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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퀴즈 하나. 이 나라, 거대하지만 섬세하다. 순례길에는 종교적인 경건함이 있다. 이비사 해변에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날것 그대로의 나를 찾아가는 진지함이 있다. 끈기, 열정? 차라리 말을 말자. 우리나라라면 건축 공기 5년도 많다고 난리 칠 일을 수백 년 공을 들여 자자손손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라. 이쯤 되면 대부분 독자들, '스페인'을 당연히 입에 올리실 게다. 

이 가을, 유럽 중에서도 이국적인 풍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인 탓에 요즘 유럽여행의 트렌드는 스페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서유럽 대신 스페인, 혹은 서유럽 다녀온 다음에는 스페인 여행 이런 식이다. 거기에는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가 큰 몫을 한다. 여행객의 즐거운 하루를 보장하는 데 밝은 햇살과 눈부신 하늘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부드러운 바람은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게 만든다. 스페인을 이루는 문화는 참 다양하다. 거칠게 질주하는 투우의 강렬함과 현란한 세고비아 기타 선율 위로 튀어나오는 플라멩코와 탱고의 에로틱한 춤사위는 강렬한 붉은색을 품고 죽은 영혼을 살려낸다. 들어는 봤나. 건축가 가우디. 21세기 들어 주가가 쭉쭉 올라간 스페인이 낳은 걸출한 인물이다. 자연과 건축의 공존이라는 건축 테마가 신선하다. 스페인 사람들 엉뚱한 데도 있는 모양이다. 풍자소설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고전문학인데도 웹툰만큼 구성이 기발하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세계는 또 어떻고. 

축구팬에게는 프리메라리가 상위권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이 최고일 터. 감각적인 CF를 선보이며 우리나라에도 매장을 늘려가고 있는 트렌디한 의류 브랜드 자라도 스페인이 본산이다. 노란색 샤프란이 들어간 해산물 쌀요리 파에야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으니 스페인 여행 적응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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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론다

그저 유럽이 입에 붙어서 언젠간 유럽여행을 찜해 두고 있다면 이 가을 '유럽 멜팅폿(용광로)' 스페인만 찍어도 딱이다. 남들 다 가는 서유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스페인이란 나라. 프랑스와 맞닿은 이 드넓은 땅덩이에는 태양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정열을 불태우며 살아간다. 굴곡 없이 오늘에 이르지 않아 이 나라의 오늘은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이슬람 문화가 숨쉬는 그라나다를 만나고, 아랍 최고 유적지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본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백색 도시 미하스와 아찔한 요새도시 론다는 그 옛날 어떻게 저런 장소에 집을 지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과 구열공원 등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숨결을 불어넣은 바르셀로나에서는 손수건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겠다. 길어야 100년살이 짧은 인생이 영원 속에 들어간 것 같을 테니. 스페인을 쭉 훑어 올라가다 보면 스페인의 정열과 인생철학에 메말랐던 내 감성에 촉촉촉 물기가 돌지도. 

그런데 가을에서 겨울로 달리는 시기, 스페인 여행을 추천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스페인이라는 이 나라, 유럽에서도 한때 잘나가던 큰 형님이다. 잘난 척 대마왕으로 뻐길 법도 하다. 지금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신세 한탄을 한다면 그야말로 하수. 그런데 한껏 여유로운 풍모로 현재를 즐기고 있다. 잘나가던 시절 맞춰둔 흰 구두 흰 양복 백고 모자를 갖춰 입고 젠틀한 그레이 신사의 매너를 보여주시니 어디에서나 환영 받는다. 환절기 거울 속 거칠어진 내 모습이 못생김으로 나와 "이렇게 또 세월이 가는구나" 초조해 하는 나의 등을 거친 인생 지나온 살집 좋은 손으로 투닥투닥 두드려줄 것만 같은 큰 형님. 아직 즐길 인생은 남아 있다고 네 인생이 어때서 그러느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싹둑 잘라줄 고민 해결사 큰 형님 최고. 태양처럼 강렬하게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고? 그렇다면 볼 것 없다. 늦가을, 무조건 스페인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곡선의 미’에 취한다. 육감적인 플라멩코 댄서의 휠 듯한 춤이 아니더라도 거리를 지나치면 문득 건축물에서 유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가우디의 작품들이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누구나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추억한다. 이 고집스러운 건축가 한 명이 도시의 지도를 바꿨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들은 한해 수백만 명에 달한다. 바르셀로나는 중독의 도시가 됐고, 그 지독한 중독의 중심에는 가우디가 있다.

