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  '산마리노' 에 가보셨나요?
 
아드리아해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온 사람들.
그들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중세의 날 축제.
7월 중순 닷새 동안중세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누가 뭐라 해도 이 기간이
산마리노 여행의 최적기다.


7월 중순 즈음 산마리노는 중세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중남미를 빼고는 거의 모든 대륙을 다녔다. 서아프리카 말리의 진흙도시 젠네의 골목길을 헤매기도 하고, 인도 푸시카르 사막에서 수십만 낙타와 함께 잠들기도 했다. 런던에서 공부할 때는 사우스 뱅크 산책을 즐겼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6개월 사이에 세 번이나 다녀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보통 직장인들에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휴가란 대게 일주일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한정된 시간 안에 느긋이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추천해볼까 한다.

이탈리아 동북부 내륙에 위치한 산마리노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이라도 한나절 걷기에 효율대비 최적의 장소다. 티타노산(Titano Mt.749m)을 중심으로 위치한 산마리노는 과이타 요새 정상에 서면 경계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그만 도시 국가지만 가장 오래된 공화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301년 세워진 산마리노 공화국은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으며 2명의 집정관을 두었던 전통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우리로 치자면 대통령이 2명인 것이다. 내무부 장관이 산마리노 사람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는데, 인구 3만 명의 국가에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좌) 자유의 광장을 지키는 바위 경비대. 근엄해 보이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우) 301년에 세워진 산마리노는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으며 2명의 집정관을 두었던 전통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산마리노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 혹은 당신이 걸었던 길은 어디인가.
기차가 이탈리아 리미니역 플랫폼에 다다르면 저 멀리 티타노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 앞에서 산마리노행 버스를 타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국경선의 표지판을 지나 10여 분 뒤 산마리노의 본격 여행이 시작되는 성벽 바로 아래까지 데려다준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느낄 수 있다. 불과 해발 700여m 높이에 부는 시원한 산바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푸른 평원을 감상하며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산 프란체스코 관문을 통과해 50여m를 오르면 곧 산마리노 의회가 있는 자유의 광장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는 ‘바위 경비대’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군인들이 의회를 지키고 서 있다. 조용히 다가가 옆에 서면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여기저기 나 있는 골목길을 따라 계속해서 오르다보면 티타노산 제1의 요새인 과이타에 이르게 된다. 3개 요새가 있지만 개방되는 곳은 제2 요새 체스타를 포함한 두 곳뿐. 이 모두를 돌아보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이라도 한나절 걷기 좋은 산마리노 길
산마리노에서 꼭 즐기거나 느껴야 할 것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즐기고, 느끼고, 가져왔나. 7월 중순 닷새 동안 산마리노는 중세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골목골목 중세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닐고, 자신의 키보다 긴 칼을 부딪치며 중세 기사들이 칼싸움을 벌인다. 그들은 산마리노를 쳐들어오는 이탈리아인들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조상들의 전투를 재연한다. 그런가하면 광장 곳곳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들 모두는 산마리노 자원봉사자들이다.

목마른 아이들에게는 시원한 수박 한입 물리고 중세의 장난감을 쥐어준다. 밤이 깊도록 광장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중세의 축제를 즐겨야 한다. 축제의 백미는 역시 축제 마지막 날 벌어지는 석궁대회. 산마리노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인접 도시 대표 팀들 간의 시합으로 선수들은 단 한번의 기회를 살려 3cm의 과녁 중앙을 정확히 맞히고 싶어 애를 쓴다.

(좌) 산마리노 구석구석 중세 분위기가 물씬 (우) 밤이 깊도록 화려한 중세의 축제는 계속된다
산마리노를 걸을 때 주의할 점을 귀띔한다면? 우리는 여행을 간다고 하면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간다. 하지만 서유럽인들은 이와 더불어 대개 정장 한 벌씩을 가지고 다닌다. 밤이 되면 드레스로 갈아입고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그날만큼은 화려한 음식으로 한껏 분위기를 즐긴다. 똑같이 주어진 여행시간이라도 어쩐지 그들은 그 시간을 최대한 즐긴다. 지금 여행 가방을 꾸리는 중이라면 일회용 컵라면은 당장 빼버리고 가벼운 정장을 한 벌 챙기자. 그래서 소중한 여행 동반자에게 근사한 시간을 선물하자.

티타노산을 중심으로 위치한 산마리노는 과이타 요새 정상에 서면 경계선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도시국가다.
여행의 유형에 따라 여행자들을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고운 모래 해변에 선크림을 바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여행자와 산을 오르거나 신나게 자전거를 타면서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 부류, 그리고 컬처 벌처(Culture Vulture) 즉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이색적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부류다.

PD라는 직함으로 해외에 다니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즐기는 신세는 못되고, 자연히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가며 최대한 돌아다녀야 한다. 다행히 적성과도 맞다. 걷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광에 고동치는 나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그 자리, 그 시각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라노와 피렌체 사이, 볼로냐가 주도인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na) 사람들을 이탈리아에서는 뚱뚱한 사람들이라는 뜻인 '라 그라사(la grassa)'라고 부른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뚱뚱해질 때까지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음식의 본고장으로 일컫는 이탈리아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지역이다. 포강 유역을 따라 펼쳐진 평야에서 풍부한 농작물이 재배되고 가축 사육도 활발하며 아드리아해에 접해 해산물도 풍족하다. 모두의 배를 만족시켜주는 황금의 땅, 미각의 향연이 펼쳐지는 미식가들의 천국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식재료도 대부분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먼저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giano Reggiano) 치즈가 있다. 파르미자노 레자노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도 등장할 만큼 1300년의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치즈다. 파르마(Parma)와 레조에밀리아(Reggio-Emilia), 두 도시에서 생산되어 '파르미자오 레자노'라는 긴 이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어지고 있다. 원칙에 따라 관리·사육한 젖소의 신선한 젖에 소금을 첨가해 응고시킨 후 2년 정도 숙성시킨다. 커다란 원통 모양으로,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치즈만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다. 무게가 30㎏이 넘는 치즈 한 덩어리의 가격은 약 500유로. 한국에서는 200만원을 호가한다.  

흔히 '파르메산 치즈'로 불리며 피자나 파스타에 뿌려 먹는 가루 치즈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치즈는 '부엌의 남편'이라 불릴 만큼 이탈리아인들이 애용하는 식탁의 필수품이다. 파르마의 치즈 공장에서는 예약을 하면 매일 아침 전문 가이드와 함께 신선한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와 리코타 치즈 만드는 과정을 견학할 수도 있다. 스페인의 하몽과 함께 '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프로슈토 디 파르마(Prosciutto de Parma)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름 그대로 파르마가 본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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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믹(balsamic) 식초는 모데나(Modena)를 대표한다. 이 지방의 포도로 전통적인 기법에 따라 식초를 만들어야 한다. 발사믹은 이탈리아어로 '향기가 좋다'는 의미인데 모데나의 많은 가정에서는 아직도 식초를 직접 만든다. 시내에 들어서면 숙성된 발사믹 식초의 향기가 봄날의 꽃향기처럼 넘쳐나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가 더욱 충만해진다. 

오랜 숙성이 필요한 발사믹 식초 중에서도 25년이 넘은 것은 '엑스트라베치오(extravecchio)'라 불린다. 

볼로네제 스파게티로 알려진 미트소스 파스타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이름은 '탈리아텔레 알라 볼로네제(Tagliatelle alla Bolognese)'. 미국에서 유행시킨, 넉넉한 토마토 소스에 간 고기를 넣은 스파게티와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탈리아텔레가 스파게티보다 훨씬 두껍고 넓적하며 라구(Ragu)라 불리는 고기 소스도 토마토보다 고기가 많다. 느끼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전 세계 어느 문화권 사람이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볼로냐를 대표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토마스 만이 앉아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완성했던 카페 ‘플로리안’이 여전히 남아있는 도시, 달이 차오르면 물이 도심에 출렁이는 도시. 낡고 오래되고 아름다운 도시 베니스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

features editor KIM EUN HEE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여행을, 관광보다 관찰을 좋아한다. 낯선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을 사랑한다. 낡고 오래된 것을 아낀다. 특히 100년쯤은 기본인 오랜 건축과 장소, 무엇 앞에서는 들여다보고 만져본다.

산 마르코 광장 입구.

베니스의 지붕은 전부 붉은색이다.

베니스의 흔한 일상 풍경.

자동차 대신 보트가 ‘주차’돼 있다.

전망대가 있는 산 마르코 종루.

만조인 ‘아쿠아 알타’ 때의 광장. 도심에 물이 사람 무릎까지 차오른다.

베니스 본섬과 마주한 산 클레멘테 섬의 호텔.

약 16시간의 비행을 거쳐 도착한 여행지. 유럽의 관문인 이스탄불에서 한 번 경유해야 했지만 촘촘하게 안배된 터키항공의 스케줄 덕분에 직항으로 비행해 온 듯 산뜻하게 맞이한 타국은 주위를 가늠하기 힘든 늦은밤이었다.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할 새도 없이 마중 나온 호텔 직원과 함께 공항을 나섰다. 조금 가야 한다며 싱긋 웃는 그와 5분여 정도 걸었을까? 호텔로 향하는 교통편을 타기 위해 도착한 남다른 정류장을 보고 나서야 내가 어디에 당도해 있는지 실감했다. 바닷물에 출렁이는 선착장이 정류장인 이곳,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선 보트를 타야 하는 이곳은 ‘물의 도시’ 베니스였다.

