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테네에 들어서면 작은 갈등에 사로잡힌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는 어느 골목을 거닐어도 그림자처럼 쫓아다닌다. 전통요리를 파는 플라카 지구의 타베르나에 앉아 기로스 한 조각을 우적우적 씹어 먹어도 아크로폴리스는 옆에 다가와 있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를 들춰보는게 설레 듯,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는 때를 정하는 것 역시 작은 감동과 갈등을 안겨준다.

우윳빛 신전들은 분명 아테네의 트레이드마크다. 그 유적과 미로 같은 골목 사이에 솟아 있는 언덕이 아크로폴리스다. 아크로폴리스 일대는 고대 그리스 유산의 백미들이 모두 가지런하게 정열 해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맥주 한잔 걸치며 그윽이 바라보는 친근한 곳이 됐지만 고대 아테네 시절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일반인의 접근조차 금지된 경외스러운 땅이었다. 그 존망 받는 땅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아테나 여신을 기리던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아테나 여신의 신전인 파르테논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어로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한다. 도시국가의 군사적 요새 뿐 아니라 종교적 목적으로 활용됐으며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을 모셨다.

고대 아테네를 수호하던 가장 강력한 존재이자 시민들이 사모했던 신은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였다. 위대한 유산으로 칭송받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은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신전이다. 파르테논이라는 이름에도 '처녀의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원전 438년에 완공된 파르테논은 푸른 하늘을 지붕 삼아 46개의 기둥이 떠받들고 있다. 기둥의 지름만 해도 1.9m로 감히 한 아름에 안기에는 두툼하고 영험하다. 파르테논은 1600년대 중반 베네치아 군대의 포격으로 상처를 입었고, 주요유물들 역시 약탈당해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진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파르테논 옆으로는 이오니아 양식의 에렉테이온 신전이 들어서 있다. 이 신전 역시 건물을 떠 받들고 있는 6명의 거상이 모두 여인상이다. 에렉테이온에는 아테네의 도시 생성을 두고 포세이돈과 아테나 여신이 경쟁했던 신화적 사연이 담겨 있다. 포세이돈은 소금 샘이 솟도록 했고,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가 자라나도록 했다는데 신전 옆 올리브 나무는 승자인 아테나를 기려 심어졌다고 한다. 에렉테이온 여인상의 진품 등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별도로 전시돼 있다.



수천 년 문명이 서린 언덕과 골목

아크로폴리스에 올라선 여행자들의 시선은 신전의 경외스러움을 찬미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언덕은 아테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전망 포인트이기도 하다. 한낮에 휴식을 취했던 플라카 지구의 미로같은 골목들 역시 이곳에서 가깝게 다가선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언덕아래 풍광은 아고라와 제우스의 신전이다. 파르테논이 여신들이 주인공이었던데 반해 아고라는 주로 남성들이 상업활동을 하거나 정치, 철학을 주고받던 광장이자 시장이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철학자들도 아고라에서의 소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테나의 아버지이자 올림퍼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신전 역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문 너머 언덕이 아닌 평지에 몸을 낮추고 있다.

반원형의 모습으로 꾸며진 디오니소스 극장

언덕에서 유적과 골목 사이의 시야를 가리는 뿌연 것들은 ‘네포스’라는 아테네의 스모그다. 네포스 문제가 심각해 고대 유적들을 빠른 속도로 침식하자 고고학자들은 아크로폴리스에 유리덮개를 씌우는 것을 고려했을 정도다. 아테네에 첫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게 1904년의 일이고 2,3호선이 개통되는데 100년이 걸렸다. 한동안 지하철이 생기지 않았던 데에는 아테네 자체가 유적지인 것도 큰 이유가 됐다. 지하철 운행을 100년 동안 자제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매연으로 인한 유적손실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스가 경제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크로폴리스 등 유적의 가치마저 폄훼되는 것은 아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를 찾고 있다. 이들은 플라카 지구에 앉아 꼬치구이 수블라키와 오징어 튀김 칼라마리를 맛보며, 수천 년 세월의 유적에 아득하게 빠져들곤 한다.



가는길

아테네까지는 유럽을 경유해 가는 게 일반적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등에서 수시로 저가항공기가 오간다. 이탈리아를 경유해 페리로 이동하기도 한다. 육로 이동은 힘든 편이다. 공항에서 아테네의 중심인 신타그마 광장까지 공항버스가 오간다. 구도심 일대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아테네를 기점으로 인근 산토리니, 미코노스로 향하는 페리가 출발한다.

 

아고라, 너를 드러내어, 너 자신을 알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고, 자기자신이 누구인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옛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 “너 자신을 알라”는 그 철학적 대화의 효용성에 대해서 말해준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하다보면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알몸으로 드러난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것. 그것이 철학의 기본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죽은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가 주로 출몰한 곳은 아고라였다. 아고라는 그리스식 민주주의가 직접 이루어진 공간이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이곳에서 재판도 열고, 시장도 보고, 모여서 공동체에 관한 여러 가지 결정도 내렸다. 직접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철학이 실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했다.

소크라테스가 방문하기 전, 아고라를 휘어잡고 있는 이들은 소피스트들이었다.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목숨이 걸린 재판에 이르기까지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하려했던 이들에게 있어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재능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사람들에게 말 잘하는 법, 즉 웅변술을 돈 받고 가르쳤다. '현자'를 뜻하던 ‘소피스트’라는 단어는 '궤변가'를 뜻하는 말로 추락했다. 중요한 건 말재주가 아니라는 것을 집요한 문답으로 밝혀낸 소크라테스가 결국 아테네 시민들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은, 스스로를 안다는 것이 사실은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까?

디오게네스의 등불에 나를 비추다

“나는 대왕 알렉산드로스다.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라며 위풍당당하게 그를 내려다보는 청년 앞에서 남루한 옷자락 속으로 손을 넣어 긁적거리며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라고 말했다는 철학자 디오게네스. 시노페에서 태어나 일명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라 불리는 그는 퀴닉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문명을 반대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추구한 그는 가능한 한 욕망을 줄이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며 스스로 만족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신에게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던 것. 그의 세계관에 맞게, 그의 외양은 초라했다. 한 벌의 옷, 한 개의 지팡이, 그리고 약간의 소지품이 든 자루. 그리고 그의 집은 통이었다. 그의 철학이 퀴닉학파라는 이름을 얻은 이유는 통속에 사는 그의 모습이 개(퀴온Kyon)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이나 잘 먹고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으며 불평없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개에게 찬사를 보내며 개처럼 살고자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디오게네스는 헐벗고 다녔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에피소드만큼이나 알려진 그의 기행은, 환한 대낮에 등불을 켜서 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며 들고 다녔던 그 등불은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라는 이름으로 구전되었다.

