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는 ‘빛에 씻긴 섬’이다. 하얀 골목, 파란 교회당, 담장을 치장한 붉은 부겐빌레아마저 선명하다. 엽서를 보며 동경했던 바닷가 마을은 현실과 조우하면 더욱 강렬하다. 에게해의 탐나는 섬, 산토리니는 그런 눈부신 풍경을 지녔다.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렇게 썼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소설 속에서 에게해의 섬들은 현실을 꿈의 세계로 연결해주는 매개체다.

 

산토리니를 대표하는 풍경인 이아 마을. 흰색으로 치장된 가옥과 골목들이 인상적이다.

 

 

400개가 넘는 꿈같은 섬 중에서도 단연 매혹적인 곳은 산토리니다. CF, 영화, 엽서 속의 모습은 소문과 상상 속에서 더욱 선명하다.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산토리니가 그중 하나다.


잔영의 9할은 섬 북쪽 끝 ‘이아’에서 채워진다. 누구나 꿈꾸던 산토리니를 담아낸 마을이다. 화산이 터져 절벽이 된 가파른 땅에 하얗게 채색된 가옥 수백 개가 다닥다닥 붙었다. 푸른 대문의 집들은 흰 미로 같은 골목을 만들고 그 끝에는 파란 지붕의 교회당이 들어섰다. 그런 교회 수십 개가 꽃잎처럼 마을을 수놓는다. 이아에서는 아랫집 지붕은 윗집 테라스가 되고 사람들은 테라스에 누워 에게해의 바람을 맞는다. 앙증맞은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거나 노천카페에 앉아 달달하고 차가운 프라푸치노 한 잔을 마신다. 골목을 배회하며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이아의 석양이다.

 

  • 1 연인들은 이아의 에게해를 바라보며 영원을 약속하는 입맞춤을 나눈다.
  • 2 이아 마을의 노을. 해 질 녘이 되면 흰색 마을이 붉게 물든다.

 

 

해 질 녘이 되면 산토리니에 흩어져 있던 여행자들은 이아로 모여든다. 마을 너머 작은 섬 위로 해가 지고 붉은빛은 바다를 검게 물들인 뒤 하얀 마을 위에 내린다. 풍차가 있고, 십자가가 있고, 어깨를 기댄 연인들의 가녀린 입맞춤만이 있을 뿐이다.

 

 

하얗게 채색된 에게해의 골목

산토리니는 그리스인들에게 ‘티라’로 불린다. 페리 티켓에도 산토리니라는 말은 따로 없다. 키클라데스 제도 최남단의 화산섬인 티라의 번화가는 ‘피라’다. 어느 항구에 내리든 여행자들은 일단 피라에 집결한다. 테토코풀루 광장 주변에 그리스 전통식당인 타베르나(taverna)와 가게들이 몰려 있고, 아침녘 거리에 나서면 이곳 주민들이 갓 잡은 생선을 내다 판다.


피라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들지만 아직 정겨운 사람냄새가 가득한 곳이다. 만나는 중년의 남성들은 소설 속의 낙천적인 ‘조르바’를 닮았다. 섬 속 풍경과 따사로움은 그리스 본토인 아테네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절벽 위 호텔들이 운치 있지만 발품을 팔면 방 하나를 저렴하게 독차지하는 호사스러움이 가능하다. 에게해의 섬들은 6~8월이 성수기. 5월과 9월의 산토리니는 절반은 저렴하고 두 배는 한적하다. 섬은 가을을 넘어서면 을씨년스럽고, 겨울이면 매서운 바람과 함께 상가들이 문을 닫기도 한다.

 

  • 1 산토리니의 골목들은 눈이 부시다. 블루와 화이트가 대칭되는 색감은 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 2 골목에 산토리니의 기념품 가게들은 아담한 집들만큼이나 앙증맞은 모습을 하고 있다.
  • 3 구항구를 오가는 당나귀들. 500개가 넘는 계단을 가뿐하게 오르내린다.

 

 

추억의 당나귀가 오르내리는 구항구 쪽으로 티라의 골목들은 늘어서 있다.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그 끝없는 흰 골목들을 헤매는 게 산토리니 여행의 묘미다. 에게해를 바라보며 절벽에 늘어선 집들은 골목마다 다르고, 아담한 문과 창이 제각각이다. 파란 대문을 열면 낮은 카페와 갤러리가 숨어 있다. 흰 담벼락의 계단에 걸터앉아 ‘블루&화이트’의 눈부신 변주만 감상해도 하루 해는 짧다.

 

 

‘아틀란티스’의 전설이 서린 땅

매혹의 섬은 풍광만으로 치장되지 않는다. 섬에 서린 사연과 전설이 덧씌워져 감동곡선을 높인다. 에게해는 숱한 문명의 요람이었고 바다는 자양분이었다. 미노스, 이오니아, 시칠리아인들이 바닷가에 도시를 세웠고 산토리니에서는 고대 키클라데스 문명이 번영했다. 산토리니를 지금의 초승달 모양으로 만든 것은 수천 년 전의 화산폭발이었다. 섬을 가라앉게 한 화산은 전설을 만들고 신화를 끌어들였다. 그리스인들은 오랜 문명과 침몰을 이유 삼아 산토리니를 전설 속에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로 믿고 있다.

 

  • 1 절벽 위의 이아 마을. 산토리니는 화산폭발로 생긴 절벽 위에 마을들이 삶터를 꾸렸다.
  • 2 페리사 비치는 검은 모래가 인상적인 해변이다. 지중해의 바다에서 늘씬한 미녀들은 해바라기를 즐긴다.

 

 

산토리니에서는 분화구를 일주하는 투어에 참가하거나 페리사, 카마리 비치 등 해변을 찾을 수도 있다. 밤이 이슥해지면 포도향 가득한 그리스 술인 ‘우조(ouzo)’를 마셔도 좋다. 화산지형의 비옥한 땅에서 나는 산토리니 와인 역시 제법 명물에 속한다. 풍차가 도는 어촌마을이나 누드 비치 등 젊은 청춘들의 이색 해변을 원하면 에게해의 쌍두마차 섬인 미코노스 행을 택해도 괜찮은 선택이다. 미코노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머물며 살가운 풍경을 [먼 북소리]에 담기도 했다.

 

가는 길
아테네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테네에서 산토리니까지는 항공기와 고속 페리가 다닌다. 고속 페리는 4시간 소요. 섬에서의 이동을 위해서는 큰 짐은 아테네에 맡기고 떠나는 게 좋다. 신항구인 아티니오스(Athinios) 항구에 도착하면 버스를 이용해 피라로 이동한다. 피라에서는 섬 곳곳으로 버스가 다닌다. 경차 등도 현지에서 렌트가 가능하다. 이아, 피라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2박3일 정도가 필요하다. 산토리니와 미코노스간에도 페리가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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