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코펜하겐의 카고 바이크

앞 바구니에는 짐을, 뒷자리에는 아이를 싣고 집으로 향하는 엄마 아빠들을 마주하는 일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우리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대체 자전거는 덴마크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코펜하겐의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카고 바이크. 오후 네 시경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이면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러시아워도 함께 시작된다.

30년 역사의 카고 자전거, 뒷자리는 아이들 차지

덴마크 가정에서는 대개 자녀가 세 살 무렵부터 여섯 살 사이에 자전거를 가르친다. 예전에는 페달이 달린 세발자전거를 주로 이용했지만 오늘날에는 페달이 없는 트레이닝 자전거로 균형 감각을 익히고 스피드 조절을 하며 아이 스스로 자전거를 놀이처럼 즐기면서 배울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자전거는 유년 시절 코드의 하나로 깊숙이 자리매김된다. 이런 동기 부여 과정은 부모가 자전거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정에서 더욱 극대화되는데, 특히 덴마크에서 눈에 띄는 자전거는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카고 바이크다.

카고 바이크는 말 그대로 수레를 끄는 자전거다. 매일 아침 8시에서 9시경 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카고 바이크에 싣고 등교시키는 부모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일곱 살과 두 살배기 두 아이를 둔 젊은 워킹 맘 스티느에게 카고 바이크는 차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우선 차를 차고에서 빼내고 또 학교 앞에 주차하느라 걸리는 시간이 절약되므로 아이들은 그 시간만큼 아침잠을 더 잘 수 있다.

또 출근 시간에 차가 막혀 지각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아이를 등하교시키며 운동까지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학교 앞의 자전거 등교 풍경 속에서 만난 리센느 역시 아들을 등교시키는 중이었다. 그는 카고 바이크의 일종인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를 만들고 있는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며 바이크 제작 공간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만든 자전거로 아들과 함께 등하교하면서 더 많은 교감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등굣길에는 아이의 컨디션과 기분을 체크하고, 하굣길에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란다.

크리스티아니아 대장간은 올해로 30년을 맞아 그동안 만들어낸 자전거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외부에 전시를 해놓고 있었다. 자전거 카고의 형태와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기본적인 패밀리 모델은 1만1600크로나(한화 210만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튼튼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한 번 구매하면 자신이 탄 뒤 다시 수리하여 자녀가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대를 물려 이어지는 덴마크인의 자전거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하교 시간인 오후 세 시 반, 리센느는 아들을 데리러 가는 길에 필자를 카고 바이크에 태워 시내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한 바퀴로도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그에게 믿음이 가 카고에 올라타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버스로 40분 남짓 걸렸던 거리가 20분 거리로 짧아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전거 수레 속에서 봤던 가을날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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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운전하는 카고 바이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꼬마 숙녀. 어린아이들에게 안전을 위해 헬멧을 착용시키는 것은 부모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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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아이들의 자전거와 카고 바이크들. 자신의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이미 이 자전거 주차장에서 질서를 배운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카고 바이크 브랜드의 오리지널로 꼽힌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가 만들어진 이후 7~8개 브랜드가 후발 주자로 생겨났지만 카고 바이크 하면 여전히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자전거 구매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www.christianiabikes.com)에서 얻을 수 있다. 본사를 직접 방문하고 싶다면 Christiania Smedie, Mælkevejen 83a, 1440 København K.

유모차만큼 흔한 필수품, 소규모 가판대로도 이용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카고 바이크보다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971년부터 코펜하겐시 동쪽의 해군 기지 터에 히피, 예술가, 젊은 사회 운동가들이 자리 잡으면서 만들어진 문화 예술 공동체 혹은 새로운 대안 마을인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초창기 주민 900여 명은 버려진 군사 시설이던 34헥타르의 땅에 평화를 지향하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보존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정부는 긍정적인 측면의 '사회적 실험'으로써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물질적 가치로 결정되는 삶을 거부하고 작은 일 하나도 표결을 통해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데, 이 작은 공동체 부락에는 자동차가 없다. 허락된 유일한 교통수단은 자전거뿐.

1978년 문을 연 대장간 'Christiania Smedie'에서 침대 프레임을 이용해 짐을 옮길 수 있는 카고 바이크를 만들어 자신의 약혼녀에게 선물한 대장쟁이의 아이디어가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의 시초가 되었다.

1984년 이 자전거의 시중 판매가 이루어진 이후 30년을 맞이한 올해,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덴마크의 오래된 자전거 문화에 한 획을 긋는 발명품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수출까지 하면서 덴마크의 심벌로도 유명해졌다.

현재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는 열두 가지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우체부가 모터바이크 대신 카고 바이크를 타고 우편 배달을 하고,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유모차만큼이나 흔한 육아 필수품으로 사용된다.

더욱이 아이들뿐 아니라 아이를 동반한 어른 한 명을 태워도 거뜬하며(자전거 운전자를 제외하고 100kg까지 적재 가능하다), 가판대로도 활용 가능한 수레가 달린 이벤트 바이크도 있어 자신만의 소규모 창업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카고 자전거가 갖는 매력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덴마크에서 카고 바이크를 비롯한 자전거가 가장 편리하고 긍정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덴마크는 가장 높은 지대가 해발 150미터에 불과할 만큼 국토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등 자전거를 타기에 쾌적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 환경 보호 정책의 하나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에 매기는 탄소 배출세를 자동차 구매 시에는 180퍼센트나 부과한다.

여기에 안전하게 정비된 자전거 도로(코펜하겐 시내에만 411km의 자전거 도로가 마련되어 있다)와 자전거를 위한 교통 시스템도 큰 몫을 차지한다. 따라서 덴마크인들에게 자전거는 '가장 빠르고 편리하면서 가장 경제적인 교통수단'인 것이다. 즉 자전거가 환경을 보호하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덴마크인의 정서와 이를 정책으로써 뒷받침하는 국가의 노력이 고루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쓴 정민혜는…

도쿄를 거쳐 파리에 정착한 지 5년. 온라인 빈티지 숍을 운영하며 틈나는 대로 유럽의 도시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체험한 그곳의 라이프스타일을 사진과 글로 전하고 있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남의 것을 막무가내로 탐하거나 지각없이 부러워하는 성정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 여행을 하면서 종종 시기와 질투를 금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 그 나라의 특징으로 이해하지만 어떤 부분은 이 땅에도 이식시킬 수 없을까 하며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유럽을 다니면서는 유독 두 가지가 부러웠다. 하나는 보행의 즐거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고성의 존재였다.

유럽에서 얻는 보행의 즐거움은 산이나 지방 혹은 외곽지역이 아니라 대도시에 있다는 것.