현재 아테네에는 ‘디오게네스의 등불’ 기념비라고 알려진 것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동쪽에 있는 리시크라테스 기념비(Lysikrates Monument)는 BC 335 년경 소년 합창대회의 스폰서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석이다. 그러나 그 생김새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 비석을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라 부른다. 현재 이 비석이 자리하고 있는 수도원은 1810년 바이런 경이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파르테논신전, 매연에 노출되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답지만 폐허에 가까운 파르테논 신전은 기구한 시절을 지나왔다.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지어진 이곳은 비잔틴 제국이 통치할 때는 동방정교의 교회가 되었다가,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한 후 카톨릭 교회가 되기도 했다.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할 때는 모스크가 되기도 하였으나, 성격이야 어찌되었건 비교적 잘 보존된 셈이었다. 하지만 1687년 베네치아공화국이 아테네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를 공격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탄약고로 사용하던 파르테논 신전에 베네치아 군의 구포탄이 날아든 것이다. 이후 이어진 베네치아군의 약탈, 영국의 엘진의 유물 반출 등을 통해 파르테논 신전은 되돌릴 수 없는 폐허가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도 산성비에 노출되어 조금씩 부식되고 있다.


현재 파르테논 신전의 적은 ‘산성비’다. 파르테논 신전을 구성하고 있는 석회석, 대리석은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또한 산에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아테네가 대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공해에 의한 그리스 고대유물들의 침식 현상이 본격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1970년대. 그리스 문화부에서는 에렉테이온의 여상주와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 등에서 심각한 훼손의 흔적을 발견했다.

1990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아테네 시가 본격적인 오염 규제정책을 발표하면서 피해는 줄어들고 있지만, 공해에 노출된 파르테논 신전으로서는 공해자체를 현격히 줄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보호방책이 없다. 다행히 시끄럽고 공해로 가득차 있기로 유명한 아테네도 최근들어 상당한 개선을 보이고 있다고.

올림픽경기장, 벌거벗고 달려라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 4년마다 한번씩 열렸던 이 경기는 시민권이 있고, 범법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제우스에 대해 불경한 행동을 한 적이 없던 남자만 참가할 수 있었다. 여성의 경우는 관전조차도 금지되어 있었는데, 이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이 벌거벗은 채였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까? 색다른 것은, 당시 고대 올림픽에는 운동선수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인, 철학자, 예술가들도 참가해 문학, 예술, 연극 등을 겨루었다는데 현재에는 그 전통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서기 393년 로마제국의 데오도시우스 1세가 반 기독교행사라고 규정하면서 제293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고대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역사 속에 묻힌 올림픽을 1896년 되살린 이는 프랑스의 쿠베르탕 남작. 빈곤한 그리스를 대신하여 돈을 쾌척한 그리스의 대부호 아베로프 덕분에, 아테네는 고대 경기장을 복원하여 제 1회 근대올림픽 개최지에 걸맞는 대리석 좌석의 경기장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아베로프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마라톤 승전을 알리고 죽은 병사, 그도 누드였을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리석으로만 된 이 경기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대경기장과 같이 말발굽 모양의 구조라는 것.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로마시대에는 투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에도 각종 육상경기와 행사 등에 사용되고 있다. 28회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에는 개막식과 폐막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이곳은 또한 마라톤의 도착지점이기도 하다. BC490년, 아테네를 공격한 10만의 페르시아군을 1/5밖에 안 되는 2만의 아테네시민군이 물리친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2.195km를 달려온 병사의 죽음을 기리는 이 뜻깊은 경기는 올림픽의 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나저나, 그 병사도 누드였을까?

피레우스 항구, 가식과 위선을 벗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만난 남자,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실존인물. 그는 거침없는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여 그가 ‘두목’이라 부르던 소설 속의 ‘나’를 감명시켰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가식을 벗은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 둘이 만나는 곳이 바로 피레우스 항이다. 피레우스 항은 아테네의 외항으로, 기원전 490년에 테미스토클레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아테네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곳으로, 유럽 각국으로 오가는 배들은 모두 이곳에서 출발하고, 또 도착한다. 에게해의 크루즈선들도 모두 이곳으로 온다. 크레타 섬, 키클라데스 제도, 사모스, 낙소스, 파로스, 미코노스, 사로니코스 제도, 도데카니사 제도 등. 지중해를 여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될 항구다.

그곳의 카페에서 크레타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나’는 눈빛이 강렬한 한 남자를 만난다. 둘은 함께 크레타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나’는 조르바의 삶의 철학을 두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인. 그의 삶은 어설픈 철학들을 가차없이 부순다.

크레타섬에 있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 쓰여있는 말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할법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인간이니까”. ‘나’가 묻는다.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 다시, 그가 대답한다. "글쎄, 자유라는 거지” 그렇다. 모든 가식과 위선을 벗어버렸을 때, 인간은 자유다.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누드조각상들이 가득한 곳

벌거벗은 옛 그리스인들을 보고싶다면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가면 된다. 물론 당시의 그리스인들이 이토록 멋진 몸매를 하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적으로 묘사된 나체의 조각상들이 박물관을 꽉꽉 채우고 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기원전 4세기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만든 자신의 조각상을 보고 놀라 "도대체 프락시텔레스는 어디서 내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는가?"라 했다는 이야기는 물론 지어낸 에피소드이겠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이 그 조각상을 보고 놀라 “도대체 프락시텔레스는 언제 아프로디테 여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는가?”라며 수근거렸을 법하다.


1891년에 문을 연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을 본떠 지어졌다. 조각상뿐 아니라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만들어진 조각, 회화, 공예품들이 한곳에 모였다. 조각상은 대부분 그리스의 신들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입고 있는 옷이 없다보니 소지품으로 정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BC46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포세이돈 청동상은 멋진 자세로 뭔가를 던지기 위해 팔을 뻗고 있는데, 그 손에 든 것이 삼지창인지 번개인지 알 수 없어 “제우스 또는 포세이돈 청동상”이라 표기해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리 포세이돈 청동상이라 알려진 이유는 아마도 바닷 속에 빠져있던 것을 건져올렸기 때문인 게 아닐까. 1928년 아르테미시온의 바닷속에서 건졌기에, 아르테미시온의 포세이돈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스 조각들은 사실적인 미를 추구했다.

리카베투스, 아테네를 굽어보는 민둥산

아테네는 벌거벗은 산에 둘러싸여있다. 큰 강이 없는 아테네는 늘 물 부족에 시달린다. 그 이유는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의 유래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어느날 포세이돈아테네는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달겠다며 다투었다. 결국 이들은 시민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준 신의 이름을 도시에 달겠다고 제안했다.

리카베투스의 민머리에서 보는 아테네의 전경은 훌륭하다.


포세이돈이 준 선물은 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삼지창으로 바위를 내리쳐, 물이 솟아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물은 소금물이었다.

아테네는 방패로 땅을 내리쳐 올리브나무가 자라나게 하였다. 올리브 기름과 올리브 열매를 시민들에게 준 것이다. 이를 본 시민들은 아테네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아테네에 ‘물 부족’이라는 저주를 내렸다.

