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지금 나는 수많은 문화와 인종이 섞여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도시 런던에 살고 있다. 런던에서 길을 잃어가며 나를 찾으면서 말이다.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내가 런던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어쩌면 테이트 모던의 7층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인트 폴 성당과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아오른 크레인이 합주를 이룬 런던 풍경을 보면서 나는 ‘이 도시는 옛것을 함부로 부수지 않는구나. 천천히 고치면서 새로운 문화를 더해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도 나를 깨부수고 다시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나’를,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었다.

런던에 오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는 정답이나 정도가 없고,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도 저마다 다르다. 내가 내 삶과 제대로 마주하기에는 런던만한 도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1)
티보다 커피, 커피, 커피!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Mason에 가면 크리스마스 티를 마실 수 있다. 홍차와 생강, 클로브,상큼달콤한 오렌지 껍질이 들어 있어 스파이시한 향이 나는 크리스마스 티는 추운 겨울에 잘 어울리는데, 나는 이 차를 매우 좋아한다.

가끔 프레시 민트티, 엘더플라워 레모네이드를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영국의 티가 아무리 맛있다 해도 나는 역시 커피가 제일 좋다. 커피에 관한 한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래서 맛있는 커피를 내주는 카페를 찾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다.

런던의 커피는 다른 유럽과 마찬가지로 진한 맛이 특징. 카페 네로나 프레타망제의 커피는 스타벅스에 비해 훨씬 더 진하다. 저지방 우유를 넣으면 스키니 라테Skinny Late 혹은 스키니 카푸치노Skinny Cappuccino라고 부르는데, 런더너들은 호주에서 만들어진 진한 라테와 부드러운 카푸치노의 중간 맛인 ‘플랫 화이트Flat White’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곧이어 나 또한 중독.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1.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나의 아지트 겸 카페. 조용한 공간과 깔끔한 커피 맛, 그리고 시나몬 번즈 등 카페의 필수 요소를 제대로 갖춘 곳이다. 골든 스퀘어에 위치한 노르딕 카페는 영화 <카모메 식당>처럼 세련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에그 버터와 포테이토 파이는 가벼운 점심으로 딱이다.
Add Nordic Bakery, 14 Golden Square, W1F 9JF Tel 44 20 3230 1077
URL www.nordicbakery.com Station Piccadilly Circus

Monmouth Coffee 몬마우스 커피
2. Monmouth Coffee 몬마우스 커피
런던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 90% 이상이 몬마우스 커피빈을 쓸 정도로, 이곳의 커피맛은 명성이 자자하다. 2주에 한 번씩 커피빈을 구입할 정도로 커피홀릭인 나에겐 없어선 안 되는 곳이다. 패키지도 예뻐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도 그만이다
Add Monmouth Coffee Company, 27 Monmouth Street, WC2H 9EU
Tel 44 20 7379 3516 URL www.monmouthcoffee.co.uk
Station Covent Garden

Flat white 플랫 화이트
3. Flat white 플랫 화이트
런던의 베스트 커피라고 생각하는 커피숍. 테이크아웃을 하면 종이컵에 이름을 써주는데, 이젠 내 이름이 알리스인 것도, 내가 언제나 카푸치노를 마신다는 사실까지 기억한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
Add 17 Berwick Street, Soho, W1F 0PT Tel 44 20 7734 0370
URL www.flat-white.co.uk Station Oxford Circus


‘유럽에서 현지인이 되어 살아보기’를 목표로, 겁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부부. 그 나라의 진짜를 경험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이름마저 낯선 ‘우프(WWOOF)’! 8개월 동안 8개국을 누비며 느꼈던, 부부의 우여곡절 시골생활을 이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들이 전해주는 생생한 이야기에 매달 귀 기울여보자.



+ 가자! 호빗 마을로!

“일주일 뒤면 우리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 같은 집을 지을 수 있겠지?”

집짓기 워크숍에 참여하기로 한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영국 웨일스의 Clunderwen역에 도착했다. 정말로 손꼽아 기다리던 순간이다. 우프로 농장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지만, 생태건축, 목공, 수공예 등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하나쯤 배워가야지 생각했었다. 흙과 나무집에서 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을 전했을 때 미동조차 없었던 영글은 몇 년 전 우연히 인터넷에 ‘호빗 하우스’를 검색했다가 그런 집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 호기심에 북마크를 해 놓았다고 한다. 마침 여름에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었고, 선착순 10명이었던 코스에 우린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다. 


호기심을 자극한 호빗 하우스 이미지(출처 : www.simondale.net)   /   우리의 커뮤니티 공간


호스트인 ‘자스민’과 ‘사이먼’ 부부가 사는 곳은 ‘Lammas village’라는 에코빌리지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 마을 샤이어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설렘을 안고 픽업을 나온 ‘마씨’를 만나 강원도 산골 같은 좁은 길을 따라 30분을 넘게 달리니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건만 마을은커녕 집 한 채도 보이지를 않는다. 군데군데 캐러밴이 몇 개 있을 뿐. 샤이어를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알고 보니 이 마을에는 고작 9가구만 들어와 있고, 땅이 넓어서 그마저도 흩어져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저 바람뿐 일 거라 생각했던 경험인데 이렇게 인연이 될 줄이야. 워크숍의 호스트인 자스민은 우리의 메일을 받고는 매우 걱정스러운 답변을 보냈었다.

‘정말 멀리서 오는 것 같은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물론 환영한다. 단, 캠핑장은 매우 기본적(basic)인 수준이고, 음식도 매우 심플하다, 그리고 영국 문화가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깨끗한 샘물이 있고, 기본적인 샤워가 가능하다.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해도 나고 비도 오고, 춥고 덥고 그렇다.’

우리가 이 코스 때문에 한국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문화적인 것, 배우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지만 일주일간의 캠핑 생활이 걱정이 되긴 한다. 스페인에서 ‘basic’ 이라는 것에 호되게 경험을 했었던지라 나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탈리아에서부터 들고 온 단돈 24유로짜리 텐트로 머리끝까지 꽉 차오른 배낭 양옆에 은빛캠핑매트를 말아 끼워놓으니, 뒤에서 보면 사람은 안 보이고 마치 로봇 같았다. 


우리가 텐트 치고 7일을 보낼 이곳은 정말 basic 중의 basic이다. 경사진 땅이라 텐트를 칠만한 평지도 마땅치 않고, 작은 임시 건물에서 모두가 함께 먹고 씻고 쉬고 다 해야 한다. 수도꼭지 한쪽은 지하수, 한쪽은 모아둔 빗물이 나오는데, 지하수는 음식을 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 규칙이다. 하여간 지하수건 빗물이건 잘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이 함정. 샤워는 빗물을 받아서 한참을 끓이거나 팩에 넣어 햇빛으로 데워서 사용해야 한다. 당연히 화장실도 재래식이다. 소변은 그냥 자연에서 해결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음식이다. 뭐가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를 않았는데, 음식이 들어 있다는 서랍을 열어보니 다 썩어가는 양파와 비트, 감자 한 두 개가 끝이다. 그 흔한 달걀도 없다. 지금 상태라면 고작 포리지(오트밀 죽)와 쌀, 카레 가루로 연명해야 한다. 아니 여기서 어떻게 일주일을 지내라고!!!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이곳에 봉사자들이 꽤 와 있다는 거다. 각자 텐트 또는 캐러밴을 가지고 와서 집을 짓는 것을 도우며 배우고 있다. 짧게는 몇 주일인데, 길게는 2~3년도 머문다고 한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어찌 그리 오래도록 봉사를 할 수 있는지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마을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기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까. 뭣도 모르고 온 우리는 대체 무슨 인연인 걸까.

