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um 악숨
고대 왕국의 수수께끼


먼 옛날, 시바의 왕국에 한 여왕이 있었다. 그녀는 이스라엘 솔로몬왕의 명성을 전해 듣고 그를 시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상인들과 함께 향료와 금, 보석을 가득 싣고서. 여왕은 왕에게 자신이 궁금한 것을 질문했고 솔로몬왕은 지혜로운 답변을 주었다. 시바의 여왕은 왕의 지혜에 감탄해 가져간 보물을 선물하고 왕과의 하룻밤으로 아들 메넬리크를 낳아 에티오피아로 돌아왔다. 22세가 된 메넬리크는 예루살렘으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의 환대를 받고 3년간 예루살렘에 머문 메넬리크에게 솔로몬은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지만 메넬리크는 고향으로 돌아와 악숨에 수도를 정하고 악숨 제국을 세웠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보관한 언약궤Ark of the Covenant와 함께였다.

에티오피아 건국의 역사적 토대가 된 이 전설은 구약성서로 알려진 히브리 경전의 열왕기 상上, 그리고 역대 하下에 나오는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 이야기에서 나왔다. 물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성서에 없다. 삼국유사에 단군신화가 기록된 것처럼 13~14세기에 작성된 에티오피아의 대서사시 '케브라 네가스트Kebra Negast'에는 시바의 여왕이 마케다Makeda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솔로몬과 메넬리크로부터 비롯된 에티오피아 왕조의 내력이 담겨 있다. 종교의 역사에 기록된 사실과 이야기는 숨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이 솔로몬왕의 지혜와 시바 여왕의 미모를 물려받은 민족임을 의심치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악숨의 '시온 성 메리 교회St. Mary of Zion Church'의 지성소(하느님이 임재한다는 성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약궤가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성한 혈통을 이어받은 수도사 한 사람만이 관리하고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거기에 정말 언약궤가 있는지 누구도 확인할 길은 없다. 에티오피아 곳곳에서는 '타보트Tobot'라 불리는 언약궤의 모형을 만들어 각 교회마다 상징적으로 보관하고 주요한 종교적 행사 때만 일반에게 공개한다고.

4세기에서 6세기경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사이 종교적 갈등의 역사 속에 세워졌던 시온 성 메리 교회는 1965년 셀라시에 1세에 의해 옛 교회 근처에 새롭게 건축됐다.
악숨 제국은 한때 로마, 한나라, 페르시아와 함께 4대 제국으로 불릴 만큼 강대국이었다. 금과 상아, 철광석을 생산해 아프리카 전역과 로마, 터키와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4세기에는 기독교를 국교화 했고 5세기에는 수도원 제도를 마련했다. 10세기 이후 대가뭄으로 쇠망하기까지 화폐, 건축물, 문자 등 악숨 제국은 그들만의 위대하고 고유한 문화를 탄생시켰다.

기원전 1,000년부터 10세기까지 만들어진 악숨의 오벨리스크군은 악숨 제국의 대표적인 창조물이다. 오벨리스크는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기념비로, 그 크기로 왕의 힘을 나타낸다. 오벨리스크의 지하에는 왕의 무덤이 있다는데 무게 533톤, 높이 33m의 세계에서 가장 큰 오벨리스크 중 하나는 안타깝게도 지진으로 무너진 상태다. 중간에 자리한 무게 180톤, 높이 27m의 오벨리스크는 1,7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1937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의해 강탈돼 로마의 콜로세움 근처에 세워져 있다가, 2005년 4월19일 문화재 반환운동에 의해 67년 만에 에티오피아로 돌아왔다. 지지대를 받치고 있는 가장 오른쪽의 오벨리스크는 2,000년간 한자리를 지켜 왔다.

"오벨리스크가 다시 세워지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언젠가 복원될 거예요." 동행했던 가이드 시세이는 오벨리스크가 아프리카 자주성의 상징이라고 했다. 악숨이 시바 여왕의 영토였음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발길을 옮긴 곳은 둔구르Dungur 유적이다.
여왕이 거했다는 왕궁터는 오랜 세월 보수를 거듭했다. 터만 남은 토대 위에 높이 2~3m의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형태를 복원시켜 놓았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시바의 여왕이 목욕을 하고 아궁이에서 밥을 짓던 이곳을 신성하게 여긴다. 사실 고고학적으로 둔구르 유적은 8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시바의 여왕 시기와는 1,700년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역사적인 신빙성이나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에티오피아인들에게는 전설이 곧 진실이다. 그들의 믿음은 종교적 신앙이자 역사적 자긍심이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놓지 못할 희망이다. 전설은 힘이 세다.

악숨에서 만난 아이들. 거리낌없이 다가와 반가운 미소를 보내 주었다

이른 아침 악숨 거리는 고요하지만 활기차다

시온 성 메리교회에 있는 양피지로 된 16세기 성서. 고대 기즈어로 쓰여져 있다

이탈리아로부터 67년 만에 반환된 오벨리스크

지진으로 무너진 높이 33m의 오벨리스크를 여행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Lalibela 랄리벨라
아프리카의 예루살렘


7세기 악숨 제국과 함께 기독교가 쇠퇴의 길을 걷는 동안 이슬람은 아라비아반도를 시작으로 이집트와 수단 등으로 세력을 팽창시켜 나갔다. 악숨 제국이 붕괴되고 긴 암흑기가 이어졌던 에티오피아는 13세기에 이르러서야 기독교 왕조인 자그웨Zagwe 왕조로 다시 부활한다. 300년간 수도이기도 했던 랄리벨라의 전성기는 에티오피아 7대 국왕인 랄리벨라1181~1221년가 통치하던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초다.

랄리벨라는 에티오피아인들이 가장 거룩한 장소로 여기는 곳이다. 이유는 에티오피아 기독교 유적의 걸작품인 암굴교회군群 때문이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이곳은 관광객은 물론 예복인 흰 셰마를 두른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암굴교회로 가기 위해 해발 3,000m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났다. 풍광에 눈을 뺏기고 정겨운 마을을 지나 정상의 뷰포인트에서 잠시 멈추면 랄리벨라의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랄리벨라의 원래 이름은 로하Roha였다. 정설에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예루살렘으로의 순례가 어려워지자 제2의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서 암굴로 이루어진 교회를 만들었다지만 전설은 랄리벨라왕이 꿈에서 로하에 제2의 예루살렘을 건설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만든 것이라 전한다. 신앙심이 깊었던 랄리벨라왕은 직접 교회 건설을 감독하며 팔레스티나와 이집트의 기술자 등 4만명을 동원해 교회를 만들었다. 실제 교회는 120년에 걸쳐 완성된 것인데, 전설은 천사들이 밤낮으로 도와 23년 만에 완공됐다고 전한다.

암굴교회군은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거대한 암반을 통째로 위로부터 수직으로 깎아내 만들었다. 예루살렘을 본떠 요르다노스강요단강 Yordannos이라 이름 지은 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각 5개, 언덕에 1개가 세워졌다.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부드러운 적갈색의 응회암 암반을 깎아내 만든 11개의 교회는 모두 미로 같은 지하 통로로 연결된다.

가장 규모가 큰 교회는 '구세주의 집'이라는 뜻의 '메드하네 알렘 교회Bet Medhane Alem'다. 세로 33m, 가로 22m, 높이 11m로 암반을 통째로 깎아 72개의 4각 기둥으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데, 이곳을 포함한 모든 교회는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현재 철제 지붕과 보호 기둥을 세워 보수 중이다. 교회 옆 바위벽에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빈 무덤이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리암 교회Bet Maryam'는 랄리벨라왕이 가장 좋아했다고도 전해지는 곳인데, 벽에는 악숨 왕조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모든 교회를 둘러보는 입장료는 50달러, 제대로 보려면 1박2일은 걸린다니 선택은 '기오르기스 교회Bet Giyorgis'일 수밖에 없었다.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2m의 정 십자가 모양으로 암반을 파 내려가며 지었다는 이 교회는 그 우아한 건축미가 단연 최고라 인정받는다. 특히 땅 표면에서 보이는 세 겹의 십자가 모양이 압권이다. 조심스럽게 다다른 입구에는 죽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겠다는 어느 사제의 유해가 암굴 속에 자연 상태 그대로 미이라가 된 채 안치되어 있었다. 순례객들로 들어찬 내부에는 백마를 탄 채 창을 들고 용을 무찌르는 기오르기스 성인이 성화 속에서 교회를 수호하고, 랄리벨라왕이 사용한 도구들이 들어 있다는 올리브나무 상자도 있다.

매년 에티오피아의 성탄절인 1월7일이 되면 전국에서 순례객들이 이곳 암굴교회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사제가 축복한 빵을 나눠 먹으며 기원후 33년부터 이어져 오는 축제를 즐긴다고.

1520년부터 6년간 에티오피아에 머물며 견문을 정리한 포르투갈의 수도사 프란시스코 알바레스Francisco Alvares는 <프레스터 존 왕국의 비밀A True Relation of the Lands of Prester John of the Indies>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이 불가사의한 암굴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교회들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나를 지치게 할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을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니까." 랄리벨라는 지금도 그렇게 순례자들을 기다린다.

해발 약 3,000m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랄리벨라의 풍광

아담의 무덤이라는 이름의 상징적인 장소를 통과하는 순례객. 암굴교회 곳곳에 성서 속 인물의 이름을 붙인 상징적인 장소가 있다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좁은 통로

랄리벨라의 아름다운 풍광

정 십자가 모양이 신비로운 성 기오르기스 교회

메드하네 알렘교회 안에서 사제가 800년 전 십자가를 들어 보여 주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독자적인 문화와 전통,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해발 2000미터 고원의 나라. 기기묘묘한 바위 봉우리들은 신들이 놀다 던져두고 간 체스 판의 말들일까.

아프리카에서 가장 풍부한 역사와 문화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이며 솔로몬 왕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3천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진 초기 기독교 왕국이었다. 특히 에티오피아 북부지역은 거대한 바위를 쪼개 만든 중세의 교회로 유명한 티그레이와 랄리벨라, 16세기의 성 곤도르, 고대 석주들이 줄지어 선 악숨, 타나 호수와 거대한 블루 나일 폭포 등 풍부한 문화 유적과 빼어난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시미엔산의 봉우리들은 오랜 침식활동으로 인해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드라마틱한 경관과 희귀 동식물

그 중에서도 곤다르(Gondar) 지역 북부에 자리 잡은 시미엔(Simien)산 국립공원은 드라마틱한 경관과 희귀 동식물로 인해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트레킹 지역이다. 시미엔산은 동쪽과 남쪽으로는 거대하고 완만한 평원을 이루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들쑥날쑥 솟은 가파른 산봉우리와 깊은 계곡을 형성한다. 사천만 년 전의 강력한 지진 활동으로 분출된 용암, 오랜 세월에 걸친 침식활동은 기묘한 형상으로 솟구친 바위봉우리, 가파른 절벽, 장대한 골짜기와 깊이를 알 수 없는 협곡을 만들어냈다. 1925년에 이곳을 여행했던 영국인 여행가 로시타 포브스(Rosita Forbes)는 먼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이 거대한 바위탑들로 체스 놀이를 했을 거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최고봉인 4543미터의 라스 다쉔(Ras Dashen)은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이곳의 트레킹 코스는 대부분 완만하고 평이하다. 시미엔산은 자연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에만 서식하는 멸종 위기 야생 염소 왈라 아이벡스 수백 마리와 만 여 마리의 개코원숭이(겔라다 바분)가 서식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에티오피아 늑대, 시미엔 여우, 자칼 등을 비롯한 고유종의 포유류와 수염독수리, 수리부엉이 등 137종 이상의 조류, 자이언트 로벨리아 등의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개별 트레킹 시에는 야생동물 위험 탓에 총을 든 '스카우트'를 고용해야 한다.

길이 500미터로 시미엔산에서 제일 큰 폭포인 '진바 폭포'


가파른 오르막 거의 없는 완만한 트레킹

길의 시작점은 드바라크(Debark)라는 작은 마을이다. 걷기 시작한 후 처음 만나는 이들은 개코원숭이 무리다. 황갈색 정장에 붉은 넥타이를 맨 듯한 이 원숭이 무리가 고개를 숙인 채 진지하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일당을 받고 고용된 잔디 뽑기 노동자로 보일 정도다. 푸른 보리밭과 초가지붕의 붉은 흙집들이 나지막이 늘어선 마을을 지나 첫 야영지로 선택된 곳은 산카베르(Sankaber). 다음날은 노새와 노새 몰이꾼을 고용해 짐을 싣고 걷는다. 기치(Geech)로 향하는 길목에서 야생 노루와 개코원숭이 떼들과 다시 만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길이가 5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진바 폭포(Jinbar Waterfall). 화산의 융기로 생겨난 폭포는 웅장한 물줄기를 직류로 쏟아내고 있다. 안개가 몰려오는 산허리의 절벽길을 걷거나 맨발로 얼음처럼 찬 시냇물을 건너기도 한 끝에 오늘의 숙박지인 암하라 마을에 들어선다. 오후가 되면 동네 아이들이 무언가 푼돈이라도 마련하려고 퍼덕거리는 닭이며 채소 따위를 들고 텐트로 찾아온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밤이 내리면 텐트 촌에는 몇 마리 여우들이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시미엔산에 서식하는 희귀한 거인식물 '자이언트 로벨리아'.


야생 그대로의 자연을 즐길 수 있어

셋째날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자이언트 로빌리아가 듬성듬성 자라는 초지대를 걸어 이멧 고고(Imet Gogo)로 향한다. 시미엔산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난 3926미터의 봉우리다. 능선의 끝에 솟구친 이 봉우리는 삼면이 가파른 절벽이다. 마음 속 어딘가 답답한 응어리라도 남아있었다면 단번에 깨끗이 씻겨 나갈 것만 같은 전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절벽과 기괴한 형상으로 솟은 바위산들, 아찔한 경사의 절벽에서 풀을 뜯고 있는 그 드물다는 야생 산양들. 배낭을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아 그 모든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기분이 든다. 내려오는 길에는 근처의 사하 봉우리(Saha 3785미터)와 카다빗(Kadavit 3760미터)에도 들른다.

마지막 날에는 숲 사잇길을 걸어 시내로 내려가 시냇물을 건넌 후 계속 이어지는 급하지 않은 오르막길이다. 도중에 양치는 아이들을 만나 피리연주 한 자락을 들으며 잠시 쉬기도 한다. 아이벡스나 수염수리 등의 야생동물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장소인 체넥(Chenek)을 거쳐 브와힛 봉우리(Bwahit 4430미터)까지 가면 3박 4일의 트레킹 코스를 다 돈 셈이 된다. 운이 좋다면 국립공원을 통틀어 42마리밖에 살지 않는다는 에티오피아 늑대와 마주칠 수도 있다.

시미엔산 트레킹 내내 만난 '양치기 소년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천진한 산골 아이들이다.

코스 소개
시미엔산 국립공원은 곤다르로부터 101㎞,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로부터는 850㎞ 정도 떨어져 있다. 해발고도는 1,900m에서 4,543m 내외. 유네스코가 지정한 자연유산이자 희귀 야생동물 서식지다.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그렇기에 야생 그대로의 자연을 즐길 수 있어 더 매력적이다. 길은 저지대의 작은 마을과 보리밭을 지나 가파른 협곡과 경사지의 수직 절벽으로 이어진다. 산카베르에서 기치까지는 4-5시간, 기치 캠프에서 이멧 고고를 경유해 첸넥까지는 7-9시간 소요. 첸넥에서 브와힛 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는 6킬로미터로 2-3시간 소요. 시미엔산 국립공원은 드바라크부터 첸넥까지 도로가 깔려 있어 하루부터 열흘까지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비행기나 버스(이틀 소요)로 곤다르까지 이동한다. 곤다르의 여행사에서 장비나 차량을 빌리는 일부터 가이드와 쿡 섭외까지 전부 가능하다. 곤다르에서 드바라크까지는 4시간 소요.


여행하기 좋은 때
건기인 12월부터 3월까지가 가장 좋다. 10월은 우기가 끝난 직후여서 가장 푸르고, 야생화들이 피어나는 달이다. 우기인 6월부터 9월은 종종 비가 내리고 안개가 피어 풍경이 가려지고, 길이 진흙구덩이가 된다. 하지만 한두 차례 세차게 퍼붓는 비이기 때문에 트레킹은 가능하다.


여행 TIP
개별적인 트레킹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에는 텐트 및 식량을 다 지고 가야 한다. 노새와 몰이꾼을 고용해 짐을 옮기는 방법도 있다. 산카베르를 제외하고는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가이드와 포터를 고용하는 편이 낫다.

ETHIOPIA

아프리카의 동쪽 끝, 검은 땅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 기아와 분쟁으로 기억되는 그곳은 장엄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땅이었다. 낮은 자리에서도 강인한 걸음을 이어 온 그들의 삶에 고개가 숙여졌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본산 트리니티 대성당

●Addis Ababa 아디스 아바바
고원 위에 선 아프리카의 심장


해발 2,300m. 우기의 끝을 알리는 비가 간간이 적실 뿐 10월의 아디스 아바바는 쾌청했다. 이곳 사람들은 아디스 아바바를 아디스라고 부른다. 아디스의 시내 중심가는 중국이 투자했다는 경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아프리카의 정치·외교 수도답게 시내 북쪽에는 세계 각국 대사관과 유엔 아프리카경제총회본부 그리고 호텔 등이 밀집해 있지만 주변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에티오피아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아디스 아바바대학을 스치듯 지나쳐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규모. 그러나 이곳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인류 시조의 화석 '루시Lucy' 때문이다. 3,000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자부심은 이 인류의 기원까지 닿아 있다. 학자들은 에티오피아가 속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부터 아시아와 유럽으로 인류가 퍼져 나갔다고 주장한다.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약 320만년 전의 것이다. 1m 정도의 키에 20세 전후의 여성으로 알려진 '루시'는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화석이 발견될 당시 발굴단의 캠프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왔단다.

박물관 정원에는 메넬리크 2세MenelikⅡ, 1844~1913가 1896년 아두와 전투에서 이탈리아에 맞서 승리하는 데 사용했다는 대포도 전시되어 있다. 그는 에티오피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부족간의 대립으로 분열된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 근대국가로서의 에티오피아의 기초를 다진 한편, 1887년에 수도를 엔토토로부터 아디스 아바바로 천도했다.

해발 3,000m의 엔토토산Mt. Entoto까지는 찻길이 잘 나 있어 어렵지 않게 올랐다. 길목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빽빽했다. 메넬리크 2세가 고산지대에 잘 적응하는 유칼립투스 나무를 호주로부터 가져와 심었다는데, 바람을 타고 그 향기가 무척이나 싱그러웠다. 자동차 매연으로 답답했던 시내 중심과는 사뭇 공기가 달랐다. 예라루산, 즈콸라산, 사파타산이 도시를 두르고 호위무사처럼 솟아있는 아디스 아바바. 높은 탁상지인 엔토토는 군사적인 요지로는 이상적이었지만 기온이 낮고 땔감용 나무가 부족해 수도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족들에게 엔토토산 기슭의 땅을 나눠 주고 그들이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꽃'이라는 뜻의 아디스 아바바가 새로운 수도로 탄생된 것이다.

메넬리크 2세의 개혁을 이어 간 것은 1930년부터 40여 년간 재위에 오른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Ⅰ, 1892~1975다. 쿠데타로 즉위한 그는 1974년, 또 다른 쿠데타로 실권하기까지 아프리카통일기구(AU)를 세우고 에티오피아를 국제연맹과 UN에 가입시키는 등 에티오피아의 근대화를 다졌다. 1960년대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 올렸는데,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던 시절이다.

셀라시에 국왕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왕실 근위대였던 강뉴 부대Kangnew Battalions 6,037명을 우리나라에 파병한 장본인이다. 당시 철원, 춘천, 화천, 양구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이 657명에 달한다. 셀라시에 국왕이 1931년에 세운 트리니티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121명 용사들의 유해와 함께 그 자신도 묻혀 있다. 하일레 셀라이시에라는 이름은 암하라어로 '삼위일체의 힘'이라는 뜻이다. '성삼위일체 성당'으로도 불리는 트리니티 대성당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본산이다. 총대주교의 즉위식과 그가 집전하는 미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조각상이 배치된 유럽 스타일의 외관은 무척 아름답다. 내부에는 성서의 주인공들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빛나고, 셀라시아 황제와 왕비가 미사를 드릴 때 앉았던 화려한 왕좌도 그대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의 기도시간에만 개방하지만 트리니티 대성당은 하루 종일 열려 있다.

트리니티 대성당
P.O.Box 3137, Addis Ababa
251-11-1233518

www.trinity.eotc.org.et
입장료 100비르

국립박물관 2층에 전시된 가로 6m, 세로 3m 성' 메르크리우스St. MERCURY'의 성화 중 일부. 17세기 작품으로 작자 미상이다

국립박물관은 총 3층으로 1층에는 고대유물, 2층은 회화, 3층은 전통민속품이 전시되어 있다

인류의 시조 화석인 루시

엔토토산에서 바라본 아디스 아바바 전경

에티오피아 정교회 의 사제

●Ethiopian Coffee커피

'우애, 평화, 축복' 에티오피아 커피

커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는 음식이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다 커피를 마신다. 아프리카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커피가 많이 나는 나라다.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에는 850년 경 '칼디'라는 이름의 염소 목동이 커피열매를 처음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분나Bunna'라고 부른다.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 즉 '커피 세리모니Coffee Ceremony'라고 하는 전통 커피예법이 있는데, 에티오피아만의 특별한 문화다. 거리나 공항, 관광지나 호텔 주변, 레스토랑 등 어디를 가도 분나 세리모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노점에서 한잔에 10비르 내지 20비르, 우리 돈 500원, 1,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세레모니의 과정을 음미해야 한다. 노점에서도 최소 20분 이상은 기다려야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고 가정에서는 전통에 따라 손님을 대접할 경우 1시간 이상 소요된다.

분나 세리모니는 손님에 대한 예우이고 친목의 시간이다. 케트마Ketma라는 나뭇잎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행해지는 분나 세리모니는 먼저 손님 앞에 송진이나 유칼립투스를 태워 향을 피워 신성함을 표한다. 그리고 팬에 커피콩을 볶고 나무절구에 빻아 전통 주전자인 '제베나Jebena'에 넣은 다음 달아오른 숯 위에서 부채질하며 끓여낸다.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시니Cini'라는 손잡이가 없는 작은 잔에 커피를 따른다. 커피전문점에서 만들어내는 커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성이 그 한잔에 담긴다.

에티오피아는 커피 생산량의 절반을 국내에서 소비한다. 커피 애호가들이 최고라고 말하는 예가체프, 히라르, 시다모 등 이름난 상품명들은 에티오피아 커피의 주요 생산 지역 이름이다. 그러나 한때 가장 돈이 되는 작물이라 검은 황금으로도 불리던 커피 생산은 주춤해진 실정이다. 커피는 심은 후 5년이 지나야 수확이 가능하고 그것도 1년에 한 번밖에 수확할 수 없는데, 작황이 좋지 않아 먹고 살아야 하는 가난한 농가들은 재배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나마 1등급 원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세계적인 로스팅 회사가 독점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규제 하에 일정 품질 이상의 커피는 전량 수출하고 정작 국민들은 질 좋은 커피를 먹지 못하는 것이 현실. 깊어 가는 가을만큼 진한 예가체프를 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들이킬 수만은 없는 이유다.

손잡이가 없는 전통잔 '시니'에 커피를 따르기까지는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악숨 공항에서 경험한 분나 세리모니는 커피를 끓이던 달구어진 숯 위에 송진 덩어리를 올려 향을 피우면서 시작됐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원두 250g 한봉지에 보통 3,000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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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line
에티오피아항공의 인천 취항은 한국과의 수교 50주년 기념일인 2013년 6월19일 이뤄졌다. 최신기종 드림라이너B787를 보유하고 현재 홍콩을 경유하는 인천-아디스 아바바 노선이 주 4회(월·수·금·일) 운항 중이다. 비행시간은 약 14시간. 오후 9시에 인천을 출발해 아디스 아바바에 다음날 오전 6시35분에 도착하며, 홍콩에서 1시간가량 대기한다.
02-733-0325 www.ethiopianairlines.co.kr

HOTEL
랄 호텔Lal Hotel & Spa
랄리벨라의 중심부에 자리한 랄 호텔은 105개의 객실 모두가 독립된 에티오피아 전통가옥 형태다. 수영장과 사우나실, 레스토랑과 바, 수영장을 갖추고 2층 객실의 테라스 뷰데크에서 거리를 바라볼 수 있어 한결 여유롭다. 랄리벨라에 있는 16개의 호텔 가운데 가장 많은 객실을 갖추고 있어서 특히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한다. 암굴교회는 물론 주변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와도 가까운 거리라 이동에 따른 피곤함이 없다. 태양열을 이용해 온수를 공급하며 마사지 서비스도 가능하다.
Amhara Region, North Wollo, Lalibela 251-11-5508870

RESTAURANT
탑뷰Top View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아디스 아바바에는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곳이 많다. 이스라엘대사관 근처의 탑뷰 레스토랑은 그 이름처럼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해 있다. 3대를 이어오는 아디스 아바바 최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중 하나로, 파스타 가격은 종류에 따라 다른데, 평균 5,000원 정도. 소스가 풍성하지 않기 때문에 토마토스파게티나 까르보나라보다는 마늘과 고추, 올리브오일로 맛을 낸 알리오 올리오가 입맛에 잘 맞는다. 알리오 올리오의 가격은 3,000원 정도.
251-11-6511573

2000 하베샤 레스토랑2000 Habesha Cultural Restaurant
에티오피아 전통식을 맛볼 수 있는 아디스 아바바 최고의 식당이다. 식당 외관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모두 전통양식으로 디자인해 에티오피아의 느낌이 물씬 난다. 에티오피아항공과 파트너십을 맺은 곳이라 서비스 면에서도 신뢰가 가는데, 저녁 7시30부터 10시30분까지 전통 공연도 펼쳐진다. 30여 개의 각기 다른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데 공연의 수준이 매우 높다. 볶은 채소요리, 코티지 치즈, 쇠고기, 양고기, 채소 등 종류별 스튜와 *인제라가 마련된 뷔페식이 대표메뉴다. 입구에서 가벼운 검색을 거쳐서 입장한다.
Bole, K03/05, Addis Ababa 251-11-6182253

*인제라Injera | 에티오피아의 주식으로 에티오피아의 곡물인 테프Teff 가루에 물, 소금, 효모 등을 넣고 발효시켜 둥글넓적하게 부친다. 인제라는 접시 위에 펼쳐 고기나 채소를 넣은 매콤한 스튜인 와트wat를 얹은 다음, 다른 인제라를 손으로 뜯어 와트를 싸 먹는다. 스펀지처럼 가벼운데 맛은 발효시켜 약간 시큼하다. 매운 스튜와 잘 어울려 처음에는 어색해도 이내 그 맛에 끌린다.