우리네와 대별되는 지점인데, 철저하게 보행자 위주로 조성된 대도시의 거리 그리고 걷는 멋과 맛을 한껏 돋우는 주변 경관은 수도 서울의 복잡하고 혼탁한 거리에 비해 확실히 부러움을 자아낸다.

고성만해도 그렇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고성과 퓌센의 노이쉬반스타인 성을 비롯해 돈키호테와 그의 애마 로시난테가 터벅터벅 함께 걸어갔을 듯한 시골길을 따라 방문하는 스페인의 고성들,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루아르 지방의 호화로운 고성들은 해당 도시에 고색창연하고 중후한 멋을 드리운다.

또 이들 고성은 실용적이기까지 해서 일부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로, 일부는 박물관 등으로 전용돼 관광객 유치에 단단히 한몫을 한다. 물론 고성들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민관의 노력 또한 각별하다.

◈ 걷는 즐거움, 보행자의 천국 = 서두를 길게 뗐지만 결국은 덴마크를 이야기하고자 함이었다.

으레 덴마크하면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과 인어공주 그리고 장난감 레고 등을 거의 반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덴마크는 보행자들의 천국이자 아름다운 고성들이 곳곳에 들어선, 고상하고 우아한 풍치가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특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한 마디로 '걷고 싶은 도시'로 압축해 표현할 수 있겠다. 보행자 편의를 위해 과감히 계단을 없앴으며, 발길에 치이는 설치물도 치워버렸다.

또 모든 건물은 시청의 종탑 보다 낮아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 건물 높이를 6층으로 제한했다. 도심을 걷는 이들에게 다정한 탑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결정'이었던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걷는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보행 인프라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다시 소개하겠지만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의 경우 폭 10미터 안팎의 길 양쪽에 명품점과 레스토랑 등 2000여 개의 작은 가게들이 입점한 중세풍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어, 거리에 살가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도자기 명품점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로열 코펜하겐, 꽃을 사기 위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꽃장식이 대단한 테에 아나슨 꽃가게, 10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빵을 구워내는 라인반하원 등의 명품점들과 함께 싸구려 할인마트나 기념품 코너도 공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은 가게들의 성공은 보행자 전용도로와 역사적 건물의 재생을 연동시키는 계획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걷고 싶은 도시 코펜하겐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다. 스트로이는 덴마크어로 '산책'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콩겐스 뉘토우 광장에서 시청 앞 보행자 광장까지 5개 보행자 전용도로를 통칭한다.

시민들은 누구나 주저 없이 '스트로이를 밟지 않고서는 코펜하겐을 다녀간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짱짱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1.4km에 이르는 스트로이를 시나브로 끝까지 걷게 되는데, 이유는 앞서 말한 그대로다.

◈ 중세로의 행복한 잠입 = 자, 이제 시간을 거슬러 중세로 잠입할 시간이다. 덴마크 여기저기에 산재한 고성을 찬찬히 뜯어보자는 것이다.

코펜하겐을 벗어나 기차로 45분 정도 가면 명미한 도시 헬레뢰드가 있다. 주변의 비옥한 농촌지역에서 경제적 뒷받침을 받는 번창한 시장도시이자 철도 교차점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프레데릭스보그 성(Frederiksborg Slot)이 있어 유명하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1602년부터 1630년까지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지은 붉은 벽돌로 된 독일 르네상스 형식의 이 성은 '덴마크의 베르사이유'로 일컬어진다. 200여 년 동안 7명의 국왕이 이 성에서 대관식을 올릴 정도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성이다.

1859년 화재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을 때 왕실에서 이를 재건할 경제적 여유가 없자, 맥주 재벌인 칼스버그 야콥센의 기부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덴마크의 유구한 역사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와 회화, 가구, 보물 등을 전시하는 역사박물관으로 기능한다. 성을 둘러싼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탐스럽게 꾸며진 정원은 소풍을 즐기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다.

로젠보그 궁전 (Rosenborg Slot)은 1617년 당시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의 뜻에 따라 세워진 네덜란드 양식의 별장으로 그의 건축물 중 가장 매력적으로 평가받는다. 크리스티안과 연인인 키아스텐 뭉크와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궁전 내에는 무도회장, 홀, 응접실 등이 있는데 웅장함보다는 왕이 언제든지 되돌아 올 것 같은 친밀감이 느껴진다. 궁전에는 크리스티안 4세와 5세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2개의 왕관이 있다.

전임 국왕의 왕관은 절대 군주제 전의 것으로 머리 부분이 열려있고 후임 왕의 왕관은 국내를 통일했다는 의미로 하나로 막혀 있는 점이 특이하다.

덴마크의 정원이라 불리는 핀 섬은 셀란 섬과 스토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 나라 제2의 섬이다.

낙농업이 발달했으며 특히 전원풍경이 아름답다. 섬의 중심지는 바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덴마크 제3의 도시 오덴세. 안데르센과 세계적인 작곡가 카룰 닐센의 고향으로 특히 유명하다. 섬 남쪽에는 이에스코우(Egeskov) 성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옛 성으로 1552년에 세워졌는데, 호수 위에 건립된 빨간 벽돌의 성벽과 탑은 주위의 넓은 정원과 어울려 덴마크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손꼽힐 정도다.

로코코 양식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아말리엔보그 궁전(Amalienborg Slot)은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공식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는 곳.

왕실의 거처라고는 하지만 곰털 모자를 쓴 위병이 서있지 않다면 궁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검박한 분위기다. 여왕이 궁전에 머무르고 있는 날에는 낮 12시쯤 왕실 근위병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

빨간색 상의를 입은 70명의 위병들이 로젠보그 궁전 숙사에서 출발, 시내를 지나 궁전 광장으로 입장한다. 만약 산책 중에 위병 행진을 만난다면 피하지 말고 악대의 음악에 맞춰 뒤를 따라가 보자. 순간 수백 년 전 과거로 불시착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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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크루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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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전역을 도는 프린세스크루즈

"와…진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항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선박을 보고 나서 뱉은 첫마디다. 말이 안 나온다. 요즘 유행어로 '어마 무시하게' 크다. 휴대폰 카메로 찍으려고 하는데 화면에 다 안 들어온다. 알아보니 높이가 19층이고 길이는 축구장 3개를 합쳐놓은 크기라고 한다. 인간을 한번에 압도하는 웅장함이다. 크루즈 여행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다. 호화 유람선에서 먹고 놀고 쉬면서 힐링을 즐기는, 그야말로 럭셔리의 표준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기항지에 내려 도시 탐험도 즐긴다. 최근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무장하면서 노년층뿐 아니라 청장년층도 즐기는 문화로 변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북유럽 크루즈는 1년 중 여름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여행 코스다. 추운 날씨와 긴 이동거리로 인해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북유럽(핀란드·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을 열흘 안에 전부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독일(베를린),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 관광 등은 덤이다. 

