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가사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한 곳인 이집트는 나라 자체가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5000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대 이집트 유물을 도시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아프리카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는 여행자 발길을 붙잡기 충분하다.

 중세 분위기 카이로

유유히 흐르는 나일 강변에 자리한 이집트 수도 카이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카이로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구시가지인 이슬람 지구. 카이로 중심지였던 곳으로 아직까지 중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세계 불가사의로 꼽히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카이로에서 약 15㎞ 떨어진 사막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거대한 구조물은 황량한 사막과 더불어 신비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세계 최대 건축물로 기저부의 한 변이 230m, 지어질 당시 높이는 146.7m지만 지금은 꼭대기 부분이 무너져 137.2m, 부피는 259만4914㎥다.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는 돌의 평균 무게는 1개당 2.5t으로 추정되고 사용된 돌은 230만개라고도 하고 268만개라고도 한다. 카프라왕의 피라미드는 대피라미드 중앙에 위치한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보다 크기는 작은 듯하지만 높이가 143m로 지금은 가장 높다. 또 쿠푸왕의 것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세워져 있어 보는 방향에 따라 크게 보이기도 한다.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표면 화장석도 일부 남아 있어 외관이 가장 아름답다.

 투탕카멘의 보물 고고학 박물관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는 고풍스러운 건물에 방대한 양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투탕카멘 보물이 전시된 곳으로 잘 알려진 이 박물관은 역사 자료가 많아 천천히 둘러보면 적어도 하루 이상 걸린다.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 역사 자료를 한데 모아 정리한 고고학 박물관인 이곳을 제대로 보려면 방마다 붙어 있는 번호를 따라 돌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

칸엘칼릴리 전통시장은 16세기 초에 오스만 터키가 이집트를 정복하기까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칸 엘칼릴리를 중심으로 약 1만2000개 상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희망봉을 도는 대양 무역로가 활성화되고 오스만 터키 제국이 발전하면서 상업 중심지가 이스탄불로 옮겨지고 시장이 서서히 쇠퇴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에드푸 신전

기원전 237년 프톨레마이오스 3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이 신전은 180년이 지나 프톨레마이오스 12세에 의해 완성되었다. 입구 관문에는 호루스와 다른 신들, 그리고 적을 무찌르는 모습의 파라오가 나타나 있다. 관문 위에는 태양의 원반이 있는데 양쪽으로 뱀이 둘러싸고 있다. 신전 내부 성소에는 안에 황금으로 된 호루스상을 감추어 두었으며 연마한 돌로 만든 사당이 남아 있다. 신전에는 방대한 도서관과 향수 제조소가 있다.

 나일강의 룩소르

나일강 중류에 자리 잡고 있는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 신 왕국 시대의 수도로 거대한 신전들과 대표적인 역사 유적지가 모여 있어 야외 박물관이라 일컬어진다. 나일강을 경계로 동쪽은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등이 있는 생명의 땅, 서쪽은 왕들이 무덤이 있는 죽은 자들의 땅이라고 불리며 많은 유적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자리 잡고 있다.

4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카르나크는 이집트 최대 신전으로 수많은 파라오 시대 유적지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이다. 중기 왕조시대, 테베 지역 신인 아무신과 태양의 신인 라의 결합으로 아문라신이 탄생한다.

온라인투어 유럽팀에서 이집트 일주 10일 상품을 판매한다. 특급호텔 + 5성급 나일크루즈 숙박, 카이로-아스완 국내선 항공이동 1회 포함.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람세스 대신전, 네페르타리 소신전, 룩소 관광. 요금은 179만9000원부터.

[전기환 여행작가]


크루즈 타고 가는 이집트 신전
클레오파트라 신혼여행길에서 람세스와 마주치다

(위) 사막의 나라인 이집트에 이런 물과 풀과 나무가 있다. 나일크루즈의 출발지 중 하나인 이집트 남부의 휴양도시 아스완의 모습. 관광객들은 전통돛단배인‘펠루카’를 타고‘필레신전’이 있는 아길키아섬으로 갈 수 있다. (아래) 이집트 최대 유적지 룩소르 시내에 있는‘룩소르 신전’. 둘째 탑문을 지키고 있는 람세스 2세 상 뒤로 높이 19m의 기둥 14개가 두 줄로 서 있다. /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제공

곧 겨울이다. 추울 때는 '무조건' 따뜻한 곳이 좋다. 외투를 벗고 티셔츠 바람에 이국 풍경을 구경하거나 수영을 즐기거나 쇼핑에 빠지는 맛은 무엇에 비할 수 없다. 주말매거진이 올겨울 피한(避寒)에 적합한 해외 여행지들을 모아 특집으로 꾸몄다. 추위 나기에 좋은 국내 여행지들로 특집 2탄도 준비 중이다.

여기는 나일(Nile). 피라미드, 스핑크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신전(神殿)…, 이집트 고대문명을 잉태하고 키운 젖줄. 오늘 이 나일에는 크루즈선들이 떠다니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신혼여행을 위해 배를 띄웠던 이곳에서 오시리스(죽음과 부활의 신)·이시스(모든 파라오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최고의 여신)·호루스(왕권 수호신)와 람세스·핫셉수트 파라오를 만난다. 나일크루즈를 타고 체험하는 5000년 문명의 정수(精髓), 바로 거대 신전들이다.

◇아스완(Aswan)…필레 신전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에서 80실 규모의 크루즈선에 올라탔다. 나일강 상류인 이 도시에서 하류 쪽으로 내려가며 중간중간 유적이 있는 도시들에 내려 관광하는 일정. 반대편도 코스도, 왕복 코스도 모두 가능하다.

'아스완댐'으로 유명한 여기에선 '필레(Phille) 신전'이 우릴 맞이한다. 2300여 년 전 넥타네보 1세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오시리스신의 부인으로, 현명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시스 여신에게 바쳐졌다. 원래는 클레오파트라·카이사르 커플의 신혼여행지로 알려진 필레섬에 있었다. 그러나 아스완댐이 만들어지면서 이 섬은 수몰됐다. 신전은 유네스코의 지원 아래 4만여 개 조각으로 나눠져 10년 공사 끝에 1980년 인근 아길키아섬으로 옮겨 세워졌다. 높이 18m 폭 5m의 대형 탑문(塔門), 36개의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복도, 이시스·호스·파라오를 새긴 거대한 돌새김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아스완 강변에 정박한 크루즈선에서 필레 신전을 가는 길도 즐겁다. '펠루카'라는 이집트 전통 돛단배를 타고 20~30분 정도 간다. 기온은 30도를 웃돌지만 습도가 낮은 탓에 강바람은 상쾌하고 신선하다. 펠루카로는 아스완 지역 나일강 유역을 일주할 수도 있다. 배 이용료는 공시가가 1시간에 130이집트파운드(£E·약 2만4000원). 그러나 뱃사공에 따라 300~500£E를 부르기도 한다니 '흥정'이 중요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콤옴보(Kom Ombo)…콤옴보 신전

아스완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아침에 출발해 북쪽으로 50㎞쯤 올라가면 나오는 도시 콤옴보. 이곳에 '콤옴보 신전'이 있다. 크루즈선이 정박한 곳에서 5분만 걸어 올라가면 기념품 상가를 만나고 곧이어 신전이다. 22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악어의 머리를 지닌 물의 신 '소베크'와 매 머리 모양의 하늘의 신 '하로에리스'를 섬긴다. 모시는 신이 둘이라서인지 입구를 비롯해 홀, 대제사장이 예배를 드리던 지성소(至聖所) 등이 다 둘이다. 부조가 새겨진 벽에는 고대의 수술 기구, 뼈 절단기, 치과 도구 등도 그려져 있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가 된다.

◇에드푸(Edfu)… 호루스 대신전

콤옴보에서 다시 북쪽으로 50㎞를 더 올라가니 '에드푸'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선착장에 줄지어 서 있는 마차를 탄다. 마주보고 있는 좌석에 각각 2명씩, 4명이 한 대에 탈 수 있다. 요금은 130£E(약 2만4000원). 우리의 읍(邑) 정도인 에드푸의 마을 곳곳을 구경하며 10여분쯤 가면 신전이다.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둘째로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는 '호루스 대신전'.

로마 지배하의 프톨레마이우스왕조 때인 기원전 237년부터 짓기 시작해 180년에 걸쳐 완공했다. 폭 36m, 높이 137m의 탑문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신 조각이 신전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맞는다. 신전 벽면에는 호루스가 아버지 오시리스를 살해한 삼촌 셉트를 제압하는 것을 상징하는 그림이 가득하다.