TRAVEL & LIFE

기본정보
에티오피아의 날씨는 2,000m 이상의 고지대의 경우, 16~22℃로 연중 쾌적하다. 2~3월은 소우기, 4~5월은 온건기, 6~9월은 대우기, 10~1월은 냉건기다. 국민의 약 43%가 에티오피아 정교를 믿고, 무슬림이 34%다. 공용어는 암하릭어로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통용된다. 여행시 비자는 볼레국제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받으면 된다. 수수료는 USD20다. 화폐 단위는 비르birr로, 1달러가 약 20비르다. 대부분 220V를 사용하는데, 다른 경우도 있어 멀티어댑터를 꼭 챙겨 가는 게 좋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예방접종과 고산병
에티오피아는 입국 전 황열병 예방접종이 필수다. 노란색 접종 증명서를 입국 시 여권과 함께 지참해야 한다. 접종 후 근육통, 미열 등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늦어도 출국 10일 전에는 접종하는 게 좋다. 고지대에서는 필요 없지만 저지대를 여행할 경우에는 말라리아 예방약도 챙기도록 한다. 랄리벨라는 해발 약 2,600~2,800m로 개인차에 따라 숨이 차고 어지러운 고산병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선물을 준비하세요
유적지나 호텔 근처에는 아이들이 기념품을 팔거나 돈을 요구하며 다가온다. 사탕이나 초콜릿보다 볼펜을 건네면 특히 좋아한다. 현지인들의 사진을 찍을 때는 감사의 뜻으로 10비르 정도 건네는 것을 잊지 말자.

암굴교회 중 하나인 마리암 교회의 내부. 모든 교회 내 카메라 플래쉬는 금물이다

랄리벨라 암굴교회는 성지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트리니티 대성당에서 만난 정교회 신도. 교회의 관리를 맡고 있다고 했다

랄리벨라의 한 기념품가게에서 만난 모자. 생후 6개월된 아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정교회의 미사는 사제가 집전하는 기독교 양식이지만 양손을 위로 받드는 것은 이슬람식 기도다. 찬송을 할 때는 아프리카 토착 리듬의 영향으로 박수를 친다

오벨리스크 앞에 자리한 가옥 창가에서한 주민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크루즈 타고 가는 이집트 신전
클레오파트라 신혼여행길에서 람세스와 마주치다

(위) 사막의 나라인 이집트에 이런 물과 풀과 나무가 있다. 나일크루즈의 출발지 중 하나인 이집트 남부의 휴양도시 아스완의 모습. 관광객들은 전통돛단배인‘펠루카’를 타고‘필레신전’이 있는 아길키아섬으로 갈 수 있다. (아래) 이집트 최대 유적지 룩소르 시내에 있는‘룩소르 신전’. 둘째 탑문을 지키고 있는 람세스 2세 상 뒤로 높이 19m의 기둥 14개가 두 줄로 서 있다. /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제공

곧 겨울이다. 추울 때는 '무조건' 따뜻한 곳이 좋다. 외투를 벗고 티셔츠 바람에 이국 풍경을 구경하거나 수영을 즐기거나 쇼핑에 빠지는 맛은 무엇에 비할 수 없다. 주말매거진이 올겨울 피한(避寒)에 적합한 해외 여행지들을 모아 특집으로 꾸몄다. 추위 나기에 좋은 국내 여행지들로 특집 2탄도 준비 중이다.

여기는 나일(Nile). 피라미드, 스핑크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신전(神殿)…, 이집트 고대문명을 잉태하고 키운 젖줄. 오늘 이 나일에는 크루즈선들이 떠다니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신혼여행을 위해 배를 띄웠던 이곳에서 오시리스(죽음과 부활의 신)·이시스(모든 파라오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최고의 여신)·호루스(왕권 수호신)와 람세스·핫셉수트 파라오를 만난다. 나일크루즈를 타고 체험하는 5000년 문명의 정수(精髓), 바로 거대 신전들이다.

◇아스완(Aswan)…필레 신전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에서 80실 규모의 크루즈선에 올라탔다. 나일강 상류인 이 도시에서 하류 쪽으로 내려가며 중간중간 유적이 있는 도시들에 내려 관광하는 일정. 반대편도 코스도, 왕복 코스도 모두 가능하다.

'아스완댐'으로 유명한 여기에선 '필레(Phille) 신전'이 우릴 맞이한다. 2300여 년 전 넥타네보 1세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오시리스신의 부인으로, 현명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시스 여신에게 바쳐졌다. 원래는 클레오파트라·카이사르 커플의 신혼여행지로 알려진 필레섬에 있었다. 그러나 아스완댐이 만들어지면서 이 섬은 수몰됐다. 신전은 유네스코의 지원 아래 4만여 개 조각으로 나눠져 10년 공사 끝에 1980년 인근 아길키아섬으로 옮겨 세워졌다. 높이 18m 폭 5m의 대형 탑문(塔門), 36개의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복도, 이시스·호스·파라오를 새긴 거대한 돌새김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아스완 강변에 정박한 크루즈선에서 필레 신전을 가는 길도 즐겁다. '펠루카'라는 이집트 전통 돛단배를 타고 20~30분 정도 간다. 기온은 30도를 웃돌지만 습도가 낮은 탓에 강바람은 상쾌하고 신선하다. 펠루카로는 아스완 지역 나일강 유역을 일주할 수도 있다. 배 이용료는 공시가가 1시간에 130이집트파운드(£E·약 2만4000원). 그러나 뱃사공에 따라 300~500£E를 부르기도 한다니 '흥정'이 중요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콤옴보(Kom Ombo)…콤옴보 신전

아스완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아침에 출발해 북쪽으로 50㎞쯤 올라가면 나오는 도시 콤옴보. 이곳에 '콤옴보 신전'이 있다. 크루즈선이 정박한 곳에서 5분만 걸어 올라가면 기념품 상가를 만나고 곧이어 신전이다. 22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악어의 머리를 지닌 물의 신 '소베크'와 매 머리 모양의 하늘의 신 '하로에리스'를 섬긴다. 모시는 신이 둘이라서인지 입구를 비롯해 홀, 대제사장이 예배를 드리던 지성소(至聖所) 등이 다 둘이다. 부조가 새겨진 벽에는 고대의 수술 기구, 뼈 절단기, 치과 도구 등도 그려져 있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가 된다.

◇에드푸(Edfu)… 호루스 대신전

콤옴보에서 다시 북쪽으로 50㎞를 더 올라가니 '에드푸'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선착장에 줄지어 서 있는 마차를 탄다. 마주보고 있는 좌석에 각각 2명씩, 4명이 한 대에 탈 수 있다. 요금은 130£E(약 2만4000원). 우리의 읍(邑) 정도인 에드푸의 마을 곳곳을 구경하며 10여분쯤 가면 신전이다.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둘째로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는 '호루스 대신전'.

로마 지배하의 프톨레마이우스왕조 때인 기원전 237년부터 짓기 시작해 180년에 걸쳐 완공했다. 폭 36m, 높이 137m의 탑문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신 조각이 신전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맞는다. 신전 벽면에는 호루스가 아버지 오시리스를 살해한 삼촌 셉트를 제압하는 것을 상징하는 그림이 가득하다.

◇룩소르(Luxor)…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

에드푸를 떠나 100여㎞를 더 올라가면 이집트에서 넷째로 큰 도시 룩소르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안(東岸)에는 카르나크·룩소르 신전 등 파라오들이 왕도(王都)의 위세에 걸맞게 세운 거대한 신전들이 있고, 서안(西岸)에는 역대 파라오들의 무덤이 있는 '왕가의 계곡'이 있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차를 타고 몇 분만 가면 카르나크 신전이 나온다. 동서로 540m, 남북으로 600m 규모로 현존하는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가장 크다. 4000년 전 축조를 시작, 파라오들이 저마다 증축을 거듭해 오늘의 규모가 됐다고 한다. 23m의 돌기둥 134개가 촘촘히 늘어선 대열주(大列柱)실, 높이 21.8m 무게 130t의 투트메스 1세 오벨리스크, 높이 30m 무게 323t의 핫셉수트 여왕 오벨리스크, 람세스 거상(巨像) 등 볼거리가 넘쳐난다.

카르나크 대신전에서 남쪽으로 3㎞ 거리에 지어진 지 3500여년 된 룩소르 신전이 있다. 너비 65m 높이 25m의 첫째 탑문은 람세스 2세가 만든 것으로 나폴레옹은 이를 본떠 파리에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크루즈 선착장에서 차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30분쯤 가면 '왕가의 계곡'이다. 파라오 무덤 24기 등 64기의 왕가 무덤이 있다. 표 한 장으로 무덤 세 개를 볼 수 있지만, 가장 유명한 투탕카멘 무덤은 별도로 표를 사야 한다. 황금마스크 등 이곳의 투탕카멘 묘에서 나온 보물들은 카이로박물관에 있다.

나일 크루즈의 밤엔 달이 강이 되고 강이 달이 된다. /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제공

■소피텔 올드 카타락트 아스완 호텔(Legend Old Cataract Aswan).

아스완에서 꼭 들러야 할 명물.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대표작 중 하나인 '나일강 살인사건'(1937)을 쓴 곳이다. 호텔이 소설 배경으로 나오기도 한다. 영국의 유명한 여행사업가 토머스 쿡이 1899년 지은 건물 자체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소피텔 윈터 팰리스 룩소르 호텔(Hotel Sofitel Winter Palace Luxor)

1886년 지어졌다. '로열 바'에서 '하워드 카터 커피'를 마셔보자. 블랙커피에 브랜디, 그랜드 마니에르(증류주의 일종), 시나몬을 섞은 것으로 65£E(약 1만2000원). 투탕카멘 묘를 발굴한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곳에 머물며 즐겨 마셨다 해서 붙인 이름.

여행수첩

이집트 가는 길

대한항공이 매주 월·목·토요일 인천에서 타슈켄트를 경유해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를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3시간 30분 정도. 카이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매주 화·금·일요일에 뜬다. 역시 타슈켄트 경유로 1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두 스케줄 모두 타슈켄트에서 머무는 시간은 1시간 30분. 주한 이집트대사관이나 카이로 공항 현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나일 크루즈

보통 5층인 배 한 척에 80개 안팎의 객실이 있고, 작은 수영장과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세 끼 식사를 모두 선내에서 할 수 있다. 사방이 환하게 트인 옥상 데크에서 선탠용 의자에 앉아 맥주 한잔 마시며 보는 석양과 밤하늘의 달·별이 황홀하다. 10월 기준 식사 포함 1박당 60달러 정도. 12월 15~30일이 극성수기로 가장 비싸다. 4~7일 상품이 일반적. 자세한 사항은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02)2263-2330, www.myegypt.or.kr

통화

1이집트파운드(£E)는 15일 현재 우리 돈 약 190원.

날씨

겨울을 제외하면 비는 거의 내리지 않는다. 평균기온이 섭씨 30도 안팎이고, 높은 곳은 40도에 달하는 여름보다는 15~20도 정도인 겨울(11~1월)이 여행하기에 더 쾌적하다.

사막에서 별을 보다

새벽 2시 반. 늦도록 수크 거리를 쏘다니다 설풋 잠든 여행자들이 화르륵 깨어나야 할 시간, 뒷골목의 호텔 창문에 하나둘 불이 켜지는 시간이다. 이집트의 어느 곳보다도 아스완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세계문화유산인 아부심벨을 보려고 아스완으로 모여든 여행자들은 새벽 3시부터 호텔을 도는 투어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물론 좀 더 늦게 시작되는 투어도 있다.





 

이집트에서 가장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세운 거대한 신전인 아부심벨 신전. 사막에 묻혀 있던 신전은 탐험가 벨조니에 의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일반적인 고대 이집트의 부조 석상과 달리 얼굴을 정면으로 조각한 것이 특징.

ⓒ 박경

우리 가족도 지난밤, 아부심벨 투어를 신청하려고 수크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소개하는 투어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작고 허름한 호텔을 돌며 흥정해 보았지만 제시하는 가격도 다 제각각. 투어의 질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계약을 했다. 그런데 같은 버스를 탔다고 해서 가격이 같은 게 아니라 다 흥정하기 나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어둠을 뚫고 한곳에 모인 버스들은 경찰차 'Convoy'의 호송 하에 아부심벨을 향해 세 시간도 넘게 줄지어 달려간다. 수년 전 아부심벨을 향해 가던 독일인 관광객들이 괴한들에 의해 살해됐다. 범인은 누비안들, 그들은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기관총을 난사한 것이다. 그 후 아부심벨로 가는 육로는 차단되고 비행기로만 접근하다 보니 비용이 너무 비싸 관광객이 뚝 끊겨 버렸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이집트로서는 육로 여행길을 다시 열 수밖에. 대신 경찰차의 호송 하에 육로 여행이 재개됐다.

차창 밖은 짙은 어둠뿐이고 선잠이 깼던 여행자들은 적당히 흔들리는 차 속에서 이내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나는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칠흑처럼 어두운 차창 밖으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후드득. 세상에 이런 별들은 처음이다. 이렇게 크게, 가까이서 빛나는 별들은 처음인 것이다. 나는 얼른 딸을 흔들어 깨웠다. 나보다도 더 별을 본 적이 없어 더 별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딸은 차창 가득 빛나는 별을 보더니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 아주 가끔은 휴양림 같은 곳에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꺾어 올려봐야 하는, 하늘 저 멀리 까마득히 먼 곳으로부터 오는 기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집트 사막을 몇 시간 달려 맞닥뜨리는 별들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 별들의 향연을 열고 있었다. 사막의 지평선은 멀고도 멀어, 버스 창 가득 별이 박혀 있고, 고개를 젖히지 않고 바로 내 눈높이에서 커다란 별들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별들이 너무도 크고 선명했고 저절로 별과 별들이 이어져 있어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책에서 본 별자리가 한눈에 들어올 판이다.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별을 보고 가슴이 설렌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아, 별을 보고 저 별을 꿈꿀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차 안은 불이 꺼져 있고 여행자들은 잠들어 있다. 사막의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아, 난 마치 별들 속에 버려진 존재처럼 아득함이 밀려왔다. 별을 보고 비로소 내 위치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저 별을 느끼지 못할 때는, 난 그저 평평한 땅 위에 발 딛고 사는,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저렇게 완전하게 빛나고 있는 저 별은 둥근 지구라는 작은 별 위에 내가 동그마니 서 있다는 걸 일깨워 준다.

딸과 나는 창밖의 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각자의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꿈을 잃어버린 건, 어쩌면 저 별을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설렘도 떨림도 더 이상 없는 건 내 마음속의 별을 일찌감치 밀어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던 시절은 진정 행복했을 것이다. 우린 이제 닿을 수 없는 것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해 버린 지 오래다. 저 어둠 속에서, 저 별들은 제 존재를 알리듯이 저렇게 와락 달려들고 있는데.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내 가슴 속으로 쳐들어 왔던 별은 그렇게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아부심벨에서 감 잡다





아부심벨 입구에 새겨진 부조.

ⓒ 박경

아부심벨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이제야 동 터 오는 아침.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인공호수 나세르호는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왕, 신을 꿈 꾼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지은 아부심벨 신전. '높이 20m의 람세스 상이 4개나 떡 버틴 암굴신전에 서면 그 거대함 때문에 압도당하고 말리라'며 미리 쫄았는데, 웬걸. 생각보다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그 앞에서 실컷 압도당하고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느끼고 장엄한 석상들에게 경의를 표할 만반의 준비가 다 돼 있었는데 김 팍 새버린 꼴이다(지금 와 생각해 보니 앞에는 나세르 호수가 펼쳐져 있고 주변에는 신전과 비교될 게 없었기에 그 크기를 실감하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싶다).

오히려 3300년이라는 장장한 세월을 넘어 나타난 여행자들에게 더욱 신기한 것은 따로 있다. 1960년대 초,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면서 아부심벨 신전은 수몰 위기에 처하게 됐다. 나세르는 배짱을 부렸다. '우리는 댐이 필요하다. 돈을 주지 않으면 신전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다'고. 이 정도면 자해협박 수준이다. 애가 탄 유네스코는 위대한 유산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결국 아부심벨 신전은 강바닥에서 65m 위로 옮겨지는 엄청난 이동을 하게 된다.

50여 개국의 기술자들이 동원돼 신전의 암벽에 1만7000개의 구멍을 뚫고 무게 30톤에 이르는 천여 개의 돌덩이로 잘라 재조립했다. 바위산 덩어리를 조각조각 내어 옮겨 맞추는 데만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저 큰 걸 일일이 다 조각내서 다시 끼워 맞췄다고? 저렇게 큰걸?' 비로소 크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냥 보면 그 크기를 모르겠는데 그걸 잘라내 옮긴다고 생각하니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감(感)은 그렇게 왔다. 천만 원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못 잡던 아이들에게 그건 떡볶이 5000인분과 같은 거라고 하니 비로소 입이 떡 벌어지는 것처럼.

람세스 2세 석상들 사이로 난 문을 통해 들어가면, 파라오들의 석상이 늘어서(도열해) 있고 벽화와 상형문자들이 빼곡하다. 또한 카데쉬(지금의 시리아) 전투의 모습들이 벽에 새겨져 있는데, 몇몇 학자들은 승리하지도 못한 카데쉬 전투를 대대적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람세스 2세는 자기현시욕이 강한 왕이었다고 평한다.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현실을 지배하려고 한 왕이었다고.





람세스 2세의 석상은 높이 20m에 이른다. 람세스 2세의 다리 옆에는 그의 부인 네페르타리 조각상이 보이는데, 신전 정면에 왕과 함께 왕의 부인이 조각된 것은 아부심벨 석상이 처음이라고 한다.

ⓒ 박경

그런 야심 찬 왕에게도 순정은 있었는지, 이집트 최초로 왕비를 위한 신전을 짓기도 했다. 여러 왕비 중에서도 네페르타리를 특히 사랑한 람세스 2세는 아부심벨 옆에 네페르타리 신전을 함께 만들었다.

아침 햇살이 아부심벨과 네페르타리 신전에 가득 쏟아진다. 저 햇살은 일 년에 딱 두 번 아부심벨 안쪽으로 깊이 스며든다. 놀랍게도 그 빛은 어둠의 신인 프타만을 빼고, 나란히 있는 아문과 하라크티 조각상만을 비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신전이 원래의 위치를 벗어나 새롭게 자리했는데도 그 빛의 기적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차 속에서 그 아침 햇살은 졸음 쏟아지는 내 얼굴 위에도 살포시 내려앉았다. 기적처럼. 저 태양은 천 년보다도 이천 년보다도 삼천 년, 오천 년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그렇게 변함없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 대신전(왼쪽 아부심벨 신전)과 소신전(오른쪽 네페르타리 신전)당시의 규범을 깨고 왕의 부인이 왕 옆에 조각되어 있다는 점과 신전 안팎에 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람세스 2세가 네페르타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박경



마을을 찾아간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것은 숨이 차오르도록 앞으로만 나아가는 도시의 시간을 거부하는 것이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시간과 극적으로 조우하는 감동의 순간이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산골마을 쉐프샤우엔은 꼭 이런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만나는 풍경은 물론 이 나라 특유의 것도 있지만,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라진 한국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계집아이들, 다 부서진 장난감을 가지고 골목에서 끝도 없이 떠드는 사내아이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이발소지만 정성스럽게 면도를 해주는 이발사, 동굴같이 어두운 가게에서는 정체불명의 과자를 만들어 팔고, 퇴락한 성벽에는 잡초와 이끼가 무성하다. 잃어버려서 더 아름다운 시간을 쉐프샤우엔에서 만난다.













1 마을 중심에 있는 성채인 카사바.

2 카사바 내부의 모습.

3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4 마을의 모스크와 집.





1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2 허름하기 짝이 없는 이발소 풍경.


나일강의 원류는 에티오피아의 블루 나일과 빅토리아 호수의 화이트 나일이다. 현장을 목격하지 않으면, 역사도 지리도 이해하기 어렵다. 40도를 육박하는 수단의 수도 하르툼을 벗어나 화이트 나일로 향한다. 도시를 벗어나자 온통 모래 폭풍이다. 하부부라는 모래 폭풍이 천지를 휘 감는다. 사하라와 인접한 지구상 최대의 사막지역, 사헬지구에 들어선 것이다.

하부부, 모래폭풍을 헤치고, 수단의 생명수 나일강을 찾아 무인지경의 사헬지구를 달린다.



모래 폭풍, 사막의 고통 뒤에 생명수를 만나다.

모래 바람 이는 뜨거운 사막을 달린다. 그 길은 외로움, 적막감에 휩싸인다. 동토의 시베리아부터, 열대의 사막까지 다양한 환경이 존재하는 지구,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하게 살아간다. 사헬 지구, 황량하기만 한 사막, 그곳에도 생명은 존재한다. 바로 사막의 생명수 화이트 나일이다.

문명의 기적을 낳은 나일 강은 아마존 강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으로, 수단의 화이트 나일 강과 에티오피아의 블루 나일 강에서 시작된다. 나일강 수량의 56%를 차지하는 블루 나일강은 길이가 짧고, 우기와 건기에 따라 수량이 고르지 않지만,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많은 양의 유기물을 싣고 흐르면서 이집트 고대문명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반면, 적도 부근에서 발원해 지중해까지 6천 671㎞를 흐르는 강이 화이트 나일이다. 이 강줄기 유역에 위치한 나라들은 르완다와 민주 콩고, 에티오피아, 우간다, 부룬디, 케냐, 탄자니아, 수단이다. 화이트 나일 상류 지역의 나라들은 이집트와 수단이 1959년에 체결한 나일 강의 수자원 이용에 관한 협정을 대체할 새 조약을 만들기 위해 수년째 논의하고 있으나 별다른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모래 폭풍을 헤치고 당도한 나일강, 열대와 사막의 끝자락에 마주한 생명수 나일강은 그 자체로 수단의 젖줄이다.



단의 사막 지역은 하부부라는 모래 폭풍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일강 지류를 뒤덮는다. 거친 사막의 비포장과 뜨거운 태양을 견디어 내려면 그 해답은 랜드크루저다. 사막의 동반자, 지프를 타고 수단 서북부를 향해 달린다. 거친 사막 길이지만 길은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다. 과연 이 사막 지형 어딘가에서 나일강의 정체를 확인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의구심이 인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과 모래폭풍, 그리고 포트 수단을 오가는 대형컨테이너 트럭과 장거리 버스들만 낙후된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뿐이다. 물 기운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과연, 이 폭염의 사막 속에 강이 존재하고 있을까? 지도를 검색하고 차량의 방향을 틀어 나일강을 향한다. 사막을 유유히 관통하는 장대한 나일강을 꿈꾸고 달린다.

수단의 수도, 하르툼을 벗어난 사막지구는 황량한 사막 위에 간간히 흙 집이 보일 뿐이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곧 비포장 도로가 나타난다. 하얀 모래 사막이다. 거칠고 황량한 사막지형, 그야말로 무인지경이다. 하늘은 뿌연 흙 먼지를 품고, 열기는 뜨거운 대지를 삼키고 있다. ‘사발료가’ 라는 작은 마을을 관통하여 지나가자, 어린 소년 소녀들이 물을 긷기 위해 노새를 타고, 나일강 지류로 향하고 있다. 사막 위에서의 삶은 언제나 물과의 전쟁이다.



수단의 생명줄, 수단 나일을 가다.

30여 분 가까이 사막을 가로질러 달리자, 드디어 저 멀리, 녹색의 야자 농장과 함께 물 기운이 느껴진다. 사헬의 생명수, 바로 나일강, 화이트 나일의 출현이다. 엔진을 멈추고, 강가에 앉아 더위를 식힌다. 커피 한잔에 사막 여정에서의 피로를 풀고 나일강 물줄기의 힘찬 움직임을 본다. 나일 악어가 존재한다는 나일강 리버 사이드는 넓고 고요하기만 하다.

화이트 나일강, 지류를 따라 강줄기 인근에 사는 어부들이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강은 생존의 터전이다. 이 사막 지형의 폭염과 불모를 지탱하며 버텨온 수많은 세월 동안, 나일강 지류에 걸쳐 살고 있는 어부들에게 나일강은 생명 줄이다.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거나, 낚시를 하거나 나룻배를 이용하여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일, 그들의 생명과 고단한 삶을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 뜨겁고 거친 거대한 사막 위에서는 말이다.

한 시간 가까이 북부 나일강 상류를 따라 올라갔다가 다시 남하한다. 강줄기 따라서 고기 잡는 어부들과 낚시하는 사람들, 양떼를 모는 목동들이 이따금씩 오고 갈 뿐이다. 사막의 한가운데 거대한 물줄기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강바닥에서 고개를 내미는 나일 악어도 볼 수 있다. 작은 새끼악어들은 강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나일 악어를 목격하자 흥분된다. 도도히 흐르는 강줄기 아래에 거대한 나일 악어가 몸부림 치며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수단을 관통하는 생명수, 화이트 나일. 수도 하르툼을 관통하는 거대한 나일강.

유유히 흐르는 수단 나일을 뒤로하고 다시 수도 하르툼을 향해 달린다. 뽀얀 흙먼지 태풍처럼 안개를 일으킨다. 사막을 다시 질주한다. 여행자에게 사막은 종종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오지의 땅, 수단 사람들에게 사막은 영원한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며 친구일 것이다.

