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중서부 항구도시인 일루리사트는 아이스 피오르드로 유명하다. 일루리사트 정착을 기념하는 기념비 아래 펼쳐진 바다 위로 빙하가 떠다니고 있다.
그린란드에서 맞는 첫 새벽이다. 어두워지지 않는 밤을 지나 새벽녘에도 창밖은 여전히 밝은 세상이다. 창가 커튼도 햇빛을 충분히 가리지 못한다. 지난 여행지였던 아이슬란드에서는 그나마 암막 커튼이 있어 햇빛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린란드에서는 이불로 창가를 가리고, 또 다른 이불 아래 몸을 뉘었지만 어둠도, 잠도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마을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개들의 울부짖음이 다가오던 잠을 쫓아낸다. 썰매를 끌지 않는 여름 한철이 무료한 듯 수시로 짖어댄다. 덩치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늑대를 닮은 그들의 울음소리는 도시 여행객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주인이 썰매견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그린란드 여름은 기온이 섭씨 20도까지 올라가며 북극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따뜻하다. 하지만 지지 않는 태양과 울부짖는 개들, 그리고 극성스러운 모기떼를 이겨내야 한다. 짧은 여름이 지나면 태양은 사라져가고, 개들은 설원을 달리느라 바빠진다. 길고 긴 겨울에는 사라진 태양과 영하 30도에 가까운 추위에 적응해야 한다.
여름철에만 볼 수 있는 일루리사트의 녹지대와 황색풀꽃.
여름과 겨울을 오가는 상념을 뒤로하고 숙소를 나섰다. 그린란드로 이주한 덴마크인 가이드와 함께 일루리사트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린란드 관광산업 종사자는 대부분 북유럽인이다. 특히 덴마크 사람들이 많다.

시내 곳곳에서 습지와 늪에서 발견되는 북극 황색풀이 보이는 일루리사트 전경.

가이드와 함께 걸어가는 곳곳에 개들이 모여 낯선 이방인을 주시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주인이 먹이를 나누어 주고 있다. 먹이는 고기가 귀한 지역인 만큼 생선이 주를 이룬다. 특히 여름에는 먹이를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준다고 한다. 매일 주기도 어렵지만 할 일 없는 여름에 힘이 남아돌게 되면 서로 싸우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심하면 싸우다 물려 죽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밤새도록 그렇게 울부짖는 이유가 배고픔 때문인 것 같아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역시 알래스칸 말라뮤트는 설원을 질주하는 모습이 가장 어울린다.
일루리사트의 관광안내소. 이곳은 투어프로그램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다.

그린란드에서 개는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이자 생계수단이다. 사납고 힘이 좋은 그린란드 개들은 촘촘하고 굵은 이중 털로 덮여 추위에 강하다. 지칠 줄 모르는 힘과 인내심으로 2700여년 전부터 극한 날씨에서 인간을 태우고 썰매를 끌어왔다. 원주민 이누이트들은 개 덕에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이동과 사냥을 하면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얼어붙은 바다로 나가 낚시와 바다표범 사냥을 한 것이다.
거리에서 놀고 있는 원주민 이누이트 어린이.
스노모빌이 등장해도 설원을 여행하는 개썰매는 여전히 가장 주요한 운송수단이다. 그린란드에서는 스노모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환경문제와 함께 높은 연료비, 고장 시 대처방법의 부재 때문이다. 개들은 한두 마리가 다쳐도 서로 역할을 나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여름에도 정성껏 돌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개들 주위에는 날렵한 모양의 썰매들이 놓여 있다. 소재만 바뀌었을 뿐 과거 이누이트들이 타던 썰매 모양과 원리는 그대로다. 혹독한 자연에 맞서온 인류의 지혜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을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개들은 썰매를 끌지 않는 여름 한철이 무료한 듯 수시로 짖어댄다.

개들이 모여 있는 들판을 지나 쿤드 라스무센 박물관으로 향했다. 덴마크계 탐험가이자 민속학자인 라스무센은 일루리사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썰매를 이용해 아메리카 북극권을 횡단했으며 광대한 북극지역에 사는 거의 모든 이누이트 부족들을 연구하고 책으로 발간해 세상에 알렸다. 어머니가 이누이트였던 라스무센은 그린란드 이누이트의 기원을 알고자 했고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고자 했다. 박물관은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를 개조해 만들어졌다. 그가 만난 이들의 사진과 그 당시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라스무센 박물관을 지나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들과 저인망 어선들이 가득 차 있고 배들 주위를 빙산들이 유유히 흘러다니고 있다. 그린란드 어업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이곳의 풍부한 어종과 어획량의 비밀은 빙산에 있다. 빙산에는 많은 양의 육지 미네랄이 포함돼 있어 바다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빙하가 바다로 떨어져 나오면서 육지의 영양분을 바다로 운반하는 것이다. 이 미네랄 덕분에 일루리사트 앞바다는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각종 물고기와 최종 포식자 고래가 모여든다. 그린란드 빙산이 이 황량한 얼음 왕국에서 수천년 동안 인류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어획한 고래를 부위별로 팔기 위해 자르는 모습.

빙산과 어선이 공존하는 전경은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강한 햇살 아래 다양한 깃발의 배들이 얼음덩어리들과 어우러져 맑은 바다 위에 떠 있다. 현실성 없이 느껴지는 모습이 새롭다.
바다에 빙하가 떠다니는 일루리사트 전경.
일루리사트 항구에는 고래잡이를 나가기 위한 어선과 보트들이 가득 차 있다.

부둣가 위에는 작은 공방이 있다. 고래 뼈를 다듬어 생활용품 및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고 있다. 상아와 같은 느낌의 단단한 목걸이 열쇠고리들이 눈에 띈다. 공방을 지나자 고래 턱뼈로 만들어진 커다란 아치가 나온다. 3m를 훌쩍 넘는 고래 턱뼈 앞에는 커다란 그릇이 놓여 있다. 고래 기름을 짜던 실제 통이다. 모두 고래산업이 한창이던 시절의 유물들이다.
3m를 훌쩍 넘는 고래 턱뼈

시종일관 맑고 푸른 하늘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 허기가 밀려오는 것으로 저녁이 다가옴을 알 수 있다.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유명하다는 전통음식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린란드 전통식은 대부분 고래를 이용한 요리다. 소고기 느낌의 장조림 같은 고래고기를 비롯해 고래의 다양한 부위가 음식으로 나온다. 전통음식이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다고 해서 먹어봤지만 이방인의 입에는 잘 맞지 않았다. 질 좋은 맛있는 고기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그마저도 건강을 위해 줄여 나가는 시대에, 먹기 위해 고래까지 사냥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고래고기를 이용한 그린란드 전통음식.
포장에 귀여운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린란드 맥주.

식당 내에는 고래고기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와인에 기대 고래고기를 맛보고 남은 디저트로 저녁식사를 마치니 하루가 지나간다. 아직도 태양은 중천이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일루리사트의 개 평원

기온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길을 걸으면 여기저기 물 흐르는 소리가 점점 자주 들린다.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북극의 혹한에 길들여진 썰매개들은 아주 힘들어한다. 그래서 이런 날이면 개들은 차가운 눈밭 위에서 뒹굴거나 배를 깔고 엎드려 지낸다.


해안 마을의 언덕 위로 올라서자 축구장 다섯 개 정도의 평지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 썰매개 수백 마리가 개 줄에 묶인 채 넓게 퍼져 있다. 늑대처럼 크고 우람하고 잘생긴 북극 썰매개들이 하얀 눈밭에서 졸거나 뒹굴거나 울부짖는다. 정말 굉장한 ‘개판’이다.


잠시 후 개 주인이 나타나 대장 개를 풀어놓는다. 그럼 대장 녀석은 무리를 누비고 다니며 개들에게 뭐라고 수군거린다. 축구에서 교체 선수가 다른 선수들에게 감독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것처럼.

인구 5천 명의 일루리사트에는 약 3천 마리의 썰매개들이 함께 살고 있다.


영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썰매개들은 주로 알래스카의 개들이다. 그린란드나 알래스카 모두 개썰매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지만 개들을 썰매에 묶는 방식에 있어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알래스카에서는 두 마리씩 종대로 묶여 썰매를 끄는 반면, 그린란드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부채꼴 모양으로 썰매를 끈다. 부채꼴 대형에서는 대장 개의 줄이 다른 개들보다 좀 더 길다. 왜 그럴까? 썰매개들의 혈관에는 늑대의 야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리더의 자리를 노리는 썰매개들에게는 대장 개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늘 깔려있다. 대장 개는 미칠 노릇이다. 홱 뒤돌아서서 호시탐탐 자기를 노리는 개들에게 반격하고 싶어도 주인이 휘두르는 채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앞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다. 뒤따르는 개들은 그런 대장 개를 끝없이 추격하고……, 그렇게 썰매는 빠르게 전진할 수밖에 없다.


다른 개들이 목줄에 묶인 상태에서 가슴 줄을 차는 것과 달리 대장은 목줄을 묶지 않아도 된다. 대장만의 특권이다. 가슴 줄이 다 채워지면 다시 대장부터 차례로 썰매 줄을 채운다. 이때 주인이 잠시 고개를 돌리는 찰나에 개들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진다. 대장을 시기하는 녀석들이 일제히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결과는? 주인한테 두들겨 맞는다. 그래도 이 천하무적 썰매개들은 여간해선 기가 죽지 않는다. 이렇게 드센 개들을 우리 탐험대가 과연 컨트롤할 수 있을까? 앞이 깜깜하다.


잘 훈련된 썰매개들과 함께 사냥에서 돌아오고 있는 이누이트 사냥꾼



썰매개들의 생존 법칙

일루리사트의 썰매개들에게 한 끼의 식사란 처절한 생존의 문제이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살아남는다. 너무 커서 들기조차 버거운 넙치 한 마리를 공중으로 힘껏 던지면 땅에 닿기도 전에 해체되어 녀석들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들리는 거라곤 입안에서 우두둑우두둑, 넙치 뼈를 부서뜨리는 둔탁한 소리뿐이다. 먹이가 주어지는 건 겨울철 하루에 단 한 번뿐이며 여름철엔 2, 3일에 한 번일 때도 허다하다. 많은 개들의 사료 값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늘 허기진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먹이를 주는 주인의 말에 더욱 잘 복종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늘 굶주린 상태에서 우아하고 느긋한 식사란 없다. 먼저 먹어 치운 놈이 남은 먹이를 강탈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빨리, 더 많이 먹어 치우는 것만이 생존의 지혜일 뿐 양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무자비한 생존 투쟁에서 동정이란 그저 허영이며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썰매개들의 세계에서는 먹는 자와 굶는 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야생의 규칙은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혹한의 설원 위에서 열댓 마리의 사나운 썰매개들을 상대해야 하는 이누이트 사냥꾼들은 결코 불필요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자비란 나약함의 증거이고, 그것은 곧 개들에게 공격의 빌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개들의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썰매개

현지에서 탐험대를 도와준 이누이트 어부 앙아유(21, Angau).



앙아유를 만났다. 그는 썰매개 구입과 훈련을 도와주는 현지인 어부다. 2010년, 홍 대장이 답사 및 적응훈련을 위해 이곳에 왔을 때 앙아유로부터 썰매개 스무 마리를 구입했다는데 그 사이 두 마리는 도망가고 한 마리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실제 원정에 16마리가 투입되면 베이스캠프에는 최소한 두 마리를 후보로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한 마리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현재 남은 개들의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이다. 앙아유가 자기 개처럼 정성껏 넙치를 잡아다 먹인 듯하다. 그린란드 사람들조차 가지 않는 내륙 빙하를 도대체 왜 종단하려는지 도무지 이해 못하는 눈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 멀리 한국에서 온 ‘비슷하게 생긴’ 우리 탐험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만큼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생긴 것도 미남인데다 마음씨도 참 고운 친구다.


“이건 기생충 약이고, 이건 항생제……, 꼭 챙겨야 해요.” 앙아유는 개줄, 가슴 띠, 개 양말, 채찍 등 원정에 필요한 여러 장비들을 몇 번이고 꼼꼼하게 점검해주었다. 행여 개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을까, 그 먼 거리를 개썰매 초보자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한도 끝도 없다. 나보다 더 간절한 것 같다.



일루리사트의 개썰매 공장

일루리사트의 개썰매 공장에서는 아직도 전통 방식으로 개썰매를 만든다. 개썰매는 크게 두 종류, 즉 사냥용과 고기잡이용으로 나뉘며 제작 방식도 약간 차이가 있다. 고기잡이용 개썰매는 약간 비틀려져 유연함이 적은 반면에 아주 단단하다. 얼어붙은 빙판을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냥용이나 운반용은 비틀림이 크게 주어 유연성을 최대한 살린다. 평지보다는 산길을 더 많이 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종류 모두 어디 한 군데라도 쇠못을 박지 않고 나무나 끈으로 자연스럽게 잇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휘어질지언정 결코 부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개썰매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대학교는 없다)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개썰매와 카약을 만드는 6주 코스의 강좌가 있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이게 탐험대가 탈 썰매요.” 개썰매 장인인 닉이 손가락으로 커다란 썰매 하나를 가리켰다. 이야, 잘 빠졌다! 정성스럽게 깎고 다듬은 썰매 앞쪽에 ‘HONG SUNG TAEK’이라고 이름까지 직접 새겨놓았다. 개썰매는 2인용이 일반적인데 홍 대장이 주문한 것은 4인용으로 조금 더 크다. 가격은 우리 돈으로 140만 원 가량 된다.


이제 열여섯 마리의 개들이 이 썰매를 끌고 2천 킬로미터가 넘는 북극의 설원을 행군하게 될 것이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흥분과 불안이 동시에 밀려온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고, 여기 사람들조차 가본 적이 없다는 해발 2,000미터의 얼어붙은 길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전통의 방식으로 썰매 날을 손질하는 이누이트

새로 제작된 개썰매를 시험하고 있는 탐험대



눈밭 위의 시트콤 – 원정대의 개썰매 훈련

드디어 개썰매 훈련에 돌입했다. 가장 선배인 정기화 대원과 홍성택 대장, 그리고 정동영, 배영록 대원 모두가 훈련에 참가했다. 앙아유가 빠진 상태에서 우리 대원들끼리만 수행하는 첫 훈련이라 내심 걱정도 되지만 결국 2천 킬로미터의 빙판을 행군해야 할 당사자들이니 이제부터는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날, 정기화 대원이 뭐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그 소리를 출발신호로 잘못 알아듣고 썰매개들이 일제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정기화 대원은 개 줄을 붙잡은 채 수십 미터를 끌려가고 말았다. 말이 끄는 힘을 마력(馬力)이라 한다면 견력(犬力)은 개가 끄는 힘이다. 북극 썰매개 열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발휘하는 ‘16 견력’을 어찌 감당하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개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길길이 날뛰는 개들을 일일이 잡아서 다시 묶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날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도망간 개들을 잡느라 분주한 탐험대원들


둘째 날, 썰매를 잡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던 홍 대장이 그만 미끄러지는 바람에 개들이 썰매만 끌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 비록 훈련 상황이긴 하지만 이건 정말 엄청난 사고다. 만일 원정 도중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모든 장비와 식량을 실은 채 개들이 사라져버린다면 그것은 곧 조난이고 죽음이다.


달려가서 보니 썰매는 부서지고 개들은 줄에 뒤엉킨 채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고 있었다. 녀석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방인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울부짖었다. 홍 대장은 마치 빙산처럼 무너져 내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원정의 성패는 개들에게 달렸다.” 맞는 말이었다. 이미 에베레스트와 북극, 남극 등 지구 3극점을 모두 정복한 홍 대장을 비롯하여 대원들 모두 고산 등반과 극지 원정의 베테랑들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그 어떤 탐험보다 이번 원정이 어려운 것은 바로 썰매개들 때문이었다. 헬기나 식량, 장비 따위는 (비록 엄청 비싸지만)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나 야성의 유전자를 지닌 그린란드 썰매개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들로부터 신뢰와 복종을 얻어내는 것은 결코 돈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끝없는 도전과 반복,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신호를 어기고 먼저 출발하는 썰매개들

앞장서서 썰매개들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홍대장



셋째 날, 홍 대장이 제법 현지인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아직은 한참 어설픈 솜씨지만 그래도 썰매개들에게 ‘까(달려)!’, ‘우넹잇(정지)!’ 번갈아 외치며 3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렸다. 개들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와 거품이 나왔다. 행군이 거듭될수록 개들과 홍 대장은 서로의 존재를 조금씩 알아가는 듯했다. 채찍을 휘두르는 홍 대장과 대원들의 얼굴도 어느새 원주민처럼 검게 변해가고 있다. 탐험이란 낯선 곳을 알아가고 낯선 존재와 서로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그런데 썰매개들도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있을까?’ 훈련 과정에서 우스꽝스럽게 펼쳐지는 ‘눈밭 위의 시트콤’이 앞으로의 본격적인 원정에서는 ‘설원의 드라마’로 완성되길 기대해본다.

