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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쿠바

쿠바 : 음악을 사랑하는 구닥다리, 그게 너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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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수도 아바나

쿠바가 개방된다. 쿠바에 변화가 온다. 쿠바인들에게는 개방이 그 무엇보다 기다려지는 변화였을지 몰라도, 쿠바를 사랑한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피하고만 싶었던 단어가 아마 변화였을 것이다. 쿠바는 늘 과거에 갇혀 있었다. 조금 많이 낡았고 조금 많이 구식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돌아가는 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하나 그게 사람들이 쿠바를 사랑한 이유였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쿠바의 모습은 사진가들을 설레게 했다. 쿠바 외에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풍경. 한 번쯤은 접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쿠바의 모습과 이별일지도 모른다. 작년 말 오바마 정부가 발표한 규제 완화 선언과 함께 그동안 꽁꽁 닫혀 있던 개방의 문이 활짝 열릴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이자 쿠바의 모든 것. 여행자들이 떠올리는 바로 그 이미지를 모두 갖춘 곳이다. 쿠바노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소문의 진상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바나에 도착한 첫날 밤, 내 방 바로 옆 골목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밤새도록 춤을 추며 파티를 했기 때문이다. 골목골목마다 벌어지는 이런 동네 파티는 쿠바에서 쉬이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쿠바 말레콘의 석양 / 케이채 제공
미국식 클래식한 자동차가 서있는 쿠바의 뒷골목.
미국식 클래식한 자동차가 서있는 쿠바의 뒷골목.
그런 뜨거운 환영을 뒤로하고 처음 찾았던 곳은 아바나의 유명한 해안가 말레콘(Malecon). 과거 국내에서 유명했던 모 광고에 나왔던 것처럼 파도가 도로까지 거세게 몰아치지는 않았지만 쿠바에 도착했다는 현실을 실감하기에 말레콘의 석양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노랗게 마지막 빛을 뿜어내는 태양 속 파도가 내 마음을 모두 적셔버릴 만큼 오랫동안 그 아름다운 광경을 사진으로 담고 나서야 진정 깨달았다. 내가 지금 쿠바에 있다는 그 사실을.

쿠바 하면 떠오르는 위대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인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헤밍웨이는 쿠바를 사랑한 남자였다. 위치적으로 쿠바에서 무척이나 가까운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에서 자신의 보트를 타고는 아바나로 입항해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그가 장기간 거주하며 글을 썼던 호텔방은 박물관이 되었고, 그가 즐겨 찾던 술집들은 아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이 되었다. "나의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서, 나의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에서"라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그리고 이는 내게도 진실이었고 또 진리였다. 쿠바에서 나의 모히토도 라 보데기타에서, 나의 다이키리도 엘 플로리디타에서 마셨다. 헤밍웨이는 나의 노인이었고, 말레콘은 나의 바다였다.

헤밍웨이보다 쿠바에서 더 유명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아니 사실 쿠바 그 자체보다도 크고 더 거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쿠바와 전혀 상관이 없는 곳에 가도 당신은 그의 이미지를 볼 것이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그의 얼굴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바로 체 게바라. 쿠바의 혁명을 이끌었던 남자. 부와 명예가 아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남자.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고도 안주하지 않고 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전장으로 떠났던 그는 세계적인 영웅이자 쿠바의 영웅이다. 쿠바의 도시 곳곳에는 체 게바라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그가 남긴 말들이 쓰여 있다. 시내의 관광품 가게들에는 대부분이 체 게바라에 관련된 것들이다. 아바나의 상징적인 혁명 광장에는 체 게바라의 얼굴이 크게 건물의 벽을 메우고 있다. 체 게바라가 원했던 혁명의 결과가 지금 쿠바의 모습이었을까? 쿠바의 거리를 배회하며 가끔 자문하고는 했다.

쿠바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누가 뭐래도 역시 '아메리칸 클래식'이다. 1950년대를 대표하던 아름다운 미국산 자동차들 말이다. 혁명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단절되며 수출입이 막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론 당시엔 최신 자동차들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정작 미국 본토에서는 볼 수 없는 클래식이 되어 쿠바 도로를 누비게 되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생쌩하게 달리는 이 멋진 자동차들. 그리고 그 자동차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옛 스페인 점령기 시절의 아름다운 건축물들. 낡고 제대로 수리가 안 되어 무너져내려 가고 있는 것도 많지만 오히려 그럼에도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 신기할 노릇이다. 오래된 자동차들과 건물들이 빚어내는 조금은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화려한 색감들은 쿠바 사람들의 성향을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는 듯하다.

느긋하며 너무 열심히 일하지는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분명한 한 가지는 오늘 밤은 춤추고 노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일단 내일로 미루자. 미뤄놓고 생각하지 말자. 내일 일은 내일 고민하면 되니까. 그렇게 밤마다 펼쳐지는 춤과 음악의 향연에 진통제라도 맞은 듯 세상 모든 일은 평안해지고는 했다. 그래 쿠바는 그런 곳이었다. 앞으로 어디로 갈 건지보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가 더 중요한. 지금 이 순간만을 즐겨야만 하는 곳.


쿠바 수도 아바나

 ! 여행정보

쿠바 가는 법 :한국에서는 직항이 없기에 두 가지 방법으로 갈 수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쿠바행으로 갈아타거나, 멕시코의 멕시코 시티 등 중미 도시들에서 쿠바로 향하는 비행편을 운항하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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