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북서쪽 페루에서 일어난 잉카(Inca)는 '문명'이자 '제국'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그리 길지 못했다. 시기는 조선 초,

기간은 고작 95년(1438∼1533). 그럼에도 의미는 남다르다. 잉카는 몰락 자체로 '인디오문명'에 마침표를 찍었다.

4000년간 쉼 없이 일어나 사라지며 통합발전해온 안데스문명의 최고봉이자 하이라이트이며 완성판이다.

그 잉카의 중심은 '세상의

중심'이란 의미의 쿠스코(해발 3399m). 그리고 그 진수는 지구 가장 높은 곳의 고대도시 마추픽추(해발 2430m)다. 그러면

그 잉카는 어디서 왔을까. 그걸 찾아 떠난 페루여행. 나는 해발 3810m 티티카카 호수부터 그 자취를 더듬었다. 지구상 호수 중

가장 높은 이 호수. 잉카 건국신화의 무대이자 동시에 잉카인의 발원지다. 게다가 호반의 갈대로 만든 인공섬에서 태어나 물 위에서

평생을 보내는 우로스(Uros)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런 티티카카 호수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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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두배 높이로 지구상 가장 고지대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해발 3810m)의 새벽 5시 반 동틀 무렵 모습. 하늘 빛은 물론 그걸 담은 물빛, 그리고 구름까지 모두가 평소에 본 적 없는 신비로운 색깔과 모습이었는데 그런 판이하고 기이한 분위기로 인해 마치 다른 혹성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호안 바위의 초록빛은 긴 실타래처럼 자란 이끼다. 푸노(페루)=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mga.com

리마 국제공항을 이륙한 란(Lan) 항공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췄다. 창 밖엔 황량한 고원의 산악뿐. 초록빛 고원 쿠스코와는 딴판이다. 드디어 바퀴가 닿았다. 이륙 1시간 반 만이다.

이곳은 훌리아카 공항. 티티카카 호수의 페루 쪽 관문으로 해발 고도는 3825m. 고산도시 쿠스코보다도 426m가 더 높다. 그러니 지레 겁이 난다. 고산증 때문인데 트랩을 내려서자마자 어찔하다. 인디오 가이드 훌리오 세자르(28)가 요령부터 알려준다. 물과 코카(coca)차를 많이 마시라고. 공기 중 산소용량이 리마(해발 0m)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과 더불어.

티티카카 호수는 안데스 고원 해발 3810m(수면 고도)의 거대한 웅덩이(길이 165km, 폭 60∼65km)다. 한때는 250km였던 게 지구온난화로 인한 증발, 우기 축소(6개월에서 3개월)에 따른 수위 저하(매년 3m)로 줄고 있단다. 수심은 최고284m. 호수 서편엔 거대한 갈대밭이 두 곳(총 3만6000ha) 있다. 여기가 갈대로 엮은 인공 섬에 사는 우로스 부족의 터전. 호수는 볼리비아(동편 40%)와 페루(서편 60%)로 나뉘었다.

버스가 공항을 나와 훌리아카 시내로 들어섰다. 사막처럼 메마른 고원의 대평원에 들어선 이 도시. 서부 개척기의 무법천지처럼 무질서로 점철된 혼돈 그 자체다. 도로는 먼지투성이로 트라이시클로(택시로 개조한 세 바퀴 오토바이나 자전거)와 삼륜차의 물결로 뒤덮였다. 거기에 대형 트럭까지 가세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듯 희한한 풍경 일색인데 더 놀라운 건 트럭의 화물이 몽땅 밀수품이란 것이다. 북쪽 4시간 반 거리의 볼리비아 국경도시에서 온 것이라는데 길가에 형성된 해적시장이 그 거래처다.