여행은 프린세스크루즈의 초호화 크루즈선인 '리갈 프린세스(Regal Princess)'호를 이용했다. 프린세스크루즈 북유럽 7개국 상품은 크루즈 매체인 포트홀매거진(Porthole Magazine)이 선정한 '최고의 북유럽 일정'으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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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크루즈 선상 전경

프린세스크루즈의 북유럽 여행 일정은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에서 출발해 헬싱키(핀란드), 스톡홀름(스웨덴), 코펜하겐(덴마크), 오슬로(노르웨이), 베를린(독일), 탈린(에스토니아)을 거쳐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열흘 일정이다. 리갈 프린세스는 무게 14만1000t으로 승객 3560명과 승무원 1346명을 합친 약 5000명의 인원을 태울 수 있는 초대형 선박이다. 선내에 자체 방송국을 갖고 있어 라이브쇼를 TV중계할 정도니 말 다했다. 하루 종일 흥미진진한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가 펼쳐져 승객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이를 위해 매일 아침 객실로 그날 일정과 모든 이벤트들이 자세히 적혀 있는 선상 신문이 배달된다. 당연히 모든 것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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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파티가 열리는 중앙광장

이곳에서 눈에 띄는 시설은 단연 '시워크(SeaWalk)'. 16층에 유리로 만든 돌출형 바닥과 유리 터널을 만들었다. 걸어가면서 40m 아래를 보며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선덱에서 일광욕을 즐기면 된다. 

음식은 일부 유료 레스토랑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료다.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뷔페에서는 먹고 싶을 때 24시간 언제든지 식사를 즐길 수 있고 손만 뻗으면 배 위에서 갓 구운 피자와 바삭한 팝콘, 달달한 아이스크림 등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크루즈의 또 하나 매력은 남자라면 턱시도와 매끈한 구두, 여자라면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즐기는 정찬 레스토랑 만찬이다. 근사한 분위기에서 웨이터의 시중을 받으며 고급 요리를 먹어보자. 드레스 대신 고운 한복과 기모노, 차파오 등 각 나라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도 많이 보이니 이 또한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먹기만 하면 몸이 둔해질 수 있으니 이제 운동을 할 차례다. 갑판에 설치된 육상트랙을 뛰고 나면 어느새 땀이 송글 맺힌다. 실내 피트니스센터도 있다. 한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트레드밀을 뛰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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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크루즈 여행 팁 

북유럽이 많이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미지의 세계다. 당장 스톡홀름과 코펜하겐이 얼마나 다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서울과 도쿄가 완전히 다르듯 이들도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당장 기항지에서 내려보면 쓰는 화폐도 전부 다르다. 핀란드는 유로화를 쓰고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는 자체 통화를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북유럽 통화를 환전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출국 전 유로화로 환전해서 현지에서 자체 통화로 바꾸는 것을 추천한다. 

언어도 모두 다르지만 북유럽인들의 영어가 매우 유창해 생각보다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길거리 간판과 주요 관광지들은 영어로 병기가 돼 있다. 아무에게나 영어로 물어봐도 전부 알아듣고 잘 응대해주는 편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북유럽의 여름은 백야가 존재하므로 해가 매우 늦게 진다는 것. 늦을 때는 오후 11시에 질 때도 있다. 해가 길어지므로 볼거리가 많아진다는 점은 좋지만 생체리듬 관리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교통편 역시 걱정 안 해도 된다. 기항지에서 내리면 관광버스들이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티투어버스가 있는데 25유로(약 3만3000원) 정도면 해당 도시의 주요 핫 플레이스들을 편하게 둘러보면서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물론 크루즈사에서 제공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된다. 

언어에 어느 정도 자신 있다면 현지 트램이나 버스, 지하철 등도 추천한다. 북유럽 국가 모두 물가가 매우 비싸지만 나라마다 여행객을 위한 단기 교통패스를 운영하기 때문에 크루즈 관광 특성상 짧은 시간 둘러보는 데 최적이다. 

예컨대 노르웨이 '오슬로 패스(Oslo Pass)'의 경우 4만원 정도면 현지 여행자센터에서 구입할 수 있어 오슬로 내 대중교통수단과 박물관 등을 전부 이 패스 하나로 이용할 수 있다. 

▷ 문의 = 프린세스크루즈 한국지사 (02)318-1918 www.princesscruises.co.kr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스톡홀름(스웨덴) 등 = 원요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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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에어드롭을 마친 뒤 탐험대 픽업을 위한 마지막 에어드롭까지는 약 20여 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썰매개들이 너무 지쳐 운행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느려졌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중순, 나는 촬영팀과 함께 탐험의 마지막 픽업 장소인 까낙으로 향했다.


자연 그 자체로 살아가는 까낙 사람들

사냥꾼들의 버려진 배 위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는 까낙의 꼬마들


지구 최북단의 마을인 까낙은 항공편도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고, 게다가 여름철에는 관광객과 극지 과학자들이 대거 몰려들기 때문에 티켓 구하기도 어려웠다. 에어그린란드 본부의 안느에게 사정을 해가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까낙 공항은 놀랍게도 활주로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이었다. 사실 어찌 보면 인구 600여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에도 공항이 있다는 것 자체가 더 놀라웠다. 하지만 지구 북단의 땅 끝 마을이라는 상징성을 생각해보면 관광객들을 위한 공항 하나쯤은 있어줘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지구 최북단 마을은 까낙에서 배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시오라팔루크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사람들의 표정은 순박하기 짝이 없고 차림새도 수수하다. 일루리사트 사람들도 굉장히 순박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예 투박한 자연 그 자체인 듯한 느낌을 준다.


까낙은 물이 귀하다. 마을 뒷산의 내륙빙하에서 녹아내리는 물을 저장할 상수도 시설이 없기 때문에 면사무소 격인 카운실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물탱크에 물을 채워준단다. 그래서 세탁이나 설거지는 물론 샤워조차도 남은 물의 양을 잘 계산해가며 사용해야 한다. (까낙의 숙소에 머리를 감다가 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샴푸를 수건으로만 닦아내기도 했다.) 수세식 화장실도 없다. 노란색 비닐봉투를 설치하여 변기로 사용하고, 다 채워진 봉투를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내놓으면 역시 월, 수, 금요일마다 카운실 차량이 다니며 수거를 해간다.


