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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을 관통하는 도로를 뚫을까 말까를 놓고 개발론자와 환경론자들은 날선 공방을 벌였다. 텍사스주 서쪽 끝 과달루페 산맥 얘기이다.
당시 개발론자들은 산맥의 총 길이가 40km나 돼 산맥 중간으로 시닉드라이브를 건설하면 이동에 걸리는 시간도 줄이고 관광도 보다 편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텍사스 주민들은 자연의 보존을 선택했고 과달루페 산맥은 이름이 주는 성스러운 이미지 만큼 자연적으로 잘 보존된 미국의 대표적 국립공원으로 남게 됐다. 산 정상 접근도로와 내부 관통도로가 없는 국립공원은 아마도 과달루페 뿐일 것이다.
텍사스 과달루페 하면 내게는 떠오르는 것이 몇가지 있다. 평원 위를 달리는 거대한 기차를 연상시키는 산맥과 칼스바드 동굴, 그리고 데보라 마베(Debora Mabe)여사다. 데보라 여사는 50대쯤 된 백인여성으로 뉴멕시코 남단 칼스바드 출신이다. 미주리주 콜럼비아에 도착한 지 몇 주가 지났을까 어느 여름날 내가 사는 듀플렉스의 초인종이 울렸다. 그 때만 해도 미국땅에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고 또 현지에서 만난 한인들은 미리 연락을 주고 만났기 때문에 누굴까란 생각이 퍼뜩 지나갔다.
문 앞에는 낯선 백인여성이 서 있었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성경책이 들린 그녀의 손을 보고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녀가 교인이라는 것을.. 매정하게 내치기가 뭣해서 집안으로 들여 차분히 그녀의 얘기를 들어봤다. 데보라는 자기와 함께 성경공부를 할 수 없느냐고 물었고 미국인 친구도 사귀고 그들과 얘기도 나누고 싶었던 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데보라 여사는 이따금씩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을 위해 시간을 내야할 때를 제외하고는 연수를 마치고 정든 콜럼비아땅을 떠날 때까지 매주 우리 집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이따금 친구들을 데려 올 때도 있었다. 그녀의 목적은 내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었지만 나는 미주리주 콜럼비아시와 미국의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고 점차 흉금을 터 놓는 대화도 나누게 됐다.
그리고, 2010년 7월 미국땅을 떠나기 전 마지막 만남에서는 오랜 교감을 나눴던 그와 헤어진다는 생각이 북받쳐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둘은 눈시울을 훔치느라 한동안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인종이 다른 친구와 헤어지면서 눈물을 보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스페인은 지난 1521년 무적함대를 앞세워 북미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던 아즈텍(Aztec)왕국을 허망하게 무너트린 뒤 377년 동안 미국 서부와 플로리다를 통치했다. 미국 전역이 영어권이지만 두 지역에서는 스페인어가 공용어로 통용되고 있고 웬만한 놀이공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는 영어에 이어 스페인어 안내방송이 나온다. 샌프란시스코, 플로리다, 엘파소, 산 미구엘, 라스베가스도 과달루페도 모두 스페인식 지명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텍사스 최북단, 텍사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엘 커피탄(el capitan, 2464m)이란 이름을 붙이고 앨 커피탄에서 뉴멕시코에 걸쳐 뻗어 있는 산맥을 과달루페(Guadalupe)라고 명명했다. 과달루페 산맥은 사막 위를 달리는 거대한 기차의 모양을 하고 있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평원 그래서 산맥은 더욱 도드라져 보이고 위엄이 서려 있다. 산호초처럼 길죽하게 뻗은 산맥의 길이가 무려 40km나 되고 이 때문에 산을 관통하는 도로 건설의 필요성이 더 시급하지만 산을 포함한 5700만평이 야생보호구역으로 지정돼(1978년)관통도로 건설이 무산됐다. 그 덕분에 과달루페 산맥의 자연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고 있다.