거친 자연, 모래 폭풍, 뜨거운 태양, 사막이라는 절망의 단어 속에 나일강은 오직 생명이다. 수단의 생명은 나일강의 영원한 흐름 속에 있다. 신이 허락한 마지막 희망, 유일한 생명줄, 바로 수단 나일강이다. 그 길로 가는 길은 뜨겁고, 고독하며 황량하기만 하다. 소중한 것, 사헬의 심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수단, 아프리카 대륙 중 가장 큰 영토를 소유한 나라, 주변에 9개국과의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북, 동서 할 것 없이 온통 사하라와 사헬사막 지형인 수단에서 나일강의 존재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것이다. 아프리카의 생명이자, 사막의 젖줄 나일강은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수단의 생명이자 마지막 희망, 그것은 바로 화이트 나일이다.

여행정보

나일강 투어
특별할 것도 없는 양철로 만든 거룻배 위로 몸을 싣는다. 태양이 배를 달군 터라, 배 안의 열기도 사뭇 강렬하다. 운전사는 모터 보트의 키를 잡고 급류의 물줄기를 달린다. 물결이 소용돌이 치며 일렁이는 나일강을 보면, 여행자 마음도 따라 일렁인다. 투어는 30분, 한 시간 두 타입으로 진행된다. 멀리 빨래하는 아낙들과 물놀이 하는 아이들, 멱감는 사나이들 낚시하는 어부,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하르툼 외각, 수단 사막에서 마주하는 나일강 투어, 강줄기를 따라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나일강 지류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악어를 만나거나, 주변 나일강의 특이한 지형을 만난다. 사막 속을 관통하는 아프리카의 생명수, 나일강이 유유히 흐를 뿐이다. 수단에서라면, 나일강 원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요금은 30분 10$ 한 시간 20$ 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그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작용하는 가장 큰 동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혹시 ‘에티오피아’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커피의 나라’로만 알려진 아프리카의 이 작은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면, 지금부터 떠나보도록 하자. 아프리카야말로 놀라운 감동이 숨겨져 있는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일 테니….

블루 나일 폭포-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수도를 떠나 나일강의 발원지로 향하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 도착하면, 청명한 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먼저 반긴다. 에티오피아 말로 ‘새로운 꽃’을 뜻하는 것처럼, 현재 이 나라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로 분류되듯,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행색과 도시풍경은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오래되어 보이고, 낡은 자동차들이 내뿜는 검은 매연을 보며, 아프리카에 와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실내벽화로 유명한 트리니티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도를 드린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후진국 중 하나이지만, 분명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힘이 이곳에 있으리라고. 옆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표정들을 보면, 분명히 그 기도가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지프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 17세기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수도원으로 유명한 바하르 다르(Bahar Dar)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아프리카에 두 번째로 큰 블루 나일 폭포의 웅장함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자연이 선사하는 거대한 위용 앞에서는 쉽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비옥한 땅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커피는 에티오피아를 그저 가난한 나라로만 보는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이곳이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곳의 타나 호수부터 시작하는 블루 나일과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하는 화이트 나일이 합쳐져 나일강의 2대 발원지라는 사실이다. 보트를 타고 타나 호숫가를 따라 흐르면 이국적인 자유로움과 느긋함에 취해 절로 미소가 새어 나온다.

랄리벨라 교회-3,000m 높이에 120여 년 동안 지어진 암굴 교회.

곤다르 유적-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됐다.



에티오피아의 황금기, 과거로의 여행

타나 호수에서 보트 투어를 마친 후, 지프를 타고 좀 더 북쪽으로 오르면 곤다르(Gondar)에 닿는다. 이 도시는 파실리다스 황제(Fasil ide s)가 1636년에 왕국의 수도로 정한 이후로 200여 년간 에티오피아의 수도였다. 역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기였던 만큼, 곤다르에는 아름다운 궁전과 정원들이 많다. 특히 파실리다스 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파실게비 유적(Fasil Ghebbi)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왕궁유적인 이곳은 파실리다스 황제의 궁전뿐 아니라 대형 탑 2개가 딸린 이야스 대제의 왕궁 등 화려했던 그 시기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거대한 유적지다.

곤다르에서 왕궁유적과 함께 꼭 들러야할 곳은 바로 데브레 베란 셀라시에 교회(Debre Bethan Selassi Church)이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이 교회는 에티오피아 교회의 중심지로서, 곤다르에 남아 있는 교회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천사의 얼굴이 그려진 유명한 천장화를 보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에티오피아 문명의 요람이자 성스러운 도시, 악숨(Axum)이다. 모세가 신에게 받은 십계명이 기록된 석판이 보관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는 이 도시에는 오벨리스크 유적지와 악숨 왕국의 성채를 비롯해 다양한 유물들이 가득하다.

곤다르의 파실게비 유적, 악숨의 고고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랄리벨라 암굴성당은 에티오피아의 화려했던 과거로의 여행을 가속화 시킨다. 해발고도 3,000m 높이의 산지에 굴을 파서 만든 11개의 성당은 무려 120여 년에 걸쳐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수많은 순례자들의 경건한 얼굴에는 경이로움과 놀라움이 가득하다.

아디스아바바의 전경-오늘날 에티오피아의 중심지이다.

수도로 돌아와 커피를 홀짝이며

다시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왔다. 카페에 홀로 앉아 에티오피아가 자랑하는 커피를 홀짝이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분명히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낙후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 그렇지만 한국전쟁 당시 보병 1개 대대를 파병했다는 점이 새삼 떠오른다. 비록 지역 간 분쟁과 내란, 기근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영광의 과거와 어려움을 함께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어느 도시에선가 보았던 그들의 전통 춤이 기억난다. 흰 색 옷을 입고 밝게 웃으며 악기를 부는 활기찬 모습이 용맹스러운 사자의 상과 겹쳐 보인다. 어서 하루 빨리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되찾기를. 그리고 현재를 벗어나 새로운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기도한다. 트리니티 대성당에서 간절히 기도 드리던 아이들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여행 정보
정식 명칭은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으로,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다. 화폐 단위는 비르(Birr)로 1비르는 한화 약 80원 정도이다. 언어는 암하라어와 영어 공용, 종교는 에티오피아 정교와 이슬람교 토착종교 등을 믿는다.

주의할 점
야간에는 외출이나 이동을 삼가는 것이 좋으며, 특히 국경 북부지방 여행은 피해야 하다. 대부분이 말라리아 위험지역이므로, 말라리아약을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식수는 끓여 마시거나 포장된 미네랄워터를 구입해 마셔야 한다.

가는 길
현재 한국에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으로 직항하는 항공편은 없다. 보통 방콕이나 두바이를 경유해서 간다. 에티오피아 항공이 북경을 경유하는 인천-아디스아바바 노선을 12월 신규 개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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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숨 제국의 대표적 유산인 오벨리스크군. 세계에서 가장 큰 33m의 오벨리스크는 넘어져 있다 

●Axum 악숨 
에티오피아 문명의 요람

악숨은 오지다. 아디스아바바에서 960km 떨어진 에티오피아의 가장 북쪽에 자리한 산악 도시다. 인구 2만명에 불과한 이곳은 그러나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로마와 중국 한나라, 페르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악숨 왕국의 수도였다. 

동쪽으로는 홍해, 북쪽으로는 수단과 이집트, 서쪽과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본토와 이어졌던 악숨은 금과 유향, 몰약과 홍해의 소금 등을 팔아 부를 쌓았다. 4세기에는 기독교를 국교화했고, 화폐와 문자, 건축물 등 고도의 문명까지 탄생시켰다. 하지만 10세기 이슬람 세력의 팽창으로 해상무역이 막히고 대가뭄이 겹치면서 쇠망했다. 

악숨 왕국의 대표적인 창조물은 오벨리스크(Obelisk)다. 오벨리스크는 왕의 무덤 위에 세우는 석주로 그 크기로 왕의 권력을 나타낸다. 북쪽에 자리한 오벨리스크 공원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천년에 걸쳐 세워진 오벨리스크 수십 개가 있다. 

서 있는 것들 중에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33m 높이의 오벨리스크는 넘어져 깨진 상태고, 24m 높이의 오벨리스크는 1937년 무솔리니가 세 동강 내어 로마로 가져갔다가 2005년 국제적인 문화재 반환 운동으로 되돌려 받았다. 이 거대한 오벨리스크들은 모두 하나의 단일 암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지하에서는 왕의 무덤과 금속과 상아 등 부장품들이 발견됐다. 

악숨의 옛 이름은 시바Sheba라고 알려져 있다. 14세기에 쓰여진 에티오피아의 역사서 <케브라 나가스트(Kebra Nagast)>에 따르면 마케다(Makeda)공주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바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여왕은 지혜를 구하고자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을 찾아갔다. 왕과의 하룻밤 이후 아들 메넬리크를 낳았는데 메넬리크는 22살이 되어 어머니가 준 반지를 가지고 아버지 솔로몬을 만났다. 그는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던 솔로몬 왕의 뜻을 뒤로하고 악숨으로 돌아와 메넬리크 1세라는 왕호로 황제에 올라 솔로몬 왕국을 이어갔다. 성직자와 학자, 장인 등 1만2,000명의 유대인 그리고 십계명을 보관한 법궤(Art of the Covenant)와 함께였다. 

에티오피아의 기원은 이렇듯 솔로몬 왕의 아들 메넬리크 1세로부터 시작됐다. 악숨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왕복 8,000km로 당시 걸어서 1년이 걸렸을 시간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사실 마케다 여왕의 원정은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싣고 간 유향과 몰약, 금과 오팔 그리고 소금 등은 모두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다. 악숨의 최고 지배자가 중동 무역을 관장하던 솔로몬 왕과 만나는 최초의 경제 정상회담이었던 셈이다. 

‘성 마리아 시온교회(St. Mary of Zion Church)’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법궤, 메넬리크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다는 바로 그 법궤가 모셔져 있다고 했다. 교회는 4~6세기 경 세워졌던 교회의 후신으로 1965년 하일레 셀라시에 1세에 의해 지어졌다. 

에티오피아정교회는 법궤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본 사람은 없다. 에티오피아 고대 기즈어로 이까베트‘보호자’라는 뜻라 부르는 수도사 한 명만이 성소(聖所)에 모셔진 법궤를 관리하는데 그는 성소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죽을 때까지 법궤를 지키며 산다. 75세에 임명됐다는 현 이까베트는 80세다. 법궤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사실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법궤는 열어 보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법궤는 곧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법궤가 사라진 데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학자들은 기원전 587년 바빌론 제국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법궤도 함께 파괴됐든가 아니면 히브리인들이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왜 성서에나 외부 기록에조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지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땅이 시바의 여왕이 살던 터전임을 증명하듯 둔구르 유적에는 여왕의 왕궁 터가 남아 있다. 돌을 쌓아 올린 터 위에는 욕실, 아궁이, 배수시설, 재판장 등 몇몇 흔적들이 남아 있지만 시바의 여왕 때와는 사실 1,700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부풀려진 기원 속에서 역사적 진실을 가려내는 일은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둘 수밖에. 평범한 여행자가 알고 있는 건 종교의 역사에 기록된 이야기는 숨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뿐이다. 혹시 모른다.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기록된 트로이 전쟁이 신화가 아닌 실제라 밝혀졌던 것처럼, 언젠가 에티오피아의 일관된 전설이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지도.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처럼 옛 사람들의 기록에는 반드시 진실이 담겨 있다는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1937년 이탈리아에 빼앗긴 오벨리스크는 제자리를 찾았다

에티오피아정교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성 마리아 시온교회. 교회 옆 성소에 모세의 법궤가 안치돼 있다고 전해진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 www.ethiopianairl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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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대학 내 민속학박물관은 과거 셀라시에 황제가 거처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당시 황제의 침실과 거실 욕실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Addis Ababa 아디스아바바
아프리카의 정치 1번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이자 아프리카의 정치 1번지로 통하는 이곳에는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를 비롯해 각국 대사관들이 몰려 있다. 쉴 새 없이 올라가는 빌딩들과 매연 속 수많은 차량들이 아디스아바바의 변화하는 오늘을 말하는 가운데, 아라트 킬로(Arat Kilo) 광장에는 1941년 이탈리아와의 전투 승리를 기념한 승전기념비가 빠르게 스쳐갔다. 수많은 외침에도 아프리카의 53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식민지를 겪지 않은 에티오피아는 1936년 이탈리아의 침략으로 수도가 함락되고 황제가 해외로 망명하기도 했지만 5년 만에 이탈리아 군대를 물리치고 수도를 탈환했다. 

에티오피아의 자부심은 인류 기원에까지 닿아 있다. 국립박물관에는 1974년 북부 아파르 지역에서 발굴된 화석이 있는데 이름은 루시(Lucy),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루시라는 이름은 발굴 당시 비틀즈의 노래 ‘루시 인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들으며 연구원들이 축배를 들었다는 데서 유래됐다. 318만년 전에 살았던 1m 가량의 키에 20세 전후의 여성으로 알려진 루시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화석이자 직립보행을 한 최초의 화석이다. 유인원으로부터 인간이 진화됐다는 증거는 루시 이전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근대화는 메넬리크(Menelik) 2세에 의해 다져졌다. 그는 부족 간의 대립으로 분열된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 1896년 아두와 전투에서 이탈리아를 물리쳤으며, 아디스아바바를 건설했다. 아디스아바바는 암하릭어로 ‘새로운 꽃’이라는 뜻으로 이전까지의 수도는 엔토토(Entoto)였다. 

해발 3,000m의 엔토토는 기온이 낮고 땔감용 나무가 부족해 수도로는 부족했다. 황후가 황제를 설득해 산기슭 온천 부근에 집을 짓고, 주변 땅을 귀족들에게 나눠준 것이 새로운 수도의 시작이었다. 엔토토산에는 메넬리크 2세의 궁전이 당시의 소박한 자태 그대로 남아 있고, 그보다 높은 곳에 엔토토 마리암 교회(Entoto Maryam Church)가 자리했다. 

20세기 에티오피아 역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는 메넬리크 2세의 개혁을 이어간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1세다. 그는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이후 황제에 올라 1930년부터 40여 년간 헌법을 제정하고 노예 제도를 철폐하는 한편 아프리카통일기구OAU를 세우고, 에티오피아를 국제연맹과 국제연합 회원국으로 가입시켰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던 1960년대에 에티오피아의 국민소득은 3,000달러였다. 

한국전쟁 때 황실 근위대였던 강뉴(Kangnew)부대 6,037명을 연합군으로 파병한 이도 셀라시에 황제였다. 당시 철원과 화천, 양구 등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은 657명으로 포로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 연연하다 결국 반대 세력에 의해 폐위당하고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1942년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국내외 용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셀라시에 황제가 세운 홀리 트리니티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121명의 유해, 그리고 황제 자신과 황후도 함께 묻혀 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총 대주교의 즉위식이 행해진다는 성당은 유럽 스타일의 외관과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무척 아름답다. 

셀라시에 황제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신봉하는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이 레게음악의 전설 ‘밥 말리’의 음악세계에 밑거름이 됐다는 건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다. 

밥 말리는 자신의 곡 ‘War’에서 ‘인종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될 때까지 나는 전쟁에 대해 말할 것’이라 노래했는데, 그 곡은 셀라시에 황제가 유엔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아디스아바바 거리에서 밥 말리 사진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레게머리를 늘어뜨리고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레게음악에 몸을 맡기는 이들도 간혹 보인다.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이자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하일레 셀라시에1세에 대한 대 내외적 평가는 분분하지만,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세계의 문화로 자리한 레게의 중심에서 하일레 셀라시에라는 이름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싶다. 

엔토토산에서 바라본 아디스아바바

홀리 트리니티 대성당을 지키는 사제. 여행자들에게 무척 인자하다

트리니티 대성당 뒤쪽에 서 있는 성상. 아래 교회 지하에 용사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홀리 트리니티 대성당의 외관

아디스아바바대학 내 자리한 민속학박물관 내부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 www.ethiopianairl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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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커피예식인 분나 마프라트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안 커피 Ethiopian Coffee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다. 850년경 칼디라는 이름의 목동이 커피 열매를 따 먹고 흥분하는 양을 본 것이 커피의 기원설이라 전해진다. 하지만 그보다 오래전부터 에티오피아 지역에서는 커피 원두 가루를 민간요법으로 처방해 왔다. 

이르가체페, 시다모, 짐마, 리무, 하라. 커피 애호가라면 선호하는 이 상품들은 에티오피아 커피의 주요 생산지 이름이다. 아프리카의 최대 커피 생산국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커피가 많이 나는 나라로, 커피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에티오피아 커피의 맛과 품질은 뛰어나다. 

커피를 이곳 사람들은 ‘분나(Bunna)’라고 부른다. 특히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라 부르는 에티오피아의 특별한 전통 커피예식은 커피 한 잔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우는 마법 같은 의식이다. 정도는 달라도 호텔이나 레스토랑, 공항이나 거리에서 분나 마프라트를 경험할 수 있다. 일반 가정에서 전통에 따라 대접할 경우는 1시간 이상 소요된다. 

분나 마프라트는 가족과 이웃 간 친목의 시간이자 손님에 대한 예우다. 먼저 케트마(Ketma)라는 나뭇잎을 바닥에 깔고 숯불에 유향이나 유칼립투스 잎을 피워 신성함을 표한다. 그리고 생두를 팬에 볶아 그 향기를 맡게 한 다음, 절굿공이로 빻은 커피가루를 전통 주전자 제베나(Jebena)에 넣어 불 위에서 부채질하며 끓여낸다.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시니(Cini)라는 손잡이가 없는 작은 잔에 찰랑거릴 정도로 가득 담아내는데, 거품이 많을수록 맛이 진해 높이서 따른다. 첫 잔은 우애, 둘째 잔은 평화, 셋째 잔은 축복의 의미를 담아 세 번을 마신다. 에티오피아 가정에서는 이 커피 의례로 아침을 열고 집에 온 손님에게도 커피를 대접한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 전통 예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숍 ‘토모카’와 체인점 ‘칼디스 커피’는 외국 커피 문화의 대표적인 예다. 토모카는 짧았던 이탈리아 지배의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식 커피전문점으로 명성을 높였다. 칼디스 커피는 언뜻 보면 그 로고가 스타벅스 커피와 비슷하다. 창립자는 항공기 조종사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갔다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외국계 커피전문점은 에티오피아에서 영업을 할 수 없지만 앞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에티오피아의 대표 수출작물인 커피는 농림부 산하 담당기관(The coffee and Tea Authority)의 규제 아래 일정 품질 이상이 유럽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로 전량 수출되고 생산량의 절반이 국내에서 소비된다. 커피 수출을 통해 에티오피아 정부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1년 수익의 10% 정도. 그러나 한때 검은 황금이라 불리며 외화벌이의 주요 수단이 됐던 커피의 작황이 좋지 않아 가난한 농가들은 재배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생산 농장은 대부분 소규모이고 재배방식은 10세기 이후 지금까지 수작업이다. 자료에 따르면 세계 커피 시장을 점령하는 기업들의 매출은 매년 증가세를 보이지만 직접 커피를 생산하는 농가가 커피 한 잔으로 손에 쥐는 돈은 가격의 0.5%에 불과하다. 

악숨 공항에서 커피 세리모니로 마셨던 시니를 30비르(1,800원)에 사 왔다. 에티오피아 국기가 찍힌 그 낡고 손잡이가 없는 잔에다 에티오피아에서 사 온 원두를 내려 마신다. 진한 커피 한 잔에 많은 이야기들이 함께 녹아 목젖을 타고 내리는 요즘이다. 여행자의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었던 분나가, 우기가 지나 대지가 푸르게 물들 때쯤 그들에게도 뜨거운 축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두를 팬에 볶으면 커피향이 가득하다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다

▶travel info

Airline
에티오피아항공 Ethiopian Airlines에티오피아항공의 인천 취항은 양국 외교 수립 50주년 기념일인 2013년 6월19일 시작됐다. 현재 홍콩을 경유하는 인천-아디스아바바 노선이 주 4회(월, 화, 목, 토요일) 운항되며 소요시간은 15시간 45분이다. 인천에서 오후 9시에 출발해 홍콩에서 한 시간 대기한 후 아디스아바바에 다음날 오전 6시45분에 도착하고, 아디스아바바-인천 노선은 주 4회(월, 수, 금, 일요일), 아디스아바바에서 오후 10시5분에 출발, 홍콩에서 한 시간 대기한 후 다음날 오후 7시55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에티오피아 국내를 여행할 경우 에티오피아항공의 국내선을 활용하면 편리하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바하르다르, 곤다르, 랄리벨라, 악숨까지 운항한다.  

Language
공용어인 암하릭어 외 영어와 부족어가 사용되고 자음 33자, 모음 7자로 된 고유문자가 있다. 에티오피아정교 50%, 회교 40%, 기타 토착종교 등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다. 

Weather & Time 
2~3월은 소우기, 4~5월은 온건기, 6~9월은 대우기, 10~1월은 냉건기다. 고지대는 우기라 해도 한때 쏟아지고 쾌청하지만, 저지대는 비도 거의 오지 않고 덥다. 북부지방은 건기 때도 아침저녁이 쌀쌀하기 때문에 따뜻한 겉옷을 챙기도록 한다. 시간은 한국보다 6시간 늦다. 

Visa & Currency 
화폐단위는 비르Birr. 10비르는 약 600원이다. USD로 환전해 도착시 공항 환전소에서 비르로 환전하는 게 가장 편하다. 관광을 목적으로 아디스아바바 볼레 국제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대기시간이 길다. 수수료는 USD50이다. 

calendar
에티오피아는 지금 2009년이다. 에티오피아는 1년이 총 13달이다. 고대 이집트의 게즈력(Ge’ez calendar)에 바탕을 둔 에티오피아력은 1년 365일에 각 달이 30일씩이고, 마지막 13월은 5일(윤달은 6일)까지다. 세계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보다 7년이 늦다. 에티오피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7일, 새해는 9월11일이다. 

Hotel
고하 호텔 Goha Hotel Gondar
곤다르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호텔로 시설도 서비스도 훌륭하다. 무료 인터넷 서비스와 시내로 이동하는 무료 셔틀이 운행되며 특히 모든 객실에 곤다르를 상징하는 문양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가죽을 입힌 의자, 자연스러운 나무질감이 기분 좋은 탁자 등 정성 가득한 소품들도 매력적이다. 
주소: 182 Gondar, Ethiopia  
전화: +251 581 110 634 
홈페이지:  www.gohahotel.com   

Food
인제라 Injera

테프(Teff)가루에 소금을 넣고 따뜻한 물로 반죽해 며칠 실온에서 발효한 뒤 팬에 얇게 부쳐 낸 에티오피아의 주식. 기포가 송송 뚫려 있고 스펀지처럼 가볍고 폭신하며 시큼한 맛이 다양한 와트(Wat). 소스와 반찬과 잘 어울린다. 칼슘과 비타민C,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혈당과 체중 조절에 좋은 글루텐 프리 음식으로 알려져 해외에도 수출한다. 

테쯔 Tej

꿀로 만든 전통 술. 에티오피아는 양봉산업이 발달해 질 좋은 꿀을 맛볼 수 있는데 테쯔는 과거 왕족과 귀족들이 향연에서 마시던 특별한 음료다. 작은 유리병 베레레(Berele)에 담아내는데 꿀 향이 좋다. 도수는 6~10% 정도. 

맥주와 와인 

에티오피아 맥주와 와인은 외국 유명 기업들의 진출로 인해 다양한 종류와 뛰어난 맛을 갖추고 있다. 프랑스의 카스텔이 대표적인데 1998년 국영 양조장인 생 조지를 인수하면서 진출했다. 여기서 생산한 생 조지(St. George)맥주는 현지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데 현지 보리와 자체 생산한 맥아를 사용한다. 카스텔은 아디스아바바 남쪽 땅을 제공받아 프랑스의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도 생산하는데 매년 250톤의 포도를 수확하고 부족한 제조량은 수입에 의존한다. 

Restaurant
네 자매 식당 Four Sisters Restaurant
곤다르에 있는 유명 식당. 2011년 7월에 문을 열었다. 큰언니 테나부터 헬렌, 세넷, 막내인 에덴까지 네 자매 각자의 재능을 살려 의기투합해 만든 레스토랑은 이제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에티오피아에서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인제라와 테쯔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전통식 뷔페는 172비르. 테쯔는 1리터 120비르, 0.5리터 70비르에 포장 가능하다.
위치: 파실게미 후문에서 약 200m 지점
전화: +251 581 122 031 
운영시간: 07:00~23:00  
홈페이지: www.thefoursistersrestaurant.com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 www.ethiopianairl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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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끼룩끼룩 날고, 진한 비린내 지천에 엉겨 붙어 어촌의 일상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곳, 먼 과거의 성지 같은 모로코 전통 메디나 안뜰을 거닐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오백 년쯤은 회귀한 듯한 느낌 지울 수 없는 곳. 검은 대륙 아프리카 대서양 언저리에 이런 추억 같은 공간이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온통 파란색으로 채색된 어선들이 대서양에 면한 항구도시, 에싸웨라의 진한 감성으로 초대한다.


아틀란틱 오션의 희망 정거장, 에싸웨라

전세계 여행 마니아들의 마음의 고향이 있다.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거친 바닷가의 항구도시 에싸웨라, 카사블랑카 남단, 작고 아담한 추억의 항구도시다. 그곳에 가보면 안다, 왜 이곳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지. 버스가 에싸웨라로 진입하는 순간, 거대한 대서양 바닷가에 아담하게 들러붙은 항구의 진한 고독을 느끼게 된다. 오랜 역사를 지닌 묘한 느낌의 골목길과 비린내 나는 포구, 드넓은 바다를 품에 안은 성벽도시, 에싸웨라는 우리에게 온전히 새로운 과거다.