까낙 숙소를 빌려준 덴마크 출신의 지게차 기사 피터슨에게 ‘이런 곳에서 사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No Problem’ 하며 웃는다. 까낙에 사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런 것에는 불평을 하지 않는단다. 다만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와 그에 따른 사냥 환경의 변화를 가장 불편해 할 뿐이란다.

까낙 뒷산의 내륙빙하에서 녹아 흐르는 물

분뇨 봉투를 수거해가는 까낙 카운실 직원


까낙의 사냥꾼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우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던 마리우스부터 찾아갔다. 그는 까낙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곳 사냥꾼들에 대해서 잘 안다며 거침없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올해 마흔다섯 살인 마리우스는 10년 전 이곳 까낙에 와서 처음에는 투어 가이드를 했지만 이듬해에 사비시비크(Savisivik)로 거처를 옮겨 본인도 사냥꾼이 되었다고 한다. (사비시비크는 약 20여 가구에 48명이 살고 있는 까낙 남쪽의 사냥꾼 마을이다.)


까낙을 포함하여 이곳 북단 마을의 사냥꾼들은 겨울에 곰과 물개, 바다코끼리를 잡고 여름에는 일각고래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직 그것만이 이 극지마을에서 살 수 있는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냥이 몹시 힘들어졌다. 첫째는 더워진 날씨 때문이고 둘째는 정부의 쿼터제 때문이다. 북극 까낙 지역 전체 사냥꾼에게 정부가 허락한 북극곰 사냥 쿼터는 1년에 18마리뿐이고, 그나마도 얼음이 녹아서 방황하는 북극곰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한때 주 수입원이었던 물개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더 이상 내다 팔수가 없다. 예전에는 물개 가죽을 전 세계로 수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린피스 같은 단체들의 압력으로 인해 어느 나라도 수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어디선가 행해지고 있는 상업성 사냥과 서방세계의 편협한 시각으로 인해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사냥하는’ 이누이트 사냥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북극의 눈물이란 얼음의 눈물이나 북극곰의 눈물이기도 하지만 척박한 극지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의 눈물이기도 하다.


까낙에서 맞는 백야의 첫날 밤, 마리우스와 긴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마리우스, 지금은 여름이라 밤이 환하지만 겨울엔 어떤가요? 하루 종일 캄캄한 밤만 계속되는 그 시기엔 도대체 뭘 하면서 지내죠?”


그러자 마리우스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데, 그리고 하얀 눈이 있는데 어째서 캄캄한 밤이지?”

북 그린란드는 12월에서 2월까지 태양이 거의 뜨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 시기에 끝없는 밤이 계속될 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별과 달, 그리고 북극광과 눈이 있어 결코 캄캄하지 않다고 한다.




내추럴 본 헌터

다음 날 아침 마리우스가 두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사냥꾼 마마우트와 기디언이었다. 다들 MBC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뿐만 아니라 BBC 등 세계적인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 단골로 출연할 만큼 까낙의 전통 사냥꾼들이다.


“저희 집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기디언이 약간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초대받은 것도 고마운데 운 좋게도 나는 그의 집 근처에서 썰매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까지 촬영할 수 있었다.


물개 고기를 잘라 던져줄 때마다 16마리 정도의 개들이 순서대로 받아먹는 모습은 놀랍기만 했다. 먹이를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일루리사트의 썰매개들에 비해 까낙의 개들은 뭐랄까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정예요원’ 같았다. 그리고 일루리사트의 개들에 비해 몸집은 조금 작았지만 머리는 더 컸으며, 짙은 갈색 눈에 아주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일루리사트 개들과는 느낌이 다른 까낙 썰매개

새끼 썰매개를 들고 있는 까낙 소녀


잠시 후 기디언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여기저기 곰 이빨과 일각고래 뿔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저 곰 이빨은 어디서 난 겁니까?”


그러자 기디언은 아무렇지도 않게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기절할 뻔했다. 냉장고 안에는 곰 머리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지난 봄 사냥에서 갓 잡아온 북극곰이란다. 껍질이 벗겨진 채로 냉동 보관되고 있는 곰 머리! 그제야 나는 여기가 북극 끝 마을 까낙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기디언은 우리 일행을 위해 그린란드 감자와 고래 스테이크를 내놓았다. (그레이비소스가 뿌려진 고래 스테이크, 정말 특별한 맛이다! 안심일까, 등심일까?) 식사가 끝난 뒤에는 다시 마마우트의 집으로 옮겨서 다함께 맥주를 마시며 그들이 출연했던 다큐멘터리를 감상했다. 기디언과 마마우트는 다큐에 출연했던 당시의 일들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50대 초반의 마마우트는 ‘노벨 사냥꾼 상’이라도 수여해야 할 만큼 전형적인 북극 사냥꾼이다. 예전에 개썰매 사고로 발목을 다친 뒤 몸집이 많이 불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 사냥꾼들의 맏형답게 몸에서는 여전히 헌터의 포스가 진하게 뿜어져 나온다. 사냥꾼으로서 그의 이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일각고래다. 그는 일찍이 86년, 88년, 2000년 무려 세 차례에 걸쳐 뿔이 두 개인 일각고래를 잡은 적이 있다. 바다의 유니콘이라 불리는 일각고래는 세계적으로 이곳 까낙 등지에서만 서식하는데 뿔이 두 개인 경우는 여기 사람들에게조차 희귀하다. 사냥꾼에게 반드시 필요한 담력과 용기, 지혜뿐만 아니라 행운까지 갖췄으니 그는 진짜 ‘Natural Born Hunter’인 셈이다.


우리는 마마우트의 안내로 바닷가에 있는 사냥꾼들의 클럽 하우스로 갔다. 거기서 마마우트는 새 카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곳 사냥꾼들의 삶은 단순하다. 일 년의 반은 사냥 준비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사냥을 하며 보낸다. 마마우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카약을 만드는 동안 그의 어린 딸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리고 그의 아내 뚜꾸믹은 저만치 떨어져 담배를 피우며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까낙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일각고래와 물개, 바다쇠오리 사냥을 떠난다. 물론 학교에서 여러 과목을 공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초 지식일 뿐 그들의 삶과 미래는 거의 대부분 북극 바다 위에 무한정 펼쳐져 있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족이었다.

