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관광청(GNTO)

[투어코리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최근 가장 많은 공감대를 일으키는 노래 말 중 하나다. 청년실업, 조기퇴직, 불황, 치솟는 물가, 어지러운 시국 등등 첩첩산중을 헤매듯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일상이 반복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언젠가는 그래도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그래서 좌절 금지, 무한 긍정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이들은 새해면 새 희망을 품기 위해 일출 명소로 떠난다. 어슴푸레 어둠을 뚫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장관을 보며 희미해지는 꿈과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다짐과 계획이 올 한해는 뜻한 대로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일출 장관은 언제 어디에서 봐도 늘 벅찬 감동을 선사하지만, 세계 각국 명소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또다른 묘미가 있지 않을까. 세계 각국 관광청들이 추천하는 일출명소를 소개한다.

▲ 독일관광청(GNTO)


독일 최고 휴양지 '뤼겐섬'에서의 낭만 일출

발트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와 잔잔한 모래 해변, 해안선 따라 깎아지른 듯 눈부신 하얀 절벽 등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만날 수 있는 곳 '독일 북동부의 뤼겐섬(Rügen Island)'.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세계휴양지 1001'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이 곳은 독일에서 가장 큰 섬(면적 926km2)이자 최고의 휴양지이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독일인들이 즐겨 찾는 이 휴양지는 해돋이 명소이기도 하다.

▲ 독일관광청(GNTO)

빼어나게 아름다운 해안 풍경,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 풍경은 휴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만큼 낭만적이다. 시간이 멈춘 듯 19세기 중세 건축물들도 이 섬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뤼겐섬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섬의 북동쪽에 있는 '야스문트(Jasmund National Park)'는 독일에서 가장 작은 국립공원으로, 늪지대, 습지, 슈투브니츠 고원의 너도 밤나무 숲, 석회암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야스문트에서는 석회암 절벽에 있는 '왕자의 의자'인 '쾨니히슈툴(Königsstuhl 왕좌라는 뜻)이 유명한데, 이 곳에선 발트해와 주변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 ⓒ독일관광청(GNTO)

이 섬에선 마지막 빙하의 흔적인 '미아석' 등 빙하기의 침적물이나 화석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해변에는 휴가객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 '슈트란트코르프'도 늘어서 있어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 곳에 앉아 일출, 일몰 풍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는 건 어떨까.

▲ 독일관광청(GNTO)
▲ 독일관광청(GNTO)

<사진 및 자료협조 미국관광청, 하와이관광청, 스위스정부관광청, 독일관광청,
노르웨이관광청, 페루관광청, 두바이관광청>


2차 대전 당시 완전히 파괴된 도시 드레스덴과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상징이 된 도시 베를린. 전쟁으로 상처 입은 두 도시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오늘과 다를 내일을 살아간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지만 두 도시를 걸으며 행복했다.

작센주를 통치한 35명 군주가 행렬하는 '군주의 행렬' 벽화
젬퍼오퍼 앞에 자리한 작센 왕 요한Johann의 기마상
젬퍼오퍼 전경
츠빙거 궁전의 정원
브륄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아우구스투스 다리
아침 시간의 프라우엔 교회. 낮에는 이 일대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Dresden

드레스덴 구시가를 걷다

이른 아침부터 카메라를 들고 호텔을 나섰다. 빗방울이 옷과 머리를 조용히 적신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처럼 화창하다가도 금세 비를 뿌려대던 어제의 하늘을 떠올리며 몇초간 망설이다 걸음을 뗀다. 우산도 없지만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독일 사람들은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도 느긋하다.

아침부터 분주한 까닭은 베를린행 11시7분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남은 몇 시간 동안 드레스덴 구시가를 한 바퀴 돈 다음 아침밥을 먹고 떠날 작정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속속들이 관람하지 않는다면 2~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정도로 드레스덴 구시가는 아담하다.

호텔은 엘베 강변에 접한 마리팀Maritim이다. 와인과 담배를 저장하기 위해 1915년에 지은 창고는 2006년 마리팀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시멘트를 바른 외벽과 획일적인 작은 창을 지닌 건물의 외양은 무미건조하지만, 여행의 설렘을 품고 비즈니스의 성공을 꿈꾸는 이들이 머무는 호텔 안은 따뜻하다.

엘베 강변을 따른다. 밤새 정화된 상쾌한 공기가 강을 따라 떠돈다. 드레스덴 사람들은 자전거로 강변을 달리며 아침을 호흡한다.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느린 걸음으로 10~15분. 작센주 의회 건물을 지나 도심으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드레스덴 구시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젬퍼오퍼Semperoper.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가 초연된 곳이자 세계에서 알아주는 작센주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오페라 하우스다. 1838~1841년에 건립된 젬퍼오퍼는 2차 대전 당시 파괴됐다가 1985년에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40년이 지나서야 원래 모습에 가까워졌지만 이는 그래도 양반이다.

드레스덴은 1945년 2월13일에 시작된 영국군과 미국군의 공습으로 도시의 80% 이상을 잃었다. 도시에 카펫을 깔 듯 폭탄을 퍼부은 공습은 융단폭격Carpet Bombing이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도시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드레스덴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엘베 강변의 피렌체'라 불리며 아름다움을 뽐내던 드레스덴 건축물 중 상당수는 여전히 크레인 아래에 놓여 있다.

젬퍼오퍼 바로 옆에 자리한 츠빙거 궁전Zwinger Palace 또한 공사 중이다. 츠빙거 궁전은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사용된다. 드레스덴에는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만 무려 12곳에 달한다. 예부터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드레스덴의 단면이다. 츠빙거 국립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은 라파엘로의 '성모상'. 작품 아래의 아기 천사들은 각종 기념품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궁전 입구 공사막이에도 아기 천사가 그려져 있다. 다만 박물관과 미술관을 제대로 즐기려면 월요일은 물론 이른 아침도 피해야 한다. 월요일은 휴무이며 나머지 요일은 오전 10시부터 문을 연다. 화요일, 베를린행 11시7분 기차를 타야 했던 이의 아쉬움이자 충고다.

츠빙거의 남동쪽 문에는 세계 3대 도자기로 손꼽히는 작센주의 전통 공예품인 마이센 자기로 빚은 카리용종이 달려 있다. 두 개의 칼이 교차한 작센주의 전통 문양도 보인다. 이 문을 통과해 좌회전하면 드레스덴 궁전과 대성당이 이어진다. 걸어서 1~2분 거리로 멀지 않은 거리다.

어제, 여행자들로 붐볐던 슈탈호프 성벽으로 접어든다. 거리의 마임 예술가에게 빼앗겼던 어제의 시선을 오늘은 오롯이 벽화에 둔다. 101m에 이르는 거대한 벽화에는 1127년부터 1910년까지 작센주를 통치한 35명의 군주가 행렬한다. 성벽은 그들의 위엄을 대신하듯 높디높다.

군주의 행렬Procession of Princes을 끝까지 따라가 우회전해 5분가량 걸으면 슈트리첼마르크트Striezelmarkt다. 슈트리첼마르크트는 1434년부터 시작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 올해에는 11월26일부터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마켓이 열린다. 이 시기에는 오전 10시경부터 오후 9시경까지 상점들이 문을 열고 크리스마스 빵인 슈트리첼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관련 용품과 음식을 판다. 슈트리첼마르크트에서는 춥고 어두운 겨울도 크리스마스의 로망 속에 몸을 숨긴다.

시즌이 아닐 때는 오후 3~8시경에 상점이 문을 연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은 슈트리첼마르크트를 거닐자니 후회가 밀려든다. 어제 저녁, 2시간의 여유시간을 신시가에서 보내는 게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제품 가게'라는 말에 홀려 무작정 푼즈 몰케레이Pfunds Molkerei로 가는 게 아니었다.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푼즈의 쇼윈도만 허망하게 바라보느니 슈트리첼마르크트의 작은 상점에서 음식과 맥주를 즐기는 게 옳았다.

'교회 전망대에 올라 드레스덴을 한눈에 담았어야 했는데.' 드레스덴 최고의 볼거리인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에서도 아쉬움을 토했다. 일정에 쫓겨 예배당만 보고 떠난 지난 시간이 아쉽다.

강변으로 발길을 옮겨 브륄의 테라스Bruhl's Terrace에 오른다. 아침 햇살 아래의 구시가는 더욱 고색창연하고, 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가 사랑한 '아우구스트 다리 아래쪽 엘베강 우측 제방'은 푸르다. 여행자로 가득했던 어제와는 달리 아침의 거리는 일터로 향하는 분주한 발걸음이 채운다. 옛 건축물 사이를 헤집고 달린 트램이 다리 위를 지나고, 강변도로에는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나름 한적하지만 한편으로 더욱 분주한 드레스덴의 아침. 여행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드레스덴 구시가를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재건을 거듭하며 과거의 모습을 찾고 현재를 이루는 드레스덴의 속살을 엿보기에 좋은 시간이다.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자리. 글자 방향에 따라 위쪽은 동독, 아래쪽은 서독에 해당된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인 '형제의 키스'
동독의 국민차였던 트라반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많은 이들이 이 차를 타고 서독으로 넘어왔다
베를린 장벽

●Berlin

베를린의 과거를 만나다

"한국은 남과 북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동독과 서독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의 거리를 이야기하던 중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입을 다물었다. 답을 몰랐다. 분단국가에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베를린 장벽을 대하는 느낌은 특별하다. 정서적으로 일부 다르지만 또 유사하다.

갑작스런 질문을 던졌던 베를린 장벽 기념관의 가이드는 동독 출신이라고 했다. 20대에 통일을 맞은 그는 장벽을 넘고 싶어도 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다. 180개에 이르는 감시 타워 등 삼엄한 경비는 첫 번째 문제였다. 운 좋게 감시의 눈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어려움이 따랐다. 베를린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상대적으로 낮은 첫 번째 장벽을 넘는 데 성공해도 어른 키의 두 배나 되는 두 번째 장벽이 기다린다. 장벽을 넘으려면 최소 2인 1조로 움직여야 했다. 물리적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중국의 서독 대사관을 거쳐 서독으로 망명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지척의 서독 땅을 두고 지구를 크게 돌아간 셈이다. 장벽을 쉽게 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그는 가족을 말했다. 동독에 남겨져 억압받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한다.

과거, 동독 영토 내에 섬처럼 자리하며 강대국의 이해를 대변하던 도시 베를린. 베를린 장벽이 건재했던 과거로의 여정은 베를린 장벽 기념관이 자리한 노드반호프Nordbahnhof역에서 시작된다. 역사를 빠져나가기 전 발 아래에는 'Sperrmauer 1961-1989'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다. 'Berliner Mauer 1961-1989'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글자의 방향에 따라 윗부분은 동독, 아랫부분은 서독에 해당한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일대에는 장벽이 사라진 자리의 바닥이나 기둥에 이처럼 따로 표시를 해두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여정은 관광안내소 2층에서 영상을 관람하며 시작된다. 10분여 펼쳐지는 베를린 장벽 관련 실제 영상들은, 아프다. 이쪽에서 살아야 했기에, 저쪽으로 가기 위해 죽음을 불사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닮아, 아프다.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 건물이 자리했던 국경의 경계선은 서독으로 넘어가기에 그나마 수월했다. 몇 층 높이의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이들의 모습을 영상은 그대로 전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이들이 날로 늘자 멀쩡한 건물이 철거되고 장벽이 건설된다.

60m에 이르는 베를린 장벽이 그대로 보존된 기념관의 야외 구역으로 나선다. 동베를린 구역, 철통같은 감시 속에 놓였던 공간이 펼쳐진다. 그나마 낮은 첫 번째 장벽에 서서 갈라진 틈 사이로 너머를 바라본다. 단체 견학을 온 독일의 학생들도 갈라진 틈에 눈을 대고 저 너머를 바라본다. 하지만 불행히도 벽 너머로 보이는 건 벽뿐이다. 더 높은 벽뿐이다. 과거, 아마도 운 좋게 첫 번째 장벽에 다가가 두 번째 장벽을 바라본 이가 있었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으리라. 장벽 옆 '기억의 창Window of Remembrance'에는 장벽을 넘으며 목숨을 잃은 130명의 사진을 전시하고 추모한다. 어린아이의 사진 앞에서는 누구나 걸음을 멈칫한다.

계단을 걸어 5층 높이의 전망대에 오른다. 높은 벽으로 양쪽을 막아 놓아 지상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장벽의 일부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관광객들로 붐볐던 저쪽 장벽과는 달리 아무도 없는 장벽. 삼엄한 감시의 눈길 외에 아무것도 없었을 그 옛날과 그대로라 어쩐지 더욱 쓸쓸하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외에 베를린 장벽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있다. 슈프레강과 면한 1.3km의 장벽은 1990년 벽화 가득한 갤러리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서 안타까운 과거를 봤다면 이곳에서는 변화한 현실의 기쁨을 본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는 '형제의 키스.' 옛 소련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동독 공산당 에리히 호네커가 만나 나눈 독재자들의 키스를 해학적으로 그렸다. "게이인지는 잘 모르겠고…" 가이드의 농담에 한바탕 웃는다.

동서로 나뉘었던 베를린의 흔적은 국경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에도 남아 있다. 찰리는 통신 음어인 알파, 브라보, 찰리의 C에 해당하는 찰리. 베를린 장벽과 더불어 냉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곳 검문소는 현재 진짜 미군 대신 가짜 미군이 지킨다. 몇 유로를 내면 여권에 도장도 찍어 주고 기념촬영도 기꺼이 해준다. 체크포인트 찰리 인근의 더 월The Wall 박물관도 볼 만하다. 서베를린 쪽에서 찍은 베를린 장벽의 여러 사진을 합쳐 분단 당시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장벽의 틈 사이로 너머를 바라보는 학생들
베를리너 돔 전망대에서 바라본 슈프레강
박물관 섬의 보데 박물관 외관
베를리너 돔 내부

베를린의 오늘을 즐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도 벌써 26년이 지났다. 장벽에 가려져 각자의 이념에만 충실했던 도시 베를린은 이제 전 세계에서 온 이방인들이 한데 섞여 모여 사는 다국적 도시로 변모했다.통일 후 베를린에 이방인들이 몰려든 가장 큰 이유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도시의 요구 때문이었다. 당시 대거 이주한 터키인들은 도시에 정착해 터키 고유의 문화를 뿌리내리며 베를린의 일부가 됐다. 케밥과 같은 이국의 음식도 이제 베를린에서는 자연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됐다. 저렴한 등록금의 학교에는 다국적 학생들이 모여들고, 젊은이들이 모인 도시는 활기에 넘친다. 세계적인 수준의 펍과 클럽도 베를린에서 찾을 수 있다. 주말에 베를린을 찾는다면 24시간 운영되는 U반지하철을 타고 클러빙에 나서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베를린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쪽과 저쪽의 구분이 없어지며 이쪽과 저쪽의 모습을 동시에 품은 베를린은 즐길거리와 볼거리의 천국이 됐다. 슈프레섬Spreeinsel의 북쪽 끝을 지칭하는 '뮤제움스인젤Museumsinsel'은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에게 효과적이다. 얼마나 많은 박물관이 있으면 '박물관 섬'이라는 뜻의 뮤제움스인젤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인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을 비롯해 5개의 대형 박물관이 섬 안에 자리한다. 모든 박물관이 워낙 큰 규모라 정보를 미리 확인한 후 관심 있는 곳을 찾는 게 현명하다.

섬에 자리한 베를린 대성당, 베를리너 돔Berliner Dom은 화려하고 웅장하다. 2차 대전 당시 폭격을 받아 바뀐 모습이라니 원래 모습은 감히 상상하기가 힘들다. 성당의 1층은 예배당이다. 고개를 젖혀 화려한 모자이크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치장한 창을 감상한다.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을 지체하진 말 일이다. 성당의 꼭대기 전망대에 보석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야외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꼭대기로 갈수록 좁아진다. 빙글빙글 좁은 계단을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오른다. 다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어지는 작은 문들. '야외 전망대가 있긴 할까?' 의심이 들 무렵 밖으로 향하는 문이 나온다. 그리고 "아!" 두 갈래로 갈라진 슈프레 강에 놓인 박물관 섬이 한눈에 펼쳐진다. 강물 위로는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니고, 강 너머로는 시청과 성 니콜라스 교회, 티브이 타워 등 이름 있는 건물과 이름 없는 건물이 한데 섞여 이어진다. 베를린 최고의 전망대라 불리는 티브이 타워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티브이 타워를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는 베를린 대성당이 틀림없다. 전망대를 둥글게 돌며 베를린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베를린 대성당은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에게도 자비를 베풀며 베를린의 많은 풍경을 보여 준다. 자비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성당 바로 앞에는 베를린 시민들은 물론 여행자들이 한숨 돌려 쉬어갈 수 있는 루스트가르텐Lustgarten이 자리했다. 환한 햇살과 푸른 잔디. 베를린의 오늘은 이처럼 평화롭다.

▶travel info

AIRLINE루프트한자가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뮌헨 구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드레스덴이나 베를린은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에서 국내선을 이용하면 된다. 루프트한자는 기내 습도와 방음에 특히 신경을 써 비행기를 제작한다. 덕분에 긴 비행에도 피로도가 낮아 여행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 이코노미가 조금 힘들다면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을 선택하자. 합리적인 가격으로 조금 더 넓고 쾌적한 좌석을 얻을 수 있다. 전 세계를 잇는 모든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가 동일한 것도 루프트한자의 자랑이다. www.lufthansa.com

▶드레스덴

ATTRACTION필니츠 궁전Pillnitz Palace강건왕 아우구스트가 자신의 부인을 위해 지은 여름 별궁이다. 드레스덴 근교의 엘베 강변에 자리해 로맨틱한 풍경을 연출한다. 궁전과 강, 정원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으로 강변에 붙어 자리한 궁전은 물의 궁전, 정원 쪽에 자리한 궁전은 산의 궁전이라 불린다.필니츠 궁전에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브륄의 테라스 앞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 증기선인 유람선을 타고 강변 풍경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시간이 없는 여행자들은 드레스덴 여정에서 필니츠는 빼는 게 낫다.www.schlosspillnitz.de

▶베를린

HOTEL마리팀Maritim독일 외에 모리셔스, 이집트, 터키, 몰타, 스페인, 중국 등 해외 6개국에 호텔을 보유한 호텔 그룹. 독일 내에 36개의 호텔이 자리하며 드레스덴과 베를린에도 지점이 있다. 드레스덴은 넓은 객실, 베를린은 아담하고 깨끗한 객실이 좋다. 두 호텔 모두 대형 컨벤션 센터를 보유했다.www.maritim.de

SHOPPING파스벤더 & 라우쉬Fassbender & Rausch세계에서 가장 큰 초콜릿 가게. 명성답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1층의 초콜릿 판매장에서는 티브이 타워, 소니센터 등 베를린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초콜릿으로 만들어 전시한다. 2층에는 초콜릿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3층에는 치과, 4층에는 다이어트 상담소가 있다나.www.fassbender-rausch.de

몰 오브 베를린Mall of Berlin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신도시의 심장부로 부상한 포츠다머 플라츠에 자리한 쇼핑센터. 베를린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로 300개 이상의 숍을 보유했다. 자라, H&M 등 유럽의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매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꼭대기 층에 해당하는 2층에는 다양한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www.mallofberlin.de

하케쉐 마르크트Hackescher Markt에스반역 인근에 자리한 쇼핑 구역이다. 야외에 테이블을 마련해 놓은 레스토랑은 물론 독일 로컬 브랜드의 편집 숍들이 몰려 있다.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자리한 하케쉐 호프는 8개의 뜰로 이어진 공간. 호프와 호프는 이어져 있어 산책 겸 쇼핑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대형 쇼핑센터에서 구하기 힘든 독특한 아이템이 많지만 가격은 전반적으로 비싸다.www.hackeschermarktberlin.de

RESTAURANT코놉케스 임비스Konnopke's Imbiß에버스발더 스트라세역 인근에 자리한 커리부어스트 전문점. 굽거나 튀긴 소시지를 케첩에 버무려 커리 가루를 뿌려 먹는 커리부어스트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요리다. 커리36과 같은 체인점도 유명하지만 베를린 사람들이 꼽는 일등 맛집은 바로 이곳. 커리부어스트에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세트 메뉴가 3.5유로로 매우 저렴하다.www.konnopke-imbiss.de

카페 암 노이엔 지Cafe am Neuen See도심 속 거대 정원인 티어가르텐 내 노이엔 지 호수 옆에 자리한 카페이자 레스토랑. 호수가 바라보이는 야외는 물론 실내에 좌석이 마련돼 있다. 저녁시간에 실내 좌석을 원한다면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다. 촛불 모양의 조명을 밝힌 은은한 분위기가 좋다. 샐러드와 스테이크 등 메뉴가 다양하며 5~6종류의 생맥주를 선보인다. www.cafeamneuensee.de

BAR몽키 바Monkey Bar베를린 동물원 인근에 자리한 바.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바 중 하나로 명성이 높다. 남녀노소는 물론 개까지 바를 드나들 정도로 출입에 제한은 없다. 실내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 좁은 테이블이나 계단 등에 앉아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500CC 생맥주가 5유로가량으로 저렴하다.www.25hours-hotels.com/en/bikini/restaurant/monkey-bar.html

뉴튼Newton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바이자 레스토랑 중 하나. 낮에는 한가하지만 늦은 저녁 시간에는 예약 없이 입장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패션 사진의 거장이자 베를린 출신 사진작가인 헬무트 뉴튼의 작품을 모티브로 했으며, 그의 작품인 하이힐 신은 나체 여성들이 한쪽 벽면을 장식한다.www.newton-bar.de

장벽 기념관. 갈라진 장벽 틈 사이로 또 다른 장벽이 막아선다



그림책 만드는 아티스트 정화, 베를린을 읽어내다
베를린이 우연히 내게로 걸어오다

내가 베를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할이 우연이다. 베를린행을 결심할 당시 나에겐 전환점이 필요했다. 타인이 가르쳐주는 정형화된 디자인을 배우기보다, 내 안으로 끝까지 파고들어 새로운 디자인을 실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빙자했지만 나의 베를린 생활을 긴 여행이라 정의하고 싶다. 예쁜 것만 찾아보는 짧은 여행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호흡법을 배우고 적응해가는 나를 체험하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난 이곳에서 베를린만의 독특한 환경을 체험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열정을 되찾게 된 것이 더없이 기쁘다.

내게 흑백 영화 속의 이미지로 기억되던 베를린은 예술과 여유, 자유, 다양성 등 여러 가지 빛깔을 띠며 나의 삼십 대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NO.1 베를린 매거진 리스트

요즘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독일 잡지는 <FT>다. 이 잡지는 매 회 다른 주제로,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타이포그래피와 드로잉, 사진과 아트 디렉팅, 그리고 레이아웃을 선보인다. 매 호 새로운 잡지가 창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Vier5라는 작은 팀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잡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고, 그 중간쯤의 미학을 보여준다. 컴퓨터 세대가 만들어내는 날카롭고 매끈한 그래픽 이미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핸드메이드 감성을 지닌 예술가들이 만들어냈다. 이 잡지는 작은 글씨체, 여백, 낙서, 실수로 보이는 흔적까지 모두 그대로 보여주면서 날카로운 내 감성을 자극한다. 물론 이들이 만들어내는 건조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는 철저히 계산되어 생산된 것이기에 더 가치가 크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컬처 매거진 <032c>도 소장 가치가 높은 잡지이다. 건축과 예술, 디자인, 패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 전반을 보여준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빨간 표지 속에는 매 호 현대문화를 <032c>만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다룬 기사가 가득하다. 너무나 대중적인 주제를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또 깊이 있게 다룬 내용을 읽으면, 잡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중매체가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홈페이지www.032c.com/kim/hedislimane에 들어가면 2007년 에디 슬리만과 함께한 파티 사진도 구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잡지는 <Slanted>이다. 타이포그래피 전문 잡지인 <Slanted>는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기대를 품게 되는, 강단 있는 잡지다. 타이포그래피의 세계를 보다 넓은 영역으로 펼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로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그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길을 제공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대표하는 특산물인 사과 와인(Apfelwein)을 테마로 한 축제가 8월 12일부터 21일까지 로스마르크(Rossmark)에서 열린다고 독일관광청이 30일 밝혔다.

이 축제에서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생산된 다양한 사과 와인을 시음하는 자리가 마련되고, 사과로 만든 음식과 사과 와인을 담는 그릇인 벰벨 등이 판매된다.

