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코펜하겐의 카고 바이크

앞 바구니에는 짐을, 뒷자리에는 아이를 싣고 집으로 향하는 엄마 아빠들을 마주하는 일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우리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대체 자전거는 덴마크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코펜하겐의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카고 바이크. 오후 네 시경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이면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러시아워도 함께 시작된다.

30년 역사의 카고 자전거, 뒷자리는 아이들 차지

덴마크 가정에서는 대개 자녀가 세 살 무렵부터 여섯 살 사이에 자전거를 가르친다. 예전에는 페달이 달린 세발자전거를 주로 이용했지만 오늘날에는 페달이 없는 트레이닝 자전거로 균형 감각을 익히고 스피드 조절을 하며 아이 스스로 자전거를 놀이처럼 즐기면서 배울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자전거는 유년 시절 코드의 하나로 깊숙이 자리매김된다. 이런 동기 부여 과정은 부모가 자전거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정에서 더욱 극대화되는데, 특히 덴마크에서 눈에 띄는 자전거는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카고 바이크다.

카고 바이크는 말 그대로 수레를 끄는 자전거다. 매일 아침 8시에서 9시경 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카고 바이크에 싣고 등교시키는 부모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일곱 살과 두 살배기 두 아이를 둔 젊은 워킹 맘 스티느에게 카고 바이크는 차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우선 차를 차고에서 빼내고 또 학교 앞에 주차하느라 걸리는 시간이 절약되므로 아이들은 그 시간만큼 아침잠을 더 잘 수 있다.

또 출근 시간에 차가 막혀 지각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아이를 등하교시키며 운동까지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학교 앞의 자전거 등교 풍경 속에서 만난 리센느 역시 아들을 등교시키는 중이었다. 그는 카고 바이크의 일종인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를 만들고 있는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며 바이크 제작 공간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만든 자전거로 아들과 함께 등하교하면서 더 많은 교감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등굣길에는 아이의 컨디션과 기분을 체크하고, 하굣길에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란다.

크리스티아니아 대장간은 올해로 30년을 맞아 그동안 만들어낸 자전거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외부에 전시를 해놓고 있었다. 자전거 카고의 형태와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기본적인 패밀리 모델은 1만1600크로나(한화 210만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튼튼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한 번 구매하면 자신이 탄 뒤 다시 수리하여 자녀가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대를 물려 이어지는 덴마크인의 자전거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하교 시간인 오후 세 시 반, 리센느는 아들을 데리러 가는 길에 필자를 카고 바이크에 태워 시내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한 바퀴로도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그에게 믿음이 가 카고에 올라타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버스로 40분 남짓 걸렸던 거리가 20분 거리로 짧아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전거 수레 속에서 봤던 가을날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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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운전하는 카고 바이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꼬마 숙녀. 어린아이들에게 안전을 위해 헬멧을 착용시키는 것은 부모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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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아이들의 자전거와 카고 바이크들. 자신의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이미 이 자전거 주차장에서 질서를 배운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카고 바이크 브랜드의 오리지널로 꼽힌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가 만들어진 이후 7~8개 브랜드가 후발 주자로 생겨났지만 카고 바이크 하면 여전히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자전거 구매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www.christianiabikes.com)에서 얻을 수 있다. 본사를 직접 방문하고 싶다면 Christiania Smedie, Mælkevejen 83a, 1440 København K.

유모차만큼 흔한 필수품, 소규모 가판대로도 이용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카고 바이크보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971년부터 코펜하겐시 동쪽의 해군 기지 터에 히피, 예술가, 젊은 사회 운동가들이 자리 잡으면서 만들어진 문화 예술 공동체 혹은 새로운 대안 마을인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초창기 주민 900여 명은 버려진 군사 시설이던 34헥타르의 땅에 평화를 지향하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보존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정부는 긍정적인 측면의 '사회적 실험'으로써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물질적 가치로 결정되는 삶을 거부하고 작은 일 하나도 표결을 통해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데, 이 작은 공동체 부락에는 자동차가 없다. 허락된 유일한 교통수단은 자전거뿐.

1978년 문을 연 대장간 'Christiania Smedie'에서 침대 프레임을 이용해 짐을 옮길 수 있는 카고 바이크를 만들어 자신의 약혼녀에게 선물한 대장쟁이의 아이디어가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의 시초가 되었다.