마마우트의 집 벽에 걸린 뿔이 두 개 달린 일각고래 사진(1986년)



어느 원로 사냥꾼의 슬픈 회상

사냥꾼들과 헤어진 뒤 숙소까지 걷다가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다. 왠지 낯이 익다 싶어 유심히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북극의 눈물>에 출연했던 ‘우사깍’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온 탐험대라고 소개하자 그는 두 팔을 벌려 반갑게 포옹을 하더니 기어이 집까지 초대했다. 우사깍과 그의 아내 잉까는 내게 빵과 커피를 대접하며 시종일관 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50년 이상 살아온 우사깍 노인의 집

우사깍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필자


우사깍은 거의 평생을 사냥만 하며 살아온 진정한 북극 사냥꾼이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경험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지식과 연륜이 묻어나는 지혜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나는 이곳 출신이 아닐세. 원래는 피투픽에서 태어나 거기서 쭉 살았었지.”


그런데 1953년 어느 날 갑자기 덴마크 정부로부터 난데없이 강제이주 명령이 떨어졌단다. 이유 불문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그곳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버리고 무조건 떠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3일이었다.


“왜 내쫓은 거죠?” “거기다 미군 기지를 짓기로 했거든. 그게 이유일세.”


결국 오늘날의 까낙은 미군 기지에 쫓겨난 사람들의 또 다른 정착촌이었던 것이다. 우사깍은 그렇게 이곳 까낙으로 왔고, 억울하게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던 그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1968년에 핵무기를 싣고 가던 것으로 추정되는 미군 비행기가 까낙 부근의 바다에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로 이 지역은 심각한 생태계 혼란에 직면하여 기형의 물고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도 이상한 질병이 생겼다. 그러나 미군 당국과 덴마크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사깍은 그동안 모아온 수많은 근거 자료를 가지고 덴마크 대법정까지 갔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두 사건 모두 국제 법정에 제소한 상태라네. 나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싸울 걸세.” 우사깍의 눈빛이 갑자기 청년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는 또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를 예견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인공위성 사진이나 여러 가지 데이터로 그것을 알지만 자기는 사냥꾼의 직감으로 이미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북극의 얼음 속에서 사냥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니 만큼 그의 몸과 머리에 저장된 환경변화의 데이터는 어떤 컴퓨터보다 훨씬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대화 도중에도 그는 계속 땀을 흘리며 힘들어했다. “나는 얼음 한복판에서 태어나 평생을 얼음 위에서 살았지. 그래서 내 몸은 이렇게 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아.”

인구 600여 명이 살고 있는 지구 최북단 마을 가낙 전경


지구 최북단 마을 까낙, 이곳은 혹독한 환경과 싸우며 거칠게 살아가는 사냥꾼들의 마을인 만큼 그린란드의 전통이 가장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누이트식 풍습이나 식습관 혹은 사냥방식만을 보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까낙이 간직한 진정한 전통은, 자연을 대하듯 숨김없이 가슴을 열어 생생하게 사람을 만나고 껴안아주는 이들 특유의 ‘만남의 방식’이리라.


백야의 늦은 밤, 나를 마치 아들처럼 대해주는 우사깍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은 뒤, 우리는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나의 아버지와 같은 해, 1944년에 태어난 이누이트 원로 사냥꾼의 손길은 더없이 따뜻하기만 했다.

14박 15일, 5639.5km

ⓒ 최태원

북유럽을 또 모터사이클로 하는 여행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2010년 여름(7월 8일~25일), 필자는 속초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자루비노항에 내려 장장 30일 동안 러시아와 몽골을 달려 상트페테부르크를 거쳐 핀란드 헬싱키에 도착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 준 14박 15일 북유럽 바이크 횡단기.


1~3일
 러시아 국경 부터 헬싱키 도심까지 255.8km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유럽국인 핀란드로 통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별도의 서류도 필요 없으며 통과시간도 10분 정도 소요된다. 국경을 넘어 E18 도로를 타면 헬싱키까지 쉽게 갈수가 있다. 헬싱키는 핀란드의 수도로써 값비싼 호텔부터 저렴한 호스텔까지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바이크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넉넉한 주차공간이 있는 호스텔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4일 스웨덴 스톡홀름 / 페리이동
북유럽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페리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우리가 탈페리는 실야라인(www.siljaline.co.kr)으로 핀란드 헬싱키에서 스웨덴 스톡홀롬행이다. 길이가 200m가 넘고 엘레베이터가 12개나 되는 초호화 북유럽페리인 실야라인은 각종 편의시설, 수영장, 면세점, 각종 음식점 및 클럽까지 없는 거 빼곤 다 있는 그런 곳이다. 유라시아 횡단을 하면서 너무 고생한 우리에게 이런 초호화페리는 매우 달콤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은 상관도 없이 12층 꼭대기에서 샴페인과 연어스테이크를 먹으며 우리만의 선상파티를 즐겼다.

5일 톡홀름 ~ 헤르뇌산드 435km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은 '북국의 베네치아'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다. 시내는 중세의 분위기를 풍기는 구시가와 다양한 문화 시설을 포함한 현대적인 신시가가 공존한다. 노르웨이의 최북단 트롬소를 가기 위해 E4도로에 올라섰다. 북유럽은 라이더들의 천국이다. 구불구불 와인딩 코스부터 편안한 도로사정. 사방엔 푸른 산과 동화에나 나올법한 푸르고 맑은 물이 사방에 있다. 눈이 심심할 여유가 없다. 게다가 주변엔 좋은 시설을 갖춘 캠핑장이 즐비하다. 덕분에 캠핑카 및 바이크 여행족들이 많다. 필자도 노르웨이로 향하는 E4도로 휴게소에서 독일 라이더 '안드레이'를 만났다. 그는 12년도 더 된 야마하 바이크를 타고 다니며 홀로 여름휴가를 왔다고 한다. 

이동하는 경로가 같아 함께 이동하기로 한 우리는 캠핑장에 자리를 잡고 안드레이를 텐트에 초대해서 서로의 음식을 나눠먹으며 맥주를 마시고 새벽2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이것이 바이크 여행의 장점이다. 바이크라는 공감대 하나만으로 서로의 경계심이 사그라지고 어느새 허물없는 친구가 된다. 이렇게 또 소중한 한명의 친구를 얻었다.

(위에서부터) 1 북유럽은 바이크 천국이다. 2 덴마크로 넘어가기전 스웨덴 캠핑장. 3 북유럽 도로에선 야생 순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 최태원

6일 칼릭스 577.8km + 에논테키스 502.6km
북유럽의 묘미 하나가 백야이다. 백야는 고위도 지방에서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다. 자연스럽게 자는 시간이 늦어진다. 눈가리개는 필수인 이유다. 노르웨이로 올라가려면 E4에서 E8 도로로 갈아타야 한다. E8도로는 참재미있다. 스웨덴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지만 갑자기 핀란드로 들어와서 달리게 되고 또 스웨덴에서 달리게 되고… 작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라와 나라를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한다. 결국에는 핀란드에서 노르웨이로 올라가게 된다. 노르웨이에 들어가기 전 이곳에서 핀란드 사우나를 경험해 볼 것을 추천한다.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낼 수 있었다.