국립공원측은 "과달루페 꼭대기로 이어지는 도로를 건설하면 국립공원 방문객은 지금보다 최대 서른배는 늘어나고 공원의 예산도 열배 이상 증가하겠지만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보호구역을 설정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연이 철저하게 보존된 만큼 과달루페엔 인간의 흔적이 적다. 보통 등산로는 가지런히 정돈돼 있기 마련인데 136km의 과달루페 등산로는 자갈 바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비지터센터에서 가까운 테자스 트레일(Tejas)은 2550미터의 헌터스 픽을 왼쪽으로 돌아 테자스, 독 캐년(Dog canyon)까지 이어지는 10여 km길. 산호초가 융기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바위와 절벽들 인간에 때묻지 않은 대자연이 멋진 곳이다.
그리고 과달루페 주위로 치화환 사막의 황량함과 남쪽으로 멀리 델라웨어 산맥을 바라보는 뷰는 정말 놓치기 아까운 비경이다. 과달루페 산맥 서쪽엔 알칼리 레이크와 솔트레이크로 명명된 호수가 있었지만 물이 말라 거대한 평원으로 변했다. 물 마른 호수를 사이에 두고 멀리 보이는 과달루페는 한 폭의 그림 같다.
왜 과달루페인가?
전설에 의하면 언덕위에 나타난 성녀가 인디언 언어 Nahuatl로 "coatlaxopeuh"라고 자신을 밝힌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는데 본래 '사랑의 강'을 의미하는 아랍말이다. 스페인 문화권에서는 '과달루페'가 여자 아이 이름으로 인기 있지만 과달루페란 말 속에는 북아메리카 남부 아즈텍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가 녹아 있다.
"멕시코인들은 유난히 과달루페를 사랑하고 숭배한다" 패트리스 윈(Patrice Wynne)이 쓴 '과달루페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단군신화.한민족이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과달루페는 멕시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6세기 스페인이 함대를 앞세워 침략해 왔을 때 아즈텍 인디언들은 결사항전하지만 워낙 큰 기술격차와 무기체계의 열세를 뛰어 넘지 못하고 주권을 내주고 만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즈텍 번영의 상징인 테노치팃랜(Tenochititlan)오늘날의 멕시코시티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듯 파괴하고 그 위에 뉴-스페인의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 한편으로 인디언 사회의 제도와 문화에 대한 대대적 개조작업을 서둘렀다. 하루 아침에 조국을 빼앗기고 종교와 언어 마저 잃어버린 인디언 사회는 참담한 절망에 빠져 조타수 없는 배처럼 표류했다. 이 때 그들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것이 바로 과달루페 성녀였다.
과달루페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다. 아즈텍이 패망한 지 10년만인 1531년 12월 9일 이른 아침 인디언 후앙 디에고(Juan Diego)는 토착종교의 사원이 위치했던 한 언덕으로 가 만난 여인으로부터 "나는 동정녀 과달루페다. 주마라가 주교에게 나를 위한 성당을 지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뒤쪽에는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후광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요구를 거부하던 주교는 디에고가 가져온 증거를 보고난 뒤 언덕위에다 13일만에 과달루페를 위해 자그만 교회를 지었다. 이 일이 있은 뒤 10년만에 아즈텍 인디언 900만명이 가톡릭으로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내용이다.
디에고는 인디오이고 과달루페는 가톨릭의 성녀이다. 그날 디에고가 기도를 하기 위해 찾아간 대상은 옥수수의 여신이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가톨릭의 심볼 가운데 하나인 과달루페였으니 내용이 다분히 신화적이고 스토리의 비약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인디오들의 불행한 운명에 하늘이 움직여 구세주로 과달루페를 보냈거나 그들이(인디언) 믿어 의심치 않던 신들, 충성을 바쳤던 왕도 외세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데 대한 배신감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절망의 터널에서 작은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다고 여겼을 지도 모를 일이다. 1709년 과달루페가 나타났던 장소 부근에 과달루페 성당이(The Basilica of Guadalupe)세워졌고 1754년에는 로마교황청이 교서를 통해 과달루페를 아메리카의 여제로 선언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유럽의 정복자들은 드넓은 땅덩이 곳곳에다 자신들의 언어로 이름을 붙여나갔다. 산타페나 엘파소 같은 지명처럼.. 과달루페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과달루페란 어원을 추적해 가면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얼마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지 새삼 실감했다. 과달루페 탐방은 뉴멕시코 여행의 종점이었지만 미국 서남부 국경기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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