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수프 속에 온갖 인종과 종교를 섞는 항구

마르세유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제국의 항구', 그러나 동시에 이 나라에서 가장 프랑스적이지 않은 도시였다. 기원전 600년 그리스 인에 의해 처음 세워진 이 항구는 프랑스 영토가 된 이후에도 모든 지중해인들의 거처였다. 20세기 초반에는 이탈리아 인들이 대거 들어와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했고,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동유럽인들이 밀려들어왔다.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지 개척과 독립의 과정을 통해 알제리인과 베르베르인들도 자연스럽게 늘어나 현재 인구의 1/3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알제리 계 이민인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의 고향이 바로 이곳, 그의 환상적인 드리블은 '마르세유 턴'이라 불린다.


야간 여객선을 타고 항구에 도착해 비몽사몽간에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북아프리카의 탕헤르카사블랑카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럴 때는 얼른 식당을 찾아들어가자. 구 항구(Vieux Port)는 마르세유 인들의 생활의 중심지이자,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생선 요리 부야베스(Bouillabaisse)의 향연이 펼쳐지는 장소다. 다채로운 해산물을 넣고 끓인 스프에 치즈와 마늘 즙을 더한 빵을 찍어먹고, 푸짐한 생선과 가재를 뜯어먹는 거창한 코스를 거치다보면 이 도시 자체가 거대한 부야베스 같이 느껴진다. 워낙 다채로운 인종이 살고 있기 때문에 곳곳에서 이국적인 레스토랑을 만날 수 있는데, [러브 액츄얼리]에서 콜린 퍼스가 사랑을 고백하는 포르투갈 레스토랑(Le Bar de la Marine)이 항구 남쪽에 있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마르세유를 트로이와 헬렌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여겼다. 2013년 카뮈의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마르세유는 유럽의 문화 수도가 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전설 - 이프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이프 섬에 14년 동안 갇혀 있었다.


요트가 가득한 구 항구에서 서쪽 바다로 조금만 나가면 요새처럼 보이는 작은 섬을 만난다. 마르세유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의 하나인 이프 섬(Château d'If)인데, 알렉산드르 뒤마의 모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에드몽 단테스는 결혼을 위해 마르세유에 돌아왔다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14년 동안 이프의 감옥에 갇힌다. 감옥 속에 만난 죄수로부터 몬테크리스토섬에 숨겨진 보물에 대해 알게 된 에드몽은 섬을 탈출한 뒤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변신, 희대의 복수극을 벌이게 된다.


이프는 원래 항구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지만 별다른 전투를 치른 적은 없다. 대신 감옥으로 바뀐 뒤 면회가 완전히 금지된 중죄수들을 수용하면서 악명을 떨치게 된다. 그 중에는 수천 명의 신교도들과 프랑스 혁명 참여자들도 있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실제 이프의 규모나 위용이 압도적이지 않아 다른 섬을 이프인 것처럼 촬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라 마르세유의 영광, 레지스탕스의 상처

'적군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땅을 적시도록...' 용맹하다 못해 잔혹한 가사로 가득한 프랑스 국가는 이 나라의 정체성이 혁명에 잇닿아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 노래의 제목이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인데, 1792년 혁명 당시 의용군으로 파리에 들어온 마르세유 사람들이 너무나 우렁차게 이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다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르세유 인들의 반골 기질은 2차 대전 당시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둘러싼 세력 다툼을 위해 마르세유 항을 무참히 파괴했다. 도시는 1942년 11월부터 1944년 8월 사이에 독일에 점령되었는데, 구 항구의 북쪽인 파니에(Panier) 지역은 가난한 어부나 항구 노동자들의 거주지이자 레지스탕스, 공산주의자, 유대인들의 게토와 같은 곳이었다. 나치는 1943년 2월 단 하루만의 여유를 주고 2만 명의 거주민들에게 소개 명령을 한 뒤, 이 지역을 다이너마이트로 처참하게 파괴했다.


파니에 구시가의 교회당(La Vieille Charité)은 나치에 의해 집을 파괴당한 146 가구가 집단으로 거주했던 곳이다.

영화를 낳았더니, 영화에게 괴롭힘 당한 느와르 도시

1970년대 마르세유는 범죄 영화의 단골 무대가 되었다.


