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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강물에 비친 베키오 다리의 모습을 상하 반전한 사진.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가장 유명한 다리다.

비단처럼 넘실대는 구릉 위 사이프러스나무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이탈리아 토스카나, 그 중심에는 피렌체(Firenze)가 있다. 골목마다 달콤한 향기가 새어 나오는 이 도시의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꽃피는 마을이라는 뜻의 단어 '플로렌티아(Florentia)'에서 기원했다. 

중세 르네상스의 부흥을 주도한 도시답게,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예술 무대다. 피렌체 권력의 상징인 팔라초 베키오,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가득한 시뇨리아 광장, 메디치가의 궁전은 물론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라파엘 같은 천재 예술가들 작품의 향연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대성당이다.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이란 뜻을 지닌 이 위대한 건축물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성당이자, 피렌체의 거대한 심장이다. 피렌체 두오모 혹은 피렌체 대성당으로도 불리는 이 건축물은 1296년 아르놀포 캄비오(Arnolfo Cambio)에 의해 착공됐고, 1436년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의 돔을 꼭대기에 얹으며 비로소 완성됐다. 

피렌체 대성당은 고딕 양식과 피렌체 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장밋빛, 상앗빛, 초록빛의 오묘한 패턴이 새겨진 대리석으로 꾸며진 외관은 그 자체로도 완벽한 예술 작품이다. 궁극의 화려함과 섬세함을 지닌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내부는 절제미가 돋보인다. 천장을 가득 메운 바사리의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는 성스러움을 더한다. 

464개의 좁은 계단을 오르면 높이 106m, 지름 45.5m에 이르는 거대한 돔, 큐폴라(Cupola) 정상에 도달한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속, 헤어졌던 연인 준세이와 아오이가 운명적인 재회를 한 바로 그 장소다. 붉은 지붕이 만발한 도시 위로 푸르고 시린 바람이 나부낀다. 사람들은 우두커니 서서 수채화처럼 번져가는 피렌체의 풍경을 아련하게 바라본다. 아마도 영화 속의 두 연인처럼, 열정적이었던 과거와 냉정해야만 하는 현재 사이에 묻어둔 소중한 추억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고 있는 것이겠지.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Arno)강 위에는 아름다운 다리들이 세워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345년에 지어진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다. 베키오는 이탈리아어로 '오래된'이라는 뜻을 지녔는데, 이름 그대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피렌체의 모든 다리를 폭파했지만 베키오 다리만은 남겨두었기 때문. 

베키오 다리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피렌체 출신인 시인 단테가 베아트리체와 처음 조우한 운명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생전 딱 두 번 만났고, 끝까지 맺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단테는 평생 베아트리체를 가슴속에 새겼다. 그래서일까, 필연적인 사랑과 꿈같은 낭만을 꿈꾸는 연인들은 모두, 이 오래된 다리 위를 찾는다. 아득히 흐르는 강물 위로 영원한 사랑에 대한 맹세를 띄워 보내며. 

피렌체 동남쪽에 자리한 미켈란젤로 언덕은 낭만의 도시, 피렌체의 또 다른 성지다. 아름다운 시내 전경을 파노라마로 담을 수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석양 지는 피렌체는 더욱더 붉게 적셔지고, 아르노강은 황금 물결이 되어 잔잔하게 흐른다. 

어느새 어둠이 자욱해진 밤하늘에는 태양보다 뜨거운 달이 두둥실 떠오르고, 그 아래는 별보다 빛나는 사랑들로 채워진다. 냉정은 가고 열정만 남은 피렌체의 밤이다.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 이탈리아 토스카나 핫스폿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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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우)몬탈치노 카스텔 지오콘도 와이너리.