프랑크푸르트 동물원과 중앙역을 오가는 노면전차인 '에벨바이 익스프레스'에서도 사과 와인과 프레첼 등을 맛볼 수 있다.

독일관광청 관계자는 "사과 와인은 괴테가 즐겨 마신 술로도 유명하다"며 "더운 여름에는 사과 와인에 탄산수를 섞어 마시면 더욱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천연효모빵 공부보다 더 급한 일은 비행공포증 극복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비행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였다,라는 사실을. 나는 12년 동안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런데 가급적 한국 여행을 해야 하는 일을 기피했었다. 비행공포증 때문이었다. 폐쇄공포증은 내가 있는 공간이 문 또는 창문에 의해 모두 닫혔을 때 발생하는 불안감이 일반인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증상을 이다.

비행공포증은 그 불안감에 자신이 공중에 떠 있다는 공포감이 포함된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 '비행기 좀 세워주세요, 흑흑흑' 이런 외침을 들어보았는가?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를 세워달라니. 전조 현상으로 식은땀이 쏟아져내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에 시달리게 된다. 이럴 경우 약으로 자신을 진정시키기도 하지만 '비행기를 세워주세요'라며 읍소하기도 한다.

그런 내가 천연효모빵 공부를 위해 유럽을 순례한다고? 과연 가능할까? 물론 가능했어야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심리 치료를 받아왔고, 다음 도전 목표는 운전이었다. 자동차 운전 또한 환자에게는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심리치료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차를 사고, 차 안에 앉아 있어 보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양평 시장에 가보고 … 이윽고 지금은 가로수길, 홍대앞까지 차를 몰고 다니게 되었으니 2단계 극복은 완전히 이뤄진 셈이었다.

비행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극복하게 해준 'BMW'

어느 봄날 해질 무렵. 나는 강북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게 백미러에 나타난 '천사의 눈'(여기서 '천사의 눈'이라 함은 냉음극관-CCFL:Cold Cathode Fluorescent Lighting-으로 만들어진 BMW자동차의 LED 헤드라이트를 말한다)이다.

나는 천사의 눈을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 덕에 비행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한 방에 이겨낼 수 있었으니까… 요컨데, 나는 어느날 초저녁에 동그란 원형 헤드라이트의 신비롭고 근미래스러운 불빛에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매력적인 원형헤드라이트를 만든 BMW란 자동차 메이커는 도대체 어떤 회사이며, 어떤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일까,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뮌헨'이란 도시는 어떤 곳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결국 뮌헨에 있는 BMW WELT와 BMW뮤지엄에 '천사의 눈'이 잔뜩 전시되어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고, 봄이 오자마자 서두르듯 BMW본사가 위치한 뮌헨을 가기위해서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비행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할 때만 해도 나는 극복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널찍한 공간이라서 공포심이 반감되는 프레스티지 클래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나는 식은땀, 심장 벌렁증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내가 내린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한 도시가 아닌, 나의 신천기를 열어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제부터 여행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거대한 샐러드 위를 달리는 '이체에(ICE)'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나는 시차적응이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지만 중앙역에서 이체에(독일의 고속철도 ICE:Inter City Express)를 타고 뮌헨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0살은 족히 넘긴 유복해보이는 독일 아저씨, 아줌마들이 샴페인을 연거푸 마시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60대의 건강하고 '매너없는' 어르신들이 독일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쓴웃음을 짓고 있다가, 독일의 고속철도는 자리에 앉은채 핸드폰 통화를 할 수 있고, 마구 떠들어도 상관없는 칸과 떠들어서는 안되는 사일런트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내가 산 티켓은 마구 떠들어도 결례가 될 수 없는 '소음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또 한번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고성방가를 배경음악삼아 3시간 동안을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며 줄곳 들었던 생각은, 내가 탄 이 기차가 브로콜리와 상추, 토마토와 오이가 잔뜩 쌓여있는 거대한 샐러드바의 위를 달리고 있는 미니어쳐기차가 아닐까하는 동화스러운 상상이었다. 그만큼 이 나라는 도시든 시골이든 예외없이 나무와 숲이 울창하다.

그 숲을 끝없이 달리는 열차니 '온 더 샐러드 트레인'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가슴앓이의 시작 '쾨니히스광장' 뮌헨역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을 켜 호텔스닷컴을 통해 예약한 '아트호텔뮌헨(art hotel munich)'을 찾아나섰다.

낯선 도시와 넓고 좁은 골목을 체우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은 생경스러웠지만, 동시에 언젠가 한번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아득한 데자뷰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잔뜩 찌푸린 하늘, 먹구름과 햇살 그리고 회색빛 석양이 마치 내 마음처럼 변덕스럽게 하늘모양을 바꾸고 또 바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는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을 향했다. 또 다시 스마트폰의 자그마한 창에 표시된 지도를 따라 이름모를 거리를 걷다가 맞딱드린 너무나도 이국적인 '쾨니히스광장'의 풍경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낡은 건물들과 웅장한 오브제, 그냥 아무생각없이 걷기만 해도 예술가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아름답고 철학적인 거리의 기운에 취해서 난 그날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체 참 많이도 걷고 또 걸었다.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에서 만난 올리베티수동타자기 '발렌타인'

독일현대건축가인 슈테판브라운펠스에 의해 설계되어 2002년도에 완공된 현대미술관은 건물 그 자체가 디자인오리엔트 된 거대한 공업제품처럼 컨셉트에서 끝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완성되어진 건축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오랜 세월 짝사랑해 온, 2007년 12월 31일 타계한 디자이너 에토레소사스2세(ETTORE SOTTSASS Jr.)가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올리베티사의 빨간색 수동타자기 '발렌타인'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현대미술관의 1층 카페 구석에 놓여있던 '노르웨이세즈'가 만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너무나도 완벽한 건축공간이 만들어주는 안락함에 취했던 그날을 오랫동안 잊지못할 것이다. 누가 독일의 포스트모던과 바우하우스를 차가우며 인간미가 없다고 탓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완벽하고 따뜻하고 안락하게 감싸주는데 말이다.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2011년도 유로비젼송콘테스트와 EU 그리고 묘한 열등감

힘빠진 다리를 이끌고 호텔에 도착해서 창밖을 바라보니 어둠과 함께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호텔 식당에서 라자니아를 뚝딱 먹고 호텔방으로 돌아가 티브이를 켜니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2011년 유로비젼 송콘테스트가 방송 중이었다. 학창 시절, 오전 11시만 되면 라디오로 들었던 '세계의 유행음악'을 통해 만났었던 유로비젼 송콘테스트를 리얼타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흥분도 설렘도 잠깐, "굿이브닝 유럽!" 이라고 외치던 사회자 '스테판라브'의 요상한 영어발음의 멘트가 순간 왠지모르게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유럽은 나에게 있어서 잘사는 이웃집의 공부잘하고 잘생겼으며 우애까지 좋은 형제처럼 어딘가모르게 부럽고 무서운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도이체아이헤'호텔 주변 거리풍경과 '뮌헨앓이'의 시작

가을하늘을 연상케하는 높고 진한 파란 하늘아래에서 뮌헨의 거리를 걸었다. 여행지에서 하루 정도는 지도와 안내 책자 없이 무작정 발길이 닺는 곳으로 산책을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날도 난 아침부터 아무런 계획없이 눈과 마음의 움직임만을 의지한채 뮌헨 시내를 걸었다.

빵굽는 냄새가 나면 고소한 냄새를 따라가 빵을 먹었고, 쇼윈우에 진열되어있는 그림 또는 오브제가 마음에 들면 점포 안으로 들어가서는 또 다른 그림과 골동품들을 바라보며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주었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산책을 하다가 들어가게 된 도이체아이헤호텔의 레스토랑과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상점들과 카페와 서점과 거리를 메우고 있던 친절하고 사랑스럽기 조차한 그곳의 사람들의 표정들 덕분에, 아직까지도 눈을 감으면 그 잔상들이 나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런던콜링'(마르크스가 한 말이라고 알려진 이 어구가 실제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음)이 아닌 '뮌헨콜링'인 것이다. 결국, 난 그곳에서 돌아온지 이십여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짝사랑에 가슴아파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뮌헨앓이 중이다.

다음 여행은 본격적인 '천연효모빵 투어'가 될 것이다.


  1. Favicon of https://bluesword.tistory.com sword 2015.10.12 00:07 신고

    저는 뮌헨으로 신혼여행을 간 이유가 자동차 투어를 하기 위해서...

    물론 운전 말고 bmw와 벤츠를 보기 위해...ㅎㅎㅎㅎ
    정말 뮌헨앓이 이해 합니다. ^_^

    비행기 공포증... ㄷㄷ
    저는 폐쇄적인 환경 보다는 귀울림 때문에 싫어하는데
    다행이 큰 비행기를 타면 겪진 않더라구요, 작은 비행기를 타면 귀가 심하게 아픈...-_ㅜ...

    프레스티지석으로 비용이 좀 쎄긴 하겠지만
    공포증을 조금이라도 물리치셨다니 다행입니다. ^_^
    비행기를 못타면 너무 슬플거 같아요 ㄷㄷㄷ

동방박사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는 쾰른대성당을 멀리 하자 1949년부터 옛 서독의 수도였던 본이 눈앞에 바로 다가선다. 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었을 때 40여 년간 서독의 수도로서 독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본은 우리에게 악성 베토벤의 고향이자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본과 쾰른 사이에 놓여진 무한질주의 아우토반은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도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 베토벤 동상과 뮌스터 교회 첨탑이 한 눈에 들어오는 구시가지 광장 

본의 첫인상은 수도라는 선입견과 달리 너무나 소박하고 조용한 도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개의 수도들은 세련된 고층 빌딩이나 화려한 네온사인이 도시를 감싸고, 빌딩 숲 사이로 수많은 자동차의 물결이 흐르며, 잘 차려 입는 도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본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런 것은 하나의 선입견에 불과함을 느끼게 된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도 없고, 자동차로 인해 교통이 막히는 현상도 볼 수 없다. 그 대신 로마시대 때부터 지어진 대성당과 중세시대 때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축물, 시간에 의해 낡아진 옛 시가지 광장 등이 여느 수도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론 본이 과거에 수도였기 때문에 눈에 띄는 세련된 거리와 카페, 레스토랑, 호텔 등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본의 분위기는 중세풍의 우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로마시대 때 '카스트라보넨시아'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던 본은 16세기 이후 쾰른 대주교 겸 선제후의 궁정도시로 성장하였다. 궁을 둘러싼 귀족들의 집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본은 독일에서 부유하고 교양이 넘치는 도시로 변모하였다. 많은 귀족과 부를 바탕으로 본이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화 예술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고, 베토벤 같은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베토벤이 태어날 당시 인구는 1만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30만명이 훌쩍 넘는다. 여느 도시와는 달리 이런 역사적인 고도임에도 불구하고 본은 생각만큼 번잡스럽지 않다. 프랑크푸르트의 높은 현대식 빌딩이나 뮌헨처럼 높은 시청사처럼 도시를 상징할 만한 건축물이 없다. 굳이 본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꼽는다면 본대학이나 베토벤 하우스처럼 1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중산층 집들이다. 어쩌면 소박한 본의 이미지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된다.

바로크 양식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옛 시가지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인해 활기가 넘쳐난다. 오렌지 빛의 오후 햇살이 뮌스터광장에 뒹굴고, 광장 중심에 세워진 베토벤 동상은 햇살을 받아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리고 지나치는 노천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음악과 함께 본의 여행은 시작된다. 이 도시에서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은 단연 베토벤 생가다.

보통 여행의 출발점이 중앙역이나 시청사지만 본에서만큼은 악성 베토벤이 태어난 집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본의 건축물이나 박물관을 관람하기보다는 베토벤이 22세까지 살았던 곳을 찾아가 그의 향기를 쫓는 것이다. 위대한 음악가가 태어난 집과 그가 뛰어놀던 골목길, 부모님 손에 끌려가던 교회, 산책을 즐겼던 라인 강변, 오르간을 연주하던 대성당,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꽃피웠던 선술집 등 그와 관련된 유적지는 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의 두툼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짙은 담쟁이 잎 사이로 여러 개의 베토벤 흉상이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생가는 외부에서 보면 다른 집과 별 차이 없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작은 마당과 파릇한 담쟁이넝쿨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외부에서 문을 열면 바로 방으로 이어질 것 같지만 베토벤 하우스는 건물 안으로 마당과 정원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건물 2채가 들어서 있는 구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헐릴 집이었지만 본 시민의 12명이 기금을 모아 생가를 구입해 베토벤 기념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생가 내부에는 작은 정원과 여러 개의 베토벤 흉상이 시선을 끈다. 흉상들을 얼핏 보면 베토벤의 모습이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흉상의 모델은 베토벤이 분명하지만 조각가가 다르기 때문인지 그의 흉상의 얼굴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바람결에 날린 듯한 물결 모양의 머리카락이 베토벤임을 알려준다.

마당에 세워진 흉상을 감상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그의 음악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내부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베토벤과 관련된 다양한 유품들이 여행자의 시선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3층 건물에 12개 방에는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품 15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베토벤의 초상화, 그가 쓰던 악기, 친필 악보 등 베토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베토벤 생가 이외에도 본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산재돼 있다. 시장광장을 굽어보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옛 시청사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본 여름 노천 문화축제'의 배경이 되어왔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본 교회는 쾰른대성당의 초석이 마련되기 시작할 즈음에 완공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건물이다.

SS 카시우스와 플로렌티누스에게 바쳐진 유서 깊은 뮌스터교회는 라인 강변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는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본은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답게 곳곳에 눈여겨 볼 만한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 독일 본! 이것만은 알고 떠나세요△가는 길=우리나라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운항하고 있다. 서독의 옛 수도였던 본까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슈만 하우스=본은 베토벤의 고향이지만, 독일이 낳은 비운의 천재 슈만이 만년을 보낸 곳이다. 본의 구시가지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슈만이 자신의 아내이자 성악가인 클라라와 함께 살았던 '슈만하우스'가 있다.


지상과 지하가 만나다 - 훔볼트하인의 방공호

베를리너 운터벨텐은 ‘베를린의 지하세계’라는 뜻을 가진 단체이다. 199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단체의 목적은 베를린의 지하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공개하여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시가 동서로 분단되면서 수많은 시설들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잃어버린 지하 시설들이 통일된 베를린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새롭게 발굴된 교통용 터널, 전철역, 수송로, 방공호, 공기송출 우편시설 같은 지하시설들이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베를린 훔볼트하인 공원 언덕 위에 자리한 방공호 또한 그렇게 해서 공개된 시설의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5만 명의 시민들이 공습을 피했던 방공호는 중세시대의 요새와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당시 대공포가 설치되어있던 85m 높이의 방공호 탑에서는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현재 이곳은 4월부터 10월까지만 공개되어 있는데, 겨울에는 동면하는 박쥐를 보호하기 위해 입장이 금지된다고 한다.



예술가와 정부, 타협하다 - 타헬레스(Tacheles)

1990년 2월, 일군의 예술가들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벌이며 방치된 백화점에 입성했다. 무단점거운동, 스쾃(squat)의 대표적인 이름이 된 '타헬레스'의 탄생이었다. 타헬레스란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명확하게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유대어다. 이 명랑한 스콰터(squatter)들은 명확하게 “너희는 건물을 가졌지만 쓰지 않고 있고, 우리는 돈이 없지만 작업실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원래 그 건물은 1907년 백화점으로 지어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건물이었다. 이곳은 철거될 운명에 놓여있었는데, 예술가들이 이곳을 다시 살려냈다. 하지만 정부의 관점은 예술가들과는 달랐다. 그 후 10년간 강제퇴거의 협박과 버티기의 지난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정부가 “문화공간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라고 판단을 바꾸면서 타헬레스의 위상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1999년, 정부 보조금까지 받는 예술단지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50여 명의 전세계 예술가들은 관리비에 해당하는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작업실을 합법적으로 대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불법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골든홀과 블루살롱, 영화관 겸 카페 Highend 54 등의 공동 공간에서 수시로 전시회, 공연, 콘서트, 영화상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피티로 가득 찬 타헬레스 전경.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합법적인 지위와 실험성을 바꿨다.”는 통렬한 비난과 정부의 간섭이 타헬레스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2009년 이 건물을 소유한 투자펀드 푼두스 그룹에서 10년의 임대계약이 끝났다며 예술가들에게 강제퇴거를 통보해 또 다른 지난한 싸움을 맞이하게 되었다. 베를린 반문화(Counterculture)운동의 상징이었던 타헬레스는 이에 “우리는 과거에도 무단점거자였고, 이제 다시 무단점거자로 돌아왔을 뿐”이라며 당당한 한판 싸움을 다시 벌이고 있다.



천사와 인간, 손을 잡다 - 전승기념탑(Siegessaule)

전승기념탑 꼭대기의 '황금의 엘제'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천사 다미엘은 황금빛 여신의 동상 어깨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독일어로 속삭이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Der Himmel ueber Berlin]는 1987년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하고 페터한트케가 공동으로 각본을 쓴 작품이다. 서커스단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아름다운 마리온을 사랑하게 된 천사 다미엘은 고뇌 끝에 인간이 된다. 영화적 완성도로도 격찬을 받았던 이 영화는 베를린 전승기념탑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도 한몫했다.


다미엘이 앉아있는 황금빛 여신을 베를린 사람들은 ‘황금의 엘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원래는 승리의 여신인 ‘빅토리아’다. 키가 무려 8.3m에 달하는 이 조각상은 무게만도 무려 35톤. 프리드리히 드라케(Friedrich Drake)가 조각한 것이다.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그로쎄 티어가르텐(GroBe Tiergarten)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전승기념탑은 1873년에 하인리히 슈트라크스(Heinrich Stracks)의 설계로 완성되었다. 덴마크(1864년), 오스트리아(1866년), 프랑스(1870년~71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이었다. 탑 내부에 있는 285개의 계단을 오르면 베를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다미엘처럼 황금의 엘제 어깨에 앉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67m 높이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으니, 다미엘의 기분을 비슷하게 느껴볼 법도 하다.



동독과 서독, 마주보다 -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어, 한때는 독일의 분단을 상징했고 이제는 독일통일의 상징이 되었다. 1788년부터 91년까지 3년여에 걸쳐 지어진 이 문을 설계한 이는 칼 고트하르트 랑한스(Carl Gotthard Langhans). 처음에는 도시 성문으로 만들어졌으나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시내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 위의 동상 크바트리가(Quadriga)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에 올라타고 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2009년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지 20년째 된 날이었다.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시작하여 브란덴부르크 문을 거쳐 국회의사당까지, 1.5km에 걸쳐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선을 따라 1,000여 개의 도미노 벽이 세워졌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재연하기 위해서였다. 각국의 예술가들이 하나씩 맡아 자유의 메시지를 형상화한 이 도미노 벽은 10만 명이 참여한 대대적인 ‘자유의 축제’ 끝에 장엄하게 쓰러졌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나누었던 베를린장벽은 통일 이후 부서진 조각들조차 기념품으로 부지런히 실려나가 지금은 보기 힘들다. 오스트반호프(Ostbahnhof)역 부근에 남은 장벽만이 세계 각국의 118명의 작가들이 그림을 그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되었다.


동서분단시절 브란덴부르크문을 낀 장벽을 통과하는 방법을 설명한 안내문.



음악, 모두의 손을 잡다 - 러브퍼레이드

여러 도시에서 계속되고 있는 러브퍼레이드 포스터.


독일은 음악과 아주 밀접한 나라이다. 바흐, 헨델, 베토벤, 바그너,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말러 등의 대가 이름만 떠올려도 그 관계가 어렵지 않게 짐작되리라. 베를린 필하모니, 드레스덴 오페라, 라이프치히 오케스트라는 또 어떤가. 현대음악에서도 독일의 활동은 대단하다. 그런 곳이기에 ‘러브 퍼레이드’가 열리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사랑과 평화의 테크노 축제 ‘러브 퍼레이드’ (Love Parade)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넉 달 전, 생활 예술가이자 DJ이며, 미장이였던 ‘모테 박사’(Dr. Motte)의 주창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쓸쓸히 보내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로 퍼레이드를 개최한다. 그가 집회 허가 신청을 낼 때 내세웠던 모토는 ‘평화, 기쁨 그리고 팬케이크’ 였다. 그것은 군비 축소와 음악을 통한 화해, 그리고 공정한 분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날, 한 대의 트럭과 약 150명의 사람들이 당시 서베를린의 소비의 중심지였던 쿠담(Kurf rstendamm)거리를 행진했다. 그것이 말 많고 탈도 많으면서 기쁨으로 가득찬 러브 퍼레이드의 시작이었다.


참가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1996년부터 에른스트 로이터 광장, 6월 17일의 거리, 브란덴부르크 문, 전승기념탑까지 펼쳐지게 된 러브 퍼레이드는 매년 7월 첫째 토요일에 열린다. 행사로 인한 소음과 환경파괴, 엄청난 쓰레기 처리문제, 마약의 남용과 폭리, 무단방뇨 등등의 문제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러브 퍼레이드의 정신은 세계 각지로 퍼져 다양한 나라에서 같은 이름의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학살자, 죽인자를 추모하다 - 유태인 박물관(Judisches Museum)

히틀러 정권에 의해 학살된 유태인은 600만 명.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비극의 가해자로서, 독일은 반성을 아끼지 않는다. 위령탑을 건설하고 광장을 만드는 한편, 유태인들의 끔찍했던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하게 만드는 유태인 박물관 건설에도 발벗고 나섰다.

2001년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이곳은 소장품이 아니라 건물 자체로 유명해진 드문 케이스의 박물관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로크풍의 구 박물관을 지나 지하통로를 거쳐야 한다. 입구에서부터 가스실과 수용소에서 대량학살된 유태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윗별을 참고한 건물의 전체적 모양, 칼로 난도질한 듯한 가늘고 길고 불규칙한 창문들, 49개의 기둥에 심어놓은 49그루의 올리브나무로 이루어진 ‘Garden of Exile(추방의 정원)’, 메나슈 카디쉬만(Menache Kadishman)의 작품 [낙엽]을 설치하여 절규하는 사람얼굴 모양의 철 조각들을 깔아놓아 밟아야만 지나갈 수 있게 만든 [memory void, 공백의 기억], 아무것도 없는 거대하고 높은 밀실인 홀로코스트 타워 등의 요소들은 풍부한 상징을 담고 있다. 빈 전시실조차도 사라진 유대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원래 지금과 같이 따로 지을 계획이 아니라, 베를린 박물관의 부속건물인 유대인관으로 계획되었던 이곳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이 확장되었다.


유태인 박물관 내부전시실 풍경.



동성끼리 팔짱을 끼다 - 놀렌도르프 광장

20세기 초의 놀렌도르프 주변.이때부터 게이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베를린의 다른 이름은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다. 전체 주민의 약 10%, 35만 명 가량이 동성애자라는 수치는 이곳이 다른 도시에 비해 동성애자들에게 비교적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분단시절 서베를린으로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군대 면제 등의 혜택을 내밀자 이를 받아들인 동성애자들의 이주가 급격히 늘면서, 베를린은 명실상부한 유럽 최대 동성애 도시로 떠올랐다.


‘놀렌도르프 광장(Nollendorfplatz)’은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술집, 바, 카바레들이 모여 있는 카페거리로 유명하다. ‘놀렌도르프 광장’ 역 건물에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죽어간 동성애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있다. 나치가 학살한 것은 유태인만이 아니었다. 게르만 민족의 피를 더럽히는 불순한 자들로 규정된 동성애자들은 가슴에 핑크색 역삼각형(Rosa Winkel)을 붙이고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어야 했는데, 더군다나 유태인이라면 노란색 정삼각형을 겹쳐 달아야 했다. 그들에 대한 대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했다고 한다. 1933년에는 놀렌도르프 광장 주변의 동성애자 카페들이 대부분 강제로 폐쇄당하는 역사적 아픔을 겪기도 했다.

■ 독일 종교개혁 5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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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바르트부르크성

기독교의 르네상스라 일컫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올해 500주년을 맞는다. 종교개혁은 16~17세기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며 등장했던 개혁운동,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 현장과 마르틴 루터의 도시를 찾는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루터의 공개청문회 개최된 하이델베르크 대학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논박문을 내걸었다. 그의 논박문은 유럽 곳곳으로 배달되어나갔다. 유럽 각지의 학자, 종교지도자들은 루터의 저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중 독일의 어느 대학교에서 루터를 공개청문회를 열어 초청했다. 1518년 4월 26일 루터는 그 청문회에 등장했다. 그곳이 지금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이다. 