 

구엘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바르셀로나 전경. 뒤로는 지중해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세계유산을 만든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바르셀로나에 남긴 건축물 중 다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그 중 여행자들을 품에 안고, 눈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구엘공원이다. 야자수를 닮은 돌기둥과 벤치에 새겨진 모자이크에는 모두 그의 열정이 서려 있다. 사람들은 벤치 위에 누워 따사롭고 호화로운 휴식을 즐기기도 한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빌린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들은 화려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이다. 공원의 건축물들은 파도를 치듯 언덕을 따라 흘러내린다. 정문 앞 경비실은 동화 속 풍경을 담았고 이 지역 카탈루냐 문양을 새겨 넣은 모자이크 된 뱀도 독특하다. 담 자락에서 발견하는 모자이크들은 깨진 타일들을 정교하게 조합한 형상으로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 1 구엘공원의 건축물들은 하나하나가 개성 넘친다. 정문앞 건물은 동화에서 소재를 얻었다.
  • 2 모자이크가 돋보이는 구엘공원의 도마뱀 상은 이방인들에게는 촬영 포인트로 인기가 높다.
  • 3 구엘공원의 개성 넘치는 모자이크.

 

 

공원 건축은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구엘(Eusebi Güell)과의 인연 때문에 시작됐다. 본래는 주거용 목적으로 지었지만 공사는 도중에 중단됐고 일반인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가우디의 저택과 광장을 거쳐 공원 뒤편 언덕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가우디가 꿈꾸며 그려낸 도시의 실루엣이 지중해에 비껴 어우러진다.


거리로 나서면 곳곳이 가우디의 작품이다. 1882년 짓기 시작한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가우디의 건축물 중 웅대한 규모에 있어서 첫손가락에 꼽힌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과 돔은 창공을 찌를 듯 솟아 있다. 가우디는 40여 년간의 생애를 대성당 건설에 바쳤고 사후에도 성당 지하에 안치됐다.

 

가우디의 작품 중 가장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산트 파우 병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우디의 거리로 불린다. 이방인들은 밤늦도록 노천바에 앉아 대성당을 바라보며 가우디에 취한다. 쌉쌀한 맥주나 스페인 전통주 ‘상그리아’ 한 잔이 감동 위에 곁들여진다. 이곳에서 언뜻 눈에 띄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식습관은 특이하다. 평일 점심때 2시부터 느긋하게 정찬을 즐기는가 하면 식사 후에는 시에스타 시간이 마련돼 있다. 저녁은 9시 넘어서 먹는다. 주말에는 아예 10시쯤 시작해 자정까지 저녁만찬을 즐기기도 한다. 거리의 예술작품만큼이나 생기 가득한 바와 카페들이 뒷골목에는 즐비하다.

 

 

건물에 깃든 고집스러운 곡선미

보행자의 거리인 람브라스에서 이어지는 길목에서도 가우디의 작품들은 이어진다. 걷다 보면 천재 건축가와 골목에서 조우하는 느낌이다. 구엘궁전은 실타래를 꼬아놓은 듯한 굽이치는 정문이 인상적이다. 카사 바트요나 아파트로 지었던 카사 밀라는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그 외형에 일단 눈이 현혹된다.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는 가우디의 신념을 담아 석회암 건물의 창과 벽에 바다와 파도의 굴곡을 실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곡선은 신의 선이다’고 한 가우디의 정신이 녹아 들었다.