◇룩소르(Luxor)…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

에드푸를 떠나 100여㎞를 더 올라가면 이집트에서 넷째로 큰 도시 룩소르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안(東岸)에는 카르나크·룩소르 신전 등 파라오들이 왕도(王都)의 위세에 걸맞게 세운 거대한 신전들이 있고, 서안(西岸)에는 역대 파라오들의 무덤이 있는 '왕가의 계곡'이 있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차를 타고 몇 분만 가면 카르나크 신전이 나온다. 동서로 540m, 남북으로 600m 규모로 현존하는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가장 크다. 4000년 전 축조를 시작, 파라오들이 저마다 증축을 거듭해 오늘의 규모가 됐다고 한다. 23m의 돌기둥 134개가 촘촘히 늘어선 대열주(大列柱)실, 높이 21.8m 무게 130t의 투트메스 1세 오벨리스크, 높이 30m 무게 323t의 핫셉수트 여왕 오벨리스크, 람세스 거상(巨像) 등 볼거리가 넘쳐난다.

카르나크 대신전에서 남쪽으로 3㎞ 거리에 지어진 지 3500여년 된 룩소르 신전이 있다. 너비 65m 높이 25m의 첫째 탑문은 람세스 2세가 만든 것으로 나폴레옹은 이를 본떠 파리에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크루즈 선착장에서 차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30분쯤 가면 '왕가의 계곡'이다. 파라오 무덤 24기 등 64기의 왕가 무덤이 있다. 표 한 장으로 무덤 세 개를 볼 수 있지만, 가장 유명한 투탕카멘 무덤은 별도로 표를 사야 한다. 황금마스크 등 이곳의 투탕카멘 묘에서 나온 보물들은 카이로박물관에 있다.

나일 크루즈의 밤엔 달이 강이 되고 강이 달이 된다. /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제공

■소피텔 올드 카타락트 아스완 호텔(Legend Old Cataract Aswan).

아스완에서 꼭 들러야 할 명물.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대표작 중 하나인 '나일강 살인사건'(1937)을 쓴 곳이다. 호텔이 소설 배경으로 나오기도 한다. 영국의 유명한 여행사업가 토머스 쿡이 1899년 지은 건물 자체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소피텔 윈터 팰리스 룩소르 호텔(Hotel Sofitel Winter Palace Luxor)

1886년 지어졌다. '로열 바'에서 '하워드 카터 커피'를 마셔보자. 블랙커피에 브랜디, 그랜드 마니에르(증류주의 일종), 시나몬을 섞은 것으로 65£E(약 1만2000원). 투탕카멘 묘를 발굴한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곳에 머물며 즐겨 마셨다 해서 붙인 이름.

여행수첩

이집트 가는 길

대한항공이 매주 월·목·토요일 인천에서 타슈켄트를 경유해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를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3시간 30분 정도. 카이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매주 화·금·일요일에 뜬다. 역시 타슈켄트 경유로 1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두 스케줄 모두 타슈켄트에서 머무는 시간은 1시간 30분. 주한 이집트대사관이나 카이로 공항 현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나일 크루즈

보통 5층인 배 한 척에 80개 안팎의 객실이 있고, 작은 수영장과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세 끼 식사를 모두 선내에서 할 수 있다. 사방이 환하게 트인 옥상 데크에서 선탠용 의자에 앉아 맥주 한잔 마시며 보는 석양과 밤하늘의 달·별이 황홀하다. 10월 기준 식사 포함 1박당 60달러 정도. 12월 15~30일이 극성수기로 가장 비싸다. 4~7일 상품이 일반적. 자세한 사항은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02)2263-2330, www.myegypt.or.kr

통화

1이집트파운드(£E)는 15일 현재 우리 돈 약 190원.

날씨

겨울을 제외하면 비는 거의 내리지 않는다. 평균기온이 섭씨 30도 안팎이고, 높은 곳은 40도에 달하는 여름보다는 15~20도 정도인 겨울(11~1월)이 여행하기에 더 쾌적하다.

사막에서 별을 보다

새벽 2시 반. 늦도록 수크 거리를 쏘다니다 설풋 잠든 여행자들이 화르륵 깨어나야 할 시간, 뒷골목의 호텔 창문에 하나둘 불이 켜지는 시간이다. 이집트의 어느 곳보다도 아스완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세계문화유산인 아부심벨을 보려고 아스완으로 모여든 여행자들은 새벽 3시부터 호텔을 도는 투어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물론 좀 더 늦게 시작되는 투어도 있다.





 

이집트에서 가장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세운 거대한 신전인 아부심벨 신전. 사막에 묻혀 있던 신전은 탐험가 벨조니에 의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일반적인 고대 이집트의 부조 석상과 달리 얼굴을 정면으로 조각한 것이 특징.

ⓒ 박경

우리 가족도 지난밤, 아부심벨 투어를 신청하려고 수크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소개하는 투어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작고 허름한 호텔을 돌며 흥정해 보았지만 제시하는 가격도 다 제각각. 투어의 질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계약을 했다. 그런데 같은 버스를 탔다고 해서 가격이 같은 게 아니라 다 흥정하기 나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어둠을 뚫고 한곳에 모인 버스들은 경찰차 'Convoy'의 호송 하에 아부심벨을 향해 세 시간도 넘게 줄지어 달려간다. 수년 전 아부심벨을 향해 가던 독일인 관광객들이 괴한들에 의해 살해됐다. 범인은 누비안들, 그들은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기관총을 난사한 것이다. 그 후 아부심벨로 가는 육로는 차단되고 비행기로만 접근하다 보니 비용이 너무 비싸 관광객이 뚝 끊겨 버렸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이집트로서는 육로 여행길을 다시 열 수밖에. 대신 경찰차의 호송 하에 육로 여행이 재개됐다.

차창 밖은 짙은 어둠뿐이고 선잠이 깼던 여행자들은 적당히 흔들리는 차 속에서 이내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나는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칠흑처럼 어두운 차창 밖으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후드득. 세상에 이런 별들은 처음이다. 이렇게 크게, 가까이서 빛나는 별들은 처음인 것이다. 나는 얼른 딸을 흔들어 깨웠다. 나보다도 더 별을 본 적이 없어 더 별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딸은 차창 가득 빛나는 별을 보더니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 아주 가끔은 휴양림 같은 곳에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꺾어 올려봐야 하는, 하늘 저 멀리 까마득히 먼 곳으로부터 오는 기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집트 사막을 몇 시간 달려 맞닥뜨리는 별들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 별들의 향연을 열고 있었다. 사막의 지평선은 멀고도 멀어, 버스 창 가득 별이 박혀 있고, 고개를 젖히지 않고 바로 내 눈높이에서 커다란 별들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별들이 너무도 크고 선명했고 저절로 별과 별들이 이어져 있어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책에서 본 별자리가 한눈에 들어올 판이다.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별을 보고 가슴이 설렌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아, 별을 보고 저 별을 꿈꿀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차 안은 불이 꺼져 있고 여행자들은 잠들어 있다. 사막의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아, 난 마치 별들 속에 버려진 존재처럼 아득함이 밀려왔다. 별을 보고 비로소 내 위치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저 별을 느끼지 못할 때는, 난 그저 평평한 땅 위에 발 딛고 사는,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저렇게 완전하게 빛나고 있는 저 별은 둥근 지구라는 작은 별 위에 내가 동그마니 서 있다는 걸 일깨워 준다.

딸과 나는 창밖의 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각자의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꿈을 잃어버린 건, 어쩌면 저 별을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설렘도 떨림도 더 이상 없는 건 내 마음속의 별을 일찌감치 밀어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던 시절은 진정 행복했을 것이다. 우린 이제 닿을 수 없는 것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해 버린 지 오래다. 저 어둠 속에서, 저 별들은 제 존재를 알리듯이 저렇게 와락 달려들고 있는데.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내 가슴 속으로 쳐들어 왔던 별은 그렇게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아부심벨에서 감 잡다





아부심벨 입구에 새겨진 부조.

ⓒ 박경

아부심벨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이제야 동 터 오는 아침.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인공호수 나세르호는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왕, 신을 꿈 꾼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지은 아부심벨 신전. '높이 20m의 람세스 상이 4개나 떡 버틴 암굴신전에 서면 그 거대함 때문에 압도당하고 말리라'며 미리 쫄았는데, 웬걸. 생각보다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그 앞에서 실컷 압도당하고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느끼고 장엄한 석상들에게 경의를 표할 만반의 준비가 다 돼 있었는데 김 팍 새버린 꼴이다(지금 와 생각해 보니 앞에는 나세르 호수가 펼쳐져 있고 주변에는 신전과 비교될 게 없었기에 그 크기를 실감하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싶다).

오히려 3300년이라는 장장한 세월을 넘어 나타난 여행자들에게 더욱 신기한 것은 따로 있다. 1960년대 초,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면서 아부심벨 신전은 수몰 위기에 처하게 됐다. 나세르는 배짱을 부렸다. '우리는 댐이 필요하다. 돈을 주지 않으면 신전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다'고. 이 정도면 자해협박 수준이다. 애가 탄 유네스코는 위대한 유산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결국 아부심벨 신전은 강바닥에서 65m 위로 옮겨지는 엄청난 이동을 하게 된다.