이토록 물이 부족한 아테네에 산에까지 물이 안 올라가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리카베투스가 민둥산인 이유는 신화에서 나온 바로 그 이유 때문일까? 하지만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는 물을 품기에 좋다. 그 덕분에, 리카베투스는 완전히 헐벗은 산은 면하게 되었다. 리카베투스는 ‘늑대들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산기슭에 우거진 소나무숲에 늑대들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카베투스 산이 생기게 된 유래도 아테네 여신과 관계가 깊다. 아테네는 막 태어난 에리크토니오스를 바구니에 담아 케크롭스의 딸들에게 맡기며 “절대 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아크로폴리스를 만들 산을 가지러 팔레네로 갔는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한 케크롭스의 딸들이 바구니를 열어본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아테네는 화를 내며 들고오던 산을 집어던졌는데, 그것이 바로 리카베투스가 되었다고 한다. 리카베투스의 맨숭맨숭한 정상에는 아기오스 조르기오스라는 교회가 있는데, 이곳까지 오르면 아테네의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민둥산이기에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서구 문명의 뿌리인 미노아 문명의 발상지이자 '그리스인 조르바''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곳. 그리스 남단에 있는 큰 섬인 크레타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의 아우라(Aura)로 가득한 곳이다.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 미노타우루스에게 살아 있는 인간제물을 바쳤다는 지하의 미로와 마침내 이 괴물을 죽이고 공주를 구해내는 영웅 테세우스의 신화로도 유명한 크노소스 왕의 궁전. 기원전 200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4000년 전의 유적이 머금은 엄청난 시간의 퇴적이 아찔하다.





↑ 궁전의 광대한 유적들.

크레타 섬의 서쪽에는 레팀논이 있다. 에게 해를 바라보는 바닷가에 있는 마을은 소박하고 편안하다. 그리스의 현재를 볼 수 있다. 마을 앞, 바다 위에 태양이 처연하게 스러진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는 비문을 남긴 카잔차키스가 사랑한 크레타의 바다와 석양이다.









1 뒤로 베네치아 요새가 보이는 헤라클리온 항구.

2 미노아 문명의 벽화들이 그려진 크노소스 궁전의 건물.

3 헤라클리온 박물관의 '백합의 왕자'.





1 노을이 지는 바닷가 마을.

2 레팀논의 좁은 골목 풍경.

3 레팀논의 그리스 정교회.

4 레팀논 마을의 거리.

5 직물 가게 앞의 아이.


무작정 '북소리'를 따라 3년간 유럽 여행한 무라카미 하루키… 낯선 도시와 사람들을 만나다
극장을 떠도는 고양이 한 마리… 그리스인에겐 아무것도 아냐
이탈리아 사람과 일처리할 땐 아부성 선물은 효과 만점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하루키가 내 나이일 때, 그는 원고 청탁과 원고 더미에 압사 직전이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내던 그가 이렇게 정신없이 나이를 먹다가 이렇게 정신없이 죽겠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 저지른 일은 바로 한 번도 배우지 않은 그리스어 학원에 다니는 것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전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작가에겐 어떤 모험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귓속을 둥둥둥 울리던 그 북소리를 따라 이후 3년간 유럽을 떠돈다. 그리고 3년의 기간 동안 장편 '노르웨이 숲'과 '댄스 댄스 댄스'를 쓰고, 꽤 많은 분량의 책들을 번역하며, 그리고 바로 이 책, 내가 본 어떤 여행기보다도 재미있고 유쾌한 '먼 북소리'를 쓴다.

지금은 체류기 형식의 여행서가 꽤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이 나올 당시에만 해도 낯선 도시의 사람들과 꽤 오랜 시간 관계를 맺는 방식의 책이 많지 않았다. '먼 북소리'는 그가 머물던 그리스의 작은 섬들, 가령 '스펫체스' 섬과 같은 군도들과 로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런 식이다.

이탈리아 Italia_무라카미 하루키는 이탈리아 로마에 체류하며 느낀 이탈리아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글로 풀어냈다. 사진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콜로세움’의 모습. / 이탈리아관광청 제공
그리스에서 사는 동안 하루키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그렇게 해서 그리스 이탈리아식의 장단점을 모조리 열거해 놓을 수 있었다), 그는 극장에 가고(그리스 극장의 슬랩스틱극 같은 소동을 그릴 수 있었다. 극장에서 고양이 한 마리쯤 어슬렁거리는 건 그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말'이나 '당나귀'도 아닌데 뭘 그리 요란을 피우남!), 자신이 사는 섬 주위를 매일 아침 조깅한다.(그리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아침부터 길바닥을 뛰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심지어 뛰고 있는 하루키에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다. 왜 뛰는 거요, 젊은이? 무슨 일 있소?)

그는 로마에도 잠시 체류하며 우편물을 붙이고(이탈리아의 우편체계가 얼마나 엉망인지도 그는 진술한다), 필요한 서류들을 위해 전화를 걸고 (이탈리아 전화는 통화 도중 끊기거나, 소리가 마구잡이로 바뀐다. 어떤 날은 크게, 어떤 날은 작게!), 텔레비전을 본다.(화재 진압을 하다가 카메라가 자기를 바라보자 반사적으로 카메라 보며 씨익 웃는 이탈리아 소방대원을 상상하시길.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다!)

작가인 그가 텔레비전을 통해 본 기이한 것은 물론 또 하나 있었다. 이탈리아 방송은 여유 시간이 남았을 때는 그냥 시계만 무작정 비춘다는 것이다.(한국이라면 '동물의 왕국' 편집본이라도 틀어주지 않을까? 정말 터프한 나라다!) 또한 이탈리아에선 뭔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선 아부성 선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 '아부성 선물'의 효과는 너무나 요란하게 즉각적이라, 그는 이런 모습이 이탈리아 사람들의 '귀여움'을 대변한다고 얘기한다.

조금 딴소리 같긴 하지만(어차피 삼천포는 내 특기이기도 하니까),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은 '발칙한 유럽여행'에서 "암스테르담에서는 차를 운하 주변에 아무렇게나 버려두는데, 물에 굴러 떨어지기 직전인 차들도 종종 눈에 띈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독일이나 스위스 사람들의 정리강박증에 비해 네덜란드 사람들의 이런 칠칠치 못함이 자신의 마음에 아주 쏙 든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언젠가 소설가 K와 터키여행 이야길 하다가, 터키인들의 진정한 귀여움은 눈에 보이는 그 빤한 거짓말에서 나온다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 모름지기 재밌는 여행기를 쓰는 작가들의 특징은 바로 '귀여움'을 보는 능력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시 '먼 북소리' 얘기로 돌아가면 유럽을 여행하면서 하루키는 무수히 많은 북유럽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노르웨이 덴마크 사람들에 대한 그의 인상 역시 아주 재밌다. "이 사람들(대개 북유럽)은 햇빛에 관해서는 매우 진지하다. 마치 태양 전지식 전기면도기가 한곳에 모여 충전을 겸한 신앙 고백 집회라도 열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맙소사! 이 부분을 읽으며 얼마나 웃었던지. 그 이후, 배터리 충전하듯 옹기종기 모여 햇빛을 쐬고 있는 유럽 사람들을 보면 어김없이 하루키의 이 문장이 떠오르곤 했다.