 

  • 1 건물 정면을 석회암으로 치장한 카사 밀라.
  • 2 동굴 느낌을 연상시키는 카사 밀라의 창문.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작품만 구경하는 별도의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물론 도시의 건축미가 가우디 혼자만의 열정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몬타네르(Lluís Domènech i Montaner)가 지은 카탈라냐 음악당과 산 파우 병원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가우디에 감명받아 건축한 첨단 돔형의 아그바르 타워는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바르셀로나는 유럽대륙과 맞닿은 지리적 여건 덕에 스페인 제일의 상공업 도시로 성장했고 그 성장을 자양분 삼아 수준 높은 예술을 꽃피웠다. 피카소, 미로 등도 이 중독의 도시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그 이름의 꼭짓점에는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의 삶과 열정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가우디는 죽음을 앞두고 그의 전 재산을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건축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 1 바르셀로나에는 건축물 외에도 자유로운 예술의 혼이 숨쉰다.
  • 2 스페인의 플라멩코에는 강렬함과 곡선미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굳이 계획된 르네상스가 아니더라도 예술의 힘은 세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가우디가 만들어낸 우아한 건축미는 바르셀로나를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로 재탄생시켰다. 그 완성에는 지난한 세월과 건축에 대한 짙은 사랑이 배경이 됐다. 가우디를 부둥켜안은 바르셀로나가 그래서 더욱 설레고 끌린다.

 

가는 길
바르셀로나까지 직항편이 운행 중이나 프랑스를 경유해 열차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열차궤도가 달라 국경역인 포르트부에서 갈아타야 한다. 역은 산츠역과 프란사 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탈리아 등에서 이어지는 야간열차나 특급열차도 여럿 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는 5개의 메트로 노선이 도심 구석구석을 연결한다. 메트로를 이용하기에는 산츠역이 편리하다.

 

 

죽거나 죽여야 끝이 나는 쇼, 투우 - 또로스 델 라 마에스뜨란사

투우에 대한 의견은 오랫동안 분분해왔지만 어느 쪽이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열광적 에너지일 것이다. 소든 투우사든,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쇼. 헤밍웨이는 투우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에너지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떨리는 기록들을 남겼다. 수많은 동물보호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 뜨거운 에너지 아닐까.


투우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세비야는 론도와 함께 현대적 의미의 투우가 시작된 곳이다. 세비야에는 18세기에 지어져 아직도 투우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웅장한 투우경기장, 또로스 델 라 마에스뜨란사가 있다. 1761년에서 1881년 사이에 세워진 이 건물은 스페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로, 마드리드의 라벤타스 투우장과 쌍벽을 이루며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1만 4천명이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규모로, 투우사들과 투우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이곳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진정한 투우사가 아니라는 말이 퍼져있다.


이곳에서는 투우박물관도 볼만하다. 투우사들의 초상화, 광고포스터와 의상 등이 진열되어있는데, 그중에는 피카소의 그림도 있다. 투우경기는 지금도 볼 수 있는데, 가장 바쁘게 열리는 달은 4월, 페리아 데 아브릴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다.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4월이 지나면 5-6월과 9월에 3-4차례씩 열린다. 대부분은 일요일에 진행된다.




종교적 고난을 열정으로 재현하는 축제, 세마나 산타 _ 세비야 대성당

세마나 산타(Semana Santa)는 세비야에만 있는 고유한 축제는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언덕으로 오르는 순간부터 부활하기 전까지의 고난을 고스란히 되살려내는 ‘고난주간’은 종교적인 행사로, 부활절 전의 일요일부터 일주일간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하지만 세마나 산타가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세비야이다. 세비아의 세마나 산타는 열정이 넘친다. 이 시즌에 맞춰 세계에서 세비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성모자상, 십자가의 그리스도상, 성모마리아상과 종교화들이 행렬하는 이동식 차량인 파소만도 백개가 넘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거대한 규모의 퍼레이드가 연일 줄을 잇는다. 일년간 준비해온 젊은 남자들은 가마를 짊어진다. 길고 뾰족한 두건을 쓰고 눈만 내놓은 사람들, 성경 속의 인물처럼 차려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나 성모마리아를 찬양하는 노래, ‘사에따(Saeta)’를 부른다. 예수의 수난 연극이 상영되는가 하면 자신의 몸에 참회의 채찍질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화려한 장식을 한 마까레나의 성모와 뜨리아나의 에스페란사 성모상이 나오면 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세비야 대성당은 극도의 호화찬란함과 예술성으로 유명하다.