“내 이름은 나노끄” 그린란드일루리사트에서 머물던 83일 동안 그곳 원주민들은 나를 이렇게 불러주었다. 나노끄(Nanoq), 그린란드 말로 북극곰이란 뜻이다.

만년설에 덮인 채 오랫동안 잊혀져 온 이 거대한 얼음 나라에서 나는 석 달간 나노끄로 불리며 살았다. 그린란드 내륙의 하얀 사막, 그 광활한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일루리사트의 빙산은 한없이 크고 비장했으며, 설원을 내달리는 북극 썰매개들은 지상의 그 어떤 동족보다 강하고 날렵했다. 물개와 고래, 넙치를 잡으며 살아가는 그린란드 원주민들은 결코 빙하의 질서를 거스르는 법이 없었고,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그렇듯 일루리사트 곳곳마다 가슴 절절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북극의 여름, 어둠을 빼앗긴 그 백야의 밤과 낮 동안 나는 잠 없이 꿈꾸는 법을 배웠고, 말없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이 이야기는 83일간 한밤의 태양 아래서 기록한 그린란드 견문록, 일루리사트의 이야기이다.

일루리사트 앞바다에 펼쳐진 첩첩빙산

첫 사냥

탕! 한스가 총을 쏘았다. 탕탕!
리니의 총구에서도 연기가 났다. 그러나 둘 다 빗나가고 말았다. 물개는 잽싸게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물개가 나타났던 지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배를 몰았다. 물개들은 대략 5분에서 15분 사이에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총소리에 놀라 제대로 숨을 못 쉬었을 테니 녀석이 다시 물 위로 올라올 시간 간격은 더욱 짧을 것이다. 빙산 사이로 메아리치던 총소리가 잦아들자 이내 정적이 감돌았다.

물개를 겨냥하고 있는 이누이트 사냥꾼. 이들은 먼 거리에서도 물개의 머리를 정확히 포착한다.

초대형 빙산들이 점령한 일루리사트의 바다. 사냥꾼들은 빙산 사이로 배를 몰며 사냥한다.



일루리사트의 바다는 ‘첩첩빙산’이다. 작은 얼음덩어리부터 도시의 한 블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거대한 부빙까지 그야말로 거대한 빙산의 공동묘지와도 같다. 물개 사냥꾼인 두 명의 이누이트 사나이들은 숨을 죽인 채 예리한 눈매로 바다를 주시했다. 이누이트 어부들은 바닷새의 시력을 가졌다. 까마득한 거리에서도 그들은 정확히 물개의 머리를 확인할 수 있다.


탕탕! 다시 총소리가 울렸다. 사냥꾼들은 물개가 고개를 내미는 4초 정도의 시간 안에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한스와 리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번엔 명중이다. 수정처럼 파랗던 바다 위로 갑자기 붉은 피가 번지기 시작했다. 한스는 재빨리 보트를 몰았다. 총에 맞았더라도 물개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면 말짱 헛일이기 때문이다. 한스가 얼른 꼬챙이로 물개를 낚아채자 옆에 있던 리니는 확인사살을 위해 총을 두 방 더 쏘았다. 이제 물개를 완전히 잡은 것이다. 제법 큰 녀석이라 두 사냥꾼은 서로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잡은 물개를 빨리 해체해야 한다며 평평한 부빙을 찾아 배를 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빙산에 갇혀 파도조차 일지 않는 바다 위로 널찍한 부빙이 보였다. 부빙 위로 올라서자마자 한스는 노련한 솜씨로 물개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작은 손칼 하나만으로 80여 킬로그램에 달하는 커다란 물개를 부위 별로 완전히 해체하는 데에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일루리사트 최고의 물개 사냥꾼다운 솜씨다.

그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멍하니 둘러서서 지켜볼 뿐이었다. 한스는 고기 몇 점을 잘게 나누어 갈매기들에게 던져준 뒤 따로 모아둔 고깃덩어리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당신네 탐험대 개들에게 갖다 먹이시오. 녀석들이 아주 좋아할게요.”

바다 위의 평평한 부빙 위에서 물개 해체 작업을 하고 있는 이누이트 사냥꾼 한스.

물개 해체 시간은 대략 1~2시간가량, 능숙한 사냥꾼들은 1시간 이내에 해체가 가능하다.


그린란드 탐험대

한국인 최초, 아니 세계 최초의 ‘그린란드 개썰매 종단’이 성사되기까지는 2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홍성택 대장과 정기화, 정동영, 배영록 대원, 이들 네 명의 한국인 탐험가들은 앞으로 석 달여에 걸쳐 개썰매를 타고 그린란드 북극권의 눈 덮인 빙원을 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대기록을 위한 원정이나 정복으로서의 탐험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라는 현지인의 독백처럼 해빙의 속도와 양이 점점 가속화되는 그린란드의 동토를 행군하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지구온난화’라는 말보다는 생생한 증거를 통한 살아있는 현장 보고서로서의 탐험을 기획해온 것이다.


이 역사적인 원정을 위해 탐험을 꿈꾸는 자들과 그 꿈을 지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꿈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모여 한 덩어리가 되었고, 2011년 봄에 비로소 선발대와 본대, 그리고 취재팀과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형성되었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베이스캠프 매니저. 본격적인 원정에 앞선 전초작업, 즉 2천여 킬로미터가 넘는 긴 루트에 대하여 한 편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대한민국 그린란드 원정대와 다큐멘터리 촬영 팀



‘빙산’이라는 이름의 도시, 일루리사트

그린란드의 서쪽, 북위 69도 지점에 위치한 일루리사트는 거대한 아이스 피오르드 끝자락에 위치한 해안 마을이다. 이미 5천 년 전부터 원주민 이누이트들이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며 살아오던 이곳이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고, 그린란드의 세 번째 도시이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손꼽히게 된 이유는 바로 얼음 때문이다. 지명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일루리사트는 그린란드어로 ‘빙산’이라는 뜻) 오늘날 이 지역의 빙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이동하며, 가장 많은 양의 빙산을 바다로 내보내고 있다. 하루에 40미터씩 이동하는 빙하가 시시각각 쏟아내는 빙산의 양은 뉴욕 시민들이 1년 동안 쓰는 담수의 양과 맞먹는다. 그런 까닭에 일루리사트는 본의 아니게 지구온난화의 바로미터 역할을 떠안게 되었으며, 수천, 수만 년 세월 동안 얼어붙어 있던 거대한 빙산이 마지막 신음소리를 내며 쩍쩍 떨어져 내리는 최후의 광경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눈과 빙산으로 에워싸인 일루리사트 전경

200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세르메끄 쿠야레끄(Sermeq Kujalleq)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세계 최대의 빙하지대이다.



백야의 바다에서

해가 지지 않는 일루리사트의 저녁 바다,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먼 옛날, 지금처럼 이곳에 첫 눈송이가 내리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 육면체였던 눈송이는 이틀 뒤에 부서지고 윤곽이 흐려지다가 열흘이 지나면 낱알 같은 결정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점점 결이 조밀해지다가 3년 뒤에는 비로소 만년설이 된다. 그 이후로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 지도를 온통 하얗게 뒤덮은 그린란드의 내륙빙하가 형성된 것이다. 이제 그 위를 우리 탐험대가 걷게 된다.

내륙빙하의 끝자락, 백야의 바다 위로 성산일출봉처럼 거대한 빙산이 떠있다. 저 빙산들 대부분은 천천히 떨어져 나와 언젠가는 바다로 합쳐지겠지만 가끔 최후까지 살아남은 빙산이 있어 아주 멀리까지 여행을 하기도 한다. 빙산은 멀리 대서양으로 떠나고, 우리 탐험대는 반대로 그 빙산이 태어난 곳, 내륙의 빙하지대로 거슬러오를 것이다.


탐험대가 출발하고 나면 나는 베이스캠프에 남게 된다. 그리고 이동 좌표 확인, 보급품 조달, 에어드롭을 위한 헬기 확보 등 매니저로서의 업무를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만의 문화를 배워가며 그린란드의 여름 한 철을 직접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의 그린란드 탐험이 되리라.

일루리사트, 백야의 바다

 

임마까(Immaqa), This is Greenland!

오랜 기다림도, 간절한 출발도 모두 그린란드의 하늘이 결정한다.

탐험가들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도착이 아니라 출발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설원을 걷는 일은 자기 의지의 몫이지만 출발 전 아직 속세에 머물 때까지는 돈과 환경 등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탐험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탐험가들은 예상치 못한 수많은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문센, 스코트, 섀클턴……, 그들은 모두 영웅이 되기 이전에 탐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신뢰를 지닌 인물들이었고, 그 모든 변수들을 극복한 사람들이었다. 어디 돈 문제뿐이랴? 생각지도 못한 천재지변이 시시때때로 탐험대의 발목을 잡는다. 예를 들면 우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원정 출발을 하루 앞둔 2011년 5월 24일, 대원들이 아직 단잠에 빠져있을 때 나는 혼자 숙소를 빠져나왔다. 현지 항공예약 대행업체인 WOG(World Of Greenland)에 가서 헬기 예약만 확인하고 나면 다 끝난다. 헬기가 대원들을 출발지에 내려주면 그때부터 남쪽으로 고도 1,500m까지 이동한 뒤 그린란드 정부가 허락한 최남단 지점인 북극권(Arctic Circle, 북위 66도 33분)을 찍고, 다시 방향을 바꿔 북위 80도까지 올라간 후 남서쪽의 까낙(Qaanaaq)에서 마무리되는 약 2,500킬로미터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 내일이면 출발이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헬기는 못 뜹니다.” “어어, 왜죠?”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때문에 운항이 전면 취소됐어요.”
“그럼 언제쯤 운항이 재개됩니까?” “글쎄요, 사흘 뒤? 일주일 뒤? 알 수 없죠.”


오 마이 갓! 하늘이 길을 안 열어준단다. 무릎이 팍 꺾이고 눈앞이 캄캄해진다. 출발이 하루 지연될 때마다 대원들의 사기뿐만 아니라 경비 문제까지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하루하루 상승하는 기온 때문에 빙원이 녹아 운항에 큰 차질까지 빚어질 것이다.

운항이 정지된 일루리사트 공항 대합실. 물개가죽으로 만든 의자만 휑하다.

하염없이 서서 기다리는 승객들. ‘언제쯤 저 비행기가 뜰까?’

숙소로 돌아와 대원들과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아이슬란드 화산재를 우리가 어찌해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25일,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26일, WOG에서 내일 출발할 수도 있다는 연락이 왔다. 27일, 일루리사트의 모든 항공기 운항이 다시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아이슬란드 화산재가 북대서양과 그린란드 전역에 퍼져 있단다. ……지친다. 중단 없이 나아가는 것만이 탐험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막연한 기다림을 이겨내는 것도 탐험인 것 같다. 28일, 일반 항공기들은 운항이 재개되었지만 헬기 운항은 아직 불가능하단다. 항공기는 되고 헬기는 왜 안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에어그린란드 측에 항변을 하고 내일이면 가능하냐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임마까’ 한 마디뿐이었다.


“Immaqa, This is Greenland.” 이슬람권에 ‘인샬라’가 있다면 그린란드에는 ‘임마까’가 있다. ‘아마도’란 뜻이지만 ‘하늘의 뜻대로’라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와는 달리 현지인 탑승객들은 현재의 상황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임마까 라이프스타일이 몸에 밴 것이다. 에어그린란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는 누구도 보상받을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자연’적으로 재해를 입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어디다 항변할 수도 없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만큼 그 힘도 절대적이다.


“그린란드를 탐험하기로 했으면 이 정도쯤은 예상하고 왔어야죠.” 항공사 여직원이 말했다.

그래, 여긴 그린란드구나. 이상하게도 그제야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탐험이란 자연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순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들도 어쩌면 하늘이 길을 열어줄 때까지 좀 더 철저하게 탐험 준비를 하라는 신호일 것이다.

운항이 정지된 일루리사트 공항. 그린란드 항공은 잦은 결항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에게 ‘임마까 에어라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한다.




하늘이 길을 열어주다

헬기가 언제 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장비를 점검하고, 개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마침 동물병원의 수의사인 산느(Sanne)가 들판에서 다른 썰매개들에게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고 있었다. 우리 썰매개들도 이미 예방접종을 마친 상태였다. 이곳의 광견병은 주로 북극 여우에 의해 걸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광견병에 걸리고 나면 개의 성질이 정반대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즉 온순했던 개는 공격적으로 변하고, 터프한 개들은 범생이가 되는 것이다. 광견병……, 혹시 날씨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북극여우가 화산재로 가로막힌 하늘을 깨물어서 날이 화창하게 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해봤다.

헬기가 언제 뜰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일일이 장비를 확인하고, 에어드롭 일정과 위급상황에 대한 준비 등을 최종적으로 체크하고 있던 차에 항공사 측과 연락이 닿았다. 잘하면 내일 헬기가 뜰 수 있을 것 같단다. 물론 ‘임마까’를 전제로 하는 얘기지만 그래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곳에 온지 벌써 20여 일이 지났고 원정 본대가 도착한지는 보름이 지났다. 한국으로부터 약 8,000km 이상 떨어진 이곳에서 다시 먼 길을 떠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2011년 5월 29일 드디어 하늘이 길을 열어준 날, 우리는 새벽부터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공항에서 핀란드 출신의 헬기 조종사 피터(여긴 피터가 참 많다)와 에어드롭에 대해 논의했다. 가능한 한 에어드롭 2회만으로 끝내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지만 썰매의 부피 때문에 3회에 걸쳐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8시 35분, 헬기가 떴다. 헬기 주제에 구태여 활주로 방향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방향을 잡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약 20분 뒤 헬기가 갑자기 선회하기 시작했다. 어? 느낌이 좋지 않다.


“왜 방향을 틉니까?” “돌아가야 합니다. 기상 악화로 착륙 지점을 찾을 수가 없어요.”


철렁, 또 심장이 내려앉았다. 두다다다…… 프로펠러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헬기 아래로 설경이 펼쳐졌다. 무지막지한 빙하와 크레바스, 급경사의 얼음덩어리들이 구름과 눈보라와 안개에 뿌옇게 가려져 있었다. 한 마디로 ‘접근불가’였다.

내륙빙하 끝자락의 크레바스 지역. 거대한 빙벽과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바다와 내륙빙하의 접경지역. 저 멀리 구름 아래로 내륙빙하가 펼쳐져 있다.

공항으로 되돌아온 뒤 조종사 피터와 논의를 시작했다. 대원들과 기자, 그리고 열여섯 마리의 썰매개들은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기다림에 지쳐있었다.


“12시쯤이면 기상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은 50%인데 어떡하시겠습니까?”


피터가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는 헬기가 회항할 경우 회항 비용까지 지불해야 한다. 이미 너무 많은 지출이 있었지만 나는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일단 해보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없을 테니까.

12시, 1차 선발조가 다시 헬기에 올랐다. 남쪽 방향으로 날아갈수록 구름은 점차 걷히고 있었다. 이륙 40여 분 뒤 피터가 “착륙하겠다!”고 했다. 착륙이라, 이 얼마나 반가운 말인가! 잠시 뒤 우리는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사막 위에 두 발로 섰다. 눈 덮인 평원 사이로 조금씩 만년 빙하의 청빙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눈밭에 엎드려 청빙에 입을 맞추었다. 차가운 얼음일 뿐이지만 수만 년의 농축된 자연이 내 몸 안으로 빨려 드는 것 같다.

선발 대원들을 내려두고 다시 헬기에 올랐다. 2차 에어드롭은 썰매개들을 이송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 길길이 날뛰는 녀석들을 달래가며 겨우 헬기에 태웠더니 그 좁은 공간에서 열여섯 마리가 쉴 새 없이 싸워댔다. 가까스로 진정시킨 뒤 헬기를 떠나보낸 뒤 혼자 공항에 남았다. 이제 썰매를 운송하는 3차 에어드롭만 남았다. 썰매는 부피가 너무 커서 헬기 양쪽 문을 열어놓은 채로 날아야 했다. 시속 200km로 북극 상공 1,500m를 날아가는 동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찢어놓는 것 같았다. 카메라를 쥔 오른 손은 감각이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찍었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빙하를 배경으로 내 발을 찍고, 준비해 간 콜라병도 찍었다. 미친 듯이 찍었는데 정말 미친 짓이었다. 도착할 때쯤엔 몸이 거의 다 얼어 있었다.

헬기에서 찍은 사진. 가까워 보이지만 발아래 빙하까지는 1000미터가 넘는다.

내륙빙하에 첫발을 내딛는 썰매개

북위 68도 52분 23초, 서경 49도 21분 33초.

