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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미국

미국 알라스카 : 반소매 티 입고 만년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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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로 종단하는 알래스카 여행

미국 알래스카. 만년설과 빙하로 뒤덮인 땅일 거라는 막연한 짐작은 북부 내륙에 위치한 제2의 도시 페어뱅크스(Fairbanks) 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북위 65도의 페어뱅크스는 자정이 임박한 시각임에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백야(白夜). 백야라면 그저 어슴푸레한 저녁 분위기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한낮이나 마찬가지다. 거리의 사람들은 반소매 옷과 반바지를 입고 활보했다.

여객기의 창을 통해 내려다보며 연방 탄성을 토했던 그 많은 설산과 빙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곳에서 조금만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북위 66.5도 이상을 일컫는 북극권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페어뱅크스의 한여름(7~8월) 평균 기온은 섭씨 27~28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인데다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엔 덥고 겨울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반면 남쪽으로 500㎞ 이상 떨어진 제1의 도시 앵커리지(Anchorage)는 해양성 기후라 한여름 기온이 섭씨 16~17도로 오히려 선선한 편.

빙하로 뒤덮인 설산들을 배경 삼아 달리는 알래스카 관광열차. 좌석 옆부터 천장까지 통유리창이라 여행객들이 편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열차가 달리는 도중 곰 등 야생동물이 나타나면 승객들이 편히 볼 수 있게 그 자리에 몇 분씩 멈춰 서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 알래스카철도 제공

천혜의 환경 등 다양한 볼거리로 유명한 알래스카를 즐기는 방법이야 많겠지만, 페어뱅크스에서 앵커리지까지 576㎞를 열차로 종단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내리 달리면 12시간 걸리는 여정이지만 곳곳에 펼쳐진 매력적인 여행지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중간에 여러 차례 내리게 될 것이다.

페어뱅크스: 순수한 원주민 문명과 조우

알래스카 철도를 이용한 열차여행의 북쪽 출발지는 페어뱅크스. 내륙의 대표 도시이자, 빙하가 만들어낸 유콘강을 따라 형성된 원주민 문명과 현대 문명이 공존하는 관광·교육·군사 중심지이다. 매년 겨울철이면 오로라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미국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가 사는 마을이라고 굳게 믿는 노스 폴(North Pole)이 근처에 있다.

먼저 중심가에 위치한 모리스 톰슨 문화관광센터에 가보자. 지역 원주민 문화 등 알찬 볼거리는 물론 여행자를 위한 각종 책자와 지도를 제공한다. 알래스카대학 북극박물관에서도 다양한 원주민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알래스카에 있는 79개 온천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치나(Chena) 온천에서 분당 1500L씩 솟는 섭씨 59도의 유황온천수에 피로를 푸는 것도 좋다.

문득 북극에 가보고 싶다면 북위 66.5도선을 넘어가는 북극권 탐험도 할 수 있다. 경비행기로 1시간쯤 걸리는 거리지만 직접 두 발로 북극권을 밟아봤다는 묘한 성취감이 들 것이다. 경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만년 빙하가 만들어낸 경이로운 풍광은 보너스.

토키트나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매킨리 산 베이스캠프. 눈밭에 착륙하는 순간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잊지 못할 추억을 더한다. / 김선호 기자
드날리: 알래스칸들의 마음의 고향

페어뱅크스에서 열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4시간쯤 내려오면 드디어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산(6194m)과 드날리(Denali) 국립공원이 나온다.

드날리는 매킨리산의 원래 이름으로 원주민 말로 '위대한 자'란 뜻.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이 산을 보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기 위해 호텔과 캠핑장 등 많은 관광시설이 밀집해 있다. 공원 내 절경을 감상하려면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146㎞에 이르는 공원 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 곰·카리부·늑대·무스·산양 등 야생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네나나(Nenana)강에서 즐기는 래프팅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다시 열차를 타고 4시간쯤 내려오면 토키트나(Talkeetna)에 도착한다. 아담한 시골 마을이지만 이곳은 매킨리산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집결지이다. 이곳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직접 매킨리 산자락까지 날아갈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매킨리산을 등반하려는 사람들이 현지 적응 훈련을 하는 베이스캠프 텐트촌 눈밭에 내릴 수도 있다.

앵커리지: 문명과 야생이 공존하는 땅

주(州) 인구의 절반 가까운 30만명이 살고 있는 제1의 도시지만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 살아있는 곳. 도심에는 레스토랑·박물관·영화관이, 앞바다엔 연어를 비롯한 신선한 해산물이 있고, 조금만 시외로 벗어나면 야생의 어드벤처를 경험할 수 있다.

알래스카에서 살아온 11개 주요 원주민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알래스카 원주민센터는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원주민 유산은 물론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작가들의 작품까지 망라해 첨단 전시 장비를 활용해 보여주는 앵커리지 박물관도 볼거리로 가득한 명소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인 포테지(Portage) 빙하에 가면 바닷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빙산을 볼 수 있고, 크로우 크릭 광산에선 직접 콸콸 흐르는 냇물에서 사금을 채취하며 금을 좇아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로 흘러든 초기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 지역에 가면 빙하가 바다와 만나며 펼쳐내는 장관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 김선호 기자

빙하, 드디어 바다와 만나다

다시 열차를 타고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Prince William Sound) 지역이 나온다. 바다와 섬, 피오르(峽灣·협만)와 1만여개의 빙하를 아우르는 광활한 지역(2만5900㎢)이다. 위티어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와 전세 보트를 이용하면 시야를 압도하는 빙하지대를 감상할 수 있고, 발데즈에서는 폭 6㎞가 넘는 웅장한 컬럼비아 빙하와 트레킹, 카약, 스키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코르도바에선 오르카 내수로와 카퍼 리버 삼각지 투어와 함께 연어 낚시와 철새 구경 등을 할 수 있다.

산꼭대기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쌓이고 쌓인 눈이 엄청난 압력으로 에메랄드빛 얼음이 되고 그 얼음이 또 굳어져 마침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낮은 곳으로 향하는 빙하가 되어 바다에 이르는 장면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우르릉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다로 쏟아져 내리는 얼음덩이들은 보는 이들에게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 반팔 옷을 입고 만년빙과 빙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알래스카 여행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우리에게 혹한과 에스키모의 땅으로 알려진 알래스카는 지금 막 여름이 무르익고 있다. 8개월 가까이 이 땅을 지배한 겨울은 마침내 그 기세를 여름에 내어주고 있다. 9월 초까지는 모든 게 풍요로울 것이다. 알래스카는 지금 여름과 겨울이 함께 가고 있다.

■여행정보

●항공: 대한항공에서 올 7월과 8월 각 3차례씩 6번 직항 전세기를 띄운다. 한진관광·하나투어에서 관련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직항로를 이용하면 인천공항에서 앵커리지까지 8시간 걸려, 지금의 시애틀을 경유하는 노선에 비해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여행 팁: 110볼트 전압을 사용하므로 노트북이나 휴대전화용 충전기를 따로 준비한다. 햇살이 제법 따가우니 모자·선글라스·자외선 차단제는 필수. 얇은 옷을 여러 벌 준비해 날씨에 따라 겹쳐 입고 두터운 윈드자켓 하나쯤 가져가자. 모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모기약을 챙겨가면 좋다.

●환율: 1달러=약 1080원(7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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