感)은 그렇게 왔다. 천만 원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못 잡던 아이들에게 그건 떡볶이 5000인분과 같은 거라고 하니 비로소 입이 떡 벌어지는 것처럼.

람세스 2세 석상들 사이로 난 문을 통해 들어가면, 파라오들의 석상이 늘어서(도열해) 있고 벽화와 상형문자들이 빼곡하다. 또한 카데쉬(지금의 시리아) 전투의 모습들이 벽에 새겨져 있는데, 몇몇 학자들은 승리하지도 못한 카데쉬 전투를 대대적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람세스 2세는 자기현시욕이 강한 왕이었다고 평한다.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현실을 지배하려고 한 왕이었다고.





람세스 2세의 석상은 높이 20m에 이른다. 람세스 2세의 다리 옆에는 그의 부인 네페르타리 조각상이 보이는데, 신전 정면에 왕과 함께 왕의 부인이 조각된 것은 아부심벨 석상이 처음이라고 한다.

ⓒ 박경

그런 야심 찬 왕에게도 순정은 있었는지, 이집트 최초로 왕비를 위한 신전을 짓기도 했다. 여러 왕비 중에서도 네페르타리를 특히 사랑한 람세스 2세는 아부심벨 옆에 네페르타리 신전을 함께 만들었다.

아침 햇살이 아부심벨과 네페르타리 신전에 가득 쏟아진다. 저 햇살은 일 년에 딱 두 번 아부심벨 안쪽으로 깊이 스며든다. 놀랍게도 그 빛은 어둠의 신인 프타만을 빼고, 나란히 있는 아문과 하라크티 조각상만을 비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신전이 원래의 위치를 벗어나 새롭게 자리했는데도 그 빛의 기적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차 속에서 그 아침 햇살은 졸음 쏟아지는 내 얼굴 위에도 살포시 내려앉았다. 기적처럼. 저 태양은 천 년보다도 이천 년보다도 삼천 년, 오천 년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그렇게 변함없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 대신전(왼쪽 아부심벨 신전)과 소신전(오른쪽 네페르타리 신전)당시의 규범을 깨고 왕의 부인이 왕 옆에 조각되어 있다는 점과 신전 안팎에 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람세스 2세가 네페르타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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