1984년 이 자전거의 시중 판매가 이루어진 이후 30년을 맞이한 올해,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덴마크의 오래된 자전거 문화에 한 획을 긋는 발명품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수출까지 하면서 덴마크의 심벌로도 유명해졌다.

현재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열두 가지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우체부가 모터바이크 대신 카고 바이크를 타고 우편 배달을 하고,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유모차만큼이나 흔한 육아 필수품으로 사용된다.

더욱이 아이들뿐 아니라 아이를 동반한 어른 한 명을 태워도 거뜬하며(자전거 운전자를 제외하고 100kg까지 적재 가능하다), 가판대로도 활용 가능한 수레가 달린 이벤트 바이크도 있어 자신만의 소규모 창업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카고 자전거가 갖는 매력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덴마크에서 카고 바이크를 비롯한 자전거가 가장 편리하고 긍정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덴마크는 가장 높은 지대가 해발 150미터에 불과할 만큼 국토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등 자전거를 타기에 쾌적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 환경 보호 정책의 하나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에 매기는 탄소 배출세를 자동차 구매 시에는 180퍼센트나 부과한다.

여기에 안전하게 정비된 자전거 도로(코펜하겐 시내에만 411km의 자전거 도로가 마련되어 있다)와 자전거를 위한 교통 시스템도 큰 몫을 차지한다. 따라서 덴마크인들에게 자전거는 '가장 빠르고 편리하면서 가장 경제적인 교통수단'인 것이다. 즉 자전거가 환경을 보호하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덴마크인의 정서와 이를 정책으로써 뒷받침하는 국가의 노력이 고루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쓴 정민혜는…

도쿄를 거쳐 파리에 정착한 지 5년. 온라인 빈티지 숍을 운영하며 틈나는 대로 유럽의 도시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체험한 그곳의 라이프스타일을 사진과 글로 전하고 있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남의 것을 막무가내로 탐하거나 지각없이 부러워하는 성정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 여행을 하면서 종종 시기와 질투를 금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 그 나라의 특징으로 이해하지만 어떤 부분은 이 땅에도 이식시킬 수 없을까 하며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유럽을 다니면서는 유독 두 가지가 부러웠다. 하나는 보행의 즐거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고성의 존재였다.

유럽에서 얻는 보행의 즐거움은 산이나 지방 혹은 외곽지역이 아니라 대도시에 있다는 것.

우리네와 대별되는 지점인데, 철저하게 보행자 위주로 조성된 대도시의 거리 그리고 걷는 멋과 맛을 한껏 돋우는 주변 경관은 수도 서울의 복잡하고 혼탁한 거리에 비해 확실히 부러움을 자아낸다.

고성만해도 그렇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고성과 퓌센의 노이쉬반스타인 성을 비롯해 돈키호테와 그의 애마 로시난테가 터벅터벅 함께 걸어갔을 듯한 시골길을 따라 방문하는 스페인의 고성들,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루아르 지방의 호화로운 고성들은 해당 도시에 고색창연하고 중후한 멋을 드리운다.

또 이들 고성은 실용적이기까지 해서 일부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로, 일부는 박물관 등으로 전용돼 관광객 유치에 단단히 한몫을 한다. 물론 고성들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민관의 노력 또한 각별하다.

◈ 걷는 즐거움, 보행자의 천국 = 서두를 길게 뗐지만 결국은 덴마크를 이야기하고자 함이었다.

으레 덴마크하면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과 인어공주 그리고 장난감 레고 등을 거의 반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덴마크는 보행자들의 천국이자 아름다운 고성들이 곳곳에 들어선, 고상하고 우아한 풍치가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특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한 마디로 '걷고 싶은 도시'로 압축해 표현할 수 있겠다. 보행자 편의를 위해 과감히 계단을 없앴으며, 발길에 치이는 설치물도 치워버렸다.

또 모든 건물은 시청의 종탑 보다 낮아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 건물 높이를 6층으로 제한했다. 도심을 걷는 이들에게 다정한 탑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결정'이었던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걷는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보행 인프라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다시 소개하겠지만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의 경우 폭 10미터 안팎의 길 양쪽에 명품점과 레스토랑 등 2000여 개의 작은 가게들이 입점한 중세풍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어, 거리에 살가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도자기 명품점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로열 코펜하겐, 꽃을 사기 위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꽃장식이 대단한 테에 아나슨 꽃가게, 10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빵을 구워내는 라인반하원 등의 명품점들과 함께 싸구려 할인마트나 기념품 코너도 공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은 가게들의 성공은 보행자 전용도로와 역사적 건물의 재생을 연동시키는 계획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걷고 싶은 도시 코펜하겐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다. 스트로이는 덴마크어로 '산책'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콩겐스 뉘토우 광장에서 시청 앞 보행자 광장까지 5개 보행자 전용도로를 통칭한다.

