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구약 기행

한 공간에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한다. 신화와 역사의 시간이다. 간혹 신화의 시간이 역사의 시간을 압도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몽환적이다. 해서 자꾸만 아랍 커피를 마셨다. 에스프레소만큼이나 독한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조금은 깨어나곤 했다.

중동땅 요르단 암만 공항에 내려 사막대로에 오르는 순간부터 시간의 공존은 확연했다. 먼 지평선은 모랫바람으로 흐릿했고 가까운 마을은 버려진 것처럼 황량했다. 유난히 추운 겨울, 유목민족 베두인이 머무는 마을이라 했다. 그 마을들의 풍경은 비슷하다. 기약 없는 미래를 향한 철골구조물이 1층 너머 수직으로 뻗었고, 본래 하얗던 벽은 모래먼지에 누렇게 물들었다.

간혹 땅에 솟은 나무는 바람에 밀려 한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찬란한 연두색 대신 먼지를 뒤집어썼다. 가이드 칼리드(Khalid)가 말했다. "요르단은 물이 부족하다. 홀로 크는 나무는 없다. 모두 사람이 가꾼다."

그 황량한 공간에 신화의 시간이 중첩된다. 구약성서의 시간이다. 기원전 13세기(추정) 유대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향했다.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 38년간 광야에서 헤맨 곳이 바로 요르단이다. 그가 지팡이로 때려 물을 솟게 한 바위도, 숨을 거둔 느보산도, 그의 형 아론의 무덤도 모두 여기 있다. 그 흔적을 따르는 길은 아카바에서 시작된다.

출애굽한 200만명의 이스라엘 민족이 헤맨 광야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모세는 40년의 여정 끝에 가나안 땅을 목전에 뒀으나 결국 그 앞에서 숨을 거둬야 했다.

◆38년 고난의 시작, 아카바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국경을 맞댄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경계선 따라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곳이 세 군데다. 요르단 남쪽 도시 아카바는 그 중 하나이자 요르단 유일의 항구다. 대부분의 수출품과 수입품이 아카바를 통해 들어오고 나간다.

유일한 항구 도시, 아카바는 휴양지다. 밤에 더욱 빛난다. 시장을 품은 거리는 호객꾼으로 시끄럽고 카페는 물담배와 커피를 즐기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해변은 빼곡하다. 만(灣) 너머 땅은 불빛으로 넓게 반짝인다. 이스라엘 에일랏이다.

아침 햇빛에 불려오는 에일랏은 훨씬 가깝다. 그 사이, 좁은 만이 홍해다. 애굽 군사에 쫓기던 모세 일행이 물을 가르는 기적으로 탈출한 바다다.

홍해로 땅끝을 마감하는 요르단에서, 아카바는 모든 길의 시작점이다. 여기서 왕의 대로와 사막대로가 시작해 요르단을 종단한 뒤 암만에서 다시 만난다. 오른쪽으로 넓게 도는 사막대로는 아라바 광야를 가로지른다.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38년간 헤맨 광야다. 40년에 이르는 방랑 끝에 200만명이 넘던 출애굽 유대민족 중 오직 2명만 남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 200만명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닿았다.

그 광야는 높다. 사막대로는 해발 0m에서 700~800m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 귀는 순식간에 먹먹해진다. 이스라엘 민족은 조금씩 힘겹게 오르며 고도차에 적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와디럼을 만났을 것이다.

◆풍요 대신 신성을 품은 와디럼

사막이나 광야라 해서 끝 모를 지평선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광야의 한복판, 와디럼에선 불끈불끈 솟은 사암 산맥이 지평선을 가린다. 그 풍경은 위압적이다. 대체로 돌산은 유려한 곡선으로 이어지나 어떤 돌산은 불현듯 솟아올라 길을 막는다. 가까운 산은 황토색이 뚜렷하되, 멀수록 자욱한 모래먼지에 색을 잃어 원근감이 과장된다.