때때로 삶이 고루하다고 느껴질 때, '먼 북소리'를 반복해서 읽는다. 원고 더미에 치여 머리가 폭발하기 직전인 날쯤이라고 해두자. 제일 먼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 '고등학교 지리부도'를 열어놓고 지도들을 본다. 그리고 어디로든 떠나는 상상을 한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도 좋고, 프랑스의 악상 프로방스 지역도 좋고,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섬들을 돌아보는 여행도 좋겠다. 하지만 며칠 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가 내가 들었던 가장 기이한 여행기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광주에 가려던 한 할머니 한 분이 커다란 짐 가방을 들고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실컷 잠을 자고 난 후, 눈을 떠보니 대구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리둥절했던 할머니가 맞이하게 된 진실은 이러한 것이었다. 대구 버스 기사가 광주 버스를 대구 버스로 착각하고, 그 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돌진해 온 것이었다! 기사는 '현철과 벌떼들'의 노래를 아주 구성지게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럼 대구 버스 기사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먼 북소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게다가 버스나 전철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젊은이들로 언제나 만원이다. 이 패거리들은 예의도 없거니와 행동도 난폭하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로마의 버스는 가끔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한다!"

한국에선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러니 제아무리 정확한 일본이라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10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는 하루키가 (마라톤을 즐겨 하는 하루키는 100살쯤 살 것 같다) 이 상태로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이런 운전기사를 만날 가능성은 더더욱 커진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늘 예상과는 다른 도착지로 유유히 흐른다.

먼 북소리―이 책에 대한 출판사의 리뷰가 재밌어서 그대로 옮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상실의 시대'에서 장면마다 왜 그렇게 비가 많이 내렸는지, 또 '댄스 댄스 댄스'에서 '나'는 왜 하와이를 찾아 떠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고,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깃털'에 나오는 반은 야생화된 공작은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 있는 야생공작이 그 근원이었음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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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은 다소 행복하다. ‘산토리니냐’, ‘미코노스냐’를 두고 선택하는 고민 말이다. 두 섬은 그리스 에게해에 뿌려진 400개의 섬들 중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국내 여행자들에는 아직까지 산토리니가 대세인 듯싶다. 한때 유명 CF에 등장한 뒤 인기가 치솟았고, 그리스 섬 여행의 로망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미코노스가 전해주는 느낌이나 단상 역시 사뭇 다르다.

낯선 미코노스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에 오히려 친숙하다.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에는 그가 한 달 반 동안 머물렀던 미코노스에서의 삶이 낱낱이 그려져 있다. 미코노스의 깊은 계절과 한적한 풍경이 배경이었지만 화려한 섬에 대한 동경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곳을 여행한다면 여름이 좋다. 호텔이 만원이고, 근처의 디스코텍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어도 여름의 미코노스는 굉장히 즐겁다. 그것은 일종의 축제인 것이다.’

미코노스섬의 전경. 에게해와 아늑한 포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미로와 풍차로 단장된 어촌마을

미코노스에 대한 첫인상은 사실 단아하다. 여객선이 들어서는 항구 옆으로는 아늑한 어촌이 있고, 어촌에서 한발만 물러서면 하얗게 단장한 그리스 전통 레스토랑인 ‘타베르나’가 도열해 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섬의 트레이드 마크인 풍차가 나란히 서 있다. 푸른 바다와 하얀 집들이 가깝게 맞닿은 풍경은 경외롭기보다 다정스럽다.


첫 느낌만 견줘도 산토리니와는 분명 이질적이다. 산토리니가 화산이 터져 생긴 가파른 절벽 위에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이 압권이었다면 미코노스는 키를라데스 제도에서 가장 멋진 어촌마을을 간직한 섬이다. 고깃배가 드나들고 펠리칸이 자맥질하던 어촌은 이제는 어엿한 다운타운으로 변모했다. 그곳 중심가의 이름이 코라다.

다운타운의 뒷골목은 미로 같은 길이 이어진다.

미코노스 풍경의 트레이드 마크인 풍차.

다운타운만 둘러봐도 일상은 빠르게 전이된다. 코라의 뒷골목은 온통 미로처럼 길이 어지럽다. 산토리니의 번화가인 피라와는 미로의 격이 다르다. 바닥과 벽은 온통 하얗게 채색돼 착시현상마저 일으킨다. 이곳에서는 미로 모퉁이마다 들어선 부띠크숍과 붉은색 부겐빌레아 꽃으로 단장한 아담한 카페가 이정표다. 미로를 걷다 지치면 낯선 집 계단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면 된다. 처음 방문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그런식으로 미코노스의 낮을 즐긴다.

새벽까지 흥청대는 축제의 섬

해가 저물면 미코노스의 변장이 시작된다. 이탈리아 베니스를 연상시키는 코라 초입의 ‘리틀 베니스’ 인근 발코니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몰려든다. 일몰을 벗 삼아 축배를 들이켰으면 본격적으로 미코노스가 떠들썩해질 때다.

밤이 무르익으면 미코노스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흡사 홍대의 주말 밤 같다. 만토광장 인근의 클럽들을 기점으로 다운타운의 클럽과 바들은 밤새 문을 열고 새벽까지 흥청거린다. 유럽의 청춘들이 미코노스로 달려오는 큰 이유 중 하나가 화려한 밤에 매료돼서다. 에게해의 바닷가, 하얗게 채색된 섬마을이라는 낭만적인 설정은 청춘들의 얼굴을 한껏 들뜨게 만든다.

축제는 다운타운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미코노스의 들뜬 기운은 해변으로 이어진다. 플라티 얄로스비치, 누드 해변으로도 알려진 파라다이스 비치 등에서도 흥겨운 파티가 열린다.

골목길 어느 곳에든 흰 담벽의 예배당을 만나게 된다.

파라다이스 비치에서 파티를 즐기는 청춘들.

미코노스는 다양한 해변들로 이목을 끄는 섬이기도 하다. 가족들을 위한 비치와는 별개로 슈퍼 파라다이스 비치, 엘리아 비치 등은 게이비치로 알려져 있다. 누드비치라고 해서 꼭 알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들뜨고 화려한 섬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예배당이 400개를 웃돈다. 인구는 몇 천 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꽤 많은 교회들이다. 그 중 다운타운 카스트로 언덕에 세워진 파라포르티아니 예배당이 가장 오래됐다. 흰 담장에 주홍빛 지붕의 예배당은 이방인들에게는 눈부신 풍경의 일부로 다가선다. 앤티크 마을로 알려진 아노 메라나 델로스, 레니아 섬의 유적을 간직한 고고학박물관 등이 미코노스에서 두루 둘러볼 곳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미코노스에 머물며 소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쓰기 시작했다. 계절이 깊은 가을로 접어들면 미코노스는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바닷가 포구에서 생선을 사가는 일상의 풍경은 반복된다. 그 계절에 맞는 독특한 분위기로 섬은 채색된다.

