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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프랑스

프랑스 보르도 : '와인 천국' 보르도에선 썩은 포도가 더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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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인 여행

과연 '와인의 제국'이었다. 프랑스 남서부에 자리한 세계적 와인 산지 보르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한 포도밭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중세 성(城)처럼 멋스러운 샤토(Château) 건물들이 곳곳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보르도가 고급 와인의 대명사로 손꼽히게 된 것은 자갈·석회질·진흙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테루아(terroir)와 서로 다른 포도품종으로 빚은 와인의 독특한 혼합(blending) 덕분이다. 와인의 천국인 만큼 고급 와인 시음 기회도 많고 샤토에 직접 들러 주인과 함께 저녁을 즐길 수도 있다.

보르도시 인근 페삭 레오냥 지역에 자리 잡은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 전경. 포도밭 면적은 67만㎡에 이르며 83%는 레드와인, 나머지는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 제공
샤토 특급와인 시음, 나도 해볼까?

"우리 집 와인 맛 괜찮습니까?" 지난 7일 메독(Médoc) 지역 생쥘리앵(Saint-Julien)에 위치한 샤토 브라네르 뒤크뤼(Château Branaire Ducru)의 저녁 연회장. 보르도 시내에서 샤토 방문객 전용버스를 타고 1시간쯤 북쪽으로 달리면 나오는 곳이다. 한국 와인 애호가들도 많이 찾는지 입구에 '어서 오세요'란 한국말도 보였다. 샤토 소유주 마로토(Maroteaux)씨가 방문객 80여명에게 포도밭과 양조장, 저장고를 일일이 보여준 뒤 저녁을 대접했다. 테이블마다 고급 와인 4~5병이 오르며 방문객들의 오감(五感)을 자극한다. 참석자들은 밤늦게까지 와인을 화제로 시음하고 식사를 즐겼다.

다른 샤토들도 일반인 초청 행사를 많이 연다. 사전에 일정 비용을 내고 신청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TV 드라마나 잡지 촬영지로 한국 와인 애호가들에게도 잘 알려진 페삭 레오냥(Pessac-Léognan) 지역의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Château Smith Haut Lafitte)의 소유주도 즐겨 방문객들을 맞는다.

역사를 마신다-생테밀리옹

보르도시에서 북동쪽으로 40㎞ 정도 떨어진 생테밀리옹(Saint-Emilion)은 와인 뿐 아니라 뛰어난 풍광과 역사를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199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도시 전체가 그림 같은 중세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타닌(tanin)이 풍부한 메독 와인과 다른 맛과 향을 즐기고 싶다면 생테밀리옹만큼 좋은 선택도 없다.

생테밀리옹이란 이름은 이 마을 작은 동굴에서 고행을 한 성자(聖者) 에밀리옹에서 따왔다. 생테밀리옹은 특히 11세기에 거대한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지하 동굴식 모놀리트 성당으로 유명한데 천장 높이가 12m나 된다. 성당 안에 에밀리옹의 유해가 묻혀 있어 중세 주요 순례길 중 하나였다고 한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보트리티스균에 오염돼 썩은 포도(윗쪽)와 매년 10~11월 이를 수확하는 모습 / 스위트 보르도 제공

썩은 포도의 화려한 변신

보르도시 남쪽 소테른(Sauternes)과 바르삭(Barsac) 지역. 이곳은 썩은 포도를 숙성시켜 만드는 스위트(sweet) 와인으로 유명하다. 스위트 와인은 화이트(white) 와인의 일종이다.

왜 하필 썩은 포도일까. 샤토 루미외(Château Roumieu)의 소유주 크라베이아(Craveia·30)씨는 "이 지역은 진흙토양인데다 안개가 많아 대부분의 포도가 귀부병(貴腐病)으로 불리는 보트리티스균에 오염된다"며 "이 균(菌)이 달콤한 맛을 내는 비결"이라고 했다. 이 지역 스위트 와인을 귀부와인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트리티스균을 만들지 못하고 썩어버린 포도는 와인을 만들 수 없다. 수확철이 되면 숙련된 일꾼이 일일이 손으로 보트리티스균의 생성을 확인하고 포도를 따내야 한다. 버리는 포도가 많아 생산량이 적고 그만큼 값도 비싸다. 스위트 와인 생산자들은 "레드와인보다 몇 배나 공을 들여야 한다"며 "레드와인 한 병을 만드는 데 포도 한 송이가 필요하다면, 스위트 와인 한잔을 만들려면 포도나무 한그루가 필요하다"고 했다. 크라베이아씨는 "내가 만든 스위트 와인을 마시고 소비자가 즐거워진다면 내 임무는 끝난다"며 "이곳 스위트 와인은 한국의 불고기와도 아주 잘 어울릴 것"이라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 여행수첩

●환율: 1유로=약 1545원
●항공: 인천공항에서 보르도까지 가려면 파리를 경유해야 한다. 대한항공·에어프랑스에서 매일 파리행을 운항하며 아시아나항공은 주 3회 운항한다. 파리~보르도 노선은 에어프랑스가 운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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