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트레일

Day 1. 성스러운 계곡에서…'천사의 트럼펫'을 따라

해발 2600m의 작은 마을 피사쿠초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이 마을의 다른 지명은 KM 82.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에서 철도로 82㎞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낭만이라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실용적 작명. 승용차와 기차로 갈 수 있는 도로는 여기가 마지막이다.

첫날 예정한 12㎞는 고산(高山)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당신을 배려하는 초보자 코스. 해발고도는 500m가 상승해 3100m까지 올라갔지만, 이미 이틀 동안 머물렀던 쿠스코 도시의 해발고도가 3300m였다. 온순한 페루의 알파카처럼, 심장은 아직 통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편안하고 순탄한 길이다. 정복과 극복에 의미를 두는 남성 클라이머가 흔히 놓치는 대목이 있다. 잉카 트레일의 길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빚어내는지. 사막으로 시작한 길은, 구름 속 숲(Cloud Forest)을 지나 마침내 아마존으로 들어가는 아열대 정글을 이끌어낸다. 북반구 아시아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꽃과 새를 안데스에서 만난다.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잉카 유적으로 꼽히는 사야크 마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잉카 유적으로 꼽히는 사야크 마르 카. 왼쪽으로 난 돌계단 98개를 오르면 봉우리 정상에 있다. 해발 3600m. 산 끝에 놓인 형상을 빗대‘닭 볏’으로도 불린다. 태양의 신전과 주거지, 그리고 돌로 만든 수로를 갖췄다. 캐논 EOS M2 18-55㎜ 렌즈.
전문 가이드 에드가(32)가 길을 멈추고 손을 뻗는다. 그는 '천사의 트럼펫'이라는 이름을 들려줬다. 천사 정도는 되어야 감히 손을 댈 수 있을 법한 트럼펫 모양의 종꽃. 'KM 82'와는 달리 지극히 낭만적 이름이지만 환각 성분이 강력하단다. 우리에게는 '에네켄'으로 익숙한 초대형 용설란도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반겼다. 1905년 가난을 피해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로 향한 한인 이민자들이 수없이 심고 뽑았던 난이다. 에드가는 '뚜나'라는 낯선 선인장을 소개하더니, 그 속에서 희고 작은 애벌레 하나를 두 손가락으로 집었다. 바닥에 내려놓고 살짝만 눌렀는데도 선홍빛 염료를 뿜어낸다. 샤넬 등 명품 화장품의 립스틱과, 캄파리 등 유명 브랜드 술의 재료로 수출되는 천연 물질이라고 했다. 연둣빛 벌새(Hummingbird)가 나뭇가지를 건너다니며 배경 음악을 연주한다.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남미의 등뼈로 불리는 안데스는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산악이 아니다. 완만하고 아기자기하게 오르는 한반도의 산이 아니라 느닷없이 솟아오른 거대한 벽. 게다가 순간적 힘으로 바벨을 들어 올린 운동선수의 힘줄과 핏줄을 보는 듯하다. 팽창한 모세혈관 같은 안데스의 발기. 우리가 첫날 걸은 길의 이름은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이었다.

Tip 1 첫날 12㎞ 이동. 이날 야영지는 와이야밤바(Wayllabamba). 해발 3100m. 송이 볶음밥과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 차로 저녁 식사. 저녁 5시 30분 일몰. 무난한 코스.


Day 2. 내 이름은 알레한드로, 아들 넷을 뒀습니다

텐트를 두들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 마추픽추의 11월은 우기, 여름 겨울 뒤바뀐 남미의 장마다. 고산의 아침은 빨리 온다. 새벽 5시면 모든 것이 환한 세상. 다행히 비가 멈췄다. 이번 등반을 책임진 가이드 에드가는 팀 전원을 불러 모았다. 11명의 현지 포터와 요리사도 전원 참석. 에드가는 "우리는 나흘 동안 한 가족"이라며 "가족은 서로 인사를 나눠야 한다"고 군인처럼 말했다.

산꼭대기의 소금 염전, 마라스.
산꼭대기의 소금 염전, 마라스.
현지인 중 대장 격인 '셰프'가 나섰다. 주름 깊게 팬 사내는 잉카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마르셀리노. 쉰네 살이오. 요 앞 동네 깔까에서 왔소. 아들 네 명을 낳았소. 평소에는 농사를 짓소." 흙먼지 냄새가 났다.

두 번째 사내가 나섰다. "내 이름은 윌프레드. 나이는 마흔이오. 이 일 한 지 10년 됐소. 같은 마을에서 왔소. 자식은 다섯 명을 낳았고, 농사를 짓소."