50여 개국의 기술자들이 동원돼 신전의 암벽에 1만7000개의 구멍을 뚫고 무게 30톤에 이르는 천여 개의 돌덩이로 잘라 재조립했다. 바위산 덩어리를 조각조각 내어 옮겨 맞추는 데만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저 큰 걸 일일이 다 조각내서 다시 끼워 맞췄다고? 저렇게 큰걸?' 비로소 크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냥 보면 그 크기를 모르겠는데 그걸 잘라내 옮긴다고 생각하니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감(感)은 그렇게 왔다. 천만 원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못 잡던 아이들에게 그건 떡볶이 5000인분과 같은 거라고 하니 비로소 입이 떡 벌어지는 것처럼.

람세스 2세 석상들 사이로 난 문을 통해 들어가면, 파라오들의 석상이 늘어서(도열해) 있고 벽화와 상형문자들이 빼곡하다. 또한 카데쉬(지금의 시리아) 전투의 모습들이 벽에 새겨져 있는데, 몇몇 학자들은 승리하지도 못한 카데쉬 전투를 대대적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람세스 2세는 자기현시욕이 강한 왕이었다고 평한다.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현실을 지배하려고 한 왕이었다고.





람세스 2세의 석상은 높이 20m에 이른다. 람세스 2세의 다리 옆에는 그의 부인 네페르타리 조각상이 보이는데, 신전 정면에 왕과 함께 왕의 부인이 조각된 것은 아부심벨 석상이 처음이라고 한다.

ⓒ 박경

그런 야심 찬 왕에게도 순정은 있었는지, 이집트 최초로 왕비를 위한 신전을 짓기도 했다. 여러 왕비 중에서도 네페르타리를 특히 사랑한 람세스 2세는 아부심벨 옆에 네페르타리 신전을 함께 만들었다.

아침 햇살이 아부심벨과 네페르타리 신전에 가득 쏟아진다. 저 햇살은 일 년에 딱 두 번 아부심벨 안쪽으로 깊이 스며든다. 놀랍게도 그 빛은 어둠의 신인 프타만을 빼고, 나란히 있는 아문과 하라크티 조각상만을 비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신전이 원래의 위치를 벗어나 새롭게 자리했는데도 그 빛의 기적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차 속에서 그 아침 햇살은 졸음 쏟아지는 내 얼굴 위에도 살포시 내려앉았다. 기적처럼. 저 태양은 천 년보다도 이천 년보다도 삼천 년, 오천 년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그렇게 변함없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 대신전(왼쪽 아부심벨 신전)과 소신전(오른쪽 네페르타리 신전)당시의 규범을 깨고 왕의 부인이 왕 옆에 조각되어 있다는 점과 신전 안팎에 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람세스 2세가 네페르타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박경


'노천 박물관'이라는 말은 참 흔하게 쓴다. 고색창연한 땅을 견줄 때 그만큼 적당한 표현이 없기도 하다. 이집트 룩소르(Luxor)에 들어서면 노천 박물관의 챔피언 벨트를 이 도시에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유적들은 나일강변 주민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룩소르는 오랫동안 고대 이집트의 수도로 위용을 떨쳤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룩소르를 ‘백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로 칭송했다. 나폴레옹의 군대 역시 이집트 원정에 실패하고 돌아가면서도 룩소르의 매력에 한동안 퇴진을 멈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굳이 선인들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룩소르는 보이는 것만으로도 오래 구워낸 진흙 빛 신전과 유적들의 세상이다. 천년 걸려 완공된 카르나크 신전, 도심 한 가운데 우뚝 선 룩소르 신전 외에도 강 건너에는 멤논의 거대 석상과 왕들의 무덤이 들어서 있다. 룩소르는 실제로 거대한 박물관 안에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도열한 느낌이다.

이집트의 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르나크 신전



200km 뱃길에 드러난 노천 박물관

룩소르에 닿는 가장 매혹적인 방법은 나일강 크루즈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스완을 뒤로한 크루즈는 나일강을 따라 북쪽 룩소르까지 200km 뱃길을 달린다. 언뜻언뜻 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온통 사막과 오아시스가 뒤범벅된 모습이다. 조각배들이 강 줄기를 오가고 한가롭게 그물을 던지는 풍경들이 덧씌워진다.

해질 무렵 룩소르에 배가 정박하면 강변 뱃머리 코앞으로 룩소르 신전이 조명을 받아 빛을 낸다. 선상에서도 그 윤곽이 또렷히 내려다보인다. 수천 년 석상으로 자리를 지켜온 람세스 2세와 함께 하는 밤은 다가서는 감동부터가 다르다.

태양이 솟으면 룩소르의 자태는 한층 선명해진다. 룩소르는 나일강의 서쪽과 동쪽 풍경이 다르다. 해가 지는 서안은 왕들이 잠든 죽은 자들의 땅이고 동쪽은 산자들의 터전과 신전이 들어서 있다. 강 양쪽을 잇는 다리가 연결됐지만 이곳 주민들은 배를 타고 산자와 죽은 자들의 경계를 쉴새 없이 오간다.

왕들의 계곡으로 불리는 서안 지역은 바위산 계곡 아래 파라오들의 무덤이 늘어서 있다. 왕들의 무덤을 꼭꼭 감춰놓았지만 숱한 도굴에 시달려야 했다. 온전한 모습을 갖췄던 투탕카멘의 유물만이 현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무덤 내부 벽화에 새겨진 그림이나 조각들은 섬세하고 색감이 또렷하다. 수천년 녹아든 전율은 쉽게 가슴으로 전이된다.



사연과 규모를 뽐내는 석상과 신전들

왕들의 계곡에서 연결되는 하트셉수트 여왕 신전이나 멤논의 거상 역시 그 규모로 감동을 증폭시킨다. 무덤에 부속된 죽은 파라오의 집을 의미하는 제전은 서안에만 30여개가 넘는다. 커다란 좌상인 멤논의 거상에는 해가 뜰 때마다 '새벽의 여신'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담겨 있다.

새벽의 여신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담긴 멤논의 거상.


동쪽으로 넘어서면 신전들이 내뿜는 호흡은 더욱 가파르고 강렬하다. 이집트의 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르나크 신전은 국가 최고신인 아멘라를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건립에만 천년이 넘는 세월이 소요됐는데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배경이 돼 유명해지기도 했다. 대신전 내에는 몇 개의 또 다른 신전들이 들어서 있고, 신전 안 기둥들은 134개나 늘어서 여행자들에게 아득한 사색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정교하게 솟은 오벨리스크나 양들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들도 특이하다. 이곳 파라오의 참배 길은 도심에 위치한 룩소르 신전까지 2km 가량 이어져 있다.


룩소르 시내를 거닐면 마차고 오가고, 바자르(재래시장)가 들어선 차분한 풍경이다. 고대 왕국의 위용이나 웅장한 신전과는 별개로 산 자들의 세상은 오래된 것에 익숙해진듯 평화로운 일상으로 다가선다.


가는 길

인천에서 이집트 카이로까지 대한항공 등이 운항한다.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항공이동이 가능하며 나일강 크루즈를 이용해 아스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집트 입국에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는 공항 입국장 환전소에서도 즉석 구입이 가능하다. 뜨거운 태양에 견디려면 긴팔 옷은 필수다.

이집트를 꿈꾸는 이유는 명확하다. 피라미드, 고대 유적, 사막에서의 하룻밤…. 막연한 동경의 연장선에는 그런 모습들이 덧칠해져 있다. 유럽 사람들은 이집트의 로망 위에 한 가지를 더 얹는다. 홍해의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깊은 휴식. 실제로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의 휴식은 좀 더 은밀하게 진행된다.

샤름 엘-셰이크의 바닷가 절벽에는 고대의 성처럼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샤름 엘-셰이크(샤름 알-셰이크, Sharm El-Sheikh, شرم الشيخ)는 홍해 건너 땅이다. 본토 이집트에서 바다 하나 건넜을 뿐인데 다가오는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구릿빛 청춘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별 다섯 개짜리 리조트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다. ‘히잡’을 둘러쓴 여인들도 드물다. 이곳에서는 관습이라는 굴레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다이버들에게는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가 널려 있는 다이빙의 메카로 통하기도 한다.

