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인의 글입니다.
- 홍콩 오션파크의 핼로윈 체험방 ‘죽음의 숲’(Forest of Doom). 분장과 음향보다는 순식간에 등장하는 기척에 놀란다. / 홍콩 오션파크 제공
Hong Kong, 이라고 쓰고 홍콩, 이라고 읽는다. 영문도 한글도 나라 이름의 절묘한 라임에 절로 콧소리가 나지 않는가. 어딘가 묘하게 디지털적이면서 또 어딘가 묘하게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동시에 드는 건 어쩌면 홍콩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운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청일전쟁 이후 근 100년간 영국에 할양되었던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되어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라 불린다. 물론 그렇게 긴 명칭으로 또박또박 이름 부르는 자들이야 뒤늦게 주인 행세에 나선 본토인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시원하게 쇼트커트 헤어를 하고 컬러풀한 원피스를 입은 채 선글라스로 얼굴 절반을 가린 세련된 여성의 이미지로 홍콩을 꽤 오래 선망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인천에서 3시간 반…. 홍콩 거리 곳곳에서 우리네 장마철의 끈적끈적한 기후가 훅 하니 끼쳐왔다. 30도를 훌쩍 웃돌았다. 입고 갔던 서울 차림새에 금세 땀이 배어들었다. 홍콩 전역을 다니는 버스의 92%를 차지한다는 색색의 2층 버스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에 띄었다. 특이한 것은 버스뿐 아니라 택시 외관이 다양한 종류의 광고 시트지로 발라져 있다는 점이었다. 정신 사납게 이게 뭔가 싶다가도 흥미로운 볼거리와 읽을거리에 일단 시선이 가 머무니 내 안의 아이디어랄지 어떤 발상 같은 게 반짝 빛났다가 사라지는 듯도 했다. 그래 그 찰나, 그 별 같은 순간을 일컬어 여행의 어떤 자극이라고 한다면 나는 걷는 내내 앞을 보지 않고 위를 빤히 올려다보는 습관으로 심히 반동이 되었던 것 같다. 1층은 온갖 명품관이 차지한 채 먼지로 까맣게 뒤엉킨 구형 에어컨들이 다닥다닥 그 위층들을 이어나가던 낡은 건물들의 연식이 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젖혀대고는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 부조화 속에 조화를 일궈버린 건물들 사이에서 젊은이들을 겨냥한 복합 쇼핑몰인 타임스 스퀘어를 찾아들어갔다. 자고로 음식 하면 광둥요리가 최고라고, 안 먹어본 것도 눈 질끈 감고 다 먹고 오라고 조언을 해준 이가 있어 13층에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들어갔다(Lei Garden. Shop no. 1003. 전화 852 2506 3828). 생선부터 고기까지 코스가 다양했는데 가짓수에 비해 양이 적당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한약재와 닭발을 주 메뉴로 끓여낸 요리와 후식으로 나온 대추 양갱이 내 스타일이긴 했다. 와우, 홍콩 사람들도 닭발을 먹는군요! 우리네와 달리 희디흰 접시에 유유히 그 매끈한 닭발을 얹고 기다린 젓가락으로 조신하게 그 발에 붙은 살을 바르는 옆자리 여자들에게 연신 눈이 갔다. 원형 종이 위에 반듯한 네모로 얹어 나온 대추 양갱은 따끈했고 쫀득했고 단맛이 적었음에도 대추 향이 물씬했다. 양갱을 집어내고 난 자리에 끓인 대추차 색 네모가 반듯반듯 묻어나 있었다. 신선한 음식만이 품어낼 수 있는 온기의 증거. 흰 액자에 끼워 넣으면 그 자체로 작품이 될 거예요. 유독 친절했던 종업원도 그 순간만큼은 난감함을 못 감췄지만 덕분에 구겨지지 않게 잘 싸줬으니 그 밤 나만의 홍콩 여행 기념물이 완성되었음을 그는 짐작이나 할까나.
묵고 있는 숙소 근처에 아시아 최대의 테마 마크가 있다고 하여 다음 날 아침 일찍 운동화 끈 단단히 조여 묶고 나섰다. 1977년 개장한 홍콩 오션파크는 세계적인 수준의 해양생태계 테마파크로 그 총 면적이 여의도공원의 세 배쯤 된다고 했다. 입구부터 노란 호박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지난 2000년부터 14년간 이어오고 있다는 핼러윈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는데 특수한 분장과 특별한 복장으로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기괴한 모습의 귀신들이 흔했다. 혹시 홍콩 귀신 무서워하세요? 시즌을 맞아 특별히 핼러윈을 테마별로 체험할 수 있는 방을 여럿 만들었다기에 줄을 섰다. 약한 척 손을 든 나였지만 웬걸, 각종 분장을 한 핼러윈 귀신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커진 동공으로 악을 쓰는 앞선 사람들에 반해 나는 무척이나 덤덤한 심장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귀신도 한국산이 가장 공포스럽다는 믿음을 여전히 떠올리는 까닭일까. 핼러윈 시즌에 추가 투입되는 인력이 1000명이나 되고 이들의 교육을 할리우드에서 파견 나온 전문가들이 전담한다니 어쩌면 말라버린 내 감수성이 문제일 수도 있을 터.
해안가를 눈요기시켜 주는 호박 모양의 케이블카와 오션 익스프레스 열차는 이곳에서 땀을 식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깜찍한 장소다. 특히 테마파크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니, 폴짝폴짝 뛰게 하는 식당 한 곳을 추천하라면 단연 턱시도식당(Tuxedos Restaurant)를 꼽겠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수족관에서 걷고 먹고 구르고 수영하는 펭귄들을 실컷 구경하며 식단을 고를 수 있게 해두었다. 메뉴 또한 피자 돈가스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 부담 없는 접시들을 꽤 착한 가격에 선보이고 있다. 펭귄 모양을 한 피자는 시켜놓고도 아까워서, 뜯어먹기가 미안해서, 그대로 포장해왔다는 후문. 한국어 안내가 되어 있으니 홍콩 오션파크로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홈페이지를 미리 둘러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왜? 넓어도 너무 넓으니까(kr.oceanpark.com.hk/kr/home).
- 핼로윈 호박으로 장식한 그랜드 아쿠아리움. / 홍콩 오션파크 제공
늦은 밤 홍콩 란콰이펑의 한 베트남식 술집에서 한국 걸 그룹의 노래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걸 들으면서 맥주 몇 병을 마셨다. 배가 불룩한 백인들이 뒤뚱뒤뚱 제 배를 이기지 못하고 느릿느릿 걷는 데서 낮에 본 펭귄들이 오버랩된 건 왜였을까. 펭귄과 판다, 휴대폰 간단 메모함에 이 피읖으로 시작하는 동물 둘의 이름을 쓰고 또 썼다. 다시 홍콩이라면 그땐 이 둘을 사랑하기 위해서 떠나야지. 여행을 반복할수록 확실히 알게 되는 한 가지. 목표가 소박할수록 목표물과의 관계는 더없이 깊어진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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