세비야 한가운데에는 스페인 최대의 성당이자 유럽의 3대 성당의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이 있다. 15세기에 이슬람을 정복한 기독교도들이 8세기에 건설된 모스크 위에 지은 성당이 바로 세비야 대성당이다. 고딕양식의 건물이지만 모스크였던 시절의 자취들을 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히랄다 탑이다.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미나레트에 28개의 종을 달고 고딕식 지붕을 얹은 것.


지극히 종교적인 축제인 세마나 산타가 끝난 직후, 4월말에 벌어지는 축제가 바로 4월의 축제, 페리아 데 아브릴(Feria de Abril)이다. 그날이 오면 화려한 춤과 온갖 퍼포먼스가 야단스레 펼쳐지며 삶의 기쁨을 찬양한다.




성모마리아에 대한 강렬한 애정, 마까레나 성당

세비야의 성모사랑은 유난하다.


히랄다 탑과 함께 세비야의 또 하나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마까레나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다. 세마나 산타 기간이 아닐 때 그 축제의 분위기를 알려면 이곳으로 가면 된다고 할 정도로, 이곳에는 평소에도 열광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유독 성모마리아에 대한 신앙이 독실한 스페인 내에서도 성모마리아 사랑이 돈독하기로 유명한 세비야 사람들의 경애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들의 사랑은 종교적 신앙과 옛날부터 내려오던 대지의 여신에 대한 민간신앙이 결합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까레나 성당의 분위기는 다른 성당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곳은 1949년에 성녀 에스뻬란사 마까레나 동정녀를 위해 지어졌다. 에스뻬란사 마까레나는 투우사의 수호성녀이기도 하다. 신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내부장식.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는 금은보화로 장식된 왕관과 호화찬란한 의상에 둘러싸여있는데, 매번 갈아입는 옷들이 다른 방에 진열되어있다. 성모마리아와 함께 수난의 예수상이 모셔져있는 이곳은 중요한 성지순례지이기도 하다.




정열과 변덕과 질투의 화신, 까르멘 _ 세비야대학

안달루시아의 여인들은 정열적이기로 유명한데, 그 이미지의 대부분은 ‘카르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광기에 가까운 정열을 가진 여인, 카르멘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지만 실제 그녀의 이야기를 아는 이는 뜻밖에 드물다.


1820년 세비야에서 있었던 이 요란한 연애담에서 카르멘이 돈 호세를 만나는 곳은 담배공장 앞이다. 그는 선량한 약혼자 미카엘라가 있는 군인 돈 호세를 유혹하여, 담배공장 내에서 일으킨 트러블로 연행당하던 자신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돈 호세는 그녀를 도망가게 하고 대신 자신이 두달동안 영창에서 지내게 된다. 그 사이에 미남 투우사 에스카밀로의 유혹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며 돈 호세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카르멘은 결국 그와 함께 밀매업자들이 사는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극의 시작은 카르멘의 변심. 돈 호세에게 싫증을 느낀 그녀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하고, 투우사 에스카밀로에게 향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눈물로 호소하는 약혼녀 미카엘라를 차마 뿌리치지 못한 돈 호세는 훗날을 기약하며 병든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그들이 다시 만난 곳은 죽음의 장소가 될 투우장이었다. 에스카밀로의 투우가 있던 날, 그의 팔짱을 끼고 나타난 카르멘을 돈 호세는 결국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그 역시, 마지막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격정과 질투와 사랑이 소용돌이치는 이야기다.


프랑스의 소설가 메리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조르주 비제가 작곡한 오페라 [카르멘]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왕립담배공장은 현재 세비야 대학의 일부분이 되어있다. 19세기, 유럽 전체 담배의 4분의3을 생산하던 이곳은 담배를 만드는 여공들만 무려 1만명에 달했다하니,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카르멘은 강렬하고 변덕스러운 사랑을 보여준다.