소문만 무성한 도시가 있고, 소문 이상의 가치를 드러내는 도시도 있다. 새로운 추억을 꿈꾸며 신기성을 향유하려는 여행이란 묘한 것이다. 뜻밖의 새로운 여행지를 만나 우리는 특별한 추억, 새로운 느낌을 꿈꾼다. 그 느낌이 여행에서 얻게 되는 고마운 선물이다. 모로코 도착 후, 카사블랑카를 떠나며, 과연 에싸웨라에 가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나 마라케쉬 도착 이후, 하루 만에 그곳을 포기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웅성거리는 버스 터미널을 빠져 나와 바다로 향한다. 성곽을 지나 구 시가지의 성문을 들어서는 순간, 묘한 기운이 엄습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 영혼의 고향 같은 바로 그 느낌. 고향을 떠나 먼 여행길을 떠돌아 다녀 본 사람은 안다, 어디가 진정 고향 같은 곳인지. 이곳을 발견하고 성곽 기둥에 기대어있던 나는 그만 숨이 멎었다. 에싸웨라의 오래된 성곽과 부산한 시장통, 좁은 골목길 사람냄새와 오래되어 낡은 것들의 진귀한 가치를 눈과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랜 성벽과 메디나를 배경으로 한 갈매기의 날개 짓은 에싸웨라 항구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에싸웨라는 2001년 오래 버텨낸 질긴 역사의 흔적과 항구로서의 강한 생명력을 인정받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모로코라는 나라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이 되어도 손색없는 곳이지만, 특별히 에싸웨라의 메디나와 철옹성 같은 높은 성벽들, 퇴색되어 진한 향수를 자극하는 요새와 생명력 넘치는 항구는 그 동적이며 인간미 넘치는 오묘한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세계 문화유산이다.


이곳을 거쳐간 이름난 예술가들이 떠오른다. 누구나 인정하는 모로코 최고 휴양도시 에싸웨라는 지미 핸드릭스의 영혼의 은신처였다. 그의 진한 감성이 묻어있는 음악들은 이 허름한 바닷가의 잔향이 고스란히 베어있을 것이다. 모로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예품들도 이곳에서라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목길 작은 공예품들, 그 감각이 이야기를 하고 숨을 쉰다. 세계 팝 뮤직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매년 6월쯤이면 세계음악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대서양을 마주하며 모로코 특유의 향기와 낭만적인 모습에 반해, 모두 행복에 취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서양의 짙고 푸른 바다와 많은 어획고의 항구도시로 더욱 유명한 곳이지만, 집채만한 파도와 거대한 들판과도 같은 해안 비치의 부드러움은 서퍼 마니아들에겐 매혹적인 것이다. 물론 북부의 작은 항구 도시, 아실라와 함께 아름다운 해변 도시로 최근 모로코뿐 아니라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아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원시의 바다, 원초적 서핑의 고향으로 평판이 자자한 곳으로 모로코 해안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에게도 특히 인기가 많은 곳이다.


비릿한 바다, 에싸웨라 항구를 향해 걷는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에싸웨라의 심장에 들어선 바로 그 순간을. 밥 두칼라(Bob Doukkala, 두칼라 문) 를 들어서면 잠시 아치형 문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수 백년 전 세월의 흔적 속으로 빨려 들어온 듯한 묘한 느낌이 강하게 밀려오기 때문이다. 한발, 한발 메디나 안쪽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색다른 건축물과 묘한 거리풍경에 압도되어 간다. 길가의 오랜 상점들과 도로 위 행상들, 보헤미안 컬러들과 모로칸들의 묘한 눈동자, 에싸웨라의 세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에싸웨라의 감동과 추억은 메디나 안쪽 작은 골목길에서 시작된다.


메디나를 관통하면, Moulay Hassan 궁전 앞 너른 광장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아래, 갈매기 끼룩끼룩 날고 저 멀리 에싸웨라 항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가 보이니 가슴도 확 트인다. 비린내 온몸에 밀려오면, 해풍을 맞으며 그 바다를 마주하고 선다. 방파제와 성벽 아래, 어부들의 부산한 손놀림과 경매 시장의 소란한 소리가 항구의 활기에 생명을 더한다. 한가히 드나드는 배, 하늘을 유유히 선회하는 거대한 갈매기들, 온통 파란색으로 채색된 부둣가 어선들, 이 모두 에싸웨라의 얼굴이다. 이곳에 서면, 왜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아틀란틱 오션을 마주하고 선다. 거대한 파도 일렁이는 바다와 먹잇감 찾아 하늘 수놓는 갈매기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고독한 방랑자들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깊은 영혼의 고향 같은 기운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거부감도 없이 오랜 추억의 무대처럼 항구의 부산함은 소란스럽지만 오래도록 정겹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뱃사람과도 눈인사 나누고, 그물 고치는 어부와 항구로 들어오는 어선들은 마음에 머문다. 하늘 선회하며 먹거리 찾는 갈매기와도 이내 친구가 된다.


Essaouira 는 영어식 표기지만 이 도시의 이름을 처음 부르거나 기억할 때 조금 난감했다. 에싸우이라, 에싸웨라 등, 다양하게 불리 우는 이곳은 흔히 essa-weera 로 불린다. 에싸웨라는 모가도르라는 옛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북 아프리카 인들이 사용하는 베르베르어에서 유래한 말로 안전한 항구라는 뜻이다. 거센 대서양의 파도와 바람을 막아낸 안전한 항구였기에 예부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밥 두칼라를 들어서면, 길게 이어진 Ave Zerktouni 메디나 시장 길의 매력에 눈길을 빼앗기고 만다.


항구의 묘한 매력에 더불어 에싸웨라의 낭만은 깊고 높은 성벽과 골목 깊숙한 곳에 있다. 메디나 안쪽의 좁고 높은 골목길은 아련하다. 오랜 세월의 흔적과 함께 삶의 진한 향수를 자극한다. 메디나 안쪽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전체가 작은 상점들과 시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죽제품, 은 세공품, 향신료, 목 공예품들과 킬림 양탄자들이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하지만 보는 것 자체가 이미 행복한 선물과 다름없는 에싸웨라의 골목길. 길을 잃어도 좋다, 흘러간 모로칸 전통 음악에 심취하여 세월의 오랜 시간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보자.

에싸웨라, 그 이름의 이면에는 예술인들의 오랜 열병이 있었다. 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시민 케인’의 감독 오손 웰스가 남은 생을 이곳 바닷가에서 살았고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와 밥 말리 등이 한동안 머물다 갔다. ‘글래디에이터’ 리들리 스콧 감독도 이곳에 집을 샀으며, 프랑스인들은 별장처럼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여행자와 무수히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사랑한 이유는 대서양의 아스라한 물빛과 오래된 먼 미래와도 같은 이곳의 이국적인 풍경 때문일 것이다.


대서양, 그리운 바다, 히피들의 마음의 고향, 아무 하릴없이 몇 날을 이 골목 저 골목 배회해도 행복한 이곳은 진정한 여행자의 천국이다. 따사로운 태양아래, 눈부신 바다와 멋진 카페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포진하고 있으며, 무엇을 먹어도, 어디를 둘러 보아도 그 느낌과 공기가 사뭇 다른 이곳을 그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오래된 추억, 에싸웨라 그 빛 바랜 골목길 사이를 거닐다 보면, 누구나 자유 그 소중한 가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에싸웨라 여행정보

아프리카 북단, 대서양 바다가에 자리한 에싸웨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유럽의 파리나, 중동의 카타르 등을 경유하여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갈수 있다. Air Moroc 국내선 비행기로 에싸웨라 모가도르 공항에 닿을 수 있으며 카사블랑카, 마라케쉬에서 버스가 자주 출발한다. 아주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나, 독특한 풍광과 숨겨진 매력 때문에 예술가들과 마니아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늘고있다.


아틀란틱 오션의 너른 가슴을 느껴볼 수 있으며, 독특한 모로코 풍의 호텔에서 한가로이 여유와 낭만도 찾아보자, 어선들이 부산히 오가는 포구와 생선 경매장, 멋스러운 골목길 쇼핑, 비치에서의 자유로운 시간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여행자와 모로코 주민들이 어우러진 메디나 안 시장통은 언제나 활기가 넘쳐난다.

카사블랑카’라는 단어에는 왠지 모를 낭만과 애잔함이 깃들어있다. 카사블랑카를 방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그렇다. 1942년 개봉한 영화 [카사블랑카] 속 두 연인의 인상적인 러브스토리는 지금도 회자되는 명대사와 함께 추억으로 곱씹어진다. 주인공 릭(험프리 보가트)이 운영하던 카페 '아메리칸'에 나지막이 흐르던 영화음악 'As time goes by'를 흥얼거리며 모로코에 당도한다.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코란의 구절 그대로 바다 위에 지어진 하산 2세 사원.




아프리카와 유럽의 접점, 카사블랑카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중해를 통해 유럽과 맞닿아 있는 모로코는 유럽색이 짙은 국가이다. 특히 모로코 제2의 도시인 카사블랑카는 동명의 영화로 인해 아프리카보다는 남부 유럽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북쪽으로는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대서양 연안, 동쪽으로는 알제리, 남쪽으로는 사하라사막에 둘러싸인 모로코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아프리카보다 유럽을 통해서 유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북부 아프리카에 널리 퍼져있는 이슬람 문화 역시 카사블랑카의 또 다른 면모이다. 3000년이 넘도록 외세에 시달린 세월들은 이제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비쳐지고 있다. 로마, 비잔틴, 이슬람, 스페인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의 모습은 단순한 낭만으로 그쳐지지 않는다.


유럽인가 하면 황량한 사막과 오아시스가 펼쳐지고, 미로 같은 시가지의 골목길 사이로 화려하고 웅장한 이슬람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하지만 어느 하나 이색적이지 않은 곳이 없다. 중심가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은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 세워졌다는 자체만으로 꽤나 놀랍다. 영화가 선사한 낭만이라는 단어보다 각각의 무늬와 형태가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모자이크가 카사블랑카를 더 잘 설명한다고 느껴진다.

메디나 안쪽의 시장은 세계 어디와 마찬가지로 활기차다.

카사블랑카 시가지 끝으로 멀리 대서양이 보인다.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최대도시다. 북쪽에 수도 라바트가 있지만 관공서나 기업체 등이 몰려있는 행정 중심인 카사블랑카야말로 모로코를 대표하는 관광도시이자 경제도시다.


야자수가 늘어선 시가지를 달리던 차는 바닷가로 나서자 끝없는 대서양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카사블랑카(하얀 집)라는 이름처럼 흰빛을 띄고 있어 태양이 고스란히 비치면 온 천지는 오렌지 빛으로 물든다. 아프리카 최대의 항구로 꼽히는 카사블랑카 항구는 대형 화물선과 여객선, 작은 고깃배들이 어우러져 있다. 대서양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을 진열한 어시장에는 영화에서 보던 낭만보다 활기찬 생명력이 느껴진다.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메디나'(아랍어로 '도시'라는 뜻)에 들어서면 혼잡한 건물들에 눈이 어지럽다. 수세기에 걸쳐 여러 민족의 침략으로 생명과 재산의 위협을 받아온 사람들이 메디나 안에 자신들만이 아는 통행로를 만들어냈고 이러한 골목들은 이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됐다. 오랜 역사의 메디나가 카사블랑카 중심지 성벽 안에 자리 잡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메디나 어디서든 한눈에 보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의 건물이 있다. 바로 카사블랑카 제1의 관광명소 ‘하산 2세 사원(핫산 모스크)’이다. 높이가 200m나 되는 거대한 기둥사원이 우뚝 솟아있어 어디를 가든 눈에 띈다. 하산 2세 사원은 카사블랑카 서쪽 해변을 막아 만든 간척지 위에 지어져 실내/외에 각각 2만 명과 8만 명, 합쳐서 모두 1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대규모 사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알-하람 모스크(al-Haram Mosque)'와 메디나 의 '예언자 모스크(Prophet's Mosque)' 다음으로 큰 규모다. 모스크 건설에 투입된 장인만도 1만여 명, 공사 기간은 8년이나 소요된 거대한 건축물이다.


높이뿐 아니라 대리석이 깔린 넓은 광장으로 인해 얼핏 보면 사원이라기보다 고급스런 궁전 같다. 기둥과 건물 외벽, 실내 곳곳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모로코 전통 문양으로 화려함을 뽐낸다. 코란의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구절을 따라 해안가 절벽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원에서 바로 대서양의 시원한 바람과 석양을 맞이할 수 있다. 특히 태양이 대서양 건너편으로 지며 내뿜는 빛에 마치 화학반응이 일어나듯 모스크 벽면 주위로 반짝반짝 빛나는 신비로운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갤 숙이게 한다.




흑백영화의 낭만 대신 풍요로운 삶의 매력을

다시 시가지를 지나 시내 중심가로 이동하면 무함마드 5세 광장에 도달한다. 시 청사가 위치한 이곳이 중심점이 되어 도로들은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중심지역이다. 시내 중심가답게 광장 중심의 분수대와 주위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다.

시내의 중심가에 위치한 무함마드 5세 광장. 많은 현지인들의 휴식처이다.

바 카사블랑카. 영화 [카사블랑카]를 추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이다.


모로코에서는 카사블랑카에서가 아니더라도 무함마드 5세라는 명칭을 자주 볼 수 있다. 1912년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항거해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무함마드 5세는 마침내 1956년 독립을 쟁취하자 왕위에 올랐다. 여전히 많은 모로코인들에게 국부로 숭상 받는 무함마드 5세를 위해 카사블랑카 말고도 수도인 라바트에 무함마드 5세 거리나 무함마드 5세 묘 등을 지어 기념하고 있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는 영화 속 카사블랑카의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운 험프리 보거트의 우수어린 모습을 추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함마드 5세 광장 앞 하얏트 호텔 1층에는 바 카사블랑카가 영화 속 주요 촬영장소인 ‘릭스 카페 아메리칸’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이 카페는 당시 영화 포스터, 주연 배우들의 사진들이 1960년대의 복고풍 분위기를 한층 돋워주며 관광객들의 기념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더 이상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지라는 타이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이국적 풍경의 관광도시로 도약하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낭만을 꿈꾸며 카사블랑카로 떠나는 사람들은 풍요로운 삶의 매력을 안고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가는 길
아직 인천에서 카사블랑카로 가는 직항노선은 없다. 카타르 도하나 파리, 마드리드를 경유하거나 하루 7~8회 운항하는 스페인 타리파항과 모로코 탕헤르를 잇는 쾌속선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까지는 자동차로 4, 5시간 걸린다.

 

'노천 박물관'이라는 말은 참 흔하게 쓴다. 고색창연한 땅을 견줄 때 그만큼 적당한 표현이 없기도 하다. 이집트 룩소르(Luxor)에 들어서면 노천 박물관의 챔피언 벨트를 이 도시에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유적들은 나일강변 주민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룩소르는 오랫동안 고대 이집트의 수도로 위용을 떨쳤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룩소르를 ‘백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로 칭송했다. 나폴레옹의 군대 역시 이집트 원정에 실패하고 돌아가면서도 룩소르의 매력에 한동안 퇴진을 멈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굳이 선인들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룩소르는 보이는 것만으로도 오래 구워낸 진흙 빛 신전과 유적들의 세상이다. 천년 걸려 완공된 카르나크 신전, 도심 한 가운데 우뚝 선 룩소르 신전 외에도 강 건너에는 멤논의 거대 석상과 왕들의 무덤이 들어서 있다. 룩소르는 실제로 거대한 박물관 안에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도열한 느낌이다.

이집트의 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르나크 신전



200km 뱃길에 드러난 노천 박물관

룩소르에 닿는 가장 매혹적인 방법은 나일강 크루즈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스완을 뒤로한 크루즈는 나일강을 따라 북쪽 룩소르까지 200km 뱃길을 달린다. 언뜻언뜻 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온통 사막과 오아시스가 뒤범벅된 모습이다. 조각배들이 강 줄기를 오가고 한가롭게 그물을 던지는 풍경들이 덧씌워진다.

해질 무렵 룩소르에 배가 정박하면 강변 뱃머리 코앞으로 룩소르 신전이 조명을 받아 빛을 낸다. 선상에서도 그 윤곽이 또렷히 내려다보인다. 수천 년 석상으로 자리를 지켜온 람세스 2세와 함께 하는 밤은 다가서는 감동부터가 다르다.

태양이 솟으면 룩소르의 자태는 한층 선명해진다. 룩소르는 나일강의 서쪽과 동쪽 풍경이 다르다. 해가 지는 서안은 왕들이 잠든 죽은 자들의 땅이고 동쪽은 산자들의 터전과 신전이 들어서 있다. 강 양쪽을 잇는 다리가 연결됐지만 이곳 주민들은 배를 타고 산자와 죽은 자들의 경계를 쉴새 없이 오간다.

왕들의 계곡으로 불리는 서안 지역은 바위산 계곡 아래 파라오들의 무덤이 늘어서 있다. 왕들의 무덤을 꼭꼭 감춰놓았지만 숱한 도굴에 시달려야 했다. 온전한 모습을 갖췄던 투탕카멘의 유물만이 현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무덤 내부 벽화에 새겨진 그림이나 조각들은 섬세하고 색감이 또렷하다. 수천년 녹아든 전율은 쉽게 가슴으로 전이된다.



사연과 규모를 뽐내는 석상과 신전들

왕들의 계곡에서 연결되는 하트셉수트 여왕 신전이나 멤논의 거상 역시 그 규모로 감동을 증폭시킨다. 무덤에 부속된 죽은 파라오의 집을 의미하는 제전은 서안에만 30여개가 넘는다. 커다란 좌상인 멤논의 거상에는 해가 뜰 때마다 '새벽의 여신'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담겨 있다.

새벽의 여신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담긴 멤논의 거상.


동쪽으로 넘어서면 신전들이 내뿜는 호흡은 더욱 가파르고 강렬하다. 이집트의 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르나크 신전은 국가 최고신인 아멘라를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건립에만 천년이 넘는 세월이 소요됐는데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배경이 돼 유명해지기도 했다. 대신전 내에는 몇 개의 또 다른 신전들이 들어서 있고, 신전 안 기둥들은 134개나 늘어서 여행자들에게 아득한 사색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정교하게 솟은 오벨리스크나 양들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들도 특이하다. 이곳 파라오의 참배 길은 도심에 위치한 룩소르 신전까지 2km 가량 이어져 있다.


룩소르 시내를 거닐면 마차고 오가고, 바자르(재래시장)가 들어선 차분한 풍경이다. 고대 왕국의 위용이나 웅장한 신전과는 별개로 산 자들의 세상은 오래된 것에 익숙해진듯 평화로운 일상으로 다가선다.


가는 길

인천에서 이집트 카이로까지 대한항공 등이 운항한다.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항공이동이 가능하며 나일강 크루즈를 이용해 아스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집트 입국에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는 공항 입국장 환전소에서도 즉석 구입이 가능하다. 뜨거운 태양에 견디려면 긴팔 옷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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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 세이셸
"살아 있을 때 꼭"… 새해 버킷 리스트 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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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 라디그섬 그랑앙스 해변. 바다와 하늘이 세상의 푸른색을 모아놓은 듯 눈 시리다. 해변을 맨발로 걷는다. 미숫가루처럼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게 하는 순간 자연과 나는 하나가 된다. / 세이셸관광청 제공

‘버킷 리스트(bucket list)’는 살아 있을 때 꼭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입니다. 올해의 일을 꼽아보셨나요. 쉽게 가기 어렵지만 언제든 한 번쯤 꼭 가고 싶은 해외여행지로 초대합니다. 인도양 세이셸로 영국 왕세손처럼 화려한 여행을 떠날까요?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를 보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거나 ‘도시 전체가 미술관’인 마이애미 비치에서 게으른 휴가를 즐기고 싶습니다.

‘귀 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 위에 무수한 밤이 왕래(往來)하나/ 길은 항시(恒時)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알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서정주 ‘바다’). 시인처럼 말해봅니다. 세이셸로 가라, 빅토리아 폭포로 가라, 마이애미 비치로 가라.

"지구 어딘가에 낙원이 있다면, 여기가 바로 거기다."

16세기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네 척의 배를 끌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印度)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피곤한 여행자'였다. 가도 가도 망망대해, 험상궂은 비바람이 언제 배를 집어삼킬지 몰랐다. 단 한 곳,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곳이 있었다. 드넓은 인도양에 떠 있는 작은 무인도였지만 숲이 우거졌다. 계곡엔 언제나 물이 흐르고 사시사철 따스한 미풍이 불었다.

그로부터 500년―. 무인도는 주변에 있는 115개 섬과 함께 '세이셸'이란 이름의 작은 나라로 태어났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친 몸과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아간다. 따지고 보면 현대인이란 언제 어디서 인생의 암초를 만날지 모를 '피곤한 여행자'들 아닌가. 서울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지난달 낙원을 찾는 순례 대열에 몸을 실었다.

쾌속선이 순례객들을 세이셸에서 넷째로 큰 섬 라디그에 풀어놓았다. 모두 샌들에 반바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차림이다. 목적지는 따로 없다. 지도 한 장 들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뿔뿔이 흩어진다. 저마다 등에 진 배낭에는 수영복과 수건이 들어 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마음에 드는 해변 있으면 훌훌 옷 갈아입고 들어갔다가 나와 다시 몸 말리고 떠난다. 기온은 연중 24~30도. 가다가 목이 마르면 길가에서 야자열매 하나 산다. 누군가 바닷가 바위 위에 맨몸으로 누워 맑은 햇빛의 희롱을 즐기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동쪽으로 1600㎞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세이셸은 '인도양의 진주'라 불린다. 세이셸은 사람이 정착해 산 지 250년밖에 안 된다. 여느 휴양지와 달리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풍경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이셸 사람을 이루고 있는 인종은 아프리카, 유럽, 중동, 아시아 등 다양하다. 그들은 "내 안에는 열 가지 이상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누구나 세이셸에선 주인이 아닐 수도 있고, 주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라디그에 있는 해변 앙세 소스 다장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의 해변 10곳'에 뽑힌다. 오랜 세월 비바람 맞은 거대한 화강암 바위들이 위용을 드러낸 사이로 수평선까지 옥색 바다가 시원하다. 하늘은 원래 이런 색깔이었지 싶게 눈 시리게 파랗다. 시간 따라 햇빛 각도가 바뀌면서 바위와 바다의 색깔이 영화 장면처럼 달라진다. 수억년 파도에 산호가 부서져 만들어진 모래가 미숫가루처럼 곱다. 맨발로 밟는 순간 발가락 사이가 간지러우면서 현기증이 난다. 이곳은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촬영 현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세이셸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입에 담지 않는다. 그들 눈에는 세이셸에 신혼여행 왔던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나,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온 축구 스타 베컴 부부, '해리 포터' 작가 조앤 롤링도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여행객 중 하나일 뿐이다. 

세이셸
18세기 영국 고든 장군은 프랄린 섬에 있는 원시림 무성한 계곡을 가보고 “성경 속 에덴동산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이곳에서 나는 열매 ‘코코 드 메르(바다의 코코넛)’는 지구 상에서 가장 섹시한 모양의 열매다. 여성의 몸을 닮았다. 숲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웃통 벗고 흙길을 걷는다. 맞은편에서 역시 웃통을 벗고 걸어오던 유럽 청년 둘이 이쪽을 보고 웃는다. 바닷가에 있을 땐 지중해 어디쯤 온 것 같더니 숲에 오니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밀림에 들어온 것 같다.

세이셸에서 가장 큰 섬 마헤에는 60개 넘는 해변이 즐비하다. 세계적인 특급 리조트와 그림 같은 자연 풍경이 이어진다. 눈앞의 풍경을 놔두고 발걸음 떼는 것이 아쉽고 다음 것 빨리 보고 싶어 마음이 바빠진다. 여행객의 별수 없는 조급함이다. 여정의 절반은 숙소인 리조트에서 느긋하게 보내기로 한다. 객실은 하나하나가 호화 별장이다. 객실에 딸린 전용 풀에 몸을 담그니 잉크를 풀어놓은 것 같은 인도양이 끝없이 펼쳐진다. 짧은 순간 소나기가 쏟아지고 거짓말처럼 개더니 바다와 하늘을 잇는 거대한 무지개를 만들어놓는다. 리조트에 딸린 해변은 100m 걸어 들어가도 물이 허리까지만 올라올 만큼 완만하다. 난생 처음 타보는 카약이 무섭지 않다. 해변의 야자나무 아래에는 투숙객 누구나 언제든 쉴 수 있게 안락의자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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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누워서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서로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느릿느릿 시간이 갔다. 해질 무렵 해변 안락의자에 누워 파도 소리 들으며 뺨을 스치고 가는 미풍 속에 잠에 빠져들면서 낙원은 완성됐다. 바스쿠 다 가마는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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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 해변에서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
중동 두바이나 아부다비, 도하에서 환승해 가는 게 일반적이다. 총 비행 시간은 갈 때 14시간, 올 때 12시간 정도. 중동~세이셸 비행 구간은 창가 쪽 자리를 권한다. 눈 아래 광대한 아라비아 사막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한국보다 다섯 시간 느리다. ‘루피’라는 세이셸 화폐가 있지만 달러나 유로, 신용카드만 있으면 큰 불편 없다.

여러 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마헤와 두 번째인 프랄린, 그리고 라디그는 꼭 한 번 가봐야 한다. 섬마다 딴 데 없는 자랑거리들이 있다. 리조트에선 유럽·지중해·아시아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청정 해역에서 잡히는 참치·홍도미 요리는 입에서 녹는다. 마늘과 양파, 고추를 많이 쓰는 토속 크레올 요리도 우리 입맛에 맞는다. 세이셸 특산 맥주 세이브루를 곁들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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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주한 세이셸 명예총영사관과 세이셸 체육위원회가 주최하는 에코 마라톤대회가 세이셸 국가 4대 이벤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마헤 섬 최고의 해변인 보 발롱을 출발해 수도 빅토리아를 왕복하는 환상의 코스다. 5㎞·10㎞·하프·풀코스 등 네 개 종목으로 나눠 세이셸 원주민과 한국인 포함, 38개국에서 3000여명이 참가한다. 올해는 2월 28일. 문의 (02)737-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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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셸 버킷리스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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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바다에 화강암으로 된 다양한 크기의 섬들이 전시하듯 늘어서 있는 세이셸. 이런 섬들이 무려 41개나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매년 찾는 휴가지, 영국 BBC 선정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천국', 미국 NBC방송이 정한 '세계 톱5 여행지'…'청정 휴양지' 세이셸을 둘러싼 수식어는 끝이 없다. 지구가 탄생한 순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세이셸. 그야말로 '인도양의 숨은 진주'다. 그 속에도 버킷리스트가 있다. 억척같이 땅 하나하나를 밟아가며 직접 가보고 꼽았다. 그러니깐 백영옥의 '세이셸 버킷리스트 8'이다. 