인사법은 한결같았다. 간결했고, 그래서 강력했다. 포터들은 과장 약간 보태서 거의 날아다녔다. 고무 대충 잘라 만들었다는 '깔까 슬리퍼'를 신고, 키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우리보다 훨씬 뒤에 출발해서, 늘 역전에 성공했다.

게다가 이날은 무려 1100m의 높이를 극복해야 하는 잉카 트레일 최대의 난코스. 정점인 해발 4200m 지점은 '죽은 여인의 통로'라는 악명을 지니고 있다. 산을 넘다가 여자가 죽었다는 뜻은 아니고, 돌아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고개를 돌렸던 잉카의 공주가 돌이 되고 길이 되어 안데스의 다리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다.

산소탱크 메고 등반하는 텍사스 여인.
산소탱크 메고 등반하는 텍사스 여인.
잉카의 배꼽으로 불리는 도시 쿠스코.
잉카의 배꼽으로 불리는 도시 쿠스코.
하지만 잉카 공주의 살신성인도 별무소용이었다. 해발 3800m를 통과할 즈음, 심장은 출고한 지 10년쯤 지난 고물 자동차 시동 걸 때처럼 쿵쾅거렸다. 돌계단을 세 개 오르면, 1분은 쉬어야 겨우 제 숨이 돌아왔다. 100m 전진하는 데 1시간이 걸리는 느낌. 그 순간, 두 개의 등산 스틱에 의지한 여인이 악전고투하고 있는 기자를 제쳤다. 놀랍게도 그녀는 내 허리만 한 허벅지를 가지고 있었다. 경멸이나 모욕을 위한 표현이 아니다. 잉카 트레일에 도전하겠다는 결심 자체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신체를 지닌 여성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혹은 서로를 의지하며 발자국을 떼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세히 보니 배낭에는 산소 탱크를, 가슴에는 호흡기 케이블과 밸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Good job(대단해)"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You, two"라는 대답이 잠시의 머뭇거림 없이 돌아왔다. 그렇다. 누가 누구를 내려다볼 것인가. 격려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인 것을. 텍사스에서 왔다는 40대의 그녀는 마추픽추 트레킹이 자신의 버킷 리스트라고 했다. 나 역시 나만의 속도로 당신에게, 마추픽추에게 갈 것이다.

Tip 2 둘째 날 12㎞ 이동. 이날 야영지는 파카이마유(Paqaymayu). 해발 3500m. 최고 4200m까지 올랐다가 다시 하산. 일정 중 최대 난코스. 고산병까지는 아니었지만 심장이 적응하기까지 힘들었음. 로모 살타도(소고기 찹스테이크와 볶음밥)와 코카차로 식사.


Day 3. 별은 어떻게 둥근 원을그리며 회전하는가

11월의 안데스를 깨우는 두 가지 소리가 있다. 하나는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 또 하나는 벌새(Hummingbird)의 노래. 새벽 4시 20분쯤이면 어김없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새인지 나비인지 모를 소박한 체구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또 하나의 생명이 있다. 잉카의 말로 와캉키. 학계의 공식 명칭은 마르데발리아 메치아나(Masdevailia Vechiana). 다섯 번 들어도 절대 외울 수 없을 것 같은 이 학명보다, 에드가가 불러주는 이름이 더 눈부시다. 'You will cry'. 실제로 와캉키의 꽃잎에는 두 방울의 눈물이 맺혀 있다. 늘 머금고 있다는 이슬이다.

마추픽추, 잉카 트레일 지도
마추픽추, 잉카 트레일 지도
잉카 트레일의 3박 4일은 당연하게도 잉카의 유적을 확인하는 길이다. 위로는 콜롬비아, 에콰도르부터 아래는 칠레 파타고니아에 이르렀던 전성기의 잉카. 확장하면 6000㎞에 달했다는 잉카의 길은, 이 43㎞가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약타파타, 룽크라웨이, 사야크 마르카, 푸유파타 마르카, 위니아 와니아 등의 유적이 퍼즐 조각처럼, 수수께끼처럼 하늘 도시에서 나타난다. 거대한 돌의, 돌을 위한, 돌에 의한 유적들이다. 잉카 문명의 숭배 대상 동물은 하늘의 콘도르, 지상의 퓨마, 그리고 땅 아래의 뱀. 유적은 각각 그 동물의 문양을 자신의 돌 안에 숨겨 놓고 있다. 신전으로 제의를 지내고 때로는 군사기지로 사용하면서 평상시에는 잉카의 전령 차스키의 쉼터로도 사용했던 공간.