가는길=아테네에서 미코노스까지 항공기와 쾌속선, 페리가 다닌다. 쾌속선은 3~4시간 소요. 산토리니와 미코노스를 오가는 페리도 있다. 미코노스 페리 승강장이 구분돼 있으며 출발시간도 유동적이라 출발 전 확인이 필요하다. 섬 내에서는 남쪽 파브리카 광장 터미널에서 인근 해변으로 향하는 버스가 수시로 출발한다. 한여름에는 새벽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섬 구석구석을 다니려면 렌터카가 편리하다. 6~8월이 성수기. 5월, 9월에도 섬을 즐기기에는 괜찮다.

그리스 산토리니(Santorini)

이아 마을 해질녘 풍경이다. 이 동화 같은 풍경에 반해서 관광객들이 산 넘고 바다 건너 섬을 찾아온다.
이아 마을 해질녘 풍경이다. 이 동화 같은 풍경에 반해서 관광객들이 산 넘고 바다 건너 섬을 찾아온다.

자, 지중해 동쪽 에게해에 있는 어떤 섬 이야기다. 풍광에 관한 한 여기 한 번 안 가보고 명함 내밀기 민망한 섬이다. 지금부터 그 섬, 산토리니(Santorini) 이야기다.

◇서점 아틀란티스와 고양이 실비

그리스 산토리니 섬 북쪽 도시 이아(Oia)에 있는 서점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산다. 이름은 실비(Sylvie)다. 암컷이다. 손길 주인은 마케도니아인부터 한국인까지 다양하다. 주인 크레그와 올리버는 영국인 부부고 서점 이름은 아틀란티스다. 아틀란티스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대륙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토리니가 바로 그 사라진 대륙이라고 믿는다. 주인 크레그도 그랬다. 실비도 그럴 것이다. 실비는 손님 손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손님 손길에 무관심하다. 산토리니를 닮았다.

2002년 산토리니에 놀러갔던 크레그와 올리버는 이 섬에 푹 빠졌다. 2년 뒤 두 사람은 미니밴을 타고서 영국해협을 건너 육로와 해로를 거쳐 산토리니에 정착했다. 미니밴에는 책이 하나 가득 실려 있었다. 신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이 섬나라에 책방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선장의 집 지하실에 문을 연 서점 아틀란티스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예쁜' 서점으로 소문이 났다. 얼마만큼 예쁜가 하면, 산토리니만큼 예쁘다. 지구를 돌고 돌아 산토리니까지 와서 결혼 사진을 찍는 젊은 신혼부부들만큼 예쁘다.

1 산토리니 북서쪽 이아(Oia)에 있는 서점 아틀란티스에는 고양이 실비가 산다. 2 할머니가 지나가는 피르고스 골목.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1 산토리니 북서쪽 이아(Oia)에 있는 서점 아틀란티스에는 고양이 실비가 산다. 2 할머니가 지나가는 피르고스 골목.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와 산토리니

기원전 1500년 에게해에 있던 화산섬 티라가 폭발했다. 티라는 분화구만 남기고 사라졌다. 티라에 융성했던 키클라데스 문명도 사라졌다. 밀려간 쓰나미는 남쪽에 있던 크레타 섬을 덮쳤다. 크레타 섬에 있던 미노아 문명도 망했다. 황망하게 사라진 키클라데스 문명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플라톤이 언급한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가 이 티라 섬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티라 섬은 분화구 능선만 초승달처럼 남고 폐허가 됐다. 13세기 섬에 들어온 로마인들은 데살로니카에 살았던 성녀 이레네(Santo Irene·산토 이레네) 이름을 따서 섬을 산토리니라 불렀다.

사람들은 분화구 쪽 절벽에 남향집을 짓고 살았다. 가파르기 짝이 없어서 아랫집 지붕은 윗집 마당이 되고, 어렵사리 담과 담을 비집고 골목이 생겨났다. 벽은 흰색으로 칠하고 창틀은 바다를 닮은 코발트색으로 칠했다. 대지를 반듯반듯하게 구획할 엄두도 못 내고 대충 살았다. 샘물 하나 없는 척박한 땅이라 경제 개발도 꿈꾸지 못한 채 살았다. 그렇게 한 이천년 살다보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눈부신 흰색과 눈부신 코발트빛 집들,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직선이 사라진 골목에 파스텔 톤으로 대충 덧칠한 낡은 담벼락이 거기 정지해 있지 않은가. 문명사회에서 일찌감치 사라져버린 모든 것들이. 그림 그리는 쟁이들이 몰려들고 이어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1956년 대지진에 마을들이 파괴되자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똑같이 집들을 재건했다. 그게 산토리니로 사람들이 오는 이유였으니까. 물 한 방울 솟지 않는 척박한 땅은 오히려 포도나무 잘 자라는 훌륭한 땅으로 재인식됐고 산토리니 여름은 숨 막히는 더위에서 투명한 태양빛으로 재포장됐다.

3 피르고스에 있는 스물아홉 개 교회 가운데 하나인 성모마리아 교회. 4 피르고스 가정집에 빨래가 걸렸다.
3 피르고스에 있는 스물아홉 개 교회 가운데 하나인 성모마리아 교회. 4 피르고스 가정집에 빨래가 걸렸다. 
◇피르고스(Pyrgos), 그리고 이아(Oia)

산토리니 본섬은 면적이 80㎢ 정도로 작다. 경주하듯 차를 몰면 반나절이면 다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흘도 모자란다. 분화구 능선을 따라 마을들이 늘어서 있는데, 제일 큰 마을은 피라(Fira), 가장 유명한 마을은 이아(Oia)다. 광고 영상이나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은 이아 마을이다. 섬 북쪽 끝에 있다. 이 동화 같은 마을은 해질녘 볼거리로 남겨두도록 한다. 피라에서 남쪽으로 7.5㎞ 떨어진 피르고스를 첫 번째 방문지로 삼는다. 다른 마을과 달리 분화구 능선에서 벗어나 선지자 엘리야 수도원이 있는 프로피티스 엘리아스 산 기슭에 있다.

마을로 오르는 언덕길 꼭대기에서 일단 멈춤. 작은 그리스 정교회 건물 앞에서 마을을 보면 마을이 온통 흰색이다. 장난감 블록을 대충 쌓은 듯한 그 외곽을 카메라에 담고 길을 이으면 마을 입구 공터가 나온다. 그다음부터는 미로(迷路)다. 의도적으로 만들려면 난해하기 짝이 없는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바닥에 돌들을 깔아놓고 틈새를 석회로 칠해 걷기에도 딱 좋다. 담은 희고 노랗고 때로는 푸르다. '그림 같다'는 말은 최소한 피르고스에서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벽과 창틀을 도화지 삼아서 사람들은 거친 마티에르 질감의 비구상 작품을 그려놓았다.

민속촌과 박물관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그 흰 담 너머를 기웃대다가 사람 소리에 한 번 놀라고, 그 사람이 튀어나와서 어깨를 걸고선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주민 수는 600명이다.