① '세이셸 문화의 중심지' 마헤 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휴양지, 영국 윌리엄 왕자의 허니문 장소,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결혼 10주년 여행지로 알려진 세이셸은 온갖 매체에서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곳으로, 지극히 사적이고 느긋한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인구의 80%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마헤 섬은 세이셸의 문화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수도 빅토리아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퀸시 스트리트 주변에는 토착 공예품을 살 수 있는 가게와 갤러리, 힌두교 사원과 크레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재래시장이 있다. 시내임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이 몇 개 없다는 게 인상적이다. 근처 상점에서 세이셸 전통 맥주인 '세이브루'를 구입해 마시면서 곳곳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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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보물찾기를 연상케 하는 몬블랑 트레킹 역시 꼭 해봐야 하는 액티비티. 세이셸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자이언트 거북도 라디그 섬에선 꼭 봐야 하는 명물로 통한다.

② '사진가들이 반한 석양' 보발롱 해변 여행의 영감을 받으세요 travelbible.tistory.com 

수도 빅토리아의 북쪽에 있는 보발롱 해변은 인도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석양 때문에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반얀트리나 포시즌 같은 고급 리조트가 밀집한 북쪽 해변과 달리 보발롱 해변 근처에는 합리적인 가격의 리조트들이 밀집해 있다. 그곳에서 세이셸에 장기 체류하는 유럽인들이나 모래장난을 하는 아이들, 해변에서 단체로 축구를 하는 세이셸 사람들의 활기찬 일상을 동시에 관찰할 수도 있다. 빅토리아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③ '58가지 동식물의 낙원' 르자르댕뒤루아 여행의 즐거움 travelbible.tistory.com 

프랑스어로 '왕의 정원'이란 뜻을 가진 개인 식물원으로 마헤 섬 남부에 위치해 있다. 특히 열대과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볼 만한 곳이다. 카카오, 바나나, 바닐라, 잭프루트, 아보카도 나무 이외에 육지 거북, 금강 앵무새, 닭 등 58가지의 동식물들을 차례로 볼 수 있다. 

나무가 있는 정원에서 육지 거북을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세이셸 특유의 문화도 자연스레 녹아 있다. 특히 크레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은 더위에 지친 입맛을 북돋아준다. 레드프루트와 파파야 샐러드, 골든애플 무침, 렌틸수프처럼 이름만 들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음식은 '건강식은 맛없다'는 편견을 가볍게 깬다. 입장료는 8유로. 일품요리가 70~180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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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에서 꼭 해봐야 하는 라디그 섬 자전거 투어.

④ '섬 전체의 전망대' 라미션 여행의 즐거움 travelbible.tistory.com 

마헤 섬 전체를 천천히 관망할 수 있는 곳으로, '몬 세이셸 국립공원' 중턱에 있는 전망대다. 트레킹을 하지 않아도 자동차로 운전해 원시림이 가득한 국립공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흔히 한국에선 '계피'가 '시나몬'으로 둔갑하는 일이 많은데, '라미션' 길목에 보이는 거대한 시나몬 나무를 직접 만져보는 것도 재미다. 빅토리아에서 서쪽으로 자동차 10~20분 거리다. 

⑤ '세이셸 제2의 섬' 프랄린 섬 여행의 영감을 받으세요 travelbible.tistory.com 

마헤 섬에서 프랄린 섬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두 가지. 15분이면 도착 가능한 경비행기를 타거나 페리를 타는 것. 마헤 섬~ 프랄린 섬 구간은 45분 정도 소요된다. 마헤 섬~프랄린 섬 페리 요금은 1인 편도 43유로(마헤 섬~라디그 섬까지의 요금은 56유로). 프랄린 섬 최고의 해변인 앙세라지오는 프랄린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선착장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⑥ '성서의 에덴동산이 그대로' 발레드메  여행의 즐거움 travelbible.tistory.com 

15억년 전 곤드와나 대륙 시기부터 존재해 원시림으로 이루어진 발레드메(Valle de mai·5월의 계곡)는 유네스코 지정 자연문화유산으로, 세이셸을 상징하는 6000그루의 코코드메르 야자수 외에 여섯 가지의 토종 야자수가 자라고 있다. 

처음 이곳을 발견한 고든 장군이 '만약 성경의 에덴동산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라 감탄한 일화가 실감나는 풍경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25㎏에 달하는 코코드메르 야자수의 수나무 열매는 남성의 성기를 닮았고, 암나무는 여자의 엉덩이를 닮아서,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모두 열매를 손에 안고 코믹한 기념사진을 찍기 바쁘다.  

3월의 발레드메는 분명 실외지만, 습도를 높게 맞춰 놓은 거대한 식물원처럼 느껴진다. 고개를 꺾어야 간신히 끝이 보이는 나무들 때문에 하늘은 꼭 조각난 천장같이 느껴지고, 끝없이 들려오는 다양한 새 소리 때문에 시간을 거슬러 먼 과거에 도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나무들의 소리와 새 소리를 채집해 넣어두고 싶단 충동이 들 정도다. 원시림 속에는 검은 앵무새와 작은 토종 파충류들이 살고 있다. 30분에서 1시간 코스, 입구에서 국립공원의 정상까지 가는 3시간 30분 코스 등 다양한 코스가 있다. 남부 선착장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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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 자이언트 거북

⑦ '기암절벽이 가득' 라디그 섬 

11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이셸의 섬 중 라디그 섬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 무대이기도 했던 곳이다. 섬을 돌다 보면 크레올 전통방식의 코코넛 가공 공장과 들어가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공동묘지, 기암절벽으로 가득한 해변들을 여행객 각자의 속도와 보폭에 맞춰 즐길 수 있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여행하는데, 페리의 선착장에 내리면 대여할 수 있다. 섬 전체를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시간. 하루 대여료는 100루피로, 약 9500원이다.  

⑧ '카펫과 같은 모래사장' 앙세 소스 다종 

41개의 화강암 섬 중에서도 앙세소스다종 해변은 특출날 만큼 기괴한 모습을 자랑하며 카메라 셔터 본능을 자극하는 섬이다. 수억 년의 시간이 축적되어 공룡, 새, 인간의 모양처럼 형성된 기괴한 암석들은 날씨와 빛의 각도에 따라 음영을 달리하며 드라마틱하게 바뀐다. '희다'라는 동사 이외의 그 모든 형용사가 사족처럼 느껴지는 모래 위에 무심히 박혀 있는 해초 잔디들은 현대적인 오브제처럼 느껴진다. 반드시 맨발로 밟아볼 필요가 있는 이곳의 모래는 보드라운 카펫처럼 발바닥 전체를 감싸 안는다. 라디그 섬 서쪽 해안을 따라 자전거로 30분 정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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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셸, 인도양 섬나라서 마라톤 해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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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초미니 수도 빅토리아와 센트안 해상공원을 한눈에 품을 수 있는 전망대.

'마라톤'을 떠올리면 두 명의 남자가 동시에 떠올랐다. 한 남자는 무라카미 하루키.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마라톤 마니아다. 하와이나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해 직접 달리는 모습을 봤다는 지인의 증언이 있을 정도다. 

또 한 명의 남자는 내 첫사랑. 달리기 중독자였던 그 남자 때문에 옆에 있던 친구에게 운동화를 '빌려' 신고 교내 마라톤 경기에 당일 참여했었다. 주최 측이 참가자 중에 예술대 여학우도 있다며, 마라톤 경기를 취재 온 교내방송 기자에게 나를 들이민 덕분에 나는 졸지에 인터뷰까지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준비 없이 뛰다가 땡볕에서 스타일 구기게 쓰러져(라기보다 앞으로 헤딩했다는 말이 더 정확) 보건실까지 실려가긴 했지만. 

아프리카 대륙, 인도양의 작은 섬 세이셸은 여러 모로 낯선 나라였다. 인구 9만명인 나라에서 국제 육상경기연맹이 공식 인증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것도 신기했다. 내국인 2000명, 51개국에서 온 1200명을 포함하여 총 3200여 명이 이 마라톤에 참가하는데, 내게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그 얘길 듣자마자 악몽 같은 내 추억이 떠올랐지만, 직접 마라톤을 뛰어보기로 했다. 20여 년 만이었다. 

세이셸로 가는 직항은 예상대로 없었다. '에티하드' 항공을 타고 '아부다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쾌적한 비행 환경에도 불구하고 갈아타고, 기다리고, 도착하는 데 거의 20시간 가까이 걸렸다. 세이셸에 도착했을 때, 우기가 시작된 섬나라 특유의 열기와 습기 때문에 몸이 늘어졌다. 마라톤은 다음날 오전 7시였다. 시차 부적응 상태에서 먼 아프리카까지 날아와 달리다가 졸도해 실려 간다면? 말을 말자. 사전 정보도 얻을 겸, 마중을 나온 관광청 직원에게 마라톤에 참가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노노!'라는 말을 단호하게 반복해 나를 더 공포에 몰아넣었다. 

마라톤 당일, 호텔에서 경기가 열리는 마헤 섬의 보발롱 해변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미 내 등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몸을 풀며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내겐 그것이 꼭 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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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선정 세계 최고의 해변 으로 꼽힌 라디그 섬 그랑앙스. 화강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마라톤 하면 인간 한계, 의지 극복 같은 말부터 떠올라 엄숙해졌다. 황영조, 이봉주의 빼빼 마른 근육질 몸을 떠올리면 '극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며 마라톤은 딴 세상 얘기처럼 들렸던 거다. 하지만 기록을 경신하거나, 금메달을 따겠다는 마라토너 특유의 집념과 의지는 그곳에 도드라지지 않았다. '세이셸 에코 마라톤 대회'는 꼭 동네 축제처럼 보였다. 세이셸에 사는 동네 아이들이 전부 선물처럼 이곳에 도착해 있는 것 같았다. 원주민과 유럽계의 혼혈인 '크레올' 아이들은 유난히 머리가 동그랗고, 바글거리고, 반짝여서 하루 종일 그 아이들 얼굴만 보고 있어도 지루할 것 같지 않았다. 

마라톤은 4개 경기로 진행됐다. 풀코스·하프 마라톤도 있지만, 5㎞와 10㎞ 마라톤도 있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나는 5㎞를 뛰었다. '질주본능'이 장착된 듯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거북이를 지킵시다' 같은 문구를 단 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환경단체 남자도 있었고, 유모차를 밀며 아이와 함께 달리다 걷다 하는 엄마, 몸이 불편한 아이와 함께 달리는 '휠체어 맨'도 있었다. 운동화를 신지 않고도 캥거루처럼 폴짝폴짝 잘만 뛰는 크레올 아이들의 발바닥이 유난히 하얗고 예뻤다. 

기록 갱신이란 말을 머리에서 지워버리자, 눈에 들어오는 게 많아졌다. 마라톤 코스 곳곳에서 열대과일 주스를 팔고 있는 여자들과 부지런히 코를 파고 있는 경찰관이 보였다. 007 시리즈로 유명해진 '이언 플레밍'이 마라톤 코스인 보발롱 해변이 보이는 호텔에 머물며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이곳엔 스프링클러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완주자든 포기자든 더우면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게 대회 콘셉트란 얘기도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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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의 모제스 무부구아(Moses Mbugua)가 3시간31분18초로 남자 마라톤 1위를 했다. 나와 함께 뛴 한 기자는 5㎞ '아시아 여성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나는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가, 해변에 뛰어 들어가는 기행을 저질러 결국 (내 생각에는) 꼴등으로 들어왔다. 휠체어를 탄 남자아이가 나를 앞선 게 기뻤는지, 웃으며 혀를 쏙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완주했다. 금메달도 받고, 마라톤 공식 티셔츠도 받았다. 땀 때문에 젖은 미역줄기처럼 늘어진 머리를 드러낸 채 기념사진도 찍었다. 누구도 이기진 못했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기분이었다. 행복은 결국 '다행'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 보이고 싶었던 남자 앞에서 졸도하지 않은 게 어디인가. 마라톤과 관련된 내 트라우마는 세이셸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변과 파도소리에 씻겨 사라져 버렸다. 

▶ 세이셸 여행 100배 즐기는 Tip 

1. 가려면〓두바이나 아부다비, 홍콩을 경유한다. 에미레이트항공이 두바이~세이셸을 주 14회, 에티하드항공은 아부다비~세이셸을 주 14회 운항한다. 세이셸로 갈 때는 13~14시간, 올 때는 12시간 정도 걸린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인도양의 레위니옹이나 모리셔스, 케냐와 에티오피아 등 다른 지역을 한꺼번에 여행하는 것도 좋다(비행기로 2~3시간 내외). 

2. 숙박은〓초특급 프라이빗 리조트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비용으로 따지자면 50~6500유로까지, 그야말로 극과 극. 

3. 먹거리〓대표적인 음식은 '크레올식 카레'. 호텔에서의 아침은 대부분 인터내셔널식이다. 커피가 우리 입맛과 다르다. 믹스커피가 요긴할 수 있으니 꼭 준비할 것. 

※취재협조〓세이셸관관청(www.visitseychelles.kr·(02)737-3235) 

[세이셸 =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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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과 휴식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세이셸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5억 년 전 태곳적 원시림과 원시 생물들이 오랜 역사를 말하고, 다양한 해양 생물과 산호를 만날 수 있는 1백15개의 아름다운 섬은 힐링 이상의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적당히 호사스럽고, 적당히 신비로우며,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인도양의 섬 세이셸을 만나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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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들의 비밀스러운 휴가지, 세이셸

영국 윌리엄 왕자 부부의 신혼 여행지, 축구 스타 베컴 부부의 결혼 10주년 여행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전 가족과 함께한 휴양지가 바로 '신비의 섬 파라다이스'로 불리는 세이셸이다. 셀러브리티들의 비밀스러운 여행지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지상 최후의 낙원으로 불리며 여행 전문지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와 영국 BBC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기도 했다. '죽기 전에 꼭'이라는 단어가 잠재웠던 여행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에선 최근 럭셔리한 신혼여행지라는 정보만 있을 뿐 대다수 사람에게 '세이셸'은 아직 낯선 이름이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다녀온 사람들의 평을 정보로 삼고 다녀야 제맛인데, 이름조차 낯선 '세이셸'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세이셸은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에 자리한 나라다. 가장 가까운 육지는 케냐지만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풍광을 지니고 있다. 전체 면적은 한반도의 4백분의 1 정도. 거대한 대륙이던 곤드와나 랜드가 바다에 가라앉을 때 가라앉지 않은 부분 중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현재 1백15개(76개의 산호섬과 39개의 화강암 섬)의 섬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태곳적 원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밀림과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 화강암으로 덮인 기묘한 해변을 목격할 수 있어 더욱 흥미진진한 것.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환초와 사람을 닮은 '코코 드 메르' 열매, 최장수 거북 등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순수함, 이국적 풍광은 유럽과 중동 지역 부호들이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독특한 문화 양식, 크레올 문화

18세기 초 발견된 이후 두 세기 가까이 유럽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다가 지난 1976년 독립한 세이셸에는 '크레올(Creole)'이라는 유니크한 문화가 탄생했다. 아프리카와 유럽, 중국과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어우러진 특유의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음식, 그리고 생활 방식 등을 크레올이라고 지칭한다. 백인과 흑인, 인도차이나 계열의 혼혈이 대부분인 섬사람들은 영어와 프랑스어, 크레올어(현지화된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대부분 가톨릭을 믿는다.

more Info.

항공편_ 인천국제공항에서 세이셸까지는 12시간 30분이 걸린다. 에미레이트항공편은 현재 인천-세이셸(두바이 경유) 주 11회, 2013년부터는 주 14회(두바이 경유, 매일 2회)로 확대된다. 에티하드항공편은 현재 인천-세이셸(아부다비 경유) 주 4회, 2013년부터는 주 8회(아부다비 경유, 금요일 2회) 운항된다.
기후_ 대체적으로 건조하며 1년 내내 22~32℃를 유지한다.
시차_ 한국보다 5시간 늦다.
화폐_ 세이셸 1루피(SCR)는 약 1백2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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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spot 1. 시간이 멈춘 자리, 라 디그(La Digue)

세이셸 1백15개의 섬 중 가장 아름다운 섬을 꼽으라면 현지인들은 단연 '라 디그'를 꼽는다. 2010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베스트 10'에서 위풍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섬이자 세이셸에서 가장 포토제닉한 해변으로 꼽히며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 무대가 되기도 했다. 라 디그의 해변들 중에서도 신비롭기로 손꼽히는 '앙세 소스 다종(Anse Source D'Argent)' 해변은 기암괴석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기기묘묘한 형태의 화강암들이 해변을 따라 누워 있는 모습도 장관이지만 햇빛의 움직임에 따라 짙은 회색에서 노랑, 심지어는 분홍빛으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광경은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다.

아담한 라 디그 섬은 2~3시간이면 충분히 자전거로 일주할 수 있다. 수영복과 물, 읽을 만한 책을 넣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천천히 페달을 밟다가 마음에 드는 해변에 자리를 잡고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마치 레고 블록으로 만든 것처럼 작고 화려한 외관의 건물들은 또 다른 볼거리. 경찰서, 여행사, 우체국, 자전거 대여소 등 영화 촬영을 위해 축소해놓은 듯한 마을 풍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프라이빗한 초특급 리조트부터 식민지 시대 세이셸의 전통적 스타일을 간직한 다양한 가격대의 숙소가 해안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서 럭셔리부터 리즈너블한 여행까지 다양한 콘셉트로 머무를 수 있다. 분명 이곳은 파라다이스 같은 분위기를 꿈꾸는 신혼부부들과 힐링을 원하는 여행자들에게 아늑함과 고요함을 선사하기에 손색없다.

resort in La Digue

르 도맹 드 로랑저레
산의 지형에 따라 흙빛 젠 스타일의 빌라가 45채 자리 잡고 있다. 가든 빌라는 정원에 둘러싸여 있는데 소박함과 고요함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로맨틱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프라이빗 테라스에선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의 휴식이 찾아온다. 프라이빗 월풀의 호젓함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문의_ www.orangerai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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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spot 2. 에덴의 동산이 있는 곳, 프랄린(Praslin)

라 디그 섬 못지않게 그냥 지나쳐선 안 될 또 하나의 섬이 바로 프랄린이다. 세이셸에서 두 번째로 큰 이 섬에는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발레 드 메(Valle′e de Mai)'가 있다. '5월의 계곡'이란 뜻의 이곳은 15억 년 전 곤드와나 대륙 시기부터 존재해온 원시림으로, 아담과 이브가 살았을 '에덴의 동산'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원시의 모든 특성이 이 숲에 살아 있다. 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 키의 몇 배쯤 되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놀라운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터. 무성한 가지와 잎으로 둘러싸인 원시림 속을 탐험하다 보면 전설과 신화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전 지구를 통틀어 오직 이곳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검은 앵무새와 녹색 도마뱀을 비롯해 이 거대한 숲의 주인인 수백 종의 야생 조류와 파충류들은 그 어떤 박물관의 유물들보다 신비롭고 놀랍다.

한참을 더 들어가면 그 유명한 '코코 드 메르(Coco de Mer, 쌍둥이 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세이셸 최고의 아이콘으로 사랑받는 코코 드 메르는 다른 야자수와 달리 처음에는 몸통 없이 엄청나게 커다란 잎과 줄기로만 자란다. 이 거대한 야자수가 유명해진 것은 독특한 모양새 때문. 암 열매는 여인네의 풍만한 엉덩이를, 수 열매는 남자의 그것을 쏙 빼닮아 보는 이들의 마음을 '므흣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열매'라 불리기도 한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앙세 라지오와 세이셸 유일의 18홀 챔피언십 골프 코스도 또 다른 즐길 거리다. 프랄린은 작은 시골 마을 같아서 바람과 새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거닐다 보면 특유의 따뜻함과 건강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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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spot 3. 세이셸의 심장, 마헤

세이셸의 섬 1백15개 중 가장 큰 섬은 수도 빅토리아가 있는 마헤다. 65개가 넘는 해변이 즐비한 마헤 섬에는 세계적인 리조트와 함께 그림 같은 마을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만큼 멋진 드라이브 코스가 많은데, 특히 빅토리아에서 출발해서 카페와 리조트가 밀집한 북쪽을 돌아 보발롱 해변과 갤러리를 만날 수 있는 남서쪽 해변을 따라가는 코스가 제일이다. 보발롱 해변에서는 수상스키와 제트스키, 바나나보트와 요트 등 수상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 1년 내내 평온한 조수 간만 덕분에 뗏목이나 카약 등으로 태고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세이셸 전통의 파리 낚시로 녹새치와 참꼬치 등을 잡을 수도 있으니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여행자들에게는 낙원이 따로 없을 듯.

세이셸에서 자연 풍광 그 이상으로 인상적인 것은 밝고 다정한 사람들이다. 세이셸루아(Seychellois)들은 좀처럼 서두르는 법도, 다그치는 법도 없다. 유럽의 부호들이 가장 편애하는 휴양지로 일찌감치 낙점되었지만 그들을 현혹하기 위해 치장하거나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쇼핑 스폿이라고 해봐야 수도 빅토리아 한복판에 있는 재래시장이 전부. 이곳에는 갓 잡아 올린 생선을 싼값에 판매하는 어시장과 과일과 채소, 꽃과 옷가지들을 판매하는 소박한 노점, 눈이 마주치면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주는 상인들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자연이란 함부로 훼손하거나 개발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는 '보존해야 할 이유'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resort in Ma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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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콘스탄스 에필리아 리조트

세계적인 리조트 체인인 콘스탄스 그룹이 최근 문을 연 리조트로 마헤 섬에서도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는 폴로네 해상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세이셸의 리조트 중 최대 규모인 2백68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니어 스위트와 시니어 스위트, 패밀리 빌라와 스파 빌라 등 다양한 형태의 객실을 갖추고 있어 더욱 인기가 높다. 역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스파 드 콘스탄스'와 '시세이도 스파', 다양한 개성을 가진 다섯 개의 레스토랑과 바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문의_ www.epheliaresort.com

2 힐튼 노스홈 리조트

마헤 섬의 앙스 루이스에 자리한 힐튼 리조트는 세이셸에서도 손꼽히는 초호화 자연주의 리조트. 해안부터 산언덕 위까지 30여 개의 풀빌라가 이어져 있으며 각각의 빌라는 개인 별장과도 같은 넓은 공간과 야외 욕조를 갖추고 있다. 인도양의 리조트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히는 친환경적 자연환경과 해변에서 하는 플라이 낚시가 유명하며 낚싯대와 다이빙, 스노클링, 카약 등 해양 스포츠 장비를 무상으로 대여해준다.
문의_ seychelles.hilton.com

 

리프 산맥의 발치에 내려앉은, 모로코에서 가장 예쁜 마을길. 인디고 블루와 화이트의 대비가 눈부신 빛의 마을. 스페인과 모로코 스타일의 행복한 만남 속으로 걸어가는 길. 광장의 카페와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느리게 시간을 소요하는 곳.

세계의 여행자들을 매혹시키는 작은 마을

쉐프샤우엔은 모로코 북서부의 작은 산간마을이다. 리프산맥의 두 봉우리 사이에 걸터앉은 이 작은 마을이 세계의 여행자들을 매혹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스타일과 모로코 베르베르 스타일이 조화롭게 어울린 건축물들의 매력이 첫 번째 이유. 한편으로는 이곳 마을 전체에 떠도는 느긋하고 한가로운 분위기다. 마라케시의 화려함도, 페스의 열정도 아닌, 쉐프샤우엔만의 여유로움이다. 젤라바를 입고 동네를 산책하는 할아버지들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젊은 히피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평화로움이 이 마을에 독특한 아우라를 던져준다.

제벨엘켈라 산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쉐프샤우엔 풍경

일정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움이 필수

험준한 리프산맥에 둘러싸여 오랫동안 고립된 마을이었던 덕분에 이 동네 사람들은 모로코에서 강인하고 독립적이기로 소문났다. 이들은 종종 자기네 마을을 옛 이름인 샤우엔(Chaouen - 베르베르어로 뿔)으로 부른다. 마을 뒤로 두 개의 뿔처럼 솟은 산봉우리 티소우카(Tisouka 2,060m)와 메고우(Megou 1,616m) 때문이다. 베르베르어로 쉐프샤우엔은 ‘뿔들을 보라’는 뜻.


해발고도 660m에 자리 잡은 쉐프샤우엔은 포르투갈에 대항한 기지로 15세기 중반에 건설되었다. 곧 이어 15세기 말, 그라나다에서 대규모의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이주해오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얗게 채색된 집들, 작은 발코니, 주홍색 기와를 얹은 지붕, 오렌지 나무가 자라는 파티오 등의 히스패닉 향취가 가득한 건물을 짓기 시작한 이들이다. 창문과 문에만 이슬람의 전통 색깔인 초록을 입혔던 건물들이 지금의 창백한 푸른색으로 바뀐 건 1930년대에 건너온 유대인 이주자들 덕분이었다.

전형적인 안달루시안 스타일로 지어진 건물

유대인 이주자들에 의해 칠해진 인디고 블루의 빛깔이 선명한 골목

걷기 여행의 시작은 모로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쉐프샤우엔의 메디나(구시가지)에서 시작하자.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만끽하기 위해서는 일정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움이 필수. 여기저기 가지를 치며 굽어 드는 미로 같은 골목들을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은 직장인의 일요일처럼 흘러가버리기 때문이다. 혹 길을 잃는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골목길을 몇 번만 돌다 보면 금세 제 자리를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이니까. 안달루시아의 정취가 담긴 주홍색 테라코타 타일을 올리고 흰색과 푸른색으로 칠한 집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다. 햇빛에 바랜 듯, 바람에 씻긴 듯, 지중해의 물빛을 닮은 인디고블루는 아찔한 유혹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이 골목과 저 골목을 한없이 기웃거리게 된다.

