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 중국역사 품은 산시성을 가다]
[1] '중국의 그랜드캐년' 몐산
아찔하지만 쾌감이 느껴지는 '고대 중국의 색'

중국의 자연 치고 웅장하고 거대하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겠지만, 산시성(山西省)의 자연경관은 각별하다. 특히 해발 2000m, 길이 25km에 달하는 협곡을 따라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절벽에 절묘하게 붙어 있는 몐산(綿山)을 보고 있으면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수식어가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중국의 5000년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하늘 아래 산을 향해 걷는 길' 산시성 몐산을 찾았다.

윈펑수위안(雲峰墅苑)호텔에서 바라본 불교사원 윈펑스(雲峰寺) 및 몐산(綿山)의 풍경.
황하 문명의 발상지이자 '누들 로드'의 시발점인 산시성 곳곳에는 중국의 장대한 역사와 문화가 새겨져 있다. "5,000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이지만 그동안 한국인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속의 중국'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산시성은 베이징,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여준다.

산시성 성도 타이위안(太原)에서 남서쪽으로 170㎞쯤 달리면 최고 2556m 높이의 몐산이 나타난다. 몐산은 산둥성과 산시성을 나누는 경계인 타이항(太行) 산맥의 한 갈래로, 1년에 13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중국인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왕을 옹위하는 대업을 이룬 뒤 벼슬을 거부하고 은둔했던 진나라 충신 개자추의 일화와 중국 4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한식(寒食)이 유래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불교사원 윈펑스(雲峰寺)에서 12존의 등신불이 안치된 정궈스(正果寺)로 올라가는 하늘계단.
깎아지른 듯한 절벽 옆을 따라 닦아 놓은 4차로 폭의 도로를 통해 구불구불한 산허리를 오르다 보면, 영겁(永劫)의 세월 속에 형성된 깊이 2000m 이상의 협곡이 눈에 들어온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다. 협곡 사이 절벽에 매달린 듯한 굴 속 곳곳에는 불교사원 윈펑스(雲峰寺)와 12존의 등신불이 안치된 정궈스(正果寺), 도교 사원 다뤄궁(大羅宮)등 특색을 가진 불교, 도교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노예 신분으로 태어나 후조(後趙)의 1대 황제가 되었다는 석륵이 군사를 모았다는 석채(石寨)내에 있는 절벽 위 하늘로 가는 다리인 '천교(天橋)'에 오르면 내가 하늘인지 하늘이 나인지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천교 아래 안개가 휘감은 협곡은 무협지에서나 나올 법한 절경이다. 쉴새 없이 산을 오른 탓에 몸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맑아진다.

윈펑스(雲峰寺)에서 바라본 윈펑수위안(雲峰墅苑) 호텔.
그렇게 여러 누각과 사찰을 지나다 보면 절벽 위에 매달린 듯 자리잡은 윈펑수위안(雲峰墅苑) 호텔이 나타난다. 윈펑스 옆에 위치한 호텔로, 해발 2000m 낭떠러지 위에 지어져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가야 진짜 객실 로비가 나오는 호텔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호텔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 산시성 몐산 여행수첩

산시(山西)의 성도 타이위안(太原)에서 남쪽으로 3시간, 핑야오고성(平遙古城)에서 1시간 가량 떨어져 있다. 배낭 여행자의 경우, 핑야오고성에서 개휴(介休)행 버스를 타고, 개휴에서 몐산(綿山)행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여행 적기는 5월에서 10월까지로, 이 시기가 아니면 몐산의 참멋을 보기 쉽지 않다.

인천과 중국 타이위안을 왕복하는 아시아나 전세기가 10월 28일까지 매주 월, 금요일 주2회 운항한다. 전세기 한국사업자는 레드팡닷컴(02-6925-2569)이며 전국 여행사에서 관련 상품을 연합판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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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펑스(雲峰寺) 절벽에 새겨진 문양. 귀한 손님이 윈펑스 혹은 윈펑수위안에 방문했을 경우 야간에 불이 켜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5천년 중국역사 품은 산시성을 가다]
[2] 왕자다위안 & 핑야오구청
이곳에 발 디디는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산시성의 대부호들을 가리켜 진상이라 불렀는데 왕자다위안은 진상의 저택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과연 대륙의 위엄이 느껴졌다. 산시(山西)성 핑야오(平遙)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닿는 왕자다위안(王家大院).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한 규모의 대저택이 위용을 뽐낸다. 집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가이드의 말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 저택들은 상업이 급속히 발전했던 명·청 시대에 소금장사로 많은 부를 모았던 왕씨 형제가 지은 것들로, 기둥과 벽 등 집 안 곳곳에 다양한 문양들이 남아 있으며 수백년된 고풍(古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핑야오하면 거장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홍등'(紅燈)의 촬영지로 유명한 차오자다위안(喬家大院)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 웅장한 모습을 자랑했던 차오자다위안도 왕자다위안 앞에서는 새발의 피다. 왕자다위안은 면적이 45,000㎡로 차오자다위안의 5배에 이르고, 50년에 걸쳐 지어진 방 1000여개가 있다. 축적한 부를 지키기 위해 높은 보루와 두께가 1미터가 넘는 성벽으로 집을 둘러쌌을 정도니 당시 통상에 종사했던 산시성의 대부호들이 가졌던 부(富)의 규모를 짐작할 만 하다.