다음날 아침, 베니스 본섬과 20여 분 거리인 산 클레멘테 섬의 호텔 마당에서 마주한 베니스의 풍경은 여느 섬나라와 달랐다. 분화구 위, 파도를 피해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듯한 섬들과 달리 베니스는 그 몸을 쭉 펼쳐놓은 듯 막힘이 없었다. 보트를 타고 본섬에 다가갈수록 물 위를 유랑하듯 떠 있는 도시의 위용이 가까워졌다. 브래들리 쿠퍼를 닮은 보트 기사는 베니스에 처음 왔는지 물었다. “베니스는 원래 석호였어요. 침략해 오는 훈족을 피해 이탈리아 본토인들이 도망와 물 위에 말뚝을 박고 흙을 부어 만든 땅이죠.” 1500여 년 전인 567년의 일이다. 자연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마련한 토대, 그 위에 쌓아 올린 역사와 문화. 베니스에 대해 곤돌라 밖에 몰랐는데. 보트에서 내려 베니스를 디딘 발 아래가 아득해졌다.

베니스 본섬 여행의 시작이자 중심은 산 마르코 광장이라 해도 무방하다. 베니스를 다스린 총독들의 공식 주거지인 두칼레 궁전과 성 마르코 대성당 등 베니스의 정치, 종교, 문화의 상징물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광장 입구에는 대문처럼 기둥 두 개가 높이 솟아 있는데 이곳 터줏대감들은 두 기둥 사이를 지나가면 재수없다고 여긴단다. 사자상인 기둥은 베니스의 수호 성인 마르코의 상징이고 그 옆의 기둥은 마르코에게 영광을 빼앗긴 과거의 수호 성인 성 테오도르 상이라서 그 사이를 지나면 테오도르의 저주가 따른다는 것이다. 미신에 코웃음 치며 기둥 사이를 피해 광장에 입성했다. 탁 트인 보통의 광장과 달리 3면이 ‘ㄷ’자 형태의 석조 건축물로 둘러싸인 광장은 과연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극찬할 만했다. 비잔틴 양식과 르네상스 건축양식이 뒤섞여 화려한 궁전과 성당을 마주하고 있는 광장에는 노천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베니스의 상인들, 여행자들의 활기가 일렁거렸다. 돌아보면 일정 중 하루는 산 마르코 광장에 종일 앉아 있어도 좋을 걸 그랬다. 괴테와 프루스트, 찰스 디킨스가 앉아 커피를 마셨다던 ‘카페 플로리안’에서는 턱시도 차림의 음악가들이 악기를 연주했고, 과거 베니스의 부를 자랑하고자 금박으로 장식한 궁전은 햇빛에 반짝거렸다. 해가 지면 영화처럼 모든 불이 탁 켜지던 순간도, 여행 마지막 날 밤 우연히 겪은 ‘아쿠아 알타(만조)’의 경이로움도, 산 마르코 광장이 선사한 인생의 기쁨이었다. 광장에서 출발해 찾아가야 할 다음 본섬 여행지를 추천하자면, 없다. 베니스 본섬에 첫 번째로 놓인 다리 리알토, 나무로 만들어진 아카데미아 다리, 중세 회화미술의 정수가 담긴 아카데미아 미술관, 오페라의 종주국 이탈리아다운 화려한 극장 라 파니체, 그 앞에 자리한 유서 깊은 레스토랑이자 생선 요리가 기막힌 ‘앤티코 마티니(Antico Martini)’ 등 가봐야 할 명소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나는 베니스에서 단 한 번도 지도를 보지 않았다(사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 갈 때 한 번, 숙소로 돌아올 때 한 번 보기는 했다). 베니스의 명소들은 전부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다 만났다. 크고 작은 118개의 섬이 400여 개의 다리들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베니스 본섬은 어디로 가든 어딘가에 닿는다. 조밀하게 들어선 건물은 굽이굽이 골목을 이루고, 골목을 헤맬 때마다 베니스의 깊은 매력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걷다 다리가 아파 들어선 성당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고요해서 아름다웠고, 배가 고파 거리 상점에서 사먹은 조각 피자의 토핑은 알고 보니 정어리라서 뿜고 말았다. 우연히 마주친 빈티지 소품 숍에선 베니스 골목 풍경의 미니어처를, 베니스 유일의 비틀스 숍이라는 곳에선 ‘Hey Jude’가 흘러나오는 오르골을 샀다.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셨고(베니스의 에스프레소는 정말 맛있다), 서점에 들어가 읽지도 못하는 책을 후루룩 넘겨보기도 했다. 그러다 닿은 어느 박물관은 입장료가 너무 비싸 입구를 서성거렸지만. 이것이 여행이었다. 여행길에 지나쳐온 이 작은 공간들을 다시 찾아가라고하면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한국에선 지도를 보지 않으면 옆동네도 찾아가지 못할 정도로 길치니까. 하지만 12시가 되면 사라지는 곳에 다녀온 것처럼 베니스 골목 깊숙이 추억을 숨겨두고 온 기분은 나쁘지 않다. 베니스에서는 헤매어 보기를. 다시 갔을 때 다르게 마주하게 될 베니스의 얼굴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베니스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

editor 김은희

photo COURTESY OF bassani, FOTOTECA ENIT, SAN CLEMENTE PALACE KEMPINSKI VENICE, TURKISH AIRLINES

digital designer 오주희


인간에겐 누구나 욕망이 있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여 살게 되면서 이 욕망은 단순히 생리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화되었다. 즉, 욕망은 개인의 몸에서 시작하여 사회 구성원 간의 관계적 욕망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욕망의 단계 이론이 나온다. 20세기에 이름을 떨친 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가 말하는 욕망의 5단계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생리적 욕구에서, 안전에 대한 욕구로,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에서 자기존중의 욕구로, 급기야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길 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예를 본능적으로 존중한다. 그것 때문에 결국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냥 눈 딱 감고 잠시 비루함을 참다 보면 곧 잊어버릴 텐데,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인간욕망 중 위의 4단계 혹은 5단계 욕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사태라 할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욕망, 비석과 개선문을 낳다

그런 이유로 동서고금의 문화는 사람들이 큰 명예를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알리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당대에 알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자손손 후대에 이르기까지 알리고 싶어 하였다. 어떻게 하면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그 명예를 알게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내구성이 강한 조형물에 그 취지를 기록하는 방법이었다.

동서를 막론하고 사회적 명예는 여러 가지 업적을 통해 얻어진다. 그중에서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대단한 명예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장군으로 말미암아 한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전투에서 이겼다면 그 장군은 길이 이름을 남길 사람이다. 한 사회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거나 덕을 베푼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당대를 넘어 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칭송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조형물을 만들었다.

동양에선 이를 위해 주로 비석을 세웠다. OO대첩비나 OO승전비 혹은 OOO송덕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데 비석만 설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비석과 함께 비각을 설치하기도 했다. 열녀문의 경우는 남편이 죽었음에도 정절을 지켜가며 산 여인의 덕을 존숭하기 위해 집 주변에 지어진 것이다. 그것도 사실은 문 안에 비석을 넣고 비각을 만든 것이었다.

서양(로마)도 사회적 명예를 당대와 후대에 알리겠다는 생각에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그 방법이 동양과는 다를 뿐이다. 그곳에서는 거대한 석조 개선문(triumphal arch)이 세워졌다. 이것은 원래 전쟁에 승리한 장군이나 황제의 업적을 기리는 승전 기념문이었다. 그러나 개선문은 전쟁과 연결된 업적만을 기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한 경우나 한 지역에서 황제가 탄생한 경우도 세워졌다. 나아가 개선문이 순수한 송덕비 노릇을 한 경우도 있었다. 어떤 거부가 자신의 돈으로 다리를 놓거나 도로를 가설하면 그의 업적을 기리는 문이 도로에 세워졌다.

개선문은 역사적으로 로마제국이 만든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로마문명에 앞선 서양문명의 원조인 그리스에서조차 로마의 개선문과 같은 형태의 조형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선문이 오로지 로마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로마인들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보는 것도 정확하진 않다. 로마인들에게 기술문명을 전수시킨 에트루리아인들은 도시의 입구에 잘 조각된 아치형 문을 설치했다.

기원전 7세기 메소포타미아를 통치한 바빌로니아에는 네브카드네자르(구약 성경에 나오는 느브갓네살) 왕이 만든 이슈타르문은 바빌론 왕조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바빌론성 입구를 장식했다. 이런 주변 문화의 영향으로 로마는 언젠가부터 개선문을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의 이슈타드 문, 신바빌로니아의 왕 네브카드네자르가 만든 바빌론 성의 문이다. 이것은 그냥 문이 아니다. 왕과 왕국의 권위를 기리는 문이다.

ⓒ 박찬운

아우구스투스, 개선문에 황제의 위엄을 더하다

로마의 개선문은 공화정 시대에 이미 일반화되었다. 공화정 시절 전쟁에서 승리하면 공을 세운 장군은 승리자로서 인정되어 승리를 기념하는 조각상이 들어간 아치형 조형물을 스스로 만들었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을 꺾어 로마를 위기에서 구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카피톨리노 언덕에 개선문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화정 시절의 개선문 흔적은 지금 찾을 수 없다.

