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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덴마크

덴마크 코펜하겐 : 지독하게 차가운 눈과 얼음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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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차가운 눈과 얼음의 도시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1월에는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나는 덴마크의 겨울을 존중한다. 추위는 온도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실제 기온보다 바람의 세기와 상대적 습도에 좌우한다.… 차고 끈적끈적한 11월의 첫 소나기가 젖은 수건처럼 내 얼굴을 치면, 나는 모피를 댄 캐퓨친과 검은 알파카 레깅스, 스코틀랜드식 긴 치마와 스웨터, 검은 고어텍스 망토로 소나기를 맞는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라고 말하는 덴마크 여자의 목소리에 조용히 밑줄을 그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머문 적이 있던 코펜하겐에서 내가 느낀 당혹스러운 추위 때문이기도 했다.

17년 전, 코펜하겐 티볼리 공원 근처의 작은 호텔에 짐을 내린 적이 있었다.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는 7월 즈음의 일이었으므로 나는 짧은 면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날 호텔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다가 한기를 느낀 나는 어쩔 수 없이 티볼리 공원 근처의 가게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을 주고 스웨터를 사야 했다. 나와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져 있는 올리브 그린색 계열의 스웨터였다. 한여름에 나는 그 스웨터를 입고 코펜하겐 도심을 돌아다녔다. 코펜하겐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 얼음 속에 가득 차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것은 밤 12시까지 태양이 떠 있는 코펜하겐의 짙은 코발트 블루색 하늘과 백야만큼 기이한 체험이었다.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코펜하겐의 지독한 겨울과 눈과 얼음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겨울이 아닌 때의 호이브로 소광장의 모습은 지극히 평화로운 코펜하겐을 보여준다. / 한영희 기자
코펜하겐의 지독한 겨울과 눈과 얼음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찬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은 건 말레이시아의 어느 리조트에서였다. 안온한 태양이 빛나는 파라솔 아래에서 이토록 추운 소설을 읽는 게 내겐 굉장한 아이러니로 느껴졌었다. 그 격차가 클수록 선크림을 잔뜩 바른 등에서 땀이 더 배어 나왔다. 눈 대신 스콜이 내리는 이 뜨거운 도시에선 '얼음' 같은 차가움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에어컨이 밤새도록 작동되는 호텔뿐이었다. 휴가 기간 동안 이 책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후 서울에 돌아왔을 땐, 나는 한동안 기침 감기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그것을 스밀라의 얼음 때문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서 축복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고독을 느끼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스밀라. 그린란드 원주민인 어머니와 스웨덴 의사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경계인이다. 언제나 떠날 것을 대비해 자신의 방을 호텔방처럼 꾸민 이 여자는 무리수를 광기의 한 형태라고 이해하며, 유클리드 기하학을 반복해서 읽는다. 서른일곱 스밀라. 민간 탐사단이 극지 탐험에 반드시 데려가야 하는 유능한 항법사이며 한랭수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얼음 전문가. 그리고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독특하다고 평가받는 매력적인 캐릭터.

뉘하운 항구. / 오윤희 기자

소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코펜하겐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소년이 추락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의 이름은 '이사야'. 스밀라의 이웃집 소년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실족사로 처리하지만 스밀라는 직감적으로 소년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소년이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스밀라는 죽은 소년의 집에서 발견해낸 편지와 아이가 비밀장소에 남긴 녹음테이프를 단서로 사건에 얽힌 비밀들을 하나씩 추적한다. 소년과 이웃에 살던 수리공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곧 이사야의 죽음이 사망한 소년의 아버지와 '빙정석 주식회사'의 그린란드 탐사와 관련된 일임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왜'보다 '어떻게'가 훨씬 더 중요한 소설이다. 두꺼워진 번역 때문에 문장은 종종 얼음처럼 미끄러져 버린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소설을 끝까지 읽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스밀라의 이런 독백들 때문이다.

"나는 수리공을 좋아한다.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환자, 외국인, 반에서 뚱뚱한 남자애, 아무도 춤추자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어린 소년의 죽음을 외면하지 못하고 끝끝내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멀고 두려운 항해에 오르는 한 인간의 마음을 아는 일임과 동시에, 기돈 크레머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만큼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세계에 편입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스밀라의 세계를 아는 것은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얼음과 눈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엿보는 일이며,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이 어떻게 물이 되어 가슴을 적시고 뜨거워질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처럼 매력이 깊은 존경심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녀는 기꺼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녀가 유년시절 야채나 빵이 아닌 몸을 따뜻하게 하는 기름진 고기를 먹으며 그린란드의 얼음 위에서 자라났다는 것은 이 여자가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시대의 많은 아이들이 베트남 필리핀처럼 다른 국적의 엄마를 두고 자라난 경계인, 즉 '디아스포라'들이라는 것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1993), '덴마크 올해의 작가상'(1992) 등 수많은 상을 휩쓴 문제작이다. 1997년에는 빌 어거스트 감독에 의해 'Smilla's Sense of Snow'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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