가게에서 팔고 있는 알록달록한 파스텔 컬러의 페인트들

고양이 한 마리가 마치 모델처럼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메디나의 중심부는 잔돌이 곱게 박힌 우타엘하맘(Uta el-Hammam)광장이다. 광장에 줄지어 늘어선 카페와 식당들이 잠시 여행자의 발목을 잡는다. 뜨거운 박하차 한 잔을 시켜놓고 노천 카페에 앉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이곳에 들어서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긴장이 풀린다. 모로코를 여행하는 동안 잡지의 부록처럼 따라붙던 호객꾼들과의 실랑이도 사라지고, 어느새 이곳의 느슨한 분위기에 감염되고 만다. 골목마다 ‘드레즈락(대걸레자루 모양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알록달록한 색깔의 헐렁한 옷을 걸친 히피들이 가득하다.

청량하기 그지없는 마을의 모습

카페의 정면으로는 15세기에 지워진 이슬람 대사원과 붉은 빛의 성채 카스바가 둘러싸고 있다. 카스바의 탑에 올라가면 비신자에게는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 대사원의 지붕과 광장 주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카스바는 그늘지고 고요한 정원과 미술관, 민속학 박물관, 옛날 감옥을 품고 있다. 우타엘하맘 광장을 벗어나 동쪽을 향해 걸으면 마즈젠(Place el-Majzen) 광장. 이곳에서 동쪽 끝의 안사르(Bab el-Ansar) 문까지 이어지는 골목은 쉐프샤우엔에서도 가장 예쁜 골목길로 꼽힌다. 작은 공방과 식당, 직물이나 가죽 신발을 파는 가게들을 거쳐 안사르 문에 도착하면 계곡에서 빨래하는 동네 여자들과 마주친다. 계곡을 가로질러 2km 남짓 언덕길을 오르면 폐허로 남은 옛 모스크. 이곳에서 바라보는 쉐프샤우엔의 풍경은 올리브밭의 초록색과 마을의 흰색이 어울려 청량하기 그지없다. 피크닉을 나온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새 설핏해지는 해.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설레게 되는 곳

골목을 돌때마다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설레게 되는 곳. 몸과 마음 깊은 곳까지 내리 쪼이는 빛의 물살에 출렁이게 되는 곳. 바다의 숨소리가 들릴 듯 온통 푸른 골목길과 젤라바를 입고 마실 다니는 할아버지들이 매력적인 곳. 시간은 자꾸 늘어져만 가고,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꾸 꾸물거리게 되는 곳. 산에 기대어 바다의 빛깔을 두른 마을 쉐프샤우엔은 오늘도 소란스럽지 않게 이방인을 유혹하고 있다.

바다의 숨소리가 들릴 듯 온통 푸른 골목길과 젤라바를 입고 마실 다니는 할아버지들이 매력적인 곳.

코스 소개
쉐프샤우엔은 모로코 북서부 쉐프샤우엔 지역의 중심도시다. 해발고도 660m에 자리 잡은 인구 35,000명의 작은 마을. 기독교 세력에게 쫓겨 1471년 스페인에서 망명 온 몰레이 알리 벤 라시드(Moulay Ali ben Rachid)에 의해 건축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었던 덕에 스페인 영향을 받고 모로코 베르베르 스타일을 덧입은 건축물이 들어섰다. 대부분의 주민이 아랍어와 스페인어를 구사한다. 대부분의 숙소는 메디나에 위치하고 있다. 따로 정해진 코스는 없고, 메디나의 어느 곳에서든지 걷기 시작해 어디서든 마무리할 수 있다. 메디나의 우타엘하맘 광장에서 시작해 옛 사원 유적지까지 걷고 돌아온다면 2-3시간이 걸린다.

여행하기 좋은 때
11월부터 3월까지는 우기여서 비가 많이 내린다. 부활절 기간과 크리스마스 기간은 스페인 여행자들로 마을이 가득 차므로 피하자.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봄에서 가을까지. 리프 산맥 주변은 여름철에도 비교적 시원하다.

찾아가는 법
카사블랑카, 마라케쉬, 라바트, 탕헤르 등에 국제공항이 있다. 한국에서의 직항은 없다. 런던이나 파리,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주요 도시를 거쳐 갈 수 있다. 유럽의 저가항공을 미리 예매한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모로코까지 갈 수 있다. 페스에서 버스로 4시간. 탕헤르에서 버스로 3시간.

여행 Tip
메디나 바깥의 신시가지에서는 월요일이나 목요일에 장이 선다. 산에 사는 소수부족들이 전통 옷을 입고 내려오는 시장이므로 꼭 둘러보자. 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축복 받은 땅이라고 불릴 만큼 매력적이고 다양한 풍경을 자랑한다. 설산과 사막과 지중해를 다 품고 있다. 북부의 지중해와 산간마을부터 남부의 사하라사막까지 천천히 둘러보자.

이집트를 꿈꾸는 이유는 명확하다. 피라미드, 고대 유적, 사막에서의 하룻밤…. 막연한 동경의 연장선에는 그런 모습들이 덧칠해져 있다. 유럽 사람들은 이집트의 로망 위에 한 가지를 더 얹는다. 홍해의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깊은 휴식. 실제로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의 휴식은 좀 더 은밀하게 진행된다.

샤름 엘-셰이크의 바닷가 절벽에는 고대의 성처럼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샤름 엘-셰이크(샤름 알-셰이크, Sharm El-Sheikh, شرم الشيخ)는 홍해 건너 땅이다. 본토 이집트에서 바다 하나 건넜을 뿐인데 다가오는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구릿빛 청춘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별 다섯 개짜리 리조트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다. ‘히잡’을 둘러쓴 여인들도 드물다. 이곳에서는 관습이라는 굴레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다이버들에게는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가 널려 있는 다이빙의 메카로 통하기도 한다.

고급 리조트가 들어선 다이빙의 메카

은밀한 휴양지에 담긴 과거는 독특하다. 샤름 엘-셰이크는 이스라엘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을 때 형성된 도시다.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군사거점으로 이스라엘이 끝까지 이집트에 반환을 거부한 노른자위 땅이다. 바다가 깊고, 해안절벽이 가득한 군사적 요충지는 주인이 바뀌면서 휴양의 천국으로 변신했다. 히브리어 간판 등 아직도 이스라엘의 잔재가 남아 있다지만 명목상일 뿐이다. 이집트의 땅 위에 외지인들이 몰려들었고 내로라하는 호텔체인과 리조트들이 해안을 빼곡히 채웠다. 이 바다와 도시의 진정한 주인은 홍해의 뜨거운 햇살과 깊고 낮은 다이빙을 즐기려는 이방인들이다.

대규모 수영장과 골프장을 갖춘 고급 리조트들.

샤름 엘-셰이크의 중심거리는 나마베이(Naama Bay)다. 나마베이는 낮과 밤이 다르다. 뜨거운 햇살 아래 한낮의 거리는 조용하고 한적하다. 대부분 상가들도 문을 닫은 채 다이빙숍들만 군데군데 문을 열고 있다. 이곳에서는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숙소와 도심을 빠져나와 바다로 몰려간다. 스노클링이나 스쿠버 다이빙을 위해 이른 오전부터 배에 오른다. 한 짐 가득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긴 뒤 모든 액티비티는 낮 동안 홍해에서 진행된다.

바다에는 친절하게 다이빙을 위한 안내도까지 마련돼 있다. 템플, 라스 움 시드(Ras Um Sid)는 근해의 스노쿨링을 위한 장소다. 이곳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참 많다. 중급 이상의 다이빙 마니아들은 좀 더 깊은 바다로 뛰어든다. 라스 무하마드, 티란 등은 샤름 엘-셰이크 를 다이빙 메카의 반열에 올린 대표적인 포인트다. 산호 절벽과 깊이에 따라 짙은 남색으로 변하는 꿈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해변의 리조트들은 홍해와 맞댄 그윽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샤름 엘-셰이크 앞바다에서 한가롭게 다이빙을 즐기는 여행자들.

굳이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더라도 배 위에서 바라보는 샤름 엘-셰이크의 윤곽은 또렷하다. 바다 절벽 위에 리조트들은 고대 왕국의 성처럼 들어서 있다. 럭셔리 리조트들은 별도의 모래 해변을 갖추고 있고 리조트 뒤편으로는 진짜 모래사막이다. 시나이 산(山)의 윤곽도 어렴풋이 보인다. 갈색 사막과 푸른 바다의 앙상블은 이처럼 단절되고도 호사스런 휴식을 만들어냈다.

이방인들의 이색 아지트 나마베이

다이빙이 끝나는 해질 무렵부터 나마베이는 흥청거리기 시작한다.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오고 중심가는 수영복에서 빛나는 셔츠로 갈아입은 외지인들로 붐빈다. 서양식 카페나 레스토랑보다도 역시 나마베이의 명물은 양탄자가 깔려있는 좌식 노천바들이다. 겹겹이 옷을 입은 채 훌라후프를 돌리듯 ‘탄누라’ 댄스를 추는 청년들의 몸동작은 이곳 노천바 호객행위의 한 단면이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나마베이는 이방인들이 몰려들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노천바에 앉아 물담배인 시샤를 즐기는 것 또한 이곳이 주는 묘미다.

양탄자 위에 걸터앉으면 대부분 물담배인 ‘시샤’를 주문해 한 모금씩 피워댄다. 기본적으로 이집트에서의 음주는 규제되고 있지만 이곳은 예외다. 이집트 맥주인 ‘스텔라’는 물담배와 곁들여진 반주로 꽤 인기가 높다.


유럽의 유명 인사들은 샤름 엘-셰이크에서 ‘나만의 휴식’을 즐겼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부부가 여름휴가 때 찾았고 전 영국 총리인 토니 블레어가 이곳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즐겼다. 중동의 부호들을 위한 배려 역시 독특하다. 요트를 타고 들어와 호텔에서 입국수속을 받을 수 있도록 VIP만을 위한 별도의 창구를 마련하고 있다.

경계를 넘어선 뒷골목에는 샤름 엘-셰이크의 옛 모습이 간직돼 있다.

나마베이의 골목에서는 양탄자 등 다양한 쇼핑이 가능하다.

준비된 휴양지는 경계를 넘어서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남쪽의 마야 베이(Maya Bay)에는 이슬람의 전통시장인 수크(sūq, 바자르)도 들어서 있고 리조트 외곽으로 접어들면 옛 모습 그대로의 진흙빛 마을과 사막을 만나게 된다. 다이빙, 허니문의 천국으로 자리매김한 이집트의 휴양 특구는 주변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새로운 로망의 땅이 되고 있다.

가는길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외에도 유럽 주요 도시에서 직항 노선편이 수시로 다닌다. 샤름 엘-셰이크 공항은 규모나 시설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홍해 건너 후르가다에서 페리를 타도 닿을 수 있다. 나마베이 인근은 택시 외에도 마이크로버스가 다닌다. 물가는 이집트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 비싼 편이다.

황무지 땅에서 만나는 피라미드는 의외로 친숙하다. 수천 년 세월이 담겼고,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진귀한 보물이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존재감은 일상과 가깝다. 이집트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 역시 삶과 뒤엉켜 있다. 수도 카이로에서 외곽으로 접어들면 시야에 들어오는 게 ‘삼각의 무덤’들이다. 변두리 재건축 지역에 우뚝 솟은 회백색 건물처럼 피라미드는 생뚱맞게 서 있다.

기자 지구 피라미드. 책 속에서 봤던 피라미드 군이 나란히 도열해 있다.

기자 지구 피라미드는 보통 카이로의 한 부속 관광지처럼 설명되곤 한다.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위치했으며 버스로는 40분 정도 걸린다.’ 4,500년 역사를 지닌 피라미드 입장에서 보면 마뜩잖다. 카이로가 도시로서 의미를 갖춘 것은 바빌론 성을 쌓은 후부터니 피라미드보다 2,000년쯤이나 뒤진다. 기자 지구 일대는 카이로가 들어서기 전, 이미 고대 왕국의 혼이 담겼던 곳이다. 어쩌면 이곳 투박한 땅에서 어색한 것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의 경관일지도 모른다.

4,500년 역사의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에서 발견된 피라미드는 70여 개가 넘는다. 나일강 일대, 문명의 발상지에 고루 흩어져 있다. 그중 기자 지구의 3대 피라미드는 가장 빼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부터 카프라왕,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 등 사막 위에 도열한 세 개의 무덤들은 묘한 여운이 서려 있다. 그 중 대 피라미드로 알려진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650년경 전 만들어진 것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대표주자다. 원래 높이가 145m였으며 수 톤 무게의 석재들만 200만 개가 넘도록 쌓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쌓아올린 석재에는 수천년
세월이 담겨 있다.

가장 크고 오래된 규모를 자랑하는 쿠푸왕 피라미드.

이제는 유명 관광지가 된 피라미드에 닿는 길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다가서기 전 낙타 몰이꾼을 만나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접근하는 호객꾼들의 성화가 이어진다. 수천 년 역사를 조용하게 음미할 여유가 부족하다. 하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만나는 ‘진통’ 쯤으로 생각해 두자. 오히려 경계할 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훌쩍 이동하려는 가벼운 마음이다.

이곳 피라미드는 보는 위치와, 높이에 따라 표정이 다르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바위 하나하나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윤곽도 변한다. 멀리서 웅장한 자태를 감상했으면 사막의 태양 아래 반만년을 견뎌온 바위 하나하나를 곱씹어 본다. 돌덩이에는 지난한 세월의 온기가 전해진다.

이집트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군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투박한 땅 위 피라미드 인근에는 도시가 형성돼 있다.

피라미드의 실체에 궁금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서는 투어에 나선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오갈 작은 통로가 무덤 속에는 미로처럼 뻗어 있다. 이집트 원정에 나섰던 나폴레옹은 쌓인 돌들을 바라보며 프랑스 전 국경에 장벽을 세울 수 있겠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황무지에 쌓아 올린 ‘세계 불가사의’

피라미드를 둘러싼 학설은 하나로 모아진다.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며 왕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계단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고 태양신과 함께 하늘을 순회한다고 믿었다. 피라미드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활발하게 계속됐으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다만 정확한 축조법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10만 명이 동원돼 20여 년 동안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인의 신앙심이 표출된 피라미드에 대해 건축가 알베르티는 ‘미치광이의 발상’이라며 헐뜯기도 했다.

피라미드를 지키는 역할을 했던 스핑크스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소 애착이 가는 모습으로 변했다.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는 길이 57m, 높이 20m의 대단한 덩치를 자랑한다. 하지만 아랍인의 침입 때 코가 잘리고 영국에 수염도 빼앗긴 뒤로는 다소 애처로운 모습이 됐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배경 삼아 야간에는 ‘소리와 빛의 쇼’가 펼쳐진다. 형형색색 화려하지만 수천 년 잠들어 있을 무덤 속의 왕에게는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다.


피라미드에서 나서면 복잡한 거리가 형성돼 있다. 현지인들은 아흐라무 거리, 여행자들은 피라미드 거리로 부르는 곳이다. 이집트의 각종 맛집들과 상가들, 전 세계 패스트푸드점들이 거리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2012년에는 이곳에 투탕카멘 등의 유물이 보존될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고대의 왕들은 수천 년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흔적에 기대어 살 ‘고마운’ 터전을 마련해 줬다.

피라미드를 구경하기 위해 나선 이집트 소녀들.

이집트의 전통 종이 파피루스에 새겨진 그림.

피라미드가 전통적인 삼각탑 형태만 지닌 것은 아니다.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피라미드의 모양은 지역에 따라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기자 지구 인근인 사카라조세르왕 피라미드는 계단식으로 돼 있으며, 다슈르는 한쪽 변이 굴절되거나, 벽돌색이 붉은 피라미드로 유명하다. 이 일대의 피라미드들은 고대 왕국이었던 멤피스의 영화로움을 반증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이집트를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피라미드를 알현해야 할 듯한 유혹에 빠진다. 그 앞에 서면, 무슨 주문에라도 홀린 것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수천 년 세월의 흔적에 고개를 떨어뜨리게 된다.

가는 길
인천~카이로 구간은 대한항공, 카타르항공 등이 운항 중이다. 이집트 입국 때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다. 30일 동안 유효한 비자를 현지 공항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다. 카이로에서 기자 지구까지는 버스가 운행되며 택시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기자, 사카라, 다슈르를 어우르는 현지 투어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8.19 23:31 신고

    여기괜탆네

  2.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8.19 23:32 신고

    여기괜탆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낙원을 꿈꾼다. 어느 날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하더라도 낙원을 찾는 일은 의미를 가진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삶에 활기를 부여할 테니까. ‘인도양의 진주’라 불리는 세이셸 공화국은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낙원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늘과 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낙원은 이제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파랑새가 멀리 있지 않은 것처럼, 이미 낙원도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앙세 소스 다종 해변 - 세이셸을 대표하는 해변가로,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 무대가 되기도 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천국

‘지상 최후의 낙원’으로 불리는 세이셸공화국은 영국 BBC방송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천국’으로 선정했으며, 트래블러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해변 1위에 오른 섬나라이다. 11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이셸은 다양한 해양 생물과 산호를 만날 수 있으며, 15억 년 전 태곳적 원시림과 생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영국 윌리엄 왕자 부부의 신혼여행, 축구 스타 베컴 부부가 결혼 10주년 여행,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전 가족들과 휴양지로 선택한 곳으로 유명하다.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 따뜻한 햇살과 진귀한 해양 동식물, 드넓게 펼쳐진 해변은 흡사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세이셸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섬이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섬 세 곳을 추천한다. 생각 같아선 백여 개가 넘는 섬을 모두 추천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세이셸의 어느 섬이든 그곳이 바로 천국이자 낙원이기 때문이다.


초미니(?) 수도 빅토리아가 있는 마헤 섬

세이셸에서 가장 큰 섬 마헤(Mahe)는 세이셸 인구의 80%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수도 빅토리아가 있다. 수도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지만, 세이셸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빅토리아에서 가장 북적이는 거리는 레볼루션 애비뉴와 퀸시 스트리트. 이곳엔 다양한 갤러리와 상점이 있어 세이셸 문화가 듬뿍 담겨 있는 토착예술품과 공예품들을 볼 수 있다.

이제 차를 타고 드라이브 코스로 나선다. 빅토리아에서 시작해 고급 리조트가 밀집해 있는 북쪽을 돌고, 다시 해변가를 따라 남서쪽을 달리면, 마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해지는 보발롱 해변 등을 돌아볼 수 있다. 드라이브 코스 곳곳에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있어, 언제든지 차를 마실 수 있다. 반짝이는 햇살과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휴식의 참 묘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앙세 소스 다종 해변의 화강암 - 화강암들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변해 또다른 감동을 준다.

요트, 리조트, 그리고 청명한 바다 - 세이셸은 지상 낙원이라 불릴 만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

자연이 만들어낸 에덴동산, 프랄린 섬

세이셸에서 두 번째로 큰 섬 프랄린(Praslin)에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자연문화유산인 '발레 드 메 국립공원(Vallee de Mai)'이 있다. ‘5월의 계곡’이라는 뜻의 발레 드 메에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열매’라고 불리는 코코 드 메르(Coco de Mer, 바다의 코코넛)가 있다. 남성과 여성의 상징이 각각 담긴 코코 드 메르는 오직 세이셸에서만 서식하기 때문에 ‘에덴의 동산’이라는 별칭을 가진 발레 드 메의 오랜 전설을 뒷받침한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섬의 북서쪽에 위치한 앙세 라지오(Anse Lasio) 해변이다. 아름다운 절경으로 인해 기네스북에도 오른 이 해변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온전한 자연의 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도 비교적 많지 않아 한적한 시골 마을과도 같은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프랄린 섬은 마헤 섬에서 경비행기로 15분, 고속 페리로 약 5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시간이 멈춘 과거로의 여행, 라디그 섬

가장 번화한 거리가 있는 마헤에서 세이셸의 현재를 느끼고, 프랄린 섬에서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의 묘미를 만끽했다면, 라디그(La Digue) 섬에서는 마치 시간을 되돌린 듯한 과거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현대 문명이 발을 내딛지 못한 이 섬 곳곳에서 과거의 모습을 찾는다. 이 섬의 주요 이동수단은 자전거와 우마차. 라디그 섬을 둘러보기 위해 자전거를 대여해 떠난다 해도, 2~3시간이면 족하다.

기분 좋은 바람과 함께 자전거를 타다 보면 세이셸에 있는 41개의 크고 작은 화강암섬 중 가장 다양한 모습을 자랑하는 해변을 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앙세 소스 다종 해변은 세이셸을 대표하는 해변가로,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 무대였기도 하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변하는 거대한 화강암들 변화무쌍함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자이언트 거북 - 느릿느릿 걷고 있는 자이언트 거북

자전거를 세우고 해변을 거닐면, 저 멀리서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는 육중한 몸집의 자이언트 거북을 볼 수 있다. 이 거북은 다 자라면 무게가 300kg이 넘고 평균 수명은 100살에 이른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커플들이 허니문 여행지로 꿈꾸는 이 곳, 세이셸은 태초부터 간직해 온 원시 자연의 환상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곳이다. 세이셸에 사는 사람들은 주중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집에서, 그리고 주말에는 해변에서 낚시와 수영을 즐기는 단순한 삶을 살아가지만,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하루 24시간 속에 해야 할 일들을 꾹꾹 채워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미소를 보면, 앞으로 어떤 삶을 추구해야 올바른지는 자명해 보인다. 세이셸을 찾는, 혹은 앞으로 달콤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도 꼭 그 ‘행복’의 답을 찾았으면 한다. 파랑새는 멀지 않은, 바로 가까이에 있는 법이니까.

세이셸 기본 정보

정식 국호는 세이셸 공화국. 1976년 6월 29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인구는 8만 5천 명 정도로, 수도 빅토리아에 6만 명 이상이 거주한다. 공용어로 영어이며, 크레올어와 프랑스어도 함께 사용한다. 통화로 유로, 달러, 세이셸 루피(SCR) 사용. 1루피는 한화 100원 정도.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5시간 느리다.

가는 길
현재 우리나라에서 세이셸까지의 직항편은 없으며, 싱가포르, 두바이, 도하를 경유해 갈 수 있다. 에어 세이셸이 싱가포르-세이셸 구간을 주 1회 왕북 운항하며, 에미레이트항공은 두바이-세이셸을 주 6회, 카타르항공은 도하-세이셸을 주 4회 운항한다. 어느 도시를 경유해서 가더라도, 10시간 이상 소요를 예상해야 한다.

크루즈 타고 가는 이집트 신전
클레오파트라 신혼여행길에서 람세스와 마주치다

(위) 사막의 나라인 이집트에 이런 물과 풀과 나무가 있다. 나일크루즈의 출발지 중 하나인 이집트 남부의 휴양도시 아스완의 모습. 관광객들은 전통돛단배인‘펠루카’를 타고‘필레신전’이 있는 아길키아섬으로 갈 수 있다. (아래) 이집트 최대 유적지 룩소르 시내에 있는‘룩소르 신전’. 둘째 탑문을 지키고 있는 람세스 2세 상 뒤로 높이 19m의 기둥 14개가 두 줄로 서 있다. /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제공

곧 겨울이다. 추울 때는 '무조건' 따뜻한 곳이 좋다. 외투를 벗고 티셔츠 바람에 이국 풍경을 구경하거나 수영을 즐기거나 쇼핑에 빠지는 맛은 무엇에 비할 수 없다. 주말매거진이 올겨울 피한(避寒)에 적합한 해외 여행지들을 모아 특집으로 꾸몄다. 추위 나기에 좋은 국내 여행지들로 특집 2탄도 준비 중이다. 

여기는 나일(Nile). 피라미드, 스핑크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신전(神殿)…, 이집트 고대문명을 잉태하고 키운 젖줄. 오늘 이 나일에는 크루즈선들이 떠다니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신혼여행을 위해 배를 띄웠던 이곳에서 오시리스(죽음과 부활의 신)·이시스(모든 파라오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최고의 여신)·호루스(왕권 수호신)와 람세스·핫셉수트 파라오를 만난다. 나일크루즈를 타고 체험하는 5000년 문명의 정수(精髓), 바로 거대 신전들이다.

◇아스완(Aswan)…필레 신전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에서 80실 규모의 크루즈선에 올라탔다. 나일강 상류인 이 도시에서 하류 쪽으로 내려가며 중간중간 유적이 있는 도시들에 내려 관광하는 일정. 반대편도 코스도, 왕복 코스도 모두 가능하다.

'아스완댐'으로 유명한 여기에선 '필레(Phille) 신전'이 우릴 맞이한다. 2300여 년 전 넥타네보 1세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오시리스신의 부인으로, 현명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시스 여신에게 바쳐졌다. 원래는 클레오파트라·카이사르 커플의 신혼여행지로 알려진 필레섬에 있었다. 그러나 아스완댐이 만들어지면서 이 섬은 수몰됐다. 신전은 유네스코의 지원 아래 4만여 개 조각으로 나눠져 10년 공사 끝에 1980년 인근 아길키아섬으로 옮겨 세워졌다. 높이 18m 폭 5m의 대형 탑문(塔門), 36개의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복도, 이시스·호스·파라오를 새긴 거대한 돌새김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아스완 강변에 정박한 크루즈선에서 필레 신전을 가는 길도 즐겁다. '펠루카'라는 이집트 전통 돛단배를 타고 20~30분 정도 간다. 기온은 30도를 웃돌지만 습도가 낮은 탓에 강바람은 상쾌하고 신선하다. 펠루카로는 아스완 지역 나일강 유역을 일주할 수도 있다. 배 이용료는 공시가가 1시간에 130이집트파운드(£E·약 2만4000원). 그러나 뱃사공에 따라 300~500£E를 부르기도 한다니 '흥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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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옴보(Kom Ombo)…콤옴보 신전

아스완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아침에 출발해 북쪽으로 50㎞쯤 올라가면 나오는 도시 콤옴보. 이곳에 '콤옴보 신전'이 있다. 크루즈선이 정박한 곳에서 5분만 걸어 올라가면 기념품 상가를 만나고 곧이어 신전이다. 22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악어의 머리를 지닌 물의 신 '소베크'와 매 머리 모양의 하늘의 신 '하로에리스'를 섬긴다. 모시는 신이 둘이라서인지 입구를 비롯해 홀, 대제사장이 예배를 드리던 지성소(至聖所) 등이 다 둘이다. 부조가 새겨진 벽에는 고대의 수술 기구, 뼈 절단기, 치과 도구 등도 그려져 있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가 된다.