화려함과 한의 예술적 만남, 플라멩코 _ 로스 가요스

화려하고 정열적인 춤과 음악인 플라멩코의 다른 얼굴은 슬픔과 한이 서린 비극적인 정서이다. 소외와 박해를 거듭 당해온 집시의 역사가 이 춤에는 녹아있다. 플라멩코의 기원은 단순하지 않다. 플라멩코는 자신이 생겨난 곳, 안달루시아의 수많은 민속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세비야에서는 정기적으로 플라멩코 비엔날레가 열린다.


안달루시아의 정서와 집시들의 감각이 만나면서 만들어진 이 장르에는 수많은 피가 섞여있다. 인도에 기원을 두고 유럽을 떠돌다가 안달루시아에 들어온 집시들의 피.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땅, 안달루시아의 피.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다. 마에스뜨란사 공연장(Teatro de la Maestranza)에서 2년마다 플라멩코 예술 비엔날레가 열린다. 비엔날레 시즌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훌륭한 플라멩코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작은 바에서 대형 오페라극장까지 도시 전역의 다채로운 장소에서 플라멩코를 만날 수 있다.

산타크루스 거리를 중심으로 훌륭한 타블라오스, 즉 플라멩코 클럽들이 포진해 있는데 전문적인 공연은 식사와 함께 즐기는 '로스 가요스(Los Gallos)' 같은 타블라오스나 좀더 저렴하게 공연 위주로 진행되는 아우디토리오 알바레스(Auditorio Alvarez Quintero)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플라멩코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바일레 플라멩코(춤) 뿐 아니다. 칸테 플라멩코(노래)와 토케 플라멩코(기타)를 포함한다. 그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것은 의외로 칸테 플라멩코. 그러므로 화려한 춤보다 심금을 울리는 노래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 칸테와 바일레, 토케를 맡은 예술가들을 각각 칸타오르, 바일라오르, 토카오르라 부른다.




바람둥이 돈후안은 어디에서 밀회를 했을까? 호스텔 델 로렐

사랑이 넘치는 바람둥이는 단순한 악인으로 취급하기에는 매력이 너무 많다.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돈 후안이 계속해서 문학작품들에 호명되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1630년 작품인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에 처음 그 이름을 드러내기 전에도, 돈 후안의 이름은 민간에 떠돌았다.

사실 그가 좇는 것은 ‘사랑’은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정복. 직업과 외모 가리지 않고 수많은 여자들을 유혹했다 버린 그는 결국 지옥으로 떨어진다. 수많은 작품에 나온 만큼, 그의 성격도 작품마다 천변만화한다. 몰리에르의 [돈 후안],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바이런의 [돈 주앙], 슈트라우스의 [돈 후앙] 등 그의 이름을 제목에 걸고 있는 작품들 외에도, 호프만, 메리메, 키르케고르 등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존 조반니의 하인 레포렐로의 입을 빌어 그를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 주인님이 '작업'한 미인들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 230명,프랑스 100명,터키에서 91명이고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입니다. 이 중에는 시골처녀,하녀,창부,백작부인,공작부인 등 지위 계급 스타일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부류의 여인들이 있지요."


이쯤에서 궁금한 것. 그는 자신이 유혹한 여자들과 어디에 갔을까? 민간의 이야기로 떠도는 인물이니 실제 장소가 있을법하지 않지만 현재 세비야에 가면, 있다. '호스텔 델 로렐'은 산타크루즈 거리에 있는 작은 호텔로, 돈 후안이 귀부인을 유혹했던 무대로 알려지면서 1년간의 예약이 꽉 차있을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세기의 극작가인 호세 소릴로가 돈 후안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무대로 삼았던 이 호텔이 결국 돈 후안의 밀회처로 소문나게 된 것이다.





돈 후안은 바람둥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신대륙 발견의 열정-알카사르

페르난데스의 [항해자들의 성처녀]는 아메리카 발견을 거의 최초로 묘사했다.


