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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독일

독일 뮌헨 : 뮌헨을 다들 아시죠.. BWM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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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효모빵 공부보다 더 급한 일은 비행공포증 극복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비행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였다,라는 사실을. 나는 12년 동안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런데 가급적 한국 여행을 해야 하는 일을 기피했었다. 비행공포증 때문이었다. 폐쇄공포증은 내가 있는 공간이 문 또는 창문에 의해 모두 닫혔을 때 발생하는 불안감이 일반인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증상을 이다.

비행공포증은 그 불안감에 자신이 공중에 떠 있다는 공포감이 포함된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 '비행기 좀 세워주세요, 흑흑흑' 이런 외침을 들어보았는가?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를 세워달라니. 전조 현상으로 식은땀이 쏟아져내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에 시달리게 된다. 이럴 경우 약으로 자신을 진정시키기도 하지만 '비행기를 세워주세요'라며 읍소하기도 한다.

그런 내가 천연효모빵 공부를 위해 유럽을 순례한다고? 과연 가능할까? 물론 가능했어야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심리 치료를 받아왔고, 다음 도전 목표는 운전이었다. 자동차 운전 또한 환자에게는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심리치료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차를 사고, 차 안에 앉아 있어 보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양평 시장에 가보고 … 이윽고 지금은 가로수길, 홍대앞까지 차를 몰고 다니게 되었으니 2단계 극복은 완전히 이뤄진 셈이었다.

비행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극복하게 해준 'BMW'

어느 봄날 해질 무렵. 나는 강북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게 백미러에 나타난 '천사의 눈'(여기서 '천사의 눈'이라 함은 냉음극관-CCFL:Cold Cathode Fluorescent Lighting-으로 만들어진 BMW자동차의 LED 헤드라이트를 말한다)이다.

나는 천사의 눈을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 덕에 비행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한 방에 이겨낼 수 있었으니까… 요컨데, 나는 어느날 초저녁에 동그란 원형 헤드라이트의 신비롭고 근미래스러운 불빛에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매력적인 원형헤드라이트를 만든 BMW란 자동차 메이커는 도대체 어떤 회사이며, 어떤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일까,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뮌헨'이란 도시는 어떤 곳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결국 뮌헨에 있는 BMW WELT와 BMW뮤지엄에 '천사의 눈'이 잔뜩 전시되어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고, 봄이 오자마자 서두르듯 BMW본사가 위치한 뮌헨을 가기위해서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비행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할 때만 해도 나는 극복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널찍한 공간이라서 공포심이 반감되는 프레스티지 클래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나는 식은땀, 심장 벌렁증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내가 내린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한 도시가 아닌, 나의 신천기를 열어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제부터 여행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거대한 샐러드 위를 달리는 '이체에(ICE)'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나는 시차적응이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지만 중앙역에서 이체에(독일의 고속철도 ICE:Inter City Express)를 타고 뮌헨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0살은 족히 넘긴 유복해보이는 독일 아저씨, 아줌마들이 샴페인을 연거푸 마시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60대의 건강하고 '매너없는' 어르신들이 독일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쓴웃음을 짓고 있다가, 독일의 고속철도는 자리에 앉은채 핸드폰 통화를 할 수 있고, 마구 떠들어도 상관없는 칸과 떠들어서는 안되는 사일런트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내가 산 티켓은 마구 떠들어도 결례가 될 수 없는 '소음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또 한번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고성방가를 배경음악삼아 3시간 동안을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며 줄곳 들었던 생각은, 내가 탄 이 기차가 브로콜리와 상추, 토마토와 오이가 잔뜩 쌓여있는 거대한 샐러드바의 위를 달리고 있는 미니어쳐기차가 아닐까하는 동화스러운 상상이었다. 그만큼 이 나라는 도시든 시골이든 예외없이 나무와 숲이 울창하다.

그 숲을 끝없이 달리는 열차니 '온 더 샐러드 트레인'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가슴앓이의 시작 '쾨니히스광장' 뮌헨역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을 켜 호텔스닷컴을 통해 예약한 '아트호텔뮌헨(art hotel munich)'을 찾아나섰다.