◇에드푸(Edfu)… 호루스 대신전

콤옴보에서 다시 북쪽으로 50㎞를 더 올라가니 '에드푸'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선착장에 줄지어 서 있는 마차를 탄다. 마주보고 있는 좌석에 각각 2명씩, 4명이 한 대에 탈 수 있다. 요금은 130£E(약 2만4000원). 우리의 읍(邑) 정도인 에드푸의 마을 곳곳을 구경하며 10여분쯤 가면 신전이다.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둘째로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는 '호루스 대신전'.

로마 지배하의 프톨레마이우스왕조 때인 기원전 237년부터 짓기 시작해 180년에 걸쳐 완공했다. 폭 36m, 높이 137m의 탑문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신 조각이 신전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맞는다. 신전 벽면에는 호루스가 아버지 오시리스를 살해한 삼촌 셉트를 제압하는 것을 상징하는 그림이 가득하다. 

◇룩소르(Luxor)…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

에드푸를 떠나 100여㎞를 더 올라가면 이집트에서 넷째로 큰 도시 룩소르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안(東岸)에는 카르나크·룩소르 신전 등 파라오들이 왕도(王都)의 위세에 걸맞게 세운 거대한 신전들이 있고, 서안(西岸)에는 역대 파라오들의 무덤이 있는 '왕가의 계곡'이 있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차를 타고 몇 분만 가면 카르나크 신전이 나온다. 동서로 540m, 남북으로 600m 규모로 현존하는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가장 크다. 4000년 전 축조를 시작, 파라오들이 저마다 증축을 거듭해 오늘의 규모가 됐다고 한다. 23m의 돌기둥 134개가 촘촘히 늘어선 대열주(大列柱)실, 높이 21.8m 무게 130t의 투트메스 1세 오벨리스크, 높이 30m 무게 323t의 핫셉수트 여왕 오벨리스크, 람세스 거상(巨像) 등 볼거리가 넘쳐난다.

카르나크 대신전에서 남쪽으로 3㎞ 거리에 지어진 지 3500여년 된 룩소르 신전이 있다. 너비 65m 높이 25m의 첫째 탑문은 람세스 2세가 만든 것으로 나폴레옹은 이를 본떠 파리에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크루즈 선착장에서 차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30분쯤 가면 '왕가의 계곡'이다. 파라오 무덤 24기 등 64기의 왕가 무덤이 있다. 표 한 장으로 무덤 세 개를 볼 수 있지만, 가장 유명한 투탕카멘 무덤은 별도로 표를 사야 한다. 황금마스크 등 이곳의 투탕카멘 묘에서 나온 보물들은 카이로박물관에 있다. 

나일 크루즈의 밤엔 달이 강이 되고 강이 달이 된다. /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제공

■소피텔 올드 카타락트 아스완 호텔(Legend Old Cataract Aswan).

아스완에서 꼭 들러야 할 명물.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대표작 중 하나인 '나일강 살인사건'(1937)을 쓴 곳이다. 호텔이 소설 배경으로 나오기도 한다. 영국의 유명한 여행사업가 토머스 쿡이 1899년 지은 건물 자체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소피텔 윈터 팰리스 룩소르 호텔(Hotel Sofitel Winter Palace Luxor)

1886년 지어졌다. '로열 바'에서 '하워드 카터 커피'를 마셔보자. 블랙커피에 브랜디, 그랜드 마니에르(증류주의 일종), 시나몬을 섞은 것으로 65£E(약 1만2000원). 투탕카멘 묘를 발굴한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곳에 머물며 즐겨 마셨다 해서 붙인 이름. 

여행수첩

이집트 가는 길

대한항공이 매주 월·목·토요일 인천에서 타슈켄트를 경유해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를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3시간 30분 정도. 카이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매주 화·금·일요일에 뜬다. 역시 타슈켄트 경유로 1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두 스케줄 모두 타슈켄트에서 머무는 시간은 1시간 30분. 주한 이집트대사관이나 카이로 공항 현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나일 크루즈 

보통 5층인 배 한 척에 80개 안팎의 객실이 있고, 작은 수영장과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세 끼 식사를 모두 선내에서 할 수 있다. 사방이 환하게 트인 옥상 데크에서 선탠용 의자에 앉아 맥주 한잔 마시며 보는 석양과 밤하늘의 달·별이 황홀하다. 10월 기준 식사 포함 1박당 60달러 정도. 12월 15~30일이 극성수기로 가장 비싸다. 4~7일 상품이 일반적. 자세한 사항은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02)2263-2330, www.myegypt.or.kr 

통화 

1이집트파운드(£E)는 15일 현재 우리 돈 약 190원.

날씨

겨울을 제외하면 비는 거의 내리지 않는다. 평균기온이 섭씨 30도 안팎이고, 높은 곳은 40도에 달하는 여름보다는 15~20도 정도인 겨울(11~1월)이 여행하기에 더 쾌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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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 한가운데흩뿌려진 115개의 섬_세이셸

세이셸 라 디그(La Digue)섬의 남서쪽 해변인 앙세 소스 다종(Anse Source D‘Argent)에 석양이 내리고 있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세이셸 해변은 회색빛 기암괴석과 그 틈에서 푸르게 우거진 야자수가 조화를 이룬다. / 인오션 M&C 제공

아프리카의 동쪽, 인도양 한가운데 흩뿌려진 115개의 섬이다. 산호가 부서져 만들어진 하얀 모래가 빛나는 아름다운 해안, 기묘하게 생긴 화강암 덩어리, 야자수가 어우러져 영국 방송사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50선'에 올랐다. 해안선을 따라 포시즌(Four Seasons), 마야(Maya), 힐튼(Hilton) 등 200여개의 호화 리조트가 즐비하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가 허니문을 보냈으며, 미국 오바마 대통령 가족이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이곳은 세이셸 공화국이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나라 세이셸을 글과 사진으로만 접했다면 지상 낙원으로 생각할 만하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꼭 그렇진 않다. 1976년까지 차례로 프랑스와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세이셸은 독립한 지 36년 된 인구 9만의 섬나라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500분의 1에 불과하다. 대중교통은 수십분마다 한 대씩 등장하는 버스와 늙은 황소가 끄는 우마차 정도다. 유럽·중동 부호들의 별장과 부자들이 모여 사는 럭셔리한 주택가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작고 허름한 주택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세이셸을 다녀간 사람들이 이곳을 '에덴동산의 재림'이라 말하는 것은 자연경관 때문이다. 해발 920m에 달하는 화강암 산이 섬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고 섬 전역에 야자수를 비롯한 열대 기후의 나무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4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해 어디서든 에메랄드 빛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작지만 아름다운, 라 디그

세이셸은 크게 마헤(Mahe), 프랄린(Praslin), 라 디그(La Digue)의 세 섬으로 구성돼 있다. 세이셸의 주도(主島)인 마헤에는 세이셸 국립 공항, 세이셸 국립대학 등 주요 기관이 모여 있다. 마헤의 북동쪽에 있는 빅토리아 항구에서 배를 타면 프랄린까지 약 1시간, 프랄린에서 라 디그까지는 약 20분이면 도착한다. 뱃삯은 마헤에서 라 디그까지 왕복 70유로(약 10만3000원)로 배의 종류나 상황에 따라 가격은 다소 유동적이다.

하루에 프랄린과 라 디그를 모두 만나기 위해 오전 7시 마헤의 항구에서 배를 탔다.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의 세이셸은 바다에서 육지로 불어오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고 파도가 거셌다. 사진 속에서 봤던 작열하는 태양과 아름다운 바다는 온데간데없었다.

라 디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자전거다. 섬 길이가 고작 5㎞에 불과한 작은 섬 라 디그에는 자동차가 10대도 안 된다. 그래서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주로 자전거를 이용한다. 커다란 황소가 끄는 우마차도 있지만, 지금은 항구 앞 큰 나무 밑에 세워놓거나 관광용으로만 이용한다.

섬 서쪽의 항구에서 차를 타고 약 15분을 달려 남동쪽 해변 그랑 앙세(Grand Anse)에 도착했다. 해변 양쪽으로 찰흙 덩어리를 몇 번 주물러 박아놓은 것 같은 기묘한 모양의 화강암 덩어리가 인상적이었다. 라 디그의 화강암 해변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등장해 이름을 알렸다.

라 디그의 북쪽 해안은 특히 절경이다. 이 중 앙스 세베레(Anse Severe) 해변을 거닐다 보면 분홍색 모래가 펼쳐져 있는 '핑크 비치'를 만날 수 있다. 붉은빛을 내는 산호가 파도에 부서지면서 모래와 섞여 반짝이는 연분홍빛을 발한다.

라 디그 섬의 명물인 우(牛)마차와 자전거를 타고 있는 관광객 / 심현정 기자
◇코코 드 메르의 섬, 프랄린

프랄린에서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바로 '발레 드 메(Vallee De Mai) 국립공원'이다. '5월의 계곡'이라는 뜻처럼, 발레 드 메는 우거진 열대 우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인상적이다.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선 '코코 드 메르(Coco De Mer)'를 볼 수 있다. 코코 드 메르는 오직 세이셸에만 존재하는 코코넛 나무의 일종으로 암·수가 구별되어 있으며 각각 24m, 30m로 엄청나게 크다. 수명이 200~400년으로, 수나무의 수분과 암나무가 맺는 열매가 각각 남녀의 신체 한 부분과 비슷하게 생겼다. 코코 드 메르의 열매는 그 무게가 25㎏ 달할 정도로 무겁지만, 안타깝게도 먹을 수는 없다.

프랄린 역시 해변을 놓칠 수 없다. 북서쪽에는 아담하면서도 깨끗한 앙세 라지오(Anse Lazio) 해변이 있다. 이곳에서는 1000년을 넘게 산다는 땅거북을 볼 수 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한국 신혼여행객들에게 인기 높은 마헤섬 에필리아 리조트 전경. 객실(주니어스위트룸) 바로 앞에 수영장과 해변이 있다./인오션M&C 제공.
◇세이셸의 일상을 만나다, 마헤

마헤는 세이셸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제주도 면적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세이셸 국립 공항에서 리조트가 밀집되어 있는 뷰 발롱(Beau Vallon) 해변이 위치한 섬 북쪽까지는 차로 40여분이 걸린다. 뷰 발롱은 마헤에서 가장 길고 탁 트인 해변으로, 관광객들은 스노클링과 해수욕을 즐긴다고 한다.

세이셸의 수도인 빅토리아 역시 마헤에 있다. '초미니 수도'로 불리는 빅토리아는 전체를 돌아보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만큼 작다. 세이셸 발견 당시 아랍인이 정착했고 프랑스와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아 다양한 문화가 한데 섞여 있다. 언어도 영어와 불어 그리고 불어의 방언 격인 크레올(Creol)어가 함께 쓰인다. 가톨릭과 성공회 성당, 개신교 교회, 이슬람과 힌두교 사원 등이 수십 미터를 사이에 두고 모여 있는 것도 볼거리다. 독특한 문화만큼 음식도 특이하다. '크레올 푸드'라 불리는 세이셸 음식은 다양한 향신료를 이용한 신선한 해산물 요리와 망고·파파야 등 열대 과일을 이용한 샐러드가 입맛을 당긴다. 

여·행·수·첩

세이셸 공화국은 일반적으로 카타르 도하나 두바이를 거쳐 간다. 화폐는 세이셸 루피(SCR)이며, 달러당 13SCR. 유로와 달러도 사용할 수 있다. 대중교통이 거의 없어 공항이나 리조트에서 차를 렌트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인터넷 카드를 구입해야 한다. 시간당 8달러. 한국에서는 인오션M&C(02-737-2436,www.inoceantour.co.kr) 등 세이셸 전문여행사나 대형 관광사를 통해 문의하면 된다. 세이셸 관광청 겸 한국명예영사관 www.visitseychell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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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과 미친 달의 기차역

아프리카에 '도시'라니 그만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있을까? 나이로비는 원래 '차가운 물'이라는 뜻의 작은 수원지였다. 동쪽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인들은 항구 도시 몸바사에 첫 터전을 만든 뒤 풍성한 자원이 있는 빅토리아 호수와 우간다로 기찻길을 놓아갔다. 철도는 오랜 건조지역을 지나 숨 막히는 케냐 고원 앞에 다다랐다. 영국인들은 여기에 중간 기착지를 건설하기로 했고, 아시아의 상인들이 발 빠르게 옮겨왔다. 이로 인해 훗날 케냐의 수도가 될 나이로비가 태어난 것이다.


1896년에 처음 선로를 연 뒤 1930년대까지 건설된 이 철도의 별명은 루나틱 익스프레스(Lunatic Express). 달의 광기로 뒤덮인 기차는 서슴없이 덮쳐오는 정글, 들썩거리는 나무다리, 적대적인 원주민, 이름 모를 전염병 사이를 통과하며 금지된 물품, 미친 모험가, 불행한 노예들을 실어 날랐다. 어두운 전설의 두 정점은 '케동(Kedong)의 학살'과 '차보(Tsavo)의 식인 사자'. 마사이 족이 강간당한 소녀들에 대한 보복으로 열차 노동자를 급습해 500명을 살해한 사건과, 차보 강의 사자들이 인도계와 아프리카 노동자들 28명을 물어 죽인 뒤에 잡힌 사건이다. 나이로비 기차역 북서쪽에 있는 '철도 박물관(Nairobi Railway Museum)'에서는 그 시대 몸바사를 오고 가던 우아한 야간열차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인디아나 존스와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파리 호텔

20세기 초반은 사파리 탐험의 시대. 쟁쟁한 유명인들이 나이로비를 거점으로 사자와 코끼리와 야생의 부족들을 찾아 떠났다. 그중 가장 떠들썩했던 인물은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 그는 두 번째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자마자 아들 커미트와 함께 나이로비로 왔다. 스미소니언 재단에 기증하기 위한 동물 사냥을 위해서였다.


인디아나 존스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보면, 바로 이때의 루스벨트가 어린 인디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인디에게 사격술을 가르쳐주고, 이 사냥으로 얻을 동물들이 미국의 소년들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교육의 자료가 될 것인지 역설한다. 인디는 예민한 관찰력으로 오릭스가 있는 곳을 루스벨트에게 알려주지만, 곧 사냥을 멈추어달라고 간청한다. 그의 직감대로 그곳의 오릭스는 거의 멸종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픽션 속에서는 교훈적으로 마감되지만, 당시 루스벨트가 코끼리를 잡고 의기양양해 있는 사진은 동물 보호론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노포크(Norfolk) 호텔은 1904년에 문을 연 식민지 시대의 우아한 건물로 루스벨트, 헤밍웨이 등이 케냐 여행의 거점으로 삼았던 장소라고 하다. 호텔에 묵지 않더라도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그 시절 모험가들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다.


어린 인디아나 존스.케냐에서 루즈벨트를 만나다.

사라진 커피 농장의 꿈, 아웃 오브 아프리카

나이로비는 원주민의 언어로'차가운 물'이라는 뜻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유명한 샴푸 신.


"여기 마침내 누군가 편의시설일랑 하나 없는 땅에 들어섰다. 거기에 진정 새로운, 꿈에서나 찾을 수 있던 자유가 있었다."


아프리카를 동경하다 못해 그 속에서 자신만의 안식처를 일구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자전적인 주인공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덴마크 여성인 카렌은 1913년 블릭센 남작과 약혼한 뒤 케냐로 와 키쿠유 족의 땅에 커피 농장을 개척했다. 거친 땅에서 둘의 성격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고, 남편은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머지않아 둘은 헤어졌다. 이후 카렌은 사냥꾼이자 사파리 안내자였던 데니스 핀치 해튼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연인은 비행기 사고로 죽고, 대공황으로 인한 커피 판매 부진과 농작의 실패가 이어졌다. 카렌은 결국 농장을 버리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이라는 이름으로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 등의 소설을 발표해 명성을 얻은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인기로 인해 카렌의 옛 거주지 근처에 '카렌 블릭센 뮤지엄'이 문을 열게 되었다. 나이로비 상업 지구에서 떨어진 남서쪽, 그녀의 이름을 딴 카렌 로드에 자리잡고 있다.

공주로 올라가 여왕으로 내려오다, 나무 위의 집

누군가는 모든 것을 찾아 아프리카로 왔다 빈손으로 떠나게 되었지만, 누군가는 왕이 되어 떠나기도 했다. 1952년 영국의 공주 엘리자베스는 남편 에딘버러 공작과 결혼한 뒤, 허니문의 장소로 케냐를 택한다. 나이로비에 잠시 머문 이 세기의 커플은 도시에서 북쪽으로 조금 간 니에리(Nyeri) 지역의 트리톱스 로지(Treetops Lodge)에서 신혼의 밤을 보낸다. 문자 그대로 나무 위에 놓인 이 숙소는 보이스카우트 운동의 개척자인 바덴-파웰(Baden-Powell)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달콤한 신혼의 밤이 지나자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공주의 아버지였던 영국 왕 조지 6세가 서거했던 것이다. 당시 트리톱스에 머무르고 있던 전설적인 사냥꾼 짐 코벳은 당시의 상황을 방명록에 기록했다. "어느 날 소녀가 공주의 몸으로 나무를 올랐다. 그리고 다음날 여왕이 되어 내려왔다.


트리톱스는 현재 애버데어 국립공원(Aberdare National Park)안에 호텔로
자리 잡고 있다.

리키의 천사가 된 제인 구달, 케냐 자연사 박물관

루이스 리키의 집은 온갖 동물에 둘러싸여'서커스'라 불렸다.


영국의 소녀들이 동아프리카의 꿈을 꾸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꿈은 기린의 그림과 나이로비의 소인이 찍힌 편지로 현실이 된다. 어린 시절 [타잔]을 읽으며 아프리카를 동경하던 제인 구달은 케냐로 이민 간 친구의 편지를 받는다. "언제 놀러 오렴." 당연히 가야지. 그녀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배를 탔고, 몸바사를 거쳐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그녀는 비서 일을 배워둔 덕분에 겨우 일자리를 구했지만, 그녀가 꿈꾸어온 아프리카의 생활과는 달랐다. 어떻게 하면 저 때묻지 않은 동물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때 누군가 말해주었다. "리키를 찾아가." 나이로비의 자연사 박물관장으로 있던 루이스 리키가 그 열쇠였다.


루이스 리키는 케냐에서 태어나 키큐유 족의 성인식을 거친, 진정한 의미로 아프리카를 아프리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고고학자였다. 나이로비에 있던 그의 거주지에는 시벳 캣, 원숭이, 앵무새, 열대 뱀, 그리고 여러 종족의 원주민들이 어울려 살아 '리키의 서커스'라 불릴 정도였다. 올두바이 협곡에서 고인류의 화석을 발굴해 명성을 얻은 그는 비서로 일하게 된 구달에게 툭하면 침팬지 이야기를 꺼냈다. 참다못한 구달이 외쳤다. "제발 침팬지 이야기는 그만둬 주세요. 그게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요." 리키의 도움으로 그녀는 곰베 지역의 침팬지 세계 속으로 들어갔고, 아프리카와 유인원에 대한 세계인의 편견을 뒤집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희박한 공기 속을 달리는 마라토너

나이로비 시민들 중에는 이봉주를 아는 사람이 꽤 있다. 케냐의 마라토너들이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보스턴 마라톤을 석권해왔는데, 2001년 한국의 이봉주가 그 연승 기록을 깼기 때문이다. 이후 2009년까지도 케냐는 이 대회에서 단 두 차례를 빼고는 모두 우승자를 배출했다. 마라톤을 비롯한 남자 육상 중장거리 부문에서 케냐 선수들은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키에 긴 다리를 지닌 선천적 조건과 해발 2,000m의 고지대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강인한 심폐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어린 시절부터 맨발로 고지대를 뛰어다닌 생활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나이로비에서는 매년 '지상 최고의 레이스(The Greatest Race on Earth)'의 일환으로 마라톤이 펼쳐진다. 이 레이스는 영국계 은행 스탠다드차타드가 세계에서 가장 산소가 적은 도시, 가장 더운 도시, 가장 습도 높은 도시, 가장 복잡한 도시로 나이로비, 뭄바이, 싱가포르, 홍콩을 선정해서 벌이는 4인 1조의 국가 단위 경기다. 1,700m의 고지대, 극심한 공해, 울퉁불퉁한 도로 등의 조건 때문에 완주 자체가 영예라는 나이로비 마라톤은 응야요 스타디움(Nyayo Stadium)에서 출발한다.


보스턴 마ㅏ톤 대회의 우승은 케냐 선수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모두 네 차례
우승한 로버트 체루이요트.

지상 최악의 슬럼, 키베라

[콘스탄트 가드너]의 어두운 음모는 키베라 슬럼의 아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2007년 나이로비에서는 '슬럼 마라톤'이라는 특이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도시 인구 4백만 중에 250만이 시 면적의 5%에 불과한 슬럼에 모여 사는 것이 나이로비의 현실이다. 세계 각국의 시민들은 이 슬럼 지역을 달리며 그들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했고, 정부의 강제 철거에 항의했다. 150만 명이 살고 있는 키베라 슬럼(Kibera slum)은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슬럼 지역으로, 대부분의 시민들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바로 그 참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 온화한 외교관 랄프 파인즈는 케냐에서 살해당한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이 슬럼으로 들어선다. 거기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와 정부의 불법 실험이 자행되고 있었다.

피라미드·스핑크스가 품은 역사 따라 과거로
기대 이상의 낭만을 주는 '역사 박물관' 이집트 여행

이집트는 연중 내내 따스한 햇볕과 친절한 사람들, 멋진 홍해 바다와 해변, 환상적인 산호초와 바닷속 풍경이 있다. 여기에 더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과 낭만적인 사막과 오아시스까지 누구나 평생 꼭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꿈의 여행지'라고 불린다. 이 풍부한 자연과 역사 유적지 덕분일까. 이집트는 19세기 전부터 유럽의 부호들이 즐겨 찾던 겨울 휴양지로 알려졌다. 특히 추운 겨울일수록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카이로보다 이집트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지 아스완과 룩소르가 더 인기다. 최적 날씨는 물론 나일 강 크루즈를 타고 가는 여정이 기대 이상의 여유와 낭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일 크루즈./사진=롯데 JTB
Best Choice 1. 파라오도 부럽지 않은 호사, 나일 크루즈

시시각각 변하는 나일 강의 풍경에 이집트 여행은 지루할 틈이 없다. 해 질 녘 강과 석양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와이드 스크린에서 보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감동을 준다. 나일 강 크루즈는 다양한 코스 가운데 룩소르와 아스완 구간이 가장 대표적이다.

300개가 넘는 크루즈는 겨울을 즐기고자 찾아온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대부분 4~5층 규모에 80여 개 객실을 갖추었는데, 선 내에는 레스토랑과 연회장, 기념품 가게가, 꼭대기 층의 갑판에는 야외 수영장과 데이베드, 카페가 자리했다. 이른 새벽, 조용한 나일 강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오후에는 데이베드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달빛 아래 시원한 맥주를 마시다 보면 옛 파라오들도 부럽지 않은 호사를 맛볼 수 있다.

룩소르-아스완 구간을 3~4일 여행하는 동안 여행객들은 에스나, 에드푸, 콤옴보와 같은 파라오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아스완 남부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신비로운 고대 이집트 신전을 만나게 되는 데, 이 중 '아부심벨' 신전은 가장 빛나는 명소다.

아부심벨 신전 람세스 2세상./사진=롯데JTB
Best Choice 2. 신전 그 이상의 장엄한 감동, 아부심벨

아부심벨 신전은 이집트를 가장 번성하게 했던 람세스 2세가 재위 시절 20m 좌상들과 암벽을 60m 깊이로 파서 만든 신전이다. 대신전과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으로 이뤄져 있는데 웅장하면서도 정교한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이집트 내 7개의 세계문화 유산 중 하나다.

1960년대, 아스완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던 아부심벨은 국제적인 원조와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원래 위치보다 65m 높은 곳으로 이전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아부심벨은 매년 10월 22일, 2월 22일 2차례 신전 내부 깊숙이 햇살이 비추도록 지어졌는데, 이때 신전 입구부터 60m 안쪽의 람세스 2세를 비롯해 아몬 신, 라 호라크티 신, 프타 신 4개의 조각상이 있는 지성소를 환하게 비추며 장관을 연출한다. 신기하면서도 경이로운 빛의 쇼를 보기 위해 이날은 동이 트기 전부터 전 세계 관광객들이 아부심벨 신전으로 모여든다.

새벽의 여신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담긴 멤논의 거상./사진=롯데JTB
Best Choice 3. 지상 최대의 야외 박물관, 룩소르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에서 나일 강을 따라 중간마다 콤옴보, 에드푸, 에스나와 같은 잘 보존된 파라오의 유산을 둘러보다 보면 지상 최대 야외 박물관 룩소르에 닿게 된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정점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는 중 왕국, 신왕국의 중심지 테베가 바로 현재의 룩소르다.

아몬 대신전으로 잘 알려진 카르나크 신전은 현존하는 고대 이집트 신전 중 최대 규모로 이집트의 모든 역사를 말해주기라도 하듯 거대한 탑과 오벨리스크, 신비한 기둥과 홀이 있는 아몬 신전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아름다운 네페르타리가 잠들어 있는 왕비의 계곡과 투탕카멘 무덤을 비롯한 신왕국 파라오들의 공동 묘역인 왕가의 계곡도 서안 지역에 넓게 자리했다. 이른 새벽 열기구에 탑승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고대 테베의 경이로운 풍경은 룩소르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해준다.