골목 계단을 올라갈수록 1956년 지진의 흔적이 남아서 주변 색깔은 원색에서 흙색으로 변한다. 아무리 헤매도 질리지 않는 미로의 끝이다. 그 폐허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산토리니 섬 전체가 보인다. 파란 색은 바다거나 밭이고 하얀색 덩어리들은 마을들이다. 골목 어귀에 있는 찻집에서 그리스 에스프레소를 홀짝여본다. 동행 한 사람이 말했다. "진흙만큼 진하고, 진흙만큼 맛없다." 7월 20일에는 산꼭대기 수도원에서 엘리야 성자 축제가 열린다. 피르고스에는 푸른 돔과 흰 십자가를 가진 교회가 스물아홉 개 있다. 모두 아름답다.

섬 북쪽 끝에 있는 마을 이아는 피르고스와 또 대비된다. 전형적인 산토리니 마을이며 동시에 가장 유명한 마을이다. 가장 어린 마을이기도 하다. '선장의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잘나가던 상업항구였지만 1956년 대지진은 이아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아테네 옆 피레우스 항으로 집단이주했던 주민들은 1980년대 들어서야 돌아왔다. 마을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고. 그런데 그 마을 위치가 하필이면 남서향 절벽 위다 보니, '세계 최고의 석양'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면서 순식간에 산토리니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둔갑한 것이다. 순식간에 집들은 선물가게, 화랑, 명품점, 부티크 호텔로 변신했다. 피르고스처럼 주민이 사는 게 아니라 밤이 되면 가로등만 덜렁 불을 밝히는 상업도시가 되었다.

그래도 눈은 즐겁기 한량없다. 파란 하늘과 하얀 집들과 좁은 골목과 파란 교회 지붕이 활처럼 휜 절벽을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빈틈없이 채운다. 자세하게 보면 웨딩드레스를 입고서 열심히 촬영 중인 중국인 커플들이 셀 수 없이 눈에 보인다. 그들을 따라 서쪽 끝으로 갈 무렵 날이 맑고 해가 지면 좋겠다. 성채가 있는 즈음에 성벽에 걸터앉아 바다를 보면 낡은 풍차와 하얀 절벽과 골목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 황금빛으로 불탄다.

엠포리오 마을 뒷골목들. 담벼락은 흰 회칠을 했고 문은 코발트 계통으로 푸르게 칠했다. 골목과 골목이 무한히 연결돼 미로를 만들었다.
엠포리오 마을 뒷골목들. 담벼락은 흰 회칠을 했고 문은 코발트 계통으로 푸르게 칠했다. 골목과 골목이 무한히 연결돼 미로를 만들었다.
◇엠포리오(Emporeio)와 피라(Fira)

피르고스와 이아만큼 서로 대비되는 마을들이다. 엠포리오는 주민들이 작심을 하고 옛 모습을 남겨둔 마을이다. 역시 능선을 벗어나 내륙 산 기슭에 있다. 산토리니에서 가장 큰 마을이지만 마을 위쪽은 옛 모습 그대로다. 마을회관이 있는 중심광장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장난감 같은 건물이 나온다. 하얀 벽에 빨간 창문을 가진 3층짜리 건물이다. 그 뒤로 가면 낡은 성채가 나오고 성채 위로 아치형 골목이 보인다. 골목은 또 다른 골목과 이어지고, 그 골목은 또 다른 골목과 만난다. 모퉁이만 돌면 나타나는 그림 같은 풍경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중첩되는 골목 어귀에서 슥 하고 지나가는 고양이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자. 모델 짓에 익숙한 놈들이라 도망가지도 않는다.

피라는 번화하다. 온갖 먹을 것, 살 것들이 이 마을에 집중돼 있다. 워낙 상업화된 곳이라 정작 낮에는 정이 가는 곳은 아니다. 밤이면 다르다. 다른 마을들은 어둠 속에 잠들지만, 피라는 밝다. 몸에 좋다는 그리크 샐러드와 요거트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고 가난한 배낭족들을 위한 분식집도 많다. 이거저거 다 입에 안 맞는 사람들은 다섯 군데나 있는 중식당에 가도 좋다. 절벽 아래 옛 선착장에서 피라까지 케이블카와 당나귀가 유료로 오간다. 섬이 좁으니 어디를 가든 끼니는 이곳에서 편하게 때울 수 있다.

산토리니의 동쪽은 해변이다. 검은 모래와 붉은 모래가 뒤섞인 해변에서 사람들은 발가벗고 태양볕을 쬐고 산토리니 토종 동키 맥주를 홀짝인다. 서쪽 능선과 동쪽 해안 사이는 너른 초원이다. 지금쯤 유채가 피고 포도잎이 솟아 있겠다. 관광업에서 소외된 토종 농부들이 주인인 공간이다. 큰 마을들을 순례하다가 다리가 아파오면 그 푸른 공간을 지나 해변으로 가서 휴식한다. 5월이면 벌써 태양이 뜨겁다. 가끔 내리는 비에는 사하라에서 날아온 모래가 섞여 있으나, 걱정은 하지 않는다. 중금속이며 미세먼지는 없으니까.

그리스 지도
여행수첩 오려두세요

가는 길

1. 유럽행 항공:
 유럽으로 가는 여러 항공편 가운데 터키항공 추천. 이스탄불에서 여러 목적지까지 운항 시간이 짧다. 항공편에 따라서 공짜로 이스탄불 시티 투어도 할 수 있다. 2011년부터 작년까지 유럽 최고 여행사에 선정됐다. 인천-이스탄불 주11회, 이스탄불-아테네 주42회 운항. www.turkishairlines.com, 전화 1800-8490

2. 유레일패스: 한국 배낭족이 즐겨 찾는 유레일패스에 그리스 페리선 티켓인 아티카 패스(Attica Pass)가 추가됐다. 그리스 국내 4회, 국제선 2회를 탑승할 수 있는 티켓이다. 한국에서 예약 가능. 아테네~산토리니 왕복과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파트라스~바리 구간 국제선도 포함돼 있다. 육로 이동수단도 포함돼 있다. 1등석 242유로, 2등석 174유로. 아티카 패스 없이 직접 사는 것보다 10만원 정도 저렴하다. 패스는 각 여행사 및 kr.eurail.com에서 구입 가능. 유레일 개략 정보는 www.eurailgroup.org

산토리니 여행

1. 여행 적기:
 10월부터 4월은 우기(雨期). 흙탕비가 내린다. 6월 중순부터는 불볕 더위다.

2. 이동 수단: 렌터카 필수. 하루 60유로 정도. 작은 섬이지만 걷기에는 크고 패키지를 따라다니기에는 아쉽다.

3. 숙소 구하기: 짐이 적다면 이아 혹은 피라에 있는 분화구 쪽 부티크 호텔 추천. 계단으로 오르내리기 때문에 엄청 힘들다. 짐이 많다면 아예 능선 바깥쪽에 숙소를 잡고 편하게 돌아다닌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산토리니는 ‘빛에 씻긴 섬’이다. 하얀 골목, 파란 교회당, 담장을 치장한 붉은 부겐빌레아마저 선명하다. 엽서를 보며 동경했던 바닷가 마을은 현실과 조우하면 더욱 강렬하다. 에게해의 탐나는 섬, 산토리니는 그런 눈부신 풍경을 지녔다.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렇게 썼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소설 속에서 에게해의 섬들은 현실을 꿈의 세계로 연결해주는 매개체다.