첫날밤부터 비가 내리고 춥다. 폭이 120㎝인 텐트 안에 둘이 꼭 붙어 누워 타닥타닥 텐트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제법 낭만스럽다 느끼며 밤잠을 청했다. 잠결에 배낭 안에서 주섬주섬 겉옷을 꺼내 덮었다. 새벽공기가 한겨울 날씨 마냥 으스스한 기운이 살을 파고든다. 지독한 영국 감기에 또 걸리면 큰일인데…….


+ 새로운 시선을 선물 받다

다음날 오후부터 코스가 시작되었다. 우리를 포함해 워크숍에 참여하는 봉사자 10명은 자스민네 집과 마을을 돌아보며 라마스빌리지 설명을 들었다. 자스민과 사이먼은 둘째를 임신했을 때(2009년) 이 마을에 들어왔다. 2003년에 지은 첫 번째 집도 첫째가 태어나고 지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도 살 수 있는 세 번째 집을 짓고 있는데, 우리는 그 일을 도우면서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람에 따라 집을 새로 짓는다니, 재미있는 삶이다. 자신이 짓고 있는 건물과 사는 집을 보여주며 설명해주는 기분은 어떨까.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도 언젠간 이런 삶을 살 수 있겠지? 

자스민과 사이먼은 아직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예술성은 물론이거니와, 일찍부터 이런 새로운 삶을 선택한 용기와 의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비주얼 임팩트를 고려한 자스민의 집. 경사면을 이용한 반지하 공간으로, 정말 멀리서는 집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군용 벙커라고 해도 믿겠다.

집 둘레에 유리온실을 만들어 정원, 빨래건조, 야외목욕탕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이 마을이 특별했던 것은 영국에서 계획허가(Planning permission)를 받아 새롭게 만들어진 최초의 에코빌리지라는 것이다. 땅을 기반으로 환경에 영향을 최대한 미치지 않고(Low-impact) 살아가는 대안적 모델로 허가를 받음으로써 이 분야에 대한 시금석이 되었다. 건물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연재료로 지어지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한다. 자스민 부부의 집 역시 뒷산에서 베어온 나무와 주변의 흙을 파서 지어진 것이다. 창문은 유리공장에서 남은 자투리를 공짜로 얻어 와서 만들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커뮤니티 허브 말고 공용공간은 없다. 공동으로 어떤 사업을 한다든지 그런 건 없고 각자가 생업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공동체를 떠올렸을 때는 꼭 뭔가를 같이 해야 한다고 여겼었는데, 그건 정말 틀에 박힌 생각이었다.


새로 짓는 중인 집의 그림. 아이들이 자신의 방을 직접 디자인하였다.

마을의 유일한 공용 공간인 커뮤니티 허브


물론 허가를 받는 것에는 정말 힘든 과정이 많았다고 한다. 표준을 따르지 않는 형태의 건축물을 짓는 데다가, 허가를 받으려면 마을의 운영에 대한 현실적인, 자세한 계획이 필요하다. 게다가 ‘Visual impact’라는 항목이 있어서 건물을 지을 때 멀리서 안 보이게 지어야 한다. 나무와 수풀을 울타리로 활용해 집을 잘 가려야만 한다. 허가를 받았다 해도 끝이 아니다. 계획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5년 후에 점검을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누구든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데, 방어를 못 한다면 건물을 허물어야 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 집도 소송을 당해서 몇 년 동안 씨름을 했단다.

워크숍이라 하여 ‘아마 풍부한 자료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을 거야, 우리 배낭은 더 무거워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강의실도, 페이퍼도, 영상자료도 내가 기대했던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걸 듣고 이해하고 말하고 싶은데, 잘 들리지도 않는 영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집과 환경, 우리의 비전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니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린다.

워크숍의 주제는 ‘Living in the landscape’.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풍경 속에서 살아가기’이다. landscape는 단순히 풍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생태계, 구조물, 환경 등의 요소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오전에는 ‘*Permaculture’의 원리와 디자인 방법을 배우고, 오후에는 밖으로 나가 집 짓는 일을 돕는다.

첫날의 주제는 랜드스케이프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자스민은 간단히 네 가지 관찰 방법에 관해 설명을 하더니 텅 비어 있는 넓은 들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퍼머컬쳐(Permaculture)란? 

영속적이라는 뜻의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의 합성어로 식량, 토양, 수자원, 에너지, 주거지 등 인간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기 위한 시스템을 자연 생태계와 조화롭게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다시 말해 환경, 생태, 농업을 하나로 통합하여 지속 가능한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황량한 벌판에서 무엇을 찾으라는 걸까

아날로그 수업은 정말 오랜만이다. 딱딱한 우리나라의 수업들과는 달리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쉽고 재미있게 강의를 진행하는 자스민. 기초적인 원리만 알려주고 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40분 동안 좀 전에 알려준 방법으로 여기를 관찰하세요. 먼저 10분은 직관적으로 첫인상이 어떤지, 경계를 걸어보며 어떤 느낌을 받는지 보세요. 그다음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실만을 보세요. 어떤 동식물이 있는지, 토양은 어떤지, 어떤 건물이 있는지요. 손끝의 바람을 느껴보세요. 그리고는 상상력을 동원하세요. 사람이 살기 전에는 어땠을지, 그 후는 어땠을지, 계절, 시간에 따라서는 어떻게 변할지 생각해보세요. 마지막은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으시고,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해보세요. 가만히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굴러다녀 보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무엇이든지요.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해요. 저희도 집을 구상하면서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몇 달을 지내보았어요. 처음에는 아무 느낌이 없다가도 편안해지는 공간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요.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졌더라도 개인적으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다른 곳을 찾든지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겠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어떤 공간을 자세히 관찰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땅에 던져진 경험조차 별로 없었던지라 굉장히 당황스럽다. 우리는 여기서 40분 동안 뭘 해야 할까. 나름 천천히 관찰하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도무지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별로 없다. 그저 바람이 많이 불고, 춥고, 이름 모를 풀들이 서너 가지 보인다는 것 밖에는. 상상력을 동원해 봐도 얼마 전 보았던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전쟁 모습만 생각날 뿐이다.

40분이 지나 흩어져 있던 팀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비가 오면 물이 어떻게 흘러갈지, 사람이 살았던 공간이 있는지, 이쪽과 저쪽의 식생은 어떻게 다른지. 역시나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우리의 상상력과 시각에는 한계가 있는 걸까? 나름 자연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하며 살았었는데. 분명 어릴 때부터의 교육과 환경의 차이일 거라고 위로해본다.


