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 코트다쥐르 Cote d'Azur 드라이브 여행
지중해의 쪽빛 바다, 따뜻한 햇살, 라벤더 꽃향기...

유럽은 참 매력적인 여행지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문명 유적지와 자연을 찾아 떠나는 이유도 그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볼 게 많으면 그 속내를 보지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관광의 감탄을 넘어선 속 깊은 여행 이야기. 두 번째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와 코트다쥐르이다.

코트다쥐르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알프코트다쥐르 주의 동쪽 부분, 마르세유(Marseille)남쪽 툴룽(Tulong)에서 이탈리아 인근 국경 도시 망퉁(Menton)까지 이어지는 지중해 해안 지역을 일컫는다. '쪽빛 바다의 해안'이라는 뜻의 이름 그대로, 코발트 빛 지중해와 일 년 내내 내리쬐는 따뜻한 햇볕, 그리고 작고 예쁜 바닷가 마을들이 어우러져 어딜 가나 여행자의 넋을 쑥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그런 빼어난 경관과 기후 때문에 이미 18세기부터 영국과 러시아의 귀족들이 추위를 피해 찾는 휴양지로 유명했다.

생 트로페즈 부두

코트다쥐르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자동차 드라이브 여행이 제격이다. 여름 휴가철의 인파를 피해 5월, 6월의 늦봄과 초여름에 일주일 정도의 여정으로 인근 프로방스 지역의 옛도시들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이 시기에는 여름처럼 너무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쌀쌀하지도 않고 적당히 따뜻한 햇살에 라벤더를 비롯한 온갖 꽃들이 일제히 그 향을 뿜어낸다. 발길가는 대로 적당히 느린 속도로 달리다 보면 시원스런 해변과 깎아지른 구불구불 절벽 길을 따라 이어진 지중해의 해안 절경에 반하고 내륙의 야트막한 산길로 이어진 좁은 시골길의 꽃향기에 절로 취한다.

숙소는 호텔보다 캠핑장을 권한다. 코트다쥐르 곳곳에 산적해 있는 캠핑장은 단순히 텐트 치는 장소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별장식 펜션처럼 산비탈 숲속 곳곳에 가족용 방갈로를 만들어 놓아 여름엔 바캉스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 여행객, 추운 겨울에는 은퇴자들을 위한 훌륭한 별장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캠핑장들은 24시간 경비에 상점, 레스토랑, 세탁소, 각종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다. 캠핑장은 호텔처럼 등급이 매겨져 있는데, 보통 별 네개 이상의 캠핌장은 수영장 시설도 훌륭하다.

생 트로페즈 부둣가를 따라 길거리 예술가들이 그림을 팔고 있다.

코트다쥐르 접근은 니스나 마르세유의 공항을 통해서다. 우리나라에서 직항은 없지만 파리 드골공항을 경유하는 비행기 편이 여럿 있다. 인터넷 캠핑사이트에서 미리 캠핑장을 예약해 니스와 마르세유 중간 지점 한 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1주일 정도 머무는 것이 추천할 만한 일정이다. 니스나 마르세유 공항이 아닌 파리 드골공항에서 차를 렌트해 파리를 구경하고 니스를 찾는 여정을 고려한다면 최소 3~4일 정도의 일정을 추가해야 한다. 베이스캠프에서 니스(Nice), 에즈(Eze), 앙티브(Antibes), 칸(Cannes), 생 라파엘(St Raphael), 생 트로페즈(St Tropez), 모나코(Monaco) 등 코트다쥐르 곳곳의 해변나들이를 다니거나 엑상 프로방스, 레드보프로방스 등 프로방스 주변 도시와 관광지를 당일로 다녀오면 된다.

리비에라의 에즈 부근 해안 도로에서 바라다 본 지중해 풍경. 하루 종일 와인 파티가 열릴 것 같은 별장들이 해안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코트다쥐르 대표 도시, 니스

코트다쥐르에서 가장 지명도 높은 도시 니스는 연간 9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유럽 최고의 휴양지이다. 그 명성 그대로 옛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와 화려한 쇼핑타운,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 그리고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가득해 도시와 휴양지의 낭만을 모두 만족시킨다.

니스 해변은 자갈 해변으로 깨끗함을 자랑하지만 반대로 발을 다치기도 쉬워 해수욕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또한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호텔 잡기도 쉽지 않고 그나마 있는 곳도 비싼 호텔비(별3개짜리 호텔도 1박당 100유로가 넘는다)와 물가에 지갑 꺼내기가 겁난다. 하지만 코트다쥐르의 철도, 버스 교통의 중심지라 인근 관광지를 렌트카로 이동할 수 없는 여행자는 니스에서 숙소를 찾는 게 경제적이다.


성채 마을 앙티브

성벽으로 둘러싸인 해변 마을, 앙티브

해수욕을 즐기기엔 니스보다 앙티브를 첫손으로 꼽는다. 니스와 칸 사이에 위치한 앙티브는 외지인보다 현지인들에게 더 각광받는 곳으로 아기자기한 시가지와 해변이 바로 붙어 있는 항구 마을이다. 옛 로마의 항구였던 이곳에는 중세의 성벽이 상당 부분 남아 있어 독특한 느낌을 더해준다. 앙티브의 아름다움에 반한 피카소도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 앙티브의 배경으로 그가 남긴 작품이 유명한 '앙티브의 밤낚시'다. 인상파 화가 크로드 모네 역시 '앙티브의 아침'을 그렸다.

앙티브는 재즈 축제의 마을이기도 하다. 1960년 시작해 유럽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앙티브 주앙 재즈국제페스티벌'은 수많은 아마추어 음악가들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악축제로 알려져 있다. 5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유명 재즈 대가들이 대거 참가하는 등 더욱 성대하게 치러질 계획(7월 13일~14일)이라고 한다.

모나코 항구 전경

핫플레이스, 생 트로페즈

칸에서 툴롱을 향해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두 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항구 마을 생 트로페즈가 나타난다. 조그만 어촌이었던 이곳은 19세기에 이르러 예술가들이 거주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요즘도 부둣가 주변에는 '길거리 화가'들이 직접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시해놓고 즉석에서 팔고 있다.

항구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부자들의 호화찬란한 요트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고 부둣가를 따라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손님들을 보면 생 트로페즈가 니스나 칸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 (hot place)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 조그마한 어촌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머물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브루스윌리스, 조지 클루니, 조니 뎁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알려졌다. 할리우드 섹스 심벌 파멜라 앤더슨이 선상 결혼식을 올린 장소도 이곳이다.

니스를 중심으로 툴롱 반대 방향, 이탈리아 국경 도시 망퉁을 향해 달리면 가파른 절벽으로 이어진 코트다쥐르의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이탈리아의 아말피 해안이 지중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이곳 코스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름다운 풍광의 관광지가 마치 목걸이처럼 줄지어 있다고 하여 목걸이를 뜻하는 '리비에라'라 불리는 이곳은 굴곡이 많은 해안뿐만 아니라 따뜻한 기후의 영향으로 라벤더, 허브 등 화훼 재배와 향수 제조로도 유명하다.

지중해의 비경 전망대, 에즈

리비에라 해안 절경을 제대로 감살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꼽히는 곳은 절벽 꼭대기의 마을 에즈이다. 중세 시절 적들의 침략을 피해 세운 요새 마을인 이곳에서 비좁은 돌계단 골목길을 타고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코발트 및 지중해에 하얀 보트가 점점이 박혀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에즈를 지나 이탈리아 쪽으로 조금 더 달리면 바티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인 모나코 왕국에 이른다. 잘 알려진 대로 나라 전체가 '부자들의 파티장'이라 불릴 만큼 화려한 도시다. 화려한 요트, 화려한 별장,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부자들까지... 모든 게 화려해 오히려 여행객을 질리게 만든다. 그 유명한 몬테카를로 카지노 앞 광장에는 대낮에도 영화에서나 보는 파티복을 차려입은 이들로 가득하다.

1. 앙티브 주앙 재즈 페스티벌 2. 유럽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고, 깊이도 가장 깊은 베르동 협공은 하이킹, 플라잉 낚시, 카누, 패러글라이딩, 래프팅, 등산, 협곡 타기 등 수 많은 레포츠가 이루어진다. D71번 도로 중간 아르튀비 다리(Pont de Artuby)에선 번지 점프를 할 수 있다.

석회암 성채 마을, 레보드 프로방스

해안 절경이 어느 정도 질린다면 '레보드 프로방스' (Les-Baux-de-Provence) 석회암 마을과 베르동(Verdon Gorge) 협곡 드라이브를 즐길 차례다.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 인근 레보드 프로방스는 멀리서는 하얀 석회암 바위산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누구나 탄성을 지를 만한 절벽 위에 세워진 마을이다. 중세 때까지만 해도 성채도시로 위용을 자랑했던 이곳은 종교와 세력 다툼의 와중에 철저하게 파괴되어 지금은 옛 영광의 잔해만 남아 있다. 대신 성곽 아래에 200여 명이 살고 있다는 조그만 마을의 고풍스럽고 예쁘게 꾸며진 기념품가게, 잡화가게, 레스토랑, 카페들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이곳은 동양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에서는 몽셀미쉘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인기 관광지라고 한다.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오르다 바위산 절벽 꼭대기에 이르면 평평한 지대가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로 영주의 성이 있던 자리다. 우뚝 솟은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프로방스(Provence) 지역의 전형적인 풍경인,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라벤더 농장과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초록빛 협곡 지대의 비경, 베르동
코트다쥐르 해안에서 1~2시간 정도 걸리는 내륙의 베르동(Verdon Gorge) 협곡을 따라 달리는 여정도 프랑스 남부 드라이브 여행의 진수 중 하나이다. D71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베르동 협곡 드라이브는 해안 절경과는 또 다른 초록빛 협곡 지대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베르동 협곡은 베르동 강이 석회암 덩어리를 깎아 700m가 넘는 골짜기를 만든 곳으로 약 25km 정도 이어지다 협곡의 끝에서 생 크로와(Saint Croix) 인공호수와 만난다. 베르동 협곡의 카약 래프팅도 신나는 체험이다. 코트다쥐르 숙소에서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면 카약 래프팅을 즐길 수 있다. 래프팅은 호텔이나 캠핑장에서 사전에 예약할 수 있다.


여행 정보

렌트카 에이비스(www.abis.com), 유럽카(www.europcar.com), 내셔널카(www.nationalcar.com) 등 국제적인 렌트카 회사의 인터넷사이트에서 차량을 예약할 수 있다. 여름 성수기에는 최소한 한 달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가격은 하루 8~10만 원 선.

숙소 캠핑장은 수영장 등의 시설에 따라 등급이 정해져 있다. 별 네 개 이상이면 가격이나 시설 모두 만족할 만큼 무난하다.


프랑스 샤모니 트레킹

프랑스령 알프스의 한 산중턱 바윗길. 초가을 햇볕이 남서쪽의 몽블랑 정상(4807m) 부근에 내려왔다. 몇 시간을 걸었지만 몽블랑은 같은 자리에 있다. 눈 쌓인 정상이 빛난다.

북쪽 산비탈 아래로 고개를 돌리면 길이 23㎞에 달하는 거대한 U자형 계곡이 두 눈을 압도한다. 계곡 아래로 조그마한 집들이 점처럼 붙어 있다. 이곳은 프랑스의 남동쪽 끝, 몽블랑과 함께 살아가는 샤모니 마을이다.

샤모니의 트레킹 코스는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을 둘러둘러 이어진다. 해발 2000m가 넘는 둘레길을 여성 가이드가 앞장서 걷고 있다. 계곡 맞은편으로 에귀유 뒤 미디의 뾰족한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Blanc)은 스위스·이탈리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해발 1036m의 계곡에 1만명 남짓한 주민이 모여 산다.

이 작은 마을의 남쪽에는 서유럽의 최고봉, 몽블랑이 있다. '하얀 산'이라는 뜻의 몽블랑 덕분에 샤모니는 근대 알피니즘(등반)의 성지가 됐다. 1786년 처음으로 몽블랑에 사람이 선 뒤로, 수많은 산악인들이 샤모니를 찾아와 산과 인생을 논했다.

200여년이 흐른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180만명이 넘는 외지 사람들이 샤모니를 찾는다. 예전 모험가들처럼 몽블랑을 밟기 위해서? 아니다. 샤모니에는 몽블랑 외에도 총연장 350㎞에 달하는 천혜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늦은 밤 샤모니 시내는 적당히 시끌벅적했다. 팔뚝에 털이 수북한 서양인들이 배낭을 한쪽 어깨에 짊어진 채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고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청 앞 거리에는 호텔, 레스토랑, 식료품 가게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12년차 여성 가이드 크리스틴 페리외(45)는 "6~8월 성수기에는 호텔 방을 잡기도 힘들다"고 했다.

샤모니 주변 산길은 수십 수백개 갈래로 나뉜다. 이 중 '4대 산길'로 불리는 길이 있는데, '그랑 발콩 노드'와 '프티 발콩 노드', '그랑 발콩 수드'와 '프티 발콩 수드'다. '그랑(grand)'이란 이름이 붙은 길은 산세가 험하고, '프티(petit)'는 비교적 낮고 평탄하다.

다음날 아침 '그랑 발콩 노드'를 걷기 위해 출발했다. 이 길에 가려면, 에귀유 뒤 미디(3842m) 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정거장에서 내려야 한다. 에귀유 뒤 미디는 몽블랑을 둘러싼 수많은 에귀유(Aiguille·뾰족한 바위봉우리) 중의 하나다. 꼭대기의 전망대는 몽블랑을 지척에서 볼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오후 1시. 에귀유 뒤 미디를 구경한 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중간정거장 플랑 드 에귀유(2317m)에 도착했다. 샤모니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북쪽에 우뚝 선 브레방(2525m) 정상이 보였다.

가이드 크리스틴이 앞장을 섰다. 샤모니 산길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다는 크리스틴은 유독 다른 등반객들이 가지 않는 험한 길을 골랐다.

사실 샤모니의 바위산에서 등반객들을 위한 일률적인 '정답'은 없다. 총연장 350㎞에 이르는 길이 어찌 한 길이겠는가. 곳곳에 표지판이 있어 방향만 잡으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몇십 분 정도 산비탈을 걸어 내려가자 샤모니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둘레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일행은 마치 산비탈을 사과 껍질 벗기듯 수평으로 둘러 걸었다. 옛날 양치기 소년들이 걸었던 길이다.

샤모니의 길을 걷는 이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만삭의 임신부도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었다.

2시간쯤 걸었을까. 크리스틴이 다시 가파른 바위 계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느새 전나무·자작나무 숲은 사라지고 바위에 붙은 이끼들이 초록빛 풍경을 연출했다. 시냘 포브스(2198m)에 오르는 마지막 바위에 선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얼음 입자가 느껴졌다. "빙하다!"

거대한 돌무더기 벌판 끝에서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맥 정상에서 흘러 내려오는 '빙하의 바다'다. 멀리 빙하 끝자락에는 유럽의 3대 북벽(north face) 중 하나인 그랑 드 조라스(4208m)가 태양을 등진 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드러냈다. 몽블랑보다 등정이 어렵다는 '마의 산'이다.

지난해 그랑 드 조라스를 등반하다 숨진 한국 산악인의 추모 동판을 뒤로 하고, 메르 드 글라스 아래로 향하는 산비탈길을 내려갔다. 가파른 지그재그 길에는 다홍빛 석남화가 가득했다.

오후 4시 50분. 드디어 비탈길의 끝에서 기차역을 만났다. 샤모니로 향하는 빨간 기차가 몽텐베르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샤모니 북쪽 산자락의 '락 블랑' 산장에서 등반객들이 몽블랑을 바라보며 쉬고 있다.

가는 길 인천공항에서 파리를 거쳐 제네바 공항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네바 공항에서 샤모니까지 버스가 운행한다. 편도 20~25유로 정도. 1유로는 1500원 정도. 비슷한 가격으로 운행하는 봉고형 택시도 있으나, 4명 이상 예약을 해야 한다.

숙박·교통 샤모니에는 60여개의 호텔이 있다. 2~3성급 호텔은 몇대째 내려오는 가업인 경우가 많은데, 그리 넓진 않지만 정갈하다. 기자가 묵었던 포시니 호텔은 2성급으로 1인실 기준 50유로였다. www.hotelfaucigny-chamonix. com, 33-4-50-53-01-17

모든 호텔은 머무는 기간 동안 샤모니의 대중교통(버스·기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발급한다.

케이블카 케이블카 이용도 카드 한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 1일 자유이용권은 50유로, 3일짜리는 70유로다. 각 트레킹 코스로 향할 때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끊어두면 유용하다.

안내소 시청 광장의 성당 왼편에 여행자 안내소(Office de Tourisme)가 있다. 간편한 지도와 여행 책자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모든 트레킹 코스가 담긴 상세 지도는 4유로에 판다. 사전에 이곳에 숙박 문의를 하면 여행 예산에 맞는 숙박업소를 직접 알아봐 준다. 예약 및 문의는 www.chamonix.com, 33-4-50-53-00-24

트레킹이나 고산 등반을 할 여행자라면 성당 오른편 고산등반 안내소(Office de Haute Montagne)를 방문하는 게 좋다. 직원 4명은 모두 등반 전문가로, 여행자에게 맞는 등반 코스와 그날의 날씨 정보를 알려준다. 33-4-50-53-22-08

식당 대부분 프랑스 전통 레스토랑이다. 향내 깊은 치즈와 사부아(Savoie) 지역 포도주는 여행의 피로를 잊기 딱 좋다. 한국 음식이 그립다면 에귀유 뒤 미디로 가는 케이블카 탑승장 앞 '산마루'를 찾아보자. 20년 가까이 샤모니에 거주하고 있는 조문행(51)씨가 주인이다. 유스호스텔도 운영한다. 33-4-50-18-50-73

가이드 해발 2000m 부근의 '그랑 발콩' 이상은 길이 복잡하므로 가이드를 쓰는 게 좋다. 일반 트레킹 가이드 비용은 하루에 187유로이며, 가이드 1인당 12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 고산 등반 가이드는 1일 280유로로 제법 비싸다.

샤모니에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가이드 회사 '샤모니 몽블랑 가이드'가 있다. 직원은 200여명이며, 사전에 마음에 드는 가이드를 예약할 수 있다. 한국말을 조금 쓰는 싹싹한 가이드가 있는데, 이름은 베르데나트로, 한왕용 대장과 함께 등반을 한 경험이 있다. 33-4-50-53-00-88

문의 프랑스 관광청 한국사무소 kr.franceguide.com, (02)776-9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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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아름다운 도시 1, 2위를 다투는 브뤼헤의 야경. [이두용 작가]

브뤼헤는 겐트와 더불어 벨기에 아름다운 도시 1, 2위를 다투는 곳이다. 종탑과 광장, 성벽과 반듯한 돌길은 금방이라도 해리 포터가 나올 것 같은 중세로 여행자들을 안내한다. 크지 않은 도시라 하루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벨기에서 딱 하루만 머문다면 여기다. 시작은 마르크트 광장이다. 광장 한쪽에 80m 높이 종탑이 우뚝 서 있다.

종탑은 1m 정도 기울어져 있다. 잘못된 설계 탓인지 처음부터 기울어졌다고 한다. 중간에 조정하려다 실패해서 지금도 기운 채로 서 있다. 5m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에 비하면 낫다고 해야 하나? 한꺼번에 많은 관광객을 받지 못한다. 한번에 최대 90명 정도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그래서 올라가는 줄이 길다). 꼭대기까지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가파르고 좁은 나선형 계단을 45분 정도 올라야 한다. 각오하시길. 종탑 사진은 광장 쪽보다 뒤편 입구 쪽에서 찍는 게 더 예쁘다. 중세 때 주로 교수형 집행 장소로 쓰였던 광장은, 이제 흥정이 오가는 시장,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살아 움직인다. 광장을 중심으로 가보면 좋을 만한 핫스폿 네 군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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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와플의 진수를 맛보자

벨기에 와플은 크게 두 가지다. 브뤼셀 와플과 리에주 와풀이다. 격자 무늬가 있는 커다란 직사각형 케이크 형태가 브뤼셀 와플이다. 위에 과일, 시럽,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토핑을 얹어 먹는다.

리에주 와플은 마찬가지로 격자 무늬가 있지만 동그란 과자 모양이다. 브뤼셀 와플보다 더 쫀득쫀득하다. 여기서 맛본 와플은 브뤼셀 식이다. 추천 가게는 '리지스 와플(Lizzies Wafels)'. 광장에서 걸어 4~5분 거리에 있다. '엑스트라 라지'가 슬로건. 다른 가게 와플보다 크다.

세로 길이가 20㎝는 되는 거 같다. 생긴 지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통 벨기에 와플'을 고수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직접 만든 초콜릿 시럽과 슈거 파우더를 뿌린 와플이 인기(라고 한)다. 토핑도 토핑이지만 바삭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와플 빵 맛이 좋다. 월·화 휴무. 5시까지 열고 현금만 받는다.

▶ 현지인 추천 '가성비 갑' 초콜릿

벨기에는 초콜릿의 나라다. 명성은 '셸 초콜릿'에서 나왔다. 크림이나 견과류 등을 속에 넣어 만든 초콜릿, 그게 이 나라 태생이다(원조가 '노이하우스' 초콜릿이다. 원래는 약을 넣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다양한 것을 넣었다고 한다). 이어 벨기에 초콜릿을 세계 수준으로 격상시킨 사람이 등장한다. 도미니크 페르소네(Dominique Persoone)다.

상상을 초월하는 실험 정신으로 다양한 초콜릿을 선보였다. 한국 된장과 김을 사용한 초콜릿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문을 연 '초콜릿라인' 본점이 이곳에 있다. 원하는 초콜릿을 골라 g 단위로 살 수 있다. 가령 250g이면 18유로(약 2만 3500원)다. 싸지 않다. 그래서 추천한다. '푸르 쇼콜라(Pur Chocolat)'. 초콜릿라인에서 5분만 걸어가면 된다. 현지 가이드가 추천하는 '가성비 갑' 초콜릿 상점이다. 관광객들에게 '브뤼헤 최고의 초콜릿 가게'란 찬사를 듣고 있다.

▶ 전세계 '맥덕' 유혹하는 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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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에서 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레시피만 수천 종에 달하는 수도원 맥주는 이 나라의 자랑이다. 맥주순수령 탓에 획일화한 독일 맥주와는 다르다.

라거, 에일, 람빅 등 다양한 종류 맥주가 전 세계 맥덕을 유혹한다. 벨기에 맥주의 맛과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할브 만(Halve Maan)' 양조장이다.

무려 150여 년 역사를 자랑한다. 가족 양조장으로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맥주가 '브루스 조트(Brugse Zot, 발음 주의)'다. 광대 그림 라벨로 유명하다. 진한 황금색 빛깔과 과일향 나는 풍미가 일품이다. 알코올 함량 6도(보다 진한 색깔의 7.5도짜리도 있다). 할브 만 맥주 제조 과정과 역사를 보여주는 견학 코스를 1시간 정도 유료로 운영하고 있다. 2016년 3㎞ 길이 맥주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는 사실 등을 소개하는데,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 유럽 最古 다이아몬드 도시

14~15세기 벨기에는 북유럽 무역 중심지였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들여온 다이아몬드 원석은 벨기에, 특히 당시 거점 도시였던 브뤼헤를 통해 유럽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자연스럽게 브뤼헤는 다이아몬드 무역과 가공 중심지로 발전했다. 다이아몬드 가루로 만든 회전판으로 다이아몬드를 연마하는 기술도 브뤼헤에서 발명됐다. 물론 '영광스러웠던' 과거 얘기다.

현재 다이아몬드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곳은 이웃 대도시 앤트워프다. 그래도 브뤼헤는 '유럽 최고(最古) 다이아몬드 도시'라는 명성을 갖고 있다. 그 명성에 걸맞은 숍이 하나 있다. '페터 퀴호'라는 곳이다. 브뤼헤 관광청 추천. 2대째 운영되는 주얼리 숍인데, 주의하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로 작으니 잘 찾아야 한다. 방문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2000만원 정도 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취재 협조 = 플랜더스 관광청

[브뤼헤(벨기에) = 최용성 여행+ 기자]



해외여행 유럽 이탈리아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는…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밀라노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레스토랑 Luxury shop
 

하이패션의 중심지인 밀라노에서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고 싶다면? 명품 브랜드와 코워크한 레스토랑, 카페, 리빙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밀라노에는 명품 브랜드가 만든 럭셔리 레스토랑과 카페, 리빙숍이 유난히 많은데, 돌체앤가바나는 밀라노에 첫 번째 레스토랑 ‘골드’를 열었고, 저스트 카발리와 트루사르디, 구찌도 밀라노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구찌 카페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구찌 로고가 찍힌 초콜릿은 패션 피플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르마니는 아예 빌딩 하나를 통째로 아르마니 스타일로 채웠다. 아르마니 홈, 아르마니 플라워, 아르마니 카페 등을 함께 운영하는 것. 이곳에 가면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dolce&gabbana gold 돌체앤가바나 골드
dolce&gabbana gold 돌체앤가바나 골드

돌체앤가바나의 첫 번째 레스토랑. 에너지와 태양이라는 콘셉트에 맞추어 꾸며져 있다. 호화스럽고 반짝이는 소재들과 대리석, 하이글로시 스틸과 거울, 샹들리에, 크림과 골드색의 가죽을 사용해서 따뜻한 느낌과 함께 아름다운 공간으로 연출했다. 넓은 공간이 카페, 비스트로, 레스토랑, 칵테일 바로 나뉘어 있다.

Add piazza risorgimento Tel 39 02 757 7771
Time 월요일~일요일 08:00~18:00(카페), 월요일~수요일 18:00~01:00 목요일~토요일 18:00-02:00(칵테일 바) 월요일~토요일 12:00~24:00(비스트로), 화요일~토요일 19:30~23:30(레스토랑) Url www.dolcegabbanagold.it
Station Tram 9, 29/30 Piazza Tricolore

giorgio armani 조르지오 아르마니
giorgio armani 조르지오 아르마니

아르마니 건물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엠포리오 아르마니,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등의 의류를 위시해 가구, 생활용품, 향수, 레스토랑, 카페, 바 가 모두 모여 있다. 일본의 전설적인 요리사 노부nobu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에서는 아르마니의 풍미를 반영한 퓨전 일식을 맛볼 수 있고, 아르마니 바에서는 퓨전 일식 메뉴의 아페리티보가 열리는데, 쫙 달라붙는 핑크색 티셔츠를 입은 멋진 몸매의 남성 바텐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 꼭대기 층에 아르마니 호텔을 설립 중이며, 2010년에 완성된다.