14일 간의 적응 훈련, 4일의 막막한 기다림, 기상 악화로 인한 출발지 변경, 그리고 3차에 걸친 에어드롭 끝에 드디어 출발지에 도착한 것이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원정 성공을 기원한 뒤 드디어 탐험대가 출발했다. 나는 헬기에 올라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대원들의 모습은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잉크자국이 되어 점점 멀어져갔다. 앞으로 60일 정도 예상되는 기나긴 여정, 우리 대원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건강하게 무사하게 다 돌아오기만 바랄뿐이다. 오늘, 그린란드의 하늘이 우리의 출발을 허락했듯이 탐험의 성공도 하늘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는 그저 계획한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 그린란드의 대 설원 위에는 이들의 발자국이 찍힐 것이다.

텅 빈 숙소로 돌아오자 피로가 몰려왔다. 대원들은 모두 떠났지만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베이스캠프 매니저는 걷지 않는 탐험대원이다. 행군하는 대원들과 똑같은 호흡으로 매순간 상황을 체크하고 그때그때 전략을 짜야한다. 이 희귀한 역할을 맡은 뒤부터 나는 매일매일 마치 영화감독처럼 한 편의 드라마를 쓰고 지우는 버릇이 생겼다. 기다란 그린란드 지도 위에 탐험대가 지나게 될 루트를 그려보며 언제, 어디쯤에서 에어드롭을 해야 할지, 썰매개의 체력으로 하루에 얼마나 달릴 수 있으며 어느 지역에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을지, 발생 가능한 모든 일들을 미리 예측하고 그때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궁리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 쉬고 싶다. 남아있는 오늘의 몇 시간들은 나만의 그린란드 여정을 정리하면서 보낼 것이다.


2011년 5월 3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지 어느덧 26일이 지나고 있었다.

세 명의 탐험대원과 열여섯 마리의 썰매개들이 북극권의 빙원을 행군하고 있을 시각, 나는 일루리사트의 항구를 걷고 있었다. 주로 새우나 넙치를 잡으며 살아가는 일루리사트 사람들은 이 항구에서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5월의 일루리사트 항구. 얼음에 묶인 배들이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얼음대륙의 섬마을

항구는 배가 드나드는 곳이고 배는 물이 있어야 뜰 수 있지만, 그린란드의 5월 말 아직도 꽁꽁 언 일루리사트 항구는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멈춰’있었다. 얼어붙은 부둣가의 빙판 위에는 고기잡이배들이 얼음에 반쯤 먹힌 채 여기저기 제멋대로 흩어져 있고, 빙판과 바다가 만나는 접경에 이르러서야 몇몇 배들이 조심스럽게 얼음을 헤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좀 있으면 요란해질 게야.” 오래 전부터 일루리사트에서 제일 큰 어구상을 운영해오고 있는 니콜라이 할아버지가 항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구상에는 그물이며 로프, 옷, 장화, 장갑 낚싯대…… 없는 게 없다.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물건 값을 깎아보고 덤으로 장갑을 받기까지 했다. 그동안 탐험대의 물품을 준비하느라 이 어구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었던 곰 같은 ‘한국 이누이트’를 귀엽게 봐주신 모양이다. 니콜라이는 다시 턱짓으로 항구를 가리키며 환갑이란 나이답지 않게 ‘예쁜’ 영어로 말했다.

“일루리사트는 항구 때문에 숨을 쉴 수 있지. 갈수록 항구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

겨울잠을 자던 배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고 있다.

항구가 중요한 까닭은 그린란드의 다른 도시들처럼 일루리사트도 사실상 ‘섬’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랜 옛날 이누이트들은 물을 구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배를 띄울 수 있는 곳을 찾아 마을을 이루었다. 그러나 마을들 대부분이 해안을 따라 형성된 탓에 바다 쪽은 빙산에 둘러막히고 내륙 쪽은 만년 빙하로 뒤덮여 있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로라고는 애초부터 생겨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개썰매는 더없이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륙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개썰매 운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그만큼 항구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이다.


“항구가 지금은 저렇게 얼어있지만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되면 영 딴판으로 바뀔 걸세.” 니콜라이의 말은 6월이 되어서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겨울잠을 끝낸 항구

5월, 얼음이 녹기 전의 항구 풍경

6월, 얼음이 녹은 후의 항구 풍경

6월, 생애 처음으로 북극에서 맞는 여름이다. 일루리사트의 여름은 요란한 크레인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이른 아침부터 옆집에 커다란 크레인 트럭이 나타나 우르릉거리며 배를 실어 올리는 것이었다. .

“뭐 하는 거죠?” 나는 큰소리로 주인에게 물었다.


“바다에 배를 띄워야죠. 여름이니까.” 그러는 사이 배를 다 실은 크레인 트럭은 눈 녹은 길을 달려 항구 쪽으로 사라졌다.

그린란드에서는 배들도 겨울잠을 잔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크레인 트럭을 불러 바다에 떠있던 배들을 육지로 끌어올린다. 그때부터 배들은 눈 속에 파묻힌 채 긴 휴식에 들어간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다시 크레인 트럭이 내륙과 항구를 분주히 오가며 배들을 하나둘씩 바다에 띄운다. 배를 한 번 싣고 내리는 데는 300~500크로네(6~10만원)정도라는데 일루리사트를 통틀어 크레인 트럭은 딱 3대밖에 없다. 그래서 크레인 기사들은 여름과 겨울이 겹치는 시기, 즉 얼음이 녹고 다시 어는 6월과 11월이 대목인 셈이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여름을 맞은 항구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마침 1박 2일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부를 만났다. 함께 배로 가봤더니 북극넙치가 한 가득이다. 생긴 게 광어는 광언데 엄청 크다. 이 녀석을 잡으려면 도마가 아니라 회의용 테이블이 필요할 것 같다. 얼씨구나, 나는 두 마리를 골랐다. 횟감으로 쓰려고 내장을 다 빼냈는데도 여전히 살아서 팔딱거린다. 남아있는 썰매개들에게도 만찬을 베풀고 싶어 열 마리를 더 골랐더니 전체 무게가 20kg를 넘는다.

“다 얼마죠?”

어부는 이런 경우가 처음인지 아주 난감해 한다. 그러더니 턱짓으로 ‘그쪽이 먼저 값을 말해보시구려.’한다. 표정이 여간 순박한 게 아니다. 내가 괜찮다고, 그냥 값을 말하시라고 몸짓으로 말했더니 약간 미안한 듯 280크로네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5만 6천원쯤이다. 정말 싸다! 얼른 300크로네를 주고 큰 넙치 한 마리를 더 얹어달라고 하자 그저 웃으며 그러라고 한다. 자연산 대형 광어 20kg을 6만원 돈으로 사다니, 대박이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일루리사트의 항구는 매일 매일 떨어져 내리는 빙산으로 인해 시시각각 풍경이 변하고 있지만, 어부들의 인정은 웬만해선 안 변하는 것 같다. (넙치 값도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

조심스럽게 첫 조업에 나선 넙치잡이 어부

갓 잡아 올린 북극넙치

계절이 바뀌자 니콜라이의 말처럼 항구는 펄펄 살아나기 시작했다. 넙치잡이의 계절답게 항구는 조업 준비를 하는 어부들로 활기가 넘쳤다. 니콜라이 할아버지가 옆에서 미소를 띠며 ‘거봐’하는 표정을 지었다.

“얼음이 예전만큼 많이 얼지 않는 게 오히려 어부들한테는 더 낫겠네요. 저렇게 배를 띄울 수 있으니까요.” “겉보기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배에서 잡은 고기는 너무 잘아.”

원래는 개썰매를 타고 피오르드로 가서 얼음낚시로 잡는 것이 전통적인 넙치잡이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잡은 넙치는 연안에서 잡는 것보다 크기도 훨씬 컸다고 한다. (어른 허리까지 오는 것들도 꽤 됐단다.)

“헌데 이젠 얼음이 녹아서 갈 수가 없다네. 아무래도 그때가 좋았어. 추워서 얼음이 꽁꽁 얼던 때가…….”

일루리사트의 어부들이 기온 상승을 달가워하지 않는 까닭은 또 있다. 빙산 때문이다. 여름은 얼음이 녹아 배들이 운항할 수 있는 계절이면서 동시에 빙산이 떼 지어 떠다니는 계절이기도 하다. 내륙에서 빙하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크고 작은 빙산들이 뚝뚝 떨어져 바다로 흩어지고, 바람에 떠밀린 빙산들이 병풍처럼 해안을 가로막으면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떠날 수 없게 된다. 그런 날이면 어부들은 항구에 모여앉아 푹푹 한숨을 쉬며 객쩍은 농담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빙산의 바다를 뚫고 항구로 들어오는 정기화물선

빙하가 실어온 새로운 선물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다. 항구가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얼음이 녹은 바다 위에는 배들이 가득하고, 마치 낚시터의 좌대처럼 물 위에 떠있는 해상 주유소도 바빠진다. 겨울 동안 얼음에 묻혀 있던 부둣가의 여러 구조물들도 하나둘씩 제 모습을 되찾으면서 항구는 쿵쿵, 일루리사트의 심장 역할을 시작한다. 여름이 되면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헬기 운항도 대부분 중지된다. 누구나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비싼 항공기를 이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점심 무렵, 일루리사트의 항구로 작은 배 한 척이 들어오더니 한 가족이 내린다. 오카추트에서 오는 길이란다. 여기서 북쪽으로 3, 40분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그동안 항구가 얼어서 오가지 못하다가 날이 풀리자마자 배를 띄워 쇼핑을 온 것이다. 잠시 후 커다란 정기여객선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리더니 마중 나온 사람들과 서로 끌어안고 흥겹게 인사를 나눈다. 2010년부터 누크와 일루리사트 사이를 오가는 정기 항로가 열리면서 항구는 더욱 분주해졌다고 한다. 겨울의 긴 휴식을 끝낸 정기여객선과 화물선들로 인해 일주일에 한 번씩 일루리사트의 항구는 떠들썩해진다.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배들을 다시 바다에 띄워 그리운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계절, 일루리사트의 항구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신이 난다. 조업을 준비하는 어부들, 이웃을 마중 나오거나 배웅하러 온 사람들, 아이들을 태우고 소풍가는 사람들, 묵은 쇼핑을 끝내고 우유며 화장지며 온갖 생필품을 가득 싣고 떠나는 사람들, 관광객들을 태우고 빙산 투어를 떠나는 유람선들……,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꽁꽁 얼어있던 일루리사트의 항구는 기온이 상승해가면서 그 역할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개썰매와 고기잡이배들이 출발하던 항구였지만 이제 개썰매는 사라지고 관광객들을 실은 여객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여름철 내륙빙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빙산의 양 만큼 관광객들의 숫자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날은 대형 크루즈 유람선에서 일루리사트 전체 인구수 5천 명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내려 마을을 점령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외지인들을 맞는 주민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유람선과 고기잡이배가 함께 떠있는 일루리사트 바다

오랫동안 섬의 운명으로 살아온 일루리사트, 단지 원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서식처였던 이곳이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백야의 바다와 신비로운 모양의 빙산들, 그리고 강인한 그린란드 썰매개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 머지않아 일루리사트는 북극의 관광대국이 될 것 같다.

그린란드 중서부 항구도시인 일루리사트는 아이스 피오르드로 유명하다. 일루리사트 정착을 기념하는 기념비 아래 펼쳐진 바다 위로 빙하가 떠다니고 있다.
그린란드에서 맞는 첫 새벽이다. 어두워지지 않는 밤을 지나 새벽녘에도 창밖은 여전히 밝은 세상이다. 창가 커튼도 햇빛을 충분히 가리지 못한다. 지난 여행지였던 아이슬란드에서는 그나마 암막 커튼이 있어 햇빛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린란드에서는 이불로 창가를 가리고, 또 다른 이불 아래 몸을 뉘었지만 어둠도, 잠도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마을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개들의 울부짖음이 다가오던 잠을 쫓아낸다. 썰매를 끌지 않는 여름 한철이 무료한 듯 수시로 짖어댄다. 덩치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늑대를 닮은 그들의 울음소리는 도시 여행객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주인이 썰매견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그린란드 여름은 기온이 섭씨 20도까지 올라가며 북극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따뜻하다. 하지만 지지 않는 태양과 울부짖는 개들, 그리고 극성스러운 모기떼를 이겨내야 한다. 짧은 여름이 지나면 태양은 사라져가고, 개들은 설원을 달리느라 바빠진다. 길고 긴 겨울에는 사라진 태양과 영하 30도에 가까운 추위에 적응해야 한다.
여름철에만 볼 수 있는 일루리사트의 녹지대와 황색풀꽃.
여름과 겨울을 오가는 상념을 뒤로하고 숙소를 나섰다. 그린란드로 이주한 덴마크인 가이드와 함께 일루리사트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린란드 관광산업 종사자는 대부분 북유럽인이다. 특히 덴마크 사람들이 많다.

시내 곳곳에서 습지와 늪에서 발견되는 북극 황색풀이 보이는 일루리사트 전경.

가이드와 함께 걸어가는 곳곳에 개들이 모여 낯선 이방인을 주시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주인이 먹이를 나누어 주고 있다. 먹이는 고기가 귀한 지역인 만큼 생선이 주를 이룬다. 특히 여름에는 먹이를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준다고 한다. 매일 주기도 어렵지만 할 일 없는 여름에 힘이 남아돌게 되면 서로 싸우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심하면 싸우다 물려 죽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밤새도록 그렇게 울부짖는 이유가 배고픔 때문인 것 같아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역시 알래스칸 말라뮤트는 설원을 질주하는 모습이 가장 어울린다.
일루리사트의 관광안내소. 이곳은 투어프로그램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다.

그린란드에서 개는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이자 생계수단이다. 사납고 힘이 좋은 그린란드 개들은 촘촘하고 굵은 이중 털로 덮여 추위에 강하다. 지칠 줄 모르는 힘과 인내심으로 2700여년 전부터 극한 날씨에서 인간을 태우고 썰매를 끌어왔다. 원주민 이누이트들은 개 덕에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이동과 사냥을 하면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얼어붙은 바다로 나가 낚시와 바다표범 사냥을 한 것이다.
거리에서 놀고 있는 원주민 이누이트 어린이.
스노모빌이 등장해도 설원을 여행하는 개썰매는 여전히 가장 주요한 운송수단이다. 그린란드에서는 스노모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환경문제와 함께 높은 연료비, 고장 시 대처방법의 부재 때문이다. 개들은 한두 마리가 다쳐도 서로 역할을 나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여름에도 정성껏 돌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개들 주위에는 날렵한 모양의 썰매들이 놓여 있다. 소재만 바뀌었을 뿐 과거 이누이트들이 타던 썰매 모양과 원리는 그대로다. 혹독한 자연에 맞서온 인류의 지혜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을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개들은 썰매를 끌지 않는 여름 한철이 무료한 듯 수시로 짖어댄다.

개들이 모여 있는 들판을 지나 쿤드 라스무센 박물관으로 향했다. 덴마크계 탐험가이자 민속학자인 라스무센은 일루리사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썰매를 이용해 아메리카 북극권을 횡단했으며 광대한 북극지역에 사는 거의 모든 이누이트 부족들을 연구하고 책으로 발간해 세상에 알렸다. 어머니가 이누이트였던 라스무센은 그린란드 이누이트의 기원을 알고자 했고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고자 했다. 박물관은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를 개조해 만들어졌다. 그가 만난 이들의 사진과 그 당시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라스무센 박물관을 지나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들과 저인망 어선들이 가득 차 있고 배들 주위를 빙산들이 유유히 흘러다니고 있다. 그린란드 어업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이곳의 풍부한 어종과 어획량의 비밀은 빙산에 있다. 빙산에는 많은 양의 육지 미네랄이 포함돼 있어 바다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빙하가 바다로 떨어져 나오면서 육지의 영양분을 바다로 운반하는 것이다. 이 미네랄 덕분에 일루리사트 앞바다는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각종 물고기와 최종 포식자 고래가 모여든다. 그린란드 빙산이 이 황량한 얼음 왕국에서 수천년 동안 인류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어획한 고래를 부위별로 팔기 위해 자르는 모습.


빙산과 어선이 공존하는 전경은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강한 햇살 아래 다양한 깃발의 배들이 얼음덩어리들과 어우러져 맑은 바다 위에 떠 있다. 현실성 없이 느껴지는 모습이 새롭다.
바다에 빙하가 떠다니는 일루리사트 전경.
일루리사트 항구에는 고래잡이를 나가기 위한 어선과 보트들이 가득 차 있다.

부둣가 위에는 작은 공방이 있다. 고래 뼈를 다듬어 생활용품 및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고 있다. 상아와 같은 느낌의 단단한 목걸이 열쇠고리들이 눈에 띈다. 공방을 지나자 고래 턱뼈로 만들어진 커다란 아치가 나온다. 3m를 훌쩍 넘는 고래 턱뼈 앞에는 커다란 그릇이 놓여 있다. 고래 기름을 짜던 실제 통이다. 모두 고래산업이 한창이던 시절의 유물들이다.
3m를 훌쩍 넘는 고래 턱뼈

시종일관 맑고 푸른 하늘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 허기가 밀려오는 것으로 저녁이 다가옴을 알 수 있다.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유명하다는 전통음식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린란드 전통식은 대부분 고래를 이용한 요리다. 소고기 느낌의 장조림 같은 고래고기를 비롯해 고래의 다양한 부위가 음식으로 나온다. 전통음식이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다고 해서 먹어봤지만 이방인의 입에는 잘 맞지 않았다. 질 좋은 맛있는 고기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그마저도 건강을 위해 줄여 나가는 시대에, 먹기 위해 고래까지 사냥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고래고기를 이용한 그린란드 전통음식.
포장에 귀여운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린란드 맥주.