시민들은 누구나 주저 없이 '스트로이를 밟지 않고서는 코펜하겐을 다녀간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짱짱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1.4km에 이르는 스트로이를 시나브로 끝까지 걷게 되는데, 이유는 앞서 말한 그대로다.

◈ 중세로의 행복한 잠입 = 자, 이제 시간을 거슬러 중세로 잠입할 시간이다. 덴마크 여기저기에 산재한 고성을 찬찬히 뜯어보자는 것이다.

코펜하겐을 벗어나 기차로 45분 정도 가면 명미한 도시 헬레뢰드가 있다. 주변의 비옥한 농촌지역에서 경제적 뒷받침을 받는 번창한 시장도시이자 철도 교차점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프레데릭스보그 성(Frederiksborg Slot)이 있어 유명하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1602년부터 1630년까지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지은 붉은 벽돌로 된 독일 르네상스 형식의 이 성은 '덴마크의 베르사이유'로 일컬어진다. 200여 년 동안 7명의 국왕이 이 성에서 대관식을 올릴 정도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성이다.

1859년 화재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을 때 왕실에서 이를 재건할 경제적 여유가 없자, 맥주 재벌인 칼스버그 야콥센의 기부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덴마크의 유구한 역사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와 회화, 가구, 보물 등을 전시하는 역사박물관으로 기능한다. 성을 둘러싼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탐스럽게 꾸며진 정원은 소풍을 즐기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다.

로젠보그 궁전 (Rosenborg Slot)은 1617년 당시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의 뜻에 따라 세워진 네덜란드 양식의 별장으로 그의 건축물 중 가장 매력적으로 평가받는다. 크리스티안과 연인인 키아스텐 뭉크와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궁전 내에는 무도회장, 홀, 응접실 등이 있는데 웅장함보다는 왕이 언제든지 되돌아 올 것 같은 친밀감이 느껴진다. 궁전에는 크리스티안 4세와 5세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2개의 왕관이 있다.

전임 국왕의 왕관은 절대 군주제 전의 것으로 머리 부분이 열려있고 후임 왕의 왕관은 국내를 통일했다는 의미로 하나로 막혀 있는 점이 특이하다.

덴마크의 정원이라 불리는 핀 섬은 셀란 섬과 스토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 나라 제2의 섬이다.

낙농업이 발달했으며 특히 전원풍경이 아름답다. 섬의 중심지는 바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덴마크 제3의 도시 오덴세. 안데르센과 세계적인 작곡가 카룰 닐센의 고향으로 특히 유명하다. 섬 남쪽에는 이에스코우(Egeskov) 성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옛 성으로 1552년에 세워졌는데, 호수 위에 건립된 빨간 벽돌의 성벽과 탑은 주위의 넓은 정원과 어울려 덴마크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손꼽힐 정도다.

로코코 양식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아말리엔보그 궁전(Amalienborg Slot)은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공식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는 곳.

왕실의 거처라고는 하지만 곰털 모자를 쓴 위병이 서있지 않다면 궁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검박한 분위기다. 여왕이 궁전에 머무르고 있는 날에는 낮 12시쯤 왕실 근위병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

빨간색 상의를 입은 70명의 위병들이 로젠보그 궁전 숙사에서 출발, 시내를 지나 궁전 광장으로 입장한다. 만약 산책 중에 위병 행진을 만난다면 피하지 말고 악대의 음악에 맞춰 뒤를 따라가 보자. 순간 수백 년 전 과거로 불시착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북유럽 '행복찾기' 여행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은 핀 율, 아르네 야콥센, 한스 베그네르 등 덴마크 대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빠짐없이 소장했다. 세계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하는 덴마크 디자인의 과거부터 현재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다.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룸스 볼리후스(Illums Bolighus)에서 억지로 나왔다. 그대로 있다간 은행계좌가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았다. 생전 처음 '가방을 새로 하나 사서 몽땅 담아갈까?' '여기를 떠나면 다시 살 수 있을까?' 따위 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뛰었다. 매력적인 디자인 제품이 너무 많았다.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성전(聖殿)'이라는 코펜하겐 관광청 홈페이지의 설명대로였다.