로마제국의 개선문은 제정 이후 그 의미나 설치 절차가 크게 바뀌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 스스로 개선문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오로지 황제만이 그것을 설치할 수 있는 것으로 제도를 정비하였다. 이 말은 개선문이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 개인의 사적 치적물에서 국가가 관장하는 공적 기념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제정 이후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리는 개선문을 만드는 경우라도 그것은 장군 개인 기념물이 아니라 원로원의 승인 아래 황제가 세우는 국가적 기념물이 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로마나 과거 로마제국의 주요 도시에서 보는 모든 개선문은 제정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포로 로마노, 이곳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대부분 땅 속에 있었다. 오른 쪽에 티투스 개선문이 보이고 그 뒤로 콜로세움이 보인다.

ⓒ 박찬운

로마에 가면 시내 한가운데에 '포로 로마노'라는 로마유적지가 있다. 카피놀리노 언덕이나 옆의 팔라티나 언덕에 올라가서 그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 전경을 볼 수 있는데 비록 무너진 제국의 유적지이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한다면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수도가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다.

거기엔 신전이 있고, 공회당이 있고, 사람들이 활보하던 거리가 있으며 시장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두 개의 개선문이 눈에 들어온다. 카피톨리노 언덕에 붙어 있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과 맞은 편 콜로세움 쪽에 있는 티투스 개선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포로 로마노 유적은 아니지만 티투스 개선문 너머로 콜로세움과 함께 서 있는 개선문이 있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다.

개선문의 모양은 한 가지가 아니다. 로마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위의 3개인데, 그 중 티투스 개선문은 아치가 하나이고, 나머지 두 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아치가 3개이다. 이외에도 리비아의 렙티스 마그나에 있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과 같이 4면에 아치를 하나씩 배치하여 만든 사각 4면 개선문도 있다.

로마제국의 개선문은 통상 그 표면에 여러 장식을 넣어 만들었다. 전면을 보면 대리석 기둥이 아치 양쪽에 장식되어 있고, 아치 상단에는 승리자의 업적을 기리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치의 옆 표면에는 여러 가지 부조가 붙여져 있는데 주로 군대의 행진, 승리자의 역할과 업적을 묘사한 그림, 적으로부터 노획한 무기 등이 묘사되어 있다.


무릇 어느 한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고정관념이 깨지기도 한다.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도 그런 곳 중 하나이다. 

 흔히들 '이탈리아' 하면 거대 고대 도시 유적과 프레스코 벽화, 고색창연한 교회 등이 잔상으로 떠올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이탈리아의 전부가 아니다.

연중 알프스의 만년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차가운 빙하수가 모여든 호수에는 동화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내륙으로 파고들면 광활한 구릉지대에 와이너
리가 이어지고, 신선한 치즈를 생산하는 소떼가 초지를 뛰논다.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또 다른 속내이다.

 피에몬테의 자연 속에서는 미식의 본향, 이탈리아의 저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멋과 맛이 한껏 담겨 있다. 이른바 '라 돌체 비타', 한가롭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달콤한 인생'의 터전. 그곳이 바로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이다.

< 피에몬테(이탈리아)=글ㆍ사진 김형우 기자 hwkim@sportschosun.com>

만년설-호수-와이너리-목장…'동화의 나라'에 빠지다
역사-동계올림픽-영화의 도시 토리노, 자동차-와인-문화관광산업 한눈에
 

◇피에몬테의 걸작품, 알프스 산자락 아래 스트레사 지역 마조레 호수위에 떠 있는 작은 섬 벨라에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캐슬이 자리하고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 마치 수반위의 꽃꽂이 작품처럼 걸작이 세워져 있다.
 < 피에몬테의 네이쳐& 섬씽>

  여행하기 좋은 때가 왔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남부 유럽의 경우 여름철은 살인적 더위가 이어져 지금 부터가 떠나기 적당한 시기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찾기 좋을 만한 명소가 있다.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알프스산맥 자락에 위치한 피에몬테는 산과 호수가 빚어내는 빼어난 절경에 이탈리아 명품와인과 토속 별미를 맛볼 수 있는 미식기행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우리와 자연적 환경이 비슷해 봄이면 양귀비와 민들레, 라벤다가 뒤덮이고 가을이면 와이너리에 알록달록 가을빛깔이 내려 앉아 화사하고도 은은한 매력을 발산한다.

  겨울 휴양지로도 모자람이 없다. 동계올림픽(2006년 토리노)을 치른 피에몬테 지역은 다양한 스키 슬로프를 지녀 스키마니아들의 천국으로도 불린다.

 
 ◆토리노& 사보이왕궁

  피에몬테의 중심도시 토리노는 역사의 향취가 물씬 배어나는 곳이다. 로마처럼 번성하지는 못했지만 18세기 사보이왕국의 수도로 도심 곳곳에 고풍스런 건물과 궁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토리노는 '토리노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는 관광산업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피아트 자동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적 자동차 공업도시의 명성에 덧붙여 이탈리아 북부 문화관광산업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프랑스 인접 도시로, 이탈리아 영화보급의 중심지 역할도 하고 있다. 해마다 늦은 가을이면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영화의 도시답게 '시네마뮤지엄'은 토리노의 랜드마크격으로 문화 중심지로도 통한다.

  토리노 여행의 시작은 센트럴 광장에서 출발한다. 광장에 있는 사보이왕국의 궁전에 들어선 박물관을 둘러보고 2층 시티투어버스에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토리노는 유럽의 오래된 도시가 그렇듯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옛 건물이 잘 보존돼 있다. 17,18,19세기 빌라지역이 물 흐르듯 연결돼 있는가 하면 신구 건축물의 조화도 돋보인다. 1시간 남짓 시티투어버스투어를 마치고 다운타운의 커피숍을 찾아 토리노의 명물, 초콜릿을 섞은 코코아커피 '비체린' 한 잔을 마시면 토리노의 향취에 더 진하게 빠져 들 수 있다.

  토리노의 중심으로는 포 강이 흐른다. 강변에 바와 커피숍이 들어 서 있는 등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포 강은 규모가 파리의 세느강과 흡사하다. 이곳에도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는데, 시설은 세느강의 것만 못하다.

  흔히 이탈리아 여행을 떠날때 쇼핑은 밀라노, 볼거리는 나폴리, 이색체험은 베니스, 미식과 와인은 토리노를 들먹인다. 토리노는 미식의 중심지 답게 이털리아 음식을 한 곳에서 섭렵할 수 있는 이색 공간도 갖추고 있다. 토탈미식공간 'EATALLY'가 그곳으로 식재료와 음식, 와인을 한꺼번에 쇼핑하며 맛볼 수 있다.

  토리노의 또다른 명물은 링고토. 옛 피아트자동차공장을 리노베이션해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곳이다. 옥상위 둥그런 공모양의 버블 피아노 연주장, 쇼핑몰, 르메르디앙호텔, 레스토랑 등이 입주해 있고, 옥상에는 드라이빙테스트를 했던 스피드웨이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룬 사보이 왕가의 로얄 레지던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토리노 인근 곳곳에 자리한 궁전 중 라코니지성은 사보이왕가의 취향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 라코니지성은 우선 규모부터가 웅장하다. 180ha의 부지에 길이만도 3km에 이른다. 18세기 건축가 루이스 빅터가 만들었는데, 사보이왕가가 사냥을 좋아해 로비에는 각종 동물 형상의 부조가 세워져 있다.

  궁전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이다. 3000여 점의 그림과 초상화가 걸려 있는가 하면, 시계 수집이 취미였던 한 여왕의 시계컬렉션도 볼만하다. 또 사진작가인 엘레나 몬테네그로 여왕의 19~20세기 사진물도 함께 전시돼 있다.

  왕궁 인근에는 보태니컬가든으로 꾸며진 조류센터가 있다. 두루미, 황새, 오리, 원앙 등 다양한 조류 무리가 초화류 속에 파묻혀 있다.


 ◆'라 돌체 비타' 중세도시 살루쪼 & 트레킹 명소 '발마보브스'

 ▶살루쪼

  피에몬테 지역중에서도 '라 돌체 비타', 한가롭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중세도시가 잘 보존된 살루쪼와 그 광장이다. 토리노 남쪽, 슬로시티 브라 인근에 자리한 살루쪼는 삶의 격을 한차원 높일 수 있는 공간으로 정평이 나있다.

  고풍스럽고 안락한 집에서 자고 일어나 조용한 문화유적의 도시를 산책하다 쇼핑을 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음악, 공연 등 문화생활을 즐긴다. 바로 살루쪼에서 가능한 생횔 패턴이다.

  살루쪼 광장에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콧수염이 멋진 노년의 신사부터, 유모차를 끌고 나온 미시주부 까지. 이른 아침 살루쪼 광장은 진한 커피향훈 속에서 느긋하게 시작됐다. 고풍스런 건축물을 구경하다 시선을 멀리 돌리니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알프스 산자락이 눈에 들어 온다.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그림, 영화사 파라마운트를 소개하는 배경 화면의 산이 바로 살루쪼 인근의 알프스산자락이다.

  중세도시 살루쪼는 프랑스로 넘어가는 전략 요충지였다. 중세 고딕스타일의 건물에 바로크 스타일을 도입해,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일궈놓았다. 특히 이 지역은 수공예와 목공예가 발달해 세계 최고급 하프 생산지로도 통한다.