오후에는 사이먼과 함께 집 짓는 작업에 돌입한다. 돌로 벽을 쌓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 거지 공주 박정미. 그녀는 지금도 여행 중이다.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는 퍼머컬쳐 디자인의 첫 과정을 실습했다. 집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다. 랜드스케이프의 요소들과 집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것을 마인드맵으로 그려보았다. 굉장히 쉽고 단순한 작업이지만, 생각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정말 큰 것이었다. 지금까지 물과 전기, 가스 등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 여겼지 그것이 어디에서 올지 궁금해 본 적이 없다. 퍼머컬쳐 디자인의 핵심은 정말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해본다는 것이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주변 환경을 이용하여 물과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찾아본다.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지금까지 주어졌던 모든 것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상하수도, 전기, 가스 연결이 끊어져 버린다면 우리의 도시는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사막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이 마을에서는 식수로는 지하수를 사용하고, 그 외의 용도로는 빗물, 수로를 통해 내려오는 물을 사용한다. 전기는 소형 수력발전기와 태양광 발전으로 얻는다. 이런 곳에 10명의 워크숍 참여자가 왔으니, 당연히 물이며 전기가 남아날 리가 없다. 빗물이 동나서 씻을 수도, 설거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며칠 동안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하수 펌프가 작동하지 않아 식수도 없다. 결국은 언덕 아래의 물가로 내려가서 물을 길어오고, 연못에서 발가벗고 찬물로 몸을 씻어내야 했다. 춥고 불편했지만 자연 속에서 몸을 씻어내는 상쾌함을 잊을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전기 쓸 일이 거의 없으니까 오히려 불편함이 없다. 집 안에 전자제품이라고는 핸드폰밖에 없고, 전기드릴이나 집짓기에 필요한 장비를 사용할 때만 전기를 쓴다. 냉장고도 없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이다.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기 위해 우유를 사 왔지만 얼굴에 근심이 내려앉았다. 그때 봉사자 ‘맥스’가 우유를 들고 안절부절못하는 우리에게 천연냉장고가 있다며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엔 구덩이가 파여 있고 그 안에는 아이스박스가 들어 있었다. 나름 성능이 괜찮다. 우유를 묻어놓고 며칠을 먹었다.


# 거지 공주, 박정미

“안녕하세요!” 

저 멀리서 한국말이 들린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이해 준 건 뜻밖에도 한국 사람이었다. 당연히 여기에 온 한국인은 우리가 처음일 거로 생각했는데, 이런 곳까지 찾아오는 특이한 사람이 또 있을 줄이야. 영글과 동갑인 언니인데, 단단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가 딱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물론 놀라기는 그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10월부터 ‘돈 없이 살아보기’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 그래서 우프나 이런 생태공동체 같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지내는 중이야. 여기서는 워크숍 참가비를 안내는 대신에 한 달 동안 일을 돕기로 했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8개월 동안 우프를 통해 노동력을 제공하고 숙식해왔다고. 돈 없이도 어디까지 배움을 얻을 수 있을지 실험 중이고 그래서 라마스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전기 없이 산다는 사람은 봤어도 돈 없이 산다는 건 상상해 보지 못했다. 물론 무전여행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 여기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이다. 게다가 1년 동안이라니.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꼬치꼬치 궁금한 것들을 캐묻는다.

“이동은 어떻게 해? 우프를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먹고 자고?

“런던에서 자전거포에서 일을 해주고 거기에서 자전거를 조립해서 타고 다녀. 잠은 카우치 서핑이나, 자전거 여행자들끼리 서로 재워주는 커뮤니티를 통해 해결하고, 음식은 체인점 같은 곳에서 영업이 끝나면 밖에 버려놓는 것을 먹었어.”

“뭐! 도둑고양이도 아니고!”

잠은 그렇다 치고 먹는 걸 그렇게 해결한다는 건 충격적이다. 런던에서 빈집점거 운동(스쾃 : squat)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지냈는데 그때 배웠다며, 이런 걸 ‘스킵다이빙’이라고 한단다. 멀쩡한 음식들을 버리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돈이 없이 지내보니 저절로 친환경적으로 살게 돼.”

이전에는 전혀 환경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단다. 돈 없이 공주처럼 산다고 자기를 ‘거지 공주’라고 했고, 다른 봉사자들에겐 한국어 발음으로 ‘공주님’이라 부르라 했다. 뭔지도 모르고 다들 공주님이라 부르는데 들을 때마다 웃음보가 터진다. 오늘도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운다.  <다음 호에 계속…>


Soul Food Recipe 6.  

비트루트 리소토(Beetroot Risotto) 레시피

생소한 비트루트, ‘빨간 무’ 라고 생각하는 편이 상상에 도움이 된다. 주먹만 한 크기의 비트루트를 요리하면 도마와 칼은 물론 손가락까지 빨갛게 물든다. 쌀이 주식인 한국인인 우리가 라마스에서 살아남은 방법은 치즈와 비트를 넣어 만든 리소토! 맛도 색도 근사한 리소토를 소개한다.

준비할 것 (2인분 기준)  1~1.5개 비트루트, 야채스톡(육수) 500㎖, 올리브오일, 다진 마늘, 양파, 레드와인, 아보리오 쌀(Arborio rice), 소금, 후추, 파르메산 치즈, 바질 

* 야채스톡이 없다면 양파, 대파, 멸치, 각종 야채를 넣어 육수를 만들어 사용하자.

* 리소토용 아보리오 쌀을 대신해 일반 백미를 사용해도 무관하다. 

❶ 야채 육수를 미리 준비해 둔다.

❷ 팬에 마늘과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달아오르면 다진 양파를 넣어 볶는다.

❸ 양파가 투명해지면 쌀을 넣어 볶고, 쌀도 투명해지면 와인을 넣고 저어준다.

❹ 잘게 다진 비트를 넣고 육수를 한 국자씩 넣어주며 익힌다. 수분이 거의 다 스며들어 갈 즈음 육수를 넣는 것을 반복하며 쌀을 익힌다.

❺ 파르메산 치즈를 강판에 갈아 원하는 상태의 리소토를 만든다.

❻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접시에 담은 후 바질 잎을 올린다.


글_  유영글, 정우정   |    정리_ 김연정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6년 7월호 / Vol.209

철도 여행을 만들다

1830년 9월 15일, 리버풀 사람들은 최초로 도시 간을 오가는 철도 여행의 승객이 되었다.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만들어내고도 한참 동안 기차는 그저 석탄이나 옮기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부정기적으로 실어 나르는 도구에 불과했다. 리버풀 앤 맨체스터 레일웨이(Liverpool and Manchester Railway)가 개통되고 나서야 정기적인 시간표를 가지고 운행되는 도시 간 철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철로를 놓을 때는 리버풀 항구와 맨체스터 공장 사이의 물자 교역을 위한 목적이 컸지만, 열차의 편리함을 알게 된 승객들 덕분에 본격적인 기차 여행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역사적인 첫 운행의 승객들은 당시 영국과 리버풀을 대표하는 유명인사들이었는데, 그들은 또 다른 최초의 기록, 그러나 매우 비극적인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야만 했다. 처녀 운행을 하던 증기 기관차가 물을 공급받기 위해 중간 지점에 잠시 서 있을 때였다.

리버풀의 인기 높은 하원 의원이었던 윌리엄 허스키슨이 객차에서 잠시 내렸다가 수상 월링턴이 다른 객차에 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가던 그때, 기관차 '로켓'이 달려와 그의 다리를 깔아뭉개 그를 죽이고 만다. 이것은 철도 역사 초기의 가장 유명한 철도 사상 사고가 되었다.


불행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의 열차는 세계 최초의 철도 우편을 수송하는 등 활기차게 연기를 뿜으며 내달렸고, 1840년대 영국 철도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된다. 개통 당시 크라운 스트리트에 있었던 리버풀의 종착역은 1836년에 라임 스트리트로 옮겨왔고, 현재 이곳에 대형 역사를 두고 있다.


리버풀 앤 맨체스터 레일웨이의 처녀 운행, 도시 간 철도여행의 시대를 열었다.