하이델베르크는 네카강 연안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로 12세기에 처음 문헌에 등장했다. 루터의 청문회가 열린 하이데베르크 대학은 1386년 선제후 루프레흐트 1세에 의하여 설립됐다. 프라하대학교와 빈대학교의 뒤를 이어 독일어권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6세기에 종교개혁의 보루가 되었다. 

보름스는 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 켈트족의 정착지로서 보르베토마구스라고 하였다. 100여 차례나 되는 제국의회 등 여러 가지 중요한 회합이 이곳에서 많이 열렸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1076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폐위를 선언한 주교회의. 1122년 보름스협약으로 이어진 회의, 1495년 황제 막시밀리안 1세 때의 의회, 루터가 황제 카를 5세 앞에서 자기의 신념을 표명한 1521년의 의회 등이다. 

루터의 재판으로 불렸던 이 회의 장소가 되었던 제국교회 방문이 가능하다. 루터는 이 재판 후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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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분위기의 바르트부르크 루터방

◆ 루터의 묘지가 있는 비텐베르크 

아이젠나흐는 바흐의 출생지다. 그가 태어난 집은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옛 악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루터는 이곳에서 공부하고 바르트부르크에서 성경 번역에 착수하였다. 시내에서 루터하우스를 방문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을 방문할 수 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이로 인해 독일에 기독교가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비텐베르크는 1517년 시작된 종교개혁의 발상지로서 유명하다. 루터를 비롯하여 멜란히톤, 부겐하겐의 집이 남아 있다. 

루터의 묘지와 그의 유명한 95개조를 써 붙인 테제의 문이 있는 성교회를 포함하여 종교개혁과 관련 있는 역사적 건물이 많다. 루터가 설교를 하였던 시교회, 종교개혁 역사박물관인 루터관, 루터가 살았고 멜란히톤의 집이었던 16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등이 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의 목회 생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비텐베르크에서 생활하였다. 루터와 관련하여 가장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 

레드캡투어(02-2001-4734)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유럽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여행기간 중 쎄시봉 가수 윤형주의 공연이 곁들여진다. 아시아나항공 또는 대한항공 이용. 2017년 3월21일 단1회 출발. 요금은 369만원부터. 


25년이 지난 후 베를린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수많은 가능성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독일 각지에서 몰려온 프로파간다들은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꿈을 키워나갔고 지금의 베를린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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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를 기록하다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뮤지션이었던 크리스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앙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베를린을 탈환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로 대표되는 타헬레스에서 활동하며 격동의 시기를 지켜봤다. 그 이야기를 <베를린 원더랜드> 한 권에 몽땅 담아냈다.

↑ 호평을 받은 책

예술 및 라이프스타일 전문 출판사인 게슈탈텐과 함께 만든 책.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베를린에 얼마나 별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들로 가득하다.



↑ 1992년 풍경

현재는 세련된 갤러리들로 가득 차 있는 오라니언부르거 거리의 1992년 풍경.



포토그래퍼이자 뮤지션이다. 독일 중부 도시인 다름슈타트Darmstadt 출신이며 1990년 베를린에 왔다. 현재 앙케와 함께 봅스에어포트Bobsairport(www.bobsairport.de)라는 포토 에이전시를 운영 중이다. (앙케)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북부 도시 브레멘Bremen 출신이다. 1990년 베를린자유대학에 입학하면서 베를린에 왔다. 현재 그래픽 디자이너로 카파Capa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내가 속해 있던 밴드와 공연 리허설 중이었다. 공연은 취소됐고 밴드도 해체됐다. 다들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버렸으니까. (앙케) 고등학생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TV로 보곤 베를린으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혀 다른 세상,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음을 느꼈다.



혼돈의 세상이었다. 정부가 재정비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는 '자유'를 선사했다. 독일은 물론 전 세계의 예술가, 펑크족, 무정부주의자, 몽상가, 괴짜가 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빈집을 점거해 예술, 콘서트, 불법 파티 등을 여느라 바빴다. 앙케는 라이브 뮤직 클럽인 쇼콜라덴Schokoladen, '무단 점거'의 대표 아이콘이 된 타헬레스Tacheles에서 새로운 개념의 콘서트, 음악 이벤트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타헬레스가 들어선 건물은 1907년에 지은 백화점이었는데 제2차세계대전 후 폐허가 되었다. 1990년 2월 여러 명의 예술가들이 방치된 백화점으로 향해 화려한 그래피티로 건물을 무장시켰다. 이러한 무단 점거 운동을 스Squat이라고 한다. 철거될 운명의 건물은 예술가들로 인해 베를린의 명소로 거듭났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달랐고, 강제 퇴거의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끝까지 버텼고 결국 정부는 베를린 역사의 한편을 장식할 반문화 운동의 상징이자 문화 공간으로 인정했다. 안타깝게도 건물 소유주의 압력에 의해 2012년에 문을 닫은 상태다.



<베를린 원더랜드>를 펴냈다. 사진과 내용이 굉장하다. (크리스&앙케)오랫동안 기획한 것이었다. 7명의 사진가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베를린의 '야생의 시기'를 담아냈다. 사진 촬영을 할 당시의 상황과 자세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 시대를 함께 겪은 사람으로서 가슴을 다시 쿵쾅거리게 하는 훌륭한 사진이 많다.



표지에 올린 1990년의 킨칙 거리Kinzig Str. 풍경이다.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퍼 벤 드 빌Ben de Biel이 촬영한 것으로 베를린 동쪽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의 무단 점거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초를 휩쓸었던 다채로운 서브컬처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베를린 미테 지역. 하지만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옮겨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여전히 베를린은 '한번 해볼 만한' 도시다. 우리는 사진과 디자인을 통해 베를린을 기록하는 일을 할 것이다.



↑ 마크 볼라베

자게 클럽Sage Club 앞에서 만난 클럽 커미션의 창립자 마크 볼라베.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마크는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진짜 베를리너다. 그는 130여 개 클럽을 거느리는 클럽 커미션Club Commission의 대부답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날 밤 클러빙을 즐기고 있었다.

↑ 베를린의 클럽

실험적인 예술의 무대가 되고 있는 베를린의 클럽.



서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에 위치한 유명한 록 클럽이었다. 그날 새벽 4시쯤 클럽을 나서다 거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녀가 대뜸 "브란덴부르크 문이 개방됐대!"라고 말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택시 기사 또한 베를린 장벽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하더라. 당장 브란덴부르크로 가자고 했다.



동, 서 양쪽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으로 운집했다. 사람들은 장벽 위로 올라섰고 반대편 지역으로 뛰어내렸다. 예전 같았다면 군인이 탄압하거나 총을 쏘았을 텐데 군인들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장벽을 넘었고, 동베를린에 발을 디딘 후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해 다시 서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축제 같은 분위기였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조금 긴장했다. 1953년도에 일어난 동베를린의 폭동 때처럼 무장한 소련군이 몰려올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민들도 정부도 평화를 지켰다. 기적과도 같았다.



1980년대에 이미 독일은 영국과 함께 테크노 음악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베를린 미테 지역을 중심으로 무료 지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생겨났다. 베를린엔 주인이 없는 '빈 공간'들이 넘쳐났다. 특히 장벽이나 양쪽의 정부 기관이 들어서 있던 곳이 그랬다. 포츠다머플라츠Potsdamerplatz, 빌헬름 거리Wilhelm Str.에 에-베르크E-Werk, 데어 벙커Der Bunker, 트레조Tresor와 같은 전설적인 클럽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베를린에 불어닥친 개발 계획으로 인해 클럽들은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뒤 클럽 신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2000년에 클럽 커미션을 창설하게 됐다.



트렌스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동독 출신 DJ 폴 반 다이크Paul van Dyk는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벌어졌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동서독의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서 클럽은 단순히 하룻밤 유흥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베를린에는 미술, 영화, 음악, 패션, 디자인 업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클럽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다. 클럽엔 음악, 음향, 건축, 미술, 그래픽, 조명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적 장치들이 어우러진다. 훌륭한 클럽은 예술적인 생각, 실험 정신을 가져야 한다. 클럽 커미션은 이러한 클럽을 발굴하도록 돕는다. 처음엔 20여 개 클럽이 모여 시작했는데 현재 130개 클럽이 가입되어 있다.



베를린 클럽 신의 산증인과도 같은 트레조. 규모나 음악, 음향 시설, 레지던스 아티스트 등 여러모로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베르그하인Berghain.



기도의 '물 관리'는 클럽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겉치장과는 상관없다. 이미 술에 취했다면-특히 남성 무리-입장이 어렵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니며 감각을 열고 자유롭게 클러빙을 즐길 이들을 감별해내도록 교육받는다. 너무 어렵나?



↑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미헬베르거 호텔의 아늑한 안마당에에서 만난 톰과 이현지.

오래된 공장의 창조적 변신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진짜 베를린을 만나고 싶다면 미헬베르거 호텔에서 머무르기를 추천한다.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이들이 모여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 카페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카페.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출신이다. 2003년 베를린을 처음 찾았다. 장벽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베를린 동쪽의 경우 3개 건물 중 하나는 레노베이션이 필요해 보였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째 날, 이곳이 나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라 직감했다. 나는 국제 비즈니스를 공부했지만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나만의 독자적인 일을 꾸리고 싶었다. 베를린은 최적의 도시였다. 이곳엔 한층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존재했다. 저렴한 물가 덕분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쫓기지 않아도 됐다. 독일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전혀 다른 사람들, 도시가 지닌 놀라운 역사, 그래피티, 음악 등 곳곳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감독이나 프로듀서를 꿈꿨지만 특출한 재능을 지닌 것 같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공동 창업자인 나딘과 오랜 고민 끝에 호텔을 열자고 의견을 모았다. 호텔이라는 공간에서는 두 사람 모두 잘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들을 벌여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호텔 학교에서 유학 중이었다. 취업을 알아보다 베를린에 새로운 호텔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까지 면접을 보러 갔다. 호텔리어답게 블랙&화이트 슈트를 차려입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캐주얼한 차림새의 톰과 나딘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형 호텔들에서 느낄 수 없는 열정, 가족적인 분위기에 반해 미헬베르거 호텔에 합류했다.



2004년부터 호텔 오픈을 준비했다. 각종 계획을 짜고 호텔 건물을 알아보는 데 총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딱 맞는 호텔 건물을 찾는 것이 관건 이었다. 베를린 내 100여 채가 넘는 건물을 보러 다녔고 결국 2008년 계약에 성공했다. 호텔 빌딩은 19세기에 지어진 공장이었다. 국가적으로 보존되고 있어 외관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레노베이션했다. 우리는 호텔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정할 때 다른 호텔들을 참고하지 않았다. 미헬베르거의 스태프와 참여한 건축가, 디자이너 등의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오픈한 지 1년 만이었다. 런던에서 주최하는 어워드로 '카페, 바, 나이트클럽 혹은 라운지'의 카테고리에서 수상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자르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런던과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호텔에 합류해 아이덴티티 구축과 디자인 등을 전체적으로 담당했다. 호텔 로고는 물론이고 브로슈어, 벽화, 홈페이지의 일러스트와 디자인 등 아자르 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잘 어우러졌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한다. 베를린에 '코코넛 워터'라니.

코코넛 워터는 물론 미헬베르거 크래프트 비어, 리큐어도 출시했다. 그중 리큐어는 미국에서도 판매될 예정이다.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도시였다면 이러한 도전이 마냥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베를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일에 더욱 쉽게 도전할 수 있고 수많은 아이디어, 열정을 가진 이들을 만나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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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서 싹튼 서브컬처

톰 뵈셔만

플래툰은 베를린과 서울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아트 커뮤니케이션 그룹이다. 이들이 각 도시에 들여놓은 컨테이너 '쿤스트할레'에선 서브컬처가 꿈틀댄다. 플래툰의 대표인 톰 뵈셔만은 최근 평양 여행을 다녀왔다.



↑ 쿤스트할레 베를린

서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쿤스트할레 베를린. 크리에이터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놀랍다.



↑ 쿤스트할레 서울

쿤스트할레 서울. 컨테이너를 이용한 건축과 디자인으로 독일의 레드 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니. 중부 하노버 근교의 데트몰트Detmold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7년 베를린으로 옮겼다.

16세 때. 서베를린에 할머니가 사셨다. 할머니는 베를린에 온갖 '크레이지'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당시 서베를린엔 젊은 청년들과 예술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체질적으로 도발적인 환경을 좋아한다지만 청년들은 왜냐고? 베를린에 거주하는 남자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거든.

하노버에서 서베를린에 이르는 아우토반이 하나 있었다. 모두 그 길을 이용했다. 서베를린까지는 2시간 30분쯤 걸렸다. 베를린에 도착하기에 앞서 동독의 관문 도시인 막데부르크Magdeburg를 지나쳤는데, 와, 깜짝 놀랐다. 그렇게 가난할 줄 몰랐다. 얼마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도 그때가 훨씬 충격적이었다.

독일문화원과 평양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에 입성, 4박 5일간 있었다. 영화제 공식 일정과 평양 시내 투어를 했는데 북한 가이드가 내내 동행했다. 평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놀랄 것이다. 서울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값비싼 독일 차들이 도로를 달리며, 규모가 작긴 하지만 고급 백화점도 있다. 빼어난 레스토랑도 많다. 최근 오픈한 일식집에서 8코스 디너를 먹었는데 식재료며 요리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6년간 쿤스트할레 서울을 운영하며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봤지만, 솔직히 말해 밥과 김치 등 기본적인 음식은 북한의 것이 더 맛있다. 그리고 술! 대동강 맥주! 감히 아시아 맥주 중 최고다.

소련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과 거대한 동상들, 군인들의 시가 행진에 필요한 전시용 대로 등을 보며 베를린의 카를 마르크스 알레를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평양과 베를린의 닮은 점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도시라는 것이다. 평양에 사는 이들은 북한의 지도층이나 엘리트들이다. 동베를린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가나 군인, 교사, 예술가들이 기회를 얻었다.

당시 데트몰트의 한 마케팅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함께 베를린으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장벽을 허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장비를 챙겨 장벽을 무너뜨렸다. 불도저와 크레인도 동원됐다. 지난여름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축하 파티가 벌어진 것을 보았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내 인생 최대의 축제를 경험했다.

1997년 베를린에 왔고 2년 후 동업자인 크리스토프를 만났다. 나의 마케팅 경력과 크리스토프의 디자인 실력을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해보자고 결의했다. 4~5개월간의 브레인스토밍으로 찾아낸 답은 '문화 마케팅'이었다. 1990년대 말은 신문, 방송, 잡지, 빌보드 등 매스커뮤니케이션이 급속도로 발달했던 시기였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통해 브랜드와 대중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래서 비디오 아트, 그래픽 디자인, 스트리트 아트, 클럽 음악 등 서브컬처에 주목했다.

파드핀더라이Pfadfinderei는 모션 디자인과 비주얼 아트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이들은 일렉트로닉 음악과 비주얼 아트를 접목하며 VJ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슈퍼스타가 된 모데셀렉터Modeselektor. 일렉트로닉 듀오로 또 다른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아파라트Apparat와 함께 모던 테크노 그룹인 모데라트Moderat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 쿤스트할레 서울에서 공연을 한 바 있다.

플래툰은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 포진하고 있는 3500여 개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이뤄 문화 활동을 기획, 지원하고 있다. 베를린을 시작으로 서울에 아시아 본부를 열었고, 내년에는 멕시코시티로 향한다. 그다음엔, 평양도 기대해본다.

베를린 분단 중 사용됐던 감시 초소, 동독 비밀경찰의 아지트, 통일 후 전설적인 클럽으로 거듭난
히틀러의 벙커 등을 방문했다. 베를린의 굴곡진 역사가 만든 현재의 삶도 만났다.


↑ 베를린 장벽 유적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 장벽 유적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 체크포인트 찰리 마우어뮤지엄 입구

체크포인트 찰리 마우어 뮤지엄 입구.

↑ 냉전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전시관 '블랙박스 콜드 워' 앞

냉전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전시관 '블랙박스 콜드 워' 앞.

↑ 베를린이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을 당했을 때의 지도.

베를린이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을 당했을 때의 지도.

↑ 러시아탱크를 볼 수 있는 소비에트 전쟁 기념관.

러시아 탱크를 볼 수 있는 소비에트 전쟁 기념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인물은 휴가 중 바뀐 정책을 잘 몰라 말실수를 한 동독의 대변인이 아니에요. 독일어가 서툴렀던 이탈리아의 기자였죠. '여행 제한 조치를 완화했다'고 했을 뿐인데 '국경이 개방됐다'를 거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로 오역을 했어요. 대형 사고죠! 그가 전송한 기사는 세계 외신을 통해 일파만파 전해져 서독 TV에도 나오게 됐어요. 이를 본 시민들은 바로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갔고 벽을 허물었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어요. 한국도 그렇게 갑자기 통일이 될지도 몰라요. 어느 날 국민들이 국경을 허물지도요."

베를린의 개선문으로 불리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앞. 가이드인 샤샤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틀렸어. 우리의 국경 사이엔 지뢰밭이 있거든'이라는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의 통일을 기원해주는 그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베를린을 처음 찾는 여행자라면 가이드 북을 들고 다음의 장소를 찾게 된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간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 동, 서독간 마지막 출입문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분단과 냉전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올해는 더 많은 이들이 베를린의 역사적 장소들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로 베를린 시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배우며 자란 한국인이라면 베를린의 옛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펼쳐질 일을 독일은 미리 겪은 게 아닌가.

그래서 베를린은 더없이 흥미로운 도시다. 나는 오랫동안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베를린이 동독 지역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줄은 몰랐다. 서 베를린은 동독 지역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섬과도 같았다. 베를린이 동과 서로 나뉘었던 세월은 45년이다. 두 지역 모두 각자의 노선대로 발전을 거듭했고 서로 다른모습을 지니게 됐다.

베를린의 동쪽과 서쪽을 깊숙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자전거 투어의 가이드인 샤샤는 자신을 '리얼 베를리너'라고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요? 집에 있던 가장 큰 해머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뛰어갔죠! 그땐 어려서 다음 날 학교를 땡땡이칠수 있단 사실에 신이 났었죠. 역사적인 현장인데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있나요?" 그는 먼저 프렌츨라우어베르크로 안내했다. 이 지역은 베를린의 중심인 미테에서 북동쪽을 차지한다. 여기엔 베를린 장벽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베를린 장벽 기념관Gedenkstatte Berliner Mauer이 있다. 장벽이 어떻게 세워졌는지에서부터 베를린 장벽의 모습, 이를 지키던 군인들의 임무, 탈출하다 희생당한 동독인 등 몇 시간을 꼬박 머물게 하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서독인들은 장벽 근처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어요. 하지만 동독의 장벽 안에는 무인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어요. 가까이 접근해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게 한 거죠." 야외에 전시된 사진 중 장벽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가로등에 매달려 동베를린 쪽을 향해 손 흔드는 아이의 사진을 보니 가슴 한편이 아릿해졌다.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Ich Bin ein Berliner"라고 운을 떼며 큰 호응을 얻었던 미국 캐네디 대통령의 연설이 떠올랐다. 그는 가족,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를 갈라놓고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을 못 만나게 하는 것은 역사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다.

↑ 중앙에 이삭과 망치, 컴퍼스를 그려 넣은 옛 동독 국기.

중앙에 이삭과 망치, 컴퍼스를 그려 넣은 옛 동독 국기.

↑ DDR 뮤지엄에서 본 옛 동독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있는 캐비닛.

DDR 뮤지엄에서 본 옛 동독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있는 캐비닛.

↑ 과거 비밀경찰의 사무실 모습.

과거 비밀경찰의 사무실 모습.

↑ 영화 <타인의 삶>에서처럼 누군가의 사생활을 감청하던 방

영화 <타인의 삶>에서처럼 누군가의 사생활을 감청하던 방.

↑ 동독 비밀경찰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를 볼 수 있는 슈타지 뮤지엄.

동독 비밀경찰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를 볼 수 있는 슈타지 뮤지엄.

↑ 템펠호프 공항 지하의 비밀 벙커.

템펠호프 공항 지하의 비밀 벙커.

과거 프렌츨라우어베르크는 동쪽에 속했다. 이 지역은 통일 후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이다. "동독 노동자 출신들이 지냈던 곳이에요. 어떤 방은 1명이 썼지만 또 어떤 방은 12명씩 머물렀죠. 놀라운 것은 난방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거예요.1990년까지 벽난로에 석탄을 넣어 난방을 했더라니까요. 아직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통일이 된 후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주인 없이 버려진 집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빈집에 들어가 '내 집이오' 하고 자물쇠를 채운 후 결국 주인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대로 자신의 명의로 남기도 했단다. 실제로 오더베르그 거리Oderberger Str.의 플랫을 거저 얻었다는 친구가 있다. 젊은이들은 이곳에 모여 콘서트를 열고 파티를 벌였다. "그래서 처음 이 지역엔 바와 클럽들이 가득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주방 용품이나 유아 용품 숍이 넘쳐나죠. 한때 마리화나를 피우며 게릴라 파티를 벌였던 이들이 25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거든요. 나이가 비슷하니 결혼도, 임신도 비슷하게 했을 거고, 그래서 한때 이곳은 프란츨라우어베르크(베르크는 '언덕'이라는 뜻)가 아니라 '임신부의 동산'이라고까지 불렸죠." 프렌츨라우어베르크를 떠나 자전거를 타고 찾은 곳은 '카를 마르크스 알레Karl MarxAllee'였다. '프렌츨라우어베르크가 노동자들의 땅이었다면 이곳은 상류층, 실적 좋은 공산주의자들이 사는 곳이었어요. 이러한 형태의 건물을 '러시아 사회주의적 고전주의'라고 하고 '웨딩 케이크 스타일'의 빌딩이라고 하죠." 영화 <타인의 삶>을 본이들은 알 것이다. 정치가며 군인, 유명한 예술가들은 이렇게 화려한 아파트에 살았다. 조금만 뒤로 가면 '플라텐바우plattenbau'라고 불리는 칙칙한 박스형 아파트가 있다. 겉모습은 우울하지만 당시로는 신식 주거 형태로 이곳에 사는 이들은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을 거쳐 슈프레 강변을 지나면, 그때부터 베를린의 서쪽이 시작된다. 왠지 서쪽이라고 하면 우아하고 깨끗한 거리만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미 1970년대부터 서브컬처가 발달하기 시작했다고요.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그래피티가 성행했어요."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은 젊고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다 옛날 이야기예요. 지금 크로이츠베르크는 베를린에 살러 온 주머니 두둑한 외국인들로 가득해요. 젊고 가난하며 재능있는 아티스트들은 이제 노이쾰른으로 향하죠."

최근에는 베를린의 서쪽이 뜨고 있다. 한동안 동쪽에만 집중되었던 관심과 투자가 다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서쪽에서도 샤를로텐부르크 지역은 베를린 역사 대대로 왕이며 귀족, 부호, 지식인, 예술인이 살던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 운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40대 부인들을 위한 고급 부티크 등이 늘어서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의 콘셉트 몰이라는 '비키니 베를린'이 들어서 힙스터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베를린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 중 하나다. 아픔과 혼란의 역사를 겪었지만 이로 인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도시로 거듭났다. 어쩐지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다.

↑ 오래된 공장 앞의 공터로 푸드 트럭들이 몰려든다

오래된 공장 앞의 공터로 푸드 트럭들이 몰려든다.

↑ 자빙니플라츠 역 아래에 위치한 서점.

자빙니플라츠 역 아래에 위치한 서점.

↑ 히틀러의 벙커가 결국 최고의 갤러리인 '잠룽 보로스'로 거듭났다.

히틀러의 벙커가 결국 최고의 갤러리인 '잠룽 보로스'로 거듭났다.

↑ 프렌츨라우어베르크의 맥주 공장은 맥주가 아닌 다채로운 문화를 생산해낸다.

프렌츨라우어베르크의 맥주 공장은 맥주가 아닌 다채로운 문화를 생산해낸다.

↑ 서베를린의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다스 스튜에 호텔.

서베를린의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다스 스튜에 호텔.

↑ 슈프레 강변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베를린 돔.

슈프레 강변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베를린 돔.