◇발마 보브스의 '스톤 하우스'

 ▶ 이탈리아식 올레길 '발마보브스'




우리의 올레길, 둘레길과도 같은 곳이다. 발마 보브스는 정감넘치는 트레킹의 명소다. 이탈리아는 유럽이면서도 풍광도 우리와 비슷한 게 많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조차도 순박하다. 이국적 건물만 빼면 영낙없이 우리네 고향마을 같다.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이방인을 따라 나서는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도 정감 있다. 사진 한 방에 이내 마음을 연 아이들은 연신 묘기를 선보이며 친근감을 표한다.


 

마을을 지나 뒷산에 오르는 5km 남짓 트레킹 코스는 점판암 지붕에 크렘베리꽃, 익모초, 석류, 산딸기 등 이탈리아 농촌의 풍광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주인 떠난 빈집 벽에 걸린 농기구며, 낡은 구두, 자전거 등이 1950년대 이전의 유럽 농촌 풍광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영화 속에서나 만나 봄직 할 느릿한 전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이 길은 '다빈치 투어 코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곳에서 돌을 구해다가 조각작품 만들었기 때문이다. 트레킹의 종착지에는 이곳의 명물, 19세기에 지은 돌집이 있다. 거대한 바위 밑에 돌을 주워 집을 짓고 살았다.
 



◇마조레 호수
 ◆'마조레 호수'에 떠 있는 그림 같은 섬 '벨라'

알프스 산자락 아래 스트레사 지역에는 멋진 경관의 호수가 있다. 마조레 호수가 그것으로 호수 속의 섬투어는 최고 인기 관광 코스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에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캐슬이 자리하고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 마치 수반위의 꽃꽂이 작품처럼 걸작이 세워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섬이 '이솔라 벨라'. 벨라 섬이다. 뭍에서 유람선으로 10분 정도면 닿는다.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건축 작품인 보로메오가문 소유의 여름 별장으로, 17세기에 세워졌다. 바로크양식의 궁전은 럭셔리 룸을 비롯해 외부에는 층마다 다른 레벨의 식물군을 식재해 이탈리아식 가든을 가꿔놓았다. 7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건물은 각기 다른 대리석 조각으로 궁전바닥을 장식한 일명 '베니시안 테라쪼' 양식의 모자이크가 특징이다. 

섬 윗부분에 조성된 가든은 그리스신화를 재현해놓은 듯한 조각상으로 빼곡하다.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을 비롯해 하체는 말, 상반신은 사람인 켄타우로스, 일각수를 지닌 유니콘, 제우스신과 주피터 등 다양하다. 

이밖에도 마조레 호수에는 어부들의 섬 '페스카토리'가 또다른 명물로 자리하고 있다. 물고기처럼 섬이 길쭉한 모양인데, 중심 폭이 100m 길이가 300m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6명의 어부가 멸치만한 물고기 트라우트 페르치고를 잡고 있다. '어부의 섬'이라 생선이 많아서 일까. 이 곳은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다. 섬을 나와 스키장 곤돌라를 타고 '모테로나산' 정상에 오르면 알프스의 준봉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피콜로 라고'의 주방.
 ◆피에몬테 미식기행

이탈리아 농촌은 풍요의 땅이다. 너른 경작지에 좋은 기후와 강렬한 태양, 그런 천혜의 자연에서 풍요로운 소출이 이뤄진다.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열심히, 맛있게 먹는 '미식가 국민'이 배후에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이탈리아의 또다른 저력이 아닐까 싶다. 

피에몬테는 너른 평원에서 소를 많이 사육해 치즈와 고기를 활용한 음식이 발달해 있다. 또 크림,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도 유명하다. 특히 이 지역은 겨울이 길어 주민들이 단 초콜릿을 많이 먹는다. 뿐만 아니라 알프스 산자락 아래에는 물이 풍부해 쌀도 많이 재배한다. 때문에 리조또도 발달했다.

피에몬테 음식의 맛을 내는 기본 식재료가 있다. 엔초비, 마늘, 올리브오일이다. 우리가 김치 등을 담그며 마늘, 멸치젓을 즐겨 먹듯, 이탈리아 피에몬테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식습관을 지녔다. 

피에몬테 음식의 특징은 크림, 치즈, 고기가 듬뿍 들어간 대신 전반적으로 짠 편이다. 스파게띠, 아뇨로또도 짜다.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오랜 관습에서 비롯됐다. 중세에는 소금이 비쌌다. 때문에 소금의 소비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투어 짜게 먹었다.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 습관처럼 굳었다는 게 이탈리아 요리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탈리아 음식은 프랑스 것에 비해 격식과 데코레이션이 많지 않다. 대신 신선한 신토불이 식재료를 바탕으로 맛을 내는 건강식에 가깝다. 피에몬테 음식이 이 기준에 충실한 편이다. 

전형적인 토리노 브레드로 롱스틱 타입의 '그라니시', 매운 것은 아니지만 마치 우리의 떡볶이를 연상케 하는 쫄깃한 파스타 '료키'. 소고기편육에 참치소스를 곁들인 '비켈로 또나또', 소고기 육회에 해당하는 '바투타' 등 맛난 별미가 즐비하다. 

이른바 세계 고급 레스토랑의 상징격인 미슐랭 스타. 이탈리아에서도 피에몬테 지역에 가장 많다. 피에몬테의 대표급 미슐랭스타 레스토랑으로는 '피콜로 라고'를 들 수 있다. 풍광좋은 스트레사지역 호반에 자리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다. 주방 셰프 중에는 일본인도 있는데, 전체 요리에 일본식을 접맥, 덴뿌라와 딸기소스 등 퓨전 스타일의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마조레 호반에 자리한 명품 호텔 '그랜드 호텔 마제스틱'도 피에몬테 요리의 진수를 선보인다. 연중 4~10월에만 문을 여는 호텔의 셰프는 일본인 가쪼다카 마루모토 씨. 히로시마 출신의 그는 전채로 송어 타르타르, 토마토와 앤초비소스를 곁들인 리조또 '카나롤리'를 선보이는데, 이 지역 굵은 입자의 쌀을 써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피에몬테는 와인도 유명하다.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등 유명 와인브랜드도 이곳 상품이다.


◇리조또
그랜드 호텔 마제스틱(메이제스틱)

마조레 호반에 자리한 명품 호텔 '그랜드 호텔 마제스틱'도 피에몬테 요리의 진수를 선보인다. 연중 4~10월에만 문을 여는 호텔의 셰프는 일본인 가쪼다카 마루모토 씨. 히로시마출신의 그는 전채로 송어 타르타르, 토마토와 앤초비소스를 곁들인 리조또 '카나롤리'를 선보이는데, 이 지역 굵은 입자의 쌀을 써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피에몬테는 와인도 유명하다.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등 유명 와인브랜드가 이곳에 몰려 있다.


◇에스프레소 커피


◇그라니시와 브레드

◆여행메모

 ▶가는길=인천공항에서 밀라노 말펜사공항까지 11시간 30분 소요. 알이탈리아항공이 대한항공과 코드셰어 주 3회(수-금-일요일) 운항.

 말펜사공항에서 토리노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이 걸린다. 밀라노~토리노간 고속열차는 1시간 소요. 일반 열차는 1시간 55분 소요.

 ▶여행정보=이탈리아 관광청 한국사무소(www.enit.or.kr), 이탈리아 정부관광청(www.italiantourism.com), 피에몬테 주 관광부(www.centro estero.org)
토리노관광청(www.turismotorino.org)


흔한 맛 기행일지라도 뻔한 맛 기행문을 쓰지는 말자. 생각했다. 이탈리아의 역사부터 줄줄이 읊어야만 하는 교과서 같은 기행문 역시 되지 말자. 생각했다. 내가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시야를 텄듯이 새로운 모습의 이탈리아를 담아내고자 한 글의 의도를 먼저 밝히고 싶다. 이탈리아의 거대한 역사를 알기도 전에 이탈리아가 전하는 맛에 충성을 맹세한 후 피자와 파스타 등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고 맛 볼 수 있는 요리사의 길을 걷던 내가 동경의 나라 이탈리아에 입성, 지금부터 이 나라가 지닌 식(食,eat)의 색깔이야기가 유쾌하게 시작된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음식은 역사이고 문화이며, 생활이고 삶이다. 식(食,eat)의 즐거움을 아는 민족이기 때문에 여행자들 역시 이탈리아 식(食,eat)을 즐겨야 그들의 생각과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그들의 음식과 생활 등의 문화를 알기위해 굳이 책을 찾고, 인터넷 검색엔진은 쉴 새 없이 가동시켜 머리로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피자(Pizza), 파스타(Pasta), 리소토(Risotto) 만으로 이탈리아 음식을 다 안다 자만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지만, 이런 음식이라도 당신에게 거부감 없이 익숙하다면 이미 당신은 지중해 따뜻한 햇살을 품은 이탈리아의 매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 것이다. 입 안의 행복은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큰 마법이다.