7일 트롬소 504.4km
노르웨이에는 곳곳에 순록 출몰 안내판이 있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순록들을 볼 수가 있다. 순록들을 보는 것도 신기하지만 운전의 조심성이 따른다. 노르웨이 국경을 넘는 순간 그림이 바뀐다. 만년설이 뒤덮인 산에 크고 작은 폭포수. 엽서에서만 보던 인터넷에서 찾아보던 그런 자연의 대장관이 펼쳐진다. 이 자연의 위엄에 내 자신이 작아진다. 북쪽 도시 중 가장 크다는 트롬소에 도착해보니 굉장히 디자인적인 건물들이 많고, 크고 작은 페리와 요트들이 나름 운치 있었다.

8일 보되 Bodo 301.8km
여름철 노르웨이의 여행은 날씨가 변수이다. 아름다운 주의경관들을 보지 못하게 되어 속상해진다. 하지만 산 속에 짙게 깔린 안개 덕에 노르웨이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마치 판타지소설에나 나올법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대의 특수효과가 아닌 자연이 빚어낸 작품이다. 비가오는데도 한동안 주위를 살펴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노르웨이는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라 페리를 잘 이용하면 더욱 재밌게 여행 할 수가 있다. 보되로 향하는 페리는 오후 7시30분에 출발을 한다. 운행시간도 4시간이나 되므로 되도록 편한 복장을 하고 있으면 된다. 노르웨이의 늦은 밤 12시는 대낮처럼 밝다. 백야 현상 때문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지독하게 차가운 눈과 얼음의 도시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1월에는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나는 덴마크의 겨울을 존중한다. 추위는 온도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실제 기온보다 바람의 세기와 상대적 습도에 좌우한다.… 차고 끈적끈적한 11월의 첫 소나기가 젖은 수건처럼 내 얼굴을 치면, 나는 모피를 댄 캐퓨친과 검은 알파카 레깅스, 스코틀랜드식 긴 치마와 스웨터, 검은 고어텍스 망토로 소나기를 맞는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라고 말하는 덴마크 여자의 목소리에 조용히 밑줄을 그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머문 적이 있던 코펜하겐에서 내가 느낀 당혹스러운 추위 때문이기도 했다.

17년 전, 코펜하겐 티볼리 공원 근처의 작은 호텔에 짐을 내린 적이 있었다.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는 7월 즈음의 일이었으므로 나는 짧은 면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날 호텔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다가 한기를 느낀 나는 어쩔 수 없이 티볼리 공원 근처의 가게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을 주고 스웨터를 사야 했다. 나와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져 있는 올리브 그린색 계열의 스웨터였다. 한여름에 나는 그 스웨터를 입고 코펜하겐 도심을 돌아다녔다. 코펜하겐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 얼음 속에 가득 차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것은 밤 12시까지 태양이 떠 있는 코펜하겐의 짙은 코발트 블루색 하늘과 백야만큼 기이한 체험이었다.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코펜하겐의 지독한 겨울과 눈과 얼음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겨울이 아닌 때의 호이브로 소광장의 모습은 지극히 평화로운 코펜하겐을 보여준다. / 한영희 기자
코펜하겐의 지독한 겨울과 눈과 얼음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찬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은 건 말레이시아의 어느 리조트에서였다. 안온한 태양이 빛나는 파라솔 아래에서 이토록 추운 소설을 읽는 게 내겐 굉장한 아이러니로 느껴졌었다. 그 격차가 클수록 선크림을 잔뜩 바른 등에서 땀이 더 배어 나왔다. 눈 대신 스콜이 내리는 이 뜨거운 도시에선 '얼음' 같은 차가움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에어컨이 밤새도록 작동되는 호텔뿐이었다. 휴가 기간 동안 이 책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후 서울에 돌아왔을 땐, 나는 한동안 기침 감기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그것을 스밀라의 얼음 때문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서 축복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고독을 느끼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스밀라. 그린란드 원주민인 어머니와 스웨덴 의사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경계인이다. 언제나 떠날 것을 대비해 자신의 방을 호텔방처럼 꾸민 이 여자는 무리수를 광기의 한 형태라고 이해하며, 유클리드 기하학을 반복해서 읽는다. 서른일곱 스밀라. 민간 탐사단이 극지 탐험에 반드시 데려가야 하는 유능한 항법사이며 한랭수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얼음 전문가. 그리고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독특하다고 평가받는 매력적인 캐릭터.

뉘하운 항구. / 오윤희 기자

소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코펜하겐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소년이 추락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의 이름은 '이사야'. 스밀라의 이웃집 소년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실족사로 처리하지만 스밀라는 직감적으로 소년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소년이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스밀라는 죽은 소년의 집에서 발견해낸 편지와 아이가 비밀장소에 남긴 녹음테이프를 단서로 사건에 얽힌 비밀들을 하나씩 추적한다. 소년과 이웃에 살던 수리공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곧 이사야의 죽음이 사망한 소년의 아버지와 '빙정석 주식회사'의 그린란드 탐사와 관련된 일임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왜'보다 '어떻게'가 훨씬 더 중요한 소설이다. 두꺼워진 번역 때문에 문장은 종종 얼음처럼 미끄러져 버린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소설을 끝까지 읽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스밀라의 이런 독백들 때문이다.

"나는 수리공을 좋아한다.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환자, 외국인, 반에서 뚱뚱한 남자애, 아무도 춤추자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어린 소년의 죽음을 외면하지 못하고 끝끝내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멀고 두려운 항해에 오르는 한 인간의 마음을 아는 일임과 동시에, 기돈 크레머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만큼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세계에 편입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스밀라의 세계를 아는 것은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얼음과 눈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엿보는 일이며,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이 어떻게 물이 되어 가슴을 적시고 뜨거워질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처럼 매력이 깊은 존경심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녀는 기꺼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녀가 유년시절 야채나 빵이 아닌 몸을 따뜻하게 하는 기름진 고기를 먹으며 그린란드의 얼음 위에서 자라났다는 것은 이 여자가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시대의 많은 아이들이 베트남 필리핀처럼 다른 국적의 엄마를 두고 자라난 경계인, 즉 '디아스포라'들이라는 것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1993), '덴마크 올해의 작가상'(1992) 등 수많은 상을 휩쓴 문제작이다. 1997년에는 빌 어거스트 감독에 의해 'Smilla's Sense of Snow'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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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행복찾기' 여행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은 핀 율, 아르네 야콥센, 한스 베그네르 등 덴마크 대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빠짐없이 소장했다. 세계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하는 덴마크 디자인의 과거부터 현재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다.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룸스 볼리후스(Illums Bolighus)에서 억지로 나왔다. 그대로 있다간 은행계좌가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았다. 생전 처음 '가방을 새로 하나 사서 몽땅 담아갈까?' '여기를 떠나면 다시 살 수 있을까?' 따위 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뛰었다. 매력적인 디자인 제품이 너무 많았다.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성전(聖殿)'이라는 코펜하겐 관광청 홈페이지의 설명대로였다.