식당 내에는 고래고기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와인에 기대 고래고기를 맛보고 남은 디저트로 저녁식사를 마치니 하루가 지나간다. 아직도 태양은 중천이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2차 에어드롭을 마친 뒤 탐험대 픽업을 위한 마지막 에어드롭까지는 약 20여 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썰매개들이 너무 지쳐 운행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느려졌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중순, 나는 촬영팀과 함께 탐험의 마지막 픽업 장소인 까낙으로 향했다.


자연 그 자체로 살아가는 까낙 사람들

사냥꾼들의 버려진 배 위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는 까낙의 꼬마들


지구 최북단의 마을인 까낙은 항공편도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고, 게다가 여름철에는 관광객과 극지 과학자들이 대거 몰려들기 때문에 티켓 구하기도 어려웠다. 에어그린란드 본부의 안느에게 사정을 해가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까낙 공항은 놀랍게도 활주로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이었다. 사실 어찌 보면 인구 600여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에도 공항이 있다는 것 자체가 더 놀라웠다. 하지만 지구 북단의 땅 끝 마을이라는 상징성을 생각해보면 관광객들을 위한 공항 하나쯤은 있어줘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지구 최북단 마을은 까낙에서 배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시오라팔루크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사람들의 표정은 순박하기 짝이 없고 차림새도 수수하다. 일루리사트 사람들도 굉장히 순박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예 투박한 자연 그 자체인 듯한 느낌을 준다.


까낙은 물이 귀하다. 마을 뒷산의 내륙빙하에서 녹아내리는 물을 저장할 상수도 시설이 없기 때문에 면사무소 격인 카운실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물탱크에 물을 채워준단다. 그래서 세탁이나 설거지는 물론 샤워조차도 남은 물의 양을 잘 계산해가며 사용해야 한다. (까낙의 숙소에 머리를 감다가 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샴푸를 수건으로만 닦아내기도 했다.) 수세식 화장실도 없다. 노란색 비닐봉투를 설치하여 변기로 사용하고, 다 채워진 봉투를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내놓으면 역시 월, 수, 금요일마다 카운실 차량이 다니며 수거를 해간다.


까낙 숙소를 빌려준 덴마크 출신의 지게차 기사 피터슨에게 ‘이런 곳에서 사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No Problem’ 하며 웃는다. 까낙에 사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런 것에는 불평을 하지 않는단다. 다만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와 그에 따른 사냥 환경의 변화를 가장 불편해 할 뿐이란다.

까낙 뒷산의 내륙빙하에서 녹아 흐르는 물

분뇨 봉투를 수거해가는 까낙 카운실 직원


까낙의 사냥꾼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우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던 마리우스부터 찾아갔다. 그는 까낙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곳 사냥꾼들에 대해서 잘 안다며 거침없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올해 마흔다섯 살인 마리우스는 10년 전 이곳 까낙에 와서 처음에는 투어 가이드를 했지만 이듬해에 사비시비크(Savisivik)로 거처를 옮겨 본인도 사냥꾼이 되었다고 한다. (사비시비크는 약 20여 가구에 48명이 살고 있는 까낙 남쪽의 사냥꾼 마을이다.)


까낙을 포함하여 이곳 북단 마을의 사냥꾼들은 겨울에 곰과 물개, 바다코끼리를 잡고 여름에는 일각고래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직 그것만이 이 극지마을에서 살 수 있는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냥이 몹시 힘들어졌다. 첫째는 더워진 날씨 때문이고 둘째는 정부의 쿼터제 때문이다. 북극 까낙 지역 전체 사냥꾼에게 정부가 허락한 북극곰 사냥 쿼터는 1년에 18마리뿐이고, 그나마도 얼음이 녹아서 방황하는 북극곰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한때 주 수입원이었던 물개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더 이상 내다 팔수가 없다. 예전에는 물개 가죽을 전 세계로 수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린피스 같은 단체들의 압력으로 인해 어느 나라도 수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어디선가 행해지고 있는 상업성 사냥과 서방세계의 편협한 시각으로 인해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사냥하는’ 이누이트 사냥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북극의 눈물이란 얼음의 눈물이나 북극곰의 눈물이기도 하지만 척박한 극지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의 눈물이기도 하다.


까낙에서 맞는 백야의 첫날 밤, 마리우스와 긴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마리우스, 지금은 여름이라 밤이 환하지만 겨울엔 어떤가요? 하루 종일 캄캄한 밤만 계속되는 그 시기엔 도대체 뭘 하면서 지내죠?”


그러자 마리우스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데, 그리고 하얀 눈이 있는데 어째서 캄캄한 밤이지?”

북 그린란드는 12월에서 2월까지 태양이 거의 뜨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 시기에 끝없는 밤이 계속될 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별과 달, 그리고 북극광과 눈이 있어 결코 캄캄하지 않다고 한다.




내추럴 본 헌터

다음 날 아침 마리우스가 두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사냥꾼 마마우트와 기디언이었다. 다들 MBC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뿐만 아니라 BBC 등 세계적인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 단골로 출연할 만큼 까낙의 전통 사냥꾼들이다.


“저희 집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기디언이 약간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초대받은 것도 고마운데 운 좋게도 나는 그의 집 근처에서 썰매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까지 촬영할 수 있었다.


물개 고기를 잘라 던져줄 때마다 16마리 정도의 개들이 순서대로 받아먹는 모습은 놀랍기만 했다. 먹이를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일루리사트의 썰매개들에 비해 까낙의 개들은 뭐랄까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정예요원’ 같았다. 그리고 일루리사트의 개들에 비해 몸집은 조금 작았지만 머리는 더 컸으며, 짙은 갈색 눈에 아주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일루리사트 개들과는 느낌이 다른 까낙 썰매개

새끼 썰매개를 들고 있는 까낙 소녀


잠시 후 기디언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여기저기 곰 이빨과 일각고래 뿔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저 곰 이빨은 어디서 난 겁니까?”


그러자 기디언은 아무렇지도 않게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기절할 뻔했다. 냉장고 안에는 곰 머리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지난 봄 사냥에서 갓 잡아온 북극곰이란다. 껍질이 벗겨진 채로 냉동 보관되고 있는 곰 머리! 그제야 나는 여기가 북극 끝 마을 까낙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기디언은 우리 일행을 위해 그린란드 감자와 고래 스테이크를 내놓았다. (그레이비소스가 뿌려진 고래 스테이크, 정말 특별한 맛이다! 안심일까, 등심일까?) 식사가 끝난 뒤에는 다시 마마우트의 집으로 옮겨서 다함께 맥주를 마시며 그들이 출연했던 다큐멘터리를 감상했다. 기디언과 마마우트는 다큐에 출연했던 당시의 일들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50대 초반의 마마우트는 ‘노벨 사냥꾼 상’이라도 수여해야 할 만큼 전형적인 북극 사냥꾼이다. 예전에 개썰매 사고로 발목을 다친 뒤 몸집이 많이 불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 사냥꾼들의 맏형답게 몸에서는 여전히 헌터의 포스가 진하게 뿜어져 나온다. 사냥꾼으로서 그의 이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일각고래다. 그는 일찍이 86년, 88년, 2000년 무려 세 차례에 걸쳐 뿔이 두 개인 일각고래를 잡은 적이 있다. 바다의 유니콘이라 불리는 일각고래는 세계적으로 이곳 까낙 등지에서만 서식하는데 뿔이 두 개인 경우는 여기 사람들에게조차 희귀하다. 사냥꾼에게 반드시 필요한 담력과 용기, 지혜뿐만 아니라 행운까지 갖췄으니 그는 진짜 ‘Natural Born Hunter’인 셈이다.


우리는 마마우트의 안내로 바닷가에 있는 사냥꾼들의 클럽 하우스로 갔다. 거기서 마마우트는 새 카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곳 사냥꾼들의 삶은 단순하다. 일 년의 반은 사냥 준비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사냥을 하며 보낸다. 마마우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카약을 만드는 동안 그의 어린 딸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리고 그의 아내 뚜꾸믹은 저만치 떨어져 담배를 피우며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까낙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일각고래와 물개, 바다쇠오리 사냥을 떠난다. 물론 학교에서 여러 과목을 공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초 지식일 뿐 그들의 삶과 미래는 거의 대부분 북극 바다 위에 무한정 펼쳐져 있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족이었다.

마마우트의 집 벽에 걸린 뿔이 두 개 달린 일각고래 사진(1986년)



어느 원로 사냥꾼의 슬픈 회상

사냥꾼들과 헤어진 뒤 숙소까지 걷다가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다. 왠지 낯이 익다 싶어 유심히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북극의 눈물>에 출연했던 ‘우사깍’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온 탐험대라고 소개하자 그는 두 팔을 벌려 반갑게 포옹을 하더니 기어이 집까지 초대했다. 우사깍과 그의 아내 잉까는 내게 빵과 커피를 대접하며 시종일관 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50년 이상 살아온 우사깍 노인의 집

우사깍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필자


우사깍은 거의 평생을 사냥만 하며 살아온 진정한 북극 사냥꾼이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경험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지식과 연륜이 묻어나는 지혜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나는 이곳 출신이 아닐세. 원래는 피투픽에서 태어나 거기서 쭉 살았었지.”


그런데 1953년 어느 날 갑자기 덴마크 정부로부터 난데없이 강제이주 명령이 떨어졌단다. 이유 불문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그곳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버리고 무조건 떠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3일이었다.


“왜 내쫓은 거죠?” “거기다 미군 기지를 짓기로 했거든. 그게 이유일세.”


결국 오늘날의 까낙은 미군 기지에 쫓겨난 사람들의 또 다른 정착촌이었던 것이다. 우사깍은 그렇게 이곳 까낙으로 왔고, 억울하게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던 그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1968년에 핵무기를 싣고 가던 것으로 추정되는 미군 비행기가 까낙 부근의 바다에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로 이 지역은 심각한 생태계 혼란에 직면하여 기형의 물고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도 이상한 질병이 생겼다. 그러나 미군 당국과 덴마크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사깍은 그동안 모아온 수많은 근거 자료를 가지고 덴마크 대법정까지 갔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두 사건 모두 국제 법정에 제소한 상태라네. 나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싸울 걸세.” 우사깍의 눈빛이 갑자기 청년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는 또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를 예견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인공위성 사진이나 여러 가지 데이터로 그것을 알지만 자기는 사냥꾼의 직감으로 이미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북극의 얼음 속에서 사냥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니 만큼 그의 몸과 머리에 저장된 환경변화의 데이터는 어떤 컴퓨터보다 훨씬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대화 도중에도 그는 계속 땀을 흘리며 힘들어했다. “나는 얼음 한복판에서 태어나 평생을 얼음 위에서 살았지. 그래서 내 몸은 이렇게 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아.”

인구 600여 명이 살고 있는 지구 최북단 마을 가낙 전경


지구 최북단 마을 까낙, 이곳은 혹독한 환경과 싸우며 거칠게 살아가는 사냥꾼들의 마을인 만큼 그린란드의 전통이 가장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누이트식 풍습이나 식습관 혹은 사냥방식만을 보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까낙이 간직한 진정한 전통은, 자연을 대하듯 숨김없이 가슴을 열어 생생하게 사람을 만나고 껴안아주는 이들 특유의 ‘만남의 방식’이리라.


백야의 늦은 밤, 나를 마치 아들처럼 대해주는 우사깍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은 뒤, 우리는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나의 아버지와 같은 해, 1944년에 태어난 이누이트 원로 사냥꾼의 손길은 더없이 따뜻하기만 했다.

고래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 어느 물고기보다 깊은 심해를 헤엄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물 위로 나와 ‘신화처럼’ 숨을 쉴 수밖에 없는 신비의 포유류, 그런데 이 고래들 중에서도 유독 신화적인 부류가 있으니 그게 바로 그린란드의 일각고래다.

일각고래 사냥을 떠나며 방향을 지시하는 사냥꾼 마마우트

일각고래는 이름처럼 기다란 외뿔(사실은 이빨이다)이 나 있어 전설의 동물인 유니콘에 빗대어 ‘바다의 유니콘’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희귀종에 속하는 일각고래는 북위 70도 위에서만 살아간다고 하는데 주로 북 그린란드의 까낙이 대표적인 서식지이다. 그래서 까낙의 원주민들은 대대로 일각고래를 사냥하며 살아왔다.

우리가 까낙에 온 첫 번째 목적은 물론 탐험대를 픽업하기 위해서였지만, 촬영팀의 가장 중요한 스케줄 목록에는 ‘일각고래 사냥’이 적혀 있었다. 북극의 자연과 신비를 상징하는 동물이 바로 일각고래이고, 세계의 여러 다큐멘터리 제작팀들이 촬영을 시도해왔지만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다행히 까낙 최고의 사냥꾼들과 친구가 되는 바람에 우리는 두 척의 배를 빌려 일각고래 사냥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사냥꾼 기디언의 가족

함께 사냥을 떠난 삐치(9살)와 한시네(5살)

나는 기디언과 그의 열네 살짜리 아들 하시무스와 함께 한 배를 탔고, 촬영팀은 마마우트 가족과 다른 배를 탔다. 주변은 피오르드 안쪽이라 온통 하얀 협곡과 만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계곡마다 얼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행은 약 1시간가량 배를 타고 나가 빙산에 닻을 내리고 두어 시간을 기다렸다. 무엇을 왜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열 마리도 넘는 물개들이 물 위로 고개를 쏙쏙 내밀곤 했다. 일루리사트였다면 벌써 총소리가 수없이 울려 퍼졌을 텐데 이 프로페셔널 고래 사냥꾼들은 물개 따위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충 아무 데나 총을 쏘아 물개 녀석들을 내쫓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다시 배가 움직였다. 그렇게 또 한 시간가량 정탐을 하다가 마침내 일각고래를 발견했다. 발견 즉시 기디언과 마마우트는 배의 시동을 껐다. 사방이 적막해지자 고래가 숨 쉬며 이동하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기디언이 먼저 곰털 가죽장화로 갈아 신더니 조심스럽게 카약을 내렸다. 그리고는 우나(창)의 손잡이를 점검하고 아바딱(물개 가죽으로 만든 튜브)에 바람을 넣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그는 아주 민첩하게, 그러나 유령처럼 소리 없이 고래 쪽으로 카약을 저어갔다. 고래와의 거리는 약 5km, 어느새 그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갔다. 마마우트도 다른 고래를 찾아 기디언과 반대 방향으로 카약을 젓기 시작했다.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두 사냥꾼의 소식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 기디언이 먼저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실패했음을 알렸다. 때마침 마마우트로부터 무전이 왔다.

“길라루왁(일각고래), 명중이다!”

우리는 재빨리 배를 몰아 그곳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기디언은 민첩하게 카약을 내리더니 일각고래 등에 두 번째 창을 꽂았다. 역시 명중이었다. 우리는 ‘와아!’하고 함성을 질렀다. 고래는 창과 연결된 두 개의 아바딱을 달고 물속으로 달아나야 한다. 하지만 농구공보다 훨씬 큰 아바딱 두 개를 끌고 잠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오는 횟수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 그 틈을 놓칠 리 없는 노련한 두 사냥꾼들은 가쁜 숨을 토해내며 올라오는 일각고래의 등에 또 하나의 창과 사냥총 두 방을 쏘았다. 바다 위에 붉은 피가 번지고 일각고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일각고래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지만 다시 사냥꾼들의 몸과 마음속으로 이어져 다시 그들과 함께 여전히 북극의 얼음과 바다를 누비게 될 것이다.

사냥총과 아바딱(물개가죽으로 만든 부표)

북극바다에서의 생을 마감한 일각고래

일각고래 사냥

굉장히 큰 고래였다. 뿔의 길이만 180cm에 몸집은 황소 두 마리 정도의 크기였다. 기디언과 마마우트는 고래의 몸에 칼자국을 내어 끈으로 묶은 다음 배에 연결하고 부표를 달아 근처 육지로 가져갔다. 해체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배에 탄 가족들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셨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린란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딱(고래껍질)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육지에 내리자마자 마마우트의 아내가 일각고래 옆구리 부분을 큼직하게 잘라서 가져오더니 ‘마딱!’이라고 소리쳤다. 고래 해체작업에 앞서 가족들이 먼저 시식을 하는 것이 원래의 풍습인 양 너도나도 칼을 들고 모여들어 마딱을 잘라먹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도 제각기 마딱을 한입씩 물고 제법 능숙하게 칼로 베어가며 맛있게 먹는다. 누군가 내 입에도 마딱 한 조각을 넣어주었다. 아, 이럴 수가! 질긴 것 같으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한 그 맛! 정말이지 참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한쪽에서는 마마우트와 사냥꾼들이 고래 해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갈라낸 위장에서는 새우들과 꼴뚜기 같은 작은 먹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각고래는 덩치에 맞지 않게 입이 작아서 먹이도 이렇게 작은 모양이다. 가장 귀한 부위인 마딱은 사각으로 잘라내어 따로 모아두고 고기와 염통, 내장은 들기 적당한 크기로 분리해서 배에 실었다. 커다란 몸집만큼 고기와 마딱의 양도 1톤이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어른 셋이 달라붙어 4시간 이상 땀을 흘린 후에서야 해체 작업은 모두 끝났다.