1 이탈리아 재래시장 과일들은 빨갛거나 노랗거나 그 색의 구분이 선명하다. 지중해성 기후가 낳은 천연색색 찬란한 보물들이여! 2 이탈리아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점 피제리아(Pizzeria) 3 기본 10종류 정도의 피자를 구비하고 있는 피제리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피자는 단연 생모짤렐라치즈와 토마토, 바질로 만든 마르게리타 피자.
맛, 포만감, 합리성 3박자 갖춘 한 장의 악보
16시간의 오랜 비행,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포크를 집어 든 맛 모를 3번의 기내식, 건조한 비행기내 공기로 인한 최악의 컨디션, 이런 몸을 이끌고 로마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밤 10시 남짓. 사위는 컴컴했고 사방에서 들리는 각국의 언어에 귀는 혼잡했다. 누구나, 또 그 누군가가 어디서든 그렇듯, 낮선 땅에서의 이방인은 여행을 준비하던 그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우왕좌왕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눈과 코는 행복했으니 공항 내 드문드문 자리한 스낵바(snack bar)에 있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피자모습과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뿜어내는 익숙한 피자냄새가 그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피자냄새를 익숙한 한국의 냄새로 착각할 만큼 이탈리아 음식이 우리에게 깊숙이 베어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이탈리아는 어느 공간에서도 피자를 판매하는 피제리아(Pizzeria)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흡사 떡볶이와 순대를 파는 분식점마냥. 이탈리아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가기 때문에(이탈리아는 건축, 역사, 음식, 유럽여행 등 다양한 목적을 지닌 관광객으로 온 거리가 활기를 띈다. 편리하고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우려는 사람들부터 정통 이탈리아 코스요리를 먹으리라 작정하고 오는 사람들까지) 모든 관광객의 상황을 고려한 레스토랑들이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피제리아는 이탈리아의 명물이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탈리아의 도시도시를 관광하며 사람들은 그 시간 틈새틈새 ‘눈만 즐거우면 될소냐 입도 즐거워보자’ 현지인과 관광객이 혼재되어있는 피제리아를 들락날락거리기 바쁘다. 다양한 토핑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피자들, 신선한 채소만큼은 아낌없이 넣어 만들어내는 담백한 포카치아 샌드위치. 한 입 베어 물면 아! 이것이 이탈리아의 맛이로구나.

바쁜 시간 선택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Fast food)지만 절대 정크푸드(Junk food)는 아닌 음식들. 단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 비해 양과 맛은 관광에 지친 여행자에게 약간 서운함으로 남는다.
빨주노초파남보 아름답게 비추네
토마토와 블러드오렌지(blood orang), 파스타 면과 레몬, 올리브, 허브와 다양한 젤라토(Gelato)와 와인. 무지개색 재료들과 음식들이 이탈리아를 아름답게 비추면 테이블 위 사람들의 손은 부단히도 바빠진다. 지중해성이라는 복 받은 기후 덕분에 이곳의 토마토는 새빨간, 당장 톡 터질 듯한 탱글함이 좋다. 피자건 파스타건 샐러드에도 메인요리에도 식욕을 자극하는 빨간 토마토는 그 어울림이 좋다.

겉은 푸르스름할지라도 이탈리아의 오렌지와 귤은 설탕의 단맛보다 더욱 단맛이라는 반전의 재미가 있다. 특히 과육이 붉은 블러드오렌지는 첫인상은 얼룩덜룩 피가 묻은 듯해 꺼려지지만 그 선입견 때문에 먹어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말 어리석다는 얘기를 들어도 하는 수 없다. 일반 오렌지보다 당도가 10배는 높은 블러드오렌지 맛은 신(新)세계일테니.
우리나라에서는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만 사용하는 프레쉬 허브(Fresh Herb)(한 때 내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몸담고 있을 때 장마철과 한겨울에는 1KG에 10만원에 달하는 프레쉬 바질을 써야만 했다. 그 어떤 식재료보다 귀한 몸값 자랑하시는 허브들은 이탈리아레스토랑의 가장 큰 공신 중 하나이자 가장 큰 골칫덩이 중 하나이기도 하다.)가 이탈리아에서는 참 인심도 좋다. 피자 한 조각 한 조각에 바질 잎을 통째로 하나씩 놓아주기도 하니 말이다. 


달콤함과 쌉싸름함의 맛 대결, 과연 승자는?
이탈리아의 돌체(Dolce, 디저트)는 우리나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디저트 카페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짧게는 2코스, 제대로는 안티파스토-프리모피아토-세콘도피아토-돌체의 4코스를 거치는데 코스가 길던 짧던 돌체는 생략하지 않는다. 때문에 레스토랑에서는 자기 식당만의 대표적인 돌체를 한 두가지 정도 구비해 놓는다. 이탈리아 돌체의 간판 티라미수(Tiramisu)는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디저트 케이크. 국내 티라미수가 달콤한 맛이 지배적이라면 본토 티라미수는 달콤한 맛 뒤의 쌉쌀한 맛의 조화가 환상이다. 그릇에 케이크 시트를 넣고 에스프레스 1잔(30ML)을 그대로 붓는다. 그 위에 부드러운 치즈와 달콤한 코코아파우더를 올리면 끝. 간단한 과정에 비해 그 맛은 정말 이름 그래도 ‘나를 끌어 올려주는 맛’이다. 케이크 시트에 스며있는 에스프레소의 쌉쌀한 맛을 지나 양질의 마스카포네 치즈와 코코아파우더의 부드러운 단 맛을 만나고 나면 신기하게도 다시 처음의 커피 향이 입 안을 정리하고 나선다. 이래서 이탈리아인과 한국인을 포함 한 전 세계인들이 티라미수를 최고의 케이크로 꼽는구나, 절실하게 인정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달콤함이 좋은 젤라토와 쌉쌀한 맛의 절정 에스프레소(Espresso). 젤라토가 뭔지는 모른다 해도 ‘로마의 휴일’ 오드리헵번이 스페인 광장에서 먹던 아이스크림은 알 것이다. 에스프레소란 말이 생소하다하더라도 국내 바리스타 붐을 일으켰던 드라마‘커피프린스1호점’에서 주인공 고은찬(윤은혜)이 마시던 작은 잔에 들어있는 새까만 커피라고 하면 어느 정도는 아~ 할 수 있을 것이다.

1 정말 많은 종류의 젤라토. 하지만 이는 젤라토 판매가 점점 상업적으로 변하면서 낳은 폐해이기도 하다. 같은 초콜릿 맛 젤라토에 고추를 넣거나, 치즈를 넣거나, 민트를 넣어서 그 종류를 무한대로 불린다. 역시 돈 앞에는 장사 없다. 2 초콜라또 페페론치노(초콜릿과 고추 맛). 지금에 와서야 한 번 도전해볼 걸 아쉬움이 짙어진다. 이 젤라토 맛은 그럼 매콤달콤일까? 3 식후 즐기는 티라미수는 배가 불러도 꼭 먹어야만 하는 필수코스다. 그 이유는 먹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그 달콤쌉쌀함의 중독성때문. 4 두가지 맛 젤라토는 약 2유로정도. 어느 나라에서든 가장 안전한 맛은 딸기맛임을 이탈리아에서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탈리아 맛 기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대한 것 중 하나는 지중해 햇살 속에 하늘거리고 있을 올리브 나무를 만난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로마나 피렌체 등 대도시의 중심을 약간만 벗어나도 우리나라 은행나무처럼 늘어선 올리브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올리브 나뭇잎은 앞면과 뒷면의 색이 약간 차이가 져 바람이 불고 햇빛이 비치면 사라락 소리와 함께 나뭇잎의 색이 변해가면 반짝반짝 빛나는 신비로운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매일 재래시장에서는 갖가지 향신료와 허브에 재워 진 그린올리브와 블랙올리브 장사업자들을 볼 수 있다. 첫 맛은 짭조름, 하지만 중독성 있는 올리브의 맛은 이탈리아 음식의 감초로 손색없다. 입맛을 돋우고 기름진 입맛을 정리해주기도 하는 올리브 열매는 정말 엄지를 들어 올리게 만든다.

이탈리아의 중심도시 외곽에는 프랑스를 제치고 최고의 와인 생산국으로 떠오른 이탈리아답게 많은 와이너리(Winery)가 포도밭을 일구고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명성 높은 토스카나 주 끼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지역 와인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한다. 프랑스 와인이 최고고 보르도와 부르고뉴만 얘기하면 와인에 대해 조금 아는구나 치부되던 과거에 찬물을 끼얹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어쩜 이렇게 이탈리아는 알면 알수록 반전이 곳곳에 숨어있는 흥미로운 나라일까?

1 오전 11시부터 삼삼오오 모여드는 노천좌석은 그 어느 거리보다 더욱 활기차 보인다. 이것이 진정 인간광합성의 좋은예라 하겠다. 2 수퍼마켓에 즐비한 생파스타. 우리나라 대형마트에 산처럼 쌓여있는 쌀포대처럼 이탈리아에는 파스타가 넘쳐난다. 3 가장 이탈리아스러운 아침식사. 유명 이탈리아 커피브랜드 라바짜 에스프레소 한잔과 슈가파우더 듬뿍 뿌린 페스츄리 한조각. 페스츄리의 버터향과 에스프레소의 향은 그 궁합이 가히 놀랍구나!
젤라토는 이탈리아 정통 아이스크림이다. 자연에 가까운 맛을 구현하기 위해 과즙, 물, 설탕, 계란흰자 등을 주재료로 하며, 유지방 함량을 4~8%정도로 낮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탈리아의 대표 음식 중 하나다. 공기함유량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젤라토에는 쫀득한 식감이 살아있다. 여행객들은 하루에 한 번은 꼭 젤라토를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을 여행해도 모든 맛을 섭렵하지 못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젤라토다. 팔마라는 이탈리아 대표 젤라토 체인점에서는 고추 맛(Peperoncino) 젤라토를 판매한다. 짧은 여행객인 나는 차마 도전해보지 못했지만-1가지 맛의 젤라토 가격은 대략 1.5유로. 비교적 저렴하지 않은 가격의 젤라토에서 모험은 무모해보이기도 했다. 아마 고추 맛 젤라토는 여행객들이 가장 늦게 도전하게 될 맛이지 않을까?

