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①물가와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
①물가와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 내는 토키트나 호수공원 풍경. 산짐승과 사람이 공유하 는 공간이다. ②북미 최고봉인 매킨리 등 눈 덮인 산봉우 리들로 둘러싸인 드날리 국립공원 설원(雪原)에 내려 앉은 경비행기. ③거드우드 인근 야생동물 보호소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아메리카들소(바이슨). / 정지섭 기자

시인(詩人)은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헤아린 것보다 훨씬 많은 정령(精靈)들이다. 정령들은 때론 불곰이나 사슴, 독수리, 혹은 연어의 모습으로, 아니면 자작나무나 전나무에 깃들어, 혹은 거대한 빙산과 빙하를 이뤄 탄생과 죽음을 무한 되풀이하며 종장(終章) 없는 대자연의 서사시를 공동 집필해왔다. 이 서사시의 제목은 ‘미국에서 가장 넓은 49번째 주’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알래스카’다.

◇독수리가 되어 설원을 날다

지금 알래스카는 마법에 걸려 있다. 한여름의 뙤약볕과 만년설을 머리에 인 해발 6000m의 얼음산이 공존하게끔, 한겨울과 한여름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도록 정령들은 계절과 시공의 경계를 허무는 마법을 부려놓았다. 그 마법을 감상하기 위한 첫 순례지는 알래스카의 관문 앵커리지에서 북쪽으로 180㎞ 떨어진 마을 '토키트나(Talkeetna)'.

북미 최고봉 매킨리산을 품은 드날리 국립공원의 관문인 이곳에서 10인승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 마리 독수리처럼 날아올랐다. 푸른 기운을 머금은 숲 사이로 얼음 녹은 물이 콸콸 흐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앞은 순백의 세상. 무엇이 구름이고 무엇이 눈인지 분간이 어렵다.

비행기는 30여분을 '대협곡(The Great Gorge)', '사슴의 이빨 절벽(Mooses Tooth)' 등 날카로운 지형지물 사이를 휘휘 돌아 72㎞ 떨어진 산마루의 눈과 얼음이 만든 천연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승객들은 한결같이 얼이 빠져 있다. 대자연이 빚어낸 절경에 얼이 빠지고, 그 영역에 감히 인간 기술로 범접했다는 죄스러움에 또한 얼이 빠졌을 것이다. 누군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혼란스럽지? 겨울은 당신이 겨울이라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부터가 겨울이다. 그게 알래스카의 사계(四季)다."

앵커리지에서 남쪽으로 64㎞ 떨어진 거드우드(Girdwood)에서도 헬기로 설원을 날아 산악지대 '추가치(Chugachi)'의 은밀한 속으로 향했다. 콸콸 흐르던 강줄기가 얼어붙어 빙하로 변하는 계절의 경계를 지나 선명한 에메랄드빛 눈밭에 착륙한다. 해마다 새 눈이 해묵은 눈을 아래로 밀어내고 켜켜이 쌓이는 과정이 수천·수만년 동안 반복돼 보석보다 고운 빛깔이 만들어졌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 산양 두 마리가 여유롭고 그윽하게 고개를 까딱인다. "구경 잘 했느냐"고 물어보는 듯.

◇고래가 되어 얼음바다를 가르다

이젠 과묵하고 침착한 고래가 돼 알래스카의 속살을 파고들 차례. 앵커리지에서 서쪽으로 492㎞ 떨어진 소도시 발데즈(Valdez)에서 고요의 바다인 프린스 윌리엄스 해협을 따라 6시간 동안 운행하는 '스탠 스티븐스 크루즈'는 바다의 신사 혹등고래처럼 점잖고 편안하게 물살을 갈랐다. 바닷물을 침대 삼아 떠 있는 30여 마리의 해달무리를 시작으로 물개 300여 마리가 몰려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바위 언덕, 흑곰이 나무 사이를 바지런히 내달리고 있고, 나무 꼭대기에선 독수리가 쉬고 있었다.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던 와중에, 선장 앨런이 흥분한 목소리로 승객들의 이목을 바닷가로 이끌었다. "(온순한 수염고래인) 혹등고래와 (포악한 이빨고래인) 범고래가 채 3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함께 있습니다. 생김새도 기질도 물과 기름처럼 다른 두 녀석이 한자리에 있는 건 정말 처음이에요!"

알래스카 지도

◇울버린이 돼 숲을 거닐다

알래스카에 인간과 동물의 경계는 없다. 불곰이나 말코손바닥사슴(일명 '무스·moose') 같은 집채만 한 산짐승들이 인가 근처까지 어슬렁거리는 게 다반사다. 기온이 올라가는 요즘은 갓 태어난 사슴 새끼의 부드러운 육질을 노리는 곰들 때문에 사슴과 곰 모두 예민한 시기. 하필 이럴 때 토키트나 호수공원(Talkeetna Lakes Park)으로 하이킹을 간다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곰 걱정은 크게 할 것 없어. 그거 알아? 사실 곰이 사람을 훨씬 무서워하거든."

숲 속에 네 개의 호수가 있고 그중 가장 큰 'X호수'와 'Y호수'의 주위를 돌아오는 5㎞의 숲길. 이 길은 사람의 길이기에 앞서 곰과 말코손바닥사슴과 울버린(족제비과에서 가장 몸집이 큰 육식동물로 '북미오소리' '굴로'라고도 한다)의 길이다. 안내원 하워드는 "이 숲의 진짜 고수가 울버린"이라고 했다. "여간해서 보기 어려울 겁니다. 정말 부끄럼이 많아 숨어 있거든요. 하지만 불곰과 홀로 대적할 정도로 용맹하고 겁이 없어요. 우리도 곰과 맞닥뜨린다 해도 지레 겁먹을 필요 없어요. 함께 붙어 있고,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알리면 그만입니다. 울버린처럼요."

발길 닿는 곳마다 어린 말코손바닥사슴과 불곰은 쫓고 쫓기며 곳곳에 따끈한 발자국과 배설물과 털까지 살짝 남겨놓았다. 낯선 땅에서 온 이방인들의 편안한 순례를 위해 정령들은 그렇게 살짝 존재감만 남겨놓은 듯했다.

여행수첩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미주대륙인데도 직항편이 없어 시애틀까지 간 뒤 앵커리지행(行)으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한항공이 7월 27·31일과 8월 4일에 띄우는 직항 전세기를 이용하면 이런 번거로움 없이 인천에서 앵커리지까지 8시간에 닿을 수 있다. 한진관광이 연계 관광상품을 판매한다. 1566-1155.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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