목조 삼층 누각 스러우에서 바라본 핑야오구청 내 시가지의 풍경.
왕자다위안(王家大院)에서 발걸음을 남쪽으로 살짝 돌리면 시간이 멈춘 땅 ‘핑야오구청(平遙古城)’을 만날 수 있다. 영화 '쿵푸팬더'의 실제 배경이기도 한 핑야오구청은 2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古都)로서 14세기 개축 당시 지어진 6000미터가 넘는 성벽과 건물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당시 유네스코 측은 "성벽, 고건축물, 사원, 시가지, 문화 보존이 거의 완벽에 가깝다"는 찬사를 보낸바 있다.

핑야오구청의 주 여정은 목조 삼층 누각인 스러우(市樓)에서 시작한다. 입장료 5위안(약 850원)을 주고 누각 내 아슬아슬한 계단을 오르면 고성 전체가 한 눈에 펼쳐진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느낌이랄까. 성안은 개발이 엄격히 제한돼 있어 고층건물 하나 볼 수 없고 시멘트 없이 온전히 흙으로 지어진 집들이 마치 서울 북촌마을의 풍경처럼 수십개씩 몰려 있다. 중국 최초의 금융기관인 리성창(日昇昌)을 비롯하여 고성 내 대부분의 건물이 명·청시대 양식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한국민속촌처럼 박제되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놀랍다.

핑야오구청에서 성업 중인 사쿠라 카페. 간판 내 '벚꽃마을'이란 한글이 눈에 들어온다. 카페 주인의 부인이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고성 골목 구석구석 사람이 가득했다. 깨끗하게 잘 정리된 명청거리에서 홍등(紅燈)이 늘어진 중국식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과 금방이라도 먼지를 뿜을 듯 한 돌벽, 삐걱거리는 대문, 도교 사원에서 풍기는 오래된 향 냄새가 함께 공존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곳에서 두 시대의 특색 있는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특별한 일이다.

리장고성(麗江古城) 등 다른 중국 내 세계문화유산과는 달리 상업화에 물들지 않은 탓에 고성 특유의 멋과 사람들의 순박한 인심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핑야오구청. 자전거를 타고 골목과 유적을 돌아보는 다소 단조로운 여행도 이곳에서는 남다르게 느껴진다. 심장을 멎게 할 만한 으리으리한 관광지들이 몇년 사이 중국을 가득 메워나가는 지금, 이상하게도 정작 중국을 찾은 이방인들이 매혹된 것은 화려한 건축물도 세련된 쇼핑몰도 아닌 사람 냄새 가득한 고성(古城)이었다.

왕자다위안도 그렇고 핑야오구청도 그렇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나간 도시의 마천루 사이에서 이렇게 옛것 그대로 남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산시성 핑야오 여행수첩

장조림 맛이 나는 '핑야오 소고기'와 산시성의 펀주(汾酒)가 이곳의 대표 특산물이다. 중국 전통 가옥을 개조한 객잔(客棧)에서 숙식을 하면 중국 전통 정원문화를 더 친근하게 체험할 수 있다. 핑야오구청 내 16개 고건축물 전체를 관람할 수 있는 표를 판매하고 있으나 일부 성황묘나 관아 등은 외곽쪽에 위치해 관람이 쉽지 않다. 여행 성수기는 4월에서 10월까지.


중국 톈진

'하늘의 나루'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중국 톈진(天津)은 물과 가까운 도시다. 하이허(海河)강 하구와 보하이(渤海)만 연안에 자리 잡고 있어 강과 바다에 동시에 맞닿아 있다.

