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해/이스라엘관광청 제공

[투어코리아] '이스라엘은 성지순례 여행지뿐만 아니라 사막 투어, 지중해 해변, 와이너리, 스포츠, 다이빙, 스킨스쿠버 등 독특하고 다양한 관광자원이 수두룩합니다. 이러한 다채로운 매력 덕에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곳곳에서 한해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이스라엘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하나투어 여행박람회에서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샤이 파일러(Shay Feiler) 일등서기관을 만나 이스라엘의 여행 매력과 추천 여행지,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의 현황에 대해 들어봤다.

▲ 주한이스라엘 대사관 샤이 파일러 일등서기관

'치안보안 강화┸㈋ 혼자 다녀도 될 만큼 안전해요!'

사실 이스라엘을 외국관광객 중 한국 점유율은 1%도 채 되지 않는 2만2천630여명(2015년 기준) 수준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 수는 지난 2010년 3만8천423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0년 아랍의 봄, 2014 이집트에서의 성지순례객 버스 사고 등의 악재가 이어지며 이스라엘을 찾는 한국 관광객 수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2010년(3만8천423명) 대비 2015년(2만2천630여명) 41.1%나 감소했다.


하필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6월 9일 오전에도 '8일 발생한 텔아비브 도심 팔레스타인 총기난사'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샤이 파일러 서기관은 '테러는 비단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 터키, 벨기에 등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제'라며 '한국이 남북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어 외부에서 볼 때 위험해 보이지만 한국 안에서는 안전하다고 느끼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듯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예루살렘-통공의 벽

그러면서도 그는 '이스라엘은 치안보안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며 '특히 이스라엘 엘알(ELAL)공항은 외신기자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공항 1위에 오를 만큼 치안이 철저한 곳'이라고 전했다.


실제 이스라엘의 까다로운 입출국 심사 때문에 출국 전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하는 것은 물론, 가방의 짐을 풀어 검색할 만큼 안전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 공항뿐만 아니라 주요 여행지 출입시에도 검색 보안대를 설치,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을 최대한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에 직접 와서 경험한다면 여자 여행자 혼자 거리를 다녀도 될 만큼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전했다.

젊은층 겨냥 새로운 킬러 컨텐츠 개발 박차

샤이 파일러 서기관은 '이스라엘을 찾는 한국여행객의 40%가 성지순례객으로, 이런 성지순례에 가려져 이스라엘의 다양한 여행지와 액티비티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며'한국에 사막과 지중해, 홍해, 갈릴리 호수 등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와 즐길거리, 역사 유적지 등도 앞으로 적극 알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성지순례가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 여행지임을 감안, 젊은층을 겨냥한 '새로운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는 동시에 이미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상품들을 한국시장에도 적극 알려나갈 방침이다.

사막투어뷰티크 와이너리 투어 경험해보세요!

그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막투어와 뷰티크 와이너리 투어를 적극 추천했다. 이스라엘은 지리적 여건상 큰 규모의 와이너리는 없지만 작은 규모의 뷰티크 와이너리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또 지중해와 홍해, 사해 등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진 해변과 비치에서 다이빙,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레포츠체험을 할 수 있고, 관절염과 피부염에 좋다고 알려진 사해와 주변지역을 방문하는 '사해 한달 힐링코스'도 즐길 수 있다. 네게브 사막에선 등산, 낙타, 지프투어, 베두인족 체험, 암벽 등반 등 다양한 액티비티에 도전해볼 수 있다.


고급호텔 뿐만 아니라 젊은층을 위해 비용 부담이 적은 저렴한 호텔들도 갖추고 있다.


그 중 '이스로텔 베레시트(Isrotel Beresheet)'호텔에서는 사막 한 가운데에서 수영과
사우나 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베레시트는 히브리어로 '창세기', 창조라는 뜻으로, 의미 그대로 새로운 경험을 창조해 주고 있다.


텔아비브에서는 '나이트 라이프'를 체험할 수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 레스토랑, 카페, 음식 투어 상품 다양해 많은 유럽인들이 찾고 있다. 텔아비브 항구 주변에는 셰프들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여행시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무스와 팔라펠, 달걀과 토마토로 만든 샥슈카, 크림치즈와 시금치를 넣은 페스츄리인 삼부샥 등을 꼭 한번 맛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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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국제스포츠컨퍼런스 등도 또다른 매력



이스라엘에는 축제, 국제스포츠, 컨퍼런스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연충 펼쳐져 여행객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예루살렘 빛의 축제, 소리의 축제, 올리브 축제, 이스라엘 오페라 축제와 부림절, 유월절, 하누카 등 연중 다채로운 축제들이 열려 여행재미를 더해준다. 산에서 계곡으로 릴레이 경주, 철인 삼종, 갈릴리 호수변이나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달리는 마라톤 대회 등 국제 스포츠 행사도 연중 펼쳐진다.

▲ 통곡의 벽

<저작권자 © 투어코리아 & 투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온 게이트 쪽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성모영면교회Dormition Church의 시계탑.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이곳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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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는 평화의 열쇠가 있다.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공존의 방법을 찾는 일. 
그것은 지금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숙제다. 

예루살렘 여행자의 특권

째깍째깍 3,000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예루살렘은 ‘모색’ 중이다. 유대인 쿼터, 크리스천 쿼터, 아르메니안 쿼터, 무슬림 쿼터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한다. 이곳에서 모든 구역을 ‘눈치 없이’ 휘젓고 다닐 수 있는 자유는 오로지 여행자만의 면책특권이다. 

어느 유대인 가이드와의 동행

그는 친절하지 않았다. 그건 괜찮았다. 문제는 그가 공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가 죽고 부활했다는 곳, 그래서 기독교 최고의 성지인 성분묘 교회에서 그는 내내 한심하다는 눈으로 순례객들을 바라봤다. 구약성경만을 인정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저 한 명의 선지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관없다. 그는 유대교도니까. 하지만 그의 냉소는 들키기 쉬운 반감이었고, 은근한 폭력이었다. 인정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왜 모를까.