이탈리아의 커피문화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맹목적이다. 이런 이탈리아인들에게 전 세계인이 맹신하는 소위 별다방, 콩다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탈리아인들은 출·퇴근길에, 식사 후에, 말 그대로 그냥 길을 가다가 카페(Caffe)에 들른다. 에스프레소를 시킨 후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신다. 주문에 30초, 에스프레소 추출과 서빙에 1분 30초, 마시는데 20초 정도다. 2분 안에 커피를 마시고 그들은 가던 길을 간다. 물을 마시듯 그들은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이런 이탈리아인들을 어찌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커피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생활이고 삶인 이탈리아인의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처음 했던 얘기로 돌아가 보자. 달콤함VS쌉싸름함 맛 승부 승자는? 이탈리아에서만큼은 無 . 승자는 없다. 이곳에서만큼은 젤라토의 달콤함도 에스프레소의 쌉쌀함도 티라미수의 달콤쌉싸름한 맛도 모두 최고의 맛이다.

(좌) 어느 카페든 이탈리아는 자체 로스팅 과정을 거친다. 이탈리아 카페가 100이면 100 모두 다른 맛의 커피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바로 이 로스팅. (우) 진한 악마의 유혹이라 불리우는 새하얀 컵 새까만 에스프레소의 도도한 자태는 마시지 않아도 그 진한 향을 느낄 수 있을것만 같다.

노천 문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그들만의 문화
이탈리아는 다 알다시피 반도국가다. 그 모양은 흡사 장화모양과 같다. 신발을 닮은 나라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예술가 기질이 넘쳐나는 듯 보였다. 국토의 모양과 선천적 기질을 연관 짓는 무리수를 둠에도 나는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 적어도 내가 다녀오고 겪은 그들은 그래보였다. 호랑이를 닮은 국토에 사는 우리 민족이 용맹한 기개를 지닌 것처럼. 이탈리아는 어디에나 노천 테이블이 깔려있다. 어떤 레스토랑은 내부 좌석보다 노천공간이 더 넓은 곳도 있을 정도다. 아직은 노천카페나 노천레스토랑을 하나의 멋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과는 다르게 이탈리아에서 노천 좌석은 하늘과 햇빛과 바람과 별을 벗 삼아 시간을 즐기는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식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고 사랑을 하며 인생을 즐긴다. 이것이 이탈리아다. 그냥 이 자체만으로 이탈리아는 충분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노천카페에서 토마토와 올리브오일이 듬뿍 들어간 샐러드를 시작으로 파스타와 피렌체풍 스테이크를 먹은 뒤 깔끔하게 에스프레소와 티라미수로 마무리하는 한 끼의 식사만으로도 이탈리아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버린 느낌이 든다. 이탈리아는 그런 곳이다.

<이탈리아 맛 기행>은 모든 길이 통한다고 하는 로마부터 물의 도시 베니스까지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의 소박하면서 풍부한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식문화 기행이다. 같은 식재료로 그 도시만의 특색 있는 식문화를 창조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식문화는 숱하게 거론되고 숱하게 들어도 항상 새롭고 흥미롭다.

거대한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의 심장, 로마(Rome)는 2011년 현재 어떤 음식이 테이블 위를 장식할까? 다음 편에서 그 테이블이 차려진다.


흔한 표현으로 로마를 이탈리아의 심장이라 말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속담은 로마를 설명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문구 중 하나이다. 지금 나 역시 이 문구로 한 줄을 채우고 있으니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식상한 표현일지라도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로마(Rome)라는 도시다. 이런 로마에서 기차로 2시간 반. 덜컹거리는 레조날레(Regionale, 과거 우리나라 통일호, 비둘기호 정도 등급의 저가열차) 허름한 좌석 한 켠에 앉아 이탈리아 외곽을 달리다보면 로마와 전혀 다른 도시를 만나게 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혁가 성 프란체스코의 일생이 담긴 아씨시(Assisi)는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정적이다. 하지만 이 정적함은 지루함과는 그 본질이 사뭇 다르다. 로마에서 맘껏 뛰놀던 심장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심장을 뛰게 하는 열정의 로마와 심장을 쉬게 하는 여유의 아씨시. 그 시간 사이사이 놓여있는 맛있는 식탁으로의 초대가 시작된다.

Intro. 흔히 일상에 지쳤을 때, 머릿속이 과부하가 걸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일 때,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니라 느껴질 때,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도피처를 마련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낯선 곳에 나를 버려두고 훌훌 털어버리겠노라. 그러나 정작 여행을 떠나면 비우기보단 하나라도 더 머릿속, 마음속 그리고 사진기속에 담아오려 애를 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애석해하지 말지어다. 이 와중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비우고자하는 여행이든 얻고자하는 여행이든 낯선 곳에서의 아름다운 식탁은 그 시간과 공간 사이사이에 항상 존재한다는 맛있는 사실.

모든 스타일의 총집합 로마
로마. 이탈리아의 수도, 콜로세오(Colosseo)의 위상이 숨 쉬는 곳,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로마의 휴일' 영화 촬영지. 이런 수식어들만으로 로마를 그려 본 나의 환상은 테르미니역(Stazione Termini) 밖으로 나선 직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나에게만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서울역이 노숙자의 천국이듯, 이곳 역시 집시와 불법노동자들의 집거지역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해가 빠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여행의 시작점이라 여겨지는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난 여행에 대한 전의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게 없어진 후였다. 이는 한국에서 너무 많은 기를 소진한 탓이었으리라.

자고로 여행이란 Data(정보)-Delete(삭제)-Reset(초기화)의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옳은 것 일진데 나는 어찌된 게 Data(정보)-Save(축적)-Overload(과부하)의 단계를 거쳤으니 말 다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런 나에게 테르미니 역의 노숙자와 흡연자들은 평생 동안 지켜왔던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을 약간, 아니 솔직히 그보다는 많이 사그라뜨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곳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다. 패션, 음식, 예술의 모든 스타일이 총집합한다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건 짧은 시간 내 몸만 바지런하다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도시라는 말이다. 다행이도 첫날 내가 느낀 로마의 이미지는 흔히들 겪는 첫인상의 오류였을 뿐, 로마(roma)는 역시 아모르(amor: ‘사랑’의 이탈리아어)였다.

1. 아침 시간은 비교적 한산한 ‘에스퀼리노 재래시장’ 2. ‘스페인 광장’ 중앙 가라앉는 배 모양의 '바르카챠 분수‘ 3. 밤이 되면 ‘베네치아 광장’은 빛이 이탈리아 국기를 그린다. 4. 로마의 명물 ‘트레비 분수’
도시전체가 박물관? 도시전체가 미슐랭맛집!
우리나라 경주의 관광코스가 판에 박혀있듯, 로마 역시 정해진 관광지와 관광 순서가 있다. 콜로세오를 시작으로 포로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을 이은 후 사람들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명소탐방을 시작한다. 진실의 입-베네치아 광장-트레비 분수-스페인 광장. 물론 나 역시 정해진 코스, 방향으로 로마를 눈에 담은 건 다른 여행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누구보다 그 도시의 재래시장을 탐닉했으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마트 답사로 마무리했다. 테르미니 역에서 가까워 한인민박 사장들이 즐겨 찾는 에스퀼리노 재래시장은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인심 좋은 상설시장이다. 시장상인은 나와 같은 동양여자는 이제 너무 익숙하다는 듯, 거리낌 없이 인사를 하고 자잘한 과일들을 시식하길 권한다. ‘그라찌에(Grazie,‘고맙습니다’의 이탈리아어)' 나는 그들에게 미소와 함께 이 한마디를 건넨다.

사람들은 로마를 두고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과 같다고 말한다. 물론 넓은 땅에 달랑 두 세 개의 돌기둥이 세워 있는 곳을 두고 과거 무슨무슨 신전이 있었노라며 관광지로 지정한 모습은 조금의 억지스러움이 느껴져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로마의 모든 레스토랑이 미슐랭맛집 이라는 건 인정! 그만큼 어느 음식점을 들어가든지 맛이 기본은 한다. 엔쵸비(Anchovy:멸치과의 작은 물고기를 우리나라 젓갈처럼 염장해 발효시켜 사용한다.)가 들어간 음식만 아니라면 로마 레스토랑의 거의 모든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 적당히 그러면서 상당히 잘 맞는다. 로마는 30분가량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기 때문에 육지임에도 불구하고 해산물 요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듯, 로마는 모든 식재료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면서 모든 스타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참 합리적인 미식의 도시다.