타이타닉과 대서양 횡단 여행을 만들다

허스키슨의 불행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타이타닉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항해하다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초대형 여객선이다. 대서양 횡단여행의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건조된 이 배의 공식항구는 리버풀이었고, 승무원과 승객의 상당수도 리버풀 사람들이었다.

알버트 독은 1년에 4맥만 명이 찾아오는 리버풀의 최대 명소다.


비록 이 도전은 역사적인 실패로 끝났지만 리버풀은 오랫동안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해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쳐왔다. 비틀즈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첫 장면은 리버풀 항구에서 주드라는 청년이 꿈을 찾아 뉴욕으로 가는 배를 타는 데서 시작한다.


한때 제국의 항구로 번성했던 리버풀은 영국 산업의 침체와 더불어 시들어갔다. 낡은 항구의 창구는 이제 알버트 독이라는 복합 건물로 변신해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건물 안에는 머시사이드 해양 박물관(Merseyside Maritime Museum), 비틀즈 스토리, 테이트 리버풀 등의 명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해양 박물관은 우리에게 리버풀이 바다를 지배하던 시대를 기억하게 해준다.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한 신대륙 이민사의 도전 정신과 더불어 이 항구가 주도했던 노예무역의 참상도 깨닫게 해준다.




움직이는 장난감을 만들다

기차들은 칙칙폭폭, 배들은 뿌우뿌우. 사방에서 새로운 기계들이 쏟아지던 산업혁명의 시대, 특히 리버풀은 온갖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현실로 변화시키는 엔지니어들의 땅이었다. 당연하게도 이곳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공작과 발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리버풀 북쪽인 맥헐에 살고 있던 프랭크 혼비는 바로 그 공학 소년들의 꿈에 힌트를 얻어 놀라운 장난감들을 만들어냈다. 바로 메카노(Meccano). 여러 종류의 부속품과 실제 작동하는 기어를 가지고 기차, 자동차, 교량 등을 만드는 조립 완구로,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과학 소년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프랭크 혼비가 1908년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메카노는 1980년까지 리버풀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이밖에도 혼비 모형 철도, 딩키 토이즈 등 스스로 작동하는 장난감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맥헐(Maghull)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혼비 박물관 설립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의 첫 번째 철도 모형의 모델이 된 맥헐 기차역 주변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맥헐의 미도우즈 센터(Meadows Centre)의 공간을 빌려 그와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다.


탄생 100주년을 넘긴 메카노. BBC의 <제임스 메이의 토이 스토리(James May's Toy Stories)>는 메카노의 재료만으로 실물 크기의 다리를 만들어 리버풀의 운하에 세우는 과정을 방영하기도 했다.




비틀즈를 만들다

비틀즈의 영광이 시작된 캐번 클럽의 명예의 벽


뭐니뭐니해도 이 도시가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 상품은 비틀즈다. '리버풀의 비틀즈'가 아니라, '비틀즈의 리버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 곳곳에서 이 전설적인 밴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존 레논의 이름을 딴 공항, 폴 매카트니가 살았던 집(20 Forthlin Road), 애비 로드와 스트로베리 필드 등 그들 노래에 영감을 준 장소들, '비틀즈 스토리'를 비롯한 여러 기념관들... 그리고 그들의 전설이 시작되는 매튜 스트리트의 캐번 클럽(The Cavern Club)까지.


비틀즈는 1961년부터 63년까지 이 클럽에서 292회 동안 출연하며, 첫 번째 유명세를 만들어냈다. 후에 그들의 매니저가 되고 '다섯 번째 비틀즈'라 불리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처음 만난 것도 여기에서였다. 현재 이 거리는 비틀즈를 기념하는 온갖 조형물들로 가득한데, 클럽 바깥에는 어린 존 레논이 벽에 기대어 있는 조각상이 있고, 명예의 벽에는 비틀즈의 멤버들은 물론 척 베리, 롤링스톤즈 등 이곳에서 연주한 록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올림픽을 만들다. 미친 축구에 빠지다

리버풀은 육체노동자의 도시다. 영국에서도 가장 스포츠를 사랑하고, 특히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1862년에서부터 67년까지 리버풀은 매년 그랜드 올림픽 페스티벌(Grand Olympic Festival)을 개최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을 재현하고자 했던 움직임으로, 오직 아마추어들만이 모여 스포츠를 통해 이상에 도전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피에르 드 쿠베르탕은 이 행사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어 1896년 최초의 근대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 도시는 에버턴 F.C.와 리버풀 F.C.라는 걸출한 축구팀을 가진, 영국에서도 가장 뜨거운 축구 열기를 자랑하는 도시다. 특히 1970~80년대에 무적에 가까운 위용을 자랑한 리버풀 F.C.의 전설은 아직도 시민들에게 깊은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격렬한 사랑은 훌리건이 만들어낸 양대 참사를 경험하게 만들기도 했다.


리버풀 F.C.는 1892-93년 시즌에 에버튼 F.C.와 갈라져 발족하게 된다. 그해 랭커셔 리그에서 우승했다.

1985년 유러피언 컵 결승전이 열린 브뤼셀 보두앵 경기장에서 리버풀과 유벤투스의 서포터들이 난투극을 벌여 39명이 사망한 헤이젤 참사, 영국 셰필드의 힐즈브러 스타디움의 경기장이 무너져 FA컵 준결승전을 보러 간 리버풀 팬 96명이 압사한 힐즈브러 참사가 그것이다. 두 사건은 영국의 훌리건 문화에 대한 깊은 반성과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여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안필드의 경기장에는 모인 4만의 관중은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다.




끝까지 저항하는 항구를 만들다.

첨바웜바는 '텁섬핑'이라는 신나는 댄스곡으로 리버풀 항만 노동자의 파업을 응원했다.


비틀즈의 백 비트와 축구의 박력, 그 밑바탕에는 리버풀 시민들의 땀에 대한 사랑과 투철한 반역 정신이 깔려 있었다. 2011년 새로운 박물관(The New Museum of Liverpool)으로 변신하게 될 '리버풀 생활 박물관(The Museum of Liverpool Life)'이 간판으로 내세운 전시는 '목소리를 요구한다(Demanding a Voice)'였다. 리버풀 극장 동맹, 여성 참정권 운동, 항만 노동자의 파업과 같은 역사적인 정치 투쟁의 모습이 바로 리버풀 시민들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짐 라킨도 리버풀에서 태어나 이곳 항만노조의 파업 운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한다.


1980년대 대처 정부가 광산 노조들을 거의 함락시키고 항만 노조를 차례대로 손들게 하였지만, 오직 리버풀의 항만 노조만이 끝까지 저항했다. 1990년대 중반 항만 노조의 파업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1998년 영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상인 브릿 어워즈(BRIT Awards)의 시상식에서 첨바왐바(Chumbawamba)는 자신들의 히트곡 '텁섬핑(Tubthumping)'의 가사를 바꾸어 "새로운 노동당은 항구를 팔아먹었다. 마치 우리들 모두를 팔아먹은 것처럼"이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보컬 댄버트 노바콘은 당시 관중석에 있던 노조운동가 출신 부수상 존 프레스콧의 머리에 얼음물을 부어버렸다. "이건 리버풀 항만 노동자의 몫이다."라고 외치며. 파업은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의 배신으로 결국 깃발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짜 도시를 만들다

언제나 과격하고 박진감 넘쳤던 도시. 그러나 리버풀 항구가 퇴색하고 축구도 과거와 같은 영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지금, 시민들은 새로운 시대를 위해 도시를 단장하고 있다. 리버풀의 고전적인 모습을 내다 버리기보다는 깔끔하게 다듬으며 익숙한 듯 색다른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이 도시는 여러 영화에서 다른 유명 도시를 대신하는 역할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주드 로가 멋쟁이 뉴요커로 나오는 [알피]에서는 뉴욕이 되었고, [불의 전차]에서는 파리에 있는 영국 대사관 건물의 역할로 시청을 내주었다. [배트맨 리턴즈]에서는 고담 시의 운하, [셜록 홈즈]에서는 영국의 부두를 대신해서 이곳의 강과 스탠리독이 출연한다.