바야흐로 발견하는 여행의 시대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트렌드라는 말씀. 호기심 넘치는 요즘 여행자들은 알만한 동네를 기점으로 각기 다른 개성으로 무장한 주변 소도시까지 두루두루 살펴본다. 이런 여행에 안성맞춤인 데스티네이션이 바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이탈리아 문화예술의 수도 피렌체를 중심으로 와이너리 투어(몬탈치노), 중세로 떠나는 시간여행(시에나), 귀가 즐거운 음악 여행(라야티코)까지 우리가 상상했던 이탈리아의 모든 것을 토스카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 문화예술의 중심-피렌체 = 사실 피렌체라는 도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1주일도 모자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사책 속의 전설적 인물들이 전부 이 고장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치를 꽃피웠고 그 결과 인류 역사상 문화·예술·사상적으로 가장 융성했던 시절 르네상스가 만들어졌다. 피렌체 여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피렌체 역사 지구를 중심으로 한다. 흔히 두오모 대성당이라고 부르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가 있는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베키오 다리와 르네상스를 후원한 메디치 가문이 살았던 베키오 궁전 그리고 메디치 가문이 소유했던 예술작품이 모여 있는 우피치 미술관 등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전망 포인트로는 미켈란젤로 광장, 조토의 종탑, 베키오 궁전 타워를 추천한다. 피렌체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도 있다. 피오렌티나라고 불리는 티본스테이크로 드라이에이징한 소고기를 맛깔나게 구워낸다. 구시가지 쿠치나 토르시코다가 미슐랭가이드에도 소개된 맛집이다. 

 700년 된 와이너리 투어-몬탈치노 = 이탈리아는 자타공인 와인 종주국이다.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한다고 보면 맞는다. 상업적으로 유통을 하지 않을 뿐이지 제각각 개성 넘치는 와인을 만들어 먹는다. 시중에 판매되는 와인 중 가장 좋은 것은 'D.O.C.G.' 등급. 이탈리아에서는 42개만이 D.O.C.G. 등급을 받았는데, 피에몬테 11개, 토스카나가 7개로 그 뒤를 잇는다.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는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 가문의 카스텔 지오콘도다. 프레스코발디 가문은 1308년부터 무려 700년 동안 토스카나 지역에 살면서 와인을 만들었다. 단골 또한 남다르다.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이 프레스코발디의 와인을 즐겨 마셨고 14세기부터 영국 왕실과 유럽 귀족에게 와인을 공급했다. 카스텔 지오콘도 와이너리의 규모는 무려 1000㏊, 그러니까 서울의 중구만 한 땅이 전부 포도밭이다. 산지오베제 품종을 주로 키운다. 와이너리 안에는 숙박시설도 마련돼 있고 고즈넉한 옛 건물에서 와인 테이스팅도 진행한다. 

 중세로 시간여행-시에나 =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에나는 이탈리아 중부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다. 7㎞의 성벽에 둘러싸인 시에나 역사 지구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이탈리아 고딕양식을 대표하는 시에나 대성당, 캄포 광장, 알프스 북쪽의 고딕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산타마리아 대성당, 만자탑(塔)이 있는 시청과 고딕·르네상스·바로크 양식이 고루 섞인 옛 은행 건물 등 도시 전체가 중세 때 박제된 듯하다. 1000년도 넘은 중세 도시의 골목은 초행자에겐 미로와 같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보물을 찾듯 골목 투어에 나서기를 권한다. 모든 길은 만자탑이 있는 캄포 광장으로 통한다. 유럽의 3대 광장으로 꼽히는 캄포광장은 유럽에서 본 여느 광장과는 조금 다르다. 하늘에서 광장을 내려다본 모습이 영락없는 조개껍데기 같다. 광장은 평평한 것이 아니라 오목하다. 회색 벽돌로 광장을 모두 9등분 했는데, 각각 구역은 중세시대 이 지역을 통치했던 9개 의회를 상징한다. 광장 주변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보티첼리의 고향-라야티코 = 라야티코는 막 떠오르는 명소다. 피사 지방의 작은 마을 라야티코의 인구는 고작 1300명. 하지만 라야티코를 찾아오는 방문객은 한해 2만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약 10배에 달하는 관광객을 홀린 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공연장 '침묵의 극장'이다. 