해체를 위해 육지로 끌어올려지는 일각고래

약 4시간 뒤 해체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공들여 해체 작업을 마친 다음 일행은 야영지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배에 올랐다. 그런데 가는 길에 또 한 마리의 일각고래를 발견했다. 하루에 두 마리의 고래를 만나다니,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었다. 연장자인 마마우트가 이번엔 동생 기디언에게 기회를 주었다. 기디언은 조심스럽게 카약을 내려 고래를 향해 나아갔다. 우리는 배 위에서 숨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고래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그로부터 약 10분 뒤 일행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기디언의 창이 명중했소.” 마마우트가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곧장 배를 몰아 기디언이 있은 곳으로 향했다. 기디언이 카약 위에 소리쳤다.

“명중했는데 워낙 큰 놈이라서 아바딱을 끌고 들어가 버렸어!” 두 개의 부표를 끌고 잠수하다니 정말 대단한 녀석이 잡힌 모양이다.

마마우트도 카약을 내리더니 창을 들고 주위를 감시했다. 약 15분 뒤 부표가 먼저 물위로 솟구쳐 오르더니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마마우트가 창을 날렸다. 명중이었다. 정말 엄청난 사냥꾼들이다. 두 번째로 잡은 일각고래는 처음 잡은 것보다 훨씬 크고 뿔도 길었다. 마마우트와 기디언이 우릴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소리쳤다.

“당신들 덕분에 오늘 횡재했소!”

까낙의 사냥꾼들이 여름 한철 시즌 동안 잡는 일각고래의 양은 아무리 많아야 열 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일주일, 열흘을 기다리며 바다를 헤매도 허탕 치고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그런데 오늘 사냥에 나선지 10시간 만에 대형 일각고래 두 마리를 잡은 것이다.

두 번째로 잡은 일각고래를 인근 야영지로 옮기고 있다.

자연을 닮은 이누이트 사냥꾼들의 삶

야영지로 향하는 배 위에서 촬영팀 스태프가 ‘일각고래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 농담처럼 내게 물었다. 나는 죽은 채 배에 묶여 있는 일각고래를 한참 바라봤다. 문득 고래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누이트 사냥꾼들이 창과 총으로 저 고래를 잡았을 지라도 그것 역시 자연 속에서 생존해가는 이들만의 방식이며 또한 자연의 일부분인 까닭에 고래의 죽음은 결국 자연사인 것이다. 사실 북 그린란드에서 사냥꾼들에게 잡혀 죽는 일각고래는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일각고래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특정한 시기에 피오르드 안쪽으로 모여든다. 그럼 빙산이 서서히 조여 들어 고래들을 가두게 되고, 결국 3천여 마리의 일각고래들이 그 안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다고 한다. 거스를 수 없는 그들의 거대한 자연사 속에 사냥꾼들의 사냥이 미미하게나마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어느덧 배가 야영지에 도착했다. 일행은 잡은 일각고래를 배 위에 묶어놓고 다 함께 야영을 준비했다. 우선 돌을 평평하게 깔고 그 위에 모래를 덮은 뒤 텐트를 쳤다. 이것이 바로 그린란드식 텐트인 ‘뚝박’이었다. 풀이 자라지 않는 자갈 위의 텐트, 그리고 저 멀리 눈 덮인 섬들과 피오르드, 바다와 빙산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해안에는 두 척의 배와 오늘 잡은 일각고래가 보인다. 그 신비로운 풍경 앞에서 우리는 마딱과 고래 염통을 삶아 생애 최고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곤 다들 피곤했던지 밥을 먹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백야의 하늘 아래 일각고래 사냥꾼 가족들과 나란히 누워 북극의 별을 바라본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일깨워주려는 듯 잔잔한 파도소리가 늦도록 귓전에서 살랑거린다. 뚝박 안에서는 사냥꾼의 아내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뜻을 알 수 없는 그린란드 말이 파도소리에 섞여 태고의 자장가처럼 아득하게 들려온다.

평화롭고 고요한 뚝박(그린란드식 텐트)에서의 하룻밤

다음 날 아침 일행은 다시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왔다. 해안에 배를 대자마자 개 짖는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벌써 냄새를 맡았군.” 마마우트가 웃으며 말했다. 일각고래는 뿔이 가장 귀하고 그 다음은 마딱이다. 그런데 고기는 어느 정도 먹을 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들에게 준단다. 놀랍다. 우리나라로 치면 최고급 한우를 개들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 한우보다 훨씬 더 귀하고 맛있는 일각고래 고기를 ‘개에게나 줘’버리다니!

“어쩔 수 없소.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적어서 어차피 판매할 수도 없소.”

어째서 창고를 더 많이 짓지 않는 걸까? 대형 냉동 창고를 지어서 오래오래 보관하면 안 되나? 그러나 그건 문명세계의 상업주의에 찌든 나의 생각에 불과했다. 까낙의 전통적인 사냥꾼들은 오래 전부터 오늘의 먹을거리를 위해 사냥을 했고 내일은 내일 몫의 사냥만이 있을 뿐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잡아 저장하거나 도시에 내다 팔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은 그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해체 후 잘려진 일각고래의 꼬리지느러미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꼬리지느러미 뼈

고래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귀한 양식이다. 어제 잡은 두 마리의 일각고래로 두 사냥꾼 가족은 모처럼 배불리 먹었고 그들의 이웃들도 마딱을 얻었다. 껍질과 고기와 내장을 모두 먹고 뼈만 남게 되면 그것으로 생필품 도구와 세공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고래 기름으로 불을 밝히기도 했다.

까낙이란 땅 끝 마을, 이누이트 전통 사냥꾼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일각고래 사냥, 이 모든 순간순간들 역시 내게는 버릴 게 하나도 소중한 체험이었다. 북극의 ‘자연’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내게는 너무도 거룩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마르지 않는 고래 기름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 오랫동안 타오를 것 같다.

탐험대가 출발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나만의 눈으로 그린란드를 만나기 시작했다. 비록 도착한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마음은 처음 그린란드에 내리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캉걸루수아끄((Kangerlussuaq) 국제공항. 누크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

나는 한국에서 온 그린란드 원정대입니다

인천공항에서 베이징을 거쳐 코펜하겐까지 14시간 반, 거기서 또 4시간을 날아 도착한 캉걸루수아끄(Kangerlussuaq)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다시 1시간, 마침내 시골 버스터미널처럼 작고 한갓진 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비로소 누크(Nuuk)라는 팻말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시계를 그린란드 현지시각으로 바꾸고 익숙했던 모국어의 감각을 버려야 할 시간이다.

2011년 5월 5일, 나는 그린란드에 도착했다. 한국은 어린이날을 맞았을 테지만, 거대한 해빙기가 시작된 이곳 그린란드에서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가격은 절대 깎아드릴 수 없습니다.” 수도 누크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그린란드 항공사, 거기서 처음 만난 차터(Charter) 담당 안느(Ane B. Jensen)가 말했다. 착하고 순박하게 생긴 77년생 이누이트 혼혈여성이지만 에누리는 통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린란드에 온 목적을 정중하게 설명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그린란드 원정대입니다.” 당신들의 나라, 북극권의 눈 덮인 땅 2,500킬로미터를 종단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사람들이니 항공기 전세 가격을 조금만이라도 깎아달라고 사정했다.

“물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원정대를 진심으로 돕고 싶군요. 하지만 가격을 깎을 수는 없습니다.”

조금도 깎을 수 없단다. 그린란드와 유럽인의 혼혈이라서 그런가? 저 순수한 표정과 순박한 말투만큼 천진하리만치 규정대로만 하려는 태도가 정말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린란드에 도착하고 드디어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첫 순간부터 난관에 부닥친 것이다. 원래 계획은 소형비행기인 트윈오터(Twin-Otter)로 탐험대와 장비 일체를 한 번에 이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트윈오터는 없고 헬기만 가능하단다. 하지만 헬기는 이동거리가 짧고 탑승인원, 이륙 적재량도 작기 때문에 에어드롭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예산도 그만큼 초과되는 것이다. 아직 탐험비용을 모두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애써 활짝 웃으며 다시 부탁했지만, 안느는 더욱 활짝 웃으며 오히려 그런 내가 더 신기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다. 한국식으로 애원했지만 그린란드식으로 거절당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에어드롭 일정과 횟수를 조정하여 다시 가격 협상을 하기로 하고 터덜터덜 그린란드 항공사를 빠져 나왔다.


왜 Green Land죠?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탄 순간 나는 하마터면 한국말로 행선지를 말할 뻔했다. 이누이트인 택시기사가 나와 같은 강원도 양구 출신이라 해도 믿을 만큼 한국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몇 마디 주고받다가 결국 ‘삼촌’이라 부르며 친해졌다. 나는 그린란드를 찾는 이방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물어 봄직한 질문을 던졌다.

하늘에서 본 그린란드 피오르드 해변. 그린은 어디 있을까?

“삼촌, 그런데 어째서 그린란드죠? 초록색은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러자 그는 ‘아, 너도 똑같이 묻는구나.’라는 듯이 술술 읊어대기 시작했다. 마치 삼촌이 조카한테 얘기해주는 것처럼.

“옛날 어느 아이슬란드 사람이 북서쪽으로 항해를 하다가 이곳 최남단 지역에 도착했단다. 그런데 그 시기가 아마 여름이었을 것이고, 그가 처음 본 건 초록색 육지였겠지. 그래서 그 사람이 ‘여긴 초록 땅(Green Land)이로구나!’한 것이 그냥 나라 이름이 돼버린 게야.”

그 아이슬란드 사람이 본 것은 아마 ‘빙산의 일각’ 같은 한 뙈기의 초록이었을 것이다. 그걸 보고 이 넓은 얼음덩어리 땅에 그린란드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실 그린란드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누가 맞건 틀리건 중요한 건 오늘날 그린란드에 정말로 초록색이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만나게 될 그린란드 사람들에게 나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할 것이고, 그들로부터 역사적 사실과 개개인의 다양한 견해를 듣게 될 것이다.

※ 아이슬란드 민담에 의하면 ‘붉은 수염’ 에릭(Eric the Red)이라는 사람이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이 섬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북유럽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길 바라며 ‘아이슬란드’와 대치되도록 이곳의 이름을 ‘그린란드’라 불렀다. 이후 에릭의 바람대로 노르웨이로부터 수많은 이주민들이 그린란드를 찾았다. 그러나 16세기경 다시 찾아온 소빙하기의 영향으로 이주민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 후 17세기 초, 고래잡이를 위해 몰려온 대규모의 덴마크인들이 그린란드를 장악했다.

낯선 시간, 낯선 사람 그리고 낯선 생각들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잠시 침대에 누웠지만 도무지 잠은 오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백야의 새벽, 하늘에는 여전히 태양이 떠있기 때문이다.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지만 꿈조차 환한 눈 세상이었기에 깨어서도 아직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도착 이틀째, 누크의 다운타운으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봄이 되어 녹기 시작한다.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누크의 다운타운

눈 덮인 산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고, 집들도 절반쯤 눈에 푹 파묻혀 있다. 아직 이른 봄이라 꽤 추웠지만 이곳 사람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활기차 보인다. 나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걷고 있지만, 거리를 오가는 그린란드 엄마들의 유모차와 북극 찬바람을 안고 달리는 자전거는 마치 스노타이어를 장착한 듯 자연스럽기만 하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도시는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아프도록 부셨고, 그런 눈으로 본 그린란드 사람들은 마치 처음 보는 인종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시간도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정말 낯설다. 마치 눈 덮인 화성에 이주해온 느낌이랄까. 여기서는 나도 이방인이고 그린란딕(Greenlandic)들마저도 한낱 이방인에 불과해 보인다.

한참을 걸어 다운타운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쇼핑센터 앞에 신호등 하나가 눈에 띈다. 아하, 저것이 바로 그린란드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그 신호등이로구나. 사실 거리의 통행량으로 봐서는 굳이 신호등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여기가 그린란드의 수도라는 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얀 설원 위에 인구 1만 5천 명이 듬성듬성 살아가는 이곳 누크는 그린란드의 수도이며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다. 또한 그린란드 전체 인구 가운데 4분의 1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이기도 하다.

신호등을 건너자 거리 한쪽에 벼룩시장이 보인다. 누크에서 가장 큰 두 개의 슈퍼마켓 앞 광장에 장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오일장’이나 ’삼일장’이 아닌 ‘매일장’이란다. 물고기나 잡동사니, 혹은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이 아주 소박하게 진열되어 있다. 사람들은 여기서 꼭 뭔가를 사거나 팔기보다는 그저 반갑게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누크의 벼룩시장.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와 물개가죽으로 만든 벙어리장갑 등이 진열되어 있다.

다시 발길을 돌려 해변에 이르자 산타숍(Santa Shop) 앞에 붉은 색의 거대한 조형물이 눈에 확 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크리스마스카드가 잔뜩 쌓여있는 초대형 우체통이었다. 언제든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그 해 성탄절에 맞춰 제각각 세계 곳곳으로 배달된다고 한다. 나도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5월, 얼음의 땅 그린란드에서 내가 보낸 이 카드도 약 8개월의 시간과 8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지나 그리운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다.

누크 해변의 산타 숍 전경과 초대형 우체통

그린란드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만난 도시 누크, 이 나라에서는 가장 번잡한 곳이라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평화로운 소읍이었다. 처음 느꼈던 모든 낯설음도 어느새 이 도시의 한가로운 여유 속에 서서히 녹아 들고 있다. 구석구석 눈 쌓인 거리를 거닐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이곳은 더 이상 눈 덮인 화성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내게 품을 열어주었다.


일루리사트로 가는 완행 비행기

도착 사흘째, 누크에서의 일정도 모두 끝났다. 그린란드 정부에 탐험신청서를 제출했고 총기사용 허가와 구조에 관한 서류들은 베이스캠프에서 보내주기로 했다. 이제 원정대의 베이스캠프인 일루리사트로 떠날 시간이다.

일루리사트까지는 2시간 반, 누크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중간에 시골 버스터미널만한 간이공항을 두 번 경유한다. 탑승 정원이 44명에 불과한 소형비행기라서 손님도 갈아 태우고 중간 급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울진에서 강릉까지 가는 동안 중간에 삼척, 동해에 들르는 완행버스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누크에서 일루리사트로 가는 길

Air Greenland라고 적힌 빨간색 완행비행기가 하얀 설원을 날아간다. 기내에서 뜬금없이 라디오방송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버스 안내양 같은 스튜어디스가 태연히 통로를 오가며 쿠키와 커피를 나눠주기도 한다. 일루리사트에 가까워질수록 바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빙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별자리지도를 펼쳐놓은 듯하다.

드디어 일루리사트 공항에 내렸다. 마중 나온 피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숙소로 향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일루리사트 항구가 한눈에 펼쳐졌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항구는 조금씩 녹고 있었지만, 그 너머 바다 위로는 거대한 빙산이 계절을 가로막고 있었다. 놀라움과 설렘을 안은 채 항구와 빙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루리사트 앞바다를 가로막은 빙산들

‘누크에서부터 시작된 원정은 이제 막 뱃길이 열리기 시작하는 항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으로 이곳 일루리사트에서 우리 탐험대가 거쳐야 할 여정들은 그 뒤에 첩첩이 늘어선 빙산의 산맥들을 헤쳐 나가는 것만큼 험난하리라.’


2011년 5월 7일, 나는 그렇게 일루리사트에 도착했었다.

차가운 밤, 그는 별을 향하여 코를 쳐들고 늑대처럼 길게 울었다. 죽어서 먼지가 된 그의 조상들이 하던 행동이었다. 별을 향해 코를 쳐들고 길게 우는 조상의 소리는 몇 세기를 거쳐 그의 몸 안에 잠재해 있던 선율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율은 슬픔을 알리던 조상들의 것이었고, 그들에게 적막과 추위와 어둠을 의미했다.

- 잭 런던 作 [야성의 부름(Call of the wild)] 중에서

태어난 지 한 달 된 그린란드 개. 멀리 아득히 펼쳐진 빙원을 바라보고 있다. 다가올 썰매개의 운명을 이 녀석은 과연 알고 있을까.