아마도 이 도시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고전적인 건물은 세인트 조지 홀(St George's Hall)로 보인다. 최초의 네오클래식 건물로 일컬어지는데, 법정과 콘서트홀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목적을 위해 1854년에 지어졌다. 테러범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아일랜드 인들의 투쟁을 그린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런던의 여러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등장한다.


세인트 조지 홀은 리버풀이 누렸던 19세기의 영광을 상징한다.

느림과 전원…그리고 자유 역사를 머금어 더 풍요롭네

영국 시인 윌리엄 모리스가“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묘사했던 코츠월즈의 바이버리지역. 조르르 늘어선 잿빛 지붕 건물은 중세 때 코츠월즈에서 나는 석회암으로 만들었다. 한때 방직공들이 살며 모직을 만들던 집이다.

여행 가이드북에 도배된 세계 명소를 섭렵한 여행자들은 흔히 착각에 빠진다. 세상의 많은 것을 봤노라고. 하지만 여행 고수들은 안다. 여행의 깊은 맛은 인공으로 구축된 대도시가 아니라 산천과 초목이 빚어낸 시골길에 스며있다는 걸. 가이드북이 기껏해야 한두 장 훑고 스치는 시골 마을에서 우리는 되레 여행(旅行)의 참의미를 깨닫는다. 잠시나마 일상을 잊고 나그네(旅)가 되어 쉬엄쉬엄 거니는(行) 여유, 이것이 진정 떠남의 주목적임을.

영국 잉글랜드 중서부의 코츠월즈(Cotswolds)는 이런 시골 여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이다. 1960년대 영국 정부가 자연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선정한 곳으로 크고 작은 마을 100여개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아름다운 풍광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영국 내에서도 '그림엽서 같은 마을(picture postcard village)'로 꼽히는 곳, 케이트 모스·엘리자베스 헐리 같은 유명인들이 숨 막히는 런던 생활이 싫다며 박차고 나와 보금자리를 튼 곳이다. 유기농 선진국 영국에서 그린 시크(Green chic·고급 자연주의)를 주도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사를 머금어 더 풍요로운 코츠월즈의 자연을 만났다.

코츠월즈의 대표적 친환경 농장‘데일스포드’에 진열된 유기농 사과.
산업혁명으로 뒷전에 밀린 자연의 재발견

런던 패딩턴 역을 출발한 기차가 북서쪽으로 2시간 20분 정도 달려 첼트넘(Cheltenham) 스파역에 도착했다. 서울을 떠나 런던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함보다 몇 배는 더 짙은 상쾌함이 밀려든다. 알싸한 풀 내음과 소똥 냄새가 뒤범벅돼 매연에 무뎌진 후각을 시험한다. 첼트넘은 코츠월즈 여행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코츠월즈는 쉼 없이 마음 비우기를 재촉한다. 잡념으로 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평온을 엮어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렌터카에 올라 5분 정도 흘렀을까, 차창 너머로 완만한 구릉 위에서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떼가 보인다. 쪽빛 하늘을 수놓은 양떼구름이 이 모습을 느릿느릿 굽어본다. 코츠월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 코츠월즈라는 이름 자체가 양 우리를 뜻하는 '코트(cot)'와 언덕을 일컫는 옛날 영어 단어 '월드(wold)'에서 왔음을 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츠월즈의 자연은 산업화의 반작용이 재발견한 아름다움이다. 중세 때 코츠월즈는 가내 수공 형태의 양모 산업을 기반으로 영국 내에서도 부유한 지역으로 손꼽혔다. 귀족들의 대저택이 즐비하고 한가로이 정원을 꾸미던 여유로운 전원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기계식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서 급격한 쇠퇴를 맞이한다. 돈줄이 마르자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은 황폐해졌다. 쇠퇴 일로를 걷던 코츠월즈로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산업화에 반기(反旗)를 든 미술공예 운동이 시작되면서였다. 미술공예 운동을 이끈 공예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화의 물결이 미치지 못한 코츠월즈를 본거지로 삼았다. 산업혁명으로 뒷전에 밀렸던 자연과 예술이 다시 부흥했다. 

코츠월즈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 바이버리(Bibury)는 자연 회귀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 묘사했던 마을로, 개발의 뒤안길에서 방치됐던 방직공들의 집이 지금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아낸다. 

①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1편 촬영 장소였던 스노스힐.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장면을 찍으려고 온 마을을 인공 눈으로 덮었다고 한다. ②'코츠월즈의 베니스'라 부르는 보턴온더워터. 아담한 개울이 흐르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③찰스 황태자 농장에 딸린 채소 가게 '베지 셰드'. 밭에서 갓 따온 흙 묻은 당근이 진열돼 있다. ④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브로드웨이의 아기자기한 티룸(tea room). 
◇잿빛 돌집 사이로 자연이 보이네

첼트넘에서 차로 20여분 북쪽으로 향하자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작은 마을 윈치콤(Winchcombe)이 나타났다. 잿빛 지붕을 얹은 집들이 한 아름 시야에 들어왔다. 코츠월즈의 풍경을 더할 나위 없이 목가적으로 만드는 ‘코츠월즈 스톤 코티지(cottage·시골집)’였다.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짓는 데도 쓰였다는 코츠월즈 석회암을 쌓아올려 만든 집으로 코츠월즈의 상징이다. 마을마다 조금씩 스타일은 다르지만 전체적 느낌은 비슷하다. 

윈치콤 동쪽으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브로드웨이(Broadway)나 그 옆의 스노스힐(Snowshill)은 좀 더 아기자기한 동화 속 한 장면을 선사한다. 브로드웨이는 전원풍 인테리어로 유명한 로라 애슐리가 살던 곳이고, 스노스힐은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1’을 찍은 곳이다. 브리짓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방문한 시골 고향집이 여기에 있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 옆 가지런한 돌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영화 속 장면으로 빨려 들어간다.(잠깐, 영화 속 장면은 한여름에 찍었다고. 인공 눈으로 마을 전체를 덮어 장관을 이뤘단다.)

코츠월즈 중간 지점에 있는 스토온더월드(Stow-on-the-Wold)는 앤틱 용품 애호가가 찾을 만한 곳이다. 오후 4시, 영국의 맛을 느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지역 주민에게 인기 있다는, 스토온더월드 광장에 있는 카페 허프킨스(Huffkins)에 들러 5.99파운드(약 1만850원)를 주고 크림 티(cream tea) 세트를 시켰다. 갓 구운 스콘과 크림, 잼이 애프터눈티와 함께 나왔다. 달콤한 스콘을 한 입씩 베물며 백발의 영국 할머니들 틈에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여행자의 낭만적 휴식이다.