2006년 문을 연 침묵의 극장은 이곳 출신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단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극장은 마을 중심에서 슬쩍 빗겨난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침묵의 극장이라는 심오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1년에 딱 한 번만 공연이 열리는 때문이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자신의 고향이 가장 아름다운 매년 7월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공연을 진행한다. 청중 중 80%가 외국인 관광객이다. 



"피렌체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히 사랑을 맹세하는 곳. 내 서른 번째 생일날 나와 함께 올라가주겠니?"

다들 눈치 채셨나요?

그렇습니다. 영화와 책으로 유명한 < 냉정과 열정사이 > 에 나오는 말입니다.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도서관에 앉아 수업도 땡땡이치면서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읽어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 ⓒ Get About 트래블웹진

사실 저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피렌체를 다녀왔거든요. 하지만 당시 피렌체에서는 커다란 감흥이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전날 베네치아에서 5시간을 떨며 기다린 끝에(아시죠? 유럽의 툭하면 터지는 교통 파업) 겨우 수백 명에 틈을 뚫고 올라 탄 기차에서 내려 힘들게 찾은 호텔에 갔지만 난방이 전혀 안 되어 추웠고 직원은 끝내 이불을 가져다주지 않았기에 밤새 오들오들 떨었어요. 게다가 샤워할 때의 물이 미지근해서 몸살기운까지 겹쳐 이미 너무 피곤했거든요.

어쨌든 당시에도 제 친구는 두오모만은 언젠과 연인과 함께 와서 오르겠다는 선포를 했고 저 역시 이미 파리 에펠탑에서 나름 기분이 상한 뒤여서 '뭐 그럼 나도 담에 연인과 함께'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지요. 그러고 10년도 넘는 세월이 흐를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겠지요.

게다가 당시에 친구와 저의 피렌체에서의 가장 큰 미션은 우피치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이었거든요. 이번에도 '물론' 연인 따위는 제 곁에 없었지만…. 만약 이번에도 못 올라간다면 대체 언제 다시 이곳에 올라올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으므로 타비오(Tabio) 여정에서 피렌체란 이름을 발견한 순간 반드시 두오모에 오르자고 결심했답니다.





◇ ⓒ Get About 트래블웹진

그래서 눈 뜨자마자 밥 먹고 달려간 곳도 바로 두오모였습니다. 이미 이 유명한 성당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많더군요.

다행이도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랬는지 쿠폴라에 오르는 줄은 그리 길지 않았어요. 표를 끊고 올라가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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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다보면 내가 뭐하는 짓인가 생각하게 된다기에 꽤 커다란 각오를 하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만….

올라가는 길에 조각상들과 하부의 '마지막 심판'으로 유명한 장대한 돔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고, 한적한 덕분에 마음대로 멈추고 싶을 땐 멈춰 숨을 고르며 올라갈 수 있는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우와~~~!!!"

도착한 쿠폴라에서는 저도 모르게 저렇게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야말로 반짝이는 아침의 햇살이 드리워진 피렌체가 제 발 밑으로 펼쳐졌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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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멀리 보이는 낮은 산들의 모습도 붉은 지붕들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이 위에 올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면 지키지 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한동안 넋을 놓고 벤치에 앉아 풍경을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하더군요.

이곳이 사람들로 더 미어터지기 전에 얼른 둘러보자 생각하고 연신 셔터를 누르며 한 바퀴 돌았습니다. 물론 그 사이 수많은 연인들의 사진을 찍어줘야 했던 솔로의 설움은….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진 뒤 계속 꾸역꾸역 올라오는 사람들의 힘든 표정을 보며 저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두오모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 오픈 시간 -

성당 (오전 10시 ~ 오후 5시 / 토요일은 오후 4시 45분까지)

쿠폴라 (오전 8시 30분 ~ 오후 7시 / 토요일은 오후 5시 40분까지)

- 휴 일 -

성당 (일요일, 부활절, 성탄절, 1월1일)

쿠폴라 (6/24, 8/15, 9/8, 11/1, 12/26에 추가로 문 닫음)