Add via manzoni, 31 Tel 39 338 927 1409 Url www.giorgioarmani.com
Url www.armani-viamanzoni31.it Station Tube 3 monte napoleone

cafe trussardi 카페 트루사르디

cafe trussardi 카페 트루사르디

깔끔한 인테리어에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통유리창으로 된 이곳은 스칼라극장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Add piazza della scala 5 tel 39 02 8068 8295 Time 월요일~금요일 07:30~23:00 / 토요일 09:00~23:00 Url www.trussardi.com
Station Tram 1, 2 Teatro Alla Scala Tube 1, 3 Duomo


하늘 아래 첫 마을, 체르마트와 고르너그라트 설원 파노라마

동화 속 엘프의 마을처럼 눈 쌓인 샬레를 배경으로 한 아담한 마을 체르마트. 스위스 하이킹 루트 중 체르마트와 고르너그라트에서는 장대한 알프스의 파노라마가 장관을 이룬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5성급 호텔. 천문망원경을 통해 별보는 식사 코스가 유명하다.”

알프스의 대표 인명 구조견 세인트버나드(좌)와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산봉우리들을 표시한 안내판(우).

스위스에서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노선에 파노라마 기차가 다닌다. 그중 빙하특급은 생모리츠(St. Moritz)에서 체르마트(Zermatt)까지 운행된다. 레만 호의 풍경에 익숙해질 때쯤 비스프(Visp)에서 체르마트로 오르는 빙하특급 열차에 올랐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개를 들어도 쉽사리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산, 소와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초지, 굽이치며 흐르는 골짜기, 산비탈 마을로 곡예하듯 움직이는 케이블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본 설경.
“스위스 최고봉인 3634m의 몬테로사와 리즈캄, 츠빌링에, 부라이트호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앞에 선 고산 까마귀의 앙증맞은 모습.”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오르는 산악열차로 오르던 중 맞닥트린 설경.
스위스 지역의 전통가옥인 샬레가 험난한 산들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들어선 마을, 체르마트의 전경.

체르마트는 동화 속 엘프가 살고 있는 듯 아담한 마을이다. 샬레(아랫부분은 돌, 전체적인 골조는 나무로 된 주택)가 계곡을 따라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알프스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터호른 관광의 유일한 리조트로 웅대한 알프스의 설원을 감상하기 위해 일 년 내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약 400km에 달하는 하이킹 코스를 걷기 위해, 겨울에는 스키를 타기 위해 방문한다.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관광지를,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도 늘고 있다.

산악박물관 마터호른 뮤지엄. 체르마트 마을 광장에 들어선 이 박물관에서는 스위스를 비 롯한 알프스 등반과 산악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이 아기자기 하게 전시되어 있다



산위의 눈이 녹아내린 물은 체르마트 마을을 관통하는 강이 되어 흐른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5성급 호텔이 있다. 여름이면 천문 망원경으로 별을 보며 식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하루 묵어도 좋고, 아쉬운 대로 전망대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여도 좋다. 설산의 감동을 한쪽으로 하고, 하이킹 채비를 했다. 고르너그라트에서 열차를 타고 리펠알프(Riffelalp)에서 내려 체르마트까지 내려가는 길은 약 2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체르마트로 내려가는 하이킹 코스 시작 지점.
하이킹 코스 중간에는 어김없이 쉴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겨울 스키 슬로프로 이용되는 초입부분은 다소 가파르고 자갈이 많은 것이 흠. 이곳만 벗어나 하늘을 뒤덮은 침엽수림 숲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고요한 숲에 발소리만 울린다. 눈 녹은 물이 길을 따라 작은 개울을 만들기도 하고 폭포가 되기도 한다. 물이 흐르는 주변에는 생명의 기운을 머금은 풀이 돋고, 들꽃이 피어나고…. 그 길은 결국 사람이 사는 마을로 이어진다.

산 이래로 내려올수록 설원대신 풍경은 초록빛이 더 감돈다.
트레킹 길은 울창한 숲 사이를 지난다.
“겨울에는 스키 슬로프로 사용되는 길을 여름 눈 녹은 철이면 사람들이 걸어 오르기도 한다. 노르딕워킹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천둥번개가 치는 듯한 굉음과 깎아 지르는 절벽…. 고르너 계곡의 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천지를 진동하는 우레 소리가 들려온다. 고르너 계곡에 다다랐다. 우리나라의 동굴 폭포와는 규모가 다른 고르너 계곡 안에 나무다리를 놓아 바위에 부딪히는 물살이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아찔한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4G로 어드벤처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나니 저 멀리 체르마트 마을이 놀란 마음을 토닥여주듯 인사를 건넨다.

체르마트 인근 레스토랑
체르마트서는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소형 전기자동차만이 운행한다. 역에는 말과 마부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산악열차로 오르지 못할 곳이 없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앞 열차 정거장 모습.”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양떼.

i.n.f.o.
코스
Zermatt-산악열차-Gornergrat-산악열차-Riffelalp-Gornerschlucht-Zermatt 난이도 소요시간 2시간 찾아가는 법 비스프 역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열차 이용. 코스 특징 등산철도를 타면 리펠알프와 고르너그라트에, 케이블카로는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 오를 수 있다. 레스토랑 Alphitta(+41 (0)27 967 21 14) 숙박 Hotel Perren(+41 (0)27 966 52 00)

The best way to experience France

여행 패턴이 변화하면서 유럽도 하나의 국가를 찬찬히 둘러보는 체류형 여행이 늘고 있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안내하고 상담해야 하는 정보의 깊이도 더욱 깊어진 셈이다.

프랑스관광청과 프랑스 대도시 연합회가 소개하고 있는 '최고의 프랑스 도시 여행을 위한 9개 여정'은 프랑스 지방을 여행하고자 하는 고객들이 점점 증가하는 요즘 자료가 부족한 여행사에서 활용하면 좋을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다. 9개의 여정에 소개된 25개 도시의 가볼만한 곳과 여행자의 기대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축제, 이벤트, 교통편 정보 등 여행사에서 고객에게 프랑스 여행을 안내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세세하게 정리돼 있다. 4일에서 8일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는 9개의 여정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여정 1

피카르디Picardie와 플랑드르Flandre 4일
종탑의 도시 릴(Lille) - 대성당의 도시 아미앵(Amiens)


11세기에 생성된 도시 릴(Lille)은 산업 혁명을 거치며 은행과 보험의 중심도시, 유럽의 주도로 거듭난 도시다. 산책하기 좋은 구시가지를 비롯해 루아얄(Royal)에서는 1890년에 릴에서 태어난 샤를 드 골의 생가를 볼 수 있다. 섬유, 가구, 디자인 컬렉션과 19세기-20세기 작품을 전시하는 루베 예술과 산업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르데코 양식의 옛 시립 수영장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탑도 명물이다.

아미앵은 고풍스러움과 현대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이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가옥 주변의 수중 정원을 배로 둘러 볼 수 있는 쥘 베른의 집,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등이 있다. 마카롱, 기와 모양의 초콜렛, 라 피셀 피카르드(la ficelle picarde), 바뚜(battu) 케이크 등의 특산품도 유명하다.

●여정 2

샹파뉴Champagne와 부르고뉴Bourgogne 4일
샴페인의 도시 랭스(Reims) - 예술과 역사의 도시 디종(Dijon)


랭스(Reims)는 와인과 샴페인의 도시다. 랭스 산 기슭에 조성된 포도 밭에서 유명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데 샹파뉴(Champagne) 지방의 대표적 자랑거리인 샴페인의 유명 브랜드 대부분은 랭스를 기점으로 형성돼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노트르담 대성당, 생 레미(Saint-Remi) 바질리크 교회당, 생 레미 수도원 박물관도 볼거리다.

부르고뉴 공국의 중심 도시로 일찍부터 수륙 교통과 상공업의 중심지를 이루었던 디종(Dijon)은 수많은 건축 유적지들로 유명하다. 역대 부르고뉴 공의 관저는 현재 박물관이 되었으며, 생 베니뉴 대성당, 생 필리베르 교회, 법원 등 옛 건물이 많아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예술 도시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여정 3

로렌Lorraine과 알자스Alsace 8일
친환경 도시, 로렌 지방의 주도 Metz(메츠) - 문화의 도시 Nancy(낭시) - 쁘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 - 산업과 예술의 융합, 뮐루즈(Mulhouse)


기원전 1000년 전에 생성되기 시작한 메츠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양식이 접목된 건축물을 소유하고 있다. 오늘날 메츠는 상업과 친환경도시로 로렌(Lorraine) 지방의 주도이며, 파리에서는 기차로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낭시는 국립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서정시, 국립 드라마 센터, 낭시파(Ecole de Nancy: 아르누보 양식) 박물관, 음악 축제와 행사, 바와 까페 등으로 낮과 밤이 살아 있는 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2000년의 풍부한 역사를 지닌 도시 스트라스부르그는 유럽의 수도로 문화, 건축 유적지가 매우 특별한 곳으로 도시 전체가 198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바또 무슈(bateau mouche), 미니 열차, 트램, 자전거와 같은 교통 수단으로 편리하게 도시를 둘러 볼 수 있다. 1746년, 유럽에서 최초로 면직물을 생산하기 시작한 뮐루즈(Mulhouse)는 2008년 문화부 장관이 인증하는 프랑스 라벨 '예술과 역사의 도시' 인증을 획득했다. 뮐루즈 근처에 위치한 꼴마르(Colmar)는 작은 베니스라 불리는 아기자기한 매력의 관광지다.

●여정 4

론 알프스Rhone Alpes 4일
디자인 수도 생떼띠엔느(Saint-Etienne) - 화산의 도시 끌레르몽 페랑(Clermont-Ferrand)


예술과 역사, 관광 도시로 지정된 생떼띠엔느(Saint-Etienne)는 잘 보존된 자연이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였던 생떼띠엔느는 점차 산업디자인이 발전하면서 디자인의 수도로 진화했으며 생떼띠엔느 보자르(프랑스 미술학교)는 디자인 특성화 학교로 유명하다. 현대 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 이념도 만날 수 있다.

끌레르몽 페랑(Clermont-Ferrand)은 rock, 럭비, 단편 영화의 도시로 연중 내내 다양한 볼거리로 활기가 넘치며, 샤또브리앙(Chateaubriand)은 화산과 더불어 클레르몽 페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도시의 주요 유적지는 도보로 둘러볼 수 있으며, 중세 시대의 저택들과 르네상스 시대의 유적으로 유명하다.

●여정 5

프로방스Provence와 리비에라Riviera Cote d'Azur 8일
중세 기독교의 중심지 아비뇽(Avignon) - 세잔의 도시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 -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간직한 항구 도시 마르세유(Marseille) - 지중해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니스(Nice)


중세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아비뇽에서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인 중세 시대 최고 성직자의 거주지였던 교황청(Palais des Papes)과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 노래의 배경이 되었던 생 베네제(Saint-Benezet) 다리를 놓쳐서는 안된다. 매년 7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비뇽 연극 축제가 열린다.
엑스(Aix)는 폴 세잔의 태생지이며, 세잔과 졸라는 미녜(Mignet) 고등학교에서 우정을 다진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4만여 명의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도시로 연중 내내 다양한 문화 행사가 개최된다.

기원전 600년 그리스인에 의해 건설된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2600년의 역사가 이뤄낸 문화 유적지가 경이롭다. 또한 노트르담 드 라 갸르드에서 내려다보는 마르세유 구항구의 전경은 매우 아름답다. 2013년에는 유럽 문화의 수도로 지정되었고, 지중해·유럽 문명 박물관(MuCem 뮤쎄엠)을 오픈 하였다.

1860년 이후 철도가 생기며 주요 휴양지로 떠오른 니스는 시대별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다. 파리 다음 가는 박물관의 도시로 꼽히는 니스에는 마티스 미술관, 마크 샤갈(Marc Chagall) 국립 미술관 등 20여 곳의 박물관과 갤러리가 있다.

●여정 6

르 빼이 독Le Pays d'Oc 6일
프랑스의 로마, 님(Nimes) -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몽펠리에(Montpellier) - 장밋빛 도시 뚤루즈(Toulouse)


프랑스의 로마로 불리는 님(Nimes)은 로마 황제 아우그스투스에 의해서 건설되었으며, 원형 경기장(Arenes)을 비롯해 세계에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고대 사원인 메종 까레 (Maison Carree) 등 로마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몽펠리에(Montpellier)는 프랑스 남부 지방 랑그독 루씨옹(Languedoc-Roussillon)의 주도이며, 역사와 유적지의 도시로 파리에서 기차로 3시간, 바로셀로나와 이탈리아에서 3시간, 지중해에서는 불과 11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보르도와 알비, 루르드, 카르카손을 아우르는 여정에서 빠질 수 없는 뚤루즈는 "장밋빛 도시"라는 특징을 가진 곳 프랑스 남서부 지역의 요충지에 위치한 미디 피레네 지역의 수도다. 2000년의 예술과 역사를 간직한 카피톨(Capitole)의 시청과 극장의 화려한 접견실을 볼 수 있다.

●여정 7

보르도Bordeaux에서 푸아티에Poitiers까지 4일
와인의 대명사 보르도(Bordeaux) - 찬란한 과거 유산과 미래의 역동성이 공존하는 푸아티에(Poitiers)


갸론(Garonne)강이 흐르는 보르도는 순례자의 길인 생 쟈크 드 콩포스텔(Saint Jacques de Compostelle)과 같은 세계 유산에 등재된 3곳을 비롯해 350여 곳이 넘는 역사 유적지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와인의 수도답게 다양한 와인 관련 행사가 있는데, 6월에는 그랑 크뤼 마니아들을 위한 주말 와인 행사로 100여종 이상의 그랑 크뤼의 시음이 가능하며, 직접 생산자들이 참가한다.
푸아티에(Poitiers)는 무려 86곳 이상의 유적지를 간직한 역사의 도시다. 로마네스크 예술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노트르담 라 그랑드(Notre-Dame-la-Grande)에서는 매년 여름 저녁과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환상적인 다채로운 색의 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과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의 조각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는 생 크루와(Sainte Croix) 박물관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여정 8

부르타뉴Bretagne와 빼이 드 라 루아르Pays de la Loire 6일
부르타뉴의 주도, 독특한 매력의 Rennes(렌느) - 프랑스에서 가장 기발한 테마파크가 있는 Nantes(낭트) - 루아르의 중심 Angers(앙제)


렌느는 브르타뉴 지방의 수도로 이 곳의 집들은 갈로 로만의 영향을 받은 벽과 팡 드 부와(pans-de-bois: 나무의 구획으로 지은 집이란 뜻으로 집의 절반만 나무로 지은 집)로 이루어져 있다.
프랑스 서부의 연안 수도인 낭트에는 부르타뉴 대공의 요새이자 거주지였던 부르타뉴 대공성을 만날 수 있으며 낭트 섬에 있는 테마공원인 레 마쉰 드 일 드 낭트(Les Machines de l'Ile de Nantes: 낭트 섬의 기계들)에서는 낭트의 상징인 거대 코끼리와 대형 회전목마 등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된 앙제(Angers)는 시내에 위치한 정원들과 루아르 고성, 천혜의 자연 환경이 어우러진 도시다. 앙제 근교의 브리삭 고성(Chateau de Brissac)은 루아르 지방 고성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사전 예약 시 숙박 및 연회가 가능하다.

●여정 9

노르망디Normandie의 주요 도시 4일
태양왕의 찬란했던 시대를 느낄 수 있는 베르샤유(Versailles) -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도시 Le Havre(르아브르)


베르사유 궁전은 17세기 초 사냥을 즐겼던 루이 13세가 시골 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을 수렵장으로 만들고 작은 성을 지은 것에서 비롯됐다. 베르사유 성은 그 화려하고 웅장장 규모의 정원으로도 유명한데, 전형적인 프랑스 정원으로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사유 궁전 근처에는 승마 아카데미, 향수 박물관 오스모테크(Osmotheque), 도시의 역사를 조명해볼 수 있는 랑비네 박물관(Le Musee Lambinet) 등이 있다.

르 아브르(Le Havre)는 프랑스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최근에 생겨난 도시다. 바다와 센 강의 만이 만나서 생겨나는 독특한 물빛으로 많은 젊은 화가들이 이곳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고, 인상주의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1872년 클로드 모네가 르아브르 항구 입구에서 인상주의 대표작인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1.28 07:47 신고

    정리 굿!! 프랑스 기차여행의 기본이 다 있네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  '산마리노' 에 가보셨나요?
 
아드리아해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온 사람들.
그들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중세의 날 축제.
7월 중순 닷새 동안중세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누가 뭐라 해도 이 기간이
산마리노 여행의 최적기다.


7월 중순 즈음 산마리노는 중세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중남미를 빼고는 거의 모든 대륙을 다녔다. 서아프리카 말리의 진흙도시 젠네의 골목길을 헤매기도 하고, 인도 푸시카르 사막에서 수십만 낙타와 함께 잠들기도 했다. 런던에서 공부할 때는 사우스 뱅크 산책을 즐겼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6개월 사이에 세 번이나 다녀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보통 직장인들에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휴가란 대게 일주일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한정된 시간 안에 느긋이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추천해볼까 한다.

이탈리아 동북부 내륙에 위치한 산마리노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이라도 한나절 걷기에 효율대비 최적의 장소다. 티타노산(Titano Mt.749m)을 중심으로 위치한 산마리노는 과이타 요새 정상에 서면 경계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그만 도시 국가지만 가장 오래된 공화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301년 세워진 산마리노 공화국은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으며 2명의 집정관을 두었던 전통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우리로 치자면 대통령이 2명인 것이다. 내무부 장관이 산마리노 사람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는데, 인구 3만 명의 국가에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좌) 자유의 광장을 지키는 바위 경비대. 근엄해 보이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우) 301년에 세워진 산마리노는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으며 2명의 집정관을 두었던 전통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산마리노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 혹은 당신이 걸었던 길은 어디인가.
기차가 이탈리아 리미니역 플랫폼에 다다르면 저 멀리 티타노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 앞에서 산마리노행 버스를 타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국경선의 표지판을 지나 10여 분 뒤 산마리노의 본격 여행이 시작되는 성벽 바로 아래까지 데려다준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느낄 수 있다. 불과 해발 700여m 높이에 부는 시원한 산바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푸른 평원을 감상하며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산 프란체스코 관문을 통과해 50여m를 오르면 곧 산마리노 의회가 있는 자유의 광장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는 ‘바위 경비대’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군인들이 의회를 지키고 서 있다. 조용히 다가가 옆에 서면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여기저기 나 있는 골목길을 따라 계속해서 오르다보면 티타노산 제1의 요새인 과이타에 이르게 된다. 3개 요새가 있지만 개방되는 곳은 제2 요새 체스타를 포함한 두 곳뿐. 이 모두를 돌아보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이라도 한나절 걷기 좋은 산마리노 길
산마리노에서 꼭 즐기거나 느껴야 할 것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즐기고, 느끼고, 가져왔나. 7월 중순 닷새 동안 산마리노는 중세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골목골목 중세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닐고, 자신의 키보다 긴 칼을 부딪치며 중세 기사들이 칼싸움을 벌인다. 그들은 산마리노를 쳐들어오는 이탈리아인들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조상들의 전투를 재연한다. 그런가하면 광장 곳곳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들 모두는 산마리노 자원봉사자들이다.

목마른 아이들에게는 시원한 수박 한입 물리고 중세의 장난감을 쥐어준다. 밤이 깊도록 광장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중세의 축제를 즐겨야 한다. 축제의 백미는 역시 축제 마지막 날 벌어지는 석궁대회. 산마리노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인접 도시 대표 팀들 간의 시합으로 선수들은 단 한번의 기회를 살려 3cm의 과녁 중앙을 정확히 맞히고 싶어 애를 쓴다.

(좌) 산마리노 구석구석 중세 분위기가 물씬 (우) 밤이 깊도록 화려한 중세의 축제는 계속된다
산마리노를 걸을 때 주의할 점을 귀띔한다면? 우리는 여행을 간다고 하면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간다. 하지만 서유럽인들은 이와 더불어 대개 정장 한 벌씩을 가지고 다닌다. 밤이 되면 드레스로 갈아입고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그날만큼은 화려한 음식으로 한껏 분위기를 즐긴다. 똑같이 주어진 여행시간이라도 어쩐지 그들은 그 시간을 최대한 즐긴다. 지금 여행 가방을 꾸리는 중이라면 일회용 컵라면은 당장 빼버리고 가벼운 정장을 한 벌 챙기자. 그래서 소중한 여행 동반자에게 근사한 시간을 선물하자.

티타노산을 중심으로 위치한 산마리노는 과이타 요새 정상에 서면 경계선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도시국가다.
여행의 유형에 따라 여행자들을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고운 모래 해변에 선크림을 바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여행자와 산을 오르거나 신나게 자전거를 타면서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 부류, 그리고 컬처 벌처(Culture Vulture) 즉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이색적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부류다.

PD라는 직함으로 해외에 다니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즐기는 신세는 못되고, 자연히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가며 최대한 돌아다녀야 한다. 다행히 적성과도 맞다. 걷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광에 고동치는 나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그 자리, 그 시각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지금 나는 수많은 문화와 인종이 섞여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도시 런던에 살고 있다. 런던에서 길을 잃어가며 나를 찾으면서 말이다.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내가 런던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어쩌면 테이트 모던의 7층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인트 폴 성당과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아오른 크레인이 합주를 이룬 런던 풍경을 보면서 나는 ‘이 도시는 옛것을 함부로 부수지 않는구나. 천천히 고치면서 새로운 문화를 더해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도 나를 깨부수고 다시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나’를,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었다.

런던에 오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는 정답이나 정도가 없고,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도 저마다 다르다. 내가 내 삶과 제대로 마주하기에는 런던만한 도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1)
티보다 커피, 커피, 커피!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Mason에 가면 크리스마스 티를 마실 수 있다. 홍차와 생강, 클로브,상큼달콤한 오렌지 껍질이 들어 있어 스파이시한 향이 나는 크리스마스 티는 추운 겨울에 잘 어울리는데, 나는 이 차를 매우 좋아한다.

가끔 프레시 민트티, 엘더플라워 레모네이드를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영국의 티가 아무리 맛있다 해도 나는 역시 커피가 제일 좋다. 커피에 관한 한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래서 맛있는 커피를 내주는 카페를 찾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다.

런던의 커피는 다른 유럽과 마찬가지로 진한 맛이 특징. 카페 네로나 프레타망제의 커피는 스타벅스에 비해 훨씬 더 진하다. 저지방 우유를 넣으면 스키니 라테Skinny Late 혹은 스키니 카푸치노Skinny Cappuccino라고 부르는데, 런더너들은 호주에서 만들어진 진한 라테와 부드러운 카푸치노의 중간 맛인 ‘플랫 화이트Flat White’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곧이어 나 또한 중독.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1.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나의 아지트 겸 카페. 조용한 공간과 깔끔한 커피 맛, 그리고 시나몬 번즈 등 카페의 필수 요소를 제대로 갖춘 곳이다. 골든 스퀘어에 위치한 노르딕 카페는 영화 <카모메 식당>처럼 세련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에그 버터와 포테이토 파이는 가벼운 점심으로 딱이다.
Add Nordic Bakery, 14 Golden Square, W1F 9JF Tel 44 20 3230 1077
URL www.nordicbakery.com Station Piccadilly Circus

Monmouth Coffee 몬마우스 커피
2. Monmouth Coffee 몬마우스 커피
런던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 90% 이상이 몬마우스 커피빈을 쓸 정도로, 이곳의 커피맛은 명성이 자자하다. 2주에 한 번씩 커피빈을 구입할 정도로 커피홀릭인 나에겐 없어선 안 되는 곳이다. 패키지도 예뻐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도 그만이다
Add Monmouth Coffee Company, 27 Monmouth Street, WC2H 9EU
Tel 44 20 7379 3516 URL www.monmouthcoffee.co.uk
Station Covent Garden

Flat white 플랫 화이트
3. Flat white 플랫 화이트
런던의 베스트 커피라고 생각하는 커피숍. 테이크아웃을 하면 종이컵에 이름을 써주는데, 이젠 내 이름이 알리스인 것도, 내가 언제나 카푸치노를 마신다는 사실까지 기억한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
Add 17 Berwick Street, Soho, W1F 0PT Tel 44 20 7734 0370
URL www.flat-white.co.uk Station Oxford Cir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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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퀴즈 하나. 이 나라, 거대하지만 섬세하다. 순례길에는 종교적인 경건함이 있다. 이비사 해변에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날것 그대로의 나를 찾아가는 진지함이 있다. 끈기, 열정? 차라리 말을 말자. 우리나라라면 건축 공기 5년도 많다고 난리 칠 일을 수백 년 공을 들여 자자손손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라. 이쯤 되면 대부분 독자들, '스페인'을 당연히 입에 올리실 게다. 

이 가을, 유럽 중에서도 이국적인 풍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인 탓에 요즘 유럽여행의 트렌드는 스페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서유럽 대신 스페인, 혹은 서유럽 다녀온 다음에는 스페인 여행 이런 식이다. 거기에는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가 큰 몫을 한다. 여행객의 즐거운 하루를 보장하는 데 밝은 햇살과 눈부신 하늘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부드러운 바람은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게 만든다. 스페인을 이루는 문화는 참 다양하다. 거칠게 질주하는 투우의 강렬함과 현란한 세고비아 기타 선율 위로 튀어나오는 플라멩코와 탱고의 에로틱한 춤사위는 강렬한 붉은색을 품고 죽은 영혼을 살려낸다. 들어는 봤나. 건축가 가우디. 21세기 들어 주가가 쭉쭉 올라간 스페인이 낳은 걸출한 인물이다. 자연과 건축의 공존이라는 건축 테마가 신선하다. 스페인 사람들 엉뚱한 데도 있는 모양이다. 풍자소설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고전문학인데도 웹툰만큼 구성이 기발하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세계는 또 어떻고. 

