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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덴마크

덴마크 코펜하겐 : 이야기가 있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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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여자들의 이름, 루이지애나 미술관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그 이름의 연원 자체가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다. 미술관을 짓고 이름을 붙인 크누트 W. 옌센과 옛날에 헤어진 연인 이름 같은 “루이지애나”는 아무런 인연이 없지만, 또한 기묘한 인연이기도 하다. 식품도매업자였던 옌센은 평소에 미술과 문학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코펜하겐 북쪽의 작은 마을 훔레백에 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외레순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그곳은 19세기 풍의 저택이 있는 사유지였는데, 그곳의 이름이 ‘루이지애나’였다.

1895년에 부근의 땅을 구입한 남자의 이름은 알렉산더 부룸. 그가 바로 저택을 지은 이였는데, 그가 이 땅의 이름을 ‘루이지애나’라 붙인 이유가 독특하다. 그는 평생 세 번 결혼했는데, 세 명의 부인이 모두 이름이 ‘루이즈’ 였기 때문.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붙여진 이름을 미술관의 이름으로 쓴 것에 대해서 말이 많았던가 보다. 옌센은 후에 “과거를 존중하기 위해서 미술관의 이름을 ‘루이지애나’라고 지었다. 그 이름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예술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이 된 건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건축과 자연과 미술의 가장 완벽한 공존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954년 미술관 터를 사들인 옌센은 젊은 건축가 위르겐 보와 빌렘 볼레르트에게 새 건물의 디자인을 맡겼는데, 그들은 100년 전에 지어진 원래의 건물을 그대로 남겨둔 채 여러 번에 걸쳐 증축하며 지형과 풍광에 어울리는 미술관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는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 같은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전시되어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헨리 무어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기에 이보다 나은 곳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특히 유명하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인어동상으로 남다

코펜하겐은 인어의 도시이다. 이 도시가 자랑하는 안데르센이 동화 [인어공주]를 쓰기 전부터 그랬다. 코펜하겐 옆 해협은 중세부터 ‘인어의 골짜기’라고 불렸고, 오스트리아 궁정가수인 다니엘 마이스너가 만든 1623년의 지도에는 코펜하겐이 세이렌의 거주지라 적혀 있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빠뜨려 죽이곤 했던 세이렌. 아무래도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쓰게 된 데에는, 한밤중에 희미하게 들려온 세이렌의 노랫소리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브뤼셀의 오줌싸게 소년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와 함께 “유럽의 3대 썰렁명소”의 하나로 언급되는 수모를 무릅쓰고 랑엘리니(Langelinie)의 바위 위에 꿋꿋하게 앉아 있는 80cm의 작은 인어 동상은 안데르센의 동화 속의 그 인어공주다.

1913년 칼스버그의 창립자 칼 야콥센(Carl Jacobsen)은 [인어공주]의 발레공연을 보고 조각가 에드바르 에릭센에게 인어공주의 동상을 주문한다. 공연의 프리마돈나였던 엘렌 브리스를 모델로 하고 싶어했으나, 반라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엘렌의 반대로 실패하고 그 대신 조각가의 아내 엘리네가 동상의 모델이 되었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어 동상은 만들어진 뒤에 또 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목이 베어졌다거나 팔이 절단되었다거나 조각상 전체가 폭파되었다는 엽기적인 이야기도 있는 반면, 하루아침에 핑크색 페인트로 덮어씌워 지는 등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적지 않다.

2010년 5월, 사상최초로 늘 앉아 있던 그 바위를 떠나 상해 엑스포로 옮겨져서 전시 중인데,그에 따른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현재 인어 동상이 놓여 있던 그 자리에는 대형 TV가 설치되어 상해 엑스포장의 동상을 인터넷으로 중계하고 있다고. TV와 중계영상은 한 중국예술가의 현대미술 작품인데, 반응은 좋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그보다 더 반응이 좋았던 것은 인어공주의 해골 설치.

덴마크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of Denmark)은 만우절날 인어 동상이 놓여 있는 자리에 상반신은 사람의 뼈 모형, 하반신은 황새치의 뼈 모형으로 만든 인어공주 골격을 2시간 정도 설치했는데, "6개월이나 인어공주 동상을 뺏기게 되니 대신할 것이 필요했다. 어쨌든 만우절이니까!"라는 이들의 장난에 사람들은 즐거워했다고.