- 요 금 -

성당은 무료, 지하 3유로, 쿠폴라 8유로

(아침 일찍 서둘러서 가면 여유롭게 쿠폴라에 오르고 둘러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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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간 친구들과 젤라토를 하나씩 입에 물고 마구 깔깔 까르르 웃으며 피렌체 거리를 쏘다녔지요. 예쁜 물건들이 가득해 우리를 유혹하는 숍들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 광장과 가죽시장 거리를 지나 이름도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의 원본이 있다는 아카데미아 미술관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리고 다비드 상과의 감동적인 만남! 사진 찍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해서 그 순간을 포착해올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 근사한 돌로 만들어진 청년과의 만남에서 오는 감동은 저렴하지만은 않은 입장료를 내며 느낀 정체를 알 수 없던 슬픔을 즉시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

역시 다비드 군을 가장 아름답게 잘 관찰할 수 있는 스폿에서 멍 때리며 세기를 초월한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해주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유유히 흐르는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우아한 베키오다리를 건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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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값비싼 보석과 미술품을 파는 상점들로 가득하지만 처음에 이 다리가 만들어진 중세에는 푸줏간들이 들어차 있었다고 하지요.

영화 < 향수 > 로 더 유명세를 타게 됐답니다. 하루를 홀딱 투자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감상을 하고 나왔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명작으로 가득한 우피치 미술관을 지나는데 엄청 가고파졌어요.

걷다 보니 뭔지 모르게 근사하고 현대적인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레스토랑/카페 모요Moyo를 발견하고는 여기다 했습니다.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 기다리면서 와이파이를 즐겨주시고…. 틈틈이 그곳을 드나드는 근사한 양복쟁이 회사원 아저씨들과 잠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려고 이곳에 들른 기럭지 길고 스타일리시한 피렌체 오라버니들을 감상.

중후한 매력과 상큼한 매력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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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들도 깔끔하고 맛있었어요. 저는 카프리제를 먹었는데 역시 본토의 맛은 다르더군요.

잊을 수 없는 모짜렐라 치즈의 쫄깃하고 고소함! 함께 마셨던 이탈리아의 생맥주도 어찌나 시원하게 꿀꺽꿀꺽 잘 넘어 가던지요! 점심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니 다시 타비오(Tabio) 일행을 만나 다음 도시인 로마로 이동할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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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인 산타크로체 성당 앞으로 가서 얼른 성당 안에 들어가 이 도시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 한 조각을 떨어뜨리고 밖으로 나와 일행과 함께 이동, 버스에 오릅니다.

제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면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요?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 냉정과 열정사이 > 에 나온 대사를 떠올리며 피렌체에게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약속은 미래야. 추억은 과거. 추억과 약속은 전혀 다르겠지…. 미래는 그 모습이 보이질 않아 우리를 늘 초조하게 해. 그렇지만 초초해하면 안 돼.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과거와는 달리 반드시 찾아오는 거니까."/


독일인의 카페에서 미래주의자의 혁명을 : 레푸블리카 광장

피렌체는 언제나 '그냥'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다. 현대의 마천루에 지쳤지만 야생의 삶과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어떤 종류의 인간들에게 이 영원한 르네상스의 도시는 거의 유일한 해답이었다. 이들은 피렌체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사랑했고, 거기에서 고대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찾았다. 때문에 이탈리아인들이 현대화를 위해 망치를 들 때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막아 나서기도 했다.


현재의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lica)은 19세기에는 오래된 시장 거리가 남아 있던 동네였다. 그러나 피렌체가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면서 현대화에 들어갔고, 외국 거주민들의 반대에도 옛 건물들은 헐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광장 주변의 고풍스러운 카페들은 여전히 그 시대의 국제적인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가리발디 장군의 '붉은 셔츠'의 이름을 딴 '기우베 로세(Giubbe Rosse)'는 20세기 초반 독일인 형제에 의해 열린 카페다. 피렌체의 독일인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가, 곧 이탈리아 미래주의자의 살롱이 되었다.