고급 리조트가 들어선 다이빙의 메카

은밀한 휴양지에 담긴 과거는 독특하다. 샤름 엘-셰이크는 이스라엘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을 때 형성된 도시다.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군사거점으로 이스라엘이 끝까지 이집트에 반환을 거부한 노른자위 땅이다. 바다가 깊고, 해안절벽이 가득한 군사적 요충지는 주인이 바뀌면서 휴양의 천국으로 변신했다. 히브리어 간판 등 아직도 이스라엘의 잔재가 남아 있다지만 명목상일 뿐이다. 이집트의 땅 위에 외지인들이 몰려들었고 내로라하는 호텔체인과 리조트들이 해안을 빼곡히 채웠다. 이 바다와 도시의 진정한 주인은 홍해의 뜨거운 햇살과 깊고 낮은 다이빙을 즐기려는 이방인들이다.

대규모 수영장과 골프장을 갖춘 고급 리조트들.

샤름 엘-셰이크의 중심거리는 나마베이(Naama Bay)다. 나마베이는 낮과 밤이 다르다. 뜨거운 햇살 아래 한낮의 거리는 조용하고 한적하다. 대부분 상가들도 문을 닫은 채 다이빙숍들만 군데군데 문을 열고 있다. 이곳에서는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숙소와 도심을 빠져나와 바다로 몰려간다. 스노클링이나 스쿠버 다이빙을 위해 이른 오전부터 배에 오른다. 한 짐 가득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긴 뒤 모든 액티비티는 낮 동안 홍해에서 진행된다.

바다에는 친절하게 다이빙을 위한 안내도까지 마련돼 있다. 템플, 라스 움 시드(Ras Um Sid)는 근해의 스노쿨링을 위한 장소다. 이곳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참 많다. 중급 이상의 다이빙 마니아들은 좀 더 깊은 바다로 뛰어든다. 라스 무하마드, 티란 등은 샤름 엘-셰이크 를 다이빙 메카의 반열에 올린 대표적인 포인트다. 산호 절벽과 깊이에 따라 짙은 남색으로 변하는 꿈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해변의 리조트들은 홍해와 맞댄 그윽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샤름 엘-셰이크 앞바다에서 한가롭게 다이빙을 즐기는 여행자들.

굳이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더라도 배 위에서 바라보는 샤름 엘-셰이크의 윤곽은 또렷하다. 바다 절벽 위에 리조트들은 고대 왕국의 성처럼 들어서 있다. 럭셔리 리조트들은 별도의 모래 해변을 갖추고 있고 리조트 뒤편으로는 진짜 모래사막이다. 시나이 산(山)의 윤곽도 어렴풋이 보인다. 갈색 사막과 푸른 바다의 앙상블은 이처럼 단절되고도 호사스런 휴식을 만들어냈다.

이방인들의 이색 아지트 나마베이

다이빙이 끝나는 해질 무렵부터 나마베이는 흥청거리기 시작한다.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오고 중심가는 수영복에서 빛나는 셔츠로 갈아입은 외지인들로 붐빈다. 서양식 카페나 레스토랑보다도 역시 나마베이의 명물은 양탄자가 깔려있는 좌식 노천바들이다. 겹겹이 옷을 입은 채 훌라후프를 돌리듯 ‘탄누라’ 댄스를 추는 청년들의 몸동작은 이곳 노천바 호객행위의 한 단면이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나마베이는 이방인들이 몰려들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노천바에 앉아 물담배인 시샤를 즐기는 것 또한 이곳이 주는 묘미다.

양탄자 위에 걸터앉으면 대부분 물담배인 ‘시샤’를 주문해 한 모금씩 피워댄다. 기본적으로 이집트에서의 음주는 규제되고 있지만 이곳은 예외다. 이집트 맥주인 ‘스텔라’는 물담배와 곁들여진 반주로 꽤 인기가 높다.


유럽의 유명 인사들은 샤름 엘-셰이크에서 ‘나만의 휴식’을 즐겼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부부가 여름휴가 때 찾았고 전 영국 총리인 토니 블레어가 이곳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즐겼다. 중동의 부호들을 위한 배려 역시 독특하다. 요트를 타고 들어와 호텔에서 입국수속을 받을 수 있도록 VIP만을 위한 별도의 창구를 마련하고 있다.

경계를 넘어선 뒷골목에는 샤름 엘-셰이크의 옛 모습이 간직돼 있다.

나마베이의 골목에서는 양탄자 등 다양한 쇼핑이 가능하다.

준비된 휴양지는 경계를 넘어서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남쪽의 마야 베이(Maya Bay)에는 이슬람의 전통시장인 수크(sūq, 바자르)도 들어서 있고 리조트 외곽으로 접어들면 옛 모습 그대로의 진흙빛 마을과 사막을 만나게 된다. 다이빙, 허니문의 천국으로 자리매김한 이집트의 휴양 특구는 주변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새로운 로망의 땅이 되고 있다.

가는길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외에도 유럽 주요 도시에서 직항 노선편이 수시로 다닌다. 샤름 엘-셰이크 공항은 규모나 시설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홍해 건너 후르가다에서 페리를 타도 닿을 수 있다. 나마베이 인근은 택시 외에도 마이크로버스가 다닌다. 물가는 이집트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 비싼 편이다.

황무지 땅에서 만나는 피라미드는 의외로 친숙하다. 수천 년 세월이 담겼고,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진귀한 보물이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존재감은 일상과 가깝다. 이집트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 역시 삶과 뒤엉켜 있다. 수도 카이로에서 외곽으로 접어들면 시야에 들어오는 게 ‘삼각의 무덤’들이다. 변두리 재건축 지역에 우뚝 솟은 회백색 건물처럼 피라미드는 생뚱맞게 서 있다.

기자 지구 피라미드. 책 속에서 봤던 피라미드 군이 나란히 도열해 있다.

기자 지구 피라미드는 보통 카이로의 한 부속 관광지처럼 설명되곤 한다.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위치했으며 버스로는 40분 정도 걸린다.’ 4,500년 역사를 지닌 피라미드 입장에서 보면 마뜩잖다. 카이로가 도시로서 의미를 갖춘 것은 바빌론 성을 쌓은 후부터니 피라미드보다 2,000년쯤이나 뒤진다. 기자 지구 일대는 카이로가 들어서기 전, 이미 고대 왕국의 혼이 담겼던 곳이다. 어쩌면 이곳 투박한 땅에서 어색한 것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의 경관일지도 모른다.

4,500년 역사의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에서 발견된 피라미드는 70여 개가 넘는다. 나일강 일대, 문명의 발상지에 고루 흩어져 있다. 그중 기자 지구의 3대 피라미드는 가장 빼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부터 카프라왕,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 등 사막 위에 도열한 세 개의 무덤들은 묘한 여운이 서려 있다. 그 중 대 피라미드로 알려진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650년경 전 만들어진 것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대표주자다. 원래 높이가 145m였으며 수 톤 무게의 석재들만 200만 개가 넘도록 쌓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쌓아올린 석재에는 수천년
세월이 담겨 있다.

가장 크고 오래된 규모를 자랑하는 쿠푸왕 피라미드.

이제는 유명 관광지가 된 피라미드에 닿는 길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다가서기 전 낙타 몰이꾼을 만나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접근하는 호객꾼들의 성화가 이어진다. 수천 년 역사를 조용하게 음미할 여유가 부족하다. 하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만나는 ‘진통’ 쯤으로 생각해 두자. 오히려 경계할 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훌쩍 이동하려는 가벼운 마음이다.

이곳 피라미드는 보는 위치와, 높이에 따라 표정이 다르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바위 하나하나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윤곽도 변한다. 멀리서 웅장한 자태를 감상했으면 사막의 태양 아래 반만년을 견뎌온 바위 하나하나를 곱씹어 본다. 돌덩이에는 지난한 세월의 온기가 전해진다.

이집트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군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투박한 땅 위 피라미드 인근에는 도시가 형성돼 있다.

피라미드의 실체에 궁금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서는 투어에 나선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오갈 작은 통로가 무덤 속에는 미로처럼 뻗어 있다. 이집트 원정에 나섰던 나폴레옹은 쌓인 돌들을 바라보며 프랑스 전 국경에 장벽을 세울 수 있겠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황무지에 쌓아 올린 ‘세계 불가사의’

피라미드를 둘러싼 학설은 하나로 모아진다.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며 왕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계단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고 태양신과 함께 하늘을 순회한다고 믿었다. 피라미드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활발하게 계속됐으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다만 정확한 축조법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10만 명이 동원돼 20여 년 동안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인의 신앙심이 표출된 피라미드에 대해 건축가 알베르티는 ‘미치광이의 발상’이라며 헐뜯기도 했다.

피라미드를 지키는 역할을 했던 스핑크스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소 애착이 가는 모습으로 변했다.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는 길이 57m, 높이 20m의 대단한 덩치를 자랑한다. 하지만 아랍인의 침입 때 코가 잘리고 영국에 수염도 빼앗긴 뒤로는 다소 애처로운 모습이 됐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배경 삼아 야간에는 ‘소리와 빛의 쇼’가 펼쳐진다. 형형색색 화려하지만 수천 년 잠들어 있을 무덤 속의 왕에게는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다.