성분묘교회 내부의 순례자들

예루살렘에서 모자를 쓴다는 일

이스라엘에서는 여전히 복색이 신분이다. 검은 모자와 검은 양복을 입은 랍비들, 키파를 쓴 아이들, 초콜릿색 망토에 허리띠를 두른 수도사들, 타끼야Taqiyah를 쓴 아랍 남자들과 차도르를 쓴 여인들을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복장만으로 그들의 아침식단에 무엇이 오르고, 몇 시에 기도를 하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니, 정보는 전지전능하다. 하지만 때로는 ‘안다는 생각’이 벽이 되고, 오해가 된다. 어떤 모자를 쓰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내일 저녁 테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믿음의 땅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게 된다. 그것은 진실일까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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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들의 기도 모자 ‘타끼야’

닫힌 문, 열린 문

예루살렘에서 문은 그냥 문이 아니다. 어떤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그 공동체에 허락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백년 동안 게토Ghetto, 유대인 격리촌 안에서만 허락되었던 사람들. 유대인들은 다시 이 땅에 모여 거대한 게토를 형성하고 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담을 둘러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장벽이 허물어지고 문이 열리는 날까지 얼마나 오래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굳게 닫혀 있는 황금문이 열리는 날이 그날일까. 시온문에 남아 있는 무수한 총탄의 흔적은 문을 여는 방법이 총 끝에 있지 않음을 알려 준다.

시온 게이트

야파 게이트

성분묘교회

랍비 아빠의 기도 

<탈무드>의 지혜를 듣고 싶었지만 랍비들은 항상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들은 경계하고 멀어진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는 랍비들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빠, 책임감 있는 남편이다. 보호가 본능이 되어 버린 사람들. 기도 시간이 되자 비행기의 좁은 통로를 막아선 채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는 랍비와 그를 향하던 승객들의 야릇한 긴장이 허물어졌던 순간도, 아이가 울고 그가 다시 아빠로 돌아갔을 때였다. 

성모영면교회

통곡의 벽을 향해 기도하는 랍비

벤예후다 거리의 모녀

모든 곳에 내려진 신의 가호

가이드는 ‘통곡의 벽은 하느님과의 직통전화’라고 했었다. 이 벽에 대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리라는 믿음은 서신으로도 통하는 모양이다. 나는 소망을 들어준다는 모든 것에 희망을 걸어 본다. 수 천년된 나무와 바위, 불상과 신상, 도시마다 꼭 있는 동전 분수대에도 마음을 기댄다. 정성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 오랜 시간을 견뎌온 모든 것에 신의 가호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게 벤예후다 시장의 계단은 통곡의 벽만큼이나 의미가 있었다. 가만히 앉아 견뎌 온 시간들. 닳고 닳은 그 계단에 시선을 멈추고 정성을 더한 누군가에게도 신의 가호가 있기를. 

통곡의 벽

벤예후다 거리의 계단

안식일이 필요한 이유

안식일이 시작되는 저녁이었다. 정통유대인들은 모두 통곡의 벽으로 모여들었다. 토라를 암송하고 노래를 부르며 안식일을 경축하기 위해서다. 하느님이 그러했듯 모든 ‘창조 행위’를 멈추고 경건하게 보낸다는 25시간(안식일을 확실히 지키기 위해 1시간을 더했다고 한다). 음식도 조리하지 않고, 불도 사용할 수 없기에 철저한 ‘무위無爲’가 강요된 그 시간에 그들은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고 신앙을 점검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안식일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이 필요하다. 하루쯤은 어떤 노동도, 어떤 (창조라는 이름의) 민폐도 더하지 않고 살아 보는 날. 오로지 ‘나는 잘 살고 있는가’만을 생각해 보는 날. 

안식일날 저녁의 통곡의 벽과 그 너머 황금돔(바위사원)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유운상 
취재협조 이스라엘관광청 www.goisrael.kr 

터키 갈라타사라이의 홈구장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 Türk Telekom Arena 를 가다!

 

우리가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Türk Telekom Arena)를 찾아간 것은 갈라타사라이가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성공한 다음날이었다. 3월 13일, 벨틴스 아레나(Veltins Arena)에서 펼쳐진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갈라타사라이는 샬케04를 3대 2로 누르고 8년 만에 8강 진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바로 그 경기를, 동네에 있는 펍에서 함께 지켜본 나와 제이는 갈라타사라이가 너무나 멋진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경기가 끝날 즈음, ‘내일은 갈라타사라이 홈구장이나 가볼까?’ 하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경기장이 있는 메트로 역 이름 하나만 달랑 외운 채 무작정 집을 나섰다.

  

사진 1

 

2011년부터 갈라타사라이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

옛 경기장인 '알리 사미 옌 경기장'에 비하면 그 이름이 너무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터키의 이동통신 회사인 튀르크 텔레콤이 매년 1,025만 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10년 동안 경기장 명명권을 취득한 것이라고 한다.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는 메트로 2호선에 있는 세이란테페(Seyrantepe)역 앞에 있다. 하지만 나와 제이는 메트로 역을 찾아가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늘 이용하던 버스 정류장에서 세이란테페역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27E 버스가 그 근처로 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별 생각 없이 이 버스에 올라탔는데, 그런 준비성 부족한 태도 덕분에 우리는 이 아침, 예상에 없던 길고 긴 산책을 해야 했다.

 

 

사진 2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가 있는 세이란테페 역.
메트로를 타고 왔다면 이 역까지 금방 도착했을 것을 우리는 굳이 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아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처음 여행을 다닐 때만 해도 지도나 가이드북 같은 것을 꼼꼼히 챙겨 다니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준비물이 없는 것은 차치하고 제대로 된 정보조차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는 여행자가 되었다. 게다가 터키 여행은 두 번째이고, 그 중 이스탄불에서 머문 시간만 벌써 보름이 되어가니 어느 순간부터는 길은 다 길로 통하게 되어 있으니 어디로든 가면 되겠지 라는 마음 가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무작정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이쯤에서 내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그곳은 도저히 축구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나 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저쯤에 보이는 표지판에 Seyrantepe라는 글자가 보이기에 우리는 또 그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니 점점 외딴 골목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참아 보겠는데 주위가 온통 공사현장이라 우리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함께, 그 바람에 섞여 날아오는 먼지를 목 아프게 마셔야 했다. 때문에 목 안이 칼칼하다고 느낄 즈음, 저 멀리 축구장의 지붕쯤으로 보이는 동그란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가 타고 오던 27E 버스는 경기장 앞 정류장도 지나가는 버스였다. 그 사실을 모르고 엉뚱한 곳에 내린 덕분에 아침부터 우리는 모래 먼지 속에서 한 시간의 산책을 한 셈이었다. 그 사실이 못내 억울하긴 했지만, 어쨌든 경기장을 무사히 찾아왔으니 그걸로 됐다는 기분으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경기가 없는 날이라, 경기장 앞은 무척이나 조용했고 그 조용함 속에서 나와 제이의 발자국 소리만 뚜벅뚜벅 들리니 왠지 모르게 위압감이 느껴졌다.