축구팬에게는 프리메라리가 상위권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이 최고일 터. 감각적인 CF를 선보이며 우리나라에도 매장을 늘려가고 있는 트렌디한 의류 브랜드 자라도 스페인이 본산이다. 노란색 샤프란이 들어간 해산물 쌀요리 파에야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으니 스페인 여행 적응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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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론다

그저 유럽이 입에 붙어서 언젠간 유럽여행을 찜해 두고 있다면 이 가을 '유럽 멜팅폿(용광로)' 스페인만 찍어도 딱이다. 남들 다 가는 서유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스페인이란 나라. 프랑스와 맞닿은 이 드넓은 땅덩이에는 태양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정열을 불태우며 살아간다. 굴곡 없이 오늘에 이르지 않아 이 나라의 오늘은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이슬람 문화가 숨쉬는 그라나다를 만나고, 아랍 최고 유적지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본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백색 도시 미하스와 아찔한 요새도시 론다는 그 옛날 어떻게 저런 장소에 집을 지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과 구열공원 등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숨결을 불어넣은 바르셀로나에서는 손수건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겠다. 길어야 100년살이 짧은 인생이 영원 속에 들어간 것 같을 테니. 스페인을 쭉 훑어 올라가다 보면 스페인의 정열과 인생철학에 메말랐던 내 감성에 촉촉촉 물기가 돌지도. 

그런데 가을에서 겨울로 달리는 시기, 스페인 여행을 추천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스페인이라는 이 나라, 유럽에서도 한때 잘나가던 큰 형님이다. 잘난 척 대마왕으로 뻐길 법도 하다. 지금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신세 한탄을 한다면 그야말로 하수. 그런데 한껏 여유로운 풍모로 현재를 즐기고 있다. 잘나가던 시절 맞춰둔 흰 구두 흰 양복 백고 모자를 갖춰 입고 젠틀한 그레이 신사의 매너를 보여주시니 어디에서나 환영 받는다. 환절기 거울 속 거칠어진 내 모습이 못생김으로 나와 "이렇게 또 세월이 가는구나" 초조해 하는 나의 등을 거친 인생 지나온 살집 좋은 손으로 투닥투닥 두드려줄 것만 같은 큰 형님. 아직 즐길 인생은 남아 있다고 네 인생이 어때서 그러느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싹둑 잘라줄 고민 해결사 큰 형님 최고. 태양처럼 강렬하게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고? 그렇다면 볼 것 없다. 늦가을, 무조건 스페인이다. 



그림책 만드는 아티스트 정화, 베를린을 읽어내다
베를린이 우연히 내게로 걸어오다

내가 베를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할이 우연이다. 베를린행을 결심할 당시 나에겐 전환점이 필요했다. 타인이 가르쳐주는 정형화된 디자인을 배우기보다, 내 안으로 끝까지 파고들어 새로운 디자인을 실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빙자했지만 나의 베를린 생활을 긴 여행이라 정의하고 싶다. 예쁜 것만 찾아보는 짧은 여행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호흡법을 배우고 적응해가는 나를 체험하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난 이곳에서 베를린만의 독특한 환경을 체험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열정을 되찾게 된 것이 더없이 기쁘다.

내게 흑백 영화 속의 이미지로 기억되던 베를린은 예술과 여유, 자유, 다양성 등 여러 가지 빛깔을 띠며 나의 삼십 대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NO.1 베를린 매거진 리스트

요즘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독일 잡지는 <FT>다. 이 잡지는 매 회 다른 주제로,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타이포그래피와 드로잉, 사진과 아트 디렉팅, 그리고 레이아웃을 선보인다. 매 호 새로운 잡지가 창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Vier5라는 작은 팀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잡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고, 그 중간쯤의 미학을 보여준다. 컴퓨터 세대가 만들어내는 날카롭고 매끈한 그래픽 이미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핸드메이드 감성을 지닌 예술가들이 만들어냈다. 이 잡지는 작은 글씨체, 여백, 낙서, 실수로 보이는 흔적까지 모두 그대로 보여주면서 날카로운 내 감성을 자극한다. 물론 이들이 만들어내는 건조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는 철저히 계산되어 생산된 것이기에 더 가치가 크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컬처 매거진 <032c>도 소장 가치가 높은 잡지이다. 건축과 예술, 디자인, 패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 전반을 보여준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빨간 표지 속에는 매 호 현대문화를 <032c>만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다룬 기사가 가득하다. 너무나 대중적인 주제를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또 깊이 있게 다룬 내용을 읽으면, 잡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중매체가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홈페이지www.032c.com/kim/hedislimane에 들어가면 2007년 에디 슬리만과 함께한 파티 사진도 구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잡지는 <Slanted>이다. 타이포그래피 전문 잡지인 <Slanted>는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기대를 품게 되는, 강단 있는 잡지다. 타이포그래피의 세계를 보다 넓은 영역으로 펼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로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그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길을 제공한다. 

오랜 역사의 도시… 축구 팬들에게는 영국 런던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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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산업도시 맨체스터의 면모는 현대 맨체스터의 풍경 속에도 도저하게 담겨 있다. 맨체스터의 현재를 보여주는 인공 항공 샐퍼드 키와 미디어 시티./ⓒShutterstock_Gordon Bell
축구 팬들에게는 영국, 하면 런던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도시인 맨체스터. TV 중계 화면으로 셀 수 없이 드나든 올드 트래퍼드는 버킷리스트 맨 위에 올라 있는 꿈의 구장이다. 축구가 이유가 되었든, 런던 너머의 영국이 궁금해서 찾게 되었든,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모두 기대와 상상 이상의 경험에 놀라게 된다. 축구는 맨체스터를 장식하는 영롱한 보석 중 단 하나일 뿐. 오랜 역사의 맨체스터는 여러 빛깔의 크고 작은 찬란한 보물을 품고 있다.



세계 최초의 산업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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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가 있어 온종일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는 아기자기한 동네 캐슬필드./ⓒShutterstock_Shahid Khan

어웰강과 작은 운하들이 흐르는, 온종일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는 아기자기한 동네 캐슬필드(Castlefield)는 맨체스터에서 가장 운치 있기로 이름난 곳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라면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도 하루를 오롯이 보낼 만하지만, 고맙게도 캐슬필드에는 맨체스터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학과 산업 전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과학·산업박물관(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이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 곳은 직물 산업으로 일찍이 부를 축적한 맨체스터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이룬 이 도시의 업적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견고한 벽돌 건물에 자리한 박물관을 찾는 것으로 자랑스러운 역사를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알 수 있다. 롤스로이스와 스피트파이어 항공기 엔진을 비롯해 맨체스터에서 발견·발명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250여 종의 물건과 기술을 산업 직군별로 분류해놓은 전시는 기술 발전과 맥을 같이하는 인류의 역사를 차근히 되돌아보게 한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곳은 맨체스터를 일명 ‘코트노폴리스(Cottonopolis, 면의 수도)’라 불리게 만든 면 산업에 헌정된 ‘텍스타일스 갤러리’. 낡고 불편해 보이는 기계들이 한때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다는 점을 상기하며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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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산업박물관 내 '텍스타일스 갤러리'에서는 맨체스터를 '면의 수도'라고 불리게 한, 한때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던 방적기를 볼 수 있다. / 맨체스터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학과 산업 전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과학 산업박물관

가상 항공기 조종 체험, 실내 스카이다이빙 등 정적이고 조용한 박물관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 짜릿한 체험도 마련되어 있으며, 4세 미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감각 놀이를 통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은 몇 주 전에 예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기가 좋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맨체스터 시내에 위치한 새크빌 공원(Sackville Park)의 벤치에 앉아 있는 천재 수학자이자 현대 컴퓨터공학의 선구자인 앨런 튜링의 동상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꿈을 꾸다

파리에 에펠탑이,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면 스케일 큰 맨체스터에는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가 있다. 이 도시의 상징이자 최고의 여행 명소인 올드 트래퍼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 팬들이 ‘OT’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7만5,000석 규모의 대형 스타디움. 수십 년간 맨유를 세계 축구의 정점에서 이끌었던 알렉스 퍼거슨 경의 동상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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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축구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축구 박물관 내부 모습 /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신화적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

박지성 선수도, 퍼거슨 감독도 지금은 맨유를 떠나고 팀의 영광은 예전만 못하지만, 스타디움과 박물관 투어를 통해 명문 구단의 화려한 역사를 살펴보노라면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양손 가득 유니폼과 구단 굿즈를 들고 OT를 나서는 것만으로 성에 안 찬다면, 혹은 올드 트래퍼드에 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축구 문외한이라면 맨체스터 대성당 옆에 위치한 맨체스터 국립 축구박물관(The National Football Museum)으로 향하자. 무료로 운영하는 축구의 보고에서 방문자들은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이 스포츠의 규칙과 유산, 최고의 선수들과 감독들, 전술과 리그, 대륙 대회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직접 페널티 킥을 차보고 BBC 캐스터들의 생동감 넘치는 해설을 들어볼 수 있으며, 명장들의 노하우를 짚어보고 최고의 브랜드와 함께해온 축구용품의 변천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서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다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시티의 경기 일정을 확인하게 될 정도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알차고 유니크한 전시관이다.

축구사에 한 획을 긋는 명장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하며 EPL(English Premier League)의 최강자로 떠올라 군림 중인 맨체스터 시티는 맨체스터를 연고지로 하는 맨유의 라이벌로, 맨체스터 시내를 가운데 놓고 올드 트래퍼드의 반대편에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두고 활약 중이다. 시즌 중 두세 번 맞붙는 이 두 팀의 ‘맨체스터 더비’는 열정 넘치는 맨체스터 사람들의 에너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축제. 운이 좋아 여행 중 더비를 볼 수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표를 구해보자. 수만 명이 “골!”을 외치며 열광하는 90분간의 아드레날린 파티에 참여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현대 건축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항구

맨체스터를 여행하는 날들 중 하루는 온전히 인공 항구 샐퍼드 키(Salford Quays)에서 보내자. 항구 한쪽에는 올드 트래퍼드와 전쟁박물관(Imperial War Museum North)이, 시내와 가까운 반대편에는 황홀한 부둣가 경관을 이루는 로우리 극장(The Lowry)과 비즈니스 센터인 미디어시티(MediaCityUK)가 있다.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란 화가 L. S. 로우리의 이름을 따고 2000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개관한 로우리 극장과 BBC 등 여러 방송국이 밀집해 있어 한국의 상암동이 떠오르는 미디어시티와 함께 전쟁박물관은 항구 부근에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을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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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이 화가 로우리의 이름을 따서 개관한 로우리 극장.ⓒShutterstock_Alastair Wallace / 단순한 전쟁 소개가 아닌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해 더욱 무게감이 느껴지는 전쟁박물관

한국에도 몇몇 작품을 세워놓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전쟁박물관은 맨체스터 스카이라인의 큰 부분을 책임지는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다. 깨어져 조각난 지구본을 모티브로 한 전쟁박물관은 외관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엄과 무게감이 상당하다. 단순히 세계의 크고 작은 전쟁의 역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물론, 한국전쟁에 대한 전시도 마련되어 있다. 박지성 선수만을 위한 응원가도 불러주었던 맨체스터 사람들은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분단국가 그 이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머지않은 미래에 평화로운 결실을 맺은 나라로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맨체스터의 미래를 기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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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체담 음악대학 도서관

맨체스터에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무료 공공 도서관인 체담 음악대학 도서관이 있다. 영화 <해리 포터> 속 도서관의 배경이기도 한 이 도서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저력을 짐작케 한다. 맨체스터의 미래가 밝은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의 뒤를 이어 영국에서 세 번째로 뛰어난 연구 역량을 자랑하는 맨체스터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거쳐 간 맨체스터 대학에서는 오늘도 석학들이 도시의 영광을 재현하고 인류의 발전에 다시금 이바지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누가 훗날의 스티글리츠가 될지를 단박에 찾아낼 수는 없지만 대학교가 지닌 가치를 공적으로, 대중적으로 치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캠퍼스 안의 맨체스터 박물관을 찾아 짐작해볼 수는 있다. 맨체스터 출신의 제조업자 겸 수집가인 존 리 필립스(John Leigh Philips)의 컬렉션으로 시작된 이 박물관은 ‘2016~2026 10개년 프로젝트’를 통해 맨체스터를 영국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민주적인 도시로 만드는 시의 목표에 일조하고 있다. 연령과 성별 등 신분을 초월해 접근하는 지속 가능한 전시와 교육 과정 개발, 물리적인 제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시 주최 등을 추진 중이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은 2013년부터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 세계의 이목을 끌어온 이집트 오시리스상인데, 아직까지도 조각상이 회전하는 이유를 정확하게는 밝힐 수 없어 매일 큐레이터가 박물관 오픈과 함께 반 바퀴 돌아가 있는 오시리스상을 다시 앞으로 돌려놓는다고 한다.







심지 굳은 이 도시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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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민들이 사랑하는 피카디리 가든에서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Shutterstock_Moomusician
작년 봄,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맨체스터 아레나 콘서트 중 폭탄 테러 사건이 있었다. 22명이 숨지고 116명이 다친,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 이후 최악의 영국 테러 사건으로 기록된 비극이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해 마지않는 맨체스터 시민들은 분노하고 슬퍼했다. 애도와 추모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될 것이지만, 금세 다시 일어나 추모 공연을 열고 ISIS 테러 집단에 함께 대항하는 맨체스터 시민들을 향해 전 세계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세월의 풍파와 빠르고 느린 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하며 성장해온 이 도시의 진정한 유산은 산재한 박물관과 스타디움, 학교와 건축물보다도 굳은 심지를 지닌 사람들, 그들의 영혼이 아닐까.

· 글 : 맹지나(여행 작가, 작사가. '이탈리아 카페 여행', '크리스마스 인 유럽', '그리스 블루스', '그 여름의 포지타노', '바르셀로나 홀리데이',  '프라하 홀리데이', '포르투갈 홀리데이' 등 다수의 유럽 관련 여행 서적의 저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천연효모빵 공부보다 더 급한 일은 비행공포증 극복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비행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였다,라는 사실을. 나는 12년 동안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런데 가급적 한국 여행을 해야 하는 일을 기피했었다. 비행공포증 때문이었다. 폐쇄공포증은 내가 있는 공간이 문 또는 창문에 의해 모두 닫혔을 때 발생하는 불안감이 일반인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증상을 이다.

비행공포증은 그 불안감에 자신이 공중에 떠 있다는 공포감이 포함된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 '비행기 좀 세워주세요, 흑흑흑' 이런 외침을 들어보았는가?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를 세워달라니. 전조 현상으로 식은땀이 쏟아져내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에 시달리게 된다. 이럴 경우 약으로 자신을 진정시키기도 하지만 '비행기를 세워주세요'라며 읍소하기도 한다.

그런 내가 천연효모빵 공부를 위해 유럽을 순례한다고? 과연 가능할까? 물론 가능했어야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심리 치료를 받아왔고, 다음 도전 목표는 운전이었다. 자동차 운전 또한 환자에게는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심리치료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차를 사고, 차 안에 앉아 있어 보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양평 시장에 가보고 … 이윽고 지금은 가로수길, 홍대앞까지 차를 몰고 다니게 되었으니 2단계 극복은 완전히 이뤄진 셈이었다.

비행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극복하게 해준 'BMW'

어느 봄날 해질 무렵. 나는 강북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게 백미러에 나타난 '천사의 눈'(여기서 '천사의 눈'이라 함은 냉음극관-CCFL:Cold Cathode Fluorescent Lighting-으로 만들어진 BMW자동차의 LED 헤드라이트를 말한다)이다.

나는 천사의 눈을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 덕에 비행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한 방에 이겨낼 수 있었으니까… 요컨데, 나는 어느날 초저녁에 동그란 원형 헤드라이트의 신비롭고 근미래스러운 불빛에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매력적인 원형헤드라이트를 만든 BMW란 자동차 메이커는 도대체 어떤 회사이며, 어떤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일까,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뮌헨'이란 도시는 어떤 곳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결국 뮌헨에 있는 BMW WELT와 BMW뮤지엄에 '천사의 눈'이 잔뜩 전시되어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고, 봄이 오자마자 서두르듯 BMW본사가 위치한 뮌헨을 가기위해서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비행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할 때만 해도 나는 극복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널찍한 공간이라서 공포심이 반감되는 프레스티지 클래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나는 식은땀, 심장 벌렁증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내가 내린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한 도시가 아닌, 나의 신천기를 열어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제부터 여행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거대한 샐러드 위를 달리는 '이체에(ICE)'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나는 시차적응이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지만 중앙역에서 이체에(독일의 고속철도 ICE:Inter City Express)를 타고 뮌헨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0살은 족히 넘긴 유복해보이는 독일 아저씨, 아줌마들이 샴페인을 연거푸 마시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60대의 건강하고 '매너없는' 어르신들이 독일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쓴웃음을 짓고 있다가, 독일의 고속철도는 자리에 앉은채 핸드폰 통화를 할 수 있고, 마구 떠들어도 상관없는 칸과 떠들어서는 안되는 사일런트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내가 산 티켓은 마구 떠들어도 결례가 될 수 없는 '소음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또 한번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고성방가를 배경음악삼아 3시간 동안을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며 줄곳 들었던 생각은, 내가 탄 이 기차가 브로콜리와 상추, 토마토와 오이가 잔뜩 쌓여있는 거대한 샐러드바의 위를 달리고 있는 미니어쳐기차가 아닐까하는 동화스러운 상상이었다. 그만큼 이 나라는 도시든 시골이든 예외없이 나무와 숲이 울창하다.

그 숲을 끝없이 달리는 열차니 '온 더 샐러드 트레인'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가슴앓이의 시작 '쾨니히스광장' 뮌헨역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을 켜 호텔스닷컴을 통해 예약한 '아트호텔뮌헨(art hotel munich)'을 찾아나섰다.

낯선 도시와 넓고 좁은 골목을 체우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은 생경스러웠지만, 동시에 언젠가 한번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아득한 데자뷰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잔뜩 찌푸린 하늘, 먹구름과 햇살 그리고 회색빛 석양이 마치 내 마음처럼 변덕스럽게 하늘모양을 바꾸고 또 바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는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을 향했다. 또 다시 스마트폰의 자그마한 창에 표시된 지도를 따라 이름모를 거리를 걷다가 맞딱드린 너무나도 이국적인 '쾨니히스광장'의 풍경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낡은 건물들과 웅장한 오브제, 그냥 아무생각없이 걷기만 해도 예술가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아름답고 철학적인 거리의 기운에 취해서 난 그날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체 참 많이도 걷고 또 걸었다.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에서 만난 올리베티수동타자기 '발렌타인'

독일현대건축가인 슈테판브라운펠스에 의해 설계되어 2002년도에 완공된 현대미술관은 건물 그 자체가 디자인오리엔트 된 거대한 공업제품처럼 컨셉트에서 끝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완성되어진 건축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오랜 세월 짝사랑해 온, 2007년 12월 31일 타계한 디자이너 에토레소사스2세(ETTORE SOTTSASS Jr.)가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올리베티사의 빨간색 수동타자기 '발렌타인'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현대미술관의 1층 카페 구석에 놓여있던 '노르웨이세즈'가 만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너무나도 완벽한 건축공간이 만들어주는 안락함에 취했던 그날을 오랫동안 잊지못할 것이다. 누가 독일의 포스트모던과 바우하우스를 차가우며 인간미가 없다고 탓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완벽하고 따뜻하고 안락하게 감싸주는데 말이다.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2011년도 유로비젼송콘테스트와 EU 그리고 묘한 열등감

힘빠진 다리를 이끌고 호텔에 도착해서 창밖을 바라보니 어둠과 함께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호텔 식당에서 라자니아를 뚝딱 먹고 호텔방으로 돌아가 티브이를 켜니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2011년 유로비젼 송콘테스트가 방송 중이었다. 학창 시절, 오전 11시만 되면 라디오로 들었던 '세계의 유행음악'을 통해 만났었던 유로비젼 송콘테스트를 리얼타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흥분도 설렘도 잠깐, "굿이브닝 유럽!" 이라고 외치던 사회자 '스테판라브'의 요상한 영어발음의 멘트가 순간 왠지모르게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유럽은 나에게 있어서 잘사는 이웃집의 공부잘하고 잘생겼으며 우애까지 좋은 형제처럼 어딘가모르게 부럽고 무서운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도이체아이헤'호텔 주변 거리풍경과 '뮌헨앓이'의 시작

가을하늘을 연상케하는 높고 진한 파란 하늘아래에서 뮌헨의 거리를 걸었다. 여행지에서 하루 정도는 지도와 안내 책자 없이 무작정 발길이 닺는 곳으로 산책을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날도 난 아침부터 아무런 계획없이 눈과 마음의 움직임만을 의지한채 뮌헨 시내를 걸었다.

빵굽는 냄새가 나면 고소한 냄새를 따라가 빵을 먹었고, 쇼윈우에 진열되어있는 그림 또는 오브제가 마음에 들면 점포 안으로 들어가서는 또 다른 그림과 골동품들을 바라보며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주었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산책을 하다가 들어가게 된 도이체아이헤호텔의 레스토랑과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상점들과 카페와 서점과 거리를 메우고 있던 친절하고 사랑스럽기 조차한 그곳의 사람들의 표정들 덕분에, 아직까지도 눈을 감으면 그 잔상들이 나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런던콜링'(마르크스가 한 말이라고 알려진 이 어구가 실제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음)이 아닌 '뮌헨콜링'인 것이다. 결국, 난 그곳에서 돌아온지 이십여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짝사랑에 가슴아파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뮌헨앓이 중이다.

다음 여행은 본격적인 '천연효모빵 투어'가 될 것이다.


  1. Favicon of https://bluesword.tistory.com sword 2015.10.12 00:07 신고

    저는 뮌헨으로 신혼여행을 간 이유가 자동차 투어를 하기 위해서...

    물론 운전 말고 bmw와 벤츠를 보기 위해...ㅎㅎㅎㅎ
    정말 뮌헨앓이 이해 합니다. ^_^

    비행기 공포증... ㄷㄷ
    저는 폐쇄적인 환경 보다는 귀울림 때문에 싫어하는데
    다행이 큰 비행기를 타면 겪진 않더라구요, 작은 비행기를 타면 귀가 심하게 아픈...-_ㅜ...

    프레스티지석으로 비용이 좀 쎄긴 하겠지만
    공포증을 조금이라도 물리치셨다니 다행입니다. ^_^
    비행기를 못타면 너무 슬플거 같아요 ㄷㄷㄷ


노르웨이
만년설 녹아 흘러내린 폭포… 천지개벽과도 같은 굉음
저지대에는 빛깔 고운 집들… 옹기종기 동화 속 마을

"겨울이 지나 봄은 가고, 또 여름날이 가면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사랑하는 님일세, 내 마음을 다하여 늘 기다리노라."

헨리크 입센의 희곡에 에드바르 그리그가 곡을 붙인 '솔베이그의 노래'는 구슬프고도 감미롭다. 애절한 사랑을 담고 있는 이 곡이 탄생한 노르웨이는 극작가 입센과 음악가 그리그의 고향이다. 이 노래의 음률만큼이나 노르웨이의 자연은 경이롭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는 피오르(fjord)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여정은 '노르웨이 인 어 넛셸(Norway in a Nutshell)'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오슬로(Oslo)와 베르겐(Bergen) 사이의 철도, 산악열차, 크루즈 등을 모두 포함하는 코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유월에 찾아간 노르웨이는 이제 겨우 봄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서쪽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노르웨이 인 어 넛셸' 투어를 시작하기 위해 오후 1시쯤 중앙역에서 내륙의 보스(Voss)로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시내를 빠져나간 열차는 어느새 바다가 내륙 깊숙이 파고 들면서 만들어낸 믿기 어려운 광경으로 안내했다. 피오르는 해수면을 뚫고 거의 수직으로 솟은 봉우리가 굽이치고, 만년설을 뒤집어쓴 거대한 산들이 이어졌다.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눈부신 협만의 봉우리는 하늘과 바다를 절묘하게 연결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폭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204㎞) 깊은(1309m) 노르웨이 송네 피오르를 돌아보는 여정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코발트빛 바닷물과 양 옆의 거대한 산, 그리고 산정의 눈 녹은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피오르 주변 낮은 계곡에 들어선 작은 마을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열차는 두 시간쯤 뒤에 보스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구드방엔(Gudvangen)으로 향했다. 몇 차례 관광객을 갈아 싣는 버스는 구불구불한 능선과 계곡을 휘돌아 빠져나갔다. 거대한 협곡은 조금도 곁눈을 팔 수가 없도록 만들었다. 숲과 호수, 강물과 폭포가 끊임없이 신기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버스는 100m가 넘는 높이에서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 앞에서 멈췄다. 어디에서 이처럼 큰 물줄기가 흘러내릴까? 신(神)이 손으로 긁어 내린 듯 촘촘한 고랑으로 이어진 협곡이 겹겹이 펼쳐지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산꼭대기 만년설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폭포는 천지개벽과도 같은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빙하 계곡은 한 줌의 언어로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녹색으로 덮인 저지대에는 빛깔 고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화 속 마을이 나타났다. 버스는 한 시간여를 달린 뒤 구드방엔 선착장에서 페리에 관광객을 인계했다.

페리는 느릿느릿 피오르의 최고봉이라는 송네(Sogne) 협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더 깊고 험한 협곡으로 빠져들어 가자 피오르는 원시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길게 이어진 절벽 사이를 가까스로 통과하며 피오르를 감상하는 느낌은 황홀경이다. 수만년 전 만들어진 빙하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흘러내린 피오르를 통과한 페리는 두 시간여 만에 플롬(Flam)에서 멈췄다. 에울란(Aurland) 피오르 안쪽에 위치한 플롬은 선착장과 기차역, 우체국 등이 거의 전부일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주민은 450여 명에 불과한 이곳을 노르웨이 사람들은 '피오르의 심장' 또는 '노르웨이의 진주'라고 불렀다. 1870년 문을 연 유서 깊은 프레테임 호텔(Fretheim Hotel)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호텔 방 창문을 열면 협곡을 따라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와 산에서 직하하는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 해발 867m 지점에 위치한 뮈르달(Myrdal)행 산악열차에 올랐다. 송네피오르는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플롬에서 구드방엔 구간인 에울란과 네뢰위(Nærøy) 피오르가 가장 아름다워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길이 204㎞에 최고 수심도 1309m에 이른다. 산악열차는 20개의 터널을 지나 지그재그 절벽길을 시속 40㎞ 속도로 50분가량 달린다. 협곡 세 개와 강 한 개를 건너며 8개 역을 잇는 이 열차의 절정은 쇼스포센(Kjosfossen)역 전망대에서 느낄 수 있다. 5분 정도 머물면서 93m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의 물방울을 온몸으로 맛보게 하는 곳이다. 높은 계곡 사이에서는 관광객을 위해 공연을 펼치는 님프(요정)의 춤이 매혹적이다. 1923년 착공해 20여 년 만에 완공된 단선궤도로 최대 기울기가 55° 이상인 가파른 협곡을 나선형으로 가로지른다. 철로 주변에 아름다운 산악마을과 목장, 웅장한 폭포가 자리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골짜기 사이를 가로지르는 교량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산악열차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뮈르달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린 여행객은 오슬로와 베르겐으로 서로에게 아쉬운 이별을 하고 있었다.