디자인에 관심 있다면 코펜하겐에서 천국에 온 듯한 행복을 맛볼 듯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덴마크 디자인 제품의 원산지라고 훨씬 더 싸지는 않다. 한국보다 약간 더 싸달까. 하지만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에게 해주는 약 20%의 세금 환급을 포함하면 30% 정도 저렴한 가격이었다.

▨ 일룸스 볼리후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꼭 사야 하거나 사고 싶은 쇼핑 목록을 힘들게 작성했다. 그만큼 일룸스 볼리후스는 방대했다. 웬만한 백화점 수준. 간단한 인테리어 소품과 패션 상품부터 예쁜 접시 같은 주방용품, 욕실제품, 조명, 의자, 소파까지 없는 것 없이 구비했다. 코펜하겐에서 제일 번화한 쇼핑거리인 스트뢰엣(Strøget)에 로열 코펜하겐, 조지 젠슨, 일룸, H&M, 코스(COS), 레고 스토어 등과 함께 있다. 주소 Amagertorv 10, 웹사이트 www.illumsbolighus.dk

디자인 천국 코펜하겐
1,2 디자인 제품을 빠짐없이 갖춘 일룸스 볼리후스 매장 내부 전경과 조명 코너 3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 4 로열 코펜하겐 본사 5 고즈넉한 코펜하겐 골목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 일룸(Illum): 덴마크를 대표하는 백화점이다. 일룸스 볼리후스가 디자인 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곳은 패션·뷰티·생활 등 전반을 다룬다. 물론 디자인 제품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지하에는 식품관 대신 덴마크 수퍼마켓 이르마(Irma)가 입주해 있다. 리본을 머리에 두른 소녀의 얼굴 옆모습을 모티브로 한 로고와 패키지 디자인이 세련돼 선물하기 좋겠다. Østergade 52, www.illum.dk

▨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Designmuseum Danmark):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디자이너 한스 베그네르(Wegner)가 디자인한 '라운드 체어'는 1960년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이 이 의자에 앉아 대선 토론을 벌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베그네르를 비롯해 핀 율(Juhl), 아르네 야콥센(Jacobsen)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빠짐없이 소장했다. 입장료 어른 100DKK(약 1만6300원). Bredgade 68, www.designmuseum.dk

▨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설명이 필요 없는 덴마크 대표 브랜드. 1775년 왕실 후원으로 설립된 도자기 업체다. 스트뢰엣 거리에 벽돌로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본사다. 할인 행사가 늘 열리고 있다. Amagertorv 6, www.royalcopenhagen.dk

토르베할레르네 시장
1 토르베할레르네는 코펜하겐에서 제일 큰 시장. 고급 식료품 매장처럼 디자인이 빼어나다. 2 토르베할레르네 시장 안 과일 가게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 토르베할레르네(Torvehallerne): 시장(市場)도 이렇게 디자인이 좋다니. 토르베할레르네는 뇌레포트(Nørreport)역 광장 뒤 우범지대였던 공터에 2011년 들어선 코펜하겐 최대 규모 시장. 60여 가게가 유기농 채소와 과일, 해산물, 고급 식료품과 향신료를 판다. 덴마크 최고의 커피로 이름난 커피 컬렉티브(Coffee Collective)와 덴마크식 오픈샌드위치 스뫼레브뢰드(smørrebrød)를 파는 할레르네스(Hallernes), 정통 이탈리아식 피자를 굽는 고름스(Gorm’s) 등 음식을 파는 가게도 많아 구경도 하고 끼니도 해결할 수 있다. Frederiksborggade 21, www.torvehallernekbh.dk

▨ 파피뢰엔(Papirøen): 덴마크어로 ‘종이섬’이란 뜻. 과거 제지공장으로 쓰던 건물 안에 푸드 트럭들을 들여놓았다. 좁은 도로와 규제로 푸드 트럭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자 레스토랑 경영인 예스퍼 묄러가 나서 차린 일종의 푸드 코트이다. 30여 푸드 트럭이 멕시코 타고, 벨기에 감자튀김, 이탈리아 파스타, 터키식 부침개 괴즐레메, 한국 양념치킨 등 코펜하겐에서 맛보기 힘든 세계 각국 음식을 판다. Trangravsvej 14, Warehouse 7/8, copenhagenstree tfood.dk

여행수첩

북유럽 지도
1. 항공편: 직항은 없다. 핀에어(Finnair)가 가장 빠르고 편리하다. 북극을 넘어가는 핀에어는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10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 20분 출발,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오후 4시 10분 코펜하겐에 도착한다.

