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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미국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 : 막다른 골짜기에서만 보인다, 숨 멎을듯한 祕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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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카우아이 트레킹

카우아이 와이메아캐니언 아와아와푸히 트레일의 종점. 사진 우측 황토 언덕이 끝나는 지점이 높이 1200m 수직절벽이다.
카우아이 와이메아캐니언 아와아와푸히 트레일의 종점. 사진 우측 황토 언덕이 끝나는 지점이 높이 1200m 수직절벽이다.

닷새 동안 2~4시간짜리 트레킹 코스 11개를 답사하는 '살인적' 일정이었다. 일정 내내 허리케인까지 예보돼 있었다. 카우아이 트레킹은 개인적 '버킷 리스트' 중 하나. 마음이 복잡 미묘했다.

카우아이는 하와이를 구성하는 8개 섬 중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자, 관광객이 주로 찾는 4개 섬 중 가장 작은 섬. '태평양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와이메아 캐니언과 섬 북쪽 27㎞에 이르는 해안 절벽 나팔리 코스트, 그 절벽 위로 난 왕복 36㎞의 칼랄라우 트레일 등이 유명하다. 칼랄라우 트레일 시작 지점 주차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차가 빼곡했다. 허리케인은 다행히 비켜갔지만 장대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비키니나 쇼트 팬츠 차림이 많았고, 샌들을 신은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제법 가파른 산길. 황톳길이 비에 젖어 진창이 됐다. 수시로 미끄러져 온몸에 황토칠을 해대는 비키니 아줌마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15~20분쯤 올라 숨이 가빠질 무렵 숲길이 끝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부턴 해안선 절벽과 나란하게 이어진 길. 그러나 시야를 꽉 막고 있는 회색 구름이 가슴을 내리눌렀다. 나팔리 해안의 절벽은 구름을 겹쳐 입어 제 모습을 꽁꽁 감추고 있었다.

길이 미끄러워 온 신경을 집중해 걸었더니 어느새 목표 지점인 '비치'다. '장맛비 맞으며 동네 뒷산 오르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되돌아가려니 짜증이 밀려와 좀 더 가기로 했다. 목표는 3.2㎞ 전방 하나카피아이 폭포. 샌들 신은 관광객 대부분이 비치에서 발길을 돌렸다. 아무도 없는 숲의 적막을 나뭇잎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가만히 노크했다. 비가 훑어 내리는 초록 냄새와 습기에 나뭇잎 썩는 냄새는 얼마나 싱싱하고 상큼한지. 비에 떨어진 복숭아 비슷한 열대 과일은 또 얼마나 농염한 향을 내는지. 에덴동산 하와를 유혹한 선악과 향기처럼 환각적이었다. 코스는 훨씬 다이내믹했다. 초입의 대나무 숲을 지나자 이름 모를 과일나무들 숲이 있었고, 조금 더 지나자 폭포로 이어진 개울이 나타났다. 개울 좌우측으로 길이 나 있어 수시로 개울을 건너며 트레킹을 이어가야 한다. 며칠째 계속된 비로 물은 무릎 높이까지 불어 있었지만 개울 폭이 좁아 건너기에 무리가 없었다.

멀리서 물소리가 들리더니 다가갈수록 귀를 먹먹하게 하는 굉음으로 바뀌었다. 폭포 앞으로 다가가니 허공에 흩뿌려져 부서진 물방울들이 온 하늘을 덮으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높이가 55m라는데 이 폭포는 족히 100m는 됨직했다. 이미 비에 홀딱 젖은 몸, 물이 허리춤까지 오도록 들어가 한참 동안 폭포를 올려다보았다. 생각과 감각이 모두 정지한 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엔 구름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숲을 빠져나와 비치에 다다르니 하늘은 완전한 제 파랑을 드러냈고 황토 진창길도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었다. 마음이 바빠졌다. 절벽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까지 서둘러 올라가니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시야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직각으로 바다에서 솟아난 절벽들이 뾰족뾰족 끝없이 겹쳐서 이어지고 그 아래 펼쳐진 바다의 낯설고 신비로운 물빛들. 너무 그림 같은 선경(仙境)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와이메아 캐니언의 대표적 트레킹 코스는 3개다. 왕복 5.8㎞의 '캐니언 트레일'과 왕복 10.5㎞의 '아와아와푸히 트레일', 그리고 아와아와푸히 트레일과 합쳐지는 편도 9.3㎞의 '누아로이오 절벽 트레일'. 가장 멋지다는 '누아로이오 트레일'은 아쉽게도 폐쇄돼 있었다.

하와이 카우아이 트레킹

아와아와푸히 트레일을 따라 이어지는 숲은 이른 아침의 생기와 상쾌함이 넘쳤다. 나무가 터널처럼 하늘을 가린 폭 2~3m의 길은 황토로 포장한 것처럼 푹신하고 아늑했다. 신기하게 새 소리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리막 숲 터널을 1시간쯤 내려가자 주변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는가 싶더니 100m쯤 전방 푸른 하늘 밑에 작은 황토 언덕이 나타났다. 언덕을 향해 서너 걸음 더 내디뎠더니 모든 풍광이 한순간에 돌변했다. 거대하고 거친 협곡의 주름들과 에메랄드빛 바다, 그 위로 긴 꼬리를 남기며 가는 흰 유람선. "숨이 멎을 것 같은 풍경을 원한다면 아와아와푸히 쪽으로 가라"는 관광청 직원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눈앞 펜스에 '갑자기 땅이 꺼질 수 있다'는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저 앞 언덕에서 누군가 팔을 흔든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래, 가 보자. 엉덩이를 뒤로 빼고 반쯤 주저앉은 채 전진해 허벅지에 손을 대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땅이 무저갱처럼 꺼지면서 갑자기 나타난 90도 가까운 1200m 수직 절벽. 그곳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 몇 분이나 머물렀는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자연이 이토록 크고 무섭게 느껴진 적은 결단코 없었다.

호놀룰루에서 29분 날아온 카우아이는 와이키키 하와이와는 180도 다른 하와이였다. 수영복은 한 번도 입지 못했고, 닷새 중 나흘을 비 맞으며 산속을 헤맸지만 사람들에게 할 말이 하나 생겼다. "너희가 진짜 하와이를 알아?"

여행노트

1. 카우아이는 연 강우량이 1만㎜가 넘는 세계 최대 다우지역 중 한 곳이다. 이 비가 산을 깎아 협곡을 만들고 수많은 폭포가 강을 만들어 섬 전체를 열대 정원처럼 만들어 놓았다. '정원의 섬'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2. 호텔이 몇 곳 없는 데다 매우 비싸 호놀룰루에서 아침 비행기로 왔다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는 '하루 관광'이 대부분이다. 호놀룰루 여행사 및 한인 여행사인 엠(M)투어에서 판매한다. 문의 808-431-4328

3. 헬스조선 힐링여행사업부는 11월 5~12일 카우아이 트레킹과 오하우 휴식을 함께 하는 '카우아이 힐링 트레킹'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문의 1544-1984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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