동방박사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는 쾰른대성당을 멀리 하자 1949년부터 옛 서독의 수도였던 본이 눈앞에 바로 다가선다. 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었을 때 40여 년간 서독의 수도로서 독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본은 우리에게 악성 베토벤의 고향이자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본과 쾰른 사이에 놓여진 무한질주의 아우토반은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도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 베토벤 동상과 뮌스터 교회 첨탑이 한 눈에 들어오는 구시가지 광장 

본의 첫인상은 수도라는 선입견과 달리 너무나 소박하고 조용한 도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개의 수도들은 세련된 고층 빌딩이나 화려한 네온사인이 도시를 감싸고, 빌딩 숲 사이로 수많은 자동차의 물결이 흐르며, 잘 차려 입는 도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본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런 것은 하나의 선입견에 불과함을 느끼게 된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도 없고, 자동차로 인해 교통이 막히는 현상도 볼 수 없다. 그 대신 로마시대 때부터 지어진 대성당과 중세시대 때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축물, 시간에 의해 낡아진 옛 시가지 광장 등이 여느 수도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론 본이 과거에 수도였기 때문에 눈에 띄는 세련된 거리와 카페, 레스토랑, 호텔 등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본의 분위기는 중세풍의 우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로마시대 때 '카스트라보넨시아'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던 본은 16세기 이후 쾰른 대주교 겸 선제후의 궁정도시로 성장하였다. 궁을 둘러싼 귀족들의 집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본은 독일에서 부유하고 교양이 넘치는 도시로 변모하였다. 많은 귀족과 부를 바탕으로 본이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화 예술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고, 베토벤 같은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베토벤이 태어날 당시 인구는 1만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30만명이 훌쩍 넘는다. 여느 도시와는 달리 이런 역사적인 고도임에도 불구하고 본은 생각만큼 번잡스럽지 않다. 프랑크푸르트의 높은 현대식 빌딩이나 뮌헨처럼 높은 시청사처럼 도시를 상징할 만한 건축물이 없다. 굳이 본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꼽는다면 본대학이나 베토벤 하우스처럼 1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중산층 집들이다. 어쩌면 소박한 본의 이미지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된다.

바로크 양식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옛 시가지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인해 활기가 넘쳐난다. 오렌지 빛의 오후 햇살이 뮌스터광장에 뒹굴고, 광장 중심에 세워진 베토벤 동상은 햇살을 받아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리고 지나치는 노천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음악과 함께 본의 여행은 시작된다. 이 도시에서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은 단연 베토벤 생가다.

보통 여행의 출발점이 중앙역이나 시청사지만 본에서만큼은 악성 베토벤이 태어난 집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본의 건축물이나 박물관을 관람하기보다는 베토벤이 22세까지 살았던 곳을 찾아가 그의 향기를 쫓는 것이다. 위대한 음악가가 태어난 집과 그가 뛰어놀던 골목길, 부모님 손에 끌려가던 교회, 산책을 즐겼던 라인 강변, 오르간을 연주하던 대성당,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꽃피웠던 선술집 등 그와 관련된 유적지는 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의 두툼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짙은 담쟁이 잎 사이로 여러 개의 베토벤 흉상이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생가는 외부에서 보면 다른 집과 별 차이 없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작은 마당과 파릇한 담쟁이넝쿨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외부에서 문을 열면 바로 방으로 이어질 것 같지만 베토벤 하우스는 건물 안으로 마당과 정원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건물 2채가 들어서 있는 구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헐릴 집이었지만 본 시민의 12명이 기금을 모아 생가를 구입해 베토벤 기념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생가 내부에는 작은 정원과 여러 개의 베토벤 흉상이 시선을 끈다. 흉상들을 얼핏 보면 베토벤의 모습이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흉상의 모델은 베토벤이 분명하지만 조각가가 다르기 때문인지 그의 흉상의 얼굴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바람결에 날린 듯한 물결 모양의 머리카락이 베토벤임을 알려준다.

마당에 세워진 흉상을 감상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그의 음악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내부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베토벤과 관련된 다양한 유품들이 여행자의 시선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3층 건물에 12개 방에는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품 15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베토벤의 초상화, 그가 쓰던 악기, 친필 악보 등 베토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베토벤 생가 이외에도 본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산재돼 있다. 시장광장을 굽어보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옛 시청사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본 여름 노천 문화축제'의 배경이 되어왔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본 교회는 쾰른대성당의 초석이 마련되기 시작할 즈음에 완공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건물이다.

SS 카시우스와 플로렌티누스에게 바쳐진 유서 깊은 뮌스터교회는 라인 강변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는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본은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답게 곳곳에 눈여겨 볼 만한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 독일 본! 이것만은 알고 떠나세요△가는 길=우리나라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운항하고 있다. 서독의 옛 수도였던 본까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슈만 하우스=본은 베토벤의 고향이지만, 독일이 낳은 비운의 천재 슈만이 만년을 보낸 곳이다. 본의 구시가지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슈만이 자신의 아내이자 성악가인 클라라와 함께 살았던 '슈만하우스'가 있다.


지상과 지하가 만나다 - 훔볼트하인의 방공호

베를리너 운터벨텐은 ‘베를린의 지하세계’라는 뜻을 가진 단체이다. 199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단체의 목적은 베를린의 지하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공개하여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시가 동서로 분단되면서 수많은 시설들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잃어버린 지하 시설들이 통일된 베를린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새롭게 발굴된 교통용 터널, 전철역, 수송로, 방공호, 공기송출 우편시설 같은 지하시설들이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베를린 훔볼트하인 공원 언덕 위에 자리한 방공호 또한 그렇게 해서 공개된 시설의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5만 명의 시민들이 공습을 피했던 방공호는 중세시대의 요새와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당시 대공포가 설치되어있던 85m 높이의 방공호 탑에서는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현재 이곳은 4월부터 10월까지만 공개되어 있는데, 겨울에는 동면하는 박쥐를 보호하기 위해 입장이 금지된다고 한다.



예술가와 정부, 타협하다 - 타헬레스(Tacheles)

1990년 2월, 일군의 예술가들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벌이며 방치된 백화점에 입성했다. 무단점거운동, 스쾃(squat)의 대표적인 이름이 된 '타헬레스'의 탄생이었다. 타헬레스란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명확하게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유대어다. 이 명랑한 스콰터(squatter)들은 명확하게 “너희는 건물을 가졌지만 쓰지 않고 있고, 우리는 돈이 없지만 작업실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원래 그 건물은 1907년 백화점으로 지어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건물이었다. 이곳은 철거될 운명에 놓여있었는데, 예술가들이 이곳을 다시 살려냈다. 하지만 정부의 관점은 예술가들과는 달랐다. 그 후 10년간 강제퇴거의 협박과 버티기의 지난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정부가 “문화공간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라고 판단을 바꾸면서 타헬레스의 위상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1999년, 정부 보조금까지 받는 예술단지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50여 명의 전세계 예술가들은 관리비에 해당하는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작업실을 합법적으로 대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불법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골든홀과 블루살롱, 영화관 겸 카페 Highend 54 등의 공동 공간에서 수시로 전시회, 공연, 콘서트, 영화상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피티로 가득 찬 타헬레스 전경.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합법적인 지위와 실험성을 바꿨다.”는 통렬한 비난과 정부의 간섭이 타헬레스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2009년 이 건물을 소유한 투자펀드 푼두스 그룹에서 10년의 임대계약이 끝났다며 예술가들에게 강제퇴거를 통보해 또 다른 지난한 싸움을 맞이하게 되었다. 베를린 반문화(Counterculture)운동의 상징이었던 타헬레스는 이에 “우리는 과거에도 무단점거자였고, 이제 다시 무단점거자로 돌아왔을 뿐”이라며 당당한 한판 싸움을 다시 벌이고 있다.



천사와 인간, 손을 잡다 - 전승기념탑(Siegessaule)

전승기념탑 꼭대기의 '황금의 엘제'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천사 다미엘은 황금빛 여신의 동상 어깨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독일어로 속삭이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Der Himmel ueber Berlin]는 1987년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하고 페터한트케가 공동으로 각본을 쓴 작품이다. 서커스단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아름다운 마리온을 사랑하게 된 천사 다미엘은 고뇌 끝에 인간이 된다. 영화적 완성도로도 격찬을 받았던 이 영화는 베를린 전승기념탑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도 한몫했다.


다미엘이 앉아있는 황금빛 여신을 베를린 사람들은 ‘황금의 엘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원래는 승리의 여신인 ‘빅토리아’다. 키가 무려 8.3m에 달하는 이 조각상은 무게만도 무려 35톤. 프리드리히 드라케(Friedrich Drake)가 조각한 것이다.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그로쎄 티어가르텐(GroBe Tiergarten)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전승기념탑은 1873년에 하인리히 슈트라크스(Heinrich Stracks)의 설계로 완성되었다. 덴마크(1864년), 오스트리아(1866년), 프랑스(1870년~71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이었다. 탑 내부에 있는 285개의 계단을 오르면 베를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다미엘처럼 황금의 엘제 어깨에 앉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67m 높이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으니, 다미엘의 기분을 비슷하게 느껴볼 법도 하다.



동독과 서독, 마주보다 -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어, 한때는 독일의 분단을 상징했고 이제는 독일통일의 상징이 되었다. 1788년부터 91년까지 3년여에 걸쳐 지어진 이 문을 설계한 이는 칼 고트하르트 랑한스(Carl Gotthard Langhans). 처음에는 도시 성문으로 만들어졌으나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시내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 위의 동상 크바트리가(Quadriga)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에 올라타고 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2009년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지 20년째 된 날이었다.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시작하여 브란덴부르크 문을 거쳐 국회의사당까지, 1.5km에 걸쳐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선을 따라 1,000여 개의 도미노 벽이 세워졌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재연하기 위해서였다. 각국의 예술가들이 하나씩 맡아 자유의 메시지를 형상화한 이 도미노 벽은 10만 명이 참여한 대대적인 ‘자유의 축제’ 끝에 장엄하게 쓰러졌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나누었던 베를린장벽은 통일 이후 부서진 조각들조차 기념품으로 부지런히 실려나가 지금은 보기 힘들다. 오스트반호프(Ostbahnhof)역 부근에 남은 장벽만이 세계 각국의 118명의 작가들이 그림을 그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되었다.


동서분단시절 브란덴부르크문을 낀 장벽을 통과하는 방법을 설명한 안내문.



음악, 모두의 손을 잡다 - 러브퍼레이드

여러 도시에서 계속되고 있는 러브퍼레이드 포스터.


독일은 음악과 아주 밀접한 나라이다. 바흐, 헨델, 베토벤, 바그너,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말러 등의 대가 이름만 떠올려도 그 관계가 어렵지 않게 짐작되리라. 베를린 필하모니, 드레스덴 오페라, 라이프치히 오케스트라는 또 어떤가. 현대음악에서도 독일의 활동은 대단하다. 그런 곳이기에 ‘러브 퍼레이드’가 열리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사랑과 평화의 테크노 축제 ‘러브 퍼레이드’ (Love Parade)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넉 달 전, 생활 예술가이자 DJ이며, 미장이였던 ‘모테 박사’(Dr. Motte)의 주창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쓸쓸히 보내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로 퍼레이드를 개최한다. 그가 집회 허가 신청을 낼 때 내세웠던 모토는 ‘평화, 기쁨 그리고 팬케이크’ 였다. 그것은 군비 축소와 음악을 통한 화해, 그리고 공정한 분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날, 한 대의 트럭과 약 150명의 사람들이 당시 서베를린의 소비의 중심지였던 쿠담(Kurf rstendamm)거리를 행진했다. 그것이 말 많고 탈도 많으면서 기쁨으로 가득찬 러브 퍼레이드의 시작이었다.


참가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1996년부터 에른스트 로이터 광장, 6월 17일의 거리, 브란덴부르크 문, 전승기념탑까지 펼쳐지게 된 러브 퍼레이드는 매년 7월 첫째 토요일에 열린다. 행사로 인한 소음과 환경파괴, 엄청난 쓰레기 처리문제, 마약의 남용과 폭리, 무단방뇨 등등의 문제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러브 퍼레이드의 정신은 세계 각지로 퍼져 다양한 나라에서 같은 이름의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학살자, 죽인자를 추모하다 - 유태인 박물관(Judisches Museum)

히틀러 정권에 의해 학살된 유태인은 600만 명.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비극의 가해자로서, 독일은 반성을 아끼지 않는다. 위령탑을 건설하고 광장을 만드는 한편, 유태인들의 끔찍했던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하게 만드는 유태인 박물관 건설에도 발벗고 나섰다.

2001년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이곳은 소장품이 아니라 건물 자체로 유명해진 드문 케이스의 박물관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로크풍의 구 박물관을 지나 지하통로를 거쳐야 한다. 입구에서부터 가스실과 수용소에서 대량학살된 유태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윗별을 참고한 건물의 전체적 모양, 칼로 난도질한 듯한 가늘고 길고 불규칙한 창문들, 49개의 기둥에 심어놓은 49그루의 올리브나무로 이루어진 ‘Garden of Exile(추방의 정원)’, 메나슈 카디쉬만(Menache Kadishman)의 작품 [낙엽]을 설치하여 절규하는 사람얼굴 모양의 철 조각들을 깔아놓아 밟아야만 지나갈 수 있게 만든 [memory void, 공백의 기억], 아무것도 없는 거대하고 높은 밀실인 홀로코스트 타워 등의 요소들은 풍부한 상징을 담고 있다. 빈 전시실조차도 사라진 유대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원래 지금과 같이 따로 지을 계획이 아니라, 베를린 박물관의 부속건물인 유대인관으로 계획되었던 이곳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이 확장되었다.


유태인 박물관 내부전시실 풍경.



동성끼리 팔짱을 끼다 - 놀렌도르프 광장

20세기 초의 놀렌도르프 주변.이때부터 게이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베를린의 다른 이름은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다. 전체 주민의 약 10%, 35만 명 가량이 동성애자라는 수치는 이곳이 다른 도시에 비해 동성애자들에게 비교적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분단시절 서베를린으로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군대 면제 등의 혜택을 내밀자 이를 받아들인 동성애자들의 이주가 급격히 늘면서, 베를린은 명실상부한 유럽 최대 동성애 도시로 떠올랐다.


‘놀렌도르프 광장(Nollendorfplatz)’은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술집, 바, 카바레들이 모여 있는 카페거리로 유명하다. ‘놀렌도르프 광장’ 역 건물에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죽어간 동성애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있다. 나치가 학살한 것은 유태인만이 아니었다. 게르만 민족의 피를 더럽히는 불순한 자들로 규정된 동성애자들은 가슴에 핑크색 역삼각형(Rosa Winkel)을 붙이고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어야 했는데, 더군다나 유태인이라면 노란색 정삼각형을 겹쳐 달아야 했다. 그들에 대한 대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했다고 한다. 1933년에는 놀렌도르프 광장 주변의 동성애자 카페들이 대부분 강제로 폐쇄당하는 역사적 아픔을 겪기도 했다.

■ 유럽 여행, 어떤 도시가 항공권 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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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행의 여행에 의한 여행을 위한 때'가 다가오고 있다. 사흘 연차를 붙이면 최대 11일의 휴가가 가능한 5월 황금연휴는 '매진 사례'가 된 지 오래다. 하루만 휴가를 내면 열흘을 쉴 수 있는 10월 한가위 연휴와 평균 일주일가량의 여름휴가를 노리는 얼리버드 여행족 역시 요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행업계는 예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 동남아시아 등 단·중거리 여행지가 아닌 미주, 호주, 유럽 등의 장거리 여행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알뜰여행족은 여행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권을 보다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정보망을 총 가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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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대표하는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 가우디가 건축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여행 가격 비교 사이트 스카이스캐너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떠나는 해외 항공권 구매 시 연평균보다 낮은 가격에 구매하려면 최소 석 달(11주) 전에는 예약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월에 여름휴가를 떠나려는 이라면 늦어도 4월인 바로 이때 예약하는 것이 가격적으로 유리하다는 얘기. 그래서 여플(여행+)이 준비했다. 긴 이동 시간만큼이나 항공권 가격도 천차만별인 유럽을 합리적인 가격에 다녀올 수 있는 팁이다. 특히 유럽 여행지 '삼대장'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주요 도시를 가장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는 비법을 공개한다. 

유럽 여행의 관문인 프랑스에서 가장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도시는 어디일까. 스카이스캐너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리행 항공권은 프랑스행 전체 항공권 평균 가격보다 무려 47%나 저렴했다. 리옹은 27%, 툴루즈는 11%가량 가격이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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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에 있는 세 개의 다리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리옹은 '프랑스 제2의 도시'이자 '미식의 본고장'이라고도 불릴 만큼 '먹방' 여행에 최적화돼 있는 곳이다. 레스토랑만 약 2000곳. 도처에서 미쉐린(미슐랭) 레스토랑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전통 음식인 '리옹식' 부숑 요리 같은 리옹 사람들만의 특별한 음식 문화를 접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프랑스 남부 지방 중심에 위치한 툴루즈는 관광객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욱 신선함이 가득한 도시다. 툴루즈의 별명은 '핑크 시티(Pink City)'. 대부분의 건물이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붉은 장밋빛을 띠고 있다. 장밋빛 도시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큰 광장으로 나서야 한다. 사방이 온통 붉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대표적 관광 명소 카피톨(시청)이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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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를 흐르는 가론강의 퐁뇌프 다리. 석양이 질 무렵 가장 아름답다.

태양 같은 열정이 가득한 스페인은 전지현 이민호 주연의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 주 배경지로 등장하며 최근 더욱 관심을 높였다. 스페인에서 항공권이 가장 저렴한 도시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말라가 순. 마드리드행 항공권은 스페인행 전체 항공권 평균 가격보다 약 23% 저렴했고 바르셀로나는 22%, 말라가는 17%가량 가격이 낮았다. 

스페인은 지역마다 자연환경도 다르고 지방색이 뚜렷해 각 도시 개성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마드리드 왕궁과 마요르 광장이 주요 볼거리. 바르셀로나에서는 지중해의 매력을 머금어 더없이 아름다운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으뜸이다. 여기에서는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비교적 싼값에 맛볼 수 있다. 또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흔적을 군데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관문인 말라가는 천재 화가 피카소와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고향이다. 도시 곳곳에 피카소가 남긴 많은 작품과 여운을 확인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반데라스의 흔적도 만나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낭만의 나라답게 항공권 가격에도 낭만을 담았다. 이탈리아에서 항공권이 가장 저렴한 도시는 베니스와 로마, 트리에스테 순이었다. 베니스와 로마의 항공권 절감률은 14%, 트리에스테는 13%였다. 

'물의 도시'로 잘 알려진 베네치아는 120여 개 섬과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다. 운하를 따라 오가는 곤돌라와 노를 젓는 뱃사공, 알록달록한 건물들, 아름다운 궁전과 다리 등 도시 전체가 낭만 덩어리다. 그래서일까.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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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강과 론강 두 개의 강줄기가 흐르는 리옹. 혁명기념일에는 성당을 중심으로 대규모 불꽃놀이 행사가 열린다.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트리에스테.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리적 특성 덕에 이탈리아와 동유럽 문화가 조화를 이룬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일리(illy) 커피의 본고장이기도 해 도시 전역에서 에스프레소의 깊은 맛과 향기를 접할 수 있다. 매년 10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바르셀로나 요트레이스가 열려 항구에 하얀 돛을 단 요트가 장관을 이룬다. 


아이들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코펜하겐의 카고 바이크

앞 바구니에는 짐을, 뒷자리에는 아이를 싣고 집으로 향하는 엄마 아빠들을 마주하는 일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우리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대체 자전거는 덴마크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코펜하겐의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카고 바이크. 오후 네 시경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이면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러시아워도 함께 시작된다.

30년 역사의 카고 자전거, 뒷자리는 아이들 차지

덴마크 가정에서는 대개 자녀가 세 살 무렵부터 여섯 살 사이에 자전거를 가르친다. 예전에는 페달이 달린 세발자전거를 주로 이용했지만 오늘날에는 페달이 없는 트레이닝 자전거로 균형 감각을 익히고 스피드 조절을 하며 아이 스스로 자전거를 놀이처럼 즐기면서 배울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자전거는 유년 시절 코드의 하나로 깊숙이 자리매김된다. 이런 동기 부여 과정은 부모가 자전거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정에서 더욱 극대화되는데, 특히 덴마크에서 눈에 띄는 자전거는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카고 바이크다.

카고 바이크는 말 그대로 수레를 끄는 자전거다. 매일 아침 8시에서 9시경 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카고 바이크에 싣고 등교시키는 부모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일곱 살과 두 살배기 두 아이를 둔 젊은 워킹 맘 스티느에게 카고 바이크는 차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우선 차를 차고에서 빼내고 또 학교 앞에 주차하느라 걸리는 시간이 절약되므로 아이들은 그 시간만큼 아침잠을 더 잘 수 있다.

또 출근 시간에 차가 막혀 지각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아이를 등하교시키며 운동까지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학교 앞의 자전거 등교 풍경 속에서 만난 리센느 역시 아들을 등교시키는 중이었다. 그는 카고 바이크의 일종인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를 만들고 있는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며 바이크 제작 공간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만든 자전거로 아들과 함께 등하교하면서 더 많은 교감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등굣길에는 아이의 컨디션과 기분을 체크하고, 하굣길에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란다.

크리스티아니아 대장간은 올해로 30년을 맞아 그동안 만들어낸 자전거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외부에 전시를 해놓고 있었다. 자전거 카고의 형태와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기본적인 패밀리 모델은 1만1600크로나(한화 210만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튼튼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한 번 구매하면 자신이 탄 뒤 다시 수리하여 자녀가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대를 물려 이어지는 덴마크인의 자전거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하교 시간인 오후 세 시 반, 리센느는 아들을 데리러 가는 길에 필자를 카고 바이크에 태워 시내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한 바퀴로도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그에게 믿음이 가 카고에 올라타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버스로 40분 남짓 걸렸던 거리가 20분 거리로 짧아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전거 수레 속에서 봤던 가을날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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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운전하는 카고 바이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꼬마 숙녀. 어린아이들에게 안전을 위해 헬멧을 착용시키는 것은 부모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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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아이들의 자전거와 카고 바이크들. 자신의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이미 이 자전거 주차장에서 질서를 배운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카고 바이크 브랜드의 오리지널로 꼽힌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가 만들어진 이후 7~8개 브랜드가 후발 주자로 생겨났지만 카고 바이크 하면 여전히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자전거 구매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www.christianiabikes.com)에서 얻을 수 있다. 본사를 직접 방문하고 싶다면 Christiania Smedie, Mælkevejen 83a, 1440 København K.

유모차만큼 흔한 필수품, 소규모 가판대로도 이용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카고 바이크보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971년부터 코펜하겐시 동쪽의 해군 기지 터에 히피, 예술가, 젊은 사회 운동가들이 자리 잡으면서 만들어진 문화 예술 공동체 혹은 새로운 대안 마을인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초창기 주민 900여 명은 버려진 군사 시설이던 34헥타르의 땅에 평화를 지향하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보존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정부는 긍정적인 측면의 '사회적 실험'으로써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물질적 가치로 결정되는 삶을 거부하고 작은 일 하나도 표결을 통해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데, 이 작은 공동체 부락에는 자동차가 없다. 허락된 유일한 교통수단은 자전거뿐.

1978년 문을 연 대장간 'Christiania Smedie'에서 침대 프레임을 이용해 짐을 옮길 수 있는 카고 바이크를 만들어 자신의 약혼녀에게 선물한 대장쟁이의 아이디어가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의 시초가 되었다.

1984년 이 자전거의 시중 판매가 이루어진 이후 30년을 맞이한 올해,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덴마크의 오래된 자전거 문화에 한 획을 긋는 발명품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수출까지 하면서 덴마크의 심벌로도 유명해졌다.

현재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열두 가지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우체부가 모터바이크 대신 카고 바이크를 타고 우편 배달을 하고,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유모차만큼이나 흔한 육아 필수품으로 사용된다.

더욱이 아이들뿐 아니라 아이를 동반한 어른 한 명을 태워도 거뜬하며(자전거 운전자를 제외하고 100kg까지 적재 가능하다), 가판대로도 활용 가능한 수레가 달린 이벤트 바이크도 있어 자신만의 소규모 창업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카고 자전거가 갖는 매력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덴마크에서 카고 바이크를 비롯한 자전거가 가장 편리하고 긍정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덴마크는 가장 높은 지대가 해발 150미터에 불과할 만큼 국토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등 자전거를 타기에 쾌적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 환경 보호 정책의 하나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에 매기는 탄소 배출세를 자동차 구매 시에는 180퍼센트나 부과한다.

여기에 안전하게 정비된 자전거 도로(코펜하겐 시내에만 411km의 자전거 도로가 마련되어 있다)와 자전거를 위한 교통 시스템도 큰 몫을 차지한다. 따라서 덴마크인들에게 자전거는 '가장 빠르고 편리하면서 가장 경제적인 교통수단'인 것이다. 즉 자전거가 환경을 보호하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덴마크인의 정서와 이를 정책으로써 뒷받침하는 국가의 노력이 고루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쓴 정민혜는…

도쿄를 거쳐 파리에 정착한 지 5년. 온라인 빈티지 숍을 운영하며 틈나는 대로 유럽의 도시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체험한 그곳의 라이프스타일을 사진과 글로 전하고 있다.