디자인에 관심 있다면 코펜하겐에서 천국에 온 듯한 행복을 맛볼 듯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덴마크 디자인 제품의 원산지라고 훨씬 더 싸지는 않다. 한국보다 약간 더 싸달까. 하지만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에게 해주는 약 20%의 세금 환급을 포함하면 30% 정도 저렴한 가격이었다.

▨ 일룸스 볼리후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꼭 사야 하거나 사고 싶은 쇼핑 목록을 힘들게 작성했다. 그만큼 일룸스 볼리후스는 방대했다. 웬만한 백화점 수준. 간단한 인테리어 소품과 패션 상품부터 예쁜 접시 같은 주방용품, 욕실제품, 조명, 의자, 소파까지 없는 것 없이 구비했다. 코펜하겐에서 제일 번화한 쇼핑거리인 스트뢰엣(Strøget)에 로열 코펜하겐, 조지 젠슨, 일룸, H&M, 코스(COS), 레고 스토어 등과 함께 있다. 주소 Amagertorv 10, 웹사이트 www.illumsbolighus.dk

디자인 천국 코펜하겐
1,2 디자인 제품을 빠짐없이 갖춘 일룸스 볼리후스 매장 내부 전경과 조명 코너 3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 4 로열 코펜하겐 본사 5 고즈넉한 코펜하겐 골목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 일룸(Illum): 덴마크를 대표하는 백화점이다. 일룸스 볼리후스가 디자인 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곳은 패션·뷰티·생활 등 전반을 다룬다. 물론 디자인 제품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지하에는 식품관 대신 덴마크 수퍼마켓 이르마(Irma)가 입주해 있다. 리본을 머리에 두른 소녀의 얼굴 옆모습을 모티브로 한 로고와 패키지 디자인이 세련돼 선물하기 좋겠다. Østergade 52, www.illum.dk

▨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Designmuseum Danmark):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디자이너 한스 베그네르(Wegner)가 디자인한 '라운드 체어'는 1960년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이 이 의자에 앉아 대선 토론을 벌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베그네르를 비롯해 핀 율(Juhl), 아르네 야콥센(Jacobsen)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빠짐없이 소장했다. 입장료 어른 100DKK(약 1만6300원). Bredgade 68, www.designmuseum.dk

▨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설명이 필요 없는 덴마크 대표 브랜드. 1775년 왕실 후원으로 설립된 도자기 업체다. 스트뢰엣 거리에 벽돌로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본사다. 할인 행사가 늘 열리고 있다. Amagertorv 6, www.royalcopenhagen.dk

토르베할레르네 시장
1 토르베할레르네는 코펜하겐에서 제일 큰 시장. 고급 식료품 매장처럼 디자인이 빼어나다. 2 토르베할레르네 시장 안 과일 가게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 토르베할레르네(Torvehallerne): 시장(市場)도 이렇게 디자인이 좋다니. 토르베할레르네는 뇌레포트(Nørreport)역 광장 뒤 우범지대였던 공터에 2011년 들어선 코펜하겐 최대 규모 시장. 60여 가게가 유기농 채소와 과일, 해산물, 고급 식료품과 향신료를 판다. 덴마크 최고의 커피로 이름난 커피 컬렉티브(Coffee Collective)와 덴마크식 오픈샌드위치 스뫼레브뢰드(smørrebrød)를 파는 할레르네스(Hallernes), 정통 이탈리아식 피자를 굽는 고름스(Gorm’s) 등 음식을 파는 가게도 많아 구경도 하고 끼니도 해결할 수 있다. Frederiksborggade 21, www.torvehallernekbh.dk

▨ 파피뢰엔(Papirøen): 덴마크어로 ‘종이섬’이란 뜻. 과거 제지공장으로 쓰던 건물 안에 푸드 트럭들을 들여놓았다. 좁은 도로와 규제로 푸드 트럭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자 레스토랑 경영인 예스퍼 묄러가 나서 차린 일종의 푸드 코트이다. 30여 푸드 트럭이 멕시코 타고, 벨기에 감자튀김, 이탈리아 파스타, 터키식 부침개 괴즐레메, 한국 양념치킨 등 코펜하겐에서 맛보기 힘든 세계 각국 음식을 판다. Trangravsvej 14, Warehouse 7/8, copenhagenstree tfood.dk

여행수첩

북유럽 지도
1. 항공편: 직항은 없다. 핀에어(Finnair)가 가장 빠르고 편리하다. 북극을 넘어가는 핀에어는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10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 20분 출발,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오후 4시 10분 코펜하겐에 도착한다.

2. 시차: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3. 환율: 1덴마크크로네(DKK)=약 163원

4. 코펜하겐 카드: 환율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코펜하겐 물가는 비싸다. 코펜하겐 카드는 지하철·열차 등 대중교통은 물론 티볼리 공원, 대부분의 성(城)·박물관·미술관 등 74곳을 무료 이용 가능하다. 할인받을 수 있는 레스토랑과 쇼핑몰도 많다. 24시간 어른 339DKK, 10세 이상 아동 179DKK, 48시간 어른 469DKK, 10세 이상 아동 239DKK. 어른 1명이 10세 미만 아동 2명까지 무료로 데리고 다닐 수 있다.

5.정보: 코펜하겐관광청 홈페이지(visitcopenhagen.com)는 정확한 정보를 풍성하게 담았다. 아쉽게도 한글은 아직 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노르딕 요리' 주도하는코펜하겐 '노마' 레스토랑

'세계 50대 식당' 1위만 4회
발효 등 전통방식으로 조리… 메뉴도 제철 재료 따라 결정

"모든 요리의 중심은 맛… 오래 걸려 배송된 레몬보다 집앞 개미의 신맛이 더 나아"

코펜하겐(덴마크)=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코펜하겐(덴마크)=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적한 부둣가인 크리스티안하벤에는 과거 북해(北海)에서 잡아 소금에 절인 정어리며 말린 대구, 고래 기름·껍데기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던 낡고 오래된 벽돌 건물이 있다. 최첨단 미식(美食)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건물에 전 세계 미식가들이 맛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레스토랑 '노마'가 있다. 테이블 고작 11개에 불과한 작은 식당이지만 미식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하다. '세계 50대 식당'에서 2010~2012년과 2014년, 1위로 선정됐다. 오너 셰프(주방장 겸 주인) 르네 레드제피(Redzepi·38)는 2012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됐다.