마르세유에서 자동차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가면 시오타(La Ciotat)라는 작은 항구가 나온다. 바로 영화를 발명한 일등공신 뤼미에르 형제가 태어나 자라고, 최초의 영화인 '시오타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촬영한 곳이다. 이들이 파리의 그랑카페에 필름을 가져가기 위해 들려야했던 마르세유가 영화인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십여 버전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부터 [베티 블루]를 지나 [택시]와 [트랜스포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 로케이션 장소가 되어왔다. 그런데 마르세유라는 지명을 국제화한 두 히트작이 이 도시를 악의 소굴로 만들고 말았다. 알랑 들롱이 멋진 중절모로 암흑가의 패션쇼를 보여주는 [볼사리노]와 진 해크먼이 뉴욕에서 마약 범죄 조직을 찾아온 삐딱한 형사 역할을 맡은 [프렌치 커넥션 2]가 그 장본인이다. 영화의 국적, 다루는 시대, 주인공의 미모는 달라도 이 도시는 경찰도 손쓸 수 없는 범죄의 진흙탕으로 그려진다. 21세기의 마르세유가 가장 먼저 씻어야 할 이미지다.

마리우스와 자네트와 세잔의 어촌 마을

마르세유가 거창하거나 과격한 영화의 무대로만 존재해온 것은 아니다. 1997년 로버트 게디기앙 감독이 만든 [마리우스와 자네트]는 피부색이 다른 남매를 키우고 사는 자네트와 경비원 마리우스의 소소한 일상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사는 마르세유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인 셈인데, 그들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은 마르세유 북서쪽의 작은 어촌 마을 에스타크(L'Estaque)다.


마르세유 바깥을 둘러싼 프로방스 지역에 기반을 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은 에스타크를 즐겨 화폭에 옮기곤 했다. 대상에 대한 끝없는 관찰과 실험으로 유명한 폴 세잔은 이 마을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아침, 저녁, 그리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광의 변화를 그리곤 했다. 그러나 [마리우스와 자네트]는 안타깝게 말한다. "세잔은 가난한 이들의 살아가는 풍경과 그 동네를 그렸죠. 하지만 그 그림은 부자들의 집에 걸려 있어요."


1885년 경 세잔이 그린 에스타크의 풍경. 그의 화실엔 르누아르도 찾아와 그림을 그리곤 했다.

성냥갑 집합 거주지의 혁명

르 코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 성냥갑 건물도 아름답게 살아 있을 수 있다.


터키 군에 쫓겨 온 그리스인, 학살을 피해 건너온 아르메니아인, 파시즘을 피해 달려온 이탈리아인, 프랑코 독재 정권이 추방한 스페인인, 지금도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북아프리카인... 마르세유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것은 종교도 인종도 아닌, 무언가로부터 달아나서 여기에 왔다는 연대감인 것 같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 역시 그런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로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부지에의 현대 도시 프로젝트인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를 대표하고 있는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이다.


1952년에 건설된 이 주거지는 337가구가 살아가는 집합 거주지로, 현대적인 아파트먼트의 효시로 불린다. 그러나 단순한 주택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호텔, 식당, 수영장 등 각종의 편의시설을 갖춘 독립성 강한 작은 도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어두운 복도, 서로 다른 원색의 외관, 옥상의 파노라마식 '사막 정원', 건축 책방 등의 시설이 차갑게 보일 수 있는 건축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담배공장을 뒤집어 예술의 미래를

21세기의 마르세유는 '제2의 바르셀로나'를 꿈꾸며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이면서도 스페인이 아닌 도시가 되었듯이, 마르세유 역시 프랑스이면서도 프랑스가 아닌 국제적이고 현대적인 도시로 변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도시의 변화는 정치가들이 거대 사업을 발주하고 명망 높은 건축가와 예술가를 초빙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으로 통해 시작된다. 마르세유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변화의 상징은 '프리시 라 벨 드 메(Friche la Belle de Mai)'이다.


프랑스의 인기 드라마 <아름다운 삶(plus belle la vie)>은 마르세유에 있는 가상의 지역 미스트랄(Le Mistral)를 배경으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교차하며 각자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바로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곳이 '프리시 라 벨 드메'. 오래된 담배 공장이 자리잡고 있던 '라 벨 드메'는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될 위기에 처했는데, 지역의 예술가들이 손을 잡고 복합적인 문화 공간인 '프리시 라 벨 드메'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여러 미술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집단 창작촌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 힙합 음악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마르세유 힙합 뮤지션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되고 있다.


프리시 라 벨 드메는 인기 드라마 <아름다운 삶>의 무대가 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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