베를린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





1 슈타지 뮤지엄Stasi Museum

옛 동독 비밀경찰의 역사와 활약상은 물론 이들이 도청을 했던 방, 첩보에 쓰였던 기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OPEN

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토,일요일, 공휴일 낮 12시~오후 6시

LOCATION

Rusche Str. 103, Haus 1


TEL

+49-30-553-68-54

WEB

2 옛 동독 박물관DDR Museum

옛 동독의 역사와 당시의 삶을 첨단 기술력와 멀티미디어, 위트 있는 장치로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게 했다.


OPEN

월~금요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10시

LOCATION

Karl-Liebknecht Str. 1


TEL

+49-30-847123731

WEB

3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Museum Hausam Checkpoint Charlie


분단 당시 검문소를 재현해놓은 곳. 근처의 마우어 박물관에선 독일의 분단과 통일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다.


OPEN

오전 9시~오후 10시

LOCATION

Friedrich Str. 43-45, 10969, Berlin


TEL

+49-30-2537250

WEB

www.mauermuseum.de


4 베를린 장벽 기념관The Berlin Wall Memorial & Documentation Centre


베를린 장벽의 역사와 이에 얽힌 사연이 가장 꼼꼼히 기록되어 있는 곳.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OPEN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7시(4~10월),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LOCATION

Bernauer Str. 111


TEL

+49-30-467986666

WEB

www.visitberlin.de/en/spot/the-berlinwall-memorial-and-documentation-centre


5 쿨투어브라우어라이Kulturbrauerei


'베를린 온 바이크' 투어의 본부가 위치해 있다. 박물관에서 <DDR 시대의 일상>이란 타이틀로 전시 중.


LOCATION

Schonhauser Allee 36


TEL

+49-3- 44352614

WEB

kulturbrauerei.de




독일 로렐라이 언덕·쾰른
강줄기따라 수채화 같은 풍경
언덕아래 마을 '뤼데스하임'엔 골목 곳곳 와인·맥주향 가득
고전·모던 공존하는 '쾰른'엔 632년 걸쳐 건축한 대성당
화려함·웅장함에 탄성이 절로

"가슴 저며 드는 까닭이야/ 내 어이 알리요/ 예부터 전해 오는 옛 이야기/ 그 이야기에 가슴이 젖네/ 저무는 황혼 바람은 차고/ 흐르는 라인강은 고요하다/ 저녁놀에/ 불타는 산정(山頂)/ 저기 바위 위에 신비롭게/ 곱디고운 아가씨가 앉아 있네 (중략) 뱃길 막는 암초는 보지 못하고/ 언덕 위만 바라보네/ 끝내 사공과 그 배는/ 물결에 휩싸였으리/ 로렐라이의 옛 이야기는/ 노래의 요술"

학창시절 누구나 한두 번은 불러 봤던 독일 가곡 '로렐라이'다. 독일의 후기 낭만파 시인인 브렌타노 등 많은 작가들이 문학의 소재로 다룬 '라인강 설화'를 하인리히 하이네가 시(詩)로 만들었고 거기에 프리드리히 질허가 곡을 붙인 것이 오늘날 세계인의 애창곡이 된 '로렐라이'이다.

◇로렐라이 언덕과 뤼데스하임=

로렐라이 언덕이 둥지를 트고 있는 라인강은 총 길이 1,300㎞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독일의 강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알프스 깊은 계곡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스위스ㆍ리히텐슈타인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독일ㆍ네덜란드 등지를 거쳐 북해로 흘러들어 가기 때문에 서유럽 6개국이 공동 소유권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유난히 마인츠와 본, 쾰른 사이의 라인강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유는 강을 번영의 지렛대로 활용했던 독일 사람들의 근면성과 경제적 성과 덕분이 아닐까 싶다.

라인강 빙겐(Bingen)에서 코블렌츠(Koblenz) 사이의 약 65㎞는 '로맨틱 라인'이라 불리는 곳으로 계절에 따라 색다른 느낌의 아름다운 정취를 선사한다. 로맨틱 라인에서도 뤼데스하임과 장크트 고아르스하우젠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높이 134m의 암벽이 로렐라이 언덕이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찾아간 관광객에게는 실망감을 줄 수도 있는 평범한 바위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로렐라이의 진수는 로렐라이에서 내려다보는 라인강에 비친 푸른 하늘과 흰구름에 있다. 라인강을 따라 펼쳐진 목가적인 풍경과 고즈넉한 마을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은 마치 한 편의 수채화처럼 이방인의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강줄기를 따라 몸을 느리게 움직이는 유람선은 독일인 특유의 목가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정취를 싣고 유유히 흘러간다. 6월의 햇살을 받으며 찾아간 로렐라이 언덕 위에는 연인들이 라인강을 내려다보며 로렐라이의 전설을 서로의 귓속에 속삭이고 있어 독일인의 사랑이 새삼 떠오른다.

로렐라이 언덕에서 라인강의 낭만과 사랑을 만났다면 언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작은 시골 마을, 뤼데스하임(Ruedesheim)에서 잠시 이방인의 여유를 즐겨볼 만하다. 한국 여행객에겐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찾아온 이들에게는 '라인강의 낭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관광 명소로 입소문이 나 있다. '라인강의 진주'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는 뤼데스하임은 마을 앞으로는 기찻길 너머로 맑고 푸른 라인강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독일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다.

뤼데스하임 최고의 명물은 이른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을 자처하는 드로셀 가세(일명 티티새 골목)라고 한다. 두 사람이 비켜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골목길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노천 카페가 늘어서 있는데 마음에 드는 노천 카페에 들어가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라인강의 향기를 코 속 깊숙이 들이 마셔도 좋다.

◇고전과 모던이 공존하는 도시, 쾰른=

라인강을 따라 북쪽으로 2시간 정도 올라가면 고풍스러운 멋과 현대적인 멋이 공존하는 도시 쾰른에 이르게 된다. 이 도시는 강을 따라 펼쳐진 중세의 성당과 고성, 크고 작은 탑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하지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쾰른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만큼 독일인이 아닌 로마인에 의해 발전한 도시다. 쾰른이라는 이름도 '식민지'라는 뜻을 지닌 '콜로니아(Colonia)'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쾰른 구시가지에 있는 로마-게르만 박물관에 가면 '콜로니아'라는 옛 이름이 새겨진 고대 로마인들의 유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유럽 옛 도시들이 그렇듯 쾰른 역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그 사이에는 마치 경계선처럼 라인강이 흐르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는 호엔촐레른 다리와 도이치 다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신시가지는 두 차례의 큰 전쟁, 즉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전된 시가지로 라인강의 기적이 펼쳐진 현장을 한 눈에 만나볼 수 있다.

쾰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는 뭐니뭐니해도 쾰른 대성당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의 수많은 건축물 가운데 공사기간이 가장 길었던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공사기간만 무려 632년. 지난 1248년 건축가 게르하르트에 의해 공사가 시작된 이후 1880년에 이르러 157m 높이의 쌍둥이 첨탑이 완공되면서 이 위대한 건축물이 탄생하게 됐다. 쾰른 대성당의 첨탑은 울름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다. 대성당은 유려한 역사와 웅장한 외관 못지 않게 내부의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단을 장식하는 훌륭한 그림과 기둥의 정교한 조각, 화려하면서도 오묘한 빛을 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라인강변을 둘러보고 나니 라인강의 기적은 독일인의 근면성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 신(神)이 라인강을 통해 인간에게 선사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괴테가도·고성을 기차로 즐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라이프치히에 이르는 일명 고성가도에서는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괴테, 바흐의 발자취를 되짚어볼 수 있어 여행이 흥미롭다. 괴테하우스에 들어서면 목재 계단을 따라 그가 나타날 것만 같은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아이제나흐의 바흐 생가에서는 18세기 고악기를 통해 당시 바로크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유럽 근대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신약성경을 번역한 곳인 바르트부르크성은 독일 3대 고성 중 하나로 꼽힌다. 1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독일 소도시 호텔은 문학적 영감을 되찾아주는 듯 낭만이 가득하다.

↑ 바르트부르크성

↑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마켓


↑ 프랑크푸르트 시가지

◆ 새로운 여행지로 변신하는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는 초현대식 고층 건물과 중세 문화의 향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특히 최근 비즈니스 출장 목적지로만 알려져 왔던 프랑크푸르트가 새로운 여행 목적지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의 크리스마스마켓에는 시민과 관광객이 한데 어울려 그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뢰머광장을 비롯해 대성당, 괴테하우스, 괴테거리 등 거리마다 화려한 조명이 불을 밝혀 흥겨운 분위기가 이어진다. 또 지하철과 트램, 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한데 프랑크푸르트 카드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프랑크푸르트 지도를 보면 시내 중심부에 마인강을 저변으로 오각형 초록빛 공원지대를 찾을 수 있다. 옛날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이 있었던 자리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돼 시민에게 휴식처가 된다. 그 중간 부분에 뢰머광장이 있다. 광장에는 시청사와 대성당이 있는데 대성당의 붉은 갈색 외관이 눈길을 끈다. 대성당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9세기 중반에 건축된 유서 깊은 건물이다.

지금은 광장 주변으로 크리스마스마켓이 한창이다. 독일 특유의 글루바인과 소시지구이도 맛볼 수 있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 괴테가 태어난 괴테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독일을 찾는 관광객이면 누구나 한번은 들르게 되는 명소다.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이곳에서 태어났다. 괴테가 태어난 방은 2층의 맨 끝 방. 3층 왼쪽 방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집필했고, 계단과 도서관, 방 어디에서든 그가 불쑥 나타나 인사할 것만 같은 생생함이 느껴진다.

괴테거리를 지나면 마천루를 이룬 빌딩 한가운데 마인타워에 이른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54층에 내려 2층을 걸어 오르면 바로 옥외 전망대. 바람을 맞으며 마인강, 알테다리, 중앙역 등 프랑크푸르트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다.

괴테거리와 자일거리는 프랑크푸르트의 대표적인 쇼핑 지역이다. 백화점에서부터 부티크 매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쇼핑의 재미가 가득하다.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베르트하임 빌리지는 명품 아웃렛으로 유명하다. 중앙역에서 셔틀버스가 운행돼 편리하게 갈 수 있다. 아웃렛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베르트하임은 전형적인 독일의 소도시. 좁은 골목 사이로 아기자기한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언덕에는 고성이 세워져 운치를 더한다.

◆ 독일 3대 고성 바르트부르크성기차를 타고 근교 소도시를 여행하는 것도 즐겁다. 고성가도의 중심 도시인 아이제나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의 고속철인 이체를 타고 약 1시간50분 걸린다.

아이제나흐는 독일 3대 고성 중 하나인 바르트부르크성으로 유명하다. 바흐가 태어나고 루터가 공부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12세기에 세워진 니콜라스문이 있다. 옛날에는 이 문을 중심으로 3㎞ 정도 시가지를 둘러싼 성벽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니콜라스문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크 시대 천재 작곡가 바흐 생가가 나타난다. 입구에는 바흐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소박한 집과 현대식 박물관이 이어져 있다. 1시간에 한 번씩 고악기 연주회가 열려 감상할 수 있으며 18세기 바로크 음악에 대한 흥미를 더한다. 도시 중심지인 마르크트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루터의 집은 이 도시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집이다. 루터가 1498년부터 3년간 하숙한 곳으로 프로테스탄트 자료, 신학책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바르트부르크성은 아이제나흐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도심에서 차로 20여 분 떨어진 산 위에 위치하며 1067년 루트비히 데어 수프링거 백작에 의해 세워졌다. 중세 언어로 쓰인 시문과 연가가 전해온다. 특히 바르트부르크성은 루터가 10개월 동안 신약성서를 번역한 곳으로 유명하며 번역 작업에 몰두했던 방이 남아 있다.

프랑크푸프트에서 기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하나우는 '브레멘 음악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의 동화를 남긴 그림형제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중심지인 마르크트광장 북쪽 시청사에 1896년에 만들어진 그림형제 동상이 있다. 시가지 남서쪽에 위치한 필리프스루헤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궁전으로 하나우 박물관이 있어 옛날 하나우 백작의 생활과 당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가는 길=대한항공에서 인천~프랑크푸르트 구간 직항편을 매일 운항한다. 약 11시간30분 소요된다.

△대한항공Fly&Rail=대한항공을 이용해 프랑크푸르트로 간 후 독일 국내를 기차로 여행할 수 있도록 대한항공이 프로모션하고 있다.

△레일유럽=유럽 주요 레일패스를 판매한다.



독일관광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가 세계유산을 새로 지정함에 따라 독일의 세계유산이 총 36개로 늘었다고 밝혔다.

올해 새로 등재된 독일의 세계유산은 알펠트의 신발공장인 파구스 공장(The Fagus Factory), 알프스 주변의 선사시대 호상가옥(독일, 스위스 등 6개국 공동 등재), 독일의 고대 너도밤나무숲과 카르파티아 원시 너도밤나무숲(기존유산 확장) 등이다. 페트라 헤도퍼(Petra Hedorfer) 독일관광청장은 "새로 등재된 세계유산은 문화 여행지로서의 독일의 명성과 입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6월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3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선 문화유산 21개, 자연유산 3개, 복합유산 1개 등이 세계유산 목록에 추가됐다.

사진/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공







시간이 흐른 지금도 뭇 남성들을 홀릴 만큼...

"로렐라이(Loreley) 언덕"!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잘 알려진 노래 덕분에 노을이 지는 강가에서 금발의 미녀가 슬픈 사연을 달래기 위해 빗질을 하며 피리를 불고 있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브렌타노경의 담시에 등장하는 전설이 하이네를 통해 시로 이어지고 질허의 아름다운 선율에 절정을 이루어 만인의 여인이 되었고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고들 한다. 때로는 코펜하겐 바닷가의 인어공주상, 브뤼셀의 오줌싸개동상과 묶어 유럽의 '삼대 썰렁'이라고도 하지만 황홀한 자연의 장엄한 역사적인 증거를 인어공주상과 오줌싸개동상과 같이 다룬다면 첫 사랑에 실패한 슬픈 사연을 간직한 체 바다로 뛰어 들었던 로렐라이의 영혼이 눈을 감지 못할지도 모른다.





로렐라이 언덕 위에서...

로렐라이 언덕위에 올라 넓은 대지의 한 부분에 라인강이란 흔적을 남기고 살아졌던 빙하기 이후의 거대한 얼음덩어리의 큰 발자국을 느끼노라면 천지를 창조한 분의 전지전능함에 머리를 숙여 감사치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의 이기를 따라 수많은 전쟁의 자리로 내어 줄 수밖에 없었던, 전후 급변하는 산업화의 소용돌이 곳에서 한 때 사진 필름을 현상할 수 있을 만큼 오염되어지기도 하였다던, 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기 본분에만 충실하며 유구한 역사를 고이 간직한 체 말없이 자신의 품의를 지키며 지금도 많은 이들을 불러드려 쉼과 용기를 내어주고 있음에 머리 숙인다.

유럽의 지붕인 알프스에서 힘차게 내달음 쳤던 빙하는 이곳에서 숨을 고른다. 눈앞에 부딪친 억센 바위 덩어리를 놓고 잠시 쉬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장고 끝에 돌아 갈 수밖에 없음을 알았고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할 줄 알았던 자연은 깊고 좁게 굽이쳐 내려가며 암초와 소용돌이침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함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아픈 역사조차도 품어야 했던 대 자연의 거대한 장관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로 하여금 복잡한 삶의 고뇌를 털어 놓게끔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그랜드캐년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협곡으로 이루어졌음을 강 건너 언덕위의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서 그리고 동서남북 펼쳐진 광활한 평원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힘겹게 오르내리는 유조선과 갈탄을 실은 화물선이나 세계 각국을 나르는 컨테이너선에서 그리고 여름이면 많은 관광객들의 마음과 하나 된 유람선들을 통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유람선상에서 바라본 Schönburg와 Oberwesel이란 동네





요양소로 사용하는 'Burg Katz'(일명 고양이 성)





제주도의 하루방이 이 곳에 왔다..

결코 '썰렁'이 아니다. 라인강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은 여러 세대를 넘나들며 소설가와 시인과 음악인들과 화가들의 마음조차도 사로잡았다.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 영국의 시인 바이론경, 독일의 시인 괴테도 독일의 음악가 베토벤도 그들이 만들어 낸 작품의 소재로 다루었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자신의 생을 발견하게하며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하는 웅장하고 감미로운 곳이 아닐 수 없다.

각박한 세상의 마음이 아니라 자연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에게만 보여 지는 여유일까? 세상은 생각하는 대로 되어진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자하면 아름다운 것만 보여 지고, 안 된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안 되는 이유만 찾아질 테니까!

아직도 살아 있는 바위의 요정은 삶의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적어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많은 이들에게 무엇인가 희망적인 새로운 것을 나누어주기에 넉넉한 자태를 뽐내며 오늘도 우리를 부른다.


뮌헨은 다양한 양식의 예술과 문화, 경제의 중심지이자 자유롭고 활기찬 사람들로 가득한 독일 바이에른 주의 주도이다. 특히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로 유명한 뮌헨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되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활기찬 사람들, 가지각색의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뮌헨으로 떠나보자.

뮌헨의 도심. 마리엔 광장을 중심으로 고풍스런 색감의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맥주’를 미뤄두고, 뮌헨 여행의 중심을 걷다

뮌헨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맥주’를 떠올리기 쉽다. ‘비어 가든’에서 한가롭게 맥주를 홀짝이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지금은 오전임을 감안해, 그 즐거움은 조금 뒤로 미뤄두고 뮌헨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뮌헨 여행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칼스광장(Karlsplatz)’은 중앙역에서 도보로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칼스광장임을 알리는 칼스문을 지나면 보행자 전용도로인 노이하우저거리(Neuhauser Strasse)가 나오고, 양 옆으로 유명 쇼핑매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 광장은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운영된다고 하는데, 지금의 번잡한 모습으로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칼스광장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의 녹색 탑이 눈에 들어온다. 일명 쌍둥이 탑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교회는 두 개의 독특한 양파모양의 탑이 특징으로, 신 시청사와 더불어 뮌헨의 상징으로 일컬어진다. 양파모양의 탑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바위 돔 교회’를 모델로 삼았다고 하며, 두 개의 탑은 실제 높이가 100m, 99m로 높이가 서로 다르다. 쌍둥이 탑 한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멀리에 있는 거대한 알프스 산맥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걸음을 내딛어 거리의 중심지라고 볼 수 있는 마리엔 광장에 들어서면 웅장한 건물인 ‘신 시청사(Neues Rathaus)’를 볼 수 있다. 처음 볼 때에는 무척 오랜 역사를 가진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20세기 초 완공되었다고 한다. 건물은 신 고딕 양식으로 지어 졌으며, 높이는 85m로 뾰족한 기둥들은 세련된 매력을 자아낸다. 특히 신 시청사의 시계탑은 뮌헨을 여행한다면 한 번쯤은 보아야 할 것으로 꼽힌다. 시계는 매일 11시와 12시에 울리며, 여름에는 17시에도 울린다. 하지만 시계만 보고 있기에 뮌헨은 아직 볼만한 명소들이 너무나 많기에,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프라우엔 교회와 신 시청사 - 두 곳 모두 뮌헨의 

상징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프라우엔 교회 - 뮌헨의 심볼이 된 두 개의 양파 모양 지붕.



유럽 미술과 왕가의 전통을 한눈에 보다

지하철을 타고 쾨니히 역에서 내린 후 18번 트램을 이용하면,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에 닿는다. 14세기~18세기의 유럽 회화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미술 작품 약 7,000점을 수집, 전시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각각의 전시실이 나라별, 시대별, 유파별로 잘 분류돼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뒤러의 독일 전시실, 다빈치‧라파엘로 등의 이탈리아 전시실, 렘브란트의 작품이 있는 네덜란드 전시실 등 그야말로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다.


도로를 경계로 알테 피나코테크와 마주보고 있는 ‘노이에(Neue) 피나코테크’는 19세기의 회화‧조각 등이 전시돼 있으며, 특히 독일과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많다. 또한, 알테(구)‧노이에(신) 피나코테크를 이어 2001년에 오픈한 ‘피나코테크 드 모데르네(현대)’는 예술, 건축, 디자인, 그래픽의 4개 부문에서 유럽 최대의 현대미술관의 자리에 올라 있다. 세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유럽미술의 역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수많은 거장들의 위대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눈을 정화시켰다면, 이번에는 유유자적한 산책을 해 볼 차례다. 그중에서도 독일 왕가가 세운 궁전 안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서의 산책은 피로도 잊을 만큼 산뜻한 휴식을 제공해주리라 생각된다.


‘님펜부르크 궁전(Scholss Nymphenburg)’은 바이에른의 왕가 뷔텔스바흐(Wittelsbach) 왕가가 세운 여름 별궁으로, 광대한 정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름 별궁답게 넓은 프랑스식 정원 안에는 아말리엔부르크(Amalienburg, 수렵용 궁전), 바덴부르크(Badenburg, 목욕탕), 파고덴부르크(Pagodenburg, 차의 궁전) 등 소규모의 궁전들이 곳곳에 있다. 궁전 안에는 루트비히 1세가 사랑한 여성의 초상화가 그려진 미인화 갤러리가 나란히 걸려 있으며, 바로크 양식만이 가진 우아함과 잘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멋이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뷔텔스바흐 왕가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던 ‘레지덴츠(Residenz)’에서도 느낄 수 있다. 현재는 박물관과 궁전으로 사용되고 있는 레지덴츠에서는 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 등 각 양식으로 장식된 내부를 둘러보며, 역대 바이에른 왕들이 수집한 미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16세기 때 조성된 르네상스식의 넓은 홀인 안티콰리움(Antiquarium)은 궁전 내에서 가장 오래된 홀로, 알프레히트 5세가 수집한 고대 그리스‧로마 풍의 흉상들을 보면 자연스레 탄성이 흘러나온다.

노이에 피나코테크 - 현대 회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미술관.

이자르 강변 - 자유롭게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끝없는 뮌헨의 매력을 위해, 건배!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이자르 강변에는 이미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1903년 엔지니어인 오스카 폰 밀러가 창설한 과학기술박물관인 ‘독일 박물관(Deutsches Museum)’이다. 공업기술과 자연과학에 대한 박물관으로서는 유럽 최고의 박물관으로, 30개의 전문 분야별로 1만 7,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책으로만 보았던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와 독일 최초의 잠수함 등을 비롯해, 독일에서 생산된 온갖 모형의 자동차와 항공기를 볼 수 있다. 앞서 미술관에서도 그랬지만, 박물관 또한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역사가 세심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고 느꼈다. 소중히 다룬 과거와 현재가 모여 미래가 형성되는 것이니, 무척 의미 있는 공간이라 생각하며 박물관을 나왔다.

사실 뮌헨에는 아직도 가봐야 할 곳이 부지기수다. 또 다른 박물관들과 개선문,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위해 만든 올림픽 공원까지…. 하지만 이제는 서두에 자신과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할 때다. 다시 마리엔 광장으로 돌아와 뮌헨 최대의 노천 시장인 ‘빅투아리엔 마르크트(Viktualienmarkt)’로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형형색색의 온갖 과일과 야채들이 판매되며, 도심 속의 활기를 온몸 그대로 체감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자, 이제 근처에 있는 비어 가든에서 시원한 독일 맥주에 흠뻑 취할 때다. 봄부터 가을에 걸쳐서 날씨만 좋다면 항상 열리는 비어 가든에서는 언제나 활기 넘치는 사람들과 유쾌한 대화들이 오간다. 뮌헨 맥주의 단위는 ‘마스’로 1리터들이의 커다란 맥주컵이다. 마스를 높이 들어 주변 테이블에 있는 사람을 향해 크게 소리친다.


“Prost(건배)!!”



가는 길
루프트한자 항공을 통해 인천공항에서 뮌헨공항까지 갈 수 있다. 현재 수요일을 제외한 매 요일 12시 30분에 출발하며, 약 1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2차 대전 당시 완전히 파괴된 도시 드레스덴과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상징이 된 도시 베를린. 전쟁으로 상처 입은 두 도시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오늘과 다를 내일을 살아간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지만 두 도시를 걸으며 행복했다.

작센주를 통치한 35명 군주가 행렬하는 '군주의 행렬' 벽화
젬퍼오퍼 앞에 자리한 작센 왕 요한Johann의 기마상
젬퍼오퍼 전경
츠빙거 궁전의 정원
브륄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아우구스투스 다리
아침 시간의 프라우엔 교회. 낮에는 이 일대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Dresden

드레스덴 구시가를 걷다

이른 아침부터 카메라를 들고 호텔을 나섰다. 빗방울이 옷과 머리를 조용히 적신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처럼 화창하다가도 금세 비를 뿌려대던 어제의 하늘을 떠올리며 몇초간 망설이다 걸음을 뗀다. 우산도 없지만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독일 사람들은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도 느긋하다.