2. 시차: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3. 환율: 1덴마크크로네(DKK)=약 163원

4. 코펜하겐 카드: 환율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코펜하겐 물가는 비싸다. 코펜하겐 카드는 지하철·열차 등 대중교통은 물론 티볼리 공원, 대부분의 성(城)·박물관·미술관 등 74곳을 무료 이용 가능하다. 할인받을 수 있는 레스토랑과 쇼핑몰도 많다. 24시간 어른 339DKK, 10세 이상 아동 179DKK, 48시간 어른 469DKK, 10세 이상 아동 239DKK. 어른 1명이 10세 미만 아동 2명까지 무료로 데리고 다닐 수 있다.

5.정보: 코펜하겐관광청 홈페이지(visitcopenhagen.com)는 정확한 정보를 풍성하게 담았다. 아쉽게도 한글은 아직 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노르딕 요리' 주도하는코펜하겐 '노마' 레스토랑

'세계 50대 식당' 1위만 4회
발효 등 전통방식으로 조리… 메뉴도 제철 재료 따라 결정

"모든 요리의 중심은 맛… 오래 걸려 배송된 레몬보다 집앞 개미의 신맛이 더 나아"

코펜하겐(덴마크)=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코펜하겐(덴마크)=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적한 부둣가인 크리스티안하벤에는 과거 북해(北海)에서 잡아 소금에 절인 정어리며 말린 대구, 고래 기름·껍데기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던 낡고 오래된 벽돌 건물이 있다. 최첨단 미식(美食)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건물에 전 세계 미식가들이 맛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레스토랑 '노마'가 있다. 테이블 고작 11개에 불과한 작은 식당이지만 미식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하다. '세계 50대 식당'에서 2010~2012년과 2014년, 1위로 선정됐다. 오너 셰프(주방장 겸 주인) 르네 레드제피(Redzepi·38)는 2012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됐다.

레드제피를 만나러 코펜하겐에 갔을 때, 그는 부둣가에 있는 '발효연구실(Fermentation Lab)'에 있었다. 컨테이너를 여럿 이어 붙여 만든 2층 건물에서 그는 다양한 발효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레드제피가 열어 보인 흰색 버킷 안엔 노르스름한 빛깔의 반죽이 들어 있었다. 구수하고도 쿰쿰한 냄새가 우리 된장과 비슷했지만, 맛은 덜 짜고 더 달았다. 버킷 바깥엔 'Peaso(피소)'라고 적혔다. 레드제피는 "일본의 미소(miso) 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pea)을 이용해 장(醬)을 담갔다"고 했다. "누룩도 직접 배양합니다. 2년 전부터 매달 장을 담가 숙성시키며 어떻게 익어가는지 연구하는 중이죠. 된장·간장을 중심으로 한식도 공부하고 있어요. 지난해 서울 갔을 때 청국장을 먹어봤는데, 아주 좋았어요."

◇미식은 포식? 고정관념을 깨다

지난 100년간 현대(서양)요리에는 네 차례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20세기 초, 파리에서 일어났다.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Escoffier·1846~1935)가 프랑스 요리를 체계화했다. 그가 1903년 쓴 '요리 가이드'는 오늘날도 요리학교 교재로 사용된다.

저녁 영업 준비가 한창인 노마의 주방. 요리사들은 세계 최고의 식당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5시간을 기꺼이 일한다.
저녁 영업 준비가 한창인 노마의 주방. 요리사들은 세계 최고의 식당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5시간을 기꺼이 일한다.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두 번째 물결은 1970년대 밀려왔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미식=포식'으로 통했다. 풍요가 넘치면서 사람들은 맛있으면서 양이 적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요리를 요구했다. 이때 '누벨 퀴진'이 등장했다. 프랑스어로 '새로운 요리'란 뜻이다. 미셸 게라르, 알랭 상드랑 등 천재 요리사들이 겨자와 지방 함량 0%인 '소스 제로'를 활용한 '다이어트 요리'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단순히 양만 줄인 어설픈 요리를 누벨 퀴진으로 착각한 이류 요리사들이 대거 등장했고, 급격히 인기를 잃었다.