수나라 대운하 개통부터 상업중심지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서구에 문호개방을 하게 됐을 때도 이곳에서 '톈진조약'이란 것을 맺었다. 일찍이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톈진은 중국과 유럽이 섞인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겉보기엔 상하이와 비슷하지만 훨씬 조용하고 차분해 오히려 고즈넉한 느낌이다.

텐진 하이허의 야경(夜景)은 중국과 유럽, 19세기와 21세기가 섞여 빛난다. 어지러울 법도 한데, 잔잔한 강물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다.

◇강물에 옛 정취 반짝반짝 빛나

톈진의 택시기사들은 하나같이 관광지가 아니라 하이허를 이곳의 명소로 꼽는다. "밤에 가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들의 충고대로 밤에 세계금융센터에서 톈진즈옌(天津之眼)까지 강길을 따라 걸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지어진 유럽식 건물이 강의 양쪽 길을 따라 늘어섰다.

해가 졌지만 강은 반짝반짝 빛났다. 다리와 건물에 불을 훤히 밝힌 톈진 야경(夜景)이 강물에 그대로 비친 것이다. 산책로에는 태극권을 배우는 중년들과 '모택동 어록' 같은 중국 사회주의 유물을 관광상품으로 파는 노점상 등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톈진즈옌은 말 그대로 '톈진의 눈'이다. '런던 아이(London Eye)'처럼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관람차다. 톈진즈옌은 강 위에 놓인 다리 사이에서 솟아올라 멀리서 보면 강 위에서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강가에는 유럽식 건물이, 그 외곽에는 갓 지었거나 한창 짓고 있는 고층 빌딩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과자·만두·밤 간식 별미

톈진에는 끼니가 될만한 음식보다는 '샤오츠(小吃)'나 '디엔신(点心)'이라 불리는 간식거리가 더 인기다. 서울 명동거리와 같은 허핑루의 가게 5개 중 한개에서 마화(麻花)를 판다. 마화는 우리나라 꽈배기와 비슷한 과자다. 1920년대에 하북성 창저우(常州)에서 톈진으로 이주한 판(范)씨 형제가 가게를 내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수처럼 길게 늘인 두세 가락의 밀가루 반죽을 꼬아 기름에 튀겨 만든다. 달고 바삭하지만 느끼하지 않다. 매실, 호두 등 반죽에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마화의 종류와 맛이 달라진다. 큰 것은 성인 여성의 팔뚝만 해서 한 개 먹고 나면 밥 한 공기 먹은 기분이다. 마화 브랜드는 많은데 '스바졔(十八街) 마화'가 원조라고 한다. 큰 것 한 가닥에 12위안(1위안=약 180원) 정도.

한국에서 잘 알려진 고우부리(狗不理) 만두도 톈진의 명물이다. 비법은 만두소에 돼지뼈를 고은 국물을 넣는 것. 고기만두를 먹어보니 차진 만두소 사이에서 기름진 육즙이 새어나왔다. 1인분 40~50위안.

현지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샤오츠는 '리즈(栗子)', 즉 밤이다. 큰 솥에 밤을 넣고 설탕물을 뿌려가며 굽는데 껍질을 까면 알맹이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단맛이 강하지 않아 질리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밤을 굽는 곳은 눈에 띄지만 현지인들은 '샤오바오(小寶) 리즈'를 추천한다. 한 봉지에 20위안. 허핑루에 있는 꿰이파샹(桂發祥)에 가면 샤오바오리즈와 스바졔 마화 등을 한꺼번에 살 수 있다.


어렵던 1950~60년대, 우리에게도 ‘목욕’은 연례 행사였다. 추석이나 설날을 앞두고 동네의 대중목욕탕을 찾아가 묶은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조상들에게 정성어린 제물을 받치곤 했다. 목욕은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리수족 아낙네들이 윈난성 누장 대협곡의 노천 온천에서 열리는 전통 축제인 자오탕후이에 참여해 집단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중국 대륙의 남서쪽 윈난(雲南)성. ‘동방의 대협곡’, ‘신비의 대협곡’이라 불리는 누장(怒江) 대협곡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 리수(傈僳)족에게도 수백년 전부터 시작된 그들만의 목욕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일주일여 동안 류쉐이(瀘水) 주변 열여섯개 온천에서 부녀자와 아이들이 ‘자오탕후이(澡塘會)’라 불리는 집단 온천욕을 즐긴다. 평균 해발 3,000m 이상의 깊은 고산 협곡에 흩어져 살던 리수족들은 담요나 이불은 물론이고 취사도구까지 챙겨서 노천 온천으로 몰려 나온다.