이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10여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보턴온더워터(Bourton-on-the-Water)로 향했다. ‘코츠월즈의 베니스’라는 지역 소개책자의 비유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작은 규모의 개울이 흐르는 동네였다. 하지만 느림과 전원, 자유와 아기자기함을 비교 기준으로 하자면 베니스에 판정승을 거둘 만큼 아름다운 마을이다. 느림을 만끽하려고 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을 보냈다. 수신자는 곧 일상으로 복귀할 나 자신. 우편값은 76펜스(약 1380원)였다. 고물가 속에 발견한 몇 안 되는 저렴한 물가였다.

◇자선사업 하는 찰스 황태자의 유기농장

“밭에서 방금 따온 당근이에요. 겉은 이래도 맛은 죽여준다니까요. 이거 한번 봐요.” 소박한 아낙이 흑갈색 흙이 덕지덕지 붙은 당근을 들어 우지끈 동강 냈다. 흙냄새가 당근에서 폴폴 풍겼다. 이곳은 코츠월즈 남쪽 테트버리(Tetbury)에 있는 ‘베지 쉐드(The Veg Shed)’. 낡은 이 허름한 창고 매장의 주인은 놀랍게도 찰스 황태자다. 가게 옆 농장에서 갓 따온 유기농 채소가 여기서 팔린다.

찰스 황태자는 1980년대 초반 테트버리에 있는 대저택 ‘하이그로브(Highgrove)’를 사들여 농장과 정원을 가꿨다. 친환경 유기농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이 작고 허름한 창고를 운영한다. 테트버리 시내에는 저택과 같은 이름을 내건 유기농 가게 ‘하이그로브’가 있다. 수익금 전액이 자선 기금으로 사용된다. 고부가가치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유기농이 코츠월즈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도구로 승화되고 있었다. 유기농 애호가라면 킹햄 외곽에 있는 데일스포드 유기농 매장은 필수 코스이다. 매끈하게 상업화된 유기농을 만날 수 있다.

코츠월즈의 나날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보턴온더워터에서 부친 엽서가 딱 열흘 만에 아파트 우편함에 도착해 있었다. 이미 망각의 문을 지난 추억이 기억의 강을 건너 잠시 찾아왔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느림과 전원…그리고 자유 역사를 머금어 더 풍요롭네

영국 시인 윌리엄 모리스가“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묘사했던 코츠월즈의 바이버리지역. 조르르 늘어선 잿빛 지붕 건물은 중세 때 코츠월즈에서 나는 석회암으로 만들었다. 한때 방직공들이 살며 모직을 만들던 집이다.

여행 가이드북에 도배된 세계 명소를 섭렵한 여행자들은 흔히 착각에 빠진다. 세상의 많은 것을 봤노라고. 하지만 여행 고수들은 안다. 여행의 깊은 맛은 인공으로 구축된 대도시가 아니라 산천과 초목이 빚어낸 시골길에 스며있다는 걸. 가이드북이 기껏해야 한두 장 훑고 스치는 시골 마을에서 우리는 되레 여행(旅行)의 참의미를 깨닫는다. 잠시나마 일상을 잊고 나그네(旅)가 되어 쉬엄쉬엄 거니는(行) 여유, 이것이 진정 떠남의 주목적임을.

영국 잉글랜드 중서부의 코츠월즈(Cotswolds)는 이런 시골 여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이다. 1960년대 영국 정부가 자연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선정한 곳으로 크고 작은 마을 100여개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아름다운 풍광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영국 내에서도 '그림엽서 같은 마을(picture postcard village)'로 꼽히는 곳, 케이트 모스·엘리자베스 헐리 같은 유명인들이 숨 막히는 런던 생활이 싫다며 박차고 나와 보금자리를 튼 곳이다. 유기농 선진국 영국에서 그린 시크(Green chic·고급 자연주의)를 주도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사를 머금어 더 풍요로운 코츠월즈의 자연을 만났다.

코츠월즈의 대표적 친환경 농장‘데일스포드’에 진열된 유기농 사과.
산업혁명으로 뒷전에 밀린 자연의 재발견

런던 패딩턴 역을 출발한 기차가 북서쪽으로 2시간 20분 정도 달려 첼트넘(Cheltenham) 스파역에 도착했다. 서울을 떠나 런던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함보다 몇 배는 더 짙은 상쾌함이 밀려든다. 알싸한 풀 내음과 소똥 냄새가 뒤범벅돼 매연에 무뎌진 후각을 시험한다. 첼트넘은 코츠월즈 여행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코츠월즈는 쉼 없이 마음 비우기를 재촉한다. 잡념으로 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평온을 엮어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렌터카에 올라 5분 정도 흘렀을까, 차창 너머로 완만한 구릉 위에서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떼가 보인다. 쪽빛 하늘을 수놓은 양떼구름이 이 모습을 느릿느릿 굽어본다. 코츠월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 코츠월즈라는 이름 자체가 양 우리를 뜻하는 '코트(cot)'와 언덕을 일컫는 옛날 영어 단어 '월드(wold)'에서 왔음을 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츠월즈의 자연은 산업화의 반작용이 재발견한 아름다움이다. 중세 때 코츠월즈는 가내 수공 형태의 양모 산업을 기반으로 영국 내에서도 부유한 지역으로 손꼽혔다. 귀족들의 대저택이 즐비하고 한가로이 정원을 꾸미던 여유로운 전원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기계식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서 급격한 쇠퇴를 맞이한다. 돈줄이 마르자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은 황폐해졌다. 쇠퇴 일로를 걷던 코츠월즈로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산업화에 반기(反旗)를 든 미술공예 운동이 시작되면서였다. 미술공예 운동을 이끈 공예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화의 물결이 미치지 못한 코츠월즈를 본거지로 삼았다. 산업혁명으로 뒷전에 밀렸던 자연과 예술이 다시 부흥했다.

코츠월즈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 바이버리(Bibury)는 자연 회귀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 묘사했던 마을로, 개발의 뒤안길에서 방치됐던 방직공들의 집이 지금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아낸다.

①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1편 촬영 장소였던 스노스힐.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장면을 찍으려고 온 마을을 인공 눈으로 덮었다고 한다. ②'코츠월즈의 베니스'라 부르는 보턴온더워터. 아담한 개울이 흐르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③찰스 황태자 농장에 딸린 채소 가게 '베지 셰드'. 밭에서 갓 따온 흙 묻은 당근이 진열돼 있다. ④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브로드웨이의 아기자기한 티룸(tea room).
◇잿빛 돌집 사이로 자연이 보이네

첼트넘에서 차로 20여분 북쪽으로 향하자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작은 마을 윈치콤(Winchcombe)이 나타났다. 잿빛 지붕을 얹은 집들이 한 아름 시야에 들어왔다. 코츠월즈의 풍경을 더할 나위 없이 목가적으로 만드는 ‘코츠월즈 스톤 코티지(cottage·시골집)’였다.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짓는 데도 쓰였다는 코츠월즈 석회암을 쌓아올려 만든 집으로 코츠월즈의 상징이다. 마을마다 조금씩 스타일은 다르지만 전체적 느낌은 비슷하다.