레드제피를 만나러 코펜하겐에 갔을 때, 그는 부둣가에 있는 '발효연구실(Fermentation Lab)'에 있었다. 컨테이너를 여럿 이어 붙여 만든 2층 건물에서 그는 다양한 발효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레드제피가 열어 보인 흰색 버킷 안엔 노르스름한 빛깔의 반죽이 들어 있었다. 구수하고도 쿰쿰한 냄새가 우리 된장과 비슷했지만, 맛은 덜 짜고 더 달았다. 버킷 바깥엔 'Peaso(피소)'라고 적혔다. 레드제피는 "일본의 미소(miso) 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pea)을 이용해 장(醬)을 담갔다"고 했다. "누룩도 직접 배양합니다. 2년 전부터 매달 장을 담가 숙성시키며 어떻게 익어가는지 연구하는 중이죠. 된장·간장을 중심으로 한식도 공부하고 있어요. 지난해 서울 갔을 때 청국장을 먹어봤는데, 아주 좋았어요."

◇미식은 포식? 고정관념을 깨다

지난 100년간 현대(서양)요리에는 네 차례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20세기 초, 파리에서 일어났다.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Escoffier·1846~1935)가 프랑스 요리를 체계화했다. 그가 1903년 쓴 '요리 가이드'는 오늘날도 요리학교 교재로 사용된다.

저녁 영업 준비가 한창인 노마의 주방. 요리사들은 세계 최고의 식당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5시간을 기꺼이 일한다.
저녁 영업 준비가 한창인 노마의 주방. 요리사들은 세계 최고의 식당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5시간을 기꺼이 일한다.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두 번째 물결은 1970년대 밀려왔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미식=포식'으로 통했다. 풍요가 넘치면서 사람들은 맛있으면서 양이 적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요리를 요구했다. 이때 '누벨 퀴진'이 등장했다. 프랑스어로 '새로운 요리'란 뜻이다. 미셸 게라르, 알랭 상드랑 등 천재 요리사들이 겨자와 지방 함량 0%인 '소스 제로'를 활용한 '다이어트 요리'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단순히 양만 줄인 어설픈 요리를 누벨 퀴진으로 착각한 이류 요리사들이 대거 등장했고, 급격히 인기를 잃었다.

세 번째 파도는 스페인에서 시작됐다. 바르셀로나 인근 '엘 불리' 레스토랑이 진원지. 오너 셰프인 페란 아드리아는 요리에 덧입혀진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뜨리고 싶었다. 재료의 질감과 조직, 요리법을 철저하게 분석해 새로운 맛을 창조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라 불렀다.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한다'는 뜻이다. 알긴산이나 칼슘 용해액 같은 화학제품도 요리에 끌어들였다. 과일즙이나 꿀을 고체로 만들기도 하고, 고기의 맛 성분만을 뽑아내 거품으로 부풀리기도 했다. 아드리아의 시도는 세계 미식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엘 불리가 '세계 50대 식당'에서 2002년과 2006~2009년 1위에 올랐다.

◇"분자요리? 모든 요리는 과학"

일본 미소(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을 이용해 담근‘피소’된장.
일본 미소(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을 이용해 담근‘피소’된장.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그러나 과유불급. 사람들은 더 이상 '놀라움의 요리'에 놀라지 않았다. 음식 같지 않은 음식에 질려갈 즈음, 혜성처럼 나타난 식당이 노마다. 2010년 세계 50대 식당에서 엘 불리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노마의 음식은 엘불리만큼이나 기발했다. 하지만 분자요리처럼 과학에 기댄 인공 음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레드제피는 수렵이나 채집 등 인류가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활용한 재래 기법을 따른다. 발효나 훈제처럼 전통 보존·조리 방식도 부활시켰다.

레드제피는 "모든 요리는 과학적이다. 된장, 간장,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은 얼마나 과학적인가"라고 반문했다. "노마의 음식이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가 자연의 리듬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입니다. 엘 불리에서는 아스파라거스가 어디에서 났느냐는 따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일 년 사계절에 따라서 음식을 만듭니다. 그때그때 제철인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요리가 결정됩니다."

레드제피는 틈날 때마다 코펜하겐 주변 산과 들로 나가 각종 풀과 버섯을 채집한다. 전문 수렵꾼을 고용해 식재료를 공급받기도 한다. "모든 행위의 중심 목표는 '맛'입니다. 우리가 덴마크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에서 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건 맛이 덜해서입니다. 샐러드에 레몬 대신 개미를 사용했던 건, 지중해에서 비행기로 오랜 시간이 걸려 배송된 레몬보다 코펜하겐 인근 흙에서 잡은 개미에서 더 좋은 신맛이 났기 때문이죠. 비행기로 3일 걸려 날아온 냉동 고기와 30분 전 도축한 순록 고기, 어떤 게 더 맛있겠어요?"

◇레몬 대신 개미! 메뚜기로 담근 액젓

개미를 얹은 새우 요리.
개미를 얹은 새우 요리. /Michael Edwards
레드제피는 맞은편 선반에서 또 다른 흰색 버킷을 꺼내 열어 보였다. 액젓 비슷한 액체가 들어 있다. 살짝 찍어 맛을 보니, 액젓보다 짙고 구수한 맛이 소고기·돼지고기 등 고기로 담그는 육장(肉醬)을 떠올리게 했다. "메뚜기로 만든 가룸(garum)"이란다. "고대 로마에서는 가룸이라고 하는 고등어나 참치로 만든 액젓으로 요리했습니다. 가룸을 똑같이 되살리면 너무 비리고 짜서 현대인 입맛에 맞지 않지요. 가룸의 전통 기법을 사용하되 메뚜기를 재료로 써서 실험하는 겁니다."

이런 노마의 노력은 전 세계 요리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줬다. 북유럽 사람들조차 "북유럽엔 음식다운 음식이 없다"고 자조했지만, 노마가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얻으면서 자신들의 음식 문화와 전통을 재창조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는 '노르딕(북유럽) 요리'라는 이름으로 확산하고 있다. 발효 음식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음식 평론가 강지영씨는 "요즘 한국 발효 음식이 각광받는 건 노마를 통해 발효가 재인식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미식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으로 무시당하던 나라, 덴마크. 지금은 노마로 인해 미식가들이 일부러 찾는 여행지로 발돋움 중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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