와디럼에서 성서의 시간은 모호하다. 다만 왕의 대로를 걷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이 이 근방을 헤맸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대신 또렷한 건 로렌스의 시간이다. 그는 사막에 매혹된 영국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에 맞서 아랍 독립 전쟁에 참여했다. 영국의 국익을 위해 그리했다는 말도 있다.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찍은 곳이 와디럼이다. 영화에서 한 영국인 장교가 말했다. "신과 베두인 족만이 사막에 흥미를 느낀다. 보통 사람에겐 불타는 용광로일 뿐이지."

불타는 용광로의 풍경은 해와 모래먼지, 그리고 메마른 관목이 완성한다. 베두인 족이 모는 트럭을 타고 와디럼 한복판에 들어서면 안다.

황토색 사암은 해의 방향 따라 빛을 얻거나 드러내면서 때로 붉고, 때로 하얗다. 모래먼지는 회색으로 먼 풍경을 거두고, 키 낮은 관목은 녹색으로 땅을 점점이 수놓는다. 문득 사람 키를 넘어서는 나무를 마주칠 때면 모든 이방인은 탄성을 내뱉는다. 그만큼 이 풍경은 풍요가 허락되지 않는 땅의 풍경이다. 사람의 정주(定住)를 거부하는 땅이다.

구약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불평을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수기 20장 4절)

이스라엘 민족이 '악한 곳'이라 말할 때, 그 악은 척박한 생존조건에서 온다. 대신 그곳에선 신의 목소리가 울린다. 풍요 대신 신성(神聖)을 품어 로렌스를 비롯, 수많은 몽상가를 매혹한다. 와디럼은 그 악한 곳을 닮았다.

◆모세의 샘이 있는 페트라

페트라는 와디럼에서 멀지 않다. 이쯤에서 왕의 대로로 길을 바꿔 탄다. 왕의 대로는 고대 무역로다. 이집트에서 시작해 아카바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페트라와 마다바, 암만 등을 거쳐 요르단을 종단하고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닿는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걸으려 했던 길도 바로 왕의 대로였다. 그들은 이 길을 통해 가나안 땅에 가려 했으나 의도를 의심한 에돔 왕이 이를 거부해 광야로 내몰렸다.

마땅히, 페트라는 언제까지나 고대 아랍 민족 나바테안의 도시로 남을 것이다. 다만 페트라는 몇몇 지명으로 성서의 시간도 기록한다. 먼저 페트라를 지나는 계곡 이름은 와디 무사(Wadi Musa), '모세의 계곡'이다. 그 계곡 끝엔 아인 무사(Ain Musa), '모세의 샘'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갈증을 호소할 때 모세가 바위를 쳐 물을 솟게 한 곳이라 전한다. 지금도 그 샘은 마르지 않는다. 하나 바위를 지팡이로 내려치며 신의 영광 대신 스스로의 능력을 과시한 탓에 이 유대민족 영웅의 운명은 크게 엇나간다.

페트라의 나바테안 유적지에서도 성서의 시간은 하얀 점으로 또렷하다. 페트라에서 고개를 들면, 호르 산 정상에 아론의 무덤이 홀로 빛난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대제사장 아론은 여기서 숨을 거뒀다. 구약 민수기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 '므리바 물'이 바로 지금 페트라에 있는 아인 무사 샘물이다.

지금은 호르 산을 오를 수 없다. 관광객이 오를 수 없는 호르 산에서 아론의 무덤은 홀로 광야 너머 가나안 땅을 바라본다. 그 땅은 아론이 영원히 닿지 못할 땅이다. 영원히 닿지 못할 땅을 아론의 무덤은 영원히 조망한다. 멀리 하얗게 빛나는 아론의 무덤을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아련하다.

1 마다바 성 조지 교회. 2 예루살렘 및 인근을 묘사한 제일 오래된 지도,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 성 조지 교회 내에 있다. 3 지금도 마르지 않는 페트라 '모세의 샘'.
◆모세가 숨을 거둔 느보 산

사막에선 땅의 진화가 종점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사막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인다. 사막의 사계절은 풍광의 변화 없이 비슷하다. 늘 불어오고 불어가는 바람만이 침식을 재촉하나, 풍화는 아주 더뎌 변화를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다. 수천 년 전과 지금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으리란 짐작은 여기서 기인한다.