[인어공주]는 전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동화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크론보르(kronborg)성에 살다

셰익스피어는 덴마크 왕자 햄릿을 전세계인의 왕자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의 대표작인 [햄릿]에 나오는 주인공 햄릿은 어느 나라의 왕자일까? 덴마크 왕자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햄릿]의 무대가 되는 성이 코펜하겐 근처에 있다는 것은 알기 쉽지 않다. 코펜하겐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 ‘헬싱괴르’는 크론보르 성 때문에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햄릿]의 극중에서는 엘시노어 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성’을 떼어낸 크론보르. 덴마크어로 ‘보르’는 ‘성’이라는 뜻이므로 같은 의미를 두 번 말한 셈이지만, 편의상 붙여서 말하곤 한다.

크론보르 성은 1574년 프레데릭 2세 시절에 착공하여 11년 뒤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1629년에 화재가 일어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며 파손과 보수를 계속하다가 1924년에 이르러서야 지금 우리가 보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한 수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방들은 잘 보존이 되어있는 셈. 대규모 연회장, 금박장식의 예배당, 각종 화려한 방, 지하감옥 등을 볼 수 있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북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시대의 성으로 평가받는 이곳은 [햄릿] 때문이 아니더라도 둘러볼 만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매년 6월에는 이곳에서 야외 ‘햄릿’공연이 열린다고 하지만 날짜를 맞춰가기는 쉽지 않을 터. 공연이 아니라 하더라도 코펜하겐에서 출발하는 ‘햄릿캐슬투어‘에는 참여할 수 있다. 시청 앞에 모여 크론보르 성을 비롯하여 프레드릭스보르 성, 왕족들의 여름별장, 국립박물관, 기사의 홀 등등을 둘러보는 투어는 반나절 정도 걸린다.

살아있는 무덤, 아시스텐스 묘지

코펜하겐의 이야기꾼으로는 안데르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도 있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정복자 펠레]의 원작자라고 하면 고개 끄덕여지려나?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정복자 펠레]의 원작소설을 써낸 이 작가는 1869년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안데르센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안데르센처럼 여러 사람들의 후원을 받으며 동화의 나라로 날아가는 대신 어릴 때부터 온갖 종류의 노동을 하면서 자전적인 작품을 다수 써냈다. [정복자 펠레] 4부작은 그를 서유럽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대표작. 이외에도 [파밀리엔 프랑크, Familien Frank], [사람의 딸 디테, Ditte Menneskebarn], [시인 모르텐Morten hin Røde], [잃어버린 세대, Den fortabte generation] 등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나, 국내에 번역된 책은 많지 않다.

그는 현재 뇌레브로 앞의 ‘아시스텐스 교회묘지‘에 묻혀있다. 이곳의 공원 같은 경관은, 이곳을 단지 무덤이 아니라 코펜하겐 주민들이 즐겨찾는 소풍의 장소로 만들었다. 락밴드 공연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심지어 벌거벗고 선탠하는 무리를 마주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무덤”인 셈이다. 안데르센과 키에르케고르의 동상이 있는 이 묘지를 지나며, 에곤 에르빈 키쉬는 이렇게 말했다.


정복자 펠레는 소외받는 계층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곳을 지나가며 묘석을 바라본다. 이렇게 큰 나라 덴마크에 이렇게 이름이 적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죽은 자들의 이름은 한센, 닐센, 안데르센, 마르센, 쇠렌센, 바게센, 난센, 미카엘리스, 야콥센, 옌센, 페터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런 덴마크 특유의 이름을 가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반향을 얻고 있는가.” 적어도 우리는, 이 무덤에 잠들어 있는 두 명의 안데르센을 알고 있다.

빙글빙글 개의 큰 눈, 코펜하겐 원형탑

원형탑은 과학적 연구를 위해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안데르센이 쓴 동화 [부싯돌]을 읽은 이들이라면 원형탑이 뭘까, 한번쯤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마녀는 군인에게 비밀을 말해준다. 첫 번째 방에는 찻잔만한 큰 눈을 가진 개가 있다고. 그 개는 커다란 상자 위에 앉아 있노라고. 마녀가 준 푸른 주사위 모양의 앞치마를 바닥에 펼쳐놓고 그 위에 개를 앉히면 상자를 열어볼 수 있노라고. 첫 번째 방 상자 안에는 동화가 잔뜩 들어 있고, 두 번째 방, 물레만큼 큰 눈을 가진 개가 깔고 앉은 상자 안에는 은화가 들어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방에는?