피라미드에서 나서면 복잡한 거리가 형성돼 있다. 현지인들은 아흐라무 거리, 여행자들은 피라미드 거리로 부르는 곳이다. 이집트의 각종 맛집들과 상가들, 전 세계 패스트푸드점들이 거리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2012년에는 이곳에 투탕카멘 등의 유물이 보존될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고대의 왕들은 수천 년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흔적에 기대어 살 ‘고마운’ 터전을 마련해 줬다.

피라미드를 구경하기 위해 나선 이집트 소녀들.

이집트의 전통 종이 파피루스에 새겨진 그림.

피라미드가 전통적인 삼각탑 형태만 지닌 것은 아니다.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피라미드의 모양은 지역에 따라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기자 지구 인근인 사카라조세르왕 피라미드는 계단식으로 돼 있으며, 다슈르는 한쪽 변이 굴절되거나, 벽돌색이 붉은 피라미드로 유명하다. 이 일대의 피라미드들은 고대 왕국이었던 멤피스의 영화로움을 반증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이집트를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피라미드를 알현해야 할 듯한 유혹에 빠진다. 그 앞에 서면, 무슨 주문에라도 홀린 것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수천 년 세월의 흔적에 고개를 떨어뜨리게 된다.

가는 길
인천~카이로 구간은 대한항공, 카타르항공 등이 운항 중이다. 이집트 입국 때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다. 30일 동안 유효한 비자를 현지 공항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다. 카이로에서 기자 지구까지는 버스가 운행되며 택시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기자, 사카라, 다슈르를 어우르는 현지 투어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8.19 23:31 신고

    여기괜탆네

  2.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8.19 23:32 신고

    여기괜탆네

크루즈 타고 가는 이집트 신전
클레오파트라 신혼여행길에서 람세스와 마주치다

(위) 사막의 나라인 이집트에 이런 물과 풀과 나무가 있다. 나일크루즈의 출발지 중 하나인 이집트 남부의 휴양도시 아스완의 모습. 관광객들은 전통돛단배인‘펠루카’를 타고‘필레신전’이 있는 아길키아섬으로 갈 수 있다. (아래) 이집트 최대 유적지 룩소르 시내에 있는‘룩소르 신전’. 둘째 탑문을 지키고 있는 람세스 2세 상 뒤로 높이 19m의 기둥 14개가 두 줄로 서 있다. /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제공

곧 겨울이다. 추울 때는 '무조건' 따뜻한 곳이 좋다. 외투를 벗고 티셔츠 바람에 이국 풍경을 구경하거나 수영을 즐기거나 쇼핑에 빠지는 맛은 무엇에 비할 수 없다. 주말매거진이 올겨울 피한(避寒)에 적합한 해외 여행지들을 모아 특집으로 꾸몄다. 추위 나기에 좋은 국내 여행지들로 특집 2탄도 준비 중이다. 

여기는 나일(Nile). 피라미드, 스핑크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신전(神殿)…, 이집트 고대문명을 잉태하고 키운 젖줄. 오늘 이 나일에는 크루즈선들이 떠다니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신혼여행을 위해 배를 띄웠던 이곳에서 오시리스(죽음과 부활의 신)·이시스(모든 파라오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최고의 여신)·호루스(왕권 수호신)와 람세스·핫셉수트 파라오를 만난다. 나일크루즈를 타고 체험하는 5000년 문명의 정수(精髓), 바로 거대 신전들이다.

◇아스완(Aswan)…필레 신전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에서 80실 규모의 크루즈선에 올라탔다. 나일강 상류인 이 도시에서 하류 쪽으로 내려가며 중간중간 유적이 있는 도시들에 내려 관광하는 일정. 반대편도 코스도, 왕복 코스도 모두 가능하다.

'아스완댐'으로 유명한 여기에선 '필레(Phille) 신전'이 우릴 맞이한다. 2300여 년 전 넥타네보 1세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오시리스신의 부인으로, 현명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시스 여신에게 바쳐졌다. 원래는 클레오파트라·카이사르 커플의 신혼여행지로 알려진 필레섬에 있었다. 그러나 아스완댐이 만들어지면서 이 섬은 수몰됐다. 신전은 유네스코의 지원 아래 4만여 개 조각으로 나눠져 10년 공사 끝에 1980년 인근 아길키아섬으로 옮겨 세워졌다. 높이 18m 폭 5m의 대형 탑문(塔門), 36개의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복도, 이시스·호스·파라오를 새긴 거대한 돌새김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아스완 강변에 정박한 크루즈선에서 필레 신전을 가는 길도 즐겁다. '펠루카'라는 이집트 전통 돛단배를 타고 20~30분 정도 간다. 기온은 30도를 웃돌지만 습도가 낮은 탓에 강바람은 상쾌하고 신선하다. 펠루카로는 아스완 지역 나일강 유역을 일주할 수도 있다. 배 이용료는 공시가가 1시간에 130이집트파운드(£E·약 2만4000원). 그러나 뱃사공에 따라 300~500£E를 부르기도 한다니 '흥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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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콤옴보(Kom Ombo)…콤옴보 신전

아스완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아침에 출발해 북쪽으로 50㎞쯤 올라가면 나오는 도시 콤옴보. 이곳에 '콤옴보 신전'이 있다. 크루즈선이 정박한 곳에서 5분만 걸어 올라가면 기념품 상가를 만나고 곧이어 신전이다. 22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악어의 머리를 지닌 물의 신 '소베크'와 매 머리 모양의 하늘의 신 '하로에리스'를 섬긴다. 모시는 신이 둘이라서인지 입구를 비롯해 홀, 대제사장이 예배를 드리던 지성소(至聖所) 등이 다 둘이다. 부조가 새겨진 벽에는 고대의 수술 기구, 뼈 절단기, 치과 도구 등도 그려져 있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가 된다.

◇에드푸(Edfu)… 호루스 대신전

콤옴보에서 다시 북쪽으로 50㎞를 더 올라가니 '에드푸'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선착장에 줄지어 서 있는 마차를 탄다. 마주보고 있는 좌석에 각각 2명씩, 4명이 한 대에 탈 수 있다. 요금은 130£E(약 2만4000원). 우리의 읍(邑) 정도인 에드푸의 마을 곳곳을 구경하며 10여분쯤 가면 신전이다.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둘째로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는 '호루스 대신전'.

로마 지배하의 프톨레마이우스왕조 때인 기원전 237년부터 짓기 시작해 180년에 걸쳐 완공했다. 폭 36m, 높이 137m의 탑문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신 조각이 신전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맞는다. 신전 벽면에는 호루스가 아버지 오시리스를 살해한 삼촌 셉트를 제압하는 것을 상징하는 그림이 가득하다. 

◇룩소르(Luxor)…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

에드푸를 떠나 100여㎞를 더 올라가면 이집트에서 넷째로 큰 도시 룩소르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안(東岸)에는 카르나크·룩소르 신전 등 파라오들이 왕도(王都)의 위세에 걸맞게 세운 거대한 신전들이 있고, 서안(西岸)에는 역대 파라오들의 무덤이 있는 '왕가의 계곡'이 있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차를 타고 몇 분만 가면 카르나크 신전이 나온다. 동서로 540m, 남북으로 600m 규모로 현존하는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가장 크다. 4000년 전 축조를 시작, 파라오들이 저마다 증축을 거듭해 오늘의 규모가 됐다고 한다. 23m의 돌기둥 134개가 촘촘히 늘어선 대열주(大列柱)실, 높이 21.8m 무게 130t의 투트메스 1세 오벨리스크, 높이 30m 무게 323t의 핫셉수트 여왕 오벨리스크, 람세스 거상(巨像) 등 볼거리가 넘쳐난다.

카르나크 대신전에서 남쪽으로 3㎞ 거리에 지어진 지 3500여년 된 룩소르 신전이 있다. 너비 65m 높이 25m의 첫째 탑문은 람세스 2세가 만든 것으로 나폴레옹은 이를 본떠 파리에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크루즈 선착장에서 차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30분쯤 가면 '왕가의 계곡'이다. 파라오 무덤 24기 등 64기의 왕가 무덤이 있다. 표 한 장으로 무덤 세 개를 볼 수 있지만, 가장 유명한 투탕카멘 무덤은 별도로 표를 사야 한다. 황금마스크 등 이곳의 투탕카멘 묘에서 나온 보물들은 카이로박물관에 있다. 

나일 크루즈의 밤엔 달이 강이 되고 강이 달이 된다. /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제공

■소피텔 올드 카타락트 아스완 호텔(Legend Old Cataract Aswan).