전망 좋은 방: 베르톨리니 펜션에서 시뇨리아 광장까지

"이탈리아에는 친절함을 바라고 오는 게 아니다. 인생을 바라고 오는 것이다." 1차 세계 대전 직전, 유럽의 교양인들에게 피렌체는 절대적인 여행지였다.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했고, 죽으려면 거기서 죽어야 했다. 이 시대의 분위기는 E. M. 포스터의 소설 [전망 좋은 방 - A Room with a view, 1908년]에 가장 잘 드러난다. 영국 처녀 루시는 부유한 친척과 함께 피렌체로 여행을 온다. 아르노 강 옆의 베르톨리니 펜션에 묵은 그녀는 '전망 좋은 방'을 얻기 위한 실랑이 속에 에머슨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루시와 에머슨이 거닐던 피렌체는 아직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산티시마 광장의 페르디난드 상, 산타 크로체의 단테 기념비, 그리고 운명적인 기절의 장면이 연출되는 시뇨리아 광장. 베르톨리니 펜션은 문을 닫았지만, 제임스 아이보리의 영화판 [전망 좋은 방]의 촬영장이었던 호텔 데그리 오라피(Hotel Degli Orafi)가 그 대체물이 될 만하다. 루시가 보았던 전망(View) 역시 여전히 그 도시에 있다. 오렌지 빛 퍼즐 같은 지붕들, 아르노 강과 다리, 성벽 너머의 언덕과 사이프러스 나무들.


[전망 좋은 방]의 그 '전망'은 아직도 그대로이다.

무솔리니와 차 한잔: 카페 도니

영국 부인들은 독한 유머를 즐겨 스코르피오나(전갈)라는 악명을 얻었다.


피렌체를 특히 사랑한 외국인들은 영국과 미국 출신들로, 19세기 후반부터 커다란 군락을 이루었다. 1930~40년대에는 '스코르피오니'라고 불리는 영국 부인들의 상류사회가 형성되었는데, 그 모습은 영화 [무솔리니와 차 한 잔]에 잘 드러난다. 이들은 카페 도니(Gran Caffé Doney)나 우피치 미술관에서 차를 마시며 그들만의 호사를 누렸다. 애초에 이 부인들은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대해 관대한 입장이었지만, 2차 대전은 그 모든 걸 뒤엎었다. 무솔리니가 아비시니아(현재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을 때 영국은 반대 성명을 냈고, 이에 파시스트 병사들이 '도니'에 난입해 행패를 부렸다. (이 침공으로 이해 이탈리아가 막강한 커피 국가가 되었으니, 커피와 홍차의 전쟁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전쟁이 본격화되자 영국 부인들은 성곽 도시인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에 감금된다.


토르나부오니 가(Via de' Tornabuoni)에 있던 '도니'의 가장 유명한 손님은 바이올렛 트레푸시스(Violet Trefusis).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에 등장하기도 하는 레즈비언 작가인데, 피렌체에는 미국과 영국의 청교도적 억압에서 탈출한 동성애자들의 커뮤니티가 오래도록 이어져오고 있다고 한다.

히틀러도 차마 부수지 못한 다리, 폰테 베키오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는 이름 그대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교각이 있었고,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된 것은 대홍수 뒤에 새로 건조된 1345년. 무심코 길을 걷다보면 자신이 강을 건넌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양쪽에 다층의 상점 건물로 웅성거리는 수상한 다리. 중세의 피렌체에는 이처럼 건물로 둘러싸인 다리가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베키오가 유일하다.


2차 대전 동안 피렌체를 잠시 지배했던 독일군은 연합군의 북침으로 인해 도시를 버리고 도망가야만 했다. 잠시라도 적의 진군을 막기 위해 다리를 폭파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마지막 순간, 히틀러는 폰테 베키오만은 남겨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수기엔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리 남쪽의 아름다운 건물들은 독일군이 설치한 지뢰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히틀러는 폰테 베키오만은 남겨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진흙의 천사들: 아르노강과 피렌체 국립도서관

1966년의 대홍수는 피렌체 국립도서관 소장품들을 진흙 구덩이에 빠뜨렸다.