 

 

사진 7

 

드디어 갈라타사라이의 홈구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경기장 안까지는 둘러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엔 철조망으로 된 문이 꼭꼭 잠겨 있는 것 같아, 혹시 들어갈 수 없는 걸까 하고 고민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저쪽 끝 한쪽 문이 빼꼼히 열려 있어 우리는 조금씩 경기장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러는 동안, 저 멀리서 걸어오던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기에 순간 출입통제구역인 것인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남자는 우리를 그냥 지나쳐 갔고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경기장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기장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은 경기가 없는 날이면 경기장 투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만 해도 투어는 없었지만 경기장 주변을 기웃거리자, 경기장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이곳은 ‘여긴 들어오면 안 돼.’라고 말을 하듯,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경기장 문 앞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었다. 대신, 경기장 바로 앞에 위치한 팬샵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서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진 3

 

갈라타사라이의 팬샵.
유니폼, 머플러, 장갑, 모자, 티셔츠 등의 패션용품뿐 아니라 이불, 텀블러, 토스트기 등 각종 생활용품도 함께 팔고 있다. 

갈라타사라이의 팬샵은 무척 멋졌다. 지금껏 가 보았던 어떤 축구팀의 팬샵보다도, 넓고 구경할 거리가 많고 그 만큼 사고 싶은 것도 많았다. 팀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고, 더불어 팬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팬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팬들에 대한 배려심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팀은 아니지만. 어쨌든 갈라타사라이가 터키를 대표하는 팀이라는 사실을, 지난밤에 이어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사진 4

  

다른 팬샵에서는 보지 못했던 아이디어 상품.
토스트를 구우면 갈라타사라이를 뜻하는 GS란 글자가 새겨져 나오는 모양이다.

 

 

사진 5

 

해 초,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해 온 드록바와 스네이더의 유니폼.
신이라고 불리는 남자, 디디에 드록바와 레알 마드리드 시절 애착을 가졌던 웨슬리 스네이더를 터키팀에서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드록바는 첼시FC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레전드 선수였고, 이후 프리미어리그를 은퇴하여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다가 다시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해온 것. 웨슬리 스네이더 역시 레알 마드리드, 인터 밀란이라는 명문팀을 거쳐 2013년 1월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했다.  

 

 

사진 6

 

갈라타사라이의 팬샵에는 팬들이 앉을 수 있는 ‘fan zone’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렇게 팬샵을 한참 동안 둘러본 후, 우리는 오는 길에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이곳을 보러 오기로 한 건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갈라타사라이는 매력적인 구석이 많은 팀 같았고, 때문에 경기장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이 팀의 홈 경기 일정을 되새겨 보았다. 사람들은 이스탄불에서의 한 달이 지겹지 않겠느냐 물어오곤 했지만, 나는 이 도시에서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늘어난 걸 느꼈다. 이로써 나의 터키 여행은 결코 지루할 틈이 없는,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고, 그래서 할 이야기도 그 만큼 많은 여행이 되어간다.

 

 

Information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 

- 가는 법 : 메트로 2호선 Seyrantepe역 하차

- 입장료 : 서포터석 35TL (W석의 경우, 100TL 전후)

- 수용인원 : 52,625명

 

 

Another Episode 

 

또 다른 축구장 투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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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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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여행하기'를 모토로 좋아하는 축구를 좇아 세계 각국을 유랑했다. 축구 전문 미디어 '스포탈코리아'와 전문 잡지 '풋볼위클리'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했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미디어에 시민기자로서 투고 중이다.


이스라엘. 아시아 대륙인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경상도 크기의 나라, 하지만 세계적인 기술대국으로 첨단기술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라, 예수의 탄생으로 알려진 나라다. 성서 속 수천 년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곳이며, 매년 수백만 명의 성지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聖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종교의 영향력은 대중의 삶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있기에, 여행지를 방문하기 전 그들의 종교를 살피고 갈 수 있다면 더욱 내밀한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볼 수 있을 것이다.


끊이지 않는 전쟁, 고난과 역경의 역사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는 남부 지역의 유명 관광지 쿰란(Qumran)과 마사다(Masada) 그리고 사해로의 여행은 그곳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을 감동 속에 느끼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세계 4대 문명 중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와 접해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가 바로 그러하듯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패권을 가진 자에 종속될 수밖에 없던 패자였기에 고난과 역경의 역사의 흔적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스라엘 남부의 유명 관광지 쿰란 유적

쿰란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이스라엘의 65개 국립공원 중 하나다. BC 1세기에 당시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는 영적 순수를 추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에서 집단생활을 했는데, A.D.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당시 이곳 역시 파괴되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들이 죽기 전 절벽의 동굴에 숨겨 놓았던 고대 성경 사본은 사해문서(the Dead Sea Scrolls)이라 불리며 가장 오래된 성서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사해문서가 2천 년 세월을 고스란히 견디어 낸 것은 바로 건조한 날씨 덕분이라 한다.

쿰란 지역에서는 에세네파들의 2천 년 전 삶의 현장을 유적지에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성서사본을 복사하는 방, 주민들이 대추열매를 말리는 보도, 도예가의 작업장, 휴게실 및 정화 의식용 욕조 등은 당시의 생활을 짐작케 한다.

헤로데스의 야망과 최후, 마사다 요새

쿰란에서 남쪽으로 32킬로미터를 내려가면 다윗사울을 살려 주었다는 엔게디 국립공원(ein Gedi)을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다시 18킬로미터를 더 가면 유명한 관광지 마사다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흥미롭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마사다에서는 인내와 힘, 신앙과 굴복 그리고 야망과 비극적 종말의 순간을 생생히 그려 볼 수 있다. 이곳은 이스라엘 군인과 학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선조들의 용기와 신념을 담아가곤 한다.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은 마사다

마사다(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는 기원전 40년부터 기원전 30년 사이에 뛰어난 건축가이기도 했던 헤로데스(헤롯왕)에 의해 별장 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피난처로 지어졌다고 한다. 사해에서 멀지 않은 곳의 고도 410미터 산은 평지에서 솟아올라 상당한 높이이며, 정면은 깎아지른 직벽이고 정상에는 길이 600미터, 너비 320미터의 평탄한 지대가 천여 명의 군사를 수용할 수 있으니 가히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은 이곳에서 몇 년이고 살 수 있도록 빗물을 받아 저장할 수 있는 물 저장탱크와 곡물창고, 병기고를 만들었으며 호화스러운 궁전을 지었지만 일생 사용할 기회는 없었다 한다.