 

산토리니를 대표하는 풍경인 이아 마을. 흰색으로 치장된 가옥과 골목들이 인상적이다.

 

 

400개가 넘는 꿈같은 섬 중에서도 단연 매혹적인 곳은 산토리니다. CF, 영화, 엽서 속의 모습은 소문과 상상 속에서 더욱 선명하다.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산토리니가 그중 하나다.


잔영의 9할은 섬 북쪽 끝 ‘이아’에서 채워진다. 누구나 꿈꾸던 산토리니를 담아낸 마을이다. 화산이 터져 절벽이 된 가파른 땅에 하얗게 채색된 가옥 수백 개가 다닥다닥 붙었다. 푸른 대문의 집들은 흰 미로 같은 골목을 만들고 그 끝에는 파란 지붕의 교회당이 들어섰다. 그런 교회 수십 개가 꽃잎처럼 마을을 수놓는다. 이아에서는 아랫집 지붕은 윗집 테라스가 되고 사람들은 테라스에 누워 에게해의 바람을 맞는다. 앙증맞은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거나 노천카페에 앉아 달달하고 차가운 프라푸치노 한 잔을 마신다. 골목을 배회하며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이아의 석양이다.

 

  • 1 연인들은 이아의 에게해를 바라보며 영원을 약속하는 입맞춤을 나눈다.
  • 2 이아 마을의 노을. 해 질 녘이 되면 흰색 마을이 붉게 물든다.

 

 

해 질 녘이 되면 산토리니에 흩어져 있던 여행자들은 이아로 모여든다. 마을 너머 작은 섬 위로 해가 지고 붉은빛은 바다를 검게 물들인 뒤 하얀 마을 위에 내린다. 풍차가 있고, 십자가가 있고, 어깨를 기댄 연인들의 가녀린 입맞춤만이 있을 뿐이다.

 

 

하얗게 채색된 에게해의 골목

산토리니는 그리스인들에게 ‘티라’로 불린다. 페리 티켓에도 산토리니라는 말은 따로 없다. 키클라데스 제도 최남단의 화산섬인 티라의 번화가는 ‘피라’다. 어느 항구에 내리든 여행자들은 일단 피라에 집결한다. 테토코풀루 광장 주변에 그리스 전통식당인 타베르나(taverna)와 가게들이 몰려 있고, 아침녘 거리에 나서면 이곳 주민들이 갓 잡은 생선을 내다 판다.


피라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들지만 아직 정겨운 사람냄새가 가득한 곳이다. 만나는 중년의 남성들은 소설 속의 낙천적인 ‘조르바’를 닮았다. 섬 속 풍경과 따사로움은 그리스 본토인 아테네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절벽 위 호텔들이 운치 있지만 발품을 팔면 방 하나를 저렴하게 독차지하는 호사스러움이 가능하다. 에게해의 섬들은 6~8월이 성수기. 5월과 9월의 산토리니는 절반은 저렴하고 두 배는 한적하다. 섬은 가을을 넘어서면 을씨년스럽고, 겨울이면 매서운 바람과 함께 상가들이 문을 닫기도 한다.

 

  • 1 산토리니의 골목들은 눈이 부시다. 블루와 화이트가 대칭되는 색감은 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 2 골목에 산토리니의 기념품 가게들은 아담한 집들만큼이나 앙증맞은 모습을 하고 있다.
  • 3 구항구를 오가는 당나귀들. 500개가 넘는 계단을 가뿐하게 오르내린다.

 

 

추억의 당나귀가 오르내리는 구항구 쪽으로 티라의 골목들은 늘어서 있다.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그 끝없는 흰 골목들을 헤매는 게 산토리니 여행의 묘미다. 에게해를 바라보며 절벽에 늘어선 집들은 골목마다 다르고, 아담한 문과 창이 제각각이다. 파란 대문을 열면 낮은 카페와 갤러리가 숨어 있다. 흰 담벼락의 계단에 걸터앉아 ‘블루&화이트’의 눈부신 변주만 감상해도 하루 해는 짧다.

 

 

‘아틀란티스’의 전설이 서린 땅

매혹의 섬은 풍광만으로 치장되지 않는다. 섬에 서린 사연과 전설이 덧씌워져 감동곡선을 높인다. 에게해는 숱한 문명의 요람이었고 바다는 자양분이었다. 미노스, 이오니아, 시칠리아인들이 바닷가에 도시를 세웠고 산토리니에서는 고대 키클라데스 문명이 번영했다. 산토리니를 지금의 초승달 모양으로 만든 것은 수천 년 전의 화산폭발이었다. 섬을 가라앉게 한 화산은 전설을 만들고 신화를 끌어들였다. 그리스인들은 오랜 문명과 침몰을 이유 삼아 산토리니를 전설 속에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로 믿고 있다.

 

  • 1 절벽 위의 이아 마을. 산토리니는 화산폭발로 생긴 절벽 위에 마을들이 삶터를 꾸렸다.
  • 2 페리사 비치는 검은 모래가 인상적인 해변이다. 지중해의 바다에서 늘씬한 미녀들은 해바라기를 즐긴다.

 

 

산토리니에서는 분화구를 일주하는 투어에 참가하거나 페리사, 카마리 비치 등 해변을 찾을 수도 있다. 밤이 이슥해지면 포도향 가득한 그리스 술인 ‘우조(ouzo)’를 마셔도 좋다. 화산지형의 비옥한 땅에서 나는 산토리니 와인 역시 제법 명물에 속한다. 풍차가 도는 어촌마을이나 누드 비치 등 젊은 청춘들의 이색 해변을 원하면 에게해의 쌍두마차 섬인 미코노스 행을 택해도 괜찮은 선택이다. 미코노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머물며 살가운 풍경을 [먼 북소리]에 담기도 했다.

 

가는 길
아테네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테네에서 산토리니까지는 항공기와 고속 페리가 다닌다. 고속 페리는 4시간 소요. 섬에서의 이동을 위해서는 큰 짐은 아테네에 맡기고 떠나는 게 좋다. 신항구인 아티니오스(Athinios) 항구에 도착하면 버스를 이용해 피라로 이동한다. 피라에서는 섬 곳곳으로 버스가 다닌다. 경차 등도 현지에서 렌트가 가능하다. 이아, 피라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2박3일 정도가 필요하다. 산토리니와 미코노스간에도 페리가 오간다.