↑ 0001(카파도키아 명물인 기구투어. 중력의 힘을 가뿐하게 이겨내어 새가 되어 날아보자. 열기구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이 크다.)

[MOUNTAIN=김지영] 최근 들어 TV나 블로그 등의 홍보로 터키 여행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꼬마들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여행 필수코스가 되어버렸다. 이들은 자고 먹고 반복해도 제자리의 시계바늘처럼 쉽게 줄어들지 않는 12시간의 비행시간을 비웃듯이 가볍게 비행기에 올랐다. 저녁에 출발해, 도착하니 다시 저녁이다.

중력을 이겨내는 어마어마한 힘을 얻다
터키 아타투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행은 이제 시작. 영어와 터키어로 복잡하게 뒤얽힌 국내선으로 한 번 더 갈아타고, 총 14시간의 비행시간 후에 도착한 곳은 카파도키아 지역의 괴레메 마을이다.

↑ 0002(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바위 안에 파인 수도원으로 들어가, 박해받은 그리스인들이 되어보자.)

카파도키아는 비잔틴(로마)시대에 기독교인에 설립 된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시대의 지역 명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 시기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시대의 탄압을 피해 이곳에 자리매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 왕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것도 카파도키아였다. 또한 비잔틴 시대에 정치권력과 손을 잡은 타락한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수도승들이 함께 모여 살며 개혁 운동을 시행하던 곳에서 의미가 깊다. 로마시대의 일상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새롭고 신기할 뿐이다. 기독교 박해로 수천, 수만 세월 동안 자연의 풍화 작용으로 만들어진 희귀한 바위 속에 동굴을 만들어 숨어 살던 그들의 일상은 현 시대의 우리에게는 소중한 역사 속의 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 0003(그리스도인들이 카파도키아에서 교회를 세우고, 예수, 성모 마리아 등의 그림들을 그리고,숭배했다.)

카파도키아는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층이 굳어 긴 시간동안 자연적으로 생겨난 모습이다. 이 곳의 지역에 있는 바위들이 비슷하고, 똑같이 생겼더라 하더라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모습이 아니라, 자연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희귀한 광경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카파도키아에서는 생명체가 살 수 없을 것 같은 황량함을 느낀다.

↑ 0004()

↑ 0005(수 만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기괴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제미벨리의 바위 속에 파뭍혀 길을 걸어보자.)

이틀간의 카파도키아 여행은 첫날 기구투어, 그린투어에 합류해 진행하고, 둘째 날에는 카파도키아를 내 몸으로 느끼기 위해 다양한 지역 주민에게 물어물어 잘 나오지 않은 지도를 보고 협곡 트레킹을 떠났다.
한국에서 카파도키아는 기구투어를 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새벽 일출과 함께 카파도키아의 다양한 모양의 바위 위를 날고 있노라면, 한가로이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된다. 나를 누르는 중력은 어디 갔는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기구에 비춰지는 카파도키아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를 하며, 서로의 여행 계획을 묻는다. 그리고 여행에서 있었던 재밌는 사건 사고들을 말하며 서로 공감하고 좋아한다. 터키여행의 시작이 좋다.
기구는 엄청난 열기와 공기로 힘껏 어깨 필 준비만으로도 충분한 위엄을 자랑하며 우리를 압도 시킨다. 누워만 있던 열기구가 이제 기운을 차린다. 조금씩 일어난다. 아무리 열과 공기를 불어넣어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열기구가 벌떡 일어선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고 열기구에 올랐다. 열기구에서 내려 보는 카파도키아는 우주에서 자전을 멈춘 지구를 보는 듯하다. 나를 누르는 중력을 내가 손 하나 까딱 해 밀어내고 있다. 하늘 위에서 내일의 트레킹 코스도 함께 가늠해본다.


↑ 0006(황폐할 것만 같은 카파도키아에 흐르는 생명력 넘치는 으흘랄라 계곡. 그린투어를 이용하여 반드시 방문해보자.)

황량한 카파도키아에서 생명을 찾다
그린투어는 카파도키아 괴레메에서 약 1시간가량 차로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으흘라라 계곡을 가기 위해 신청했다. 입구에서 내려다보는 계곡과 양쪽으로 높이 뻗은 바위들은 다시 한 번 환호성을 지르게 한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높은 이 바위틈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기독교인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이러한 놀라움에 바위를 따라 내려가 길의 바닥에는 흐르는 계곡 물이 있다. 황량했던 카파도키아에서 계곡을 보다니.
으흘랄라 계곡 트레킹은 처음 약 10분간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계곡에 이르러 평평한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이 오솔길을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가량 걷다보면 출구가 나온다. 버스를 이용해도 되지만, 그린투어에 참가하면 먼 곳까지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 0012(카파도키아에 방문하면 동굴호텔에서 분위기를 흠뻑 느껴보자.)

그린투어에는 이 밖에도 유네스코에 등록된 데린쿠유 지하도시도 함께 방문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땅 아래에 굴을 파고 조성한 도시인데, 카파도키아 전체 30개가 넘는 지하도시가 있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을 뒤로 하고, 지하 8층 깊이의 이곳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시원하고, 아늑해 좋다. 하지만 아직 지하 일층. 가이드의 인솔아래, 한 층 한 층 계속 내려간다. 내려갈수록 내 한번 굽혀진 허리는 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왠지 산소도 부족해서 숨도 더 차는 듯 한 느낌이다.
이 지하도시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져서 환풍구도 있고, 지하 8층까지 식수나, 물건들을 나를 수 있는 통로도 있다. 이러한 좁은 곳에서 박해를 받아도시를 형성하고, 살아갔다는 비잔틴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하니, 재미있게 구경하러 온 나의 마음이 숙연해졌다.

스타워즈 주인공처럼 희귀한 바위들 사이를 누벼보자
오늘은 어떤 투어에도 참여하지 않고, 내 두발로, 내 눈으로 길을 찾고 걸어 다닐 예정이다. 물론 내 보물인 지도를 들고 총 네 곳의 협곡을 트레킹했다. 유명하지만 일반적으로 투어가 연결되지 않아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제미벨리를 비롯하여 로즈벨리와 레드벨리까지 계획했다. 약 6~7시간에 걸친 벨리 트레킹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대중교통 없이도 쉽게 걸어가면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인적이 드물지만, 넓은 벨리 속에서 그들만의 트레킹 길 표시가 수많은 길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는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준다. 길이 다양하게 있을 때는 주위를 둘러보고 방향표시를 찾자.


↑ 0014(인적이 드물지만, 길을 잃을 위험은 없다. 주위를 둘러보고 표지판만 잘 따라가면 된다.)

제미벨리는 괴레메 마을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벨리의 초입은 우뚝 솟은 바위들 사이로 길이 나있다. 사실 이 계곡은 여행책자에 따르면 4~5km 정도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계곡 끝부분은 길이 보수가 되어있지 않고, 잃을 위험이 크다. 시작점에서 출발해, 약 한 시간가량 표시가 잘 되어있는 길을 따라 둘러보고 나오는 것이 좋다.


↑ 0013(레드벨리와 로즈벨리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볼 수 있다.)

제미벨리를 걷고 있으면 멀리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년과 같은 풍광을 자랑하는 레드벨리와 로즈벨리를 함께 볼 수 있다. 제미벨리를 따라 걷다보면 유네스코에 등록된 교회를 볼 수 있다. 이 교회에서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의 가던 길을 붙잡고 차 한 잔주시며 교회를 소개시켜주신다. 처음엔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현지인이 처음이라 거리감을 두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교회를 몇십 년 동안 지키시면서 세계 각국의사람들에게 괴레메 마을의 자랑거리와 구경거리를 소개해 주시고, 한숨쉬고 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셨다. 그의 친절함에 낮선 길을 걷는 나의 긴장감을 따뜻한 홍차 한 잔으로 사르르 녹여주었다.

↑ 0011(갈라타 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전경.)

레드벨리와 로즈벨리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꼬리를 살랑 거리는 레드벨리와 로즈벨리는 같이 이어져 있어서 한 번 가면 일석이조로 트레킹을 할 수있다. 보통은 로즈벨리 투어에 있어서 약 만 원 정도만 여행사에 지불하면 트레킹 시작하는 입구에 데려다 주고, 아크테페라는 일몰 전망대에서 일몰을 보고 데려와 준다. 몇 몇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여행객들을 위해 기구투어, 그린투어를 하면 서비스로 함께 신청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제미벨리를 지나 레드벨리 향했다.
이곳은 투어로는 보지 못할 길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위 사이도 지나가고,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외계의 행성에 와 있는 느낌도 준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다 길이 없으면 주위를 살피라. 또 길 표시가 있다.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 레드벨리가 나온다. 약 2km를 가면 입구가 나오고 이제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레드벨리와 로즈벨리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의 축소판이다. 광활한 붉은 바위들로 장관을 만드는 협곡들 사이로 메마르지만 장엄한 바위들이 솟아나 있다. 이렇게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면 괴레메 마을과 차우신 마을로 갈라지는 지점이 나온다. 각자의 목적지에 따라 길을 선택을 하면 된다.

기운이 넘치는 자연의 힘을 보고, 듣고, 느껴보자
페티예 시내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고불고불한 산길을 가다보면 눈앞에 펼쳐진 사클라켄트를 발견한다. 사클라켄트는 페티예 남동쪽 약 55km에 자리한 협곡으로 여름에는 계곡 트레킹이 명성을 날린다. 계곡 입구 마을부터 이미 적벽대전에서 승리하고도 남을 엄청난 기운을 느낀다. 표를 끊고 200 미터 가량은 안전하게 계곡 트레킹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충분히 기운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름이나, 오전 중엔 가이드와 함께 안전하게 계곡에서 두발로 걸어보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 물 속에서 내 두발은 왠지 모를 신선노름이다.

↑ 0007(욜루데니즈 해변의 사람들 틈에 낚시하는 노인.)

페티예의 이튿날은 고대하던 욜루데니즈 블루라군 트레킹이다. 시작은 페티예의 카야쾨이, 그리스인들이 거주하였다가 지금은 다 빠져나가버린 유령도시이다. 이곳에서 도착해 한걸음씩 올라가면 송글송글 맺히는 내 이마의 땀. 더워서인지, 아무도 살지 않는 카야쾨이의 적막함으로 등골이 오싹해져서 인지 알 수 없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페티예에서 올라가는 길은 노란색과 빨간색 선으로 돌이나, 기둥 등에 표시가 되어 있다. 또한, 카야쾨이 마을 위에만 올라가면 평탄한 길로 블루라군 뿐만 아니라, 봄이면 나비가 가득한 버터플라이 계곡까지 보면서 내려올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오면 길을 찾기 어렵고 오르막길이 계속되며, 무엇보다 블루라군에게 당신의 뒷모습만 보여준다. 그러니 선택은 자유.

↑ 0008(파묵칼레. 따뜻한 온천수 속에 발을 담가 여행의 피로를 풀어보자.)

약 두 시간의 트레킹을 마치면 바로 욜류데니즈의 해변에 도착한다. 트레킹을 하면서 쌓인 땀들을 씻어 내기에 이 해변의 해수욕은 보너스. 게다가 머리 위에서는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장소의 명성에 걸맞게 2700m 가량의 높이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들을 보며 해수욕을 하노라면, 내 마음도 몸도 절로 두근거린다.
아침이면 더욱 빛나는 욜루데니즈 블루라군 바라보며 바람과 함께 생활의 스트레스도 함께 날려보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된다.

↑ 0015(히에나 폴리스. 파묵칼레 뒤편에는 아름다운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유적지를 발견할 수 있다.)


남프랑스 툴룽부터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40킬로미터의 해안을 일컫는 코트다쥐르.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2곳의 휴양지 칸과 생트로페를 찾았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휴가를 보냈다.

↑ 남프랑스 ㅋ코트다쥐르의 바닷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승자는 혼자다>에는 영화제 기간 동안 칸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영화 제작자의 눈에 들기 위해 1년 내내 모은 돈으로 산 가장 비싼 옷을 입고 온 배우 지망생,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영화제를 찾은 왕년의 스타 등 칸 영화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꿈과 욕망의 파노라마에서 칸은 꿈과 허영, 패션과 유명인, 물질과 가치 등 모든 것이 공존하는 곳으로 표현된다. 크루아제트 거리Boulevard de La Croisette의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던 람보르기니와 롤스로이스가 차례로 지나갔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동네 할머니 패션조차 예사롭지 않다. 택시 운전사도 레스토랑 점원도 할리우드 배우 빰치게 잘생겼다. 칸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칸은 압도적인 레드 카펫의 이미지에 밀려 도시 자체의 아름다움이 가려진 것도 사실이다. 은막에 고정된 시선을 잠시 돌리면 칸은 영화만의 도시가 아니다. 도회적인 건물들과 큰 도로에 일렬로 종려나무가 서 있는 풍경은 언뜻 하와이나 캘리포니아와도 겹쳐진다. 니스에서 남쪽으로 26킬로미터 떨어진 칸은 코트다쥐르의 피한, 피서지로 유명하다. 중세까진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으나 19세기에 해수욕장으로 발전했으며, 특히 제2제정시대(나폴레옹 3세 통치 시대) 이후 대규모 호텔이 건립되면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칸은 니스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크기지만 비즈니스는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에요. 작지만 4성급 이상의 호텔이 100여 개나 있고, 매달 이벤트와 국제적 규모의 각종 축제가 열리죠. 9월 9일에는 인터내셔널 보트 쇼인 칸 요팅 페스티벌Cannes Yaching Festival이 열리기도 했어요." 칸 관광사무소의 카린 오스Karin Osmuk은 칸이 고급 휴양지인 동시에 비즈니스 포럼이나 영화제, 광고제 등 국제적인 페스티벌이 많이 열리는 문화와 비즈니스의 도시라는 것을 강조했다.

관광은 보통 칸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데 페스티벌에 데 콩그레Palais des Festival et des Congres'(이하 '팔레 데 페스티벌')부터 시작한다. 세계적인 영화제가 열리는 곳 치고 생각보다 평범해서 실망스러웠을 때, 길바닥에 새겨진 세계적인 배우들의 프린팅이 눈길을 모았다. 새겨진 이름을 하나하나 살피며 시동을 걸다보면 그 옆에서 칸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크루아제트 거리가 손짓을 하며 유혹한다.

웅장하고 고전적인 고급 호텔들과 명품 부티크, 길게 뻗은 백사장, 호화로운 요트와 바닷가 앞의 바, 거리를 수놓은 종려나무, 웃통을 벗고 거리를 뛰는 청년들. …, 이국의 정취가 물씬하다. 2킬로미터 남짓의 크루아제트 거리를 거닐다보면 마치 레드 카펫을 걷는 것처럼 흥분되고 들뜬다. 크루아제트 거리 앞 백사장은 대부분 호텔과 레스토랑 소유라 백사장에 몸을 눕히는 게 쉽지 않지만, 거리 벤치에 앉아 코발트빛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국의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영화제가 열리는 시즌의 칸에서는 호텔 잡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수상작 못지않게 어떤 배우가 어떤 호텔에 머무는가도 이 시즌의 핫 이슈다. 크루아제트 거리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칸과 인터컨티넨탈 칼튼 칸은 그중에서 가장 핫한 호텔들이다. 인터컨티넨탈 칼튼 칸은 1911년에 생긴 유서 깊은 호텔로 그레이스 켈리, 알프레드 히치콕, 소피 마르소, 시드니 폴락 등 내로라하는 배우와 감독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그레이스 켈리는 1955년 칸 영화제 때 이 호텔에 머물다 모나코의 왕자 레니에 3세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7층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이 호텔에서 가장 럭셔리한 그레이스 켈리 스위트룸이 있다. 이외에도 스타들이 머물렀던 39개의 객실들은 스타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배우들이 이 호텔에 오면 그 방에 우선적으로 머문다. 그랜드 하얏트 칸 역시 오랜 역사와 고풍스럽고 우아한 건축 양식으로 유명 배우와 감독들이 즐겨 찾는 호텔이다. 이곳에는 27개의 스위트룸과 유럽 내에서 가장 큰 스위트룸인 '펜트하우스 스위트'가 있다. 리비에라 해안을 둘러싼 크루아제트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펜트 하우스의 테라스는 칸의 드라마틱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가장 좋은 위치에 넓은 프라이빗 해변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 있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 거리의 악사.

구시가는 크로아제트 거리와 달리 정감 있다. 포빌 시장 앞 거리의 악사.

↑ 칸에는 영화와 관련된 13개의 벽화가 있다.

칸에는 영화와 관련된 13개의 벽화가 있다.

↑ 구시가의 골목길을 찾은 관광객들.

구시가의 골목길을 찾은 관광객들.

↑ 이국의 정취가 물씬한 크루아제트 거리 앞 바다.

이국의 정취가 물씬한 크루아제트 거리 앞 바다.

살아 있는 칸을 만나는 법

살아 있는 칸의 모습을 만나려면 옛 항구 비외 포르Vieus Port로 가야 한다. 팔레 데 페스티벌 건물 서쪽, 크루아제트 거리가 끝나는 곳에 고깃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는 비외 포르 서쪽의 르 시케Le Squet 지역과 서북쪽의 생앙투안Saint-Antoine 거리 근처가 바로 구시가다. 버스 터미널 건물에 그려진 거대한 벽화가 먼저 시선을 모은다. "거주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칸은 2002년부터 거대한 벽화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도시의 다양한 장소에 영화와 관련된 그림을 그린 거죠. 모두 13개의 벽화가 있어요."

느긋하게 도시를 걷다보면 제임스딘, 마릴린 먼로, 찰리 채플린, 베트맨 등의 벽화가 있는 곳에서 발을 멈추게 된다. 언덕을 따라 좁은 골목을 올라가면 사람 냄새 나는 정겨운 풍경과 마주친다. 포빌 시장은 칸에서 가장 큰 시장이자 현지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 치즈, 올리브 등을 파는 푸드 마켓으로,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열린다. 월요일에는 각종 앤티크 그릇, 책, 인형, 잡화 등을 파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구시가 르 시케의 카스트르 광장 슈발리에 언덕으로 가면 칸의 역사적인 장소와 만난다. 카스트르 박물관Musee de La Castre은 12세기에 바다를 통해 침입하려는 외부의 적들을 감시하는 망루이자 선원들의 무사 귀환을 비는 예배당 역할을 했던 요새를 개조해서 만든 박물관이다. 네덜란드 출신 19세기 탐험가 바롱 뤼크마나Baron Lyckmana의 수집품을 기반으로 한 민속 인류학 유물, 아프리카,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부터 19세기 남프랑스 화가의 작품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보존되어 있다. 시계탑에서는 칸 시내를 360도 파노라마로 내려다볼 수 있어 늘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 카스트르 광장 슈발리에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카스트르 광장 슈발리에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 앙티브 거리에서 만난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앙티브 거리에서 만난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 인터컨티넨탈 칼튼 칸의 그레이스 켈리 스위트룸.

인터컨티넨탈 칼튼 칸의 그레이스 켈리 스위트룸. 1955년, 그레이스 켈리는 이 호텔에서 모나코 왕자를 만났다.


↑ 모차렐라 토마토 샐러드

그랜드 하얏트 칸 호텔 마르티네의 레스토랑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모차렐라 토마토 샐러드를 맛보았다.

↑ 구시가에 있는 포빌 시장. 월요일에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구시가에 있는 포빌 시장. 월요일에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칸은 아주 작은 도시다. 구석구석까진 아니어도 이틀이면 웬만한 데는 둘러볼 수 있다. 하루 더 머문다면 주변 섬으로 반나절 외유를 떠나는 것도 좋다. 칸 앞바다에는 레랭 제도로 묶이는 2개의 섬 생마르그리트Saint-Marguerite와 생토노라 Saint-honorat가 있다. 생마르그리트Saint-Marguerite는 둘 중 큰 섬인데 칸의 옛 항구 비외 포르에서 배로 15분이면 닿는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철가면>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철가면>의 모델인 수수께끼의 죄인이 갇혔던 성채가 있다. 요새였던 이곳은 오랫동안 초소와 감옥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 학생들에게도 좋은 견학 코스가 되고 있다. 좁은 감옥에 직접 들어가 보니, 철가면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성채 안의 박물관 뮤제 드 라 메르Musee de La Mer에서는 오래전 침몰한3해적선이나 화물선에서 건진 전시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와 소나무로 뒤덮인 섬은 산책하기에 좋다. 그리 크지 않아 1시간이면 넉넉히 돌아볼 수 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해안가는 동서양이 섞인 오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같은 지중해이지만 배 타고 불과 15분 걸리는 육지에서와는 바다 빛깔이 전혀 다르다. 깨끗하고 조용하기 때문에 생마르그리트 섬은 현지인들이 망중한을 즐기는 장소로 인기가 높다. 생마르그리트 섬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과거에는 한 번 갇히면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유배의 섬이었지만 <철가면>과 달리 <뇌>의 주인공은 건너편 섬으로 헤엄을 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외롭고 어두웠던 '유배의 섬'에서 이제 어둠은 사라지고 자유만 남았다. 자발적인 고립감을 느끼기 위해 15분만에 아름다운 섬으로 외유를 떠날 수 있는 칸 사람들이 마냥 부러웠다.

모든 음모론의 도시로 어서 오세요 - 산 마르코 대성당

네모 선장의 잠수함 노틸러스 호가 바다 위로 불쑥 솟아오르면, 저기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Cattedrale Patriachale di San Marco)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늙은 모험가 알란 쿼터메인, 아름다운 뱀파이어 미나, 미국의 젊은 첩보원 톰 소여, 영원히 늙지 않는 도리안 그레이, 그리고 지킬 박사와 투명인간까지... [젠틀맨 리그]의 올스타 영웅들은 왜 이 물의 도시로 왔을까? 악의 집단 팬텀이 세계 정부 수반들의 회담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테러를 벌이려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그렇다면 나는 묻고 싶다. 그 정부 수반들은 왜 이곳에 모인 걸까?


그림자 정부론이라는 게 있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선거에 따라 뒤바뀌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백 년 동안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어둠의 조직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영국(좁게는 시티 오브 런던)과 네덜란드가 그 음모의 중심으로 자주 언급된다. 바다와 금융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줄기를 더듬어 가면 결국 지중해에 자리잡은 베니스의 금융 자본이라는 뿌리에 와 닿는다. 안젤리나 졸리가 멋진 몸매를 뽐내는 [툼 레이더]에서 이 도시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일루미나티 조직의 집결지로 그려진다. 그들은 절대적인 힘을 가져다줄 '트라이앵글'의 마지막 열쇠를 찾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얽힌 이중의 음모 - 게토

세계사의 음모론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케이스는 이것이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걸작 희곡들은 사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여타의 인물이 쓴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리스트에서 이 도시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왜 17세기의 영국 작가가 저 먼 나라 [베니스의 상인]을 주인공으로 희곡을 썼을까?


지중해가 세계의 중심이었을 때 베니스의 금융 자본은 바로 그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의 왕들은 그들의 채무자에 불과했고, 로마의 교황청조차 이들엔 손끝도 못 댔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 사회의 돈줄을 완전히 주무르면서도 아랍의 여러 나라와 적극적인 교역을 할 만큼 약삭빨랐다. 그 베니스의 실세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1파운드의 살'을 담보로 삼는 음흉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라는 캐릭터는 당시의 유럽 사회가 베니스의 유대 상인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잘 보여준다.


베니스 유대인 사회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게토(ghetto)'라는 단어다. 오늘날은 유대인, 흑인, 예술가 등의 폐쇄적 공동체를 일컫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원래 이 도시의 유대인 거주 지역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베니스 북서쪽의 게토 지역은 2차 대전 때 큰 손상을 입은 뒤 복구되어 오늘날도 오랜 유대 문화의 잔재를 볼 수 있다. 참고로 신 게토(Ghetto Nuovo)와 구 게토(Ghetto Vecchio)라는 지명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신 게토가 더 오래된 동네라고 한다. 여러모로 수상쩍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룩은 베니스 유대 자본의 잔혹한 힘을 보여준다.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십자군 - 산 바르나바 교회

성배와 아버지를 찾을 단서를 얻기 위해 도서관의 지하를 뒤지는 인디아나 존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입에 대었다는 성배(Holy Grail)는 기독교 문명의 여러 전설과 픽션에 끝없이 등장하며 모험가들을 유혹한다. 20세기의 고고학 히어로 인디아나 존스 역시 그 추적자들 중의 하나. 인디아나는 성배의 행방을 찾던 아버지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뒤를 쫓다가 베니스에까지 오게 된다. 여기에 오래된 교회를 개조한 도서관이 있는데, 인디아나는 그 지하에 있는 옛 기독교인의 비밀 거주지(catacomb)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십자군 기사인 리차드의 무덤을 찾아낸다. 그리고 베니스에 존재하는 수많은 밀교 집단 중의 하나인 '십자가 검 형제회(The Brotherhood of the Cruciform Sword)'와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도서관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 판에는 '산 마르코 광장 옆의 마르시아나 도서관'이라고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다른 장소가 사용되었다.

이들이 뛰쳐나오는 문에 '산 바르바나 도서관(Biblioteca di S. Barnaba)'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산 바르바나 교회(Campo San Barnaba)'의 이름을 살짝 바꾼 것. 이 고풍스러운 교회와 주변의 가게들은 캐서린 헵번 주연의 영화 [섬머타임]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베니스에서 죽다. 죽은 뒤에 베니스에 가다 - 그랑 호텔 데스 바인스

어떤 연유에서이든 베니스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때론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1911년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베니스의 리도 섬에 있는 '그랑 호텔 데스 바인스(The Grand Hotel des Bains)'에 머무른 뒤 [베니스에서의 죽음, Death in Venice]이라는 소설을 쓴다. 주인공인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는 그랑 호텔 데스 바인스에 머무르면서 폴란드계의 미소년인 타지오를 보게 된다. 그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매혹된 구스타프는 자신의 노회함을 깨닫고 어떤 죽음의 계시를 받게 되는데, 결국 여기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1971년 루치노 비스콘티에 의해 영화화되는데, 바로 그 호텔에서 촬영되었다.