아르노가 없는 피렌체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아름다운 강의 주변에는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이 반짝인다. 피렌체 시민들은 14세기부터 아르노의 상류와 하류를 막아 강의 유속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갈수기와 홍수, 양쪽을 대비한 것이리라. 그러나 1966년의 대홍수 때에는 모든 것이 속수무책이었다. 살아 있는 르네상스의 박물관인 이 도시의 대부분이 수몰되었고, 온갖 예술품들이 흙탕물과 진흙 속에서 썩어갔다. 홍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강변에 붙어 있던 피렌체 국립도서관(Biblioteca Nazionale Centrale Firenze)이었다. 완전히 격리되어버린 이곳은 소장품의 1/3에 해당하는 13만 점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가혹한 자연의 횡포에 맞서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이 모여들었다. '진흙의 천사들(Mud Angels)'이라 불리는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도시 곳곳의 수해를 복구하고, 물에 젖은 책과 그림과 조각들을 닦아내고 말리는 일에 나섰다. 때는 히피들의 시대라, 낮에는 책과 미술품을 말리고 밤에는 춤추고 노래하는 나날이었다고 한다.

500년 전의 공무원을 사랑한 여인: 시오노 나나미와 친구 마키아벨리

1960년대 일본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좌절에 빠진 한 여성이 지중해 세계에 매료된다. 도시 국가의 흥망과 르네상스의 문화는 그녀로 하여금 역사야말로 진정한 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1970년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을 펴내며 이탈리아인 의사와 결혼한 그녀, 시오노 나나미가 정착한 곳은 피렌체. 그녀는 500년 전 이 도시의 공무원이었던 한 남자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폰테 베키오의 남쪽, 마키아벨리가 살던 집의 바로 이웃에 거주하며 이 남자의 삶과 사상을 연구했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보면, 그것은 단순한 역사학자의 집념이라기보다는 페티시즘에 가까워 보인다. 마키아벨리는 과연 근무처였던 팔라초 베키오에는 어떤 방법으로 출근했을까? 동서남북의 문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해 직장에 들어갔으며, 퇴근 후에는 어디로 나가 무엇을 했을까? 그녀는 피렌체를 어슬렁거리며 이런 호기심들을 채워나갔다. 그로 인해 독자들 역시 기꺼이 마키아벨리의 친구가 되고 말았다.


우피치 미술관과 팔라초 베키오에 있는 마키아벨리의 인상은 사뭇 다르다.

한니발의 숨은 거처, 팔라초 카포니의 도서관

한니발의 등 뒤로 폰테 베키오가 보인다.


외국인들이 득시글거리는 동네이니, 누군가 신분을 숨기고 슬그머니 숨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 최악의 상상이라면, 아마도 희대의 살인마 한니발렉터? 영화 [한니발]에서 그는 닥터 펠(Dr Fell)이라는 이름으로 피렌체에 살고 있다. 팔라초 카포니(Palazzo Capponi)의 도서관이 그가 기거하며 연구에 몰두해 있는 곳이며, 도시 이곳저곳이 영화의 무대가 되었다. 박사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긴 형사 파치가 그를 염탐하는 곳은 레푸블리카 광장의 카페, 파치가 박사의 지문을 채취하기 위해 팔찌를 사는 곳은 폰테 베키오, 오페라가 상영되는 곳은 산타 크로체 옆의 파치 성당이다.

피렌체는 베네치아와 더불어 도시 국가의 전형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결코 넓지 않은 도시이기에 산책하며 하루를 보내면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맛을 더하려면 시간과 공간, 양쪽의 축을 파헤쳐야 한다. 시간의 축은 여행 전에 충분한 독서로 피렌체 안에 남아 있는 중세와 르네상스의 내면을 깊이 있게 파헤치는 것. 골목을 돌 때마다 단테, 미켈란젤로, 다빈치 등이 툭툭 튀어나온다. 공간의 축은 피렌체 바깥의 토스카나 지역으로 발을 넓히는 것.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곡창으로 와인, 햄, 과일 등 온갖 식재료가 넘치는 요리의 천국이다.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반 [투스카니의 하늘]로부터 힌트를 얻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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