세비야인의 열정은 인생을 즐기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신세계를 향한 호기심을 참지 않았고, 그 산물을 누리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15~16세기, 대항해시대의 무역항이자 아메리카 여행지의 출발점. 세비야 출신이 아닌 콜럼버스의 무덤과 기념탑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세비야의 본격적인 발전은 아메리카 발견 이후에 왔다. 바로 이곳에서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를 향해 떠났고, 이후 식민지의 모든 생산물들은 세비야로 집중되었다. 이곳은 카스티야 왕국의 유일한 독점무역항 지위를 보장받았다. 그러한 번영은 16세기 초 카디스항이 개항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 식민지 개척의 달콤한 열매는 세비야를 살찌웠다. 세비야 대성당의 제단 정면에 있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 1.5톤으로 만든 성모마리아의 품에 안긴 예수상은 이 모험이 가져온 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비야에서 모험을 시작한 이는 콜럼부스 외에 마젤란이 있다. 그 또한 에스파냐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세계일주를 떠났다. 그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탐험대가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에 도착하여 향료를 손에 넣고 돌아오면서 스페인의 식민지는 급격히 넓어졌다.


그러한 탐험가들이 항해를 위한 자금을 원조받기 위해 스페인 국왕을 알현하던 곳이 바로 알카사르였다. 알카사르에는 식민지 사업을 총괄하던 '카사 데 콘트라타시온', 즉 무역관의 교회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당시 통치자들이 외교적인 만남을 자주 하던 곳이라, 식민지 개척에 관한 중요한 회합과 결정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아메리카 발견을 거의 최초로 묘사한 작품인 알레 호 페르난데스의 [항해자들의 성처녀(The Virgin of the Navigators)]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구엘 공원·카사 밀라…
자연을 사랑했던 천재 건축가가 남긴 걸작들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는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스페인 광장의 돈키호테 조각상을 찾았을 때 감격에 겨워했다.

연극 무대에서 돈키호테를 연기했던 그에게 스페인은 남다른 곳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스페인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가우디 때문이다. 

그의 건축 작품을 보기 위한 것만으로도 스페인을 찾을 충분조건이 된다.   

구엘 공원
구엘 공원
스페인을 대표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독특한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는 스페인 여행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중 대표작은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성 가족 성당)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죽기 직전까지 43년간 혼신을 바쳐 몰두했던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10년은 작업실을 아예 현장 사무실로 옮겨 인부들과 숙식을 함께 했다.

내부에 들어서면 종교 건축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누군가는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닌 천사들을 위한 공간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존의 성당과는 확연히 다른 독창적이고도 독특한 분위기가 풍기기 때문이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지만, 그의 제자들이 이어서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고 여전히 이곳은 공사 중이다. 공사는 후원자들의 기부금과 입장료 수익의 일부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200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면서 ‘미완성의 작품 중 유일하게 선정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이 외에도 구엘 공원(Park Guell),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카사 밀라(Casa Mila) 등이 가우디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가우디는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친구들과 뛰어놀기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건축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자연을 스승으로 표방하며 둥근 곡선의 미와 섬세한 표현에 중점을 둔 것이다.

가우디의 대표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의 대표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에도 그의 자연친화적인 성향이 반영되었다. 비가 오면 건물에서 비를 모아 기둥을 타고 저수장으로 물이 모이도록 해 사용할 수 있게 했고, 일부는 정문 쪽에 있는 분수대로 흐르도록 설계되었다. 물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의 스페인 상황을 감안하면 자연친화적인 가우디의 건축양식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올라가는 계단 양편으로는 분수와 도마뱀 모양의 조각이 만들어져 있고, 돌로 쌓은 기둥과 천장 등이 쉴 새 없이 눈을 즐겁게 한다. 타일로 만든 모자이크는 가우디만의 독특한 표현 양식으로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특색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공원 내에는 가우디가 디자인한 의자 등이 전시된 가우디 박물관도 있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꿈꾸던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모티브로 설계된 곳이다. 원래는 고급스러운 저택으로 지어 귀족들에게 분양하려고 했지만 언덕에 위치해 있는 데다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바르셀로나시에서 구엘 백작으로부터 전체 부지를 매입해 1923년부터 시가 운영하고 있다.