잉카의 전령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족의 아들, 그것도 18~22세의 장자(長子) 중에서 힘과 지략이 뛰어났던 이만 가능했던 것.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잉카의 왕께서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하면 차스키는 멀리 바닷가에서 릴레이로 실어 날랐다. 한 사람이 몇 킬로미터 구간을 전속력으로 주파한 뒤 바통을 넘기는 식이다. 가장 가까운 바닷가에서 수도 쿠스코까지는 약 600㎞. 그런데도 만 하루면 신선한 생선이 왕의 밥상에 올랐다고 한다.

눈물 두 방울의 의미를 지닌 꽃 와캉키.
눈물 두 방울의 의미를 지닌 꽃 와캉키.
페루의 물회격인 세비체.
페루의 물회격인 세비체.
어제보다는 무난한 오늘이다. 오늘의 야영지는 퓨유파타 마르카. 해발 3600m의 고지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난 뒤 에드가가 내 손을 이끌었다. 텐트 뒤쪽으로 난 오르막길로 100여m를 올랐다. 구름과 설산이 빚어내는 숨 막히는 풍경 아래로 안데스의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360도로 펼쳐진다. 구름이 아래에 있다. 저 앞에 있는 게 아니라 아래에 있다. 그리고 해가 졌다. 저녁 7시 불과한데도 완벽한 어둠. 남반구의 별이다. 남미의 별은 어떻게 둥근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Tip 3 셋째 날 10㎞ 이동. 이날 야영지는 퓨유파타 마르카(Phuyupata marca). 해발 3600m. 최고 3950m와 최고 3670m인 두 개의 고점을 통과해야 하는 난코스. 가장 잘 보존된 잉카 유적지로 꼽히는 사야크 마르카(Sayac marka)를 통과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쌓아올린 제단과 목욕탕, 전망대 등을 만날 수 있다. 알파카와 라마 무리도 조우가 가능하다. 자연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코스.


Day 4. 새벽 4시 기상., 폭우 속 마추픽추

마추픽추 유적
마추픽추 유적

잉카의 신은 오직 30분만의 별을 허락했다. 나머지 시간을 지배한 것은 비. 첫날부터 심상찮았던 우기의 안데스는 밤새 비를 퍼부었다. 극강의 방수를 자랑하는 'Waterproof' 텐트였지만, 10시간 내내 쏟아진 비를 이겨낼 힘은 없었다. 새벽 4시, 잠시 가늘어진 비를 그나마 감사히 여기며 일어났다. 이마의 LED 램프에 의지해 쪼그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는다. 마지막 날을 위해 아껴둔 특식이다. 문득 새벽 인력시장의 풍경이 포개졌다.

해발 4000m에서 굽어본 안데스.
해발 4000m에서 굽어본 안데스.
페루 고산지대에 사는 라마
페루 고산지대에 사는 라마

4시 30분, 여명 전에 출발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넷째 날은 계속해서 내려가는 길. 잉카의 돌계단은 작은 시냇물로 변해 있었다. 판초 안으로 완벽하게 숨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이런 비에는 대책이 없다. 신발까지, 속옷까지 흠뻑 젖는다. 육체보다 걱정인 것은, 과연 마추픽추가 제 모습을 허락해줄지다. 세상은 구름의 바다. 핏줄 솟은 안데스도, 아마존의 정글도, 비와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섯 시간을 내리 걸어 인티 푼쿠에 도착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태양의 문. 현지에서는 '오 마이 갓(Oh my God)'이라 부르는 수직 50여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느닷없이 나타난다. 그 문 앞에서 숨을 멈췄다. 문 뒤편으로는 구름의 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계인데, 문 앞쪽으로는 비밀의 공중 도시가 단속적(斷續的)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발 2400m의 수수께끼 하늘 도시. 구름은 잉카 최후의 요새를 품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맥과 다리가 함께 풀렸다. 케추아어 마추픽추를 우리말로 하면 오래된 봉우리. 기차와 버스로 이곳까지 올라왔다면, 지금 같은 마음이 과연 들 수 있을까.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마음은 믿을 수 없게도 봉우리 위로 솟구쳤다.

Tip 4 넷째 날 9㎞ 이동. 마추픽추는 해발 2400m. 1200m를 줄곧 내려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잉카 트레일의 정수를 보여주는 돌계단 길. 하루 종일 지독하게 내렸던 비 때문에 이날은 마추픽추에 도착하자마자 아래 마을로 후퇴. 다음 날 다시 올랐다. 3박 4일 걸렸던 마추픽추를 셔틀버스 30분 만에 도착했다. 날씨는 전날 비, 이날은 쾌청. 하지만 마음은 반대였다. 작렬하는 안데스의 태양을 묵묵히 견디며 꼼꼼하게 마추픽추를 살폈다. 활자를 남기지 않은 잉카는 말이 없다. 정들었던 낡은 운동화를 신전에 바쳤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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