아스완에서 꼭 들러야 할 명물.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대표작 중 하나인 '나일강 살인사건'(1937)을 쓴 곳이다. 호텔이 소설 배경으로 나오기도 한다. 영국의 유명한 여행사업가 토머스 쿡이 1899년 지은 건물 자체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소피텔 윈터 팰리스 룩소르 호텔(Hotel Sofitel Winter Palace Luxor)

1886년 지어졌다. '로열 바'에서 '하워드 카터 커피'를 마셔보자. 블랙커피에 브랜디, 그랜드 마니에르(증류주의 일종), 시나몬을 섞은 것으로 65£E(약 1만2000원). 투탕카멘 묘를 발굴한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곳에 머물며 즐겨 마셨다 해서 붙인 이름. 

여행수첩

이집트 가는 길

대한항공이 매주 월·목·토요일 인천에서 타슈켄트를 경유해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를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3시간 30분 정도. 카이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매주 화·금·일요일에 뜬다. 역시 타슈켄트 경유로 1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두 스케줄 모두 타슈켄트에서 머무는 시간은 1시간 30분. 주한 이집트대사관이나 카이로 공항 현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나일 크루즈 

보통 5층인 배 한 척에 80개 안팎의 객실이 있고, 작은 수영장과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세 끼 식사를 모두 선내에서 할 수 있다. 사방이 환하게 트인 옥상 데크에서 선탠용 의자에 앉아 맥주 한잔 마시며 보는 석양과 밤하늘의 달·별이 황홀하다. 10월 기준 식사 포함 1박당 60달러 정도. 12월 15~30일이 극성수기로 가장 비싸다. 4~7일 상품이 일반적. 자세한 사항은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대표사무소 (02)2263-2330, www.myegypt.or.kr 

통화 

1이집트파운드(£E)는 15일 현재 우리 돈 약 190원.

날씨

겨울을 제외하면 비는 거의 내리지 않는다. 평균기온이 섭씨 30도 안팎이고, 높은 곳은 40도에 달하는 여름보다는 15~20도 정도인 겨울(11~1월)이 여행하기에 더 쾌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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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의 삼각주,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홍해를 끌어안은 땅,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순례의 땅 시나이 반도. 인공위성 사진으로 바라본 시나이 반도는 푸른 색채 하나 보이지 않는 무인지경의 사막지형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시나이 반도(시내 반도), 모세산이라 불리는 시나이산(시내산)에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6시간 만에 도착했다. 시나이 반도는 수에즈만아카바만 사이의 삼각형 모양의 반도로써 남부는 성경에 등장하는 모세의 시나이산이라 불리는 험한 산악지대이고 북부는 황량하고 뜨거운 광야이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고 하는 시나이산 정상. 울퉁불퉁한 암반투성이의 정상은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신비한 산이다.

넓이 6만 1천㎢의 이 광활한 땅에서는 생명이 살기도 쉽지 않다. 낮에는 작열하는 강한 햇빛이 내리 쬐고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한다. 4만여 명의 베두인족 들만이 이곳 각처에서 살고 있다. 계곡이 거의 없어서 물을 구하기도 어려운 곳이지만, 이곳에도 대추야자, 옥수수 등이 재배되고 있는 옥토가 있다. 파이란 오아시스(Fairan Oasis)로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다. 이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베두인족들은 낙타, 양, 염소 등 가축들을 키우며 유목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육상 통로일 뿐 아니라 지중해 저편, 유럽 대륙이 시나이 반도를 거쳐서 홍해와 인도양 뱃길을 따라 동양으로 갈 수 있는 선박로이자 문화의 교량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예로부터 시나이 반도는 문화 교류와 교통로로써 중요한 땅이었으며 국제적 사건들이 계속되어왔다.

이스라엘인들의 광야생활 40년의 무대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약속의 땅인 시나이산은 이곳 시나이 반도 남단에 자리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코란에서도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시나이산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 언급되어 있어 사실상 시나이 반도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공동 성지이다. 베두인족들의 유목의 터전, 불타는 듯 뜨거운 광야가 펼쳐지는 이곳 ‘위대한 광야’의 성산을 찾아 세계인들의 순례의 발걸음 이어지고 있다.

가라! 약속의 땅을 향하여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시나이산 정상에서의 모세 십계명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과연 그곳은 어떠한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을까? 세계인들은 그 궁금증 혹은 십계명의 발원지를 찾아 시나이 반도 남단, 시나이산 등정을 꿈꾼다. 멀고 험한 불편의 시간을 감수해야 하지만, 인간은 그곳에 오른다. 정상을 향한 시작은 새벽에 시작되며, 원점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아침나절이나 되어서야 가능하다. 성서에 등장하는 시나이 반도,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시나이산 정상을 향하는 길은 험난하고 고단한 여정이다.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의 시나이산 정상.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간절한 소망을 꿈꾸는 곳이다.

여명을 알리는 시각, 파르스름한 새벽이다. 새벽 2시에 출발하여, 아직 어두운 5시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한 시나이산 정상. 오르는 도중에는 그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 어떻게 그 길을 올랐는지 알 수가 없다. 칠흑 같은 어둠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 조건 없이 오직 침묵으로 시나이산 정상을 향해 묵묵히 오른다. 그리고 찬란한 아침 해를 벅찬 감동으로 맞이한다.

마치 한 무리의 군단들이 새벽에 적진을 향하여 매복을 하듯 전진하는 형색으로 성산을 향해 전세계에서 찾아든 사람들이 새벽을 가르며 힘차게 오른다. 붉은 해가 힘차게 대지를 향해 오른다. 시나이산에 찬란한 해가 솟아오른 것이다. 붉은빛이 감돌고 울퉁불퉁 골이 진 화강암으로 뒤엉킨 산줄기가 아침 햇살을 받아 장엄하다. 신비로운 생동감을 품은 정상의 골짜기는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겨 다양한 색채로 변신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에 태양은 더욱 붉게 떠오르고 있다. 그 순간, 홍해 골짜기에는 성스러운 축복을 기리는 수많은 영혼들의 기도가 울려 퍼지고 있다. 새벽에 오른 길이 아스라히 보이는 순간이다. 모두들 묵묵히 올라 정상에 선다.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며 벅찬 감동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렇게 시나이 반도 시나이산 정상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세상, 또 하나의 창조의 하루를 시작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인파가 파르스름한 새벽, 드디어 시나이산 정상에 당도하는 순간이다.

2,285m 시나이산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순간은 장관이다.

천지창조를 경험하듯, 시나이산 정상에서의 아침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칠흑 같은 어둠이 파란 하늘로 변모하고, 삶에 지치고 고단했던 인간들은 새로운 희망을 안고 다시 시작할 용기도 얻는다. 거대한 돌산으로 겉으로 보면 쓸모가 없는 땅으로 보이는 이 땅을 지리학자들이 매혹의 땅이라고 부른 이유를 정상에 서면 알게 된다. 새벽의 고난을 이겨낸 순례자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듯이 하늘의 기운과 희망 가득한 생의 메시지를 안고 발걸음을 돌린다.

따가운 태양을 견뎌내며, 시작한 자리로 되돌아간다. 시나이산 영혼의 울림에 귀 기울여보고, 아침 해의 웅장한 비상에 감동한 떨리는 가슴도 쓰다듬어 본다. 함께한 캐러밴(대상, caravan), 낙타들의 이동은 새벽부터 이 아침까지 흔들림 없다. 다시 돌아온 그 자리, 흑암의 새벽에 이 자리를 출발하여 뜨거운 태양 대지를 달구고 하늘 높고 높은 눈부신 아침에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적막과 어둠을 뚫고 푸른 빛과 태양을 맞이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 일련의 과정, 시나이산 순례의 길.

광활하고 거대한 시나이산의 위용. 낙타의 희생이 없었다면, 시나이산 캐러밴은 감동으로 마쳐내지 못했을 것이다.

파란 하늘 아래, 시나이산 골짜기 사이로 줄지어 이어지는 캐러밴 행렬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정상을 다시 출발한 낙타의 행렬은 성 카타리나 수도원(Saint Catherine's Monastery)에 당도한다. 순례의 끝이자, 희망의 시작이다. 낙타의 희생과 베두인족의 동반 없이 이 경이로운 순례의 길을 감동으로 마쳐내지 못했을 것이다. 최고의 감동 이면에는 희생과 헌신이 동반된다. 베두인족 일상의 반복과 낙타의 헌신이 허락한 시나이산 새벽 순례는 시나이산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의 캐러밴이 될 것이다.