세 번째 파도는 스페인에서 시작됐다. 바르셀로나 인근 '엘 불리' 레스토랑이 진원지. 오너 셰프인 페란 아드리아는 요리에 덧입혀진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뜨리고 싶었다. 재료의 질감과 조직, 요리법을 철저하게 분석해 새로운 맛을 창조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라 불렀다.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한다'는 뜻이다. 알긴산이나 칼슘 용해액 같은 화학제품도 요리에 끌어들였다. 과일즙이나 꿀을 고체로 만들기도 하고, 고기의 맛 성분만을 뽑아내 거품으로 부풀리기도 했다. 아드리아의 시도는 세계 미식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엘 불리가 '세계 50대 식당'에서 2002년과 2006~2009년 1위에 올랐다.

◇"분자요리? 모든 요리는 과학"

일본 미소(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을 이용해 담근‘피소’된장.
일본 미소(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을 이용해 담근‘피소’된장.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그러나 과유불급. 사람들은 더 이상 '놀라움의 요리'에 놀라지 않았다. 음식 같지 않은 음식에 질려갈 즈음, 혜성처럼 나타난 식당이 노마다. 2010년 세계 50대 식당에서 엘 불리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노마의 음식은 엘불리만큼이나 기발했다. 하지만 분자요리처럼 과학에 기댄 인공 음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레드제피는 수렵이나 채집 등 인류가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활용한 재래 기법을 따른다. 발효나 훈제처럼 전통 보존·조리 방식도 부활시켰다.

레드제피는 "모든 요리는 과학적이다. 된장, 간장,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은 얼마나 과학적인가"라고 반문했다. "노마의 음식이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가 자연의 리듬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입니다. 엘 불리에서는 아스파라거스가 어디에서 났느냐는 따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일 년 사계절에 따라서 음식을 만듭니다. 그때그때 제철인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요리가 결정됩니다."

레드제피는 틈날 때마다 코펜하겐 주변 산과 들로 나가 각종 풀과 버섯을 채집한다. 전문 수렵꾼을 고용해 식재료를 공급받기도 한다. "모든 행위의 중심 목표는 '맛'입니다. 우리가 덴마크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에서 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건 맛이 덜해서입니다. 샐러드에 레몬 대신 개미를 사용했던 건, 지중해에서 비행기로 오랜 시간이 걸려 배송된 레몬보다 코펜하겐 인근 흙에서 잡은 개미에서 더 좋은 신맛이 났기 때문이죠. 비행기로 3일 걸려 날아온 냉동 고기와 30분 전 도축한 순록 고기, 어떤 게 더 맛있겠어요?"

◇레몬 대신 개미! 메뚜기로 담근 액젓

개미를 얹은 새우 요리.
개미를 얹은 새우 요리. /Michael Edwards
레드제피는 맞은편 선반에서 또 다른 흰색 버킷을 꺼내 열어 보였다. 액젓 비슷한 액체가 들어 있다. 살짝 찍어 맛을 보니, 액젓보다 짙고 구수한 맛이 소고기·돼지고기 등 고기로 담그는 육장(肉醬)을 떠올리게 했다. "메뚜기로 만든 가룸(garum)"이란다. "고대 로마에서는 가룸이라고 하는 고등어나 참치로 만든 액젓으로 요리했습니다. 가룸을 똑같이 되살리면 너무 비리고 짜서 현대인 입맛에 맞지 않지요. 가룸의 전통 기법을 사용하되 메뚜기를 재료로 써서 실험하는 겁니다."

이런 노마의 노력은 전 세계 요리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줬다. 북유럽 사람들조차 "북유럽엔 음식다운 음식이 없다"고 자조했지만, 노마가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얻으면서 자신들의 음식 문화와 전통을 재창조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는 '노르딕(북유럽) 요리'라는 이름으로 확산하고 있다. 발효 음식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음식 평론가 강지영씨는 "요즘 한국 발효 음식이 각광받는 건 노마를 통해 발효가 재인식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미식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으로 무시당하던 나라, 덴마크. 지금은 노마로 인해 미식가들이 일부러 찾는 여행지로 발돋움 중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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