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이곳에서 괴물이 자라나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는 압도적인 작품이다. 총 18권으로 완간되기까지 수많은 독자들이 조마조마해 하며 작가의 손아귀에서 쥐락펴락 놀아났다. 배경은 냉전이 종식된 직후의 독일과 동유럽.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일하는 일본인 뇌외과 의사인 닥터 덴마가 살인귀 요한을 붙잡기 위해 달려간 프라하에는 여관겸 술집인 ‘세 마리의 개구리’가 있다. 실험으로 태어나게 된 쌍둥이 요한과 니나의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친 곳이다. 이 작품의 열광적인 팬들은 바로 그 만화 속의 장소인 체독교 옆 ‘세 마리의 개구리’를 찾기 위해 프라하로 여행을 떠났지만, 그곳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화 속에서 그려지는 프라하의 풍경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세 마리까지는 아니어도, 한 마리의 개구리는 찾을 수 있다. 여관 겸 식당인 ‘초록색 개구리(U zelene zaby)’에도 역사적인 이야기가 숨어있다. 1621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 대항한 보헤미안 애국자 27명이 처형당한 장소이다. 그들의 목에 칼을 내리친 망나니 얀 미드라는 그들과 같은 심정이었기에 그날은 평소의 붉은 두건이 아니라 검은 두건을 쓰고, 가능한 한 고통 없이 죽도록 칼을 예리하게 휘두른다. 그의 단골술집이 바로 ‘초록색 개구리’인데, 그곳에는 그가 그날 고독하게 술을 마신 방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카프카적 악몽’의 실체, 벌레로 변신하다

카프카가 [변신]을 써내려간 곳은 어디일까. 음침하고 낡은 공동주택을 연상할 법하지만, ‘하우스배’는 유대인 거주지를 철거하고 새로 건설한 고급 임대주택이었다. 엘리베이터 시설까지 갖춘 최신식 신축건물의 꼭대기층에서는 블타바 강과 체후브 다리, 루돌프 황태자 공원이 내려다보였다. 심지어 체후브 다리 맞은편에 있는 민간수영학교에는 카프카 개인 소유의 보트도 정박되어 있었다. 그가 입주했을 당시 체후브 다리는 건설 중이었는데, 그 다리로 향한 파르지주스카 거리를 카프카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달려나가는 거리”라 불렀다. 공사 중인 다리 바로 앞에서 끝나는 넓은 길은 카프카에게 절망적인 질주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변신]은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당연히 회사에서는 해고당하게 되고, 그의 수입에 의존하며 그를 가장으로 우대해주던 가족들 역시 점점 그를 홀대하게 된다. 20세기 문학의 신화로까지 평가받는 이 작품을 밀란 쿤데라는 ‘검은색의 기이한 아름다움’이라 불렀다. 현재 하우스배는 헐리고, 그 자리에는 프라하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들어서 있어 맨 위층 레스토랑에서 내려다보면 [변신]을 쓰던 당시 카프카가 바라보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프라하를 '어머니'라 여겼던 카프카는 현재 체코의 가장 중요한 관광자산이다.

진흙으로 만든 괴물 골렘, 프라하의 흙이 되다

신구 시나고그의 다락방에는 아직도 골렘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1580년, 프라하의 유대인들은 심각한 위협에 부딪혔다. 타데우스라는 기독교 사제와 광적인 기독교인들의 유대인 탄압에 목숨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이에 랍비 레우 브라우흐는 신의 계시를 받아 기독교인들에 맞서기 위한 괴물 골렘을 만들었다. 진흙으로 만든 거대한 괴물 골렘은 타데우스와 기독교인들을 물리쳤으나, 스스로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진흙과 물을 섞어 빚은 뒤에 마법과 주문을 동원해 만든 인간과 비슷한 형상의 자동인형인 골렘은 이빨 안쪽에 부적이 꽂혀있을 때에만 생명을 얻을 수 있었는데 랍비가 그 부적을 꺼내는 것을 잊은 밤, 미쳐버린 골렘이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던 것이다. 골렘이 숨겨져 있었다고 알려진 곳은 신구 시나고그의 다락방이다. 1270년에 지어진 이곳은 현재에도 예배를 진행하고 있는 시나고그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며 중부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나고그이기도 하다. 지금도 1389년 반유대인 폭동으로 살해된 유대인들의 핏자국이 남은 벽을 볼 수 있다.

차페크 형제, 골렘 대신 로봇을 만들어내다

실제 로봇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어도, 로봇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으로 유명한 이는 소설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이다. 1920년에 발표된 그의 작품 [R.U.R - 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처음으로 로봇이라는 용어가 쓰였는데, 실제 이 단어를 처음 생각해낸 이는 카렐 차페크의 형인 요세프 차페크(Josef Čapek)라고 한다. 차페크는 체코어의 ‘로보타’에서 글자를 따서 로봇이란 낱말을 만들었는데, 로보타란 ‘강제노동’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1921년 초에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20세기 체코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동생 카렐 차페크와 유명한 화가이자 작가, 사진가이자 삽화가, 무대미술가인 요세프 차페크. 이 재주 많은 형제는 보헤미아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프라하로 진출했다. ‘차페크 형제들’이라는 공동 필명으로 작업하기도 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집을 중심으로 문학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이 살았던 이 집은 현재 차페크 형제의 기념관이 되어 있다.