B.C. 68년 로마에 대항한 대반란이 시작되었을 때 마사다는 열심당파가 차지했고, 결국 그들은 이 요새에서 최후를 맞는다. 72년에 로마의 장군 플라비우스 실바가 마사다를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하였으나, 난공불락의 요새를 어찌해 볼 도리 없이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다. 로마군은 궁리 끝에 마침내 요새의 뒤쪽, 서쪽 능선의 경사로를 흙과 돌 그리고 나무로 쌓아 올려 마침내 요새와 같은 높이에 이르렀다. A.D 73년, 마사다의 꼭대기에서 저항하던 960명의 열심당은 포로가 되어 굴욕을 당하느니 자결을 선택하기로 하고 동이 트기 전에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를 택한 이들의 영웅담과 최정예 로마군을 맞아 두려움 없이 맞서 싸운 무용담은 우연히 살아남은 노파와 두 여자아이의 입으로 후세에 전해졌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마사다의 전면

유적지는 기후와 지역 특성상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정교한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다. 유적지 중 으뜸은 아래 협곡을 내다볼 수 있는 세 개의 바위 테라스 위에 지어진 헤로데스의 북쪽 궁전이다. 궁전 가까운 곳에는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과 벽화로 장식된 벽들이 있는 거대한 로마 스타일의 욕실이 있으며, 이외에도 유대교 세례욕실, 저장실, 전망탑, 그리고 마사다 역사와 관련된 예배당 같은 많은 건축물과 저장실, 채색된 도자기, 동전들과 같은 공예품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상에서 로마군이 진을 쳤다는 곳과 흙과 돌, 나무로 돋우었다는 서쪽 경사로를 바라보면, 2천 년 전 전투의 함성, 절망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서로를 독려하는 결기 가득한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해, 죽음의 바다가 아닌 생(生)의 바다

유입량의 감소로 사해의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쿰란 엔게디를 거쳐 마사다로 오는 동안 옥빛 호수가 도로 왼편으로 함께 하니 이 호수가 바로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사해(Dead Sea)다.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 해발 -418미터에 위치한 사해는 북쪽 요르단강에서 물이 유입되지만 아래쪽에 유출구는 없다(해마다 조금씩 낮아진다). 사해 지역의 건조한 기후로 흘러들어오는 수량과 같은 양의 수분이 동시에 증발되어 염분농도는 최고 리터당 340그램에 이른다. 이 때문에 호수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으며 사해(死海)라는 이름도 여기서 기인한다.

사해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헬스 스파”로도 불리는데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검은 사해 진흙과 미네랄 온천수 그리고 사해 소금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는다. 사해 진흙과 온천수는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또한 건조한 사막 기후 덕에 오염되지 않고 꽃가루가 없는 맑은 공기는 산소와 브롬 및 마그네슘이 풍부하여 천식과 폐, 심장질환에 좋고, 일 년 내 비추는 강렬한 태양은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대표적 휴양 요양지역이다.

사해 주변에는 국제규모의 호텔과 리조트가 즐비하고 관광기반 시설이 훌륭하게 조성돼있다. 사람 몸이 뜨는 것으로 유명한 사해에서는 직접 체험 외에도 유대광야의 사막투어, 낙타투어, 지프 투어, 베두인 체험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

사해에서는 몸이 뜨는 현상을 즐길 수 있다.

사해 머드 체험,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쿰란, 마사다, 사해 여행은 순례자가 아닐지라도 너무나 감동적이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것이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서 느끼는 끊임없는 흥분과 긴장감으로 짧지 않은 여정이 일순 끝난 듯하다. 이곳을 다시 찾을 즈음에는 투쟁과 대립의 역사가 화해와 평화의 역사로 바뀌어 더욱 아름다운 땅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가는 길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공항까지 직항노선으로 대한항공이 주3회 운항하고 있다. 국영 이스라엘항공인 엘알과 터키항공, 우즈벡항공, 네덜란드항공은 북경, 타슈켄트, 암스텔담을 경유지로 운항하고 있다. 직항의 경우 11시간정도 소요된다.

숙박

숙박은 호텔리조트 키부츠 외에도 아주 저렴한 호스텔도 이용 가능하다. 관광예약은 숙박 호텔의 프런트에서 가능하며, 예루살렘에서 버스를 직접 이용할 경우 센트럴 버스터미널을 이용하면 된다. 왕복권을 끊는 것이 좋다. 당일 관광도 좋지만 사해에서 1박 정도를 하는 것이 여행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다.

여행 팁

이스라엘 여행에 있어 유의할 점은 출국 시 체류 기간 동안의 활동에 대하여 상당히 까다로운 일대일문답을 출입국관리 직원과 가져야 한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며, 각각의 종교가 내세우는 신념과 규율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종교의 가장 큰 목적은 인간의 삶을 더욱 나은 쪽으로 이끌어가야 하는데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신을 믿는 여부를 떠나 누구나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어 할 도시이다. 인간은 모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순례자’일 테니까. 현재 속의 과거가 살아 숨 쉬는 세계 3대 종교의 성지(聖地), 예루살렘으로 떠나보자.

낙타와 이스라엘 시가지 전경. 낙타의 평온한 모습이 도시의 모습과 어우러진다.

현재 속에 과거가 숨 쉬는 도시

다윗왕이 수도 예루살렘을 3천여 년 전에 건설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첫 성전을 건축한 이후, 그 도시명은 바로 경이롭고 성스러운 도시, 그 자체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이기도 한 예루살렘 안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을 믿는 세계 3대 종교가 공존하며, 이 3대 종교의 성지(聖地)가 곳곳에 있다.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에서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40여 분 정도 달려 성도(聖都)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이곳 동예루살렘에는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의 성지가 한자리에 들어서 있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과거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유대인은 이곳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웠지만, 기원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회당은 불타고, 유대인들은 무려 2,000년 동안 세계를 떠도는 크나큰 아픔을 겪었다. 기독교인에게도 예루살렘은 제1의 성지로, 올리브산(감람산)은 예수가 예루살렘이 입성한 뒤 자주 찾았던 곳이며 예수가 부활 후 승천한 곳으로도 전해진다. 그 밖에도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최후의 만찬을 했던 곳, 다윗왕의 무덤 등 상징적인 곳들은 무수히 많다.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모리야 바위 위에서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에게도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 성지로 꼽는 중요한 도시다. 오늘날 예루살렘 성벽 안쪽에는 이슬람 사원인 알 아크사 사원이 있다. 이처럼 세 가지 유일신 종교들은 이 도시에서 태어났으며, 각 종교마다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성지순례의 절정을 이루는 중요한 성지인 것이다. 유대교의 나라 이스라엘 안에 있는 기독교 성지에 더 많은 이슬람인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와 독특한 문화가 혼재한다.

