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香水다
여행을 완성하는…파리의 '코' 장클로드 엘레나… 파리를 걷는 10명 중 8명이 그의 향을 입다

장클로드 엘레나
파리의 유명 조향사 장클로드 엘레나가 향을 시험하고 있다. 그는 코는 검사관일 뿐 뇌로 향을 창조한다 말한다. /신세계 백화점 제공
세계 유명 디자이너·건축가·아티스트 등을 만나다 보면 결국 하나의 단어로 응집된다. 바로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 영감을 받고, 소통한다. 상당수 럭셔리 브랜드 역시 첫 출발과 궁극의 목표는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위한 동반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삶이란 것은 하나의 존재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여정의 기록 아닌가. 주말매거진은 '여행'을 완성하는 이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영감 받고 어떤 영향을 주며 인생에 어떠한 지혜를 얻었는지 들어본다.

파리의 '코'라 불리는 조향사 장클로드 엘레나의 말투는 시를 읊는 듯했다. 토론 문화에 익숙한 파리지앵과 대화하려면 인내심을 키울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더니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 그는 향의 가공자라기보다는 향으로 이야기를 짓는 작가 같았다. 프랑스의 향수 마을 그라스에서 태어나 40년간 조향사의 길을 걸은 그는 '파리의 코'란 별명답게 불가리·반클리프 아펠·시슬리 등을 통해 수많은 히트작을 냈다. 2004년부터는 에르메스의 전속 조향사로 합류해 '자르뎅(정원)' 시리즈를 히트시켰다. 파리를 걷는 열 명 중 여덟은 그의 향을 입었다고들 말한다.

국내에도 그를 추종하는 마니아가 적지 않다. 이러한 추세에 신세계백화점은 에르메스와 손잡고 에르메스 퍼퓸(향수) 라인에 대한 수입 및 국내 유통에 대한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오는 3월 2일 신세계백화점 본점 1층에 국내 처음으로 에르메스 퍼퓸 단독 부티크를 연다. 브랜드 이미지를 가장 감각적인 부분인 후각으로 접하는 첫 관문이라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에르메스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향으로 연다는 것. 전 세계를 다니며 채취한 지역의 향으로 작품을 창조한다는 그를 주말매거진이 만났다.

―중국·아프리카·이집트·인도 등 다양한 나라를 다니며 향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이러한 여정이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간 향수를 생각하는 방법은 프랑스식 전통적인 접근 방법이었다. 클래식하고 복잡한 향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에 다녀오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중국 정원을 밟고 미술 작품을 보면서 '빈 공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아시아 문화가 가진 여백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빈 공간이 얼마나 작품을 풍부하게 채우는지…. 내가 1992년 불가리에서 오떼 베르라는 향수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165개의 원료가 들어갔다. 하지만 훨씬 더 적은 원료를 가지고도 이전보다 더 풍부한 향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거의 15년, 아니 20년이 걸려서야 알게 됐다. 여행이라는 건 사물을 보는 방식, 영감을 얻는 방법, 다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데 영향을 준다."

―표현하고 싶은 건 많은데 동시에 잘 덜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당신을 미니멀리즘의 대가라고도 하던데.

"미니멀리즘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니멀리즘은 감정적인 것을 제하고 억제한다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향수 속엔 정서와 감정이 담겨 있다. 단아한 것, 간소한 것, 그것이 정확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상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잘 찾아내 소통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오늘날 성공을 이끈 비결이라 생각한다. 무언가 진정성 있는 것, 진실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비밀스러운 건 사람들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향으로 대화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향이란 건 단어라 생각한다. 후각적인 단어를 가지고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단어 하나로는 큰 의미가 없다. 그 옆에 다른 단어가 있어야 뜻이 만들어진다. 향도 마찬가지다."

―도시는 향으로, 혹은 그러한 이미지로 기억될 때가 잦다. 그런데 도시에서의 향이란 건 너무 복잡하다. 사람 냄새, 거리 냄새, 역한 냄새 등 복합적이다. 그러한 것으로 방해받지는 않는가.

"하하. 조향사라는 직업을 시작할 때는 냄새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오렌지 향 계열 같은 것에.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향사들은 냄새와 이혼을, 혹은 별거를 하게 된다. 옛날처럼 냄새를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내지 사물로 간주해 사용하게 된다. 정서와 감정을 되도록 제거한다. 끔찍한 이야기인가? 하하. 사람이 아니라 냄새라서 다행이다. 도시는 도시마다 냄새가 있다. 예를 들어 뉴욕에 가면 프레젤을 파는 상인이 많다. 너무 많이 탄 냄새, 슈크르트(양배추절임)의 시큼한 냄새, 꽃가게의 카네이션·유칼립투스·백합 냄새…. 상하이에 가면 또 다르다. 강 냄새가 나고 휴지통의 쓰레기 냄새가 나고 거리에서 음식 만드는 이들이 풍기는 마늘·바질·땅콩 냄새가 진동한다. 이것이 역한 게 아니라 나라의 상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냄새만으로 '아, 내가 상하이에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이전에 뇌로 냄새를 창조한다고 언급했지만 그래도 코 건강이 중요할 거 같다. 어떻게 관리하는가. 냄새는 또 기억이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어느새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수천수만의 향 중 어느 정도 분간하는가.

"향을 구분하는 작업 자체가 이 일에서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코는 일종의 검사관이라 생각한다.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감각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조향사가 아닌 이들도 있다.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전화로 비서에게 그대로 만들어보라 해서 상상했던 것이 맞는지 실험해 보는 방법도 있다. 그게 맞는지 검사해 볼 때 코를 쓰는 것이다. 조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그래도 마늘·양파 같은 건 잘 안 먹는다던데.

"하하. 일하는 주간에는 마늘을 안 먹으려 한다. 마늘을 먹으면 피부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 향을 만들 때 마늘 향이 나면 안 되지 않은가.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마늘·양파 등은 피한다. 술도 피한다. 술은 냄새 때문이 아니라 기억력에 안 좋아서다."

―이상하게 시향지에 뿌린 것과 몸에 뿌린 게 냄새가 다르다. 그래서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맞다. 향을 고를 때는 남자를 만나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을성을 가져야 한다. 일단 시향지에 뿌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남자의 첫인상도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사랑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급하게 굴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둬야 한다. 조금 놔두고 지켜봐야 내 몸과 어떠한 반응 작용을 일으키는지 알 수 있다."

―당신에게 궁극의 향은 무엇인가. 궁극의 여행지는?

"글쎄…. 궁극의 향이란 자기가 직접 사용하지 않는 향이다. 그 이유는 향은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처럼 두고 느껴야 한다. 그러면서 향이 스토리를 쓸 수 있는 것. 어렵지만 그 생각만으로도 재밌다. 하지만 향수는 피부에 뿌리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그와 비슷하게 궁극의 여행지는 집에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상으로만 여행하는 것. 하하."

―럭셔리 업계에서 수십년간 일했다. 럭셔리한 삶이란?

"이런 환경, 고급 호텔, 화려한 장식, 이런 건 럭셔리가 아니다. 하하.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 동양 철학에 가까운 말일 텐데,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럭셔리는 소유가 아니다. 공유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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