[로봇]은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릴케가 그려낸 추하고도 여린 ‘보후쉬 왕’

릴케의 소설들은 주로 젊은 시절에 쓰여진 것들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이라는 평을 듣는 그는 시뿐 아니라 산문, 극, 소설 등 다양한 작품들을 써 냈다. 그가 스물네 살이던 해에 쓴 단편 [두 편의 프라하 이야기]는 민족주의 운동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의 프라하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곱사등이 청년 보후쉬는 ‘보후쉬 왕’이라는 냉소에 찬 별명으로 불린다. 그는 체코극장 맞은편 ‘국영 카페’에 모여 짐짓 떠들어대는 예술가들, 연극배우, 화가, 소설가, 서정시인, 대학생 주변을 배회하며 그들과 어울리려 애쓴다. 보후쉬 왕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인 곱사등이 도배장이 루돌프 므르바는 경찰의 첩자였는데, 체코의 비밀결사조직인 ‘옴라디아’에 침투하여 와해공작을 시도하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릴케의 소설 속 보후쉬 왕 또한 살해되지만 실존인물과는 사뭇 다르다. 추한 외모에 쉽게 상처받는 여린 성정을 감춘 그를 보고 나면 과연 괴물은 누구인지 다시 질문하게 된다. ‘국영카페’는 두 번째 이야기 [남매]에서 즈덴코가 첫 번째 이야기에서 보후쉬를 살해한 대학생인 레체크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인생을 이야기해주는 짧고도 강력한 쇼

프라하에 간 모든 사람들이 절대 놓치지 않고 보는 1위를 꼽자면 구시청의 천문시계(Staromestaromestsky Orloj)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매 시마다 20초간 진행되는 시계의 쇼를 보기 위해 늘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 있다. 정교하게 제작된 이 짧은 쇼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던져준다. 정각이 되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인형이 움직이며 종을 친다. 두 개의 창문에서는 12사도가 등장한다. 허영을 상징하는 거울을 보는 자, 돈지갑을 움켜쥔 유태인, 음악을 연주하는 터키인도 등장하여 죽음 앞에 이 모든 것이 소용없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유태인이었던 카프카는 어린 시절 이 시계속의 탐욕스러운 유태인을 보며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한다. 이 시계에는 끔찍한 전설이 있다. 1490년 천문학자 하누스(Hanus)가 이 시계를 만들었을 때, 시계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찬탄한 다른 나라와 도시에서도 같은 시계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이에 프라하 시의회는 다른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장님이 된 하누스는 자신의 걸작인 시계를 다시 만져보고 싶어했고, 그가 만지자 시계가 멈추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400년 이상 아무리 수리하려 해도 움직이지 않던 시계가 움직인 것은 1860년부터였다고. 사실 이 이야기는 1552년 시계를 수리하던 장인의 실수로 시계 제작자 이름이 잘못 기재되면서 생긴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 제작한 사람은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까를대의 교수였던 얀 신달(Jan Sindal)과 시계장인인 미쿨라슈(Mikulas)이고 만든 해는 1410년이라고 하는데, 과연 시의회가 장님으로 만든 것이 그들인지, 그런 일이 있기는 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구시청의 천문시계는 그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찬탄을 자아낸다.

체제에 의해 망가져가는 인간들, 그들을 부순 괴물들

트램을 타고 국립극장 옆 바로 다음 정류장인 우예스트(Ujezd)역에 내리면 계단 위에 세워진 조각상들이 보인다. 이것은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물’로, 공산주의가 몰락한 지 12년 뒤인 2002년 5월 22일에 공개되었다. 만든 이는 조각가 올브람 주벡(Olbram Zoubek)과 건축가 얀 케렐(Jan Kerel)과, 즈데넥 홀젤(Zdenk Holzel). 청동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뒤로 갈수록 부패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몸의 장기와 일부를 잃어버리고 몸의 부분들은 떨어져 나간다.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정치범들이 어떻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부서져갔는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정치범들, 즉 분명하게 감옥에 갇히고 처형된 이들뿐 아니라 표면적으로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갔으나 전체주의 하에서 파괴되어 간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다. 그들은 모두 희생자들이었다. 계단에는 숫자가 적혀있다. 체포된 사람들, 감옥에서 처형된 사람들, 국경에서 처형된 사람들, 망명자 등.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명이 걸린 숫자들이다. 체제는 괴물의 거대한 발로 사람들을 짓밟고 지나갔다. 그 뒤에 남은 이 작은 흔적은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의 단단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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