아침부터 분주한 까닭은 베를린행 11시7분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남은 몇 시간 동안 드레스덴 구시가를 한 바퀴 돈 다음 아침밥을 먹고 떠날 작정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속속들이 관람하지 않는다면 2~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정도로 드레스덴 구시가는 아담하다.

호텔은 엘베 강변에 접한 마리팀Maritim이다. 와인과 담배를 저장하기 위해 1915년에 지은 창고는 2006년 마리팀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시멘트를 바른 외벽과 획일적인 작은 창을 지닌 건물의 외양은 무미건조하지만, 여행의 설렘을 품고 비즈니스의 성공을 꿈꾸는 이들이 머무는 호텔 안은 따뜻하다.

엘베 강변을 따른다. 밤새 정화된 상쾌한 공기가 강을 따라 떠돈다. 드레스덴 사람들은 자전거로 강변을 달리며 아침을 호흡한다.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느린 걸음으로 10~15분. 작센주 의회 건물을 지나 도심으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드레스덴 구시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젬퍼오퍼Semperoper.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가 초연된 곳이자 세계에서 알아주는 작센주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오페라 하우스다. 1838~1841년에 건립된 젬퍼오퍼는 2차 대전 당시 파괴됐다가 1985년에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40년이 지나서야 원래 모습에 가까워졌지만 이는 그래도 양반이다.

드레스덴은 1945년 2월13일에 시작된 영국군과 미국군의 공습으로 도시의 80% 이상을 잃었다. 도시에 카펫을 깔 듯 폭탄을 퍼부은 공습은 융단폭격Carpet Bombing이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도시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드레스덴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엘베 강변의 피렌체'라 불리며 아름다움을 뽐내던 드레스덴 건축물 중 상당수는 여전히 크레인 아래에 놓여 있다.

젬퍼오퍼 바로 옆에 자리한 츠빙거 궁전Zwinger Palace 또한 공사 중이다. 츠빙거 궁전은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사용된다. 드레스덴에는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만 무려 12곳에 달한다. 예부터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드레스덴의 단면이다. 츠빙거 국립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은 라파엘로의 '성모상'. 작품 아래의 아기 천사들은 각종 기념품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궁전 입구 공사막이에도 아기 천사가 그려져 있다. 다만 박물관과 미술관을 제대로 즐기려면 월요일은 물론 이른 아침도 피해야 한다. 월요일은 휴무이며 나머지 요일은 오전 10시부터 문을 연다. 화요일, 베를린행 11시7분 기차를 타야 했던 이의 아쉬움이자 충고다.

츠빙거의 남동쪽 문에는 세계 3대 도자기로 손꼽히는 작센주의 전통 공예품인 마이센 자기로 빚은 카리용종이 달려 있다. 두 개의 칼이 교차한 작센주의 전통 문양도 보인다. 이 문을 통과해 좌회전하면 드레스덴 궁전과 대성당이 이어진다. 걸어서 1~2분 거리로 멀지 않은 거리다.

어제, 여행자들로 붐볐던 슈탈호프 성벽으로 접어든다. 거리의 마임 예술가에게 빼앗겼던 어제의 시선을 오늘은 오롯이 벽화에 둔다. 101m에 이르는 거대한 벽화에는 1127년부터 1910년까지 작센주를 통치한 35명의 군주가 행렬한다. 성벽은 그들의 위엄을 대신하듯 높디높다.

군주의 행렬Procession of Princes을 끝까지 따라가 우회전해 5분가량 걸으면 슈트리첼마르크트Striezelmarkt다. 슈트리첼마르크트는 1434년부터 시작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 올해에는 11월26일부터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마켓이 열린다. 이 시기에는 오전 10시경부터 오후 9시경까지 상점들이 문을 열고 크리스마스 빵인 슈트리첼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관련 용품과 음식을 판다. 슈트리첼마르크트에서는 춥고 어두운 겨울도 크리스마스의 로망 속에 몸을 숨긴다.

시즌이 아닐 때는 오후 3~8시경에 상점이 문을 연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은 슈트리첼마르크트를 거닐자니 후회가 밀려든다. 어제 저녁, 2시간의 여유시간을 신시가에서 보내는 게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제품 가게'라는 말에 홀려 무작정 푼즈 몰케레이Pfunds Molkerei로 가는 게 아니었다.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푼즈의 쇼윈도만 허망하게 바라보느니 슈트리첼마르크트의 작은 상점에서 음식과 맥주를 즐기는 게 옳았다.

'교회 전망대에 올라 드레스덴을 한눈에 담았어야 했는데.' 드레스덴 최고의 볼거리인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에서도 아쉬움을 토했다. 일정에 쫓겨 예배당만 보고 떠난 지난 시간이 아쉽다.

강변으로 발길을 옮겨 브륄의 테라스Bruhl's Terrace에 오른다. 아침 햇살 아래의 구시가는 더욱 고색창연하고, 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가 사랑한 '아우구스트 다리 아래쪽 엘베강 우측 제방'은 푸르다. 여행자로 가득했던 어제와는 달리 아침의 거리는 일터로 향하는 분주한 발걸음이 채운다. 옛 건축물 사이를 헤집고 달린 트램이 다리 위를 지나고, 강변도로에는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나름 한적하지만 한편으로 더욱 분주한 드레스덴의 아침. 여행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드레스덴 구시가를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재건을 거듭하며 과거의 모습을 찾고 현재를 이루는 드레스덴의 속살을 엿보기에 좋은 시간이다.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자리. 글자 방향에 따라 위쪽은 동독, 아래쪽은 서독에 해당된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인 '형제의 키스'
동독의 국민차였던 트라반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많은 이들이 이 차를 타고 서독으로 넘어왔다
베를린 장벽

●Berlin

베를린의 과거를 만나다

"한국은 남과 북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동독과 서독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의 거리를 이야기하던 중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입을 다물었다. 답을 몰랐다. 분단국가에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베를린 장벽을 대하는 느낌은 특별하다. 정서적으로 일부 다르지만 또 유사하다.

갑작스런 질문을 던졌던 베를린 장벽 기념관의 가이드는 동독 출신이라고 했다. 20대에 통일을 맞은 그는 장벽을 넘고 싶어도 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다. 180개에 이르는 감시 타워 등 삼엄한 경비는 첫 번째 문제였다. 운 좋게 감시의 눈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어려움이 따랐다. 베를린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상대적으로 낮은 첫 번째 장벽을 넘는 데 성공해도 어른 키의 두 배나 되는 두 번째 장벽이 기다린다. 장벽을 넘으려면 최소 2인 1조로 움직여야 했다. 물리적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중국의 서독 대사관을 거쳐 서독으로 망명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지척의 서독 땅을 두고 지구를 크게 돌아간 셈이다. 장벽을 쉽게 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그는 가족을 말했다. 동독에 남겨져 억압받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한다.

과거, 동독 영토 내에 섬처럼 자리하며 강대국의 이해를 대변하던 도시 베를린. 베를린 장벽이 건재했던 과거로의 여정은 베를린 장벽 기념관이 자리한 노드반호프Nordbahnhof역에서 시작된다. 역사를 빠져나가기 전 발 아래에는 'Sperrmauer 1961-1989'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다. 'Berliner Mauer 1961-1989'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글자의 방향에 따라 윗부분은 동독, 아랫부분은 서독에 해당한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일대에는 장벽이 사라진 자리의 바닥이나 기둥에 이처럼 따로 표시를 해두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여정은 관광안내소 2층에서 영상을 관람하며 시작된다. 10분여 펼쳐지는 베를린 장벽 관련 실제 영상들은, 아프다. 이쪽에서 살아야 했기에, 저쪽으로 가기 위해 죽음을 불사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닮아, 아프다.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 건물이 자리했던 국경의 경계선은 서독으로 넘어가기에 그나마 수월했다. 몇 층 높이의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이들의 모습을 영상은 그대로 전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이들이 날로 늘자 멀쩡한 건물이 철거되고 장벽이 건설된다.

60m에 이르는 베를린 장벽이 그대로 보존된 기념관의 야외 구역으로 나선다. 동베를린 구역, 철통같은 감시 속에 놓였던 공간이 펼쳐진다. 그나마 낮은 첫 번째 장벽에 서서 갈라진 틈 사이로 너머를 바라본다. 단체 견학을 온 독일의 학생들도 갈라진 틈에 눈을 대고 저 너머를 바라본다. 하지만 불행히도 벽 너머로 보이는 건 벽뿐이다. 더 높은 벽뿐이다. 과거, 아마도 운 좋게 첫 번째 장벽에 다가가 두 번째 장벽을 바라본 이가 있었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으리라. 장벽 옆 '기억의 창Window of Remembrance'에는 장벽을 넘으며 목숨을 잃은 130명의 사진을 전시하고 추모한다. 어린아이의 사진 앞에서는 누구나 걸음을 멈칫한다.

계단을 걸어 5층 높이의 전망대에 오른다. 높은 벽으로 양쪽을 막아 놓아 지상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장벽의 일부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관광객들로 붐볐던 저쪽 장벽과는 달리 아무도 없는 장벽. 삼엄한 감시의 눈길 외에 아무것도 없었을 그 옛날과 그대로라 어쩐지 더욱 쓸쓸하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외에 베를린 장벽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있다. 슈프레강과 면한 1.3km의 장벽은 1990년 벽화 가득한 갤러리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서 안타까운 과거를 봤다면 이곳에서는 변화한 현실의 기쁨을 본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는 '형제의 키스.' 옛 소련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동독 공산당 에리히 호네커가 만나 나눈 독재자들의 키스를 해학적으로 그렸다. "게이인지는 잘 모르겠고…" 가이드의 농담에 한바탕 웃는다.

동서로 나뉘었던 베를린의 흔적은 국경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에도 남아 있다. 찰리는 통신 음어인 알파, 브라보, 찰리의 C에 해당하는 찰리. 베를린 장벽과 더불어 냉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곳 검문소는 현재 진짜 미군 대신 가짜 미군이 지킨다. 몇 유로를 내면 여권에 도장도 찍어 주고 기념촬영도 기꺼이 해준다. 체크포인트 찰리 인근의 더 월The Wall 박물관도 볼 만하다. 서베를린 쪽에서 찍은 베를린 장벽의 여러 사진을 합쳐 분단 당시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장벽의 틈 사이로 너머를 바라보는 학생들
베를리너 돔 전망대에서 바라본 슈프레강
박물관 섬의 보데 박물관 외관
베를리너 돔 내부

베를린의 오늘을 즐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도 벌써 26년이 지났다. 장벽에 가려져 각자의 이념에만 충실했던 도시 베를린은 이제 전 세계에서 온 이방인들이 한데 섞여 모여 사는 다국적 도시로 변모했다.통일 후 베를린에 이방인들이 몰려든 가장 큰 이유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도시의 요구 때문이었다. 당시 대거 이주한 터키인들은 도시에 정착해 터키 고유의 문화를 뿌리내리며 베를린의 일부가 됐다. 케밥과 같은 이국의 음식도 이제 베를린에서는 자연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됐다. 저렴한 등록금의 학교에는 다국적 학생들이 모여들고, 젊은이들이 모인 도시는 활기에 넘친다. 세계적인 수준의 펍과 클럽도 베를린에서 찾을 수 있다. 주말에 베를린을 찾는다면 24시간 운영되는 U반지하철을 타고 클러빙에 나서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베를린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쪽과 저쪽의 구분이 없어지며 이쪽과 저쪽의 모습을 동시에 품은 베를린은 즐길거리와 볼거리의 천국이 됐다. 슈프레섬Spreeinsel의 북쪽 끝을 지칭하는 '뮤제움스인젤Museumsinsel'은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에게 효과적이다. 얼마나 많은 박물관이 있으면 '박물관 섬'이라는 뜻의 뮤제움스인젤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인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을 비롯해 5개의 대형 박물관이 섬 안에 자리한다. 모든 박물관이 워낙 큰 규모라 정보를 미리 확인한 후 관심 있는 곳을 찾는 게 현명하다.

섬에 자리한 베를린 대성당, 베를리너 돔Berliner Dom은 화려하고 웅장하다. 2차 대전 당시 폭격을 받아 바뀐 모습이라니 원래 모습은 감히 상상하기가 힘들다. 성당의 1층은 예배당이다. 고개를 젖혀 화려한 모자이크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치장한 창을 감상한다.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을 지체하진 말 일이다. 성당의 꼭대기 전망대에 보석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야외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꼭대기로 갈수록 좁아진다. 빙글빙글 좁은 계단을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오른다. 다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어지는 작은 문들. '야외 전망대가 있긴 할까?' 의심이 들 무렵 밖으로 향하는 문이 나온다. 그리고 "아!" 두 갈래로 갈라진 슈프레 강에 놓인 박물관 섬이 한눈에 펼쳐진다. 강물 위로는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니고, 강 너머로는 시청과 성 니콜라스 교회, 티브이 타워 등 이름 있는 건물과 이름 없는 건물이 한데 섞여 이어진다. 베를린 최고의 전망대라 불리는 티브이 타워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티브이 타워를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는 베를린 대성당이 틀림없다. 전망대를 둥글게 돌며 베를린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베를린 대성당은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에게도 자비를 베풀며 베를린의 많은 풍경을 보여 준다. 자비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성당 바로 앞에는 베를린 시민들은 물론 여행자들이 한숨 돌려 쉬어갈 수 있는 루스트가르텐Lustgarten이 자리했다. 환한 햇살과 푸른 잔디. 베를린의 오늘은 이처럼 평화롭다.

▶travel info

AIRLINE루프트한자가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뮌헨 구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드레스덴이나 베를린은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에서 국내선을 이용하면 된다. 루프트한자는 기내 습도와 방음에 특히 신경을 써 비행기를 제작한다. 덕분에 긴 비행에도 피로도가 낮아 여행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 이코노미가 조금 힘들다면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을 선택하자. 합리적인 가격으로 조금 더 넓고 쾌적한 좌석을 얻을 수 있다. 전 세계를 잇는 모든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가 동일한 것도 루프트한자의 자랑이다. www.lufthansa.com

▶드레스덴

ATTRACTION필니츠 궁전Pillnitz Palace강건왕 아우구스트가 자신의 부인을 위해 지은 여름 별궁이다. 드레스덴 근교의 엘베 강변에 자리해 로맨틱한 풍경을 연출한다. 궁전과 강, 정원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으로 강변에 붙어 자리한 궁전은 물의 궁전, 정원 쪽에 자리한 궁전은 산의 궁전이라 불린다.필니츠 궁전에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브륄의 테라스 앞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 증기선인 유람선을 타고 강변 풍경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시간이 없는 여행자들은 드레스덴 여정에서 필니츠는 빼는 게 낫다.www.schlosspillnitz.de

▶베를린

HOTEL마리팀Maritim독일 외에 모리셔스, 이집트, 터키, 몰타, 스페인, 중국 등 해외 6개국에 호텔을 보유한 호텔 그룹. 독일 내에 36개의 호텔이 자리하며 드레스덴과 베를린에도 지점이 있다. 드레스덴은 넓은 객실, 베를린은 아담하고 깨끗한 객실이 좋다. 두 호텔 모두 대형 컨벤션 센터를 보유했다.www.maritim.de

SHOPPING파스벤더 & 라우쉬Fassbender & Rausch세계에서 가장 큰 초콜릿 가게. 명성답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1층의 초콜릿 판매장에서는 티브이 타워, 소니센터 등 베를린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초콜릿으로 만들어 전시한다. 2층에는 초콜릿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3층에는 치과, 4층에는 다이어트 상담소가 있다나.www.fassbender-rausch.de

몰 오브 베를린Mall of Berlin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신도시의 심장부로 부상한 포츠다머 플라츠에 자리한 쇼핑센터. 베를린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로 300개 이상의 숍을 보유했다. 자라, H&M 등 유럽의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매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꼭대기 층에 해당하는 2층에는 다양한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www.mallofberlin.de

하케쉐 마르크트Hackescher Markt에스반역 인근에 자리한 쇼핑 구역이다. 야외에 테이블을 마련해 놓은 레스토랑은 물론 독일 로컬 브랜드의 편집 숍들이 몰려 있다.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자리한 하케쉐 호프는 8개의 뜰로 이어진 공간. 호프와 호프는 이어져 있어 산책 겸 쇼핑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대형 쇼핑센터에서 구하기 힘든 독특한 아이템이 많지만 가격은 전반적으로 비싸다.www.hackeschermarktberlin.de

RESTAURANT코놉케스 임비스Konnopke's Imbiß에버스발더 스트라세역 인근에 자리한 커리부어스트 전문점. 굽거나 튀긴 소시지를 케첩에 버무려 커리 가루를 뿌려 먹는 커리부어스트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요리다. 커리36과 같은 체인점도 유명하지만 베를린 사람들이 꼽는 일등 맛집은 바로 이곳. 커리부어스트에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세트 메뉴가 3.5유로로 매우 저렴하다.www.konnopke-imbiss.de

카페 암 노이엔 지Cafe am Neuen See도심 속 거대 정원인 티어가르텐 내 노이엔 지 호수 옆에 자리한 카페이자 레스토랑. 호수가 바라보이는 야외는 물론 실내에 좌석이 마련돼 있다. 저녁시간에 실내 좌석을 원한다면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다. 촛불 모양의 조명을 밝힌 은은한 분위기가 좋다. 샐러드와 스테이크 등 메뉴가 다양하며 5~6종류의 생맥주를 선보인다. www.cafeamneuensee.de

BAR몽키 바Monkey Bar베를린 동물원 인근에 자리한 바.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바 중 하나로 명성이 높다. 남녀노소는 물론 개까지 바를 드나들 정도로 출입에 제한은 없다. 실내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 좁은 테이블이나 계단 등에 앉아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500CC 생맥주가 5유로가량으로 저렴하다.www.25hours-hotels.com/en/bikini/restaurant/monkey-bar.html

뉴튼Newton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바이자 레스토랑 중 하나. 낮에는 한가하지만 늦은 저녁 시간에는 예약 없이 입장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패션 사진의 거장이자 베를린 출신 사진작가인 헬무트 뉴튼의 작품을 모티브로 했으며, 그의 작품인 하이힐 신은 나체 여성들이 한쪽 벽면을 장식한다.www.newton-bar.de

장벽 기념관. 갈라진 장벽 틈 사이로 또 다른 장벽이 막아선다

에디터 김기남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취재협조 독일관광청 www.germany.travel/kr, 루프트한자독일항공 www.lufthan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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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이 도착했다. 새로이 위성빌딩을 개장한 뮌헨공항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의 초대장이자 새로운 유럽의 허브공항을 향한 출사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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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오픈한 위성빌딩에서 바라본 뮌헨공항 터미널2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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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다 질로 승부한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떴다. 눈앞은 트렁크를 든 승객들로 북적였다. 허둥지둥 일어나며 시계를 보니 오전 5시.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일찍 공항에 사람들이 들이닥칠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4년 전 바로 이곳 뮌헨공항 터미널에서 벌어졌던 소위 ‘공항노숙’의 추억이다. 

지난 4월22일 바로 그 추억의 현장에서 각국에서 온 게스트들과 함께 뮌헨공항의 확장을 축하하고 돌아왔다. 4년 전 ‘노숙’ 당시에 내 집 거실인 양 돌아다니며 여유를 부렸던 청사 곳곳에는 그 사이 이국적인 레스토랑,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예나 지금이나 뮌헨공항은 24시간 잠들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날 웰컴 디너를 통해 얼굴을 익힌 각국 기자들과 합류해 터미널 2의 주요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뮌헨공항은 최근 유럽 지역 최초로 5성급 공항으로 선정되었다. 이제까지는 인천공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상위권 공항들만이 갖고 있던 타이틀로 최고 공항클럽에 처음으로 진입한 것이다.뮌헨공항 터미널 2 위성빌딩 개항식에 참석한 루프트한자 그룹 최고경영자 카르스텐 슈포어Carsten Spohr는 “위성빌딩은 승객들의 편리한 탑승 및 하차를 위해 탑승동을 2배 확장했다.

또 야외 루프 테라스를 갖춘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를 비롯, 4,000m2 규모의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꾸며진 5개의 라운지를 보유하고 있다. 루프트한자 그룹은 뮌헨공항과의 성공적인 운영을 토대로 고객에게 고품격 여행 경험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뮌헨공항 해외미디어 담당자인 코린나Corinna도 아직 뮌헨공항은 갈 길이 멀고 도전할 목표가 있다며 규모나 화려함보다는 세련된 공항 운영과 승객들이 체감하는 편리한 서비스로 승부한다는 전략을 강조했다. 효율적인 동선, 긴 줄이 생기지 않고 시끄러운 방송을 하지 않는 공항 등이 그 예라고. 

그런 관점에서 인상적인 서비스는 단연 인포게이트Info Gate였다. 안내 데스크를 찾아갈 필요 없이 공항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인포게이트 단말기 앞에 서면 화면에 실물 크기의 안내자가 등장해 친절하게 대응해 주는 것. 마치 실제로 사람이 화면 너머에서 알려주는 느낌의 감성적인 서비스이기도 했다. 바로 이게 코린나가 강조했던 세련된 뮌헨공항식 서비스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어디나 국적기가 그 나라의 메인 공항을 허브로 쓰긴 하지만, 유독 뮌헨공항은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의 왕국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절정은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의 일등석 승객들에게 별도의 게이트에서 보딩·검색 수속을 해주는 원스톱 체크인 서비스였다. 뮌헨공항의 터미널 2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뮌헨공항과 루프트한자 그룹이 6대4로 지분을 투자한 공항시설이다. 공항과 항공사가 협업을 하다 보니 보다 효율적으로 통합된 서비스가 늘어나는 효과가 생길 수밖에. 

뮌헨공항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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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공항센터에서 벌어지는 여름행사 ‘파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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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분위기의 여객터미널 청사

공항 어디에서든 편리한 인포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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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국제공항 터미널 2 위성빌딩 오픈

루프트한자 그룹은 지난 4월26일 독일 뮌헨공항 터미널 2 위성빌딩을 공식적으로 오픈했다. 이로써 터미널 2는 기존 1,100만명에 그쳤던 승객 수용량을 3,600만명까지 확대 수용할 수 있게 됐다. 마일즈 & 모어Miles & More 등급 회원의 경우 총 4,000m²에 달하는 다섯 개의 라운지에서 편안하게 항공기 탑승을 기다릴 수 있다. 또한 기존 관제탑 주변에 위치한 뮌헨 로컬 스타일의 ‘마켓 플레이스’에서 다양한 상점과 레스토방, 바, 카페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을 위한 유아 놀이방 및 업무를 위한 공간, 그리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승객들을 위한 사일런트룸과 샤워실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완비했다.  www.munich-airport.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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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터미널, 성대한 오프닝 팡파레 

드디어 자동화 된 에너지 절약형 셔틀열차를 타고 1분 만에 새로 오픈한 위성빌딩으로 이동했다. 게스트로 초대되어 이 시설을 최초로 이용하는 특권을 누리는 순간이었다. 위성빌딩의 외관에 대한 첫인상은 지극히 평범했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설명을 듣고 보니 채광이나 동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첨단건물이었다.

태양열은 차단하면서도 빛은 들어오게 하는 유리 신소재를 사용한 온도 최적화 파사드climate-optimized facade를 사용해 뮌헨 공항 내 타 터미널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 감소시켰다고. 화려한 외관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진면목을 발휘하는 부분이 지극히 독일다웠다. 자연광이 내려오는 중심구역에는 중앙상점가의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는데, 뮌헨 중심가의 대표적 노천시장인 빅투알리엔 마켓Viktualien Market을 테마로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새 터미널에 마련된 메인 행사장에서는 연방장관, 뮌헨 시장 등의 VIP와 공항 및 항공사 CEO 등이 참석한 오프닝쇼가 진행됐다. 초청인원이 1,900명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행사였다. 문득 일개 터미널 증축에 이렇게 거창한 행사를 여는 배경이 궁금해지던 찰나, 한 패널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유럽이 강한 것은 독일이 강해서고, 독일이 강한 것은 바이에른이 강해서’라고. 이 말이 이번 행사의 성격에 어떤 실마리처럼 다가왔다. 현재 유럽의 대표적인 허브 공항인 프랑크푸르트공항이 포화상태이기에 뮌헨공항이 제2의 허브로 키워지고 있다지만, 한편으로는 자부심 강한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역의 야심이 뮌헨공항의 급부상을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새로운 위성빌딩 완공은 뮌헨공항 확장계획의 두 가지 실행 과제 중 첫 번째였고, 그 다음은 제3 활주로 개통이다. 