가는 길
대부분 이스라엘과 이집트 두 곳에서 출발하지만, 이집트 카이로에서 떠나는 여정이 일반적이다. 그룹 투어의 경우에는 태양의 열기가 잠잠해진 오후 3시경 카이로를 출발하여, 성 캐서린 수도원에 늦은 밤 도착한다. 시나이 터미널에서 아침 9시, 압둘 무님 리아드(Abdul Munim Riad) 터미널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보통 새벽 2시에 기상하여 등반을 하므로, 도착하여 두세 시간 정도 잠을 청한 후 다시 출발한다. 체력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랜턴과 물은 필수품이다. 걷는 사람도 많지만, 왕복 15$ 정도를 내고 낙타 캐러밴에 동참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피라미드·스핑크스가 품은 역사 따라 과거로
기대 이상의 낭만을 주는 '역사 박물관' 이집트 여행

이집트는 연중 내내 따스한 햇볕과 친절한 사람들, 멋진 홍해 바다와 해변, 환상적인 산호초와 바닷속 풍경이 있다. 여기에 더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과 낭만적인 사막과 오아시스까지 누구나 평생 꼭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꿈의 여행지'라고 불린다. 이 풍부한 자연과 역사 유적지 덕분일까. 이집트는 19세기 전부터 유럽의 부호들이 즐겨 찾던 겨울 휴양지로 알려졌다. 특히 추운 겨울일수록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카이로보다 이집트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지 아스완과 룩소르가 더 인기다. 최적 날씨는 물론 나일 강 크루즈를 타고 가는 여정이 기대 이상의 여유와 낭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일 크루즈./사진=롯데 JTB
Best Choice 1. 파라오도 부럽지 않은 호사, 나일 크루즈

시시각각 변하는 나일 강의 풍경에 이집트 여행은 지루할 틈이 없다. 해 질 녘 강과 석양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와이드 스크린에서 보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감동을 준다. 나일 강 크루즈는 다양한 코스 가운데 룩소르와 아스완 구간이 가장 대표적이다.

300개가 넘는 크루즈는 겨울을 즐기고자 찾아온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대부분 4~5층 규모에 80여 개 객실을 갖추었는데, 선 내에는 레스토랑과 연회장, 기념품 가게가, 꼭대기 층의 갑판에는 야외 수영장과 데이베드, 카페가 자리했다. 이른 새벽, 조용한 나일 강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오후에는 데이베드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달빛 아래 시원한 맥주를 마시다 보면 옛 파라오들도 부럽지 않은 호사를 맛볼 수 있다.

룩소르-아스완 구간을 3~4일 여행하는 동안 여행객들은 에스나, 에드푸, 콤옴보와 같은 파라오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아스완 남부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신비로운 고대 이집트 신전을 만나게 되는 데, 이 중 '아부심벨' 신전은 가장 빛나는 명소다.

아부심벨 신전 람세스 2세상./사진=롯데JTB
Best Choice 2. 신전 그 이상의 장엄한 감동, 아부심벨

아부심벨 신전은 이집트를 가장 번성하게 했던 람세스 2세가 재위 시절 20m 좌상들과 암벽을 60m 깊이로 파서 만든 신전이다. 대신전과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으로 이뤄져 있는데 웅장하면서도 정교한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이집트 내 7개의 세계문화 유산 중 하나다.

1960년대, 아스완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던 아부심벨은 국제적인 원조와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원래 위치보다 65m 높은 곳으로 이전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아부심벨은 매년 10월 22일, 2월 22일 2차례 신전 내부 깊숙이 햇살이 비추도록 지어졌는데, 이때 신전 입구부터 60m 안쪽의 람세스 2세를 비롯해 아몬 신, 라 호라크티 신, 프타 신 4개의 조각상이 있는 지성소를 환하게 비추며 장관을 연출한다. 신기하면서도 경이로운 빛의 쇼를 보기 위해 이날은 동이 트기 전부터 전 세계 관광객들이 아부심벨 신전으로 모여든다.

새벽의 여신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담긴 멤논의 거상./사진=롯데JTB
Best Choice 3. 지상 최대의 야외 박물관, 룩소르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에서 나일 강을 따라 중간마다 콤옴보, 에드푸, 에스나와 같은 잘 보존된 파라오의 유산을 둘러보다 보면 지상 최대 야외 박물관 룩소르에 닿게 된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정점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는 중 왕국, 신왕국의 중심지 테베가 바로 현재의 룩소르다.

아몬 대신전으로 잘 알려진 카르나크 신전은 현존하는 고대 이집트 신전 중 최대 규모로 이집트의 모든 역사를 말해주기라도 하듯 거대한 탑과 오벨리스크, 신비한 기둥과 홀이 있는 아몬 신전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아름다운 네페르타리가 잠들어 있는 왕비의 계곡과 투탕카멘 무덤을 비롯한 신왕국 파라오들의 공동 묘역인 왕가의 계곡도 서안 지역에 넓게 자리했다. 이른 새벽 열기구에 탑승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고대 테베의 경이로운 풍경은 룩소르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해준다.

사막 사파리./사진=롯데JTB
Best Choice 4. 백사막에서 사막여우를 만날까?

이집트에서의 사막 사파리는 '리얼 버라이어티' 그 자체다. 사하라 사막에 속한 이집트에서는 오아시스 주변에서 사막여우를 만날 수도 있고 수천 개의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서 캠핑을 하는 이색 체험이 가능하다.

카이로에서 4~5시간 거리에 있는 바하리야 오아시스는 바람이 빚어낸 기묘한 형태의 석회석을 볼 수 있는 백사막(White Desert)이 대표적. 버섯, 새 모양, 나무 형상을 한 바위들이 늘어선 풍경은 신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TV 광고에 나와 눈에 익은 곳이기도 하다. 더불어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쌓인 검은 피라미드 같은 흑사막(Black Desert)도 인기다.

당일 돌아오는 지프 사파리도 있지만, 아랍 유목민인 베두인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1박 2일 사파리 투어를 추천한다. 아름다운 사막의 노을과 더불어 수많은 별똥별이 눈앞에서 떨어지는 낭만적인 밤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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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의 수수께끼, 이곳에 모이다 - 이집션 박물관

이집트, 미라 하면 당연히 떠오르는 투탕카멘. 투탕카멘의 발굴은 그 자체로 전설이다. 이집트의 제18왕조의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1922년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당시 굉장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무덤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존재감조차 희박하던 이 파라오는 도굴이 안 된 온전한 무덤에서 수많은 보물과 함께 발견되면서 이집트의 왕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떠올랐다.


아홉 살의 나이로 파라오의 자리에 올랐다가 열아홉에 죽은 연약한 왕. 요절의 원인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으나 오랜 연구 끝에 뼈 질환과 말라리아 등 합병증으로 일어난 한쪽 다리의 부상으로 밝혀졌다. 발이 안쪽으로 휘는 병인 내반족, 입천정이 갈라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기형인 구개파열을 앓고 있던 것도 함께 드러났다.


투탕카멘은 또한 기이한 저주로도 유명하다. 발굴에 관련된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죽었다는 게 그 소문의 내용인데, 발굴을 기획하고 자본을 댔던 카나본 경이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 그 5개월 뒤 카나본 경의 동생이 돌연사한 사건, 발굴을 지휘했던 하워드 카터가 기르던 카나리아가 무덤을 열던 날 코브라에 잡아먹힌 사건 등이 저주의 목록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막상 무덤을 열었던 하워드 카터의 평범한 죽음은 그 모든 저주설을 무색하게 한다. 사실, 발굴에 관련된 사람 58명 중 12년 안에 죽은 건 오직 8명뿐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은 저주설이 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는 분명한 증거다.


투탕카멘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손타지 않고 고스란히 발견된 수많은 보물이다. 그중에서도 청금석으로 장식된 골드마스크는 유명하다. 투탕카멘의 보물들을 현재 카이로에 있는 이집션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이집션 박물관은 16만여 점의 문화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다. 장소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유물들은 건물을 포화상태로 만들고 있는데, 2011년 개관을 목표로 대 이집트 박물관이 한창 지어지고 있는 중이라 하니 수많은 나라에 빼앗기고도 넘치게 남아있는 그 풍성한 유산들은 제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곧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묻고, 죽이다 - 대 스핑크스(Great Sphinx)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괴물이다. 여자의 머리와 가슴,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지닌 이 괴물은 티폰과 에키드나 사이에 태어난 딸이라고 한다. 헤라는 그녀를 테베 시민들을 징벌하기 위해 파견했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죄를 묻기 위해서였다.


테베에 있는 피키온 산 부근에 자리 잡은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이에게 그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아침에는 네 다리, 낮에는 두 다리,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그리고 정답을 내놓지 못하는 자를 가차없이 잡아먹었다.


정답인 “사람”을 내놓아 스핑크스가 자살하게 만든 것은 유명한 오이디푸스다. “인생의 아침인 어린 시절에는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낮이라 할 수 있는 장년에는 두 발로 걸어다니고 인생의 밤인 노년이 되면 지팡이를 짚고 세 발로 기어다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막 속의 스핑크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신화 속에서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지고 난 뒤 사라졌지만, 현실 속에서는 길이 57미터, 높이 20미터의 장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살아남아 이집트에 굉장한 관광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하나의 바윗덩어리를 깎아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조각으로 인정받는 이 대 스핑크스는 코도 떨어져 나가고 풍파에 시달려 정교한 맛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수많은 이들에게 경외감을 안겨주고 있다.