낯선 도시와 넓고 좁은 골목을 체우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은 생경스러웠지만, 동시에 언젠가 한번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아득한 데자뷰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잔뜩 찌푸린 하늘, 먹구름과 햇살 그리고 회색빛 석양이 마치 내 마음처럼 변덕스럽게 하늘모양을 바꾸고 또 바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는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을 향했다. 또 다시 스마트폰의 자그마한 창에 표시된 지도를 따라 이름모를 거리를 걷다가 맞딱드린 너무나도 이국적인 '쾨니히스광장'의 풍경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낡은 건물들과 웅장한 오브제, 그냥 아무생각없이 걷기만 해도 예술가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아름답고 철학적인 거리의 기운에 취해서 난 그날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체 참 많이도 걷고 또 걸었다.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에서 만난 올리베티수동타자기 '발렌타인'

독일현대건축가인 슈테판브라운펠스에 의해 설계되어 2002년도에 완공된 현대미술관은 건물 그 자체가 디자인오리엔트 된 거대한 공업제품처럼 컨셉트에서 끝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완성되어진 건축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오랜 세월 짝사랑해 온, 2007년 12월 31일 타계한 디자이너 에토레소사스2세(ETTORE SOTTSASS Jr.)가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올리베티사의 빨간색 수동타자기 '발렌타인'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현대미술관의 1층 카페 구석에 놓여있던 '노르웨이세즈'가 만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너무나도 완벽한 건축공간이 만들어주는 안락함에 취했던 그날을 오랫동안 잊지못할 것이다. 누가 독일의 포스트모던과 바우하우스를 차가우며 인간미가 없다고 탓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완벽하고 따뜻하고 안락하게 감싸주는데 말이다.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2011년도 유로비젼송콘테스트와 EU 그리고 묘한 열등감

힘빠진 다리를 이끌고 호텔에 도착해서 창밖을 바라보니 어둠과 함께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호텔 식당에서 라자니아를 뚝딱 먹고 호텔방으로 돌아가 티브이를 켜니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2011년 유로비젼 송콘테스트가 방송 중이었다. 학창 시절, 오전 11시만 되면 라디오로 들었던 '세계의 유행음악'을 통해 만났었던 유로비젼 송콘테스트를 리얼타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흥분도 설렘도 잠깐, "굿이브닝 유럽!" 이라고 외치던 사회자 '스테판라브'의 요상한 영어발음의 멘트가 순간 왠지모르게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유럽은 나에게 있어서 잘사는 이웃집의 공부잘하고 잘생겼으며 우애까지 좋은 형제처럼 어딘가모르게 부럽고 무서운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도이체아이헤'호텔 주변 거리풍경과 '뮌헨앓이'의 시작

가을하늘을 연상케하는 높고 진한 파란 하늘아래에서 뮌헨의 거리를 걸었다. 여행지에서 하루 정도는 지도와 안내 책자 없이 무작정 발길이 닺는 곳으로 산책을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날도 난 아침부터 아무런 계획없이 눈과 마음의 움직임만을 의지한채 뮌헨 시내를 걸었다.

빵굽는 냄새가 나면 고소한 냄새를 따라가 빵을 먹었고, 쇼윈우에 진열되어있는 그림 또는 오브제가 마음에 들면 점포 안으로 들어가서는 또 다른 그림과 골동품들을 바라보며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주었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산책을 하다가 들어가게 된 도이체아이헤호텔의 레스토랑과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상점들과 카페와 서점과 거리를 메우고 있던 친절하고 사랑스럽기 조차한 그곳의 사람들의 표정들 덕분에, 아직까지도 눈을 감으면 그 잔상들이 나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런던콜링'(마르크스가 한 말이라고 알려진 이 어구가 실제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음)이 아닌 '뮌헨콜링'인 것이다. 결국, 난 그곳에서 돌아온지 이십여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짝사랑에 가슴아파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뮌헨앓이 중이다.

다음 여행은 본격적인 '천연효모빵 투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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