풍경은 시내를 빠져나오자 돌변했다. 대평원이 지평선까지 펼쳐진 평화로운 모습이다. 거기선 인디오 농부가 양을 치고 꽃 핀 감자밭을 돌보고 있었다. 세상의 감자는 7500종이고 이 중 3000종이 자연종인데 그 10%(300종)는 이곳 티티카카 고원이 원산이란다. 30분쯤 달렸을까.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 아래로 호반도시와 함께. 푸노(Puno)다. 숙소는 여기서 30km 남쪽 호반의 티티라카 호텔. 어둠에 휩싸인 호수 위 하늘로 남반구의 뭇별이 쏟아질 듯 반짝였다. 3800m 고도라서일까. 별은 가까워 보였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이튿날 오전 5시. 아침 해를 호젓한 호반호텔의 테라스에서 홀로 맞았다. 구름이 걷힌 동북방, 호수 뒤 볼리비아 쪽 멀리로 안데스의 설산이 보였다. 빙하를 이고 있는 6462m의 일리마니 산이다. 티티카카 호수는 잉카인의 고향이다. 민족 발원 신화의 무대이자 실제 탄생지다. 여기서 쿠스코로 이주해 거기에 이룬 촌락이 제국의 모태다. 잉카의 창조신은 비라코차, 잉카의 선조는 그의 두 아들 망코 카팍과 마마 오코인데 잉카인은 이들이 모두 이 호수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티아후아나카(비라코차 탄생지)와 호수의 두 섬(해와 달 섬)이다. 모두 볼리비아 땅에 있어 이번 취재 중엔 가볼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타키예 섬(5.7km²)을 찾았다. 제주도의 우도(6.3km²)만 한 이 섬은 지상 최고도의 섬(정상 4050m)이다. 섬의 산기슭은 가파르지도 않은데 오르기가 힘겹다. 산소 부족 탓이다. 그걸 본 가이드가 손바닥에 유칼리나무 수액을 쏟아준다. 그 상큼한 향을 거푸 흡입하자 어지럼증이 가라앉았다. 이런 고소증은 30분쯤 지나면 대체로 회복된다. 물론 심한 경우엔 병원 신세도 지지만 거기서도 처치 수단은 산소 흡입이나 혈관 확장제뿐이다. '타키예'는 스페인 왕으로부터 이 섬을 하사받은 스페인 왕족의 성. 원래 이름은 인디오의 케추아어로 '해뜨는 섬'이라는 '인티카'다.

섬 주민(2500명)은 모두 인디오. 여섯 마을이 공동체를 이뤘는데 지금도 잉카시대의 '공동생산 공동소비' 체제를 유지하는 화석 같은 곳이다. 농사(감자)와 가축사육을 각각 세 마을이 나눠 맡아 매년 교대하고 가구당 소(암수 한 쌍)와 양(30마리)의 사육 마릿수를 제한해 부의 편차를 없앤다. 그리고 수확물은 공동 관리한다. 섬의 산기슭은 '테라스'라 불리는 잉카식 계단밭 투성인데 대부분 15세기 잉카제국 당시 조성된 것들. 2200년 동안 살아온 섬으로 스페인 정복기(1532∼1572)에 가장 마지막까지 투항을 거부한 곳이기도 하다. 한 마을에 가니 방문객에게 일상을 소개하고 보여주는 마당이 있었다. 거기선 손뜨개와 직조기로 짠 모자와 허리띠 등 직물도 파는데 정교함이 페루 최고로 알려졌다.

아름다운 이 호수도 수중에선 참변이 일었다. 56종이던 토종물고기가 5종밖에 남지 않은 것인데 인간의 분별없는 행동이 화근이었다. 그것도 두 차례나. 첫 번째는 82년 전 캐나다인의 분별없는 송어 이식(5종). 이 중 호수에 적응한 3종이 토종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최고중량 송어 기네스 기록(8kg)'에 열중한 푸노 시장도 참화를 거들었다. 두 번째는 그 송어를 퇴치한다며 부근 포포 호수에 들여와 시험하던 페헤레이(일명 킹피시)가 강을 역류해 티티카카 호수로 침입한 것. 이번엔 페헤레이가 호수의 송어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결국 송어는 사라졌지만 페헤레이도 먹잇감이 없어지자 자멸했다. 그 결과 이 거대한 호수에 남은 물고기는 토종 5종뿐.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성체가 45cm나 되는 자이언트개구리도 한때 번성했지만 식용 남획으로 줄어들어 지금은 보호를 받고 있다.

:: Travel Info ::

티티카카 호수

△평균기온: 12∼3월(우기) 4도, 6∼7월(건기) 영하 6도 △액티비티: 카약 타기, 트레킹 등 다양 △보트투어: 타키예 섬+우로스 갈대섬 가이드투어(점심도시락 포함).

티티라카 호텔

티티카카 호수 남동쪽 호반에 외따로 있는 풀보드(숙박비에 음료 주류 식사 포함) 방식의 럭셔리 리조트. 테라스에선

밤하늘 별자리 관측도 하고 해넘이와 해맞이도 두루 즐긴다. 와이파이 제공. 자체 선착장에서 타키예 섬과 우로스 갈대섬 관광보트

출발. www.titilaka.com

페루

△관광청: www.peru.travel △항공로:

인천∼로스앤젤레스(9∼11시간), 로스앤젤레스∼리마(9시간). 미주 직항로 대신 도쿄(나리타 공항) 경유 시 6시간 추가.

△언어: 스페인어 △화폐: 단위는 누에보솔. 1누에보솔=440원가량, 1달러=2.5누에보솔 △쇼핑 아이템: 알파카(고산지대 낙타과

동물)와 양털 실로 짠 머플러, 스웨터 등 의류, 장갑, 모자.