통곡의 벽에서 비아 돌로로사까지

전 세계 유대인의 중요한 순례지인 통곡의 벽(Wailing wall)에 들어선다. 현재의 예루살렘 성에서 헤롯왕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서쪽 성벽인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에게는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의 상징이고,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는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속한 이슬람의 성지로 점철되는 곳이다. 하지만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 사이의 오랜 분쟁으로 다수의 사상자까지 나게 돼, 통곡의 벽에는 오랜 기간 이어진 슬픔이 묻어난다.

통곡의 벽.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로 북적인다.

비아 돌로로사 표지판. 총 14처소가 있는 슬픔과 고난의 길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남자와 여자가 들어서는 입구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복장도 민소매 셔츠는 허용되지 않으며, 무릎 위 이상의 바지나 치마는 입으면 안 된다. 또한 이곳에서 기도한 후 나올 때는 뒷걸음질 쳐 나와야 된다. 이곳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각자 기도하거나, 종이에 자신의 간구함을 적어 벽에다 끼어 넣는 사람들, 아예 작은 책상과 의자에 자리를 잡고 성경을 읽는 이도 볼 수 있다. 종교적 갈등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짧게 기도하고 광장을 나와 이스라엘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박물관에 있는 고대이스라엘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은 것을 보면, 정말 정교하고도 세심하게 만들어 놓아 시선이 자연스레 머물게 된다. 한참을 구경하다 무심코 고개를 드니 둥글게 생긴 흰 지붕의 건물을 보게 된다. 그 유명한 사해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의 서적관이다. 사해문서는 1947년 2월, 한 베두인족 소년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쿰란동굴에 들어갔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위대한 발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귀중한 문서이다.

이제 박물관을 나와서 다시 통곡의 벽 광장을 지나면, 아랍 상인들의 상점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을 만나게 된다. 그 길을 따라 죽 걸으면, 골목길 끝에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슬픔의 길)가 있다. 이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갔던 고난의 길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한발씩 올라가는 장면이 눈에 선해, 벌써부터 눈이 시리다. 약 1.6km 정도의 구간인 이 길에는 14개의 처소가 있는데, 예수의 마지막 여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 표지가 곳곳에 있다.

고대 이스라엘 미니어처. 사람들에 대비해 보면, 얼마나 정교한지 알 수 있다.

제12처소. 예수가 숨을 거둔 장소이다.

예수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다

비아 돌로로사의 마지막 유적지들이 있는 곳,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를 찾는다. 이 교회 안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유해가 내려지고, 묻혔다가 부활한 무덤이 있는 곳이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서기 335년 처음 세웠다. 1960년 본격 복원공사를 시작해 1997년 현재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성유석(기름부은 돌)을 볼 수 있는데,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를 무덤에 안치하기 위해 염했던 돌이라고 한다. 순례자들이 뿌린 기름으로 인해 번들거리는 돌을 손으로 만지며, 그 당시 광경을 묘사한 모자이크를 바라보면, 왠지 숙연한 기분이 든다.

성묘교회 안에는 비아 돌로로사의 10처소부터 14처소까지가 있다. 각각의 처소를 따라 걸어가면, 예수의 옷이 벗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숨을 거두고, 종부성사가 이뤄져 무덤에 안장되기까지의 여정을 느낄 수 있다. 긴 세월 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와서 예수의 마지막 길을 순례했다.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들과 방문객들이 이 길을 걷고 있으며, 성경에 쓰인 과거의 이야기들을 현재의 유적지들 속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그야말로 과거의 현재가 끊임없이 이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발원지이고,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은 성스러운 곳이지만, 전쟁과 파괴, 지배가 반복된 불행한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 하나가 수천 년 전부터 기구하고 복잡한 역사를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기구한 일생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나라 잃은 유대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맞물려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종교적인 대립과 갈등보다는 우리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통곡의 벽에서 만난 휠체어를 끌며 성지순례를 왔다는 어느 노부부의 환한 웃음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다.

가는 길
현재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까지 직항노선으로 대한항공이 주3회 운항하고 있다. 국영 이스라엘항공인 엘알과 터키항공, 우즈벡항공, 네덜란드항공은 북경, 타슈켄트, 암스테르담을 경유지로 운항하고 있다. 직항의 경우 12시간정도 소요된다.

드디어…예루살렘이 보이는 언덕 위에 서다

구름 아래로 비행기가 내려갔다. 크고 작은 살구색 주택들이 산을 수북이 덮은 채 지중해를 따라 이어졌다.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라는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 내려 900여년 전 십자군들이 걸어간 길을 더듬어 갔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 '십자군 이야기'가 길잡이를 맡았다.

레바논: 로마·이슬람·십자군 유적 공존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서 약 85㎞ 떨어진 트리폴리. 이곳에는 1105년 십자군의 레몽 백작이 기병 300명을 데리고 정복한 '트리폴리 성'이 있다. 트리폴리 성은 산등성이에 한가롭게 자리한 중세유럽 성과는 다르다. '수르'라고 불리는 재래시장과 시리아 난민촌이 머리를 맞댄 곳에 놓여 있다. 군데군데 갈라진 성벽 틈새마다 솟아난 들풀과 이끼가 지난 세월을 말해준다.

레바논 시돈에 있는 바다성. 십자군은 이슬람에 맞서 수적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바다를 천연 해자로 이용한 바다성을 쌓았다. 900여년 세월 속에서 전쟁과 지진을 견디며 조금씩 무너져내린 바다성 너머로 레바논의 현대적 빌딩들이 보인다.

과거 이 성은 천연의 요새였다. 해발 750m 고지에 있고 옆으로는 강을 끼고 있다. 이중으로 된 성의 정문은 바깥에서 통나무를 이용해 부수기 어렵도록 내외부의 방향이 다르게 나있고, 성벽은 이중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성 밑바닥에는 거대한 빗물 저장 탱크가 있었고, 4층 규모 성채에는 군사들의 숙소는 물론 창고, 마구간, 예배당까지 갖춰져 있다.

레몽은 이 성을 얻는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1년도 넘게 이곳을 함락시키기 위해 매달렸던 그는 강화조약에 서명한 직후 세상을 떠났다. 적군이 쏜 불화살에 불타오르던 본진에서 분투하다가 입은 화상이 악화된 것이다.

트리폴리에서 남쪽으로 40㎞를 내려오면 '페니키아 유적지'로 유명한 비블로스다. 그러나 그 페니키아 유적 위에는 로마, 이슬람, 십자군, 오스만투르크 등 다양한 유적이 층층이 내려앉아 있다.