베니스의 몽환은 니콜라스 로에그 감독의 호러 스릴러 [지금 보면 안돼, Don't Look Now]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뒤 그 슬픔을 잊고자 베니스로 이사 간 부부가 오히려 그곳에서 딸에 연관된 초현실적인 체험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빨간 비옷을 입고 익사한 아이와 물의 도시 베니스가 기묘하게 연결되며 관객의 심장을 조인다. 영화 속에서 부부가 머무는 호텔 유로파는 가상의 장소로, 베니스에 있는 두 개의 럭셔리 호텔(Hotel Gabrielli Sandwirth, Hotel Bauer Grunwald)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베니스의 죽음]에서 미소년 역할을 맡은 비요른 안데르센은 그 전설적인
미모로 아직도 사랑받고 있다.

카사노바의 풋풋한 밀실 - 팔라초 말리피에로

베니스가 낳은 가장 유명한 인물.카사노바는 이곳에서 사랑의 기술을 베웠다.


베니스를 찾은 이들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미지가 있다. 리알토 다리 주변 가게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가면들. 산 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카니발에 참가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 신비에 매혹되었으리라. 가면을 쓴 채 신분과 가문을 지우고 하룻밤 연인을 찾는 전통이라니, 이 도시가 낳은 최고의 유명인 카사노바 (Giacomo Casanova)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카사노바는 1700년대 초반에 이 도시에서 태어나 근처에 있는 파도바의 학교를 오가며 청춘 시절을 보냈다. 베니스는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는 여행 붐의 필수적인 코스였다. 카니발, 도박, 곤돌라, 점술 등 온갖 환락의 기운이 넘치는 곳. 이 도시가 21세기까지 그 명성을 떨칠 바람둥이를 배출해낸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팔라초 말리피에로(Palazzo Malipiero)는 베니스의 거의 한가운데 있는 멋진 건물로, 당시 카사노바의 후견인이었던 알비세(Alvise Gasparo Malipiero)의 소유였다. 카사노바는 바로 이 건물에서 그가 여자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처음 깨닫는다.

이 도시의 천사는 그것도 뗐다 붙였다? - 페기 구겐하임 콜렉션

시대는 그 시대의 전설을 만들어낸다. 비엔날레와 영화제로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발돋움한 현대의 베니스는 그를 통해 제법 귀여운 전설을 탄생시켰다. 뉴욕과 빌바오에 거창한 미술관을 만들어놓은 페기 구겐하임은 베니스에는 작은 콜렉션(Peggy Guggenheim Collection)을 내놓고 있다. 그 입구에 이탈리아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마리노 마리니의 '도시의 천사(Angelo della Città)'라는 조각 작품이 서 있다. 마리니의 트레이드마크인 말 위에 두 팔을 펼친 남자가 앉아 있는 연작 중의 하나인데, 문제는 이 남자의 중심부가 꼿꼿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에로 영화의 거장 틴토 브라스의 나라이면서, 교황청을 품고 있는 나라다. 어린 소녀들도 자연스럽게 지나며 이 작품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 보수적인 가톨릭 인사들의 심기를 거스를 위험도 없지 않나 보다. 때문에 귀빈이 올 때는 이 부분을 나사를 돌려 뗀 뒤 그가 떠난 뒤에 다시 붙인다. 그래서 여러 번 그 부분이 도난당했다는 풍문이 있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풍문일 뿐이라고 한다.


'도시의 천사'는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미국의추상표현주의의 세계로 우리를안내한다.

다른 바다로 통하는 비밀 통로 - 병기창의 사자상

바깥의 사람들은 눈치도 못 챌 이 도시의 신비를 가장 잘 그리고 있는 작품은 아마도 휴고 플라트의 만화 [베네치아의 전설, Favola di Venezia]일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자신이 이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게토의 비밀 정원에서 할머니의 친구들로부터 갖가지 이국의 우화들을 듣고 자라났기 때문이다. 만화의 주인공인 코르토 말테제는 베니스의 밤거리를 거닐며 유대-그리스-베네치아의 전통 부적, 마법의 에메랄드, 아라비아의 묘석과 같은 신비주의의 퍼즐을 맞추어간다. 그리고 그 유명한 병기창(Arsenal)의 사자 상 앞에 선다.

병기창 앞에 있는 사자의 고향은 그리스이고.그 팔뚝에 바이킹의 낙서가 새겨져 있다.


베니스의 병기창 앞에 앉아 있는 네 사자 중의 하나는 원래 그리스 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우스에 앉아 있던 것. 1687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나선 프란체스코 모로시니 장군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사자는 기원전부터 피레우스 항에 앉아 그 바다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을 지켜보아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사자의 어깨와 팔뚝에 루닉(Runic) 알파벳과 특이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문장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 18세기에 베니스를 찾아온 스웨덴 외교관에 의해 이것이 스칸디나비아의 고대 언어임이 밝혀졌는데, 아마도 11세기에 지중해를 찾은 바이킹이 새긴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웅장한 전사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스웨덴에서 여기 왔다 가요. 여기서 돈 좀 벌었지요."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배낭여행자가 여행지에 새긴 낙서와 비슷한 종류랄까?

코르토 말테제는 베니스 곳곳의 신비주의 문양과 문자를 해독해 에게 해의 로도스섬으로 통하는 마법의 통로를 발견한다. 피레우스의 사자도 고향의 바다로 돌아가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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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보고시 은 베니스여

공주의 거짓말을 위한 면죄부 - 진실의 입

"온종일 좋은 것만 할 거에요. 머리를 깎고, 젤라토를 먹고, 노천카페에 앉고..." [로마의 휴일]의 공주 오드리 헵번은 패전의 상처로 괴로워하던 이 도시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일을 선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나? 거짓말! 공주는 서민 소녀로 변장한 채 길거리를 쏘다니다 잠든다. 기자인 그레고리 펙이 묻는다. "아가씨의 집은 어디에요?" "콜로세움!" 기자 역시 특종을 위해 그녀의 거짓말을 모르는 척한다.


둘은 스페인 광장, 마르첼로 극장, 베네치아 광장, 산타젤로 성 등 로마 곳곳을 누비며 지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하루를 보낸다. 베스파 스쿠터를 마구잡이로 몰다 경찰서에 잡혀가지만, 또 하나의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다. "결혼하러 가는 도중이었거든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Santa Maria in Cosmedin) 교회 안에는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à)'이라는 둥근 조각이 있다. 고대 로마의 분수 장식이거나 하수구 뚜껑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이 중세부터 내려오고 있다. 이 조각의 입 부분에 뚫린 구멍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을 깨물어버린다는 거다. [로마의 휴일]에서 진실의 입에 손을 넣은 그레고리 펙은 마치 진짜 손이 잘린 양 오드리 헵번을 깜짝 놀라게 한다. 헵번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진행된 장면이라 그 놀란 표정은 연기가 아니었다나. 어쨌든 아직까지 진실의 입에 손을 물린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로마에서는 웬만한 거짓말은 거짓말로 취급당하지 않는다는 걸까?

엄친아가 되고 싶은 사기꾼의 방 - 레지스 그랜드 호텔

휴가 때라면 약간의 거짓말은 용납된다. 더더구나 사시사철 들떠 있는 이 도시에서는. 그러나 스릴러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창조해낸 [재주꾼 리플리 씨, The Talented Mr. Ripley]의 거짓말은 정도가 심했다. 사기꾼 톰 리플리는 재벌인 그린리프의 부탁으로 이탈리아에서 흥청망청 살고 있는 아들 디키를 데리러 온다. 그러나 디키의 자유분방한 삶, 혹은 그 디키 자체를 사랑하게 된 톰은 결국 그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이 로마에서 디키로 변신하기 위한 공작을 펼친다.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와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로 두 번 영화화되었다. [리플리]에서 톰이 로마에서 머무는 곳은 레푸블리카 광장 근처의 레지스 그랜드 호텔(St Regis Grand Hotel)로 진짜 로마에 있다. 훗날 톰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는 디키의 친구 프레디를 만나는 곳은 나보나 광장이고, 톰이 스쿠터를 타다가 넘어지는 곳은 스페인 광장 근처이다. 픽션 속의 시대가 같은 1950년대인지라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오드리 헵번을 만났을 수도 있다.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리플리]는 1950년대의 로마를 재현하고 있다.

허영만큼 달콤한 건 없다 - 트레비 분수

믿거나 말거나의 전설로 동전을 받아먹는 트레비 분수. 그러나 그걸 훔쳐가는 인간들도 꾸준하다.


[로마의 휴일]과 [리플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1950년대의 로마는 미국인들에게 유럽의 낭만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유럽의 문화 수도 파리는 미국인들의 기를 죽였지만, 패전국의 수도이자 고대 유적들이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로마는 여러모로 느슨했다. 때문에 이 도시는 전후 10년 동안 사치스런 여행객들에 의해 방탕과 환락의 소돔으로 바뀌어 갔다.


페데리코 펠리니감독은 이 로마의 허영을 [달콤한 인생, La Dolce Vita]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느 기자의 눈에 붙잡힌 로마의 부유층과 유명인들의 세계는 눈부시지만 또한 거품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상징적인 장면이 바로 섹스 심벌 아니타 에크베르그가 트레비 분수에 뛰어들어 마치 보티첼리의 비너스처럼 물속을 거니는 모습이다.


트레비 분수는 또 다른 거짓말로 우리를 꼬인다. 바로 분수 안에 동전을 던지면 로마로 돌아온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전설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최근의 버전에 따르면 동전 세 개를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로 던지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분수는 이 거짓말로 하루 평균 3천 유로를 삼킨다고 한다.

홍콩에서 날아온 무술 영웅의 허세 - 콜로세움

[벤허]와 [글래디에이터]의 로마는 마초들의 도시다. 그 한가운데 전사들의 경기장, 콜로세움이 있다. 힘 좀 쓰는 남자들이라면 그 안에서 세계의 강자들과 목숨을 건 격투를 벌이고 싶은 꿈을 꿀만도 하다. 허세로 전설의 영웅이 된 이소룡, 그리고 그 허세로 전설의 놀림감이 되고 있는 척 노리스가 그 꿈을 이루었다.


중국인들은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했지만, 어쩐 일인지 이탈리아에서만큼은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1970년대에 와서야 이탈리아로의 이민이 본격화되었지만,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앞에 차이나타운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거절당했다. 이소룡은 [맹룡과강]을 통해 이민 초창기 로마에서 고난을 겪고 있던 중국인들을 찾아온다. 당연히 이곳의 마피아들이 그와 부딪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폭력배들은 자기 식대로 총알 세례를 퍼부으면 될 걸 어설픈 주먹질로 대든다. 그마저 여의치 않자 미국의 살인청부업자 척 노리스를 불러온다. 그 정황이야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 세기의 격투 영웅들은 콜로세움에서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게 된다.


이소룡과 척 노리스, 세기의 두 허세가 콜로세움에서 만난다.

허풍선이 남작의 제작공장 - 시네시타 스튜디오

시네시타에서는 [갱스 오브 뉴욕]의 세트장도 만날 수 있다.


로마의 거짓말은 심지어 산업적이기까지 하다. 도시의 동남쪽 교외에 있는 시네시타 스튜디오(Cinecittà Studios)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여러 걸작들을 만들어낸 이탈리아 영화의 산실이다. 더불어 [벤허] 이후 싼 제작비와 근사한 주변 환경에 매혹된 세계 각국의 영화 제작진들이 온갖 몽상의 프로젝트를 실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학사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허풍의 대명사가 영화사에서 가장 비범한 상상력의 감독을 만난 테리 길리엄의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대부분의 장면은 여기에서 촬영되었다. 영국 드라마인 [닥터 후]에서는 고대 폼페이를 재현하기도 했고,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 오브 뉴욕]을 위해 19세기 중엽의 뉴욕 거리를 완벽하게 세트화시키기도 했다.

적그리스도의 본거지, 프로폰도 로소

로마는 또한 가장 성스러운 도시, 바티칸을 안고 있다. 시스티나 성당과 같은 위대한 종교 예술들을 찬미하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도시는 동시에 가톨릭을 둘러싼 온갖 오컬트의 본령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의 예언자 전설을 테마로 한 [오멘] 시리즈의 꼬마 악령 데미안은 6월 6일 6시에 로마에서 태어났다.

[엑소시스트]의 악령이 쓰인 꼬마 리건의 엄마 역할로 오드리 헵번이 섭외되기도 했는데, 그녀가 영화를 로마에서 찍어야만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이탈리아 호러의 대명사 다리오 아르젠토는 바로 이 도시 한복판에서 어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온 로마의 검은 아들이다. 그는 [서스페리아, 1980년], [인페르노, 1980년]를 통해 '세 어머니'라는 흑해의 마녀 전설을 모티프로 한 연작을 만들어왔는데, 30년 만에 [눈물의 마녀, 2007년]로 3부작의 완성을 이룬다. 시리즈는 한숨의 어머니, 어둠의 어머니, 눈물의 어머니라는 세 마녀가 프라이부르크, 뉴욕, 그리고 로마에 본거지를 두고 어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테마를 다루고 있다. 바티칸 근처에 있는 '프로폰도 로소(Profondo Rosso)'는 호러 스릴러의 테마숍으로, 다리오 아르젠토의 작은 박물관과 같은 모습이다.


다리오 아르젠토는 로마인의 어두운 상상력을 대변한다.

난니 모레티의 진짜 로마 - 가르바텔라

가짜 로마도 진짜 로마도, 베스파 스쿠터로 달리는 것이 가장 어울린다.


그렇다면 거짓말이 아닌 진짜 로마는 어디 있는가? 로마에서 살며 로마 시민을 주인공으로 로마의 영화를 찍는 난니 모레티에게 물어보자. 그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나의 즐거운 일기]의 첫 번째 에피소드 '베스파'를 통해,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로마의 일상을 보여준다.


"나는 베스파에 탄 채 아파트들을 둘러보는 걸 좋아한다." 난니가 탄 베스파 스쿠터는 지난 수십 년간 변모해온 로마의 일상적인 풍경들을 지나간다. 특히 가르바텔라(La Garbatella) 지역은 그가 생각하는 진짜 로마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오래된 주거 지구인 이 동네는 블록마다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등 서로 다른 스타일의 건축물로 패치워크를 만들고 있다. 현대적인 건물 사이사이에 고대의 깨진 조각상들이 덩그러니 서 있다. 무솔리니 파시즘이 지배하던 때에 국수주의적 색채가 짙은 레무리아(Remuria)로 지역명을 바꾸려는 시도를 완강히 거절했을 만큼 지역민들의 자부심도 강한데, 이러한 격렬한 정신은 축구팀 AS 로마를 응원하는 벽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곡선의 미’에 취한다. 육감적인 플라멩코 댄서의 휠 듯한 춤이 아니더라도 거리를 지나치면 문득 건축물에서 유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가우디의 작품들이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누구나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추억한다. 이 고집스러운 건축가 한 명이 도시의 지도를 바꿨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들은 한해 수백만 명에 달한다. 바르셀로나는 중독의 도시가 됐고, 그 지독한 중독의 중심에는 가우디가 있다.

 

구엘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바르셀로나 전경. 뒤로는 지중해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세계유산을 만든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바르셀로나에 남긴 건축물 중 다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그 중 여행자들을 품에 안고, 눈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구엘공원이다. 야자수를 닮은 돌기둥과 벤치에 새겨진 모자이크에는 모두 그의 열정이 서려 있다. 사람들은 벤치 위에 누워 따사롭고 호화로운 휴식을 즐기기도 한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빌린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들은 화려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이다. 공원의 건축물들은 파도를 치듯 언덕을 따라 흘러내린다. 정문 앞 경비실은 동화 속 풍경을 담았고 이 지역 카탈루냐 문양을 새겨 넣은 모자이크 된 뱀도 독특하다. 담 자락에서 발견하는 모자이크들은 깨진 타일들을 정교하게 조합한 형상으로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 1 구엘공원의 건축물들은 하나하나가 개성 넘친다. 정문앞 건물은 동화에서 소재를 얻었다.
  • 2 모자이크가 돋보이는 구엘공원의 도마뱀 상은 이방인들에게는 촬영 포인트로 인기가 높다.
  • 3 구엘공원의 개성 넘치는 모자이크.

 

 

공원 건축은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구엘(Eusebi Güell)과의 인연 때문에 시작됐다. 본래는 주거용 목적으로 지었지만 공사는 도중에 중단됐고 일반인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가우디의 저택과 광장을 거쳐 공원 뒤편 언덕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가우디가 꿈꾸며 그려낸 도시의 실루엣이 지중해에 비껴 어우러진다.


거리로 나서면 곳곳이 가우디의 작품이다. 1882년 짓기 시작한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가우디의 건축물 중 웅대한 규모에 있어서 첫손가락에 꼽힌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과 돔은 창공을 찌를 듯 솟아 있다. 가우디는 40여 년간의 생애를 대성당 건설에 바쳤고 사후에도 성당 지하에 안치됐다.

 

가우디의 작품 중 가장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산트 파우 병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우디의 거리로 불린다. 이방인들은 밤늦도록 노천바에 앉아 대성당을 바라보며 가우디에 취한다. 쌉쌀한 맥주나 스페인 전통주 ‘상그리아’ 한 잔이 감동 위에 곁들여진다. 이곳에서 언뜻 눈에 띄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식습관은 특이하다. 평일 점심때 2시부터 느긋하게 정찬을 즐기는가 하면 식사 후에는 시에스타 시간이 마련돼 있다. 저녁은 9시 넘어서 먹는다. 주말에는 아예 10시쯤 시작해 자정까지 저녁만찬을 즐기기도 한다. 거리의 예술작품만큼이나 생기 가득한 바와 카페들이 뒷골목에는 즐비하다.

 

 

건물에 깃든 고집스러운 곡선미

보행자의 거리인 람브라스에서 이어지는 길목에서도 가우디의 작품들은 이어진다. 걷다 보면 천재 건축가와 골목에서 조우하는 느낌이다. 구엘궁전은 실타래를 꼬아놓은 듯한 굽이치는 정문이 인상적이다. 카사 바트요나 아파트로 지었던 카사 밀라는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그 외형에 일단 눈이 현혹된다.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는 가우디의 신념을 담아 석회암 건물의 창과 벽에 바다와 파도의 굴곡을 실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곡선은 신의 선이다’고 한 가우디의 정신이 녹아 들었다.

 

  • 1 건물 정면을 석회암으로 치장한 카사 밀라.
  • 2 동굴 느낌을 연상시키는 카사 밀라의 창문.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작품만 구경하는 별도의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물론 도시의 건축미가 가우디 혼자만의 열정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몬타네르(Lluís Domènech i Montaner)가 지은 카탈라냐 음악당과 산 파우 병원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가우디에 감명받아 건축한 첨단 돔형의 아그바르 타워는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바르셀로나는 유럽대륙과 맞닿은 지리적 여건 덕에 스페인 제일의 상공업 도시로 성장했고 그 성장을 자양분 삼아 수준 높은 예술을 꽃피웠다. 피카소, 미로 등도 이 중독의 도시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그 이름의 꼭짓점에는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의 삶과 열정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가우디는 죽음을 앞두고 그의 전 재산을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건축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 1 바르셀로나에는 건축물 외에도 자유로운 예술의 혼이 숨쉰다.
  • 2 스페인의 플라멩코에는 강렬함과 곡선미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굳이 계획된 르네상스가 아니더라도 예술의 힘은 세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가우디가 만들어낸 우아한 건축미는 바르셀로나를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로 재탄생시켰다. 그 완성에는 지난한 세월과 건축에 대한 짙은 사랑이 배경이 됐다. 가우디를 부둥켜안은 바르셀로나가 그래서 더욱 설레고 끌린다.

 

가는 길
바르셀로나까지 직항편이 운행 중이나 프랑스를 경유해 열차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열차궤도가 달라 국경역인 포르트부에서 갈아타야 한다. 역은 산츠역과 프란사 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탈리아 등에서 이어지는 야간열차나 특급열차도 여럿 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는 5개의 메트로 노선이 도심 구석구석을 연결한다. 메트로를 이용하기에는 산츠역이 편리하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1.28 07:47 신고

    구엘구엘 공원

  2.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1.28 07:47 신고

    가우디의 흔적을 볼 수 있따면 스페인!! 고고!!

25년이 지난 후 베를린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수많은 가능성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독일 각지에서 몰려온 프로파간다들은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꿈을 키워나갔고 지금의 베를린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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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를 기록하다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뮤지션이었던 크리스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앙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베를린을 탈환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로 대표되는 타헬레스에서 활동하며 격동의 시기를 지켜봤다. 그 이야기를 <베를린 원더랜드> 한 권에 몽땅 담아냈다.

↑ 호평을 받은 책

예술 및 라이프스타일 전문 출판사인 게슈탈텐과 함께 만든 책.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베를린에 얼마나 별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들로 가득하다.



↑ 1992년 풍경

현재는 세련된 갤러리들로 가득 차 있는 오라니언부르거 거리의 1992년 풍경.



포토그래퍼이자 뮤지션이다. 독일 중부 도시인 다름슈타트Darmstadt 출신이며 1990년 베를린에 왔다. 현재 앙케와 함께 봅스에어포트Bobsairport(www.bobsairport.de)라는 포토 에이전시를 운영 중이다. (앙케)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북부 도시 브레멘Bremen 출신이다. 1990년 베를린자유대학에 입학하면서 베를린에 왔다. 현재 그래픽 디자이너로 카파Capa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내가 속해 있던 밴드와 공연 리허설 중이었다. 공연은 취소됐고 밴드도 해체됐다. 다들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버렸으니까. (앙케) 고등학생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TV로 보곤 베를린으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혀 다른 세상,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음을 느꼈다.



혼돈의 세상이었다. 정부가 재정비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는 '자유'를 선사했다. 독일은 물론 전 세계의 예술가, 펑크족, 무정부주의자, 몽상가, 괴짜가 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빈집을 점거해 예술, 콘서트, 불법 파티 등을 여느라 바빴다. 앙케는 라이브 뮤직 클럽인 쇼콜라덴Schokoladen, '무단 점거'의 대표 아이콘이 된 타헬레스Tacheles에서 새로운 개념의 콘서트, 음악 이벤트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타헬레스가 들어선 건물은 1907년에 지은 백화점이었는데 제2차세계대전 후 폐허가 되었다. 1990년 2월 여러 명의 예술가들이 방치된 백화점으로 향해 화려한 그래피티로 건물을 무장시켰다. 이러한 무단 점거 운동을 스Squat이라고 한다. 철거될 운명의 건물은 예술가들로 인해 베를린의 명소로 거듭났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달랐고, 강제 퇴거의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끝까지 버텼고 결국 정부는 베를린 역사의 한편을 장식할 반문화 운동의 상징이자 문화 공간으로 인정했다. 안타깝게도 건물 소유주의 압력에 의해 2012년에 문을 닫은 상태다.



<베를린 원더랜드>를 펴냈다. 사진과 내용이 굉장하다. (크리스&앙케)오랫동안 기획한 것이었다. 7명의 사진가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베를린의 '야생의 시기'를 담아냈다. 사진 촬영을 할 당시의 상황과 자세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 시대를 함께 겪은 사람으로서 가슴을 다시 쿵쾅거리게 하는 훌륭한 사진이 많다.



표지에 올린 1990년의 킨칙 거리Kinzig Str. 풍경이다.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퍼 벤 드 빌Ben de Biel이 촬영한 것으로 베를린 동쪽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의 무단 점거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초를 휩쓸었던 다채로운 서브컬처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베를린 미테 지역. 하지만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옮겨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여전히 베를린은 '한번 해볼 만한' 도시다. 우리는 사진과 디자인을 통해 베를린을 기록하는 일을 할 것이다.



↑ 마크 볼라베

자게 클럽Sage Club 앞에서 만난 클럽 커미션의 창립자 마크 볼라베.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마크는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진짜 베를리너다. 그는 130여 개 클럽을 거느리는 클럽 커미션Club Commission의 대부답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날 밤 클러빙을 즐기고 있었다.

↑ 베를린의 클럽

실험적인 예술의 무대가 되고 있는 베를린의 클럽.



서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에 위치한 유명한 록 클럽이었다. 그날 새벽 4시쯤 클럽을 나서다 거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녀가 대뜸 "브란덴부르크 문이 개방됐대!"라고 말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택시 기사 또한 베를린 장벽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하더라. 당장 브란덴부르크로 가자고 했다.



동, 서 양쪽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으로 운집했다. 사람들은 장벽 위로 올라섰고 반대편 지역으로 뛰어내렸다. 예전 같았다면 군인이 탄압하거나 총을 쏘았을 텐데 군인들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장벽을 넘었고, 동베를린에 발을 디딘 후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해 다시 서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축제 같은 분위기였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조금 긴장했다. 1953년도에 일어난 동베를린의 폭동 때처럼 무장한 소련군이 몰려올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민들도 정부도 평화를 지켰다. 기적과도 같았다.



1980년대에 이미 독일은 영국과 함께 테크노 음악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베를린 미테 지역을 중심으로 무료 지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생겨났다. 베를린엔 주인이 없는 '빈 공간'들이 넘쳐났다. 특히 장벽이나 양쪽의 정부 기관이 들어서 있던 곳이 그랬다. 포츠다머플라츠Potsdamerplatz, 빌헬름 거리Wilhelm Str.에 에-베르크E-Werk, 데어 벙커Der Bunker, 트레조Tresor와 같은 전설적인 클럽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베를린에 불어닥친 개발 계획으로 인해 클럽들은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뒤 클럽 신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2000년에 클럽 커미션을 창설하게 됐다.



트렌스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동독 출신 DJ 폴 반 다이크Paul van Dyk는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벌어졌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동서독의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서 클럽은 단순히 하룻밤 유흥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베를린에는 미술, 영화, 음악, 패션, 디자인 업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클럽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다. 클럽엔 음악, 음향, 건축, 미술, 그래픽, 조명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적 장치들이 어우러진다. 훌륭한 클럽은 예술적인 생각, 실험 정신을 가져야 한다. 클럽 커미션은 이러한 클럽을 발굴하도록 돕는다. 처음엔 20여 개 클럽이 모여 시작했는데 현재 130개 클럽이 가입되어 있다.



베를린 클럽 신의 산증인과도 같은 트레조. 규모나 음악, 음향 시설, 레지던스 아티스트 등 여러모로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베르그하인Berghain.



기도의 '물 관리'는 클럽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겉치장과는 상관없다. 이미 술에 취했다면-특히 남성 무리-입장이 어렵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니며 감각을 열고 자유롭게 클러빙을 즐길 이들을 감별해내도록 교육받는다. 너무 어렵나?