어쨌든 뮌헨공항의 허브화는 여행객들에게 호재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일 남부의 아름다운 여행지들이 손짓하고 있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갓 구입한 루프트한자 독일항공 모형 비행기를 만지작거리며 다음번 뮌헨공항으로의 비행을 꿈꾸고 있었다.

뮌헨의 대표적 노천시장 빅투알리엔 마켓을 모티브로 한 중앙상점가

개막식 무대에 오른 루프트한자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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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공항 미디어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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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공항이 좋은 3가지 이유 

1. 마을 광장 같은 공항 보통 공항의 가장 웅장한 구조물은 승객들이 들어서는 정문에 배치하게 마련이지만 이곳은 다르다. 뮌헨공항에서 가장 웅장한 모습은 터미널 1과 2 사이에 위치한 뮌헨공항센터Munich Airport Centre, MAC에서 볼 수 있다. 공항이라기보다 하나의 마을 광장 같다. 공항의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예다. 여행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 크리스마스 가든, 서핑 대회 등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오픈 스테이지로 주위에는 각종 쇼핑가와 비즈니스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공항 수입의 약 절반(49%)이 항공과 관계없는 부문에서 발생한다고. 지역 주민을 행복하게 하는 공항이라면 승객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2. 노숙마저 편한 공항 뮌헨공항은 규모로 승부하기보다는 공항의 매끄러운 운영을 통해 승객을 감동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서비스들이 그런 사실을 실감하게 해준다. 무료 Wi-Fi 및 인터넷 단말기, 커피 & 신문, 30분 내 환승, 플로리다 야자수 등 다양한 볼거리, VIP 프로그램, 인포게이트Info Gate, 환승객 전용 수면실인 냅캡Napcabs, 가족 친화적 환경, 스톱오버 서비스, 24시간 운영. 심지어, 세계에서 노숙하기 좋은 공항 베스트에도 올라 있다. 

3. 중동부 유럽 여행의 관문뮌헨공항은 독일 남부를, 크게 보면 잘츠부르크 등의 중동부 유럽 여행을 위한 거점으로 삼기에 충분할 만큼 훌륭한 조건을 갖추었다. 주변 반경 200km 안팎에 멋진 곳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공항버스, 철도가 잘 연결되어 있고, 특히 공항과 아우토반(A9)이 바로 연결되어 있어 공항 인근의 다양한 등급의 호텔에서 숙박 후 렌터카를 이용하면 어디든 쉽고 빠르게 여행할 수 있다.   

1 유명한 옥토버페스트 기간 중 뮌헨공항센터는 비어가든으로 탈바꿈한다 2 비치발리볼 경기가 열리는 뮌헨공항센터 3 환승객을 위한 수면 휴게실, 냅캡 4 24시간 잠들지 않는 뮌헨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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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대표하는 루프트한자Lufthansa

루프트한자는 독일의 국적 항공사로 세계 최대 민간 항공사 중 하나다. 높은 신뢰성과 서비스로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스타얼라이언스 멤버사로서 넓은 네트워크와 스위스에어, 오스트리안에어, 에어베를린 등의 많은 계열항공사를 활용해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와 뮌헨을 허브 공항으로 운영 중이며 특히, 제2의 허브로 삼은 뮌헨공항에는 퍼스트클래스First-class, 세네이터Senator, 비즈니스라운지Business lounge 등 다양한 등급의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www.lufthansa.com 

막강 동맹체 스타얼라이언스Star Alliance

1997년 전무후무한 집단이 탄생했다. 세계 최초의 항공사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가 탄생한 순간이다. 독일의 루프트한자가 주축이 되어 만든 이 그룹에는 현재 우리나라의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28개 항공사가 회원사로 가입해 있으며 192개국 1,330개 취항지의 루트를 공유하는 명실공이 세계 최대 규모의 동맹체다. 현재 뮌헨공항에는 18개 회원사가 53개국 147개 취항지로 연결하는 항공편을 서비스하고 있다.  www.staralliance.com 

뮌헨으로 통하는 독일 남부의 여행지
뮌헨시Munich City는 바이에른주의 주도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며 BMW벨트BMW Welt, 도이치 뮤지엄 등이 있는 도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Neuschwanstein Castle은 디즈니랜드의 매직 캐슬의 모델로 유명하다. 베르히테스가덴 국립공원Berchtesgaden National Park은 히틀러의 별장으로 알려진 이글스 네스트Eagle’s Nest로 유명하며 높은 고도의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아름답다. 추크슈피체Zugspitze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 걸친 남부 알프스 지대의 독일 쪽 봉우리로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 3,000m의 정상에는 파노라마로 펼쳐진 경치를 볼 수 있으며,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아이제 호수 등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이 밖에도 뮌헨공항을 통하면 밤베르크Bamberg,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들과 킴 호수Lake Chiemsee, 쾨니히 호수Lake Konigssee 등을 방문할 수 있다.

글·사진 Travie writer 유호상  에디터 천소현  자료제공 루프트한자 독일항공 www.lufthan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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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아바 섹시arm, aber sexy,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베를린을 말하는 가장 유명한 수식이다. 하지만 틀렸다. 베를린은 섹시하지만 가난하지 않다. 베를린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그 어느 도시에서보다 몸과 마음이 풍요로웠다. 파리가 예쁘고, 뉴욕은 뜨거웠으며, 방콕이 편안했다면, 베를린은 멋진데다 정겹다. 이제 나는 베를린을 가장 편애한다. 이 세상 최고의 도시라고.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뉴욕이나 파리의 그래피티보다 다양하고 거대하다. 통독 후 어둡고 칙칙했던 베를린의 분위기는 거친 그래피티와 어우러지며 도시의 독특한 이미지를 탄생시켰다

●Berlin베를린 이 세상 최고의 도시

“내게 베를린은 이 세상 최고의 도시야.” 지난 3월, 뒤셀도르프에 사는 일본인 친구 유미가 말했다. 내가 베를린에 가게 됐다고. 베를린 어때?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답했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독일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독일에 살지만 남편과는 독일어도 영어도 아닌 일본어를 쓰며 산다. 자연히 그녀의 영어나 독어는 신통치 않은데 독일에 사는 게 마냥 좋다고 한다. 그러나저러나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베를린이 최고라고? 베를린에 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알아? 처음 유미 얘기를 들었을 때는 과장이 좀 심하네, 하고 건성으로 들어 넘겼었다. 

4월이 되었고, 베를린에서 열흘을 지낸 내게 이번에는 유미가 물었다. “베를린 어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당신 말이 맞았어. 내게도 베를린은 이 세상 최고의 도시야.”

베를린에서 단지 아홉 밤을 잤을 뿐이다. 겨우 아홉 밤 만에 나는 베를린을 이 세상 최고의 도시로 여기게 되었다.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들어 넘길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의아하다. 베를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나는 베를린에서 행복했다고. 사실 난 ‘행복’ 운운하는 말을 거의 쓰지 않기에 베를린에서 행복하다고 느낀 건 ‘별일’이다.

그렇다고 베를린에서 무슨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베를린 이곳저곳을 열심히 걸어 다녔을 뿐이다. 단, 관광지는 피했다. 관광객이 아닌 베를린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보고 싶었던 나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도, 샤를로텐부르크 성Schloss Charlottenburg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란 368m 높이의 베를린 TV 타워도 안 갔다. 그저 거리를 걷기만 했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독일어 한마디 하지 못하지만 잘 돌아다녔고,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외롭지 않았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빌린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역의 4층 아파트에 짐을 풀고 계단을 걸어 내려와 그래페Graefe 거리로 들어서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잠시 애를 써야 할 정도였다. 서울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어떤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거친 듯 순진한 거리의 공기가 나를 마구 찔러댄 탓이다. 나는 바로 알아챘다. 바로 그곳에 베를린이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상상해 온 베를린을 단박에 보고 말았다. 그건 바로 날것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자유였다. 의식보다 몸이 먼저 자유를 알아채더라.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베를린에 왔다.

나는 왜 베를린에 반했을까? 처음 베를린 거리를 걷는데 늘 이곳을 걸어 다닌 것만 같았다. 독일의 낯선 대도시가 아니라 우리 동네를 거니는 것처럼 편안했다. 약국 화장품 질이 좋다는 말을 듣고 얼굴에 바를 로션 하나를 사려 해도 글자를 읽을 수 없어 독어사전을 찾아야 했으나 그조차 불편한 줄 몰랐다. 길을 전혀 모르지만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9.99유로짜리 유심 칩을 스마트폰에 끼워 주니 구글맵으로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는 일은 매우 쉬웠다. 영어를 잘하거나 독일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훨씬 더 즐겁게, 편하게 지냈을 것 같다.   

베를린 사람들은 부드럽고 친절했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거리에서 지도를 펼쳐 들자마자 할아버지가 다가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이런 일은 그 후에도 또 있었다. 누군가 베를린은 서울보다 1.5배 크다고 했다. 정말?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걸어 다닌 베를린은 메트로폴리탄이 아니라 작은 빌리지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나무 위 새소리를 들었다. 베를린 한복판의 티어가르텐 공원은 공원이 아니라 숲 같았다. 그만큼 베를린의 녹음은 넓고 짙다. 

한 번은 베를린 시내 중심가를 걷는데 스물 다섯쯤 되어 보이는 백인 남자가 묻는다. 

“저 알렉산더 플랏츠로 가는 길인데 어느 쪽인지 아세요?”

최소한 그에게 나는 베를린의 외국인이 아니라 베를린 주민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베를린은 코스모폴리탄 시티다. 중국, 터키, 베트남, 캐나다, 스위스, 이스라엘, 폴란드, 스페인, 타지키스탄, 러시아, 일본 이민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페루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산다. 자연히 각양각색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면 매혹적인 공기를 풀풀 뿜어낸다. 

2014년 퇴임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 시장은 게이였다. 2001년 마흔 여덟의 나이에 시장으로 당선된 후 2014년 예순 하나가 될 때까지 13년 동안 베를린 최장기 시장을 역임했다. 그는 선거 과정 중 TV 토론에서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이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베를린 시민들은 보베라이트 시장을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그는 ‘게이 또는 성적 소수자LGBT의 아이콘’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총리로 재직 중인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의 대항마로 거론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2014년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를린의 인구 구성은 특별합니다. 인간적 도시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바로 시민들의 포용적 태도입니다. 베를린은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베를린에는 현재 3,500명 정도의 성소수자 난민이 있다고 한다. 복잡한 난민 문제 속에서도 성소수자를 위한 보호시설을 만들고,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민자, 난민의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곳이 바로 베를린이다. 

2013년 베를린시 통계에 따르면 전체 베를린 인구의 10% 이상은 문화예술계 종사자이고 이들이 베를린 경제생산의 21%를 담당한다. 베를린시는 외국 예술가들에게 무상 의료보험 혜택을 주었다. 도시에도 DNA라는 게 있다면 베를린의 DNA는 문화고 예술이다. 이 세상에 도시의 키워드가 ‘섹시’인 도시가 베를린 말고 또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섹시는 각양각색의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다. 그렇다고 예술의 도시, 이런 식의 수사는 너무 식상하다. 베를린은 좀 더 특별한 이름을 가져야 한다. 베를린은 아직 그 이름을 찾지 못했다. 베를린은 전에 없던 ‘새로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베를린을 ‘1980년대의 뉴욕’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베를린이 특별하다고 인정하지만 결국 뉴욕의 하위인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뉴욕과 베를린은 다르다. 베를린에서 고작 열흘을 지냈을 뿐인 나는 아직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뭐가 다른지 알고 싶어 나는 다시 베를린에 가고 싶다. 

베를린은 서울보다 크지만 거리 곳곳의 녹음이 짙다

가운데 보이는 직선은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자리를 의미한다

통독, 구동독, 베를린 장벽의 정치적인 이슈들은 이제 베를린 관광산업의 중요한 모티브다

베를린 남쪽,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한 카페

베를린 야경 속의 TV 타워는 유럽에서 가장 높다

●Tempelhhofer Feld 템펠호프 공항 공원으로 변한 공항

활주로는 비행기가 뜨거나 내릴 때 달리는 길이다. 오늘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두 발로 활주로 앞에 섰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활주로 바닥의 부호가 거대하다. 비행기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활주로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활주로의 끝이 저 멀리 보이긴 했지만 한참을 걸어도 그 끝에 도착하지 못했다.

사방이 탁 트인 활주로 주변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걸었다 해도 대략 2km를 걷는데 30~40분 정도 걸렸으니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 길의 주인이 사람 아닌 비행기라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 이곳의 주인은 비행기가 아니다. 공항이 공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템펠호프 공항Tempelhhofer Feld, 베를린 남쪽에 있는 공항이다.

1923년 문을 열었다가 2008년 문을 닫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템펠호프 공항은 베를린을 방어하는 독일 공군기지였으며 전후에는 소련에 맞서는 서방세계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동서독 분단 후 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했을 때는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서베를린 시민들의 식량과 연료를 실어 나른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한마디로 냉전 시절, 템펠호프 공항은 서베를린 시민들의 생명줄이었다. 

공항이 문을 열고 8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공항의 효용성이 점점 떨어지자 공항은 결국 문을 닫았고, 베를린시 당국은 공항 부지에 4,700호 규모의 주택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점차 심각해지는 베를린의 주택난을 조금이라도 풀겠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베를린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사람들은, 베를린이 예전 같지 않다는 푸념 섞인 말을 쏟아내던 상황이었다.

주택단지 건설은 베를린시에 꼭 필요한 정책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 템펠호프 공항 면적은 어마어마하다. 뉴욕 센트럴파크와 비슷하고, 여의도공원의 16배에 달할 정도다. 개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베를린이란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시의 야심찬 계획에 즉각 제동을 건 건 다름 아닌 베를린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공항의 주택단지화 대신 ‘공원화’를 요구했고 결국 시민 찬반투표에 의해 공항의 공원화가 결정되었다. 

베를린에 온 관광객이 빼먹지 않고 찾는 곳 중 하나는 아마 브란덴부르크 문일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베를린에서 꼭 방문해야 할 곳은 브란덴부르크 문이 아니라 바로 템펠호프 공항이다. 베를린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공원이라곤 하지만 본래 공항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거의 ‘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주로가 놀이동산처럼 바뀌었지만 그게 전부다. 활주로를 따라 산책이나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연을 날린다. 베를린에서 제일 큰 공원이다. 템펠호프 공항이 공원으로 바뀌기 전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했던 공원인 티어가르텐Tiergarten보다 더 크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공원이지만 그 안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특별하다. 한때 어느 건축가는 베를린 지형이 평지인 점을 고려해 이곳에 1,000m 높이의 산을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이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 

지금은 봄이지만 눈 내리는 겨울날, 활주로를 따라 산책하는 공상을 펼쳐 본다. 흩날리는 눈발에 시선이 가리면 여기가 어디인가 싶을 것 같다. 여기는 바로 템펠호프 공항, 텅 비어 있어 넉넉한 그곳에 나를 내려놓을 자리는 충분하다. 

템펠호프 공항 Tempelhofer Damm 1-7, 12107 Berlinthf-berlin.de

공원으로 변한 공항 활주로에서 사람들은 연을 날린다

공항 활주로에서 자전거를 타며 봄날을 즐기는 사람들

공항 활주로는 광활한 조깅 코스로 변했다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에디터 천소현 기자

독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연방의회의 모습 
여행의 즐거움 travelbible.tistory.com 

●Reichstag 라이히 슈타크 여행의 영감을 받으세요 travelbible.tistory.com    
연방의회, 유리돔에 눕다여행의 영감을 받으세요 travelbible.tistory.com 

라이히 슈타크Reichstag, 독일연방의회 건물은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이자 독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지난 45년간 동서로 분단되어 있던 동서독은 1990년 10월3일 새벽 0시를 기해 통일을 이루고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10월4일 오후 첫 통독의회가 소집되어 통일 독일의 첫 모습을 전 세계에 선보인 곳이 바로 여기다. 

라이히 슈타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군과 나치에 의해 훼손됐다. 1961년에서 71년 사이에 단순한 형태로 재건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돔은 복원하지 않았다. 동서독 분단 후에는 베를린 장벽이 의사당 건물 옆을 지나며 폐허처럼 방치되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 후인 1999년 이후 독일의회는 이 건물을 다시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1994년에서 1999년 사이,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에 의해 라이히 슈타크는 현대적인 의사당으로 재단장되었다. 대대적인 보수 작업 후 가장 큰 변화는 유리돔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때 유리돔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결국 유리돔은 베를린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라이히 슈타크의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건물의 꼭대기에 다다른다. 발밑으론 대회의장을 볼 수 있다.

유리돔 한가운데에는 둥근 의자가 있다. 그곳에 드러누워 한참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장의 둥근 통창 너머로 흰 구름이 서서히 흘러갔다.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있는 이곳이 독일연방의회 의사당이라니,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의사당 건물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시민들이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의사당의 유리돔. 독일은 의사당 건물을 통해 스스로를 ‘시민사회’라고 선언하는 것만 같다. 부럽다. 

유리돔은 사전에 등록한 방문객만 입장할 수 있다. 사전 방문 신청이 필수란 얘기다. 의사당 측에선 최소한 방문 2일 전에 등록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나 내 경우에는 운이 좋았던 건지 3시간 전에 인터넷www.bundestag.de으로 간단히 등록하고 입장할 수 있었다. 무작정 의사당 앞으로 가 줄을 서고 등록 후에 입장할 수도 있으나 장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유리돔은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개방한다. 밤 10시가 마지막 입장 시간이다.

라이히 슈타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다. 1995년 예술가 크리스토와 쟝 끌로드Christo and Jeanne-Claude 부부는 연방 의회 건물 전체를 하얀 천으로 모조리 싸 버렸다. 1985년 파리의 퐁네프다리를 하얀 천으로 싸 버린 것처럼 연방의회는 하얗게 포장되어 버렸다. 두 사람으로선 20년 넘게 청원하며 추진해 온 프로젝트였고, 독일의회는 10여 년간의 논쟁 끝에 결국 의사당 건물을 두 예술가에게 내주었다. 결국 하얀 천으로 감긴 연방의회 건물을 보기 위해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1월30일,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을 듣는다. 1월30일은 1933년,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가 수상으로 취임한 날이다. 

라이히 슈타크Platz der Republik 1, 11011 Berlin bundestag.de

나선형 계단을 따라 연방의회 꼭대기 유리돔에 오를 수 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2,711개의 석비로 이루어졌다

●Holocaust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석비로 만든 검은 숲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은 베를린 한복판, 브란덴부르크 인근에 있는 2,711개의 기념비다. 1만9,000m2,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건 접근할 수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만들었다. 석비로 만든 검은 숲 같다. 수많은 석비들 사이 내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바닥은 수평이 아니고 기울어 있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석비 높이는 점점 높아져 간다. 마치 어디론가 빠져 드는 것만 같다. 물결처럼 흐르는 추모비들 아래 지하에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직선거리로 800m 지점에 바로 나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 본부가 있었다. 게슈타포 본부는 현재 나치 시절의 기록을 전시하는 역사박물관Topography of Terror으로 쓰인다. 2013년 1월30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히틀러 집권 80주년을 맞아 베를린 소재 게슈타포 옛 본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치의 부상은 독일 엘리트와 사회 전체가 지지했거나 최소한 묵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히틀러는 독일인들에게 영원한 악몽이다.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독일인 자신이 히틀러의 공범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Cora-Berliner-Straße, 10117 Berlin stiftung-denkmal.de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카페바에서 바라본 거리

베를린 중심가인 미테 지역의 카페 더반의 카페라테와 샌드위치 메뉴

카페바 안쪽에 숨어 있는 공간

베를린 사람들에게 카페는 마치 자기 집의 거실 같다

●Cafe in Berlin   
베를린 사람들의 거실, 카페 여행의 즐거움 travelbible.tistory.com 여행의 영감을 받으세요 travelbible.tistory.com 

베를린에는 근사한 카페가 정말 많다. 프랜차이즈는 찾아보기 힘들다. 스타벅스도 채 스무 개가 안 된다. 반면 서울의 스타벅스 매장 수는 300개에 가깝다.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많다. 도대체 서울에는 왜 이렇게 스타벅스가 많을까? 

베를린에서 가장 좋았던 일 중 하나는 언제 어디서든 근사한 카페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커피 값이 싸다. 스타벅스의 절반 또는 1/3 정도 가격이다. 카페를 가는 일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때로는 카페 하나가 한 도시를 말해 준다. 내게는 그렇다.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그래페Graefe 거리의 카페 ‘카페바Kaffe Bar’ 같은 곳이다. 나는 이곳에 완전히 매혹되고 말았다. 커피는 물론 아침으로 먹은 키시Quiche도 맛있었다. 이제껏 먹어 본 키시 중 최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입 안에서 살살 녹을 만큼 부드럽고 담백하다. 드나드는 사람들도, 서빙 하는 친구들도 모두 멋지다. 음악도 좋다.

하루 종일 여기서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바에 앉아 키시를 먹으며 사람 구경을 하느라 자꾸 주변과 창밖을 힐끔거린다. 이른 아침, 바깥 테이블에는 갓난아기를 데리고 온 두 남자가 있다. 옆자리 여자는 펜으로 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커피와 키시를 먹고 단돈 5.5유로를 냈다. 깜짝 놀랐다. 가난하지만 세련된 이들이 많이 사는 베를린이기에 가능한 맛이고 가격이다. 나는 문득 카페바가 베를린 같다.

‘카페클라치Kaffeeklatsch’.
베를린 사람들의 성향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다. ‘카페클라치’는 원래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눈다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카페를 자기 거실처럼 쓰는 독일 사람들의 스타일을 설명하는 말이다. 돈은 없어도 카페에는 가야 하는 이들이 바로 베를리너들이다. 

카페바에서는 카푸치노가 2.5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참 싸다고 생각하며 마셨는데 베를린을 떠나기 전날 알았다. 베를린에는 아직도 1.5유로에 카푸치노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는 걸. 우연히 만난 독일 친구, 페트라 덕분이다. 관광객은 없고 현지인들만 가는 곳, 그녀가 데려가지 않았으면 나도 찾아가기 힘들었을 곳. 베를린에 숨어 있는 작은 보석 같은 곳이었다. 

아담한 현대미술관인 미 컬렉터스 룸 베를린Me Collectors Roo홀로m Berlin의 카페도 아주 근사하다. 두툼한 적색 냅킨과 함께 두 가지 코스로 나오는 런치 메뉴는 11유로, 믹스샐러드는 5유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서울에선 이런 느낌의 카페에서 이 정도 가격에,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  

아르코나 플랏츠 벼룩시장. 나는 여기서 오른쪽 하단에 있는 배 모양 타이머를 하나 샀다

●Flea Market   
에그 스탠드를 사다

“아르코나 플랏츠Arkona platz 벼룩시장은 작고 물건은 좀 비싸. 하지만 좋은 물건을 팔아.”

이번에도 유미가 벼룩시장 쇼핑의 가이드라인을 귀띔해 준다.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벼룩시장은 마우와Mauerpark 벼룩시장이다. 베를린에서 벼룩시장을 찾는 거의 모든 관광객이 일요일에 마우와 공원으로 간다. ‘마우와Mauer’는 ‘벽’이란 의미다. 공원 바로 옆에 베를린 장벽이 서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도 여전히 장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유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마우와 벼룩시장은 크고 온갖 물건을 팔았지만 정작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넉넉한 게 아니라면 마우와 벼룩시장은 권하고 싶지 않다. 반면 마우와 벼룩시장에서 걸어서 7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르코나 벼룩시장 분위기는 달랐다. 아르코나 벼룩시장에서 70년대 덴마크산 에그 스탠드, 서양배 모양의 타이머 그리고 동독 시절의 머그잔 두 개와 계산기를 샀다. ‘Made in DDR독일민주공화국’ 문구가 선명하다. 내게 에그 스탠드를 판 이는 1960년대 히피 세대로, 당시 유행이던 유럽-아시아 구간을 육로로 여행했다는 할머니, 카티아Katia였다.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에디터 천소현 기자

"홍수가 나던 날, 어느 동물원에서는 다른 동물들은 피신시키면서 하마는 헤엄을 칠 수 있으니까, 하고 그냥 두었다. 그 동물원의 하마는 다 물에 빠져 죽었다. 하마는 물속에서 땅길을 찾지, 물길을 찾지는 않는다. 땅길을 찾지 못한 하마는 죽는다."