"혹시 금화를 갖고 싶다면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가게. 거기서도 원하는 만큼 가져올 수 있을 거야. 그 방의 돈 상자 위에 앉아 있는 개의 눈은 코펜하겐의 원형탑만큼이나 크지. 아주 무시무시한 놈이란 생각이 들 걸세!”

원형탑을 실제로 본다면, 아마도 그 개의 모습을 상상하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크리스티안 4세가 세운 천문대인 이 탑은 그가 “내가 만든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기세등등했다는 것이 이해가 갈 만큼 웅장한 자태를 갖고 있다.

1642년에 완공된 이 탑은 높이가 36m이며, 지름이 15m이다. 유럽의 건축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계단이 아닌 나선형의 통로를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길이는 약 210m가량 된다. 1716년에는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말을 타고 올라갔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매년 자전거 경주가 열리고 있다고. 평상시에는 코펜하겐을 한눈에 바라보기 위한 전망대로 각광받고 있다.

지구속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높이 올라볼 일, 구세주 교회(Vor Freslers Kirke).

괴짜 광물학자인 리덴브로크 교수는 고서점에서 구한 16세기 고문서를 해독하다가 이상한 쪽지가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것 발견했다. 조수로 일하는 악셀은 얼떨결에 암호를 해독한다.,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가 남긴 이 책 사이의 쪽지는 어떤 비밀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쥘 베른의 소설 [지구속 여행]은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다.

크리스티안스하운 섬에 있는 구세주교회는 악셀이 현기증을 치료하기 위해 리덴브로크 교수에게 끌려가는 곳이다. “내부의 나선계단을 올라가는 중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150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바깥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종탑의 테라스에 이르자 거기서 계단은 외부로 계속 이어졌다. 난간은 약해보였고 점점 좁아지는 계단은 하늘로 올라가는 듯 했다” 구세주 교회는 1696년 크리스티안 4세에 의해 지어진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천사가 조각된 정교한 바로크양식의 제단과 파이프오르간도 눈길을 끌지만, 뭐니뭐니해도 인상적인 것은 95m의 나선형 교회탑이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교회탑을 설계한 이는 다 지어지고 나서야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거꾸로 설계한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고.

탑의 바깥으로 빙 둘러 꼭대기의 그리스도 상 아래 금공까지 이어지는 150개의 계단은 확실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다. 그곳을 꾸준히 오르면 악셀처럼 현기증을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훌륭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교회탑 밖으로 난 계단은 아찔하지만 전망을 바라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책과 이야기가 일상인 북카페, 세탁소 카페[Laundromat cafe]

코펜하겐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코펜하겐에는 맛있는 커피를 내는 카페가 많다.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 나누기 좋아하는 성정 때문일 것이다. 그뿐이랴, 이야기는 수다 속에도 있고 책 속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코펜하겐에는 북카페들이 유독 발달해 있다. 북카페야말로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코펜하겐 사람들의 생활에 잘 들어맞는 공간인 것이다.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타자기의 이름을 딴 카페 ‘언더우드 잉크‘에는 타자기가 진열되어 있다. 그곳 벽에는 체스터튼이 쓴 글이 적혀있는데, 그에 따르면 “문학은 사치품이고 이야기는 생필품이다.”

이곳의 북카페는 많을뿐더러 세분화되어 있다.‘더 프렌치 북카페‘는 프랑스식을 고수한다. 메뉴도 아루아상 등 프랑스풍의 음식으로 마련되어 있다. 당연히, 구비된 책들도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이 중심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40%가 프랑스어를 말하는 사람들이고 현지인은 60% 정도라 하니, 코펜하겐 안에서 프랑스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공간이 아닐까. 프랑스 뿐이랴, 스페인도 있다. ’라유엘라‘는 스페인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이다. 이곳에 구비된 책들도 스페인과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 작가들의 작품들이 중심이다. 이런 특화된 북카페들만 돌아다녀도 작은 도시 안에서 세계문학여행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여행자들을 위한 북카페도 있다. ‘세탁소 카페‘는 어떨까? 여행 도중 쌓인 빨래들을 우아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네 개의 환경친화적 세탁기와 두 개의 건조기를 갖춘 세탁소는 북카페 안에 자리잡고 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아늑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4천여 권의 장서 중 한 권을 골라 읽을 수 있는 카페. 지겨우면 젊은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관람할 수 있는 카페. 여행의 숙제를 해결하면서도 그 도시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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