↑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미헬베르거 호텔의 아늑한 안마당에에서 만난 톰과 이현지.

오래된 공장의 창조적 변신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진짜 베를린을 만나고 싶다면 미헬베르거 호텔에서 머무르기를 추천한다.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이들이 모여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 카페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카페.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출신이다. 2003년 베를린을 처음 찾았다. 장벽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베를린 동쪽의 경우 3개 건물 중 하나는 레노베이션이 필요해 보였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째 날, 이곳이 나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라 직감했다. 나는 국제 비즈니스를 공부했지만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나만의 독자적인 일을 꾸리고 싶었다. 베를린은 최적의 도시였다. 이곳엔 한층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존재했다. 저렴한 물가 덕분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쫓기지 않아도 됐다. 독일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전혀 다른 사람들, 도시가 지닌 놀라운 역사, 그래피티, 음악 등 곳곳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감독이나 프로듀서를 꿈꿨지만 특출한 재능을 지닌 것 같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공동 창업자인 나딘과 오랜 고민 끝에 호텔을 열자고 의견을 모았다. 호텔이라는 공간에서는 두 사람 모두 잘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들을 벌여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호텔 학교에서 유학 중이었다. 취업을 알아보다 베를린에 새로운 호텔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까지 면접을 보러 갔다. 호텔리어답게 블랙&화이트 슈트를 차려입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캐주얼한 차림새의 톰과 나딘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형 호텔들에서 느낄 수 없는 열정, 가족적인 분위기에 반해 미헬베르거 호텔에 합류했다.



2004년부터 호텔 오픈을 준비했다. 각종 계획을 짜고 호텔 건물을 알아보는 데 총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딱 맞는 호텔 건물을 찾는 것이 관건 이었다. 베를린 내 100여 채가 넘는 건물을 보러 다녔고 결국 2008년 계약에 성공했다. 호텔 빌딩은 19세기에 지어진 공장이었다. 국가적으로 보존되고 있어 외관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레노베이션했다. 우리는 호텔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정할 때 다른 호텔들을 참고하지 않았다. 미헬베르거의 스태프와 참여한 건축가, 디자이너 등의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오픈한 지 1년 만이었다. 런던에서 주최하는 어워드로 '카페, 바, 나이트클럽 혹은 라운지'의 카테고리에서 수상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자르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런던과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호텔에 합류해 아이덴티티 구축과 디자인 등을 전체적으로 담당했다. 호텔 로고는 물론이고 브로슈어, 벽화, 홈페이지의 일러스트와 디자인 등 아자르 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잘 어우러졌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한다. 베를린에 '코코넛 워터'라니.

코코넛 워터는 물론 미헬베르거 크래프트 비어, 리큐어도 출시했다. 그중 리큐어는 미국에서도 판매될 예정이다.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도시였다면 이러한 도전이 마냥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베를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일에 더욱 쉽게 도전할 수 있고 수많은 아이디어, 열정을 가진 이들을 만나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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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서 싹튼 서브컬처

톰 뵈셔만

플래툰은 베를린과 서울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아트 커뮤니케이션 그룹이다. 이들이 각 도시에 들여놓은 컨테이너 '쿤스트할레'에선 서브컬처가 꿈틀댄다. 플래툰의 대표인 톰 뵈셔만은 최근 평양 여행을 다녀왔다.



↑ 쿤스트할레 베를린

서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쿤스트할레 베를린. 크리에이터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놀랍다.



↑ 쿤스트할레 서울

쿤스트할레 서울. 컨테이너를 이용한 건축과 디자인으로 독일의 레드 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니. 중부 하노버 근교의 데트몰트Detmold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7년 베를린으로 옮겼다.

16세 때. 서베를린에 할머니가 사셨다. 할머니는 베를린에 온갖 '크레이지'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당시 서베를린엔 젊은 청년들과 예술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체질적으로 도발적인 환경을 좋아한다지만 청년들은 왜냐고? 베를린에 거주하는 남자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거든.

하노버에서 서베를린에 이르는 아우토반이 하나 있었다. 모두 그 길을 이용했다. 서베를린까지는 2시간 30분쯤 걸렸다. 베를린에 도착하기에 앞서 동독의 관문 도시인 막데부르크Magdeburg를 지나쳤는데, 와, 깜짝 놀랐다. 그렇게 가난할 줄 몰랐다. 얼마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도 그때가 훨씬 충격적이었다.

독일문화원과 평양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에 입성, 4박 5일간 있었다. 영화제 공식 일정과 평양 시내 투어를 했는데 북한 가이드가 내내 동행했다. 평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놀랄 것이다. 서울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값비싼 독일 차들이 도로를 달리며, 규모가 작긴 하지만 고급 백화점도 있다. 빼어난 레스토랑도 많다. 최근 오픈한 일식집에서 8코스 디너를 먹었는데 식재료며 요리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6년간 쿤스트할레 서울을 운영하며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봤지만, 솔직히 말해 밥과 김치 등 기본적인 음식은 북한의 것이 더 맛있다. 그리고 술! 대동강 맥주! 감히 아시아 맥주 중 최고다.

소련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과 거대한 동상들, 군인들의 시가 행진에 필요한 전시용 대로 등을 보며 베를린의 카를 마르크스 알레를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평양과 베를린의 닮은 점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도시라는 것이다. 평양에 사는 이들은 북한의 지도층이나 엘리트들이다. 동베를린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가나 군인, 교사, 예술가들이 기회를 얻었다.

당시 데트몰트의 한 마케팅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함께 베를린으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장벽을 허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장비를 챙겨 장벽을 무너뜨렸다. 불도저와 크레인도 동원됐다. 지난여름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축하 파티가 벌어진 것을 보았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내 인생 최대의 축제를 경험했다.

1997년 베를린에 왔고 2년 후 동업자인 크리스토프를 만났다. 나의 마케팅 경력과 크리스토프의 디자인 실력을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해보자고 결의했다. 4~5개월간의 브레인스토밍으로 찾아낸 답은 '문화 마케팅'이었다. 1990년대 말은 신문, 방송, 잡지, 빌보드 등 매스커뮤니케이션이 급속도로 발달했던 시기였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통해 브랜드와 대중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래서 비디오 아트, 그래픽 디자인, 스트리트 아트, 클럽 음악 등 서브컬처에 주목했다.

파드핀더라이Pfadfinderei는 모션 디자인과 비주얼 아트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이들은 일렉트로닉 음악과 비주얼 아트를 접목하며 VJ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슈퍼스타가 된 모데셀렉터Modeselektor. 일렉트로닉 듀오로 또 다른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아파라트Apparat와 함께 모던 테크노 그룹인 모데라트Moderat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 쿤스트할레 서울에서 공연을 한 바 있다.

플래툰은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 포진하고 있는 3500여 개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이뤄 문화 활동을 기획, 지원하고 있다. 베를린을 시작으로 서울에 아시아 본부를 열었고, 내년에는 멕시코시티로 향한다. 그다음엔, 평양도 기대해본다.

베를린 분단 중 사용됐던 감시 초소, 동독 비밀경찰의 아지트, 통일 후 전설적인 클럽으로 거듭난
히틀러의 벙커 등을 방문했다. 베를린의 굴곡진 역사가 만든 현재의 삶도 만났다.


↑ 베를린 장벽 유적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 장벽 유적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 체크포인트 찰리 마우어뮤지엄 입구

체크포인트 찰리 마우어 뮤지엄 입구.

↑ 냉전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전시관 '블랙박스 콜드 워' 앞

냉전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전시관 '블랙박스 콜드 워' 앞.

↑ 베를린이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을 당했을 때의 지도.

베를린이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을 당했을 때의 지도.

↑ 러시아탱크를 볼 수 있는 소비에트 전쟁 기념관.

러시아 탱크를 볼 수 있는 소비에트 전쟁 기념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인물은 휴가 중 바뀐 정책을 잘 몰라 말실수를 한 동독의 대변인이 아니에요. 독일어가 서툴렀던 이탈리아의 기자였죠. '여행 제한 조치를 완화했다'고 했을 뿐인데 '국경이 개방됐다'를 거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로 오역을 했어요. 대형 사고죠! 그가 전송한 기사는 세계 외신을 통해 일파만파 전해져 서독 TV에도 나오게 됐어요. 이를 본 시민들은 바로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갔고 벽을 허물었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어요. 한국도 그렇게 갑자기 통일이 될지도 몰라요. 어느 날 국민들이 국경을 허물지도요."

베를린의 개선문으로 불리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앞. 가이드인 샤샤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틀렸어. 우리의 국경 사이엔 지뢰밭이 있거든'이라는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의 통일을 기원해주는 그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베를린을 처음 찾는 여행자라면 가이드 북을 들고 다음의 장소를 찾게 된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간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 동, 서독간 마지막 출입문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분단과 냉전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올해는 더 많은 이들이 베를린의 역사적 장소들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로 베를린 시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배우며 자란 한국인이라면 베를린의 옛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펼쳐질 일을 독일은 미리 겪은 게 아닌가.

그래서 베를린은 더없이 흥미로운 도시다. 나는 오랫동안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베를린이 동독 지역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줄은 몰랐다. 서 베를린은 동독 지역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섬과도 같았다. 베를린이 동과 서로 나뉘었던 세월은 45년이다. 두 지역 모두 각자의 노선대로 발전을 거듭했고 서로 다른모습을 지니게 됐다.

베를린의 동쪽과 서쪽을 깊숙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자전거 투어의 가이드인 샤샤는 자신을 '리얼 베를리너'라고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요? 집에 있던 가장 큰 해머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뛰어갔죠! 그땐 어려서 다음 날 학교를 땡땡이칠수 있단 사실에 신이 났었죠. 역사적인 현장인데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있나요?" 그는 먼저 프렌츨라우어베르크로 안내했다. 이 지역은 베를린의 중심인 미테에서 북동쪽을 차지한다. 여기엔 베를린 장벽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베를린 장벽 기념관Gedenkstatte Berliner Mauer이 있다. 장벽이 어떻게 세워졌는지에서부터 베를린 장벽의 모습, 이를 지키던 군인들의 임무, 탈출하다 희생당한 동독인 등 몇 시간을 꼬박 머물게 하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서독인들은 장벽 근처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어요. 하지만 동독의 장벽 안에는 무인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어요. 가까이 접근해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게 한 거죠." 야외에 전시된 사진 중 장벽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가로등에 매달려 동베를린 쪽을 향해 손 흔드는 아이의 사진을 보니 가슴 한편이 아릿해졌다.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Ich Bin ein Berliner"라고 운을 떼며 큰 호응을 얻었던 미국 캐네디 대통령의 연설이 떠올랐다. 그는 가족,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를 갈라놓고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을 못 만나게 하는 것은 역사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다.

↑ 중앙에 이삭과 망치, 컴퍼스를 그려 넣은 옛 동독 국기.

중앙에 이삭과 망치, 컴퍼스를 그려 넣은 옛 동독 국기.

↑ DDR 뮤지엄에서 본 옛 동독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있는 캐비닛.

DDR 뮤지엄에서 본 옛 동독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있는 캐비닛.

↑ 과거 비밀경찰의 사무실 모습.

과거 비밀경찰의 사무실 모습.

↑ 영화 <타인의 삶>에서처럼 누군가의 사생활을 감청하던 방

영화 <타인의 삶>에서처럼 누군가의 사생활을 감청하던 방.

↑ 동독 비밀경찰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를 볼 수 있는 슈타지 뮤지엄.

동독 비밀경찰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를 볼 수 있는 슈타지 뮤지엄.

↑ 템펠호프 공항 지하의 비밀 벙커.

템펠호프 공항 지하의 비밀 벙커.

과거 프렌츨라우어베르크는 동쪽에 속했다. 이 지역은 통일 후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이다. "동독 노동자 출신들이 지냈던 곳이에요. 어떤 방은 1명이 썼지만 또 어떤 방은 12명씩 머물렀죠. 놀라운 것은 난방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거예요.1990년까지 벽난로에 석탄을 넣어 난방을 했더라니까요. 아직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통일이 된 후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주인 없이 버려진 집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빈집에 들어가 '내 집이오' 하고 자물쇠를 채운 후 결국 주인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대로 자신의 명의로 남기도 했단다. 실제로 오더베르그 거리Oderberger Str.의 플랫을 거저 얻었다는 친구가 있다. 젊은이들은 이곳에 모여 콘서트를 열고 파티를 벌였다. "그래서 처음 이 지역엔 바와 클럽들이 가득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주방 용품이나 유아 용품 숍이 넘쳐나죠. 한때 마리화나를 피우며 게릴라 파티를 벌였던 이들이 25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거든요. 나이가 비슷하니 결혼도, 임신도 비슷하게 했을 거고, 그래서 한때 이곳은 프란츨라우어베르크(베르크는 '언덕'이라는 뜻)가 아니라 '임신부의 동산'이라고까지 불렸죠." 프렌츨라우어베르크를 떠나 자전거를 타고 찾은 곳은 '카를 마르크스 알레Karl MarxAllee'였다. '프렌츨라우어베르크가 노동자들의 땅이었다면 이곳은 상류층, 실적 좋은 공산주의자들이 사는 곳이었어요. 이러한 형태의 건물을 '러시아 사회주의적 고전주의'라고 하고 '웨딩 케이크 스타일'의 빌딩이라고 하죠." 영화 <타인의 삶>을 본이들은 알 것이다. 정치가며 군인, 유명한 예술가들은 이렇게 화려한 아파트에 살았다. 조금만 뒤로 가면 '플라텐바우plattenbau'라고 불리는 칙칙한 박스형 아파트가 있다. 겉모습은 우울하지만 당시로는 신식 주거 형태로 이곳에 사는 이들은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을 거쳐 슈프레 강변을 지나면, 그때부터 베를린의 서쪽이 시작된다. 왠지 서쪽이라고 하면 우아하고 깨끗한 거리만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미 1970년대부터 서브컬처가 발달하기 시작했다고요.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그래피티가 성행했어요."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은 젊고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다 옛날 이야기예요. 지금 크로이츠베르크는 베를린에 살러 온 주머니 두둑한 외국인들로 가득해요. 젊고 가난하며 재능있는 아티스트들은 이제 노이쾰른으로 향하죠."

최근에는 베를린의 서쪽이 뜨고 있다. 한동안 동쪽에만 집중되었던 관심과 투자가 다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서쪽에서도 샤를로텐부르크 지역은 베를린 역사 대대로 왕이며 귀족, 부호, 지식인, 예술인이 살던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 운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40대 부인들을 위한 고급 부티크 등이 늘어서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의 콘셉트 몰이라는 '비키니 베를린'이 들어서 힙스터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베를린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 중 하나다. 아픔과 혼란의 역사를 겪었지만 이로 인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도시로 거듭났다. 어쩐지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다.

↑ 오래된 공장 앞의 공터로 푸드 트럭들이 몰려든다

오래된 공장 앞의 공터로 푸드 트럭들이 몰려든다.

↑ 자빙니플라츠 역 아래에 위치한 서점.

자빙니플라츠 역 아래에 위치한 서점.

↑ 히틀러의 벙커가 결국 최고의 갤러리인 '잠룽 보로스'로 거듭났다.

히틀러의 벙커가 결국 최고의 갤러리인 '잠룽 보로스'로 거듭났다.

↑ 프렌츨라우어베르크의 맥주 공장은 맥주가 아닌 다채로운 문화를 생산해낸다.

프렌츨라우어베르크의 맥주 공장은 맥주가 아닌 다채로운 문화를 생산해낸다.

↑ 서베를린의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다스 스튜에 호텔.

서베를린의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다스 스튜에 호텔.

↑ 슈프레 강변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베를린 돔.

슈프레 강변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베를린 돔.


베를린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





1 슈타지 뮤지엄Stasi Museum

옛 동독 비밀경찰의 역사와 활약상은 물론 이들이 도청을 했던 방, 첩보에 쓰였던 기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OPEN

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토,일요일, 공휴일 낮 12시~오후 6시

LOCATION

Rusche Str. 103, Haus 1


TEL

+49-30-553-68-54

WEB

2 옛 동독 박물관DDR Museum

옛 동독의 역사와 당시의 삶을 첨단 기술력와 멀티미디어, 위트 있는 장치로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게 했다.


OPEN

월~금요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10시

LOCATION

Karl-Liebknecht Str. 1


TEL

+49-30-847123731

WEB

3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Museum Hausam Checkpoint Charlie


분단 당시 검문소를 재현해놓은 곳. 근처의 마우어 박물관에선 독일의 분단과 통일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다.


OPEN

오전 9시~오후 10시

LOCATION

Friedrich Str. 43-45, 10969, Berlin


TEL

+49-30-2537250

WEB

www.mauermuseum.de


4 베를린 장벽 기념관The Berlin Wall Memorial & Documentation Centre


베를린 장벽의 역사와 이에 얽힌 사연이 가장 꼼꼼히 기록되어 있는 곳.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OPEN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7시(4~10월),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LOCATION

Bernauer Str. 111


TEL

+49-30-467986666

WEB

www.visitberlin.de/en/spot/the-berlinwall-memorial-and-documentation-centre


5 쿨투어브라우어라이Kulturbrauerei


'베를린 온 바이크' 투어의 본부가 위치해 있다. 박물관에서 <DDR 시대의 일상>이란 타이틀로 전시 중.


LOCATION

Schonhauser Allee 36


TEL

+49-3- 44352614

WEB

kulturbrauerei.de



바르셀로나에서는 ‘곡선의 미’에 취한다. 육감적인 플라멩코 댄서의 휠 듯한 춤이 아니더라도 거리를 지나치면 문득 건축물에서 유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가우디의 작품들이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누구나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추억한다. 이 고집스러운 건축가 한 명이 도시의 지도를 바꿨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들은 한해 수백만 명에 달한다. 바르셀로나는 중독의 도시가 됐고, 그 지독한 중독의 중심에는 가우디가 있다.

 

구엘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바르셀로나 전경. 뒤로는 지중해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세계유산을 만든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바르셀로나에 남긴 건축물 중 다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그 중 여행자들을 품에 안고, 눈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구엘공원이다. 야자수를 닮은 돌기둥과 벤치에 새겨진 모자이크에는 모두 그의 열정이 서려 있다. 사람들은 벤치 위에 누워 따사롭고 호화로운 휴식을 즐기기도 한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빌린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들은 화려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이다. 공원의 건축물들은 파도를 치듯 언덕을 따라 흘러내린다. 정문 앞 경비실은 동화 속 풍경을 담았고 이 지역 카탈루냐 문양을 새겨 넣은 모자이크 된 뱀도 독특하다. 담 자락에서 발견하는 모자이크들은 깨진 타일들을 정교하게 조합한 형상으로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 1 구엘공원의 건축물들은 하나하나가 개성 넘친다. 정문앞 건물은 동화에서 소재를 얻었다.
  • 2 모자이크가 돋보이는 구엘공원의 도마뱀 상은 이방인들에게는 촬영 포인트로 인기가 높다.
  • 3 구엘공원의 개성 넘치는 모자이크.

 

 

공원 건축은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구엘(Eusebi Güell)과의 인연 때문에 시작됐다. 본래는 주거용 목적으로 지었지만 공사는 도중에 중단됐고 일반인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가우디의 저택과 광장을 거쳐 공원 뒤편 언덕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가우디가 꿈꾸며 그려낸 도시의 실루엣이 지중해에 비껴 어우러진다.


거리로 나서면 곳곳이 가우디의 작품이다. 1882년 짓기 시작한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가우디의 건축물 중 웅대한 규모에 있어서 첫손가락에 꼽힌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과 돔은 창공을 찌를 듯 솟아 있다. 가우디는 40여 년간의 생애를 대성당 건설에 바쳤고 사후에도 성당 지하에 안치됐다.

 

가우디의 작품 중 가장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산트 파우 병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우디의 거리로 불린다. 이방인들은 밤늦도록 노천바에 앉아 대성당을 바라보며 가우디에 취한다. 쌉쌀한 맥주나 스페인 전통주 ‘상그리아’ 한 잔이 감동 위에 곁들여진다. 이곳에서 언뜻 눈에 띄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식습관은 특이하다. 평일 점심때 2시부터 느긋하게 정찬을 즐기는가 하면 식사 후에는 시에스타 시간이 마련돼 있다. 저녁은 9시 넘어서 먹는다. 주말에는 아예 10시쯤 시작해 자정까지 저녁만찬을 즐기기도 한다. 거리의 예술작품만큼이나 생기 가득한 바와 카페들이 뒷골목에는 즐비하다.

 

 

건물에 깃든 고집스러운 곡선미

보행자의 거리인 람브라스에서 이어지는 길목에서도 가우디의 작품들은 이어진다. 걷다 보면 천재 건축가와 골목에서 조우하는 느낌이다. 구엘궁전은 실타래를 꼬아놓은 듯한 굽이치는 정문이 인상적이다. 카사 바트요나 아파트로 지었던 카사 밀라는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그 외형에 일단 눈이 현혹된다.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는 가우디의 신념을 담아 석회암 건물의 창과 벽에 바다와 파도의 굴곡을 실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곡선은 신의 선이다’고 한 가우디의 정신이 녹아 들었다.

 

  • 1 건물 정면을 석회암으로 치장한 카사 밀라.
  • 2 동굴 느낌을 연상시키는 카사 밀라의 창문.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작품만 구경하는 별도의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물론 도시의 건축미가 가우디 혼자만의 열정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몬타네르(Lluís Domènech i Montaner)가 지은 카탈라냐 음악당과 산 파우 병원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가우디에 감명받아 건축한 첨단 돔형의 아그바르 타워는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바르셀로나는 유럽대륙과 맞닿은 지리적 여건 덕에 스페인 제일의 상공업 도시로 성장했고 그 성장을 자양분 삼아 수준 높은 예술을 꽃피웠다. 피카소, 미로 등도 이 중독의 도시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그 이름의 꼭짓점에는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의 삶과 열정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가우디는 죽음을 앞두고 그의 전 재산을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건축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 1 바르셀로나에는 건축물 외에도 자유로운 예술의 혼이 숨쉰다.
  • 2 스페인의 플라멩코에는 강렬함과 곡선미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굳이 계획된 르네상스가 아니더라도 예술의 힘은 세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가우디가 만들어낸 우아한 건축미는 바르셀로나를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로 재탄생시켰다. 그 완성에는 지난한 세월과 건축에 대한 짙은 사랑이 배경이 됐다. 가우디를 부둥켜안은 바르셀로나가 그래서 더욱 설레고 끌린다.

 

가는 길
바르셀로나까지 직항편이 운행 중이나 프랑스를 경유해 열차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열차궤도가 달라 국경역인 포르트부에서 갈아타야 한다. 역은 산츠역과 프란사 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탈리아 등에서 이어지는 야간열차나 특급열차도 여럿 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는 5개의 메트로 노선이 도심 구석구석을 연결한다. 메트로를 이용하기에는 산츠역이 편리하다.

 

 


독일 로렐라이 언덕·쾰른
강줄기따라 수채화 같은 풍경
언덕아래 마을 '뤼데스하임'엔 골목 곳곳 와인·맥주향 가득
고전·모던 공존하는 '쾰른'엔 632년 걸쳐 건축한 대성당
화려함·웅장함에 탄성이 절로

"가슴 저며 드는 까닭이야/ 내 어이 알리요/ 예부터 전해 오는 옛 이야기/ 그 이야기에 가슴이 젖네/ 저무는 황혼 바람은 차고/ 흐르는 라인강은 고요하다/ 저녁놀에/ 불타는 산정(山頂)/ 저기 바위 위에 신비롭게/ 곱디고운 아가씨가 앉아 있네 (중략) 뱃길 막는 암초는 보지 못하고/ 언덕 위만 바라보네/ 끝내 사공과 그 배는/ 물결에 휩싸였으리/ 로렐라이의 옛 이야기는/ 노래의 요술"

학창시절 누구나 한두 번은 불러 봤던 독일 가곡 '로렐라이'다. 독일의 후기 낭만파 시인인 브렌타노 등 많은 작가들이 문학의 소재로 다룬 '라인강 설화'를 하인리히 하이네가 시(詩)로 만들었고 거기에 프리드리히 질허가 곡을 붙인 것이 오늘날 세계인의 애창곡이 된 '로렐라이'이다.

◇로렐라이 언덕과 뤼데스하임=

로렐라이 언덕이 둥지를 트고 있는 라인강은 총 길이 1,300㎞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독일의 강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알프스 깊은 계곡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스위스ㆍ리히텐슈타인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독일ㆍ네덜란드 등지를 거쳐 북해로 흘러들어 가기 때문에 서유럽 6개국이 공동 소유권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유난히 마인츠와 본, 쾰른 사이의 라인강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유는 강을 번영의 지렛대로 활용했던 독일 사람들의 근면성과 경제적 성과 덕분이 아닐까 싶다.

라인강 빙겐(Bingen)에서 코블렌츠(Koblenz) 사이의 약 65㎞는 '로맨틱 라인'이라 불리는 곳으로 계절에 따라 색다른 느낌의 아름다운 정취를 선사한다. 로맨틱 라인에서도 뤼데스하임과 장크트 고아르스하우젠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높이 134m의 암벽이 로렐라이 언덕이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찾아간 관광객에게는 실망감을 줄 수도 있는 평범한 바위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로렐라이의 진수는 로렐라이에서 내려다보는 라인강에 비친 푸른 하늘과 흰구름에 있다. 라인강을 따라 펼쳐진 목가적인 풍경과 고즈넉한 마을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은 마치 한 편의 수채화처럼 이방인의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강줄기를 따라 몸을 느리게 움직이는 유람선은 독일인 특유의 목가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정취를 싣고 유유히 흘러간다. 6월의 햇살을 받으며 찾아간 로렐라이 언덕 위에는 연인들이 라인강을 내려다보며 로렐라이의 전설을 서로의 귓속에 속삭이고 있어 독일인의 사랑이 새삼 떠오른다.

로렐라이 언덕에서 라인강의 낭만과 사랑을 만났다면 언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작은 시골 마을, 뤼데스하임(Ruedesheim)에서 잠시 이방인의 여유를 즐겨볼 만하다. 한국 여행객에겐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찾아온 이들에게는 '라인강의 낭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관광 명소로 입소문이 나 있다. '라인강의 진주'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는 뤼데스하임은 마을 앞으로는 기찻길 너머로 맑고 푸른 라인강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독일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다.