연희동 작가집필실에 있을 때, 그곳 도서관에서 시인 허수경의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읽었다. 그녀가 독일의 뮌스터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지냈던 일상을 담담히 기록한 에세이였다. 지하에 있어 늘 어두운 서가를 돌아다니다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우연히 펼친 책장 속의 이 문장 때문이었다. 나는 하마가 헤엄을 치지 못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하마가 헤엄을 치지 못해 물속에 빠져 익사했단 얘기는 더더욱 금시초문이었다. 이 기막힌 아이러니에 나는 단박에 이 책에 매혹당했다.

뮌스터 시민들의 낙서를 통해 도시의 이야기가 빼곡히 기록되는 아아(Aasee)호수의‘자이언트 당구공’. 허수경씨는 뮌스터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기민한 시인의 더듬이로 포착해낸다 
몇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도 단지 밥이 먹고 싶어서 골목길 사이의 중국식당에 찾아들어 가곤 했다. 뜨거운 음식이 아니라 딱딱한 바게트를 씹다가 입천장이 쓸려나간 적이 있었다. 잠시 파리에 체류할 때의 일이었는데, 길쭉한 바게트만 봐도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다. 외국에선 한식당이 아주 비싼 편이므로 나는 저렴한 중국식당에서 안남미로 볶은 볶음밥을 먹곤 했다. 그땐 아껴 먹느라 쌀알을 숫자를 세어가며 꼭꼭 씹었다. 밥알을 씹을 때 느껴지는 단맛은 여행에 지쳐 고단해진 혀끝을 언제나 위로해주었다. 어디에나 있는 맥도널드에 있을 햄버거를 떠올리며 안도감을 느끼는 미국인들이 있다면, 어느 골목에나 있을 법한 중국식당의 볶음밥을 떠올리며 위안받는 아시아인들도 있을 것이다. 시인 역시 몸이 아프던 어느 날 독일 골목길에 숨어 있던 중국식당에 간다.

'여행'이 '생활'이 되는 지점이 있듯 '유학생활'도 그저 '생활'이 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책에선 이것을 이렇게 얘기한다. "빌리 브란트라는 독일의 수상은 자신의 묘비에 이름만은 새겨넣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은 대충 짐작은 하지만 정확히 어디에 그가 묻혀 있는지는 그의 가족만이 알 뿐이다. 그러나 그의 묘비명만은 알려져 있다. 빌리 브란트. 나는 애썼다." '나는 애썼다'란 문장에 밑줄을 긋다가 그만 코끝이 찡해졌다. 말까지 낯선 유학생이라면 그 애씀의 너비가 얼마만큼 될지 그려졌기 때문이다.

책에는 더듬더듬 외국어를 말하고, 공부를 위해 애쓰던 시인이 타국의 기숙사 마당에서 본 토끼에게 당근을 잘라 주는 장면이 있다. 많은 토끼와 구분하기 위해 그녀는 토끼에게 푸른색 리본을 매달아 준다. 그러나 자신이 매어준 푸른 리본 때문에 그녀는 우연히 그 토끼가 차에 치여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리본 따위 매어주지 않았더라면 그저 수많은 토끼 중의 하나였을 토끼에 표지를 달아준 순간 '의미'가 생겼고,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까지 생겨난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시인은 누군가 사랑할 때 마치 그것이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덧없는 욕심을 통탄한다.

건물 사이 길모퉁이마다 현대조각과 전통조각이 어우러져 있는 뮌스터의 거리. 

나는 결혼기념일이 2월 29일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쓰다가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3년의 '부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심 중이었다. 그들 부부가 만나는 장소로 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중세도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화니와 알렉산더'에서 나왔던 웁살라 대학의 중심가를 떠올리다가 이 책에 나왔던 '뮌스터'의 쓸쓸한 마을을 생각해냈다.

뮌스터는 '교회, 성당'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도시의 호흡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성당의 종소리와 맞닿아 있고, 이곳의 공기는 교회의 기도소리와 맥을 함께한다. 종교전쟁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던 학살의 기억을 담고 있는 이 아픈 도시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젊은 시절 공부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내게 뮌스터는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통점을 기민한 시인의 더듬이는 세심히 포착해낸다. 어느 도시에나 아픔이 있으며 상처가 아물며 생긴 딱지가 있다는 것, 그것을 지긋이 관조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면 그녀의 문장들 사이에서 아픔을 마주하고 나서야 생기는 진정한 치유를 느낄 것이다.

우리가 여행자가 되어 어느 도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그저 패키지 상품을 바쁘게 쫓는 관광객이 아닌 '그 도시의 호흡에 몸을 맡겨 내면의 나와 마주치려면' 때때로 사유의 흐름을 좇는 이런 책들은 그 길을 활짝 열어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든, 칸트처럼 시간에 맞추어 마을을 산책하든, 도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손과 발과 귀와 눈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고, 눈으로 책 속의 문장을 읽고, 입으로 그 문장을 한번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뜨거웠는가.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그리고 가난한 여행자의 주머니를 채워줄 어느 귀퉁이 중국식당을 가만히 찾아보는 것이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시인 허수경이 지구의 반대편 유럽에서 보내온 편지글. 

낯선 외국어로 시간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고고학이란 학문을 전공하는 시인의 일상이 담겨 있다.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한국의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듯 쓴 글은 '이름 없는 나날'이란 제목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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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모퉁이 카페
국내도서
저자 :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 / 권지현역
출판 : 소담 201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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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국내도서
저자 : 허수경
출판 : 문학동네 200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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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독 통일의 잔재와 역사를 경험할 수 있어
오페라, 박물관 등 창의적인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

동독과 서독의 문화가 공존하는 베를린. 지난달 예술가 118명이 벽에 그림을 그려 유명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일대의 베를린 장벽을 철거한다는 소식에 베를린 시민의 대규모 반대 시위가 열렸다. 이렇듯 베를린은 독일의 역사와 전통이 숨 쉬고,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박물관·오페라 등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사랑하는 도시다. 현대적인 도시 느낌과 더불어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예술의 도시'로서 유럽의 심장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GNTB Kiedrowski, Rainer)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브란덴부르크문은 베를린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물이다. 1789~1791년에 베를린 심장부인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에 세워졌으며, 베를린 장벽이 생긴 1961년 이후 28년간 통행할 수 없었다. 오늘날 독일 통일의 상징물이 되었고, 독일 수도의 과거와 미래를 대표한다. 

여섯 개 기둥 사이 다섯 개 통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보행자 길로 통한다. 상부에 4두 2륜 전차를 타고 있는 빅토리아 상은 승리의 여신을 상징하며, 1794년 설치되었다.

◆카이저-빌헬름 기념 교회(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

베를린의 시내 중심인 쿠담(Kurfürstendamm) 거리에 파괴된 모습으로 여행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카이저-빌헬름 교회는 프로이센 빌헬름 1세를 기념하여 지어졌고, 고딕 양식의 네오 로마네스크 풍의 걸작이다. 유명 예술가들의 모자이크, 양각과 조각으로 만들어졌으며, 1943년 세계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포격을 맞아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탑은 오늘날 베를린 서부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남았다. 1961년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n)이 설계한 새 카이저-빌헬름 기념 교회가 봉헌되었으며, 파란 유리 외벽과 완벽한 음향효과로 널리 알려졌다.

베를린 성당 (Berliner Dom)./(ⓒGNTB Kiedrowski, Rainer)
◆베를린 성당 (Berliner Dom)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 강(Spree River) 중 슈프레 섬 북부에 있는 베를린 성당은 시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신교의 중심부 역할을 한다. 베를린 성당은 인종과 종교와 관계없이 전 세계 관광객의 발걸음을 이끄는 곳이다. 

율리우스 라쉬도르프(Julius Raschdorff)의 설계 하에 1894~1905년 동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와 바로크를 본 따 건축되었고,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성당 중 하나이다. 메인 입구는 성당 앞에 펼쳐진 작은 루스트정원(Lustgarten)을 가로질러 걸어가면 찾을 수 있다.

◆박물관 섬 (Museum Island)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박물관 섬'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다양한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 

베를린 신 박물관(New Museum), 구 국립 갤러리(Old National Gallery), 보데 박물관(Bode Museum),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과 고대 박물관(Museum of the Ancient World) 등 5개의 건물로 구성되었으며, 메소포타미아부터 이집트까지, 고대 그리스와 로마·비잔티움·이슬람 문화·중세·19세기 낭만주의와 현대를 아우르는 예술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유대인 박물관 (Jewish Museum)

베를린의 뼈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곳이자, 여행객의 필수코스라 할 수 있는 유대인 박물관은 유대인들의 2천 년 역사를 담고 있다. 

1933년에 설립됐으나 나치에 의해 1948년 폐쇄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문을 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했고, 다양한 상설 전시는 유대인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13개 시대로 나뉘어 구성되었고, 미술·사진·서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상설 전시 외 다양한 주제로 특별 전시가 열린다.

하케쉐마르크트 (Hackesche Höfe).(ⓒGNTB Lehnartz GbR Lehnartz, Klaus und Dirk)
◆하케쉐마르크트 (Hackesche Höfe)

하케쉐마르크트는 베를린 미테(Berlin-Mitte) 구역에 있으며, 독일에서 가장 큰 폐쇄 구조의 광장을 이룬다. 1977년부터 기념물로 보호 관리되고 있으며, 예술 갤러리·영화관·극장·레스토랑·카페·선술집과 작은 부티크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베를린 TV 타워 (Berlin's TV tower)

베를린 TV 타워는 368m 높이로 베를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1969년에 개방하였고, 200여 미터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베를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 (Berlinale film festival)

할리우드에 오스카 시상식이 있다면, 독일에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있다. 베를린에서 열리는 문화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인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27만여 명의 방문객, 4천 명의 기자가 참석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한자리에 모여 최소 400여 편의 영화가 공개된다. 최신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반제 호수(Wannsee)

반제 호수는 복잡한 도시와는 달리 너른 잔디와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어 산책 코스로 유명하며, 여러 가지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수영·보트 타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거나 편히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배를 타고 호수 주변 아름다운 저택과 정원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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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로코코 양식의 옛 건물 웅장함 엿볼 수 있어
통일 후 가장 성공적인 발전을 이룬 구동독 도시로 떠올라

'독일의 피렌체'라 일컬어지는 우아하고 매력적인 옛 동독 작센주 내 작은 도시 드레스덴. 도시 곳곳에 있는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건물들이 드레스덴의 화려했지만 어두웠던 역사를 동시에 보여준다. 작센 선제후(選帝侯)의 예술에 관한 애정으로 드레스덴의 건물은 독일의 보석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다. 츠빙거 궁전, 젬퍼 오페라 등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독일의 문화적 자부심을 확인하는 듯 특유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시민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 내 주요 건물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통일 후 독일 정부와 시민의 노력으로 대부분 건물은 예전의 멋진 모습을 되찾았고, 최근 드레스덴은 문화는 물론 유럽의 학문과 과학을 선도하는 비즈니스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프라우엔 교회 (Frauen Kirche).(ⓒGNTB Krüger, Torsten)
◆프라우엔 교회 (Frauen Kirche)

독일 바로크 양식 건축의 대가 게오르게 베어(George Bähr)가 설계했으며, 1726년부터 1743년까지 17년 동안 건축되었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 건축물의 정점이자, 유럽 바로크의 대표 걸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완공 이후 약 250년간 드레스덴 시민의 안녕, 번영과 믿음, 신뢰의 상징물이었던 프라우엔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되었다. 1945년 재건될 당시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물로 통했으며 이후 화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2005년 헌납식을 거치고 이후 각종 화려한 공연, 연주, 예배 등이 진행되고 있으며 연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드레스덴의 명소다.

젬퍼 오페라 (Semper Opera).(ⓒGNTB Krüger, Norbert)
◆젬퍼 오페라 (Semper Opera)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가 1838년부터 1841년까지 건축한 젬퍼 오페라는 드레스덴 시립 오페라단의 주 무대이다. 정교한 건축술, 젬퍼 오페라만의 웅장한 음향,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반영한 화려한 내부는 이곳을 뮤즈의 전당으로 부르기에 충분하다. 또한, 젬퍼 오페라는 19세기 극장 건축의 최고점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 중 하나로 손꼽힌다.

츠빙거 궁전 (Zwinger Palace).(ⓒGNTB Kiedrowski, Rainer)
◆츠빙거 궁전 (Zwinger Palace)

츠빙거 궁전은 유럽 후기 바로크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종합예술 건축물이다. 상단에 금빛 왕관 장식이 있는 아치형 문은 드레스덴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궁궐 행사가 진행되었던 곳이며 예부터 도서 시설이 존재했고 선제후의 회화와 각종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 박물관과 수학-과학과 관련된 소장품도 선보여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다. 현재 츠빙거 궁전의 정원과 마당은 각종 야외 공연을 위한 훌륭한 무대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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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가 탄생한 도시, 독일 자동차 역사를 한눈에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맥주 페스티벌 '칸슈타터 민속축제' 열려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Mercedes-Benz Museum) (ⓒGNTB Keute, Jochen)

슈투트가르트는 우리에게 친근한 도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나 강수진이 소속된 발레단의 연고지이며, 세계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로 손꼽히는 벤츠가 만들어진 도시이기도 하다. 

슈투트가르트는 전기, 자동차, 기계 등 제조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독일의 중요 산업도시다. 섬유, 의류, 맥주, 가죽제품 등이 생산되며 200개가 넘는 출판사가 자리 잡은 출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독일 자동차의 역사다. 고트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의 '다임러'와 칼 벤츠(Carl Benz)가 세운 '벤츠'가 1926년 합병해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았다. 독일 자동차 역사의 현장인 슈투트가르트에는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외관의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과 포르쉐 박물관이 세워져 자동차의 과거와 역사, 혁신적인 미래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포르쉐 박물관
포르쉐 박물관(Porsche-Museum) (ⓒGNTB Keute, Jochen)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과 포르쉐 박물관

자동차광(狂)이라면 슈투트가르트에 꼭 가봐야 한다. 슈투트가르트의 대표 자동차 브랜드로는 단연 다임러 벤츠와 포르쉐가 손꼽힌다. 외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에서는 자동차 및 관련 제품의 역사와 하이라이트 등 자동차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총 9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500여 점의 전시품은 벤츠 자동차 역사를 완벽히 재연한다. 

포르쉐 박물관은 전시된 차량 못지않게 전시 공간이 매력적이다. 건축 당시부터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던 포르쉐 박물관은 전면은 하얀색, 건물 외관은 전체적으로 세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어 마치 미술 갤러리를 보는 듯한 세련된 어울림을 보여준다. 혁신적이고 멋진 디자인을 갖춘 포르쉐 자동차의 오랜 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칸슈타터 민속축제
칸슈타터 민속축제(Cannstatter Volksfest) (ⓒGNTB Niedermüller, Thomas)

◆칸슈타터 민속축제 

10월 뮌헨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 다음으로 큰 규모로 열리는 슈투트가르트의 '칸슈타터 민속축제(Canstatter Volksfest)'는 슈투트가르트와 바뎀-뷔르템베르크 사람들이 기다리는 맥주 축제다. 9월에 개최되며, 검소하다고 알려진 슈바벤((바뎀-뷔르템베르크) 사람들도 이때만큼은 마음과 정성을 쏟아 붓는다. 

바젠(Wasen)이라는 넓은 공터에서 약 2주 동안 진행되며 500여 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은 텐트가 여러 개 설치된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1L 잔에 담긴 맥주가 제공되며, 텐트 밖으로는 다양한 놀이기구가 설치되고 독일 전통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부스도 마련된다.


◆슈투트가르트 와인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독일 와인의 풍미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다. 중앙역에서 채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볕이 잘 드는 비탈진 곳에 와인용 포도가 재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슈투트가르트의 와인 재배 역사는 길고 와인축제 또한 명성이 자자하다. 와인 재배지에는 포도밭 사이사이를 지나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와인 보도 길'이 있어 방문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슈투트가르트 발레단(Stuttgart Ballett) (ⓒGNTB)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슈투트가르트의 발레 역사는 16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19세기를 거쳐 20세기부터 슈투트가르트의 발레는 유럽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 1961년부터 약 12년 동안 존 크랭코(John Cranko)가 감독 겸 무용 안무를 맡게 되면서 발레단 수준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려 놓았다. 이후 40년 이상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세계 정상급 발레단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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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도시 바이마르

독일 튀링겐 주(州)의 바이마르는 문화 도시로 이름이 높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 1832)와 프리드리히 폰 실러(1759~1805)가 바이마르에서 창작 활동을 하면서 독일 문학의 큰 꽃을 피웠다.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는 괴테와 실러가 나란히 선 동상이 있다.

괴테는 실러보다 열 살이 많았지만 가까운 문우(文友)로 지냈다. 괴테는 스물다섯 살에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 작가가 됐다. 그는 2년 뒤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추밀원 고문으로 일했다. 실러도 스물셋에 '도적떼'로 인기 작가가 됐다. '도적떼'는 독일 사회의 변혁을 바란 젊은 세대의 생각을 반영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실러는 바이마르공화국의 고문관으로 활동하면서 희곡 '빌헬름 텔'을 초연했다. 괴테가 단편 '파우스트'를 발표하자 실러는 대작(大作)으로 만들어 보라고 격려했다.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 있는 괴테(왼쪽)와 실러 동상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 있는 괴테(왼쪽)와 실러 동상 / 독일관광청 제공
실러는 마흔여섯 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떴지만 괴테는 여든셋까지 장수했다. 바이마르에는 괴테가 살던 집 '괴테 하우스'가 있다. 그는 이곳에서 희곡 '파우스트'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바이마르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 도서관'이다. 이곳엔 괴테가 오전 7시에 비서를 불러 시를 받아 적게 하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1534년에 인쇄된 '루터 번역에 의한 독일어 성경'을 비롯한 희귀본들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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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부터 독일 곳곳에 크리스마스 시장 개장
뉘른베르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려… 렙쿠헨, 소시지 등이 유명해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시장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시장/출처=GNTB

독일은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시장이 곳곳에 들어서 화려하게 빛난다. 따뜻한 글뤼바인(Glühwein)을 손에 들고 추운 몸을 녹이며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음식 등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따스하다. 뉘른베르크(Nürnberg), 드레스덴(Dresden), 슈투트가르트(Stuttgart) 등이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리는 도시인데 그중 바이에른주에 있는 뉘른베르크는 크리스마스 추천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시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매년 전 세계 200만 명가량의 여행객이 방문한다. 지난달 29일 개장했으며 오는 24일까지 약 3주간 열린다. 개장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 까지다. 단, 이브 날은 10시부터 14시까지 오픈한다. 

◇뉘른베르크의 천사, '크리스트킨트(Christkind)'

크리스트킨트
크리스트킨트/출처=GNTB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시장 '크리스트킨들레스마켓(Christkindlesmarkt)'에는 특별한 마스코트가 존재한다. 바로 해마다 선발하는 '크리스트킨트(Christkind)'다. 크리스트킨트는 뉘른베르크 천사를 뜻하며 매해 같은 개회사를 낭독하고 시장을 개막을 알린다.

개회사 낭독은 프라우엔교회(Frauenkirche) 발코니에서 이뤄지며 수 천 명이 그 앞에 서서 숨죽이고 바라본다. 개회사는 뉘른베르크 시인 카를 브뢰거(Karl Bröger) 아들이자 연극평론가인 프리드리히 브뢰거(Friedrich Bröger)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크리스트킨들레스마켓이 시작하던 때를 기리기 위해 썼다.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여러 번 수정 된 후 몇십 년 동안 동일한 텍스트가 읽히고 있고 개회사 전문은 크리스트킨들레스마켓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크리스트킨트는 시장이 열리는 기간에 시와 마켓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주 임무는 개막식 때 개회사를 읽고 시작을 알리는 것이고 아이들과 사회적 약자에게 희망, 기쁨을 전해준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유치원, 양로원, 병원 등을 방문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선물을 한 아름 들고 어린이들이 있는 병원을 찾아가기도 한다. 

크리스트킨트는 2년에 한 번씩 선발되며 나이, 신체조건, 뉘른베르크 거주기간 등 간단한 자격을 갖추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주로 여성이 지원하는데 인기투표 후 면접을 보는 절차를 거쳐 선발한다. 심사위원은 언론, 뉘른베르크 시립 극장, 뉘른베르크 관광청 등의 대표자와 전 크리스트킨트이다. 선발되면 두 해 동안 뉘른베르크와 크리스트킨들레스마켓을 대표하게 된다. 해외에서도 유명하여 두 해 동안 봉사를 마치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크리스트킨들레스마켓'에서 개회를 진행한다.

◇렙쿠헨, 소시지, 글뤼바인… 배고픔과 추위를 날려주는 먹거리

렙쿠헨
렙쿠헨/출처=GNTB
렙쿠헨(Lebkuchen, Gingerbread)은 크리스마스 시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름도 '오리지날 뉘른베르거 오블라텐 렙쿠헨(Original-Nürnberger Oblaten-Lebkuchen)'으로 뉘른베르크에서 생산된 오리지널 자부심을 나타낸다.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일품이며 6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매해 7천만 개를 생산하고 꿀, 아몬드, 후추, 생강, 계피와 여러 향신료가 들어간다. 표면은 초콜릿, 설탕이나 아몬드 등으로 덮는다. 

뉘른베르크 소시지도 빼놓을 수 없다. 노릇노릇 구운 소시지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양배추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나 감자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베글라(Weggla)'라는 방법으로 두세 개를 빵 사이에 끼워 먹을 수도 있다. 뉘른베르크 오리지널 소시지는 약 7~9cm 길이를 유지한다. 뉘른베르크 시로 들어갈 수 있는 통금 시간이 있던 시절 열쇠구멍 사이로 소시지와 같은 음식을 주고 받기 위해 최대 크기가 제한되어 있는 것에서 비롯됐다. 

독일에서 열리는 모든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글뤼바인은 와인과 함께 정향나무, 계피 등의 향신료를 넣고 끓여 만들어진다. 추운 날씨에 꽁꽁 언 몸을 사르르 녹여주며 추위를 물리칠 수 있다. 글뤼바인은 각 판매부스만의 독특한 디자인의 머그잔에 담겨 판매한다. 매해 다른 디자인의 머그잔을 생산하며 이때 머그잔은 1~2유로 보증금을 받고 빌려주는데 방문객중 80% 가량은 기념품으로 집으로 가져간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아기자기한 선물 

츠벳츠겐맨
츠벳츠겐맨레/출처=GNTB

'라우쉬골든엔젤(Rauschgoldenengel)'은 크리스트킨들레스마켓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념품이다. 팔은 없는 형상이지만, 화려하게 반짝이는 날개가 등에 달렸으며 금빛 왕관을 쓰고 있어 눈부시다. 30년 전쟁 당시 뉘른베르크 인형 장인이 만들었으며 자신의 딸이 아파 죽음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천사의 날기 소리를 듣고 제작했다고 알려졌다.

'츠벳츠겐맨레(Zwetschgenmännle)' 인형도 대표적인 기념품이다. 말린 자두인 프룬으로 만들어지며 350여 가지가 넘는 종류로 구성되었다. 9~22cm 크기이며 모든 직업과 인물을 본떴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 자료 제공 : 독일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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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 여행+ [1] 독일 슐로스 엘마우·가파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가파)의 동화 같은 거리.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가파)의 동화 같은 거리. 프레스코 벽화가 곳곳에서 반기는 고요한 중세 도시다. /가파(독일)=이승원
독일 남부 특유의 흰 소시지(바이스브루스트·weisswurst)를 달콤 쌉싸름한 독일 겨자에 찍는다. 흑맥주인 에딩거 둔켈 500mL 유리잔으로 투명한 햇살이 내려앉는 2월 하순의 목요일.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 저 위로, 미하엘 엔데 거리(Michael Ende Strasse)라고 쓴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은 인구 2만6000명에 불과한 초미니 도시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 kirchen·이하 가파·GaPa). 엘마우 성에서 기차로 15분을 달려 도착한 독일의 알프스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1936년 제4회 동계올림픽이 열린 도시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은 추크슈피체(Zugspitze). 백두산보다 대략 200m 높은 2962m다. 가파를 찾는 상당수는 그 산을 오르기 위해서지만, 이 작은 소도시에는 또 하나의 보석이 있다. 40개 언어로 2500만부가 팔려 나갔고, 우리나라 독자에게도 익숙한 베스트셀러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1929~1995). 가파는 작가의 고향이다.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는 것은 물론, 도시 한복판에 그의 공원과 미술관이 있다. 이 도시에서 처음 들렀던 가파 관광안내소(Tourist Information)의 상냥한 직원 글로리아는 "엔데 공원은 가파의 오아시스"라고 귀띔했다. 20m 훌쩍 넘는 높이의 피나무(lime tree)를 지나자 미술관 건물이 반겼다. 흥미롭게도 시 당국은 이 미술관을 쿠어하우스(Kurhaus)라고 명명했다. 우리말로 하면 요양소. 엔데와 그의 작품을 통해 병든 현대인의 육체와 영혼을 치유하라는 의미일까.