윈치콤 동쪽으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브로드웨이(Broadway)나 그 옆의 스노스힐(Snowshill)은 좀 더 아기자기한 동화 속 한 장면을 선사한다. 브로드웨이는 전원풍 인테리어로 유명한 로라 애슐리가 살던 곳이고, 스노스힐은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1’을 찍은 곳이다. 브리짓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방문한 시골 고향집이 여기에 있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 옆 가지런한 돌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영화 속 장면으로 빨려 들어간다.(잠깐, 영화 속 장면은 한여름에 찍었다고. 인공 눈으로 마을 전체를 덮어 장관을 이뤘단다.)

코츠월즈 중간 지점에 있는 스토온더월드(Stow-on-the-Wold)는 앤틱 용품 애호가가 찾을 만한 곳이다. 오후 4시, 영국의 맛을 느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지역 주민에게 인기 있다는, 스토온더월드 광장에 있는 카페 허프킨스(Huffkins)에 들러 5.99파운드(약 1만850원)를 주고 크림 티(cream tea) 세트를 시켰다. 갓 구운 스콘과 크림, 잼이 애프터눈티와 함께 나왔다. 달콤한 스콘을 한 입씩 베물며 백발의 영국 할머니들 틈에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여행자의 낭만적 휴식이다.

이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10여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보턴온더워터(Bourton-on-the-Water)로 향했다. ‘코츠월즈의 베니스’라는 지역 소개책자의 비유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작은 규모의 개울이 흐르는 동네였다. 하지만 느림과 전원, 자유와 아기자기함을 비교 기준으로 하자면 베니스에 판정승을 거둘 만큼 아름다운 마을이다. 느림을 만끽하려고 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을 보냈다. 수신자는 곧 일상으로 복귀할 나 자신. 우편값은 76펜스(약 1380원)였다. 고물가 속에 발견한 몇 안 되는 저렴한 물가였다.

◇자선사업 하는 찰스 황태자의 유기농장

“밭에서 방금 따온 당근이에요. 겉은 이래도 맛은 죽여준다니까요. 이거 한번 봐요.” 소박한 아낙이 흑갈색 흙이 덕지덕지 붙은 당근을 들어 우지끈 동강 냈다. 흙냄새가 당근에서 폴폴 풍겼다. 이곳은 코츠월즈 남쪽 테트버리(Tetbury)에 있는 ‘베지 쉐드(The Veg Shed)’. 낡은 이 허름한 창고 매장의 주인은 놀랍게도 찰스 황태자다. 가게 옆 농장에서 갓 따온 유기농 채소가 여기서 팔린다.

찰스 황태자는 1980년대 초반 테트버리에 있는 대저택 ‘하이그로브(Highgrove)’를 사들여 농장과 정원을 가꿨다. 친환경 유기농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이 작고 허름한 창고를 운영한다. 테트버리 시내에는 저택과 같은 이름을 내건 유기농 가게 ‘하이그로브’가 있다. 수익금 전액이 자선 기금으로 사용된다. 고부가가치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유기농이 코츠월즈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도구로 승화되고 있었다. 유기농 애호가라면 킹햄 외곽에 있는 데일스포드 유기농 매장은 필수 코스이다. 매끈하게 상업화된 유기농을 만날 수 있다.

코츠월즈의 나날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보턴온더워터에서 부친 엽서가 딱 열흘 만에 아파트 우편함에 도착해 있었다. 이미 망각의 문을 지난 추억이 기억의 강을 건너 잠시 찾아왔다.


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우리가 유럽을 상상하면서 꿈꾸는 모든 로망을 갖춘 도시

윈도 디스플레이가 뛰어난 백화점, Selfridges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4) Musical 웨스트엔드 뮤지컬
 

런던의 잊지 못할 밤은 웨스트엔드에서 시작된다. 매일 저녁 7시면 어김없이 뮤지컬의 막이 올라가는 웨스트엔드는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와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진 극장 지역Theaterland을 통칭하는 말이다.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등 롱런하는 뮤지컬은 불경기여도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빌리 엘리어트> <위키드> <라이온 킹> 그리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올리버> 등도 그 뒤를 잇고 있다.

‘뮤지컬’ 하면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뮤지컬의 시작은 런던 웨스트엔드이다. <오페라의 유령> <캐츠>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등 세계 4대 뮤지컬이 모두 웨스트엔드에서 먼저 제작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쇼에 가깝다면, 웨스트엔드 뮤지컬은 대부분 문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웨스트엔드의 연극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 많은데,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하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햄릿>에서는 주드 로가 열연했고, 영국의 연기파 배우 제임스 맥워보이도 웨스트엔드로 다시 돌아와 리처드 그린버그의 작품인 <스리 데이즈 오브 레인>에 출연했으며, 조시 하트넷도 웨스트엔드에서 연극 <레인맨>에 출연했다. 젊은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이 연기 실력을 다지는 곳이 웨스트엔드인 셈이다.

이것이 뮤지컬 관람 매너

1. 한여름이면 짧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극장에 오는 관광객들이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데, 드레스 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단정히 입는 것이 뮤지컬 극장을 찾는 매너이다.

2. 공연 시작 전 스탠딩바에서 음료를 마시는 시간을 즐겨보라.

3. 티켓 할인 부스를 이용하면 싼 값에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
Add Leicester Square URL www.tkts.co.uk

4. 요즘 각광받고 있는 <빌리 엘리어트> <위키드>,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올리버>는 어차피 레스터 스퀘어의 할인 부스에서도 할인 티켓을 팔지 않는다. 적어도 하루, 이틀 전에 뮤지컬을 상영하는 극장에 직접 가서 표를 구해야 한다.

런던 특유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편집숍, TOPSHOP

최근 런던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

Oliver 올리버
최근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이다. 찰스 디킨슨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1960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후 전 세계적으로 리바이벌 됐다. 현재 오픈런으로 공연 중.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이 출연하고, 2008년 올리비에 어워드 최고 연출가상을 수상한 루퍼트 굴드가 연출을 맡았다.
Add Royal drury lane, Catherine Street, London WC2B
Tel 44 844 412 4660, 44 20 7087 7960
Url www.oliverthemusical.com Station Covent Garden

Billy Elliot 빌리 엘리어트
2005년에 초연을 시작하자마자 이슈가 되어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는 작품. 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스토리는 똑같다.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로 분한 10대 소년 배우의 연기와 화려한 안무는 뮤지컬 특유의 생생한 재미를 제대로 안겨준다.
Add Victoria Palace,Victoria Street, London SW1E 5EA
Tel 44 870 895 5577
Url www.billyelliotthemusical.com Station Victoria



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우리가 유럽을 상상하면서 꿈꾸는 모든 로망을 갖춘 도시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 (2) 런던 스피리트, 빈티지 패션

빈티지 패션의 메카, 런던. 유행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런더너는 트렌디한 패션에 빈티지 아이템을 믹스앤매치한 스타일링을 좋아한다. 그래서 런던 거리에는 구멍 난 검은 스타킹, 낡고 해진 재킷, 오래 입어 무릎이 툭 튀어나온 스키니진, 빈티지숍에서 구입한 옛날 교복재킷, 버버리의 빅사이즈 트렌치코트를 입은 런더너를 흔히 볼 수 있다.

진짜 해군이 입던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할머니가 물려준 빈티지 주얼리로 스타일링한 후, 바지 끝단을 롤업하거나, 비비드한 컬러의 양말을 매치하는 등 포인트를 더해 런더너만의 빈티지 패션을 완성한다.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 케이트 모스와 시에나 밀러, 그리고 차세대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른 알렉사 청의 시그너처 패션 스타일도 빈티지 패션이다. 이들은 트렌드를 좇아 럭셔리 브랜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기보다는 디자이너 라벨과 하이스트리트 브랜드, 그리고 빈티지 아이템을 자유롭게 믹스앤매치해 자신만의 룩을 완성했다.