1. 얇은 도우 위에 방울토마토와 생모짜렐라 치즈, 향긋한 바질의 하모니. 12유로 2. 뇨끼를 만드는 <일 끼안띠> 요리사의 미소는 그들이 입은 새하얀 조리복보다도 환하다. 3. <일 끼안띠>의 초록색 간판 위 검은 닭 모양, ‘끼안띠 와인’을 닮은 듯 고급스럽다. 4. <일 끼안띠>의 등심 스테이크. 정말 꾸밈없는 한 접시지만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인 사람들에게는 간혹 정성 없어 보이기도 한다. 18유로 5. 라구소스라고 빨간 미트소스를 생각한다면 우리와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 불러 온 전화위복. 돼지고기 그대로의 맛이 굉장히 고소했다. 9유로 6. 토마토 소스에 버무려진 감자로 만든 뇨끼 파스타는 조랭이 떡을 씹는 듯 재미롭다. 9유로
"미션! 아름다운 쌩얼을 찾아라"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이탈리아의 식문화의 특징을 비교하자면 도시별로 나누는 건 딱히 똑똑한 방법은 아니다. 기다란 장화모양의 이탈리아 반도를 세 토막으로 뚝.뚝.뚝 끊어내자면 밀라노와 베니스를 포함한 북부지역, 로마와 피렌체를 둔 중부지역, 나폴리와 시칠리아가 있는 남부지역 이렇게 세 지역 되시겠다. 물론 도시별로 대표적인 요리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지역별로 비슷한 색깔의 식문화 양상을 보인다. 로마와 아씨시는 이탈리아 중부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이탈리아 중부지역 요리는 맛이 진하고 강한 소스를 사용하는 요리가 대표적이다”라고 흔히 설명된다. 하지만 내가 겪은 로마의 레스토랑은 매장 인테리어부터 요리의 맛까지 참 소박하고 꾸밈없는 모습이었다.

로마 트레비 분수 근처 <IL CHIANTI:일 끼안띠>라는 레스토랑은 마치 중세시대를 표현하듯 초록 넝쿨에 뒤덮여 있다.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에게 그 인지도가 꽤 높은 곳이라는 정보를 접수 후 방문한 곳이기에 맛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18유로 약 2만8000원 정도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Bistecca di manzo alla Buttera'는 쇠고기등심 스테이크다. 모양은 허술해보여도 그 맛은 좋다. 얇아 보이지만 적당한 식감이 느껴지는 스테이크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생파스타 요리를 흔히 볼 수 있다. 여러모로 편리성이 강조된 건조파스타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레스토랑마다 하나의 생파스타 요리는 반드시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맛 본 라구(Ragu)소스 파스타와 토마토소스 뇨끼(Gnocchi)파스타는 내가 가진 생파스타에 관한 편견을 뒤집기 충분했다. 생파스타는 자칫 잘못 만들면, 밀가루 냄새와 달걀 비린내가 날 수 있지만 <일 끼안띠>를 비롯해 이탈리아에서 먹은 생파스타는 쫄깃한 식감이 두드러지며, 두꺼운 굵기에도 불구하고 소스와의 어우러짐이 뛰어나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이런 요리를 접하고 나면 항상 이 요리의 뒷모습이 궁금해진다. 있는 영어 없는 영어 다 동원해서 어렵사리 들어간(솔직히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말에 그들은 흔쾌히 이방인인 내게 레스토랑의 가장 은밀한 장소를 활짝 열어주었다.) 주방은 한국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동선은 불을 사용하는 파스타 파트와 오븐을 사용하는 피자 파트로 나뉘어져 있었고, 파스타 파트 한 쪽에서는 뇨끼를 만드는 요리사의 손길이 분주했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고 말을 시키는 낯선 여행자이지만 그들은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반겼다. 몇 분전, 내가 먹은 맛있는 요리들, 그 요리들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그들의 미소에서 보았다. 이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 요리사에 그 요리구먼!!"

1. <올드브릿지>는 성수기가 되면,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믿지 못할 만큼의 길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젤라토 매니아들의 성지다. 2. 이탈리아에서는 매일 아침 모형이 아닌 진짜 음식을 진열해 고객을 유혹한다. 때문에 음식이 진열된 후 약 1~2시간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음식을 지켜내는 것이 아침 미션 중 하나라는 웃지못할 사실. 3. <올드브릿지>의 젤라토와 예쁜 여자에게만 올려준다는 부드러운 생크림. 하지만 역시 소문은 소문. 함께 간 모든 여자의 젤라토 위에 올려 진 저 하얀 물체는 무엇? 4. <타차도로>의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가족 사진 찰칵!
바쁜 걸음 속 달콤한 충전소 젤라테리아&카페
로마에는 3대 젤라테리아(Gelateria)가 있다. 바티칸시국에 있는 <올드브릿지(Old bridge)>, 판테온 주변 <지올리티(Giolitti)>, 가장 긴 역사를 지닌 <파씨(Fassi)>. 이 세 곳을 나름 비교하자면 <올드브릿지>는 서비스 맛집, <지올리티>는 퀄리티(질) 맛집, <파씨>는 역사가 깊은 노포의 느낌이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올드브릿지>. 이곳은 마치 우리나라 '국대떡볶이'처럼 젊은 이탈리아 청년들만이 근무를 할 수 있다. 젤라토를 즐겨 먹는 고객층이 20~30대 젊은 여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이 젊은 이탈리아 청년들이 말하는 한국어는(오랜 경험과 노력으로 터득한 서비스 노하우겠지만)한국인 관광객들을 모두 충성하게 만든다. 나 역시 그 충성자 중 한명. 젤라토 주문 후 작은 스푼을 원했던 내게 돌아온 듣고도 믿지 못할 말은 "(그들이 한 발음 그대로) 수꾸락 줘요? 수꾸락?" 이 말 한마디에 나는 로마에 머문 6일 동안 이 곳만 6번 방문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물론 젤라토 맛도 수준급이다. 특히 고소한 미숫가루 맛이 나던 피스타치오.

지금 내 방에는 갈지 않은 원두콩이 담긴 갈색봉투가 3개 있다. 그리고 밀봉된 그 봉투에는 ‘타차도로(Tazza d`Oro)'라 쓰여 있다. 깊이 있는 진한 맛과 부드러운 끝맛을 지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타차도로>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세 높은 카페다. 에스프레소를 잘 마시지 않는 나라해도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에 왔다면 적어도 한잔은 마셔봐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작은 커피 잔에 담겨 나온 검은 액체, 설탕 한 봉지를 거침없이 넣고 살살 저어준다. 이 30ml 커피 한 잔의 위력이 궁금하다면 이 설명 하나면 될 듯 하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시차는 7시간. 한창 관광지를 쑤시고 돌아다닐 시간은 오후 3시. 이탈리아 3시는 한국에서는 잠이 솔솔 쏟아질 밤 10시. 시차적응이 필요했던 나는 이 커피 한 잔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을 정복했다. 모든 여행자들도 나와 같다. 바쁜 시간 속 젤라토와 커피 한 잔으로 충전완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1. 아씨시의 야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아우라(Aura)가 있다. 2. 아씨시의 골목골목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저 골목을 지나면 하얀 타이즈를 신고 우스운 가발을 착용한 귀족 남자들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을 태운 마차가 지나다니고 있을 것만 같다. 3. 아씨시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의 내부의 천장 벽화는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사진이라해서 그 감동이 반감되지 않는다. 그만큼의 美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아씨시 수녀원의 코스요리> 4. 오르조(Orzo 쌀모양의 작은 파스타)로 만든 전채요리 5. 발효시킨 빵에 오레가노, 로즈마리 등 허브를 넣어 만든 토마토 소스를 바른 후 피자 치즈로 마무리. 단순하지만 맛은 도우의 두께만큼 폭신하고 풍부하다. 6. 호박꽃과 줄기, 콜리플라워 튀김과 닭 가슴살 구이. 적은 양처럼 보이지만 코스로 즐기면 어느 순간 빵빵해진 배를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녁 식사 후 아씨시 밤마실은 필수코스다. 7. <아씨시 수녀원의> 아침식사. 직접 구운 미니 바게트에 한약처럼 보이는 진한 커피. 떠나기 싫은 곳을 등 떠밀리듯 떠나야만 하는 여행자들의 아쉬운 마음이 있기에 이곳의 아침은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다.
아씨시 수녀원(Covento)의 천사들이 빚는 식탁
식지않는 로마에서의 열정을 가슴에 품고, 내가 아씨시를 방문했을 때는 이탈리아 150주년 기념일로 고요한 아씨시가 여러 행사와 여행객들로 붐비던 때였다.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에서 150주년 미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으며, 곳곳에 방송국 차량과 촬영기구가 눈에 띄었다. 로마와 피렌체의 중간에 위치한 소도시. 너무 정적이어서 심지어 하루 이상을 머물면 곤란하다고까지 말해지는 아씨시를 방문한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바로 아씨시 수녀원의 저녁식사와 야경.
아씨시 수녀원의 저녁식사는 숙박비 외에 10유로를 추가하면 수녀님들이 직접 요리하는 제 1요리, 2요리, 샐러드와 와인까지 이탈리아 가정식을 코스로 즐길 수 있다.

이 날 우리는 두툼한 도우의 피자와 담백하게 튀겨진 호박꽃, 콜리플라워 튀김, 싱싱한 샐러드와 부드럽게 구워 진 닭 가슴살 구이를 즐길 수 있었다. 소박함의 극치, 특별하지 않은 재료로 만들어 낸 최고의 밥상. 여행에 지친 여행자에게 이보다 더 든든한 피로회복제가 있을까? 이건 여담이지만, 이탈리아 150주년 기념일이었던 이날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모인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의 수련회가 있는 날이었다. 저녁 식사를 할 수 없는 여건이었음에도 우리는 맛있는 이탈리아 가정식을 먹었다. 이 수녀원에는 한국인 수녀님이 있다. 저녁 시간, 이 수녀님이 우리에게 전한 말은 놀라웠다.