100년 전 탐험 방식 그대로

일루리사트에는 북유럽의 영웅인 크누트 라스무센의 생가가 있다. ‘에스키모 연구의 아버지(father of Eskimology)’라 불리는 라스무센은 개썰매로 북서항로를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이다. 그는 생애 전반에 걸쳐 모두 7차례의 북극 대탐험에 성공했으며 그것을 모두 기록으로 남긴 작가이기도 하다. 라스무센의 생가는 지금 박물관으로 남아 당시의 원정 기록과 여러 도구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곰 가죽과 털로 만들어진 무거운 침낭은 영하 100도에서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세기 전에 쓰이던 버너와 썰매, 박제된 썰매개들도 전시되어 있다.

‘어떻게 이런 장비들로 그런 탐험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문센과 스코트, 섀클턴, 그리고 라스무센까지, 소위 ‘탐험의 영웅시대’라 불리던 그 시절의 탐험이란, 말 그대로 인간과 자연의 거짓 없는 한 판 승부였을 것이다.

“나에게 겨울과 썰매개를 달라.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 크누드 라스무센(Knud Rasmussen, 1879~1933)

라스무센이 일곱 번의 북극 원정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썰매개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긴 이누이트의 나라가 아니라 썰매개의 나라야.” 그린란드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 칼(Karl Peter)이 말했다.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서는 개가 없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지만, 이곳 그린란드의 북극권에서는 개와 인간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수천 년 전부터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은 썰매개와 공생해왔다. 개들은 혹한의 빙원에서 인간의 발이 되어주었고, 인간은 개들에게 먹이와 잠잘 곳을 마련해주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을 극복해야 했던 이누이트 사냥꾼들은 오로지 개들의 생존력과 야성의 본능에 의지해왔다. 썰매개들은 거센 눈 폭풍과 블리자드 속에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으며, 특유의 동물적 감각으로 위험한 크레바스나 얇은 얼음을 피할 수 있었다.

개썰매 훈련 도중 스노모빌을 타고 오는 현지인이 길을 비켜주고 있다.

줄에 묶인 채 서열 싸움을 하고 있는 썰매개들. 이 치열한 싸움은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이누이트들은 스노모빌이 아닌 개썰매를 최고의 운송수단으로 꼽는다. 스노모빌은 기름이 떨어지거나 고장이 나면 조난으로 이어지지만 썰매개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연료, 즉 야성의 생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의 얼음이 다 녹아내려 그린란드의 지형이 바뀌지 않는 한 개썰매는 영원히 눈 덮인 벌판을 달릴 것이다.

우리의 이번 원정은 100년 전 라스무센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장비 없이 오직 개썰매만으로 그린란드 북극권을 종단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시시각각 얼음이 녹아내리는 지금, 우리 탐험대가 성공적으로 원정을 마친다면 아마 역사상 마지막 개썰매 원정팀으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죽거나 혹은 존중받거나

그린란드 북극권에는 애완견이 없다. 북위 66도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오로지 썰매개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린란드 썰매개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어떤 개들도 북극권을 넘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북극권(Artic Circle)의 도도한 경계선 위에 있는 개들만이 썰매개로 성장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실제로 썰매를 끌 수 있는 영광은 오직 최후의 생존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오늘도 숙소 앞 설원에서는 썰매개들이 울고 있다. 이들은 경박하게 짖지 않고 그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잔뜩 치켜든 채 늑대처럼 길게 울부짖는다. 개들 중에서 늑대와 가장 가까운 종으로 혹한의 북극지방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해온 까닭에 이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한 개’로 인정받고 있다.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눈이 녹고 군데군데 마른 풀이 돋아나면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그린란드의 북극권에서 사는 개들은 ‘살아남은 개’를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태어나서 6개월이라는 1차 생존 기간을 기적적으로 통과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한 달 반가량은 어미젖을 먹으면서 크고 그 이후부터는 사람이 던져주는 사료나 넙치를 받아먹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여야 한다.

썰매개들이 물개 고기를 먹고 있다. 영예로운 썰매개들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먹이이다.

개들 간의 서열 싸움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강한 놈이 으르렁거리며 위협을 가하면 약한 녀석들은 무조건 바닥에 드러누워 네 다리를 하늘로 뻗은 채 세상에서 가장 비굴한 모습으로 낑낑 울어댄다. 철저하게 복종한다는 뜻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인정받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그 자세로 누워있다. 그래야 죽지 않는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어린 개들은 20여 마리의 사나운 성견들이 벌이는 먹이 경쟁에 낄 수조차 없다. 어쩌다 경쟁의 틈바구니로 들어갔다가 물려 죽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간혹 경계선 밖으로 툭 튀어나오는 사료 부스러기만이 어린 개들의 유일한 먹이가 된다.

그렇게 처음엔 어미 곁에서, 그 다음엔 무리 속에서 커가며 힘을 얻게 되면 행동반경이 점차 넓어지기 시작한다. 도로를 넘어 다른 마을까지 혼자 돌아다니며 알아서 먹이를 구하는 것이다. 사나운 개들의 기습을 피해가며 굶어 죽지 않고 6개월을 살아낸 녀석들만이 비로소 줄에 묶이게 된다. 6개월이란 시간은 개의 송곳니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는 기간이기도 하다. 줄에 묶이는 순간부터 이 개들에게는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받을 기회와 훗날 썰매를 끌 수 있는 가능성이 동시에 주어진다.

그린란드의 썰매개들은 애완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죽거나 혹은 존중 받을 뿐이다. 시시각각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6개월을 넘긴 뒤 다시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소수의 썰매개들만이 그린란드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이다.

가장 강한 자만이 썰매를 끌 수 있다

6개월을 넘긴 개들은 모두 훈련을 받게 된다. 무거운 썰매를 끌고 긴 시간 동안 사냥을 떠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인과의 소통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썰매개들이 꼭 알아들어야 할 말은 ‘오른쪽, 왼쪽, 달려, 멈춰’ 이 네 마디이다. 아무리 강하고 우수하다 할지라도 주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개는 즉시 안락사에 처해지고 만다. 지옥훈련이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혹한의 날씨,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블리자드, 그리고 뜻하지 않은 크레바스 등등 수많은 위험 속에서 개와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죽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잔혹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훈련을 모두 받아내고 마침내 썰매를 끌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면 개들은 그제야 비로소 주인으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얻게 된다.

최후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썰매개들은 사냥과 운송이라는 고유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썰매개들은 차가운 설원에 배를 깔고 하얀 지평선 끝에서 불어오는 극지의 바람을 덮고 잔다. 만일 당신이 그린란드의 빙판 위를 달리는 썰매개를 본다면 그들로부터 ‘위대한 생존’이 무엇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매순간 겹겹이 닥쳐오는 죽음의 위기를 모두 넘긴 뒤 당당하게 자신의 네 발로 만년설을 내달리는 썰매개들이야말로 그린란드의 자랑인 것이다. 인간과 더불어 5천 년의 세월 동안 세대를 거듭해오는 동안 가장 강한 자들만 살아남은 것이 바로 오늘날의 썰매개들이다. 그래서 그린란드 사람들은 지구상의 모든 개들 중에서도 오직 이곳의 썰매개들만이 최고의 정신력과 지능, 그리고 질긴 생존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일루리사트의 여름 항구를 뒤로 하고 서쪽으로 이어진 언덕길을 걸으면 꼭대기에 이르러 북극 호텔(Arctic Hotel)을 만나게 된다. 일루리사트에서 가장 크고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최고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여행 경비가 두둑하다면 하루 이틀 묵으며 신비로운 북극 경치를 잔뜩 누릴 수 있겠지만, 식사만큼은 다른 데서 해결하라고 권하고 싶다. 값비싼 호텔 요리보다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북극 밥집이 훨씬 맛있고 정겹다. 사실 이 호텔의 메인요리는 밥이 아니라 경치다. 여기서는 세상의 그 어떤 호텔에서도 볼 수 없는 빙산의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다로 향한 북극 호텔 언덕에서

일루리사트 북극호텔(Arctic Hotel)의 이글루 스위트룸

바위산으로 이어지는 호텔의 산책로에서 통통한 강아지 두 마리를 만났다. 갓 태어난 녀석들이라 아직 줄에 묶이지 않을 만큼 작고 귀엽지만 썰매개의 후손답게 발이 아주 두툼하고 건강하다. 이 녀석들도 일루리사트의 여느 강아지들처럼 몇 개월 지나면 혹한의 환경에서 굵은 쇠줄에 묶인 채 썰매개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바위산 옆으로 현대식 이글루가 보인다. 하루 숙박료 삼사십만 원에 이르는 고급 객실답게 빙산이 떠 있는 북극의 바다와 저 멀리 설산까지 바라보며 잠들 수 있다. 이곳이 좀 더 알려진다면 아마 새로운 신혼여행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북극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호텔에서 만난 강아지들

호텔 뒤쪽 공항으로 이어진 길, 하얀 공동묘지가 한눈에 보인다. 한 달여 전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눈에 덮여 있었지만 지금은 다 녹았다. 그래도 하얀 비석과 하얀 십자가 때문에 여전히 하얀 공동묘지다. 하얀 무덤마다 색색가지 꽃들과 고인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놓여있다. 그린란드에도 꽃이 피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모두 조화들이다. 또 어느 작은 비석 앞에는 공갈젖꼭지가 하나 놓여있다. 이 물건의 주인은 북극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머물다 간 모양이다.

인간의 시간이 끝난 곳, 그 뒤로 빙산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해안을 끼고 산길을 걷는다. 이따금 머리를 땅으로 향하게 하고 다리 사이로 보면 태양 위로 바다와 빙산이 떠있다. 멀리 빙산 사이로 햇살을 헤치며 고깃배들이 구름처럼 떠다닌다. 그 자세로 뒤돌아서면 이번에는 아름다운 돌산이 보인다. 여름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눈 녹은 물들이 모여 연못까지 생겼다. 하늘빛과 닮은 연못가에는 이끼 낀 바위와 이름 모를 북극의 꽃들도 피어있다. 여름에만 잠시 번성하는 ‘한철 연못’, 그 한정된 시간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존재하는 이 작은 피조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계절이 끝나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연못과 이끼와 작은 꽃들도 다시 눈에 덮여 사라질 것이다. 그린란드에서 2011년의 여름 한철만을 잠시 살다 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피차일반의 존재들인 셈이다.

돌산에 잠시 머물며 선물로 가져갈 작은 돌멩이들을 골랐다. 만년 빙하 밑에서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나와 만난 돌들이었다.

그린란드 축구 리그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멀리 총천연색 일루리사트 마을이 보였다. 일 년 내내 눈과 얼음으로 덮인 곳이지만 이곳의 집들은 마치 크레파스를 흩뿌려놓은 것처럼 컬러풀하기만 하다. 빨강, 파랑, 노랑…… 모든 색깔이 원색 그대로 빛난다. 왜 그럴까? 언젠가 정기화 대원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색깔이 너무 그리웠을 거야.” 그 말에 100% 동감이다.

원색을 그리는 그린란드의 집들

산길을 내려오자 축구장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이 공을 차고 있다. 나는 천연바위로 된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열세 살부터 스물여섯 살까지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팀인데 보통 실력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얼굴이 가무잡잡한 열세 살짜리 소녀 린다가 단연 돋보였다. 날렵한 몸매로 경기장을 누비며 아주 강인하고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어린 나이에도 승부욕과 카리스마가 그대로 느껴진다.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이 되자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13살부터 26살까지 소녀들 모두 바위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여기선 담배가 정말 기호식품에 불과한 모양이다. 열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엄마, 할머니와 손을 잡고 걸어가며 나란히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3대 세습 흡연’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로부터 보름 뒤 일루리사트 청소년 축구 경기가 열리던 날, 나는 그린란드에 와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우페르나빅과 일루리사트의 청소년 대표팀이 펼치는 서머리그 경기였다. 여름 한철에만 열리는 리그지만 응원 열기가 어마어마했다. 나도 관중석에 앉아 ‘대~한민국!’ 대신 ‘일~루리삿!’을 목청껏 외치며 경기를 응원했다. 결과는 3:1, 일루리사트의 승리였다. 열심히 응원한 덕분에 나는 즉석에서 펼쳐진 승리 기념 축제에 끼어 맥주를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그린란드 여름리그가 한창인 일루리사트 유일의 축구 경기장

일루리사트의 카약 챔피언 패밀리

‘홍콩’이란 이름의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어느 젊은 친구가 곁을 지나가는데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 눈에 띄었다. 꼭 비보이의 프리즈 동작처럼 보이는 문신이었다. 잔뜩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 친구에게 보여 달라고 했더니 역시 맞았다. 그는 그린란드 비보이였다. 내가 물었다.

“혹시 ‘라스트 포 원’이라고 아세요?” “라스트 포 원이요? 당연히 알죠! 비보이 챔피언이잖아요.” 나는 악수를 청하며 여기 오기 전까지 라스트 포 원의 매니저였다고 내 소개를 했다.

“정말요? 와우! 반가워요, 저는 까스빠악이라고 해요!” 우리는 금세 친구가 돼버렸다.

“오늘 저녁에 뭐 해요? 제 여자 친구하고 카약 연습을 할 건데 구경 오실래요?” “카약이요?” 그린란드 비보이를 만난 것도 반가운데 카약 팀까지 소개해준단다. 하루가 꽉 차겠다.

오늘날에는 스포츠와 레저의 용도로 쓰이지만 수천 년 전 에스키모들이 처음 카약을 탈 때는 주로 사냥용이었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 역시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 물개와 넙치, 그리고 고래를 사냥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썰매와 마찬가지로 카약도 대부분 레저 차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린란드 비보이의 ‘빙산’ 프리즈 동작

그린란드 카약 챔피언 칸 마리아

까스빠악을 만나기 위해 해안가에 위치한 카약 클럽에 도착했을 때 바닷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빙산을 헤치며 카약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참 많네요!” “다음 달 중순쯤에 카약 대회가 열리거든요. 다들 그 대회를 준비하는 중이에요.” 대답한 사람은 까스빠악의 여자 친구인 피아였다. 예쁘고 귀여운 열일곱 살 소녀였다.


“그린란드에서는 해마다 도시를 바꿔가며 카약 대회가 열려요.”

피아 옆에 서있던 다른 아가씨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름은 칸 마리아, 피아의 언니였다. 마리아는 북극 호텔 주방에서 주방 보조로 일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직업은 따로 있었다.


“언니는 카약 챔피언이에요.” 피아가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어보였다.


마리아와 피아는 아버지와 함께 올해 시시미우트에서 열리는 카약 대회에 함께 출전할 예정이며 목표는 종합 3위라고 했다. 속으로 ‘카약 집안이로구나.’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피아가 “우리 집에 가볼래요?”하고 말했다. 이렇게 붙임성 있는 사람들은 정말 처음이다.

도착한 곳은 언덕 위의 파란 집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아주 깔끔하고 무엇보다 ‘전망 좋은 방’들이 있었다. 창 밖으로 북극의 바다와 빙산들이 보이는 방이라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건 집안에 걸려있는 수많은 사진과 트로피, 메달 때문이었다. 한쪽 벽은 아예 금메달로 가득 찰 정도였다. 알고 보니 ‘피아’의 가족은 일루리사트에서 유명한 카약 챔피언 가족이었다.


“난 두 살 때부터 카약을 탔어요.” 피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천장 끝 양쪽으로 두꺼운 줄이 두 갈래로 묶여 있었는데 실내에서 카약을 훈련하기 위한 장치라고 했다. 까스빠악이 시범을 보여준다며 줄을 잡고 한 바퀴 휙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올라와 앉았다. 카약을 타고 물속으로 들어가 회전하는 동작이었다. 피아도 질세라 비슷한 동작을 보여주었다. 놀랍고도 황홀한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롤링 기술은 카약 조종법의 핵심이다. 빙산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쓰나미로 배가 뒤집힐 때 다시 물 위로 솟아오르기 위해서는 이런 훈련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역시 챔피언 집안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잠시 후 다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여전히 ‘카약’이었다. 카약 대회는 일주일 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더 이상 카약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대회를 통해서 그린란드의 전통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것이다. 마리아는 카약 대회에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었다고 한다.


“꿈이 뭐예요?” 내가 묻자 그녀는 ‘카약’이라고 대답했다.


“카약은 내 인생이에요.” 네 살 때부터 카약을 시작해서 이미 수백 개의 메달을 거머쥔 카약 챔피언의 대답이었다.

나노끄, 카약에 오르다

“어이, 나노끄!” 어느 날 바닷가에서 카약을 타고 있던 닉이 나를 불렀다. 나는 손을 들어 화답했다. “탐험대는 어때? 다들 무사히 잘 가고 있는 거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닉은 카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타볼래?” “정말?”

그렇게 해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카약에 올랐다. ‘아마우끄(북극늑대)’라는 이름의 빨간색 카약이었다. 다리를 쭉 펴고 앉자 엉덩이까지 수면 아래로 푹 내려간다. 그야말로 물속에 잠겨 배를 타는 기분이다. 노를 저을 때마다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카약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만일 이게 뒤집히면? 이곳 사람들처럼 몸을 돌려 회전하는 기술이 없으니 아마 물속에 거꾸로 처박힌 채 바동거리게 될 것이다. 끔찍하다.