카사 바트요 역시 가우디 특유의 건축 양식이 담겨 있다. 카사 바트요의 원래 이름은 카사 데 로스 우에소스(Casa de los huesos: 뼈로 만든 집)로, 이름대로 창 문살이 뼈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또한 가우디의 건축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부드러운 곡선미를 갖고 있어 분위기가 매우 독특하다. 대부분의 벽은 가우디 스타일인 타일 조각으로 모자이크를 해 놓았으며 색상 또한 매우 화려하다. 카사 바트요는 전체적으로 지중해 바다를 모티브로 건축한 작품이라고 한다.

카사 밀라의 굴뚝은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스톰 트루퍼스의 모티브가 되었다.
카사 밀라의 굴뚝은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스톰 트루퍼스의 모티브가 되었다.
카사 밀라는 밀라라는 이름의 바르셀로나 사업가가 카사 바트요를 보고 반해 가우디에게 요청해 지은 집이다. 당시 밀라의 부인은 카사 바트요의 외관을 이상하다고 여겨 절대 가우디에게 건축을 맡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거의 완공단계에 이르렀을 때 문제가 생겼다. 계약 당시 가우디는 옥상에 예수상을 건립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는데, 이에 대해 밀라가 당시 스페인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이유로 예수상을 세우지 말자고 반발한 것. 이에 가우디는 건물을 더 이상 짓지 않겠다고 선언해 결국 다른 건축가에 의뢰해 마무리짓게 된다.

카사 밀라의 외관 중 가장 유명한 부분은 바로 굴뚝이다. 이곳은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스톰 트루퍼스의 모티브가 되었다. 카사 밀라는 연립주택 형식으로 지어졌지만 특이한 외관으로 인해 방이 나가지 않아 밀라 혼자 살 수밖에 없었다. 건축을 반대했던 밀라의 부인도 당연히 살지 않았다. 다행히 마침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은행 지점장이 건물이 마음에 들어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는 현재 소유권이 기업에 넘어가 입장료를 받는 수익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카사 밀라의 굴뚝은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스톰 트루퍼스의 모티브가 되었다.
카사 밀라의 굴뚝은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스톰 트루퍼스의 모티브가 되었다.
1926년 6월7일 오후 5시30분 무렵. 그 날도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나와 늘 하던 대로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다리를 이끌며 터벅터벅 산책길에 나섰다. 길을 걷던 가우디는 전차에 치어 며칠간 병원에서 지내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게 된다. 그는 죽기 전 유언으로 장례 행렬을 만들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그가 떠나는 마지막 길을 성대하게 치러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우디의 시신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묻혀 성당과 함께 하고 있다.

그동안 가우디의 작품들은 주로 건축 전공자들에게만 필수 방문 코스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곳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가우디만의 독특한 건축양식과 건축에 담긴 그의 영혼을 느껴 보는 것은 바르셀로나 여행의 큰 재미가 될 것이다. 가우디의 걸작들을 눈앞에서 마주한다면 “한 군데라도 더 봐야 한다. 이 아름다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던 배우 이순재의 말이 깊이 와 닿을 것이다.

카사 바트요의 원래 이름은 카사 데 로스 우에소스
카사 바트요의 원래 이름은 카사 데 로스 우에소스(Casa de los huesos: 뼈로 만든 집)로, 이름대로 창 문살이 뼈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꽃할배 따라잡기] 

바르셀로나 6일 - 가우디투어

민박, 투어리스트 호텔을 이용하는 배낭여행 상품으로, 별도로 현지에서 가우디투어를 이용할 수 있다(매주 월, 수, 금. 사전 예약). 현지 투어 예약 시 한국인 가이드가 동반해 가우디 건축물을 비롯한 관광 명소들을 둘러보게 된다. 관광지 입장료·중식비용·대중교통비 별도 부담. 89만원부터.

◈ 가우디투어 코스

사그라다 파밀리아→카사 밀라→카사 바트요→구엘 공원→노바광장/카테드랄→왕의 광장→산 필립네리 광장→자우메 광장→구엘 저택→레이알 광장

(하나투어 www.hanatour.com/1577-1233)

◈ 아시아나항공

인천~바르셀로나 노선 전세기 운항. 5월13일~6월20일 주 2회(화, 금).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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