▼ 원주민 우로스人, 척박한 수상 섬에서 일생 보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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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호수의 선상부족 우로스의 갈대섬. 섬은 '토토로'라는 호수토종 갈대뿌리를 캐어 짓는데 친족 대여섯 가족이 한 섬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티티카카 호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1968년. 당시 볼리비아 쪽에서 잉카 유적을 수중 탐사한 프랑스인 자크이브

쿠스토(1910∼1997)를 통해서다. 그는 스쿠버(SCUBA)라는 '수중 자가 호흡 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1943년)한

생태학자이자 탐험가. 그의 수중사진을 통해 호수는 세상의 관심을 모았다. 더불어 갈대로 지은 인공 섬에서 평생을 보내는 호수

원주민 우로스(Uros)도 세계적 관심사로 등극했다.

인공 섬이 있는 곳은 호수 서편의 거대한 갈대밭 두 곳.

카티예 섬에서 보트로 한 시간쯤 갔을까. 드디어 갈대섬 하나가 나타났다. 배를 거기 대고 뛰어내렸다. 섬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튼튼했다. 살펴보니 교실 두개만 한데 '우타'라는 갈대집이 여섯 채 있었다. 그중 둘은 부엌과 창고, 나머진 거주

공간이다. 들여다보니 매트리스와 담요 외에 어떤 가구도 없다. 두 아이를 둔 자비에르, 지나 씨 부부 등 여섯 가구가 사는데 모두

친족이란다. 섬에선 전통적으로 '푸토'라는 돌바닥 도기(陶器) 화로에 갈대로 불을 때 요리를 한다. 하지만 이 섬 부엌의 푸토

자리엔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캄캄한 방 안엔 낡은 TV도 보였다. 전기 공급원은 지붕에 설치한 태양전지판. 1996년 알베르토

후지모리 당시 대통령이 우로스 방문 후 보내준 선물이라고 했다. 섬에는 애완동물도 있는데 그물 속의 물닭 두 마리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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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호수의 여러 섬 중 하나인 타키예 섬의 주민. 여섯마을의 2500명 주민은 아직도 잉카시대의 공동생산 공동소비 체제로 살아가는데 이 복장은 16세기 스페인 식민지가 된 후 전래된 무어인(북아프리카의 흑인 이슬람교도) 복식이 인디오스타일과 접목된 것.

우로스는 잉카제국 이전 이곳 부족의 언어이기도 하다. 이곳이 잉카제국에 흡수돼 케추아어를 쓰게 되면서 500년 전

사멸했다. 이들은 볼리비아 쪽 호반의 육지에서 호수를 터전으로 수천 년간 새 사냥과 고기잡이로 살아온 원주민. 갈대숲에 인공

섬을 짓고 물 위로 옮겨온 건 1100년경으로 아이마라어를 쓰는 코야스 부족의 침략이 계기였다.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극단의 선택이었다. 그 갈대섬은 현재 73개. 800가구 2900명이 여기서 태어나 평생을 여기서 살다 죽는다. 이들은 죽어서야

비로소 땅으로 돌아가는데 호반엔 이들만을 위한 특별묘지가 있다. 학교(유치원 2, 초등학교 5, 고교 1개) 역시 갈대섬에

있다.

갈대로 섬 짓기는 의외로 쉬워 보였다. 재료는 호수 밑바닥에 서로 엉겨 붙은 갈대 뿌리다. 이걸 블록 형태로

잘라낸 뒤 줄로 동여매 바지선처럼 만드는데 그게 물에 뜨는 것은 빨대처럼 생긴 갈대 뿌리가 머금은 공기 덕분. 섬은 그 위에

건조한 갈대를 잘라 덮으면 된다. 간단하긴 해도 대여섯 가구가 살 만한 섬 하나를 짓는 데 걸리는 기간은 꼬박 1년. 수명은

30년이라고 한다. 이 갈대를 우로스 주민은 '토토라'라고 부르는데 호수 동편 볼리비아 호반에선 나지 않는다. 그래서 볼리비아

수상부족은 나무기둥을 박아 그 위에 지은 수상가옥에서 산다.

물 위는 춥다. 특히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건기(6, 7월)에 난방시설도 없는 갈대섬에서 지내기란 고역일 터. 그러나 이들에겐 문제되지 않는다. 스스로 '검은 피'라 부르는

추위 극복 체질로 수천 년 호수를 터전으로 산 극한의 삶에서 체득한 초능력이다. 자비에르 씨 노모의 건강한 치아도 비슷하다.

평생 치과에 간 적이 없다 자랑할 만큼 튼튼한 이는 평소 간식처럼 씹어 먹는 갈대(하얀 아랫부분) 덕분. 거기엔 칼슘과 불소,

요오드가 풍부하단다. 이들의 생계수단은 사냥과 고기잡이. 갈매기와 물닭, 오리, 플라밍고는 총으로, 물고기는 그물로 잡는다.

곡식(감자, 옥수수)은 육지에서 사냥감을 팔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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