 

전통이 살아있는 그리스 와인

테트라미토스(Tetramythos) 와이너리는 신약성경에 '고린도'로 나오는 그리스 고대 도시 코린토스(Korinthos)와 그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로아니아산(山) 중턱에 있었다. 그리스 주요 와인 산지 중 하나인 파트라스(Patras)다. 이곳 와인메이커 파나요티스 파파야노풀로스를 따라 지하 와인숙성실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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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를 둘러싼 아티카 지역에서 그리스 토종 사바티아노 포도품종으로 만든 화이트와인. 뒤로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쳐진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김성윤 기자
◇古代 '송진 와인' 레치나

와인숙성실에는 한국 장독보다 조금 날렵한 모양이지만 크기는 거의 같은 토기(土器)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파파야노풀로스는 "800년 된 암포라(amphora·몸통이 불룩한 항아리)"라며 "여기에다가 레치나(retsina) 와인을 고대 그리스에서 만든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레치나는 그리스어로 송진(松津)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포도주를 암포라에 담아 숙성시키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새거나 흐르지 않도록 암포라 안쪽과 뚜껑에 소나무 수액을 발랐다. 맛보다는 보관과 유통을 위해 사용하게 된 송진이지만, 차츰 그리스 사람들은 송진 냄새가 밴 와인을 좋아하게 되었고, 이를 레치나 와인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게 됐다.

파파야노풀로스가 레치나 와인을 한 잔 따라 줬다. 와인에서 솔잎 음료 냄새가 났다. 천년 전 그리스 사람들이 마시던 와인과 똑같은 와인을 21세기에 마실 수 있다니, 와인의 품질이나 맛과 관계없이 묘한 감동이 입안 가득 퍼졌다.

◇기원전 2000년 그리스에 들어와

그리스는 와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기묘한 땅이다. 물론 그리스는 세계 최초로 와인을 생산한 곳은 아니다. 포도 재배와 와인이 시작된 건 중동 어디쯤으로 추정된다. 중동에서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에 소개된 건 기원전 2000년으로 와인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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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휴양지 산토리니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이아(Oia) 마을. 하얗게 회칠한 전통 가옥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지중해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영국의 세계적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은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형태의 와인은 그리스에 기원이 있다"고 말한다. 양조용 포도 재배기술과 와인 생산기술이 그리스에서 개발된 것이 많다는 소리다. 포도밭 단위면적당 포도 수확량을 제한해 포도의 당도를 끌어올린다거나, 어떤 포도품종이 어떤 토양에서 잘 자라는지를 면밀히 관찰해 적용함으로써 와인의 품질을 높이는 기술 등을 고대 그리스인들이 개발하고 체계화시켰다.

그리스 사람들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기술을 유럽 전역에 전파했다.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식민지를 건설할 때 반드시 포도나무를 가져다 심었고 자신들의 식생활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던 와인을 만들었다.

그리스 와인은 로마를 지나 비잔틴시대까지 최고급으로 유럽 전역에서 비싼 가격에 팔렸고, 그리스 최고의 수출품목이었다. 2011년 해양 고고학자들이 프랑스 남부 해안에서 고대 그리스 선박을 인양했다. 배에는 1만 개나 되는 암포라가 실려 있었다. 암포라는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이나 올리브오일 따위 액체를 저장할 때 사용하던 토기를 말한다. 인양된 암포라에는 프랑스로 수출하려던 그리스 와인이 담겨 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암포라 1개당 용량이 약 30리터니까 배에 실려 있던 와인은 30만 리터. 오늘날로 따지면 40만 병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토종 포도품종만 350종

그리스 와인의 몰락은 비잔틴제국의 멸망과 함께 찾아왔다. 비잔틴에 이어 그리스를 통치한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종교는 술을 금하는 이슬람이었다. 오스만투르크 지배자들은 와인에 극심한 규제와 세금을 부과했다. 그리스 와인산업은 400년 동안 발전을 멈췄다. 1800년대 후반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필록세라 전염병으로 포도나무가 모두 죽고 포도원이 파괴됐다. 이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내전(內戰)으로 그리스 와인산업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스 와인이 잠에서 깨어난 건 1980년대 중반이다. 와인 컨설턴트 그레고리 미카일로스(Michailos)는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와인 선진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젊고 야심 찬 와인생산자들이 그리스 와인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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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양한 그리스 전채 요리. 그리스 사람들은 각종 재료로 만든 전채를 나눠 먹은 다음 본 요리를 즐긴다. 2 페타 치즈가 올라간 그리스식 샐러드와 산토리니에서 생산된 화이트와인.그리스 사람들은 와인만 마시는 경우가 드물고 항상 음식을 곁들인다. 3 숯불에 구운 문어 요리. 별다른 양념 없이 올리브오일과 레몬즙을 듬뿍 뿌려 먹는다. 4 파바콩(fava bean)으로 만든 딥 소스. 빵에 발라 먹거나 고기·생선 요리에 곁들인다. 5 산토리니 전통 포도 재배방식 ‘쿨루라’. 강한 바람과 태양으로부터 포도송이를 보호하기 위해 포도나무 가지를 땅바닥에 눕혀 바구니처럼 둥글게 말았다. 6 빵을 찍어 먹거나 요리에 곁들이는 가지 딥 소스. 가지를 구워 껍질을 벗기고 올리브오일을 섞어 가면서 곱게 갈아 만든다.
 오랜 침체는 독(毒)에서 약(藥)으로 바뀌었다. 현대 와인의 종주국인 프랑스를 중심으로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등 맛 좋고 생산량 많은 포도품종이 전 세계 포도밭을 석권했다. 세계 와인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건 장점이지만, 개성이 약해지고 비슷한 와인이 돼버린 단점도 있었다. 그리스는 소위 '국제 포도품종'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고, 덕분에 토종 품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카일로스는 "현재 그리스에는 포도품종이 약 350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최대 400 품종까지도 존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며 "시골 구석구석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품종이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세계 어디서도 생산하지 못하는 개성 있는 와인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바람 피하는 '바구니' 재배방식도

현대 그리스 와인생산자들은 첨단 테크닉을 도입하되 전통 역시 놓지 않고 지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 산토리니 섬의 양조업자들은 '쿨루라(kouloura)'라는 전통 방식대로 포도를 재배한다. 쿨루라는 그리스어로 바구니를 뜻한다. 포도나무가 하늘을 향해 자라는 대신 땅바닥에 납작 누웠다. 줄기와 가지는 바구니 모양으로 둥그렇게 말려 있다. 포도잎과 줄기가 포도송이를 감싸 안는다. 도멘 시갈라스(Domaine Sigalas) 와인메이커 파나요타 칼로게로풀루(Kalogerpoulou)는 "바람과 햇빛이 가혹하달 만큼 강렬한 산토리니에서 포도를 보호하기 위해 수천 년 전 개발된 재배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전통뿐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는 와인 생산방식도 현대 그리스 와인의 특징이다. 그리스 주요 레드와인 산지인 네메아(Nemea)에 있는 양조장 크티마 첼레포스(Ktima Tselepos) 주인 겸 와인메이커로 현대 그리스 와인업계 리더 중 하나로 꼽히는 야니스 첼레포스(62)는 "내가 원하는 대로 와인을 만드는 게 아니라 포도밭과 포도가 내게 말하는 대로 와인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스의 흙과 바람과 포도가 앞으로 어떤 와인을 만들라고 그리스 와인생산자들에게 말해줄지 기대됐다. 마침 와인처럼 붉은 석양이 포도밭 너머로 지고 있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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