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가 피렌체 말고 또 있을까. 한 시절 유럽의 부흥을 주도했던 번영의 자취들은 도시의 상징이 된 두오모로, 메디치 가문이 수 세기에 걸쳐 모아온 위대한 유산 우피치미술관으로, 산타크로체 교회나 피티 궁전 등 셀 수 없이 많은 역사적 유물로 남았다.


모든 영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

유형의 유물보다 이 도시를 빛내는 건 이곳에서 재주를 펼치고, 기량을 겨루고, 명성을 얻었던 이들의 흔적이다. “이제야 겨우 예술에 입문했는데,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다니!”라고 임종 직전에 고백했다는 미켈란젤로, 그가 죽어서도 돌아오고 싶어 했던 도시가 피렌체였다. 로마 교황청이 나이 일흔의 갈릴레오를 재판을 위해 불렀을 때, 세상이 그를 버린 순간에도 기꺼이 마차를 내주고 보호했던 유일한 도시. 그래서 피사 출신의 갈릴레오는 이곳 산타 크로체 성당의 미켈란젤로 옆에 묻혀 있다. 피렌체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쫓겨났던 단테. 교황의 간섭에 대항했다는 죄목으로 두 번이나 사형선고를 받고 도시를 몰래 떠났던 그는 그토록 그리던 이 도시로 돌아오지 못하고 객사했다. 뒤늦게 잘못을 뉘우친 피렌체 시민들은 그의 무덤을 되찾기 위해 아직도 라벤나 시민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토스카나 지방의 주도인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그 피렌체가 깃든 토스카나 언덕의 중세 마을들을 찾아가는 길은 그 모든 영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다. 토스카나 지방은 푸치니안드레아 보첼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만든 로베르토 베니니, 동화 [피노키오]의 고향이자 대리석과 와인, 올리브 오일의 산지다. 이 동네 사람들은 대리석 욕조나 화려한 침실 따위는 없어도 빵을 구울 수 있는 화덕 포르노와 와인 저장실인 칸티나만큼은 빠짐없이 갖추고 산단다. 와인뿐 아니라 자연의 멋과 향이 그윽한 농부들의 소박한 음식으로 세계의 미식가들을 사로잡고, 빼어난 풍경 사이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마을들이 박혀있어 가장 이탈리아다운 곳으로 평가받는 곳. 열심히 일한 만큼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다.

중세의 마천루를 연상시키는 산 지미냐노의 탑들


단잠에 빠진 고양이 한 마리


있는 그대로 엽서 속의 풍경이 되는 곳

르네상스의 영광을 지켜본 중세의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은 체르탈도(Certaldo)에서 시작된다. 피렌체에서 40km 남짓 떨어진 체르탈도는 언덕 꼭대기의 성벽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 땀을 쏟으며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올라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노쇠의 기운이 느껴진다. 12세기에 생겨난 이 마을에는 [데카메론]을 쓴 조반니 보카치오가 살던 집과 그의 무덤이 남아 있어서 마을의 중심지는 ‘보카치오 거리’라 불린다. 체르탈도를 벗어나 판콜레(pancole) 마을을 지나면 곧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풍경이 기다린다. 올리브 나무들과 포도밭의 완만한 구릉들이 황금빛 햇살을 받아 부드럽게 빛나고 있다. 격렬한 살기를 내뿜던 한낮의 태양이 온순해질 무렵이면 토스카나의 벌판은 그대로 엽서 속의 풍경이 된다. 올리브 나무의 초록빛 잎들이 햇살에 반짝거리고, 붉은 대지 위로는 포도 열매가 영글어가고, 색색의 화분이 걸린 작은 창을 가진 소박한 집들이 언덕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한 삼 년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그대로 눌러앉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포뮬러 원 경주에라도 나온 듯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로 마지막 3.5km의 도로를 통과하고 나면 곧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유럽에서 중세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마을로 꼽히는 곳으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중세로 되돌아온 것 같은 기분

이튿날 아침, 새벽의 푸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에 돌아보는 이 마을은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매력적이다. 작은 도시를 둘러싼 성벽과 성문,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높은 첨탑들. 붉은빛이 감도는 오래된 벽돌, 반들반들하게 닳은 돌이 깔린 길, 좁은 골목 끝 탁 트이며 나타나는 광장... 어쩌다 보이는 차들만 뺀다면 몇백 년의 세월을 건너 중세로 되돌아온 것만 같다.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의 풍경이자 현재 속에 살아 있는 과거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다 산타 마리아 성당 옆 탑으로 올라간다. 1311년에 지어진 54m 높이의 탑이다. 11세기에서 13세기 무렵, 산 지미냐노는 무역과 성지순례길로 번성했다. 그 시절 귀족들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쌓은 탑들은 전쟁에 대비한 망루나 요새로 사용됐다.