뤼데스하임 최고의 명물은 이른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을 자처하는 드로셀 가세(일명 티티새 골목)라고 한다. 두 사람이 비켜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골목길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노천 카페가 늘어서 있는데 마음에 드는 노천 카페에 들어가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라인강의 향기를 코 속 깊숙이 들이 마셔도 좋다.

◇고전과 모던이 공존하는 도시, 쾰른=

라인강을 따라 북쪽으로 2시간 정도 올라가면 고풍스러운 멋과 현대적인 멋이 공존하는 도시 쾰른에 이르게 된다. 이 도시는 강을 따라 펼쳐진 중세의 성당과 고성, 크고 작은 탑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하지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쾰른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만큼 독일인이 아닌 로마인에 의해 발전한 도시다. 쾰른이라는 이름도 '식민지'라는 뜻을 지닌 '콜로니아(Colonia)'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쾰른 구시가지에 있는 로마-게르만 박물관에 가면 '콜로니아'라는 옛 이름이 새겨진 고대 로마인들의 유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유럽 옛 도시들이 그렇듯 쾰른 역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그 사이에는 마치 경계선처럼 라인강이 흐르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는 호엔촐레른 다리와 도이치 다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신시가지는 두 차례의 큰 전쟁, 즉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전된 시가지로 라인강의 기적이 펼쳐진 현장을 한 눈에 만나볼 수 있다.

쾰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는 뭐니뭐니해도 쾰른 대성당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의 수많은 건축물 가운데 공사기간이 가장 길었던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공사기간만 무려 632년. 지난 1248년 건축가 게르하르트에 의해 공사가 시작된 이후 1880년에 이르러 157m 높이의 쌍둥이 첨탑이 완공되면서 이 위대한 건축물이 탄생하게 됐다. 쾰른 대성당의 첨탑은 울름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다. 대성당은 유려한 역사와 웅장한 외관 못지 않게 내부의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단을 장식하는 훌륭한 그림과 기둥의 정교한 조각, 화려하면서도 오묘한 빛을 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라인강변을 둘러보고 나니 라인강의 기적은 독일인의 근면성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 신(神)이 라인강을 통해 인간에게 선사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남의 것을 막무가내로 탐하거나 지각없이 부러워하는 성정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 여행을 하면서 종종 시기와 질투를 금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 그 나라의 특징으로 이해하지만 어떤 부분은 이 땅에도 이식시킬 수 없을까 하며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유럽을 다니면서는 유독 두 가지가 부러웠다. 하나는 보행의 즐거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고성의 존재였다.

유럽에서 얻는 보행의 즐거움은 산이나 지방 혹은 외곽지역이 아니라 대도시에 있다는 것.

우리네와 대별되는 지점인데, 철저하게 보행자 위주로 조성된 대도시의 거리 그리고 걷는 멋과 맛을 한껏 돋우는 주변 경관은 수도 서울의 복잡하고 혼탁한 거리에 비해 확실히 부러움을 자아낸다.

고성만해도 그렇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고성과 퓌센의 노이쉬반스타인 성을 비롯해 돈키호테와 그의 애마 로시난테가 터벅터벅 함께 걸어갔을 듯한 시골길을 따라 방문하는 스페인의 고성들,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루아르 지방의 호화로운 고성들은 해당 도시에 고색창연하고 중후한 멋을 드리운다.

또 이들 고성은 실용적이기까지 해서 일부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로, 일부는 박물관 등으로 전용돼 관광객 유치에 단단히 한몫을 한다. 물론 고성들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민관의 노력 또한 각별하다.

◈ 걷는 즐거움, 보행자의 천국 = 서두를 길게 뗐지만 결국은 덴마크를 이야기하고자 함이었다.

으레 덴마크하면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과 인어공주 그리고 장난감 레고 등을 거의 반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덴마크는 보행자들의 천국이자 아름다운 고성들이 곳곳에 들어선, 고상하고 우아한 풍치가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특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한 마디로 '걷고 싶은 도시'로 압축해 표현할 수 있겠다. 보행자 편의를 위해 과감히 계단을 없앴으며, 발길에 치이는 설치물도 치워버렸다.

또 모든 건물은 시청의 종탑 보다 낮아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 건물 높이를 6층으로 제한했다. 도심을 걷는 이들에게 다정한 탑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결정'이었던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걷는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보행 인프라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다시 소개하겠지만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의 경우 폭 10미터 안팎의 길 양쪽에 명품점과 레스토랑 등 2000여 개의 작은 가게들이 입점한 중세풍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어, 거리에 살가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도자기 명품점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로열 코펜하겐, 꽃을 사기 위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꽃장식이 대단한 테에 아나슨 꽃가게, 10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빵을 구워내는 라인반하원 등의 명품점들과 함께 싸구려 할인마트나 기념품 코너도 공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은 가게들의 성공은 보행자 전용도로와 역사적 건물의 재생을 연동시키는 계획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걷고 싶은 도시 코펜하겐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다. 스트로이는 덴마크어로 '산책'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콩겐스 뉘토우 광장에서 시청 앞 보행자 광장까지 5개 보행자 전용도로를 통칭한다.

시민들은 누구나 주저 없이 '스트로이를 밟지 않고서는 코펜하겐을 다녀간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짱짱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1.4km에 이르는 스트로이를 시나브로 끝까지 걷게 되는데, 이유는 앞서 말한 그대로다.

◈ 중세로의 행복한 잠입 = 자, 이제 시간을 거슬러 중세로 잠입할 시간이다. 덴마크 여기저기에 산재한 고성을 찬찬히 뜯어보자는 것이다.

코펜하겐을 벗어나 기차로 45분 정도 가면 명미한 도시 헬레뢰드가 있다. 주변의 비옥한 농촌지역에서 경제적 뒷받침을 받는 번창한 시장도시이자 철도 교차점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프레데릭스보그 성(Frederiksborg Slot)이 있어 유명하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1602년부터 1630년까지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지은 붉은 벽돌로 된 독일 르네상스 형식의 이 성은 '덴마크의 베르사이유'로 일컬어진다. 200여 년 동안 7명의 국왕이 이 성에서 대관식을 올릴 정도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성이다.

1859년 화재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을 때 왕실에서 이를 재건할 경제적 여유가 없자, 맥주 재벌인 칼스버그 야콥센의 기부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덴마크의 유구한 역사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와 회화, 가구, 보물 등을 전시하는 역사박물관으로 기능한다. 성을 둘러싼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탐스럽게 꾸며진 정원은 소풍을 즐기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다.

로젠보그 궁전 (Rosenborg Slot)은 1617년 당시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의 뜻에 따라 세워진 네덜란드 양식의 별장으로 그의 건축물 중 가장 매력적으로 평가받는다. 크리스티안과 연인인 키아스텐 뭉크와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궁전 내에는 무도회장, 홀, 응접실 등이 있는데 웅장함보다는 왕이 언제든지 되돌아 올 것 같은 친밀감이 느껴진다. 궁전에는 크리스티안 4세와 5세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2개의 왕관이 있다.

전임 국왕의 왕관은 절대 군주제 전의 것으로 머리 부분이 열려있고 후임 왕의 왕관은 국내를 통일했다는 의미로 하나로 막혀 있는 점이 특이하다.

덴마크의 정원이라 불리는 핀 섬은 셀란 섬과 스토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 나라 제2의 섬이다.

낙농업이 발달했으며 특히 전원풍경이 아름답다. 섬의 중심지는 바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덴마크 제3의 도시 오덴세. 안데르센과 세계적인 작곡가 카룰 닐센의 고향으로 특히 유명하다. 섬 남쪽에는 이에스코우(Egeskov) 성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옛 성으로 1552년에 세워졌는데, 호수 위에 건립된 빨간 벽돌의 성벽과 탑은 주위의 넓은 정원과 어울려 덴마크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손꼽힐 정도다.

로코코 양식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아말리엔보그 궁전(Amalienborg Slot)은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공식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는 곳.

왕실의 거처라고는 하지만 곰털 모자를 쓴 위병이 서있지 않다면 궁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검박한 분위기다. 여왕이 궁전에 머무르고 있는 날에는 낮 12시쯤 왕실 근위병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

빨간색 상의를 입은 70명의 위병들이 로젠보그 궁전 숙사에서 출발, 시내를 지나 궁전 광장으로 입장한다. 만약 산책 중에 위병 행진을 만난다면 피하지 말고 악대의 음악에 맞춰 뒤를 따라가 보자. 순간 수백 년 전 과거로 불시착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볼로냐(Bologna)의 첫 인상은 다소 투박하다. 도시는 베니스에서 피렌체로, 혹은 밀라노에서 로마로 향하는 중간지대의 성격이 짙다. 인근 숨가쁜 여행지들이 즐비하기에 철제 광고간판의 낯선 볼로냐 역에서 내린다는 것은 선뜻 내키지 않는다. 불과 한 시간 전 열차가 출발했던 베니스는 역 앞에 운하가 흐르고 곤돌라가 떠다니는 꿈같은 풍경이었다.


볼로냐가 이방인들에게 유명 관광지로 언급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정의하자면 볼로냐의 매력은 오히려 그런데 있다. '먼 북소리'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피렌체를 방문할 때 특별한 용건 없이 사나흘 쉬었다 간 도시가 볼로냐였다. 이곳에서 쇼핑을 하고 산책을 즐겼으며 어느새 단골이 된 레스토랑들을 찾았다. 그는 볼로냐를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이렇게 비교했다.


'피렌체는 관광객을 많이 상대해 닳고 닳은 구석이 있다. 로마는 불친절하고, 밀라노는 상점이 너무 많아 몸이 파김치가 된다.'

볼로냐의 중심 광장인 '피아자 마조레'


편안함에 대한 묘사로 치자면 하루키의 지적이 어느 정도 맞다. 도시는 현지인과 관광객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지 않는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도 억지 미소는 없다. 민박집 주인이 소개해 주는 건물 모퉁이 식당의 파스타도 썩 괜찮은 편이며 현지인들이 들락거리는 작은 샌드위치 가게도 맛과 정겨움이 묻어난다. 물론 이런 소소함 뒤에는 볼로냐는 커다란 수식어들을 감추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회랑을 간직한 도시

볼로냐는 '회랑(아케이드)의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곳이며 미식의 고장이다. 역사, 예술, 요리, 음악 등을 두루 갖춘 비옥한 도시는 2000년에는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되기도 했다.

일단 도시가 전하는 강렬한 이미지는 끝없이 이어지는 회랑들이다. 길게 늘어선 열주가 노천 지붕을 받치고 있는 '포르티코'로 불리는 회랑은 구시가 전역을 감싸고 있다. 비오는 날 우산 없이 다녀도 크게 불편할 일이 없을 정도로 포르티코는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일찍이 이런 회랑의 릴레이를 본적이 없다. 구시가의 오래된 회랑 아래는 성긴 나무판자의 흔적도 남아 있고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구시가의 명소들을 뒤로 한 채 찾아 나선 산 루카 사원은 경계의 의미가 짙다. 작은 정원이 사랑스러운 '빌라 스파다'에서 미니버스를 타면 목가적 초록풍경의 언덕들을 넘어 산 루카 사원에 도착한다. 사원 뒷길은 버스가 올랐던 시골 풍경과는 완연하게 다르다. 사원에서 구시가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포르티코 길이 3.8km 이어진다. 거꾸로 걸어서 올랐다면 땀 좀 흘렸을 길을 현지인들은 반바지 차림에 조깅코스로 애용한다.


총 666개의 아치로 연결된 이 산책길은 참 행복하고 아름답다. 포르티코 길을 내려서다 보면 '붉은 지붕의 도시' 볼로냐의 자태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선명하게 그려진다.




천년 역사의 대학...이탈리아 요리의 수도

구시가에 도착해 제법 큰 대로인 우고 바시 거리에서 마주치는 쌍둥이 탑은 볼로냐의 상징이자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한 명물이다. 탑 뒤쪽, 잠보니 거리로 걷다보면 골목에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고. 어느새 대학 캠퍼스의 한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세계적인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기호학 교수로 재직중인 볼로냐 대학이다.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대학에서는 수준 높은 클래식, 재즈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좌파들과 레지스탕스 역시 이 '붉은' 도시를 거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쌍둥이 탑에서 내려다본 구시가 전경. 볼로냐는 붉은 지붕의 도시로 통한다.


도시의 중심인 광장 '피아자 마조레'는 역사적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팔라조 다쿠르지오'에는 볼로냐가 배출한 정물화가 조지오 모란디의 작품이 상설전시 중이다. 모란디의 작품을 사랑했던 성악가 파바로티의 자녀들이 기증한 그림들도 미술관 한편을 채우고 있다. 넵튠 분수, 산 페트로니오 성당 등 광장을 단장하는 소재들은 여느 중세 이탈리아 도시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볼로냐는 '이탈리아 요리의 수도', '뚱보들의 도시'로 통한다. 맛 집들만 찾아다녀도 하루 해는 짧다. 볼로네제 스파게티로 불리는 미트소스 파스타는 꼭 맛봐야할 요리이며 가게에서 직접 만든 생 파스타 역시 유달리 쫄깃쫄깃한 맛을 자랑한다. 육류나 치즈를 파는 델리카트슨 식당이나 중앙 광장 옆 골목에 들어선 노천시장 역시 미식가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절대 방문' 코스다.




가는길


한국에서 볼로냐까지는 터키항공 등이 경유편을 운항중이다. 열차로는 베니스, 피렌체에서 한두 시간이면 닿으며 교통의 요지라 밀라노에서의 연결편도 다수 있다. 대학의 도시인 만큼 B&B 형태로 운영되는 민박집들이 다수 있으며 시설이 꽤 깔끔한 편이다.

 

  1. Favicon of https://withcoral.tistory.com 내멋대로~ 2013.11.26 09:31 신고

    볼로냐...

    피렌체에서 베니스
    기차 타고 갈때 중간에 정차역이었던 것 같네요...

발칸 반도의 자존심, 동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고단한 역사를 이끌어온 대다수 동유럽국가의 일반적인 이미지처럼 회색 빛 분위기의 음산하고, 일견 칙칙한 이미지마저 가지고 있지만, 도심 곳곳에 넘실거리는 녹색 공원의 푸른 기운과 함께 매력적인 사람들의 미소로 평화로운 고도, 베오그라드. 아름다운 여인들의 미소와 활기찬 도시 분위기로 당당한 면모를 지닌 자존심 강한 역사의 숨결 속을 거닐어 본다.

베오그라드의 중앙역 앞, 교통허브 Savska 광장 거리에는 시가전차가 끊임 없이 오고 간다.




자존심 강한 발칸의 고도, 베오그라드

빛 바래고 오래되어 퇴색된듯한 느낌의 베오그라드는 사회주의 시절의 후미지고 음침한 분위기 마저 감돌지만, 오히려 그 오랜 느낌과 느슨한 신구의 조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도시다. 회색 빛 도시의 첫 마주함에 당황스럽지만 쉬이 익숙해지고, 하루만 지나면 친구 같고, 또 하루가 지나면 깊게 정드는 공간, 베오그라드. 당당함과 자존심 강한 세르비아 인들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활기차고 낭만적이며, 차츰 변모해 가는 발칸의 심장 베오그라드는 정감 있는 도시로 다가온다.


발칸반도의 화약고라 불릴 만큼 인근 형제국가와 끊임없는 전쟁이 계속된 나라, 세르비아. 그 고단한 역사 속에 운명처럼 자리한 도시 베오그라드. ‘하얀 도시’라는 뜻의 베오그라드는 오스트리아로부터 흐르는 사바강이 도나우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도심 강변으로 군사용 성채와 성벽 등 과거 세르비아 왕국의 화려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삶의 여유로움도 간직하고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잊고, 평온한 모습을 되 찾아가고 있는 베오그라드는 왕국의 숨결이 살아 있어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베오그라드의 중심 대로, 블루바드 알렉산드라에 자리한 베오그라드 국회의사당.


세르비아 남부 소도시와 광활한 평원을 거치고 나면, 베오그라드 도심으로 진입하는 일은 분명 흥분되는 일이다. 유고 시절의 영화를 고스란히 끌어 안고, 기대 이상의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 역을 출발한 전차는 역 앞 Savska 거리를 돌아 완만히 비탈진 Nemanjana 거리를 미끄러지듯 달려간다. 첫눈에 방문자를 당혹 시킨 것은 1999년 나토 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이 상처 입은 채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을씨년스러운 장면이다.


체코 프라하, 불가리아 소피아처럼 시가지를 질주하는 전차는 마치 동유럽의 상징과도 같다. 느긋하게 달리는 전차가 전해주는 묘한 낭만과 우수는 여행자에겐 활력과 신선한 기분을 선사해 준다. 다섯 량, 안팎의 열차가 언덕을 달그락거리며 오르기도 하고, 방향을 틀어 언덕을 오르는 둔탁한 쇠 소리는 이방인에겐 추억의 소리로 다가온다. Resavaska 거리를 지나 Kralja Aleksandra 블루바드에 도착하면, 녹음으로 우거진 평화로운 공원이 이방인을 반겨준다.

늦은 오후, 일과를 마치고 공원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젊은 커플.


도심의 핵심 중심부로 진입하면, 칙칙하고 음산하던 분위기는 매력적인 여인들과 밝고 화사한 쇼핑 스트리트의 출현으로 생기가 돈다. 뉴욕 맨하탄의 뒷골목을 연상시킬 만큼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는 순간, 여행자의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사회주의 역사를 통해 오래 전부터 익숙하게 연상되어 오던, 유고슬라비아와 동유럽 이미지의 어두운 분위기는 차츰 수그러들고, 자유 연애와 낭만 도시의 활기, 세르비아 특유의 자존감이 어우러져 당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기원전 3세기부터 2,000년 동안 40번이나 파괴되고 다시 지어진 도시 베오그라드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그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거리의 건축물들은 전쟁과 전후 복구를 통한 피로가 누적된 듯 피곤한 얼굴이지만, 전통과 오랜 역사를 간직한 근엄한 면모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베오그라드의 매력은 회색 빛 도시의 상처 깊은 역사와 우수 어린 낭만이다.

베오그라드 역사의 상징, 칼레메그단의 성채는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도심 서북쪽, 사바강과 도나우강의 합류점에 자리한 역사적 장소 칼레메그단 Kalemegdan은 베오그라드의 상징이자,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 받고 있다. 2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에는 전쟁 박물관을 비롯하여 성채와 망루가 자리하고 있으며, 주말이면 여행객들과 베오그라드 주민들이 어우러져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언제나 연인들에게 인기 만점인 도나우강의 아름다운 일몰은 이 공간을 사랑의 동산으로 착각하게 할 정도다.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 Kneza Mihailova Street 는 동유럽 어느 도시나 존재하는 보행자 천국이자, 메인 쇼핑스트리트다. 세련된 베오그라드 청춘들의 집결지기도 하며, 문화와 공연을 즐기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만남과 행복의 충전소 임에 틀림없다. 베오그라드의 중심지에 위치한 이 광장에는 세르비아 왕국의 크네즈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왕의 기마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도시의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강인함과 오랜 전통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사브스키 광장은 고속버스, 열차, 시가전차의 기점으로, 베오그라드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한다.


베오그라드는 옛 유고 연방 시절 수도 역할을 담당했던 만큼, 도시의 규모도 크고 웅장할 뿐만 아니라, 고도를 자처한 도시인 만큼, 역사적인 건물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심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Kralja Milana 거리의 남쪽 끝자락, 카라조르제 공원에 자리한 성 사바 교회가 하얀 빛을 내며 일반인의 시선을 압도한다. 세계 최대의 그리스 정교회로 여전히 건축중인 교회는 밤낮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으며, 특히 밤에 마주하는 하얀 벽체와 신비로운 기운은 감동적이다.


낮은 언덕과 비탈진 거리, 시원하게 뻗은 대로와 유니크 하고 특색 있는 골목들이 그물망처럼 이어진 구 시가지의 베오그라드는 마치 티토의 옛 유고 시절을 대변하듯 안정적이며, 너그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미끄러지듯 빠져 나가는 전차들과 그 사이를 질서 정연하게 오고 가는 차량들의 행렬이 베오그라드의 생기와 활기찬 풍경을 연출한다. 사회주의 시절의 낡은 차량과 최신 유행 차량의 묘한 공존이 오히려 도시의 거리를 멋스럽게 연출하고 있다.

베오그라드 구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Kneza Milosa 거리는 언제나 역동적이다.


밤과 낮의 급격하게 변화하는 풍경도 이방인에겐 낯선 즐거움이다. 낡은 전차를 타고, 사바강을 건너 제문과 뉴 베오그라드를 찾아가는 일도 즐겁다. 신시가지인 Novi Beograd는 칼레메그단 공원과 강을 경계로 완전히 새로운 계획도시로 조성되었다. 고층 아파트와 호텔, 쇼핑 센터들이 들어선 도심에는 구 시가지에선 느낄 수 없는 평온함과 한가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아침이면, 칼레메그단 요새로부터 사바 강 남단 하안으로 이어지는 도시의 스카인 라인은 베오그라드가 하얀 도시임을 여실히 증명시켜 주는 상징적인 시간이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베오그라드의 분위기를 한층 회색 빛으로 물들인다. 날씨와 기분, 사람의 감성에 따라 하얀 도시와 회색도시를 오고 가는 베오그라드는 어쩌면 마음속에 피어나는 상념의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자존심 강한 고도, 베오그라드의 진짜 얼굴은 개인의 심안에 따라 화이트 혹은, 그레이로 채색되는 매혹의 도시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회색 빛 건물들 사이로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정겨움을 전해주는 베오그라드.



여행정보

발칸반도로의 여행이 한결 쉬어졌다. 체코 헝가리는 물론, 이탈리아, 터키에서도 국제 버스들이 매일 수 차례 쉼 없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버스는 정시 출 도착이 장점이며, 기차는 여유로움과 안전이 장점이다. 서유럽과 동유럽을 오가는 열차들이 베오그라드에 정차한다. 사바 강변에 위치한 중앙역과 바로 옆의 버스 터미널이 여행의 편의를 제공하며, 역 앞에서 수시로 발차하는 시가전차는 도심 구석 구석을 편리하게 안내해 준다. 볼거리가 한정된 베오그라드는 구 도심을 중심으로 이틀만 둘러보아도, 그 무한한 매력에 쉽게 빠져들 것이다.

 

  1. Favicon of https://hititler.tistory.com 히티틀러 2013.11.25 21:57 신고

    베오그라드는 정말 발칸지역 교통의 중심지인 거 같아요.
    5년 전쯤 여행을 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 곳 중 하나예요.



이야기의 땅 '체코'… 이야기로 접하니 친숙한 여행지

[투어코리아=오재랑 기자] "여행과 스토리텔링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이야기가 있어야 낯선 도시가 친숙하게 다가오고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코역시 '이야기의 땅'이다. 체코에 있는 집 하나하나에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서려있고 역사 이야기가 가득하다. 한국 관광객들이 체코의 역사 이야기, 문화 이야기, 건축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체코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주한체코관광청 미하일 브로하스가 한국지사장은 체코의 관광 매력은 '이야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주한체코관광청의 슬로건도 '체코, 이야기의 땅'이다.



역사·문화·건축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 더 즐거운 여행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 가듯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역사처럼 체코도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나라다. 러시아 등 강대국에 살아남기 위한 아픈 역사가 있고, 주변국가의 흥망성쇠와 함께 예술과 문화, 건축물들이 많은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났다.

특히 '체스키 크루믈로프'는 르네상스를 끝으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도시로, 르네상스 시대로의 시간 여행을 선사한다. 이 곳에 가면 거리 사이사이로 보이는 건축물들을 통해 르네상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또 독일 국경과 접해 있는 온천도시 '카를로비바리'에서는 14세기 카를 4세가 사냥 중 다친 사슴이 원천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온천수를 마시면서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회랑인 '콜로나다'를 통해서 왕족과 귀족, 저명인사들이 이곳으로 휴양 왔던 18~19세기 문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프라하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 중 하나인 '아르누보(Art Nouveau)'도 한국 관광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전통적 예술에 반발해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창출하려 했던 운동으로,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고, 체코 역시 그러한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이 생겨냈다. 도자기 등 장식적인 부문에도 아르누보 스타일이 응용됐다.

프라하의 시민회관도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성 비투스 성당'의 유리창에서도 아르누보 미술의 대가 '알폰스무하'의 작품으로 장식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래된 전통과 낭만 도시 이미지 '굿'

이야기를 통해 이미지가 형성된다는 측면에서 영화나 드라마도 좋은 홍보 수단이다. 실제로, 프라하를 주요 무대로 한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2003년 방송되면서 프라하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상승곡선을 그렸다.

드라마를 통해 '프라하'하면 '낭만적인 도시'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듯하다.

이러한 긍정적 이미지 덕에 체코를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객이 증가, 한국은 체코의 중요한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2년 한국인 관광객 수는 13만 명으로, 이는 중국 14만 명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은 가장 중요한 시장인 것.

특히 대한항공에 이어 체코항공이 올해 여름부터 프라하 직항 노선을 운항하는 등 항공편이 늘어 나면서 한국 관광객 수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한국 관광객 수는 14만에서 14만 5천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축제 일정에 맞춰 여행 계획을 세워라

증가하는 여행객 수에 맞춰 연령에 따라 마케팅 계획도 차별화 시킬 방침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을 위한 패키지여행 프로그램을 만드는 동시에 자유롭게 구석구석 자유여행(FIT)을 선호하는 젊은층을 대상으로는 '로맨틱 프라하'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킬 계획이다.

또 체코 주변 국가에 비해 저렴한 숙소와 민박이 발달해 있고 물가도 저렴하다는 사실을 적극 알려나가는 활동을 전개해 나가겠다.

개별 자유여행객이라면 축제일정을 참고해 여행 계획을 세울 것을 권한다. 체코 동부 지방모라비아 남부에선 9~10월 중세시대 포도를 수확하고 맛볼 수 있는 행사가 열리고, 12월 올로모우츠에선 크리스마스 공연과 장식이 볼거리다. 7월 첫주 '까를로비바리'에서는 국제영화제가 열려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1. Favicon of https://poeta.tistory.com 서점 2013.10.29 08:48 신고

    체코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절로 떠오르는것같아요
    잘보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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