“어이, 나노끄! 저기 저 빙산까지 갔다 올 수 있겠어?”

닉이 웃으며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닉을 한번 보고 다시 바다 위의 빙산을 보았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 홀로 카약에 앉아서 바라보자니 정말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해볼까, 말까?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힘차게 노를 저었다. 그러자 카약은 바람을 가르며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빙산이 늘어선 북극의 바다에 내가 떠있다. 눈앞에는 빙산이 보이는데 등 뒤로는 땀이 줄줄 흐른다. 기록되지 않을 나의 비공식 스펙 중에 또 하나의 항목이 추가되는 순간이다. ‘빙산이 떠있는 북극 바다에서 카약을 타봤음.’

이런 체험까지 해봤으니 먼 훗날 내 추억 속 ‘회상의 채널’도 그만큼 다양해지지 않을까? 노의 양날에 흥분과 두려움을 매단 채 카약은 어느새 빙산을 돌고 있었다. 나의 그린란드 탐험 일정도 어느새 반환점을 지나고 있다.

카약 타고 빙산 한 바퀴, 이곳 그린란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앙아꼬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앙아꼬끄는 잘 알고 있었다.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쉽게 얻을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이미 그 모든 꿈과 소망이 이루어진 세상이다. 그래서 두 세계를 다 볼 수 있는 앙아꼬끄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숨겨진 비밀, 즉 ‘원하는 것을 찾는 법’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린란드의 ‘앙아꼬끄’ 전설 中)

빙산 아래 수심 300미터에서 넙치를 낚아 올리는 그린란드 어부들

북극바다의 선물

탐험대와 연락이 닿았다. 북쪽으로 1,000km 지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단다. 어느 정도 기온 상승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모양이다. 얼음 슬러지와 크레바스를 뚫고 나가느라 대원들도 개들도 지칠 대로 지친 것 같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썰매를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2차 에어드롭까지는 아직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다. 대원들도 그렇지만 썰매개들이 정말 많이 지쳤을 것 같다. 녀석들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다가 넙치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2차 에어드롭 때 넙치를 배불리 먹여야겠다. 부둣가로 나갔더니 마침 40대 중반의 어부가 보였다.

“아저씨, 혹시 넙치 있어요?” “지금 낚싯줄을 걷으러 나가려는 참이오.”
“같이 가도 될까요?” “타쇼.”

대답 한번 시원하다. 이름은 이와츠, 강인한 어깨와 팔뚝을 지닌 넙치잡이 어부였다. 올해 45살인데 벌써 세 살짜리 손자가 있단다. 그는 빙산 사이로 능숙하게 배를 몰더니 억센 팔로 낚싯줄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껴입었어도 빙산의 바다에서 평생 단련된 근육의 굴곡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잠시 후 기다란 낚싯줄에 1미터 간격으로 커다란 북극넙치들이 낚여 올라오기 시작했다. 낚싯줄 하나에 바늘만 700여 개라는데 이따금 홍어나 게 따위가 걸리기라도 하면 ‘에이, 잡것들’ 하며 그냥 바다에 내버린다. ‘아니 그걸 왜 버려요?’ 나는 펄쩍 뛰며 그 귀한 ‘잡것들’을 정성껏 챙겨두었다.

이와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넙치의 아가미 부분을 잘라내고 내장을 빼냈다. 지방이 풍부한 넙치는 추위를 이겨내는 데는 제격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방이 많아서 보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빨리 가공해서 유통해야 한다. 이렇게 잡은 넙치의 가격은 1kg당 14kr(약 2,800원)정도. 어부들이 내는 세금은 수입의 25%에 육박하지만 고기가 풍부한 일루리사트에는 그래도 ‘먹고 사는 정도’를 넘어 ‘부자’ 어부들이 꽤 많다.

넙치 낚싯줄에 걸린 60cm 크기의 대구

넙치잡이 배 주변에 몰려든 갈매기 떼

멀리 빙산 위에서 쉬고 있던 갈매기 떼가 비린내를 맡고 일제히 날아오른다. 이와츠가 던져주는 넙치 내장 덕분에 갈매기들은 오늘 포식을 하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몰려든 갈매기 떼들로 인해 잔잔하던 바다가 시끌벅적해졌다.


“오늘은 빙산이 별로 안 보이네요.” “더도 말고 오늘만 같았으면 참 좋겠구먼.”


빙산들이 점령하고 있던 자리를 지금은 고기잡이 배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와츠는 이웃 어부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당최 쉴 틈이 없다. 일루리사트 주민들은 거의 다 어부들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새우를 잡아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흥청망청 돈을 쓰는 바람에 오히려 망한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지금은 대형 어선을 앞세운 기업 형 새우잡이에 밀려 다들 소규모 넙치잡이로 살아가고 있다.

깊은 북극의 바다 밑에서 넙치들이 계속해서 낚싯줄에 걸려 올라온다. 녀석들이 바다에서 올라와 일루리사트 주민들의 생계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와츠는 지금 바다에서 냉장고와 TV, 자동차, 기름, 옷, 신발…… 모든 것을 끌어 올리고 있는 셈이다. 오늘 하루 4시간가량 걷어 올린 넙치가 300~400kg이니까 한국 돈으로 80~100만 원쯤 될 것이다. 작은 어선을 가진 어부지만 그래도 참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날 저녁 나는 숙소에서 넙치 튀김과 대구매운탕, 조림을 요리했다. 이렇게 크고 신선한 자연산 물고기를 회로 먹지 않고 튀김이나 조림으로 해먹을 수 있다니! 그린란드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세 명의 어부들이 빙산을 헤치며 생계의 원천인 넙치를 걷어 올리고 있다.

하나의 항구, 두 개의 어판장

이와츠와 함께 항구로 돌아오자 때마침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탐험대의 현지 파트너로 통역을 해주며 물심양면으로 우릴 도와준 스물한 살 청년 아까룽누아끄였다.

“마침 잘 됐네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거든요. 내일이면 나는 누크로 떠납니다.”


아까룽누아끄가 말했다. “떠난다고? 왜?” “누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로열 그린란드에서 일할 겁니다.”

로열 그린란드는 덴마크 기업으로 그린란드 전역에 걸쳐 수산물 판매와 가공, 유통 등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온 회사다. 이곳 젊은이들에게 있어 로열 그린란드라는 대기업에 고용된다는 것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까룽누아끄의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외삼촌은 내가 거기서 일하는 게 싫대요.”

이곳 어부들 대부분은 로열 그린란드를 못마땅해 한다. 자기들을 착취하는 덴마크 식민지기업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린란드를 덮은 눈만큼 순박한 원주민들은 초기 덴마크 이주민들을 반갑게 맞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이주민들은 정복자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그린란드에서는 모든 돈이 덴마크어와 덴마크 문화와 결부되어 왔다. 덴마크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돈이 되는 자리를 얻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선 가공 공장이나 실업자 수당을 기다리는 줄에 서야만 했던 것이다. 이후 1979년,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치지역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덴마크의 재정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근본적인 갈등 요소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넙치잡이 미끼를 손질하는 어부

로열그린란드. 덴마크 자본의 수산물 유통회사

이러한 역사, 문화적인 배경 위에서 최근 일루리사트에는 그린란드 순수 자본으로 ‘할리부트 그린란드’라는 회사가 세워졌다. 항구를 배경으로 두 회사가 서로 마주보며 서있는 모습은 꽤 상징적이다. 빙산 사이로 배를 몰고 나가 할리부트(북극넙치)를 잡는 어부들은 이제 양쪽 회사를 번갈아보며 자신의 수확물을 어디로 가져갈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두 회사 모두 공판장과 가공 공장을 모두 갖추고 있어 그 자리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가공 처리되어 일본과 유럽 등지로 실려 간다. 갈수록 할리부트 그린란드 쪽으로 납품하는 어부들이 점점 늘어감에 따라 덴마크 기업이 받는 타격도 그에 비례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방법

“잘 가, 누크에 가서 열심히 해. 꼭 성공할 거야.” “고마워요. 탐험대를 위해서 기도할게요.”


나는 아까룽누아끄와 헤어지면서 힘차게 악수를 했다. 이방인인 주제에 이젠 누군가를 떠나보내기까지 하는구나,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까룽누아끄를 보내고 다시 이와츠를 찾았다. 그는 해변의 벤치에 앉아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커피를 받아들고 곁에 앉았다. (옆에 싱싱한 횟감을 가득 쌓아놓고 소주 대신 커피를 마시다니 정말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이와츠가 손을 들어 언덕 위를 가리켰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저기 모여서 바다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곤 했지.”

일루리사트의 어부들이 바다에서 넙치를 잡을 때 어부의 아내들은 언덕 위로 올라가 손수건이나 깃발을 흔들며 위험을 알렸다는 것이다. 빙산으로 가득 찬 바다에서 간혹 집채만 한 얼음 덩어리가 뒤집어지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쓰나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루리사트 사람들은 그렇게 가족을 잃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부의 아내들이 깃발로 ‘낙빙주의’를 알렸던 것이다. 지금은 라디오나 휴대폰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개썰매로 얼음낚시를 할 때는 없었던 풍경일세.” 이와츠가 말했다.

거대한 빙산 근처에서의 조업은 언제나 낙빙과 쓰나미의 위험을 동반한다.

세대 차이란 자연을 누리던 기억이나 날씨에 얽힌 기억으로도 구분된다. 우리 어른들이 가끔 회상에 잠겨 젊을 때 헤엄쳐서 한강을 건넜다는 둥,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한강에서 얼음낚시를 하고 썰매를 탔다는 둥 옛날 얘기를 들려주곤 하듯이 이곳 역시 얼음에 대한 기억이 세대마다 다르다. 오늘날 그린란드의 달라진 환경은 이 한 마디로 표현한 수 있다. 즉 ‘배가 다니기엔 얼음이 너무 많고, 개썰매가 다니기에는 얼음이 너무 적다.’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옛날, 일루리사트의 어부들은 누구나 개썰매를 끌고 얼음벌판으로 달려갔다. 얼음 위에 먼저 구멍을 뚫고 미끼를 꿴 낚싯줄을 납작한 판때기에 묶어 물속에 넣는다. 그럼 판때기는 수심 300~500미터 바닥에 닿은 뒤 해류에 쓸려 멀리 이동한다. 그렇게 4~8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낚싯줄을 걷어 올리면 대형 북극넙치들이 잡혀 올라온다. 이누이트들은 오랜 옛날부터 이런 방식으로 넙치를 잡았다. 그러나 얼음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은 아주 추운 겨울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할 뿐, 이제 대부분의 넙치잡이 어부들은 개썰매를 타고 피오르드로 가는 대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나는 전에 니콜라이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가 떠올라 이와츠에게 물었다.

“피오르드 지역에서 잡는 넙치가 훨씬 크다면서요?” “거긴 먹을 게 더 많으니까.”

빙하와 바다가 만나는 아이스피오르드(Ice Fjord)는 내륙에서부터 땅을 훑으며 흘러온 만년빙 속에 온갖 영양분이 들어있다. 이 먹이를 찾아 바다 속 플랑크톤이 몰려오고, 플랑크톤은 새우를, 그리고 새우는 납치와 물개와 고래를 불러온다. 먹이사슬이 형성되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아이스피오르드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들이 일루리사트의 바다를 누비며 천혜의 어장을 만든다.

“여긴 넙치가 많지만 작아. 개썰매를 타고 피오르드에 가야지만 1미터가 넘는 녀석들을 잡을 수 있지.”

먹이가 가장 풍부한 아이스피오르드에서 생존경쟁을 해가며 살아남은 넙치들이 그만큼 덩치가 더 크다는 얘기였다. 나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의 전통적인 넙치잡이 풍경을 그려보았다.

바다 위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빙판이 펼쳐져 있다. 그 아래 심해의 바닥 어딘가에는 커다란 넙치들이 떼 지어 살고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린란드의 넙치잡이 어부라면 그 광활한 얼음 벌판 어디쯤에 구멍을 뚫어 낚싯줄을 내릴 것인가? 막막하고 난감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심해의 어느 한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여 넙치 떼를 낚아 올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요행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현자가 있어 구멍 뚫을 위치를 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소망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앙아꼬끄 전설이다.

평생을 일루리사트 바다에서 살아온 넙치잡이 어부 이와츠

앙아꼬끄는 그린란드 전설에 등장하는 샤먼으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눈’을 이용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게 가르치곤 했다. 먼 옛날 일루리사트 앞바다를 지나던 앙아꼬끄는 갑자기 빙산이 무너지는 소리에 놀라 쓰러졌다. 다시 깨어난 뒤 그는 함께 사냥을 떠났던 사람들에게 ‘여기서 고기를 잡아라!’하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가리킨 곳에 얼음 구멍을 뚫고 낚싯줄을 내려 수많은 넙치들을 낚아 올렸다. 이것이 훗날 그린란드의 넙치잡이 전통이 되었다.

오늘날 그린란드 어부들에게 ‘내일’은 ‘보이지 않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기후와 그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화 속에서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넙치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넙치를 잡았던 전통이 남아있는 한 그린란드 어부들은 얼마든지 적응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낚아 올린 북극넙치는 여전히 이들에게 생존과 건강의 원천이 될 것이다.

 

여름, 그린란드의 퓨전 계절

이상한 여름이다. 바다 위엔 여전히 빙산이 떠있고 이따금 눈발도 날리는데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땅은 겨울을 부여잡고 있지만 하늘은 아랑곳없이 여름을 내려 보내고 있다. 여름과 겨울이 뒤섞인 북극권의 퓨전 계절,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오늘도 모기떼에 쫓기고 있다. 만일 당신이 유난히 모기에 잘 물리는 체질이라면 여름에 그린란드를 찾는 일만큼은 꼭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린란드의 여름 중 기온이 가장 높은 한 달 동안은 그 누구도 북극모기떼의 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기약을 아무리 뿌려도 소용없다. 전속력으로 달려 봐도, 데굴데굴 굴러 봐도 깨알 같은 모기떼는 공기처럼 여전히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잘못해서 숨을 크게 들이쉬기라도 하면 한입 가득 모기떼를 삼키게 된다.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진 천연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더위에 지친 개들은 시원한 바위를 찾아 하루 종일 죽은 듯이 잠들어있다. 그 위로 새카만 모기떼가 광란의 포식을 즐기고 있지만 개들은 이미 저항을 포기해버린 것 같다. 모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울 지경인데 정작 이곳 주민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은 반팔 옷을 입은 채 신나게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이 계절에만 집중적으로 열리는 온갖 축제들을 준비하느라 흥겹기만 하다.

여름 한 철, 그린란드의 ‘그린’을 볼 수 있다.

더위에 지친 썰매개가 바위 위에 늘어져 있다.

밤 11시경 백야 풍경을 찍으려고 나섰다가 스포츠센터 옆 강당 건물에서 파티 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오늘이 ‘Lady’s Night’이라서 4명의 일루리사트 여가수들이 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자 별천지 풍경이 펼쳐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맥주잔을 든 채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린란드에 와서 이렇게 흥겨운 분위기는 처음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반갑게 말을 걸고 맥주를 권했다. 인구 5천 명, 바다와 빙하로 둘러싸인 이 마을 주민들은 이런 식으로 최대한 여름 한 철을 즐긴다. 새벽 2시쯤 행사가 끝나고 다들 맥주를 든 채 뿔뿔이 흩어졌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무리들 중에는 열 살 남짓한 꼬마들도 눈에 띄었다. 이거 참, 낯설어도 한참 낯선 풍경이다.

그린란드에서는 일 년 중 해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자 최대 국경일인 하지(6월 21일)부터 7월 말까지 약 한 달 동안 대부분의 축제와 행사들을 몰아서 치른다. 하지가 되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통복장으로 갈아입고 산으로 올라가 기념식을 거행한다. 백야라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꽃놀이를 하고 축포도 쏘아 올리며 하루 종일 음악과 춤이 끊이지 않는다. 축구 여름리그와 마라톤 대회, 비치발리볼 대회가 열리는가 하면 지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좌표를 찾는 크로스컨트리 경기 ‘오리엔티어링(Orienteering)’도 인기가 최고다. 현지인뿐만 아니라 스위스, 네덜란드 등지에서 온 60세 이상의 노부부들까지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우승자에게는 협찬사들이 내놓은 접시, 머그컵, 배낭 같은 상품들이 주어진다. 최고 기온 22도까지 올라가는 일루리사트의 여름, 꽃들이 서둘러 피고 지는 이 짧은 기간 동안 사람들 역시 꽃처럼 분주히 계절을 누리는 것이다.