사막 사파리./사진=롯데JTB
Best Choice 4. 백사막에서 사막여우를 만날까?

이집트에서의 사막 사파리는 '리얼 버라이어티' 그 자체다. 사하라 사막에 속한 이집트에서는 오아시스 주변에서 사막여우를 만날 수도 있고 수천 개의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서 캠핑을 하는 이색 체험이 가능하다.

카이로에서 4~5시간 거리에 있는 바하리야 오아시스는 바람이 빚어낸 기묘한 형태의 석회석을 볼 수 있는 백사막(White Desert)이 대표적. 버섯, 새 모양, 나무 형상을 한 바위들이 늘어선 풍경은 신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TV 광고에 나와 눈에 익은 곳이기도 하다. 더불어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쌓인 검은 피라미드 같은 흑사막(Black Desert)도 인기다.

당일 돌아오는 지프 사파리도 있지만, 아랍 유목민인 베두인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1박 2일 사파리 투어를 추천한다. 아름다운 사막의 노을과 더불어 수많은 별똥별이 눈앞에서 떨어지는 낭만적인 밤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밀 콜린스(Milles Collines), ‘천 개의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르완다의 또 다른 이름이지요. 르완다는 모든 국토가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강원도 크기의 작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땅에 비옥한 토지와 노동력, 좋은 교육을 받은 인재들, 청렴한 공무원들이 있어 이곳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두바이를 꿈꿉니다.

제노사이드 Genocide

르완다는 아픔을 가진 나라입니다. 1994년 4월 끔찍한 내전이 있었습니다. 그 100일 동안 죽고 죽였던 종족 간 갈등은 전 인구의 10%인 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순식간에 대학살의 중심이 된 르완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18년이 지난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자연이 먼저 일어섭니다. 인간들에 의해 불타고 무너진 자연은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에게 대자연의 웅장함을 돌려주려 합니다. 빛과 하늘, 구름 그리고 초록빛 산들은 아프리카 대륙 특유의 생명력으로 다시 인간에게 손짓합니다. 서로를 더 아프게 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아프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이라 가르칩니다.

“자연은 모두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금빛 물결 속 끝없는 평원에는 여름과 가을이 함께 있는 듯합니다. 가늠할 수 없는 저 초원 깊은 곳에 목표물을 응시하는 섬뜩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불쑥 표범이라도 한 마리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요.”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탄자니아 국경 쪽으로 4시간여를 달리면 아카겔라 국립공원과 만납니다. 항상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아름다운 대자연과 호흡할 수 있습니다. 그 공기가 맛있습니다. 풍광이 맛있습니다. 배웅 나온 야생의 동물들과 조우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는 것 같습니다. 쳐다보다 도망가고 다시 돌아와 탐색합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모두 시선을 붙잡아둡니다. 두 계절이 함께 흐르는 초원의 모습은 입체적인 그림인 듯합니다. 어느 곳에는 푸르른 초장이, 어느 곳에는 울창한 아프리카의 밀림이 있습니다. 말라버린 풀들은 가을 들판 같기도 하고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자연의 경이로움에 숙연한 마음이 생깁니다. 여유롭게 거니는 야생동물들은 이방인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곳은 동물들의 땅입니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복원하며, 함께 사는 지혜를 알려줍니다.

“간섭하지 않을 때 더 많은 것을 공유합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인간이 자연을 간섭하지 않을 때 인간과 자연은 더 많은 것을 공유합니다.”

아프리카의 자연은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경외감을 줍니다. 자연의 위대함과 웅장함은 인간이 자연에 손대지 않을 때 더 많은 것을 내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들여다본 르완다의 대자연은 저를 향해 미소 지으며 더 다가오라고 합니다. 르완다의 사람들도 더 다가오라고 합니다. 눈물의 여정은 다시 없을 거라 약속하는 것처럼.

사진작가 김태호는…

디자인을 공부했고 그래픽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해 아트디렉터로 활동했다. 20여 년간 사진과 함께 살아오다 사진작가로만 살기 위해 카메라를 잡았다. 들어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아프리카 차드의 모래사막, 르완다의 정글, 케냐의 북쪽 트루카나 호수 옆 로드워, 인도 북부의 나갈랜드, 미얀마의 알려지지 않은 도시 라시오, 내전을 마친 스리랑카의 제프나 등 오지를 다니며 사랑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낮고 험악한 곳에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진실을 만난다. 그곳의 아름다운 미소를 본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세이셸 라디그섬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는 모습,
최근 세계 유명인사들 사이 뜨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인도양의 휴양섬 세이셸이다. 인도양 한가운데 마다가스카르와 모리셔스의 북쪽에 위치한 세이셸공화국은 최북단 버드 아일랜드부터 최남단 알다브라섬까지 인도양에 흩뿌려진 115개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지만 사뭇 다른 풍광과 분위기를 지녔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은 순백의 산호해변을 부드러운 듯 웅장한 화강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니크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래서 일까? 영국의 윌리엄왕세손,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가 이곳을 허니문 장소로 선택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가족도 여기 해변에서 휴양을 즐겼다. 뿐만 아니라 축구스타 베컴 부부는 결혼 10주년 여행지로,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K 롤링은 재충전 장소로 세이셸을 즐겨 찾는다. 대체 세이셸이 어떤 곳이기에 이처럼 내로라하는 세계적 명사들이 다투어 찾는 것일까?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보았다.

세계적 희귀종인 세이셸의 육지거북. 갈라파고스섬보다 더 많은 육지거북이 서식하고 있다. .
◆세계적 명사들의 단골 휴양지 세이셸의 매력

'인도양의 파라다이스'라는 별칭이 따르는 '세이셸'은 우리 여행객들에게는 발음조차 어려운 낯선 곳이다. 하지만 유럽 여행객들에게는 일생의 로망에 다름없는 럭셔리 휴양지-허니문 명소로 통한다. 섬나라 세이셸은 우선 바다부터가 아름답다. 순백의 산호해변에 넘실대는 물결은 에메랄드, 아쿠아 블루, 네이비 칼라가 띠를 이루며 환상의 빛깔을 담아낸다.

빅토리아시내 참치 조형물. 세이셸은 참치잡이 어업이 성행한 곳이다.
특히 세계적 명품 해변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모래사장과 바다만 있는 몰디브와는 달리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 지루하지가 않다. 사탕 수수밭이 이국적인 인근 모리셔스와는 컨셉이 비슷한 듯 하나 풍광만큼은 서로 다르다. 에코 아일랜드로 통하는 뉴칼레도니아, 세계 일등 해변 타히티와도 그 느낌이 다르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고운 산호해변 곳곳에 집채만 한 화강암들이 병풍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바윗덩어리들은 장구한 세월 속에 부드럽고도 유려한 곡면으로 해변과 조화를 이루며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멋진 풍광을 담아낸다.

세이셀은 해양레포츠의 천국이기도 하다. 스노클링, 스킨스쿠버다이빙, 바다낚시 등 다양한 해양 레포츠를 곳곳에서 즐길 수 있다. 특히 필리핀 팔라우와 더불어 세계적 다이빙 포인트로도 꼽힌다. 세이셸 바닷속에는 인근을 지나던 수많은 선박들이 난파되어 수장돼 있다. 이들이 바로 산호와 물고기의 서식처로 천혜의 다이빙 포인트를 일궈 놓은 셈이다. 산호초와 함께 해변의 거대한 화강암 군락도 손맛 좋은 낚시 포인트를 곳곳에 펼쳐 놓았다.

보발롱 비치의 아이들
해변을 벗어나면 바로 울창한 원시림이다. 진귀한 식물의 보고인 숲은 환초에 부서지는 파도가 실어 나르는 맑은 공기와 더불어 세이셸을 청정 에코 여행지로 만드는 근간이다. 바닷가 인근 숲에서는 세계적 희귀종 자이언트 육지거북이(세이셸 알다브라 거북)도 만날 수 있다. 남미 갈라파고스 군도보다 더 많은 육지 거북이 살고 있는데, 자이언트거북은 최장 250년을 사는 개체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될 만큼 장수 동물이다. 인간의 손이 덜 탄 청정 자연이 천수의 비결 중 하나일 성 싶다.

15억년 세월을 지켜온 원시 동식물을 접하며 오르는 마헤섬 몬셰이셸로아산(해발 920m) 트레킹 코스는 세이셸의 청정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등산 루트다. 정글을 헤치고 정상에 서면 아름다운 바다위에 점점이 떠있는 세이셸 군도가 발아래 펼쳐진다. 과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하는 '인도양의 진주', 영국 BBC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으로 꼽은 이유를 실감할 수가 있다.

◆유니크한 매력을 발산하는 대표 섬 기행

세이셸은 주도인 마헤섬 등 115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대표 명소 3곳이 있다. 수도가 있는 마헤섬, 라디그섬, 플랄린 섬이 그곳이다.

발레드메 국립공원 코코 드 메르 숲길
▶활기찬 크레올 문화가 살아 숨쉬는 '마헤섬'

세이셸은 바다영토가 방대하다. 남북 끝섬의 거리가 1100km에 이를 만큼 해양자원이 풍부하다. 하지만 전체 인구가 9만여 명에 이를 만큼 그 수가 아주 작은 나라다. 하지만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인도인, 크레올(혼혈 백인) 등 여러 종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관계로 독특하고도 다양한 문화를 한꺼번에 접할 수가 있다. 그중 '크레올 문화'는 세이셸 전통문화를 상징한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문화가 혼합된 것으로, 수도 빅토리아를 중심으로 해마다 크레올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인구 6만의 빅토리아는 지구촌에서 가장 작은 수도로도 통한다. 중심지는 레볼루션 애비뉴와 퀸시 스트리트. 이곳에는 갤러리와 마켓이 있어 공예품 등 토속 예술품 등을 만날 수가 있다. 빅벤 시계탑을 중심으로 박물관, 식물원, 가톨릭 성당, 힌두교 사원, 재래시장 등을 둘러보는 데 반나절이면 족할 만큼 단출하다. 중앙 시계탑 뒤쪽에 자리한 재래시장에서는 주변 해역에서 갓 잡아 올린 대형 참치와 홍돔 같은 생선, 야채, 향신료, 액세서리, 의류 등 풍성한 장구경이 가능하다.

코코 드 메르 씨앗
마헤섬은 북쪽과 남쪽에 해변이 고루 발달해 있다. 북쪽 보발롱 지역은 빅토리아와 가까운 데다 버자야 등 합리적 가격대의 리조트가 들어서 있어 세이셸을 찾는 배낭-일반 여행자들이 주로 머문다. 보발롱 비치는 인도양의 황홀한 낙조 감상 포인트로도 통한다. 반면 남쪽 해변은 인적이 드문 때 묻지 않은 곳들이다. 따라서 주로 럭셔리 리조트가 자리하고 해양 레포츠의 명소로 통하는 곳이다.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에는 빅토리아에서 시작해서 카페와 리조트가 밀집해 있는 북부지역을 돈 후 다시 빅토리아에서 남서쪽 해변으로 이동하는 드라이브코스가 일반적이다.

앙세라지오 해변
▶15억 년 원시림이 보존된 프랄린섬

세이셸 섬기행의 묘미로 치자면 프랄린 섬을 빼놓을 수가 없다. 세이셸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프랄린섬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발레드메 국립공원과 섬의 북서쪽에 위치한 앙세라지오 해변이 자리하고 있다. 본섬인 마헤섬에서 경비행기로 15분, 고속 페리로 50분이면 닿는다.

발레드메 국립공원에는 세계적 희귀종 '코코 드 메르' 야자수 군락지가 있다. 남성과 여성의 상징을 각각 닮아 '에로틱 코코넛'으로도 불린다. 코코 드 메르는 세이셸에서만 서식하는데, 이곳에만 6000그루가 넘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에덴의 동산'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코코 드 메르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씨앗이다. 무게가 무려 25kg에 이른다. 마침 공원 초입에는 씨앗과 열매를 전시해 직접 들고 만져 볼 수가 있다. 이처럼 희귀한 코코 드 메르 야자수는 그 열매가 세이셸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마헤섬 빅토리아 시내와 항구 전경
발레드메 국립공원은 15억 년 전 곤드와나 대륙 시기부터 존재해 온 그야말로 원시림이다. 18세기 프랑스가 이 땅을 차지하기 전까지 사람이 정주하지 않았고, 인근 해적과 탐험가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을 따름이다. 코코 드 메르 야자수가 우거진 숲길을 산책하노라면 다양한 새들의 지저귐 속에 북반구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숲의 기운과 분위기를 느낄수가 있다.

프랄린섬의 대표 해변은 앙세라지오다. 그 풍광이 빼어나 기네스북에 까지 올랐다. 아쿠아빛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연인, 가족들과 그늘 속에서 망중한을 맛보는 휴양객의 모습에서 진정한 여가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충분한 곳이다. 프랄린 섬은 마헤 섬에서 고속 페리로 약 50분(경비행기 15분) 정도의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라디그섬의 자전거 여행
▶세이셸의 대표 풍광을 담고 있는 '라디그섬'

'하얀 산호 모래 해변과 어우러진 화강암 군락' 세이셸의 전형적인 풍광이다. 라디그섬을 찾으면 그 진수와 맞닥뜨릴 수 있다. 해변 곳곳에 쌓여 있는 화강암 군락에서는 오랜 세월의 흔적과 함께 대자연의 신비가 느껴진다. 섬 속에 펼쳐진 원시의 목가적 풍광을 감상하기에는 자전거와 우마차가 그만이다. 자전거를 대여해 서너 시간이면 섬 주위를 둘러 볼 수 있으니 이만한 레포츠가 따로 없다.

환상의 해변을 굽이돌다, 이내 원시림 속으로 난 숲길을 내닫자면 폐부 깊숙이 열대림의 청신한 기운이 파고든다. 주요 포인트마다 볼거리 체험거리도 즐비하다. 자이언트거북을 만나 먹이도 주고, 전통 연자방아로 코코넛기름 짜는 모습도 체험한다.

세이셸에 있는 41개의 크고 작은 화강암섬 중 으뜸 해변은 라디그섬에 있는 '앙세 소스 다종 해변'이다. 세이셸을 대표하는 해변답게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 촬영 배경 이었다. 인간의 때가 타지 않은 순수한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햇빛의 움직임에 따라 빛을 달리하는 화강암 바위들은 라 디그 섬의 기묘하고도 신비한 이미지를 곧잘 담아낸다. 아쿠아빛 바다를 넘어 산호 해변으로 밀려드는 하얀 포말은 머릿속을 다 개운하게 해준다.

라디그섬 앙세 소스 다종 해변의 풍광
세이셸에는 포시즌, 반얀트리 등 고급 리조트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라디그섬에서는 '르 도맹 드 로랑제라(일명 '르 도맹 리조트')가 럭셔리 숙소로 통한다. 특히 세이셸루아 마을을 연상케 하는 바위 많은 산비탈에 옹기종기 자리한 빌라형 객실이며, 바위와 나무를 그대로 살린 건축물이 인상적이다. 특히 거대한 화강암 사이에 자리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스파도 압권이다.

◆여행메모

▶가는 길=현재 우리나라에서 세이셸까지 직항 편은 없다. 인천공항에서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면 두바이를 거쳐 세이셸로 향할 수 있다. 두바이까지 9시간, 두바이~세이셸이 4시간 가량 소요된다. 아부다비, 도하를 경유하는 항공편도 있으며, 에어세이셸이 홍콩~세이셸 운항을 시작했다.

지형지물을 살린 자연친화적 스파
▶세이셸 기본 팁

◇세이셸공하국=18세기 프랑스 지배, 이후 영국 식민지를 거쳐 19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인구는 9만여 명. 수도 빅토리아에 6만 명 이상이 거주한다. 공용어로 영어, 프랑스어, 크레올어가 함께 사용된다. 화폐는 세이셸 루피(SCR). 1루피는 한화 100원 정도다. 유로, 달러화도 통한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5시간이 느리다. 기온은 연중 섭씨 22~32도. 골프장은 두 곳이 있다.

세이셸의 전형적 풍광을 담고 있는 라디그 섬 해변 전경.. 거대한 바위가 해변과 조화를 이뤄 이채롭다.
▶두바이 하루 관광

대한항공과 에미레이트항공이 코드셰어로 세이셸 항로를 운항한다. 비행기 환승 시간이 한나절 이상 뚝 떨어져 있어 인천 공항에서 두바이에 도착하는 날과 세이셸에서 떠나 돌아가는 날 각각 알차게 두바이를 즐길 수 있다. 두바이 시내와 아랍 최대의 금 수크(전통시장), 공작새 수백 마리를 풀어 키우는 두바이 왕궁 앞 등을 둘러보는 시티 투어, 사막투어, 면세쇼핑, 두바이몰 분수 쇼 등을 즐길 수 있다.

▶세이셸 여행상품= 세이셸 여행상품은 세이셸 여행 전문기업 ㈜인오션 M&C(02-737-2536)에서 7~10일 일정으로 선보이고 있으며 요금은 200만원 중반대부터다.

▶문의= 세이셸관광청(02-737-3235, www.visitseychelles.co.kr)

세이셸 라디그해변의 모습. 곳곳에 자리한 화강암 군락이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천국에서 즐기는 에코마라톤

인도양의 파라다이스를 달린다!

세이셸명예총영사관, 세이셸체육위원회가 주최하고 인오션M&C가 주관하는 '제6회 세이셸 에코마라톤대회'가 지난달 24일 세이셸 마헤섬 보발롱 해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영국 BBC방송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천국'으로 꼽은 '인도양의 진주'세이셸에서 펼쳐진 에코마라톤대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를 달리는 대회로도 유명하다. 보발롱 해변부터 이어지는 푸른 바닷가와 백사장,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만나는 마헤섬의 빼어난 절경이 주자들의 지루함을 크게 덜어 준다.

두바이 바다를 매립해 만든 신도시의 리조트 전경. (두바이 =김형우 여행전문 기자)
올해 대회에는 전 세계 36개국에서 1300여 명의 건각이 참가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기록도 풍성해 2009년 국제육상경기연맹 공식대회(AIMS) 인증이후 명실상부한 국제대회로 발돋움 했다는 평가다.

이번 대회 마라톤 남자부문은 세이셸의 시몬 라비쉬가 3시간 1분 36초로 1위를, 여자 부문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모니카 볼스터가 3시간 33분 44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등 풀코스 포함 총 1066명이 완주를 했다. 우승자에게는 트로피와 메달, 에어세이셸 왕복 항공권(2인)과 세이셸 리조트 숙박권(6박), 현금 상금 500달러가 수여됐다.

동창 '세이셸 에코 마라톤대회' 조직위원장이 출발 총성을 울리고 있다.
이색 참가자로 독일에서 온 72세 아히이너할머니가 풀코스를 완주해 큰 갈채를 받았다. 한국에서도 연산오계 지킴이 지산농원 이승숙대표와 김종섭 이사가 오골계 깃털을 이용한 치장으로 완주를 해내 주목을 끌었다.

정동창 세이셸명예총영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세이셸공화국에 조건 없는 지원과 봉사로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열심히 펼쳤다. 그 결과 올 초 세이셸공화국 정부로부터 외국인 최초로 스포츠문화훈장을 받았다. 정 총영사는 세이셸공화국과 우리의 외교, 경제 , 문화 교류에도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세이셸 에코마라톤대회 조직위원장인 정동창세이셸명예총영사는 "세이셸 명예영사로 처음 임명되었을 때, 이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고민 했다"면서 "세이셸 국민의 건강과 단합, 외국인 관광객 유치, 그리고 세이셸 국가의 이미지 제고를 생각하며 마라톤대회를 만들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아울러 정 영사는 "세이셀에코마라톤대회가 6회 대회를 이어오며 세이셸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등 가능성과 자신감을 얻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끊임없는 후원을 통해 세계적 명품 마라톤대회로 성장시켜 나가겠다"고 굳센 의지를 밝혔다. 정 영사는 또 이 자리에서 이번 대회 참가비의 30%를 세이셸 재해복구 기금으로 기부했다.

세이셸공화국의 베리 푸어 특임대사는 답사를 통해 "세이셸 에코마라톤대회는 세이셸에서 개최되는 연간 국가 이벤트 중 4대 이벤트로 성장했다"면서 "세이셸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국민들의 건강의식을 일깨워준 정동창 주한 세이셸 명예총영사의 헌신에 큰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본 대회 개최와 더불어 보발롱 버자야 리조트에서는 대회 시상식을 겸해서 한국의 밤 갈라디너 행사가 펼쳐졌다. 주한 세이셸관광청이 한국의 맛과 미를 참가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기획 이벤트다. 이 자리에는 대회 우승자 및 세이셸공화국 빈센트 메리통 사회개발청소년체육부 선임장관, 장폴 아담 외교부 장관, 셜린 나이큰 문화관광부 차관, 데니스 로즈 사회개발청소년체육부 차관, 베리푸어 특임대사 등 정재계 인사가 대거 참가했다.

한편 대회 전날에는 세이셸 에코마라톤 전야제가 세이셸 국제컨퍼런스 홀에서 펼쳐졌다. 한국 공연단(순천시립 예술단)은 삼도사물놀이와 창작 한국무용, 판소리와 사물판굿 등을 선보였으며, 세이셸 공연팀은 세가와무티야 등의 민속 춤과 현대 무용을 선보이며 소통의 장을 펼쳤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의 초원을 유유히 거닐고 있는 코끼리들.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의 초원을 유유히 거닐고 있는 코끼리들. 케냐가 자랑하는 야생동물의 낙원인 암보셀리 국립공원은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케냐관광정보센터 제공

나이로비를 떠나 남쪽으로 달린 지 5시간 남짓, 드디어 케냐가 자랑하는 야생동물 서식지 중 하나인 암보셀리(Amboseli) 국립공원에 들어섰다. 국도를 타고 4시간 정도 온 뒤 탄자니아와의 국경도시 나망가에서 빠져나와 비포장도로로 다시 1시간 정도 더 왔다. 현지어로 ‘짠 먼지’를 뜻한다는 지명에 걸맞게 끝없이 일어나는 짙은 먼지가 차창을 가렸다.

◇기린과 야생 코끼리 떼

지프차를 개조한 사파리 차량을 타고 국립공원 출입구를 통과해서 천천히 이동했다. 잠시 뒤 오른쪽으로 호숫가에서 뛰노는 그랜트 가젤 무리가 보였다. 조금 더 가니 그보다 작은 톰슨가젤 한 마리가 길옆에 서 있다가 놀라서 달아났다. 가젤은 반사막지대나 초원에 사는 영양(羚羊)류의 일종으로 케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다.

멀리 왼쪽 산등성이 위를 유유히 걷는 기린들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차량이 멈췄다. 얼룩말 무리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 뒤로 누(gnu·초원에 사는 솟과 동물)와 타조 무리가 한데 어울려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차량이 달리기 시작했고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던 버펄로 떼가 난데없는 소음에 짜증이 났는지 머리를 돌려 이쪽을 노려봤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코끼리 수십 마리가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하룻밤 쉴 곳을 찾아가는 무리였다. 암보셀리 국립공원은 아프리카에서 야생 코끼리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국립공원이라고 해도 출입구 세 곳 부근을 제외하고는 장벽이나 철책을 두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원 밖에서도 코끼리 떼와 부딪칠 수 있다. 이날도 반대편 국립공원 출입구를 빠져나와 숙소로 가는 도중에 코끼리 떼를 만날 수 있었다.

사파리의 '빅 파이브(Big Five)': 사자, 코끼리, 코뿔소, 표범, 버펄로

탄자니아와의 국경을 따라 자리 잡은 암보셀리 국립공원은 그 서쪽에 있는 마사이마라(Masaimara) 국립공원과 함께 케냐의 대표적인 사파리 관광지다. '사파리(safari)'는 동아프리카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로 '여행'을 뜻한다. 19세기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유럽인들은 이를 '사냥 여행'이란 의미로 사용했고, 지금은 자동차를 타고 야생동물을 구경하는 관광을 가리킨다. 사파리 관광 국가로는 케냐 외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과 이어져 있는 세렝게티 국립공원이 유명한 탄자니아가 있고, 보츠와나·잠비아·우간다·남아공·콩고·짐바브웨 등도 사파리 관광을 하고 있다.

사파리 관광의 꽃은 '빅 파이브(Big Five)'로 불리는 사자, 코끼리, 코뿔소, 표범, 버펄로를 구경하는 것이다. 이 다섯 동물은 예전에는 사냥꾼에게 가장 유용했고, 지금은 여행객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 하지만 넓이가 392㎢나 되는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다섯 가지 동물을 모두 보는 것은 많은 시간을 들이고 행운이 따라야 가능하다. 이날은 아쉽게도 내심 기대했던 사자나 표범의 사냥 장면은 볼 수 없었다.

암보셀리 국립공원 출입구에 사파리 관광 차량이 도착하면 원주민인 마사이족이 토산품이나 동물들을 새긴 목각을 팔기 위해 모여든다. 키가 유난히 크고 용맹스러운 전사(戰士)로 유명한 마사이족은 케냐 남부와 탄자니아 북부에 살고 있다. 마사이족은 케냐의 40여개 부족 중 주요 부족이 아니지만 사파리 관광지가 대부분 이들의 거주지이기 때문에 서구에 일찍부터 알려졌다. 독특한 걸음걸이와 원색(原色)의 화려한 복장이 특징인 마사이족은 오랜 세월 유목 생활을 했는데 지금은 점차 농경 생활로 옮겨가고 있다.

암보셀리 국립공원 개념도
암보셀리 국립공원의 또 다른 매력은 공원 안팎에 흩어져 있는 오두막 형태의 로지(lodge)들이다. 초원에 넓게 자리 잡은 유럽 스타일의 쾌적한 숙소는 원숭이나 가젤 같은 야생동물을 눈앞에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침이면 구름 걷힌 킬리만자로의 웅장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어 인기이다. 사파리 관광을 마치고 온몸에 덮인 먼지를 씻어낸 후 석양을 바라보며 케냐를 대표하는 터스커 맥주를 마시는 기분도 일품이다.

여행수첩

대한항공이 작년 6월부터 인천공항~나이로비 직항편을 일주일에 세 번 운항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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