유럽에서 성지 순례를 나선 이들이 예루살렘을 가장 먼저 바라볼 수 있는‘기쁨의 언덕’. ‘선지자 사무엘’의 가묘와 로마·십자군·이슬람 등 다양한 역사유적이 남아 있다.
비블로스 성은 지진과 전쟁이 많았던 레바논의 다른 유적과 달리 내성(內城)이 그대로 남아있다. 벽에는 수백 년 전의 전투 당시 박힌 쇠공이 천연덕스럽게 녹슬어 가고 있다. 성벽에 올라 해안 쪽을 바라보면 기원전 10세기쯤부터 이어진 레바논 지역의 역사가 펼쳐진다. 해안가로 향하는 들판에 톱니바퀴모양으로 파진 길은 페니키아 시대의 유적이고, 군데군데 흩어진 돌기둥은 로마시대의 유적이라고 한다. 성 주변에는 레바논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으니, 고대와 중세, 현재가 공존하는 바로 그곳인 셈이다. 

비블로스를 지나 베이루트를 거친 뒤, 다시 차로 40㎞를 달리면 ‘시돈 바다성’에 닿는다. 레바논에 있는 십자군 유적은 해안가가 아니면 트리폴리처럼 높은 산지에 있다. 해안은 유럽 쪽에서 오는 해군의 지원을 받기에 유리하고, 산지는 적을 감시하고 방어전을 펼치기에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돈 바다성은 태양이 떠오르면 노란색 사암(沙岩) 성벽이 지중해 푸른 바다 속에서 환하게 빛난다. 거센 파도에 견딜 수 있도록 성벽 곳곳을 로마시대 화강암 기둥으로 보강했지만, 숱한 지진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절반 이상이 파괴됐다. 지금 형체가 온전히 남아있는 곳은 과거 유럽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십자군들이 내륙으로 가기 전 하룻밤을 묵었다는 방 정도다. 900년 전 십자군들이 천장에 난 구멍으로 별을 세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던 곳이다.

나무탑을 만들어 예루살렘 공격에 나선 십자군을 그린 판화. / 문학동네 제공

깔끔하게 단장된 유적지를 원하는 이들에게 레바논은 어쩌면 불친절한 나라다. 이곳은 유적이 세월 속에서 부서지면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진행 중인 트리폴리 성 복원도 최대한 원래의 성벽 벽돌 잔해를 원형대로 쌓아놓기만 하는 수준이다.

그 이유는 베이루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의회가 있는 베이루트 중심가는 1975~90년까지 이어진 내전 당시 폐허로 변했다. 내전 이후 레바논 정부는 총탄과 포탄의 파편으로 옹이가 생긴 건물들을 내부만 고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보기 좋게 만든다고 다 새로 지으면 우리 역사는 어디에 남느냐”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자들의 행렬

레바논 국경과 가까운 이스라엘의 도시 아코는 특이한 도시다.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뒤섞여 거리를 활보한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은데 정작 국경 인근 아코에서는 아랍인과 유대인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듯하다.

예루살렘 성묘교회 안에 있는 예수 무덤. 연중 성지순례자들로 붐빈다.

아코는 살라딘을 중심으로 뭉친 이슬람이 12세기 후반부터 십자군에게 반격을 가하면서 밀려난 십자군들과 병원 기사단(성 요한 기사단)이 한동안 머물렀던 도시다. 이곳에는 십자군이 머물던 당시 사용된 기사의 방과 위생을 위해 만들어 놓은 하수시설, 등대 자리 등이 남아 있다. 성벽 안쪽으로 미로처럼 난 재래시장 길을 돌아다니면 곳곳에서 십자군 요새, 수로 입구 등과 마주친다. 정돈된 유적지라기보다는 재래시장에서 파는 수산물의 비린내와 성의 축축한 이끼 냄새가 정겨운 그런 도시다.

아코를 지나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는 로마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항구로 활용됐던 가이사리아를 지나게 된다. 해안가에 축구장 크기의 로마시대 유적과 13세기 루이 9세가 십자군을 이끌고 와 증축했다는 5m 높이의 해자가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이사리아는 결혼을 앞둔 부부들이 웨딩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예비부부들이 해안가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위엄있게 솟은 로마시대 기둥과 중세 십자군 성채를 배경으로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이사리아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는 ‘나비 사무엘’이라는 언덕이 있다. ‘선지자 사무엘’이라는 뜻으로 사무엘의 가묘가 있는 곳이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기쁨의 언덕’이다. 성지 예루살렘을 찾아 바다와 육지를 지나온 이들은 이곳에 올라야만 비로소 예루살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언덕을 두고 “1099년 6월 7일, 십자군은 마침내 예루살렘이 멀리 보이는 지역에 이르렀다. 갑옷들의 금속음을 내며 제후들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치 교회에 들어선 것처럼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투구를 벗었다”라고 썼다. 십자군 시대 연병장을 뒤로하고 언덕에서 보면 예루살렘 시가지가 부서지는 봄 햇살 속에서 하얗게 빛난다.

‘사각형 탑의 꼭대기에서 한쪽 변이 소리를 내며 성벽 위로 떨어져 내렸다. … 병사들이 한데 뭉쳐 성벽 위로 우르르 들이닥쳤다. 그들 중 누군가가 성문을 열었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모두 열렸고, 그곳으로 십자군 병사들이, 아니 순례자들까지 예루살렘 시내로 밀어닥쳤다. … ‘성도 예루살렘 해방’은 1099년 7월 15일 드디어 성취되었다. 유럽을 뒤로한 지 3년의 세월이 지나 있었다.’(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1’ 중)

십자군을 따라간 여정은 예루살렘 구(舊)시가의 성묘교회에서 끝이 난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던 골고다 언덕과 묘지 위에 세워진 교회다. 1099년 7월 15일 예루살렘을 찾아온 십자군들이 감사기도를 올렸다는 곳이다. 지금도 성지를 찾아온 순례자들의 엎드려 입을 맞추고 있다.

레바논 트리폴리 성 안에 있는 십자군들의 침실.

●여행수첩

◆레바논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UAE 아부다비나 두바이를 경유해 가는데 레바논까지 1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스라엘은 대한항공이 매주 화·목·토요일 인천공항에서 텔아비브로 가는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2시간 정도. 10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돌아오는 비행기도 화·목·토요일 뜬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서로 왕복할 수 없기 때문에 요르단을 거쳐야 한다. 이스라엘 입국 때 여권에 입국도장을 받으면 UAE·사우디아라비아·레바논·시리아 등 일부 중동 국가에는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 입국도장은 여권 대신 별도 종이에 받는 게 좋다.

◆‘팔라펠(falafel)’은 콩을 갈아 크로켓처럼 튀겨낸 중동의 대표적 음식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주머니빵에 양고기·채소 등과 함께 채워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레바논에서는 얇은 빵 속에 쌀과 아몬드, 완두콩, 옥수수 등을 넣고 쪄낸 ‘우지’도 맛이 좋다.