카프레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스핑크스는 오랫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었는데, 훗날 젊은 왕자였던 이집트의 투트모세 4세의 꿈에 나타나 “내 몸을 덮고 있는 모래를 다 걷어 주면 너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비로소 지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현재 이 전설을 새긴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꿈의 비석‘을 앞다리 사이에 끼고 있다.


스핑크스의 이름은 많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살아 있는 모습”이라는 뜻의 “쉐세프 앙크(Shesep ankh)”라고 불렀고, 아랍인들은 “공포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아엘 홀(Abu al-Haul)”이라고 불렀다.

이슬람에 대해 묻다 - 알 아즈하르 모스크(Al-Azhar Mosque)

알 아즈하르 모스크의 전경.


이슬람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어디에 물어보면 좋을까? 이집트 국내에서는 물론이요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슬람 연구의 본산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정답이다. 서기 972년에 모스크가 세워진 뒤, 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활동을 시작하며 대학을 세운 이곳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대학 중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곳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교육기관으로 인정받는 이곳은 이슬람의 ‘하버드’로, 이곳 출신의 이슬람 학자들은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현재 알 아즈하르 모스크는 이슬람의 다수 종파인 수니파의 본산이다. 처음 설립되었을 당시에는 이슬람의 소수 종파인 시아파의 교육 기관 및 모스크였다고 한다. 시아파의 지류인 이스마일파를 따랐던 파티마 왕조의 통치자 알 무잇즈가 세운 이곳에서는 첫 신학 세미나에서 시아파 율법 요지를 낭독하며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대학이 세워진 이후에도 35명의 교수는 시아파 내 이스마일파의 신앙을 가르쳤다.


알 아즈하르의 입장이 바뀐 것은 파티마 왕조의 몰락 이후이다. 새로운 왕조인 아윱 술탄들은 시아파 교육을 이집트에서 금지했다.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수니파의 사원으로 거듭난 것은 맘룩 술탄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오스만 제국 통치기에는 무슬림 세계의 중심 신학 대학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모든 학문을 가르치고 있다.

여자들의 호기심이 비밀의 방을 만들다 - 게이어 앤더슨 박물관(Gayer Anderson Museum)

카이로에 살던 무슬림 여자들은 눈도 막고 귀도 막은 채 갇혀 살기만 했을까? 그러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들은 훔쳐보기의 달인이었다. 그녀들이 손님들을 훔쳐보고 잘 생긴 남자들을 품평하던 비밀의 방은 옛 저택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35년 카이로에 머물던 영국인 장교인 존 게이어 앤더슨이 17세기에 지어진 두 채의 집을 구입해 연결하고 터키 양식, 파라오 양식, 중국 양식 등으로 꾸며 완성한 집은 현재 게이어 앤더슨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그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는 얼핏 벽장같아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좁고 긴 비밀의 방이 있다. 연회를 열면 손님들이 모여들 거실의 천정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이 방은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작은 창문이나 작은 나뭇조각을 이어 만든 장식인 마샤라베야로 가려져 있다. 여자들은 이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호기심을 채웠다.


두 채의 집 중 하나는 게이어 앤더슨이 구입하기 전, ‘크레타 여인의 집’이라 불렸다. 한때 크레타 섬에서 온 부유한 무슬림 여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게이아 앤더슨은 이 집에 얽힌 전설들을 수집했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 집이 바로 노아의 방주가 홍수 뒤에 머물렀다는 산에서 나온 재료로 지었다는 것이다. 또한, 모세가 신의 말을 들은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븐 툴룬 사원의 부속건물로, 이곳 테라스에 서면 이븐 툴룬 사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의 리셉션 홀과 옥상 테라스에서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가 촬영되었다.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촬영장으로 쓰였다.

성궤가 있는 곳을 묻다 - 칸 엘 칼릴리 Khan al-Khalili 시장

카이로의 시장이 나오는 영화 [레이더스].


카이로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해도, 카이로의 시장통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는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 [레이더스]의 유명한 한 장면 때문이다.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로 가득 찬 시장 한복판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길을 가로막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를 만난다. 그는 위협적인 칼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인디아나 존스에게 다가가는데, 우리의 주인공, 고개를 갸웃하더니 바로 총으로 쏘아버린다. 야단법석을 떠는 코믹한 현지인들과 인디아나존스의 쿨한 태도가 대비되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는 정부의 명령으로 성궤를 찾는 모험을 떠난다. 그가 찾는 성궤는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져왔다가 깨뜨린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 두 조각이 들어있는, 일명 ‘언약의 궤’. 어느 날 사라진 이 성궤를 찾는 것은 인디아나존스만은 아니다. 그 신비한 힘 때문에 나치 또한 눈에 불을 켜고 성궤를 찾고 있었던 것.


영화 속의 그 시장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인 칸 엘 칼릴리 Khan al-Khalili 시장에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1382년 맘루크 왕주의 술탄 바르쿠크의 아들 알 칼릴리 왕자가 세운 유서깊은 이 시장은 이집트에서도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아랍권에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6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답게 1,500개가 넘는 점포와 미로 같은 좁은 골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쉽게도, 카이로의 한 시장이라고 하지만 막상 영화를 촬영한 곳은 튀니지의 다른 시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영화 속의 그곳을 찾기는 어렵겠다.

나일 강물아, 어디까지 왔니? - 나일로미터[Nilometer]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말했다. ‘이집트는 나일의 선물’이라고. 그들의 농사짓는 법은 독특하다. 애써서 밭을 갈고 잡초를 뽑지 않는다. 그들은 상류의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범람한 강물이 밭에 흘러들어왔다 물러가기를 기다린 뒤, 비옥하고 촉촉해진 땅 위에 씨앗을 뿌리고 돼지로 하여금 땅을 밟게 한다. 돼지는 수확 때도 이용된다. 그렇게 한 해 농사가 끝나면, 다음번 나일강의 범람을 기다린다.


그러하니,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나일강의 수위’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강물이 적어도 안 되고 지나쳐도 곤란했다. 적당하면 그해는 풍년이었다. 강물의 높이를 재는 단위는 큐빗(cubit), 약54센티미터였는데, 풍년을 보장하는 높이는 약 16큐빗이었다. 그보다 모자라도 재난이었고, 그보다 높아지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요, 역병이 돌았다.


1902년 나일강 상류에 영국이 1,900미터 길이에 54미터 높이의 아스완댐을 만든 이후 수위를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나일강의 범람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나일로미터의 설계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가 맡았다.

하지만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한 건축물인 나일로미터는 아직도 제자리에 남아, 당시 이집트 농부들의 관심과 열망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카이로 남부 로다 섬에 있는 나일로미터는 AD 861년에 지어졌다. 압바스 조 칼리프인 알 무타와킬이 지었는데, 설계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가 맡았다. 강 바닥부터 가파른 계단같은 수위측정계를 설치하여 강물의 범람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였다. 중앙에는 물높이를 재는 팔각형의 가는 돌기둥이 우뚝 서 있다. 카이로의 나일로미터는 이집트 내에서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랜 이슬람 시대 건축물이다.

궁금증이 뭉글뭉글 - 쿠푸 왕의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는 규모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7대 불가사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왔던 이 목록의 첫 번째 줄에는 늘 피라미드가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카이로 남서쪽 기자에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이다. 대피라미드, 혹은 제1 피라미드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게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규모가 압도적이다. 높이 146.5m(현재는 137m만 남아 있다), 바닥변 약 230m, 사면각도 약 51도. 평균 2.5톤의 돌을 230만 개 쌓아올려 만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이다.


이집트 제4왕조의 제2대 왕인 쿠푸 왕의 무덤인 이 피라미드는 4,500년 전의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놀라운 것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는 각 변의 오차가 아주 미세하다는 것. 두 번째는 피라미드가 세워진 시기가 철이 발견되기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230만 개의 돌을 필요한 크기대로 자르고 다듬는데 이용된 도구가 겨우 돌과 구리로 만든 연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로는 그 돌을 쌓기 위해 발휘된 뛰어난 건축술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여했던 수학자 몽즈는 대피라미드의 체적을 계산하여 프랑스의 국경을 3m의 높이에 0.3m의 폭을 가진 담으로 둘러 쌀 수 있는 양이라 환산했다 하는데, 그토록 큰 규모의 건물을 변변한 도구 없이 지어올렸다는 것은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네 번째는 높이 20cm, 폭 22cm의 천체창이다. 이 창의 진정 놀라운 점은 기원전 2600년에서 기원전 2400년 경의 오리온자리 세 별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는 사실. 당시의 천문학의 발달수준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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