이들처럼 런더너가 매 시즌 빠르게 퍼지는 패션 트렌드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 바로 빈티지 아이템을 통해서다. 그들에게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란 그 시즌의 잇백이 아닌 세상에 하나뿐인 빈티지 아이템이다.

빈티지 초보의 쇼핑 팁
1. 처음 빈티지숍에 입문한다면, 자칫 촌스러워 보이는 허리나 어깨 라인의 빈티지 드레스나 재킷에 도전하기보다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체크 무늬 셔츠 혹은 레트로풍의 가죽 벨트나 스카프 등 활용도 높은 액세서리부터 시작해보자.

2. 빈티지를 구입할 때는 라벨을 과감히 무시하자. 꼭 무엇을 찾아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면, 진짜 자신만의 빈티지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세컨드핸드 리미티드 에디션이건, 진짜 빅토리안 커스튬이건 말이다.

Covent Garden 코벤트 가든
Blackout II 블랙 아웃 2
1920~1980년대 빈티지 의상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코벤트 가든을 대표하는 빈티지숍이다. 가격은 다소 높지만 상태가 좋은 빈티지 제품만 엄선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초보자라도 쉽게 쇼핑할 수 있다.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인 빈티지 마켓에서 어떤 것을 사야 할지 감을 못 잡는 초보자에게 딱 알맞은 빈티지숍.
Add Endell Street, Covent Garden, London WC2H 9HJ tel 44 20 7240 5006, 51 Url www.blackout2.com Station Covent Garden

Central 센트럴
Butler & Wilson 버틀러 앤 윌슨

영국판 <보그>가 사랑하는 액세서리숍으로 빈티지 이브닝 드레스와 화려한 액세서리를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해줄 커스텀 메이드 주얼리가 강추 아이템. 숍 2층에서는 1920년대의 빈티지 드레스 컬렉션이 준비되어 있다.
Add South Molton Street, London W1K 5QY tel 44 20 7409 0872, 20
Url www.butlerandwilson.co.uk Station Bond street

Brick lane 브릭 레인
Beyond Retro 비욘드 레트로
패셔너블한 런더너의 빈티지 차림을 보면서 ‘저건 어디서 샀을까’ 궁금해했다면 십중팔구는 비욘드 레트로에서 구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의 스트리트 패션은 이곳에서 시작한다고 할 정도로 빈티지 러버들의 베스트 숍이다. 셔츠와 진, 부츠 등 캐주얼 아이템을 기본으로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해가 빨리 지는 겨울철에는 캡을 불러준다.
Add 110-112 Cheshire Street, London E2 Tel 44 20 7613 3636 Url www.beyondretro.com Station Liverpool street

Notting hill 노팅힐
Rellik 렐릭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세 명의 오너가 운영하는 숍으로 하이엔드 브랜드의 빈티지를 만날 수 있다.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공수한 샤넬, 비비안 웨스트우드, YSL, 요지 야마모토, 콤데가르송 등 디자이너 빈티지 옷과 액세서리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작은 액세서리까지 모두 디자이너 라벨이 붙어 있을 정도. 스타일리스트와 디자이너 등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곳으로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연다. 단 토요일은 사전 예약이 필수다.
Add 8 Golborne Road, Notting Hill W10 5NW tel 44 20 8962 0089
Url www.relliklondon.co.uk Station Westbourne Park

Angel 엔젤
Annie's Vintage 애니스 빈티지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을 닮은 빨강머리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애니스 빈티지는 빈티지 드레스 마니아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파리에서 공수해온 아이템을 중심으로 웨딩드레스로 손색없는 화이트 드레스가 가득하기 때문. 이외에도 레이스, 퍼, 시퀸, 깃털 등으로 장식된 독특하면서도 개성 있는 드레스를 만날 수 있다. 1950년대 랑방 드레스, 글래머러스한 1920~30년대 드레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갈 이유는 충분하다.
Add 12 Camden Passage, Islington London, N1 8ED
tel 44 20 7359 0796
Url www.anniesvintageclothing.co.uk Station Angel



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우리가 유럽을 상상하면서 꿈꾸는 모든 로망을 갖춘 도시

COMPAS THE COW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 (3) 폅, 그리고 기네스

영국인들에게 펍은 맥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장소이다. 맥주를 마시며 게임을 하고, 댄스를 배우고, 코미디 쇼 등 각종 공연을 볼 수도 있는 곳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

워커홀릭에게는 사교의 장소, 열광적인 축구팬에겐 뜨거운 응원의 장소, 일요일에는 가족과 선데이 로스트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변신하면서 런더너를 위로하는 것이다.

사실 런던에 여행 온 관광객에게 펍은 실망스러운 공간으로 느껴지기 쉽다. 낮에도 실내가 어두컴컴하고 맥주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테이블에 눅눅한 피시 앤 칩스, 겉은 뜨겁지만 안은 차가운 포크 파이를 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스트로펍에 가면 영국의 전통 음식과 기네스를 맛볼 수 있다.

가스트로펍은 캐주얼한 영국 전통 식사와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차가운 고기 페이스트와 빵, 계란 피클, 데워 먹는 고기 파이 등 간단한 스낵을 제공했던 전통적인 펍이 1990년대부터 훌륭한 음식과 드링크를 마실 수 있는 가스트로펍 Gastropub(pub과 gastronomy 식도락의 합성어)으로 변모했다. 셀러브리티 셰프인 고든 램지가 열 올리는 사업 중 하나로 엄선된 맥주와 칵테일, 그리고 와인 리스트와 그릴 위의 립아이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맥주를 제대로 주문하는 법

맥주는 크게 라거Larger와 비터Bitter, 두 종류로 나뉜다. 라거는 하이네켄Heineken, 포스터스Forsters, 스텔라 아트로스Stela Artows 등 유명 해외 브랜드의 맥주이고, 영국의 전통 맥주로 지방마다 다른 맛을 가진 맥주들은 에일Ale이라고 한다. 비터는 색깔이 검고 맛이 쓴 영국의 흑맥주이다. 비터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가 바로 기네스Guines이다.

여름철 드링크를 주문하라

런더너는 여름이면 사과로 만든 알코올, 사이다를 즐긴다. 사이다는 맥주와 달리 얼음홀 동동 띄워 더 시원하게 마시는 술인데, 벌머스bulmers, 매그너스magners, 아스팰aspall이라는 브랜드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 또 다른 여름 드링크로는 핌즈fimm's 칵테일이 있다. 피처로 시켜 친구들과 나눠 먹으면 좋은 핌즈 칵테일은 딸기, 레몬, 라임, 오이, 민트를 섞어 만든 상큼한 칵테일이다.

The compass 더 컴퍼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런더너들이 인정한 펍. 런던 펍의 스타 셰프로 불리는 벤비숍Ben Bishop이 이끄는 곳으로 양념이 필요 없는 립아이 스테이크와 핸드 커팅 칩스, 워터 크레송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각 재료의 신선한 맛과 재료의 조화를 중시한다. 일요일에는 기름기 빠진 선데이 로스트를 맛볼 수 있다.

The Eagle 더 이글
오픈 키친이 인상적인 이곳은 런던의 첫 번째 가스트로 펍이다. 모던 브리티시 음식과 각 지방의 에일Ale 셀렉션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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