맥주 애호가라면 ‘알마자(Almaza)’와 ‘타이베(Taybeh)’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다이아몬드’라는 뜻의 레바논 맥주 알마자는 담백하다. ‘타이베’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만들어서 해외에선 거의 맛볼 수 없는데,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레바논에선 레바논파운드(L£)와 미국 달러(1달러=1500L£)를 함께 쓸 수 있지만, 이스라엘·요르단에서는 호텔이나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현지 화폐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이 안식일이라서, 유대인이 운영하는 상점이나 공공기관을 이용하기 어렵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영웅 즈비카와 이스라엘

단신으로 골란고원 사수한 즈비카 "본능으로 싸워서 나라를 지켰다"
기독교… 유대 역사… 서구 문명의 뿌리
역사 속에 세속적 욕망의 흔적들
사해(死海)에는 관광객들이 둥둥… '힘이 받쳐주는 평화'를 느끼기도

박종인의 땅의 歷史
기독교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해 승천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2000년 전 벌어진 사건이다. 그 자리에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서 있다. 교회는 서기 4세기에 건립됐다가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이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다. 오른쪽 사진이 그 입구 광장 풍경이다.

사진에는 불가사의한 사실이 숨어 있다.

가운데 건물 2층 오른쪽 창문 아래 있는 사다리가 그 첫째다. 사다리 이름은 '부동(不動)의 사다리(Immovable Ladder)'다. 1852년 이후 163년째 그 누구도 이 나무 사다리를 건드리거나 감히 치우려 하지 않는다.

가운데 있는 교회 현관문이 둘째 비밀이다. 서기 637년 이래 이 문의 열쇠는 조우더(Joudeh)와 누세이베(Nusseibeh) 가문이 가지고 있다. 1400년 가까이 교회 문을 여닫는 이 두 가문은 놀랍게도 기독교도가 아니라 무슬림이다. 움직이지 않는 사다리와 무슬림이 지키는 교회가 있는 이스라엘, 그 땅과 하늘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 부대 즈비카

이스라엘 전쟁 영웅, 즈비카 그린골드.
이스라엘 전쟁 영웅, 즈비카 그린골드.
예순세 살 된 사내 즈비카 그린골드(Zvika Greengold)는 이스라엘 북서쪽 도시 하이파에서 태어났다. 즈비카가 장교로 입대한 1973년 전쟁이 터졌다. 10월 6일 오후 2시 시리아 탱크 부대가 북동쪽 골란 고원으로 진격했다. 골란 고원은 이스라엘 북동부 전선의 절대적 전략지다. 골란 고원에서 대포를 쏘면 갈릴리 호수 지역까지 포탄이 떨어진다. 전쟁은 유대교 휴일인 욤 키푸르에 터졌다.

휴가 중이던 즈비카는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고 부대로 복귀했다. 이미 이스라엘 탱크들은 파괴된 상태였다. 즈비카는 두 대를 긴급 수리하고 병사를 태워 골란 고원으로 달려갔다. 무전으로 소속을 묻는 사령부에 즈비카는 "즈비카 부대 부대장"이라고 대답했다. 감청을 우려해 단독이 아님을 위장한 대답이었다. 사령부도 즈비카 부대가 무엇인지 몰랐다.

시리아 탱크는 모두 1500대였다. 밤 9시 첫 교전에서 즈비카는 여섯 대를 격파했다. 동료 탱크와 교신이 끊긴 즈비카는 포탄을 쏴대며 전속력으로 전선을 누볐다. 어둠 속 사방에서 포탄이 쏟아지자 시리아군은 대병력이 있는 줄로 착각했다. 타고 있던 탱크가 파괴되면 또 다른 탱크를 잡아타길 반복하며 20시간을 쉬지 않고 싸운 결과 시리아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지원군이 도착하자 즈비카는 사령부로 복귀해 또 전투를 벌였다. 전투가 끝날 무렵 해치를 열고 얼굴과 두 팔이 불에 탄 즈비카가 땅으로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더 못 해(I can't anymore)."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즈비카는 20대를 격파했다고 했고, 목격자들은 40대가 넘는다고 증언했다. 즈비카는 "그때는 본능으로 부대에 복귀했고, 싸웠다"고 했다. 스물한 살 청년의 본능 덕분에 착한 사람들, 악당들 그리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 하나가 구원됐다.

▶▶사다리와 교회의 문, 그리고 본능


역사에 기록된 본능은 즈비카의 본능과 일치하지만은 않았다. 서기 313년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 이스라엘 전역에는 수많은 교회가 건립됐다. 순례자가 아니어도 그 건축미를 즐기는 것만으로 이스라엘 여행은 충분히 가치 있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 광장이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 광장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묻히고, 부활한 장소다. 만국에서 온 순례자와 관광객으로 광장은 늘 붐빈다. 렌즈=삼양옵틱스14㎜ F2.8 ED AS IF UMC, 조리개=f16, 셔터스피드=1/60초. /박종인 기자
세월이 흐르며 다양한 종파가 생겨났다. 성지는 비좁아졌다. 관할권을 두고 갈등이 빈발했다. 성직자끼리 십자가를 휘두르며 싸우는 해프닝이 잦았다. 신앙이 세속적 본능과 욕심으로 경도됐다. 성묘 교회는 그리스정교, 아르메니아정교, 로마 가톨릭, 이집트 콥틱, 에티오피아와 시리아 정교가 권리를 다퉜다. 7세기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장악하고도 분쟁은 계속됐다. 결국 해답이 나왔다. '현상 유지(Status Quo)' 즉 "현재의 관할권을 인정하고 더 이상 변경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상 유지 정책은 1853년 당시 지배자 오스만 튀르크 황제 칙령으로 공식 확립됐다.

그리하여 성묘 교회의 모든 제단은 칼로 자른 듯 관할권이 정해졌다. 예수의 무덤을 에워싼 작은 건물은 1947년 철골 구조물로 보강했지만 이후 그 누구도 보수 작업에 합의하지 않아 68년째 임시 구조물이 씌워져 있다. 2008년 여름에는 교회 지붕에서 한 종파가 의자를 그늘 쪽으로 20㎝ 옮겼다가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칙령 전해인 1852년 어느 날 아침 성분묘 교회 창문 아래에서 사다리 하나가 발견됐다. 누가 두고 갔는지 알 수 없었으니 누가 관할하는지도 몰랐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일이 날지 몰랐다. 지금까지 여섯 종파 그 어디도 사다리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163년째 치울 엄두를 못 내는 '부동의 사다리'가 되었다.