절벽 아래쪽이나, 동굴에 마른 풀을 깔고 이불을 펼쳐 임시 거처를 만든다. 돌 화덕을 이용해 쌀과 고기로 요리를 만들고, 술 자리를 마련해 야외 잔치를 벌인다.

배불리 먹고, 취기가 오르면 온천탕에 몸을 담가 온갖 세속의 때를 씻어낸다. 무병(無病)을 기원하고, 가족과 부족의 안녕을 소원한다.


강변 절벽 아래쪽에 마련한 리수족의 임시 거처
리수족의 자오탕후이는 단순히 온천욕만 즐기는 연례 행사가 아니다. 춤과 노래와 전통 놀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 마당이다.

남녀노소가 서로 담소하면서 심신의 피로를 풀고 편한 휴식을 즐긴다. 삼삼오오 온천욕을 끝낸 뒤 춤과 노래로 소통한다. 한껏 가벼워진 몸으로 선남선녀들은 마음껏 재주를 발산한다. 전통 칼로 만든 사다리에 오르고, 불놀이를 하고, 활쏘기를 하면서 새해를 맞는다.

리수족들은 음력 섣달 초닷새부터 다음해 정월 초열흘까지 전통적으로 ‘후오스제(闊時節)’이란 축제를 펼쳤다. 한족의 ‘춘제(春節)’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 축제 중 가장 성대하게 거행되는 것이 바로 집단 온천욕이다.


전통 복장을 입고 자오탕후이에 참여한 리수족 여인들
자오탕후이에 참여하는 남녀는 서로를 존중하며, 예의를 소중하게 여긴다. 이들은 성스러운 온천수로 액운을 씻어내면서 길상을 염원한다.

자오탕후이는 여러 곳에서 열린다. 그러나 누장 유역의 자오탕후이가 더 자연적이고, 더 민족적이고, 더 전통적이다. 그 중에서도 덩겅허(登埂河)와 마푸허(瑪布河)의 자오탕후이가 널리 알려져 이젠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을 정도다. 

이 곳에는 은폐물이 없고, 남녀 혼탕이다. 온천욕을 함께 즐기지만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들을 배려하면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목욕하는 여인들은 불쑥불쑥 사진을 찍는 외지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덩겅허의 ‘자오탕후이’ 개막식
자오탕후이는 리수족의 독특한 전통을 보여주는 문화 유산이자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민속 축제다.

먼 옛날부터 리수족은 누장 주변의 협곡 속에서 힘겹게 살아왔다. 열악한 자연 환경 속에선 친구나 친척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런 탓에 새해가 오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깊은 산 속에 흩어져 사느라 사람과 사람의 왕래조차 불가능하자 일년에 한번이라도 만나자며 잔치를 만들었다.


집단 온천욕을 즐기는 리수족 아낙네들과 아이들
누장 자치구의 리우쿠(六庫)는 ‘위에진차오(躍進橋) 온천’에서 열리는 자오탕후이로 유명하다. 동으로 비뤄슈에(碧羅雪)산, 서쪽으로 까오리공(高黎貢)산으로 둘러싸인 리수족 자치주의 중심 도시다.

바이족(白族)의 전설에 따르면 새해를 맞이할 때 이 곳은 진귀한 동물들의 보금자리였고, 부족의 제사장은 늘 이 곳에서 사슴을 잡아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루커우(鹿扣)’란 이름을 얻었다. ‘루커우’는 ‘리우쿠’와 독음이 비슷해 같은 어원이란 설까지 생겨났다.

한족들은 이 곳 주변에 여섯 개의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마다 진기한 보물이 있어 ‘여섯 개의 보물 창고’란 뜻으로 ‘리우쿠’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리수족들은 ‘협곡의 물이 항상 거세고, 땅 속에는 용담이 있다’고 믿어 이 곳을 ‘롱퉁(龍洞)’이라 불렀다. 리수족 말로 '루쿠(lut ku)’라 불리는 것을 한어로 음역을 하다보니 ‘리우쿠’가 됐다는 것이다.


집단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리수족과 축제에 참여해 사진을 찍고 있는 외지인들
새해를 맞는 모든 이의 바람은 한결 같다. 피부색이나 인종, 부와 관계없이 무엇보다 먼저 건강을 염원한다. 소수 민족 리수족의 ‘집단 온천욕’이 바로 건강의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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