산 지미냐노 마을 건축물의 평균 높이는 3~4층에 불과한데 이 탑들은 그 높이가 10층~12층에 다다른다. 한때 이 마을에는 72개의 탑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겨우 14개가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해발고도 334m의 언덕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을 멀리서도 구별 짓게 하는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중세의 도시에서 만나는 마천루랄까. 탑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햇빛에 하얗게 바랜 것 같다. 나지막하게 엎드린 주홍색 기와집들과 높이 솟은 탑들, 그리고 마을을 둘러싼 토스카나의 초록 벌판...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 마을 산 지마냐노.

‘타임 슬립’을 한 듯한 감동에 젖어 탐욕스레 돌아다니던 도시를 떠나기란 쉽지 않다. 와이너리와 농장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은 한적한 길을 거쳐 산 도나토(San Donato)를 지나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마을은 볼테라(Volterra). 세계의 청춘들을 매료시킨 스테파니 메이어의 뱀파이어 소설 [트와일라잇]의 2부작 ‘뉴 문’에서 주인공 에드워드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위해 돌아가는 뱀파이어 왕족의 도시로 등장한 그 볼테라다. 산 지미냐노가 고운 처녀의 얼굴이라면 볼테라는 강인한 농부의 모습이다. 중세의 도시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밤, 토스카나 와인을 마시며 광장의 카페에 앉아보자. 먼 하늘가에 눈썹달이라도 떠오르면, 손을 맞잡고 달려가는 벨라와 에드워드의 그림자를 흘깃 스치게 될지도.

탑에 올라가 바라보는 산 지미냐노의 모습.


코스 소개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중부의 아펜니노 산맥과 티레니아해 사이에 위치한 지방이다. 고대 에트루리아 문명의 발상지로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다 갖췄다. 예술과 건축, 올리브 오일과 와인, 건강하고 토속적인 음식, 아름다운 시골 풍경 등등…. 당연히 수백 년 동안 세계의 예술가와 관광객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다. 주도는 피렌체. 걷다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빛 구릉에는 포도나무 밭과 올리브 나무들, 그 사이 깃발처럼 뾰족하게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들, 그리고 붉은 흙과 주홍색 기와를 인 작은 농가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피렌체 근교의 작은 마을 체르탈도에서 시작해 산지미냐노를 거쳐 볼테라에서 끝나는 2박 3일 코스는 총길이 48km. 평탄하고 완만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찾아가는 길
로마나 밀라노에서 기차나 버스로 피렌체까지 이동, 기차를 갈아타고 체르탈도로 간다. 체르탈도는 피렌체에서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여행하기 좋은 때
가장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 3월부터 5월, 9월부터 11월까지 도보여행을 즐긴다면 맑고 순한 날씨와 풍부한 자연의 색감을 즐길 수 있다. 1월과 2월에는 토스카나 주변의 많은 숙소와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한여름에 토스카나를 걷는 일만큼은 피하기를 권한다. 웬만한 인내력과 더위에 대한 집착이 없이는 견디기 힘들다.


여행 Tip
피렌체를 여행하기 전 읽고 가면 좋은 책은 필 도란의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 영화는 다이안 레인 주연의 [투스카니의 태양]. 다이안 레인이 토스카나에 반해 눌러앉는 뉴요커로 나온다. 토스카나를 여행하는 동안 들으면 좋은 음악은 안드레아 보첼리의 [토스카나]. 주변에는 ‘아그리투리즈모’라 불리는 시골 농장의 숙소들이 많으므로 천천히 머무르며 토스카나 농부들의 일상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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