가파의 미하엘 엔데 미술관.
1 가파의 미하엘 엔데 미술관. 2 가파의 미하엘 엔데 미술관 안에 있는 ‘모모’ 캐릭터.
엔데가 자신의 대표작이 된 동화 '모모'를 발표한 게 1973년이다. '모모'의 부제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능력을 지닌 말라깽이 소녀 모모는 마을 사람들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는 존재다. 하지만 도시의 악당인 '회색 일당'은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미명 아래 그들의 시간을 야금야금 빼앗는다. 모모에게 찾아올 시간도, 서로 흉금을 터놓을 시간도, 상상을 펼칠 시간도 빼앗긴 마을 사람들이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는 명약관화. 어떨까. 40년 전의 낡은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여름이면 수련(睡蓮)으로 가득하다는 공원 연못 주변을 걸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되새김한다. '가파에서의 한철'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을 구원할 수 있을까. 가파 중앙역에서 도시 정중앙 미하엘 엔데 공원까지는 걸어서 10분. 한 집 걸러 중세 프레스코 벽화가 반기고, 동화같은 아기자기함이 남아 있는 곳. 고요를 즐기며 이 작은 도시의 골목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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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부 소도시 '코부르크'

독일 남부 소도시 코부르크 중심에 있는 마르크트광장. 이곳의 여러 노천카페 중 한 곳에 앉아 커피나 맥주를 홀짝이다 보면 ‘여기가 진짜 유럽이구나’란 생각이 든다.
독일 남부 소도시 코부르크 중심에 있는 마르크트광장. 이곳의 여러 노천카페 중 한 곳에 앉아 커피나 맥주를 홀짝이다 보면 ‘여기가 진짜 유럽이구나’란 생각이 든다.

코부르크(Coburg)는 독일 바바리아주(州)에 있는 소도시. 작지만 유럽 정치·외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894년 이 도시에서 열린 한 행사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나중에 에드워드 7세가 된 빅토리아의 아들 에드워드, 독일 카이저 빌헬름 2세,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가 함께 모였다. 이 도시가 뭐길래 당시 유럽을 쥐락펴락하던 중요 인사들을 불러낸 걸까.

◇작지만 당당한 유럽 왕가의 '고향'

코부르크는 독일 중부에 있었던 작은 공국(公國) 작센코부르크고타(Sachsen-Coburg und Gotha)의 수도다. 이 공국을 다스린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王家)는 전략적 혹은 정략적 결혼을 통해 유럽 여러 왕가와 인연을 맺었고, 이를 통해 영국과 벨기에, 포르투갈, 불가리아에서 왕을 배출했다.

벨기에는 레오폴드 1세(1830~1865년)부터 현재 국왕인 알베르 2세까지 작센코부르크고타 출신이다. 레오폴드 1세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 레오폴드는 자신의 친조카인 알베르트 작센코부르고타 왕자를 당시 공주였던 빅토리아에게 소개했다. 둘은 곧 결혼했다. 그리하여 이들의 아들인 에드워드 7세와 손자인 조지 5세까지도 작센코부르크고타라는 성을 썼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영국에서 반(反)독일 감정이 생기자 왕가 이름을 윈저(Winsor)로 바꾸어 오늘날 엘리자베스 2세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 덕분일까, 코부르크에 들어서면 탄탄하단 느낌을 받는다. 도시 규모는 작지만 그 안의 건물들은 왜소하지 않고 반듯하다. 2차 세계대전 때도 연합군의 폭격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이 덕분에 시청사나 성곽, 도시 출입구인 시계탑루(樓) 따위 주요 건물들이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독일치고는 기후도 온화한 편이고, 주변 자연경관도 수려하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도 똑같이 느꼈나 보다. 결혼 후 여섯 번이나 '시집'인 코부르크를 찾았고, "만약 내가 영국의 여왕이 아니라면 이곳을 나의 고향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코부르크 명물 소시지 ‘코부르거 브라트부르스트’.
코부르크 명물 소시지 ‘코부르거 브라트부르스트’.

◇아기자기한 볼거리·먹을거리 가득

코부르크는 하루 정도 둘러보면 알맞은 크기의 도시다. 무엇을 반드시 봐야 할 것은 없다. 그냥 걷기만 해도 즐겁다. 시작은 '마르크트 광장(Markt Platz)'이 좋겠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광장 주변으로 알록달록 화려하게 칠하고 장식한 2개의 시청 건물(Rathaus·Stadthaus),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다. 수요일과 토요일마다 장이 서니, 맞춰 가면 좋겠다.

명물 먹을거리 '코부르거 브라트부르스트(Coburger Bratwurst)' 소시지를 파는 트럭도 있다. 코부르크 사람들은 "솔방울에 불을 붙여 여기에 구워야 제대로 된 코부르거 브라트부르스트"라고 했다. 트럭에서도 솔방울로 굽는다. 소시지에서 떨어진 기름이 불길에 타면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향기롭다. 소시지 하나에 2유로, 들고 먹으라고 동그란 롤빵에 끼워준다. 한입 깨물면 '오독' 터지면서 육즙이 흥건하게 입안을 적신다.

마르크트 광장에서 알베르트 광장으로 가는 좁은 길에는 '주조감독관집(Munzmeister Haus)'이 있다. 1333년 그러니까 700년도 전에 지어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 하나다. 검은색으로 칠한 목재가 흰색 건물을 크고 작은 구획으로 나눈 외관은 마치 몬드리안 그림처럼 멋지다.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는 도시 외곽에 있다. '페스트 코부르크(Veste Coburg)', 즉 '코부르크 요새'는 도심을 굽어보는 언덕에 있다. 1530년에는 종교개혁을 촉발한 마르틴 루터가 그를 잡아 죽이려는 구교파들을 피해 반 년간 거주하기도 했다. 성곽 안쪽을 둘러보고 성벽에 올라가 보는 것은 무료. 하지만 루터가 잤던 방이나 왕실 사람들의 생활공간, 중세 기사들의 갑옷과 무기, 유럽 지역별 동전 컬렉션 등을 보려면 입장료 8유로를 내야 한다.

시내에 있는 왕실 거주지였던 '에렌베르크 궁(Schloss Ehrenberg)'도 볼만하다.

독일 중부 소도시 ‘코부르크’ 위치도

시계탑루 바깥에 있는 빅토리아 그릴(Victoria Grill)은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자주 찾았다는 고급 레스토랑이다. 애피타이저 5~10유로, 메인요리 15~25유로쯤으로 비싼 편이다. 골덴스 크로이츠(Goldenes Kreuz)는 13세기부터 있었던 여인숙 겸 술집. 지금은 도시에서 손꼽히는 맛집이다. 음식값은 빅토리아 그릴과 비슷하다. Herrngasse 1, www.goldenes-kreuz-coburg.de

페일러(Feyler)는 1892년 개업했으니 122년 된 제과점이다. '슈맷첸(Schmatzchen)'이라고 하는 코부르크 전통 과자가 선물로 사갈 만하다. 약간 쫄깃하면서 계피향이 진하다. 250g 1봉지 4유로. Rosengasse 6-8,

헨네베르거 하우스(Henneberger Haus)는 독일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선술집 겸 식당이다. 독일식(실은 오스트리아에서 탄생했지만) 돈가스랄 수 있는 '비너슈니첼' 6.9(소)·8.5(대)유로, 독일식 김치 자우어크라우트가 딸려 나오는 '코부르거 브라트부르스트' 2개 1접시 5.9유로. Goettestrasse 3, 마르크트 광장 부근 로렐라이(Loreley)도 음식 종류나 가격은 비슷하다. Herrngasse 14.

그동안 한국인 관광객이라곤 찾지 않았을 것 같은 이 도시의 관광안내소에서 한글로 된 관광 안내 책자와 지도를 발견했을 때의 감정은 반가움보다 놀라움이었다. 선진국이란 이런 걸까. Herrngasse 4, www.coburg-tourist.de

교통
은 불편하다. 코부르크까지 가려면 렌트카가 제일 편하다. 뉘른베르크(Nurmeberg), 밤베르크(Bamberg) 등 인근 대도시에서 매일 운행하는 열차를 타고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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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독일 철도청 & 베를린 관광청' 공동 워크숍 한국서 열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독일 철도청과 베를린 관광청의 공동 워크숍이 지난 6일 종로구 나인트리 컨벤션에서 열렸다.

베를린 관광청 랄프 오스텐도르프 마케팅 이사
베를린 관광청 랄프 오스텐도르프 마케팅 이사가 베를린 여행의 매력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베를린관광청
이날 행사에는 국내 여행업계의 관계자 140여 명과 미디어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하였다. 독일 철도청과 베를린 관광청은 아시아를 순회하며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중인데 한국의 경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11월 9일과 근접한 날짜인 11월 6일에 한국 워크숍을 진행하게 됐다.

1부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베를린 관광청 랄프 오스텐도르프 마케팅 이사는 "베를린은 여행자 숙박일수로 보면 유럽 3대 도시로 꼽히는 유명 관광지"라며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지닌 베를린이 유럽에서 가장 큰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도시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번 워크숍을 통해 베를린 관광청은 국내 최초로 한국어 여행정보 책자와 한국어 공식홈페이지(www.visitberlin.de/ko)를 공개함으로써 앞으로 한국시장에 대해 큰 관심을 드러냈다.

독일철도청 요하임 존 해외영업 이사가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독일패스 프로모션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베를린관광청

2부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독일철도청 요하임 존 해외영업 이사는 독일철도청 스페셜 요금이 11월 14일부터 최저 29유로부터 시작된다는 최신 정보와 함께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프로모션이 진행 중인 독일패스에 대한 폭넓은 활용에 대해 강조했다. 

한편, 이번 행사에서는 독일패스 2인 일등석 5일권과 베를린 웰컴카드, 베를린 유명 호텔 숙박권, 유럽 산 와인 등 다양한 경품이 증정되었다. 독일 철도 이용 및 더 자세한 사항은 독일철도청 한국총판 유레이드코리아 홈페이지(www.railpackage.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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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마인(Rhein-Main) 지방 관광의 거점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프랑크푸르트(프랑크푸르트암마인, Frankfurt am Main)’는 전통과 현대, 역동성과 차분함 등 다양한 매력을 지닌 도시다. 그뿐 아니라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의 문학적 정취가 느껴지는 이곳은 이미 독일을 넘어 유럽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세련된 거리와 역사적 건축물들이 혼재하는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보자.

유유히 흐르고 있는 마인강의 풍경



도시 중심이 간직한 중세의 문화

프랑크푸르트의 하우프트 반호프(Haupt bahnhof)에서부터 시작되는 중심거리에는 화려한 고층빌딩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 거리를 계속해서 걷다 보면 어느새 중세의 거리가 나타난다. 도시의 오랜 역사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이곳은 프랑크푸르트의 수많은 발자국이 이어져 고전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걸어도, 혹은 멈춰 있어도 그곳은 바로 역사의 한 공간이다. 과거와 조우할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순간들이다.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는 자연스레 묻히고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남아 있는 역사적 흔적의 조각들은 한데 모여 그 다음 역사를 향해간다. 유럽 심장부의 메트로폴리스라고 불리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또한 그 조각들이 도시 곳곳에 만연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중세의 거리를 만나보고자 한다면 그 시작점에는 뢰머 광장(뢰머베르크)이 있다. 뢰머 광장을 이루는 뢰머 시청과 오래된 건물들은 중세 독일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뢰머 광장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 뢰머 구시청사.


광장에 접하고 있는 3개의 건축물은 폭이 좁고 지붕을 계단식으로 뾰족하게 깎아 내린 것이 특징. 정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뢰머 시청으로, 신성 로마제국시대에는 황제의 대관식 후의 축하회장으로 쓰였다. 오늘날까지도 시장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황제의 방’에는 샤를마뉴(카를 대제) 이후 52인의 독일 황제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어, 황제들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오른손에 검,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 유스티티아(Justitia) 청동상이 있다. 유스티티아는 정의와 법을 담당하는 로마의 여신으로, 정의를 뜻하는 ‘져스티스(Justice)'는 이 단어에서 비롯됐다.


뢰머 광장을 조금 넘어서면 카이저 돔 대성당이 나온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정도로 웅장한 멋을 자랑한다. 9세기에 완공되었고, 1562년 이후 모두 열 명의 황제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했다. 95m 높이의 첨탑 위에서는 프랑크푸르트의 크고 작은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웅장한 멋을 자랑하는 카이저 돔 


대성당.

마인강을 가로지르는 사과주전차(Ebbelwei-Express).

대성당에서 조금만 걸으면 마인강이다. 강변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다. 근처 벤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강아지와 함께 가벼운 조깅을 하는 사람들. 서울 한강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느끼는 낯선 정겨움은 더욱 크다. 현대적 건물들이 가득한 도시지만, 이곳에서는 결코 도시의 번잡한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상큼한 사과와인(Apfelwein)을 마시고, 괴테를 만나다

작센하우젠(Sachsenhausen)으로 가기 위해 마인강의 다리를 건넌다. 태양은 이미 저물어 가고 있다.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 도착한 작센하우젠이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어디든 들어가야 한다. 


질서정연한 목골(木骨)가옥들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알트-작센하우젠(Alt-Sachsenhausen)에는 점들과 다양한 맛집들이 즐비하다. 이윽고 전통 음식점에 들어서 우선 간단히 소시지와 맥주를 주문한다. 독일의 소시지가 유명한 건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 마찬가지로 유명한 독일 맥주는 도시 혹은 마을 단위로 맥주를 담그는 법이 달라 도시 특유의 감성이 투영된 환상적인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요리를 만끽할 차례다. 슈바인 학센(Schweins Haxen)은 우리나라의 족발과 비슷한 요리로 당근과 셀러리, 양파 등과 곁들여 나오기 때문에 맛이 담백하고 웰빙 음식으로도 알맞다. 또 다른 족발 요리인 아이스바인(Eisbein)은 소금에 절인 돼지 뒷다리를 맥주에 삶은 다음 향신료를 첨가한 요리. 돼지고기의 누린내가 적고 육질이 부드럽게 씹힌다. 양배추를 식초에 절인 싸우어크라우트(Sauerkraut, 독일식 김치)와 감자, 양파 드레싱이 함께 나와 푸짐한 식사를 이어갈 수 있다.


부른 배를 문지르며 한탄하고 있기엔 아직 부족하다. 이번엔 프랑크푸르트의 명물인 사과와인(사과와인을 뜻하는 아펠바인을 프랑크푸르트 지역에서는 에벨바이 Ebbelwei라고 부른다.)을 마셔볼 차례. 프랑크푸르트 전통 사과주의 역사는 25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오래됐다. 느긋한 포근함에 휩싸여 마시는 사과와인은 톡 쏘는 상큼함과 친절한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까지 느낄 수 있다. 빵과 과자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브레첼 빵의 짭조름한 맛도 곁들이면 사과주와 함께 최상의 궁합이다.

괴테 하우스는 후손들의 노력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사과와인과 브레첼은 개성있는 맛을 선사한다.


배도 부르니 이제는 세계적인 대문호를 만나러 가보자. 다시 마인강을 건너 마인타워(Main Tower) 등 다수의 고층빌딩을 지나면 알테 오퍼 근처에서 ‘괴테 하우스’를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문호 괴테가 태어난 곳으로,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16년을 보냈다. 괴테가 직접 쓴 원고나 초상화가 잘 전시돼 있어 독일인들이 괴테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다.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곳 4층에서 쓰였다. 왠지 모르게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대작가의 문학적 열정과 혼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잠 못 이루게 하는 도시의 매력

괴테 하우스를 나오니 이미 해가 저물어 사방은 어둑어둑하다. 인구수가 60만에 불과한 자그마한 도시지만, 밤의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네온사인이 비교적 적은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저녁 산책이다.

황홀한 멋이 가득한 프랑크푸르트의 밤


중세의 향기는 다양한 표정으로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현대적인 고층 빌딩들보다 작센하우젠 술집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친절한 눈빛, 그리고 아름답게 꾸며진 괴테하우스가 더욱 인상에 남는 건, 전통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유럽 최대 규모의 공항이 있어 전 세계의 비즈니스맨들이 몰려드는 국제무역과 금융의 도시 프랑크푸르트. 다소 딱딱하지 않을까 했던 프랑크푸르트의 이면에는 전통을 수호하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소박하지만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애정이 넘치는 풍족함이 있었다.




가는 길
서울(인천)에서 출발하는 프랑크푸르트 직항편을 독일 항공, 대한 항공, 아시아나 항공이 각각 매일 운행하고 있다.



쇼핑의 천국 차일 거리
중앙역에서 S반으로 두 번째 역인 하우프트바혜(Hauptwache)에서 이어지는 거리를 조금 걸으면 보행자들의 천국인 차일 거리가 나온다. 300m에 달하는 긴 거리의 양쪽으로 고급 부티크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거리는 고급 상점뿐 아니라 백화점에서부터 단일품 매장까지 각종 쇼핑시설이 들어서 있어 독일에서 물건이 가장 ‘잘 팔리는’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에세이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베를린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란 책 제목은 아무래도 흥미가 일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한 이 책의 저자 프로필을 읽는 순간 나는 선 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의 언론인으로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베를린판 편집자이다. 그는 독일에 불어닥친 언론계 구조 조정으로 한순간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글. "이런 날벼락 같은 상황 속에서도 18세기부터 영락의 길을 걸어온 가문의 모습을 보고 자란 경험 덕분에 의연하게 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는 말은 매우 흥미로웠다. 망한 귀족 가문 출신의 후손이 걸작을 쓰는 경우는 종종 있다. 추락만큼 드라마틱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롤리타'를 쓴 러시아 귀족 출신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가난한 망명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부유한 나비 수집가나 이류 서정 시인으로 인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우선 '가난'을 다시 정의한다. 자본주의는 수십년 동안 가난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정의했지만, 오늘날 가난해지는 사람은 자신만이 실패자라고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량 해고나 구조 조정, 빠른 실직으로 인한 가난은 이제 자본주의가 낳은 부작용의 일부이며 그것은 역사적인 차원을 가진다. 혼자서 개인적으로 실패하는 것보다는 시대와 함께 자신이 속한 사회계층 모두와 함께 물러나는 경우가 견디기 훨씬 쉽다는 것이다.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을 찾은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언론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된 언론인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책을 읽은 백영옥은 “가난은 이제 불안이 삶의 조건이 된 이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돼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DB
이 책의 독창성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에서 비롯된다. 죽은 상어를 소재로 한 작품을 800만파운드(약 134억원)에 팔아치운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 같은 예술가나 세계의 부자들을 취재할 수 있었던 그는 실질적인 '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존재론적으로 분석해낸다. 그는 가진 사람들이 돈을 잃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쓰며 전전긍긍하는지 이야기한다. 이 말의 숨겨진 뜻은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은 잃어버릴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일수록 '평범한 삶'을 흉내 내는 것을 사치스러운 일로 여긴다. 현재 살고 있는 시골의 성이 클수록, 모든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만 가능한 한 작은 도심의 공동주택을 더 동경한다. (중략) 화보 잡지 독자들이 입 벌리고 부러워하는 부자들의 관습인 요트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것도 비슷한 종류이다. 요트에서의 삶은 부자들에게 바로 캠핑이나 다름없다. 부자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함께 북적거리고, 작은 선실에서 두세 사람이 섞여 잠을 자고, 몸을 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욕실에서 전신 목욕은커녕 물탱크의 물을 절약하기 위해 겨우 고양이 세수나 하는 것을 즐긴다. 온종일 티셔츠를 걸치고 돌아다니는 것, 간단히 말해 '소박한 삶'과 가까이 있는 것을 즐거워한다."

'부'에 대해 우리가 가진 게으른 편견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가령 식료품 없이 고급 샴페인 한 병만 달랑 들어 있는 냉장고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완전히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고 말한다. 샴페인은 포도주를 만들기에 적절하지 못한 포도로 빚은 저품질의 알코올 음료이며, 유럽의 뛰어난 포도주 전문가가 수십년의 경험을 토대로 이제 자신은 맥주만 마신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사실 외식만큼 소시민적인 일도 별로 없는데, 이제 진정한 사치는 직접 시장에 가서 좋은 식품을 사고, 냄새와 식감을 음미하며 요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집의 인테리어에 들이는 돈이나 집이 위치한 동네가 아니라,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자연스러움을 통해서 집은 아름다워질 수 있으며, 친구들이 모여드는 집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으로 부유하다는 것이다. 뱅앤올룹슨의 고성능 음향 기기나 콘런의 디자이너 가구 자체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단두대로 가는 길에도 책을 읽으며, 읽다가 만 곳에 표시했던 샤로스트 공작을 얘기하다가, 만약 유머를 수입하거나 수출할 수 있다면 헝가리는 엄청난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가난해지는 기술에 대해 말하면서 헝가리와 영국을 예로 든다. 나라든 개인이든 그 사람의 진면목은 패배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자신의 실패를 침착하고 당당하게, 약간의 유머를 곁들이며 받아들이는 훌륭한 패배자가 보기 드문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기로는 헝가리와 영국이 독보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가난해진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독일어권 도시를 추천하기도 하는데 그가 추천하는 곳은 베를린과 빈이다. 베를린은 가난해지는 사람들에게 전통적으로 매우 관대한데 오랫동안 섬처럼 고립되어 있던 상황이 함께 뭉쳐야 한다는 심성을 만들어냈다는 분석이다.

많은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는 세상에 돈이 행복의 걸림돌이라고 말하는 책은 언뜻 기이하다. 가령 광고를 보며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희망과 욕망을 산다. 그러나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행복해지기는 그만큼 더 어렵고, 기대했던 것을 막상 누리더라도 행복감은 상승하지 않는다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이미 많은 학자가 얘기한 바 있다. 오로지 성취에 대한 기대감만이 행복을 높여줄 수 있다고 말이다. 이제 몰아치는 현실의 변화에 대응해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도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 표류했을 때, 한 가지 요령이 그의 목숨을 구해준다. 크루소는 침몰한 배에서 찾아낸 연필과 종이를 들고 목록을 두 개 만든다. 목록 하나에는 현지 상황의 불리한 점을, 다른 목록에는 요행이라 여길 수 있는 점을 적는다. 불리한 점, 나는 무인도에 있으며 구조받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좋은 점, 나는 아직 살아 있으며 다른 동료들처럼 물에 빠져 죽지 않았다. 불리한 점, 몸을 가릴 만한 옷이 없다. 옷이 있다 해도 거의 걸치기 어려운 더운 지방에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이런 식으로 계속 적어나간다. 그런 다음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부정적인 면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기로 결심하면서, 놀랍게도 이런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때부터 나는 내 쓸쓸한 처지에서 다른 어떤 상태에서보다 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추론하기 시작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원칙을 매혹적이게 하는 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긍정적인 사고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삶의 우여곡절을 받아들이고, 희생자의 역할에 파묻히는 대신 끝까지 행위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능력이다. 가난은 이제 게으른 자들의 비참함이 아니라 불안이 삶의 조건이 된 이 시대에 맞게 해석되어야 한다. 가난은 온갖 장식적인 것들에서 우리를 곧장 삶의 본질로 향하게 한다. 가장 큰 쾌락이 금욕에서 출발한다는 걸 역설했던 쾌락주의자들처럼. 잘나가던 시절에 기록된 전화번호 2000개가 진실한 친구들의 번호 50개로 정리되는 순간처럼 말이다.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독일에 불어닥친 언론계 구조 조정으로 한순간에 실업자가 된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가 쓴 에세이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국내도서
저자 : 알렉산더폰쇤부르크 / 김인순역
출판 : 열린책들 200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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