모세가 숨을 거뒀다는 느보 산에 올랐다. 모세와 느보 산의 관계는 아론과 호르 산의 관계와 같다. 신의 뜻을 거역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만 그에게 주어진 축복은 또렷한 전망이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신명기 34장 중)

실제 그 전망은 모랫바람으로 늘 흐릿하다. 느보 산 정상에서 왼편으로 사해가 눕고 정면으론 이스라엘 여리고가 어렴풋하다. 여기서 여리고까지 27㎞, 예루살렘은 46㎞ 거리다. 40년간 모세가 헤맨 거리에 비하면 코앞이다. 모세는 80세의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길을 터주고 이 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죽었다.

성서의 시간은 여기서 역사로 진입한다. 느보 산에선 4세기에 건축한 교회와 수도원이 발굴됐고 9㎞ 떨어진 인근엔 예루살렘 및 인근을 묘사한 제일 오래된 지도가 있다. 바로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다.

모자이크 지도는 마을 마다바의 성 조지 교회 바닥에 있다. 6세기쯤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도에서 예루살렘과 사해, 베들레헴 등이 뚜렷하다. 본래 가로 6m, 세로 16m 크기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은 약 3분의 1쯤만 남아 많은 지역이 사라지고 없다.

마다바를 마지막으로 신화의 흔적은 잦아든다. 다시, 신화와 역사의 시간이 만난다. 암만에서 그 몽환의 시간을 마감한다.

여·행·수·첩

◆환율: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00원

◆항공: 에미리트항공이 요르단 수도 암만까지 두바이 경유편 운행. 매일 오후 11시 55분 인천 출발. 왕복 180만~190만원 선(유류할증료 및 세금 불포함). www.emirates.com/kr, (02)2022-8400

◆입국비자: 입국 시 암만공항에서 10JOD를 내면 바로 발권해준다. 유효기간 1개월.

◆여행 경로

①아카바에서 시작, 와디럼·페트라·느보산·마다바·암만 순으로 북진하는 편이 좋다. 암만에서 아카바까지는 육로로 4시간 소요. 각 구간 버스노선이 취약하므로 차를 빌리는 편이 낫다. jordan.rentalgroup.com 등 렌터카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암만공항에서 차를 빌릴 수 있다.

②아카바(Aqaba)와 페트라(Petra), 암만(Amman)에서 묵을 만하다. 아카바에선 시내에 있는 '캡틴 호텔'이 깨끗하다. 75JOD부터. www.captains-jo.com

트라에선 5성급 호텔 뫼벤픽리조트(www.movenpick-hotels.com)가, 암만에선 역시 5성급 호텔 홀리데이 인(www.holidayinn.com)이 편하다. 이외에도 www.tripadvisor.com, www.activehotel.com 등 호텔예약 사이트에서 각 지역명으로 검색, 예약하는 것도 방법.

◆각 지역 정보

와디럼: 입장료 2JOD. 방문자 센터에서 사륜차투어·낙타 사파리 등을 운영한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2시간짜리 사륜차 투어는 35JOD. www.wadirum.jo

페트라: 유적지 입장료 하루용 50JOD, 이틀용 55JOD. 페트라 관광사무소에 신청하면 영어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동행가이드 50JOD부터. +962-3-2156044

③느보산·마다바: 느보산은 마다바에서 서쪽으로 약 5㎞쯤 떨어져 있다. 마다바 성조지 교회 입장료 1JOD. +962-5-3240723 느보산 입장료 1JOD.

◆여행상품: 롯데관광에서 암만·페트라·와디럼 등 요르단을 비롯해 두바이·시리아·레바논을 함께 도는 상품을 운영 중이다. (02)2075-3006, www.lotte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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