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살결과 풍만한 곡선을 가진, 포근한 미인이었다. 굳이 닮은 이를 찾자면, 르누아르(19세기 말 프랑스 화가)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그런 여인이다. 페루 파라카스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사막엔 식생(植生) 하나 없었지만, 을씨년스럽긴커녕 관능적이었다. 여인의 가슴과 둔부를 닮은 모래 언덕이 끊임없이 펼쳐졌고, 사구(沙丘)와 사구가 이어져 움푹 들어간 부분은 잘록한 허리를 연상케 했다. 쨍하게 빛난 하늘 덕분에 곱고 가는 모래로 이뤄진 그 몸엔 깊고 극적인 음영(陰影)이 드리워졌다.
페루에는 관광책자나 역사책에서 수차례 봐온 ‘공중 도시’ 마추픽추만 있는 줄 알았지, 이런 미인을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별난 페루의 자연환경 덕분에 여행 내내 이런 경이는 꽤나 빈번했다.
파라카스 국립공원이 있는 이카 지역을 떠나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에 도착했다.전 세계의 배낭 여행객들이 모여드는 쿠스코의 중앙광장엔 스타벅스와 노스페이스, 그리고 한국 식당까지 있었다. 해발 3400m의 고도(古都)까지 온 이들은 마추픽추를 구경하거나 잉카트레일(잉카인들이 마추픽추까지 드나들었던 산길)에서 트레킹을 하기 위해 왔다. 마추픽추는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약 112㎞ 떨어져 있다.
마추픽추는 책이나 사진에서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너무 똑같아선지 산에 올라 사진에서 나오는 그 각도로 전경을 내려다봤을 땐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왜 ‘마추픽추, 마추픽추’라고 하는지는 가까이서 봐야 알 수 있다. 20t이 족히 나가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돌과 돌 사이엔 접착제를 쓰지 않았다. 돌을 마모시켜 서로 맞물리도록 쌓았다는 얘기다. 잉카제국이 정복한 부족민들을 노예로 삼아 지었기에 가능했다.
흔들림없이, 견고하게 쌓인 육중한 돌을 보자 오래전 이 땅을 디뎠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잉카 문명에선 바퀴도 쓰지 않았다고 하니 마추픽추를 만들다가 돌에 깔려 다친 이는 부지기수였을 것이고, 죽은 이도 그랬을 것이다. 스페인 군대가 이곳을 침략하자 많은 노예가 왕을 배신했단 얘기를 들었을 땐, 속으로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이날은 비가 왔다 하늘이 개기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이 골짜기의 날씨가 원래 그렇다고 한다. 마추픽추를 떠날 때쯤 비에 미끄러질까 봐 땅만 쳐다보며 걸었는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골짜기 한가운데에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다 보일 만큼 선명한 무지개가 걸렸다. 400여년 전 이곳에서 돌을 들어 올리고, 모서리를 깎아내던 이들도 고개를 들어 저 무지개를 봤으리라.
마추픽추를 다녀온 다음 날, 쿠스코에서 고산병에 시달렸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요상한 고통이다. 이곳 선인(先人)들이 고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 흔적을 보니 기분이 더 요상해졌다. 이들은 ‘모라이’라 불린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어 온도 차이에 따른 작물들을 실험하고, 같은 작물이라도 시기에 따라 높이를 달리해 심어 경작하기도 했다. 소금물이 흘러나오는 암염계곡을 염전으로 만든 ‘살리네라스’도 다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소금은 미네랄까지 풍부했다고 하니 잉카인들에겐 하얀 황금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끈질긴 적응력과 생명력을 확인하니, 고산병 따위는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티티카카’라는 마술 같은 이름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4시쯤 호숫가에 나갔다. 바다와 달리 조류가 없어 잔잔한 수면에 구름이 맞닿을 것만 같았다. 호수의 역할은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잉카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티티카카 호수에서 왔다고 믿었다. 수도를 ‘세계의 배꼽’(쿠스코)이라고 이름 지으며 위세를 떨치던 이들도 이곳에 경외를 느꼈을 것이다.
티티카카 호수보다 더 신기한 건 이곳에 떠 있는 인공섬 ‘우로스’다. 흙에 얽힌 갈대로 만드는 섬인데, 현재 이 호수에 70여개가 있다. 잉카제국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넓은 호수 한가운데 피난처를 만들었고, 잉카 군대도 더 이상 이들을 쫓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한국에서 페루까지 직항편은 없으며, 로스앤젤레스나 도쿄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많이 이용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르헨티나항공, 란칠레항공, 바리그브라질항공 등을 이용해 수도 리마에 도착할 수 있다.
■지리 페루의 면적은 남한의 13배이며,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페루의 지형은 크게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지, 아마존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태평양 연안에 펼쳐져 있는 해안 평야는 너비가 좁으며, 대부분이 사막지역으로 리마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도시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안데스 지역은 태평양에서 시작해 내륙 100㎞쯤 들어와 6000m의 고봉을 이룬다. 안데스 산맥의 동쪽 비탈면은 경사가 완만하며, 아마존 열대 우림지역이 형성돼 있다.
기후 10월에서 4월까지 우기, 5월에서 9월까지 건기로 구분.
환율 1누에보 솔(PEN)=0.39달러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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