사해 풍경. 건너편은 요르단 땅이다.
사해 풍경. 건너편은 요르단 땅이다.
교회 열쇠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종파도 다른 종파에 열쇠를 맡기려 들지 않았다. 골머리를 앓은 7세기 이슬람 정권은 제3자인 무슬림 가문에 열쇠를 주는 방안을 내놨다. 모든 종파가 찬성했다. 성지에 충만한 믿음과 평화의 향기 속에, 세속 욕망의 흔적이 보인다.

▶▶흔적에 열광하는 관광객들


로마에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유대인들은 로마인, 기독교 세력, 이슬람 세력과 근대 영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지배와 억압을 받으며 흔적을 쌓아갔다. 19세기 민족주의 흐름 속에 건국 운동이 벌어지면서 떠났던 유대인들이 속속 복귀했다. 언어학자들은 현대 히브리어를 창안했고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역사를 복구했다. 1948년 영국이 군대를 철수하면서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다. 이슬람 국가들은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했고, 이스라엘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차곡차곡 준비해왔던 나라"라고 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관광객은 즐겁다. 1인당 GDP 3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 서구 정신문명의 뿌리를 대면할 수 있으니까. 관광부 장관 야리브 레빈이 고백했다. "거짓말 못 하겠다. 그래, 이스라엘에서 볼거리는 대부분 종교 관광지다. 그래서 뭐."

솔로몬의 성전터에 세워진 이슬람 성지 황금사원.
솔로몬의 성전터에 세워진 이슬람 성지 황금사원.
기독교를 제외하고 서구 문명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기독교를 논할 수 있을까. 그 서구 문명의 원천을 눈앞에서 느끼는 관광지가 이스라엘이다. 레빈 장관의 대답은 고백이면서 자신감이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그 자체다. 수십 겹 지층이 이 고성(古城)에서 발굴됐다. 다윗 시대 성터를 비롯해 솔로몬이 세웠던 성전 터와 헤롯왕이 세운 성벽(남아 있는 서쪽 벽은 유대인의 성지다), 사라진 성전 터에 세운 이슬람의 황금 사원, 예수가 "나에게 주어진 잔을 거둬 달라"며 고뇌했던 겟세마네 동산(예수 시대로 추정되는 올리브 나무 여덟 그루가 살아 있다!),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예수 탄생 교회 지하에 있는 예수 탄생 표지 은판이 행방불명되자 관할 공방을 벌이던 러시아가 이를 핑계로 크림전쟁을 일으켰다)이 그 예다.

북쪽으로 가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예리코(Jericho·여리고)가 나온다. 예수가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예리코 꼭대기 유혹의 산 절벽에는 그리스정교 교회가 있다. 그 남쪽 쿰란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 '사해의 서(書)'가 발굴됐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이 구약성경 필사본은 지금 이스라엘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 동쪽 바다는 사해(The Dead Sea)다. 해발 고도가 해수면 아래 400m에 염분 농도 33%로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다. 동시에 사람이 둥둥 떠다니는 관광지다.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사해 바닷물과 진흙은 온갖 피부병에 특효라 해변에는 특급 리조트가 즐비하다. 사람들은 바다에 떠서 책을 읽고 이스라엘 와인을 만끽한다.

이스라엘
요르단 계곡을 따라 북상하면 갈릴리 호수가 나온다. 나사렛에서 청년기를 보낸 예수가 제자들을 이끌고 활동하던 곳이다. 첫 설교인 산상수훈을 행한 팔복산,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로 오천 군중을 먹인 타브가,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한 바위(베드로 수위권 교회가 서 있다)가 호수 북쪽에 있다. 갈릴리 남서쪽 나사렛에는 수태고지 교회가 서 있다. 지하에는 성모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에게서 예수 수태를 통보받은 동굴이 남아 있다. 반드시 일요일 미사에 갈 일이다. 적요함 속에 울려 퍼지는 칸타타는 기독교와 무관한 사람도 평화를 느끼게 만든다.

한국 사람이라면 되도록 골란 고원에도 가봤으면 한다. 전쟁 영웅 즈비카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땅이기도 하고, 그래서 분단 현실 속에서 삶에 대해 잠깐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고원에 서면 국경선 너머 내전으로 엉망이 된 시리아가 보인다. 전력 차이가 너무 커서 이스라엘 쪽으로는 권총 한 발 쏠 엄두를 못 내고 자기들끼리 포를 쏴대는 한심한 풍경이 펼쳐진다. 힘을 제외하고 평화를 논할 수 없다. 2년째 사륜구동 차를 몰고 관광객을 안내 중인 청년 에레츠(23)가 말했다. "이스라엘은 안전하다. 저건, 나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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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골고다 언덕 성소(聖所)에서 시작해 골란 고원에서 끝났다. 서구 문명의 원류와 진귀한 자연에 흠뻑 취하고 현실로 복귀한 여행이었다.


[이스라엘 여행수첩]

1. 기본 정보:
 ①대한항공이 텔아비브까지 주 3회 운항. 낮 3시 출발해 현지 밤 9시 도착. ②관광비자: 필요 없음. ③화폐 단위는 셰켈(1달러=3셰켈 정도) ④시차: 이달 중순 이후 서머타임 해제되면 7시간 늦다. ⑤한국 여름보다 덥다. 갈릴리와 사해 등 해수면보다 낮은 요르단 강 주위는 몹시 덥고, 해발 700m 정도인 예루살렘은 밤에는 선선하다.

2. 주의 사항: ①통곡의 벽은 모자나 입구에서 빌려주는 일회용 유대인 전통 모자 키파를 써야 한다. 통곡의 벽 위 성전산(Temple Mount)은 무슬림 구역이다. 긴 바지 필수. ②유대인 휴일 사바스(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상가, 관공서 모두 문을 닫는다.

성묘교회의 예수 무덤.
성묘교회의 예수 무덤.
3. 여행 상품: 많은 여행사가 성지순례 상품을 취급한다. '관광'이 목적이라면 베스트래블(www.bestravel.co.kr) 여행사 추천. 5성급 숙소와 현지인의 맛집, 한국 DMZ에 해당하는 시리아 국경 골란 고원 지프 투어, 사해를 비롯해 고대 유대인과 로마, 기독교, 오스만튀르크 역사 유적 탐방 상품. 이스라엘 최대 여행사 아시아투어(www.asiatours.co.il)가 안내를 맡는다. (02)397-6100

4. 기타 정보: 택시는 미터기가 있어도 쓰지 않는다. 호텔 데스크에서 예상 금액을 알아두고 흥정할 것.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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