국경일이기 때문에 수녀원 근처 레스토랑은 모두 문을 닫은 상황, 수녀원의 푸른 눈의 천사들은 말했다고 한다. 모든 레스토랑도 문을 닫았는데 우리가 저녁 식사를 주지 않으면 저 사람들은 어쩌냐고. 우리들이 먹는 식사라도 대접하자고. 그 날 우리가 먹은 음식은 아씨시 수녀원 천사들이 빚어낸 사랑의 식탁이었다. 저녁 식사 후 나선 아씨시의 밤거리는 촉촉하게 내린 비로 청량한 밤바람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의 야경은 마치 내가 동화 속 한 장면에 놓여 진 듯한 환상을 일으킨다. 사진으로 말하자면 채도가 빠진 느낌이라고 할까? 무채색에 가깝지만 무미건조한 잿빛은 아닌 아씨시의 야경은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마법이 있다. 그리고 이런 아씨시는 지금 당장 내가 이탈리아로 다시 날아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이자 바람이기도 하다. 심장을 쉬게 하는 여유가 있는 그 곳 아씨시.


지금 나는 새로운 세계로 떠나기 위한 비행기 안에서 이탈리아 맛 기행 마지막 편을 쓰고 있다. 그렇게 다가올 설렘을 맘껏 기대하며 지난 여행의 추억이 주는 그리움을 곱씹으며 다독이고 있다. 베네치아의 여행길에서 나는 오랜 인연이었지만, 인생이 주는 예기치 못한 장난으로 소원해져 버린 동생을 닮은 동행을 만났다. 그녀는 베네치아와 밀라노의 내 시간을 부분부분 함께 해주었다. 그녀와 함께일수록 나는 빨리 돌아가 동생이 만나고 싶어졌음이 신기했다. 그렇구나!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지금 내 곁을 지키는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깨우치기 위해 인생이 주는 선물. 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이라고 한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그대로 ‘이별’일테니.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하나보다. 나를 지키는 ‘연’과 내가 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서.

흔해 빠진 수식어 ‘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그러하니 말이다. 베네치아에서는 내 발이 닿는 어느 곳이든 항상 수줍게 찰랑거리는 운하가 흐르고 있었다. 골목길에 들어서는 바람에 행여 시야에서 운하를 놓친다하더라도 은은하게 풍기는 비릿한 물 내음과 곤돌리에(Gondolier,곤돌라 뱃사공)의 노랫소리는 나의 감각을 감싸온다. 육지로의 여행이 무료해 질 즈음 베네치아로 떠날 채비를 했다. 산타 루치아 역(Stazione Venezia Santa Lucia)에서 막 벗어나 맞이한 베네치아는 운하에 반사 된 햇살에 순간 화이트아웃(White out,백시현상)을 겪을 정도로 신비로운 강렬함이 묻어났다.

‘패션의 도시’라는 위풍당당한 수식의 느낌은 나와 같은 방랑객스러운 여행자에게는 매력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또각또각 밀라노(Milano)의 성냥갑 같은 반듯함에 대한 선입견은 밀라노 중앙역(Stazione di Milano Centrale)과 연결 된 지하철역에서 무참하게 깨어졌다. 많은 집시(Gipsy)들과 어지러운 질서. 이런 대 반전 속 나는 실망보다 세세한 안도의 한숨이. 그래. 결국 이곳도 이탈리아의 한 부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운하를 자유로이 흘러가는 곤돌라와 곤돌리에. 하지만 곤돌리에의 변덕 역시 흐르는 강물처럼 기복이 심하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희망의 꿈을 부르는 ‘천년의 도시’

바다 속 점토질 바닥에 인공 기반을 만들어 형성한 도시 ‘베네치아(Venezia).’ 100여개가 넘는 조그만 섬으로 이뤄 져 있어 이 섬들을 잇는 다리만도 400여개란다. 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에 놓인 십여 개의 다리를 20kg이 넘는 짐 가방을 들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것은 대표적인 관광의 나라치고는 세심하지 못한 처사라 생각되지만 내 손에 들린 무거운 짐만 아니었다면 모두가 신기하고 아름다웠을 풍경들. 두 손이 자유로워진 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베네치아의 심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운동화 끈을 질끈 묶었다.

운 좋게 숙소는 베네치아의 명물인 ‘리알토 다리(Ponte de Rialto)’와 근접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가슴이 멎을 만큼의 아름다운 야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베니스의 상인’에 대한 인식이 강해서였을까?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의 그 어느 도시보다 상점이 발달했다고 느껴진다. 리알토 다리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처럼 다리의 양 쪽 끝으로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하지만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를 이루는 상점들은 역사적으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반면(과거 베키오 다리에는 푸줏간, 대장간, 가죽처리장으로 생계를 연명하는 이탈리아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16세기, 악취가 나고 깨끗지 못한 외관상의 이유로 모두 내쫓기게 되었다. 그 후 들어선 것이 보석상. 푸줏간과 보석상이란 너무 대비적인 이런 역사를 알기에 결코 베키오 다리를 아름답다 찬양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 시절 마지막 생존권마저 권력에 의해 빼앗긴 불쌍한 서민들의 절규 섞인 투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는 기념품점, 젤라테리아, 식음료 상점, 보석상과 유리공예 판매점까지 하나의 쇼핑 거리다. 수많은 여행자들을 위해 만들어 진 베네치아 교통&문화 카드는 언뜻 여행자를 위한 배려인 듯 해보이지만, 성당 입장료와 화장실 사용료까지 세트 상품으로 묶어 판매 하고 있는 것은 ‘물의 도시’라는 수식어와는 다르게 조금은 삭막한 느낌이 드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하지만 이런 삭막함도 잠시. 베네치아는 지난 천년의 세월이 그러했듯, 앞으로 다가올 천년을 위해 희망의 꿈을 부르는 도시다.

운하를 떠다니는 곤돌라의 자유로운 모습에서, 매년 성황리에 개최하는 ‘베니스 영화제'의 활기찬 모습에서 그리고 벌떼처럼 몰려드는 여행자들을 대하는 지치지 않는 상인들의 웃는 얼굴에서 그 희망의 찬가는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1.리알토 다리 건너 어시장의 아침을 함께하면 삶에 대한 의지가 솟구친다. 가끔 삶이 지루하다 느껴질 때 나는 이른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고는 한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녹슬어버린 정신에 기름을 치는 시간을 갖는다. 2.정말 하나를 집어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주황빛의 연어가 반짝거리며 진열되어 있다. 3.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보기 좋은 베네치아 어시장을 만들기를 바라본다.
사람 냄새 나는 수산시장 살아있는 아침

대운하로 이뤄 진 도시인만큼 베네치아에서는 해산물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베네치아를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것이 '오징어먹물파스타(Spaghetti alla Nero di Seppia,10~15유로)'와 '해산물튀김'이다. 베네치아에서 먹어 본 오징어먹물파스타는 버터의 고소함과 크림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풍부한 맛이었다. 여기에 기존 먹어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을 지닌 오징어까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그 어떤 색채감도 지니지 않은 그저 검은색일지라도 오징어먹물파스타는 그 생김을 뛰어넘는 맛을 지녔다.

아침 일찍 리알토 다리 건너 생선과 채소 등을 파는 재래시장으로 간다. 어시장은 11시 가량이 지나면 장사를 정리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 움직여야만 싱싱한 해산물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어시장의 상인들은 조금이라도 싱싱한 해산물을 판매하고자 부지런히 가판대에 얼음을 깔고 생선을 세팅한다. 어! 그런데 우리나라 생선가게와는 왠지 느낌이 다르다. 단지 외국이기 때문에 느끼는 나의 고정관념이려나 싶어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생각해보니 아! 얼음 위에 곱게 누워있는 생선이 우리의 것과 다르구나. 자반고등어와 동태, 갈치 등이 진열 되어있는 우리나라 생선가게와는 달리 이곳은 연어와 송어, 농어와 가리비 등이 투명한 얼음 위에서 주황빛, 은빛 제 살을 반짝반짝 빛내며 올려 져 있었다.

저 연어 한 덩이를 사서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 뒤 팬에 잘 구워 레몬을 넣은 새콤한 크림소스를 뿌려 연어 스테이크를 만든다면 참 맛있겠구나. 고소하고 풍부한 크림소스가 뿌려진 농염한 맛의 연어 살을 한 입 먹으면 치아 사이로 거칠게 부스러지는 연어 살과 혀끝으로 고소하게 감기는 크림의 맛. 아마 마지막에는 레몬의 상큼함이 다음 들어올 음식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있으리라.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식재료를 바라보는 시선은 미술학도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벽화를 대하는 것과 매한가지의 설렘을 지닌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생생한 아침의 시장 구경을 마무리하며 돌아가는 길, 부자(父子)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생선을 손질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륜의 깊이를 나타내듯, 아버지는 값이 비싼 연어를, 아들은 조그마한 생선의 비닐을 벗겨내고 있었다. 아들의 표정이 즐겁지 만은 아니 해 보인다. 아마도 생선가게라는 가업을 잇기 싫은 눈치다. 하지만 이 청년도 언젠가는 아버지가 걸어오신 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날이 올 것이다. 베네치아의 볼거리 어시장이 아버지와 같은 분들로 인해 베네치아의 명물이 되었음을 깨닫고, 존경심을 지닐 날이 늦더라도 오지 않을까? 내심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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