마라톤 대회, 역주하는 참가자

오리엔티어링, 출발을 기다리는 참가자들

이누이트 가족의 피크닉

여름이 절정에 달하는 이 시기에 일루리사트 사람들은 대부분 휴가나 소풍을 떠난다. 인근의 아시아트나 시시미우트, 혹은 누크로 짧은 소풍을 다녀오는가 하면 멀리 프랑스나 태국, 덴마크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여름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에 물개사냥을 함께 했던 리니의 배를 얻어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오카추트를 찾았다. 50여 가구의 작은 해안마을이지만 시즌이 시즌인지라 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어린 손자 손녀들까지 우르르 해변으로 몰려나와 연신 그물을 끌어 올리고 있다. 그 안에는 꽁치처럼 생긴 물고기가 그물이 터질 정도로 가득하다. 이것이 바로 그린란드의 여름 명물 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물고기 ‘아마사끄’다. 여름이 되면 산란기를 맞아 바위틈에서 수정을 하기 위해 수백만 마리의 아마사끄가 빽빽이 몰려든다. 그냥 뜰채로 건져 올려도 한 번에 백여 마리쯤 담길 정도다. 그렇게 잡아 올린 아마사끄를 사람들은 내장도 안 뺀 채 그대로 바위 위에 널어 하루 종일 말린다. 손바닥 크기의 아마사끄를 수만 마리나 말리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말린 아마사끄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식량이 되지만, 사료보다 가볍고 영양도 풍부하기 때문에 겨울철 썰매개들의 양식으로 아주 그만이란다.

산란을 위해 해안가로 몰려든 아마사끄 떼

바닷가 주변에는 가족 단위로 바위 절벽에 텐트를 치고 바비큐를 굽고 있다. 땔감은 극지방 특유의 키 낮은 식물뿌리인데 연기가 어찌나 많이 나는지 모든 음식이 훈제로 요리될 정도다. 또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멀리 하얀 빙산을 배경 삼아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빙하에서 녹아 내린 1급 청정수가 바위 사이에 고여 천연 호수가 되었으니, 아마 지상 최고의 수영장이 아닐까 싶다. 한나절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참 평화롭고 한가로운 그린란드의 전형적인 여름 풍경이다.


위대한 유산, 그린란드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오. 눈과 빙산으로 뒤덮인 이 아름다운 땅을.” 와각이 말했다.


그는 시시미우트 출신으로 6년 째 일루리사트에서 살고 있는 54세의 페인트 공이다. 25년 전 배를 타고 가다가 빙산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내와 아들을 잃은 아픈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나라의 자연을 사랑한다고 한다.

“빙산이 무너진 건 혹시 지구온난화와도 관련이 있을까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소.”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물론 예전보다 기온이 올라서 떨어져 나오는 빙산의 양이 많은 건 사실이오만 그게 꼭 지구온난화 때문이겠소? 어쩌면 지구의 기온이 주기적으로 변하면서 지금 ‘더운 시기’를 지나는 것인지도 모르지.”

다른 그린란드 사람들처럼 그 역시 지구온난화와 그린란드를 함께 묶어서 말하는 것에 약간의 반감을 갖고 있었다. 세계는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있는데 정작 이곳 사람들은 온난화의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비춰질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

“세상 어디나 때가 되면 기후가 변하기 마련이고, 또 기후에 따라서 모든 게 바뀌기도 하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변해가는 환경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이오.”

그의 말처럼 그린란드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남쪽 지방에서는 농업과 목축업이 생겨나고, 빙하가 녹으면서 광산자원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석유와 금, 다이아몬드를 찾아 세계의 다국적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런 시기에 젊은 세대들이 그린란드의 자연을 지혜롭게 지켜줬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오.”

일루리사트 해변에서 여름 낚시를 즐기는 관광객

기후 변화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여름이 점점 길어지고 더운 날이 많아지면서 그린란드의 어느 곳에서는 전에 없던 풍요를 누리기도 하지만, 수많은 빙산과 유빙들 때문에 어부들의 조업일수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에 적잖이 당황해 하면서도 이들은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듯이 이 새로운 환경에 하루하루 적응해가고 있다. 그린란드에 와서 빙산만 보고 간다면 누구나 지구온난화를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한숨과 희망을 보게 된다면 지구온난화가 아닌 ‘적응하는 인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담담하게 그린란드의 자연과 미래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일루리사트 친구 와각

녹아내린 내륙빙하에서의 재회

6월의 일루리사트를 뒤로 하고 2차 에어드롭을 위해 북쪽 마을 우마나끄로 향했다. 예정대로라면 북위 70도 59분 지점에서 탐험대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밤 10시 20분에 일루리사트 항을 출발한 배는 안개 자욱한 빙산의 바다를 밤새 가로질러 새벽 5시 30분경에야 우마나끄 항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현지에서 구한 헬기에 짐을 싣고 곧장 이륙했다. 바다 위에서 조심스럽게 떠오른 헬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자 엄청난 풍경이 펼쳐졌다. 구름 위로 솟아난 우마나끄 마운틴과 해안가의 산맥들, 그 아래로 호수와 빙하가 그림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나마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 이 모든 행운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오후 1시 03분, 하얀 설원 위에서 탐험대를 발견한 뒤 헬기를 착륙시켰다. 다들 새까맣게 탄 얼굴로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서도 대원들과 썰매개들이 그새 얼마나 야위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짐 보따리를 털썩 내려놓고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대원들도 썰매개들도 엄청나게 고생을 한 것 같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단단하게 얼어서 눈으로 덮여 있을 줄 알았던 내륙빙하가 기온 상승으로 인해 얼음 슬러지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수백 km에 달하는 슬러지를 탈출하기 위해 대원들은 고도를 높였지만, 오히려 고도가 높아지는 바람에 개들이 고소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1차 에어드롭 이후 보름여가 지나는 동안 대원들에게도 썰매개들에게도 정말 고난의 행군이었던 것이다.

기온상승으로 생겨난 내륙빙하의 빙천과 호수

탐험대가 수없이 건너온 얼음 크레바스

“내륙빙하가 이렇게 다 녹아내리면 일루리사트도 금방 다 잠길 것 같더라.” 슬러지를 빠져나온 무용담을 한참 늘어놓던 정동영 대원이 끝으로 한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그린란드 해변 마을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만년설로 덮여 있는 저 깊은 내륙빙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린란드의 여름은 눈으로 덮여 있지만 그 눈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지금처럼 해빙이 계속 진행된다면 우리처럼 개썰매로 내륙빙하를 탐험하는 것은 앞으로 더 이상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탐험을 할 수 있고 없고가 무슨 상관이랴. 이곳 사람들은 기후의 변화,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고, 지금보다 추웠던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더 더워질 미래에도 여전히 그린란드 이누이트로서 굳건히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이 탐험에서 정말로 배우고 기록해야 할 것은 기후변화의 데이터가 아니라 새로운 변화에 맞서서 적응하고 극복해나가는 이누이트들의 삶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에어드롭, 그리고 탐험 종료

7월 18일, 밤늦게 탐험대와 연락이 닿았다. 애초 계획했던 탐험 일정보다 며칠이 더 늦어져 식량도 이미 바닥이 난 상태다. 대원들도 썰매개들도 탈진 상태가 되어 약속 지점까지 행군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일까지는 꼭 최종 좌표에 도달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힘내라’는 한 마디뿐. 약속 지점을 재차 확인하고 나자 갑자기 정동영 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픽업 지점에서 헬기를 기다리고 있는 썰매개들과 배영록 대원

“올 때 비스킷하고 롤빵 좀 사다줘.” 그리고는 너무 허기져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늘 맑고 또박또박하게 말하던 경상도 사나이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음이 짠해졌다.

눈을 뜨자마자 까낙에서 하나밖에 없는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정동영 대원이 부탁한 빵과 비스킷, 그리고 음료수와 고기를 샀다. 그리고 까낙 주민에게서 차를 빌려 공항으로 향했다. 7월 19일 오후 1시 20분, 까낙 공항에 도착했지만 헬기의 기술적인 결함으로 인해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눈이 빠지게 헬기를 기다리고 있을 탐험대의 모습을 생각하니 초조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대원들과 썰매개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은데……. 탐험의 막바지에 이른 긴장 탓인지 나의 몸은 감기 기운으로 죽을 맛이었고, 초조함 때문에 가슴은 쉴 새 없이 쿵쿵 뛰었다.

헬기가 뜰 수 있을까? 만일 오늘 헬기가 뜨지 못한다면 끝장이다. 오늘 픽업에 반드시 성공해야만 내일 베이스캠프인 일루리사트로 돌아갈 수 있다. 만일 실패한다면 이곳에서 또 다시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까낙의 항공편은 주 1회뿐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정이 꼬이게 되고 이미 탐험대의 예산이 바닥난 상태라 더 이상 추가 경비를 지불할 수도 없다.

또 하나의 고민은 에어드롭이었다. 짐의 부피와 무게로 봤을 때 1회 비행으로 끝내기엔 다소 무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 2회 비행으로 할 수도 없었다. 혼자 애를 태우는 동안 드디어 툴레 에어 베이스에서 헬기가 날아왔다. 파일럿이 두 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놀랍게도 1차 에어드롭 때 만난 피터였다. 나는 피터에게 에어드롭을 한 번에 끝낼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다행히 피터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대답했다.

탐험을 마치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홍대장

썰매개들을 마마우트에게 넘겨주고 있다

돌아올 때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자 촬영 감독만 헬기에 태우고 나는 공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비스킷과 롤빵을 촬영감독에게 전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침내 헬기가 떠올라 픽업 지점을 향해 내륙빙하로 날아갔다. 그로부터 2시간 반 동안 나는 몸살과 초조함으로 덜덜 떨며 공항 상황실에 바싹 붙어 앉아 대원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했다. 한참 뒤 헬기 소리보다 무전기에서 피터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10분 뒤에 도착!” 아, 픽업에 성공했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마지막 10분조차 내게는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헬기가 착륙하고 프로펠러가 멈추자 대원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없이 달려가 정동영, 배영록 대원을 부둥켜안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체구인데 탈진상태까지 갔던 몸이라 뼈밖에 안 남은 것 같았다. 길게 자란 수염과 검게 그을린 얼굴도 낯설기만 했다. 썰매개들도 지쳐있긴 마찬가지였다.

지난 53일간 대원들과 썰매개들은 숱한 크레바스와 얼음 슬러지, 화이트아웃과 블리자드를 헤쳐 왔다. 그동안 나는 그린란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물품조달과 에어드롭을 진행해왔다. 서로 다른 루트에서 각기 제 몫의 탐험을 해온 셈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까낙 공항에서 우리 모두의 원정을 함께 마무리한 것이다.

까낙이여, 안녕

이제 까낙에서는 탐험대의 썰매개들을 인계하는 일만 남았다.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썰매개들은 일루리사트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까낙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녀석들을 보살펴줄 사람은 마마우트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마마우트, 이 개들을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녀석들이 없었다면 우리 탐험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최대한 배불리 먹고 편히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마마우트는 걱정 말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개들이 몹시 말랐군.” 그는 창고 문을 활짝 열어 쌓아둔 고래 고기를 아낌없이 꺼냈다. 그리고 썰매개들을 향해 차례차례 고기를 던져주었다. 그 동안 허기와 피로에 지쳤던 썰매개들은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정신 없이 고래 고기를 삼켜댔다. 일루리사트의 썰매개들은 평생 고래 고기 맛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까낙에 남는 이 녀석들은 귀한 일각고래 고기도 먹으며 까낙 최고의 사냥꾼과 여생을 함께 할 것이고, 또 여기서 새로운 일가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린란드 북극권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그 험한 내륙빙하를 온몸으로 달려온 썰매개의 혈통이 이곳 까낙에서 다시 이어지는 것이다. 부디 훌륭한 썰매개로 살아남아 까낙의 위대한 유산이 되기를......

썰매개들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

최북단 마을 까낙을 떠나며

숙소로 돌아와 오랜만에 빙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대원들을 위해 고래 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전투식량으로 푸짐한 저녁을 준비했다. 하지만 대원들은 생각만큼 많이 먹지 못했다. 모처럼 먹는 정찬이 부대끼는지 수저를 내려놓자마자 소화제부터 찾았다. 할 이야기는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일단은 모두가 숙면을 취하는 게 우선이었다.

간만에 대원들과 나란히 누웠다. 백야의 빛을 가리기 위해 안대를 쓰고 잠든 대원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끝났다.’

마음속엔 탐험기간 동안 기록했던 일기보다 몇 십 배나 더 많은 생각들이 남겨졌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홀가분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 일어나 좌표 확인을 위한 전화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탐험일지에는 ‘끝’이라고 적게 될 것이다. 이제 그린란드 정부와 경찰서 등 관련 기간에 탐험이 종료되었다는 보고서를 보내는 일만 남았다.

다음 날 나는 오전 나절 동안 마마우트와 기디언, 마리우스 등 까낙에서 정들었던 친구들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기디언은 특별히 우리에게 선물로 마딱을 듬뿍 안겨주기까지 했다. 함께 고래 사냥을 떠났던 꼬마 삐치는 공항에서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펴보니 까낙의 기념품 열쇠고리였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빠 뒤에 가서 숨는 녀석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공항에서 작별인사와 기념촬영을 다 끝내자 비포장 활주로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 뜨는 비행기가 착륙했다. 우리는 까낙의 주민들과 관광객이 다 내린 뒤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툴툴 소리를 내며 이륙할 때쯤 창밖으로 손 흔드는 까낙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까낙이여, 안녕.’


꾸야나끄(Qujanaq), 그린란드!

그린란드 북쪽 지역에서는 ‘시니크’라는 단위로 거리를 잰다. 시니크는 그린란드 말로 ‘잠’이란 뜻이다. 즉 한 번 여행을 떠나서 몇 밤을 자는가에 따라 거리를 가늠하는 것이다. 이누이트의 계산에 따르자면 우리 탐험대가 걸었던 원정 루트는 ‘53 시니크’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 이곳 그린란드에서 내가 머물렀던 83일간의 시간적 거리는 왠지 ‘1 시니크’처럼 느껴진다. 지난 시간들이 마치 백야의 하늘 아래서 꾸었던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까낙을 떠나 다시 일루리사트로 돌아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제 정말 이곳을 떠날 때가 왔구나.’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백야의 태양 아래서 거닐었던 일루리사트의 피오르드 길

여전히 밝은 밤 11시, 나는 까낙에서 선물 받은 마딱을 짊어지고 일루리사트의 친구들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딱은 그린란드 어디에서나 최고의 선물이었다. 친구들은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고 남녀 할 것 없이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까낙을 다녀온 기념 선물이 아니라 그린란드를 떠나는 작별의 선물이라는 사실에 서운한 표정을 짓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린란드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피터의 집에 초대받아 마지막 만찬을 함께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고, 앞으로 한국과 그린란드를 잇는 여러 가지 구상을 주고받았다.

언젠가 만나고 싶은 일루리사트의 겨울

이제는 오래된 추억이 되어 버린 눈 덮인 썰매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느새 가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길가에 핀 꽃도 마치 한국의 가을 국화 같았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지금 어떨까, 이제 곧 ‘깜깜한 밤’을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설렌다. 한편으로는 그냥 이대로 그린란드에 눌러 앉아 살고 있는 나의 모습도 상상해 보았다.

다음 날 숙소를 정리하고 짐을 옮기려 할 때 동네 꼬마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녀석들 틈에서 시실리아가 달려 나와 내게 안겼다. 일루리사트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나노끄’라는 이름을 가장 많이 불러준 나의 꼬마 친구였다. 내가 까낙에 가 있던 일주일 동안 시실리아는 매일 숙소를 찾아와 벨을 누르고 나노끄를 찾았다고 한다. 녀석은 이제 헤어질 때라는 것을 감지했는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시실리아를 등에 업고 차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시실리아는 내 목을 점점 더 꼭 끌어안았다. 그 작고 여린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힘이 그대로 석별의 정이 되어 가슴을 울렸다.

“안녕, 시실리아. 나 잊지 마, 알았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시실리아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그린란드에서의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그린란드 꼬마 친구 시실리아와 헤어지던 날

2011년 7월 22일, 나는 그렇게 그린란드를 떠났다. 비행기가 눈 덮인 일루리사트 하늘 위로 떠오를 때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엉뚱한 인사를 했다.


“I see you, 그린란드.”


‘I see you’ 아바타에서 사람의 모습을 한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의 네이티리를 처음 보면서 했던 말이다. 우리는 매순간 나 이외의 존재를 만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가슴을 겉도는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닐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내면을 울리고 삶을 흔드는 그런 만남일 때 비로소 ‘I see you’라는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이 없었던 83일간의 시간을 보낸 뒤 내 몸은 그린란드를 완전히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별의 순간이 되어서야 나는 ‘처음처럼’ 그린란드를 보았다. 그것은 미지의 땅이었던 그린란드가 앞으로 나의 삶을 조금씩 흔들게 될 거라는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Qujanaq, Kalaallit Nunaat! (고마워, 그린란드!)’

그린란드 빙산의 바다와 여름 한 철의 그린

어느 탐험가가 말했다. 모든 탐험은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나는 지금 그린란드를 떠나고 있지만 나의 또 다른 탐험은 아마도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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