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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미국

미국 오리건 : '슈퍼소년 앤드류' '천재소년 두기'… 그 시절 그 모습 "엄청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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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소년 앤드류' '천재소년 두기'… 그 시절 그 모습 "엄청 반갑다!"

최근 단편집을 내고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장편과 단편집은 어떻게 다른가? 물론 '길이가 다르다'라고 대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길이의 차이만 있는 건 아니다. 장편과 달리 발표한 연도가 다르고, 등장하는 인물도 제각각인 단편의 모음집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책으로 묶어내는데, 그건 마치 구석에 처박아놓고 한동안 보지 않은 앨범을 꺼내보는 듯한 기시감을 주기 때문이다. 가령 인터넷 서점 에디터 시절, 야근에 시달리며 부엌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쓴 첫 단편을 읽다가 문득 '전종 50% 폭탄세일'을 떠올리거나, 지금은 출판단지가 들어선 파주에 갔다가 오래전, 파주의 물류센터에서 책 포장을 하던 아주머니들에게 일이 성글다고 야단맞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느낌표'라는 책읽기 프로그램 때문에 서점의 책들이 밤낮없이 팔려나가던 시절의 일들이다. 

영화 '스탠바이미'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오리건주(Oregon 州). 영화 속 주인공들이 거대한 나무 숲을 따라 걷는 것에서도 묘사됐듯 오리건주는 풍부한 임산자원을 자랑한다. /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주인공인 외과의사 토마스는 교통사고로 죽어 버린다. 소설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결정적인 주인공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현재 살아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곧 죽게 될 주인공이 의미 없이 내뱉는 말이나 사소한 행동에서 내밀한 진동을, 애잔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기법'에서 이를 일종의 환기효과라고 불렀다.

'스탠바이미'는 내게 그런 영화다. 내 유년시절을 자꾸 '리플레이(replay)'하게 하는 이 영화는 네 명의 소년들의 모험을 다룬 성장영화다. "내가 시체를 처음 본 것은 열두 살에서 열세 살로 넘어가던 때였다." 훗날 소설가가 된 고디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자연스레 과거로 넘어가 인구가 고작 1000여명밖에 되지 않는 오리건주의 작은 마을 캐슬록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마을에 사는 고디, 크리스, 테디, 번, 네 명의 악동은 우연히 숲 속에 버려진 시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죽은 형 때문에 괴로워하는 고디,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와 도둑으로 몰린 전력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 전쟁 때 죽은 아버지를 영웅시하는 테디, 뚱보에 겁쟁이인 번. 각자 유년의 상처를 간직한 소년들은 시체를 찾으면 마을의 영웅이 될 것이라는 아이다운 희망으로 기찻길을 따라 이틀간의 모험에 나서면서 영화는 그들의 좌충우돌 여정을 따라간다.

이들 네 소년의 시체를 찾아 떠나는 모험은 '시체'란 말이 가진 공포스러운 음험함에도 불구하고 말캉한 허벅지와 발그레한 소년의 볼을 떠올리게 한다. 오리건주의 거대한 산림을 따라 펼쳐진 기찻길을 걷는 소년들의 모습과 함께 흐르던 코데츠(Chordettes)의 롤리팝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수퍼에 달려가 '춥파춥스'라도 사 들고 오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겐 내용보다는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어린 시절을 보는 기쁨이 언제나 더 크다. 마치 과거를 되돌려 나만의 앨범을 보는 듯한 아련한 느낌 말이다.

1991년 지금은 사라진 신사동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나는 아빠와 함께 리버 피닉스(그는 '스탠바이미'에서 크리스 역할을 맡았다)가 나왔던 영화 '아이다호'를 봤었다. 아빠는 게이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를 꽤나 황당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리버 피닉스의 얼굴에 홀딱 반해 "나는 길 감식가다. 평생 이 길을 맛볼 것이다"라고 말했던 그의 독백을 기어이 암기해 일기장에 써놓았다. 대학생이 되면 제일 먼저 길 탐식가가 되어 세상을 떠돌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때였다. 말해 뭐하랴. 내가 일찌감치 배낭을 메고 겁도 없이 비행기에 올라탄 건 오로지 리버 피닉스 때문이었다.

뚱뚱하고 겁 많은 소년 '번'을 연기했던 제리 오코넬은 꽤나 좋아했던 '슈퍼소년 앤드류'의 주인공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앤드류의 열두 살 시절을 뒤늦게 보게 된 셈이었는데 이런 우연한 사실은 그 옛날, '캐빈은 12살'이나 '천재소년 두기'를 보고 자란 1970년대의 아이들에게는 꽤 큰 선물이 될 게 틀림없었다. 그뿐인가. '고디'의 형으로 나왔던 '존 쿠삭'의 아름다운 청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미국 드라마 '24'에서 매회 죽을 고비를 넘기는 비극의 주인공 잭 바우어 역할을 하던 키퍼 서덜랜드의 주름살 없는 팽팽한 얼굴과 야구방망이로 정신없이 남의 집 우체통을 깨부수는 광란의 치기를 본 것도 이 영화에서였다. 배우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현재와 과거의 시차가 크면 클수록 이 영화의 볼륨이 점점 더 커지며 내 머릿속을 쾅쾅 밟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소년들이 오리건주의 그 아득한 숲 속과 강을 건너며 각자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 그래서 아빠는 나를 싫어하고, 형 대신 내가 죽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며 우는 고디에게 크리스가 했던 말을 나는 성장통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의 말로 기억한다. "널 싫어하는 게 아니야. 널 모르기 때문이야." 철길을 따라, 숲 속을 지나, 마을로 걸어 돌아온 소년들은 이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길을 탐닉하겠다고 외친 리버 피닉스의 기념비적인 선언문처럼.

만약 내가 다시 열두 살로 돌아간다면 철길을 따라 시체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을까. 열두 살의 나는 듀란듀란과 이문세를 좋아하는 소심한 소녀일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쓴 소설 속이었다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스티븐 킹은 뼈와 장기가 파열되는 엄청난 교통사고를 겪고도 살아남았다. 그는 여전히 엄청나게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어마하게 많은 돈을 번다. 리버 피닉스는 23세에 죽었다. 겨우 23세다. 내가 그보다 10년이나 더 살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아마도 10년 후쯤 내가 리버 피닉스에 대한 단편을 쓴다면, 단편의 제목은 단 하나다. '소년은 죽지 않는다.' 유치하다 해도, 별수 없다. 리버 피닉스에 대한 정답은 내겐 그것, 딱 하나일 테니까. 

●스탠바이미: 로브 라이너 감독의 1986년 작. 스티븐 킹의 단편 '더 바디(the body)’
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시체를 찾아 떠난 네 소년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요절한 리버피닉스와 텔레비전 스타였던 제리 오코넬의 10대 시절을 엿볼 수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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